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인천에 온 이유는?

운종가의 색목인들
표창원․손선영 지음 / 엔트리 / 2016. 7. 발행

세계적 명탐정 셜록 홈즈가 조선에 왔다? 때는 1891년, 모리어티 교수와 대결하던 중 폭포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알려진 셜록 홈즈가 아편에 중독된 채 사경을 헤메며 제물포에 상륙한다. 미국 공사 알렌과 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의 의술에 힘입어 건강을 되찾은 홈즈는 서양인 창녀만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희대의 연쇄살인범 추적에 나선다. 경찰 프로파일러 출신 현역 국회의원과 추리소설 전문작가가 공동 창작으로 더욱 화제가 된 장편소설 『운종가의 색목인들』은, 셜록 홈즈가 1890년대 초반 조선에 머물며 연쇄살인범과 두뇌 게임을 펼치며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게 그린다. 인천은 홈즈가 그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범인과 최후의 대결을 펼치는 곳이자 개항장 거리의 상인들도 영어를 구사하는 글로벌 국제항구로 형상화되어 있다. 

 

글/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함태영




“페미가 세상을 바꾼다”

제 13회 인천여성영화제 ‘Herstory, 그리고 함께’

제13회 인천여성영화제 ‘Herstory, 그리고 함께’를 취재하기 전, 김진아 시민기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물론 그녀가 여성이고 본인이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김진아의 글 도입부에서도 잘 드러나듯, 한국에서 남자로 살아온 30년의 삶이란 어떠한 면에서는 분명 경험의 빈곤이다. 미러링(mirroring)은 이 경험의 빈곤을 꼬집었지만 다소 폭력적인 양상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진아는 공감의 제스처로서 여성영화제의 ‘공론장’적인 성격을 부각시킨다. 이 공론장 속에서 미러(mirror)는 프리즘(prism)이 되어 다양한 각도로 빛을 분광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필자의 글은 경험의 빈곤을 무릅쓰고 페미니즘의 자리와 운동을 조명한다. 여기서 페미니즘은 분리와 연결을 동시에 수행하는 ‘쉼표(,)’에 자리하고, 흔들리는 대지처럼 ‘운동’을 지속한다. 이 두 글은 여성영화제를 소재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이 두 글의 관계를 매치컷(연결), 점프컷(분리), 몽타주(충돌과 결합) 중 어느 것으로 볼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페미니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서_ 김진아

“충격이네요.” 폐막작 <시국페미>(2017)를 함께 본 박치영 시민기자가 상영관을 나서며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시국페미>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지난 겨울, 광장 안에서의 여성혐오를 다룬 작품이다. 그는 광장에 수차례 나갔지만, 그 안에서 어떤 식으로 여성혐오가 일어나고 있었는지, 여성들이 처했던 부당한 상황들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이어진 시국토크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울먹였던 여성관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솔직한 고백은 나에게도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종종 페미니즘 이슈에 동의하지 않는 주변의 사람들을 비난해왔다. 동시에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들어볼 여지조차 두지 않고, 동의를 강요해왔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내가 일상에서 부당함을 겪었기에 당연한 가치였을 뿐,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 적은 없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목소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이 특수한 상황일수록 문제 해결을 위한 싸움은 외롭고 길어진다. 여성으로서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경험해본 이들만이 페미니즘에 동의할 수 있다면, 페미니즘은 인류의 절반에게는 동의를 구할 수 없는 숙명을 타고난 것일까? 당해본 적이 없기에, 겪어본 적이 없기에, 공감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동의를 구할 수 없는, 반쪽짜리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나머지 반쪽과의 연대 가능성은 정말 없는 것일까?

제 13회 인천여성영화제의 슬로건은 ‘Herstory, 그리고 함께’로, 평범한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를 조명함과 동시에, 남성·여성 정체성을 극복하는 젠더 감수성을 높이자는 의미를 담았다. <런던 프라이드>가(2014) 페미니즘 영화가 아님에도 상영작으로 선정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나와 입장이 다른 누군가와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런던 프라이드>는 1984년 영국에서 파업하며 권리를 주장하던 광부들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던 성소수자들이 연대한 과정을 그렸다. 접점이 없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소수자 집단이 연대하는 과정은 곧, 서로의 입장에 접점을 찾고 공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의 초반,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모였던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정부로부터 탄압받는 광부들의 모습이 자신들이 당했던 탄압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광부들에게 후원금을 보내기로 한다. 하지만 광부들은 그들이 내민 도움의 손길을 거부한다. 광부들의 눈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성소수자들은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낯선 이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신명 나게 디스코를 추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빵과 장미’를 부르며 서로의 아픔에 공감해간다. 그들은 공감을 통해 연대하고, 연대를 통해 각자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권리들을 되찾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연대가 이끌어내는 힘과 즐거움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지만, 실질적인 연대의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보인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춤과 노래가 공감과 연대를 끌어낸다는 <런던 프라이드>의 설정은 지나치게 영화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다가온다. 연대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공감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혐오로 점철된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사회의 페미니즘 이슈에서 춤과 노래로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한국사회의 페미니즘이 다른 반쪽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바로 ‘미러링’이었다. ‘거울(mirror)처럼 반사해서 보여준다.’는 뜻의 ‘미러링’은 기존 여성혐오의 발언과 사례들을 수집하여 성별을 바꾸는 방법으로,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폭력성을 폭로하겠다는 의도로 쏟아져 나왔다. 여성과 남성이 바뀐 세상을 그린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장편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과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Majorite Opprimee)>등의 작품이 큰 인기를 얻었고, 인터넷 상에서 ‘벌레 같은 한국 남자’라는 뜻으로 김치녀 프레임에 맞대응하기 위한 단어인 ‘한남충’, 여자는 3일에 한 번씩 패야 말을 듣는다는 ‘삼일한’에 대응하여 남자는 숨쉴 때마다 패야 한다는 ‘숨쉴한’ 등의 신조어들이 등장했다. 초반에는 여성혐오를 인지하지 않고 살아가던 한국사회의 남성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혐오를 재생산하는 공격적인 방식으로 쉽게 거부감을 안겼고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부추겼다.

인천여성영화제가 잃어버린 반쪽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내세운 전략은 ‘Herstory’, 평범한 여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작품 속 인물을 따라가며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경험하기 어려운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는 기회를 가진다. <맥북이면 다 되지요>(2017)에서 완경을 앞둔 주인공이 늙은 암소를 어루만지며 고생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완경기 여성의 마음을 공감해보기도 하고, 광장에서의 여성혐오를 증언하고 스스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시국페미> 속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보며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위로받고, 남성들은 광장에서 듣지 못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기회를 얻는다.

