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우리, 예술인

인천문화통신3.0 예술인 긴급 좌담회

코로나19와 우리, 예술인

4월 17일 오후 2시 인천문화재단 청사에서 예술인 4명(‘극단 10년후’ 대표 송용일, ‘예술숲’ 대표 김면지, ‘루체뮤직소사이어티’ 대표 안희석, 화가 박상희)과 코로나19 관련하여 좌담회가 열렸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코로나19에 관한 내용만 정리하였다. 논의는 크게 3가지로 진행되었는데, 첫째, 코로나19 피해사항, 둘째, 인천문화재단을 비롯하여 인천시에 건의사항, 마지막으로 코로나19이후 예술계에 대한 전망이다.

송용일 : 우리 극단의 피해상황으로 시작하지요. 우리 극단은 3·1절 행사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코로나19로 행사 자체가 취소되면서 우리도 행사에 참여 못하게 되었습니다. 공연이 없어지다 보니 배우들이 식당 알바, 대리운전, 새벽 택배 등 생계를 위해서 다양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다른 극단도 우리 극단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극단 배우들과 자주 연락도 못하고 있습니다. 극단이 구체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죠. 연습실 월세는 계속 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공연을 못하고 있어서,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공허한 상태입니다.

안희석 : 클래식 음악 경우 상황을 먼저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작년 연말에 확보한 예산으로 1/4분기를 보냅니다. 3월 정도 되면 상반기 공연을 위해서 계약을 맺기 시작합니다. 공연은 평균적으로 4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늘어갑니다. 우리 단체는 취소된 공연은 없지만, 상반기 공연 계약을 전혀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추측건대 추석 전까지 이런 추세, 즉 공연이 없게 되면, 지금보다 앞으로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기관에서 시혜성 행사를 제외하면 과연 공연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극단 10년후’와 비슷하게 저희도 연습실에서 다양한 교육을 진행했는데, 지금은 멈춘 상태이고, 역시 월세만 나가고 있습니다. 일부 단원과 클래식 연주자들이 예술강사로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기본적인 소득을 확보했는데, 현재 거의 모두 중단된 것으로 들었습니다. 너무 어려운 상황입니다.

김면지 : ‘예술숲’의 경우 4월 말에 극장 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 그 극장과 계약서를 미리 쓰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또 공공기관에 행사 입찰에 참여했는데, 아직까지 선정 결과가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확실히 ‘루체뮤직소사이어티’처럼 우리도 작년에 축적했던 예산으로 1/4분기를 버텼는데, 이제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4월 실무 인력 인건비를 충당할 예정입니다. 저희는 주식회사여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의단체로 2~30년 활동을 했던 단체들은 대출을 받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보다 더 열악한 상황입니다. 언제 다시 공연들이 시작되어 예술계가 활발하게 돌아갈지 모르겠습니다. 그 시점을 모르니 더 불안합니다. 전통분야에서 개인 레슨을 하는 연주자들도 많이 있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력하게 실행되고 있기 때문에, 개인 레슨조차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박상희 : 공연분야는 조직이 있어서 함께 어려운 점을 타개하려고 노력한다면, 시각 예술분야는 개인으로 하는 활동이 많기 때문에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각 분야 안에서 또한 장르가 다양하기 때문에, 제가 시각예술가 모두를 대변하지는 않지만 제가 경험한 부분들 안에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술강사의 경우, 수업이 없기 때문에 시수가 많이 줄 것이라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것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참여하기로 되어 있던 3, 4월 전시가 모두 연기가 되었고, 언제 다시 시작한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계획을 짤 수 없습니다. 국내 옥션도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홍콩 옥션도 온라인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아주 유명하지 않은 개인 작가들이 참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술 시장이 위축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인 예술가의 경우 해결책이나 해결을 위해 논의하는 구조를 갖기 어렵습니다. 특히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고 함께 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공연처럼 함께 예술을 하는 장르에 있는 분들에 비해 소외감이나 공허감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김면지 : 개인 작업하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단체 예술을 하는 예술가들도 동일한 것 같습니다. 이런 막막한 상황에서 두 가지 차원에서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우리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하여 예술가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전문공연예술인의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참여는 개인으로서 가능합니다. 전문공연예술인으로 시작했지만, 분야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서 앞으로에 대해서 함께 논의하고 대안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다른 차원으로 재단에게 건의할 내용이 있습니다. 제가 지원사업에 선정되어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하반기에 공연장 잡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몇 몇 공연장을 방문해서 문의를 했지만, 공연장 담당자도 확답을 해주지고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원사업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재단에서 올해 사업에 한하여 한시적으로 공연 일정과 정산 일정을 내년 3~4월정도로 연기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희석 : 저는 작년에 재단에서 운영했던 문화포럼 예술창작분과에 참여했습니다. 그 곳에서 많은 예술인들이 제안했던 것 중 하나가 가칭 ‘인천예술인복지센터’였습니다. 예술인들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복지, 예술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부분들에 대한 의견 수렴 등 예술인 복지에 대해서 천천히 점진적으로 그러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실행할 수 있는 기관이 인천문화재단 내에 만들어지기를 제안했습니다. 상반기에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인천문화재단이나 인천시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속도를 더 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속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추진하면 좋겠습니다.

김면지 : 코로나19 사태에 인천문화재단이 대응하면서 여러 사업들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다만, 몇 가지 부분은 보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공연을 위해서 다양한 스태프들이 있습니다. 이 스태프들도 현재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을 배려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인천에서 대부분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문제로 인하여 인천에 살고 있지 않는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이들 역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단체에서 누구는 지원을 받고 누구는 지원을 받지 못하는 웃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안희석 : 증빙이 어려운 예술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의 경우 리플릿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은 지휘자 등 몇 명만 올리는 것이 요즘 추세입니다. 프리랜서 연주자가 만약 계약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사실 자신의 공연 실적을 증빙할 수 있는 방법이 애매해집니다. 이런 연주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여서 예술가들에게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교육이 지속적으로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교육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안맞으면 들으러 갈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필요한 다양한 교육을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재단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지원책도 글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재단에 지원사업을 받아 본 사람들의 경우는 문제없이 지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예술인들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도 친절하고 자세하게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려주면, 많은 예술가들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지원사업 프로세스에 대한 동영상, 계약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에 대한 동영상 등 예술가에게 필요한 많은 동영상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박상희 : 정보가 잘 소통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현재는 재단 홈페이지, 카카오 프렌즈 정도가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잘 못하는 분들에게도 정보가 잘 흘러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각 분야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현재 작품 판매가 많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시가 거의 미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공공기관, 기업 등과 협의하여 예술가들의 작품을 대여하거나 전시하는 사업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보여질 기회가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작품이 판매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작품이 팔리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온라인 전시와 함께 판매가 이루어지는 온라인 사이트가 운영되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미술판이 좀 더 활성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송용일 : 예술인들의 기초 생활을 보장하는 제도적 고민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의 경우는 이 제도에 대하여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안희석 : 작년 인천문화포럼 예술창작분과에서 예술인 기본 소득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오늘 나누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작년 예술창작분과에서 나왔던 이야기와 일맥상통합니다. 좌담회, 포럼 등 논의는 많이 되지만, 그 논의된 내용이 실현되면 좋겠습니다. 작년 인천문화포럼에서 나왔던 결과물을 인천문화재단과 인천시가 지금의 상황과 대조해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주면 좋겠습니다.

송용일 : 오늘 우리가 얘기해야 할 마지막 주제가 코로나19 이후 예술계를 전망하는 것인데, 전망이 잘 안됩니다.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공연계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연극은 공연장에서 사람을 모아놓고 해야 하는 공연업인데, 관객이 없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 영상이 대세가 된다면, 연극은 무엇을 할 수 있지? 연습하는 과정을 유튜브에 중개할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데, 쉽지 않습니다.

안희석 : 송대표님의 이야기에 공감이 됩니다. 공연예술계에서 현장의 감동을 따라올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라인을 토대로 한 매체를 통해서 관람하는 것이 새로운 유형의 소비 방식이 되었습니다. 지금 10세의 아이들의 경우, 학교 수업도 온라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10년 후에 20살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뭐가 더 익숙할까요? 현장에서 공연을 보는 관람하는 행위와 온라인을 통해서 집에서 관람하는 것 중에서 말입니다.
저는 2012년부터 온라인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준비를 했습니다. 준비하고 실제로 콘텐츠를 만들면서 이것은 콘텐츠의 우수성에서 유래한 싸움이 아니라, 자본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랜드가 높은 공연자들이 높은 비용을 들여 좋은 퀄리티의 음질과 영상으로 이루어진 콘텐츠를 만들고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서 그 콘텐츠를 유통시킵니다. 그 자본력을 우리와 같은 작은 단체들은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박상희 : 자본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합니다. 또한 시장이 축소되면 축소될수록,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한 분들의 작품만 관심 받게 됩니다. 예술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나오기 위해서 토대가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한 작가들만이 생존했을 때, 훗날 더 비극적인 결말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인천문화재단이 넓은 안목에서 순수 예술의 토대를 지켜나갈 수 있는 지원정책을 잘 수립하여 실행해주길 기대합니다.

김면지 : 공연예술은 현장성이 중요함으로 온라인 공연이 공연예술의 대체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로 옮겨가면 편집으로 인한 현장성이 줄어들고 라이브인 경우에도 현장성을 살리기 위한 영상장비 등의 비용 부담감이 가중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는 방송국, 국공립단체 등에 비해 자생력이 떨어지는 민간단체가 콘텐츠가 아닌 그들의 자본과 경쟁해야 되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예술적 측면으로도 다양한 장르적 융합이 강제되어 부담감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송용일 :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또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받았습니다. 인천문화재단이 이런 예술가들의 고충을 알아주고 함께 고민해야할 것입니다.

안희석 : 공공기관에서 “위기를 기회로 삼아주십시오” 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연습하고 노력하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겠지만, 공공기관에서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재는 그런 말을 듣고 웃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적들,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를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적들,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유세움 (인천시의원)

마음 편히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예술가들은 몇이나 될까? 개인적으로는 예술의 가치를 평하기 전에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이들과 관련된 직업을 선택한 이들은 충분히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자의적인 선택에 대해 국가나 사회가 보호할 필요가 있냐고 묻기도 하지만, 한 국가, 한 사회가 생성될 때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이들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은 문화 예술의 중요성과 그간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당면한 과제에 대해 다분히 주관적인 의견을 내보고자 한다.

코로나 19, 신종 플루, 아프리카 돼지열병을 비롯한 국가적 재난들로 인해 전 분야에 걸쳐 어려움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단순히 어려움이라고 부르기엔 견디기 힘든 어려움이다. 경제적 순환 활동은 냉각이 되어가고 있고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이라고 보이는 점은 희망적 메시지를 통해 이 사태를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힘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큰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은 대비를 하고 있었나에 대해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예측 가능한 부분들에 대해서 어려움을 완화 시킬 수 있는 매뉴얼에 대해서 말이다.

