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치적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다, 작가 이탈의 작품 세계와 인터뷰 <부재(不在)의 존재(存在) 증명>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ver 3. 이탈
나는 그가 그만의 권력을 갖기를 원한다.
부재(不在)의 존재(存在)를 증명할 수 있도록.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의 시작을 여는 기획전시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이 12월 20일부터 2020년 5월 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 중 인천 연고를 가진 중견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참여 작가 각자의 작품 세계관을 살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매월 2명씩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글을 만나본다.

이탈, <국가>, Object on frame, 180×120×50cm, 2003
이탈, <국가>, Object on frame, 240×120×50cm(2pcs), 1999

나는 그가 그만의 권력을 갖기를 원한다.
부재(不在)의 존재(存在)를 증명할 수 있도록.

옴의 법칙 V=IR
저항이 커지면 전류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오고 전류는 저항에 반비례 한다.
옴의 법칙(Ohm’s Law)은 도체의 두 지점사이에 나타나는 전위차(전압)에 의해 흐르는 전류가 일정한 법칙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두 지점 사이의 도체에 일정한 전위차가 존재할 때, 도체의 저항(resistance)의 크기와 전류의 크기는 반비례한다.

이 보편화된 과학적 법칙(언젠가 깨질지도 모르는)이 꼭 인생의 법칙과 닮아있다는, 이 전기저항에 관련한 과학 법칙을 삶의 법칙으로 확인하고, 사건을 접하고 작품을 구상하고 전시를 계획하고, 그 전시의 작품을 설치하고 만들어갈 때마다 누구에게나 수평적으로 공평하게 흐르는 전류이기에 무엇에 홀린 듯 전기를 연결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하는 작가가 있다. 설치, 미디어. 퍼포먼스, 비디오아트, 키네틱아트 등 다중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사건을 작품으로 선보이는 이탈 작가이다.

이탈은 교사였던 아버지의 발령에 따라 7살 무렵부터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모두 보냈다. 대학졸업 후 다시 인천에 작업실을 얻어 활동하던 중 96년에 인천에서 개최한 전국 규모의 미술제인 대한민국청년미술제에서 평론가상을 받아 이듬해 동아갤러리에서 초대개인전을 개최하게 된다. 1990년대 초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혼란스러움으로 스스로 회피성 도피를 하기도 하였다. 그에게는 다양한 미술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바탕에 깔려있는, 시대가 흐르고 변해가는 과정에서 ‘예술가인 척 해온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고민이 수반된 고된 과정이기도 하였다. 작가적 특성이나 재료적인 기법을 표현하는 것보다 특정한 이슈나 경향, 사건을 시각매체를 통해 어떻게 발언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였다. 이 예술이란 형이상학적인 관념의 세계를 현실과 같이 접목시킬까에 대한 질문을 거듭하며 캔버스가 아닌 사건과 마주한다.

예술이 삶을 반영한다는 전제하에 세련된 치장으로 정연화된 조형성을 강조했던 작금의 작업들을 벗어던지게 되었던 1995년 그 날의 기억들은 그에게 작품을 해야 할 당위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재확인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목도하였던 묘한 사건의 시작. 그 날 고속도로에 선혈이 낭자한 시체와 핏덩이들을 발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 하였을 때의 잔혹함, 잔인함, 역겨움 등의 언어들로 인식되었던 그 살덩이들은 같은 살덩이임에도 불구하고 정육점에 잘 진열되어있는 고깃덩어리를 보면서 식욕을 느끼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교육에 의해 세뇌된 신념정도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자신의 시각언어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로써 나타나는 그의 사건에 의한 사실 속 실재들은 언어와 학습에 의해 체계는 무너지며 존재의 의미조차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후 발표한 그의 1997년 첫 개인전 “교실 이데아전”을 통해 사회적 인간 존재론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강요되어지는 무형의 폭력을 고발하게 된다.

이탈, <새마을 운동>,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LCD monitor), 1min 53sec, 2003
이탈, <처절한 정원(요단강 가는 길)>,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LCD monitor), 2min 43sec, 2005

벌거벗고 혼자서 줄넘기를 반복해서 하는 자신의 뒷모습을 볼록렌즈 이펙트를 사용하여 희화화시킨 영상 작업 <비디오 점핑>(2002)은 타자와의 관계가 아닌 작가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잠입해 성찰의 사유를 통해 인간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작품이다. 무언가 비대해져 움직일 수 없는 존재의 허탈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이 작품은 <새마을 운동>이라는 명제로 재전시된다. 1970년대의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주요한 사건이었던 새마을운동은 절대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국가라는 집단적 상상력을 좌우하며, 맹목적으로 세뇌된 신념을 통해 규정되어지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는 결국 성찰을 통한 인간적 선택의 여지는 전혀 없이 집단적인 이슈를 통해 강요되고 세뇌당한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며 또 다른 이면에서는 현재를 그리고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탈, <인간의 분류는 신을 처형한 이후에 가능하다>, Recycle robot, plc, relay, sensor, support frame, etc, 230×160×45cm, 2010
이탈, <K군 찾기>, Kinetic device, monitor, aduino, raspberry Pi, interactive video, etc, 190×140×50cm, 2019

그간 발표되었던 이탈의 작품들은 사회의 구조적이며 패권주의적인 모순, 그로 인한 상실감, 패배감, 부조리한 사회관계 등의 너무나 날것이라 때론 폭력적이라거나 충격적이라거나 한 초극화된 감정들을 일으킨다. 그러나 <인간의 분류는 신을 처형한 이후에 가능하다>(2010)를 통해 지배자와 피지배자, 다수자와 소수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인간의 분류’가 자행되는 현실에서 ‘처형할 수 없는 신’ 그 절대자에게 돌아가자는 원론적이며 종교적인 설득을 한다. 또한 <요단강 가는 길>로 발표되었던 ”처절한 정원“안의 장면에서 처절한 현실 안에서 호소하는 처연한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폭력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껍질 안 그는 심연의 그 무엇을 마주하고 감각의 언어를 일깨우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한 인간, 한 예술가일테니.

