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독립출판과 서점의 시대

“SNS에 끼적이는 인스턴트 이미지와 텍스트가 아닌 진짜 스토리가 담긴 진짜 1인 미디어를 꿈꾸며 냄비받침출판사 전격 오픈!”

독립출판은 상업적인 출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이야기와 작품을 책으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2-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죠. KBS2가 그 물결을 예능으로 가져왔네요. ‘냄비받침’입니다. 이경규, 안재욱, 김희철, 트와이스, 이용대가 등장해 낙선 정치인을 인터뷰하겠다, ‘건배사’ 모음집을 만들겠다, 희귀하고 재미있는 (신상)물품 후기 등을 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던 예능의 시대가 가고 ‘예능도 지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별난 재치나 특별한 감동 포인트를 전달하지 못하면 좀처럼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힘듭니다. ‘진짜 스토리’를 들려주겠다는 야심찬 기획에도 불구하고 ‘냄비받침’은 참신함보다 고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치인을 인터뷰 하다가 걸그룹의 시끌벅적한 모습을 비추고, 술자리를 빌려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는가 싶더니 매니저에게 아이돌의 생활을 알려달라고 말하는 것이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백화점식’ 구성이라는 비판도 있네요.


제목과 아이디어가 독립출판 잡지 『냄비받침』과 같거나 유사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내적자신감 회복을 위한 독립출판 프로젝트 <냄비받침>’은 2010년부터 2014년 여름까지 총 5호가 발간됐습니다. 매 호마다 주제를 정해 문학, 시각, 사진 등의 창작자들 작품을 실었고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이모 씨는 페이스북에 “같은 이름, 비슷한 아이디어를 프로그램에 활용한다는 이 탐탁지 않은 유사함에 대하여 제작진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석연치 않은 답변만 전해 들었다”고 항변했습니다.

독립출판 잡지 『냄비받침』을 알지 못하며, 우연히 아이디어가 겹친 것이다.”

독립잡지 프로젝트 진행자들이 홍보로 내세운 슬로건은 “등단하지 않아도 좋다. 많이 읽지 않아도 좋다. 가난한 자취생의 라면을 받치는 냄비받침으로 쓰면 되니까.”였습니다. TV 프로그램의 슬로건은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아도 좋다. 냄비받침으로 쓰면 되니까.”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3년이나 야심차게 독립출판 관련 예능을 준비했다고 매체에 소개하던데, 그런 프로그램이 우리 잡지를 모르다니(독립출판물은 수명이 짧은 편이다. 우리는 4년에 걸쳐 잡지를 출간했다. 매체에도 자주 소개되었다) 설령 모른다 하더라도 대화 도중 사전 리서치로 언급한 두 곳의 독립출판 서점 중 한 곳은 현재 『냄비받침』이 유일하게 입고되어 있는 서점이다.”

이모 씨는 유명하지도, 인지도가 높지 않은 인디 문화는 그냥 소재를 가져다 써도 된다는 안일한 인식이 방송계에 퍼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합니다. 아이디어를 얻었다면 그 사실을 명시하고 합당한 존중을 해주는 것이 시대의 상식 아니냐고요.

독립출판이 방송계에 소환된 것과 조금은 결이 다를 수 있지만 독립서점(동네서점, 지역서점, 대안서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른 바 ‘서점의 시대’입니다.

지난달 코엑스에서 열린 제23회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입니다. 사물(책)이 아닌 인물(작가들)을 전면 배치했네요. 오른쪽 위에 적힌 ‘변신’이라는 단어가 본래 사이즈보다 크게 보입니다.

행사장 안은 내실 있게 짜인 축제의 장이었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코너는 서점의 시대였다. 특색 있는 독립 서점들이 각자의 안목으로 고른 책을 전시하고 있었다. 시집, 고양이 관련 서적, 추리소설, 디자인, 여행, 카메라, 독립출판물 등등, 독립 서점은 그 공간을 꾸민 사람의 개성과 특색을 찾아볼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대형 서점은 베스트셀러 위주로 진열하지만 독립 서점은 특색 있는 책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살립니다. 2010년 이후 전국에 그림책 서점, 추리소설 서점, 음악 서점, 고양이 관련 서점, 시집 전문 서점, 술 먹는 서점, 여행 서점 등 다양한 서점이 탄생했습니다. 이들 작은 책방은 책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책에 흥미를 갖고 독서를 즐기도록 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기존 도서전은 헐값에 팔고 헐값에 쓸어 담는 행사라는 냉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그나마도 불가능해졌죠.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달라졌다”는 평이 쏟아졌고 관객 수도 지난해의 2배로 늘었습니다. 기획자들은 ‘몇 부를 팔까’가 아닌 ‘어떻게 재미를 선보일까’를 고민한 결과라고 자평합니다.

출판사 부스에서 책을 집어 들었는데 “제가 그 책 쓴 사람입니다”라며 소설가 이기호, 김탁환 등이 나타납니다. 미술관처럼 그림이 액자에 걸려 전시돼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작가 줌파 라히리의 ‘책 표지 원본’입니다. 음악 서점 ‘라이너 노트’는 LP 턴테이블을 들고 와서 음악을 틀기도 했고요. 유료입장권(5000원)은 책을 살 수 있는 쿠폰으로 활용됐습니다.

주최 측은 특색 있는 서점 20곳을 선정하기 위해 1차로 서점별 개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2차 기준은 각 지역에서 주민과 얼마나 연대를 구축하며 역할을 하고 있는지였다. 3차 기준은 얼마나 새로운가였다.”

종이책의 판매는 점점 줄고 있지만 우리는 디지털 기기로 늘 무언가를 읽습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많은 양의 텍스트를 읽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독립출판의 시대, 재미의 시대, 개성의 시대. 사람들은 취향에 맞는 책을 놀이와 의미의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책이 활자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문화 아이콘으로 변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본문 내용 일부와 발췌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 유승민과 트와이스… <냄비받침>, 너무 생뚱맞잖아요
  오마이스타 2017.6.2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TV공감] ‘냄비받침’, 좋은 예능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고민
  티브이데일리. 2017. 6.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내적자신감 회복을 위한 독립출판 프로젝트 <냄비받침>’ 블로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삶과 문화] 서점의 시대, 개성의 시대.
  한국일보 2017.6.2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0만 관객 ‘깜짝 흥행’… 비결은 “할인보다 재미”
  조선일보 2017.6.2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서점의 시대’… 전국의 개성있는 서점이 모인다
  세계일보 2017.6.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문화예술정책동향

<인천시 주요사업>

인천시의회,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 확대방안 마련
인천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에 따르면 ‘인천시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 조례가 심의·통과됐다. 이에따라 인천지역 장애인들의 문화예술 활동 지원이 확대될 전망이다.

문화중심 인천 관련조직 증설
인천시는 조직개편을 통해 문화성시인천을 실현하기 위해 ‘문화정책과’와 ‘문화콘텐츠과’를 만든다. 이는 기존 문화관광체육국 내 문화예술과를 두 개 과로 나누는 것이다.

 

<문화시설 ‧ 공간>

틈 문화창작지대, 창작자 양성 공간으로 발돋움
인천 문화 중심지였던 시민회관이 철거된 지 15년 만에 창작자를 양성하는 공간인 ‘틈 문화창작지대’로 탈바꿈했다. 틈 문화창작지대는 4층 규모 복합문화시설로 인천콘텐츠코리아랩 사업 전용 공간으로 쓰인다.