사건과 사고, 질병 등은 과거 몇 년 동안 다양한 형태로 위협을 해왔고,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과거보다 체감의 속도와 깊이를 더욱 깊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것들은 생활 속 깊숙이 침투하여 곳곳에 영향을 끼치며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 같이 빠르고 무섭게 다가온다. 산업의 많은 분야들을 비롯해 예술계도 이것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이때에 행정의 역할과 제도의 기능이 상당히 필요한데, 그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것에 분주해 진다. 그전에 이 부분들이 마련되었으면 어땠을 까라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가까운 2019년 아프리카 돼지 열병과 2020년 코로나 19는 예술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날마다 공연과 전시 취소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고 공연장과 전시장에는 ‘휴관’이라는 안내문이 붙기 시작한다. SNS에는 계약이 취소되었다는 포스팅들이 줄을 잇고, 오가는 근황은 위로로 시작이 된다. ‘취소’는 했다지만,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준비한 예술인과 기획자, 제작자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린다.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사태에 대한 대비를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수없이 해왔다. 2019년 인천시의 문화 체육 관광국의 업무보고 당시에도 몇 차례에 걸쳐 제안과 질의를 해왔으나, 펀치는 허공을 가르며 무위에 그쳤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그 공감대를 사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비단, 이뿐이랴 문화 예술 활동이 조금이라도 중요도에서 우선순위에 있었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씁쓸한 현실만을 인정해버리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대비책 없이 취소가 되는 사업들이 계속 된다면, ‘예술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겐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경제 활동의 전부가 사라지는 것이다. 대부분이 프리랜서인 예술계에서는 1년에 몇 개 안되는 일거리가 통째로 날아간 일일 수 있다. 더 이상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말이다.
그 수많은 상황을 경험해 왔음에도 매뉴얼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부분들은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예술계와 얽혀 있는 다양한 분야들에 대한 보호 장치 또는 완충 장치의 마련이 지금이라도 반드시 마련되어져야 한다. 최소한의 정책적 방어막이 필요하다. 이제부터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재난ㆍ질병 피해에 대한 문화 예술계 안전 보험 가입>이다. 공기관의 주최ㆍ주관으로 이뤄지는 행사들이 각종 재난과 질병으로 인해 취소가 되었을 때, 계약금의 일부분을 보전해주는 제도를 마련했으면 한다.

대신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할 부분은 계약의 시기가 있을 것이고 재난의 판단 부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갖춰야 한다. 가끔 일주일 전, 당일에 계약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러한 부분들도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연계에서는 사전 계약금에 대한 지급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데 (특히, 순수 예술 분야에서는) 계약금을 지급할 수 있는 행정적인 보완도 필요할 것이다.

보험의 가입은 지자체에서 일괄 가입할 수 있도록 하며, 예술가들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인천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인천 시민 안전보험>을 참고해도 좋을 듯 하다.

물론, 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면밀하고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민간보험과의 협약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지에 대한 논의도 긴밀히 이뤄져야 하며, 현장과의 테이블을 마련하고 현실적 방향을 이끌어내는 소통도 필요한 부분이다. 이 부분이 자리를 잡고 실행이 된다면, 최악의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동력을 가질 수 있다.

둘째, <인천광역시 문화예술후원 활성화 지원>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필자가 현재 준비 중인 조례이기도 하다. 이 정책의 마련은 그동안 기업 또는 개인의 문화 예술 후원은 다분히 선언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이 조례에는 기업과 지자체의 5대 5 매칭 지원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 기업이 예술 단체(예술가)에게 100원을 지원한다면, 지자체도 100원을 단체에게 지원을 하여 200원으로 연간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 이때 매칭된 예술 단체(예술가)는 인천시가 주관하는 지원사업에서 일부 배제를 하여 타 지원 사업과의 중복을 방지함으로 불평등을 해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조례의 경우에는 인천지역 내에서 전무하다시피 한 메세나 활동을 촉진 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기업이 예술 단체(예술가)에게 지원을 한다면 해당 기업에도 세제 혜택 또는 인천광역시 인증 기업의 형태로 기업에도 혜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다각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이 정책적 조례가 자리를 잡아 나간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 순간이 닥쳐도 피해의 정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보호망으로서의 기능도 함께 할 것이다. 메세나의 활성화는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정확한 실천은 없었다. 그렇다면 지자체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이를 독려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메세나 활동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깊이 고민을 해왔었다. 현장에 있을 당시에도 메세나를 유치해보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대체로 잘 이뤄지지 않는다. 메세나에서도 발생하는 빈익빈 부익부도 존재하고 있다. 거대 기획사 또는 인지도 높은 예술가들에게만 편중되어 중앙 메세나 활동이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인천 지역만이라도 지역의 문화 예술 활동을 활성화하고 발전하는 데에 있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렇게 지역과 문화, 기업이 동반 상승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들을 마련하는 것이 지자체의 역할이기도 하다.

문화 예술계는 질병과 사건, 사고 뿐 아니라 1년 365일 내내 위기 상황에 쳐 해있다고 본다. 위기의 정도가 다를 뿐 항상 아프고 힘들다. 아프고 힘든 가운데 사건, 사고가 생기면 더 아프고 힘들어 질뿐이다. 그저 이 상황이 나아지겠지 라는 일말의 희망으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을 수도 있다. 예술은 행복하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참으로 모순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은 다른 사람의 삶을 즐겁게 해주는데, 정작 예술가의 행복은 깊지도 길지도 않다. 그래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 예술은 시대를 비추고 사회에 여러 색으로 덧칠을 한다.

지금의 위기, 앞으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예술 현장에 있어보지도 않은 몇몇이 만들어가는 정책과 제도보다 현장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바늘로 동굴을 파는 심정일지라도 목소리를 모아주길 바란다.


유세움
인천광역시의회 시의원(문화복지위원)
인천출신, 초ㆍ중ㆍ고등학교 시절 풍물 동아리 활동을 시작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전문 국악 타악 연주자로 활동을 해왔으며, 2011년 문화공작소 세움을 설립하여 한국 음악과 대중음악, 서양음악의 영역을 넘나들며 문화 기획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주요 이력으로는 세계사물놀이겨루기 대회 금상, 전주 소리프론티어 소리축제상 등이 있으며, 16개국에서 해외 투어를 기획하고 연출을 했다.




아이엠 카메라 희망여행 프로젝트 2019 리뷰
<길 위에 잠시 멈춰서다>

그동안 아차도에서 진행한 <섬의 노래>와 송림동 <메아리 라디오극장>로 인연을 맺어온 인천문화재단에서 7월 어느 날 <아이엠 카메라 희망여행> 프로젝트의 기획을 맡아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아이엠 카메라’ 프로젝트는 올림푸스 코리아가 2015년부터 진행해온 사회공헌프로그램으로 암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과 환우들을 정서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사진예술교육프로그램이다. 인천문화재단이 올림푸스 코리아와 함께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올해로 3년 차라고 한다.

10월부터 11월까지 성인암 환우들과 함께 2박 3일 예술워크숍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전시를 선보인다는 계획을 듣고 할 수 있겠다고 대답했지만, 막상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짧은 일정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유학 시절에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이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암과 암에 걸린 환자들의 치료과정 및 사회적 환경에 대해 잊고 있었던 나는 병에 대한 여러 정보를 검색하면서 아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앞섰던 유학 시절을 떠올리며 아픔은 주변의 인내와 배려 없이 이겨내기 어렵다는 점을 되새겼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이 작업에서도 묻어나는 작가로 구성하여 길다래, 김순임, 박형렬, 백정기, 조재영, 오민정 작가가 합류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에 앞서 우리는 병원에서 올림푸스가 진행한 사진수업에 참관하였다. 참여자들의 밝고 진지한 모습을 보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암 환자라는 고정된 시선을 가지고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이 서로에게 불편하겠다는 것을 알았다. 최대한 차별 없는 시선으로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획의 방향을 잡았다. 기획서의 일부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힘든 순간을 경험한다. 이런 멈춤의 순간 복잡하게 얽힌 생각의 실타래를 잠시 내려놓고 주변을 바라본다. ‘멈춤’ 앞에서 관성처럼 나아가려는 생각들은 작가들과 낯선 장소로의 여행을 통해 다르게 바라보기를 시도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주위를 둘러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마주하며 잠시 멈춰야만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기획의 틀을 잡고 ‘길 위에 잠시 멈춰서다’라는 주제와 ‘기억, 순간, 희망’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진행을 하였다. 작가들은 저마다 주제에 맞는 워크숍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로 했다.

작가팀은 인천문화재단과 올림푸스 코리아, 외주 운영팀과 함께 몇 번의 기획회의를 거쳐 2박 3일간 구체적인 예술 워크숍 일정과 전시일정을 잡고 필요한 물품들을 체크하였다. 워크숍 둘째 날로 예정된 강화도 투어에 앞서 답사를 다녀오기로 하였으나, 때마침 돼지열병으로 강화도에 있는 모든 돼지를 살처분하고 출입차량의 소독이 이루어지고 섬 전체의 축제며 행사들이 취소되고 있었다. 장소변경을 생각하던 내게 급하게 재단에서 연락이 왔고 다음 날 있을 답사장소를 무의도와 소무의도로 변경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몇 번 와봤지만, 워크숍 장소로 적당할지 확신이 없었다. 답사하며 이동하는 길이가 길어지자 참여자분들의 몸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면서 이동거리를 조정하기로 하고 모두 만족하는 표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워크숍 첫날, 20명이 조금 넘는 참가자들이 도착했고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 예술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작년 워크숍은 참여자들이 모두 체험하지 못해 아쉬웠다는 말에 올해는 작가 2명씩 팀을 이루었고 한 팀이 한 개의 워크숍을 진행하는 동안 다른 두 팀이 진행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이런 구성으로 참여자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각 워크숍은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었다.

첫째 날, 조재영, 오민정 작가의 <나와 너 사물로 연결되다>라는 주제의 워크숍은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의미하는 작업이다. 참여자들이 각자의 사연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선택하고 그 이미지를 그려서 워크숍 마지막 날 실크스크린으로 박스에 찍고, 다시 맘에 드는 서로의 이미지를 교환해서 찍는 형식이었다. 참여자들이 단순히 판화를 찍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미지 위에 덧칠하며 세세하게 그려나가는 열정에 다들 놀라워했다.

둘째 날은 서로 다른 병원에서 온 참여자들이 워크숍 장소가 인천이라는 점을 기대하여 바다에 갔고 그곳에서 짧은 여행을 보냈다. 어린 시절 모래놀이를 하던 기억을 회상하며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 보는 박형렬, 백정기 작가의 <신화이미지> 워크숍과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통해 새로운 감각으로 만나는 사물들을 채집하고 기록하는 김순임 작가의 <I MEET WITH>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길다래 작가와 나는 여행의 소리를 녹음하고 바다를 향해 마음의 소리를 외치는 <소리의 바다>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참여자들은 바닷가 모래에 손자국을 남기며 조개를 모아 누군가의 얼굴모양을 만들거나 삶이라는 글씨를 모래 위에 남기기도 하며 동심으로 돌아간 듯 즐거운 표정으로 가을의 한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나개 해수욕장과는 다르게 소무의도의 해변은 작고 아담한 동해의 작은 바닷가 마을 같은 분위기였다. 해변 앞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작은 돌들 위로 잔잔한 파도가 구르고 있었다. 해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 참여자들의 모습과 파도 가까이 설치된 마이크에 삼삼오오 다가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외치는 모습에서 잠시나마 아픈 생각을 훌훌 털어버리기를 바랬다.

