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방네 아지트 산책단 투어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시 : 9월16일
장소 : 북극서점, 손오공
사진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민경찬




지역을 건강하게 하는 힘, 나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믿습니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

인천문화재단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인천지부와 함께 인천에서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을 만나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기부자클럽으로 지역사회에 기부와 나눔의 뜻을 몸소 행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여섯 번째 시간으로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백여덟 번째 아너,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님을 만나봅니다.

올해 초 계양구에 자리 잡은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은, 아픈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을 넘어 복합문화공간으로써 지역 사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병원이 단순한 진료기관을 너머 지역민들을 위한 공유 공간으로 거듭난 배경에는, 질병에 대한 예방에서부터 치료, 재활에 대해 고민하는 박진식 이사장님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의료인이자 경영인,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공유와 나눔의 힘을 실천하시는 박진식 이사장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Q. 안녕하세요.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의 박진식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의사로 진료를 시작한 지 20여년이 넘었네요. 어려서부터 봐 온 세종병원에서 의사로 임하게 된 것은 2008년부터이고, 2014년부터 이사장으로 병원을 이끌고 있습니다. 부천에 있던 세종병원이 올해 계양구에 분원이자 종합병원, 나아가 지역민을 위한 건강을 책임지는 기관으로 새롭게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이전부터 병원 차원에서 많은 기부와 나눔 활동을 해오면서 개인적으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인천 아너 소사이어티를 알게 되어 지역을 위한 좋은 나눔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Q. 인천을 위한 나눔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맞게 되셨네요. 가장 최근에 가입한 인천 아너 소사이어티의 회원이세요. 의료인으로서 기부와 나눔에 대한 철학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A. 나눔이라는 게 제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아마 환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육체적 고통이 가장 힘든데,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안 되면 치료를 못 받던 시절이 있었지요. 지금도 여전히 일부 남아있지만 세종병원 개원 초창기에는 심장병 어린이들이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 받고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이 당시에 저희 병원 설립자인 박영관 회장께서 ‘심장병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모토를 가지로 기술 확보와 동시에 심장병 어린이 무료 수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83년에 첫 번째 심장수술을 성공적으로 하고 그 이후로 꾸준히 소외계층에 아이들 중에 심장병 어린이들을 발굴해서 수술해주는 사업을 했어요. 82년부터 90년 사이가 아마 우리나라 경제가 가장 빨리 발전했던 시기이고,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수술을 못 받는 아이들은 많이 줄었습니다. 이것이 어렸을 적부터 제가 보아 온 세종병원의 모습입니다.
의사가 아마 가장 다양한 상황의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진료실에 앉아있으면 아주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건강검진을 위해서 오는 경우도 볼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큰 병이 있는데 이것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치료를 고민하는 경우도 만나게 됩니다. 얼마나 서러울까…라는 동정심과 동시에, 몸이 아픈데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 못 받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생겼어요. 그렇게 하나둘 기부사업을 진행해오게 되었습니다.

