한국 합창의 발원지, 세계로 뻗어 나가다-2016 인천아시안유스콰이어 2016.10.28~29, 신도 및 송도 트라이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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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이라는 근대 역사현장의 중심이었던 인천은 그에 부합하는 ‘최초’의 기록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 종교와 스포츠, 예술의 분야에서 인천은 최초의 기록들이 꽤 많은데, 무엇보다 기독교인들의 시선에서 인천은 적어도 국내에서만큼은 그야말로 ‘성지’와도 같은 역사를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선교사 아펜젤러가 한국으로 들어와 선교를 하면서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로 불리는 내리교회가 1885년 그 역사를 시작했고, 1889년에는 제물포에 성당이 창설돼 1890년대로 넘어가면서 이 성당이 지금의 답동성당으로 자리잡았다. 또 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이자 현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51호이기도 한 내동교회 역시 이들 교회와 비슷한 시기인 1890년에 창설돼 지금까지 그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이러한 개신교와 천주교 등이 들어왔다는 사실에서 매주 주일성수(예배)를 하는 기독교인들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합창’이라는 음악예술의 형태 역시 인천에서 그 발자취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다. 흔히 ‘세계 4대 종교(불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라고 불리는 종교들 가운데서 기독교는 특히 음악에 대한 관심과 경제력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기독교의 교회들은 수많은 클래식 음악가들 및 대중음악 뮤지션들을 키워내는 바탕이 되기도 했는데, 합창 역시 이는 예외가 아니다. 특히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교회들이 예배마다 구성하고 있는 ‘성가대’는 인천뿐만 아니라 한국 합창의 중요한 모태가 되어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내리교회와 여기서 갈라져 나온 율목교회(지금은 없어짐) 등의 교회 성가대들은 어린이부와 성인부 할 것 없이, 전국 합창대회 같은 게 있을 때마다 출전하면 1~2위가 기본이었을 정도로 인천 합창의 자존심을 지켜 오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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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앞서 언급한 율목교회에서도 1960년대 4년여 간 성가대 지휘를 했던 바 있는 윤학원 음악감독은 모두 동갑(1938년)인 나영수(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그의 딸이다), 유병무 등과 함께 한국 합창계의 거목인 동시에, 지금까지도 인천의 합창 인프라를 이끌어오고 있는 인물이다. 34년 간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과 이후 대우합창단 등을 지휘하면서 이들 단체들을 세계적인 위치로 끌어올렸던 그는, 지난 1995년 ‘사실상 해체’ 상태나 다름없었던 인천시립합창단에 부임해 단기간에 이를 정상화시킨 것은 물론, 수년 후에는 인천시합을 세계 유수의 합창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연주단체로 비상시켰다.

그의 부임 후 인천시립합창단은 불과 2년여 만에 벨기에의 IFCM 창립 15주년 기념 세계 합창제와 오스트리아 유로파 칸타타 등을 시작으로 1999년 이어지는 유럽 순회공연, 2005년 미국 4개 도시 순회공연 등은 몇 년 전까지 와해 상태에 있던 합창단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극찬을 받았다. 특히 지난 2009년 ACDA(미국 합창 지휘자 협회)의 초청 공연에서 첫 곡부터 시작해 전 곡 연주에서 기립박수를 받던 순간은 인천 합창계 역사에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꼽힌다. 때문에 지난 2014년 그가 인천시합에서 퇴임을 발표했을 당시 수많은 지역사회와 문화계가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으며, 그중에는 “과연 그만한 인물이 지휘를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까지 했다. 다행히, 후임으로 김종현 지휘자가 부임해 윤 감독의 업적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인천시립합창단은 아직도 순항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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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합창단을 그만 둔 이후로도 자신의 사립 합창단인 ‘윤학원 코랄’과 전국 CTS 어린이 합창단(약 40여 단체)의 기획 등으로 오히려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는 윤 감독은, 최근 인천문화재단과 ‘아시안 유스콰이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오랜만에 인천에서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인천문화재단이 ‘섬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합창을 통해 지역 시민예술활동을 활성화시키자는 의도로 윤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고, 이를 윤 감독이 쾌히 수락하면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인천에서 세계로’의 방향이 아닌, ‘세계에서 인천으로’의 방향을 잡으면서 지역사회에서 적잖이 화제가 됐었다. 그리고 그 방향에 대한 방법은 아시아 각국에 있는 유능한 청년들을 인천으로 불러 모으면서 1차적인 완성을 봤다. 한국을 포함해 인도네시아와 싱가폴,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의 6개국에서 모인 청년들은 외모와 언어, 심지어는 사상도 각기 다른 친구들이었지만, 윤 감독이 추구하는 ‘화합의 정신’ 아래 1주일 간 강도 높은 합숙 훈련을 통해 합창이라는 매개 하에 하나가 됐다.

10월 28일 인천 섬 신도 소재의 세신수련원, 그리고 이튿날인 29일에는 송도국제도시의 트라이볼에서 아시안 유스콰이어는, 불과 1주일 트레이닝을 받은 친구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탄탄한 팀워크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전 인천시합도 선보인 바 있는 독특한 구성의 ‘Missa Brevis(반딧불 미사)’를 비롯해 익살스런 퍼포먼스가 추가된 ‘Go! Classic’, 그리고 윤 감독과 함께 활동하며 이름을 알린 작곡가 우효원 등이 힘을 보태 재탄생된 한국 가곡들의 향연은 10만 원이 넘는 일류 클래식 무대에 버금가는 수준의 결과를 도출해 냈다. 더군다나 전 세계에서 모인 이들 단원들이 프로 뮤지션들이 아닌, 현재 20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라는 점은 윤 감독의 세계구급 기획력과 통솔력 등을 쾌히 입증했다고 봐도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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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은 향후에도 섬 예술사업의 일환으로 이 유스콰이어 프로젝트를 지속할 뜻을 밝히고 있다. 합창을 통해 인천에 평화와 이웃의 개념을 심어주고자 하는 윤 감독의 염원은 개인의 염원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지역의 염원일 수도 있다. 합창이라는 매개로 온 동네가 사이좋게 지내고 좋은 일을 나누겠다면, 생각이 비뚤어진 사람이 아닌 바에야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이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권역에도 그 의도를 알리고 확대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작업이기도 하다.

