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다시 발견한 인천, 사운드 바운드 축제

1883년 개항 이후 서양 문물과 각국 외교사절, 무역상이 모여들었던 인천 중구 개항장 일대의 신포동은 한때 서울 명동, 부산 광복동, 광주 충장로와 함께 우리나라의 4대 번화가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인천의 신포동을 경험한 사람들은 한 시대의 번영과 함께 중구 개항장 주변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바다와 인심을 두루 갖춰 누구나 한번쯤 반했던 곳입니다.

이러한 낭만이 있는 인천 신포동 일대를 돌아다니던 개인적인 취미가 사운드 바운드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2013년 5월 11일 동인천역 부근의 오디오상가 뒷골목을 시작으로 LP까페, 복합문화공간, 재즈까페, 뮤지션이 운영하는 횟집 등에서 1회 사운드바운드(Sound Bound) in 아날로그 신포(Analog Sinpo)가 개최됐습니다. 공연의 제목처럼 ‘소리(Sound)’를 ‘되튀는(Bound)’ 과정으로 동인천 일대 장소를 이동하며 콘서트를 즐기는 것입니다. 출연 뮤지션은 허클베리핀, 이장혁, 머쉬룸즈, 몽키즈, 블랙백 등과 공모를 통한 인천 지역 뮤지션이 출연했습니다. 또한 동인천 오디오 상가에서는 중고 LP/CD 셀러를 모집하여 프리마켓을 열기도 하였습니다. 오디오 상가 뒷골목에서 LP를 뒤적거리고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막걸리 한 잔 즐기면서 사운드 바운드는 소소하게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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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운드바운드는 인천아시안게임 기간에 맞춰 신포동에서 진행되었고 기존의 공간에 ‘파란광선’, ‘라뽐므’ 등이 추가되며 길다래, 오석근, 김수환 등 지역 작가들과 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가들은 빈 상가를 며칠 빌려서 단 하루 공연/DJ파티를 위해 노가다와 철수 작업까지 강행하는 열정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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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사운드바운드부터는 주제를 정해서 좀 더 집중해서 소개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3회의 주제는 ‘공간’으로 잡았는데, 역사적음악적 유서가 깊은 장소에서 공연을 통해 ‘장소의 의미’를 만들어 보자는 의도였습니다.
2009년 뮤직펍으로 시작해 200여 회의 밴드 공연이 이뤄진 <글래스톤베리>, 30여 년간 동인천을 지켜온 LP카페 <흐르는 물>, 동인천의 흥망성쇠를 같이 한 재즈 클럽 <버텀라인>, 인천시가 구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재조성한 복합문화예술공간 <인천아트플랫폼>, 1920년대 개항장 얼음 창고로 사용 후 방치되다 2015년 재탄생된 <빙고> 등 옛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동인천 일대의 ‘공간’에서 음악으로 가득 한 봄밤이 연출되었습니다. 음악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고, 장소와 역사에 취하고, 함께한 사람들에 취한 아름다운 봄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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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사운드 바운드 in 부평 애스컴(ASCOM)>은 기존의 공간과 음악에 ‘이야기’를 주제로 잡아 부평의 ‘애스컴시티(ASCOM CITY)’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평 3동 내 신촌 지역은 과거 일제 강점기 육군 조병창 지대에서 광복 후 미군 부대가 들어서며 많은 사람이 몰렸고, 시민들에게 반환을 앞두고 있는 현재까지 해당 부지의 풍경도 근현대사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특히 미군 부대가 주둔하던 시절,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클럽들이 형성되며 골목 안은 밤새 미군을 상대로 하는 밴드 음악이 흘러 넘쳤습니다. 현재 클럽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의 골목은 유지된 채 그 시절의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사운드 바운드는 그 골목 안 이야기를 주제로 음악과 기쁨, 그리고 슬픔의 역사를 담아내려 했습니다. 여행 팟캐스트로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하는 ‘탁 피디의 여행수다’와 함께하여 골목 안 이야기를 팟캐스트로 담아내었으며, 음악 평론가 나도원이 들려주는 ‘인천 음악 이야기’ 란 토크 콘서트도 준비되었습니다. 또한 90년대 초중반 부평 지역에서 진행되었던 ‘지음 음악 감상회’를 부활시켜 마을의 새로운 커뮤니티 활성화를 기대하는 한편, 부평 신촌 지역의 과거 ‘애스컴 시티’를 볼 수 있는 전시관도 운영하였습니다.
<사운드 바운드 in 부평 애스컴(ASCOM)>에는 오리엔탈쇼커스, 램즈X오곤, 이지에프엠, 만쥬한봉지, 씨없는수박 김대중이 공연 팀으로 참여하였고, 70년대 컨셉의 의상과 골목 사진전 등 부평 신촌 지역의 원류를 찾기 위한 소소한 작업들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해당 부지는 대한민국 역사의 축소판이다. 친일파의 배신과 탐욕의 역사,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과 제국주의 병참 기지, 전쟁과 외국 군대의 주둔 그리고 시민운동까지” – 『캠프마켓』 한만송 저

이렇게 지역을 들여다보고 역사를 공부하며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곳은 단지 공연으로만 기획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프로그램들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애국지사의 땅에서 친일파의 땅으로, 일제 조병창에서 미군 기지로, 최신음악이 연주되던 기지촌에서 쇠락한 동네로 지나온 ‘부평 애스컴(ASCOM)’을 주제로 전시, 팟캐스트, 감상회 등의 프로그램에 음악과 공연을 통해 관객 분들이 조금이나마 무겁지 않게 애스컴의 이야기를 알게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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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사운드바운드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철수 중에 할머니 한 분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계셨습니다. 전시장 사진에 있는 바로 그 분이셨습니다. 몇 년 전 ‘루비살롱’을 운영했었던 기간 이상으로, 그분도 몇 십년 전 신촌에서 ‘송도홀’을 운영하였었다고 합니다. 거창하게 얘기한다면 저는 20년 가까이 잊혀졌던 우리 선배들의 꿈과 삶을 알고 더 나아가는 일을 계속 해오고 있는 셈입니다. 음악으로 잘난 척 하는것이 아닌, 음악을 매개로 함께하는 것이 중요함을 시간이 갈수록 더 느끼게 됩니다. 긴 시간 동안 이곳에 계셨던, 이곳을 지켜오셨던 그 분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 너무도 자랑스럽고 뿌듯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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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사운드바운드는 ‘펜타포트 페스티벌’과 함께 ‘뮤지션’을 중심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국내 최장수이자 최대 록페스티벌인 펜타포트와 함께 공연의 중심이 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뮤지션’들을 주목하자는 의도였습니다. 인천 아트플랫폼 A동과 C동, 글래스톤베리, 버텀라인, 낙타사막에서 진행된 사운드 바운드는 국악, 재즈, 월드 뮤직, 포크, 신스팝, 사이키델릭, 메탈 그리고 DJ 파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담았습니다. 또한 10Cm, 피터팬 컴플렉스, 단편선과 선원들, 크래쉬, 잔나비, 오곤, 세움, 사비나앤드론즈, 피해의식, 줄리아드림, 써드스톤, 오대리, 영이네, ohsukkuhn 등 사운드 바운드 역대 최강 라인업을 구성하였습니다. 부평 사운드 바운드에서 음악 애호가들을 모집하여 화제가 되었던 ‘지음 음악 감상회’도 2기 멤버를 모집하며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다섯 번째 사운드바운드는 대형 무대에서 펼쳐지는 펜타포트와는 다르게 소규모 공연장에서 펜타포트 출연 아티스트들과 가까이 호흡하며 하나됨을 연출할 수 있는 뜨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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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운드바운드 스태프들은 인천의 섬에 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 듣고 섬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며 준비하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모든 곳에 이야기가 있고 노래와 공연이 있습니다. 저희가 앞으로 갈 곳이 어디든 답사와 자료 조사를 하면서 늘 좋은 곳을 알게 되고, 취하고, 즐기고 있습니다.

