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거첨뱅인영감굿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행사일/ 2017년 6월 3일 (토)
장소/ 인천무형문화재전수관 야외공연장
주최 : 황해도굿 한뜻계보존회
사진/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민경찬




아트플랫폼 입주예술가 창작지원 전시 <제보>展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행사일/ 2017.06.02~20417.07.09
장소/ B동 전시장
사진/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민경찬




i-신포니에타 해피콘서트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행사일/ 2017년 6월 11일(일)
장소/ 엘림아트센터 엘림홀
사진/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민경찬




신포동, 떠난 청년들을 되돌리려면?

‘신포청년문화, 비판 넘어 비전 품다’
– 인천청년문화정책포럼 –

요즘의 인천 청년들에게 ‘친구들과 모여 놀 때 주로 가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구월동이나 부평, 송도신도시를 떠올린다. 반면 20년 전의 인천 청년들, 그러니까 지금은 중장년이 된 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신포동에서 놀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처럼 신포동은 2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청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 그야말로 핫플레이스였다. 하지만 시청 청사가 이전하고, 인천여고, 대건고, 숭덕여중,고 등 많은 학교들이 시청을 따라 이전하면서 신포동을 포함한 중, 동구 일대는 낙후하기 시작했다. 행정에서는 개항장 문화지구를 조성하는 등 수년째 구도심 재생사업에 힘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청년들에게 신포동은 낯선 옛날 동네에 불과하다. 

그런 신포동을 발판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세 사람이 모였다. 지난 6월 1일 오후 3시, 인천생활문화센터에서 ‘신포청년문화, 비판 넘어 비전 품다’를 주제로 네 번째 인천청년문화정책포럼이 열렸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장한섬 교육문화분과위원장은 포럼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포럼에서 나눈 논의를 통해 단지 청년들만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을 통해 신포동의 문화가 지켜지고 발전하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고경표 큐레이터가 ‘인천 음악생태계의 자생력과 제도적 한계’를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고경표 큐레이터는 지난해 인천 원도심의 음악 장소, 음악인들에 대한 기록을 모아 신포동에 위치한 임시공간에서 <비욘드 레코드> 전시를 열었다. 그가 전시를 위해 원도심의 음악생태계를 조사하며 발견한 키워드는 바로 ‘자생성’이었다. 50년대 신포동에 주둔하던 미군과 지역민의 교류로 자연스레 조성된 음악생태계는 물론이고, 신포동이 인천 청년문화의 중심지였던 7,80년대, 서울과 인천 일대의 음악인들이 신포동을 아지트로 모여 들던 90년대 모두 지역 음악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전성기였다. 또한 여전히 유지되는 구도심의 음악공간들과 그러한 음악공간을 바탕으로 기획하여 지역 음악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축제 ‘사운드바운드’ 역시 신포동 일대의 음악생태계가 여전한 자생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자생적으로 자리 잡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하며 발전하는 지역의 문화생태계가 행정에 의해 그 동력을 상실하는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지역 문화예술인과 관의 협조로 이뤄낸 도시재생의 사례를 몇 가지 소개했다. 그가 소개한 일본의 야마구치 예술정보센터와 영국의 항구도시 브리스톨에 위치한 복합문화센터 워터셰드는 모두 관의 주도 하에 국가 비용으로 운영되지만, 내부의 콘텐츠 생산과 활용 및 운영은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시민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특징을 가진다. 고경표 큐레이터는 사례를 소개하며 많은 시간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관이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지역 문화예술인과 협업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 발제를 맡은 이의중 건축가는 신포동에서 건축재생을 주제로 3년째 건축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지난 3년의 작업들을 소개하며 ‘신포동에서 발견한 장소를 위한 건축’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그는 연고도 없는 인천에 와서 다양한 건축 작업을 진행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인천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몇 가지 소개했다. 먼저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이 지닌 가치가 저평가되어 있으며 저평가된 지역이 광범위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특히 신포동 일대는 개항을 기점으로 13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지역이며, 경제적 침체로 인해 개발되지 않은 건축 자산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많은 이들이 지역의 문제점이자 맹점으로 뽑는 행정의 무능을 인천이 매력적인 이유로 꼽았다. 지방행정의 의지가 약하고 노련하지 못했기에 사업 추진이 느렸지만, 그만큼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지자체의 의지가 컸지만 그만큼 지나치게 빠르게 발전하여 가치를 발견할 시간도 없이 자본이 잠식해버린 군산과 부산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세 번째로 발제를 이어간 다인아트의 윤미경 대표는 인천이 다양한 문화유산과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대한 연구나 보존이 미흡하다는 것을 지적하며, 지역의 가치를 보존하고 시민들이 그를 향유할 수 있는 박물관, 미술관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여행객들이 지역을 방문할 때 도시경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 서점, 전통시장 등을 방문하면서 내면의 도시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역 출판사로서 인천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책 속에 인천의 역사를 담아내려 했던 노력을 소개하며 출판 없이는 문화도시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인천문화재단 문화교육팀 손동혁 팀장은 ‘항구를 통해 새로운 것들이 들어오고, 새로운 것들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것들이 융합되어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던 장소가 신포동이지만 지금은 새로운 것이 형성되기 보다는 오래된 것을 이야기하게 된다.’고 말하며, ‘구도심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오래된 것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일을 벌이는 세 명의 발제자들이 앞으로도 더 많은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말을 보탰다.