윤 감독에 대해 한 가지 더 짚고 언급할 것이 있다. 지역사회에서 ‘최고’라 꼽는 그의 업적은 비단 인천시합의 활동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인천 각 동네에 심어 긍정적인 결과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합창의 모토를 통해 동네에 이웃의 개념을 확고히 하고 적극적인 커뮤니티를 조성토록 ‘동 단위 합창단 만들기 운동’ 등의 활동을 이어 오며 사회에 긍정적인 요소를 첨가하고 있다. 또 윤 감독 혹은 그와 함께 하거나 그의 뜻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인천의 합창 인프라는 상당히 좋은 면모를 구축하고 있다. 각 구마다 합창단이 활동을 하고 있고 공무원들이 합창단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는 것은 물론, 민간 합창단체의 활동 역시 비교적 활발한 편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 영역에서 활동 중인 인천남성합창단과 인천장로성가단 등을 비롯해 부평기독남성합창단, 여성문화회관합창단, YMCA합창단과 YWCA합창단, 인천복음선교합창단 등은 인천의 합창계를 주름잡고 있고, 윤 감독이 과거 율목교회에서 지휘를 했을 당시 반주자로 활동했던 유호희 선생을 비롯한 윤 감독의 후배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인천기독선교합창단은 내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창단연주회를 계획하고 있는 등 그야말로 활발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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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감독은 “합창은 혼자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서 다른 사람의 소리를 꼭 들어봐야 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라는 의미를 중요하게 삼게 되는 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합창이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협력적이고, 민주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인천에 ‘이웃사촌’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가는 지금, 합창을 통한 ‘이웃사촌’의 복구는 우리 인천에 꼭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작업이 인천은 물론 타 지역 그리고 타 국가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길 바라며, 그러한 지역 혹은 국가 간 교류를 통해 인천이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자랑하길 바란다. 인천문화재단의 이번 ‘아시안 유스콰이어’ 프로젝트는 바로 그 부분에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글, 사진 / 배영수 (인천in 기자, 음악칼럼니스트)




인천에서 열리는 아트마켓의 오늘과 내일,제2회 인천아트마켓 “문화예술, 기업과 만나다” 2016.10.20.~10.21. 인천하버파크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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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누구는 팔기 위하여, 누구는 사기 위하여, 혹 딱히 살 것도, 팔 것도 없다면 그저 구경삼아 서성여도 좋겠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한데 모여서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은 이렇듯 재화와 정보를 교환하고, 사교와 유흥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지난 10월 20일에서 21일, 이틀에 걸쳐 제2회 인천아트마켓이 열렸다. 인천지역 공연예술프로그램의 유통 활성화를 위한 마켓이 시도된 것이다.

인천아트마켓은 인천 지역 소재 문화예술단체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구보댄스컴퍼니의 장구보 대표를 중심으로 2015년 조직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첫 해에는 공연단체를 교육기관의 수요에 맞추어 소개했다면, 2016년 2회차에는 참여 범위를 대폭 확대하였다. 무용, 연극, 음악, 영상 등 지역 문화예술프로그램의 생산자와 인천지역의 기업, 공공 문화시설, 교육기관, 인천시 행정 등의 수요자가 서로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등 보다 풍성해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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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문화예술단체의 홍보부스와 공연 쇼케이스는 개막 당일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다. 총 20여개 단체의 홍보부스는 오픈형 테이블로 행사장에 자리를 잡았다. 참여단체의 공연 홍보와 예술프로그램에 대한 상담, 각 단체의 정보교류가 이루어지는 장터이다. 쇼케이스는 장르별 2개 작품이 선정되었다. 2011년 창단하여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이데아댄스컴퍼니의 “일상”과 인천에서 클래식 음악 보급을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미추홀 오페라단의 “휘가로의 결혼”이 하이라이트 쇼케이스로 올려졌다.

심포지엄에서는 “문화예술시장 활성화를 통한 지역 내발적(endogenous) 발전”을 주제로 양준호 인천대 교수의 ‘문화예술 시장의 사회적 조정을 통한 지역 내발적(endogenous) 발전’ 발제가 있었다.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 지역의 소비에 의해 자기완결적으로 수요되는 지역경제발전 모델’을 설명하며, 가격경쟁에 의한 시장적 조정이 아니라 사회적 조정을 통해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상호협의를 통한 지역문화예술시장의 가능성을 토로하였다. 김상원 인하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으며, 토론에는 신동근 국회의원과 황흥구 인천시 문화복지위원장, 김인수 인천시 문화정책팀장, 이승희 시사인천 사장이 자리하여 정치, 행정, 언론 등 각자의 역할에서 충실한 제안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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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에는 참여단체의 프리젠테이션을 필두로 하는 라운드테이블이 마련되었다. 라운드테이블은 지역 문화예술프로그램의 수요자 층에 속하는 지역 기업 및 병원, 공연장, 학교, 관공서 등과 지역문화예술단체와의 비즈니스 미팅 자리다. 총 23여개의 기관과 20여개 단체의 네트워킹이 마련된 이 날 프로그램이야말로 아트마켓이 지향하는 지역 공연예술 유통구조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문화예술의 서울 중심, 지역에서 지역예술의 배제라는 이중고를 극복하기 위해 아트마켓을 구상하게 됐다”는 장구보 집행위원(구보댄스컴퍼니 대표)은 이번 행사가 일회성 이벤트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한다. 인천에 뿌리를 두고 예술을 하는 지역 문화예술단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로 인천아트마켓을 이어나갈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사실 마켓이란 수요와 공급이 적절히 만나고 거래되어야 생산과 소비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술상품은 여타의 용도가 있는 물품과 다르다는 점에서 자유경쟁의 논리로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사회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도구만능주의적 관점은 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정책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문화경제학자 브루노 프레이(Bruno S. Frey)는 국가가 예술을 보조하고 육성해야 하는 이유로 예술로 인해 지역경제가 증대되고 산업이 활성화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으며, 예술이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자유 시장 형성이 어려운 분야라 설명한다. 예술은 그 예술을 직접적으로 향유하는 감상자들 외의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미치며, 그 혜택을 제한할 수도 없고, 한 사람이 향유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지 않는다는 공공의 선적 효과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트마켓이 여타의 재화와 물건을 교환하는 시장과 달리 걸어가야 할 지점이다. 예술을 상품으로, 거래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교환하는 장이기에 앞서, 예술창작자와 기획자, 관객이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공공재의 나눔의 장, 확산의 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인천아트마켓은 ‘지역에서 예술하기’를 실천하는 창작자들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쟁의 룰이 아닌 사회적 합의와 대화를 통한 신뢰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아트마켓’의 새로운 룰이 인천의 시민과 예술가를 흥하게 하는 장터를 상상해 본다.

글/ 변순영(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




인천 문화도시를 향한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는 판, 열린 집담회

인천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여러 문화공간에서 지난 9월 한 달 5차례의 <인천광역시 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열린 집담회>가 진행되었다. 문화도시 인천으로 가기 위한 조심스런 첫 걸음이자 앞으로도 연례적으로 지속되어 시민과 시정이 만나 인천 문화가치를 엮어낼 “판”이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열립 집담회는 인천 곳곳에 있는 다양한 인천만의 가치를 문화로 해석하고, 또 문화적 활동으로 펼쳐내는 다양한 층위의 전문가, 활동가, 시민 등이 참여했다. 1차~5차까지의 과정에서 인천 문화도시로 가기 위한 귀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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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현재적 가치로 살아 있고, 자생적 지역문화의 특수성과 다양성이 보전되며 향유되는 진정한 문화도시는 외부적 힘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 온 시민들이 변화의 주역이 될 때 가능할 것이다. 인천은 어느 도시보다 시민의 힘이 모여 많은 것들을 이루어낸 도시이기도 하다. 때문에 인천시정에서 시민을 중심에 두고자 하는 정책이 꾸준히 추진되어 왔고 본 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은 그러한 인천시정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문제는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체감적으로 어떻게 담아내고 실질적으로 문화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동참하는 흐름을 펼쳐낼 수 있는 가인데, 이 이슈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도시들의 공통된 과제이기도 하다.

