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만화 함께 읽기
만화에는 재미와 감동이 있습니다. 만화에는 이 시대가 생각해야 할 가치, 우리 사회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만화 함께 읽기’에서는 ‘문화예술을 소재로 한 만화’나 ‘문화 현장의 쟁점을 다룬 만화’를 소개합니다. 바쁜 일상이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만화를 읽으며 삶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빌레라』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최기현(인천문화재단)

최근 웹툰의 IP 확장이 대세다. IP는 ‘Intellectual Property’의 약자로, 콘텐츠 중심의 지식재산을 뜻한다. 경쟁력 있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게임, 드라마 등은 ‘슈퍼 IP’로 주목받으며 다양한 매체로 확장 중이다. <미생>, <이태원 클라쓰>, <스위트홈>, <경이로운 소문>, <여신강림> 등 웹툰 원작 드라마가 넷플릭스와 같은 OTT1) 플랫폼이나 TV를 통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그중 발레를 소재로 한 웹툰 『나빌레라』는 드라마, 뮤지컬로 제작되어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HUN(글), 지민(그림), 『나빌레라』 1~5권 (2017, 위즈덤하우스) 드라마 <나빌레라>, 12부작, 2021 (출처: tvN) 뮤지컬 <나빌레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2021 (출처: 예술의전당)

『나빌레라』(HUN/지민, 다음웹툰)는 70세의 노인 심덕출과 23세의 발레리노 이채록이 함께 발레를 하며 겪는 성장 드라마다. 덕출은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어릴 적부터 마음 한 켠에 담아온 발레를 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한다. 예상대로 가족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일흔이라는 나이 탓에 몸도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젊은 무용수 채록은 타고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발레리노가 되고 싶은 꿈 앞에서 방황한다. 우여곡절 끝에 채록은 덕출이 발레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덕출은 채록의 매니저가 되어 채록이 꿈을 잃지 않도록 서로 돕는다. 덕출과 채록은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서사구조를 가진 작품이 흔히 비판받는 경우는 결말이 예상되는 뻔한 이야기를 전개할 때다.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러한 이야기가 작품에 많이 쓰이는 이유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먹히기’ 때문이다. 『나빌레라』의 도입부를 읽으면 이야기의 결말이 충분히 예상된다. 대략 발레에 대한 열정으로 어려움을 이겨내 마침내 꿈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노인이 발레에 도전하는 모티브는 참신하지만 전개하는 서사 구조는 다른 작품과 비교해 그리 특별하지 않다. 특별하지 않은 『나빌레라』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작품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HUN(글), 지민(그림), 『나빌레라』 (출처: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LikeButterfly)

그것은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한계와 관련이 있다. 덕출과 채록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한계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물리적인 한계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한계다. 덕출은 일흔의 노인이다. 발레를 하기에 유연성도 떨어지고 체력도 부족하다. 다치면 회복도 쉽지 않다. 발레를 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담배도 끊고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몸을 만들지만 육체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다. 반면 채록은 젊기 때문에 유연성도 좋고 체력도 좋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인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한계다. 『나빌레라』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작품 곳곳에서 재현했다. 덕출이 발레를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가족들은 극구 반대한다. ‘남자’이자 ‘노인’이 발레를 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말이다. 언뜻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정말 할 수 없을까? 쉽게 단정 지은 편견이다. 가족들은 ‘동네 사람들 보기에 부끄러우니 운동을 하고 싶으면 발레 대신 등산이나 에어로빅을 하시라’는 반응을 보인다. 덕출의 자아실현보다 사회적 체면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덕출이 발레를 배우겠다고 처음 발레단에 갔을 때 ‘노인이 발레를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듣는다. 발레가 격한 몸짓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노인은 발레를 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작동한다. 또 다른 장면인 김흥식 발레스쿨에서 덕출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보고 ‘장애인이 어떻게 발레를 할 수 있을까?’생각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그 편견을 깨고 멋지게 카발리캠프(병사들의 휴식)를 보여준다. ‘마음만 먹으면 발레리노가 될 수 있지만, 경제적 여건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채록의 생각도 역시 앞의 예와 다르지 않다.

HUN(글), 지민(그림), 『나빌레라』 (출처: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LikeButterfly)

『나빌레라』에는 두 개의 클리셰2)가 결합되어 있다. ‘뻔한’ 이야기, 그리고 작품에 재현된 ‘한계와 편견’이다. 결합된 두 개의 클리셰는 일종의 커다란 벽이다. 주인공들은 이 벽을 뛰어넘어야 꿈을 성취할 수 있다. ‘뻔한’ 이야기와 ‘한계와 편견’은 독자에게 아주 친숙하기 때문에 독자 자신이 현실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동일시된다. 노인의 육체적 한계, 사회적 체면,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등의 편견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이 실제로 현실에서 느끼는 불편함이다. 덕출이 『나빌레라』에서 겪는 불편함은 독자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채록이 겪는 어려움은 청년 독자에게 이입된다. 열심히 살아도 여전히 그대로인 자신의 모습, 취업도 힘들고 결혼도 힘든 이 시대의 어려움은 채록이 느끼는 어려움과 맞닿아있다.

클리셰로 결합된 벽을 앞에 두고 주인공들은 이제 독자와 연결되었다. 주인공들이 벽을 깨는 행위는 독자가 벽을 깨는 것과 마찬가지다. 클리셰의 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한계를 극복했을 때 사이다는 그만큼 커진다. 감동도 그만큼 커진다.

‘이쇼라스’는 러시아어로 ‘한 번 더’라는 뜻이다. 러시아 무용수 미하엘이 채록을 개인지도 할 때, 채록이 포기하려는 순간마다 “이쇼라스!”를 외치며 채록을 독려한다. 『나빌레라』에서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맞닥뜨린 한계를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또 연습한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실패할 때마다 이렇게 외친다. “이쇼라스!”

『나빌레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한 노인의 발레 도전기는 더 이상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다. 『나빌레라』는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다시 한번 도전하라고 우리를 격려한다. 어떻게? “이쇼라스!”라고. 『나빌레라』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참고

1) OTT(Over the top): 인터넷으로 각종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가리킨다. 넷플릭스, 티빙, 왓챠 등이 있다.

2) 클리셰는 활자 인쇄의 연판(鉛版)을 가리키는 프랑스어로 고정관념 또는 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 등을 가리킨다.

최기현(崔基鉉, Daniel Choi)

인천문화재단 전략기획팀 과장. 만화평론가. 문화예술과 만화에 담긴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웹툰이나 공연, 전시를 추천해주신다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DANIEL7@ifac.or.kr




관계의 가능성 탐구: 2021 부평구문화재단 특별기획전시 《음악의 기술》

관계의 가능성 탐구2021 부평구문화재단 특별기획전시 《음악의 기술》

손세희(독립큐레이터)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부평아트센터에서 열린 특별기획전 《음악의 기술》(2021.5.4.~ 6.13.)은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흥미롭게 접근하고 직접 참여하며 감상할 수 있는 전시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우리의 상호작용 방식, 우리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대안적 혹은 새로운 방식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음악의 기술》 전시 작품들도 센서를 이용해 관람자와 작품의 비접촉식 상호작용을 만들어내고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2021 부평구문화재단 특별기획전시 《음악의 기술》,
부평아트센터 갤러리꽃누리 및 로비, 2021.5.4.~6.13. (사진: 부평구문화재단)

갤러리 입구, 조용히 천장에 매달려 있는 붉은 리본이 관람자가 다가서자 회오리를 그린다. 최종운의 <A Storm in my mind>(2006~2021)은 눈에 보이지 않는, 깊숙이 내재해 있는 움직임, 요동침을 시각화한다. 여기서 내 마음속이란 작가의 혹은 관람자의 마음속일 수도 있고 리본의 것일 수도 있다. 폭풍이 인다면 우리 마음뿐 아니라 가만히 늘어져 있던 리본도 이렇게 펄럭일 것이다. 그 폭풍의 원인은 대자연의 혼란일 수도 있지만 한 인간의 소심한 접근일 수도 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미동만 하던 리본의 격렬함을 촉발시키는 역할은 관람자의 몫이다.