여타 영화제에서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영화의 완성도나 작품성, 표현방식 등에 초점을 맞춘다면, 인천여성영화제의 관객들은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비추기도 하고,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돌아보며 함께 토론한다. 페미니즘을 여러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열린 집담회를 진행하는 데에 앞서 각각의 영화들이 이슈를 소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이 되는 셈이다. 인천여성영화제는 여성영화를 관람하는 축제임과 동시에, 건강한 페미니즘 담론을 형성하는 공론장으로써 기능한다. 페미니즘 이슈에 공감하기 어려웠던 반쪽에게 건강한 방식으로 공감과 연대를 제안하고, 영화제를 이루는 반쪽인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작품을 수용하고 토론할 것을 제안하는 인천여성영화제는 지금, 잃어버린 반쪽을 채워가는 중이다.

 

흔들리는 대지_ 박치영

인천여성영화제의 작품들을 만나면서 나에게 페미니즘이 ‘흔들리는 대지’(루치노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1947)에서 차용했음을 밝힌다)처럼 다가왔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는 그 흔들리는 대지 자체가 페미니즘이라 말하고 싶다. 페미니즘에 관한 일천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신세대 페미니즘이 거주하는 ‘자리’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과 관련된다.

페미니즘의 자리에 대해 먼저 말해보자. 이 자리를 발견하기 위해 나는 <못, 함께하는>(2016)을 방법적으로 우회할 것이다. <못, 함께하는>은 휴대폰, 메신저 이미지들이 어지럽게 콜라주 되어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각각의 이미지들은 분리와 연결 속에서 영화를 구축한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의 분리와 연결은 형식적인 실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냥(이나연 감독)의 자전적인 서사(개인사)를 위해 사용된다. 여기에는 ‘카톡방에 엄마 초대하기’라는 분명한 목표점이 존재하며, 에필로그에서 냥은 엄마를 ‘정확하게’ 사랑하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이 영화는 사적 다큐멘터리로 분류되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사적 다큐멘터리에 방점을 찍기 보다는, 이 형식들이 작동하는 지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못 하나가 빠지지 않아 옛 전등은 새 전등 옆에 그대로 매달려있다. 카톡방에 모여 사는 우리 가족에게도 빠지지 않는 못 하나가 있다. 그곳에 초대할 수 없는 경희씨, 바로 우리의 ‘엄마’이다.”

냥의 가족은 여기저기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엄마 아빠의 이혼이 그 시발점이겠으나, 냥에 의하면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엄마의 재혼’이다. 그래서 냥의 가족이 모여살고 있는 카톡방에 엄마는 초대되지 못한다. 엄마는 시종일관 ‘못’으로 은유된다. 그런데, 여기서의 ‘못’이란 글자는 매우 미묘한 의미상의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뾰족한 ‘물건(nail)’이자 ‘부정(not)’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영화제목을 구성하고 있는 ‘못’과 ‘함께하는’은 거리가 멀어져 끊어질 경우에도, 반대로 그 둘을 붙여 놓는 경우에도 함께할 수 없다. ‘못/함께하는’은 그 둘이 서로 아무런 관련성도 갖지 못하기에 함께할 수 없으며, ‘못 함께하는’은 말 그대로 못 함께한다. 다시 말해, ‘못’과 ‘함께하는’이 함께하기 위해선 분리와 연결의 동시적 사용이 필요한데, 이 영화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쉼표(,)’이다. 쉼표는 분리와 연결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기호이다[이와 유사한 기호로는 하이픈(-)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미지들 그리고 ‘못’과 ‘함께하는’ 사이의 쉼표는 엄마를 ‘정확하게’ 사랑하기 위해 냥이 위치하고 있는 자리이며, 여성이 못이 된 사회문화적 조건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페미니즘의 자리이다. 이러한 분리와 연결의 동시성은 왜 페미니즘이 인터넷, SNS에 주둔하며 유동적인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통신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줄곧 ‘연결’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분리’를 동시에 사유하지 못하면, 우리는 최근 있었던 ‘여성혐오 아카이브’와 ‘문화예술계 성폭력 아카이브’ 등의 움직임을 제대로 사유할 수 없다. 각각의 분리된 경험이 연결되면서 네트의 노드들은 알 수 없는 ‘웅성거림’으로 가득하다. 그 웅성거리는 노드들의 응집이 몇 가지 의제로 발현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 강남역 살인사건, 낙태죄 폐지 등이 그것이다.

<시국페미>(2017)는 이러한 아카이빙에 동참하면서 최근에 있었던 촛불혁명을 재검토한다. 영화 속 페미니스트들은 촛불혁명 당시 자신들이 대통령의 비리에도, 광장의 여성 혐오에도 맞서 싸워야했다고 증언한다. 이는 촛불이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었음을 방증한다. <시국페미>는 촛불을 승리자의 역사로서 단단한 덩어리로 균질화 하려는 시도에 저항한다. 당시의 DJ DOC의 광화문 광장 공연취소로 벌어졌던 소란은 그에 대한 좋은 사례다. 공연취소에 대해 몇몇 사람들은 곧장 비난으로 응수했다. 하나로 똘똘 뭉쳐도 시원찮은 판국에 왜 훼방을 놓냐는 식이다. 페미니즘이 (누가 결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의제 앞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들에게 촛불은 그저 단단한 덩어리다. 그 덩어리의 서사 속에서 대통령의 구치소행과 새로운 정부의 출범은 정치의 끝이다. 운동은 거기서 멈춘다. 촛불도 꺼진다.

이렇게 물어야 할 것 같다. 혁명은 끝났는가? 청와대에서 끌려나 온 자는 지금 아픈 발가락을 부여잡고 있지만, 여성혐오는 여전히 만연하다. 페미니즘은 끝나지 않은 운동으로서 여전히 남아있다. 영화가 끝난 후 이어진 GV에서의 페미당당의 활동가 심미섭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자신의 운동이 계속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의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자신을 확인한다. 이제 촛불이 그 흔들리는 대지 위에 설 차례다. 그 위에 설 수 없는 촛불은 꺼졌고, 꺼질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양성평등이란 말로 대체되어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우리가 도달해야할 어떠한 상태가 아니다. 지속되는 남성 카르텔 속에서 페미니즘이란 현실의 상태를 지양할 현실적 운동이다. 

