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희

정석희는 드로잉, 회화, 영상작품을 통해 인간 실존의 문제들을 담대하게 다뤄왔다. 그는 소소한 일상적 언어와 풍경을 통해 인간의 존재론에 대한 서사에서부터 현실과 비현실, 갈등과 대립 등 인간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폭넓은 관점으로 작업에 담는다. 특히, 작가는 수많은 형상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지우는’ 과정을 모아 하나의 영상 회화로 만드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며 과연 ‘회화의 완성은 어디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그는 인간을 주제로 인간의 순수한 꿈과 일상, 깊은 사유 속의 심상들을 수백 장의 드로잉, 회화에 담아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고, ‘영상 매체’를 통해 두터운 시간의 층위를 더하며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해 나간다.

들불
영상 회화, 45개의 화화 이미지로 구성, 3분 7초, 가변크기, 2017

들불
영상 회화, 45개의 화화 이미지로 구성, 3분 7초, 가변크기, 2017

들불
영상 회화, 45개의 화화 이미지로 구성, 3분 7초, 가변크기, 2017

위 작품 <들불>의 ‘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세계, 그 안에 몸담은 모든 생명과 자연을 품고 있는 현장이며, ‘불’은 하나의 현상으로서 생명을 타오르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고통과 아픔, 희망을 이야기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자연과 일상의 풍경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통찰하려는 것으로 이상향으로서의 들판이 갖는 공허함과 허무함,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하는 과잉, 속도의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현대인들의 숙명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수백 장의 평면회화가 함축된 영상회화 안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물감의 흔적과 종이의 질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날로그적 전통회화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구럼비 
영상회화, 152개의 회화 이미지로 구성, 2분 10초, 가변크기, 2014

구럼비 
영상회화, 152개의 회화 이미지로 구성, 2분 10초, 가변크기, 2014

구럼비
영상회화, 152개의 회화 이미지로 구성, 2분 10초, 가변크기, 2014

flickering
영상회화, 241개의 회화 이미지로 구성, 3분, 가변크기, 2016

flickering
영상회화, 241개의 회화 이미지로 구성, 3분, 가변크기, 2016

flickering
영상회화, 241개의 회화 이미지로 구성, 3분, 가변크기, 2016 

 

작가노트

나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부딪히는 사소하거나 심각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의문을 작업의 주제로 삼는다. 인간의 본질, 삶과 죽음, 불안, 고통, 소외, 근원적인 외로움 등의 실존적인 문제에서, 인간이 인간과 관계를 갖고 살아가면서 파생되는 정치, 사회, 환경적인 문제까지, 포괄적인 것에서 개별적인 것까지, 집단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까지를 담는다. 나의 영상회화, 영상드로잉 작업은 회화나 드로잉에 그 바탕을 두고 있고, 수없이 많은 그림이 그려지고 지워지면서 한 편의 영상회화, 영상 드로잉작업이 완성된다. 한 컷 한 컷 진행될 때마다 컷과 컷을 사진으로 찍고 그 과정의 흔적들은 소멸하면서 최종은 하나의 드로잉, 회화로 남는 것이다.
작업의 형태는 드로잉, 회화가 움직이며 변화하는 애니메이션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나는 작업을 하면서 완전한 이야기나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지 않는다. 우연한 사유와 감각, 유동적인 흐름에 따라 작업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큰 서사의 틀 속에서 자유롭게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나는 드로잉이나 회화가 이야기의 구조를 갖고 움직이며 변화하면서 사람들에게 감동과 새로움을 전달 해줄 수 있다는 것에 흥분과 큰 희열을 느낀다. 물론 그 작업의 과정은 무한한 인내와 끈기를 요구하지만, 나는 이 형식의 작업을 꾸준히 지속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계속 도전할 것이다.

* 정석희는 한성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으며, 뉴욕공대 대학원 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2016년 <시간의 깊이> (OCI 미술관, 서울)을 포함하여 13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2015년 <무심> (소마드로잉센터, 서울) 등 60여 회의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현재 인천아트플랫폼 2017년도 입주작가로 활동 중이다.

작가정보 자세히 보기




소개합니다.

[소식1] 인천 근대건축물 개발과 보존의 경계에서
제58회 목요문화포럼 개최

개항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로 인천에 세워진 근.현대 건축물의 수는 210여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국가 사적, 인천시 지정 유형 문화재, 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유적은 총 23개에 불과하며, 특히 철거될 근대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등록문화재는 단 7개뿐이다.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못된 근·현대건축물은 현실적으로 보존·관리가 어렵고 도시개발에 밀려 철거되거나 훼손될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주차장 부지 확보를 위해 최근 철거된 중구 송월동의 ‘애경사’ 와 송림동 한옥여관이 단적인 예다.

이처럼 역사가 담긴 근대건축물을 보존하자는 의견과 경제 발전을 위해 철거하자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 작금의 실정에 맞추어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인천 근대건축물 개발과 보존의 경계에서’라는 주제로 제58회 목요문화포럼을 개최한다. 오는 727() 오후 3인천문화재단 칠통마당(인천생활문화센터) H2층 다목적실에서 진행되는 이번 포럼에서는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컴팩스마트시티부장이 ‘인천 근대건축물 보호, 그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발표하고 민현석 연구위원(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이 ‘서울미래유산제도 마스터플랜’을 주제로 서울미래유산제도에 대해 소개한다.

관리 미비로 훼손되거나 위기에 처한 인천의 근대건축물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실효성 있는 근.현대 문화재 제도와 정책방안이 도출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정책연구팀

 

[소식2] 트라이보울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참가자 모집
중학생 축제기획자! <꿈꾸는 아지트 2기> 교육생 모집

송도 신도시의 문화예술 공간 트라이보울에서 ‘TRIBOWL 꿈꾸는 아지트 꿈꾸라’(이하 꿈꾸라)를 진행한다. ‘2017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예술감상교육 운영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며, 7월 31일까지 홈페이지(바로가기▶)를 통해 중학생을 대상으로 ‘음악축제 기획자 코스’교육생을 모집한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주 5일 수업제 전면실시에 따라 주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어린이와 청소년의 문화예술 소양함양과 또래·가족 간 소통할 수 있는 건전한 여가 문화 조성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와 인천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공공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이번 ‘꿈꾸라’ 2기 음악축제 기획자 코스는 8월 5일부터 26일까지 매주 토요일(4주간 4회)에 진행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의 역사와 현장을 살펴보고, 자신이 꿈꾸는 축제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직접 기획해보는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다. 공연예술에 관심이 많은 학생에게 미래의 진로를 탐색해 볼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트라이보울의 음향, 조명, 무대 기계 등 공연을 이루는 시스템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교육 참여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백스테이지 및 시설 투어로 2010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은 트라이보울의 곳곳을 알아보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교육생과 동반 가족 1인은 ‘2017 트라이보울 재즈페스티벌(2017.08.25.~08.27 진행 예정)’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일정 및 프로그램 안내는 트라이보울 홈페이지(바로가기▶)에서 확인 가능하며, 신청 또한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으로 받고 있다. 참가 문의 및 자세한 사항은 인천문화재단 공간문화팀(☎032-760-1097)으로 하면 된다.

공간문화팀

 

[소식3]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정석희 개인전
<들불>展 개최

2017년 8기 입주 작가인 정석희의 14번째 개인전 <들불>을 오는 2017년 7월 13일부터 8월 6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정석희는 드로잉, 회화, 영상작품을 통해 인간 실존의 문제들을 담대하게 다뤄왔다. 그는 소소한 일상적 언어와 풍경을 통해 인간의 존재론에 대한 서사에서부터 현실과 비현실, 갈등과 대립 등 인간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폭넓은 관점으로 작업에 담는다.