열린 집담회는 이러한 과제를 풀어갈 열쇠를 찾는 과정 중의 하나였다. 인천에서 문화도시가 정책적 구호만이 아닌 시민의 목소리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인지, 또 도시의 각 영역에서 문화적 터치가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문화가 연결될 것인지, 예술이 문화도시 안에서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인지 등 문화도시 안에서 유기적으로 발현되어야 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함께 살펴보고, 의견을 내는 그런 자리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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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제안된 의견들을 요약하면 인천 역사를 관통하며 켜켜이 쌓인 인천가치를 긍정적 에너지로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또 청년, 다문화, 시민의 생활문화 등 정책적으로 힘을 실어야만 작동될 수 있는 영역을 실제 문화도시 정책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인천을 이루는 각 자치구의 역사, 문화적 잠재력이 인천 문화도시 정책에 효과적으로 연계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현재 인천에서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관광, 원도심 재생, 도시공간 변화 등은 문화도시와 어떻게 연동되어야 하는지, 또 문화산업 및 문화콘텐츠 산업과 같이 활성화가 필요한 부분에서 문화도시 정책은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을 실현함에 있는 지역문화 전문인력, 정책추진체계 등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슈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수십 여 명 패널의 발제와 객석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야기로 펼쳐졌다.

이번 집담회는 완성된 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을 공유, 확산하는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문화도시 계획수립을 위한 이슈들을 모아내고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결론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슈들을 공론화하는 그 자체가 인천의 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에 대한 다양한 전문가, 시민들의 관심을 모아내고, 또 향후 진행과정에 보다 주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 하겠다. 때문에 이와 같이 시민과 시정이 인천의 문화를 공론화하는 장은 인천 문화도시의 정례적 프로그램으로 정착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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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화도시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과정을 통해 지난하게 완성되어가는 모든 도시의 궁극적 지향점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미 오랜 시간을 통해 세계의 많은 도시들은 문화도시로 존중받고자 유럽문화수도와 같은 국제적 제도를 만들기도 하고, 국내에서도 지난 정책적 시행착오를 딛고 열린 과정으로서의 문화도시문화마을 정책을 새롭게 펼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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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에서 인천 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은 인천의 가치를 문화적으로 해석, 재창조하고 이를 장기간 구현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발판을 만들기 위한 큰 방향과 정책추진체계, 시정과 시민의 유기적 소통체계를 제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일 것이라 본다. 본 연구는 2016년 5월 시작되어 2017년 3월 종료되는 5개년 계획이다. 집담회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2차례의 중간보고, 정책토론회, 시민공청회, 전문가자문회의, 최종보고회 등 열린 자리들이 이어진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제한된 기간 안에 숨 가쁜 일정이지만 문화도시 정책수립이라는 과업의 본성에 따르자면 꼭 필요한 프로세스여서 참 어려운 작업이면서 동시에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하다. 5개년 계획이 가지는 단기성이 있지만 인천 문화도시로의 장기적 성장을 전제하고 5개년 내에 꼭 실행되어야 할 과제들을 중심으로 계획이 수립될 것이며, 이 모든 과정은 인천 문화도시를 만들어갈 주체로서 인천의 여러 전문가, 시민들의 힘이 수반되어야만 실현가능한 계획이 될 것이라 본다.

글 / 추미경(문화다움 대표, 인천문화도시종합발전계획 수립 연구책임)




노래하는 시민, 인천을 꿈꾸다 – 2016 인천왈츠, <1936, 그날>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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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 고급 사교춤에서 평등의 상징으로

10월의 첫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는 조금 색다른 공연이 열렸다. 시민창작뮤지컬 <인천왈츠>는 일반 시민들이 직접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작품이다. 인천문화재단에서는 2010년부터 <인천왈츠>라는 이름으로 시민이 중심이 되는 공연을 선보여 왔다. 2010년과 2011년에는 각각 ‘시민합창단’과 ‘시민밴드’가 중심이 되는 콘서트 형태였고, 2012년부터는 ‘인천을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에 시민들이 직접 배우가 되어 참가하고 있다. 사실 <인천왈츠>라는 제목만 들으면 공연이 무슨 내용인지 의아할 수 있다. ‘시민’을 중심에 놓는 공연을 하면서 왜 ‘왈츠’라는 표현을 썼는지 다소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19세기 초의 유럽은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사회 곳곳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상공업의 발달로 경제적 여유가 생긴 중산층 시민계급이 부상하고 있었다. 또한 궁궐 문화가 해체되는 와중에 집약적 노동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여흥을 즐기게 되었다.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귀족 중심의 고급문화가 평민들의 삶 속에까지 파고들게 되었고, 남녀노소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왈츠’가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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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뮤지컬의 역사
사실 한국에서 뮤지컬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다. 2001년 라이선스 공연으로 국내 무대에 선보인 <오페라의 유령>은 7개월간 244회의 공연을 이어가며 약 24만 명이 관람, 총 192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의 성공을 계기로 한국의 뮤지컬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하게 되는데, 2000년대 초반에는 외국 라이선스 공연(주로 브로드웨이 형식의 뮤지컬)이 주류를 이루다가 이후에는 오리지널 캐스트 공연이 그 뒤를 잇게 된다. <캣츠>로 시작된 영미권 오리지널 공연 붐은 이후 <노트르담 파리> 등 불어권 작품으로까지 파급되었고, 급기야는 번안 공연과 오리지널 캐스트 공연이 시차를 두고 차례로 공연될 정도로 관객층이 두터워졌다.
외국 라이선스 공연이 뮤지컬 시장 형성을 견인했다면,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낸 것은 한국의 창작 뮤지컬이었다. 올해로 공연 20주년을 맞이한 <명성황후>는 물론 <사랑은 비를 타고>, <김종욱 찾기> 같은 소극장 뮤지컬들이 관객의 다변화를 꾀하면서 뮤지컬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산업적으로 성장하면서 뮤지컬 제작 노하우도 보편화됐다. 사실 뮤지컬은 노동 집약적이며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한다. 극작이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곡과 안무가 이루어져야 하며, 대중적인 발성으로 노래하면서 춤까지 소화할 수 있는 전문 배우들이 대거 필요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면서 뮤지컬 전문 무대제작인력이 양성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배우 층도 두텁게 형성되면서, 뮤지컬 제작에 도전하는 공연기획사들도 늘어났다. 또한 지자체에서 자기 고장의 이야기를 가지고 뮤지컬을 만드는 흐름도 생겨났다. 2006년에 수원 화성을 소재로 한 작품 <화성에서 꿈꾸다>가 제작되는 등 전국적으로도 뮤지컬 제작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전문예술인들 뿐만 아니라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이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충남 아산의 경우 청소년을 배우로 참여시키는 뮤지컬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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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이 노래하는 그 날까지!
다소 장황하게 뮤지컬의 역사를 짚어본 것은, 유럽에서 귀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사교춤 ‘왈츠’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널리 퍼지게 된 것과 대한민국에서 ‘뮤지컬’이라는 가장 전문적인 공연 형태가 민들에게 보급되기까지 유사한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천에서 뮤지컬은 일반 시민들이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찾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문화정책이 본격적으로 입안된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문화정책 연구자들이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얘기하는 것은 바로 ‘향유’였다. 하지만 최근 ‘문화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참여’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향유’라는 표현은 태생적으로 전문예술인들이 만든 예술작품을 일반 시민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머무른다는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참여’라는 표현은 시민들이 수동적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만들어나가는 적극적 입장을 지향한다. 즉 시민은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고, 시민 자신이 예술가가 되어 무대에 서서 그 무대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혹자는 ‘모든 시민이 전부 무대에 선다면 그 무대는 누가 봐 주겠는가’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무대가 단순히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라는 단편적인 시각에 머무르는 것일 수 있다. 무대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공간’이기 이전에, 무대에 서는 사람 스스로가 자신의 힘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창조의 공간’이다. 관객은 무대에 서는 사람이 창조한 세계관에 공감하고 그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또 다른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대에 선 사람과 관객은 상호간에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는 관계라고 할 수 있으며, 무대는 그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시민창작형뮤지컬 <인천왈츠>는 이렇게 시민들의 ‘문화적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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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꿈에 관한 것이다. <인천왈츠>는 2012년에 처음 시민창작형 뮤지컬로 제작될 때부터 ‘꿈’에 대해 말해 왔다. 특별히 이번에 선보인 ‘1936, 그날’은 2015년 ‘꿈스터디 꿈스케치(이하 꿈스꿈스)’에 이은 ‘꿈’ 연작이다. 2015년 작품 ‘꿈스꿈스’가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어린 시절 가졌던 꿈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꿈을 찾아보지 않겠냐고 질문을 던졌다면, 2016년 작품 ‘1936, 그 날’은 80년 전 일제 치하에서 민족의 독립이라는 꿈을 위해 달려가던 선조들의 삶을 소박하고 진솔하게 담아냈다.
시민이 중심이 되어 만든 <인천왈츠>의 의미적 요소를 생각하고 공연을 보더라도,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시민의 공연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관객들에게 숨겨져 있던 꿈이 무엇인지 찾아보자고 이야기를 건네는 무대였기에, 잊고 있었던 나만의 꿈에 대해서도 부담 없이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시민의 자발적인 문화참여활동이 가장 활발한 분야가 바로 음악이며, 음악 활동을 하는 시민들이 행정 당국의 정책적 지원을 가장 많이 원한다”는 연구 보고서 내용이 떠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많은 시민들이 노래하고 꿈꾸도록 도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문화정책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보고 나온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야외광장의 밤공기에 방금 들었던 노래하는 시민들의 열기가 풋풋하게 묻어나는 것 같아 반가웠다. 부디 이 따뜻한 열기가 인천 전역에 퍼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바란다.