예술이란 것을 통해 발언을 할 수는 있지만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사회의 거대한 흐름 속에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예민한 촉각으로 감지하고 감각을 통해 제시할 수는 있다. 이탈은 그의 주체적 경험과 내면 깊숙이 잠입해 성찰한 결과들을 토대로 직관적으로 작업에 임한다.
그는 부재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회는 어떤 문화적 코드나 인식의 도식 등이 존재하는 현재를 잘 유지하기 위해 질서를 만들고 이 질서들은 특정 시대를 통합하기 위해 관념화된 틀 짓기를 시도하는데 이로부터 소외된 존재가 ‘식별 불가능한 존재‘이다. 식별이 가능한 존재와 식별이 불가능한 두 존재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음’을 인식하게 하여 거대 담론이 놓쳐버린 ‘식별 불가능한 존재’의 의미를 통해 사회적, 관습적으로 학습된 일반성에 변형을 가해 다시 돌아보게 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K군 찾기>(2019)는 군사평론가 지만원이 주장하는 “광수 찾기”라는 사건을,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파행되는 혐오와 냉소 등을 희화화한 작품이다. 이미 가치가 상실된 영상물에서 이미지들을 무작위로 채집하여 원본을 파편화시키고 재가공하여 원본이 지닌 가치와 권위를 배반하고 친숙한 내러티브를 낯설게 하여 관념화된 질서를 위반한다. 이는 프레이밍(틀 짓기)으로부터 주체를 탈주시켜 오래된 관습과 관념을 파괴하기 위해 ‘식별 불가능한 감각’을 동원하여 ‘식별 불가능한 존재’의 대안적 서사를 증언하기 위함이다. 그에 따르면 결국 ‘식별할 수 없다는 것’은 죽은 존재가 아닌 없는 존재이며, 부재(不在)의 존재(存在)인 것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 맹목적인 자아도취와 광기가 많았다. 또한 타자에 관한 이해와 사랑도 부족했다. 나는 아직 해야 할 작업들이 많다. 그리고 구체적인 플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생각이 현실이 되기까지엔 많은 제약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권력에 관한 것이다. 권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내가 궁극적으로 예술행위를 통해 세계와 세상의 원리를 터득해가려는 하나의 검열도구이며 욕망에 관한 반성의 시작 지점이다.”

예술가는 매일매일 고문당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탈. 치열하게 고민하고 날 것 그대로의 처절한 작업을 통해 부재(不在)의 존재(存在)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탈. 나는 그가 권력을 갖기를 원한다. 그가 가지게 될 권력으로 무한히 확장될 그의 세계관과 모두에게 평등한 인간애가 그만의 언어로 우리에게 도달되기를 원한다.

글/ 우사라 (부평구문화재단 큐레이터

이탈 작가 인터뷰 작가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이탈(b.1967-, 서울 출생)은 사회정치적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 오며 설치미술을 비롯한 퍼포먼스, 비디오아트, 키네틱아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실험적인 작품 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는 평등한 원초적 인간의 원형을 탐구하기 위해 거칠고도 도전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육질, 육체를 드러내거나 산업사회를 대변하는 테크놀로지적 ‘기계=인간’을 구현해 자본주의 모순과 부조리함, 그로 인한 현대사회의 상실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작가는 사회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을 드러내는 초극화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인간성으로의 회복, 나아가 인간애와 자유, 평등의 가치를 소원해 나간다.
이탈은 인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경기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현재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인천 동아갤러리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청년 미술제 수상전(1997)을 시작으로 <세뇌된 신념>(대안공간 풀, 2003), <처절한 정원>(스페이스 빔, 2005), <레디메이드 만석>(우리미술관, 2019) 등 한국, 중국, 터키 등에서 개인전을 진행했으며, <Try Again Try>(제주현대미술관, 2018), <다카르비엔날레>(보리바나미술관, 세네갈, 2018),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대구미술관, 2018) 등 수많은 기획전에 초대되었다. 그는 ‘아름다운 교문 만들기’ (인천문화재단, 2010), ‘커뮤니티 페어_아트폐허’ (제물포 시장, 인천, 2012), 인천예술정거장 프로젝트 <언더그라운드, 온 더 그라운드>(인천시청역, 인천, 2018), 등을 기획하였고, 비영리 전시공간 국제 교류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2012~2015년까지 인천에서 대안공간 UNESCO A.poRT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한국미디어아트협회 감사를 역임하고 있으며 인천 강화도에서 작업하고 있다.

*우사라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서 한국화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2005년 세계도자비엔날레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서울옥션 강남, 갤러리백송 큐레이터를 거쳐 ㈜중아트그룹에서 전시 총괄을 담당했다. 현재 부평구문화재단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인간과 대지의 작가 박인우, 그의 작품 세계와 인터뷰 <사고의 현대 한국 그리고 보따리>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ver 1. 박인우
‘사고의 현대 한국 그리고 보따리’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의 시작을 여는 기획전시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이 12월 20일부터 2020년 5월 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 중 인천 연고를 가진 중견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참여 작가 각자의 작품 세계관을 살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매월 2명씩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글을 만나본다.


사고의 현대 한국 그리고 보따리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에 출품하는 박인우 작가의 작업들은 회화의 직관을 따르면서 일련의 플로우를 가지고 있다. 그 흐름은 작가의 개인적인 내적 고백인 동시에 한국현대사의 일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매체와 표현기법은 정통 회화(유화)의 화법을 따르되, 작가의 직관을 살려 작업에 따라 흐름과 강약조절을 달리 한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번 출품작의 경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작가의 자아를 통렬하리만치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전사>(2006)와 <나의 초상>(2007)이다. <전사>는 작가의 모습을 아프리카 부족 추장으로 표현한 자화상이다. 작가에게 2000년대 중반은 한국사회가 규율과 원칙이 무너진 혼란스러운 시대로 기억된다. 특히 가정과 사회에서 전통적인 ‘아버지’의 역할이 무너진 시대였다. 작가는 우리가 흔히 ‘야만적’이고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아프리카 부족의 추장이 오히려 한국사회보다 더 낫다는 개인적 사유에 착안하여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에 투영하였다. 여기서 작가의 얼굴은 강렬한 남성상을 표방하면서, 사회의 부조리와 인생의 통렬함에 질겁한 개인적인 심리상태를 온 표정으로 반영하고 있다.
<나의 초상>은 장남과 가장의 중압감에 지친 작가의 개인사가 진하게 묻어나는 작업이다. 작가의 유년시절은 육 남매의 장남으로, 때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감을 강요받았던 기억이 지배적이다. 방파제에 온 몸이 묶인 채로 목만 내놓고 견디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관객에게도 질식할 것 같은 중압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박인우_ 전사, 53×45.5cm, oil on canvas, 2006
박인우_ 나의초상, 162×97cm, oil on canvas, 2007