인천공항 인근 씨사이드파크 주광장 문화예술거점 되나
인천국제공항 인근 씨사이드파크 주광장이 문화예술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해양박물관 건립 요구 서명부 인천시에 제출
‘해양박물관 건립 범시민추진위원회’는 국립해양박물관 건립을 요구하는 107만여 명의 서명부를 인천시에 제출했다.
↳ ‘인천 해양박물관 건립 서명’ 열에 아홉은 학생
 해양박물관 인천 건립을 위한 서명인 100만 명 목표는 달성했지만 대부분 학교의 협조를 받아 작성된 학생들의 서명이어서 시민들의 염원을 담겠다는 취지는 퇴색했다.

 

<역사 ‧ 문화>

강화도 관문 강화외성 ‘진해루’ 복원…역사 문화의 고장 입증
인천 강화 돈대(墩臺) 안에서 적진을 살폈던 진해루(鎭海樓)가 복원된다. 진해루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강화도로 진입하는 관문 중 하나였다.

자연·문화유산 오롯이 간직한 ‘보물섬’ 인천 섬으로 떠나볼까
인천섬유산연구회는 지난 1년 동안 추진한 인천가치재창조 선도사업 ‘함께해요 인천섬 여행’ 결과 보고회를 가졌다.

 

<지역 문화>

인천 계양구, 다문화 사업과 정책 발전방안 모색
계양구 지역의 다문화 관련 기관 실무자와 관계자 등 22명이 참여한 가운데 간담회를 개최했다.

인천 부평구문화재단, 유휴공간 29곳 개방
부평구문화재단이 문화예술회관인 부평아트센터와 부평생활문화센터, 부평구립도서관 등의 유휴공간 29곳을 카페·전시관·연습실 등으로 꾸며 지역주민에게 개방한다.

 

<기타>

문화향유 ‘예술인 패스’ 카드…잘 몰라서, 쓸 곳도 없어서…
인천 예술인패스 시행기관은 공립박물관 14곳, 미술관 2곳, 공연장 39곳 등이지만, 실질적인 혜택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전국>

2017년 문화영향평가 14개 과제 확정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적 가치의 사회적 확산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문화영향평가 대상 과제 14개를 확정해 발표했다. 평가 대상 과제는 과제 공모와 부처 협의 등을 거쳐 정책사업의 중요성과 파급 효과, 문화영향평가의 취지 등을 감안해 결정됐다.

「국제문화교류 진흥법」 시행령 관련 공청회 개최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국제문화교류 진흥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한국언론사협회 ‘문화예술위원회 예술단’ 출범
(사)한국언론사협회 문화예술위원회 예술단이 창단식을 갖고 출범했다.

문 대통령 ‘문화예술진흥기금’ 확보 공약 기대감 “국고지원 통한 안정적 기금 마련”
문재인 대통령이 문화예술진흥기금 확보 공약을 제시하면서 독립적이고 투명한 문화예술지원에 대한 지역문화예술인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문체부+영진위, 예술극장지원 사업도 여론 조작 의혹”
문체부와 영진위가 부산국제영화제 예산 삭감에 이어 예술전용영화관 지원 사업 개편 당시에도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추천자료>

시민 문화예술교육 활동 지원사업 ‘시시콜콜’ 사례집
사례집은 시민 문화예술교육 활동 지원사업 ‘시시콜콜’이 운영된 지난 3년(2014~2016)의 성과와 현장에서 만난 시민 문화예술교육 운영진 그리고 참여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자료임.

디지털 공간을 활용한 공연예술 활성화 방안 연구
대학로를 중심으로 방문객에 대한 인식조사를 통해 관객개발을 증진하기 위한 실용적 접근방안의 설계함. 특히 디지털 공간에서의 공연예술 활동을 위한 구성요소와 디지털 플랫폼 모델 접근방안을 살펴 볼 수 있는 연구물임.

서울시 생활문화예술동아리 활성화 방안
한국 문화정책에서 시민을 수동적 객체가 아닌 적극적 문화생산자로 인식하는 생활문화정책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 정책의 주요 초점 중 하나가 동아리 활성화라고 할 수 있음. 전문예술에 대한 수요 증가와 결부하여 예술생태계의 선순환을 유도할 수 있는 활성화 방안에 대해 살펴 볼 수 있음.




옛사랑의 기억으로 떠올리는 인천이야기

낙섬과 경인선 기차역

모든 기억은 개인적이며 재현될 수도 없다. 기억이란 것은 그 기억을 갖고 있는 개개의 사람이 죽으면 함께 죽는다. …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린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진을 불러낼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흔히 인천에 정체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인천의 정체성이 없다는 것은 곧 ‘인천’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표상, 이미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인천을 표상하는 이미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인천의 정체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말 인천은 정체성도 지역성도 없는 도시일까요?
이미지로 포착하지 못한 과거는 개개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인천의 과거를 기억하는 개개인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기억을 꺼내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기획연재를 통해 인천의 과거에 대한 기억,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하여 인천의 ‘이야기첩’을 만들어 봅니다.

“달빛 밝은 고요한 바다로 오세요.”
지금은 다 메꿔버려서 없어졌지만, 나 어렸을 때는 용현동 쪽에 낙섬이 있었거든. 뭍에서 낙섬까지 둑을 쌓아놨는데, 끝이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로 둑이 길었어. 둑 왼쪽으로는 꽃도 있고, 나물도 있고, 짠 물 먹고 자라는 식물들이 잔뜩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바닷물이 들어와서 들어가 수영하는 아이들도 있었지. 바닷물이 들어오면 둑 아래로 물이 찰랑찰랑하는데, 거기 송사리도 헤엄쳐 다니고, 밤게, 칡게도 기어 다녔어. 집에서 저녁 먹고 나와서 둑 위에 앉아 있으면 발에 시원한 바닷물이 찰랑거리고 닿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은 거야. 여름에는 해가 기니까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앉아서 노래도 부르고, 책도 읽었어. “달빛 밝은 고요한 바다로 오세요.”하는 노래. 그 노래를 제일 많이 불렀지.

백합도 엄청나게 많아서 한 번 들어가서 백합을 캐면 한 가득 이고, 지고, 들고 나왔어. 철사로 스-윽 긁으면 째까닥, 하고 걸려. 거기를 파면 백합조개가 나오는 거야. 한번 쓱 긁으면 한번만 째까닥하는 게 아니라 째까닥, 째까닥, 째까닥, 백합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 바위 사이에 불을 떼서 그 자리서 바로 구워먹었지. 백합이 탁 터져서 입을 벌리면 바로 주워 먹기 바빴어. 바지락은 뻘을 먹어서 모래가 지근지근한데, 백합은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

국민학교 때는 부모님이랑 같이 갔는데,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친구들이랑 놀러 다녔어. 한 번은 교복을 입고 동네 친구들이랑 함께 낙섬에 놀러갔다가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어. 조개를 캐러 들어가려면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거든. 조개가 있는 안쪽은 하얀 모래사장이었는데, 가는 길은 발이 푹푹 빠져 허리까지 잠기는 뻘이었던 거야. 그 때 뻘에서 건져내 준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었어. 개흙이 교복에 잔뜩 묻어서 나중에 엄마한테 엄청 혼났지.

중학교 때 배구부를 했는데, 서울에 있는 학교에서 우리 배구부를 스카우트해 갔어. 그때는 전철도 생기기 전이라 친구들이랑 같이 기차를 타고 서울로 학교를 다녔어. 매일 아침에 동인천역에 가서 경인선 기차를 타는 거야. 칙-칙, 폭-폭하고 시끄러운 그 기차. 기차타고 학교 다니면서도 재밌던 일들이 되게 많았어.

