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첩




[큐레이션 콕콕] 명함, 당신 자신과 또 다른 당신의 것

<명함의 뒷면>의 저자 마이크 모리슨 박사는 묻습니다.

“이제까지 쟁취한 모든 경력과 직함, 타이틀을 다 떼어내고 난 후에도 당신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나요? 타이틀을 떼어내면 당신은 당신을 누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소속이나 직책, 연락처가 적혀 있는 ‘앞면’이 아닌, 당신의 명함 ‘뒷면’에는 무엇이 적혀 있나요?”

명함은 남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씁니다. 이름을 쓰고,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적고, 근무처와 조직을 소개합니다. visiting card, 혹은 business card, 이것이 명함의 일반적인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명함은 민영익이 사용한 걸로 추정됩니다. 1883년 민영익은 조선보빙사(지금의 국가 대표 외교사절단)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고, 아서 대통령의 주선으로 6개월간 유럽을 여행했습니다. 이때 영국에서 청나라 공사를 만나 명함을 건넸는데 그 명함이 지금까지 전해집니다. 요즈음 널리 쓰이는 명함과 비슷한 크기에 자신의 필체로 직접 이름을 썼네요.

중국에서는 2000년 전 누군가를 찾아갔다가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깎은 대나무나 나무 판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이를 ‘알(謁)’이라고 했는데 명함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죠. 주인이 돌아와서 명함을 보고 다시 그 사람을 찾아갔고, 그게 그 시대의 법도였습니다. 그런 명함을 ‘명자(名刺)’라고 했는데 이때의 ‘자(刺)’는 대나무 등을 깎아서 글씨를 새긴다는 뜻입니다. 명, 청 시대에는 종이나 비단에 붓으로 붉은색 글씨를 써서 신분을 밝혔습니다. ‘명첩(名帖)’에 출신 고향, 이름, 감투나 벼슬 등을 적었고, 처음 보는 자리에서 작은 명첩을 건네는 게 당시 학자나 벼슬아치들이 지켜야 할 예의였습니다.

서양에서도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때 카드를 남기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16세기 중엽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던 학생들이 귀국할 때 가르침을 받은 선생님들에게 인사하러 다니면서, 만나지 못하면 이름을 적은 카드를 남겨뒀다고 하네요.

사람들은 더 좋은 직장, 더 높은 직위에 욕심내지만 최고 권력자의 명함은 단순합니다. 달랑 이름만 적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은 부연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이죠. 김일성의 명함은 이름 석 자, 3음절이 전부입니다. 1972년 5월 북한을 방문했던 고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에게 받아온 거라고 하네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교환하는 명함은 작은 종잇조각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제 명함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고, 직장인의 소품도 아닙니다. 가정주부나 학생도 명함을 사용하면서 명함은 점점 더 다양화,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함에 회사 이름 대신 ‘76650’이란 숫자를 써넣고 다닙니다. 사람들이 무슨 숫자냐고 물으면 “당신이 평생 먹는 밥그릇 숫자”라고 말하여 첫 만남의 긴장을 풉니다. 또 다른 세일즈맨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주부가 새 가구를 장만하려고 전화번호부를 찾아 몇몇 가구회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세일즈맨들이 달려와 명함을 놓고 갔고 주부는 그 중에서 눈에 띄는 명함을 발견합니다. “제 명함이 귀하에게 저를 기억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댁의 남편도 즐겁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제 이름은 울프(Wolf) 즉 늑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름만 늑대이지 성격은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부는 폭소를 터뜨렸고 남편 역시 명함을 보고 웃었습니다. 부부는 그 명함의 주인공을 불러 집안의 가구를 새 것으로 바꿨다고 하네요.

죽기 직전, 최후의 뜻을 웅변할 페이지로 명함을 사용한 사람도 있습니다. 구한말 문신 민영환은 1905년, 일제의 을사늑약 강요에 항거하며 자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함에 유서를 적었는데 “학문에 힘쓰고 결심육력하여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면 죽은 자가 마땅히 땅속에서 기뻐 웃을 것” 등의 구절이 들어있었다고 하네요.

세상에는 독특한 명함이 많습니다. 과자 회사는 먹을 수 있는 명함을 만들고, 자전거 수리점은 임시로 자전거를 수리할 수 있게 플라스틱으로 제작합니다. 요가센터는 구부러진 빨대에 요가자세를 한 여성의 이미지를 넣어 사업을 홍보합니다. 뇌 이미지를 그려 넣은 정신과 전문의 명함도 있네요.