작가는 전시 제목이자 작품 제목인 ‘들불’을 통해 ‘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세계, 그 안에 몸담은 모든 생명과 자연을 품고 있는 현장이며, ‘불’은 하나의 현상으로서 생명을 타오르게 하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고통과 아픔, 희망을 이야기 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자연과 일상의 풍경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통찰하려는 것으로 이상향으로서의 들판이 갖는 공허함과 허무함,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하는 과잉, 속도의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현대인들의 숙명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들불> 영상 작품을 비롯해 이를 제작하기 위한 작은 드로잉 작업이 함께 전시되며, <안과 밖>과 같은 최근 영상작품과 드로잉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수백 장의 평면회화가 함축된 영상회화 안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물감의 흔적과 종이의 질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날로그적 전통회화의 감동을 만끽해 볼 수 있길 바란다. 전시 관람은 11시부터 12시까지이며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바로가기▶)에서 살펴볼 수 있다.보다 자세한 사항은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전시정보]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정석희 개인전 <들불>
1. 전시기간 : 2017. 7. 13.(목) ~ 8. 6.(일)
2. 전시장소 :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
3. 관람시간 : 12~18시, 월요일 휴관
4. 오프닝 : 2017. 7. 13.(목), 17시

인천아트플랫폼

 

[소식4] <인천이 있는 저녁 : 우리가 몰랐던 인천이야기> 강좌 개최

한국근대문학관이 인천학 강좌 <인천이 있는 저녁 : 우리가 몰랐던 인천이야기>가 7월 6일 시작된다. <우리가 몰랐던 인천이야기>는 한국근대문학관과 인천평생교육진흥원의 협업으로 기획되었다. 인천 시민들이 직접 살았던 공간과 생활 문화를 미시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인천의 문화 전통을 현재 시민들과 공유하여 인천의 가치를 재창조하는 것이 이번 강좌의 목표이다. 전국 유일의 공공 종합문학관인 한국근대문학관은 그 동안 <한국 근대문학 명작특강>과 <고전문학 명작 특강>, <세계문학특강> 등의 문학강좌와, <인문학이 있는 저녁>, <인천이 있는 저녁> 등의 인문·교양강좌를 성공적으로 기획·운영해왔다. 이번 강좌는 그동안 인천의 조명 받지 못했던 문화에 대해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이 될 예정이다.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총 5회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강좌는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첫 수업을 시작으로, 인천이 배출한 인물들, 인천의 도시발전과정, 인천의 경제, 인천의 골목길 등 다양한 주제의 인천학 강의들이 진행된다. 인천에 흥미와 애정이 있는 시민들에게는 놓치기 아까운 매우 소중한 기회가 될 전망이다.

· 일    정 : 2017년 7월 6일 ~ 8월 3일 매주 목요일 18:30 ~ 21:30 총 5회
· 장    소 : 생활문화센터 H동 2층 다목적실
· 수강료 : 무료
· 접    수 : 2017년 6월 26일 ~ 7월 5일, 선착순 40명
· 접수 및 문의 : gangjwa01@naver.com, (032)455-7165.

 한국근대문학관

 




베를린의 예술가 부엌

마약 하는 여자
‘쏴아악’ 수돗물이 쏟아지고 ‘탁!탁!탁!’ 마늘이 잘린다. 그릇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고 파리는 ‘윙~윙’거리며 자꾸 몸에 달라붙는다. 싱크대 구석에는 비눗물과 식초를 담은 컵이 놓여있다. 영국 작가, 알렉스가 야심 차게 만든 ‘파리 잡는 컵’을 들여다보니 파리 몇 마리가 둥둥 떠 있다. 흠, 효과는 있지만, 부엌에서 익사한 파리를 보자니 영 찜찜하다. 냉장고를 여니 고약스러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누군가 먹다 만 파스타를 그대로 넣어두었다. 벽지에 바르는 풀이 바짝 말라붙은 것 같다. 썩은 양파, 끈적끈적한 파프리카도 있다. 도대체 누구 거야!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인상을 구기며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냉장고가 더럽건 말건 누군가는 부엌 한쪽에선 막 요리한 노란 커리를 먹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슈퍼에서 사 온 독일 소시지가 크기만 하지 짜다고 불평한다. ZK/U 베를린 레지던시 부엌은 지나치게 활기차다. 눈을 감고 여기서 나는 온갖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엉뚱하게도 내가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기분이다. 머나먼 이곳에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란 느낌 때문인가? 이래저래 애증이 엇갈리는 레지던시 부엌에서 나도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고 미숫가루를 꺼내 든다.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물과 섞어 미숫가루를 타는데, 옆에서 토마토를 자르던 아일랜드 작가, 레베카가 자꾸 힐끔거린다. 그녀에게 물었다. 한번 마셔볼래?

“정말? 고마워! 근데 이게 뭐야? 무슨 마약처럼 보이는데… 하하, 영화에서 많이 봤잖아? 지퍼 백에 담긴 밀수품 가루…”

풉! 그러고 보니 색이 좀 다르긴 해도 오해하기에 십상이다. 나는 담배도 안 피우는데 순식간에 베를린에서 마약 하는 여자가 돼버렸다. 그나저나 미숫가루를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건 미숫가루라는 건데, 콩을 갈아 만들어. 아, 콩뿐만 아니라 콩이랑 비슷한 쌀, 보리 같은…뭐라 그러지? 그러니까 ‘콩 친구들’ 있잖아? 콩이랑 비슷한 곡물들…’

멥쌀이 영어로 떠오르지 않아 대충 ‘콩 친구들’이라 설명하면서 나도 속으론 좀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이 소리를 들은 다른 작가들까지 귀를 쫑긋거리며 우리 대화에 끼어든다. 그들이 진지하게 묻는다. ‘콩 친구들’, 그들이 과연 누구인지, 미숫가루에 꿀이나 설탕 대신 다른 걸 넣으면 어떤지… 아이고,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 후 미숫가루를 한 모금 입에 넣을 때까지 한참 시간이 흘렀다. 아이, 못 살겠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방송 쿠킹쇼
ZK/U 베를린 레지던시엔 작업실이 열세 개 있다. 그런데 부엌은 달랑 하나뿐이다. 처음엔 어떻게 스무 명이 부엌 한 개를 같이 쓰나 의아했는데 뜻밖에 잘도 굴러간다. 매일 누군가와 같이 써야 하는 불편만 빼면 말이다. 부엌 찬장엔 각자의 방 번호가 붙어있다. 냉장고 역시 방 번호에 따라 칸칸이 나눠쓴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곳을 침범했다간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다. 웬일이람. 베를린에만 가면 천장 높은 유러피언 키친에서 우아한 브런치나 다이닝을 즐길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뭐 단체생활이 따로 없다. 게다가 부엌 한가운데 긴 테이블은 ‘요리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다들 나란히 서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여러 요리 프로그램을 동시에 시청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처음 여기서 지내기 시작했을 때는 부엌에 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내가 뭘 먹는지 힐끔거리며 지나가는 다른 작가들 시선이 불편했다. 게다가 내가 뭘 만드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과정이 드러나는 것도 어색했다. 다행히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을 조금씩 즐기게 되었다. 단, 피곤하거나 괴로워 조용히 밥만 먹고 싶은데 누군가 자꾸 말을 거는 날만 빼고

레지던시에서 열리는 이벤트 중 하나는 ‘Thursday Dinner’다. 부엌이 가장 활기찬 날이다. ‘목요일 저녁’이란 이름 그대로 작가들이 매주 돌아가며 음식을 준비하는 날이다. 식사 후에는 ‘아티스트 토크’가 이어진다. 어쩌면 단조롭다고 할 수 있는 레지던시 생활에서 이번 주 ‘목요일 저녁’은 누가 하는지, 무슨 음식을 하는지는 이곳의 빅 이슈다. 