매일 같은 시간에 학교를 다니니까, 매일 같은 기차에서 옆 학교 3학년 오빠들을 마주치는 거야. 잘 생기고 공부도 잘 하던 오빠들이라 나랑 내 친구들이 좋아했지. 그 때는 여학생, 남학생이 알은 채 하고 떠들면 어른들이 손가락질하면서 욕을 했으니까, 옆에 나란히 서서 슬쩍 뭐 물어보고 소곤소곤 대답하고 그랬어. 하루는 다 같이 학교 가지 말고 서울역에서 내려 놀러갈 궁리를 한 거야. 그 때는 교복이랑 같이 학생 모자를 꼭 써야 했는데, 새 거를 그대로 쓰면 촌스러운 거고 그걸 마구 태우고 긁고 해서 헌 것으로 만들어서 쓰고 그랬어. 우리는 서울이 낯설어서 오빠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녔어. 동대문 시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놓칠까 전전긍긍했는데, 사람들 머리 사이로 그 지저분한 모자들이 보여서 그것만 따라다녔지.

언젠가는 친구들이랑 학교 끝나고 동인천역에서 내려 자유공원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누가 막 쫓아오는 거야. 보니까 동인천역에서 구두를 닦고 있던 아이인거야. 근데 그 아이가 내가 팔에 끼고 있던 책 한 권을 탁 채가는 거야. 내 것도 아니고 우리 언니 거였는데. 돌려달라고 쫓아가니까, 그 애가 ‘책을 찾으려면 모일 모시에 공설운동장으로 나와라’ 그러는 거야. 

겉모습도 추레하고, 기차역에서 그렇게 구두를 닦고 있던 아이니까, 너무 싫었던 거지. 자기가 공고 다니는 학생이라고 말을 하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어뜩하냐고 걱정을 하고 있으니까, 친구 하나가 공고 다니는 오빠 중에 다들 벌벌 떠는 오빠를 안다고, 그 오빠 이름을 대면서 우리 오빠라고 하면 꼼짝 못 할 거라는 거야.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공설운동장으로 나갔지. 우리 언니 책은 찾아야하니까. 공설운동장으로 나갔더니, 그 놈이 내 책을 들고 서 있더라고. 그 오빠 이름을 대면서 우리 오빠라고 했더니, 그 아이가 책을 돌려주는 거야. 나도 그 때 되게 못됐었어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그 아이한테 침을 뱉고 와 버렸어.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미스 때였는데, 친구들이랑 동인천역 앞 다방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거든. 근데 저 건너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나를 계속 쳐다보는 거야. 한참 얘기를 하다가 차를 다 마시고 일어나는데, 그 사람이 얼른 일어나서 나를 붙잡는 거야. 그리고 자기를 모르겠냐고 묻더라고. 자세히 보니까 동인천역에서 구두를 닦던 그 아이인거야.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둘이 다방에 남아 한참을 떠들었어. 듣고 보니 부모 없이 고학을 하던 학생이었던 거야. 한 해는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고, 한 해는 기차역에 나와 구두를 닦으며 돈을 벌었다고, 고등학교 졸업하는 데 8년이 걸렸대. 그 얘기를 듣는데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계속 사과를 했어. 

그리고 그 전 얘기로 돌아가서, 내가 왜 좋았는지 그 얘기를 들었어. 내가 매일 동인천역을 가서 통학을 하니까 아침에 학교 갈 때, 저녁에 학교 끝나고 올 때 나를 봤다고 하더라고. 한 번은 내가 통학증을 안 가지고 와서 개찰구에 있는 역무원에게 사정을 하고 애교를 떠는 모습을 봤대. 통학증이 없으면 기차를 못 타는데, 맨날 얼굴을 보니까 역무원도 ‘오늘 하루만 봐준다.’하면서 봐주고 그랬거든. 그렇게 애교를 부리고 친구들이랑 조잘거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고 하더라고.

근데 이거 이름은 안 나가는 거지? 우리 집에 영감님이 들으면 큰일 나. (그분이랑 결혼하신 거 아니었어요?) 아니, 그때 내가 또 콧대 높이고 튕겨버렸어. 영감님이랑은 선 봐서 결혼한 거야. 이름 나가면 안 돼.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인천이야기>에서는 ‘사라진 것들, 남겨진 것들’을 주제로, 인천의 60세 이상 어르신 스물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연극과 영화로 만드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오고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천이야기첩’을 연재합니다.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인천이야기>는 인천광역시와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주관하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주안노인문화센터의 협력으로 ‘작업장 봄’이 운영합니다.

 

글, 인터뷰 및 정리 /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출처 / 네이버블로그 ‘인천의 어제와 오늘’
네이버블로그 ‘애관(愛觀) 보는 것을 사랑하다’




인천공연장상주단체 문화공작소 세움

행사일/ 2017.06.23 19:30
장소/ 부평아트센터 달누리 극장
촬영,편집,구성/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김유라




베를린과 할머니

함흥 운흥리, 용숙씨
베를린에 오기 전 경기도 하남의 할머니집을 찾았다. 우리 할머니 이름은 김용숙, 고향은 함흥이다. 나는 이름밖에 알지 못하는 곳, 북한 함흥.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함흥에서 살았던 집 기억나?

“그럼, 기억나지. 함흥 운흥리! 아주 큰 집이었어. 이짝 동쪽 대문으로 들어오면 소나무, 과일나무가 있고, 아름답게 만든 정원이 있고, 그리고 가운데 이짝으론 마루가 있고 창문을 열면 아까 그 정원이 보이고, 왼쪽에는 다다미방, 오른쪽에는 온돌방이 있었어. 커다란 마루에서 밖을 바라보면 앵두나무, 소나무, 포도나무가 보였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할머니는 큰 집에서 산다. 근사했던 북한 집과 달리 남한 집은 동네 집장사가 지은 탓에 건축비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들어갔지만…
할머니가 함흥을 떠나 남한으로 온 건 겨우 스무살 때 일이다.

“따라랑 따라랑 6.25 나가지고 흥남에서 배 타고 왔어. 1.4 후퇴 때 말이지. 미군들이 함흥까지 들어왔다가 다시 후퇴를 하면서 피난민을 다 배에 실었어. 배에 다 실어가지고 거제도에 내려놨어. 피난 나왔다가 바로 돌아간다 생각했지. 다 같이 피난갈 이유도 없었고, 원래는 내가 남기로 했는데, 아버지가 나도 같이 가자고 그러더라고. 집 지켜야 한다고 동생 두 명은 집에 남았어. 친척이나 친구들? 가들은 다 안 나왔어.”

따~라앙랑 따~라앙랑,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퀴리부인처럼 여성 화학자가 되고 싶었던 우리 할머니 용숙씨는 어느날 갑자기 고향을 등지게 된 일이 어이없는지 따라랑 따라랑, 전쟁을 신나게 표현한다.

베를린ZK/U레지던시에서 지내다보니 통속적이지만 북에서 피난 온 할머니와 동서로 분단되었다 통일된 베를린 역사가 겹쳐보인다.

“바로 다시 돌아갈 줄 알았지!”

할머니가 맨몸으로 남한에 나온 이유다. 하지만 결국 할머니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선을 자신도 모르는 새 넘어버렸다. 여든여섯 할머니가 함흥 운흥리에 다시 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베를린에 온 지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아직 베를린 장벽에 가보지 않았다. 오늘은 왠지 그곳에 가봐야 할 것 같은 날이다.