세계의 이상하고 독특한 명함을 감상해보시죠.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자세히보기▶)

아코디언 명함은 앞뒤 2면이 아닌 10면에 취미를 적고, 좋아하는 책 속 구절을 적고, 두고두고 다시 보는 영화를 소개합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나 그림을 넣어 텍스트만 있는 기존의 명함과 차별화합니다. 어떤 회사에 다니는 것이, 직업적인 타이틀이 정체성의 전부가 아니라면, 다니는 직장은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은 있고, 내세울 학력은 없지만 내세우고 싶은 색깔은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제까지 쟁취한 모든 경력과 직함, 타이틀을 다 떼어내고 난 후에도 당신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나요? 타이틀을 떼어내면 당신은 당신을 누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소속이나 직책, 연락처가 적혀 있는 ‘앞면’이 아닌, 당신의 명함 ‘뒷면’에는 무엇이 적혀 있나요?” “이 명함 쓰면 당신이 좀 달라보일 겁니다” (내용 보러가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함을 건네받은 뒤 휴대전화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버립니다. 종이명함이 사무적이고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죠. 자판을 두드려 문자와 숫자를 입력할 필요도 없이 카메라로 찍기만 하면 자동으로 정보가 입력되는 명함관리 앱도 보편화됐습니다.(페이스북에서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광고’로 소개된 명함관리 앱 영상. 영상보러가기▶)

아코디언 명함은 시대에 역행합니다. 스마트한 디지털 시대에 한 장도 아니고 몇 겹으로 된 종이명함이라니요.

‘명함도 못 내밀다’라는 표현을 아실 겁니다. 수준이나 정도 차이가 심해 견줄 바가 못 된다는 뜻이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 경험이 없는 작자가 왔다가 명함도 못 내밀고 갔다”처럼 쓰입니다. 하지만 아코디언 명함 앞에서 이런 관용구는 어불성설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것이든 적을 수 있고, 그 메시지가 바로 ‘당신 자신’, ‘또 다른 당신의 것’입니다.

가마쿠라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묘지에 갔다. 무척 큰 공원묘지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영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뜨거운 태양 속에서 조용한 둘레 길을 따라 공원 끝까지 갔다. 가와바타 가족의 묘지 앞에 섰을 때 나는 비밀스러운 디테일을 하나 발견했다. 내 주위 모든 묘비 옆에 석제 명함 상자가 있었다. 이승에 있는 사람들이 저승에 있는 사람을 만나러 올 때 자기 명함을 건네야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디테일은 삶과 죽음을 단번에 친밀하게 만든다. 명함 상자의 존재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계속 내왕하는 비밀스러운 권리를 뜻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 위화,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중에서

시대의 흐름도 좋고, 기술의 발전도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승 사람이 저승 사람에게 건네는 명함이 ‘아름다운 디테일’이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조금 다른 수준의 ‘아름다운 스타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뒷면을 보여주세요.

글/ 이재은(뉴스 큐레이터)




인천의 문학과 작가를 일별하다

인천은 고려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인들의 창작 원천이자 작품 속 중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이 책은 경인일보 기자 5명으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이 2014년 꼬박 1년 동안 문학 현장으로서의 인천을 직접 발로 뛰며 쓴 기획기사를 묶은 책이다. 이 책 한 권이면 고전문학부터 오늘날 현대문학까지 작품과 작가 중심으로 인천의 문학사를 일별할 수 있다. 기자들이 직접 취재를 통해 쓴 만큼, 꼼꼼하며 어렵지 않게 쉽게 읽힌다. 이 책에는 천년 전 이규보부터 18세기 조선시대 선비 이규상의 ‘인천 노래’, 구한말의 신소설과 일제강점기 근대시와 근대소설, 오늘날 현역 작가들의 작품 등 인천을 다룬 주요 작품과 인천의 문인들이 망라되어 있다. 특히 원고와 더불어 작품과 관련된 곳의 옛 모습과 현재 모습까지 다양한 이미지 자료가 함께 실려 있어 ‘읽는’ 재미는 물론 ‘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또한 이 책의 이미지들은 인천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직접 현장을 답사해 볼 수 있는 훌륭한 길잡이이기도 하다.