박인우 작가의 두 번째 작업 키워드는 ‘어머니’이다. 본 전시에서는 이와 관련한 두 점의 작업이 출품되었다. <어머니0925>(2009)와 <어머니 Forever>(2015)가 그것이다. 두 작업에서 도드라지는 알레고리는 ‘보따리’이다. 작가는 어머니가 가족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희생하는, 이른바 ‘전통적인 한국형 어머니상’의 온상이었다고 회상한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한 보따리에 구메구메 담겨 있는 것들은 크게 값진 물건이 아니다. 다만 작가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것들, 어머니가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보따리에는 육 남매를 키우고 생계까지 책임지느라고 고생한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절절한 시각으로 담겨 있다. 2009년도에 완성한 작업의 경우 보따리 뒤편에는 암호 같은 낙서와 드로잉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작가와 어머니가 나누었던 대화와 기억들을 작업에 새겨놓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작가의 심리가 담겨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먹먹한 기분을 들게 한다. 한편 <어머니 Forever>(2015)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수목장을 지냈던 날에 대한 작가의 기억이다. 여기에도 보따리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사용하던 의자 등의 소품이 일종의 분신으로 등장하며, 하늘로 올라가는 어머니의 영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적 증언이 담겨 있다.

박인우_ 어머니 0925, 181.8×227.3cm, oil on canvas, 2009

세 번째는 <나-있소> 시리즈로, 이 작업에는 작가뿐만 아니라 작가의 부모와 육 남매의 가족사 스토리까지 포괄하고 있다. “나 있소”는 가족 중심적인 전통 한국 사회에서 때로 자아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희생했던 구성원이 폭발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신호탄이자, 일종의 선언이다. 이것은 특히 한국사회에서 가장과 장남, 즉 ‘전통적인 남성상’이 강요받았던 중압감과, 그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온전히 전가했던 한국 사회에 대한 일갈이기도 하다. 즉, <나-있소>는 작가의 아버지의 외침이자 작가 자신의 선언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표현방식에서 벗어나 자아와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의지를 내용과 형식 둘 다의 방식으로 취하고 있다.

박인우_ 나-있소 1325/ 나-있소1328/ 나-있소1332
117×91cm, acrylic on canvas, 2013

이번 전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은 인천 지역에 연고를 둔 중견작가를 발굴하여 재조명한다는 남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박인우 작가에게 인천은 유년시절 공간기억을 구성하는 총체이다. 당시 인천은 해외 문물이 가장 먼저 거치는 항구도시이자 뱃사람들과 인력시장의 야생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공간으로 작가는 회상한다. 현재는 상상할 수도 없는 바다가 보이는 인천의 풍경과, 자유공원의 불온한 자유와, 항구의 야생적인 에너지가 꿈틀대던 공간은 작가의 의식 공간에 뿌리 내려 강렬하고 남성적인 작품 표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글/ 조숙현 (독립 큐레이터)

박인우 작가 인터뷰 작가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박인우(b.1957~, 인천출생)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과 대지’이다.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지와 자연, 그 일부로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며, 이러한 내적 고민 안에서 한 인간으로서 작가 자신에 대한 서사를 작품에 투영시킨다. 이러한 작업 방식의 흐름은 작가 개인의 내적 고백인 동시에 한국의 시대적 현실과 변화사를 담아낸다. 박인우는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가천대학교 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있다. 작가는 1984년 인사동 관훈미술관에서 에스(S)파 동인전에 참가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한국미협, ORIGIN 회화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숙현은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하고 미술전문지 『퍼블릭아트』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하였다. 현재 전시기획자 및 미술비평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대미술전문출판사 아트북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다. 기획한 전시는 《X- 사랑》(2019, 통의동 보안여관), 《강원국제비엔날레: 악의 사전》(2018, 강원문화재단)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2015, 스타일북스), 『서울 인디 예술 공간』(2016, 스타일북스) 등이 있다.




현대사회의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다, 작가 오원배의 작품 세계와 인터뷰 <몸짓들이 허용하는 자의적 질문들>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ver 1. 오원배
‘몸짓들이 허용하는 자의적 질문들’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의 시작을 여는 기획전시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이 12월 20일부터 2020년 5월 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 중 인천 연고를 가진 중견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참여 작가 각자의 작품 세계관을 살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매월 2명씩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글을 만나본다.


몸짓들이 허용하는 자의적 질문들
오원배는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의 실존과 소외, 현대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작품세계를 확장해 온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 혹은 인간의 신체는 오원배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등장한다. 1970년대에 가면을 쓴 형상에 이어, 1980년대 동물성이 강조된 몸부림치는 살덩이로서의 신체가 등장한 이후로, 때로는 투명인간으로, 때로는 기계 신체로, 때로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형상으로, 때로는 집단적 제스처를 취하는 무리들로 등장했다. 그가 재현한 인간 형상들을 하나의 연대기로 나열만 해도 그의 작품세계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인체를 등장시켜 그는 사회의 구조적 상황과 여기서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탐구하고자 했다. 일상적으로 폭력과 죽음을 마주해야 했던 젊은 시절부터 사회적 부조리를 형상화하고자 했던 회화적 임무는 수 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화력(畵歷 혹은 畵力)을 인간의 실존적 가치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회화적 임무라는 설명으로 갈무리하기에는 그가 재현한 인간의 초상과 시대적 징후들은 상당한 폭과 변화를 가진다. 최근 작업에서 새로운 변화로 보이는 부분, 그래서 자의적 질문을 생성하는 것은 신체의 ‘몸짓들’이다.