 

너무 낮지만 견고한 장벽
유치하고 단순하다. 장벽과 철조망이란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휴전선과 마찬가지로 베를린 장벽은 벽을 세워 동독과 서독을 분리했다. 너와 내가 다르니깐 나는 여기 살고 너는 저기 살란 식 아닌가? 마치 초등학교 때 책상에 선을 긋고 짝꿍에게 넘어오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동서독 분단 시절, 동독에 위치한 베를린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뉘었고 결국 서베를린은 동독에 완전히 둘러싸인 섬 신세가 돼버렸다. 우리나라로 치면 평양의 절반에 남한사람들이 산다는 거 아닌가? 당시에는 서베를린을 공산주의 국가인 동독 안의 자본주의 국가, 서독 지역이란 이유로 ‘육지 속의 섬’이라 불렀다. 결과적인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독이 서베를린을 포기하지 않은 건 서독에 이롭게 작용했다. 장벽 저 편에서 높게 세워지는 빌딩들을 바라보며 동독사람들은 서독의 풍요를 부러워했고 많은 동독 사람이 베를린 장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했다. 누군가는 성공했고 누군가는 총을 맞고 쓰러졌으며, 긴 세월이 흐른 후 결국 장벽은 허물어졌다. 만약 평양이 절반씩 남북으로 나뉘어 한편에 남한 사람들이 살았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까? 독일처럼 이미 통일을 이루었을까? 통일이 되었다면 어느쪽으로 되었을까 하는 식의 공연한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오스트 반호프(Ostbahnhof)역에 도착했다. 레지던시에서 동쪽으로 4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걷다 보니 저 멀리 장벽이 보인다. 드디어 왔다.

그런데 막상 장벽을 마주하니 좀 당황스럽다. 왜 이렇게 낮아? 게다가 두께마저 얇다. 낮고 얇은 장벽을 빼곡히 채운 건 전세계 작가들의 그래피티다. 베를린 사람들은 이곳을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1.3k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야외 갤러리다. 도로변이 구동독이고 반대편 슈프레(Sprre.R) 강변 쪽이 구서독이다. 베를린 장벽 뿐만 아니라 수프레 강 역시 동서독을 나누는 국경이었다.

벽을 따라 걷다 보니 장벽에 그려진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장벽 반대편으로 길을 건넜다. 그제야 그림들이 한눈에 들어오지만 여전히 뭔가 아쉽다. 그림이 너무 많고, 그 앞을 오가는 차가 너무 많아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기 어려운 탓이다.

종종 손상된 그림도 보인다. 멋대로 장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훼손하면 안된다는 경고가 무색하게 낙서를 막는 건 쉽지 않은가 보다. 나로선 장벽을 빽빽하게 채운 그림보다 인상적인 건 벽 두께다.

고작 한 뼘 정도 두께다. 수많은 이들이 이렇게 얇은 장벽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니 참 허무하다. 장벽 위는 아치형으로 둥글다.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장벽 위에는 사람들이 넘을 수 없게 날카로운 철조망이라도 설치해놓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치형의 모양이라 뭔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사람들이 장벽 위를 잡고 넘기 힘들게 하려고 둥글게 만들었다고 한다. 장벽 한편에서는 부서진 베를린 장벽 조각을 판다. 장벽의 잔해라는 돌덩이를 상자에 담아 파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곳 베를린 장벽의 다른 이름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다.

과거에 목숨을 걸어야 넘을 수 있었던 장벽은 이제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관광지로 변했다. 베를린 시민들은 분단의 상징을 갤러리로 바꾸었다. 독일 사람들이 과거 베를린 장벽과 역사를 간직하고 기억하는 방식이다.

 

신념 또는 맹신
장벽을 보고 레지던시로 돌아오니 건물 앞에 있는 공원에선 늘 그렇듯 터키 아이들이 뛰어논다. 레지던시가 위치한 지역은 베를린 서쪽, 시멘스트라세(Siemensstraße)인데 터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덕분에 주변에는 저렴한 케밥 식당과 터키 수퍼마켓 등이 많다. ZK/U레지던시는 특이하게 공원 한가운데 있어 항상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이곳 베를린 ZK/U 레지던시는 기차역을 개조해 문을 열었다. 과거의 플랫폼은 현재 테라스로 변신했다. 그 때문인지 매일 아침 식사를 들고 나와 테라스에서 먹을 때마다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우연히 흥미로운 사실을 한 가지 알게 됐다. 베를린이 동서로 나뉘었을 때 기차역은 서독에 위치했지만 동독 사람들이 근무했다고 한다. 동독에서 만든 기차가 지나가는 곳이라 동독 사람들이 관리하는 희안한 기차역이었다. 기차역을 가운데 두고 공원이 만들어진 이유다. 공원이 일종의 국경 역할을 한 셈이다. 공원을 지나 도로만 건너면 서독이었다. 레지던시 디렉터, 마티아스 아인호프(Matthias Einhoff)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주의에 아주 큰 믿음이 있는 사람들만 여기서 일했어요. 이를테면 ‘스트롱 빌리버 (Strong Believer)’들이라 할까? 마음만 먹으면 쉽게 서독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이들은 결코 동독을 떠나지 않았죠. 자기들 체제에 대해 대단한 믿음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머물었던 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베를린의 함흥 할머니
레지던시 건물에서 공원 끝 도로까지는 100m가 채 안 돼 보인다. 과거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거리다. 당시 여기서 일했던 동독 사람들은 매일 서독 사람들을 만나면서, 공원 너머 서독의 모습을 바라보며 동요하지 않았을까? 마티아스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믿음을 가진 ‘스트롱 빌리버’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한편 의아하다. 반대로 서독에서 동독으로, 혹은 남한에서 북한으로 가지 않은 사람들 또한 스트롱 빌리버들 아닌가? 과거 서독 지역에서 동독 사람들이 일하던 기차역에서는 이제 전세계 예술가들이 머물며 작업한다. 동독 사람들이 종일 바라보았을 기차역 앞 공원에서는 매일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치고, 터키 아이와 독일 아이가 함께 뛰어논다.

할머니는 피난을 떠날 때 곧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자기 의지로 내려왔지만, 곧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경계를 넘었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가 지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걸 알았어도 할머니는 배를 탔을까? 할머니 의지와 상관없이 생긴 경계는 수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나는 할머니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 레지던시 건물 지붕에 세우려 한다.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을 지켜보는, 이를테면 어처구니인 셈이다. 나는 런던으로, 베를린으로, 파리로 여행을 다니지만 할머니는 유럽에 와보지 못했다. 허리도 아프고 귀도 잘 안들리는 할머니가 여기까지 직접 올 순 없으니 작업을 통해서나마 할머니를 이리 모시고 와 베를린을 보여주고 싶다.
할머니 모습을 한 어처구니는 함흥에서 온 내 할머니이자 분단된 나라에서 북한을 고향으로 둔 많은 이들의 모습이다. 한편 베를린 사람들에겐 수십년 전 동서독 분단시절을 상기시킬 것이다. 어처구니를 세우고 나면 공원에서 뛰어노는 터키 아이들에게 할머니 얘기를 해주고 싶다. 우리 할머니나 너희들이나 이유가 무엇이건 경계를 넘었구나. 쉽지 않겠지만 경계 또는 국경을 넘은 너희들이 예쁘게 자라기를 기도하겠다고.