또한 플로어에서 토론에 참여한 오석근 작가는 ‘행정에서 지역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콘텐츠와 문화예술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치적 상황에 따라 문화정책이 변화하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을 인천문화재단이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도심에서 청년을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청년들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활기로 낙후한 지역이 다시 활기를 띠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구도심은 매력적이지 않다. 이날 발제를 맡은 세 명과 같이 구도심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매력을 느꼈다 할지라도, 민간에서 청년의 몸부림만으로 구도심이 다시 살아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구도심에 찾아와, 직접 그 가치를 발견하는 청년들이 발을 붙일 수 있도록,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행정의 몫이다. 청년들이 흔들리지 않고 지역의 가치를 이어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는 행정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글/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라지는 인천의 옛 모습을 사진에 담다

김보섭 사진전 ‘인천 화교이야기’

지난 6월 9일 한중문화관의 화교역사관 1층 갤러리에서 사진전 ‘인천 화교이야기’가 문을 열었다. 이번 사진전은 인천의 옛 모습이 남아있는 곳들을 돌아다니며 사실적으로 사진에 담아내는 김보섭 사진작가의 개인전으로,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작가가 직접 인천 화교들의 삶으로 들어가 남긴 기록들이다.

차이나타운이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지금은 화교사회가 많이 개방되었지만, 김보섭 사진작가가 이번 사진전에서 소개한 사진들을 찍던 8,90년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많은 화교들이 배타적이었고,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한국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 심했다. 하지만 작가는 처음 인천에 정착하고 화교 문화를 자리하게 한 화교 1세대에 주목했다. 그들에게 남아있는 옛 문화와 삶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했다.

처음 화교 사진을 찍게 된 것은 80년대 말,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생일을 맞은 마당씨 할머니를 만났고, 그 가족의 사진을 찍어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지금은 관광객도 많고 중식당이 즐비한 화려한 거리가 되었지만, 당시 차이나타운은 어두운 분위기의 거리였다. 작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여 사진을 찍기보다 차이나타운이 가진 어두운 분위기를 그대로 남기고 싶었다. 한 달에 20일 이상, 차이나타운을 찾아 거리를 배회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아무도 없는 집 같았지만 어떤 집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마작을 하기도 하고, 장의사가 직접 관을 짜고 있기도 했다. 마작 집에 붙어있는 빨간 봉투들이 결혼식 초대장이라는 것을 알고 중화루에서 작게 열린 결혼식에도 쫓아갔고,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집에도 찾아갔다. 거리에서 치른 장례식이나, 절에서 열리는 행사 등 말 그대로 그들이 사는 삶 자체를 쫓았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는 물음에 거절을 하고 문전박대를 하던 사람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으며 만난 한 할아버지가 구정에 중국 산동성의 고향을 방문하는 데 동행해 그의 가족들을 만나고 오기도 했다.

흑백으로 담은 사진들은 그가 포착한 당시 차이나타운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담고 있었지만, 관찰자의 시선으로 한 발짝 떨어져 찍은 사진이 아니라 직접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하며 찍은 사진이기 때문인지 포근하고 정감 있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옛 모습’이라는 주제에 대한 집요한 열정으로, 인천의 화교뿐 아니라 중, 동구 일대의 옛 흔적들을 사진 속에 담는 작업들을 이어왔다.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 곳곳에 남아있는 옛 모습을 발견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북성포구의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그 아래서는 사람들이 통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바다에 띄우는 모습을 발견하고 ‘바다사진관’을 열어 방문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또한 지금은 동화마을이 되어버린 송월동, 인천아트플랫폼 일대가 된 해안동 일대 등도 개발 전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두었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던 곳들은 그가 사진으로 기록한 이후에 개발이 되어 옛 자취를 감추었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배경이 된 차이나타운 역시 2000년대 이후 관광지가 되면서 옛 모습이 사라져 그곳에서의 사진작업을 중단하게 되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작가는 여전히 남아있는 옛 인천의 흔적들을 수집하고 있다. 지금은 신포동 일대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을 찍는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소란한 주점이 아니라 오래된 술집을 오랜 동안 찾아온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쭉 인천에서 살며 사진을 찍겠다고 말한다. 그가 담은 사진 속의 대상, 사람이나 풍경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김보섭 작가는 사진 속에 옛 인천의 모습 뿐 아니라 그 시간을 살던 사람들과 사람들의 문화를 남긴다. 시간이 흐르며 삶의 모습과 문화가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무분별하고 인위적인 개발로 만든 도시의 모습은 사람들의 삶과 동떨어지기 마련이다. 새로운 건물들, 화려한 풍경들도 모두 언젠가는 옛 흔적들이 되겠지만, 그 속에도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담길 수 있을까. 작가의 ‘옛’ 사진이 우리의 ‘지금’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글, 사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김진아




해양 인천의 문을 연 선구자 이야기

2017년 상반기 작은 전시인 <광제호-머나먼 여정>이 지난 5월 22일부터 인천광역시시립박물관 2층 작은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해양 인천의 문을 연 선구자 신순정 함장과 근대식 기선 광제호에 얽힌 이야기들을 시민에게 소개하며 그동안 잊혀져 있던 지역의 선구적인 인물과 역사에 대한 선양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이 전시를 기획하였다.