셋째 날은 실크스크린 마무리와 여행의 소리를 통해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글을 써보는 <소리나누기>를 진행하였다. 워크숍 일정의 마지막 날, 누군가의 소리를 녹음해서 편집하고 함께 듣는다는 것이 예민한 부분이라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길다래 작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참여자들의 공감을 얻고, 하나둘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노래를 부르고 좋아하는 시를 읽으며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는 시간이 되었다.



2박 3일의 일정이 마무리되고 한편의 인상적인 영화를 보고 나온 것 같은 몰입감과 피로함으로 결과물 전시에 대한 초기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았다. 처음에는 워크숍의 결과물이 작은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모뉴먼트(monument)처럼 설치되길 원했지만, 전시장소가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설치 계획도 바뀌게 되었다. 되도록 작가들의 손을 많이 거치기보다 참여자들이 만든 그대로의 작품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다. 작가들과 설치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처음 기획에서 의도했던 부분들을 가져갈 수 있었다. 함께하는 의미를 담아 작품들은 전시장에 쌓이고 매달리고 걸렸다.

3주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며칠 동안 작품을 설치했던 작가들은 정작 참여자들이 많이 안 오시면 어쩌지 하면서 걱정했지만, 전시 오프닝에 <2019 아이엠 카메라 희망여행> 참가자의 반가운 얼굴 대부분을 볼 수 있었다. 참여자들은 작품은 둘러보며 지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올림푸스 코리아와 작가들 사이를 오가며 열심히 도움을 준 인천문화재단 신효진 담당자님과 계획 단계에서 전시까지 성심껏 참여하여 좋은 작업으로 이끌어준 작가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밝은 표정으로 함께 해준 참여자들에게 더 큰 감사를 전한다.

 


글 · 사진
고 영 택

KO Young-taeg (E-mail : medienkunst@hanmail.net)

고영택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과 공동체 내 개인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영상과 설치작업으로 제시한다. 공동체가 사회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의미화 되고, 공동의 목소리와 개인의 목소리는 어떻게 중첩되고 분리되는지, 개인의 가치와 욕망, 삶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상실되는지를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추계예술대학교와 독일 자르 조형예술학교 뉴미디어과를 졸업하고 2008년 서울시립미술관 ‘SeMA신진작가전시지원’ 선정을 시작으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하였다. 2012년 고양창작스튜디오. 2013년 경기창작센터와  2014년 인천아트플랫폼 . 2015년 독일ZK/U 레지던시에 입주하여 활동하였으며 현재는 인천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조병창(일본), 캠프마켓(미국), 그리고 한국

1. 조·미수호통상조약, 가쓰라태프트 협약

조선은 1876년 강화도에서 일본과 조·일수교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1882년에는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고 이어 서구 열강과 차례로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미수호조약 제1조는 “대조선국 군주와 대미국 대통령 및 그 인민들은 각각 모두 영원히 화평하고 우애 있게 지낸다. 만약 타국이 어떤 불공평하고 경멸하는 일을 일으켰을 때는 일단 확인하고 서로 도와주며, 중간에서 잘 조정하여 두터운 우의를 보여 준다.”고 되어 있다. 즉 양국 중 한 나라가 제3국의 압박을 받을 경우 서로 돕고 조정한다는 ‘거중 조정’이 약속되었다. 이는 현재의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같다고 하겠다. 그러나 거중조정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1905년 7월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태프트는 일본에서 가쓰라와 회담하여 “필리핀은 미국과 같은 나라가 통치하는 것이 일본에 유리하며 일본은 필리핀에 대해 어떠한 침략의 의도도 갖지 않는다. 미국은 일본이 한국의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고, 극동의 평화에 직접적인 공헌을 할 것으로 인정한다”는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협약은 일본과 미국이 한국과 필리핀이라는 지역을 상호 식민지 지배하기 위한 계획의 결과이다. 가쓰라-태프트 협약 이후 일본은 영국과 ‘제2차영일동맹(1905년 8월)’, 러시아와 ‘포츠머드조약(1905년 9월)’을 거쳐 대한제국과는 ‘제2차한·일협약(을사늑약, 1905년 11월 17일)’을 강제하여 외교권을 탈취한다.

2. 조병창, Ascom시티, Camp Market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공황은 후진자본주의 국가인 일본에도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일본은 이를 벗어나고자 1930년대 들어 대륙침략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31년 9월 만주에 주둔한 일본 관동군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하였다.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일으켜 양자강 일대까지 점령하게 된다. 이탈리아·독일과 함께 삼국동맹을 체결한 일본은 1941년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다.
일본은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와 인력을 중국과 한국에서 조달하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중국은 제2차 대전의 전쟁터가 되었고, 한국은 병참기지가 되었다. 일본은 병참기지 건설을 위해 흥남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북부공업지대, 평양의 신의주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서부공업지대, 서울·인천을 중심으로 하는 경인공업지대를 구축하였다. 이로써 인천을 군수산업기지화하려는 기초가 마련되었다.
일본은 1939년 무렵부터 부평에 조병창 건설 계획을 추진하여 1941년 5월 5일 개창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 후 9월 8일 인천에 도착한 미군은 부평에 있는 일본육군조병창을 접수해 에스컴시티(9월 16일부터 불리었다)를 건설했다. 그러나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미군은 한국에서 철수한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미군은 다시 에스컴에 주둔한다. 에스컴시티는 1963년 캠프마켓, 캠프그란트, 캠프타일러, 캠프하이에서, 캠프해리슨, 캠프아담스, 에스컴시티 군 교도소 등 7개의 구역으로 구성된다. 1973년 6월 30일 에스컴시티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어 지금의 캠프마켓만이 남게 된다. 2013년 7월 31일 인천광역시와 국방부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단은 ‘주한미군반환 공여지(캠프마켓) 관리·처분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의 내용은 2022년까지 인천광역시가 토지매입대금 4,915억을 10년에 걸쳐 분납한 후 소유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김현석,「부평미군기지의 역사와 기지 ‘반환’의 성격」, 『박물관지』 16, 인하대학교 박물관, 2013년. 참조)

애스컴시티
부평역사박물관 제공

3. 제2회 부평캠프마켓 시민생각찾기 전문가 컨퍼런스

2019년 11월 1일 부평안전체험관에서 제2회 부평캠프마켓 시민생각찾기 전문가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 컨퍼런스의 목적은 미군기지 이전 후의 활용방안을 시민과 함께 긍정적·발전적으로 모색하고자 한 것이다.
곽경전 시민참여위원회 위원의 사회로 시작된 컨퍼런스는 최용규 시민참여위원회 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부대이전개발과 강영훈 팀장이 미군 부대 이전 진행 과정과 토양정화 경과를 보고하였다.
인천민속학회 김현석 이사가 ‘조병창, 캠프 마켓의 역사와 미래’란 주제로 첫 번째 발표를 시작하였다. 김 이사는 가좌동에서 산곡동으로 이어지는 장고개가 고개로서 기능을 상실한 것은 1941년 5월 5일 인천육군조병창이 건설된 후일 것으로 추정하였으며, 1942년 4월 15일 평양병기보급창 부평분창이 가토리마치〔香取町-현재의 일신동 일대〕에 조성됨으로써 부평과 서울을 연결하는 성현의 기능이 상실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캠프마켓의 반환은 이 고개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때 비로소 완결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하였다. 계속하여 김 이사는 부평지역의 근현대 유적을 연결하여 살펴보자고 하였다. 예를 들어 인천육군조병창은 산곡동 영단주택과 함께 연결하여 살펴보면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의 군수정책을 조망 할 수 있는 주요한 유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인천육군조병창 유적의 활용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주제로 발표하였다. 정혜경 연구위원은 국내의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은 현황파악도 안되어 있으므로 조사가 필요하며, 인천육군조병창을 전쟁의 역사를 넘어 평화의 마중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자는 의견을 제안하였다.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회 위원장은 ‘캠프마켓 주변 하천복개현황과 복원제안’을 주제로 하여, 인천하천의 복개현황과 이용실태 및 부평미군기지 주변 하천복개현황을 자료를 제시해가며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어 캠프마켓 주변의 굴포천을 복원하여 도로와 하천이 어우러진 마을을 만들어 차들이 점유했던 곳을 시민에게 되돌려 줄 것을 말하였다.
인하대학교 토목공학과 김수전 교수는 ‘도시하천의 관리 방향-하천복원을 중심으로-’를 발표하였다. 김 교수는 일제는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홍수피해가 극심한 하천을 위주로 개발을 진행하였다고 하며, 이어 도시하천은 홍수조절 및 갈수기 용수 유지 등의 기능, 생태통로의 기능, 환경자정의 기능, 다양한 놀이 공간의 기능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도시하천의 관리 및 활용사례를 설명하며 하천의 복원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성균관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최혜경 교수는 ‘미군기지 공원화-용산공원의 교훈-’을 주제로 용산 미군기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발굴 조사가 제대로 안 된 점, 공원화 과정에서의 갈등과 논란이 있었던 면을 말하였다. 부평미군기지의 미래적 활용방안에 대해서 최 교수는 미군기지 활용에 대한 정보공개, 활용에 대한 조직 및 제도의 설계, 인천시민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조언으로 결론을 맺었다.
다섯 주제의 발표가 마무리된 후 진영환 청운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를 좌장으로 토론이 시작되었다. 첫 토론은 허광무 부평사편찬 상임연구위원이었다. 허 위원은 김현석 이사에게 ‘조병창·장고개·성현 외에 일제에 의해 훼손된 부평지역’ 을 물었다. 김 이사는 부평 전체가 일제에 의해 계획된 도시라고 답변을 하였다. 이어 허 위원은 정혜경 연구위원에게 부평미군기지를 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를 질문하였으며, 정 연구위원은 시민의 제안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변하였다.
두 번째 토론은 인천시민연대 김일회 신부가 담당하였다. 김 신부는 장고개길을 지하화하자는 제안과 아울러 김수전 교수에게 자연생태와 사람이 어울릴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구하였다.
세 번째 토론은 건축사무소 바인의 황순우 소장이 부평 미군기지의 활용에 있어 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지정토론 후 청중석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부평구의회 마경남의원은 강제적으로라도 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줄 것을 말하였다. 꿈 베이커리 오미숙 사무국장은 캠프마켓 안에 있는 빵 공장의 활용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였다. 시민참여위원회 역사분과 이재병 위원장은 도시재생적 관점에서 문화 특히 음악대중화를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였다. MJ 엔터데인먼트 김종성 대표는 캠프마켓을 영상 산업 단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주었으며, 이윤영 시민참여위원은 이번 컨퍼런스의 내용을 백서로 제작하여 보존하자고 하였다.