오원배_ 무제, printing ink, pigment on canvas, 270×690cm, 2019

몸짓들
그의 최근 작업에서 인체 형상들은 각자 개별적인 동작들을 취하고 있다. 신체를 꺾고 뒤틀고 구부리는 역동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다. 무엇을 하는 동작일까를 상상해 본다. 춤을 추는 순간을 포착한 걸까, 신체의 한계를 보여주는 수행의 동작일까. 준비동작일까, 절정에 달한 동작일까, 마무리동작일까. 편한 상태로 있을 때의 동작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안간힘을 쓰면서 몸을 지탱하고 있거나, 많은 에너지를 머금은 상태의 순간들이다. 혹은 운동 에너지로 전환하기 직전의 긴장감이 어른거리기도 한다. 이전의 동물성이 강조된 살덩어리 신체와도, 기계적 신체와도 좀 달라 보이는 것은 이처럼 운동 에너지를 발산하며 개별 신체들이 행하는 몸짓들에 기인한다. 커뮤니케이션 학자에게 몸짓은 비언어적 소통언어로서 의미체계를 가진다고 한다. 몸짓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상에서 고개와 허리를 숙이는 동작은 상대방에게 인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일상의 소통체계에서 의미해석이 가능한 기능적인 몸짓이다. 하지만 기능성을 벗어난 이 순수 몸짓들의 의미는 그 해석에 다가갈 수 없다. 설사 그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해도 그 의미만으로 몸짓들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결국 몸짓들의 의미 해석에 다가가는 것은 불가하거나 부족하다. 작품의 생성 단계에서 행위 주체의 몸짓으로 다가가면 그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모델은 작업실에서 자유로운 포즈를 취하고 쉴새없이 이를 사진으로 찍는다. 작가는 그 중에서 만족할 만한 컷을 골라 작업에 활용한다. 모델의 순수 몸짓은 자유로운 행위인가, 강요된 노역인가. 그림으로 돌아와, 이 몸짓들은 자유로운 상태인가, 구속되어 뒤틀어진 포즈인가. 어떤 것을 표출하기 위한 능동적 행위인가, 어떤 것에 대한 수동적 반응일까. 자율과 구속, 능동과 수동의 모호한 중층성은 그의 전작들의 인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인간과 기계, 인간과 동물의 형상에서 해방과 통제, 긍정과 부정을 가로지르며 존재의 이중성을 보여줬던 바다. 몸짓들이 담긴 사진을 선별하고 그 몸짓들을 화면에 담는 과정에서 모호한 중층성의 자장은 여전히 미치고 있다.

오원배_ 무제, printing ink, pigment on canvas, 308×387cm, 2019

병치와 접속들
몸짓들은 다른 몸짓들과, 혹은 다른 요소들과 병치된다. 다른 요소들이란 사물들, 식물들, 형태들, 구조들로 이야기될 수 있는 비인간 존재들이다. 그의 기왕의 작업들에서 신체 형상들과 함께 등장한 것은 공간적 배경이었다.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환경이 현대사회의 암울한 공간의 징후로 등장하고, 그러한 징후는 인간이 처한 공간과 상황에 대해 해석하려는 충동으로 우리를 빠뜨렸다. 인체의 형상 및 움직임이 공간과 인과관계를 경유하여 해석의 상황으로 이끌어 가려고 했다면, 이번 작업에서 인간과 함께 등장하는 사물들과 구조들의 나열은 단편적이고 임의적 연결로 보이며 그에 대한 자의적 상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이와 같은 병치 구조에 대해 작가는 “하나로만 이야기하기 모호한 상황인지라 여운을 갖게 하는 하나의 기제로 활용”한다고 말한다. 그의 언급은 복잡하고 다변화된 세상과 가치판단이 어려워진 시대에 대한 논평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조형적 대응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의 병치의 구조는 희박해 보이는 관계들의 무관심한 나열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단절과 무관심은 때로 왠지 모르게 새로운 연결과 접속의 지향으로 보인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여운일까. 몸짓들의 의미 해독이 불가함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커뮤니케이션에 비유하자면, 몸짓들과 그것의 병치는 무선접속장치의 전파가 있는 접속 가능성의 영역에서 모종의 연결과 네트워크를 기다리는 자동적 신호의 목록이 아니었을까 질문하고 싶다.

글/ 이정은 (미술이론)

오원배 작가 인터뷰 작가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오원배(b.1953~, 인천출생)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변형, 상징화 함으로써 인간의 실존과 소외, 현대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 인간이 구축해온 사회, 현실을 구성하는 복잡 미묘한 관계에 관심을 보이며,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초상과 그 시대적 징후들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오원배는 동국대학교와 동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파리국립미술학교 미술학 전공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동국대 명예교수, 우현상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작품의 주요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소마미술관, 금호미술관, oci 미술관, 후쿠오카 미술관, 인천문화재단, 파리국립미술학교, 프랑스 문화성, 동국대학교, 서울대미술관, 원광대학교 등이 있다.

*이정은은 미술이론을 공부하였고, 전시 및 프로젝트 기획과 비평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의 여가문화 및 문화정책에 대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로맨스가 필요해》(2013), 《달빛심포지엄》(2017), 《아워 피크닉_레퍼런스》(2019) 등의 전시 및 프로젝트를 기획한 바 있다.




파편화된 기억, 파편화 된 진실
‘뮤지컬 Unknown’

지난 11월 7~9일 ‘조병창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는 부제의 뮤지컬 ‘Unknown’이 부평아트센터에서 초연되었다. 극단 아토가 제작한 위 뮤지컬은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 그리고 부평구 문화재단에서 주최, 주관, 후원하면서도 제작을 극단에 맡긴 첫 번째 사례일 것이다. 그동안의 지역 콘텐츠 개발에 관한 지역의 대표작이 지자체 중심으로 제작되었던 과거사례와 비교해 극단의 자율성에 맡긴, 드문 사례이기에 관심을 갖고 공연장을 찾았다. 여러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한 무대였다.

먼저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겠다.

우선 이 정도의 대작을 지역에서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지역 소재의 이야기로 작품을 개발해 내고 일정 정도의 객석 점유율을 유지했다는 점에 대해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요즘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지역 콘텐츠 개발에 매달리고 있지만, 사실 성공적인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건 관 주도의 제작방식이 많은 탓도 있을 것이고, 제작진의 역량이 좋아도 지역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거나, 지역에 대한 이해가 높은 팀이라도 역량이 떨어지는 등 모든 것이 맞게 어우러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놉시스를 공모하고, 쇼-케이스를 거쳐 작품을 만들어 내기까지 다년에 걸친 지원 및 작품 개발의 방식과 그 과정에서 극단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된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것이다. 단지 한 작품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경험과 지식이 온전히 지역극단의 역량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모쪼록 이런 방식의 지원과 개발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를 기대해본다. 하나의 성공적인 작품이 개발되기까지 수많은 실패작이 있다는 게 당연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책들은 종종 인내심을 잃고, 한두 번의 시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뮤지컬 <Unknown>
극단 아토 제공

다음은 아쉬운 점을 얘기해보자.