지금 이곳엔 이집트, 캐나다, 호주, 한국, 영국, 스웨덴, 중국, 독일, 아일랜드, 이란, 벨기에, 칠레 등에서 온 작가들이 머문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을 가진 작가들이 요리하다 보니 종종 흥미로운 일이 종종 생긴다. 이집트 작가, 라미스(Lamis)는 호무스(hummus)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직접!

“아주 간단해, 일단 병아리 콩을 갈고 거기에 식초, 레몬, 마늘, 그리고 올리브 오일을 섞어. 그리고 ‘적당히’ 소금과 후추를 뿌려주면 되는 거야, 기호에 따라 ‘적당하게’. 간단하지?”

그녀가 알려준 대로 ‘적당히, 적당하게’ 넣고 뿌리는 게 간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중동 음식 중 하나가 호무스다. 한국에서 종종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였는데 베를린 레지던시에서 이집트 작가에게 호무스 만드는 법을 배울 줄이야! 그녀가 알려준 대로 호무스를 만들어보지만 ‘적당히’ 넣으라는 말이 참 모호한 탓인지 나는 왠지 사 먹는 게 더 나을 것도 같다. 여기 와서 알았다. 미역의 미끌미끌한 촉감을 싫어하는 유럽인들이 많고, 김밥을 만들어주어도 간장을 주르륵 부어 먹을 만큼 짠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미역을 불리건, 된장을 풀건 음식을 할 때마다 밀려오는 질문에 하나둘 대답하다 보면 만들고 먹고 치우는 데 두세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무슨 음식인지, 어느 나라 음식인지, 재료는 어디서 샀느지, 어떻게 만드는지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에서부터 한식의 종류는 어떤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식혜나 수정과 같은 디저트 얘기까지 하다 보면 도무지 끝이 없다. 어쩌면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다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낱낱이 공개되고, 매번 원치 않는 비평을 받는 것만 빼면 말이다. 레지던시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그 시간만큼은 누구나 국가별 대표선수가 되어 생방송 쿠킹쇼의 주인공이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제발 청소 좀 합시다
“PLEASE look back at what you are leaving behind after cooking.”
한참 웃었다. 이게 뭐람, “밥 먹고, 제발 청소 좀 하자!”는 단체 이메일이라니… 지금 내가 고등학교 기숙사에 있나? 전 세계 훌륭한 작가들이 모여 있는 베를린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선 종종 이런 이메일을 받는다. 사실 내가 베를린으로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부터 받았던 잔소리 메일이다. 지난번에 지냈던 독일 다른 레지던시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이런 메일을 받아도 할 말은 없다. 내 눈으로 직접 ‘아티스트 키친’의 실상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부엌의 청결도가 이 모양이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있는 ‘부엌 대청소 날’ 빠지기라도 하면 엄청난 눈총을 받는다. 이해하자고 들면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여러 사람이 부엌 하나를 쓰자니 깨끗한 부엌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국적별, 성격별로 설거지하는 방법, 물건 놓는 장소, 냉장고 사용 방법이 전부 다르다. 부엌을 관찰보다 보니 나라별로 음식에 관한 믿음, 체질에 관한 의견 또한 전부 다르다는 것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아침에 커피를 꼭 마셔야 하는 사람, 글루틴이 들어가지 않은 빵만 먹는 사람, 카페인이 들어간 차는 마시지 않는 사람, 우유 말고 두유만 마시는 사람, 이슬람 금식 기간인 ‘라마단(Ramadan)’을 지키는 사람, 라마단 시간을 피해 새벽에 먹는 사람, 고기를 좋아하지만 양고기는 먹지 않는 사람 등 정말 식성도 문화도 다양하다. 다양한 작업만큼이나 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일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밥을 해 먹는 사람이 줄었다고 하는데 이곳만큼은 정반대다. 많은 작가들이 매일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고 배우는 일에 열정적이다. 때로는 작업실에서 작품 만드는 것보다 부엌에서 밥을 할 때 한결 열정적이다. 어쩌면 음식을 만드는 게 작품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기 때문일까? 작품으론 만족하기 어려운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음식으로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레지던시 부엌에서는 음식만 만드는 건 아니다. 여러 회의, 아티스트 토크 또한 여기서 이루어진다. 긴 식탁은 회의 탁자가 되고, 선반 위 하얀 벽은 프로젝터를 쏘는 스크린으로 변한다. 가끔 다른 작가의 사생활 같은 각가지 가십, 혹은 작업에 관한 고민, 불평도 흘러 나간다.
매달 열리는 레지던시 ‘오픈 하우스’ 때 부엌 전시장으로도 바뀐다. 부엌 한쪽에 영상을 쏘고 식탁 가운데 작품을 전시한다. 미팅, 발표, 요리, 식사, 전시, 파티,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 레지던시 부엌이다. 부엌이자 사교장, 전시장, 사무실, 커뮤니티 공간이다. 각기 다른 국적의 작가들이 각 나라의 고유한 음식을 보여주는 문화 공간이다.

‘음식’ 하면 자연스럽게 잘 차려진 음식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역시 전시를 하면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좋아해 주길 바란다. 누군가와 음식을 나눠 먹는 건 그와 생활을 공유하는 일이고, 작품을 만들고 선보이는 것 또한 내 이야기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도 난 북적북적한 레지던시 부엌에서 밥을 한다. 온갖 논평이 끊이지 않는 생방송 쿠킹쇼에 한국을 대표해 참가한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피곤하고 동시에 즐거운 ‘데일리 이벤트’다. 여기 머무는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만큼 다양한 인생과 작업을 부엌에서 발견한다. 음식을 같이 만들고, 밥을 같이 먹으며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매일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곳, 그곳이 베를린의 예술가 부엌이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은 더러움에 종종 화들짝 놀라지만 한국의 깨끗한 내 집에 돌아가면, 어쩌면 간절히 그리울 2017년 여름이다.

 

글ㆍ사진/ 이승연

나는 사라져도 내 이야기가 이야기로 남는다면? 나는 이런 상상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미래의 이야기를 담은 상상의 작업으로 현재를 신화로서 기록하는 것, 이것이 기이한 듯 보이지만 명랑한 내 작업이다. 서울 및 런던, 독일에서 활동 중이며 현재 영국 작가 알렉산더 어거스투스와 함께 ‘더 바이트백 무브먼트’ 라는 이름의 아티스트 듀오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베를린 ZK/U 레지던시에 입주 중이다. 이승연