글/ 함태영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더욱 새로워지는 인천아트플랫폼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 개관 
인천아트플랫폼을 찾는 관람객들이 급증함에 따라서 그간 입주 예술가들만 사용하던 중앙광장의 공동작업실을 이전하고, 그곳에 지난 4월 28일 ‘창고갤러리’를 개관했다. 창고갤러리는 플랫폼의 중앙광장에 위치하여 오가는 관람객에게 접근성이 높은 공간으로 “안을 열어 밖을 밝히겠다.”라는 최병국 관장의 의지를 담은 첫 번째 행보다. 이곳은 1993년 ‘해안동 창고’ 와 사무실로 쓰이다 지역예술가들의 ‘피카소 작업실’이었던 공간으로 초기 ‘해안동 창고’ 명칭에서 착안해 ‘창고갤러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소규모 전시공간인 창고갤러리는 B동 본전시장을 보조하는 기능과 함께 다양한 예술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울러 시민들과 보다 많은 접촉면을 만들어 소통의 계기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창고갤러리의 개관 전시로는 <공업도시 인천>전이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14일까지 열렸다. <공업도시 인천>전은 인천에서 가장 익숙한 풍경임에도 직면하지 않았던 공업도시로서의 의미와 면모를 예술가의 작품들로 짚어보는 전시였다. 근대화에 공업화는 필연적인 요소라는 사고의 전환을 꾀함으로써 공업화 이전에는 등장할 수 없었던 소재나 주제를 다룬 작품 10점을 선보였다. 5월 12일에는 ‘도시전문가와 사진가가 소개하는 인천의 공업화와 근대화’라는 주제로 전시연계 세미나도 마련되었다. 강연자로 참석한 박진한 교수(인천대)는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후, 1970-80년대까지 시대별로 특이성을 갖는 인천의 공업화와 도시화의 역사를 안내해주었고 인천 풍경을 소재로 작업해온 이영욱 사진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며 주제와 관련된 시사점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이어 오는 5월 16일부터 5월 26일까지 새로운 전시가 열린다. 인천아트플랫폼 8기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단기(3-5월) 입주작가인 미디어 아티스트 티모 라이트(핀란드)가 결과보고 전시 <엑스 니힐로(Ex Nihilo) – 무(無)로부터>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가 레지던시 기간에 제작한 동명의 영상작품은 죽음의 공포와 영생을 향한 인간의 갈망에 관한 실험 다큐멘터리로 한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HUBO), 미국 오레건주에 위치한 인체 냉동 보존(cryonics) 시설, 노르웨이의 외딴 섬에 위치한 ‘스발바드 세계 씨앗창고’ 등 3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창고갤러리의 긴 벽면에 가로로 나란히 설치된 3채널 영상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존재의 허무함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시도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시민이 참여하는 예술프로젝트 지원을 위한 개방형 창작공간 운영
인천아트플랫폼은 예술을 매개로 시민들과 소통하는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를 실천하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개방형 창작공간 운영을 시도한다. 아트플랫폼은 3월부터 5월까지 공모와 심사를 거쳐 개방형 창작공간 내에서 시민들과 함께 ‘IAP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할 3팀의 예술가를 선정하였다. 선정된 예술가들은 각각 시민과 전문 예술인 간에 보이지 않는 벽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허물어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하였다. 이들은 예술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에게 문화예술 강좌와 아트마켓을 선보이거나, 체스 게임을 소재로 하는 참여형 작품을 기획하고, 주부들과 시나리오를 만들어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아트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선정된 팀은 6월부터 주중에 4일(평일 3일과 주말 1일)간 시민들을 창작공간에 초대할 계획이다.

24시간 불 밝혀진 인천아트플랫폼 홍보관 
5월 말에는 인천아트플랫폼 내 입주 작가 스튜디오 건물과 중앙광장을 이어주는 보이드(void) 공간에 24시간 불이 밝혀질 유리전시장이 개관할 예정이다. 이 유리전시장은 관람객들에게 인천아트플랫폼에 대한 다채로운 정보를 제공하고자 장소가 가진 역사, 각 공간(건축)소개, 2009년 설립 이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한 300여 명의 시각예술분야, 공연예술분야, 연구평론분야 등의 입주작가들과 진행한 전시와 공연의 흐름과 성과를 홍보하는 홍보관으로 기능할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변적으로 윈도우 갤러리의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늦은 밤, 고즈넉한 건축물과 만남 
인천아트플랫폼의 건축물 경관과 곳곳에 설치된 입주작가들의 작품을 돋보이게 할 야간 조명을 개선한다. 중앙광장을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현수등(현수교를 연상시키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케이블로 연결하여 조명을 밝히는 조명등)이 늦은 시간에도 아트플랫폼의 거리를 밝혀 주어 밤늦은 시간에도 시민들이 고즈넉한 분위기의 건축물들을 관람할 수 있게 될 예정이다. 현재 하버파크 방향의 길가에 설치된 현수막 시설에 전광판을 설비하여 관내에서 진행하는 행사와 입주작가 홍보에 효과를 높이고, 13개 동의 건축물과 관내에 설치된 공공미술작품을 위한 별도의 경관 조명 역시 개선하여 유리전시장과 함께 야간에 방문해도 볼거리가 많아 즐거운 추억을 남겨 줄 것이다.