1부 근대식 함선 도입의 배경

전시구성은 총 4부로 나뉘어져있다. 1부에서는 근대식 함선 도입의 배경을 다룬다. 양무호와 광제호에 대한 소개로 전시의 포문을 연다. 양무호는 대한제국이 일본 미쓰이물산으로부터 함선을 구입했을 때 고종이 1903년 4월 15일 제물포항에 도착한 이 함선을 “나라의 힘을 키운다”라는 뜻으로 ‘양무호’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양무호는 하루 43톤에 달하는 석탄 소비량 등 운항 비용을 감당 할 수 없어 제물포항에 정박해 있는 날이 더 많았다. 또한 1909년 일본 해운회사에 매각되기까지 양무호는 단 한차례의 출동도 하지 못한 채 러일전쟁에 동원되는 비운을 겪었다. 양무호의 실패를 경험한 대한제국은 해관 총세무사 브라운의 발의에 따라 일본 가와사키조선으로부터 광제호를 구입하였다. 해안경비, 등대 순시 및 세관 감시에 이용하기 위한 광제호는 당시 최신의 조선 기술로 제작되었는데 무선 전신 시설이 설치되어 월미도 무선전신소와 첫 교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부 해양 인천의 문을 연 신순정 함장

2부에서는 해양 인천의 문을 연 신순정 함장에 대한 소개와 함께 조선우선주신회사, 광제호 항해사 시절의 신순정 함장, 그의 졸업증서, 사진엽서 등의 전시가 이어졌다. 신순정함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군함의 함장이다. 그는 한성일어학교에 재학 중 박영효의 추천을 받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에서 근대식항해 교육을 받았다. 그는 양무호의 함장으로 임명되어 제물포항에 닻을 내린 인물이다. 

3부 광제호의 여정

3부에서는 광제호의 여정을 다룬다. 1904년 12월 20일 대학제국에 인도된 광제호는 해안경비, 등대 순시 및 세관 감시 등에 이용되었다.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통감부의 관용선으로 운영되어 연안 시찰 및 연회 장소로 이용되었고,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동부 소속이 되었다. 1910년에는 무선전신시설이 설치되어 월미도 무선통신소 간의 전파통신을 실시하였다. 이후 조선우선주식회사에서 상선으로, 인천해원양성소의 실습선으로 각각 사용되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해군 보급선으로 사용되던 광제호는 광복 후 일본인의 귀환에 이용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4부 태극기 휘날리며

마지막 4부에서는 광제호에 게양되었던 태극기에 대한 이야기로 전시가 끝마쳐진다. 이 전시관에 전시된 태극기는 경술국치 전야인 1910년 8월 28일 밤 신순정 함장이 세상의 눈을 피해 고이 간직한 것이다. 광복을 기다리던 이 태극기는 신 함장이 별세한 직후인 1945년 빛을 보았다. 2017년 상반기 작은 전시 <광제호-머나먼 여정>에서는 근대식 기선 광제호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해양 인천의 문을 연 선구자 신순정 함장에 대한 소개가 다뤄진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신순정 함장의 항해사로서의 일상을 들어다 보는 계기이다. 항해사로서 행복한 미소를 띠며 사진으로 남아있는 그를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광제호-머나먼 여정>전시는 9월 3일까지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다.  

 

글, 사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최승주




환대의 시작, 그리고 대화의 시작

지난 5월 26일부터 30일까지 인천문화재단과 인천영상위원회의 주관 하에 아트플랫폼에서 개최된 제5회 디아스포라영화제에 다녀왔다. 이번 영화제는 “환대의 시작”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난민, 여성, 이주노동자에 초점을 맞춘 총 50편의 장‧단편 영화들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다. 이밖에도 한국문단의 대표 작가들과 디아스포라 영화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별 섹션 ‘디아스포라의 눈’, 이주민들이 자국의 최신영화와 배우, 감독을 만날 수 있는 ‘아시아 나우: 베트남 특별전’도 신설되어 눈길을 끌었다. 다양한 볼거리들이 많았지만 영화제에 관한 기본 정보는 이쯤으로 해두자. 필자는 이번 영화제에서 개막식과 디아스포라의 눈 섹션에 참가했다. 그리고 김정은 감독의 <야간근무>(2016), 닐 블롬캠프 감독의 <디스트릭트9>(2009), 김정 감독의 <고려 아리랑>(2016),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 왕 빙 감독의 <타앙-경계의 사람들>(2016) 등의 영화도 보았는데, 이러한 섹션들과 영화들에 대한 감상으로 이번 영화제에 대한 ‘현장비평’을 대신하고 싶다. 