제 2회 부평캠프마켓 시민생각찾기 <전문가 컨퍼런스>
인천도시공사 제공

4. 역사의 교훈

2019년 11월 2일 이재병 역사분과위원장이 캠프마켓 내부 행정동으로 추정되는 건물 앞의 휘장을 보고 ‘테두리는 태극, 가운데는 욱일승천기와 신사’라는 내용을 전해왔다. 이 휘장을 찾아보니 미국 403육군 야전지원 여단이 사용한다.(WIKIPEDIA 참조.) 403rd 육군 야전지원 여단은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 육군을 지원하고 있다.
WIKIPEDIA에 올려진 휘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깥 테두리는 분명히 태극 문양이다. 한가운데는 일본의 욱일승천기와 신사가 그려져 있다. 태극과 욱일승천기 가운데는 둥그런 이중 원이 있고 여기에는 영어 대문자로 MAINTAINING(유지·관리)와 THE WARRIORS(전사)라고 상하로 나뉘어 쓰였다. 태극기를 깔고 그 위에 신사와 욱일승전기, 그리고 영어가 쓰여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403 야전지원여단(403dAFSB) 휘장
출처 : WIKIPEDIA

조·미수호통상조약은 가쓰라테프트밀약으로 휴짓조각이 되었으며, 1941년 일본이 만든 조병창에는 1950년부터 미군이 주둔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에 주둔하고 있는 403육군 야전지원 여단의 휘장은 태극 위에 욱일승천기를 그려 넣었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필자가 반미와 반일을 부추긴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역사학자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해 주는 것이 의무이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내용이다. 미래의 한국, 미국, 일본의 관계에서 한국이 위태롭지 않으려면 위와 같은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논어』 양화편에 공자가 “비루한 사람은 얻지 못했을 적에는 얻을 것을 근심하고, 이미 그것을 얻으면 잃을까 근심한다. 진실로 잃을 것을 근심하면 못하는 짓이 없다.”라 하였다. ‘못하는 짓이 없다’라는 것에 대해 주자는 ‘작게는 남의 종기를 빨고 치질을 핥으며 크게는 아버지와 군주를 시해한다’고 하였다. 지금도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해 남의 종기를 빨고 치질을 핥는 자들이 곳곳에 있다.

글 / 남달우

인하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문학박사(한국사 전공, 1998년)
인하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2017.3~2019.9)
인하대학교 사학과 출강(현재)
인천광역시 문화재 위원(현재)
(사)인하역사문화연구소 소장(현재)




인천 아트플랫폼 10년, 성과와 비전

2009년 9월, 굴곡진 역사의 개항지였던 바로 그 자리에 복합문화예술공간 ‘인천아트플랫폼’이 개관, 10주년을 맞게 되었다. 우리의 척박한 문화환경을 감안하면 10년의 세월은 결코 짧지가 않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개관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로선 생소했던 플랫폼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문화거버넌스, 즉 시민단체와 예술가들, 그리고 시 당국이 협치와 공조를 잘 이뤄 결실을 본 결과로 지금은 타지역에 롤모델로 부각되고 있다.

해마다 국내외 작가 약 30여 명이 입주하여 활동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은 레지던시와 전시실, 공연장, 생활문화센터 등의 용도로 구성되어 있다. 인근의 차이나타운과 인접하여 문화관광 측면에서도 일정 부분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천문화재단에 위탁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작품의 수집과 전시에 역점을 둔 전통적인 문화공간인 미술관과는 차별화된 대안적 시스템이다. 4차산업이 회자되기도 전에 이 이름을 선점한 혜안이 놀랍다.

국내외 문화예술 인적, 물적, 정보 및 프로그램 등의 교환과 교류의 아고라이자 정거장으로서, 기본적으로 개방성과 네트워크, 참여와 소통을 생명으로 여기는 문화발전소이다. 특히 옥내외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활용되어 시민들의 문화예술 축제가 끊이지 않는 역동적인 문화명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원도심 재생사업으로서 이만한 성과를 거둔 사례가 국내외적으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원도심 재생사업만이 아니라 문화관광 차원에서나 문화예술 자체로만 보아도 얻은 것이 대단히 많다. 요컨대 인천 문화예술이 열악한 가운데서도 명맥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인천아트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주된 사업이 레지던시, 전시, 공연 및 교육으로 요약된다. 대한민국 제3의 도시 인천엔 아직 시립미술관이 없다. 1종 등록미술관으로서 공공미술관 역할을 대신 수행해야 하는 미션에 따라 시민들이 애호하는 전시를 기본적으로 꾸준히 펼쳐왔다. 메인전시장, 창고갤러리, 윈도갤러리 등이 있어서 자체 기획전시, 입주작가 창작 발표, 기타 지역작가 전시 등의 다양한 전시들이 연중 30회 이상 열린다. 또한 공연장에서도 음악, 연극, 무용 등의 공연이 기획, 무료대관 등의 형태로 매주 2~3회 열리는데, 특히 다양한 장르 간의 실험적인 협업 공연은 인천아트플랫폼이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다.

무엇보다 레지던시 비중이 크다. 한 해 평균 30여 명 가량의 작가들이 입주 활동하는데, 10년 동안 무려 300인의 작가들이 거쳤고, 그들의 빛나는 커리어에는 ‘인천’이라는 기록이 선명히 남아 있다. 작가들에게 인천아트플랫폼이 유독 선호되고 있다. 그 이유는 도심 속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다양하고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 등으로 작업의 질적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물론 인천아트플랫폼 10년의 과정을 반추할 때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인천아트플랫폼이 처음 설립될 때부터 주어진 미션이 용량을 초과하는 것이었다. 창작지원, 전시 등을 통한 콘텐츠 창작, 교육, 국제교류, 문화관광…. 심지어 장터까지도 미션이 되기도 한다. 부족한 인력으로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현실은 무리한 업무수행을 피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설립 초부터 지역예술인들은 지역예술인들대로 기대치가 높았다. 보편성과 지역성을 적절히 조율한다고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아트플랫폼이 기획하여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그것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것이 본연의 사업이다 보니 지역예술가들에 대한 배려를 최대로 하고는 있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데는 역부족이다. 머지않아 시립미술관이 개관하게 되면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인천아트플랫폼은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 레지던시 사업 쪽으로 역점을 두면서, 지역사회의 문화적 자산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그동안의 환희와 고통의 10년을 뒤로 하고 이제 새로운 비전과 방향성을 설정해야 할 때이다. 보다 정교한 진단과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방향성은 그려볼 수 있다. 원대한 스케일의 계획보다는 디테일과 내실에 역점이 주어져야 한다는 점,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활동 영역을 초공간적으로 넓혀가야 한다는 점 등이다.

새로운 비전을 설정하기 위해서 소박하게나마 폭넓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트플랫폼이 시민을 표방했지만 정작 시민은 없었다는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아트플랫폼을 방문했지만, 그들이 아트플랫폼을 함께 완성해가는 주역으로서의 자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언제나 콘텐츠들에 수동적 향유자로서의 위치에만 머무르게 했던 점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네트워크에 기반한 지역 작가들과의 연대와 협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공기관의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언제나 대외적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점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앞으로 무심코 찾아온 시민 한 사람이라도 아트플랫폼의 구성원이자 후원자로서의 친근감을 갖도록 하는 최선의 전략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은 플랫폼의 역할을 보다 국제적으로 확장하려는 계획들이 추진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관문도시답게, 그리고 문화예술 교류의 허브로서의 명성과 위상을 한 단계 더 올려야 한다. 현재도 국제교류 프로그램들이 많이 가동되고 있지만, 호주 멜버른의 아시아링크를 능가하는 채널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예술플랫폼으로 명과 실을 견고히 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레지던시가 입주작가들의 창작 지원에는 적극적이지만,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입주 예술가들의 생활고 문제다. 입주만으로도 특혜일 수 있지만, 레지던시의 시스템이 향후 안정적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도 다각적인 프로모션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주로 홍보에 주력하였지만 다른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작가들이 더욱 윤택한 경제적 여건을 가질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과도하게 시장과 연결하기보다는 입주작가 커뮤니티 자체로 시스템을 갖추도록 유도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자체에서 매개역 전문가 양성이 함께 병행되어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콘텐츠들을 시장과 연결해주는 것. 만약 이 실험이 성공하면 지역의 예술계에도 확대 시행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이 과제들이야말로 문화재단과 아트플랫폼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고 정책적, 행정적 방안들을 도출, 폭넓게 시행해야 할 일이다. 현금 몇 푼을 손에 쥐여 주는 것보다는 작가들의 작품이 얼마간이라도 팔리도록 매개해주는 것, 그것이 작가들에게 가장 명예로운 지원이자 복지이기 때문이다.

 

글 /  Lee Jaeon, 李 在 彦 (인천아트플랫폼 관장)

 




문화예술교육 활동과 여가문화

–  꾸물꾸물문화학교 동네예술대학의 사례를 중심으로 –

요즘 들어 마치 유행어처럼 ‘워라벨’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쓰게 된다. 이 말은 ‘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정부는 일과 생활의 균형(WLB ; Work-Life Balance)을 위한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일 중심의 조직문화와 노동환경으로 인한 구조적인 한계가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프랑스는 주 35시간 근로제를 시행하고 있고, 그 외의 여러 나라가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있으며 향후 4차 산업혁명 등의 영향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도 노동시간 단축은 점진적으로 안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간을 제도적으로 줄여 시행했던 대표적 사례로는 ‘주5일 근무제’를 꼽을 수 있다. 주5일 근무제는 주당 노동시간이 40시간 이상을 초과할 수 없어 1주일에 8시간씩 5일을 근무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프랑스는 1936년, 독일은 1967년, 일본은 1987년부터 ‘주40시간근무제’를 실시하였고, 한국은 2004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었다. 사업장의 인원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하였고, 학교에서는 소위 ‘놀토’라 불렸던 학교 휴업일이 격주로 시행되었다. 그러다가 2011년에 들어서면서 전면적으로 확대되었다. 초기에는 이 또한 찬반 논쟁이 많았다. 주5일 근무제의 기대효과는 여가·취미 시간의 증가로 인한 삶의 질 향상, 직장 중심 음주문화에서 가족 중심 여가문화로의 변화 및 건전한 소비 풍토 조성,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실업문제 해결, 국제 기준에 맞는 근로시간 관련 제도의 정비를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 문화·관광·레저·운송 등 서비스산업 중심의 내수 증대를 통한 경제 활성화, 인적 자원 개발 등을 통한 생산성 제고,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 지식경제 강국의 도약기반 조성 등이다. 이는 주 52시간 근로제의 기대효과와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정책적으로 이렇게 견인되고 있는 근무시간의 단축은 바로 ‘삶의 질 향상’으로 귀결된다. ‘삶의 질 향상’이라는 말에는 여가·취미 시간 그리고 건전한 소비 생활 등을 포괄한다. 그중 우리가 집중해서 보아야 할 것이 ‘여가’ 혹은 ‘여가문화’다. 정책사업인 문화예술교육만 보더라도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따라 가족 단위의 여가생활과 문화향유를 독려하는데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인 ‘꿈다락 토요문화학교’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2012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오고 있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전국 단위의 사업으로써 가족을 포함한 청소년 계층을 대상으로 매우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을 제공함으로써 문화예술을 통해 국민들이 여가와 문화향유력을 증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인천 중구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을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중 최근 3년은 꾸물꾸물문화학교 동네예술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꾸물꾸물문화학교 동네예술대학은 사람이 모이고 소통하는 장으로서의 ‘마을학교’를 추구한다. 문화예술교육과 커뮤니티 아트를 기반으로 하여 “지역, 삶, 일상 그리고 공동체” 활동을 만들어 가는 것이 꾸물꾸물문화학교의 핵심 키워드이자 방향성이다.