Q. 아픈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기부의 시작이었군요. 같은 맥락으로 병원과 개인 차원에서 말씀하신 여러 활동들이 눈에 띕니다.
A. <사랑yes, 희망yes>라는 기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직원들도 참여하고, 저도 참여하면서 다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이는 돈은 주로 심장병 아이들을 돕는 데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건 병원의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개인의 차원으로 돌이켜보면, 참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 시작은 6년 전 세이브 더 칠드런을 통해 신생아 모자뜨기 캠페인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인 여유도 생기고, 보다 큰 나눔은 없을까 또 생각하게 되었지요. 병원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사회복지사가 외부 지원기관을 연결하고 병원도 의료서비스를 지원하여 어려움을 해결해주곤 합니다. 그러한 지원기관 중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대해 알게 되면서 아너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부를 하게 되면서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진료 현장에서 어릴 때부터 봤던 그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지원, 제가 진료현장에서 봐 온 사회적인 약자, 현황들이 종합적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Q. 결국 공간은 사람의 철학을 따른다고 하는데, 이사장님의 ‘어려운 사람들과의 나눔, 그들의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조금은 색다른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A. 메디플렉스(Mediplex)라는 이름이 사실 부르기 어려운데, 저희는 의료(Medicine)와 복합체(Complex)의 합성어인 이 단어를 매우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급성기 병원의 형태로 진료를 제공하고 있는데, 질병 발생 전에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건강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질병을 앓고 난 후, 회복에 대한 지원도 있어야 되어서 급성기의 치료 뿐만 아니라 예방과정에서도 지역사회와 같이 하면서 그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지역주민들이 회복과정을 더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가 하나 있어요. 단순 뇌혈관, 심장질환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병원의 전문성을 연계한 복합의료시설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의사는 환자를 돌볼 뿐이고, 치료는 신이 하는 것. 결국 신의 영역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아무리 무슨 약을 써도 그 약을 통해서 우리 몸의 면역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지 약 자체가 치료를 직접 하는 경우는 많지 않거든요. 이런 환자의 치유과정을 돕는, 내부의 면역력을 돕는, 치유과정을 돕는 데는 병원 환경이 굉장히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채광, 그리고 공원 이런 것들이 환자의 회복에 굉장히 중요하고, 또 이런 자연적인 요소 뿐만 아니고 예술적인, 오늘 공연한 음악, 미술 이런 것들이 환자들의 기분을 좋게 하면서 면역력을 향상시키고 그러면서 치유과정을 순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Q. 회복과정에 대한 고민, 내부의 면역력을 높이는 데에 문화예술이 가지고 있는 치유의 힘을 신뢰하시는 것이 매우 보기 좋습니다. 그래서인지 지하에 위치한 갤러리와 공연장이 눈에 띕니다.
A. 앞서 말했듯이 우리 병원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급성기 질환의 예방과 재활까지, 여러 병원의 전문성을 종합한 곳, 환자의 치료과정에서 의료적인 것 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부분을 통한 치유를 힐링 스페이스가 되자. 이게 저희가 추구하는 바이지요.
저는 우리 병원의 다양한 공간들이 잘 활용되어 주변에 있는 많은 주민들이 더욱 건강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이 예술만을 즐기기 위해 병원에 오시는 것은 아니거든요. 병원이라는 곳은 아프면 오는 곳인데, 평소에 병원을 오면서 아, 아프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건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예술을 즐기러 모이는 사람들이 건강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결국 지역사회가 건강해지고 병을 예방하는 것, 이외에도 지역 주민들을 위한 건강강좌를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문화콘텐츠를 가미한다면 사람들이 즐겁고 기억에 남는 곳으로 우리 병원이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병원 35년의 역사를 전시라는 형태로 풀어내어 일종의 문화행사를 만드신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평소에도 문화예술에 많은 관심이 있으셨나요.
A. 대학교 들어가면서 메디컬 오케스트라가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메디컬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게 없었지만, 배우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소리를 내는 여러 가지 악기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굉장히 즐겼던 것 같습니다. 오보에라는 악기를 했는데, 리드 자체가 하나의 악기이기 때문에 이것은 아마추어들이 잠깐 배워가지고 리드를 만들 수가 없어요. 얼마 전 후배들과 모이는 자리가 있었는데, 옛 생각이 나더라고요. 30년 된 악기를 고쳤는데, 생활이 고달프다 보니까 연습을 잘 못하게 되네요.
그림은 세종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많이 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전 이사장님께서 그림에 관심이 많으셔가지고 아주 큰 대작을 사시는 건 아니지만 보고 기분 좋은 그림들, 에너지가 나는 그림들을 사서 모으셨고, 저는 아닌데 보면 기분 좋거나 기운이 나는 그림들이 많아요. 여기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에도 곳곳에 보면 그림이 많아요.