시작의 환대, 그러나 조금은 불안한 시작. 
“환대의 시작”이란 슬로건에서 ‘시작’이란 말을 먼저 꺼내보자. 5회 차를 맞이하는 영화제에 ‘시작’이라는 말을 쓰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지난해보다 늘어난 예산은 분명 이번 영화제를 질적으로 비약시키고 있었다. 늘어난 초청작뿐만 아니라, 개막식을 관람하기 위해 들어선 아트플랫폼의 경관은 이번 영화제를 만든 관계자들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단번에 알게 했다. 곧 이어, 개막식이 진행됐다. ‘비정상회담’, ‘문제적 남자’로 유명한 타일러 라쉬와 아나운서 장성규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가수 치림(조정치와 하림)이 ‘연어의 노래’와 ‘푸른 낙타’ 등의 노래로 축하무대를 올렸으며, 최진용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의 개회사와 임순례 인천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의 개막선언으로 디아스포라영화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개막작은 김정은 감독의 <야간근무>. 그것도 시원한 바람과 주변의 일상적인 소음이 기분 좋게 귓가를 스치는 야외상영이었다. 국경을 뛰어넘는 여성노동자들의 우정을 그리고 있는 <야간근무>는 그 기분 좋은 저녁을 촉촉이 적셔주기에 충분했지만, 영화를 보며 필자는 약간의 초조함과 불안감을 느꼈다. 이 글을 그 불안에 대한 고백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야간근무>는 엠비언트 사운드(ambient sound, 현장음)의 활용이 두드러진 영화다. 공장의 시끄러운 기계소리, 거리의 자동차소리, 주변인들의 말소리가 모두 노이즈처럼 내려앉아 있다(물론 여기엔 야외라는 상영환경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시끄럽고 큰 소음들 속에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린(스렝 윈니)과 한국 대학생 연희(김예은)의 목소리가 얼마나 작게 들리는지 보여준다. 그 소음들 속에서도 그녀들은 우정을 키워나가며 주말에 바다여행을 가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공장장은 린에게 주말특근을 강요하고, 약속은 깨져버린다. 심지어 연희마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공장을 그만둔다. 이 지점에서 그녀들의 관계는 바퀴가 고장 난 자전거처럼 삐걱거린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갈등을 해결하려는 영화의 방식이다. 

영화는 린과 연희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내레이션과 이미지를 묘한 방식으로 접합시킨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린은 캄보디아에 있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부치는데, 이 편지의 답장이 린과 연희의 갈등이 고조되는 영화의 중반부에 도착한다. 이 편지가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캄보디아의 어머니에게서 온 이 편지는 내레이션으로 린의 안부를 묻는데, 영화는 이 내레이션을 근심어린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연희의 어머니의 이미지와 직접 이어 붙인다. 여기서 영화는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한 가운데에서 접히고, 린과 연희는 몇 가지 카테고리에 의해 차이가 생략된 채 데칼코마니의 양면 그림이 되어버린다. 그 카테고리는 여성, 노동, 이주라는 디아스포라 담론의 화두이지만, 여기서 그것은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한국 여대생의 차이를 생략하며 그녀들을 등치시키는 텅 빈 기표가 되어 버린다. 이것이 필자가 영화제의 개막작이 다소 아쉽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우리는 아주 쉽게 자신을 디아스포라라고 고백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일 테지만 개막식 내내 무대에서 오고간 말들 역시 자신이 디아스포라임을 고백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수많은 차이들을 디아스포라로 단일하게 묶어내는 일이 아니라, 디아스포라를 통해 수많은 차이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일이다. 동시에 우리는 이 차이들의 연결을 통해 공격적인 연대의 지형도를 그리고, 이 차이들로부터 다른 삶을 상상한다. 물론 한 영화를 다른 영화와 비교하는 것은 몹시 되바라진 짓이지만, 임흥순 감독이 <위로공단>(2014)에서 구로공단을 훌쩍 날아올라 캄보디아로 착지하는 것은, 한국과 캄보디아의 몽타주를 통해 차이를 드러내고 초국적 자본에 대한 공격적인 연대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디아스포라는 소수자에 대한 동정을 초과한다. 

환대의 시작, 대화를 시작하기
차이를 손쉽게 같은 것으로 묶어내지 않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있는데, 그것은 차이를 ‘본질화’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디아스포라에 대한 사유가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차이들의 본질화가 얼마나 폭력적인 양상으로 변모하는지 알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그것은 더욱 도드라진다. 예컨대 <황해>(2010)와 <신세계>(2012)에서 친밀한 타자인 조선족이 ‘괴물’로 형상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반두비>(2009)처럼 디아스포라를 ‘친구’로 만들 수도 있지만, ‘괴물’로 만들 수도 있다. 장강명 작가와 함께 <디스트릭트9>에 관해 이야기하는 ‘디아스포라의 눈’ 섹션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 말 걸고 있었다. 