“조기떼의 소멸과 함께 오랜 역사를 이어온 연평도 파시도 끝났다. 조기들은 모두 어디로 떠나간 것일까.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연평도 어장에는 조기군단이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세월 따라 사람은 늙어가고 파시에 대한 기억도 점점 희미해져 간다. 그 시대를 경험했던 노인들 모두 이승을 떠나고 나면 연평도의 황금시대는 흔적 하나 남지 않을 것이다. 한 시대의 문화가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더 늦기 전에 파시의 기억을 채록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 『바다의 황금시대 파시』 , 강제윤 저

강제윤 작가의 말처럼 잊혀지는 곳들에 대해 노래와 공연으로 찾아가고, 이야기와 이미지를 남겨놓고 싶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풍경이 바뀌어 버리는 한국이라면 더욱 말이죠. 그동안 사운드바운드라는 공연 기획물로 소개해온 공간들과 부평 애스컴의 이야기들, 앞으로 소개될 섬의 풍경들 외에도 새로운 곳을 찾고 있습니다.
최근 이곳저곳에서 인천 음악도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운드바운드를 진행하면서 제가 본 인천은 음악과 관련된 화려한 과거만 있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고, 힘들고 부끄러웠지만 때로 즐거웠던 순간들은 희미해졌습니다. 그럴싸한 공간이라도 하나 남겨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남은 건 사진 몇 장뿐입니다. 번화가는 쇠퇴하고 불이 꺼진 지금은 아무런 생산성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크게 변하지 않은 그곳을 지나온 우리들이 이제 그곳의 과거와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한집 걸러 비어있는 낡고 오래된 구도심의 건물들, 희망보다는 억울한 사연들이 오가는 항구, 먹고살기 위해 계속되는 질긴 삶의 분쟁. 제가 태어나고 살아온 인천의 인상이었습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부평에서 클럽을 운영하다가 결국 문 닫고 동네를 욕하며 서울로 갔던 저는 요즘 사운드바운드를 진행하면서 꽤 즐겁습니다. 그렇게 척박하고 원망스럽던 인천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풍경들이 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 우리 동네와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한, 그곳이 옆 동네보다 가치 있는 곳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몰랐던 후배들도 동의하고 의미 있게 함께할 수 있는 장이 우리 인천에 꼭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앞으로도 사운드바운드가 가는 곳에 많은 관심과 제보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즐겁게 만들어나가겠습니다. 인천의 곳곳에서 사운드바운드와 함께 음악과 역사와 장소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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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규영(루비레코드 대표)




부평, 음악도시로 가는 길

부평구는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문화특화지역 문화도시 조성사업’에 선정되면서 부평문화재단 주관 하에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국비 포함 총 37억 5천만 원을 투입하여 ‘부평 음악·융합도시 조성사업’을 진행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인천광역시와 부평구가 주최한다. 본 사업은 부평아트센터를 비롯해 부평아트하우스, 부평 3동 유휴 공간, 굴포천 복개 지역 주변, 캠프마켓을 거점으로 하여 음악을 중심으로 시각, 마을공동체, 생활문화, 아카이브 5개 분야의 생산, 연구, 지원, 소비 기능이 융합된 선순환된 문화도시를 만들고자 한다. 부평에서 추구하는 문화도시는 1980년대 문화와 예술이 활성화된 도시를 일컫는 기존의 개념에서 확장되어 1990년대 창조도시, 2000년대 공유도시를 거쳐 현대에서 강조하는 ‘문화 창조 공유도시’의 개념을 가진다. 문화예술인과 주민 협의체가 중심이 되어 공감대 형성을 위한 소통과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정보의 공유와 사업 계획의 전반을 함께 고민하며 문화예술이 누구에게나 공유되고 향유될 수 있는 문화도시를 꿈꾼다.

 부평, 왜 음악도시인가?
왜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도시인지 그 당위성을 묻는 이들이 많다. 부평은 조선 최대 군수공장이었던 부평 조병창에서 해방 후 미군의 주둔지 애스캄시티(ASCOM City: Army Service Command City), 1973년 이후부터는 캠프마켓(Camp Market)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한국으로 들어오는 미군들이 반드시 거치는 곳이었다. 부평 전체의 30%나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였던 캠프 마켓은 미군들이 자대 배치를 대기하기도 했고, 각지에 위치한 미군부대의 물자를 조달,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 덕분에 미국에서 갓 넘어온 세계 유명한 팝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최신 악기, LP판 등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캠프 마켓 영내에는 12개의 미군 클럽이 있었고, 영외에는 신촌 일대에 23개 민간인 클럽이 영업을 했다. 재즈, 블루스, 팝, 로큰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팝송 번안과 통기타, 댄스, 발라드, 힙합 등을 거치면서 지금의 ‘K-pop’을 생성한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었다. 클럽에서 연주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음악인들이 모이게 되면서 부평 출신 가수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배호, 현미, 한명숙, 국내 1세대 록 가수인 신중현 등이 부평 미8군 클럽에서 활동했고, 신지, 최성수, 구창모 등의 스타들의 고향도 부평이다.

부평 주민과 함께 걷는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의 다양한 해외 사례를 연구하고, 고민해 온 부평구문화재단 박옥진 대표이사는 부평이 음악도시, 문화예술의 중심지로서 창의인력이 모이고,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음악 산업을 꽃피우는 지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부평구문화재단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사업의 추진을 위해 2016년 2월 부평구문화재단에 문화도시사업팀이 신설되었고, 음악 중심의 문화도시를 구축하는 만큼 오랜 기간 음악,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해온 기획자들로 구성되었다. 생생한 현장에서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작업하며 쌓아 온 노하우를 가감 없이 발휘하여 부평이 음악도시로 변화하는 데 민·관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다. 사업 선정이 확정된 2015년, 부평구문화재단의 주최로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총 4회에 걸쳐 ‘2015 부평문화포럼 – 새로운 변화의 시작, 문화도시 부평’이 진행되어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에 대한 방향성을 모색하는 사전 준비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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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문화도시 사업의 정책방향 및 사례’를 주제로 부평에서 진행될 문화도시 추진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의 이슈와 전략적 사업 추진의 중요성이 제안되었고, 두 번째, ‘문화도시의 자생적 운영은 가능한가?’를 주제로 부평 문화도시의 자생적 운영과 지속성을 위한 가치와 철학, 생태계 조성, 도시공간과 문화 계획의 통합적 접근, 민관협력, 시민참여, 네트워크 구축 등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주요 논의 점에 대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세 번째 포럼의 주제로는 ‘왜 부평 음악·융합도시인가?’를 중심으로 부평 문화도시의 비전에 대한 검토와 부평의 문화예술 자원인 풍물대축제, 미군부대의 대중음악 역사를 융합하여 현재의 부평 음악문화로 만들고자 하는 방향성과 과정에 대해 논의하였다. 지역 정체성, 음악 관련 사업의 형태, 시민의 음악 활동 등이 결합되어 부평의 음악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반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문화도시 부평의 미래’를 주제로 문화특화지역 사업이 제시하는 문화도시 브랜드에 대한 시각과 부평 문화도시 전략 수립의 중요성에 대해 제시되었다. 부평의 문화도시 브랜드 전략에 대해서는 부평 시민의 생활문화를 간과하지 말아야 함을, 누구나 인정, 상상, 참여할 수 있는 부평만의 방법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부평구문화재단은 국내에 아직 성공사례가 없는 음악 중심 문화도시로서 의미 있는 사례로 성장하기 위해 국내 음악도시 사례 지역을 방문, 연구해왔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의 사례가 되고 있는 가평, K-pop 클러스터 조성 및 음악극 축제가 자리 잡은 의정부, 음악창의도시 통영 등의 사례를 통해 문화도시 조성 시 발생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검토하며, 도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사전 준비 시간은 문화도시 사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속 가능한 문화도시 부평을 함께 논의하는 장으로서 민·관이 협의를 통해 서로의 의견에 귀 기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부평 음악도시,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마주치다
‘부평 음악·융합도시 조성사업’은 행정 주도하에 추진, 실행되었던 기존 문화도시 조성 사업의 Top-Down 방식을 벗어나 Bottom-up 방식을 채택했다. 조성된 도시 속에서 실제로 살을 부대끼며 살아갈 주민과 문화예술인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기 위함이다. 많은 이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고 조율하는 과정들이 쉽진 않겠지만 5년 뒤 사업의 결과를 보았을 때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문화도시로의 성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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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굴포천 및 미군부대 주변 도시재생 총괄기획을 겸하고 있는 황순우 총괄기획가를 중심으로 음악, 시각, 마을공동체, 생활문화, 아카이브 전문가들을 워킹그룹으로 구성되었다. 워킹그룹은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문화예술인 및 유관기관 관계자, 주민들의 의견을 취합, 수렴하는 역할을 가진다. 각 분야에 특화된 주제를 논의하며 부평에 실제로 필요하고 어울리는 음악·융합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방법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음악 분야는 정유천 회장((사)라이브음악발전협회)과 유세움 대표(문화공작소 세움)가 참여하고, 시각분야에 이승희 사무국장(부평미술인회), 마을공동체 분야에 이연옥 작가(부평예술인회), 아카이브 분야에 서은미 대표(시티인천)가 참여한다. 특히 아카이브 분야는 그동안 깊이 있게 조명되지 못 했던 부평의 음악적인 역사 자료를 수집, 분석하여 사라져가는 도시문화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고취시키고, 수집 관리한 도시자원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컨텐츠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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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그룹을 통해 수렴된 의견은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로 발전하여 실무회의를 거쳐 논의되고 추진 협의체 의결을 통해 실행된다. 실무회의는 인천광역시와 부평구청, 부평구문화재단으로 구성되어 수렴된 아이디어를 최대한 구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행정 지원과 방안을 검토한다. 주민의 생활문화, 지역적 특성, 경제 기반, 관련 법안 등 다양한 각도에서 의견을 바라보며 최적의 방향과 방법으로 도시에 적용되어 많은 주민들이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가깝게 즐기고 경험할 수 있는 고민과 논의가 진행된다. 선정된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는 의견을 제시한 문화예술인 및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질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부평이 음악도시로 지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지역에 적합한 ‘지역성’ 발굴과 자발적인 참여 활동으로 만들어지는 ‘자생성’과 ‘전문성’을 가장 중심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도시, 그 출발선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올해는 ‘부평 음악·융합도시 조성사업’이 시작되는 첫 번째 해로 부평구문화재단 주관으로 지난 6월 9일 ‘부평 음악·융합도시 포럼 – 음악 중심의 문화도시를 열어가는 부평’이 진행되었고, 10월 14~15일 ‘부평밴드페스티벌’ 개최와 공모사업을 예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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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을 통해 부평은 고유의 역사와 문화예술 콘텐츠를 활용하여 타 지역 음악 도시와는 달리 유의미한 결과를 맺을 수 있도록 문화도시의 정책 수립 방향과 내용 등 발생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제안이 제시, 논의되었다. 홍대 앞 문화 변화 과정에 비추어 부평이 음악 중심 문화도시를 추진할 때 ‘지역성’과 ‘자생성’에 좀 더 주목할 것을 제안, 사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홍보와 유통 플랫폼의 고려, 지역 문화예술인과 주민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함이 강조되었다.