최종운, <This is Orchestra>, 2018 (사진: 손세희)

최종운의 다른 작품 <This is Orchestra>(2018)에서 지휘자를 기다리는 악기들은 전통적인 악기들이 아니다. 작가는 선풍기, 양철 양동이, 의자, 그릇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독특하면서도 고전 악기 못지않게 아름다운 형태의 악기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이들의 조합을 멀리서 보면 소규모의 화려한 건축물 같다. 소리는 적외선 센서와 wifi 네트워크 시스템을 이용해 나온다. 관람자는 행동을 통해 작품의 특정 반응을 이끌어 냄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작품을 감상하도록 초대받는다. 누구나 지휘대에 서서 마치 잠자고 있는 악기들을 깨우는 마법사처럼 크게 팔을 움직여 금세 합주를 명령할 수 있다. 최종운은 일상적 사물들의 물성에 집중하며 고요해 보이는 표면 너머 존재하는 긴장감, 에너지, 소리를 해방시킨다.

한재석, <기라성 Kira-sung>, 2021 (사진: 부평구문화재단)

한재석 역시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의 본성을 탐구한다. 그러나 한재석의 태도는 명상적이라기보다 기계적이며 사물의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물리적 규칙이나 시스템을 갖춘 기계를 만들어 창작 과정에서 작가 자신의 개입을 줄인다. 이는 생성 예술(generative art)의 작업 방식이기도 한데, 한재석은 작품을 구성하는 사물들에 능동성을 부여해 작가의 창작 과정에 기여하게 한다. 여기서 작가가 중요하게 사용하는 것은 피드백 원리로, 피드백은 입력과 출력이 맞물려 끊임없는 반복을 이어간다. <기라성 Kira-sung>(2021)은 중고 스피커들과 피드백의 원리가 결합해 극적인 밤풍경을 만들어 내는 설치 작품이다. 관람객들의 발걸음,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진동이 스피커의 둥근 진동판을 울린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꽂힌 금속 막대가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천장에 달려 있는 다른 막대와 스치며 조우한다. 막대들의 끝이 맞닿는 순간 작은 불꽃이 튀고 전류가 흐른다. 스피커는 이 전류로 작동한다. 짧은 순간의 조우가 끝나면 전류가 끊기고 스피커는 멈춘다. 작가는 완벽한 통제 대신 사물 간의 물리적 상호작용의 결과를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변수 하나가 예상 밖의 전개를 초래할 수도 있는 우연을 허락한다. <기라성 Kira-sung>에서 더 빛의 점멸을 보고 싶다면 작품의 주위를 더 자주 서성이면 된다. 아쉬운 점은 고요한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을 상상하기에는 이 작품이 다소 어수선한 복도 한구석에 전시되었다는 것이다.

이재형, 박정민, <기계 즉흥곡 Machine Impromptu>, 2017 (사진: 부평구문화재단)

<음악의 기술> 전시장을 돌아다니면 뜻밖의 사물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기계 즉흥곡 Machine Impromptu>(2017)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물고기들이 들어 있는 커다란 수조이다. 미술 전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은 분명 아니다. 그러다 갑자기 연주자도 없는 피아노의 건반이 움직이며 음악이 연주된다. <기계 즉흥곡 Machine Impromptu>은 물고기의 움직임에 반응해 피아노가 자동 연주되는 작품이다. 오선이 그려진 수조 안에 음표의 머리를 닮은 검은 물고기들이 유영한다. 오선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물고기들이 그려내는 악보는 카메라를 통해 스캔되어 수많은 곡을 학습한 인공지능 시스템에 보내지고 인공지능은 이를 기반으로 즉흥곡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은 연동된 피아노에 전달되어 자동으로 연주된다. 관람자가 듣는 음악은 자연과 기계의 합작품인 셈. 작가는 물고기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무작위의 음들 위에 기계적으로 화음을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크리스티안 폴(Christian Paul)은 그의 저명한 책 『디지털 아트』에서, 다다(Dada), 플럭서스(Fluxus), 개념미술(Conceptual art)에서 디지털 아트의 미술사적 연관성을 찾는다. 무작위와 통제 간의 상호작용, 형식적 체계와 규칙, 변주를 이용하여 시의 미학을 성취하고자 한 다다주의자들의 시작법, ‘발견된(found)’ 요소와 미리 정해진 지시문을 기반으로 했던, 존 케이지를 비롯한 플럭서스 예술가, 음악가들의 작곡에서 인터랙티브 예술(interactive art)의 실험들을 미리 엿볼 수 있음도 언급한다(Christian Paul, Digital Art, London: Thames & Hudson, 2008, 12~1) 한재석의 <기라성 Kira-sung>과 이재형, 박정민의 <기계 즉흥곡 Machine Impromptu>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손세희(孫世姬, Shon Seihee)

독립큐레이터로 비디오아트, 무빙이미지, 사운드, 컴퓨터 기반 예술,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융합에 초점을 두고 전시, 교육 프로그램 기획, 저술과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기획한 전시로는 인천문화재단-하나금융TI 미디어아트 협력 전 《예술의 조건》(2021) 《평행 풍경》(2019), 한국 미디어아트 전 《기억하기 혹은 떠돌기》(2017, Atelier Nord ANX gallery, 오슬로)가 있다. 영국 뉴캐슬 대학에서 미술관 교육을, 요크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잠시 멈춤 속에서 상상의 세계로: 2021 연수문화재단 금요예술무대 #플래잉연수 〈우산도둑〉

잠시 멈춤 속에서 상상의 세계로2021 연수문화재단 금요예술무대 #플래잉연수 <우산도둑>

엄현희(연극평론가)

스튜디오 나나다시의 <우산도둑>(장성희, 김예나 작/김예나 연출)이 ‘2021 연수문화재단 금요예술무대 #플래잉연수’ 5월 공연으로 선보였다. 2018년에 초연(初演)된 <우산도둑>은 서울어린이연극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은, 어린이 대상의 명작 공연이다. 이번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연수아트홀에 많은 어린이 관객들이 모인 것을 보니, 그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은 어린이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려, 어린이 관객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천천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며 말이다.

2021 연수문화재단 금요예술무대 #플래잉연수 <우산도둑>, 스튜디오 나나다시연수아트홀, 2021.5.28. (사진: 연수문화재단)

사실 연극 한 편이 어린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며, 어떠한 기억으로 남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 수많은 문화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 연극은 특별히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예술이다. 오히려 연극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혹은 의미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고 생각하고 느끼도록 하는 ‘인간적인 경험’을 권유하는 예술이다. 어린이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산도둑>은 작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만일 우산이 없는 마을이 있다면, 우산을 보게 되었을 때 무엇을 생각할까,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이상한 질문일까. 하지만 <우산도둑>이 설정한 특수한 상황은 관객들 개인에게 어떤 기억을 건드린다. 생애 첫 우산을 가졌을 때의 소중한 기억들, 혹은 특별히 아끼는 우산을 가지게 되었을 때를 어렴풋이 떠올리도록 한다. 무심히 지나친 어떤 순간을 환기시키며, 연극은 잠시 멈춤 속에서 여러 가지 상상을 펼쳐낸다. 관객들도 잠시 멈춤 속에서 어렸을 적의 특별한 우산을 만났을 때의 감동을 비롯해 몽상에 빠지게 된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우산도둑>은 그러한 순간을 잘 포착한 작품이다.

<우산도둑>의 한 장면 (사진: 연수문화재단)

<우산도둑>의 창작진 ‘스튜디오 나나다시’는 연수아트홀 무대를 충분히 넓게 사용한다. 양옆에서 이야기꾼이 장면을 이끌어가며, 무대 중앙에서 배우들에 의해 주요 장면들이 펼쳐진다. 주로 키리마마의 친구 차쭈의 찻상 등의 장면이나 도시 장면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극장의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낮추려는 운동)로 꾸려졌다. 수어 통역자가 이야기꾼의 역할을 함께 하며, 극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우산이 없는 마을에 사는 키리마마란 소년은 도시에 나가 우산을 처음 보고, 우산을 사서 집에 돌아온다. 하지만 우산은 자꾸 없어지고, 키리마마는 점점 화가 나 우산보다 우산도둑을 잡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사실 우산도둑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키리마마의 원숭이 친구가 도둑이었고, 원숭이는 단지 호기심에 우산을 훔친 것이었다.
<우산도둑>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하지만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 연극 관람의 전부가 아니다. 원숭이가 우산을 훔쳐가는 것도 중간부터 이미 관객들에게 알려지며, 도둑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도록 만들지 않는다. 작품은 이 내용을 배우들이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펼쳐내며 관객들과 호흡한다. <우산도둑>은 장면마다 배우들의 신체와 상상력, 호흡과 타이밍, 인형 연기 등의 연극적 언어가 충만한 무대를 선보인다.