<디스트릭트9>는 벌레처럼 생긴 외계인들이 모여 사는 구역, 디스트릭트9의 재개발을 둘러싼 사건들을 묘사한다. 외계인들은 짓밟히고 쫓겨난다. 그렇다면, 나날이 ‘벌레’들의 왕국이 되어가는 한국사회와 이 영화는 얼마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장강명 작가는 한국사회에서의 중산층의 몰락과 벌레의 증식을 연관지어 설명했다. 절망만을 안기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사회 속에서 가장 손쉽게 나오는 문제의 해결책은 ‘탓’할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쇼아(홀로코스트)는 정확히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 사례 중 하나다. 물론, 우리는 굳이 쇼아가 아니더라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일상에서 자주 마주친다. 노숙자를 게으름과 직접 연결시키거나 이주노동자를 위험한 범죄자로 몰아가는 게 그것이다. 왜 <황해>의 조선족은 돼지 뼈다귀로 사람 머리통을 깨부수는 원시인이 되는가? 미국 국적 화이트컬러 백인 남성으로부터 시작해 제3세계 블루컬러 유색인종 여성까지를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세상에선 가장 말단에 있는 것부터 벌레, 원시인이 되어가는 법이다. 

장강명 작가와 관객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했다. 그리고는 ‘대화’라는 아주 흥미로운 답을 끌어냈다. 대화주의 사상가 미하일 바흐찐은 문화적 실천을 계급, 인종, 젠더라는 특정성 안에 묶으려는 시도를 경고하면서 ‘창조적 이해’를 요구한 적이 있다. 다소 어려운 개념이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상대를 본질화하지 않는 만큼 자신 역시도 본질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서로의 문화가 만나는 것이다. 이는 김정 감독의 <고려 아리랑 : 천산의디바>(2016)과 송 라브렌티 감독의 <고려사람>의 만남 같은 것이다. <고려 아리랑>은 식민과 탈식민이 세계 곳곳에 퍼트린 역사의 파편, 구체적으로는 고려인 이함덕과 방타마라의 흔적을 찾으러 떠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려 아리랑>은 매우 ‘우발적으로’ 아리랑을 흥얼거리는 카자흐스탄인 꼬발렌꼬 마리야 니콜라예브나(<고려사람>)을 만나게 된다. 꼬발렌꼬의 흥얼거림은 대문자 역사를 의문에 부치며, 한국이란 상상의 공동체에 균열을 일으키고, 코스폴리타니즘(세계주의)을 향해 맹렬히 도약한다.

나가며
김정 감독은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우려를 내비친 적이 있다(김정 감독은 트랜스-아시아 연구소의 김소영 연구소장이기도 하다).

“아포리아는 환대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이와 같은 디아스포라 영화가 찾기 어려운 관객층에도 존재한다. 세계화가 한편으로는 국민국가의 민족과 국가의 결속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을 때, 글로벌화의 상층회로를 달리는 자본가와 엘리트, 그리고 대국의 디아스포라가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네트워크를 이루어가고 있을 때(중국 화교의 경우), 경계에 선 소수자들을 다루는 디아스포라 영화의 관객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김소영, 「파국의 지도」, 현실문화, 2014, p.91)

올해 디아스포라 영화제에는 늘어난 건 예산과 초청작뿐만이 아니다. 지난해보다 두 배 가량 관객이 늘었다고 한다. 많은 수의 인천시민이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가지며 아트플랫폼을 방문하고 있다. 이제 막 환대를 시작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영화제의 전망이 밝은 이유이다.

글, 사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박치영  




후세 무당들의 굿 배움이 절실한 거첨뱅인영감굿

<거첨뱅인영감굿>은 황해도 옹진군 봉구면 무도리 거첨마을에서 행해진 풍어굿으로 황해도 해주 결성 출신 무당 김매물(1939생)을 중심으로 한 ‘황해도굿한뜻계보존회’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거첨뱅인영감굿>은 2005년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하여, 은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굿을 주관하는 김매물은 현재 ‘꽃맞이굿’으로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제24호(2013.04.30)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뱅인영감’ 신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황해도 최고의 신격인 최영 장군을 따라 들어온 하위 신으로 어민들에게 고기를 몰아다주는 능력이 뛰어난 존재이다. 둘째는 거첨 일대에서 조기를 잡는 중선배를 부린 사람이 죽은 뒤 마을 신격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셋째는 바다에서 죽은 사람의 유품을 섬긴 후 고기가 많이 잡혀 지속적으로 신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그런데 뱅인영감의 내력을 보면, 뗏목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지게, 패랭이, 짚신 등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보부상의 유품이다. 즉, 뗏목에 죽은 보부상은 보이지 않고 그의 물품만 남아 있는 셈이다.