음악도시 부평의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해 오며 2015년 개최된 ‘부평밴드페스티벌’은 올해 부평 음악의 요지였던 미군부대에서 열린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으로 구성하여 음악의 집중도를 높이고, 클럽이 성행했던 시대를 추억하며 누구나 편안하게 즐기고 교감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한다. 공모사업으로는 ‘부평 음악·융합도시 조성사업’에 문화예술인과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이 예정되어있다.

‘부평 음악·융합도시 조성사업’은 시작의 단계이다. 부평이 지닌 문화예술 자원과 역사로부터 어떻게 부평의 매력을 살리고 구조화할 것인지 창의적이고 문화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반환되는 60만㎡ 규모의 부평미군부대 부지와 개발이 미흡했던 도시의 구석구석이 음악과 휴식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일상적 삶에 부평의 음악문화가 자연스럽게 연계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음악 산업의 과도한 서울 집중을 극복하고, 침체기를 맞은 한국 인디음악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부평 음악융합도시가 ‘음악을 중심으로 한 지속 가능한 문화도시 창출’의 성공사례가 되길 기대한다.

박재은 / (재)인천광역시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사업팀




음악도시 인천의 역사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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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서울 용산보다 클럽이 많았던 부평
음악 팬들이 인천의 서양음악 역사를 이야기할 때 주로 언급되는 시대와 장소는 1960~1990년대에 음악인들이 집결했던 신포동 및 동인천 일대나 부평, 관교동 등지를 많이 이야기한다. 물론, 이러한 범위를 글쓴이는 인정하지 않는다. 인천의 음악 역사는 이보다 훨씬 이전인 조선후기 개항시대부터 ‘두터운 정체성’을 갖고 있었으니까. 서양 군악대의 행진곡이나 찬송가 등이 가장 먼저 유입되고 연주됐으며 한국 최초로 서양음악 교육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인천이라는 점은 바로 그 사실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글쓴이가 이 장에서 미군 주둔 이후 1960년대를 글의 ‘시대적 기점’으로 정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글쓴이에게 허락된 원고분량 및 주제상 조선시대부터 훑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것, 두 번째는 서양음악의 범위를 소위 ‘팝 뮤직’의 부분으로만 한정한다면 해방 이후 미군정 혹은 한국전쟁 이후 시기서부터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 통상적이기 때문이다.
미군정 이후 한국 내의 서양 대중음악에 대해서는 대체로, 주둔했던 미군부대의 주변에서 수많은 기록들이 나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군부대 주변이 팝 음악이 유입되고 소비되는 가장 큰 시장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재즈와 로큰롤 등 당시 미국민들 눈높이에서 유행하는 서양 대중음악의 소비는 군인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고, 자연히 한국도 이 영향을 받았다. 실례로 훗날 가수로서 이름을 떨치게 되는 배호와 오기택 등의 가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의 보이스가 미국의 크루너 재즈 보컬리스트(이를테면 프랭크 시나트라, 냇 킹 콜과 같은)들을 자양분으로 삼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전쟁 이후에도 미군부대가 있었던 인천은 당시 이러한 서양 대중음악의 한국화에 좋은 토양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이 주둔했던 미 군수지원 사령부 ‘애스컴(Ascom)’이 있던 부평은 그 중심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인근의 음악 클럽 수가 한때는 용산보다도 많았다는 기록도 여러 문헌과 전언 등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이곳을 거친 가수나 뮤지션들도 훗날 그 이름을 떨치게 되는 케이스가 상당했다. 앞서 언급한 배호를 비롯해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른 한명숙과 키보이스의 김홍탁, ‘몰라요 몰라’를 부른 그룹 데블스의 김명길과 연석원, 그리고 지난 2004년 작고한 타악기 연주자 김대환과 현 사랑과 평화의 리더 이철호 등은 이 당시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거나 연주한 경험들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인천 뮤지션들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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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사운드의 활동 무대, 동인천과 남구 원도심
부평의 전성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해도, 신포동과 동인천 일대 역시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다. 이는 지금의 중구청 자리에 있던 인천시청을 중심으로 발전한 상권 및 문화권과 궤를 같이 했기 때문인데, 실제 이 주변으로 많은 클럽들(당시엔 ‘고고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옛 인천시민들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바다. 대표적으로 초창기 ‘사랑과 평화’가 장기간 공연하기도 했던 뉴 반도와 맞은편에 위치했던 뉴 월드 관광나이트, 그리고 옛 인형극장 자리에 있던 신광 나이트클럽, 그리고 동인천역 인근 인영 고고장과 옛 인천 사람들이면 다 아는 극장식 나이트클럽 ‘국일관’ 등의 기록은 과거 신포동 음악 신이 보여준 ‘중흥과 쇠퇴의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조용필의 밴드 ‘위대한 탄생’의 주요 멤버들이 연주하던 곳으로 유명 가수들도 많이 무대에 올랐던 ‘국일관’은 인천은 물론 서울에서도 명소로 평가받았다. 국일관은 1980년대 초반부터 지난 2010년까지 영업하며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으나, 영업 종료 이후 2014년 건물을 철거해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졌고 현재는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가 새 건물을 세운 상태다.
그런데 부평이나 신포동보다는 다소 훗날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곳들 말고 뮤지션들이 모여들던 또 하나의 중요한 거점이 있었으니, 현재 ‘인천의 압구정동’으로 불리는 관교동이 바로 그곳이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허허벌판에 차도 다니지 않던 곳이었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순복음교회와 남인천여중, 인명여고 등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도시로서의 기능을 갖추어 나갔고, 동아, 풍림, 쌍용 등 대형 아파트들의 건축도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그 근처에는 원룸이나 빌라, 상업건물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즈음 이 동네에는 머리를 치렁치렁 기른 뮤지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글쓴이가 기억하기로 당시 이곳에서 연습실로 쓸 만한 공간들의 월세가 엄청나게 싼 편이었는데, 대부분 보증금이 100만 원 이하에 월세 또한 10만원을 넘지 않았다. 훗날 음악 칼럼니스트 성우진을 비롯한 음악계 선배들과 뮤지션들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당시 관교동에 연습실을 잡고 있던 밴드는 블랙 신드롬과 크래시 등 한국 헤비메탈 역사에서 북극성과도 같은 팀들은 물론 제로 지와 터보, 그리고 체리필터 등도 있었다. 그러니까, 관교동에 모였던 뮤지션들의 대부분은 록/헤비메탈 계열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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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관교동으로 뮤지션들이 모여들기 전 시점이라 할 수 있는 1985년에는 인천에서 처음으로 헤비메탈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현 부활의 드러머 채제민과 과거 ‘인천그룹사운드연합회’의 수장이었던 양범석 등을 중심으로 결성됐던 ‘제3세계의 꿈’이라는 밴드와 이승철, 김경호 등 가수들과도 함께 활동했던 기타리스트 박창곤, 김창완 밴드 출신으로 현재 인천 밴드 ‘미인’의 드러머 이민우 등이 멤버로 활약했던 ‘아웃사이더스’가 지금은 없어진 옛 시민회관에서 공연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후 인천의 대표 록 밴드 ‘사하라’의 공연을 비롯해 시민회관이 역할을 다하고 사라질 때까지 많은 횟수의 록 공연들이 그곳에서 열렸고, 그중엔 한국의 음악 전문지 ‘핫뮤직’이 기획해 전국의 유명 록 뮤지션들이 모두 모이는 기획공연도 수차례 있었다. 이렇게 옛 시민회관에서의 공연 그리고 현 인천예총이 사용 중인 수봉공원 문예회관(인천의 언더그라운드 록 밴드들이었던 RPM, 비비드, LPG, 사두, 440E(B4U) 등이 자주 공연을 가졌음) 등에서의 무대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된 밴드들끼리 인천그룹사운드연합회가 결성되기도 했는데, 이 연합회는 1997년경까지 활동하다 지역의 모든 문화신을 집어삼켰던 IMF의 광풍을 이기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사라지게 됐다.