<우산도둑>의 한 장면 (사진: 연수문화재단)

작품은 배우들의 신체를 최대한 활용한다.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진행하며, 마을 아이 배역들은 대사가 거의 없거나 짧은 편이다. 마을의 친구들이 한데 모여 차를 마시는 장면은 연극이 끝나도 오래도록 남는 잔상이다. 침착하고 조용한 차쥬, 기운차고 씩씩한 키리마마, 호기심 많은 원숭이 친구까지 모두는 각자의 성격에 걸맞게 움직이며, 찻상 앞에서 완벽한 호흡을 보여준다. <우산도둑>이 보여주는 연극적 언어들은 많은 연습과 훈련 속에서 나온 것으로, 무엇보다 배우들이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데 뛰어난 감각을 보여줘 인상적이다. 어린이 관객들과 어떻게 만날지를 고민하고 적정한 수위를 찾아 조절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가능한 일이다. 친구들 각각의 캐릭터들이 살아있으며, 특히 원숭이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극 연기까지 높은 수준으로 선보인다.
<우산도둑>은 관객이 연극에 몰입하며 적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이야기꾼이 극장에 모인 어린이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걸며, 다음의 스토리 내용이나 질문을 유도한다. 만일 작품 내의 인물들이 극장의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건다면, 극 세계의 밀도가 깨질 것이다. 이 부분도 영리하게 처리해 관객의 참여를 끌어들여 오히려 작품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는 방향을 보여주었다. 극장에 모인 어린이 관객들은 이야기꾼의 진행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극에 기꺼이 참여했다.

<우산도둑>의 한 장면 (사진: 연수문화재단)

작품은 마지막에 원숭이 친구가 그동안 훔친 우산들이 활짝 펼쳐진 채 무대 뒤편에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보여준다. 키리마마는 도시에서 우산을 처음 보았을 때, “비가 내리니까 여기저기에서 꽃이 활짝 피는 것 같아.”라며 우산에 대한 감동을 말했다. 그리고 우산을 처음 썼을 때 “우산 속에서 들어보니 빗방울들이 음악을 들려줘.”라고 이야기한다. 축축하고 몸을 적시는 비가 내릴 때, 기분이 불쾌해지거나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산도둑>을 보고 난 이후라면, 비가 올 때마다 무대 뒤편에 가득히 피어난 우산 꽃들이 기억나며, 남몰래 우산 속에서 ‘토도독!’ 빗방울들의 노래를 읊조릴지도 모르겠다.

엄현희(嚴鉉熙, Um Hyun Hee)

연극평론가. 평론집 『연극비평과 연극경험』(2020), 『기록, 성장, 연극』(2018)을 펴냄.




늙은 광대의 인사: 최규호의 클라운 마임 공연

늙은 광대의 인사최규호의 클라운 마임 공연

이재상(극단 MIR레퍼토리 대표)

한때 ‘우리들의 광대’라 불리던 최규호가 《최규호의 클라운 마임》(작은극장돌체, 2021.4.20.~4.24.)으로 3년 만에 공연을 한다 해서 공연장을 찾았다. 필자는 그의 후배로 82년 겨울 처음 그를 만났으니 근 40년을 알아온 셈이다.

그는 국내에 저글링이라는 말도 생소하던 80년대 후반부터 ‘클라운 마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판토마임과 저글링 그리고 광대의 익살스러움을 뒤섞은 독특한 마임세계를 선보여 왔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초 인천에서 세계 최초로 ‘클라운 마임 축제’를 개최했고, 지금도 가을이면 온 세계에서 클라운 마임을 하는 마임이스트들이 인천을 찾는다. 한마디로 그의 클라운 마임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꽤나 유명하다.

《최규호의 클라운 마임》, 작은극장돌체, 2021.4.20.~4.24.(사진: 작은극장돌체, 극단마임)

그렇다고 그의 마임이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천국과 지옥’같은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무겁게, 혹은 익살스럽게 다루기도 했으며, 일상의 여러 모습을 익살스러우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하고는 했다. 그래서 늘 그의 작품은 웃음 속에 숨은 페이소스(파토스)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임은 대부분 전 연령대가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는 광대의 모습이 대부분이었고, 그러다 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광대’가 되었다.

그가 10여 년 전 우리 앞에서 돌연 사라진 것은 사고에 의해서였다. 여느 때처럼 공연 막바지, 7개의 의자를 쌓아 올리고 그 위에서 공연을 마친 후 내려오던 중, 갑자기 한 아이가 뛰어든 것이다. 그는 그 아이를 피해 무리하게 착지했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의 공연을 볼 수 없게 됐다. 3년 전 공연은 외국에 있던 탓에 보지 못하였으니 이번 공연은 필자에게는 그야말로 10여 년 만의 공연이자, 그의 공연 중단 후 처음 보는 공연인 셈이다.

첫 번째 작품 <먹고 삽시다>(사진: 작은극장돌체, 극단마임)

공연은 50분가량,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있다.

첫 번째 작품은 <먹고 삽시다>이다. 이 작품은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가 처음 마임 단독공연을 했을 때 선보인 작품이자 타이틀 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원전은 길에서 저글링 등 다양한 공연을 하며 버스킹을 하던 광대가 경찰에 쫓기기도 하는 다양한 스토리로 기억하는데, 시대가 바뀌어서인지 경찰 장면은 삭제되고 광대의 다양한 버스킹 공연만 진행된다.

흔한 저글링 공연이지만 그만의 익살은 여전하다. 코로나19로 인해 객석이 만석일지라도 몇 석 안 되건만 객석에서는 경탄과 웃음이 터진다. 벗어놓은 모자에 몇 장의 지폐도 들어온다. 오랜 휴식과 어느덧 들어버린 나이로 인해 가끔 실수도 벌어지지만, 광대의 익살은 그마저도 계획된 공연이자 유쾌함이다.

두 번째 작품 <Jazzy, 당신을 기다립니다>(사진: 작은극장돌체, 극단마임)

두 번째 작품은 <Jazzy, 당신을 기다립니다>이다. 필자의 기억 속 이 작품 역시 90년대 초반쯤 초연되어 그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작품이다. 타이틀 앞에 ‘Jazzy’가 추가되었다.

제목처럼 배경음악은 모두 Jazz로 채워진다. 한 사내가 오지 않는 그의 연인(?)을 기다린다. 그의 기다림은 청년-중년-노년시절 즉, 온 생에 걸쳐 계속된다. 모든 시절 그가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과 행동은 동일하다. 꽃다발을 들고 공원에 나타난 그는 설렘 속 기다리다, 지루함에 운동을 하고, 마침내 볼일(?)을 보고 그 자리를 떠난다. 청년 시절 그는 공원벤치마저 들어 올리는 괴력을 자랑하지만, 노년의 그는 몸을 가누기도 힘겨워 보인다. 떠난 후 공원 벤치에 남겨진 앙상한 꽃다발만 애잔하다.

판토마임에 있어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이라 불리던 그의 몸짓은 애석하게도 이번 무대에서는 볼 수가 없다. 그의 다리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하기에 내심 기대했던 필자로서는 아쉬웠지만, 그는 테크닉보다는 작품의 분위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테크닉에 집중하는 마임이스트도 많다. 하지만 담담하게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최규호 식의 세월 받아들이기를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는 클라운 마임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작품에서 왜 단순한 스토리에 Jazz를 강조했을까? Jazz는 영혼과 자유의 음악이다. 몸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영혼만은 자유로웠던 이들에게서 시작된 음악이다. 그는 사고의 후유증과 세월의 무게를 함께 얹고 가야 하는 자신의 육체에,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열정(기다림)과 영혼의 자유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위로와 더불어…….

그의 이번 공연이 복귀의 인사인지, 아니면 마지막 인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는 공연 정보 어디에도 복귀나 은퇴를 암시하는 구절 하나 기술하지 않았다. 그저 ‘최규호의 클라운 마임’이라는 제목뿐이다. 이게 그의 방식이다. 그는 때가 오면 또 공연할 것이고 때가 오지 않으면 기다릴 것이다. 대부분 우리가 그렇게 세월을 기다리는 것처럼…….

이재상(李哉尙, Rhee Jaesang)

1964년생, 극작가, 연출가. 현 극단 MIR레퍼토리 대표, 극단 ATMAN(일) 예술감독, ITI-IPF한국 본부장, APF(아시아희곡축제) 예술감독.