여기서 마을학교란, 지역과 더불어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기반으로 한 교육과정들이 설계되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교육프로그램들이 운영되어, 사람도 성장시키고, 문화와 예술이 있는 삶 그리고 공동체의 비전을 만들어나가는 작은 출발 지점으로써의 마을학교를 그려보았다. 교육프로그램들의 운영 방식에 있어 꾸물꾸물문화학교 동네예술대학은 마을의 인프라 혹은 지역의 문화적 기반들을 네트워킹하여 교육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핵심이다. 다시 말해 교육들이 ‘마을’ 곳곳에서 이루어진다면 어떨까를 상상해 보았다. 즉, 동네의 다양한 인프라들이 ‘동네예술대학’의 강의실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네 목공소는 동네예술대학의 목공 실습실이 되고, 동네의 식당은 동네예술대학의 요리강의실, 동네 어떤 곳의 사진실, 판화실, 칠통마당의 전시실 등 동네 곳곳의 인프라들, 문화자원들이 ‘동네예술대학’의 강의실이 되고, 동네 전체가 ‘동네예술대학 캠퍼스’가 되는 것이다.

동네예술대학에는 목공, 요리, 차(茶), 생활도예, 흑백사진, 커뮤니티 판화, 일상드로잉, 예술인문학 수업인 명화의 사회사 등의 수업을 개설하였고, 주민 참여자들은 듣고 싶은 수업을 선택적으로 수강할 수 있다. 교과목들을 구성하면서 고민하였던 지점은 “일상 속 예술”로써, 생활 속에서의 문화예술의 창작을 통한 향유력을 향상하기 위한 방법론적 숙고였다. 예술 전문가를 양성해 내는 과정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이 가진 고유한 역할을 일반인이 좀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창작하며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다. 이러한 교과목의 구성에 있어 단순한 기예를 중심으로 편성하기보다는 무엇보다 ‘인간의 신체활동과 감각의 확장’이라는 측면을 고려하였고, 동네예술가 수행과정과 동네예술론 교양과정의 커리큘럼으로 구성하였다.

동네예술대학에 참여하는 수강자의 연령대는 40대부터 70대까지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직장인, 주부, 프리랜서 활동가, 퇴직자 등이 다수이며 시인이나 연극인 같은 예술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동네예술대학을 3년간 진행을 하면서 가장 크게 목격하게 되는 것이 바로 참여 주민들의 여가시간 활용이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주 52시간 근로제가 되면서 평일 저녁 수업에도 참여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났다. 앞서 언급하였던 과목중 요리, 차(茶), 예술인문학<명화의 사회사> 수업은 평일 저녁에 개설되어 운영되었던 수업이다. 이 세 수업은 여타 다른 과목들에 비해 가장 수강인원이 많은 수업이고 직장인들의 참여도가 높았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전유물이던 ‘요리’가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상당수의 남성도 요리에 관심을 갖는다. 미혼남성의 경우 생존과 자취를 위해, 기혼남성의 경우 가사분담을 위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기본적으로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아마도 미디어의 먹방이나 요리방송들이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이다. 차(茶) 또한 그렇다.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어 있는 현대인들도 때로는 차 한 잔의 여유를 갖고 싶어 한다. 동네예술대학의 차 수업은 여러 가지 차(茶)에 대해 학습하고 맛을 보고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 일상에서의 차(茶) 문화를 체험하였다. 참여자들은 이러한 점에 빠져들어 퇴근 시간 이후 피곤한 기색에도 불구하고 여가를 즐기러 온다.

예술인문학 수업인 <명화의 사화사>는 요리를 하거나 차를 맛보는 체험이 아닌 교양수업이다. 이 수업은 여러 시대에 걸쳐 우리가 명화라고 부르는 작품들을 통해 당시에 그 작품이 그 시대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고 어떤 의미가 있기에 후대에 명화가 되었는지에 대한 사회사를 학습하는 시간이다. 이 수업은 예술작품과 미술사를 기반으로 하는 강의식 수업이다. 그 이전에 필자는 여러 미술사 강좌들을 들어본 경 경험이 있다. 늘 강사의 강의와 조용한 분위기 그리고 수업 이후에도 별다른 질문이 없이 끝나는 모습이 보통 미술사 수업의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그런데 <명화의 사회사> 수업에서는 수업 이후 꽤 많은 질문과 토론이 이어진다. 이러한 변화,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 한 축에는 ‘여행’이 있었다. 한국 사회는 1988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국내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일 년에 집계되는 해외여행객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여행은 여가 생활의 대표적인 테마다. 이러한 해외여행은 단지 여행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예전의 미술사 강좌는 전문가들이 배우고 보고 아는 정도의 작품과 내용으로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최소한 일반인들도 여행을 통해 한 번쯤은 가서 직접 현지에서 보았던 작품들을 수업에서 재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예술인문학 수업에 흥미를 느끼게 되는 동기가 된다. 예전에는 환등기로 비친 이미지를 통해 작품을 보고 설명을 들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환등기로 비친 이미지를 보더라도 이미 직접 가서 보았던 기억을 소환해내어 강의 내용과 더불어 입체적으로 학습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여행의 경험들은 강의 내용에 대한 적극적인 질문이나 토론으로 이어진다. 

동네예술대학 참여자 중에는 부부가 세 쌍이 있다. 한 부부는 50대 후반이고, 두 부부는 70대 퇴직자 부부다. 이 세 부부는 각자 따로 듣는 수업이 있고, 부부가 같이 듣는 수업이 있다. 부부가 같이 듣는 수업도 두 세 과목, 많게는 네 과목에 이른다. 특히 퇴직하신 노부부가 이러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통해 취미를 같이 하고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점에서 큰 울림이 있다. 두 쌍의 노부부는 동네예술대학을 3년째 재학중이다. 이 부부들은 참여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손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라든지,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타의 모범적이다. 그래서 참여자 중 무게 중심이 되어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공동체적 활동이 만들어진다. 이들 부부가 다른 참여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좋지만, 그 무엇보다 대단하다고 느끼는 점은 부부 내외간의 호흡이다. 한국사회의 고연령층의 가정은 보편적으로 가부장적이거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연령층이 높으면 의례 부부간에 같이 취미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거나 상상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들은 명화의 사회사를 비롯하여 생활도예, 커뮤니티 판화, 일상드로잉 등 수업을 신청하여 듣는다. 최소 일주일에 3일은 동네예술대학의 수업을 들으며 노년의 여가를 보낸다. 수업 시간 외에도 틈틈이 찾아와 자율학습을 하기도 한다. 이런 노부부가 문화예술교육 활동들을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삶의 시간’을 회복한다는 관점에서 실버 문화예술교육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노령화가 되어 가면서 그에 따른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남성들의 경우 퇴직 이후 급격한 사회활동 저하와 경제 활동의 단절 등은 ‘삼식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고, 반면 중년 여성들은 외부 활동이 왕성해져 이 또한 노부부 간 활동의 균형이 맞지 않아 갈등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노년 부부의 보편적인 모습이라면, 반면에 이렇게 노년의 부부가 문화예술 활동을 취미생활로 여가를 함께 해가며 삶의 시간을 회복해 가는 모습은 매우 좋아 보인다. 노인들의 여가문화 변화 역시 점점 더 가속화되리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해 가고 있지만, 정책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며 무엇보다도 그 중심에 ‘사람’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모습 중 하나는 여성들, 특히 주부들의 일상 속 예술 활동을 함으로써 여가와 자기 계발의 추구다. 직장 여성은 직장 때문에, 가정주부들은 육아와 가사 일 때문에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든지 자기 계발은 엄두도 못 내는 것이 보편적이고 여전히 상당수가 그렇다. 동네예술대학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직장인, 프리랜서, 주부 등이다. 이들은 출석률만큼이나 수업 참여도도 높다. 물론 이들도 경제적 활동도 하고 주부로서의 엄청난 가사 일을 모두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배워보고 싶었던 수업을 신청하고 성실히 수업에 임하고 있다. 바쁜 일과 중에 이렇게 시간을 따로내어 활동하는 게 힘들지 않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들은 동네예술대학에 나와서 익히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웃고 즐기는 시간이 자신만의 힐링 시간이라고 답한다. 주위에도 이러한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과 이러한 활동을 경험해 본 결과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는 의견이다. 필자는 남성의 성별을 가진 사람으로 여성, 특히 가정주부로서 어떤 삶의 패턴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 봐야 필자의 모친이 가정 내에서 어떤 일들을 감당해 내고 있는지 정도를 어렴풋이 알 뿐이다. 필자의 모친은 나이가 들어가는 동안에도 이러한 여가 생활을 가져보려는 엄두를 못 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여성들도 자신의 삶과 일상에서 여가와 힐링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삶을 곰곰이 돌아보고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그때 무엇보다 변화시켜야 할 것은 바로 일상의 삶이다. 삶이란 스스로 자기 변화하고 자기 성취하는 쉼 없는 움직임이다. 그런 삶은 자기 자신을 느끼는 일이자 그 존재의 모든 지점에서 자기 자신을 깨닫는 일이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가장 피하고 싶은 일상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일상은 마치 당연하게 주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영역이다. 일상의 영향력은 대개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커지고 세밀한 부분들에까지 깊이 스며든다. 이러한 일상의 변화가 여가와 더 나아가 삶과 삶의 시간적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동네예술대학의 문화예술교육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적으로는 학습자 중심의 접근이고, 예술적으로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의 확대를 의미하며, 문화적으로 대안적 삶과 미래를 위한 노력이다. 이 글의 맺음은 동네예술대학에서 활동하였던 분들이 직접 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유년 시절에 잠시 화가를 꿈꾸기도 했던가. 화가까지는 아니라도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을 맘껏 누리지 못했던 환경들, 형편들, 그래서 남았던 아쉬움이 충족되는 소중한 시간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선다. 잠시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이 밀려나고 학생이 되는 시간이다. 선생님의 자상한 설명, 가르침, 무엇보다 칭찬! 동료들과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 그리고 작업에 몰두하는 짧고 긴 시간들. 서로의 작품을 들여다보며 진심으로 전하게 되는 격려와 칭찬들. 이 시간들의 의미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지난 꿈이나 아쉬움만을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3년의 시간은 내 생각과 시선, 일상에 기분 좋은 변화를 가져왔다. 아내와 여행을 하면서 풍경스케치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손녀와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를 뭉개며 노는 시간이 행복하다. 가족사진을 찍고 액자를 만드는 작업은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즐거움이다. ”
-이○○ (동네예술대학 3년 차)-

 

“일상의 삶이 새로움을 잃어갈 때 문화예술교육을 통하여 내 삶과 타인의 삶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상 안에서의 예술을 통하여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내 삶을 표현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소외되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사진과 미술을 통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네 예술대학인 꾸물꾸물문화학교는 나에게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인생의 직업적 은퇴기에서, 새로운 문화적 생성기로 전환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
-김○○ (동네예술대학 2년 차)-

 