인천 음악 신의 부활, 관건은 ‘지역사회의 관심’이다
비록 여러 요인들(IMF, 도시 변화로 인한 상권 이동, 그리고 당시 밴드들의 좁았던 자작곡 퍼센트 등등)이 겹치며 인천의 음악 신도 완전히 사라졌지만, 다행인 것은 15여년 뒤인 2000년대 후반 및 2010년대 초반서부터 서서히 부활의 움직임이 보인다는 것이다. 2006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통해 지역의 공연문화에 대한 가능성을 엿본 문화기획자들은, 홍대의 인디 문화를 인천서도 꽃피울 수 있음을 발견하고 다시금 토양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 노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실례로 2007년경부터 연주자들의 무대를 기획한 재즈 클럽 ‘버텀라인’과 2009년 영업을 시작한 ‘글래스톤베리’ 등 신포동의 음악 클럽들이 홍대 인디 신에서 기획공연으로 자리를 잡은 라이브 클럽들을 벤치마킹해 1주 정도에 1~2회씩 지금도 자체 무대를 열고 있고, 이 영향은 본디 LP카페로 출발했던 ‘흐르는 물’ 등 인근 업소들이 간헐적으로 기획공연을 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부평의 ‘락캠프’, 주안동의 ‘쥐똥나무’, 인하대 인근의 ‘울림’ 등이 홍대 클럽을 일부 모델화해 공연을 열고 있고, 사라진 ‘인천그룹사운드연합회’의 역할을 대신하는 ‘인천밴드협회’가 몇 년 전 조직돼 활동을 재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 인천 부평에서 활동했던 ‘루비 레코드’는 2013년부터 기획하고 있는 프로젝트형 축제 ‘사운드바운드’를 통해 과거 신포동과 부평 등 대중음악 역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어야 하는 곳들을 재조명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뮤지션 중에서는 일본 뮤지션들과도 교류 중인 ‘해머링’과 ‘투견’, ‘블랙 메디신’ 등을 비롯해 최근 인디 신에서 주목받는 알포나인틴, 빌리지 브라더스, 포 헤르츠 등이 인천과 서울 등을 오가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글래스톤베리’의 이진우 대표는 “인천 전역에서 음악에 대한 다양한 일과 다양한 무대가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다채로운 분위기를 형성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한 바가 있다. 실제 이 대표의 이러한 언급은 지역 내 클럽의 오너들과 문화기획자들이 모두 공감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거 인천 음악 신의 부활은 이들이 내리는 노력의 뿌리에 인천시민들이 보여주는 관심을 거름으로 할 때에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다. 아직은 이들의 노력에 비해 지역사회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매우 저조한 편인데, 공직자들과 언론은 물론 시민들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하다. 시나 구에서도 할 일이 많다. 가장 먼저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밴드는 물론 인천과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현재의 활동까지 빼놓지 않고 기록해나가는 작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인천의 위치는 그 기록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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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배영수(인천in 기자, 음악칼럼니스트)




지방자치단체 문화도시기본계획,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지난 6월 28일, 서울시는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을 발표하였다. 이번에 발표된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서울시 문화도시기본조례에 근거한 법정계획이며, 기존 <비전 2015, 문화도시 서울>에 이어 향후 서울시 문화정책의 핵심적인 방향과 사업을 제시하는 계획이다.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시민이 만들어가는 행복한 문화도시’라는 슬로건과 함께 ‘개인(문화주권), 공동체(문화공생), 지역(문화재생), 도시(문화창조)’의 4개 영역과 ‘행정’(문화협치)을 횡단하는 문화의제 통합형 계획구조를 통해 10대 추진과제와 25개 세부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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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문화연대를 비롯하여 시민사회, 문화예술생태계의 “문화적 가치에 기반하여, 문화권의 관점에서, 시민 주도로 서울의 중장기 문화계획이 수립돼야 한다”는 비판과 제안에서 시작된 이번 계획은, 3년이 넘는 시간과 46명의 전문가 계획위원 그리고 수많은 의견수렴 및 토론 과정을 거쳐 수립되었다. 물론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서울시라는 제도와 행정의 구조 안에서 합의하고 추진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계획이어야 한다는 점, 계획 수립 과정의 시간과 참여 범위가 수용할 수 있는 물리적 제약 등 많은 부분에서 한계가 있는 계획이다. 하지만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서울시를 비롯하여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해 온 지난 관성들에 대한 성찰, 지역문화진흥법 시행 이후 새롭게 요구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새로운 문화도시기본계획 수립 과정에 있어 참고할 만한 계획이다.

먼저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의 미덕은 도시 기반 문화계획 수립 과정에 있어 원칙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번 계획 수립 과정에서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서울의 중장기 계획 수립의 원칙으로 ‘문화적 시민권에 기초한 시민문화계획’, ‘문화의 사회적 가치 확대를 위한 통섭적 문화계획’, ‘문화행정 혁신을 위한 문화거버넌스계획’을 도출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는 첫 번째 추진과제를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선언적 권리에서 실질적인 권리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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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시간과 과정 그리고 협치(거버넌스)가 있는 계획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서울시와 민간 전문가들은 이번 계획을 발표하기 전까지 ‘계획수립 준비 TFT’ 구성 및 운영에서 시작하여 ‘정책숙의’, ‘서울문화계획위원회’, ‘전문가 및 현장 라운드테이블’, ‘시민의견 수렴 프로세스’, ‘분야별, 의제별 계획 검토 회의’ 등의 협치 과정을 경유했다. 사실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지나치게 다양한 의견수렴이 진행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발표를 마친 지금 이 순간에도 계획 수립 과정에 대한 현장의 의견수렴과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는 여전히 부족하다. 물론 시간이 많다고 충분한 준비 과정과 깊이 있는 협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 도시의 문화계획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전문가와 현장 그리고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아무리 적극적이어도 절대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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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기존의 행정 및 분야별 칸막이를 횡단하는 문화의제 통합형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담았다.
이를 위해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개인, 공동체, 지역, 도시’라는 도시 생태계의 층위별로 계획 구조를 설계하였고, 그 구조 내에 ‘문화주권, 문화공생, 문화재생, 문화창조’라는 가치 체계를 내재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서울시를 비롯하여 지방자치단체의 기존 문화계획들이 도시의 삶에 기반한 협력체계를 설계하기보다는 중앙정부 문화행정의 전달체계를 기계적으로 반복해왔던 것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앞으로 기획될 지방자치단체들의 문화기획들은 기존처럼 중앙정부 문화행정의 지원사업과 예산집행 전달체계 내에서 안주할 것이 아니라 해당 도시의 객관적 특성과 지역화(지역분권) 전략의 토대 위에서 도시의 문화가치와 시민의 문화권리 확대를 위한 과정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문화기본법, 지역문화진흥법,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 등이 시행되면서, 문화정책을 둘러싼 제도 정비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이 합리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성숙해졌다는 평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시민사회와 문화예술 현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고 노력했던 법제도들이 형식적으로 제도화되고 무기력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문화도시계획 수립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문화사업들은 비대해졌으나 정작 대부분의 문화계획들은 아이디어 중심의 이벤트 사업에 집착하거나 문화의 옷을 입은 개발 계획을 반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수의 행정 관료들과 전문가들의 손에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계획들은 대부분 집행은 고사하고 세부 실행계획조차 수립해보지도 못한 채 비명횡사하기 일쑤다.
이제는 새로운 사회변화에 맞게 지방자치단체들의 문화계획 수립 목표와 과정 역시 변화해야 한다. 아니, 계획 수립의 과정 자체가 문화행정 혁신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아무런 변화를 원하지 않는 행정 관료들과 연구용역 프로젝트에 포획된 소수의 전문가들을 위한 계획 수립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계획 수립 과정에서부터 더 많은 현장과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협치로서의 계획, 실질적으로 실현되어 도시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적인 계획, 문화행정을 넘어 도시 전체로 문화의 가치와 권리를 확장시킬 수 있는 문화적 계획들이 필요한 때다.