 

글, 사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김진아, 박치영




녹청자 그리고 원로예술인의 행복한 만남

《이부웅 도예 여정》, 2017년 7월 1일~7월 31일, 강화도 도솔미술관

청자, 욕망의 그릇
인천이 청자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릴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비색 고려청자의 발전과 절정을 준비하던 곳이 이 땅, 인천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역사적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미술의 역사는 사실 인간 욕망의 역사라 할 만하다. 돌이켜보면 현대 이전의 거의 모든 미술 활동은 의뢰인과 생산자가 존재했고, 그들이 만들어낸 미술품(당시에는 그것을 ‘미술’로 부르지도 않았지만)에는 뚜렷한 지향점과 실용적 목적이 담겨 있다. 물론 그 지향점은 오늘날의 미학적 지향점을 궁극의 목표로 포함하지는 않지만. 청자 역시 그랬다. 청자가 고대의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중국은 아주 예전부터 부모가 돌아가시면 옥기(玉器)를 부장하는 것이 풍습이었다. 그래야 저 세상에서 복을 받고 내세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옥의 생산은 수요를 따르지 못했다. 당연히 옥기는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로 비싼 물건이어서, 기록에 따르면 떵떵거리던 부자가 옥기 부장으로 몰락했다는 구절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한다.
비쌀수록, 귀할수록 가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 법. 그리고 그 비싸고 귀한 물건을 대신하는 물건을 만들려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도 당연한 법일까. 중국 남부지방에서는 이미 서진(西晉) 무렵에 옥색과 가깝게 그릇을 구우려고 하는 시도가 절강성에서 시작되었다. 마치 빛나는 순금을 빚어내려는 중세의 연금술사처럼 중국의 도공들은 옥을 재현하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마침내 당말오대(唐末五代)에는 청자 제작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그 중에서도 월주요의 청자는 천하제일로 이름이 나게 되었다.

인천과 녹청자
한반도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중국처럼 옥기를 부장하는 풍습은 곧 청자로 바뀌게 되었고, 한성백제 시대 도읍이었던 서울 강동구 일대에서 출토된 중국제 청자 파편들은 이를 증명한다. 세월이 흘러 고려왕조가 들어서고 청자를 국산화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고려로 귀화한 중국의 도공들이 중요한 생산자였다. 도자기는 흔히 흙과 불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만큼 재료(태토)가 되는 흙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고려청자는 좋은 흙을 찾기 위한 모색과 투쟁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처음은 개경 지역이었다. 개성 지역에서 발굴된 초기 청자 가마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흙은 청자를 만들기에 썩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았던 듯, 이내 경기도 용인 지역으로 청자의 주된 생산지가 옮겨 가게 된다. 그러던 과정에서 중요한 청자의 생산지로 떠오른 곳이 바로 인천이었다. 우리는 인천, 그 중에서도 서구 경서동 일대에서 생산된 청자를 ‘녹청자’라 부른다. 이 녹청자는 이후 전라북도의 부안, 전라남도의 강진 일대에서 생산될 최고급 청자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소 투박하면서 거친 듯한 녹청자는 발전 도상에 있는 청자의 초기 모습이기도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여 보면 당시 고려인들의 미감이 그대로 녹아 있는 타임캡슐이기도 하다. 유홍준 선생은 이러한 현상을 ‘청년기’에 빗대어 설명한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세련미보다는 다소 거칠지만 패기 있는 기상이 담기며, 노회한 기교보다는 선 굵은 청년의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만하다. 녹청자가 만들어진 인천 땅은 씩씩한 청년의 기상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이부웅의 여정
인천 출신으로 인천에서 녹청자를 평생 만들어온 도예가가 그의 긴 여정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렸다. 《이부웅 도예 여정》이 열린 강화도 도솔미술관에서 만난 그의 녹청자를 비롯한 옹기 20여 점은 초기 청자의 웅혼함과 그가 평생을 두고 탐구해왔던 정제된 미적 실험정신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노년에 들어선 이부웅 선생의 작품들은 녹청자로부터 시원적 방법론을 취하고 있지만 현대 도예의 미학적·형식적 실험을 반영한다. 90년대에 제작한 발(鉢)은 넉넉한 품을 지닌 어머니와 같은 푸근함과 예민한 감수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녹청자라는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백자와 토기의 장점을 수용한 각병(角甁)과 유병(油甁)에 이르면 전통을 해석하는 현대적 감각의 산물인 양 읽힌다. 특히 유병은 전통 옹기를 그만의 독특한 감각으로 변주함으로써 하나의 성공적 오브제로 승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마치며
이 전시는 2017년 처음으로 선보이는 인천문화재단의 ‘원로예술인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모든 원로예술인들은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 그 중에서도 평생을 두고 오직 녹청자의 현대적 해석에 몰두한 이부웅 선생의 여정을 제시하는 이 전시는 인천문화재단이 원로예술인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담아 시민들에게 그 뜻을 환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군다나 녹청자의 고향인 인천에서 인천 작가에 의해 재현·발전한 결과물을 인천시민과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보인다. 앞으로도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는 지역의 원로예술인들이 당당하게 창작 활동을 펼쳐 보이는 장으로서 ‘원로예술인 지원사업’이 자리 잡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이부웅 선생의 도예 여정에 경의를 표한다.

 

글, 사진 / 인천문화재단 예술지원팀 박석태(미술평론)




인천에서 벌어진 아편전쟁

아편전쟁
이원태․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6. 5.

아편전쟁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청나라와 영국이 벌인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19세기 말 20세기 초 인천에서도 아편을 둘러싼 전쟁이 있었다. 물론 소설이다. 영화와 소설의 결합을 뜻하는 ‘무블(무비+노블)’표방하며 김탁환과 이원탁이 공동 창작한 장편소설 아편전쟁은 1900년을 전후한 인천 개항장을 무대로 동갑내기 세 젊은이의 우정, 사랑, 좌절과 아편을 둘러싼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 및 서양 각국의 세력 다툼을 숨 막히는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인천형 누아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재미도 재미려니와 19세기 말~20세기 초 인천의 조계지 풍경이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그려진 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청나라-일본-서양 각국 조계에 대한 치밀한 묘사는 물론 조선인들이 일본 조계에서 서양 과자를 먹는 풍경 등 신문물을 접한 당시 인천인들의 호기심어린 시선과 코스모폴리탄적인 분위기가 속도감 있고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전개된다. 영화로도 제작된다고 하는 이 작품은, ‘범죄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물론 한 세기 전 인천의 여러 풍경도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더운 삼복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글/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함태영




허락된 풍경, 선택하는 삶

이른 더위가 시작된 일요일 오후, 가족들과 함께 이호진 사진전 《허락된 풍경》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출발지인 송도에서 전시 장소인 배다리까지는 차로 불과 20분 남짓입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주변 풍경이 급격히 달라졌지요. 이렇게 신도시와 원도심을 오갈 때마다 되풀이 되는 경험이 있습니다. 물리적 공간의 이동이라는 사건이 시간의 지층을 통과하는 여행처럼 전환되는 경험 말입니다.

우연한 풍경은 없다. 
경적과 인적이 드문 목적지에 도착해 전시장 입구로 들어섰습니다. 이호진의 작업의 첫인상은 축적된 시간의 위엄을 전하는 전시장과 결이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주택가 옥상 빨래처럼, 대도시 건물 현수막처럼 걸린 ‘흔하게 널린 풍경’ 사진들이 연출하는 흔치 않은 풍경이 전시장 안에 펼쳐지고 있더군요.