일상의 사각지대에서 찾은 공기들: 2021 정서진아트큐브 기획전시 Ⅰ 《공기의 모양》

일상의 사각지대에서 찾은 공기들2021 정서진아트큐브 기획전시 Ⅰ 《공기의 모양》

곽세원(월간미술 기자)

대규모 물류단지와 공장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정서진로를 지나 경인아라뱃길과 서해가 합쳐지는 지점까지 오면 아라인천여객터미널을 비롯해 선상체험공원, 아라타워, 산책로 등으로 조성된 명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오렌지색의 컨테이너 박스 모양의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곳은 바로 2019년 5월에 오픈해 개관한지 3년도 채 안 된 ‘정서진아트큐브’다. 총 두 개의 층으로 이뤄진 이곳의 규모는 90㎡. 그마저도 전시공간은 1층에 불과하다. 그러나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정서진의 드넓은 경관이 한눈에 들어와 내부가 답답하단 생각은 쉽게 들지 않는다.

2021 정서진아트큐브 기획전시 Ⅰ《공기의 모양》 전경(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정서진아트큐브에서 진행 중인 《공기의 모양》(2021.4.7.~5.23.)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소개하여 ‘공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사유의 확장을 이끌어내기 위해 기획된 전시로, 김윤수, 신현정, 전희경이 참여하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작품은 신현정의 <날씨 회화>(2013~2019)지만 시선을 좀 더 왼편으로 돌려 김윤수의 공간으로 향했다.

김윤수, <바람은 쉼이 없이 세상의 모든 경계를 어루만져준다>종이에 흑연가루, 가변설치, 각 36.4×25cm, 2015 (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김윤수는 비닐이나 골판지와 같이 유연한 재료를 사용해 감거나 쌓는 등의 행위를 무수히 반복하여 물질과 시간이 공간에 개입하고 점유해가는 방식으로 작업해왔다. 그의 조각은 지문 또는 발자국처럼 구체적인 형태에서 시작되지만 긴 시간을 거쳐 추상적인 형상으로 마무리된다. 그것은 마치 아주 오랫동안 시간을 두고 바라봐야 물성으로 드러나는, 심연의 풍경과도 같은데, 이는 김윤수의 조각이 미니멀한 외양을 지녔음에도 서정적이고 시적(詩的)으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바람은 쉼이 없이 세상의 모든 경계를 어루만져준다>(2015) 제하의 드로잉 설치작업과 36점의 드로잉을 책으로 엮은 <바람의 표면>(2015)을 선보였다. 자신을 “조각가”로 소개하는 그에게 드로잉은 3차원의 조각 중에서도 ‘가장 얇고 투명한 조각’이다. 질감과 무게 등을 고심해서 선택한 종이에 남겨진 흑연가루의 흔적에서 언젠가 그를 찾아왔을 바람이 떠올랐다. 불현듯 내가 만난 오늘의 바람도 누군가의 과거가 묻어 있는 바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렇듯 그에게 바람은 한없이 이어지는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무언가’로 의미지어진다.
그러한 결론에 이르자 김윤수의 시간과 나의 시간, 그의 바람기억과 나의 바람기억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람은 쉼이 없이 세상의 모든 경계를 어루만져준다>로 걸음을 옮기니 벽면을 부유하고 있는 듯한 종이들이 그에 따른 반응을 보내왔다. 지금 이곳을 점유하고 있는 공기의 존재를 재차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전희경, <바람에 대한 연구>, 캔버스에 아크릴릭, 122x145cm, 2021(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김윤수의 작업이 절제된 밀도와 색감으로 공기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낸다면, 전희경의 회화는 밀도 높은 색감과 자유분방한 필치로 비가시적인 공기를 가시적인 대상으로 현현하게 한다. 전희경은 현실과 꿈, 이상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내면적인 풍경을 추상적으로 풀어내 왔다. 이전 작업들에서 조금은 막연하다고까지 느꼈던 작가의 이상을 향한 열망이 일명 ‘연구’ 시리즈 작업에서는 매일을 함께하는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였다. 신작 1점을 포함해 이번 전시에 선보인 <바람에 대한 연구> 시리즈는 총 5점, 유독 과감한 필치의 붓질로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들이 소개되어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침없이 내지른 듯한 붓질은 현실을 초월한 또는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를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아주 일상적인 빛, 공기, 바람, 대지와 같은 자연적 요소에서 영감을 얻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화면에 담는다.
색의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그러데이션, 날카로운 도구로 물감을 긁어낸 흔적, 화면을 평면적으로 만드는 가장자리의 검은색 면은 능동적 행위의 결과이자 작가 내면의 복잡다단한 심리들이 표출된 결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의 ‘내면적인 풍경’은 유기적인 자연에서 기인한다. 이는 곧, 내면적인 풍경이 ‘그’에게만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누구나 찾을 수 있고 닿을 수 있는 ‘나’들의 이상향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와 세상, 나와 너를 이어주는 일종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것, 전희경에게 바람과 공기는 그러한 존재다.

신현정, <날씨 회화-오늘의 신간>, 캔버스에 스프레이, 앵글, 가변설치, 각 135×155×60cm×2ea, 2013~2019(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마지막으로 신현정의 <날씨 회화>(2013~2019)로 가보자. 앵글 구조물 위에 비스듬히 서서 통창으로 들어오는 채광을 오롯이 마주하고 있는 <날씨 회화>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환경의 계절적 변화가 자신에게 일으키는 감각적인 반응과 그로 인해 포착되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왔다. 전시에 소개된 <날씨 회화>는 말 그대로 날씨에 대한 회화적 기록이다. 무더운 여름날 시작되었다는 이 연작은 작가가 날씨를 감각하는 순간 직관적으로 떠올린 색을 스프레이로 분사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캔버스의 측면 부분을 분사하기 때문에 화면에 남겨진 스프레이의 입자는 자연스럽게 캔버스의 가장자리에서 안쪽을 향하게 된다. 그의 회화는 외부세계와 연동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대기’라는 비가시적인 환경적 조건을 수용하는 ‘장(場)’인 것이다. 또한 작가는 붓과 물감 대신 공장에서 생산된 스프레이를 사용하고, 작품을 벽에 거는 대신 책장용 철제 구조물 위에 세워두며, 사각형 대신 원, 삼각형, 육각형 모양의 프레임을 캔버스로 사용하는 방식을 통해 회화의 전통적인 문법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한다. 다소 집요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그의 이러한 태도는 ‘부정’이나 ‘파괴’라기보다 ‘확장’의 의도를 갖는다. 이는 그가 실제 작품만큼이나 ‘(빈)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회화/캔버스를 사물처럼 다룬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한편 작업에서 주재료로 사용되는 ‘스프레이’는 분사되는 순간 작가 자신도 개입하기 어려운 우연성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는 고압상태로 있던 용기 안의 내용물이 공기와 만나 캔버스 표면에 안착하기까지의 수동적인 기다림을 즐거운 기대감으로 소화한 것 같다. 최근 접한 작업에도 천을 탈색하는 과정에서 생긴 우연적 효과가 나타난 걸 보면 말이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보는 만큼 안다.’가 되는데, 《공기의 모양》전시에서 본 세 작가의 작품들이 그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사각지대를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하여 물리적으로 표현하고 나아가 주변 환경과 관객에 유기적인 관계 맺기를 시도했다. 전시장을 나서는데 희미한 흑연가루로, 에너지 넘치는 필치로, 분사된 스프레이 입자로 현현된 공기의 모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문득 “공기를 갖고 다닐 수 있게 하고 싶었다.”는 기획자의 말이 떠올랐다.

곽세원(郭世媛, Gwak Seweon)

이화여대에서 회화판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술전문지 『월간미술』 기자이다.




판화로 기억하고, 연대하고, 남기다: 커뮤니티 판화전 《우리 마을에는…》

판화로 기억하고, 연대하고, 남기다커뮤니티 판화전 《우리 마을에는…》

조숙현

동인천고등학교 2층 교무실 복도에 위치한 오동나무 갤러리는 학생들을 위한 생활 예술 공간이다. 고등학생들이 평소 갤러리나 미술관을 갈 수 없는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여 학교 안에 꾸린 오픈형 전시 문화 공간인 셈이다. 2021년 3월 한 달간 진행되었던 커뮤니티 판화전 《우리 마을에는…》은 꾸물꾸물문화학교 동네예술대학에서 2017년부터 현재까지 인천 주민들과 함께 제작한 목판화 9점을 전시했다.