이원재 /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서울시 문화계획수립위원회 위원




인천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 도시를 문화로 바라보는 계획 되어야

2016년, 인천광역시는 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한다고 발표했다. 2003년과 2010년에 이어 인천광역시가 본격적인 의미에서 세 번째로 종합적인 문화 계획을 수립하는 셈이다. 특히 이번 계획은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이후에 세워지는 첫 번째 계획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이전과는 다르다. 지역문화진흥법의 제정은 기존의 문화예술진흥법에 덧붙여 지역의 주민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활 문화가 문화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주체라는 것을 제도화한 것이기에 문화계획 역시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이전과 이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1이번 계획은 문화지표조사 등 인천의 문화 현황조사와 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 수립이라는 두 개의 과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에는 지표조사가 선행되고 그 결과를 고려하면서 다음 해에 종합계획을 수립했는데 이번에는 지표조사 및 계획 수립이 동시에 추진되는 방식이다. 문화지표는 한 지역의 문화적 현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드러내고 그 결과에 따라 문화정책이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화시설과 인력, 프로그램, 재원, 지역 축제, 시민 문화향유실태와 문화수요 등 광범위한 조사가 문화지표조사 범위 안에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지표조사만 하더라도 상당한 시일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번 계획은 두 과업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부분이 있으므로, 집중적인 조사와 토론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기존의 문화지표 조사 항목이 이번 기회에 일부 조정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전까지는 단순 항목 중심의 조사였다면 이번에는 지표간의 연계성을 강화하여 문화의 창조와 소통, 환류 등이 연관된 통계 수치로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근 문화생태계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실에서 문화지표 역시 이를 고려한 형태로 변경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얼마나 많은 신규 프로그램들이 인천에서 생산되고 그것이 시민들에게까지 전달되는가, 혹은 전달되지 못하는가’가 일목요연한 체계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문화생태계’라는 관점을 문화지표 전체 영역에 즉각 도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런 시도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문화의 특정 영역을 시범적으로 선정하여 이런 생태계적 관점을 도입한 지표조사가 이뤄지길 바란다.

두 번째, 이번 계획은 명확히, 그리고 의식적으로 도시 전체를 문화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인천에서 수립된 기왕의 계획들에서도 이런 점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천광역시 문화예술 중〮장기종합발전계획」(2003)이나  「인천 문화도시 기본계획」(2010), 그리고 2010년 계획의 액션 플랜 격인  「민선5기 인천광역시 문화예술기본계획」에도 그런 고민이 녹아있었으나 그것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즉 이것이 문화예술의 행정 단위나 예술 진흥 계획으로 기능하기보다는 도시 전체를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종합계획의 성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에 수립된 계획의 명칭이 ‘문화도시 기본계획’이라는 타이틀로 나온 것은 그런 문제의식이 작용한 것이기는 했으나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문화는 단순히 예술진흥이나 문화기반 시설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화가 특정 영역으로 구획되고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시를 문화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이해하는 관점이 바탕이 될 때 문화도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정책 당국이나 정책 결정권자들 역시 이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이번 계획 수립에 그런 점이 보다 더 명확히 강조되고 실제 내용 역시 그렇게 작동될 수 있도록 구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더 이상 인천광역시의 특정 부서에게만 해당되는 계획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계획 수립의 과정이 보다 더 개방적이고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인천의 문화역량을 모으는 것은 물론이고, 전문가, 활동가, 문화행정의 담당자, 시민들까지 이 계획 수립에 참여하는 틀을 만들고 논의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문화도시에 대한 문제의식의 폭넓은 공감대가 마련될 수 있다. 영역별, 세대별, 지역별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이를 워크숍이나 위원회 형태에서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게 된다면 이번 보고서는 지역 내외의 폭넓은 지지는 물론, 지역문화진흥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지역문화진흥 시행계획 수립에도 내용적인 도움이 될 뿐더러 구체적인 정책 수립과 집행에서도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인천에는 그럴듯한 비전이나 미션, 사업들로 잘 포장된 보고서보다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 공감하는 계획이 필요한 때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문화계획으로 인정받고, 앞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현식/인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시민 생활문화예술의 플랫폼, 광역생활문화센터

문화예술은 더 이상 관람 대상이 아니라 행위의 주체가 됨으로써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하는 핵심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합 기능의 공공시설에서 운영되는 생활문화 활동은 공간적 제약과 전문 문화예술인과의 연계 미흡은 물론 체계적인 정책 지원도 못 받아, 그동안 시민들의 생활문화에 대한 다양한 욕구가 충족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14년 정부는 문화융성 및 생활 속 문화 확산 국정과제에 의한 문화예술진흥법 3조의 생활문화 권장과 지역문화진흥법 8조의 생활문화시설 확충 및 지원 근거를 마련했고, 인천광역시도 생활문화지원 조례를 제정해 2018년까지 5개년 사업을 시행 중에 있다.

012014년, 인천아트플랫폼이 광역생활문화센터로 지정된 이후 인천의 행보도 활발하다. 동구 솔마루 생활문화센터와 남구 학산소극장 생활문화센터에 11억원, 2016년에는 중구 개항장 생활문화센터와 동구 송림동 생활문화센터, 연수구 청학지하보도 생활문화센터, 부평구 아트하우스 생활문화센터에 각 11억원의 예산이 지원 중이고, 2017년에는 옹진군 북도면 생활문화센터와 자월면 생활문화센터 등이 추진될 예정이다.

시민들의 생활문화 활동지원을 위한 공간 확보와 프로그램 지원은 긍정적이지만, 생활문화센터가 단순히 생활문화 공간이 부족한 지역의 공간 확보와 확보된 공간의 프로그램 운영에만 만족한다면 이는 생활문화센터 설립과 운영 취지에 일부만 충족할 뿐이다. 생활문화센터는 시민들의 다양한 생활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다양한 활동을 위한 다양한 공간과 전문 문화예술 역량과 연계시켜주는 플랫폼 기능을 우선해야 한다. 특히, 광역생활문화센터는 현재 추진 중인 특정지역 주민의 생활문화 활동 공간과 프로그램 제공 기능과 역할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다음의 내용으로 전면 전환해야 할 것이다.
  
첫째, 인천 지역의 공공과 민간 등의 다양한 공간을 생활문화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조사와 조사된 공간을 시민과 단체 등의 활동 장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방안 모색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인천의 한 예술인이 서울의 한 웨딩홀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해서 방문했다가 웨딩홀의 건축디자인과 내부 공간 활용에서 신선함을 느끼고, 웨딩 사업가인 대표는 공유 경제 예찬론을 들으면서는 놀랍기까지 했다. 공유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서울시, ‘서울시 공유 촉진 조례’를 만들어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는 서울시의회, 미래지향적 사고로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는 젊은 기업인의 모습까지… 3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서울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주말에만 이용되는 예식장을 평일에는 전시공간과 생활문화 활동 공간이 없는 시민들과 예술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고, 이를 처음부터 건축설계에 반영했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 인천에도 계양구에 심장병 전문병원을 건립하는 병원장이 병원 로비에 상설 전시공간을 만들어, 예술인들에게는 전시공간을 제공하고, 병원의 환자와 보호자 등에는 멋진 작품을 선보이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전문예술인만이 아니라 환자 또는 병원 관계자들의 생활문화 활동 공간으로도 활용되리라고 기대된다.

시민들의 생활문화 활동 욕구는 높아지고 다양해지고 있는데, 마땅히 연습할 장소나 활동 결과물을 함께 나누고 뽐내기 위한 공간은 얼마나 준비돼 있고, 얼마나 개방돼 있나 궁금해진다. 과연, 지역의 관공서, 학교, 체육시설, 공원 등 공공시설은 시민들의 생활 문화 공간으로 자신들의 공간을 제공하고 오픈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있다면 언제 어느 정도의 면적을 어떤 용도로 제공이 가능한지 등에 대해 어디서 정보를 구하고, 어디를 통해서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 이런 정보를 한눈에 찾아볼 수 있도록 광역 생활문화센터가 조사하고 정보를 구축하여 시민들이 활용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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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시민의 생활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분야별 전문 문화예술인들과 연계할 수 있도록, 인천지역의 다양한 전문 문화예술인과 단체들의 정보를 취합하고, 문화예술 및 문화예술 단체별로 프로그램 멘토 또는 협력 파트너로 시민의 생활문화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조사하고, 관련 정보를 구축하여 시민들과 동호회들이 필요시 연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천의 문화예술인들의 기본 현황과 멘토 또는 시민 생활문화 활동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계와 협력을 희망하는 문화예술인들을 파악하여, 시민 생활문화 활성화를 위해 인적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어느 예술인이 언제 어느 분야의 전문성을 생활문화 지원을 위해 재능기부가 가능한지, 어느 예술인이 언제 어느 분야의 전문성을 어느 정도 교육비용으로 생활문화 활동 지원이 가능하지에 대한 조사와 정보화 구축, 그리고 운영이 필요하다.