할머니의 요강과 철거된 애경사

몇 해 전 부모님께서 도시생활을 접으시고 귀농하셨다. 시골생활을 결정하고 하나 둘 준비해 가기까지 두 분 사이에 별다른 의견차는 없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두 분 사이에 다툼이 시작됐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쓰시던 물건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아버지가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려놓은 할머니의 사기요강과 반닫이 궤짝을 시장에 다녀오시던 어머니가 발견하신 것이다. 평소 시어머니의 손때가 묻어있는 요강과 반닫이 등을 아꼈던 어머니는 이를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셨다. “왜 상의도 없이 함부로 버렸냐”는 어머니의 공격에 아버지는 “그렇지 않아도 좁은 시골집에 쓸모없는 물건을 가져가서 어떻게 보관할 것이냐”며 응수하셨다. 두 분의 다툼은 며칠째 계속되었고, 급기야 소집된 가족회의에서 이를 이삿짐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버려질 뻔한 요강과 반닫이는 결국 이삿짐에 포함되었고, 지금 시골집 거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최근 주차장을 만든다는 이유로 흔적도 없이 철거된 애경사 건물로 인해 지역사회의 여론이 뜨겁다. 인천 중구청은 동화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주차장 부족 현상이 심화되었고, 방치되고 있던 애경사 건물을 철거 한 뒤 이를 주차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고 철거 이유를 밝혔다. 덧붙여 이 건물이 문화재인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문화재를 보호하고 관리해야할 공공기관이 앞장서 이를 파괴해 버린 것이다. 철거 직전, 그리고 철거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몇몇 시민들은 이 건물이 갖는 역사성과 함께 남겨야만 하는 이유를 중구청에 전달했다. 8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 건물을 보존하여 근대의 중심에 있던 인천의 흔적을 후세에 전달하자는 의견이었다. 언론과 방송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연일 보도하며, 애경사 건물 철거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럼에도 중장비의 굉음 속에 80년 넘게 버티고 서있던 벽돌건물은 쓰러져 갔다. 손쓸 새도 없이 무너져 잔해만 남은 애경사 터를 바라보며, 반대했던 시민들 뿐 아니라 학계를 비롯한 지역사회가 분노하고 있다.
애경사 철거가 지역사회의 공분을 샀던 이유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별다른 조정과정과 협의절차 없이 철거가 자행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철거를 지지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그들의 입장은 흉물이 되어버린 건물을 남겨두기보다는 차라리 주차장을 조성해서 주민 편의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철거와 보존, 지역 사회의 상충된 의견이 전혀 조율되지 않은 채, 애경사 건물은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10만 구민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다는 중구청의 이러한 행위는 할머니의 요강을 버릴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가족회의를 소집했던 우리 부모님만도 못한 것 아닌가.

2011년 새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수인선 건설공사가 한창이던 때, 신포동 국일관 건너편에 남아있던 세관 창고 건물의 철거 소식으로 지역 사회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수인선 지하화 공사를 진행하고 있던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일제강점기 인천세관의 부속 건물로 지어진 벽돌 창고를 철거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현장에 나가보니 앞뒤로 있던 창고들은 이미 헐린 뒤였고, 남아있던 창고 1동도 철거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창고는 1911년 지어진 건물로 그 자리에서만 100년의 시간을 버티며, 세관 본 청사가 6.25전쟁으로 불 타 없어지는 광경을, 뒤 이어 새로 지어진 세관 건물마저 헐려 버리는 모습도 꿋꿋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세관 창고의 철거 소식을 접한 몇몇 문화재위원들이 지역 사회에 문제를 제기했고, 지역과 중앙언론에서 이를 보도하면서 보존과 철거를 둘러싼 논쟁이 시작됐다.
관할 행정당국이던 인천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문화재위원회를 소집해 건물의 가치를 재차 확인하고 이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뒤, 철도시설공단에 전달했다. 2014 아시안게임 이전에 개통을 목표로 공사를 추진하고 있던 공단 측에서 난색을 표했고,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듯 했다. 창고를 보존해야 한다는 지역 사회의 여론과 인천시의 지속적인 협의 덕분인지 금방이라도 철거를 진행할 것 같았던 철도시설공단의 입장에 변화가 있었다.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미 결정된 신포역 출구를 변경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대신 제3의 부지로 이전 복원이 가능하다면 그 비용을 사업예산에 포함시키겠다고 제안해 온 것이다. 그 해 5월 공단 측의 절충안을 인천시와 문화재위원회에서 받아들여 철거 직전에 있던 세관 창고는 40m 남쪽으로 이전 복원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세관 창고가 옮겨갈 자리에는 1920년을 전후해서 지어진 세관 선거계와 화물계 사무실이 남아있어 향후 활용 측면에서 볼 때 적절한 위치였다.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던 건물 설계도를 분석해서 효과적인 이전 방법을 찾는 등 1년 넘는 준비과정을 거쳐 2012년 9월 지금의 자리에 복원을 마무리했다. 동쪽 벽은 통째로 들어 옮겼고, 나머지 벽체에서 사용가능한 벽돌을 골라내어 복원할 건물에 활용했으며, 새로 덮은 양철지붕을 걷어내고 애초의 붉은 기와를 올렸다. 그리고 1년 뒤, 이전 복원된 창고와 기존의 선거계, 화물계 사무실 등 인천 세관의 부속건물 세 동이 등록문화재 제569호로 지정됐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랬기에 자칫 사라질 뻔 했던 창고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정부의 관리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이미 철거가 결정된 건물이 보존되고, 다시 문화재로 등록되기까지 몇몇 시 문화재위원을 비롯한 지역사회와 행정당국인 인천시, 그리고 공사를 주관했던 철도시설공단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과정과 절차가 있었다. 이러한 과정과 절차는 향후 비지정문화재의 보존에 있어 좋은 선례로 남을 것이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불과 1년 뒤, 지어진지 70년이 넘는 조일양조주식회사 소주공장의 철거를 시작으로 지금 애경사 철거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많은 근대건축물이 사라져 갔다. 세관 창고의 보존에 머리를 맞대고 협의했던 과정과 절차는 이미 오래 전에 무시되고 있었다. 보존 가치가 높은 근대건축물이 하나 둘 무너져 가는 동안 시민사회나 전문가 집단, 행정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각자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이번 애경사 철거를 계기로 6년 전 있었던 좋은 선례가 이어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또 다시 파괴된 근대건축물의 잔해 앞에서 한숨만 쉴 수만은 없지 않은가. 며칠 전 인천시 행정부시장 주재로 시 관계자들과 시민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근대건축물 보존에 대한 간담회를 가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2011년 세관 창고의 복원을 위해 머리를 맞대었던 노력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려졌던 할머니의 요강은 시골집 거실에서 여전히 건재하시다. 정리 정돈을 좋아하는 집사람과 모으고 쌓아두는 것을 즐겨하는 나의 성향으로 볼 때, 할머니의 요강을 둘러싼 부모님의 다툼이 우리 부부에게 그대로 이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먼 훗날 소집될 가족회의에서 논리 정연한 말발로 언제나 나를 제압해 왔던 집사람을 이기기 위해서, 모아놓은 잡동사니를 남겨야 하는 이유를 미리미리 준비해 둬야겠다.

 

글, 사진제공/ 배 성 수 인천시립박물관 컴팩스마트시티부장




인천의 공연장을 찾아서

검단복지회관 상주단체 루체뮤직소사이어티 안희석 대표 인터뷰
“예술단체의 자생을 고민하고 있어요”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공연콘텐츠 강화,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교류 활성화, 지역 우수 공연프로그램 향유 기회 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 루체뮤직소사이어티(이하 루체)는 검단복지회관의 상주단체로서 자생적인 클래식 예술문화와 생활문화의 구축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루체가 이야기하는 악보 출판사 사장 호프마이스터라는 인물은 의미심장하다. 그가 없었다면 모차르트의 음악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루체가 추구하는 아티스트의 직장, 시민들의 생활문화가 클래식 음악의 진일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적시한다. 루체를 지휘하고 있는 안희석 대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1. 올해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에서 상주단체로 선정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다. 루체에 대해 간단한 소개 먼저 부탁드린다.
루체는 우리가 우리의 직장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어요. 우리나라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취업할 수 있는 자리가 상당히 빈약해요. 클래식 같은 경우엔 안정적인 직장이라 할 수 있는 게 교수직을 제외하면 국공립 오케스트라 정도인데, 그마저도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죠. 이런 상황을 타계해보려는 게 저희의 첫 번째 목표에요. 다음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어요. 음악성이라는 게 객관적인 면도 분명 있지만,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면 역시 존재해요. 루체는 틀에 박혀있는 음악이 아닌 좀 더 다양한 음악,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에요.