“학창 시절에 기다리던 방학이 꾸물꾸물문화학교에서는 방학이 반갑질 않습니다. 그만큼 내 일주일 시간 중에 꾸물꾸물문화학교는 내 일부분이 된 듯 꾸물꾸물학교 가는 날이 기다려지고 즐겁습니다. 연말에 있는 과제 전을 비롯해 멋진 수료증까지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과 얼마나 기쁜지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널리 알려주고픈 공간입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판화, 사진, 예술 인문학, 드로잉, 도예 수업이 펼쳐지는 꾸물꾸물문화학교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세계로, 제 꿈을 담으며 소확행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일상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이 저에게 주는 행복함이 일상의 소확행이 되고, 꾸물이처럼 앞으로 나가며 다양한 문화예술 세계로 새로운 경험을 하니 내 삶의 위안과 회복이 되는 것 같습니다. 꾸물꾸물문화학교에서 접한 일상의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문화예술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내 삶이 즐겁고, 꾸물이가 되어 꾸물꾸물문화학교에서 나를 성장하며 힐링합니다.”
-박○○ (동네예술대학 2년 차)-

윤 종 필 (尹鐘弼 JongPil YOON)
계원예술대학교를 조형예술과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예술대학교와 쌩떼티엔느 예술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였다. 현재 공공적 예술 현장 활동가, 문화예술교육 매개자 및 기획자, 문화예술 기획 및 비평, 다문화교육 콘텐츠 기획 및 진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과 교육, 기획 활동을 통해 사회적 예술을 실현해 가는 사회적 예술가(커뮤니티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인하대학교와 대진대학교 문화예술교육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인천광역시 문화예술교육지원협의회, 서해평화포럼, 인천문화포럼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에서 커뮤니티 연대 중심의 대안적 예술 활동을 실험하는 컬렉티브 커뮤니티 스튜디오525(CCS525)와 꾸물꾸물문화학교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2017 인천 왈츠 <보물지도>를 경험하면서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인천왈츠에 참여해 주셨던 분들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참가자들의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문화예술로 생업을 선택하신 분들의 이야기까지 예상하지 못한 그들의 변화된 삶을 들려주셨습니다. 문화통신3.0에서는 인천왈츠를 스쳐갔던 많은 인연 중에 2017년 시민들과 함께 <보물상자>를 연출하셨던 송용일 연출가님과 2018년 <강화 1866 삼랑성분투기>에서 탐사단 역할을 맡았던 박소영 님을 만났습니다. 인천 왈츠에서 지난했던 그들의 경험과 무대 이후에 전개되는 삶의 이야기를 문화통신3.0 독자들과 공유해 봅니다.

 

 

2017년 인천왈츠 시민창작 뮤지컬 <보물지도>가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송도 트라이볼 공연장에서 개최되었다. 이 작품은 인천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행사로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극본을 만들고 시민들이 배우로 참여한 공연이었다. 본인은 이 행사에 연출로 참여하고 고동희, 최종혁, 김정열 씨가 각각 대본, 작곡, 안무에 참여하였다. 그 외에 극단 십년후가 주관으로 함께하였다. 그 결과 모두 한마음이 되어 성공리에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공연을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새삼스레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처음 연출제의를 받았을 때 이런 걸 왜 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했다. 공연 문화의 대중화? 기성극단들의 불신? 과연 누굴 위해서? 등 의문이 계속 이어졌지만, 인천왈츠는 올해 10년차가 되었다고 한다.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은 채로 인천왈츠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반응에서 긍정의 답을 찾고자 한다.

인생에서 누구나 20대 후반과 30세 전후로 원하는 길과 가야 할 길 사이에서 선택해야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원하는 길은 멀고 안개 낀 첩첩산중이라서,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 보이는 길을 택한다. 이처럼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여 누구든 가던 길을 선택하지만, 항상 가지 않는 길에 대한 동경은 남아있다. 이는 인천왈츠에 참여한 나이 든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물론 무대 경험을 하고자 해서 참여한 젊은 그룹도 있었다.) 특히 70대 허노인 역을 맡은 배우의 참여 동기는 더욱더 그러하다. 아마 참여자 대다수가 그런 막연한 동경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배우와 연주자로 모집하여 <보물지도>라는 뮤지컬 공연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엑스트라가 아닌 주연과 조연으로 무대에 서면서 관객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어낸 것이다. 의미 있는 일이다.

2017년 7월 즈음에 참가자 공개 모집을 했었다. 많은 참가자가 신청하여 일정 비율을 탈락시켜야 했지만 참여 동기를 읽어보니 누구를 선별해서 탈락시킨다는 게 죄짓는 느낌이었다. 연습 과정에서 또는 배역 결정에서 이탈자가 생길 것이라 예상되어 실력보다는 참여자들의 의지를 주요하게 반영하여 모두 합격시켰다.

무지하게 더운 날, 금쪽같은 토요일 휴일을 이용하여 우리는 연습에 돌입하였다. 서로를 알기 위한 연습부터 누가 어떤 소질과 개성을 가졌는지에 대한 탐색 작업이 초반에 시작되었다. 하나 배우로 무대에 선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모두가 의욕은 충만했지만, 마음 따로 몸 따로 움직였다. 배우가 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몸소 느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11월 공연이 가능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전문 배우는 아니더라도 보는 관객들에게 실망은 주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주 1번, 한 달에 4번의 만남으로, 라이브 뮤지컬을 해야 한다는 것이 어림없어 보였다. 정해진 극본이 없으니 모든 것이 올 스톱 상태였다. 미리 극본이 정해졌으면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 텐데 인천왈츠 취지에 맞게 극본도 시민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언제 극본을 쓰고 연습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우선 첫 번째로 무엇을 이야기할지를 참가자들과 의논하기 시작했다. 소통, 화합, 사랑, 등을 담은 우리 동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들이 주민이고 주인공이니까 자연스럽게 내용이 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참여자들의 의견을 청취한 후 고동희 작가의 1차대본이 어렵게 나왔다. <보물지도> 소재는 매우 흥미로웠다. 하지만 모두를 아우르기에는 정리가 필요했고 여러 번 각색을 거쳐야만 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초조와 불안의 연속이었다.

9월에 들어서야 겨우 극본의 틀이 잡아갔다. 작곡가 최종혁 선생님께 신속하게 극본을 전달했다. 눈치 빠른 최종혁 선생님은 몇 가지 무리한 부탁에도 이러한 모든 상황을 간파하고 신속하게 좋은 곡을 만들어주셨다. 이래서 관록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뮤지컬의 생명은 음악인데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때부터 연주팀도 할 일이 생겼고 참가자들도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제는 배역 결정이다. 다수가 참여할 수 있도록 극본을 만들었지만, 그래도 주연과 조연 선정은 필수다. 역시나 배역에 불만은 품은 이탈자가 나오고 사정이 안 좋아져 중도 탈락자도 생겼다. 예상했던 바라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대략 40여 명 정도를 정예 멤버로 두고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었다. 배역을 맡은 이상 이제부터 빠지면 전체 진행에 누가 된다고 몇 번을 역설하였지만. 휴가철 가족여행과 바쁜 회사업무 등으로 더는 연습하기 어려운 참여자가 나왔다. 오죽하면 안무 선생님은 단체 군무에서 몇몇 배우를 빼야했었다. 한 달에 4번밖에 모이지 않아 한번 빠지더라도 공연 내용의 절반이 지나간다. 불가피하게 배역을 이동하고 없던 역할도 새로 생겨나고 적극적인 참여자를 중심으로 인물도 바뀌어 갔다. 배우에 인물을 맞추다 보니 매주 대본이 바뀌는 상황으로 연출할 수밖에 없었다. 10월에 들어서 포스터가 나오고 언론에 보도가 되자 모두가 조금씩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무대에서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과 초조함이 드러났다. 자진해서 휴일뿐만 아니라 평일 밤에도 연습에 매달린다. 좀 늦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출처 :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출처 :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그랬던 찰나에 주요배역을 맡은 한 배우가 연락이 안 되더니 회사 사정상 더 이상 공연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올 것이 온 느낌이다. 마음과 현실이 충돌을 일으키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말도 못 하고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을까 하는 생각에 더욱 안타까웠다. 결국 긴급 처방으로 숙련된 배우로 교체했다. 공연 하루 전 무대장치가 들어서고 조명이 설치되었다. 마지막 리허설을 마치고 나서야 이 정도면 되었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우려는 기우로 바뀌어 공연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리에 잘 마무리되었다. 많은 관객의 박수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연장공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등 서로 부둥켜안고 지난 과정에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장 6개월에 걸친 긴 여행이 끝이 났다. 아직도 카톡 단체 방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좋은 공연을 함께 보러 가기도 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 정도면 갈증은 해소되었을까?

재작년 인천왈츠를 경험하면서 대학 시절에 연극을 처음 시작할 때가 생각난다. “연극은 내 인생에 있어서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라며 마치 돈키호테처럼 젊음 하나를 가지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현실에 부딪힐 때마다 이 짓을 해야 할지, 그만두어야 할지를 하루에 12번 생각해야 하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서른을 넘기고 나서야 연극인의 길을 결정했을 때 내 삶은 고난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연극이란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라는 어떤 배우의 말처럼 연극을 한다는 것은 인생 전부를 걸지 않지 않으면 안 되는 도박과도 같았다.

배우를 하려 한다면 생각하길 바란다. 연극 그 자체를 추구하는 마음이라면 그는 언젠가 배우가 되어 있겠지만 주목받는 스타를 꿈꾼다면 연극은 배우라는 간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허망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번 인천왈츠를 통해 참여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세월이 바뀌고 시대가 바뀐다고 연극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번 인천왈츠 경험을 통해서 현실과 이상을 구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후 인천왈츠 뮤지컬 <보물지도> 작품은 2018년 극단 십년후에서 <신포동 장미마을>이라는 연극으로 재탄생 되었다. 인천연극제에 참가하여 대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연극제에 인천 대표로 출전하여 은상을 수상했다. 또한 참가자 중 일부는 본격적인 배우를 해보겠다고 극단에 찾아와 함께 공연하였다.

인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인천왈츠는 공연을 통해 참여자들에게는 배우의 갈증을 해소하고 극단은 신작을 선사하고 동시에 인천공연예술의 다양성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출처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송 용 일 (宋鏞日. SONG YONGIL)
* 2000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졸업 (연극전공)
“무대미술의 한국적 양식화”- 창극 춘향전을 중심으로 논문발표.
* 2001년 일본 일본대학교 연극영화과 객원연구원 수료.

* 1997–2003년 대경대학. 중앙대학. 청주대 연극과 무대미술 출강(7년)
* 2003–2007년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연극과 겸임교수(4년)
* 2007–2008년 중국 연변대학 연극과 초빙교수(1년)
* 2009—2012년 인천대학교 출강.(4년)
* 현 극단“십년후” 대표및 상임연출.