끝으로, 생활문화센터는 시민의 생활문화 활동 프로그램 개발과 보급을 비롯해, 점점 전문 예술인과 생활 예술인의 경계가 엷어지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네트워크 구축의 장으로도 역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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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생활문화센터와 지역별 생활문화센터는 본 설립 취지인 생활문화 활성화를 위한 공간 정보 공유에서부터, 생활문화 활동 지원과 협력을 위한 전문 문화예술인에 대한 정보 공유와 프로그램 보급 지원, 끝으로 생활문화 활동 시민과 관련 동호회들의 정보 공유와 소통의 장으로 기능과 역할을 높여야 할 것이다. 시민과 동호회들의 생활문화 활동이 일반 시민에게 선보이고, 시민의 생활문화 활동 참여를 더욱 확대하는 계기를 만들어 생활 속에서 문화가 꽃피고 시민들의 삶이 더욱 행복해지는 인천을 위해, 또 하나의 문화센터가 아닌 생활문화 활동을 풍부하게 하는 시민 생활문화 활동의 거점이자 플랫폼으로 업그레이드된 생활문화센터를 기대해 본다.

 

이한구 / 인천광역시의원




인천형 생활문화센터,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며

들어가며…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이후, 본격화된 생활문화 진흥의 주요 정책 사업을 생활문화센터 조성/운영활성화 지원사업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2014년 34개, 이듬해 36개, 2016년 5월 현재, 총 180여개가 지정, 조성, 운영 중이다. 규모의 확대가 흡사 ‘토요문화학교’ 급이다. 운영 조직도 강화되었는데, 기존 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에서 2016년 5월 전담운영기관인 생활문화진흥원이 설립되었다. 속칭 ‘드라이브’가 걸린 현 정부의 생활문화 주력사업인 셈이다. 인천에는 총 10개의 생활문화센터가 지정되었고, 얼마 전 남구의 ‘학산생활문화센터 마당’이 개관해 운영 중이다. 인천문화재단(이하 재단) 생활문화센터 개관 과정과 의미를 몇 가지 키워드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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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에서 개관까지

재단이 위탁운영 중인 인천아트플랫폼 두 개동(A동, H동)은 지난 2015년 8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부터 거점형 생활문화센터로 지정되었다. 문체부의 안내서에 따르면 거점형은‘생활권형 기능을 기본으로 하며, 생활문화 활성화를 위한 네트워크 허브기능 및 정보제공, 컨설팅 지원 등 멀티 플랫폼 역할 수행’으로 확인할 수 있다. 통상 생활권형은 동, 면을 범위로 한다. 지정 이후 공간 리모델링 공사와 함께 시민워크숍, 비전선포식 등 사전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지난 3월 생활문화센터 개관준비계획에 따라, 시민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총 13인의 시민들이 정책, 공간/조직, 프로그램, 네트워크 등 4개 분과로 위원회에 참여했다. 올 4월부터 인천생활문화센터는 시범운영을 통해 여러 운영 사항들을 점검하였고 곧 개관을 앞두고 있다. A동은 공연, 미술 등 장르 특성이 반영된 공간, H동은 인문학, 자료실, 북카페 등의 방향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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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그리고 IFAC
지역문화진흥법(1)은 생활문화를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형ㆍ무형의 문화적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재단 출범 초기 생활예술(문화)는 문화예술지원사업의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5년을 기준으로 광의의 생활문화인 시민문화활동, 문화예술교육, 소외층 대상 문화복지 등은 재단 전체 사업예산의 70%(2)를 차지, 그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이미 생활문화는 문화정책의 화두이자 문화기본권의 상징과 같이 되었다. 재단은 사업구조 상 전문예술인(단체) 지원기관이라기 보다 오히려 시민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생활문화 진흥기관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운영비가 담보되지 않은 리모델링 사업’이라는 비아냥은 차치하고 지역, 특히 재단의 관점에서 생활문화센터 개관은 생활문화 활동의 물리적 교두보로써, 생활문화(시민 문화활동)의 진흥, 지원체계 정비의 분기로써 그 의미가 크다. 재단은 이미 조직을 신설(생활문화팀)하였고, 시민문활동지원, 문화공동체, 인천왈츠, 무지개다리사업 등을 포괄하여 생활문화센터와 적극적으로 연계하는 생활문화 진흥 구조, 체계를 준비 중에 있다. 나아가 문화예술교육, 문화복지(선택적) 영역의 연계 역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생활문화의 큰 틀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경북 성주의 경우 문화예술교육, 통합문화이용권, 생활문화(센터) 등이 결합된 운영 사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지역문화진흥법 2조 2항 / (2)2015 인천문화재단 연차보고서 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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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위탁 그 너머

생활문화센터의 운영방식은 크게 직영(지자체), 민간위탁(문화재단, 문화원, 문화단체, 기타 등), 주민자율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으나 도시형 센터들은 주로 직영 내지 민간위탁이, 도시 외 유형에서는 주민자율(일부 직영-주민자율 병행)이 비중있게 관찰되고 있다. 주민자율형은 대부분 생활권형(면, 동 등)에서 두드러진다. 이 역시 여러 유형과 사례가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자발적 참여와 시민 중심 운영을 표방하는 생활문화센터 운영취지가 충실히 반영된 사례일 터다. 하지만 이는 생활문화센터의 한계이기도 하다. 지역범위나 공동체가 일정 규모를 넘어설 경우, 앞선 취지를 구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진다. 이에,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운영방식의 세부 조정 및 모델설정을 다시 검토해야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인천의 경우, 이미 문화예술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주민(시민) 자율형 생활문화 거점 운영사례가 보여지고 있다. 민간자율 운영방식이 행정과 적절히 결합, 보완적 협력을 이룬다면, 민간위탁 그 너머의 새로운 운영 모델로써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04거점형 생활문화센터 그리고 생활문화지원센터
인천에는 현재 3개의 거점센터가 존재한다. 거점형 생활문화센터는 문체부의 지침 상, 기초단위(군구)로 운영범위를 한정하고 있는데, 이는 생활밀착형 시설이 일정 범위(읍면동) 내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과 맞닿아있다. 현 사업구조상 광역시도 단위의 거점 생활문화센터는 명확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지역 문화진흥의 관점에서 생활문화의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각 센터의 활동을 지원하고 매개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광역단위 지원센터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인천은 생활문화지원조례가 제정되어 있고‘생활문화지원센터’의 역할(3)을 설정해놓고 있다. 단, 군구별 센터와의 관계 고려, 민간 활동 주체들과의 협력 등을 전제로 해야 한다. 재단의 문화예술 진흥 정책과 민간의 자율성, 노하우 등이 결합된다면 새로운 생활문화의 민관협력 모델로써 의미가 크다. 특히 향후 센터지정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생활문화센터의 운영(조직, 프로그램, 기타 등)을 지원할 민간 기구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 하겠다
(3) 인천광역시 생활문화지원조례 2~3장

나가며
문체부가 추진하는 생활문화센터 조성운영 사업의 보완 또한 시급하다. 그간 시설 조성 중심의 실패사례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조성 후 운영 안정화(예산, 조직 등)는 커다란 숙제다. 정부 주도의 정책사업이 이러한 몇 가지 한계들로 지역 연착륙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이는 결국 중앙정부의 마중물 사업을 지역이 어떻게 소화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인천은 생활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자원과 역량들이 확인되는 곳이다. 문화자치의 관점에서 인천의 생활문화를 인천에 알맞게 안착시키기 위한 민-관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인천의 생활문화센터 지정과 운영을 계기로 이러한 논의와 협력이 활성화 되기를 기대해본다.

 

기획글 우상훈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팀장




생활문화센터에 필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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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피로사회’ , ‘분노사회’, ‘단속사회’… 최근 우리 사회를 정의한 책 제목들이다. 이렇게 많은 학자가 우리 사회 문제점과 대안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너무 많이 죽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한국에서 일어난 자살 사망자 수는 전 세계의 주요 전쟁 사망자 수보다 2~5배나 더 많다고 발표됐다.

02한국은 올해로 13년째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다. 이젠 뉴스도 아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심각하다. 아직 경쟁사회에 뛰어들기 전 청소년과 청년 자살 증가율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OECD 국가들은 청소년 자살을 15.6%나 줄였다. 우리만 47% 나 늘었다. 더 큰 걱정은 자살 당사자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유족들은 일반인보다 자살 시도 확률이 6배나 높다. 또 1명이 자살을 시도하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주변 최소 6명은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고재학. 한국일보 논설. 2016, 6)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은 모든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고 한다. 사회적 유대감, 결속력의 약화, 불안정한 사회, 개인이 겪는 급격한 구조변화가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타살’이다. 경쟁에 치이고, 성과나 업적에 압박당하며, 언제 또 현재 자리에서 밀려날지 모르는 스트레스가 우울증이 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병훈·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사회적 타살이다. 이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다. 허술한 사회 안전망 속에서 고독감과 고립감, 무기력을 호소하는 외로운 개인들이며 지금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웃과 가족들이다.