2. 청년실업이나 취업난의 심각성이야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음악인들의 취업이라니 조금 생소하다. 클래식계의 상황이 그만큼 안 좋은 상태인가.
지금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아요. 상상 이상이에요.  공연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단체는 거의 드물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연주자들이 학생들 레슨이 아니라면 먹고 살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민낯을 드러낸 거예요. 일본과 비교해볼까요? 일본은 시립예술단이라는 게 없어요. 각각의 도시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예술단을 지원해줍니다. 그 예술단이 시립예술단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토요타 같은 경우엔 TYOC(토요타 청소년 오케스트라 캠프)를 운영하는데, 몇 년 전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사태가 벌어졌던 당시에도 토요타는 그 오케스트라 캠프의 예산을 오히려 늘렸어요. 이런 구조적 차이가 오케스트라의 질적인 차이를 만드는 거예요. 물론 한국에서도 세계 콩쿠르에서 1등 하는 연주자들이 나오긴 했지만, 구조적으로는 내실과 내공이 제대로 쌓지 못했기 때문에 연주자들이 다들 각개전투로 살아남기 위해 고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에요.

3. 같은 맥락에서 루체가 홈페이지를 통해 이용자들에게 음악 정보, 음반, 뮤직 아이템 등을 제공하는 한편, 아티스트들이 음반을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채널로 활동하는 것도 이러한 어려움 때문인 것 같다.
정규직 직원은 휴일에 출근을 안 해도 월급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연주자는 연주를 안 하면 수입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연주자가 연주를 안 할 때도 수입이 발생할 수 있는 걸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음반제작이란 걸 생각해냈죠. 이 음반제작은 저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징검다리에요. 다변화된 수입구조를 갖는 것과 연주자들의 자기 PR을 돕는 것이라는 두 가지 목적이 있죠. 그래서 뮤직 엔 로직(사이트 바로가기▶)이란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작곡가들의 경우엔 악보를 출판할 수 있는 컨테무스(사이트 바로가기▶)라는 사이트를 따로 구축했고요. 여기에 루체(사이트 바로가기▶)까지 해서, 음악 플랫폼들을 구축하고 운영하고 있어요.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유재하와 라흐마니노프’ 음반이에요.

4. <마님이 된 하녀>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지 소개 부탁드린다.
7월 15일에 검단복지회관에서 공연할 거예요. <마남이 된 하녀>는 창작 배경이 참 재밌는 공연이에요. 독일에서 지휘를 공부하던 시절 친구와 함께 프로젝트를 고민하던 중 오페라부파(18세기에 발생한 희극적 오페라)의 시초가 되는 ‘마님이 된 하녀’를 발견했어요. 이게 우리말로 하면 코믹 오페라인데, 당시 대규모 편성 오페라의 인터미션(쉬는 시간) 사이에 연주되었던 작품이에요. 이걸 저희가 아리아는 그대로 살리고 연극처럼 대사를 넣어서 공연했는데 대성공이었어요. 그때의 기억이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고 생각났던 거죠. 그렇게 공연을 만들게 되었어요. 독특한 게 이 작품은 매번 공연할 때마다 대사가 조금씩 바뀌어요. 그 시기에 맞는 웃음 코드를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거죠. 저희가 2015년도에 쓰던 홍보 문구가 “루체 공연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에요. 한 번 보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재밌는 작품이에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5. <마님이 된 하녀>도 그렇지만, <클래식으로 듣는 7080>, <뮤직스캔들>, <고고씽 콘서트> 시리즈와 같은 콘텐츠들도 매우 참신해 보인다. 루체는 현대예술의 탈장르, 장르 융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러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탈 장르와 장르융합들이 문턱을 낮추는 장치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클래식을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좀 더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저희 콘텐츠들은 그런 걸 고려해 만들어졌어요. 예컨대 <클래식으로 듣는 7080> 시리즈는 70~80년대 팝송 및 가요들을 가지고 무대에 올리는 거예요. 시작은 전설적인 가수 유재하의 노래로 했는데, 여기엔 재밌는 배경이 있어요. 대학 시절,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를 듣는데 갑자기 뒷부분에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니가 들리는 거예요. 이상하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여러 번 돌려 듣고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어요. 단순히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존경심의 표현인가로 옥신각신하다 결국 존경심의 표현이라는 쪽으로 결론을 냈죠. 유재하는 작곡가를 졸업했고, 굉장히 천재적인 역량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우연은 아니라고 봤던 거예요. 그때는 그렇게 끝내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생각이 다시 났어요. 그래서 ‘유재하와 라흐마니노프’ 공연을 준비했고 앨범 역시도 제작하게 되었죠.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야 할 게 있는데, 여러 가지 사안들 때문에 가려져서 잘 안 보이는 게 있어요. 저희는 매년 한국 초연작품들을 올리고 있어요. 예를 들면 2012년 공식적인 창단연주회에서는 호프마이스터라는 작곡가의 실내악을 초연했죠. 호프마이스터가 재밌는 게 뭐냐면, 이 사람이 없었으면 모차르트가 없었을 거란 점이에요. 호프마이스터는 유명한 작곡가이기도 했지만, 최초의 악보 출판사 사장이기도 했어요. 그는 당시 모차르트의 악보를 출판하고 그 출판료를 선지급해주면서 가난했던 모차르트가 작곡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줬어요. 호프마이스터 이외에도 저희는 벤자민 브리튼, 글룩, 제랄드 핀치, 글라주노프와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들도 초연해서 클래식에 이런 작품들도 있다는 걸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이런 공연들을 통해 우리들의 역량도 계속 발전시키면서 한국 클래식 음악사에 의미가 되는 일들을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저희는 정말 엄청난 초연들을 하고 있는데, 셀프 자랑을 잘 못 하는 것 같아요.(웃음)

6. 고급문화라는 인식 때문인지, 시민들이 클래식과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생활문화와 클래식 간의 간격 좁히기와 관련해 루체 만의 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생활예술 동아리를 언급할 때 마다 꼭 등장하는 두 사례가 있어요. 하나는 관 주도형 사례로 성남시의 ‘사랑방 동아리’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 주도형 사례로 인천시의 ‘문화바람’이예요. 그리고 전문예술에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생활예술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게 바로 문화바람에서에요. 즉 생활문화라는 개념이 시작된 게 바로 인천이라는 거죠. 대단하죠?(웃음) 제 경우에는 올해 생활문화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아요. 제가 인천 청소년 오케스트라 출신인데, 당시 거시서 활동했던 1~2기 멤버들이 지금 인천의 민간 클래식 영역을 거의 주도 하고 있어요. 저는 이러한 현상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예술을 전문 직업으로 삼기 이전에 했던 경험들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든 거죠. 그래서 저 역시도 귀국 이후 가온누리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습니다. 이 밖에도 미추홀 오케스트라와 엑스포 오케스트라도 운영을 하고 있어요. 이러한 생활예술에 대한 제 철학과 가치관은 아주 명확해요. 보통 예술인들이 시민예술가를 키우면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객이 될 거라 생각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중요한 건 이 시민예술가들이 자신들의 공연에 지인들을 초청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클래식을 관람하게 된 사람들이 시민예술가들의 연주를 보고 클래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해요. 그런 경험을 한번 해보면 다음 연주회, 더 나아가 루체의 음악회도 보러 오게 되는 거죠.

7.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통해 성장해, 그것을 다시 조직하고 발전시키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이밖에도 미추홀 오케스트라나 엑스포 오케스트라 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우선, 청소년 오케스트라 사업은 정부의 사업을 통해 시작되었어요. 정부 주도의 정책은 인큐베이팅을 해준다는 점에서는 좋은 정책이었지만,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였어요. 예컨대 초등학교에서 실시되는 오케스트라 사업은 그 친구들이 중학교로 진학하고 나면 소용이 없어지죠. 그래서 이런 좋은 정책을 이어받아서 지속성을 유지시키자는 의미로 저희는 가온누리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활동하고 있어요. 다음으로, 미추홀시민오케스트라의 경우 처음에는 저희 루체가 공연 기획부터 제작, 홍보까지 거의 모든 걸 다해줬어요. 그런데 그러면서 저희의 업무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시민예술가들에게 교육하고 넘겼어요. 음악적인 것 이외에는 지휘자의 영향력을 계속 줄여야 한다는 게 제 철학이거든요. 지휘자가 갑자기 없어져도 고아가되지 않도록 자립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거죠.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는 게 생활문화의 지속성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최근에 시작한 엑스포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이건 마을형 오케스트라에요. 송도에 있는 엑스포 아파트 주민들이 마을 공동체 사업으로 하고 있는 거죠. 저는 이 엑스포 오케스트라가 마을 공동체 사업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자부해요. 이렇게 세 단체를 연합해서 이번에 시민예술제에 나가 본선에 진출했고, 올 9월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으로 공연하러 가게 되었어요.