이 작품은 박서진의 데뷔작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데뷔작이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젊은 작가들이 빠지는 함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아쉬웠다.

작품은 시골 소녀 필남의 성장과 사랑, 독립운동, 그리고 남 주인공 재후와 흥기의 우정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렇게 작게는 셋, 크게는 네 개의 중심 플롯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다 보니 2시간 채 안 되는 하나의 작품에 이야기를 모두 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아무리 뮤지컬이 한 장면을 한 곡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르라 하더라도 너무 많은 서사는 결국 어느 하나도 확실히 전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다.
그나마 주인공 둘의 사랑이 중심축으로 보였는데, 플롯과 함께 어우러진 음악의 힘이 컸었다. 차라리 둘의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으면 좀 더 탄탄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작품에서 모든 사건이 중요하다 보니 결국 어느 것이 중요한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좀 더 세밀하게 접근하면 이해하기 더욱 어려운 장면이 연출되고는 한다.

예를 들어 돈을 더 벌고 싶어 접근한 필남에게 남 주인공은 시험 과제를 내주는데, 그건 일종의 태업을 위한 테러이다. 그 결과 동료가 공개처형을 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그런데 그 일을 벌인 당사자를 아는 동료 여공들은 필남의 연애에 열광하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

물론 많은 이야기를 동시에 풀어가다 보니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중심 이야기를 잘 세워야 하지 않았을까?

필남은 돈도 벌고 싶고, 성장도 하고 싶으며, 사랑도 이루어야 하고, 그 사랑하는 이의 독립운동도 도와야 한다. 독립운동은 어떤 이에게는 중요하고, 어떤 이에게는 필요 없는 일이다.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친구의 생명이 소중하기도 하고, 독립운동하는 이들에게 복수도 하고 싶다. 그럼에도 우정 때문에 친구의 독립운동에 협조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배신한다. 결국 주인공이 죽임을 당하고 그 여죄를 추궁당하는 과정에서 허무하게도 갑자기 해방된다.

뮤지컬 <Unknown>
극단 아토 제공

뮤지컬 <Unknown>
극단 아토 제공

너무 많은 이야기 속에 중심 주제가 묻혀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병창에서 일했던 이들의 애환을 그리는 게 목적이었던 듯싶지만, 그들의 일상과 이야기들은 파편화되어 부분마다 장면을 보여준다.

물론 포스트모던을 넘어 포스트, 포스트모던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 하나의 서사로 세상을 파악하기란 힘겨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두 세대 전의 이야기를 파편화하고, 그 파편화된 무대에서 기억의 파편들을 재조립해 우리의 역사와 진실을 조망하려는 의도였다면 이 무대는 매우 성공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 그래도 불만은 남는다.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비해 뮤지컬은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는 걸 강요하는 듯한, 브로드웨이풍의 가벼운 연기는 불편하게 다가왔다. Musical-comedy만이 뮤지컬이 아닌 만큼, 주제나 서사에 맞는 형식이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한편, 무대와 조명은 무겁고, 평범하게 느껴졌으나 안무와 음악은 신선한 면이 있었다.

앞서도 말했듯, 이 정도의 대작을 지역에서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앞서 몇몇 작품 중 초연은 사실 이보다 더 참담했었다.

이 작품 역시 아쉬운 점은 많지만, 초연인 만큼 드러난 문제들을 지속해서 해결해 나가면 앞서 만들어진 작품보다 더 빛을 발하지 않겠나 싶다. 이 작품의 부제처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아직 많고도 많기 때문이다.

 


이재상 (李哉尙) Rhee Jaesang
– 극작가, 연출가, 극단 MIR레퍼토리 대표, Theatre ATMAN(일) 예술 감독
APF(아시아희곡축제)예술 감독, ITI-IPF(국제극작가포럼) 한국본부장




인천의 유쾌한 건달들 『이것이 남자의 인생이다』

이것이 남자의 인생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 10. 발행

한 때, 건달(조폭)을 다룬 영화들이 유행한 적이 있다. 영화 속 건달들은 대개 영남이나 호남 출신이었고, 두 지역이 아니면 서울이었다. 인천의 건달들이 인천에서 활동하는 작품은 매우 드문 것이 사실인데, 이 작품은 이번에 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 천명관이 인천을 배경으로 인천의 건달들을 등장시킨 작품이다. 건달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작품은 무겁거나 심각․잔인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고 ‘허당’으로 가득차 있다. 무려 35억짜리 종마와 20억원 어치의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작품에서 ‘후까시’만 잡을 뿐 실제로는 ‘허당’인 건달들이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맹활약’을 펼치는 곳은, 주안역 뒷골목과 연수동 뒷골목, 제물포역 근처 여관방, 문학동 당구장, 송도 등 인천이다. 인천의 최대의 조직 ‘연안파’를 중심으로 포복절도하게 펼쳐지는 ‘건달’들의 리얼한 이야기는 밤이 훌쩍 길어진 겨울 밤을 보내는 매우 유익한 읽을거리가 틀림없다.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사 함태영




설치그룹 마감뉴스

소금, 꽃을 피우다-생성과 소멸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장소 : 인천광역시 옹진군 시도염전, 10월 13일~31일

설치그룹 ‘마감뉴스’는 1992년 결성되어 올해로 25년째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작가 단체이다. 기존의 상투적인 전시공간인 화이트큐브에서 벗어나 ‘자연, 인간, 예술’이라는 화두를 내세우며 광활한 자연환경과 직접 마주치는 생생한 경험을 예술로 표현하는 작업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매년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여 2박 3일간 그곳에 머물면서 낯선 공간이 제공하는 자연의 언어를 귀담아 듣고 자유로운 예술의 언어로 화답하는 ‘유목적인’ 태도의 작업방식은 올해도 역시 유효하다. 올해의 특별기획전은 인천의 작은 섬 중 하나인 시도에서 진행됐다. ‘마감뉴스’가 시도에 주목한 것은 이곳에 염전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소금을 생산하는 인천의 몇 안 되는 염전 중의 하나를 올해 프로젝트의 터전으로 삼은 것이다. 아마도 이런 장소적 특수성이 이번 ‘마감뉴스’의 프로젝트가 지닌 가장 두드러지는 독창성일 것이다.