‘스페이스 빔’과 ‘사진공간 배다리’ 두 군데서 일주일 남짓 선보이는 전시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동안 지속된 작업의 결과라지요. 사진과 설치 영상 속 풍경은 이호진이 구체적으로 경험한 곳들입니다. 이호진 작업의 일관된 표정인 침착함과 진중함이 같은 장소를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하고, 배로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기도 한 여정의 노고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이호진이 답사와 탐문이 집중된 곳은 인천입니다. 그렇다고 이호진 작업의 문제의식이 인천이라는 지역에 한정된 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나라 곳곳은 전쟁과 복구, 산업화와 도시화의 상황을 공유했으니까요. 특정 지역을 넘어 범용적 적용의 틀을 갖춘 이호진 작업 앞에는 ‘도시인문’이라는 꾸밈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풍경을 스펙터클한 경관으로 간주하고, 시각적 환영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의지겠지요. 

‘우연한 풍경은 없다.’ 단언하는 이호진은 자연과 도시를 아우르는 풍경을 철저히 사회적, 역사적 소산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풍경을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생성되는 가변적 산물로 전제한 때문일까요. 이호진 작업에서 규범화되거나 변질된 풍경을 향한 시각 체험을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어렵지 않게 감지되었습니다.  

이호진이 예술의 닻을 조화와 질서의 지점이 아니라 중첩과 대립의 경계에 내리고 있는 이유도 이런 예술 의지와 무관치 않겠지요. 폐허와 랜드 마크, 도시와 해변, 섬과 산 등, 다양한 장소를 경유하는 전시장 속 풍경들은 치유와 위로를 상상케 하는 유토피아적 공간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자유와 해방이 한껏 보장된 낭만적 무대와도 달랐지요. 인간 또한 풍경을 구경하고, 대상화할 특권적 시각 주체는 아니었습니다.  

 

모순의 풍경, 사유의 매개 
이호진 사진 속 초록 잎 달린 나무는 두 개의 콘크리트 벽 틈새에서 자취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아파트는 울긋불긋 치장한 국적 불명의 관광지와 이웃해 있었지요. 또한 주택가 지붕 위 파란 하늘은 새로 지은 주상 복합 건물에 자리를 내 주었습니다. 완공된 건축물 앞은 방치된 공사 폐기물 차지였어요. 한편 빽빽한 빌딩 숲이 둥근 해와 잔잔한 물 사이를 채우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 매끈한 장소성에 부합하는 명칭을 흔쾌히 붙이기 어려웠습니다. 이호진이 의도적으로 하나의 장소에 단일한 정체성을 부여 과정에서 추방되었던 불필요와 무의미를 힘껏 소환해 내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호진 사진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말하고자 풍경에서 인간의 흑적을 축출할 생각은 없어 보였습니다. 편안한 거주를 이야기하려고 불편한 소비를 삭제할 의도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태도는 《허락된 풍경》展 이전 작업에서부터 지속되어 왔습니다. 과거 이호진은 재개발 예정지인 이주 현장에서 주인 잃은 오브제들을 수집해 폐허의 공간에 여전히 살아있는 기억의 확증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예전 갯벌이었던 매립지와 이제는 산이 된 섬의 물리적 공간의 변형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기도 했지요. 뿐만 아니라 풍경을 현실과 별개의 공간으로 상상하고 획일적으로 소비하는 인간의 태도를 일련의 작업에서 비판적으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단절과 불연속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이호진 작업의 동선은 연속적이고, 유기적인 전개 과정을 거쳐 온 것이어요.

장소는 지도제작자 책상 위에 놓인 종이와 다르다고 했던가요. 장소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흔적을 깨끗이 지운 현재의 풍경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풍경에는 지나온 시간의 기억과 상흔이 내재해 있지요. 동시대의 역사와 사회, 경제와 정치의 다층적 편린들도 혼재해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호진은 작업은 중심과 주변, 번성과 쇠락, 집중과 분산, 돌봄과 방치의 풍경을 위계적으로 의미화 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있었습니다. 개발과 보존, 거주와 이주, 노동과 휴식, 인공과 자연 풍경을 무리하게 통합하려는 시도도 없었지요. 그저 이호진은 장소의 얼룩덜룩한 단면과 들쑥날쑥한 층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적절한 지점에서 풍경의 실체를 포착해 제시할 뿐이었습니다.

의도적 편집을 거친 허구 같은 풍경에서 우리들의 비현실적인 현실과 마주합니다. 의미의 맥락을 고려치 않은 키치 같은 풍경에서 우리들 삶의 현장의 민낯과 대면했습니다. 순간, 이호진의 사진 속 풍경은 우리네 삶의 상투성을 부정하고, 삶터의 부조리를 되돌아보는 사유의 매개로 전환되었습니다. 상이한 풍경들이 연출하는 이상한 패치워크가 새로운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전시장에 오는 동안처럼,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서 생경함을 제공하는 끊김과 어긋남의 풍경은 일상 어디에서나 흔하게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분주함을 핑계로 기묘하게 짜깁기된 현실 풍경은 지금 당장 성찰해야 할 현안이라기보다는 언젠가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 정도로 남겨지기 일쑤였지요. 그런데 참 역설적입니다. 문제적 현실을 본격적으로 사유할 계기를 일상이 아닌 예술이라는 비현실적 프레임, 이호진 사진들 앞에서 허락받았으니 말입니다.

 

삶과 공명하는 풍경 
전시를 보고 나와 전시장 옆 카페에 들렀습니다. 아담한 실내에는 이곳이 촬영지였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듯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 포스터가 붙어 있더군요. 최신식 머신에서 내린 커피와 손 글씨로 쓴 메뉴, 옛날 팥빙수를 기다리는 동안 옆 테이블에서 동네 주민으로 생각되는 손님들이 마을 텃밭과 부동산 시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허락된 풍경》展의 그림자는 전시를 본 후 잠시 머문 카페와 주문 메뉴 그리고 옆 테이블의 화제에만 드리운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빠른 재생 버튼을 누린 듯 속도가 붙던 풍경이 정지 신호와 함께 멈춰 섰습니다. 그런데 신호 대기 중 건널목 맞은편 고층 빌딩에서 ‘22세기 서울’이라 쓰인 병원 간판을 발견했지요. 21세기 인천에 걸린 간판이 자신의 삶터에서 진짜 삶을 살 기회를 방기한 채 살아가는 빨간 불 켜진 우리의 현재인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에게 삶의 자리, 풍경을 허락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사진전과 가상보다 더 가상적인 현실 풍경 사이에서 자문해 보았습니다. ‘폭력적인 외부 상황이나 영향력 있는 타자가 아닌 날마다 실수하고, 날마다 만회를 꿈꾸는 우리 자신이겠지.’ 조심스레 자답도 해보았습니다. 수많은 풍경들이 무한 리필 되는 도심 한복판, 삶의 한 순간이 이호진 사진 같은 풍경과 공명했습니다. 참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글 / 공주형(미술비평, 한신대 교수)
사진 / 이호진(작가)