8. 루체가 상주하고 있는 공연장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검단복지회관과 함께 하게 되셨는데,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검단복지회관만의 특색이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애증의 관계랄까요?(웃음) 아주 재밌는 공연장이에요. 검단복지회관의 공연장 공간은 비교적 작은 편이에요. 그래서 관객은 연주자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에 반응하는 관객의 숨결을 느낄 수 있죠. 물론 가끔은 부평아트센터나 서구문화회관처럼 큰 공연장에서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검단복지회관을 찾아주시는 시민 분들의 정이 그걸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 것 같아요. 한번은 공연이 끝난 후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손을 잡아주신 적이 있어요. 고맙다고, 자주 공연해달라고 말이죠. 그 분위기나 정감 때문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다른 곳에서 러브콜이 오기도 했지만, 조금 더 넓은 공연장에 있고 싶다고, 조금 더 좋은 시설을 이용하고 싶다고 갑자기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건 우리의 철학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 공연장에서 저희가 해야 할 몫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 올해도 남았어요. 저희는 의리가 있는 상주단체에요.(웃음) 어쨌든 로비 음악회와 같은 경우에는 대한 주민들의 호응이 대단해요. 저희가 한번은 6시간 정도를 공연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20명가량의 분들이 4시간 이상 공연을 보고 가셨어요. 로비 음악회는 10월, 11월, 12월에 다시 열릴 예정이에요.

9. 앞으로의 활동계획과 함께, 루체의 공연을 관람하러 올 시민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저희 공연을 안 보신 분은 있어도 한 번만 보신 분은 없어요. 많은 관객 분들께서 저희 공연을 보러, 심지어는 영종도에서까지 오세요. 그만큼 재밌다는 거죠. 많은 관람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저희의 활동에 대해 추가로 말씀을 드릴게 있어요. 최근 저희는 민간 공연장과의 협력을 통해 상주사업에서 만들었던 콘텐츠를 그곳에서 공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또, 보다 독특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영화음악과 드라마음악을 가지고 공연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렇게 예술단체가 자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저희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용기 있게 실천해나가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려요.

 

인터뷰, 글/ 박치영 문화통신3.0 시민기자




원데이홈브루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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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일/ 2017년 6월 24일 (토)
장소/ 인천생활문화센터
사진/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민경찬




허락된 풍경, 선택하는 삶

이른 더위가 시작된 일요일 오후, 가족들과 함께 이호진 사진전 《허락된 풍경》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출발지인 송도에서 전시 장소인 배다리까지는 차로 불과 20분 남짓입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주변 풍경이 급격히 달라졌지요. 이렇게 신도시와 원도심을 오갈 때마다 되풀이 되는 경험이 있습니다. 물리적 공간의 이동이라는 사건이 시간의 지층을 통과하는 여행처럼 전환되는 경험 말입니다.

우연한 풍경은 없다. 
경적과 인적이 드문 목적지에 도착해 전시장 입구로 들어섰습니다. 이호진의 작업의 첫인상은 축적된 시간의 위엄을 전하는 전시장과 결이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주택가 옥상 빨래처럼, 대도시 건물 현수막처럼 걸린 ‘흔하게 널린 풍경’ 사진들이 연출하는 흔치 않은 풍경이 전시장 안에 펼쳐지고 있더군요.

‘스페이스 빔’과 ‘사진공간 배다리’ 두 군데서 일주일 남짓 선보이는 전시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동안 지속된 작업의 결과라지요. 사진과 설치 영상 속 풍경은 이호진이 구체적으로 경험한 곳들입니다. 이호진 작업의 일관된 표정인 침착함과 진중함이 같은 장소를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하고, 배로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기도 한 여정의 노고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이호진이 답사와 탐문이 집중된 곳은 인천입니다. 그렇다고 이호진 작업의 문제의식이 인천이라는 지역에 한정된 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나라 곳곳은 전쟁과 복구, 산업화와 도시화의 상황을 공유했으니까요. 특정 지역을 넘어 범용적 적용의 틀을 갖춘 이호진 작업 앞에는 ‘도시인문’이라는 꾸밈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풍경을 스펙터클한 경관으로 간주하고, 시각적 환영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의지겠지요. 

‘우연한 풍경은 없다.’ 단언하는 이호진은 자연과 도시를 아우르는 풍경을 철저히 사회적, 역사적 소산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풍경을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생성되는 가변적 산물로 전제한 때문일까요. 이호진 작업에서 규범화되거나 변질된 풍경을 향한 시각 체험을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어렵지 않게 감지되었습니다.  

이호진이 예술의 닻을 조화와 질서의 지점이 아니라 중첩과 대립의 경계에 내리고 있는 이유도 이런 예술 의지와 무관치 않겠지요. 폐허와 랜드 마크, 도시와 해변, 섬과 산 등, 다양한 장소를 경유하는 전시장 속 풍경들은 치유와 위로를 상상케 하는 유토피아적 공간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자유와 해방이 한껏 보장된 낭만적 무대와도 달랐지요. 인간 또한 풍경을 구경하고, 대상화할 특권적 시각 주체는 아니었습니다.  

 

모순의 풍경, 사유의 매개 
이호진 사진 속 초록 잎 달린 나무는 두 개의 콘크리트 벽 틈새에서 자취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아파트는 울긋불긋 치장한 국적 불명의 관광지와 이웃해 있었지요. 또한 주택가 지붕 위 파란 하늘은 새로 지은 주상 복합 건물에 자리를 내 주었습니다. 완공된 건축물 앞은 방치된 공사 폐기물 차지였어요. 한편 빽빽한 빌딩 숲이 둥근 해와 잔잔한 물 사이를 채우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 매끈한 장소성에 부합하는 명칭을 흔쾌히 붙이기 어려웠습니다. 이호진이 의도적으로 하나의 장소에 단일한 정체성을 부여 과정에서 추방되었던 불필요와 무의미를 힘껏 소환해 내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호진 사진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말하고자 풍경에서 인간의 흑적을 축출할 생각은 없어 보였습니다. 편안한 거주를 이야기하려고 불편한 소비를 삭제할 의도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태도는 《허락된 풍경》展 이전 작업에서부터 지속되어 왔습니다. 과거 이호진은 재개발 예정지인 이주 현장에서 주인 잃은 오브제들을 수집해 폐허의 공간에 여전히 살아있는 기억의 확증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예전 갯벌이었던 매립지와 이제는 산이 된 섬의 물리적 공간의 변형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기도 했지요. 뿐만 아니라 풍경을 현실과 별개의 공간으로 상상하고 획일적으로 소비하는 인간의 태도를 일련의 작업에서 비판적으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단절과 불연속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이호진 작업의 동선은 연속적이고, 유기적인 전개 과정을 거쳐 온 것이어요.