공규현 / 인천문화재단 경영지원팀장




사이를 좁혀, 경계 위를 걸어가다.

사이를 좁혀, 경계 위를 걸어가다.
제 4회 디아스포라영화제(9.2~9.4, 인천아트플랫폼 일대)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라 / 모든 적은 한때 친구였다 / 우리가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지 않고 /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 고요히 칼을 버리고 / 세상의 거지들은 다 /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라 / 우리가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지 않고 / 어떻게 눈물이 햇살이 되겠는가 /어떻게 상처가 잎새가 되겠는가’
– 정호승, ‘나뭇잎 사이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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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은 ‘나뭇잎 사이로 걸어간다’는 표현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좁은 틈을 포용하는 여유에 대해 말했다. 사람들 사이의 좁은 틈을 포용할 때에 비로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 4회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이’에 집중해보자는 의미에서 ‘사이를 걷는’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리스어로 ‘흩어지다’, ‘퍼뜨리다’라는 의미를 가진 디아스포라는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인천은 한국 최초의 이민이 시작된 도시이며 장기 체류 외국인이 7만 명을 넘어서는 만큼 ‘디아스포라의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사실을 이 영화제에 와보고서야 알게 됐다.

인천영상위원회와 인천문화재단이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제 4회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지난 9월 2일부터 4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일대에서 열렸다. 다양한 층위의 디아스포라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들과 함께, 감독, 작가, 관련 연구자 등과 관객이 영화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토크’, 한국과 오키나와의 민요를 연주하는 칸류메이의 공연, 어쿠스틱 국악 그룹 다나루와 극단 앤드시어터의 퍼포먼스, 유럽의 난민문제부터 새터민들의 삶에 대해 고민한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의 <여기와 저기사이> 전시, 재일조선인 2세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온 서경식 교수의 특별강의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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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서는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흩어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를 통해 소개되었다. 개막작인 <이야기의 역사, 역사의 이야기>(연출 김하경 달린)는 1905년 한국을 떠나 멕시코로 이주한 사람들의 사연과 그 후손들의 증언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로, 스크린을 이용한 미디어아트, 분할된 화면과 자막 등의 독특한 방식으로 전달했다. 상영작 <거미의 땅>(연출 김동령, 박경태)은 폐허가 된 의정부 미군 기지촌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세 여인의 모습을 담았다. 두 영화는 역사가 외면하고 사람들이 망각했지만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남아있는 상처를 담담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전통적 의미의 디아스포라를 담은 영화 이외에도, 계급, 인종, 민족, 소수자 등 다양한 정체성의 경계 위에서 떠도는 사람들에 주목한 현대적 디아스포라에 관한 영화들도 소개되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미래에 대한 고민과 함께 각기 다른 곳으로 흩어져 살아가는 다섯 명의 단짝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월미도와 동인천 일대의 15년 전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영화는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하며 지금은 많이 달라진 동네의 모습과 비교하는 쏠쏠한 재미도 제공했다. 그러나 동네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도 청춘들의 고민은 같은 모습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청춘들이 살아온 터전은 여전히 그들에게 정착할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방황하는 청춘들은 먼 곳으로 떠나기를 결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1년에 만들어진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2016년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상영된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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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영화제의 특별한 상영회, 이주민 대상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 <영화, 소(疎)란(LAN)>에서 완성된 영화들도 만날 수 있었다. 결혼이주가정, 화교, 유학생 등 인천지역 디아스포라로 구성된 팀들을 대상으로 5개월간 진행된 영화 제작워크숍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각각 청소년들의 고민, 한국에서 겪은 소통의 어려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화, 소(疎)란(LAN)>의 작품들은 다른 얼굴, 다른 언어를 가졌다는 이유로 낯설게만 바라보았던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베트남예술단 무지개언덕 팀이 만든 <705호의 일요일>은 한국어 수업에 참여하게 된 각자의 사연을 영화로 구성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선주민이지만, 다른 지역의 이주민이 된다면 우리도 똑같이 겪을 수 있는 그들의 사연은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인천화교중산중학 여채현 학생은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영화도 찍고 소통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어 행복했고, 직접 만든 작품을 완성시켜 사람들 앞에 보여줄 수 있어 더 뜻깊었다.”며 <영화, 소(疎)란(LAN)>에 참여한 소감을 또랑또랑하게 말하기도 했다. 수업을 진행한 인천여성영화제 라정민 씨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중도 입국한 청년들이 모인 새꿈학교의 경우 한국어가 능숙한 친구들이 별로 없어 지난해에는 그림을 그려 소통하기도 했는데 올해는 한국어가 많이 늘어 촬영이 수월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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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이 좁을수록, 사이가 가까울수록, 마찰과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일이 많아진다. 그러나 다른 이들과의 사이에 놓인 좁은 틈을 견디지 못해 자꾸만 사이를 넓히려고만 한다면 점점 경계는 명확해지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일은 위험해진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좁은 틈을 포용하는 여유를 가진다면 우리 모두는 눈물을 햇살로 만들고, 상처를 잎새로 만드는, 서로를 치유하고 치유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 4회 디아스포라영화제는 단순히 영화를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현대사회의 디아스포라,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틈을 좁히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글 / 시민기자 김진아