이들이 시도에 들어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간은 불과 2박 3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짧은 만큼 응집력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한 사전조사는 꽤나 철저하게 이루어진 인상을 준다. 우선 인천의 역사에서 소금이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를 사전에 조사했다. 이들에 따르면 소금은 비류가 미추홀에 나라를 세우게 되는 배경이 되었으며 인천은 최초의 근대적 형태의 천일염 생산지이기도 하다. 한때 전국 소금 생산량의 절반을 인천에 담당했다고 하니 인천에 얼마나 많은 염전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는 익히 짐작되는 바이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인천에서 1차산업에 해당되는 염전의 수는 급격히 줄었고 중공업이 그 자리를 차지한 이후에 이제는 공항과 항만을 비롯한 첨단화된 3차산업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이렇듯 소금은 인천의 역사적 기원을 이끌어낸 중요한 상징이자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이제는 빛바랜 영광을 뒤로 한 채 아직까지 생존한 한 줌의 염전만이 그 희미한 자취를 지켜오고 있는 실정이다. ‘마감뉴스’는 오늘날의 염전이 이른바 ‘친환경 산업’이라는 새로운 미명하에 겨우 잔존하고 있는 표면적 상황을 파고들어가 그 심층에 있는 역사적 가치를 길어 올린다. 이것이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소의 가치와 의미의 재해석’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진정한 독창성은 앞에서 말한 소금과 염전의 역사적, 경제적 흥망성쇠를 소금 그 자체의 물리적 속성과 연결시키는 데에 있다. 인천의 역사가 염전의 생성과 소멸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만큼이나, 염전의 소금은 생성과 소멸의 무한한 순환을 몸소 보여주는 물질인 것이다. 말하자면 염전의 소금은 태양열에 의한 바닷물의 증발로부터 생성되고 다시금 바닷물에 용해됨으로써 소멸되는, 즉 생성의 장소가 곧 소멸의 장소이며 소멸이 다시금 생성의 계기가 되는, 자연의 근본적인 신비가 상연되는 무대의 주인공인 것이다. ‘마감뉴스’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천 염전의 선형적 역사를 자연이 소금에 선사한 재귀적이고 순환적인 역사와 겹쳐 놓음으로써 문명과 자연이 어떻게 합류(合流)하고 또 분류(分流)하는지 성찰해볼 수 있는 고유한 장소를 마련한다.

소금을 매개로 이루어진 이 문명과 자연의 만남은 아무래도 자연 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그 이유는 우선은 염전이 문명에 의해 조성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에 전적으로 순응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기상조건과 대기조건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염전은 문명의 산물이되 가장 자연에 가까운 편에 위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마감뉴스’의 지속적인 작업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마석, 양평, 연천, 오대산, 파주 등을 거쳐 올해의 인천 시도에 이르기까지 20년이 넘게 한 곳에 이주하지 않고 해마다 작업공간을 바꿔가며 유목의 스타일을 유지해온 이들은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벗 삼아 순응하는 태도로 예술적 행위를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그 결과물로서의 작품 역시 인위적인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대지의 처분에 따라 각자 주어진 소멸의 시간에 맡겨지게 된다. 이처럼 염전의 생성과 소멸, 소금의 생성과 소멸, 작품의 생성과 소멸은 제각각의 리듬으로 역사, 자연, 예술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순환의 원리를 대변하게 된다. 

‘마감뉴스’는 설치그룹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데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대지미술 또는 자연미술을 추구하는 작가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 순응하는 태도를 견지하지만 인간이 하는 활동인 이상 인위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바, 즉 무위(無爲)에 한없이 가까워지려는 위(爲)의 종류는, 이들이 작가인 까닭에 당연하게도 예술적인 성격의 것이다. 올해 전시에서 이들의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키워드는 ‘꽃’이다. ‘소금, 꽃’, 다시 말해 소금을 발단으로 삼아 피워내는 아름다움의 창작, 그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예술적 완성도를 이끌어내는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또 다른 과정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창작이 아니라 발견의 과정이다. ‘소금, 꽃’이란 단지 소금으로 피워내는 꽃을 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소금 그 자체가 꽃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금은 그 자체로 소금꽃인 것이다. 염전에서 이루어지는 고된 육체노동과 함께 20여 일을 기다리면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소금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소금의 자태가 마치 아름다운 순백의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염전에서 소금은 흔히 ‘소금꽃’이라고도 불린다 한다. 그러므로 염전(鹽田)은 사전적 의미로는 소금밭이지만 예술적 의미로는 ‘꽃밭’이기도 한 것이다. 이곳에서 작가들은 때로는 꽃을 피워내기도 하고, 때로는 이미 피어난 꽃을 발견하기도 한다. 

‘마감뉴스’는 꼼꼼한 사전조사를 마친 뒤 10월 13일 시도에 들어와 15일까지 2박3일간 시도염전뿐만 아니라 그 인근의 해변까지 누비며 부지런히 작업을 진행했다. 이 3일간 작가들이 시도 곳곳의 자연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고도 집요한 개입을 시도한 전 과정과 그 흔적이 다함께 모여 올해 ‘마감뉴스’의 특별기획전인 것이다. 작업의 시기를 10월 중순으로 잡은 이유는 염전의 일정을 따른 것인데, 거슬러 올라가면 염전의 일정은 또한 일조량의 변화에 맞춰져 있으니 이 또한 자연에 최대한 순응하는 ‘마감뉴스’의 태도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염전은 3월 말에서 10월 초까지 소금을 생산한다. 낮의 길이가 일정 부분까지 짧아지면 더 이상 좋은 소금을 생산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시도염전의 경우 10월부터 휴식기에 들어간다고 하니, 자연스레 ‘마감뉴스’의 프로젝트 기간은 10월 중순으로 잡힌 것이다. 이들은 염전이 쉬는 동안 잠시 방문을 허락받아 자연과 조응하면서 소금꽃과 만난 것이다. 그리고 염전의 근원이 되는 바닷물을 끌어오는 인근 해변까지 작업의 범위를 넓힌다. 