대안, 일상생활에서 찾는다.
치열한 경쟁사회는 국가와 시장(자본)논리를 근본으로 한다. 그리고 민감한 현안에 대한 입장을 양극단으로만 만든다. 최근 연이어 일어났던 대형 참사에 대한 입장과 반응을 보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억울한 죽음 앞에서 반성과 대책 마련보다는 나와 다른 입장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격과 훼손에만 열을 올린다. 경쟁과 대립은 상대방을 공격해서 제압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서로를 강화하고 키운다.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며 바꿀 수도 없다. 그래서 사회를 바꾸는 새 질서는 다른 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양극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중간지대, 일상생활권이다. 국가와 시장 논리에 생존과 생활이 위기에 처한 일상생활권은 삶의 양보다 질을 중심에 둔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등의 확산과 그 속에서 실험되는 생활경제, 생활정치, 생활예술의 시도가 그것이다. 개성과 자율, 협동을 바탕으로 한다. 그동안 국가와 시장(자본)을 근본으로 하는 구질서가 새질서로 교체되는 것이다. 절박한 일상생활의 의미를 자기 근거로 삼는 새 질서는 창조적이다. 지역에서 상호호혜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협동과 자율의 힘으로 신뢰를 쌓아 생활 속 현안들을 함께 해결한다. 생활 속 민주주의와 사회자본을 쌓는다. 많은 생활예술공동체가 지역에서 필요한 이유다.

03로널드 잉글하트(Ronald Inglehart)는 ‘문화 민주주의’라는 글을 통해서 사회가 생존가치 survival values보다 자기표현가치 self-expression values를 중요시할 때 민주주의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했다. ‘자기표현’이 개인 간 신뢰, 관용, 의사결정 참여 등 민주주의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문화적 가치가 생존가치 추구보다 우선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인 불안 해소와 안정감이 민주주의를 위한 자기표현가치 실현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이루려고 하는 공유경제나 경제적 자립모델을 포함한 생활과 생존가치 해결은 자기표현가치와 함께 이루어야 하는 생활문화사업 통합 목표가 된다.

많은 통계를 보면 사회적 신뢰도인 ‘사회자본’ 지수가 높은 지역이 경제적 성장도 실제 높게 나타났다. 저신뢰 사회에서 막대하게 들어가는 감독, 과도한 집행 절차, 보장과 보호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고신뢰 사회에서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 비용은 지역 성장과 발전에 재투자하여 순환한다. 생활예술 활동은 자신을 표현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협동과 신뢰를 쌓아 간다. 주민들은 일상적 공론장에서 개인 경험과 요구를 모아 공적인 문제로 토론하고 합의에 도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룬 작은 성공 경험들은 공동체 구성원과 주민들에 사회자본을 키우는 데 중요한 계기다.

생활예술 공간과 자생력
생활예술 활동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위한 중요한 조건은 공간이다. 하지만 공간은 운영 방식과 조성 목적에 따라 효과는 매우 다양하다. 지금까지 공공의 문화 공간 지원은 행정 관리 감독과 책임 아래 있는 직영방식, 민간단체 위탁방식, 한시적으로 임대료를 지원하는 민간 운영 지원방식 등이 있다. 이 경우 이용자는 행정의 통제와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이용자의 자발성과 상상력에 한계를 가진다. 생활문화공간 주체가 이용자에게 안정적인 연습 공간 제공 만을 목표로 한다면 이용 편의를 위한 서비스와 합의 통제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공간 이용자의 역량이 지역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점 역할은 하기 힘들다.

04결국, 공간 이용자의 자발성과 자생력 향상은 잘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발성과 자생력을 높이는 주인의식은 권력을 나누고 함께 참여하고 책임지는 과정에서 생긴다. 브라질 작은 도시 뽀루뚜알레그리에가 민주주의 모범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고 따라 하는 이유는 모든 주민에게 주인의식을 갖게 한 ‘참여 예산제’라는 정책의 시도였다. 주인의식은 주민 각자가 시 정부 정책과 예산에 영향을 미치고, 공정한 참여를 보장하는 정부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되었다. 그 결과 행정으로 불가능했던 긴급 현안들이 해결했으며 주민의 창조적인 생활정책들은 차별 없이 제안되고 실현되었다. 참여와 개입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문화변동을 가져와 정착되었다.

문화공간에 대한 주인의식도 다르지 않다. 구성원들과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업과 예산, 집행을 함께 논의하고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전체 사업 예산을 유기적이고 통합적으로 보면서 상대 사업에 대한 배려를 아쉬워 했던 것은 한정된 정보 제공이 그 원인이었다. 과거 행정은 답을 찾아 주민에게 제시해야 하는 주체였다면 지금은 주민에게 답을 물어보고 논의를 붙이는 주체이다. 과거에 문화공간 이용자들은 까다롭거나 착한 민원인 중의 하나였다면 지금은 공간운영과 성장을 스스로 해결하는 지혜로운 공유 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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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새롭게 추진하는 이번 ‘생활문화센터’는 이러한 필요성과 기대로 시작된 문화시설 공간 조성 사업이다. 그래서 기존 문화시설과는 큰 차이가 있다. ‘생활문화센터’ 조성 사업은 주민들의 생활문화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와 기회도 제공하지만, 자율적인 생활예술 동아리 활동이나 자발적인 공간운영이 가능한 환경과 조건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생활문화센터를 생활권 중심부에 배치하여 주민들의 생활문화활동이 지역공동체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커뮤니티 아트나 공공예술, 마을 만들기 같은 사업과 연계해 지역 문화예술활동 네트워크 중심으로 ‘생활문화센터’의 가능성을 기대한다. 결국, 지역 생활문화공간은 주민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면서 주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다.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자기표현에 장애가 되지 않는 공론장, 자율과 협동으로 생활 속 현안을 해결하는 공동체, 일상생활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가 강화, 발전되는 공간으로 고민과 변화가 멈추지 않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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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관/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




기획-요즘 어느 책방에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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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러 어디에 가는지, 책에 대한 정보를 어디에서 얻는지, 전과 달리 이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워졌다. 요즘은 책을 사러 대형 서점에만 가는 것도 아니고, 책을 소개받는 특정 매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달리 말하면 이제는 대형 서점과 주요 일간지를 통해 책에 대한 정보를 얻고 구매하기에는 독서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책을 사고 읽는 행위 외에도 책이라는 매체를 소비하는 모습도 꽤 달라진 것 같다. 문장을 필사하는 책이 나오고, 책방이 전시와 공연을 겸하는 복합 공간인 곳은 물론, ‘북스테이’라고 숙소를 겸한 책방도 있다. 굳이 새 책을 고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중고 서점에 재고가 있는지 확인하는 건 필수적인 절차다. 책을 접할 수 있는 동선이 점차 바뀌고 있다.

책을 찾아보는 동선이 바뀌고 있는 인천의 독자라면 눈여겨볼 만한 서점이 있다. 동인천 카페 두 곳과 도원역 부근의 편집 매장에 세들어 있는 세든서점은 인천에서 유일하게 독립출판물을 취급하고 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위치한 ‘나비날다’ 서점은 배다리 안내소 역할도 하고 있는데 중고책과 새책을 모두 취급하고 특히 환경과 자연, 생태에 관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신포동 문화의 거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송학동의 ‘행복하여라’ 책방은 카페를 겸한 공간으로 일상에서 벗어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여행, 예술, 인테리어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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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부터 베스트셀러까지 다양한 책이 구비된 일반 서점에 비하면 적은 규모이기는 하나, 위 서점 세 곳의 특징은 주인장이 즐겨보고 추천하고 싶은 책들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는 하루에 한 권만 판다는 서점도 있다는데, 한국에서도 이러한 소규모의 특색 있는 서점이 생겨난 것은 그리 생소한 일만은 아니다.  <건축신문> 16호(2016. 1)에는 서울의 동네서점 4백여 곳 중에서 독자와 소통이 활발한 54곳이 꼽혔고,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2015)의 부록인 ‘전국 작은 책방 지도’에는 70여 개 서점이 실렸다. 이 둘만 합해도 전통적인 의미에서 서점으로 기능하는 곳을 포함하여 120여 개가 넘고, 소규모의 전문성/특색을 가진 서점이 전국에  1백여 개 가까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서점을 비롯한 출판시장의 크고 작은 변화를 ‘큐레이션’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려 한다. 문화 콘텐츠는 대체로 생산-편집-유통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 중에서 큐레이션은 편집(선택)에 속하는 영역이다.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재가공하는 것을 일컫는 때가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콘텐츠의 기획(생산) 단계에서 큐레이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 대표적인 사례가 독립출판이다. 독립출판이 기존의 출판물이 비교적 다루지 않은 주제를 제작자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담아내기에 최적의 형태가 된 것은 콘텐츠 기획 단계에서 주제에 대한 큐레이션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재 출판과 서점 계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변화인 독립출판의 약진과 소규모 서점이 늘어나는 현상은 큐레이션 즉 콘텐츠의 편집(선택) 영역이 앞세워진 형태인 것이다.