환대의 시작, 그리고 대화의 시작

지난 5월 26일부터 30일까지 인천문화재단과 인천영상위원회의 주관 하에 아트플랫폼에서 개최된 제5회 디아스포라영화제에 다녀왔다. 이번 영화제는 “환대의 시작”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난민, 여성, 이주노동자에 초점을 맞춘 총 50편의 장‧단편 영화들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다. 이밖에도 한국문단의 대표 작가들과 디아스포라 영화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별 섹션 ‘디아스포라의 눈’, 이주민들이 자국의 최신영화와 배우, 감독을 만날 수 있는 ‘아시아 나우: 베트남 특별전’도 신설되어 눈길을 끌었다. 다양한 볼거리들이 많았지만 영화제에 관한 기본 정보는 이쯤으로 해두자. 필자는 이번 영화제에서 개막식과 디아스포라의 눈 섹션에 참가했다. 그리고 김정은 감독의 <야간근무>(2016), 닐 블롬캠프 감독의 <디스트릭트9>(2009), 김정 감독의 <고려 아리랑>(2016),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 왕 빙 감독의 <타앙-경계의 사람들>(2016) 등의 영화도 보았는데, 이러한 섹션들과 영화들에 대한 감상으로 이번 영화제에 대한 ‘현장비평’을 대신하고 싶다. 

시작의 환대, 그러나 조금은 불안한 시작. 
“환대의 시작”이란 슬로건에서 ‘시작’이란 말을 먼저 꺼내보자. 5회 차를 맞이하는 영화제에 ‘시작’이라는 말을 쓰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지난해보다 늘어난 예산은 분명 이번 영화제를 질적으로 비약시키고 있었다. 늘어난 초청작뿐만 아니라, 개막식을 관람하기 위해 들어선 아트플랫폼의 경관은 이번 영화제를 만든 관계자들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단번에 알게 했다. 곧 이어, 개막식이 진행됐다. ‘비정상회담’, ‘문제적 남자’로 유명한 타일러 라쉬와 아나운서 장성규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가수 치림(조정치와 하림)이 ‘연어의 노래’와 ‘푸른 낙타’ 등의 노래로 축하무대를 올렸으며, 최진용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의 개회사와 임순례 인천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의 개막선언으로 디아스포라영화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개막작은 김정은 감독의 <야간근무>. 그것도 시원한 바람과 주변의 일상적인 소음이 기분 좋게 귓가를 스치는 야외상영이었다. 국경을 뛰어넘는 여성노동자들의 우정을 그리고 있는 <야간근무>는 그 기분 좋은 저녁을 촉촉이 적셔주기에 충분했지만, 영화를 보며 필자는 약간의 초조함과 불안감을 느꼈다. 이 글을 그 불안에 대한 고백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야간근무>는 엠비언트 사운드(ambient sound, 현장음)의 활용이 두드러진 영화다. 공장의 시끄러운 기계소리, 거리의 자동차소리, 주변인들의 말소리가 모두 노이즈처럼 내려앉아 있다(물론 여기엔 야외라는 상영환경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시끄럽고 큰 소음들 속에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린(스렝 윈니)과 한국 대학생 연희(김예은)의 목소리가 얼마나 작게 들리는지 보여준다. 그 소음들 속에서도 그녀들은 우정을 키워나가며 주말에 바다여행을 가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공장장은 린에게 주말특근을 강요하고, 약속은 깨져버린다. 심지어 연희마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공장을 그만둔다. 이 지점에서 그녀들의 관계는 바퀴가 고장 난 자전거처럼 삐걱거린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갈등을 해결하려는 영화의 방식이다. 

영화는 린과 연희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내레이션과 이미지를 묘한 방식으로 접합시킨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린은 캄보디아에 있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부치는데, 이 편지의 답장이 린과 연희의 갈등이 고조되는 영화의 중반부에 도착한다. 이 편지가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캄보디아의 어머니에게서 온 이 편지는 내레이션으로 린의 안부를 묻는데, 영화는 이 내레이션을 근심어린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연희의 어머니의 이미지와 직접 이어 붙인다. 여기서 영화는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한 가운데에서 접히고, 린과 연희는 몇 가지 카테고리에 의해 차이가 생략된 채 데칼코마니의 양면 그림이 되어버린다. 그 카테고리는 여성, 노동, 이주라는 디아스포라 담론의 화두이지만, 여기서 그것은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한국 여대생의 차이를 생략하며 그녀들을 등치시키는 텅 빈 기표가 되어 버린다. 이것이 필자가 영화제의 개막작이 다소 아쉽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우리는 아주 쉽게 자신을 디아스포라라고 고백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일 테지만 개막식 내내 무대에서 오고간 말들 역시 자신이 디아스포라임을 고백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수많은 차이들을 디아스포라로 단일하게 묶어내는 일이 아니라, 디아스포라를 통해 수많은 차이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일이다. 동시에 우리는 이 차이들의 연결을 통해 공격적인 연대의 지형도를 그리고, 이 차이들로부터 다른 삶을 상상한다. 물론 한 영화를 다른 영화와 비교하는 것은 몹시 되바라진 짓이지만, 임흥순 감독이 <위로공단>(2014)에서 구로공단을 훌쩍 날아올라 캄보디아로 착지하는 것은, 한국과 캄보디아의 몽타주를 통해 차이를 드러내고 초국적 자본에 대한 공격적인 연대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디아스포라는 소수자에 대한 동정을 초과한다. 

환대의 시작, 대화를 시작하기
차이를 손쉽게 같은 것으로 묶어내지 않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있는데, 그것은 차이를 ‘본질화’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디아스포라에 대한 사유가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차이들의 본질화가 얼마나 폭력적인 양상으로 변모하는지 알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그것은 더욱 도드라진다. 예컨대 <황해>(2010)와 <신세계>(2012)에서 친밀한 타자인 조선족이 ‘괴물’로 형상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반두비>(2009)처럼 디아스포라를 ‘친구’로 만들 수도 있지만, ‘괴물’로 만들 수도 있다. 장강명 작가와 함께 <디스트릭트9>에 관해 이야기하는 ‘디아스포라의 눈’ 섹션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 말 걸고 있었다. 