드라마 도깨비, 영화 뷰티인사이드 등 어디선가 본듯한 그곳 
인천아트플랫폼은 2016년 드라마 <도깨비>, 2015년 영화 <뷰티인사이드> 등 각종 드라마와 광고촬영지로 공간이 노출되면서 예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관광객이 급증하였다. 파급력이 큰 대중매체에 인천아트플랫폼이 등장함으로써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익숙한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매스컴에 드러난 모습을 상상하고 온 방문객들은 영화나 드라마 속과는 다른 현실 속의 복합문화예술공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전시, 공연, 건축물을 관람하는 시간을 보낸다. 차이나타운이나 신포동 일대의 먹거리와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가족, 연인 관람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근현대 건축물을 활용한 국내 최고의 예술가 레지던시 기관 
인천아트플랫폼은 1883년 개항 이후 건립된 건축문화재(등록문화재 제248호)와 1930~4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기존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스튜디오, 전시장, 공연장 등을 마련한 공간이다. 그 결과 설립 직후인 2010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과 제33회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동시에 수상하였다.
인천아트플랫폼은 국내외 시각예술, 공연예술, 연구평론 분야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머무르며 창작활동을 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기관이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총 300여 명의 입주 예술가들을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매해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되는 입주 예술가들은 한 해 동안 프리뷰전시, 플랫폼 살롱, 오픈스튜디오, 작가지원 전시 및 공연, 결과보고전시에 참여하고 스튜디오를 제공 받는다. 프리뷰전시와 플랫폼 살롱은 갓 입주한 작가들의 기존 작품 세계를 전문가 및 관람객과 서로에게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입주 중간에는 플랫폼 내에서 이뤄지는 작가들의 전시(개인전, 단체전)과 공연을 지원하며 11월에는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외부 전문가와 관람객에게 공개하는 오픈스튜디오와 한 해 동안의 결과를 보고하는 결과보고전시가 열린다. 예술가들과 시민들에게 동시에 많은 사랑을 받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올해부터는 해외 기관과의 네트워킹 강화와 기관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자 (전)입주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일본과 인도에서의 레지던시 교류 프로그램과 국제 큐레이터 교류사업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다채로운 행사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1년 내내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하는 입주 예술가들의 전시(프리뷰전시, 개인전 및 그룹전)와 공연은 물론, 다양한 대관전시, ‘만국시장’, ‘밤마실 축제’, ‘아트마켓’, ‘야외기획공연’, ‘15분 연극제(8월)’, ‘건축문화제(10월)’, ‘디자인페어(10월)’, 2017년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꽃 ‘오픈스튜디오와 결과보고전시(11월)’ 등까지 시민들이 연중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과 행사들이 마련되어 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다.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바로가기▶)와 페이스북을 통해 미리 읽어 보고 찾아오셔서 곳곳에 숨어 있는 재미를 찾아보시길 바란다.

글 / 아트플랫폼운영팀장 양종남




한국근대문학관 명작특강 정비석의 『자유부인』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행사일/2017년 4월20일 (목)
장소/ 한국근대문학관
사진/ 민경찬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배려’의 문화,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나눕니다.

로이교육재단 이우영 이사장

인천문화재단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인천지부와 함께 인천에서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을 만나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기부자클럽으로 지역사회에 기부와 나눔의 뜻을 몸소 행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으로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81번째 아너, 로이교육재단 이우영 이사장님을 만나봅니다.