 

글ㆍ사진/ 이승연

나는 사라져도 내 이야기가 이야기로 남는다면? 나는 이런 상상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미래의 이야기를 담은 상상의 작업으로 현재를 신화로서 기록하는 것, 이것이 기이한 듯 보이지만 명랑한 내 작업이다. 서울 및 런던, 독일에서 활동 중이며 현재 영국 작가 알렉산더 어거스투스와 함께 ‘더 바이트백 무브먼트’ 라는 이름의 아티스트 듀오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베를린 ZK/U 레지던시에 입주 중이다. 이승연




연애편지가 베스트셀러가 되다. 『사랑의 불꽃』

지금으로부터 꼭 한 세기 전 자기 자신의 의지로 이성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자유연애’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남녀칠세부동석’이 여전히 공고했던 현실에서 당시 청년들은 ‘사랑’이나 ‘연애’라는 말만 들어도 얼굴이 붉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부모가 아닌 자신이 주체적으로 행하는 ‘자유연애’는 지극히 ‘신성’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1920년대는 바야흐로 ‘연애의 시대’가 된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서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는데, 이 책이 사랑의 불꽃(오은서, 신민공론사, 1923)이다. 이 책은 사랑 고백을 내용으로 한 연애편지 19통을 모아놓은 연애서간집이다. 발행자 이름은 ‘미국 선교사 오은서’로 되어 있는데, 실제 책의 간행을 주도한 것은 백조 동인 춘성 노자영이다. 검열을 의식하여 외국인 명의를 빌렸을 것이다. 이 책은 예상 외의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조선 최초의 1일 판매 부수가 3~40권에 이르는 책이었다고 한다. 당시 문맹률이나 도서구매력 등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부수가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 베스트셀러일수록 현재 남아 있는 책이 거의 없는데, 이 책도 현존 부수가 한 자리에 불과하다. 1920년대 ‘자유연애’의 열풍을 잘 보여주는 이 책은 한국근대문학관도 1권을 소장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표지가 낙장이다.

글 / 함태영(한국근대문학관 학예사)




리 리우양(李瀏洋)

네모 테이블 The Square Table
100×100×80cm, 기기 설치, 전자 기계, 나무, 먹물, 물, 2014
[설치 영상 보기]

짖는 소리 Barking (설치 구역 지도)
이동식 스피커, 영상, 2015
[설치 영상 보기]

1분은 60초 One Minute Is Sixty Seconds와 파파파 Pah Pah Pah (설치전경)
360×360×90cm, 가변설치, 모터 시스템, 금속 스텐트, 알루미늄 합금 봉, 2015

 1분은 60초 One Minute Is Sixty Seconds

리 리우양은 1988년 중국 허난성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고 쓰촨미술학원 졸업 후 충칭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일상적인 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듦으로써 일상적인 것에 대한 태도와 생각을 환기시킨다. 학생 시절에 제작한 작품인 <네모 테이블 The Square Table>은 표면에 먹물이 담기도록 특수 제작한 테이블에 이동하는 작은 기계를 띄워서 기계가 파동을 일으키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다.
도심에 이동식 스피커를 설치하여 개 짖는 소리를 틀고 다니는 <짖는 소리 Barking>은 작가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 들었던 개 짖는 소리, 즉 개들의 소통 방식을 도심으로 옮겨놓은 작업이다. 흔히 들어왔던 똑같은 개 짖는 소리이지만 도심과 시골의 문화 차이 때문에 도심에서 듣게 되는 개 짖는 소리는 이상하고 오싹한 분위기를 만든다.
작품<1분은 60초 One Minute Is Sixty Seconds>은 시간의 개념을 공간화한 작업이고, <파파파 Pah Pah Pah>는 인간들의 모습을 1만 개의 작은 공으로 형상화하여 거대한 판 위에서 위아래 좌우로 튀어 오르도록 제작한 작품으로 한공간에 나란히 설치된바 있다.

파파파 Pah Pah Pah

나부낌 1 Flapping 1
가변설치, 자동 센서 기기, 사운드, 2016

나부낌 1.1 Flapping 1.1
가변설치, 자동 센서 기기, 사운드, 2016
[설치 영상 보기]

그의 대표작인 <나부낌 Flapping>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실내에 설치한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의 고향에 있는 나무 한 그루에 설치한 작품으로, 작가는 자신의 할아버지 목소리를 담은 무수한 양의 자동으로 반응하는 소리 센서를 설치하였다. 야외에 설치된 <나부낌 1.1>에서 나무에 달린 센서들은 바람과 햇볕의 변화에 따라 작가의 할아버지 목소리로 “나뭇잎이 나부낀다”라는 소리를 낸다. 작가는 실제로 바람에 나뭇잎들이 나부끼는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전자 기기로 나뭇잎이 나부낀다고 말하는 현상을 연출하였다.
개인작업 외에도 리 리우양은 실험성과 새로운 표현방식을 추구하는 뉴미디어아트 그룹 ‘X SPACE’ 멤버로 활동한다.  ‘X SPACE’는 총 5명의 아티스트와 엔지니어(사운드, 미디어)로 이루어졌으며 영상, 조명, 공간 설치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멀티미디어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대표 작업으로는 중국 충칭에서 열린 일렉트로닉 음악 페스티벌의 야외 공간에 디자인하고 설치한 복합매체(설치 및 미디어) 작품과 철제 설치 작업인 <호흡 Breathing>(설치, 미디어, 사운드)이 있다. 리 리우양은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에 머물면서 ‘바다’를 소재로 한 작업을 구상 중이고 8월에 완성된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작가노트

나는 1988년 중국 허난성에서 태어났고 충칭에서 주로 활동한다. 쓰촨미술학원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전공(BFA, 2016)하였으며 멀티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인터랙티브아트, 비디오아트, 조각, 사운드아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제작 및 연출한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기간 중에도 멀티미디어 형식의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현재 바다를 소재로 한 작업을 구상 중이며 설치 및 촬영을 거쳐 완성한 영상작품을 오는 8월 중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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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합니다.

[소식1] <인천이 있는 저녁 : 우리가 몰랐던 인천이야기> 강좌 개최

한국근대문학관이 인천학 강좌 <인천이 있는 저녁 : 우리가 몰랐던 인천이야기>가 7월 6일 시작된다. <우리가 몰랐던 인천이야기>는 한국근대문학관과 인천평생교육진흥원의 협업으로 기획되었다. 인천 시민들이 직접 살았던 공간과 생활 문화를 미시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인천의 문화 전통을 현재 시민들과 공유하여 인천의 가치를 재창조하는 것이 이번 강좌의 목표이다. 전국 유일의 공공 종합문학관인 한국근대문학관은 그 동안 <한국 근대문학 명작특강>과 <고전문학 명작 특강>, <세계문학특강> 등의 문학강좌와, <인문학이 있는 저녁>, <인천이 있는 저녁> 등의 인문·교양강좌를 성공적으로 기획·운영해왔다. 이번 강좌는 그동안 인천의 조명 받지 못했던 문화에 대해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이 될 예정이다.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총 5회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강좌는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첫 수업을 시작으로, 인천이 배출한 인물들, 인천의 도시발전과정, 인천의 경제, 인천의 골목길 등 다양한 주제의 인천학 강의들이 진행된다. 인천에 흥미와 애정이 있는 시민들에게는 놓치기 아까운 매우 소중한 기회가 될 전망이다.

· 일    정 : 2017년 7월 6일 ~ 8월 3일 매주 목요일 18:30 ~ 21:30 총 5회
· 장    소 : 생활문화센터 2층 다목적실
· 수강료 : 무료
· 접    수 : 2017년 6월 26일 ~ 7월 5일, 선착순 40명
· 접수 및 문의 gangjwa01@naver.com, (032)455-7165.