커뮤니티 판화전 《우리 마을에는…》 전경(사진: 윤종필)

‘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는 아직 국내에 생소한 현대미술 장르이다. 공동체와 지역 사회를 지칭하는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실천하는 매우 새로운 개념의 커뮤니티 아트는 종종 행동주의와 사회참여의 형태를 띠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93년 시카고에서 독립 큐레이터 메리 제인 제이콥(Mary Jane Jacob)이 참여한 ‘Culture in Action’ 프로젝트는 커뮤니티 아트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이 프로젝트는 시카고 도시 전역에 걸쳐 도시의 시민들과 예술가들이 더 나은 커뮤니티와 사회 구성원과의 소통을 위해 2년 동안 다양한 문화 실천을 선보인 선구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비행 청소년들과 함께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스트리트 필름을 제작하거나 지역 주민들과 동네 텃밭을 일구는 등이 구체적인 사례이다. 커뮤니티 아트는 기존의 시각 예술 관점에서는 생소하지만, 예술이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벗어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사회적인 실천을 행한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전위성과 새로운 가치를 획득한다.

한국에도 2000년대 초반에 커뮤니티 아트에 관한 공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폭발적으로 형성된 전례가 있다. 당시 지역문화재단들에서 커뮤니티 아트와 관련한 기금이 형성되고 이에 부응하여 다양한 예술가들의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가 시행된 바 있다. 그러나 관주도형 커뮤니티 아트가 가지는 한계는 예술가와 지역 주민들의 갈등을 초래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공적 자금이 투입되다보니 커뮤니티 아트의 타깃은 ‘사회 소외 계층’ 혹은 ‘경제적 낙후 지역’에 국한되었고, 실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현장에서 예술가는 ‘Culture in Action’을 꿈꾸지만 정작 지역주민들은 커뮤니티에 대한 자발적인 선의로 똘똘 뭉친 시카고 시민이 아닌 생계형 주민들인 현실 속에서 프로젝트는 종종 동상이몽의 볼모지에 표류되곤 하였다.

삶-피, 땀, 눈물(인천광역시 동구, 122×244cm, 2020)(사진: 윤종필)

커뮤니티 아트의 짧은 화양연화가 지나가고 난 뒤, 실패 원인을 돌이켜보면 예술가와 지역주민을 잇는 매개자의 부재와 한계가 종종 수면 위로 떠오르곤 한다. 인천을 기반으로 한 꾸물꾸물문화학교 동네예술대학은 좋은 대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꾸물꾸물’은 ‘꿈을 꾸는’이라는 뜻과 글자 그대로 꼼지락꼼지락, 사부작사부작, 조심스레,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행하는 작은 역동성을 나타낸다. 커뮤니티 판화 프로젝트는 인천 주민들 10여 명이 함께 10주 동안 완성하는 목판화이다. 인상적인 것은 122×244cm의 대형 사이즈와 아마추어의 작품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결과물의 퀄리티이다. 커뮤니티 아트 결과물의 아마추어리즘은 고질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판화는 시각예술 전통 장르 중에서 드물게 협동이 과정에 장착된 케이스이다. 판화 한 점을 제작하기 위해 사람들은 드로잉을 하고, 목판을 칼로 파내고, 잉크를 칠하고, 종이에 판화를 찍고 말린다. 전시장에는 판화를 만드는 과정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참여자들이 모두 합판 위에 올라가 발로 판화를 찍어내는 사진이 참 인상적이었다. 말 그대로 ‘커뮤니티 프레스’인 셈이다. 꾸물꾸물문화학교 교장이자 커뮤니티 아트 기획자 윤종필의 섬세한 기획이 돋보이는 면이 바로 여기인데, 대형 목판화라는 매체가 완성되는 과정의 특성을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와 결합한 전략이 다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개항장 연대기(인천 중구, 122×244cm, 2017)(사진: 윤종필)

한편 목판화의 내용은 인천의 중요한 현대사와 지역의 특징들을 담고 있다. 커뮤니티 판화 첫 번째 프로젝트 <개항장 연대기>(인천 중구, 2017)는 인천 중구 개항장의 다양한 모습과 풍경을 담고 있는데, 개항장은 인천의 중요한 상징적 지역이다. <송도 유원지의 추억>(인천 연수구, 2020)과 <oh! 연수>(인천 연수구, 2020)는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진 송도 유원지 등 연수구의 노스탤지어적인 풍경을 기록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 재개발로 인해 사라진 주안3동의 풍경을 재현한 <동네, 살아지다>(인천 미추홀구 주안3동, 2019)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또한 기획자 윤종필이 인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과 이것을 객관적으로 고증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커뮤니티 판화 프로젝트는 인천의 지역 역사를 리서치하고 향토학자들의 조언을 거쳐 웹 이미지로 리서치한 시각적인 레이아웃을 빔프로젝터로 합판 위에 투사하고, 여기에 주민들이 협동하여 드로잉을 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기억하라! 인현동 1999로부터 코로나19까지 생명, 평화, 안전을…(122×244cm, 2020)(사진: 윤종필)

풍경의 서사보다 더 큰 울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천의 현대사를 판화로 소환하는 작업들인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억하라! 인현동 1999로부터 코로나19까지 생명, 평화, 안전을…>(2020)이다. 1999년 인현동 호프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청소년들이 사망했던 사건은 뉴스 보도 뒤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졌지만 이렇게 기억하는 커뮤니티로 인해 다시 작품으로 회생하여 소환된다. 커뮤니티 아트가 공간의 확장을 넘어 역사적인 반추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조숙현(趙俶賢, Cho Sookhyun)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하고 커뮤니티 아트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 현대미술 전시기획자와 미술비평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대미술 전문 출판사 아트북프레스 대표이다.




인천의 감수성을 탐구하다: 『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양진채, 2021)

인천의 감수성을 탐구하다『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양진채, 2021)

선우은실

『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양진채, 2021)는 인천을 다룬 소설들을 소개하는 형식의 산문집이다. 중구, 서구, 송도, 송림동, 소래포구, 차이나타운 등 지역사는 물론이고, 협궤열차, 공장 일대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등 한 시대를 상징하는 (지금은 사라진) 문물이나 사건을 다룬다. 이렇듯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인천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중심으로 근현대라는 시간성을 두루 다루고 있어 인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인천+문학+사(史)의 개론서로 추천할 만하다. 또한, 매 편의 산문에서 인천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묻어나 있기에 장소에 대한 애착 또는 애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책에 대해 무어라 소개하면 좋을까 고민한 끝에 인천 지역사 전반에 대해 말하는 대신 한 명의 독자로서 내게 인천이 어떤 도시인지 이야기해보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인천에 대한 소설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의 기획을 고려하면 이러한 후기야말로 이 책에 대한 그리고 인천에 대한 리뷰가 되리라 생각한다.