<디스트릭트9>는 벌레처럼 생긴 외계인들이 모여 사는 구역, 디스트릭트9의 재개발을 둘러싼 사건들을 묘사한다. 외계인들은 짓밟히고 쫓겨난다. 그렇다면, 나날이 ‘벌레’들의 왕국이 되어가는 한국사회와 이 영화는 얼마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장강명 작가는 한국사회에서의 중산층의 몰락과 벌레의 증식을 연관지어 설명했다. 절망만을 안기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사회 속에서 가장 손쉽게 나오는 문제의 해결책은 ‘탓’할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쇼아(홀로코스트)는 정확히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 사례 중 하나다. 물론, 우리는 굳이 쇼아가 아니더라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일상에서 자주 마주친다. 노숙자를 게으름과 직접 연결시키거나 이주노동자를 위험한 범죄자로 몰아가는 게 그것이다. 왜 <황해>의 조선족은 돼지 뼈다귀로 사람 머리통을 깨부수는 원시인이 되는가? 미국 국적 화이트컬러 백인 남성으로부터 시작해 제3세계 블루컬러 유색인종 여성까지를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세상에선 가장 말단에 있는 것부터 벌레, 원시인이 되어가는 법이다. 

장강명 작가와 관객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했다. 그리고는 ‘대화’라는 아주 흥미로운 답을 끌어냈다. 대화주의 사상가 미하일 바흐찐은 문화적 실천을 계급, 인종, 젠더라는 특정성 안에 묶으려는 시도를 경고하면서 ‘창조적 이해’를 요구한 적이 있다. 다소 어려운 개념이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상대를 본질화하지 않는 만큼 자신 역시도 본질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서로의 문화가 만나는 것이다. 이는 김정 감독의 <고려 아리랑 : 천산의디바>(2016)과 송 라브렌티 감독의 <고려사람>의 만남 같은 것이다. <고려 아리랑>은 식민과 탈식민이 세계 곳곳에 퍼트린 역사의 파편, 구체적으로는 고려인 이함덕과 방타마라의 흔적을 찾으러 떠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려 아리랑>은 매우 ‘우발적으로’ 아리랑을 흥얼거리는 카자흐스탄인 꼬발렌꼬 마리야 니콜라예브나(<고려사람>)을 만나게 된다. 꼬발렌꼬의 흥얼거림은 대문자 역사를 의문에 부치며, 한국이란 상상의 공동체에 균열을 일으키고, 코스폴리타니즘(세계주의)을 향해 맹렬히 도약한다.

나가며
김정 감독은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우려를 내비친 적이 있다(김정 감독은 트랜스-아시아 연구소의 김소영 연구소장이기도 하다).

“아포리아는 환대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이와 같은 디아스포라 영화가 찾기 어려운 관객층에도 존재한다. 세계화가 한편으로는 국민국가의 민족과 국가의 결속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을 때, 글로벌화의 상층회로를 달리는 자본가와 엘리트, 그리고 대국의 디아스포라가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네트워크를 이루어가고 있을 때(중국 화교의 경우), 경계에 선 소수자들을 다루는 디아스포라 영화의 관객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김소영, 「파국의 지도」, 현실문화, 2014, p.91)

올해 디아스포라 영화제에는 늘어난 건 예산과 초청작뿐만이 아니다. 지난해보다 두 배 가량 관객이 늘었다고 한다. 많은 수의 인천시민이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가지며 아트플랫폼을 방문하고 있다. 이제 막 환대를 시작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영화제의 전망이 밝은 이유이다.

글, 사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박치영  




후세 무당들의 굿 배움이 절실한 거첨뱅인영감굿

<거첨뱅인영감굿>은 황해도 옹진군 봉구면 무도리 거첨마을에서 행해진 풍어굿으로 황해도 해주 결성 출신 무당 김매물(1939생)을 중심으로 한 ‘황해도굿한뜻계보존회’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거첨뱅인영감굿>은 2005년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하여, 은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굿을 주관하는 김매물은 현재 ‘꽃맞이굿’으로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제24호(2013.04.30)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뱅인영감’ 신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황해도 최고의 신격인 최영 장군을 따라 들어온 하위 신으로 어민들에게 고기를 몰아다주는 능력이 뛰어난 존재이다. 둘째는 거첨 일대에서 조기를 잡는 중선배를 부린 사람이 죽은 뒤 마을 신격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셋째는 바다에서 죽은 사람의 유품을 섬긴 후 고기가 많이 잡혀 지속적으로 신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그런데 뱅인영감의 내력을 보면, 뗏목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지게, 패랭이, 짚신 등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보부상의 유품이다. 즉, 뗏목에 죽은 보부상은 보이지 않고 그의 물품만 남아 있는 셈이다.

황해도 강령 거첨 대부분의 주민들은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거첨에서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마을사람들이 매우 불안해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거첨의 바닷가에 웬 뗏목이 하나 떠밀려왔는데 마을사람들이 며칠을 지켜보아도 뗏목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뗏목을 타고 왔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중략) 마을사람들이 뗏목에 가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지게, 지게작대기, 패랭이, 지팡이, 짚신 등만이 있었다고 한다. (중략) 그리고는 배를 부리고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 뗏목의 임자를 위해 대동굿에서 섬겨주기로 하였다. 거첨의 당에는 최영장군을 모시고 있었기에 따로 당을 마련하지는 않고 뗏목이 닿았던 바닷가의 자그만 굴에 뗏목에서 발견된 지게, 지게작대기, 패랭이, 지팡이, 짚신 등을 넣고 뗏목 임자의 명복을 빌기로 하였다. (중략) 이렇게 거첨에서 뱅인영감의 굿을 하면서부터는 고기가 잘 잡혔다고 전한다.

위의 내력 내용을 그대로 풀면, 죽은 뗏목의 임자의 명복을 빌어 주고 나서, 마을에 고기가 잘 잡혀 그 이후 지속적으로 굿을 통해 풍어를 기원한 것이다. 죽은 사람을 묻어주고 나서 마을에 풍어가 이루어졌다는 구전은 한국 바닷가 마을 곳곳에서 보인다. 결국 죽은 사람이 신으로 좌정된 사례를 거청뱅인영감굿에서 볼 수 있다.