젊은 연극인들이 만들어 낸 15분의 기적 – 제 3회 15분 연극제 X 인천

젊은 연극인들이 만들어 낸 15분의 기적
– 제 3회 15분 연극제 X 인천(2016.08.26.~08.28 인천아트플랫폼)

지난 8월 26일부터 8월 28일, 인천아트플랫폼을 지나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 곳에 멈추어 섰다. 시작을 알리는 신호도 없이, 무대의 구분도 없이 그냥 거리 위에서, 브릿지 연극 <백투더 15미닛>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백투더 15미닛>의 배우들은 관객들을 이끌고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으로 향했다. 세 명의 배우가 우산을 든 채 서 있었고, 좁은 골목은 순식간에 무대로 바뀌었다. 그렇게 <15분연극제X인천>의 첫 번째 본 공연 <Bright New Morning>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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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회를 맞은 <15분연극제X인천>은 미국의 극작가 Patrick Gabridge의 단막극 여덟 작품 <Bright New Morning>, <꽥꽥>, <Eden in Chains>, <뉴턴의 부름>, <원더랜드로 도망가다>, <산타없음>, <베아트릭스 포터는 죽어야해!>, <Will/Did/Is>와 각 작품들과 공연장소를 연결하는 브릿지 연극 <백투더 15미닛> 으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작품은 골목, 문화센터, 잔디밭, 극장 로비, 극장 안 등 서로 다른 장소에서 공연되었다. 거리에서 시작한 연극은 점점 극장과 가까워졌고, 길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축제를 마주한 관객들은 홀린 듯이 이끌려 극장 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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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연극제X인천>의 권근영 예술감독은 공연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울에서 연극을 하다가 고향인 인천에서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인천으로 옮겨왔는데, 인천의 많은 사람들은 연극과 극장을 굉장히 낯설어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극장이라는 공간을 사람들과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극장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연극을 가지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가보자고 결심했죠.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지나는 거리와 골목, 자주 들르는 카페 같은 곳을 무대로 만들었어요. 익숙한 장소에서 연극의 매력을 맛본 사람들이 극장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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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연극제X인천>은 극장이 낯선 관객들을 위한 연극제이기도 하지만, 젊은 연극인들에게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고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15분연극제X인천>을 기획한 앤드시어터 전윤환 대표는 처음 이 연극제를 기획하게 된 3년 전을 회상했다. “선배들과 희곡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 작가가 언제 태어났고 어느 시대를 살았던 사람인지가 궁금했어요. 구글에 검색해보았는데, 작가가 아직 살아있는 거예요. 심지어 페이스북 아이디도 있었죠. 작가의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친구 신청을 하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당신의 작품을 우리가 공연으로 만들고 싶은데, 한국에 와서 우리 공연을 볼 생각이 있느냐고요. 그게 15분 연극제의 시작이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15분연극제X인천>은 매년 미국의 저명한 극작가를 초대하여 젊은 연극인들만의 톡톡 튀는 방식으로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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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청년단의 <Eden in Chains>는 독특한 무대 구성과 연출로 관객들과 소통하며 큰 호응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이다. 집 앞마당에서 채소를 가꿀 수 없다는 조례가 통과되고, 10년 동안 앞마당의 텃밭을 가꿔왔던 테리는 텃밭의 작물을 모두 뽑아버리려는 스틸맨 경관과 대립한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 앉아 테리가 소중히 가꾸는 텃밭의 작물들로 등장했다. 연극의 소품으로 등장하게 된 관객들은 새롭고도 즐거운 경험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배우들의 열연이 이어지며 관객들은 이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텃밭을 잃은 테리의 슬픔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다. <Eden in Chains>의 민새롬 연출은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본 맨 마지막에 ‘무대의 소품으로 진짜 살아있는 식물들을 사용하지 마시오.’라는 작가 노트가 있었어요. 텃밭의 작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소품을 활용할지 고민하다가 관객들을 무대에 앉히기로 했죠.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이어가면서도 관객들이 테리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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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영화나 TV드라마에 비해 대중과의 접근성이 떨어지며 대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뮤지컬만큼 화려하지도 않다. 게다가 코미디와 로맨스 위주의 상업극만을 찾는 대중들 앞에 젊은 연극인들이 설 자리는 많지 않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단막극 페스티벌을 통해 젊은 연극인들이 새로운 시도를 펼치고 대중과 마주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15분연극제X인천>의 작가로 선정된 미국의 극작가 Patrick Gabridge는 연극제 이튿날 마련된 포럼에서 단막극 페스티벌이 가지는 의의를 설명했다. “단막극 페스티벌에는 여러 개의 작품들이 올라가기 때문에 다양한 극단의 많은 배우, 연출가, 작가들이 공연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것은 그들의 가족, 친구, 지인들이 공연을 보러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보다 높은 참여율과 티켓 판매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죠. 또한 다양한 주제의 다양한 작품들이 상연되기 때문에 관객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연극을 만날 기회도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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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의 짧은 공연을 위해 배우와 연출가, 스태프들은 오랜 기간 동안 밤을 새워가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습한다. 그러나 길을 걷던 사람들이 멈추어 서 있기에 15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15분간 한 자리에 세워두고, 그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게 만들고, 극장 가까이 데려가 이내 극장 안의 관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15분연극제X인천>의 젊은 연극인들은 그 어려운 일을 눈앞의 현실로 만들어냈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재기발랄함이 만들어낸 작은 기적인 것이다. 이렇듯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무장한 젊은 연극인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작품을 만나는 대중에게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젊은 연극인들이 그들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새로운 시도를 펼칠 기회가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글 /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 15분연극제X인천 제공