인천에 별 관심이 없거나 인천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도 더러 있는 사이에서 나는 인천을 조금 각별하게 느낀다. 이 각별함은 애착과는 조금 다르다. 유년기에 잠깐 인천에 머무른 사실이 있기는 해도 그렇게 애정을 가질만한 기억은 없었고, 이사를 간 이후 인천에 자주 걸음 할 일이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천에 대한 각별함은 오히려 인천 바깥에서 인천에 드나들면서 서서히 생겨났다. 특히 인천으로 이어지는 시대 변화의 한 상징이라 할 수 있을 수인선 개통은 인천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끔 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인천 인근 경기도 지역에서 인천 소재의 대학으로 통학했던 나는 재학 중 수인선이 개통되면서 나름대로 수인선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단순히 학교만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인천의 여러 곳에 대한 접근성도 좋아지면서 문화 활동의 영역이 넓어진 것도 수혜 중 하나였다. 송도 신도시에 위치한 프리미엄 아웃렛이나 동춘역 스퀘어원 등을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쇼핑 장소로 선택할 수 있었고, 근대문학관과 자유공원, 차이나타운, 신포시장, 공업 바다가 보이는 동인천 인근도 언제든 갈 수 있었다. 수인선을 타고 신(新) 인천과 구(舊) 인천을 오가면서 한 도시 안에 구축되어 있는 현대/근대의 감수성 격차에 매력을 느끼게 된 셈이다.
이 감수성의 격차야말로 내가 인천에 가지는 각별함의 정체일 텐데, 이는 궁극적으로 수인선의 역사성 자체와도 무관하지 않다. 내가 오늘날 수인선 이용객이라는 사실은 『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에서 언급되는 과거 수인선 ‘협궤열차’와의 감수성의 이원성을 발생시킨다. 이른바 ‘과거인 동시에 현재’라는 서로 다른 시간의 포개짐이다. 협궤열차와 관련된 구절을 읽을 때 그것은 그저 옛것처럼 느껴지지만, 포스트-협궤열차(현대판 협궤열차 정도로 번역해볼 수 있을까?)라 할 수 있을 수인선을 타고 2021년의 나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다. 오늘날의 수인선 자체가 과거 협궤열차로 상징되는 도시의 근대성을 강력하게 소환한다. 그렇다면 내가 매혹되는 감수성의 격차란 근대와 현대를 잇는, 경험해 본 적 없는 과거의 현재적 구현에서 발생되는 셈이다.
이는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부상한 이 시대 청년들의 하나의 문화적 감수성으로서의 ‘뉴트로’(newtro. new와 retro의 합성어로 신복고新復古라 번역된다)의 감수성과도 다소간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이른바 IMF 키즈(IMF에 유년~청소년기를 보낸 세대) 및 그 이후 경제 불황 시대에 태어난 이들에게 부유한 시절의 감각은 없다. 멀게는 1900년대 초 근대화, 가깝게는 80~90년대의 경제 호황기 시절 도시화는 ‘호황’에 대한 구체적 감각을 가져볼 새 없었던 청년 세대에게 뉴트로로 재현됨으로써 그야말로 가져본 적 없는 낭만을 향유케 한다. 물론 오늘날의 뉴트로는 서울 중심주의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아서 단순한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세련된 과거로의 복귀’고, 그런 점에서 개항기 항구 도시보다는 송도 신도시와 같은 ‘신’ 감각을 더 좇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사이에서 더 먼 과거를 품고 있는 개항기 항구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중요한 점은 인천이 지닌 도시성이 이러한 세대 감수성을 설명케 하는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에서 조금 멀어졌지만 이런 식의 확장이 ‘인천’에 대해 소통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를 읽고 여러 독자들이 인천에 대한 자신의 감수성을 떠올려 볼 수 있다면 인천에 대한 지역 정보를 제공받는 것 이상으로 값진 독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이 여러 독자에게 각각의 개인이 지닌 인천의 도시성을 탐문케 하고 인천에 대한 감수성을 그러모으는 한 장의 ‘지도’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선우은실(鮮于銀實, Sunwoo Eunsil)

인하대학교에서 한국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서사 구조로 논문을 썼다.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문학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비주체의 소중한 본질을 위한 정동적 조각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ver 5. 정현
비주체의 소중한 본질을 위한 정동적 조각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의 시작을 여는 기획전시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이 12월 20일부터 2020년 5월 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 중 인천 연고를 가진 중견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참여 작가 각자의 작품 세계관을 살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매월 2명씩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글을 만나본다.

 

정현, <서 있는 사람>, Railroad ties, 300x75x25cm(7ea), 2015

비주체의 소중한 본질을 위한 정동적 조각

수출입을 위한 항구, 철길, 공항을 가진 인천에서 살다보면, 운전을 하다 혹은 길을 걷다 거대한 컨테이너나 산업재료를 가득 실은 트럭을 자주 만난다. 트럭이 지나갈 때 아주 미세하지만 땅바닥이 슬며시 아래로 내려가고 트럭-기계에서 나오는 소리, 먼지와 경유 냄새 그리고 싣고 있는 재료들(원목, 고철 쓰레기, 수출용 차 등)의 형상, 냄새, 삐그덕 거리는 소리 등 비주체들이 뭉뚱그려 훅 들어온다. 대부분 안전을 위협받은 짧은 놀람이나 두려움으로 지나치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몸의 이곳저곳의 감각과 연결된 정서까지 섬세하게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에 깜짝 놀란다.

작가 정현의 폐침목 작업은 어린 시절 철길에서 일상적으로 느꼈던 이러한 기억에서 총체적인 감각과 정서를 담고 있다. 혹독한 시련의 과정을 거친 폐침목의 흔적에서 ‘겪음의 깊이’와 정서를 발견한 작가는 낮고 보이지 않는 하찮은 것들에 대해 가치를 드러내고 높이는 작업을 한다. 관람객은 첫 번째로 마주하는 메마르고 거친 시각적 형상이 주는 낯설고 어둡고 쓸쓸한 감정뿐 아니라, 경제적 쓸모를 다한 존재가 담고 있는 지난 시간 속 삶의 과정을 상상하고 사유한다. 겪음의 깊이를 가진 비주체들과 만나는 순간의 시공간은 예술을 문화적 향유와 취미로 만나는 일상적인 차원이 아닌, 여러 주체와 비주체의 시간과 공간이 복잡하게 횡단하는 차원을 요구한다.

정현, 인천아트플랫폼 전시 전경, Installation view at Incheon Art Platform

작가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폐침목에선 본질을, 오래되어 어둡고 침침했던 청관에선 깊이를 발견했다. 대학 시절 접했던 은율 탈춤에선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의식의 형성을 시작했고 밴댕이, 망둥이 같은 생선에선 제철 신선함이 주는 소중한 의미를 깨달았다. 이러한 4가지는 작가가 자란 지역의 장소성과 관계하지만, 작가는 ‘고향’으로써 지역적 소재와 역사성을 재현하거나, ‘마계’로써 지역의 부재와 결핍을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 세계 속 주체로서의 인간과 삶의 본질을 고민하고 예술가로서 삶을 스스로 조직하는데 좀 더 집중했다.

폐침목, 청관, 은율탈춤, 생선이 가진 타자성을 생각해보니, 인간과 비인간, 장소와 비장소, 주체와 비주체, 자연과 문화, 사물과 생물 등 인간 중심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벗어날 수 있는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작가가 인간의 본질과 깊이에 집중해온 것은 인간과 자본 중심의 세계에서 주체로서 인간의 본질이라기 보단, 수평적이고 관계적 태도에서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 간의 이해와 해석을 기반으로 한 세계를 위한 실천을 위한 것이다. 사물, 공간, 문화, 생물 등 인간과 자본에 의해 가려진 비주체들이 가진 소중한 본질을 드러내는 순간과 과정을 함께 하는 장소성을 위한 시공간을 담은 작업인 것이다.

정현, <무제>, 462x84x94cm, Ascon, 2004
정현, <무제>, 650x150cm, Coal tar, oil bar on paper, 2017
정현, <무제>, 53×38.3cm(3점), Coal tar on paper, 2004

문화예술교육이나 생활문화에서 지역 공동체 중심으로 밝고 착한 감상과 체험의 매개로서의 예술의 역할과 의미가 점점 강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본질을 추구하는 예술의 역할은 무겁고 어둡고 어렵고 낯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린 시간과 다른 방향의 공간을 가진 작업들이 가진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작가의 설치 작업들은 오래고 깊은 비주체들의 정동적 조각이다. 지역성과 역사성을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아도 사물의 드러내는 특유한 감수성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고, 사물 자체의 실질적 표현으로 알 수 있다. 또한, 시간을 머금고 있는 ‘시간의 표현’으로서 실재적이다. 지역성과 장소성을 강조하는 공간 중심적 관점에서 시간성이라는 다른 축으로 넘어가는 존재론적 전회이다.

인간은 자라고 살아온 공간의 장소성에 깊이 관계하며 개인의 세계관과 감수성을 구성한다. 그러나 예술가로서 지역의 장소성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재구성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지역 예술 혹은 지역 작가라고 하는 말엔 물리적 공간으로서 지역 그리고 작업과 활동의 소재나 대상으로서의 장소성과 역사성으로 한정 하곤 한다. 작가 정현의 작업에서 인간 중심의 지역성, 장소성, 역사성과 긴밀하게 관계하기 보단, 수평적이고 관계적인 다종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비주체가 담고 있는 복잡하고 섬세한 시간성으로 소중한 본질을 찾아가고 인간과 자본 중심의 세계에 대한 성찰과 반성으로 재구성하는 다른 지역성으로서 로컬리티를 발견한다.