황해도 강령 거첨 대부분의 주민들은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거첨에서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마을사람들이 매우 불안해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거첨의 바닷가에 웬 뗏목이 하나 떠밀려왔는데 마을사람들이 며칠을 지켜보아도 뗏목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뗏목을 타고 왔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중략) 마을사람들이 뗏목에 가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지게, 지게작대기, 패랭이, 지팡이, 짚신 등만이 있었다고 한다. (중략) 그리고는 배를 부리고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 뗏목의 임자를 위해 대동굿에서 섬겨주기로 하였다. 거첨의 당에는 최영장군을 모시고 있었기에 따로 당을 마련하지는 않고 뗏목이 닿았던 바닷가의 자그만 굴에 뗏목에서 발견된 지게, 지게작대기, 패랭이, 지팡이, 짚신 등을 넣고 뗏목 임자의 명복을 빌기로 하였다. (중략) 이렇게 거첨에서 뱅인영감의 굿을 하면서부터는 고기가 잘 잡혔다고 전한다.

위의 내력 내용을 그대로 풀면, 죽은 뗏목의 임자의 명복을 빌어 주고 나서, 마을에 고기가 잘 잡혀 그 이후 지속적으로 굿을 통해 풍어를 기원한 것이다. 죽은 사람을 묻어주고 나서 마을에 풍어가 이루어졌다는 구전은 한국 바닷가 마을 곳곳에서 보인다. 결국 죽은 사람이 신으로 좌정된 사례를 거청뱅인영감굿에서 볼 수 있다.

굿거리에서 뱅인영감이 가장 먼저 하는 행위는 돌 또는 풀무더기를 구르고 다닌다. 여기서 ‘뱅’은 ‘한 바퀴 도는’ 뜻을 가지기에 ‘뱅인’은 ‘구르는 사람’을 지칭한다. 따라서 뱅인의 명칭은 그 행위에서 따온 이름이다. 거첨마을에서 피난 온 사람들에 의하면 뱅인영감 신당은 절벽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굿을 할 때 무당은 절벽 아래 신당으로 굴러서 내려가는데, 이때 무당이 낙상하지 않고 다치지 않을 때 뱅인영감이 제대로 실린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굿거리에서 ‘뱅인영감’이 구르는 행위를 마치면 거첨 앞바다는 이미 황금빛이 나는 조기가 득실대는 황금어장으로 바뀐다. 그물을 치기만 하면 조기를 쉽게 퍼 담을 수 있다. 그런데 뱅인영감은 인간에게 복을 내리는 선신(善神)이지만 때론 인간들이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그 혜택을 인간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굿의 연행에서 뱅인영감으로 분장한 무당은 제물로 바쳐진 순대가 길이가 짧다고 탓하고 화를 내면서 나무란다. 그러면 어민들은 잘못했다고 손을 빌려 용서를 구한다. 신의 이중적 성격은 인간과 마찬가지이다.
뱅인영감은 직접 어부가 되어 조기를 몰아다 준다. 무당은 순대를 목에 걸고 그것을 닻줄인양 길게 바다에 늘어뜨리는 시늉을 한다든지 고사리감투를 쓰고 바다 속 안을 들여다보면서 어부의 조업 행위를 한다. 이것은 고기를 많이 잡기를 바라는 유감주술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고사리감투는 나무상자에 거울을 단 ’창경‘이라는 우리나라 전통 어구로 물고기의 이동을 관찰하는 도구이다. 이 대목은 ‘언덕을 구르고 도로 올라오는 행위’ 와 함께 연극적 요소가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황해도의 굿거리는 대개 24거리로 진행되는데, 이번 <거첨뱅인영감굿>은 15거리로 진행되었다. 황해도굿은 신령을 불러서(請神), 모시고(奉神), 놀리어(娛神), 보내는(送神) 4단계 절차에 의한다. 신을 부르기 위해서는 먼저 굿청을 깨끗이 정화하는 ‘신청울림굿’과 신을 굿당으로 모시는 ‘산맞이’와 ‘상산맞이굿’, 부정을 씻어내는 ‘초부정·초감흥굿’, 액운을 걷어내기 위해 영정각시를 대접하는 ‘영정물림굿’, 마을 주민의 명과 복을 기원하는 ‘칠성제석굿’, 재복을 기원하는 ‘소대감굿’, 나쁜 군웅을 막아주는 ‘타살굿’, 뱅인영감을 모시고 만선을 기원하는 ‘뱅인영감굿’, 그리고 상산본향대감을 모셔와서 노는 ‘대감굿’, 사통팔달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서낭굿’, 마을의 모든 조상신을 불러 대접하는 ‘조상굿’, 모든 액운을 물리치는 ‘작두거리’, 억울하게 죽어간 혼령들을 위로하고 먹거리로 대접하여 다시 돌려보내는 ‘마당굿’ 순서로 진행되었다.

뱅인영감굿은 엄밀하게 말하면 황해도의 민속문화이다. 그러나 인천 시민 중 피난민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는 현 상황에서 인천의 문화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황해도굿이 모두 그렇지만 공연 제목이 <거첨뱅인영감굿>이지만, 기본적인 굿거리에서 ‘뱅인영감굿’이 진행될 뿐이다. 따라서 뱅인영감굿의 내용을 중심으로 굿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고, 이 굿이 만들어지게 된 유래 등을 첨가하여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 <거첨뱅인염감굿>의 가장 큰 문제는 굿을 주관하는 김매물 만신이 몸이 좋지 않아 굿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2017년 6월 3일 공연에서는 단화선 무당이 <뱅인염감굿>을 주관하였는데, 후세대 무당들의 굿 배움이 절실한 때이다.