어깨를 나란히, 발을 맞추고, 희망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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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기 내 그림이다!” 8월 5일 토요일, 인천아트플랫폼 G동 전시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로 자신들을 닮은 그림들을 찾아낸다. 노숙인들의 자존감 회복과 재활을 돕기 위해 기획된 ‘어깨동무 인문학’의 참가자들이다. 낯선 그림 속 익숙한 얼굴, 참가자들은 모두 자신이 가장 잘 나왔다며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인문학을 통해 영화, 음악, 미술 등을 만날 수 있는 8주차 수업이 끝나고 마련된 이번 전시는 ‘어깨동무인문학’의 참가자들과 꾸물꾸물문화학교, 인천예술고등학교의 학생들이 함께 준비했다. 2인 3각 경주를 하듯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기에 ‘2인 3각 전시회’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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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진행한 한신대학교 공주형 교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의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주거 빈곤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숙인 참가자들에게 미술이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고민했어요. 사실 미술은 먹고 사는 문제와는 큰 관련이 없잖아요. 이 수업을 통해 스스로 변화를 겪는다 하더라도 사회에 나가 타인을 만나고 관계를 가지게 되면 더 큰 좌절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고민이 있었어요. 이분들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 변화를 누군가가 인정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청소년들과의 협업을 떠올렸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주변을 돌아볼 기회가 적은 청소년들에게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참가자들은 자화상을 그렸던 화가들(반 고흐, 프리다칼로, 렘브란트 등)의 생애와 작품들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며 자화상을 그렸다. 수원에서 진행되는 수업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어려웠던 인천 학생들은 참가자들의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불편해도 괜찮아」 책을 함께 읽기도 했다.

전시는 참여자들이 직접 그린 자화상과 학생들이 참여자들의 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화, 수강생들이 만들고 꾸민 종이 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화상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으로 혼자서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지요. 초상화는 내가 다른 사람과 만나는, 이웃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요. 마지막으로 집을 만들어보는 작업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는 것까지 확장해보고 싶었어요.”

참가자들의 자화상들 가운데는 긴 머리에 여자 옷을 입은 초상화도 있었다. 공주형 교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참가자로 그 작품을 꼽았다.
“어머니를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참가자가 그린 그림이에요. 어머니가 원망스러우면서도 그리운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자화상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긴 머리와 옷을 입혀 엄마의 초상화를 만든 거죠.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면서 파마 머리도 그려보고 여자 옷도 입혀보면서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봤을 테죠. 수업에 참여하면서 얼굴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분이 있고 어두워지는 분이 계신데, 가장 많이 어두워진 참가자이셨어요. 본인이 방임하고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문제들을 이제야 마주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오히려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이런저런 생각들, 고민해야만 하는 문제들을 생각하면 심각해지잖아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건너야 할 산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마지막에 손편지를 통해 고맙다고 인사를 해주셨어요. 글을 모르시는 분이라 다른 분한테 대필을 부탁한 것 같아요”

참가자들은 직접 자신의 그림을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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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에요. 저도 사업을 하다가 지인의 배신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죠. 살아온 과정이 순탄치가 않았어요. 상처받은 제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피눈물을 그렸어요. 그리고 몸통은 나비의 모습으로 그렸어요. 나비가 인고의 시간을 거쳐 탄생하잖아요. 저도 그러한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이제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보고 싶어서 그림을 그려봤어요.(어깨동무 인문학 강철수)”

5“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었어요. 누구에게 평가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요. 얼굴 위에 세 줄짜리 피눈물을 그렸어요.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었는데, 일반 사병과 다르게 육사생도는 계급장이 세로로 되어있어요.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시점에 퇴교를 당했어요. 진급하지 못한 아쉬움을 피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미술을 배울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습니다.(어깨동무 인문학 양광모)”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인상 깊어서 이 분의 사진을 선택했어요. 반짝반짝한 눈빛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을 그릴 때도 눈을 마지막까지 그리지 못하고 신경을 썼어요. 실제로 이 분을 만나서 작품에 대해 설명을 드렸는데, 그분도 사람을 볼 때 눈빛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고 하더라구요. 예전에는 거울을 보면 스스로 눈이 흐리멍텅하다고 느꼈는데, 요즘에는 삶의 생기를 찾으면서 초롱초롱하고 맑은 눈빛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림을 좋아해주셔서 저도 뿌듯하더라고요.(꾸물꾸물 문화학교 김나연)”

“예고 학생들은 입시미술을 공부하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미술을 해왔어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모르는 사람들과 미술을 통해 새롭게 관계를 형성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그린 분은 사진 속에서 어색하게 억지로 웃고 계신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한 번도 제대로 웃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굳은 표정으로 웃고 계셨죠. 조금 더 부드럽게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다시 그려드렸죠.(인천예고 2학년 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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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채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하며 살아간다. 서로를 외면한 채 앞만 보고 달려간다면 부딪히고 넘어져 상처입기 마련이다. 하지만 넘어져도 잡아주고, 힘들어 지쳐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2인3각 경주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듯,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을 맞추면 희망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예술을 통해 발맞추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어깨동무 인문학’의 시도가 소중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글 /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 시민기자 민경찬