글/ 채은영 (임시공간 디렉터)

정현 작가 인터뷰 작가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정현(b.1961-, 인천출생)은 조각을 통해 재료가 가진 응축된 시간의 힘, 그 역사성을 드러내온 작가이다. 그는 철길의 침목(枕木), 아스팔트 콘크리트, 석탄, 등과 같은 산업폐기물을 재료로 얼굴이나 신체를 형상화하며 독특한 인간상을 구축해 왔다. <서 있는 사람>은 폐침목을 재료로 혹독한 현대 사회를 극복해 나가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나타낸 작품으로 인체의 모습은 거의 사라진 채 나무 원재료의 질긴 추상성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인간과 산업사회, 인간과 근대 문명의 치열한 대결과 화해의 기념비적 형상으로 귀결된다. 아스콘으로 제작된 <무제>는 땅에 누운 인간의 형상, 공중에서 보았을 때는 산맥의 일부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이 작품에서도 재료, 즉 아스콘 자체가 조각이 되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조각의 연장선상에 있는 드로잉 작업에서는 콜타르와 같은 재료가 강하게 부딪히며 드러나는 필과 획의 선적인 조형감이 재료 자체의 에너지로 현전한다. 오래되고 투박한 재료, 그 자체에 미적인 가치를 더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지나온 과거를 목도하는 동시에 우리의 현재를 사유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고 재료의 용도를 다한 재료의 물성이 드러내는 인간의 역사와 초월적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정현은 인천에서 출생해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홍익대 조소과와 파리국립미술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1992년 원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도쿄, 베이징, 프랑스 등을 무대로 다수의 개인전과 기획전에 초대되었다.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04년 김종영 미술관 ‘오늘의 작가상’, 2009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상’, 2017년 인천문화재단 ‘우현 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채은영은 통계학, 예술경영,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도시 공간에서 자본과 제도와 건강한 긴장관계를 갖는 시각예술의 상상과 실천과 관심이 많은 리서치 기반 기획을 한다. 2016년부터 시각예술과 로컬리티, 생태 정치 관련 활동을 하는 임시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답하지 않는 것 ; 차기율의 고고학적 풍경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ver 6. 차기율
답하지 않는 것 ; 차기율의 고고학적 풍경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의 시작을 여는 기획전시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이 12월 20일부터 2020년 5월 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 중 인천 연고를 가진 중견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참여 작가 각자의 작품 세계관을 살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매월 2명씩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글을 만나본다.

 

차기율,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사이>, 종이위에 콘테, 연필, 200x70cm, 2010-2013
차기율,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사이>, 종이위에 콘테, 연필, 오일컬러, 200x70cm, 2013

답하지 않는 것 ; 차기율의 고고학적 풍경

자연은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하지 않음에도 미의 근원이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서 미적 경험을 이끌어내는 인간의 특성과 자연과 같은 미적 상태를 궁극으로 추구하는 욕구가 결합한 지점에 예술작품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예술의 형태로 자연에 감정을 이입하고, 그것을 재현하고, 추구하는 경향은 자연과 예술의 관계에 관한 오랜 역사를 만들어왔다. 차기율이 “순환의 여행”, “고고학적 풍경”과 같은 이름으로 자신의 작업을 자연적 상태와 연계하는 방식 역시 이러한 역사에 뚜렷한 지점을 남기고 있다. 이는 그가 자연에 내재한 순수한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작업 안에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통해 나타난다.

그는 이천 년대 이후, 고비사막이나 호주의 중앙 사막과 같은 척박한 오지에 이끌려, 그곳을 걷고, 방랑하는 고행자적 태도로 자신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본능을 일깨운 것으로 보인다. 자연에 대한 이러한 직관은 자신의 신체를 거대한 자연 안에 숨 쉬게 하고, 자신 안에서 자연이라는 원초적 고고학을 발굴하는 과정이다. 자연이 수행하는 순수한 목적이 예술이 지녀야 할 순수한 상태와 연계되어 운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그가 선택한 작업의 소재이다. 그는 자신의 삶 주변에 가장 역동적 자연의 형태인 서해와 인천의 갯벌에 주목한다. 한국의 갯벌은 지구적으로 손꼽히는 규모와 생태적 다양성을 품은 것으로, 차기율은 그 독특한 환경을 생태적 미술의 질료이자 언어로 삼은 것이다.

차기율, <고고학적 풍경>, 소성된 갯벌,철, 249x962x30(h)cm, 2019

그는 <고고학적 풍경>에서 갯벌에 생성되는 다양한 게집을 그대로 떠낸다. 그리고 이를 구워내는 소성 과정을 통해 밀물이 들어오면 이내 사라져 버리는 갯벌의 게집을 단단한 테라코타로 만든다. 각각의 테라코타는 하나의 단위와 같이 집적되고 또 하나의 거대한 대지가 되어 전시장 위에 놓인다. 이렇게 자연의 순환 속에 있는 대상을 미적 조형물로 전환하는 일은 자연과 인공이라는 구분 자체를 모호히 하고, 오롯이 자연을 사유함이 예술 자체의 근원이자 또한 경험을 관통하는 공통의 어휘임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작업이 갯벌 위에 무수하게 펼쳐진 게집을 사각의 형태로 떼어내고, 그것을 다시 하나하나 구축하여 미적 영토로 변화시키는 방식은 인간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파괴되는 자연 대상의 나약함과 더불어 그것이 지닌 근중한 힘과 자기 목적성을 암시하는 양가적 합일을 지닌다. 이는 가다머(Gadamer)가 『진리와 방법』에서 칸트의 미학을 설명하면서, 자연의 순수가 인간과 그 사회적 악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로, 우리에게 무언가 말해 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과 같이, 자연은 인간에게 피동의 대상임과 동시에, 인간이 회귀할 근원적 장소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가 채집하여 구축한 “고고학적 풍경”은 생태적 문제의식과 자연의 순환 모두를 아우른 상태로 우리 앞에 펼쳐진다.

차기율, <땅의 기억>, 판넬위에 흙, 나뭇잎, 흑연, 120x62cm, 2002
차기율, <땅의 기억>, 판넬위에 흙, 나뭇잎, 흑연, 120x62cm, 2002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관객이 자신의 작품에서 보았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작품은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며 자아를 완성하는 과정이며, 작품 자체는 관객이 질문은 던지는 대상이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즉 작품은 관객의 자유를 통해 온전히 관객이 보고 느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그가 작품이 마치 자연의 대상과 같이 관조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은 아무 것도 답하지 않지만, 그 답을 찾아내는 것은 그 앞에 선 우리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미에 대한 특정한 의도나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미로 이끄는 것은 자연과 관계하는 인간의 감각과 미의식이듯이, 자연의 존재 방식의 환유를 통한 그의 작품 또한 묵묵히 발현하는 성찰의 대상으로 우리 앞에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글/ 구나연 (미술비평가)

차기율 작가 인터뷰 작가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차기율(b.1961-, 경기도 화성 출생)은 드로잉, 페인팅, 사진 등 광범위한 매체의 실험과 설치작업을 통해 우주의 기원과 순환, 자연의 유기적 생성과 소멸에 대한 작업을 이끌어 왔다. 그는 자연에 감정을 이입하고, 자연에 내재된 순수한 목적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현대 인류가 고민해야 하는 근원적 문제와 인간과 자연, 문명이 상호 보완하면서 상생하고 화해해야 하는 관계성에 대해 고민한다. 최근에는 자연의 순환원리에 의해 성장하고 변모되어온 사물에 작가로서 최소의 의견을 더하여 개입함으로써 자연이 지니는 원초적 힘과 가능성을 존중하는 작업을 실험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통해 생명의 본질과 태도를 성찰하며 인류의 수직적 성장과정과 수평적 연대 과정을 추적하고자 한다. 그는 샤머니즘과 토테미즘, 범신론적 관점을 기저에 두고 ‘부유하는 영혼’, ‘땅의 기억’, ‘사유의 방’, ‘순환의 여행’이라는 주제로 작품 활동의 영역을 넓혀 왔으며, 이 주제들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순환의 여행/ 방주와 강목 사이>는 자연의 순환원리로서, 그 원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 삶의 존재를 의미한다. 얼히고 설킨 넝쿨 나무를 연상시키거나, 자연 상태의 배 형상을 연상시키는 이 구조물은 일종의 배, 노아의 방주와도 같은 구원의 배를 상징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문명과 인류의 발전 안에서도 자연의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만 인류는 구원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고고학적 풍경/ 불의 만다라>는 인천을 거대 도시와 생명을 품은 바다가 접해있는 지역으로 보고, 강화도의 갯벌 흙을 구워 제작한 것으로 지역의 역사성과 생태학적 가치에 주목한 작품이다. 테라코타로 흙을 구워 일정한 크기의 게의 구멍(집)이 모여 거대한 갯벌을 이루는 그의 작품은 스펙터클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내는 동시에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환기시키며 인류의 수직적 성장과 수평적 연대 과정을 추적하고 고민하게 한다.
차기율은 인천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현재 인천대학교 조형예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첫 개인전 부유하는 영혼전(단성갤러리, 1992)을 시작으로 서울, 인천, 로스앤젤레스, 버몬트에서 개인전을 선보였고, 국내외 다수의 그룹전, 프로젝트에 참여해오고 있다.