인천광역시영어마을과 LOY문화예술실용전문학교(舊인천문예실용전문학교)로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로이교육재단은, 평생교육에 남다른 비젼을 갖고 있는 이우영 이사장님이 오랜 노력을 통해 일구어 낸 결실입니다. 교육을 통해 ‘배려’를 가르치고, 봉사와 기부로 더불어 사는 삶을 행하는 이우영 이사장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Q. 안녕하세요. 소중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사장님과 재단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로이교육재단 이사장 이우영입니다. 1984년 팔봉산업교육원으로 시작한 우리 재단은 올해로 33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인천광역시영어마을, 경문실용전문학교, LOY문화예술실용전문학교, 중앙직업전문학교, 인천서구영어마을, 글로벌관광통역직업전문학교, 리라유치원 등을 운영하며 유아교육에서부터 고등직업교육, 외국어 교육과 자연주의 교육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평생교육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Q. 고등학교 전자과 교사로 재직하시던 중 교육에 대한 남다른 고민에서 교육사업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컴퓨터 교육과 직업 교육, 외국어 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제가 교사로 있던 시절은 대학 진학률이 30%도 안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70%의 학생들은 사회의 낙오자처럼 인식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지요. 그들 또한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떳떳이 살아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출발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때에 행복하다고 봐요. 우리는 모두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듯이, 사람마다 각기 잘하는 것이 다르지요. 전 우리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고, 이를 통해 재미있고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면 합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그 각자의 재능을 잘하게끔 만드는 것, 재능의 튼튼한 기초를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스물아홉살 때 교직을 물러나 교육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출발은 전산이었습니다. 사무자동화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때에 팔봉전산교육원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쳤어요. 우리 아이들이 이왕이면 세계시장을 누리고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요. 당시 우리 졸업생들은 국내에도 취업했지만 미국 실리콘밸리까지 진출했습니다. 학위과정을 미국의 한 대학과 연계시키기도 했는데, 미국에 간 아이들이 한두달 이후에 연락이 와서는 영어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연락이 왔어요. 아이들에게 조금만 견뎌보자고 이야기했지만, 그 아이들을 만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원어민 선생님들을 모셔다 95년부터 영어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는데, 저희 교육시스템을 많은 분들께서 좋게 평가해주셨습니다. 이후 다양한 기관의 영어 위탁교육을 진행하면서, 지금의 인천영어마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Q. 가장 최근에는 재단에서 와인CEO아카데미를 운영한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식문화교육 또한 관심있으신 면이 흥미로웠어요.
A. 저희가 학교교육 최초로 파티플래너, 푸드스타일리스트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파티 문화라고 보면 외국에서 온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 시골에서부터 파티, 잔치 문화가 있었어요. 잔치는 오는 손님들에게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대접하는 문화이지요. 이게 바로 상대방을 위한 ‘배려’의 문화였어요. 주인이 배려의 마음에서 손님들에게 무언가를 내놓으면, 손님들은 ‘고맙다’, ‘감사하다’, ‘맛있다’라고 인사합니다. 초대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기에 가능한 인사이지요. 사실 우리는 이렇게 ‘더불어 사는 삶’을 우리 문화 안에서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이 문화가 현대사회에서는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고 봐요. 나는 이것이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개성을 중요시 하는게 아니라 줄을 세워서 그 길만을 강요하니 창의성도, 배려도 없어졌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창의성이 없다, 사회성이 없다, 배려심이 적다라고 탓할 게 아니예요. 우리가 이렇게 만든겁니다.
그래서 난 어른이 멋져야 아이들이 멋져진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자꾸 무언가를 알아야 해요. 그래서 와인아카데미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돈벌고 살아오는 데 급급했어요. 여유를 갖는 것에 대해 소홀하며 내 자신을 밀어버렸지요. 이러한 ‘나’를 살려주자라는 취지에서 와인을 매개체로 가져왔습니다. 와인은 술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음식이예요. 와인을 통해 다시금 사람을 만나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꽃피웠으면 좋겠습니다.

Q. ‘배려의 문화를 다시 가르친다.’ 라는 철학이 인상 깊습니다. 결국 이사장님께서 많은 봉사와 기부활동을 하시는 것도 이러한 ‘배려‘와 같은 맥락이겠네요.
A. 농사를 지으신 부모님 밑에서, 흘린 땀방울에 비례해 풍족해진 땅에서 난 것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보며 자랐습니다. 봉사와 나눔은 단순히 금전적인 것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닌, 마음과 정을 나누는 것임을 아버님을 통해 배웠어요. 봉사라는 건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예요. 전산교육원을 운영할 때에 우리가 전기를 볼 줄 아니, ‘아이들과 같이 어려운 가정에 방문해서 좀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조금씩 이웃을 도왔습니다. 사실 나하나가 똑똑해서 사는건 아니거든요. 살다보면 그런걸 느끼게 되는데, 나만 배부르면 되는건가. 이왕이면 베풀자.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우리 재단이 보유한 인적, 물적 자원을 교육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기부에 지속적으로 힘써오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줌과 동시에 서로 나누고, 배려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Q. 학생들과 함께한 봉사와 기부활동으로 2012년에는 교육기부 대상 또한 수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기부라는 것이 가르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닐텐데 이사장님의 기부와 나눔 운동에 구성원들이 기꺼이 함께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A. 제가 하는 모든 나눔 활동에는 언제나 우리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솔선수범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나눔에 대한 저의 마음과 행동들이 우리 재단 가족들에게 스며들어간 것 같습니다. 우리 실용전문학교 아이들은 항상 웃어요. 왜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아이들이 자원봉사 하는 거예요. 2012년도에 인천에서 최초로, 학교로도 최초로 우리나라 교육기부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사장이 시키고 학장이 시켜서 되는게 아니라 봉사, 기부는 아이들이 웃으면서 좋아서 했던 일이었기에 가능했지요. 모두 아이들 덕분입니다.