장소는 지도제작자 책상 위에 놓인 종이와 다르다고 했던가요. 장소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흔적을 깨끗이 지운 현재의 풍경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풍경에는 지나온 시간의 기억과 상흔이 내재해 있지요. 동시대의 역사와 사회, 경제와 정치의 다층적 편린들도 혼재해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호진은 작업은 중심과 주변, 번성과 쇠락, 집중과 분산, 돌봄과 방치의 풍경을 위계적으로 의미화 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있었습니다. 개발과 보존, 거주와 이주, 노동과 휴식, 인공과 자연 풍경을 무리하게 통합하려는 시도도 없었지요. 그저 이호진은 장소의 얼룩덜룩한 단면과 들쑥날쑥한 층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적절한 지점에서 풍경의 실체를 포착해 제시할 뿐이었습니다.

의도적 편집을 거친 허구 같은 풍경에서 우리들의 비현실적인 현실과 마주합니다. 의미의 맥락을 고려치 않은 키치 같은 풍경에서 우리들 삶의 현장의 민낯과 대면했습니다. 순간, 이호진의 사진 속 풍경은 우리네 삶의 상투성을 부정하고, 삶터의 부조리를 되돌아보는 사유의 매개로 전환되었습니다. 상이한 풍경들이 연출하는 이상한 패치워크가 새로운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전시장에 오는 동안처럼,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서 생경함을 제공하는 끊김과 어긋남의 풍경은 일상 어디에서나 흔하게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분주함을 핑계로 기묘하게 짜깁기된 현실 풍경은 지금 당장 성찰해야 할 현안이라기보다는 언젠가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 정도로 남겨지기 일쑤였지요. 그런데 참 역설적입니다. 문제적 현실을 본격적으로 사유할 계기를 일상이 아닌 예술이라는 비현실적 프레임, 이호진 사진들 앞에서 허락받았으니 말입니다.

 

삶과 공명하는 풍경 
전시를 보고 나와 전시장 옆 카페에 들렀습니다. 아담한 실내에는 이곳이 촬영지였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듯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 포스터가 붙어 있더군요. 최신식 머신에서 내린 커피와 손 글씨로 쓴 메뉴, 옛날 팥빙수를 기다리는 동안 옆 테이블에서 동네 주민으로 생각되는 손님들이 마을 텃밭과 부동산 시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허락된 풍경》展의 그림자는 전시를 본 후 잠시 머문 카페와 주문 메뉴 그리고 옆 테이블의 화제에만 드리운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빠른 재생 버튼을 누린 듯 속도가 붙던 풍경이 정지 신호와 함께 멈춰 섰습니다. 그런데 신호 대기 중 건널목 맞은편 고층 빌딩에서 ‘22세기 서울’이라 쓰인 병원 간판을 발견했지요. 21세기 인천에 걸린 간판이 자신의 삶터에서 진짜 삶을 살 기회를 방기한 채 살아가는 빨간 불 켜진 우리의 현재인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에게 삶의 자리, 풍경을 허락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사진전과 가상보다 더 가상적인 현실 풍경 사이에서 자문해 보았습니다. ‘폭력적인 외부 상황이나 영향력 있는 타자가 아닌 날마다 실수하고, 날마다 만회를 꿈꾸는 우리 자신이겠지.’ 조심스레 자답도 해보았습니다. 수많은 풍경들이 무한 리필 되는 도심 한복판, 삶의 한 순간이 이호진 사진 같은 풍경과 공명했습니다. 참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글 / 공주형(미술비평, 한신대 교수)
사진 / 이호진(작가)




걱정 말아요, 마을활동가

마을활동가 워크숍 ‘마을활동가, 지역자산화를 만나다’

지난 6월 21일부터 22일까지 1박 2일간 강화도 일대에서 2017년 마을활동가 워크숍이 열렸다. ‘마을활동가, 지역자산화를 만나다’를 주제로 한 이번 워크숍에는 인천 전 지역에서 활동하는 마을활동가 30여 명이 참여했다.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가 해마다 진행하는 마을활동가 워크숍은 마을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마을공동체의 방향을 모색하는 소통의 장이다. 이번 워크숍은 지역자산화에 대한 학습 뿐 아니라 인천 각지에서 벌어지는 마을공동체 활동을 공유하며, 각자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으로 이루어졌다.

워크숍의 첫 번째 순서는 사례지 방문으로, 강화에서 4년째 활동 중인 ‘청풍상회’의 청년 활동가 4명을 만나고, 그들의 공간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청풍상회’ 청년들이 운영하는 맥주집 ‘스트롱파이어’와 게스트하우스 ‘아삭아삭순무민박’을 탐방하고, ‘청년들이 강화에서 사는 법’을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처음 강화도에 들어올 때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줄 알았고, 풍물시장도 전통시장의 모습을 하고 있을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버스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고, 풍물시장도 일반적인 건물 안에 자리해있었죠.”

강연을 진행한 ‘청풍상회’의 신희승 활동가는 강화에 처음 들어와 겪은 우여곡절과 마을에서 활동하며 자립하기 위해 택했던 전략들을 소개했다. 예술, 문화기획 등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던 청년 네 명이 하고 싶은 활동을 위해 경제적으로 자립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야심차게 강화로 들어왔지만, 낯선 지역에서 적응하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풍물시장 안에 피자가게 ‘화덕식당’을 열기로 결심하고 먼저 시장 사람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청년들을 낯선 눈초리로 경계하던 상인들은 금세 청년들의 든든한 이웃이 되었다. ‘화덕식당’을 통해 자리를 잡은 청년들은 이듬해 게스트하우스 ‘아삭아삭 순무민박’을 열어 활동 범위를 확장했다.

“강화에는 펜션이 많아요. 하지만 펜션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타지에서 장을 봐오고, 펜션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요. 강화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강화 지역 주민들에게 강화도의 매력을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갯벌, 교동, 풍물시장 등의 유명한 관광지를 추천하지만, ‘청풍상회’의 청년들이 강화에서 생활하며 발견한 매력은 다른 것이었다. 시간의 흐름과 사계절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풍경과 시장에서 만나는 정겨운 사람들.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손님들에게 인터넷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는, 숨은 맛집과 관광지 등 그들이 찾아낸 마을의 ‘꿀팁’을 소개한다.

그는 ‘청풍상회’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마을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덧붙였다. “일반 단체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지만, 공동체는 울타리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공감은 하지만 원하는 것이 서로 다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조금 더 느슨한 묶음이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성향과 의견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라며 마을공동체를 만들며 활동가들이 겪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조언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사례지 탐방이 끝나고 토지+자유연구소 시민자산화지원센터 전은호 센터장의 이론 강의가 이어졌다. 강의는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자산화’를 주제로,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지역자산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외와 국내의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졌다. 전은호 센터장은 주민들과 지역의 재단이 함께 큰 규모의 쇼핑몰을 만들어 단계적으로 주민들의 주식투자를 여는 미국의 ‘마켓크릭플라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주민이 마을의 주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마을활동가 워크숍의 백미는 단연 ‘걱정 말아요, 마을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열린 대화 프로그램이었다. JTBC의 토크 쇼 ‘걱정 말아요, 그대’의 형식을 차용하여 ‘우리 마을의 자랑’과 ‘우리 마을이 직면한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화의 ‘도시락 거버넌스’에서 활동하는 이현우 활동가는 마을의 자랑으로 ‘왕’이라는 키워드를 적었다. 강화가 관광지로서 점점 쇠퇴하는 이유로 지역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제시하며, 강화 지역의 역사를 스토리텔링으로 발전시켜 관광으로 특화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왕이 살았던 강화읍, 그리고 사대문의 이야기와 역사를 주제로 지역 주민들이 축제를 열고, 주민들이 스스로 즐기면 저절로 관광객이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동에서 온 한 활동가는 워크숍에 참여한 다른 활동가들에게 마을의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들을 선물하기도 했다. 강화의 특산물인 ‘소창’ 직물 위에 마을의 예술가들이 직접 캘리그라피를 해서 만든 손수건으로, 지역의 특산물이 지역의 예술가들을 만나 관광 상품으로 탄생한 예를 소개했다.