바닷가 부근에서 발견한 수레바퀴를 가져와 밀물 때 잠겼다가 썰물 때 드러나는 지점에 세워 놓은 작업은 올해 전시의 현판과도 같다. 조수 간만의 차에 따라 드러남과 감춤의 대위법을 무한히 반복하는 바퀴의 모습은 생성과 소멸의 끊임없는 되풀이를 그대로 시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오브제가 바퀴인 것도 자연의 순환성에 대해 시사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또 눈에 띄는 작업은 밀물과 썰물의 주기에 의해 해변에 남겨진 물결자국을 따라 소금을 뿌려 자연의 줄무늬를 가시화한 작업이었다. 해변에 새겨진 흥미로운 줄무늬들은 온전히 자연이 그린 작품이며, 인간은 소금으로 그 무늬에 흰색을 입혀 조금 더 잘 보이게 하는 최소한의 개입에 그친다. 더군다나 그 개입마저도 또 다시 밀물이 찾아오면 자연의 품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이처럼 ‘마감뉴스’ 구성원들은 염전과 해변의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고 소금, 나뭇가지, 돌, 모래 등 자연이 내어준 재료로 자연과 나직하게 대화하면서 경이와 존중의 제스처를 취한다. 휴식기에 접어든 염전의 바닥을 집요하게 닦아내어 둥근 원의 모양을 남긴 작업도 언급할 만하다. 무언가를 더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덜어내는 방식으로 자연의 사물을 발견하게 만드는 작업방식을 잘 보여주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갤러리나 미술관으로 가져오기가 무척 힘든 대지미술의 작업을 20년이 훌쩍 넘게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감뉴스’의 기획이 우리나라 미술계에 갖는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예술미와 자연미, 문명과 자연의 경계를 끊임없이 되묻는 이들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 또한 전국 이곳저곳을 묵묵히 찾아다니며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들을 보듬는 이들의 행위는 예술의 역할이라는 것이 단순히 심미적인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이고 환경적인 차원까지 다다른다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다만 이런 종류의 작업이 가지는 본질적인 한계는 부차적인 방식으로 계속 보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은 그것의 결과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작업의 과정인데, 그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관객의 수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장소의 접근도가 상당히 떨어지고 작업의 수명이 지극히 짧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접근도를 높이고 작업의 견고성을 높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로 임하는 대지미술에게 그것은 곧 대지미술이기를 포기하라는 주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특별기획전이 단지 자족적인 ‘그들만의’ 전시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시도에서의 2박3일 이후의 후속작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진, 텍스트, 동영상 등 확보할 수 있는 여러 기록매체를 통해서 이들의 대지미술이 보다 넓은 의미의 ‘퍼블릭 아트’로 이어지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마련되길 바란다. 

 

글, 사진/ 김홍기 미술평론




한국 대중음악의 산실, 인천

시공간을 출렁이는 목소리 노래
나도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 11. 발행

근대화 이후 현재까지 인천은 다양하게 불린 ‘노래’의 산실이다. 인천 ‘노래’의 역사는 곧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의 역사가 풍전등화와 같던 구한말 최초의 애국가 노랫말이 발표된 곳이자 일제강점기 일본 엔카의 교과서를 쓴 인물이 음악적 영감을 받은 곳이 인천이다. 국민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지어냈으며, 송창식과 구창모, 심수봉을 키워낸 곳도 역시 인천이다. 산업화 시대와 1980년대를 거치며 수많은 민중가요의 산실이 되었고, 지금은 매년 여름 펜타포트락페스티벌로 사람들의 피를 뜨겁게 하고 있다. 이 책은 한 세기에 걸쳐 이땅에서 우리네가 짓고 불렀던 ‘노래’와 ‘노래하는/노래짓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노래’를 통해 우리 고장 인천과, 나아가 우리 시대와 삶의 여러 풍상들을 노랫가락 같은 정감 있는 말로 들려준다.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사 함태영




임경은 콘서트: 올 어바웃 듀오 (2017)

재즈 보컬리스트 임경은은 2015년부터 보컬과 악기와의 듀오 컨셉의 공연을 해오고 있다. 첫 회는 <Just Duo>란 제목으로 열렸고, 2016년에는 <The Art Of Duo>란 제목으로 열렸다. 올해는 그 세 번째 공연으로 <All About Duo>란 제목을 붙였다. 2015년의 <Just Duo>는 각각 피아노, 기타, 베이스와 스테이지 별로 듀오를 편성해 선보였고, 2016년의 <The Art Of Duo>에서는 새로운 뮤지션뿐 아니라 드럼을 추가로 구성해 색다른 질감을 선보이기도 했다. 올해 공연에는 피아노와 색소폰, 클라리넷, 비브라폰과 밴드 셋을 선보였다. 매회 공연을 거치며 「재즈」에 근거를 둔 형식적 실험을 이어온 셈이다. <All About Duo> 공연의 1부는 피아노와 색소폰, 비브라폰과의 듀오 연주로, 2부에서는 드럼과 베이스가 가미된 밴드 셋으로 공연이 진행되었다. 

1부 공연은 토크쇼와 닮았다. 보컬의 듀오가 아닌 악기와 보컬의 대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재즈의 듀오, 듀엣은 다른 장르에서 관습적으로 진행되듯 엄정한 룰을 따르기보다는 즉흥에 가까운 상호 교감을 전제로 한다. 형식과 질서 바깥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음악이 복무하는 방식. 임프로바이제이션(improvization), 애드립(ad-lib), 훼이크(fake) 등의 프리 재즈의 용어와 용법을 몰라도 그 순간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All About Duo> 공연이 프리재즈 공연인 것은 아니지만, 요소요소에 그런 임프로바이제이션의 순간들이 존재했고 그것이 공연을 감상하는데 주요한 포인트였던 건 분명하다.