Q. 인천에서 봉사와 기부 문화가 확산되는데에 이사장님을 비롯한 로이교육재단의 구성원 여러분이 많은 역할을 해주시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사업가로서, 지역의 나눔문화를 선도하는 입장으로서 이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또 다를 것 같습니다.
A. 선인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충남 서산에서 배를 타고 이 곳 인천에 올라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천은 제2의 고향보다 제1의 고향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죠. 인천에서 소중한 가족을 비롯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기에 그 어떤 인천시민보다 인천에 대한 사랑이 크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배우고 얻은 만큼 우리 인천과 인천 시민, 학생들을 위해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는 것이 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한국청소년봉사단 총장으로서 인천의 중고등학생과 학부모들의 봉사활동을 지원하고, 인화회 활동을 통해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 도서벽지 지역의 활성화를 위한 지원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 학생들과 부평구와 함께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나도 쉐프!’라는 교육기부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도 있어요. 기부와 나눔은 실천할수록 커지는 것이니, 앞으로 지역 사회 구성원이 모두 이 도시를 더욱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 나가는 데에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Q. 나눔의 문화가 가득한 인천을 생각하니 따뜻해집니다. 지역 사회의 문화 뿐만 아니라 인프라 구축을 진행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재단과 이사장님의 향후 행보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A. 강화도에 식문화예술단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그동안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왔는데, 나도 후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남겨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강화에서 나오는 제철식재료를 가지고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할 예정입니다. 직접 배추를 심으면서 면적도 계산해보고, 자로 재어보면서 수학으로 연결시키고, 나아가 배추를 키우면서 과학을 알려주는 거지요. 배추가 크면서 색깔이 달라지므로 색채 공부도 될 수 있고, 각국의 배추를 활용한 음식은 무엇이 있는지 보면서 세계문화까지 배울 수 있을겁니다. 이렇게 자연을 통해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의 장을 만들고 싶어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인천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아트레인의 탑승자를 찾습니다.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 기부 캠페인 아트레인은 인천 시민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개인 혹은 법인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기업 후원의 경우, 기업의 경영철학과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문화예술로 함께 만들어드립니다.
아트레인 참여 문의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032-455-7114, artrain@ifac.or.kr

인터뷰 정리 / 인천문화재단 유영이




태양왕 루이14세의 음악
인천콘서트챔버 정기연주회 <고전의 가치> 원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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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일/2017년 5월06일 (토)
장소/ 인천콘서트챔버 제3회 정기연주회
사진/ 민경찬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인문예술아카데미 <봄, 다시 희망> 트라이보울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행사일/2017년 4월22일 (토)
장소/ 트라이보울
사진/ 민경찬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희망에 말 걸기 위해 절망을 이야기하다
트라이보울 인문예술아카데미 <봄, 다시 희망>

지난 4월 23일 인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송도의 복합문화예술공간 트라이보울에선 시인 정호승과 가수 재주소년(박경환)을 초청해 ‘봄, 다시 희망’이란 주제로 인문예술아카데미를 열었다. 필자도 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트라이보울을 찾았는데, 세계 최초 역쉘(shell) 구조로 지어진 건축물의 오묘한 아름다움이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부의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내부는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말하던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축소한 것 같았다. 여기서 혹자는 희망을 주제로 한 아카데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왜 비극을 슬며시 꺼내는가하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호승의 강연이 그랬다. 그는 ‘희망’에 말 걸기 위해 ‘절망’을 꺼내놓고 있었다.

정호승은 자신의 시 몇 개를 소개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정호승이 말하듯 시는 역설과 반어, 더 나아가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법이다. 그러나 설령 그것이 불가능하더라도 우리는 시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각자의 경험을 끌어오거나, 또 다른 레퍼런스를 경유해 볼 수 있다. 필자가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끌어오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물론 철학자의 몇 마디 말로 시를 재단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원형극장을 닮은 트라이보울과 희망에 말 걸기 위해 절망을 꺼내든 시인의 모습이 필자에겐 그저 우연처럼 보이지만은 않았다. 정호승의 시로 곧바로 들어가기 보다는, 우선 니체가 소개하는 미다스 왕과 현자 실레노스의 유명한 일화를 경유해보자.