굿거리에서 뱅인영감이 가장 먼저 하는 행위는 돌 또는 풀무더기를 구르고 다닌다. 여기서 ‘뱅’은 ‘한 바퀴 도는’ 뜻을 가지기에 ‘뱅인’은 ‘구르는 사람’을 지칭한다. 따라서 뱅인의 명칭은 그 행위에서 따온 이름이다. 거첨마을에서 피난 온 사람들에 의하면 뱅인영감 신당은 절벽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굿을 할 때 무당은 절벽 아래 신당으로 굴러서 내려가는데, 이때 무당이 낙상하지 않고 다치지 않을 때 뱅인영감이 제대로 실린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굿거리에서 ‘뱅인영감’이 구르는 행위를 마치면 거첨 앞바다는 이미 황금빛이 나는 조기가 득실대는 황금어장으로 바뀐다. 그물을 치기만 하면 조기를 쉽게 퍼 담을 수 있다. 그런데 뱅인영감은 인간에게 복을 내리는 선신(善神)이지만 때론 인간들이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그 혜택을 인간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굿의 연행에서 뱅인영감으로 분장한 무당은 제물로 바쳐진 순대가 길이가 짧다고 탓하고 화를 내면서 나무란다. 그러면 어민들은 잘못했다고 손을 빌려 용서를 구한다. 신의 이중적 성격은 인간과 마찬가지이다.
뱅인영감은 직접 어부가 되어 조기를 몰아다 준다. 무당은 순대를 목에 걸고 그것을 닻줄인양 길게 바다에 늘어뜨리는 시늉을 한다든지 고사리감투를 쓰고 바다 속 안을 들여다보면서 어부의 조업 행위를 한다. 이것은 고기를 많이 잡기를 바라는 유감주술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고사리감투는 나무상자에 거울을 단 ’창경‘이라는 우리나라 전통 어구로 물고기의 이동을 관찰하는 도구이다. 이 대목은 ‘언덕을 구르고 도로 올라오는 행위’ 와 함께 연극적 요소가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황해도의 굿거리는 대개 24거리로 진행되는데, 이번 <거첨뱅인영감굿>은 15거리로 진행되었다. 황해도굿은 신령을 불러서(請神), 모시고(奉神), 놀리어(娛神), 보내는(送神) 4단계 절차에 의한다. 신을 부르기 위해서는 먼저 굿청을 깨끗이 정화하는 ‘신청울림굿’과 신을 굿당으로 모시는 ‘산맞이’와 ‘상산맞이굿’, 부정을 씻어내는 ‘초부정·초감흥굿’, 액운을 걷어내기 위해 영정각시를 대접하는 ‘영정물림굿’, 마을 주민의 명과 복을 기원하는 ‘칠성제석굿’, 재복을 기원하는 ‘소대감굿’, 나쁜 군웅을 막아주는 ‘타살굿’, 뱅인영감을 모시고 만선을 기원하는 ‘뱅인영감굿’, 그리고 상산본향대감을 모셔와서 노는 ‘대감굿’, 사통팔달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서낭굿’, 마을의 모든 조상신을 불러 대접하는 ‘조상굿’, 모든 액운을 물리치는 ‘작두거리’, 억울하게 죽어간 혼령들을 위로하고 먹거리로 대접하여 다시 돌려보내는 ‘마당굿’ 순서로 진행되었다.

뱅인영감굿은 엄밀하게 말하면 황해도의 민속문화이다. 그러나 인천 시민 중 피난민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는 현 상황에서 인천의 문화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황해도굿이 모두 그렇지만 공연 제목이 <거첨뱅인영감굿>이지만, 기본적인 굿거리에서 ‘뱅인영감굿’이 진행될 뿐이다. 따라서 뱅인영감굿의 내용을 중심으로 굿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고, 이 굿이 만들어지게 된 유래 등을 첨가하여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 <거첨뱅인염감굿>의 가장 큰 문제는 굿을 주관하는 김매물 만신이 몸이 좋지 않아 굿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2017년 6월 3일 공연에서는 단화선 무당이 <뱅인염감굿>을 주관하였는데, 후세대 무당들의 굿 배움이 절실한 때이다.

<거첨뱅인영감굿> 사진더보기 ▶

 

글/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바다 위 시장, 파시(波市)

바다의 황금, 파시
강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 11.

‘파시(波市)’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파시는 물고기를 거래하기 위해 바다 위에서 배들이 모여 열리는 바다 위 시장을 말한다. 파시는 우리나라 어업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회현상이자 풍경이었지만, 현재는 모두 사라져 과거의 것이 되고 말았다. 인천과 인천 앞바다를 중심으로 한 서해바다는 파시가 가장 융성했던 곳이었다. 바다 위 시장인 파시는 약 한 달 정도 열렸는데, 파시철이 되면 바닷가 마을은 엄청난 사람들로 북적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고기과 돈을 따라 모였던 만큼, 그곳에는 인간사 희노애락의 만화경이 연출되었다. 이 책은 파시의 중심 무대였던 인천을 비롯하여 추자도와 법성포, 송이도 등 과거 파시가 열렸던 곳을 중심으로 우리 어업의 역사와 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추적․복원한 책이다.

 

글/ 함태영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아이들의 외침이 비에 쓸려가다.
연극 <블랙아웃> 극단 십년후

아이들의 외침이 비에 쓸려가다.
무대에 덧입혀지는 영상은 여름 한낮의 아파트, 별이 빛나는 한밤의 아파트, 상가 앞 거리, 대형 마트, 교회 앞에서 흔들리는 나무, 경찰서 앞, 소방서 앞, 문 닫은 시장 등으로 바뀐다. 무대 가운데는 배우들이 주로 연기하는 공간으로 단을 쌓아 올려 높낮이를 활용한다. 공터 혹은 광장과도 같은 곳이다. 음악은 서민들이 전기 없이 살아가는 암울한 상황을 담은 듯 우울한 곡조다.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5월 17일(수)에 시작한 연극 <블랙아웃>은 한여름을 살아야 하는 도시에 전기가 끊긴 후 시민들의 하루하루가 날씨와 마찬가지로 푹푹 쪄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상황을 동희와 동민이라는,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의 시선으로 그려서 아이들이 처음 맞이하는 암울한 세상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극단 십년후의 연극 <블랙아웃>은 박효미 작가의 동화 「블랙아웃」이 원작이라고 한다. 필자는 공연 첫날인 17일에 본 연극의 내용과 형식에 국한하여 이 리뷰를 쓴다.

공터로 사람들이 모인다. 거리 전광판에 ‘전기가 끊겼지만 원자력발전소 등을 점검 중이고 곧 복구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뜬다. 복구할 거란 걸 사람들은 일단 믿기로 한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상황은 심상치 않다. 마트는 일찍 문을 닫기 시작하고 경찰이 나타나 고압적인 태도로 줄을 서라고 한다. 소방서에서는 급수 중단을 알리며 문을 닫는다. 나중에는 소방관과 시민이 몸싸움을 벌이기까지 한다. 부모님이 중국 광저우로 출장을 가셨다는 동희, 동민 남매는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려고 하지만 마트에서 어렵게 구한 물건을 두 번이나 도둑맞는다. 