<거첨뱅인영감굿> 사진더보기 ▶

 

글/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바다 위 시장, 파시(波市)

바다의 황금, 파시
강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 11.

‘파시(波市)’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파시는 물고기를 거래하기 위해 바다 위에서 배들이 모여 열리는 바다 위 시장을 말한다. 파시는 우리나라 어업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회현상이자 풍경이었지만, 현재는 모두 사라져 과거의 것이 되고 말았다. 인천과 인천 앞바다를 중심으로 한 서해바다는 파시가 가장 융성했던 곳이었다. 바다 위 시장인 파시는 약 한 달 정도 열렸는데, 파시철이 되면 바닷가 마을은 엄청난 사람들로 북적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고기과 돈을 따라 모였던 만큼, 그곳에는 인간사 희노애락의 만화경이 연출되었다. 이 책은 파시의 중심 무대였던 인천을 비롯하여 추자도와 법성포, 송이도 등 과거 파시가 열렸던 곳을 중심으로 우리 어업의 역사와 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추적․복원한 책이다.

 

글/ 함태영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큐레이션 콕콕] 걸 크러쉬와 차별 문화

원더우먼은 1941년에 제작된 DC코믹스의 만화 캐릭터입니다. 슈퍼맨, 배트맨과 함께 DC코믹스의 ‘빅3’로 불리죠. 그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이 최근 개봉했습니다. 미지의 섬 데미스키라 왕국의 공주 다이애나가 원더우먼이 돼 1차 대전을 겪고 있는 인간 세상을 구한다는 내용입니다. 패티 젱킨스(46. 여)가 연출했네요. CNN은 “여성이 슈퍼히어로 영화의 감독을 맡은 것은 처음이며, 영화의 흥행도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2017.6.6. 조선닷컴) 벌써부터 <원더우먼2> 제작 이야기가 들려옵니다.(자세히보기 ▶)

원더우먼 등장 모습. 사진출처 Youtube 캡처

<원더우먼>은 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의 여성들의 액션을 화려하게 보여줍니다. 35명의 여배우가 6개월 동안 특별 훈련을 받았고, 원더우먼 역을 맡은 배우 갤 가돗은 9개월간의 트레이닝을 거쳐 아마존 전사로 거듭났다고 하네요. 여성 영웅을 단독 주연으로 내세우고 액션에 집중한 영화는 여성 영웅의 가치를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만화로 처음 등장한 원더우먼은 강한 힘을 가진 여성 히어로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상징이 되기도 했죠. 남성이 쇠사슬을 걸면 힘을 잃는 무기 등, 일부 설정이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요.

한국에도 주목받는 여성 원톱 영화가 있습니다. 김옥빈, 김서형 주연의 <악녀>(감독 정병길, 제작 (주)앞에있다) 인데요, 살인병기로 길러진 최정예 킬러 숙희(김옥빈 분)가 자신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를 깨닫고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언론은 <악녀>가 남성보다 더 거칠고 독한 액션을 보여준다고 소개합니다. 숙희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량 위에 매달리고 남성보다 큰 장검을 휘두르며 액션을 펼친다고 하네요.

영화<악녀> 포스터

이들 영화 소개에 빠지지 않는 단어가 ‘걸 크러쉬’입니다. 걸 크러쉬는 여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멋진 여성을 뜻하는 신조어로, 여성이 다른 여성을 선망하거나 동경하는 마음이나 현상을 말합니다. 소녀(Girl)와 반하다(Crush on)를 합친 단어라고 하네요.

여기서의 선망과 동경은 ‘성적 감정’이 배제된 ‘강한 호감’을 뜻합니다.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은 닮고 싶은 외모와 뛰어난 패션 감각과 센스, 지성 등을 갖추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일반 여성들의 롤모델이 됩니다. 흔히 대상이 가수일 경우에는 ‘허스키한 보이스와 강렬한 퍼포먼스’로, 연기자일 경우에는 ‘센 언니’ 등의 표현으로 걸 크러쉬와 매치하고 패션 분야에서는 ‘걸 크러쉬를 원한다면 투블럭 숏컷’으로 홍보합니다. 걸 크러쉬와 비슷한 단어로 ‘남성이 남성에게 갖는 동경과 찬양’의 의미를 가진 ‘맨 크러쉬’라는 용어도 있다네요.

최근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 씨가 펴낸 책 <영초언니>는 박정희 정권 후반기인 1970년대 중후반, 소위 ‘운동권’에 몸담았던 이들의 젊은 날을 그린 작품입니다. 자전적 논픽션 에세이로, 등장인물이 모두 실명을 쓴 실제 인물이라고 합니다. 제목의 영초언니는 저자의 <고대신문> 4년 선배였던 천영초로, 그를 소개하는 기사에도 ‘걸 크러쉬’라는 단어가 나옵니다.(오마이뉴스 2017.6.11. 자세히보기 ▶)

“천영초는 1970년대 중·후반 운동권의 상징이었던 인물이다. 그녀는 서명숙과 후배들에게 ‘걸 크러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박정희 독재정권과 남성 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토론하고, 저항하고, 행동하는 여학생들의 서클 ‘가라열’의 리더였다.”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서 저항하고, 행동했던 여자. ‘걸 크러쉬’는 외모나 캐릭터를 동경하는 선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렇게 ‘아픈 기억’에도 소환됩니다. 