어느 날 미다스 왕은 현자 실레노스를 불러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훌륭한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실레노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가련한 하루살이여, 우연의 자식이여, 고통의 자식이여, 왜 하필이면 듣지 않는 것이 그대에게 가장 복될 일을 나에게 말하라고 강요하는가? (…) 태어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무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네. 그러나 그대에게 차선의 것은 – 바로 죽는 것이네.” 이 지독한 염세주의에 대한 니체의 처방은 그야말로 훌륭하다. 그는 그리스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스인들은 삶의 무가치성과 의미 없음에서 오는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고통스러운 실존의 문제에서 출발해 생기 넘치는 올림포스 신들의 세계를 창조했다. 그것이 바로 비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신들은 스스로 인간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정당화했다. 그러므로 니체는 이제 실레노스의 말을 거꾸로 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나쁜 일은 곧 죽는다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나쁜 것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07, 41쪽, 43쪽 인용]

절망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비극처럼 정호승의 시는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절망을 꺼내놓는다. 그는 희망을 위한 희망은 마치 물거품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제정자들의 입에서, 수많은 텔레비전 채널에서, 즐비한 사회 캠페인 속에서 정체 없이 밝은 미래와 눈부신 희망을 본다. 그것들은 마치 하늘에서 포도주 눈이 내리고, 치킨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언했던 생시몽주의자들의 환상처럼 한순간 아스라이 질 운명에 처해있다. 그래서 정호승은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는 강연 내내 절망을 소중히 품에 안을 것을 강조했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정호승,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중 인용

여기서의 희망과 절망의 의미는 그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것 정도로 축소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는 (비록 강연에서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희망의 밤길」에서 “희망은 무엇을 딛고 서 있는가”라고 묻는다. 희망은 무엇을 딛고 서 있는가? 만약, 희망이 절망을 딛고 서 있다면 그 절망이란 무엇인가? 그의 시 「바닥에 대하여」는 이러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건넨다.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정호승, 「바닥에 대하여」 중 인용

바닥은 있거나 없거나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절망과 바닥은 절벽이란 메타포로 이어진다. 정호승은 「절벽에 대한 몇 가지 충고」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절망의 절벽 하나씩은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절벽 그 자체를 받아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절벽 그 자체가 되고, 그 밑에 있는 바닥이 되고, 거기에 뿌리 내린 나무가 되며, 그 나무 끝에 앉아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새가 될 수 있다. 디오니소스는 천의 얼굴(가면)을 갖고 있다. 희망은 불확정성을 딛고 선다.

정호승은 강연을 계속해 나가면서 우리에게 사진 하나를 보여준다. 거기엔 토성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이 담겨 있었지만, 그것은 우주 한 가운데에 좁쌀만큼 작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처럼 우주적 스케일에서 바라보면, 우리의 존재란 일천할 뿐이고, 덧없고 허무할 뿐이다. 이는 앞서 실레노스가 말한 고통이며, 세계의 불확정성 속을 허우적대고 있는 존재자의 고통이다. 우리는 이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여행자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호승은 우리가 절망의 여행만을 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우리에겐 절망 말고도 또 다른 가치가 필요하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다. 여기서 희망은 존재론적 문제에서 윤리적 문제로까지 나아간다. 정호승은 「여행」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시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 정호승, 「여행」 중 인용

우리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찾아서 인생이란 여행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이란 가치를 통해서 희망을 발견한다. 그래서 정호승은 이러한 여행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며, 이 시에서 여행을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라고 강조해 말한다. 이는 윤리적 행위를 촉구하는 타자의 명령에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찾아나서는 일은 우리가 알 수 없는 타자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정호승은 그 여행이 “설산”과 “오지”로 떠나는 것처럼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서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것처럼, 사랑과 고통이란 결국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절망과 고통은 희망과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 사랑이 고통을 동반한다면, 그것은 연인들의 배타적 사랑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랑의 대상은 나의 시야 앞에 놓여 있다고, 그래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기다란 팔로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자이고, 재주소년의 음악을 들으면서 내 옆에서 손뼉을 치고 있는 자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는 틱낫 스님의 말처럼 절망이란 타자는 희망에 있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줄곧 절망을 희망의 반대급부처럼 여기고 그것을 소외시키려했다. 희망을 위한 희망엔 절망이란 타자가 없다. 타자를 제외한 희망은 불가능하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의 마지막 구절처럼, 우리는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서로를 사랑한다.






 

글/ 박치영 인천문화통신3.0시민기자




시장에서 대 모험을 펼치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숭의평화시장에서는 복작복작한 정겨운 사람 냄새가 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가 있는 날 지역 특화프로그램 공모에 선정된 행사인 <숭의평화시장 대모험>은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와 상인기획단, 거주 예술가, 주민들이 함께 기획한 지역특화프로그램이다.