처음에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모르고 동희와 동민은 서로 냉장고에서 흘러나온 물을 닦으라고 티격태격한다. 또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더 이상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온다. 물과 먹을 것이 떨어져가는 것이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마트에 같이 가자며 신경을 써주지만 마트에도 물건이 떨어지는 급박한 상황이 이어지자 이웃 아주머니는 남매의 엄마가 전에 꿔간 돈을 쌀로 가져가겠다며 남매의 집에서 쌀 포대를 들고 나가려고 한다. 슈퍼맨 옷을 입은 아주머니의 가족(아이들이 삼촌이라고 부르는)은 차마 못할 짓을 했다며 남매에게 쌀을 돌려준다. 구직 중인 이 청년은 유약하지만 극에서 유일하게 양심이 살아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을 몸에 두른 교인들은 전기도 물도 없이 지쳐가는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예수님이 이 상황에서 당신을 구원하시리라는 맹목적인 메시지를 퍼뜨렸다. 지친 남매는 평소 다니지 않던 교회까지 찾아가지만 교회 관계자는 신자들에게만 물을 준다며 손에 쥔 안내 봉으로 동희의 가슴팍을 밀어 줄 밖으로 밀쳐버린다. 동민에게는 윽박지른다. 신자라는 이유로 맨 앞줄에 서 있던 아주머니는 새치기하는 아들의 자리까지 맡아 놓고 있었다. 남의 자식을 모른 척 하고 자기 자식만을 위하는 어른의 모습이다. 어른들은 위기 상황에 닥치자 아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한다. 자기만 살겠다는 거다. 이 장면은 이웃을 돌보라는 성경의 말씀은 아랑곳하지 않는, 바로 교인들 스스로 ‘불신지옥’에 빠진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트에서 산 물건을 도둑맞았다고 신고를 해도 경찰은 지금 그 정도 일은 별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남매를 건성으로 대한다. 동희는 ‘블랙아웃이 되니 국가가 국민을 버린다!’고 경찰서 앞에서 외친다. 부당하고 무기력한 공권력에 저항하는 여학생의 마지막 외침이다. 그 소리를 들은 경찰은 시끄럽게 구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동희에게 언덕 너머 시장 끝에 있는 마트에서 아침 일찍 2시간만 물건을 판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경찰들이 시민들에게는 쉬쉬하며 자기들끼리만 알고 있는 정보가 있었던 거다.

경찰에게서 들은 마트의 위치 정보를 동희는 끝까지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경찰 병력을 뚫고 대형 마트로 돌진할 만큼 급하고 흥분해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물론 시장 쪽 마트 주인이 아이들에게 다시는 마트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협박했고 또 그 근처에서 도둑을 만나 폭행을 당하기까지 했으니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말 못할’ 이유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극의 전체적 구조를 놓고 보자면 ‘경찰은 문을 여는 마트의 정보를 알고 있었다’며 동희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과 대면할 수 있는 바로 그때! 극의 절정을 코앞에 두고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큰 비가 내려 이 상황을 종결시켜 버린다. 극의 절정에 이르러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정보가 비를 맞고 그냥 사라진 것이다.

 
사회가 어지러워지자 마트는 손님들에게 현금만 요구하고, 물건은 없는데 CCTV는 돌아가고, 거리에는 똥오줌이 흘러넘치는 등 생활 속에서 벌어질만한 일들의 디테일이 살아있다. 다만 이러한 디테일 역시 극 구조 안에서 상승선을 탈 수 있다면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재난 속에서 어떤 일상이 펼쳐지는지 사건들은 죽 이어지지만 극의 긴장감을 상승시킬 만큼 충분히 서로 연결돼 있지 않아서 에피소드가 반복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격앙되어가는 동희와 동민의 감정선에 이야기를 얹기보다는 각색 과정에서 극의 구조를 더욱 선명히 한다면 작품 전체가 탄력적으로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연극 <블랙아웃>이 더 완성도 높은 좋은 공연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극단 십년후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동화 원작을 각색해서인지 아이들의 시선으로 재난 속 세상의 변화를 그리고 있는데 연극에서는 아이의 시선에 사건들이 갇혀버리는 형국이 되어서 다른 인물군의 일상이 좀처럼 입체적으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성인들이 보기에는 ‘아이들’이라는 인물의 시선에서 그린 사건의 톤이 애매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고, 그렇다고 아동청소년극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들려다가 공연의 성격이 모호하게 된 것은 아닐까. 동화라는 좋은 씨앗에서 출발한 연극인만큼 아동청소년 관객에게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 

열 명 이상의 배우들이 이리 저리 마트로 우르르 몰려가는 상황을 다 함께 종종걸음 치며 이동하는 것으로 표현하거나 군중 속에서 두 명의 배우들만 움직이고 나머지는 멈추는 등의 표현은 재미있었다. 연극적인 표현 방법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불 꺼진 아파트 단지에서는 별빛을 볼 수 있다는 걸 표현하는 영상에도 여러 번 눈길이 가 닿았다. 전기가 끊긴 아수라장의 상황뿐만 아니라 전기가 없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영상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극의 마지막에는 계절이 바뀌어 눈이 내린 한겨울이다. 슈퍼맨 옷을 입고서 쌀 포대를 되돌려주던 이웃 삼촌도 옷을 갈아입었다. 삼촌과 마주친 동민의 장바구니 안에는 그때처럼 또 햇반과 물이 들어 있다. 동민은 자라는 중이고 삼촌은 구직 중이다. 관객들은 ‘취직…?’이라며 뒷걸음질 치는 삼촌을 보며 웃었다. 악다구니를 쓰던 어른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전기가 끊긴 후 동요하는 군중뿐만 아니라 어른과 아이들의 대비랄까, 그 갈등 또한 <블랙아웃>의 한 축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겪었던 혼란과 이기심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눈이 덮어버렸을까. 

 

글 / 김혜진(공연비평가)
사진/ 극단 십년후




인천의 문학과 작가를 일별하다

인천은 고려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인들의 창작 원천이자 작품 속 중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이 책은 경인일보 기자 5명으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이 2014년 꼬박 1년 동안 문학 현장으로서의 인천을 직접 발로 뛰며 쓴 기획기사를 묶은 책이다. 이 책 한 권이면 고전문학부터 오늘날 현대문학까지 작품과 작가 중심으로 인천의 문학사를 일별할 수 있다. 기자들이 직접 취재를 통해 쓴 만큼, 꼼꼼하며 어렵지 않게 쉽게 읽힌다. 이 책에는 천년 전 이규보부터 18세기 조선시대 선비 이규상의 ‘인천 노래’, 구한말의 신소설과 일제강점기 근대시와 근대소설, 오늘날 현역 작가들의 작품 등 인천을 다룬 주요 작품과 인천의 문인들이 망라되어 있다. 특히 원고와 더불어 작품과 관련된 곳의 옛 모습과 현재 모습까지 다양한 이미지 자료가 함께 실려 있어 ‘읽는’ 재미는 물론 ‘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또한 이 책의 이미지들은 인천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직접 현장을 답사해 볼 수 있는 훌륭한 길잡이이기도 하다.

글/ 함태영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