‘걸 크러쉬’이미지,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앞서 <원더우먼>과 <악녀>를 언급했지만 여자가 주인공으로 ‘앞에 섰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영화, 괜찮은 영화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성 영화제는 있는데 왜 남성 영화제는 없느냐’, ‘많은 히어로 중 하나일 뿐인데 왜 원더우먼에 그렇게 열광하느냐’는 남성들(?)의 질문은 악의 없음을 감안해도 충분히 나이브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 지구에는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최소 6종의 인간 종이 살아있었습니다. 이후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한 승자로 살아남았고, 그들이 현생인류 ‘인간’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려줍니다.

사피엔스,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알려진 모든 인간사회에서 최고의 위계질서는 성별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곳에서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죠. 많은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 남녀 간의 문화적, 법적, 정치적 차이 중 일부는 성별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를 반영한 것입니다. 출산은 여성의 일이었고(여성에게만 자궁이 있었고), 사회는 이런 사실 주변에 문화적 개념과 규범을 층층이 쌓아올렸습니다. 하지만 하라리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 또는 차별이 ‘생물학적 근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민주사회에서 자궁을 가진 개인(=여자)은 법적 지위를 갖지 못했습니다. 판사는커녕 평의회 의원도 되지 못했죠. 교육 기회가 적었고, 사업을 하거나 철학적 논의에 참여할 수도 없었습니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자궁이 있으면 정치 지도자, 웅변가, 예술가, 상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아테네 여성은 투표에 참가하고, 공직에 선출되며, 연설을 하고, 대학에 다닙니다. ‘자궁 때문에’ 남자보다 뒤쳐질 일은 없죠.

“여성의 자연스러운 기능은 애를 낳는 것이라는 주장, 동성애는 부자연스럽다는 주장에는 그다지 타당성이 없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규정하는 법과 규범, 권리와 의무는 대부분 생물학적 실체보다 인간의 상상력을 더 많이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란 두 개의 X염색체와 하나의 자궁, 많은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지닌 사피엔스를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상상의 인간 질서에 속하는 여성 구성원을 말한다. 그녀가 속한 사회의 신화들은 그녀에게 독특한 여성다운 역할(아기를 키운다), 권리(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의무(남편에게 복종)를 부과한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18-219쪽.(볼드체는 필자)

사진출처 : 브런치

이번에는 10년 전에 출간된 책 이야기입니다. 제목이 <남자 사용 설명서>네요. 여성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인 정희진 씨에 의하면 이 책에는 “미니스커트, 숏팬츠보다 짧은 옷 안에 제발 쫄쫄이 속옷 좀 입지 마시라”(33쪽), “콘돔의 사용은 섹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195쪽) 같은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남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효과적인 노출법도 제시, 아니 지시하고 있다네요.(한겨레. 2017.6.9. 자세히보기 ▶)

한국사회에서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는 문화는 일상적입니다. 정희진 씨는 이를 두고 “여성 스스로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눈요깃거리는 눈으로 보고 즐기며 만족한다는 의미입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눈요기 대상화’의 빈도가 잦고, 종종 사물화됩니다. 남자든 여자든 ‘눈’을 만족시키는 예쁨과 멋진 사람은 좋은 것, 그 반대의 경우를 대변하는 듯한(?) 장애인과 노인은 나쁜 것, 쓸모없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상투성과 차별적 상상 속에 있나요?
걸 크러쉬는 정말 ‘힙한’ 단어일까요?

▼ 트위터에서 검색했습니다.

모든 미디어는 반페미적 맥락에서 해석 될 수 있고 동시에 페미적 맥락에서 해석 될 수 있음. 어떤 작품이든 100% unfeminist 하지도 않고 100% feminist 하지도 않을 거라는 거다. 원더우먼의 의의를 긍정해도 갤 가돗이라는 배우가 후자거든요. 원더우먼이라는 영화가 여성 인권에 기여하는 바를 그렇게 괜히 과장해가면서 너무 의미가 큰데~ 이 난리 치는 거 정말 이해 안감. @sapphologie

악녀가 보다 더 엄중하게 까이는 것은 그것이 겉으로는 여배우 원톱에 여성주의 시각이라는 포장을 덧씌우고 있으면서 정작 내용은 대놓고 알탕인 영화보다 훨씬 질이 나쁘기 때문이다. @dimentito

악녀는 관객이 기대하는 vs 감독이 보는 ‘여성’ 캐릭터의 괴리가 너무 크네. 감독은 숙희의 성별을 계속 의식하는데 그 여성적 특성이란 것들이 너무 낡고 진부하고 형편없음. @schillingty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