숭의평화시장은 1971년 4월 12일에 남구 숭의 1,3동에 개설된 48년의 역사를 지닌 남구의 대표적 재래시장으로 1960년대 산업화 단계에서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천광역시 남구 숭의동 일대는 숭의 자유 시장, 숭의 깡 시장, 목공예 점포가 들어서 함께 성장했다. 숭의 평화 시장 건너편에는 인천에서 처음 건설된 숭의 공설 운동장이 있어 전국 체전 등 각종 스포츠, 종교, 문화, 정치 행사가 모두 이곳에서 개최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의 호황을 누렸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개설된 지 오래되어 시설이 낙후되고, 상인들의 연령은 고령화되어 1990년대 들어 활기를 잃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른 시장의 쇠퇴에 가장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은 시장의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옛날의 활기찬 시장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본인들의 의지로 시장 상인, 주민들로 구성된 <숭의평화시장대모험> 기획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숭의평화시장에 어울리는 복작복작하고 사람 냄새나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게 되었다. 시장을 아끼는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진 주민, 상인들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숭의평화시장대모험>은 ‘어른’과 ‘아이’ 모두 놀 수 있는 공간이자 ‘시장’, ‘과학’의 문화예술적 만남을 주제로 하고 있다. 단순히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라, 놀러 가는 시장 즉 체험, 공연 판매 등의 행사를 즐길 수 있다. 이 밖에도 원예, 농업, 목공, 에너지, 자원재활용 등 다양한 주제가 월마다 놀이, 과학, 문화예술로 어우러져 모든 체험이 무료 행사로 진행된다.

지난 4월 26일은 ‘꽃놀이 대모험’이라는 주제로 꽃 조명탑 만들기, 게릴라 가드닝, 무료체험, 아트마켓, 오픈마켓, 시장 콘서트 등의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졌다.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 작은 시장규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체험행사를 즐기러 이곳에 모여있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정의 경품을 낚는 시장 낚시에서부터 게릴라 가드닝 등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게릴라 가드닝은 버려지고 황폐된 공간을 정원으로 가꾸는 활동으로 소규모의 화분에서 게릴라 가드닝이 진행되었다. 직접 화분에 식물을 심으며 무분별한 쓰레기 투기, 황폐화된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밖에도 행사장 한 편에 캘리 공방 <다락>가게가 마련되어있었다. 이곳에서는 캘리그래피 전문가와 함께 직접 캘리그래피를 체험해볼 수 있다. 어버이날을 앞둔 아이들이 캘리그래피로 부모님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시장 한구석에서는 도깨비 책방이 열리고 있었다. 책을 구매하고 싶은 주민들은 이곳에서 어른 책, 어린이 책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또한 가죽공예, 규방, 우드아트, 클레이, 천연비누, 석고 방향제 등 다양한 수공예 제품들도 판매되고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오후 6시 30분부터는 시장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다문화 가족의 어머니들로 구성된 공연팀부터 레노바기, 인천에 거주하는 어르신 합창단 등의 다채로운 공연으로 모든 숭의평화시장 <꽃놀이 대모험> 행사가 끝마쳐졌다.

이번 행사를 진행한 최경숙 사무처장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숭의평화시장대모험>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이번 프로그램은 인천 남구청에 있는 시장 살리기 프로그램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응모해 당선된 지역 특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거주 예술가, 지역주민, 상인들이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기획에 참여한 만큼 주민들의 시장살리기 프로그램에 대한 의지가 높다. 이러한 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Q. 숭의평화시장만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숭의시장은 다른 시장들과는 달리 시장 중앙이 세모 모양을 이루고 있는 예쁜 모양을 가진 시장이다. 이 공간이 문화예술을 통해서 색다른 공간 즉 문화예술공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에 큰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또 앞으로도 진행될 5개의 행사에도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

<숭의평화시장대모험> 행사를 체험하며 작은 부분에서까지 시장에 대한 상인, 주민들의 애정과 사랑이 느껴져서 관람객의 입장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한 시장을 살리기 위해 지역 상인들이 직접 기획에서 진행까지 행사에 모든 부분에 노력을 투자했다는 것이 이 시장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 같다. <숭의평화시장대모험>에서부터 시작된 상인, 주민들의 작은 노력들이 계속해서 모인다면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열리는 5개의 행사들, 5월 31일에 열리는 <뚝ᄄᆞᆨ나라 대모험>, 6월 28일 <100명의 페인트공이 떳다!>등 많은 무료체험, 오픈마켓, 시장 콘서트가 진행된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숭의평화시장으로 모험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글, 사진/ 최승주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