* 제 3회 대한민국연극제 : 신포동 장미마을 은상수상 ( 2018년)
* 제 1회 대한민국연극제 “ 배우우배” 은상수상(2016년)
* 제 24회 전국연극제 “사슴아 사슴아” 대통령상. 연출상 수상(2004년)
* 인천 연극제 연출상 및 대상 수상 (5회)




2018 인천왈츠가 나에게 남긴 것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인천왈츠에 참여해 주셨던 분들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참가자들의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문화예술로 생업을 선택하신 분들의 이야기까지 예상하지 못한 그들의 변화된 삶을 들려주셨습니다. 문화통신3.0에서는 인천왈츠를 스쳐갔던 많은 인연 중에 2017년 시민들과 함께 <보물상자>를 연출하셨던 송용일 연출가님과 2018년 <강화 1866 삼랑성분투기>에서 탐사단 역할을 맡았던 박소영 님을 만났습니다. 인천 왈츠에서 지난했던 그들의 경험과 무대 이후에 전개되는 삶의 이야기를 문화통신3.0 독자들과 공유해 봅니다.

 

오랫 동안의 무력감에 지쳐 괴로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우연히 신청하게 된 2018 인천왈츠. 퇴근길 역 플랫폼에서 포스터를 발견하자마자 10년 전인 2008년 11월, 일본 유학 시절에 극단에 소속되었던 일본인 친구의 권유로 학교 내 소극장에서 프로젝트로 함께 연극을 했던 그때의 기억들이 순간 떠오르며 생기 넘치던 10년 전 그때의 나에게 당당한 모습으로 응답하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솟구쳤다.

첫날부터 오랜 시간 동안 몸풀기, 연기 기초 연습, 안무 기초 등을 연습하였다. 솔직히 단순해 보이고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로 인해 조금이라도 내 안의 갑갑한 마음과 생각을 지우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일단 뭐든 주어지는 대로 해보자, 참여하는 데 의의를 두다 보면 뭐든 재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임했다. 그러다가 역사탐사단의 일원으로 극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극적으로 역할을 줘서 정말 감사했다. 2018 인천왈츠에서 선보인 뮤지컬 「강화 1866 삼랑성분투기」는 장르적으로는 시대물이지만 역사탐사단 역할은 현대 인물이기 때문에 의상, 소품 모두 자신이 컨셉을 잡고 준비할 수 있어서 가장 매력적이고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나는 진중한 역할보다는 밝고 즐겁고, 재미있으면서도 임팩트 있는 역할을 맡고 싶었고 역할에 따라서 나 역시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세부 컨셉까지 완전히 확정되고서는 연습 날은 무조건 베레모, 멜빵바지 차림으로 갔다. 무대에 올라가기까지는 두 달여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무대와 의상 느낌을 내고 싶었고, 연습할 때만이라도 나 자신을 벗어나 탐사단의 발랄한 모습으로 지내고 싶었다.

탐사단의 역할은 뮤지컬의 앙상블, 코러스처럼 극을 이끌어가면서도 전체적으로 받쳐주는 중요한 역할이다.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 안무, 퍼포먼스 등 곳곳에 투입되어야 했다. 본격적으로 안무 집중 연습시간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안무 선생님이 내 차림을 보시더니 통통 튀는 친구가 앞에 있어야 한다며 제일 뒷줄 구석에 서 있던 나를 제일 앞줄 중앙 쪽으로 끌고 오셔서 당황했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살면서 어디 나가서 춤을 춰 본 적도 없다. 운동신경도 둔해 어디 가서 몸으로 하는 건 절대로 못 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았었다. 춤을 못 춘다고 그랬지만 괜찮다며 나를 다독이셨다. 본의 아니게 맨 앞줄에 서게 되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서 더욱 틀리면 안 되겠다,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서도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고 같이 따라 움직여 주셔서 감사했다. 그래서 더 자신감을 가지고 연습에 임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연습한 곡이자 극의 오프닝 곡이었던 “삼랑성분투기”는 정말 내 인생 안무 곡이다. 사실 나는 삼랑성분투기를 연습하고 춤추고 모두 함께 맞춰보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그냥 음악에 맞춰 춤추는 그 자체가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러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연습할 때 지켜보던 많은 분들이 나에게 표정이 정말 밝다, 동작이 크고 시원시원하다, 춤을 맛깔나게 잘 춘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에너지가 넘친다, 마치 살아서 팔딱대는 생선(!)같다 등등… 셀 수 없을 만큼 칭찬의 말씀들을 굉장히 많이 해 주셨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한 번도 이야기해보지 못한 분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고 사람들과 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다. 춤을 추는 나를 보고 웃고 즐거워하며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보며 내가 정말 살아있구나, 뭔가를 해내고 있구나라는 마음에 그간의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신이 나서 없던 힘도 솟아나는 것 같았다. 마치 그동안 죽어있던 육신에 생기가 들어간 느낌이었다.

2018 인천왈츠<뮤지컬 강화 1866 삼랑성 부투기>에서 역사탐사 멤버로 있을 때의 모습, 오프닝곡 삼랑성 분투기 무대 중
(사진 출처 : 인천문화재단)

그렇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할수록 웬걸 내가 해야 할 안무, 퍼포먼스 역할은 조금씩 늘어나게 되어 급기야는 잠깐 혼자 앞에 나와서 댄스 타임을 가지게 되는 등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판이 커지고 비중도 나름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솔직히 부담도 있었지만 사실 부담보다는 기대가 훨씬 컸다. 점점 밝아져 가는 내 모습을 보며 해내고 나서의 나의 모습은 얼마나 변해 있을까, 얼마나 자라 있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공연 날, 객석을 앞에 두고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연주팀의 생음악과 모두의 합창에 맞춰 춤을 췄을 때는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마치 이 극 전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전에는 흥만 넘쳐서 집에서 혼자 또는 가족들 있을 때 장난으로 리듬 타고 가끔 코인노래방에서 혼자 노래하고 막춤을 추는 게 전부였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극심한 우울 증세를 보이고 나서는 못하게 되었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처음에 내가 이번 인천왈츠에 참여해서 뮤지컬을 한다고 했을 때 놀라면서도 정말 기뻐했다. 내 동생은 제발 언니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까불거리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었고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며 엄청나게 만족해했다. 오프닝 곡인 “삼랑성분투기” 무대에 섰을 때, 중앙 앞자리에서 웃음 가득 넘치는 얼굴을 하고 지그시 나를 바라보던 가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틀간의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면서 이제 진짜 나의 무대를 만들었구나. 이루어냈다는 벅찬 마음과 함께 꿈길을 걸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내려오는 게 너무 아쉽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그래서 커튼콜 후 갑자기 몰려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에 휩싸여 무대 뒤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이제 나는 다시 내 현실과 부딪치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이전처럼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거라고, 나를 단단히 채워주고 세워준 이 무대가 언제나 내 안에, 내 앞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을 거라고… 뜨겁게 마음을 다졌다.

2018 인천왈츠<뮤지컬 강화 1866 삼랑성분투기> 공연 모습
(사진 출처 : 인천문화재단)

뜨거웠던 이틀간의 공연이 끝난 후에도 2018 인천왈츠에 참여했던 멤버들과의 교류는 계속되었다. 몇 달 동안은 거의 매주 만나서 친목 모임을 가졌다. 모두가 가족 같았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소중한 친구 같았다. 프로젝트로 모였지만 이대로 뿔뿔이 흩어지는 게 싫었다. 그런데 다행히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나 보다.

사실 인천 왈츠 공연 당일, 최종 리허설 전에 다 같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대원군 역할을 맡으셨던 김병주 선생님이 괜찮은 대본이 하나 있는데 같이 연극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해주셨다. 대본의 주인공 역할이랑 내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린다며 작품 소개를 선뜻 제안해 주신 것이다. 당시에 프랑스병 역할이었던 김경민 동생도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나와 경민이 모두 이대로 흩어지는 건 아쉬우니 뭔가 하나라도 같이 했으면 싶어 동의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열 몇 명 남짓. 2019년 1월 첫째 주 토요일에 첫 모임을 하고 김병주 선생님의 친한 연극 선배인 극단 MIR의 이재상 대표님과도 만나 여러 조언을 받아서 “시민극단 더 인연”이라는 극단을 창단하게 되었다. 극단 명은 “인천의,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시민극단이면서 인천왈츠라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만난 것도 큰 인연이라는 의미가 있다. 1월 극단 창단 후, 인천문화재단의 지원과 극단 MIR의 협력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MIR 이재상 대표님께 연기 워크숍을 받고 MIR 소속 배우이신 양은영 연출님과 박은희 조연출님의 지도로 꿈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현자를 찾아서”라는 연극 공연을 만들어 갔다.

연극은 뮤지컬과 비슷해 보이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사실 뮤지컬로 탐사단이라는 앙상블 역할을 하며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나로서는 오롯이 대사와 표정, 행동 등의 연기만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는 연극이 어렵지만, 꼭 도전해보고 싶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그리고 막상 하려고 하니 나름의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잘 풀리지 않아 고민도 많이 했다. 이거 정말 잘하는 걸까. 내가 과연 잘 선택한 것일까… 출근하면서도 항상 대본을 손에 쥐고 다녔고 퇴근길에 시간이 맞을 때면 대학로 쪽에 들러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하며 다른 배우들은 다들 어떻게 하나 살펴보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 내가 맡은 ‘한스라는 아이가 내 안에 들어오려면, 아니, 내가 한스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면서 고민을 하고 많이 울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건 또 한스였다. 한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읊조리고 읊조릴수록 그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도록 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공연 전날까지도 고민하던 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연출, 조연출님의 진심 어린 지도와 함께 우리 극단 사람들의 따스한 격려를 받으며 한스의 순수한 마음, 밝고 강인한 의지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이 모든 게 나 혼자의 역량이 아닌 함께한 배역들과의 호흡,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7월 13일 토요일. 공연 당일에 한스에 많은 관객분이 감동했고 인생의 깊은 깨달음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그리고 나에 대한 호평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분들의 호평을 들었을 때도 내 이야기인 마냥 그저 즐겁고 행복했다. 공연 후에는 인천왈츠가 끝났을 때처럼 울지는 않았다. 오히려 끝났다는 아쉬움을 넘어 이제는 진짜 시작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소위 게임에서 말하는 굉장한 아이템을 얻은 느낌이었다. 무대, 사람들, 그리고 끈끈한 전우애(!)를 말이다.