종이 인형이 들려준 생의 희노애락 – 인천비타민연극축제 극단 나무 ‘이야기 하루’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현실은 노래, 그림, 사진 등과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우리는 이를 통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감동 받기도 하며 다시 한 번 살아갈 힘을 얻는다. 연극도 그 방법의 하나이다. 연극을 보며 배우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은 온전히 그와 우리만의 시간이며, 우리는 그와 함께 울고 웃고 호흡하며 우리의 삶과 인생을 이야기한다.
인천에는 2006년부터 연극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인천비타민연극축제가 있다. 연극인들의 순수예술공연축제인 이 축재는 올해 11회를 맞이하고 있다. 올해 주제는 ‘연극, 주파수를 맞추다’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연극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교감을 나누는 시도가 이뤄졌다. 올해는 가장 먼저 아이들과 소통하며 교감하는 ‘하하 호호 주파수로’ 연극으로 인천비타민연극축제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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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나무의 <이야기 하루>는 노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연극이다. 무대 위에 종이로 만들어진 투박하고 거친 가구들이 있고 그 사이로 하루라는 노인이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인 하루는 폐지를 주우며 생활하는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다. 하루는 여느 때와 같이 힘든 일상을 보내고 외로이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며 깊은 잠을 잔다. 그런데 곤히 잠든 그의 뒤로 세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정체 모를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하루의 머리맡에 둘러서고 하루의 머리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보이지 않는 그것은 그들에 의해 상자로 옮겨지게 되는데, 그때부터 노인 하루는 걸음마를 막 뗀 자신의 모습을 한 종이인형과 그의 과거 속으로 돌아가 자신의 행복했던 과거와 마주한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즐겁게 친구들과 어울리던 그 시절부터 전쟁 참전까지… 그러던 하루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갑순이와의 만남을 겪는다. 갑순이와 하루는 첫눈에 반하여 평생을 약속하게 되고, 하루는 꿈에서 행복한 자신과 갑순이를 바라보며 눈물 어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꿈속에서 그들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자신들을 닮은 아이들을 낳아 놀이공원에 가기도 하고 연을 날리기도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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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평생을 살면서 행복한 순간만 있을까? 가장이 되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중년의 하루에게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쉼 없이 반복되는 일과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가족의 무게 속에 마냥 행복했던 하루의 얼굴에선 세월의 흔적과 고난이 역력했다. 순탄하지 않은 세상살이는 사랑하던 갑순이와 하루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하루는 갑순이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던 하루는 쓴 물을 삼키며 “저 때 저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며 뒤늦게 한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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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들은 살아갔다. 장성한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손주·손녀를 보며 행복했으며, 그들이 외국으로 떠나는 그 순간에도 그들은 함께 했다. 굴곡지고 탈 많은 순간도 있었지만, 갑순이와 단둘이 남은 하늘 아래서 둘은 서로를 의지했다.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갑순은 결국 하루의 곁을 먼저 떠나버리고 만다. 꿈에서마저 아내가 떠나버리자 노인 하루는 또다시 혼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홀로 남아 투박하게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하루에게 세 명의 검은 옷은 입을 사람들과 아내 갑순이 다시 나타난다. 다시 나타난 아내를 보며 눈물 가득한 행복한 웃음을 짓는 하루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그들과 함께 사라진다. 그렇게 노인 하루의 인생 구경은 끝난다. 세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무리는 저승사자들로 홀로 외롭고 고독한 그리고 힘겨운 노년을 보내는 노인 하루에게 그의 희로애락이 담긴 기억을 보여주며 그를 위로하고자 했던 것 같다. 우리의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구겨지고 주름진 인형을 통해 다시 돌아보는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공연인 <이야기 하루>는 사실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작품이다. 하루라는 한 사람을 소재로 그의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황마다 필요한 최소한의 대사만이 쓰이는, 표정이 부재한 종이인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비언어 이미지극이기에 아이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극에 참여시키고, 곳곳에 아이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과 장치를 배치한 것은 물론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극을 가득 채우는 국악과 섬세한 종이인형의 움직임이 효과가 있었다. 시작 전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 다니며 천방지축이었던 아이들은 이러한 노력 끝에 연극과 교감하고 소통이 되었는지, 극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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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나무의 <이야기 하루>는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소재였고, 비언어 이미지극이라는 낯선 개념이었지만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야기 하루>는 아이들에게 종이인형을 통해 꿈과 과거를 여행한다는 상상의 즐거움을 주었고, 어른들에게는 낡고 구김이 많은 인형들과 노인 하루를 통해 유년시절의 향수와 부모의 인생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기에 사실은 모두와 주파수를 맞춘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글, 사진 / 시민기자 오지현




혐오의 화살을 마주하기. – 제 12회 인천여성영화제 개막작 ‘불온한 당신’

‘2016년 5월 17일 새벽 1시, 나는 친구와 함께 집 앞 놀이터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고, 우연히 살아남았다.’

지난 5월, 강남역 근처의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다음날 SNS는 온통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고 말하는 해시태그로 가득했으며, 강남역 10번 출구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포스트잇을 붙이며 피해자를 추모하는 물결이 일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살해당한 희생자, 그가 살해당하기 전까지의 일상은 여느 평범한 20대 여성의 일상과 다를 바 없었다. 많은 여성들은 일상 깊숙한 곳까지 다가와 생명을 위협하는 혐오에 대해 분노했고, 함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표현을 통해 꼬집었다. 지금껏 혐오 범죄를 마주하면서도 그저 조심하자며 입을 굳게 다물었던 여성들이 점점 더 뾰족한 날을 세우는 여성혐오에 공감하며 연대를 통해 맞서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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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5일(금)부터 17일(일)까지 개최된 제 12회 인천여성영화제는 이제 막 혐오에 맞서 입을 열고 떠들기 시작한 여성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탠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문구를 캐치프레이즈로 선정했다. 사흘간 진행된 인천여성영화제에서는 12회차에 걸쳐 장, 단편 총 21개의 작품이 상영되었으며, 12회차 중 8회의 GV(감독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관객들이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나눌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올해 인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불온한 당신>은 빠르게 매진되며 큰 관심을 모았다. <불온한 당신>은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하여 쏟아지는 혐오의 시선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 이영 감독이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듣는 당사자의 시선에서 혐오에 맞서는 과정을 조명한 영화이다. 감독은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사회의 갈등을 유발하는 종북 세력으로 불리는 모습을 지적하며 ‘과연 불온한 사람은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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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70대의 선배 레즈비언인 바지씨 이묵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바지씨란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이 흔하지 않았던 과거, 레즈비언 사이에서 남성적인 사람을 일컫던 말로 요즘의 부치(butch)와 같은 단어이다. 이묵은 ‘여자깡패’라고 불리며 한 자리에 모일 수조차 없던 여성 동성애자들의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는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하는 혐오세력들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혐오의 양상이 집단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번져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카메라는 일본으로 넘어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의 모습을 비춘다. 논과 텐은 대지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를 잃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가족이 아닌 친구는 실종신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를 잃고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껴 커밍아웃을 결심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커밍아웃이 타인의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관계를 알리고 목숨을 지키기 위한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부당한 대우도 감내하겠다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생존권까지도 위협당하는 사회적 약자의 극단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과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조항을 사수하려는 학생들의 모습,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그리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서울시민인권헌장의 선포가 거부당한 데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접점이 없을 것만 같던 이들은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불온한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한 데 묶인다. 영화는 계속해서 사람답게 살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과 그들을 불온한 세력이라고 부르며 혐오하는 이들의 모습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혐오세력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가장해 사회 혼란을 부추기지 말라고 주장하다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이유로 들어 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기도 한다. ’애미 애비도 없느냐‘, ’나라를 말아먹을 놈들이다‘ 등 논리는 없고 혐오와 폭력으로 점철된 말과 삿대질을 퍼붓기도 한다. 이처럼 모순적이고도 비이성적인 혐오세력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실소와 비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웃음을 터뜨리던 관객들은 이내 혐오의 화살을 직접적으로 맞는 소수자들의 입장에 이입하며, 함께 분노하거나 울분을 터뜨리기도 한다. 신문 기사, 뉴스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소수자들의 현실을 접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매체는 그들의 이야기를 한 발짝 떨어진 입장에서 조명하기 때문에 그들을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대상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 <불온한 당신>은 관객들로 하여금 혐오의 대상인 당사자의 위치에 서서 날아오는 혐오의 화살들을 마주보며 그 폭력의 크기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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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혐오세력의 북소리와 함께 끝이 난다. 크게 울리는 북소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공기와 더 이상 그를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경종이기도 하다. 노동자, 학생, 성소수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만을 향했던 혐오의 화살은 이제 어느 곳을 향할지 예측할 수 없다. 감독은 혐오에 대해 침묵으로 동조할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혐오를 향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것을 제안한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 그러니까 한마디로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 우리 사회는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불온한 사람’이라 명한다. 그러나 점점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며 날을 세우는 혐오의 화살 앞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공지영은 그녀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혼자서 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사실은 함께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혐오의 화살에 맞서기 시작한 이들이여. 겁내지 말자. 작은 목소리는 모여서 큰 울림을 일으킬 것이며 연대를 통해 단단해진 방패는 혐오의 화살을 막아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글 / 인천문화통신 시민기자 김진아




굿거리에서 한마당의 축제로 – 2016 거첨뱅인영감굿 현장을 다녀와서

“거첨뱅인영감굿”은 황해도 강령 거첨 마을에서 행해진 풍어굿이다. ‘뱅인영감’은 최영 장군을 따라 들어온 하위의 신격이지만 고기를 잡게 해주는 능력이 다른 어떤 신보다 월등한 존재 또는 거첨 일대에서 중선배를 부리던 사람이 죽은 뒤 마을 사람들이 신으로 모신 것 등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외래신(外來神), 풍신(風神), 선장신(船長神), 풍어신(豊漁神)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조기를 낚는 일에 탁월하여 지역에서 주신(主神)으로 모셔지게 된 신이다. 거첨뱅인영감굿을 하게 된 연력은 아래와 같다.