 한국근대문학관

 

[소식2]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안상훈 개인전
<굿:페인팅>展 개최

인천아트플랫폼은 입주작가 안상훈의 개인전인 <굿: 페인팅>전을 2017년 6월 24일부터 7월 16일까지 창고갤러리에서 진행한다. 안상훈은 이번 개인전에서 전시장 벽면 전체를 페인트 보강 비닐로 덮고, 그 위에 페인팅하는 현장 작업을 선보인다.

안상훈은 가시적 형상을 재현하는 방식을 벗어나 순수 조형의 점, 선, 면, 색채로 화면을 구성하는 회화 작업을 선보여 왔다. 독일에 머물며 작업한 <휴지통이 있는 풍경>, <화가>, <Fisher>와 같은 일련의 회화 작품은 작가 주변의 풍경에서 선택한 소재를 모티브로 풍경 자체와 자신의 정체성을 주제로 작업한 것들이다. 그 이후 회화성에 대한 본격적인 질문으로 회화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많은 변화를 시도한다. 다양한 기하학적인 조형요소들이 뒤엉켜 그리고, 지워져 일종의 구조이자 이미지인 추상적 형태로 귀결되는 그의 회화 작업은 어떠한 본질적 형태를 추구하거나 축약하는 것이 아니고, 내적 에너지를 평면 위에 쏟아내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바라보고’, ‘인식하고’, 그리기 행위를 통해 표출하게 되는 그 ‘과정(process)’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캔버스나 종이 위에 그리는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과정’과 무형의 이미지에 대한 시각적 기억과 경험이 개입된 ‘결정(choice)’ 자체에 주목하며 회화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고민은 캔버스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회화의 장면(scene)의 공간적 확장을 꾀하는 그의 벽화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시도는 일정 장소에 어울리는 형태를 선택하고, 공간에 그리는 행위를 반복하며 장소를 초월한 ‘그림 그리기’라는 본질에 몰두하는 것을 작업의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다.

전시 제목인 <굿:페인팅>은 독일 신표현주의의 미국적 양태인 배드 페인팅(bad painting)에서 차용하였다. 하지만 당대의 굿 아트(good art)의 추상성이나 세련된 취향, 베드 페인팅(bad painting)의 구상적 표현, 형상의 회복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굿:페인팅> 이라는 전시명을 통해 과연 ‘회화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림 그리는 것은 무엇일까?’를 다시 한 번 상기 시키고자 한다. 단어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마주치게 될 생경한 풍경을 암시한다. 전시장 벽면을 덮고 있는 얇은 보강 비닐은 마치 전시 준비 중인 것만 같은 미완의, 불안정한 상태를 연출한다. 잡아당기면 주르륵 찢겨 나갈듯한 비닐 위에 부유하듯 올려진(그려진) 선과 면, 색채들은 그가 사유한 지점들을 연결하거나 지우면서 회화적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작가의 이런 시도들은 다양한 추상적 구도로 연출된 회화적 긴장감을 유지한 채 가벼움과 무거움, 유쾌함과 진중함 사이를 오가며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좋은 예술”, “나쁜 예술”은 무엇이냐고. 작가는 전통적 추상회화에 대한 믿음을 와해하고 추상적 표현과 이미지의 실험이 미적 유희의 대상을 넘어 회화 그 자체로 예술적 경험을 넓혀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회화의 확장을 시도하고 회화적 공간을 구현하고자 하는 그의 작품 <굿: 페인팅>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전시는 무료이며, 자세한 내용은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바로가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인천아트플랫폼

 

[소식3] 올 가을, 인천왈츠 무대의 주인공은 나야나!
시민창작뮤지컬 ‘2017 인천왈츠’ 참가자 모집

인천문화재단은 7월14일(금)까지 시민창작뮤지컬 ‘2017 인천왈츠’에 함께 할 참가자를 모집한다. 2012년 시작한 인천왈츠는 시민과 전문예술가가 함께 하는 컨셉으로 콘서트부터 창작뮤지컬까지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올해에는 <어떤 여행> 시즌 1·2, <소원책방>, <꿈스꿈스>, <1936, 그날>에 이어 6번째 창작뮤지컬을 준비한다. 2017 인천왈츠의 참가자는 춤과 노래, 연기를 맡는 드라마팀(35명 내외)과 공연 시 라이브 음악을 선보일 연주팀(15명 내외), 공연의 전 과정을 기록하고 홍보할 기획팀(4명)으로 구성된다. 인천시민은 물론, 인천을 사랑하고 공연에 참여할 열정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참가 신청은 온라인 신청양식(신청 바로가기▶)을 통해 접수하며, 별도의 서류 심사를 거쳐 참가자를 확정할 계획이다. 이후 뮤지컬 <성냥공장 아가씨>를 비롯해 연극 <소문>, <블랙아웃> 등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극단 십년후(연출 송용일)와 협력해 7월 29일(토)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공연을 위한 워크숍과 연습을 진행한다. 시민 참가자와 극단 십년후가 함께 만든 창작뮤지컬은 11월 11일(토)~12일(일) 양일에 걸쳐 송도 트라이보울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관련 문의는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팀(032-760-1036)으로 하면 된다.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팀

 

[소식4] 숨은 공간 속 ‘강화 문화유적 여행’ 떠나요!
‘강화돈대사진전’개최 (6.22~9.22)

인천문화재단 우리미술관, 트라이보울,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에서 6월 22일부터 9월 22일까지 ‘강화돈대사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해안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축조된 방위시설 강화 돈대를 비롯한 유물·유적 사진을 선보임으로써, 돈대의 역사적 가치에 주목하여 인천시민들의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도모하고자 한다.
총 3개의 주제로 구성된 전시는, 인천문화재단 공간문화팀에서 관리하는 문화 예술 공간들의 장소적 특성을 반영하여 ‘숨은 공간 속 보물찾기’와 같은 재미로 관람객들을 찾아간다. 특히 인천의 섬(강화도)과 구도심(동구,남구), 신도시(송도)를 연결함으로써 문화 예술 공간의 트로이카와 같은 3색(色) 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만석동에서 개성까지’ (동구 화도진로 192번 길 3-7, 9, 11 우리미술관 전시관)
우리미술관에서는 고려의 옛 도읍지였던 개성(開城)의 문화유산과 관련된 사진이 전시중이다.공민왕릉과 개성 첨성대를 비롯한 사진 작품이 중심을 이룬다. 우리미술관이 위치한 만석동에는 전쟁과 분단의 사나웠던 역사를 살아온 주민들의 오랜 기억이 남아있다. 만석동에서 바라본 북녘 하늘은 무슨 색일까. (6/26-6/28까지, 10:00~18:00, 매주 월요일, 공휴일 다음날 휴관)

‘바다, 돈대’ (연수구 인천타워대로 250 트라이보울 3층 전시장)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는 강화도(江華島)와, 새로운 국제업무도시의 뱃길을 여는 송도(松島). 전혀 다른 두 ‘島’지만 하나의 바다를 바라본다. 센트럴파크 인근에 위치한 트라이보울은 강화의 바다 내음과 돈대를 고스란히 옮겨왔다. 조금은 다른 배경일지라도, 이번 전시를 통해 강화의 느낌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6/26-9/06까지, 13:00~17:00, 휴관일 홈페이지 참조). (6/26-6/28까지, 10:00~18:00, 매주 월요일, 공휴일 다음날 휴관)

‘강화 돈대를 노닐다’ (남구 경인로 222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다목적실)
인천 남구 도화동에 위치한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은 강화 돈대와 신록의 숲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들을 전시한다.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의 1주년 개관과 함께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병인양요의 격전지인 ‘광성보’와 ‘덕진진’과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각종 돈대들을 만나볼 수 있다. (6/26-9/22까지, 10:00~17:00, 매주 일요일, 공휴일 휴관)

더불어, 전시와 함께 진행되는 스탬프투어도 자유롭게 참여 가능하다. 전시 관람 후 스탬프 책자에 공간별 스탬프를 모두 수령한 관람객에 한하여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할 예정이다. 올여름, 매력적인 공간 속 강화 보물찾기 여행을 떠나보자.