*구나연은 미술비평가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제 1회 플랫폼 문화비평상을 받으며 비평 활동을 시작하여, 한국과 일본의 동시대 미술에 관한 여러 평론을 써 왔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 중이며, 저서로는 『표류의 미술』(2018)가 있다.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이종구, 그의 작품 세계와 인터뷰 <붉은 뺨을 가진 화가의 이콘>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ver 3. 이종구
붉은 뺨을 가진 화가의 이콘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의 시작을 여는 기획전시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이 12월 20일부터 2020년 5월 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 중 인천 연고를 가진 중견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참여 작가 각자의 작품 세계관을 살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매월 2명씩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글을 만나본다.

이종구, <세월-편지>, Acrylic on paper, 97×130cm, 2018

붉은 뺨을 가진 화가의 이콘

바다는 추웠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온 도시를 깡그리 얼려버렸다. 한참이나 남쪽에서 북쪽으로 다시 서쪽으로 길잡이를 하며 이종구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는 길의 바람은 시려웠다. 손과 발이, 코끝이. 5년 전 그 해 우리를 짐승의 시간과 대면케 한 단원고 2학년 324명 아이들의 얼굴을 만나러 가는 길의 심경이란 그저 바다 속은 따뜻하기를 염불처럼 외는 것뿐이었다.

얼굴은 이종구 작가 화업의 본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1984년 시작한 <오지리 사람들> 연작의 첫 작품은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서 평생을 땅에 파묻혀 사는 아버지와 숙부, 동생과 장씨, 안씨 등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근대 이후 복고와 향수의 대상으로만 취급해 온 농민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에서 이종구 작가가 일으킨 미술사적 성취였다.
특히 캔버스가 아닌 부대종이에 그려진 농민의 얼굴은 그들의 일생을 증언하는 강력한 오브제로 기능하였다. 화가의 미학이 아닌 농촌의 현실을 환기시키기 위해 선택한 부대종이처럼 그는 1990년《오지리 사람들》전시를 현실과 유리된 화이트큐브가 아닌 가을 운동회가 열리는 축제날 오지초등학교에서 개최한다.
이후에도 그는 2003년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전시《주인을 찾습니다》전, 구제역 파동으로 희생된 돼지들을 위한 진혼 퍼포먼스(2005), 2006년 평택 대추리 현장미술의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 마을벽화 작업 등에 참여를 하며 한국사회가 그어 놓은 미술의 속물적 한계를 지워나간다. 또, 그가 주요 발기인으로 활동한 1982년 서울 ‘임술년:구만팔천구백구십이’ 와 1985년 인천 ‘지평’의 창립은 모두 리얼리즘 정신을 기반으로 세계가 처한 모순을 미술의 힘으로 돌파하려한 시도들이었다. 그가 2005년 수상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은 비단 민중미술운동만이 아닌 한국현대미술 씬에서 유폐된 리얼리즘과 실천하는 화가로서 작가에 대한 당연한 위치 지움이었다.

이종구, <봄이 왔다 1>, Acrylic on a canvas, 194×130cm, 2018
이종구, <농부>, Oil on rice bag, 95×58cm, 1985
이종구, <오지리 장씨>, Oil on rice bag paper, 110×70cm, 1990
이종구, <대추리의 기억-캠프험프리스>, Acrylic on paper, 97×130cm, 2018

그런 이종구 작가에게 세월호 아이들의 얼굴은 부활이었다. 이제껏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내던 그에게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이들의 얼굴을 그리라는 임무는 그가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이자 신탁이었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바다 속의 아이들이 우리를 추운 광장으로 나오게 했고, 끝내 봄이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사진이나 다른 매체가 아닌 그림으로 부활시키고 싶었어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니까요.”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베로니카의 베일이나 아브가르 왕이 걸린 불치의 병을 치료해 준 예수가 땀을 닦은 아마포는 이콘(Icon)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두 가지 기원설 모두 이콘, 그리고 이미지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까지 가장 낮은 곳에서 세계를 구원하려한 이의 희생과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종구, <학교 가자, 4반-세월><학교 가자, 7반-세월>(1반~10중), Acrylic on a paper, 65×91cm, 2017

이종구 작가의 <세월호>연작은 우리시대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희생자이자 우리를 짐승의 시간에서 구원해준 어린 성자(聖者)들의 이콘이다. 그는 어린 성자들이 가라앉은 진도의 물길이 보이는 해남에서 고행하듯 그림을 그렸다. 이제는 좀 여유로워진 작업실과 집을 등지고 수백 명의 아이들의 얼굴이 종이에 드러나기만을 기원하며 면벽 수련하듯 밤낮으로 3개월 동안 그렸다. 그리고 그가 보지 못한 아이들의 얼굴은 마치 그가 바로 옆에서 보고 그린 것처럼 세계의 고통을 껴안은 그 천진한 모습을 자신들의 꿈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또, 작가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324명 아이들의 꿈이 ‘16,894,280’개의 촛불이 되어 광장으로 내려와 우리가 겨울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봄을 열어젖힌 드라마를 거대한 빛의 서사시로 엮어내고 있다. 물론 <봄이 왔다> 연작에 등장하는 남북 정상의 맞잡은 손은 자신의 상상력이었지만 그것이 실재 현실로 와버린 순간 지나친 민족적 감상주의였다는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이종구, <광장-가족>Acrylic on a canvas, 130×244cm, 2017

붉은 뺨을 가진 짐승은 인간이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라는 니체의 언설이다. 중학시절 화가의 꿈을 키워 준 도시 인천에서 농촌출신 아이가 느꼈을 부끄러움, 매끈한 캔버스에 붓질을 놀리는 화가의 길에서 자꾸 눈에 밟히는 오지리 고향사람들의 척박한 현실, 그리고 아직도 인양되지 못한 세월호 아이들의 진실 앞에서 화가의 무력한 손재주라는 부끄러움은 이종구를 우리시대 성자들을 기록하는 이콘을 그리게 만들었다.

글/ 한재섭 (미술사)

이종구 작가 인터뷰 작가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이종구(b.1954-, 충남서산 출생)는 1980년대부터 급변하는 한국 농촌의 현실을 주제로 민중의 삶을 탐구해온 리얼리즘 작가이다. 그는 현실 참여적 활동들을 통해 농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눔으로써 그들에게 내제된 분노와 저항, 그리고 희망을 표현해 왔다. 이후 우리의 국토 현실과 현장, 이라크 전쟁과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문제 등을 다루었으며, 최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초상화 연작, 이로 인해 시작된 광화문 촛불집회, 분단을 넘어 평화의 시대로 가는 민족 현실을 주제로 한다. 그는 미술의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두고 잘못된 권력과 정권에 대한 발언과 치열한 시대적 현실을 기록을 기록해 오고 있다.
이종구는 중앙대학교 회화과와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있다. 민중미술 동인인 ‘임술년’, 인천 미술인 그룹 ‘지평’의 발기인으로써 대표적인 민중미술 작가로 활동하였다. 인천공보관에서 진행된 <이종구 습작전>(1976)을 시작으로 20여 차례 개인전과 <민중미술 15년전>(국립현대미술관, 1994), <민중의 고동-한국미술의 리얼리즘 1945-2005>(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외, 일본, 2007), <코리안 랩소디>(리움미술관, 2011) 등 수많은 기획전에 초대되었다.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2010년 인천문화재단 우현예술상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 『땅의 정신 땅의 얼굴』(한길아트, 2004) 이 있다.

*한재섭은 인류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했고 전남대 문화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R 펠로우 방문연구자로 참여했고, 20세기 억압된 정치공간속에서 발현한 소문과 이미지의 정치학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