“황해도 강령 거첨 대부분의 주민들은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거첨에서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마을사람들이 매우 불안해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거첨의 바닷가에 웬 뗏목이 하나 떠밀려왔는데 마을사람들이 며칠을 지켜보아도 뗏목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뗏목을 타고 왔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중략) 마을사람들이 뗏목에 가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지게, 지게작대기, 패랭이, 지팡이, 짚신 등만이 있었다고 한다. (중략) 그리고는 배를 부리고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 뗏목의 임자를 위해 대동굿에서 섬겨주기로 하였다. 거첨의 당에는 채일(최영)장군이라는 이 지역 출신의 장군을 모시고 있었기에 따로 당을 마련하지는 않고 뗏목이 닿았던 바닷가의 자그만 굴에 뗏목에서 발견된 지게, 지게작대기, 패랭이, 지팡이, 짚신 등을 넣고 뗏목 임자의 명복을 빌기로 하였다. (중략) 이렇게 거첨에서 뱅인영감의 굿을 하면서부터는 고기가 잘 잡혔다고 전한다.”

위의 연력 내용을 그대로 풀면, 죽은 뗏목의 임자의 명복을 빌어 주고 나서 마을에 고기가 잘 잡히자 이후 지속적인 굿을 통해 풍어를 기원한 것이다. 죽은 사람을 묻어주고 나서 마을에 풍어가 이루어졌다는 구전은 한국 바닷가 마을 곳곳에서 보인다. 결국 죽은 사람이 신으로 좌정된 사례를 거청뱅인영감굿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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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토), 화도진 사랑채와 내사에서 2016 거첨뱅인영감굿(서해안굿)이 (사)황해도굿한뜻계보존회 주최로 열렸다.

굿거리에서 뱅인영감이 가장 먼저 하는 행위는 돌 또는 풀무더기를 구르고 다니는 것이다. 여기서 ‘뱅’은 ‘한 바퀴 도는’ 뜻을 가지기에 ‘뱅인’은 ‘구르는 사람’을 지칭한다. 따라서 뱅인의 명칭은 그 행위에서 따온 이름이다. 거첨마을에서 피난 온 사람들에 의하면 뱅인영감 신당은 절벽 아래에 있다고 한다. 굿을 할 때 무당은 절벽 아래 신당으로 굴러서 내려가는데, 이때 무당이 낙상하지 않고 다치지 않을 때 뱅인영감이 제대로 실린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굿거리에서 ‘뱅인영감’이 구르는 행위를 마치면 거첨 앞바다는 이미 황금빛이 나는 조기가 득실대는 황금어장으로 바뀌어 있다. 그물을 치기만 하면 조기를 쉽게 퍼 담을 수 있다. 그런데 뱅인영감은 인간에게 복을 내리는 선신(善神)이지만, 인간들이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그 혜택을 인간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굿의 연행에서 뱅인영감으로 분장한 무당은 제물로 바쳐진 순대가 길이가 짧다고 탓하고 화를 내면서 나무란다. 그러면 어민들은 잘못했다고 손을 빌려 용서를 구한다. 신의 이중적 성격은 인간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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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인영감은 직접 어부가 되어 조기를 몰아다 준다. 무당은 순대를 목에 걸고 그것을 닻줄인양 길게 바다에 늘어뜨리는 시늉을 한다든지 고사리감투를 쓰고 바다 속 안을 들여다보면서 어부의 조업 행위를 한다. 이것은 고기를 많이 잡기를 바라는 유감주술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고사리감투는 나무상자에 거울을 단 ’창경‘이라는 우리나라 전통 어구로 물고기의 이동을 관찰하는 도구이다. 이 대목은 ‘언덕을 구르고 도로 올라오는 행위’ 와 함께 연극적 요소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김매물 만신을 중심으로 한 <거첨뱅인영감굿>은 2005년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출전, 은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김매물(1939년생)은 황해도 해주 결성 출생으로 6․25전쟁 때에 덕적도로 피난을 온 후 25살 때에 내림을 받고, 덕적도 국수봉 신령인 최영장군을 몸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38살에 인천으로 옮겨 신기촌에서 자리를 잡은 후 일면 신기촌 ‘매물이만신’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김매물은 현재 ‘꽃맞이굿’으로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제24호(2013.04.30)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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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의 굿거리는 대개 24거리로 진행되는데, 이번 <거첨뱅인영감굿>은 10여 개의 굿거리로 진행되었다. 황해도굿은 신령을 불러서請神, 모시고奉神, 놀리어娛神, 보내는送神 4단계 절차에 의한다. 신을 부르기 위해서는 먼저 굿청을 깨끗이 정화하는 ‘신청울림굿’과 신을 굿당으로 모시는 ‘상산맞이굿’, 부정을 씻어내는 ‘초부정·초감흥굿’, 액운을 걷어내기 위해 영정각시를 대접하는 ‘영정물림굿’, 마을 주민의 명과 복을 기원하는 ‘칠성제석굿’, 재복을 기원하는 ‘소대감굿’, 뱅인영감을 모시고 만선을 기원하는 ‘뱅인영감굿’, 그리고 억울하게 죽어간 혼령들을 위로하고 먹거리로 대접하여 다시 돌려보내는 ‘마당굿’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뱅인영감굿은 황해도 대동굿, 꽂맞이굿 등에서 진행되는데, 대개 마지막 부분에 진행된다. 그것은 사슬세우기 과정을 끝내고 돼지의 내장과 간을 가지고서 굿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뱅인영감굿은 엄밀하게 말하면 황해도의 민속문화이다. 그러나 인천 시민 중 피난민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천의 문화유산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황해도굿이 모두 그렇지만 공연 제목이 ‘거첨뱅인영감굿’일 뿐, 기본적인 굿거리에서 ‘뱅인영감굿’이 진행될 뿐이다. 따라서 뱅인영감굿의 내용을 보다 확장하고, 이 굿이 만들어지게 된 유래 등을 첨가하여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무당이 단순히 굿거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닌 일반 시민들과 어우러져 한 마당의 축제로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 거첨뱅인영감굿은 2016년 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의 예술표현활동지원 전통 분야에 선정되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정연학 학예연구관이 현장을 다녀와 남긴 생생한 보고서를 공유합니다. 앞으로도 인천문화통신 3.0에서 지속적으로 인천 지역의 문화예술현장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