시민극단 ‘더인연’ 창단공연, 연극 <현자를 찾아서> 포스터
(사진 출처 : 시민극단 더 인연)

시민극단 ‘더 인연’ 창단공연, 연극 <현자를 찾아서> 공연일 단체 기념사진, 연출, 스탭으로 협력하여 주신 극단 MIR분들과 2018 인천왈츠 몇몇 멤버들과 함께
(사진 출처 : 시민극단 더 인연)

그리고 인천왈츠 후 생긴 또 다른 변화는… 올해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 인천왈츠를 통해 알게 된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내가 춤을 출 때 매우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내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그러한 즐거움,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퇴근길에 댄스학원에 들러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고 함께 춤을 추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일상의 새로운 활력소를 찾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다. 댄스라는 건 그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인 줄 알았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내 마음속 허들을 무너뜨려 준 인천왈츠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얼마 전에는 강남역에서 학원 주최로 댄스 버스킹을 해보았다. 뮤지컬, 연극 무대에 서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긴장감이 있었지만 새롭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나와 같이 댄스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즐거움 중 하나인데 강남 댄스 버스킹 공연을 같이했던 팀 멤버가 앞에서 말한 연극 “현자를 찾아서”를 보러 와 주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인천왈츠 뮤지컬에 내가 출연하게 되면 그때 또 불러 달라고, 또 보러 올 거라고도 했다!^^

댄스 버스킹 공연하기 전 연습실에서
(사진 출처 : 박소영)

돌이켜 생각해보면 2018 인천왈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그간 현실에 갇힌 나를 지우고 내 안의 잠재된 “내가 진짜로 되고 싶었던 나”를 앞으로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무대 위에서는 가능해지는 것,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닌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더욱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렇게 나의 무대를 만들고 꾸려나가면서 ‘현재’라는 것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는 미래를 위해 현재가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후회하며 과거에 집중하게 되는 일상 속에서 나에게 진정 현재를 위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서 있는 무대에서 풀어나가는 뮤지컬, 연극, 댄스 등의 활동은 나에게 현재를 즐기는 법과 현재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일상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또 다른 에너지를 제공하였다. 일상생활과 취미활동을 병행한다는 것이 체력적으로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지만 에너지를 소모하는 만큼 즐거운 에너지를 부여받는 느낌이 들어 일상이 더욱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나 혼자서 스스로 깨달아진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있고 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시고 이끌어주신 연출가님, 조연출님, 안무선생님, 모든 스태프와 관계자분들이, 함께 해주시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2018 인천왈츠는 정말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면서 함께 만들어간 너무나도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자 하나의 기회였고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그간 함께한 모든 순간순간이 나에게 보석보다 값진 시간이었고 함께한 모두가 나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요, 귀중한 선물이다. 2018 인천왈츠, 뮤지컬 「강화 1866 삼랑성분투기」는 내 인생의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박소영 (朴昭怜, Park So-young)
고려대학교 대학원 중일어문학과 석사졸업

일본 와세다대학 문학부 교환유학, 도쿄대학 대학원 비교문학비교문화 연구생 과정 수료
현재 국내외 대기업, 관공서, 학교, 각종 문화센터 등지에서 일본어 출강 강사로 활발히 활동 중
오랫동안 공부를 하던 시절부터 학문적인 분야보다 서브컬처에 관심이 많았음.
인천왈츠를 시작으로 각종 공연에 참가하며 서브컬처의 소중함과 워라벨의 소중함을 다시금 알아가고 있는 중.




인천왈츠 10주년 Homecoming

흔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는 인천왈츠, 지난 10년 간의 발자취는 어땠을까?
인천왈츠의 큰 틀은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하는 공연예술 프로그램’이다. 2010년과 2011년에는 콘서트 형식으로, 2012년부터는 창작뮤지컬 형식을 통해 다양한 공연을 선보여 왔다. 특히, 인천왈츠 뮤지컬 버전을 통해 <어떤 여행 시리즈>, <소원책방>, <꿈스터디 꿈스케치>, <1936, 그날>, <보물지도>, <강화 1866, 삼랑성 분투기> 등 지역을 소재로 한 소중한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인천왈츠가 10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 창작에 힘써주신 협력예술단체, 그리고 열성적으로 활동해주신 시민참가자 분들의 역할이 컸다. 이분들이 있었기에 인천왈츠가 지속될 수 있었다.
올해에는 극단 작은방(신재훈 연출)과 협력하여 재미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2019 인천왈츠 참가자 모집이 오는 8월 4일(일)까지 진행되므로, 10주년을 맞이한 인천왈츠에 함께하고 싶은(과거 인천왈츠 참여자 및 신규 지원자, 뮤지컬 무경험자)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바란다.

역대 인천왈츠 소개

2010 인천왈츠, 함께 만드는 콘서트

일시 | 2010년 12월 8일 오후 7시 30분

장소 |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

출연 | 태싯그룹, 인천재즈앙상블(지휘 정성조), 혜광오케스트라(지휘 이경구), 인천시민합창단(지휘 윤학원)

2011 인천왈츠, 함께 만드는 콘서트

일시 | 2011년 12월 8일 오후 8시

장소 |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

출연 | 희망오케스트라, I-신포니에타, 기타마루,예그리나, 토마토, 동물원, 크라잉넛, 인천직장인밴드연합 ‘밴하사’

2012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어떤 여행>

일시 | 2012년 12월 9일 오후 7시

장소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연출 | 추민주

극작 | 류미현

작곡 | 김예림

2013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어떤 여행> 시즌2

일시 | 2013년 7월 21일 오후 3시, 7시

장소 |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

연출 | 추민주

극작 | 류미현

작곡 | 김예림

2014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소원책방>

일시 | 2014년 12월 7일 오후 3시, 6시

장소 | 트라이볼

연출 | 추민주

극작 | 류미현

작곡 | 김예림

2015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꿈스꿈스>

일시 | 2015년 10월 1일 오후 5시 / 2일 3시

장소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연출 | 이재상

극작 | 이재상

작곡 | 최경숙

2016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1936, 그날>

일시 | 2016년 10월 1일 오후 5시 / 2일 3시

장소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연출 | 이재상

극작 | 이재상

작곡 | 최경숙

2017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보물지도>

일시 | 2017년 11월 11일 오후 4시 30분 / 12일 저녁 7시 30분

장소 | 송도 트라이보울

연출 | 송용일(극단 십년후)

극작 | 고동희

작곡 | 최종혁

2018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강화1866, 삼랑성분투기>

일시 | 2018년 11월 17일 ~ 18일 오후 4시

장소 | 송도 트라이보울

연출 | 이상희(극단 집현)

극작 | 김지영

작곡 | 신영길


2019 인천왈츠 담당자




인천 청년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청년참여예산’
-인천청년네트워크 강효정 위원장 인터뷰

올해 3월, 인천청년네트워크에서는 청년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주민참여예산을 신청하였다. 사업제안이 통과되어 50인의 추진단을 모집하였고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총 3번에 걸쳐 예산학교를 진행했다. 아직은 청년들에게 낯설기만 한 청년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해 설명을 듣고자 인천청년네트워크 강효정 위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위원장님, ‘주민참여예산제’ 란 무엇인가요?
A. 주권자인 시민이 자신과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예산을 편성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분권과 자치의 핵심을 이룹니다. 시민이 참여해 자신들이 겪고 있는 지역 문제를 논의하고 의제로 발굴해서 해결방안을 제시합니다. 또, 전문가와 함께 검토해서 숙의하고 토론한 뒤 표결에 부치는 공론화 과정을 진행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예산안은 의회에서 심의된 뒤 집행됩니다.

Q. 왜 청년참여예산을 추진하게 되셨나요?
A. 청년들의 참여기구인 인천청년네트워크를 1년 동안 해오면서 청년들이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지역사회문제에 관해 토론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문제를 발굴하고 원인을 찾고 해결방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것이 행정에 반영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프로세스가 없다 보니 답답하고 무기력했던 것 같습니다. 청년들의 삶의 이야기가 행정으로 반영될 수 있는 효과적인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때마침 주민참여예산제의 시 계획형은 다양한 계층의 문제를 직접 발굴하고 행정과 함께 숙의 과정을 거쳐 다수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된 최종제안서가 예산으로 반영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인천청년네트워크가 고민해왔던 지점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청년참여예산 추진단 모집 포스터
인천주민참여예산지원센터 제공

Q. 예산학교를 통해 청년들이 직접 제안한 사업은 무엇인가요?
A. 다양합니다. 청년들의 생활비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과 청년들이 직접 만들고 향유하는 문화사업. 그리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청년학교와 다양한 모임 지원사업. 청년의 노동 현실과 창업에 대한 고민을 다룬 사업까지, 영역이 아주 광범위합니다. 청년들이 직접 제안한 사업을 보면서 청년들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원하고 그것이 때론 절박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인천주민참여예산지원센터와 시에서는 예산학교에서 제안된 사업이 모두 반영될 수 있도록 전문가 컨설팅 및 민관지원관 양성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인천청년참여예산학교
강효정 제공

Q. 청년참여예산추진단에서 청년문화분과로 활동하시는데, 청년문화분과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A.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천에는 청년문화활동가가 많이 있습니다. 네트워크 활동을 하면서 만나 뵐 수 있었는데요, 그전까지는 저도 잘 몰랐습니다. 열악한 청년문화활동가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접할 수 있었고 이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인천에서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문제를 들을 때는 가슴이 답답해졌는데 문화분과에서 같이 토론하고 얘기 나누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활동들과 정책을 찾으면서 희망도 볼 수 있었습니다.

Q. 타시도와 비교했을 때 인천의 청년정책은 어떤가요?
A. 이제 시작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작년 2월 인천 년기본조례가 만들어졌고 같은 해 4월 거버넌스 기구인 인천청년네트워크가 구성이 되었어요. 청년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청년실태조사가 올해 시작했고, 청년정책계획을 심의하는 청년정책심의위원회의 절반을 청년으로 구성하여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청년정책의 변화가 청년기본조례를 근거로 진행되는 만큼 인천이 가장 늦게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서울은 2013년부터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를 시작으로 올해 500억 청년자율예산을 기반으로 청년자치정부를 구성했고, 광주는 청년센터더숲을 중심으로 다양한 청년층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조사와 그에 맞는 정책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청년배당과 안산시의 반값등록금정책도 청년정책의 이슈를 만들고 있습니다. 타시도와 비교했을 때, 인천은 아직 청년과 관련한 구체적인 실태조사도 청년정책을 탄탄하게 실현해나갈 청년지원센터도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타시도와 비교해서 무리하게 따라가는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니라, 인천만의 청년종합정책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청년네트워크가 거버넌스 기구로 성숙해지고 인천에서 청년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청년 정책을 세우겠다는 행정의 의지가 있다면 인천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추진계획
김지연 제공

Q. 앞으로 청년참여예산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A. 현재까지 나온 문제를 논의하고 의제를 발굴해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제3차 예산학교를 진행하면, 민관숙의과정만이 남아있습니다. 민관숙의과정을 거쳐 최종사업제안서가 나오면 8월에 온라인거리투표와 9월 1일 청년총회를 통해 500명의 청년을 모아 최종 사업을 결정할 예정입니다. 관련된 소식은 인천청년네트워크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같은 시대를 사는 인천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청년’이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울 만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참 단순하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의 제목처럼요. 오늘 하루 어땠고 지금 내 마음은 어떤지에 대해 어떠한 방법으로 누군가와 꼭 나누면 좋겠어요. 혼자 외로워지지 않도록, 그래서 참지 않고 자신을 비난하지 않도록 얘기를 나누세요. 내가 겪는 어려움은 우리가 모두 겪는 어려움이니, 혼자 감당하지 않고 함께 나누면서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 내가 주인이 되는 그날까지 함께 살아가요!

청년주민참여예산외에도 인천에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이미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조금만 정책에 관심을 가지면, 나에게 필요한 지원이나 도움이 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요즘 청년들은 그 여유조차 가지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강효정 위원장의 마지막 이야기처럼, 이 시대의 청년들은 이전의 세대와는 다른 모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 살아남기에는 벅찬 세상이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서로를 보듬어준다면, 또 함께 목소리를 내다보면 모두가 조금은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김지연 시민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