관람비 무료 / 문의 032)868-9162

인천문화재단 공간문화팀




시대, 역사가 담겨있는 인천의 근대건축물

지금 인천에서는 보존해야 할 건물은 부수고, 멸실된 건물은 다시 세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천 중구는 근대문화유산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이 이용할 주차장을 세우기 위해 또 다른 근대문화유산을 부순다. 이런 모순은 어제 오늘의 사건이 아니고 벌써 10년 넘게 반복되어 온 현상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간추려도 문화주택과 전 새마을협의회 건물(관동2가), 조일양조장(선화동), 동방극장과 송주옥(신포동), 애경사(북성동2가) 등이 사라졌다. 의미있는 근대건축물을 연달아 부수면서, 사진 몇 장을 근거로 대불호텔을 복원하고, 심지어는 현대식 건물 외관에 목재를 붙여 일본식이라 우긴다. 거대한 일본고양상이 길을 막고, 차이나타운은 붉은색으로 변했다. 목적은 단 하나 관광이다. 이미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지만,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여 돈을 벌겠다는 심산이다.
요즘처럼 먹고 살기 힘든 때 인천으로 돈을 쓰러오는 사람이 많아지고, 인천사람들이 돈을 번다니 기쁘다. 그러나 관광객이 인천을 찾는 이유는 어줍잖은 볼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다. 다른 동네에는 없는 인천 개항장만이 간직한 근대문화유산을 보기 위해서다. 이번에 철거된 애경사 건물만 해도 1930년대에 유행하던 건축양식과 수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벽돌을 쌓아 구조체를 만들고, 당시 첨단 건축기술이던 철근콘크리트 보를 걸었다. 손쉽고 값이 저렴한 트러스 대신 철근콘크리트 보를 쓴 것은 그 위에 한 층을 더 올리기 위해서였다.
건물에 적용된 디자인 수법도 돋보인다. 기단은 화강암으로 처리해 안정감과 변화를 주었고, 벽체돌림띠와 인방, 창대석은 당시에 유행하던 인조석으로 마감했다. 특히 벽체 모서리 벽돌을 서로 엇갈리게 한 단 걸러 표면에 몰탈을 발라 모서리를 강조하는 방법은 다른 건물에서는 보기 힘든 방식이었다.

애경사(2009년과 1937년)  출처 : 좌측_필자촬영   우측 _대경성사진첩(1937년)

애경사 부지 앞뒤로 도로가 지난다. 원래의 도로는 지금은 이면도로가 된 ‘참외전로 59번길’이다. 이 길에 면한 건물의 모습은 건물 철거 전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전면도로인 ‘제물량로’는 해방 후에 개설된 것으로, 이 도로개설로 애경사 부지 일부가 잘려나갔다.

혹자는 애경사 건물이 역사도 불분명하고, 예술가치도 없는 낡은 건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략 1930년대 초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애경사 건물에 적용된 건축양식은 당시 유행했던 세제션 양식이다. 세제션은 19세기에 유행된 장식주의에서 벗어나 기능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등장한 양식으로 분리(파)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일본건축계는 분리파 건축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여 많은 건축물을 이 양식으로 지었다. 이처럼 겉보기에는 낡고 하찮은 건물이지만, 애정을 갖고 바라보면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예술사조로 식민지 건축물을 평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으나, 보잘 것 없는 건물이라는 말을 반박하기 위해 덧붙여 본다.
전쟁의 포화와 산업화 시대의 개발압력에도 살아남은 건물이 관광이라는 돈벌이 앞에 흔적없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시민의식이 높아진 이 시대에도 근대건축물이 계속 사라지는 현상은 납득하기 어렵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원도심이다보니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고, 사람이 몰려들다보니 주차난이 더욱 심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역사와 문화가 담긴 건물을 허무는 일은 지극히 비문화 행동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원인은 낡은 건물이니 철거한다는 단순한 접근방식에 있다. 근대건축물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댄다면 건물의 외벽을 살리면서도 주차장을 만들 수 있다.

개항으로 설정된 인천 조계지에는 격자형 가로망과 도로, 전기와 수도와 같은 도시기반 시설이 갖춰졌다. 인천으로 몰려 온 외국인은 이곳에 자기나라에서 유행하던 건축양식을 옮겨와 건물을 세워 나갔다. 결과적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여러 나라에서 유행하던 건축양식의 건물이 인천에 들어섰다. 이러한 독특한 문화환경이 남아 있는 인천개항장은 인천만이 가진 역사자원이다. 화교의 생활터전인 차이나타운이 있어 소중한 역사문화환경을 생동감있게 만든다. 인천시민은 식민지 잔재인 근대문화유산을 보는 시각도 남달랐다. 먹고 살기 급했던 1960년대 초에 인천 근대건축이 가진 가치를 담은 ‘개항과 양관역정’이 발간될 정도의 수준 높은 문화의식을 갖고 있었다. 높았던 인천시민의 문화자존심이 관광이라는 돈벌이 앞에 허물어지도록 놔둬서는 안된다. 애경사(비누와 양초제조)가 있었던 중구 북성동2가. 정미소와 양조장, 간장공장이 있었고, 지금도 그 자취가 남아 있는 동양방적(현, 동일방직), 풍국제분(현, 삼화제분) 등이 위치한 동구 만석동 일대로 이어지는 지역은 인천 최초의 공업지역이다. 일제강점 말기 부평일대에 세워진 산업문화유산과 인조견을 만들던 강화읍내의 산업유산도 주목해야할 근대문화유산이다. 해방이후 산업화와 도시의 성장과정에서 세워진 현대건물도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대건축물’은 지은 지 50년이 경과한 건물을 말한다. 해방이후에 세워진 건물도 여기에 포함되지만, 상당수는 개항이후 해방이전까지 외국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근대건축물 대부분이 일제가 식민지 경영을 위해 세운 것으로 일본에서는 이를 식민지 건축이라 부른다. 일제강점의 쓰라린 역사를 지닌 우리에게 근대건축은 결코 멋지거나 예술가치가 높은 건물이 아니다. 식민지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들이 물러간 뒤 근대건축물 안에서 우리가 써 내려간 역사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이 생길 때마다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떠들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린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더 이상 서로를 미워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확실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은 인천 전역에 산재한 문화유산에 대한 철저한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 조사가 단순한 학술용역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근대건축 전문가를 필두로 그동안 현장에서 활동한 시민들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 전수조사 후에는 보존 대상과 철거해도 되는 건물을 시민합의를 통해 가리고, 한옥 등 건축자산법에 따른 기본계획도 세밀하게 수립되도록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건축에는 시대가 담겨 있다는 말이 있다. 애경사를 철거한 자리에 들어설 주차장은 우리 시대의 사상적 가치와 문화수준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될 것이다. 문화재지정 해제를 요구하는 서명부와 유서 깊은 건물 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악담을 퍼붓는 현상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가 만든 것이다. 근대건축물 철거의 책임문제는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란 말이다. 누구의 잘, 잘못을 넘어 이번 일을 인천의 문화가치를 한 단계 높이는 전환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성숙한 문화의식을 가진 지혜로운 인천시민이다.