인천의 독립출판으로는 남동구에 작업실을 둔 6699press와 1인 출판사 소와다리를 소개하려 한다. 6699press가 출간한 총 6권 중에서 <여섯>이라는 책은 게이 6명이 이성애자 친구 6명에게 커밍아웃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 권 더 꼽으면 <느릿느릿 배다리 씨와 헌책 수리법>이 있다. ‘느릿느릿 배다리 씨와 헌책 잔치’에서 헌책 수리법을 정리해 비치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여섯>의 지나치다 싶은 솔직함과 <느릿느릿 배다리 씨와 헌책 수리법>의 헌책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에는 독립출판이라는 형태를 통해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온전히 내게 전해졌는지를 되돌아본다.

소와다리 출판사는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초판 복각본을 발간했다. 처음 출간됐을 당시의 분위기를 전하는 표지와 활자 들을 보면 말쑥한 장정의 현대적 디자인이 깔끔하게 딱 떨어져 갖게 되는 아쉬움이 무엇인지를 떠올리게 한다. 소와다리 출판사의 대표 김동근 씨는 초판 복각본의 아이디어를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얻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헌책방에서 오래된 표지와 활자 들을 접하면서 단순히 초판본의 복제품이 아니라 옛 디자인이 가진 가치를 재조명하는 큐레이션이 반영된 것일 테다.
 
 03

독립출판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이라는 형태에 담아, 소규모 서점은 책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전하고 있다. 보통의 독자들이 앞에서 소개한 서점과 출판사들의 책에 만족할지는 의문이다. 세든서점의 책들은 나를 포함한 2명의 운영자가 직접 골라 추천하는 책들인데, 무엇보다도 ‘잘 알지 못하는 책이 누구에게 필요한지’를 짐작하는 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고 권하고 싶은 책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책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까? 책 목록과 실물만으로 한계를 느낀 것이 올해 초 한 달 반 동안 세들었던 중구 신생동 철물점 시절이다. 사람들이 이 책들에 관심이 있을지도 궁금했지만, 사람들을 설득하고 서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공간을 어떻게 다양하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시도가 부족했다. 운영자 입장에서 서점은 독자를 만나는 데 매우 친밀한 공간으로 그들의 취향을 좀 더 세세하게 파악하고, 그들이 어떤 책 또는 상품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곳인데, 운영하기에만 급급했던 건 아닐까 아쉬움이 남는다. 세든서점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앞에서 언급한, 특히 서점들도 아직까지 공간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기에는 미숙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서점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서점에 책이 많지 않아도 너무 놀라지 마시고 주인장이 추천하는 책은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를 살펴보시기를 권한다. 한 편의 공연이 관객과 만나야 완성되듯, 책 한 권도 독자의 눈길과 손길 없이는 생명력을 얻을 수 없으니 말이다.

김우영(편집자, 세든서점 운영자)




기획-정보의 홍수에서 살아남는 법, 큐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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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 확산의 예기치 못한 효과로 우리 사회는 정보 과잉이라는 만성적 소화불량에 허덕이고 있다. 방송사, 신문사, 통신사 등 기존 뉴스 미디어부터 1인 미디어까지 다양한 매체환경에 둘러싸인 한국 사회는 하루 평균 400여 개의 뉴스 생산자가 발신하는 3만여 건의 뉴스 콘텐츠를 소화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비자와 독자의 입장에서 어디를 찾아가, 무엇을 읽어야 할지를 선별하는 것조차 버거운 현재 상황에서 ‘큐레이션’으로 호명되는 정보 길라잡이의 등장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의미의 ‘큐레이션’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잉태했다. 다양한 예술작품의 정보를 찾아 모으고, 새로운 관점에서 창작자와 작품을 해석하여 갤러리나 거리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는 사람을 통상 큐레이터라 부르며, 그러한 행위를 큐레이션이라 일컫는다. 미술관과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각양각지에 산재한 예술작품을 묶어내고 읽어내는 관점을 제공하듯이, 인터넷 세계의 넘쳐나는 정보를 맥락화하여 이용자에게 간추려 제시하는 행위 또한 큐레이션의 범주에 포함된다. 뉴스 큐레이션, 제품 큐레이션, 지식 큐레이션 등 현재 통용되는 큐레이션의 쓰임새를 일별해 보면, 정보와 의제를 직접 생산하는 발신자보다는 이미 축적된 콘텐츠의 소비방향을 선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공개된 정보의 가치를 선별하고 이용자의 취향을 고려해 재분류함으로써, 정보의 접근성과 활용률을 높이는 행위인 것이다. 
 
네이버, 피키캐스트,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의 대형 콘텐츠 플랫폼이 주도하는 큐레이션 행위가 뉴스 생태계를 교란한다거나 저작권에 대한 정당한 지불 없이 콘텐츠를 활용함으로써 시장 질서를 훼손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정보의 접근성과 활용도를 높이자는 본래의 취지가 특정 언론사나 상품의 소비행위를 부추기는 경제적 효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마땅할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지점은 플랫폼 업체들이 주도하는 큐레이션 행위와 달리, 공공적 목적에서 대중의 문화 향유권을 신장하고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와 지식의 잠재적 가치를 확산하는 큐레이션 문화의 가능성과 확장성이다.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그 개념이 낯설기도 하거니와 선행사례도 찾기가 쉽지 않지만, 해외사례를 통해 큐레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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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폼 아카이브(www.longform.org)는 영어권의 주요 신문사와 잡지에 실린 기사와 에세이를 스크랩해 모아놓은 사이트이다. 2010년부터 자원봉사자들의 동참으로 시작한 아카이빙 활동에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자발적으로 각자의 관심에 따라 다양한 매체에서 선별해온 글을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올라온 글 대부분이 2,000자를 넘는 장문으로 구성된 점이 특이하다. 인터넷 서핑에서 접하는 대부분 글이 짧고 이미지를 보충하는 방식이기에, 상대적으로 쉽고 재미는 있으나 내용적 충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에 주목한 롱폼의 창립자들은 글쓴이의 충분한 생각과 조사가 바탕이 된 기사와 에세이를 큐레이션의 대상으로 한정했다. 그러한 노력을 신뢰했기 때문일까? 롱폼의 창립자인 맥스 린스키(Max Linsky)에 따르면, 빈 라덴이 암살당한 날 그에 대한 정보를 찾는 이용자들이 80만 명이나 사이트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렇듯, 선정적이거나 흥미 위주의 토막글에 싫증이 난 독자들에게 롱폼 아카이브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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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과 오프라인 활동을 결합한 영국의 필름클럽(www.filmclub.org)도 큐레이션의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0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필름클럽은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영화를 함께 보고 토론하는 비평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문화상품인 영화 한 편조차 관람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현실과 영화가 단순 오락거리로만 소비되는 현상에 주목한 필름클럽은 우선 학교 현장에서 영화를 함께 보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큐레이션하는데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대중영화는 물론 고전영화와 예술영화를 다양한 주제와 시청 연령에 따라 목록화하고 영화마다 토론교안을 제공함으로써 아이들의 인문적 소양과 비평적 사고력을 높이는 데 힘썼다. 그 결과로 10년 전에 불과 25개의 학교에서 시작한 필름클럽이 이제는 매주 20만 명이 넘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으며, 영국 정부(£26 million)는 물론 민간 재단으로부터도 상당한 재원을 후원받고 있다. 현재는 영화보기와 읽기교육과 더불어 제작교육까지 병행하고 있으며, 웹사이트에 주제별 나이별 영화리스트와 토론교안을 공개함으로써 영화를 통한 문화예술교육의 길라잡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롱폼 아카이브와 필름클럽의 사례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큐레이션은 이미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경험이거나 활동이 아니다. 단지 기존의 프로그램을 큐레이션의 관점에서 사고하거나 기획하지 못했을 뿐이다. 특히, 큐레이션의 기능이 문화예술의 공공성 확대라는 이슈와 연계될 때 그 확장성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는데, 필름클럽의 초기모델과 유사한 인천의 경험이 갖는 잠재적 가능성을 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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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영상위원회의 <별별(別別)시네마>와 <민들레 극장>, 인천여성영화제의 <모씨네>, 남구학산문화원의 <하품학교>, 영화공간주안의 <사이코시네마 인천> 등 인천 지역의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도 지난 10년 동안 지역주민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해왔다. 극장으로 주민들을 초대하여 영화상영이 끝난 후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하품학교>와 <사이코시네마 인천>, 공연장이나 도서관 등 친숙한 문화공간에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별별(別別)시네마>, 문화시설이 부족한 주민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는 영화 감상프로그램 <민들레 극장>과 <모씨네>까지. 모두 영화관람 환경과 참여 주민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영화를 선별하고 토론 이슈를 준비한다. 극장에서의 일반적인 영화관람 행위와 달리, 영화를 우리 사회나 나의 삶과 연결하여 생각해보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사고력과 표현력을 높이는 인문적 학습활동이다.

이렇듯 흩어진 프로그램과 그것의 성과를 큐레이션의 관점에서 재조직하고, 이를 공유하기 위한 오픈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문화적 공유지의 지역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정보 큐레이션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저작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공공 아카이브’ 혹은 ‘오픈 플랫폼’ 구축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허은광(재단 기획경영본부장, 인천문화통신 3.0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