첫 순서는 피아니스트 송영주와의 듀오로 시작되었다. 스탄 게츠의 1981년 발표곡 「The Dolphin」으로 시작한 공연은 곧바로 거슈윈의 「Fascinating Rhythm」으로 이어졌다. 이 두 곡에서 임경은과 송영주는 미묘하게 피아노와 목소리를 주고받으며 때때로 앞서고 뒤따르면서 관객을 미지의 장소로 인도했다. 특히 빈틈없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빈틈을 만드는 구성에서 조용히 음계를 뒤따르던 관객들은 기대하지 못한 풍경을 만난다. 3분 가까운 피아노 솔로가 이어지는 부분에선 예측을 비껴나는 진행으로 내내 듣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맞다. 이토록 듣는 행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공연은 오랜만이었다. 새삼, 좋은 음악이란 관객 혹은 청자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컨대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들려주는 행위란 연주자와 관객이 모종의 힘겨루기라는 것이다. 그 팽팽한 긴장이 충만한 순간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악으로 관객을 이끄는 공연은 곧이어 색소폰/클라리넷 연주자 여현우와의 무대로 이어졌다. 여기서는 몽크의 「파노니카(Pannonica)」와 임경은의 신곡 「듀엣」을 선보였는데, 「듀엣」은 사실상 이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기도 하다. 「파노키아」가 낭만적인 색소폰 음색을 배경으로 여성 보컬이 나비처럼 우아하게 비행하는 곡이라면, 「듀엣」은 보컬과 색소폰의 교감이 좀 더 적극적으로 진행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탐닉하는 곡이다. 색소폰의 묵직한 사운드가 가벼운 보컬을 쓰다듬는다 싶으면 보컬이 그 소리를 타고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이런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상당한 텐션을 만드는데,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약간의 우울감을 가미한 아름다움이 흐르는 곡이다. 마치 찰나에 타올랐다 사라지는 저녁노을 같은 곡. 공연장에 있던 관객들 모두 이 순간적인 비장함에 압도당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크리스 바가의 비브라폰 연주와 임경은의 보컬이 어울리는 무대였다. 앞서 「듀엣」 공연은 토크쇼와 같다고 말한 바, 크리스 바가의 경우엔 이런 특징이 훨씬 도드라졌다. 그는 빌 에반스의 「My Bell」과 「No More」 두 곡을 연주했는데, 이 곡은 비브라폰의 영롱하고 신비로운 음색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공연 중 임경은이 언급한 대로, 크리스 바가의 신비로운 회색 눈동자와도 어울리는 곡이기도 한데, 앞서의 스테이지가 통제와 자율, 소통과 교감이 교차할 때 분출되는 에너지가 주도했다면, 크리스 바가의 스테이지는 말로 전환되지 않는 모호함과 신비함이 주도했다. 언어가 아닌 감각에 기댈 수밖에 없는 공연, 이 10여 분의 무대에 대한 여운이 꽤 오래 갔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 3개의 무대가 끝난 뒤, 2부에서는 송영주, 여현우, 브리스 바가가 모두 무대에 위치하고 베이시스트 김호철과 드러머 신동진이 착석해 밴드 셋의 공연을 선보였다. 1부가 연주자와 보컬리스트의 상호교감에 집중하며 내면적인 무대를 선보였다면 2부의 밴드 셋은 외향적인 사운드를 주로 선보였다. 이런 구성이 무대에 적당한 긴장감을 부여하며 관객과의 교감을 더 발전시킨 것도 당연하다. 1부의 관람을 통해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다가 2부에서는 긴밀하게 밀착되는 경험은 꽤 신선했고, 기획 재즈 공연을 촘촘하게 설계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공연이란 결국 무대 위에 선 음악가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자, 객석에 앉은 관객들과의 소통이라는 점을 새삼 환기시키는 구성이었다.

2부는 김호철이 이 공연을 위해 새로 작곡한 「Invisible Things」로 시작했다. 묵직한 무게감보다는 가볍고 경쾌한 산책 같은 느낌의 곡으로, 중반부에 이른 공연의 흐름이 반전되었는데, 곧 이어진 빌 에반스의 「Five」에서 이런 경쾌함은 더욱 강화되며 공간을 그야말로 「재즈적인 사운드」로 채웠다. 우리는 자유분방하면서도 무질서한 규칙, 일견 모순적이지만 감각에 집중할 때 자연스레 알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재즈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음악이야말로 애초에 규격화되지 않은 미학이 지배하는 분야이고, 그 자유로움은 규칙을 깨면서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규칙 없는 규칙’에 가까운 것이다. 소위 원초적인 쾌락이야말로 음악의 본질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공연이었다.

이어 모두에게 익숙한 스탠다드 명곡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과 빌 에반스의 「Blue In Green」을 절묘하게 결합한 연주와 보컬, 색소폰, 드럼, 비브라폰, 피아노와 베이스가 겹겹이 쌓이는 「No wonder」를 끝으로 공연은 마무리되고, 앵콜로는 「Tangerine」이 연주되었다. 전반적으로 잘 설계된 공연이었고, 신곡을 두 곡이나 접할 수 있어서 의미가 깊었던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임경은이라는 보컬리스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재즈 연주를 들려주는 기획이 돋보였다. 결과적으로 이 공연은 재즈를 소재로 삼은 토크쇼이자 큐레이션이자 컴필레이션인데, 이런 형식적 실험이 재즈를 즐길 만한 것, 다시 말해 팝처럼 만만한 음악으로 여겨지게 하는 거란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든 우리에겐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할 것이다. 관객, 대중, 혹은 소비자들과 음악이 만나는 더 많은 접점이 요구되는 시대에 <All About Duo>는 재즈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완성도와 친근함을 높이는 공연을 성사시켰다. 이 점이야말로 이번 공연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

 

글/ 차우진 평론가
사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민경찬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

질주하는 역사 철도 
조성면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 11. 발행

2017년 9월은 이 땅에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지 118년이 되었다. 1899년 9월 18일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된 것이다. 한 세기 전 외세에 의해 건설되었고, 일제 침략의 도구로 쓰이기도 했지만, 철도와 기차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또한 장삼이사들의 삶의 희노애락이 모두 녹아 있는, 우리네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역시 철도와 기차이다. 이 책은 인천에서 시작된, 그리고 인천을 기점으로 하는 경인선과 협궤열차 수인선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인선과 수인선의 주요 역들을 따라가며 철도와 관련된 그곳의 역사와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을 정감어린 목소리로 들려준다. 청명한 가을날, 철길 따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답사안내서이기도 하다.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함태영




식탁 위의 작은 동아시아, 짜장면

화교문화를 읽는 눈 짜장면
유중하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 11. 발행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부동의 외식 1위는 짜장면이다. 짜장면은 인천에서 처음 먹기 시작한 인천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짜장면이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겨나 어떤 의미로 우리 음식으로 정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짜장면은 한 세기 전 인천에 온 중국인들이 처음 먹었던 데서 비롯된 음식이다. 또한 ‘중국’ 음식인 짜장면의 단짝은 ‘일본’ 음식인 ‘다꾸앙’이라는 점에서, 짜장면은 식탁 위의 작은 ‘동아시아’이다. 이 책은 짜장면의 기원은 물론 짜장면을 처음 만들어 먹은 중국인 화교(華僑)들의 삶과 짜장면의 기원이 된 여러 음식을 중국 본토 답사를 통해 생생하고 맛깔난 문장으로 전달한다.

글 /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함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