이처럼 마을 활동가들의 열린 대화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예술’, ‘역사’ 등이었다. 이번 워크숍은 문화예술이 마을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워크숍을 통해 서로의 활동과 고민을 나눈 마을활동가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더 멋진 마을공동체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글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 제공




시각예술, 인천의 청소년을 찾아가다. <그림소개展>

지난 6월 21일, 2017 인천 미술활성화 기획사업의 일환으로 인천 미술은행 소장작품 순회전 <그림소개展>이 열렸던 만수 고등학교에 다녀왔다. 인천 미술 활성화 기획사업은 인천 지역의 시각예술 분야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된 사업이다.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여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소장 작품을 인천 시내의 여러 장소에 전시하며 시민들이 미술작품을 생활 속에서 더욱 가깝게 감상하고자 하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12년도에 이루어졌던 인천 미술 활성화 사업은 부평역사 지하철에 가벽을 설치해 인천시민들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인 지하철에서 시민들이 미술을 쉽게 관할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많은 시민들이 지하철을 타며 현대미술을 생활 속에서 가깝게 즐길 수 있었다. 

이번 2017 인천 미술 활성화 기획사업은 올해는 학교 전시로 진행되었다. 전시는 순회전으로 3월 27일부터 6월 21일까지 교내 전시 갤러리를 보유한 학교인 미추홀 외국어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동인천 고등학교, 신현 고등학교, 만수 고등학교 까지 인천 내 4개의 학교를 순회하며 전시가 진행되었다. 인천 미술은행에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구입한 165점의 작품 중 ‘자연’과 ‘현대성’을 주제로 하는 16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이번 전시는 인천의 청소년들이 학교라는 친숙한 공간에서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현대미술을 접하는 기회의 장으로 마련되었다.

전시를 관람할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미술시간에 수업의 일환으로 미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작품을 관람하는 법과 전시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였다. 또한 이번 전시를 관람하고 감상문 쓰기 활동과 전시장 옆에 마련된 방명록을 쓰는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이 현대미술을 더 쉽게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자연과 현대성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 전시작품들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작품들로 이루어졌으며 자연과 현대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학교 전시를 현대미술작품들로 전시한 이유에 대해 인천문화재단 예술 지원팀 윤지원 담당자는 학생들이 현대미술의 재미있고 독창적인 작품들을 보며 미술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러한 취지를 가지고 전시된 현대미술작품들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작품 <지하철 5호선>의 이흥덕작가는 수많은 무관심들에 에워싸이곤 하는 나는 거대한 익명성의 한 텍스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작품은 풍자 리얼리즘으로 현실을 풍자하며 지하철의 서민들의 군중화되고 불안한 삶의 현장을 표현한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 김정미 작가의 <peace-사용할 수 없는 총>의 총은 총구가 갈라진 권총에 아름다운 무늬가 가득한 모습이다. 전시물 배경의 숲과 함께 쏠 수없는 총을 통해 전쟁에 대한 반대, 폭력에 대한 반대의 메시지를 담은 일러스트 형식의 작품이다. 세 번째 작품 임선희 작가의 <가방속에>는 다른 사람의 가방 안에 있는 소지품을 사진으로 찍고 그것을 출력하여 다시 그 위에 채색을 한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작가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향이 드러나는데 작가는 상대방에게 궁금한 무엇을 직접 물어보는 방식보다는 대신 가방 속의 소지품을 볼 수 있냐는 요청을 한다. 가방을 보여달라는 그녀의 방식은 자신과 사회와의 소통 그리고 상대방과의 교차점으로서 존재하는 작가의 소통 방식을 나타낸다. 마지막 작품 <김혜선 꿈-2008>은 작가가 꿈에 본 풍경을 그린 것이다. 작가의 마음속 풍경의 무한함이 순서 없이 드러난 것으로 나비, 물고기, 나무, 하트로 형상화된 작품이다.

이번 2017 인천 미술 활성화 기획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인천 미술은행 소장 작품 순회전 <그림소개展>은 입시에 지친 학생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제공하고 학교, 학원 수업으로 인해 시간을 내야지만 관람할 수 있었던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또한 청소년들의 생활 가까운 곳인 학교라는 장소에 현대미술을 전시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였으며 청소년들이 미술품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의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다. 인천미술 활성화 기획사업은 하반기에 새로운 작품들로 인천시민들의 생활 가까운 곳에서 공공전시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 하는 기회를 넓힐 예정이다.

 

글, 사진/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최승주




모든 존재는 불쌍하다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지난 6월 16일과 17일,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는 ‘스테이지 149’의 일환으로 극단 골목길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박근형 작, 연출)를 상연했다. ‘스테이지 149’는 인천문화예술회관의 도로명 주소에서 착안하여 만든 기획시리즈 명으로, 공연예술의 현주소를 관객에게 소개하겠다는 목표로 2014년 시작되었다. 전국 투어를 다니는 공연의 경우 대중성이나 흥행여부를 고려하기 때문에 이전까지 인천에서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의 ‘스테이지 149’는 작품성과 예술성을 우선시하여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멀리 가지 않고도 만날 수 있도록 인천 시민들에게 소개한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는 2016년 대한민국의 탈영병 이야기, 2004년 이라크 팔루자에서 피랍된 청년의 이야기, 2010년 초계함의 침몰로 죽은 해군의 이야기, 일제강점기 ‘자살특공대’ 가미카제의 일원이 된 조선 청년의 이야기 등 네 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겨있다. 네 가지 이야기 속 인물들은 시대도, 장소도 다르지만 모두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자신의 죽음과 희생을 자랑스럽게 여기겠다고 말하는 가미카제의 청년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군대에서 탈영한 청년 사이에 70여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국가가 개인에 우선한다.’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개인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군대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다루었다는 점만 두고 보면 네 개의 이야기는 모두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 개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미카제에 지원한 조선인 청년은 엄마와 동생이 일본인들에게 더 이상 무시당하며 살지 않기를 바라며, 민간무장단체에 피랍된 청년은 사랑하는 여자친구와의 결혼 자금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라크를 찾은 것이었다. 침몰하는 초계함에서 군인들은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부대를 이탈한 탈영병은 홀로 힘겹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찾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내하기로 마음먹었던 개인들은 의도치 않게 국가를 위해서도 똑같이 희생할 것을 강요당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개인은 더 이상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 없고, 그들의 행복 역시 지킬 수 없다. 국가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가. 개인의 희생을 통해 국가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연극의 말미에서, 탈영병은 제대를 코앞에 남겨두고 탈영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군대 밖으로 나가봤자 잘 살 자신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집도, 학교도, 군대도, 어차피 세상이 전쟁터고, 우리 모두가 군인’이라고 말하며 ‘사람이 어떻게 그냥 참고 살아요, 우리가 그래도 사람인데.’ 하고 목 놓아 외치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받았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국가에게 희생당한 군인들의 모습은 팀의 동료들의 눈치를 보느라, 친구들, 가족들의 눈치를 보느라 각자의 행복을 포기해야만 했던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이다. 이렇게 군인의 죽음이라는 특수한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번 공연이 특히 더 많이 회자되었던 이유로 지난 해 예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블랙리스트’ 사건을 꼽을 수 있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연출한 박근형 연출가가 지원금 포기를 종용 당했다고 폭로하며 정부의 문화예술 검열 논란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공개된 작품인 만큼 화제성도 높았지만, 오래 기다린 만큼 완성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문화예술 지원제도가 단순히 예술가들의 생존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선택하고, 좋은 작품을 관람할 권리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였다.

예술가들이 국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희생을 요구당하지 않고, 온전히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그로 인해 많은 관객들이 좋은 작품을 선택하여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글, 사진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