 

글, 사진제공/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실내건축과 부교수




나눔. 두 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두손건설 이도명 회장

인천문화재단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인천지부와 함께 인천에서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을 만나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기부자클럽으로 지역사회에 기부와 나눔의 뜻을 몸소 행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네 번째 시간으로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일곱번째 아너이자, 제4대 인천 아너소사이어티클럽의 회장이신 두손건설 이도명 회장님을 만나봅니다.

두손건설 이도명 회장님은, 70번째 아너이신 한상욱 우리가본집 대표이사님과 함께 인천에서 탄생한 두번째 부부 아너로서, 인천의 기부와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건물을 짓는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문화를 일구어 나가시는 이도명 회장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Q. 안녕하세요. 소중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두손건설의 이도명입니다. 먼저 이런 인터뷰를 하게 되어 쑥쓰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90년도에 건설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소규모 연립주택 건설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개발사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전국 각지에 ‘지젤’이라는 브랜드로 건물을 지어 분양하고, 일을 하다보니 영화관, 사우나, 스포츠 센터 운영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장품, 의약 등 분야에 주원료로 사용되는 스피루리나 배양 사업을 시작했어요. 2014년부터는 원인재역 부근에 ‘우리가본집’을 오픈하여 외식사업을 진행 중인데, 스피루리나를 넣어 건강한 먹거리 문화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건설에서부터 외식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계시네요. 특히, 외식사업을 시작하신 것이 흥미롭습니다. 
A. 외식사업을 통한 수익사업보다는 ‘가치’를 남기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우리가본집은 그 자체가 예술적인 것을 많이 가미하고 있습니다. 이름부터 달라요. 우리가‘본집’이었다가 우리‘가본집’이 되는 것이거든요. 우리도 ‘울’이라는 집이고, 가운데의 가(家)도 집, 마지막에 본집도 집입니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상징합니다. 건물 자재도 보면 옛날 자재를 활용한 게 아주 많아요. 기왓장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을 가져온 것이고, 목재도 옛건물의 재료를 활용했어요. ‘백년이 가는 집을 만들다’라는 생각에서 단순한 외식공간을 넘어선 가치를 전하기 위해 계속해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Q. 큰 뜻이 숨어있는 이름이네요. ‘우리가본집’의 상호뿐만 아니라 건설사의 상호도 직접 지으셨다고 들었습니다.
A. 네, 두손건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상대의 맞잡은 손, 즉 신뢰를 의미합니다. 만나면 자연스레 악수를 하잖아요. 반가워서 만나고 악수하고, 이렇게 손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지요. 또 좋은 것이, 두손을 가지고 우리는 기도를 합니다. 절을 가도 성당을 가도 교회를 가도 모두가 우리 두 손으로 두손을 위해 기도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잘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 회사 이름이나 우리 브랜드 이름을 생각하는 것이 아주 재밌습니다. 상호를 짓더라도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우리 아름다운 한글을 이용해서 지으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Q.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중요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인천 아너소사이어티 클럽 회장으로 활동하시는 부분도 이러한 철학과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A. 혼자만 먹고 살 수는 없는 세상입니다. 어느 정도 자신의 일을 가꾸고 나면 나누는 게 세상의 진리라고 봐요. 여러 사람들이 요구하지만 모두가 줄 수는 없으니까요. 나누고 봉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해야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해야한다고 봅니다. 인천에 저를 비롯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분들이 104분이 계세요. 모두 보이는 곳에서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우 열심히 하세요. 아너소사이어티의 회원이 될 때, 쑥스럽지만 한번 해보자 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아내가 70번째 회원이 되면서 뜻깊은 일을 저희 가족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Q. 부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되신 의미있는 순간이었네요. 기부를 통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관심있는 기부 분야가 있으신지요.
A. 혜광학교에서 운영하는 혜광오케스트라가 있어요. 매번 공연을 가서 볼 때 흐뭇하기도 하지만, 단원 친구들이 보낸 점자로 된 편지를 받을 때 그 흐뭇함은 배가됩니다. 이런 경험이 있기에 주변에 나눔문화를 소개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무언가 제약이 있기에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부분에 힘을 실어주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을 망치는 것이거든요. 주어진 환경에서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 앞으로도 애쓰려고 합니다.

Q. 전국 단위로 사업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천에 터전을 잡게 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군대를 제대한 이후에 고향인 전남 나주를 떠나 이곳 인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인천에서 삼십년을 넘게 살았기 때문에 여기가 제2의 고향이지요. 서른 살이 될 때 내 사업을 시작했고, 연수동에 첫 입주를 할 때 들어와 계속해서 이곳 연수구에 살고 있습니다. 인천이라는 도시와 시간을 함께하면서 도시와 내가 함께 커나가는 느낌이 참 좋아요. 연수구에 상업용지가 나대지로 있을 때 공사를 시작했어요. 건물은 50년, 100년이 되어도 그 자리에 있으니, 이제 이 건물들이 추억을 먹고 살고 있습니다.

Q. 그 100년이 되는 건물 중에 ‘우리가본집’이 있는 것이네요. 우리가본집을 문화와 역사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A. 저 땅의 태생은 주차장이었어요. 30% 면적을 활용할 수 있는데 제대로 된 건물,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자재를 모았어요. 지금도 문화공간으로서의 우리가본집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자재를 보러 다닙니다. 아주 재밌어요. 계속해서 채워나갈 겁니다. 우리가본집 안에 격자 디자인을 많이 썼는데요. 본래 취지는 다녀간 사람들의 기념품을 받아 100년의 공간을 채우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각자의 추억, 소중한 물건이나 순간이 모인 공간, 그 기억의 저장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Q. 물리적으로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문화예술의 장을 마련하고 계시기도 하지요.
A. 우리가 와인아카데미가 5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좋은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곳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와인을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파티 문화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접하는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아는’ 문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지역의 리더들이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사교의 장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보다 나은 세상을 상상하는 공간으로 우리가본집을 폭넓게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Q. 공간을 만드는 일에서 문화를 만드는 일로 경영의 영역을 점점 확장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회장님의 또다른 도전이 궁금해집니다.
A. 세상은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이잖아요. 나는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에 목표로 삼았었습니다. 서른 살에는 사업을 시작했고, 마흔 살에는 건강을 위해 담배와 커피를 끊었지요. 쉰 살이 되던 해에는 태어난 고향에서부터 인천까지 천리행군을 완주했습니다. 앞으로는 저도 재단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열심히 살아왔으니 베푸는 기회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재단을 만들어서 봉사할 계획입니다.

“누구든지 10년만 살면 그 곳이 고향이 아닐까요. 모두가 제2의 고향, 인천을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모았으면 합니다.“ 인터뷰 내내 쑥스럽지만,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일에 대한 열정과 인천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신 이도명 회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회장님의 경영마인드와 같이, 사람과 사람의 맞잡은 두 손, 그 안에서의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이웃과 함께 나누는 문화 또한 더욱 성숙해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인천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아트레인의 탑승자를 찾습니다.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 기부 캠페인 아트레인은 인천 시민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개인 혹은 법인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기업 후원의 경우, 기업의 경영철학과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문화예술로 함께 만들어드립니다.
아트레인 참여 문의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032-455-7114, artrain@ifac.or.kr

인터뷰 정리 / 인천문화재단 유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