Q. 함께 모여 화음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매력은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지요.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인으로서 문화인으로서 진정한 힐링의 공간을 만들고 운영해나가고 계신 것 같습니다.
A. 제가 예술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직접 찾아가서 하겠지만 그것을 직접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례들에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예술을 통해 비뚤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순화시킬 수 있는, 사회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바꾸어주는 사례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고, 오케스트라를 같이 해서 그 아이들이 제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예술 나눔이라는 것도 첫 소개는 들려주고 보여주는 수준이겠지만, 그런 데에서 자극을 받은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회에 각박한 상황…(요즘 사회가 무섭잖아요) 그러한 것들을 순화시킬 수 있는 매개가 되지 않을까. 예술이라는 것이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Q. 국제도시 인천의 비전을 보고, 세종병원이 올해 계양구에 분원이자 종합병원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지역과 함께하는 세종병원의, 또 이사장님의 향후 비전,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올해 세종병원에 있어 굉장히 의미 있는 해입니다. 혜원의료재단, 세종병원,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혜원은 할아버님의 호입니다. 할아버님께서도 산부인과 의사셨고, 아버님은 흉부외과 의사셨고, 저는 심장내과 의사입니다. 올해는 조고(祖考)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고, 또 세종병원 개원 35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고 메디플렉스 개원한 첫 해라는 세 가지 측면이 모두 의미 있는 해로 기념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종병원 역사에서 중요한 것이 새로운 의학 기술에 대한 도전 그리고 교육, 이러한 것들이었거든요. 저희가 제일 자랑스러워하는 개발 역사 중 하나는 인공심장 자체 개발이었습니다. 중소병원에서 인공심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열정 많은 의사들이 모여서 만들었던 그런 역사, 교육을 위해서 매년 학회를 지원해서 심장부검 관련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등이 자랑스러운 역사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박물관의 형태 또는 전시의 형태로 구성해 상시로 개방하고, 여러 사람들이 와서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나갈 예정입니다. ‘역사’를 중심으로 조금씩 변경해가면서 최종적으로는 심장박물관을 건립하여 아이들이 와서 심장에 대해 이해하고 또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병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 의료를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저희 병원이 2009년에 2020비전을 세운 이후 이제 좋은 시설을 확보했으니,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이곳에서 다양한 지역사회의 구성원들과 서로 윈윈 효과를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날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로비에서부터 여성합창단의 아름다운 합창화음이 들려왔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한 공간이 너머 지역 사회의 모두가 건강을 예방하고 힐링할 수 있는 허브로 자리 잡고자 하는 새로운 병원의 모습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우리 사회의 나눔, 그리고 기부는 단순히 남을 도와주는 것이 아닌 나와 남, 우리 모두가 건강해지는 또 하나의 방법임을 깨닫는 하루였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 내주신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의 박진식 이사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인천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아트레인의 탑승자를 찾습니다.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 기부 캠페인 아트레인은 인천 시민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개인 혹은 법인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기업 후원의 경우, 기업의 경영철학과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문화예술로 함께 만들어드립니다. 
아트레인 참여 문의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032-455-7114, artrain@ifac.or.kr

인터뷰 정리 / 인천문화재단 유영이




달을 만지는 아이들 <토끼전>

지난 9월 2일 부평문화센터 달누리 극장에서 열렸던 <토끼전> 공연을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아이들은 작품의 주제나 의미 따위를 강조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저 경험하고 느끼며 웃고, 잠들기 직전 일기에 “참 재미있었다.”라고 쓴다. 아마 어떤 예술 작품에 대한 평도 아이들이 쓴 일기보다 더 적절할 순 없을 것 같다. 아이들의 ‘재미있다’라는 말은 매우 두텁다. 오히려 아이들보다 더 높은 눈으로 작품을 마주하고 그걸 세세하게 뜯어내고 평가하는 어른들의 말이 더 얄팍하다. 산타는 원래 없는 게 아니라, “울어도 돼. 사실 산타는 없거든.”(<쇼미더머니6>)이라는 말 때문에 없어진다.

<토끼전>은 문화공작소 세움과 극공작소 마방진이 만나 고전 우화를 재해석한 음악극이다. 지난 인터뷰에서 세움의 유세움 대표는 “<토끼전>이 재밌는 게, 대부분의 우화들은 선악관계라든가 갈등관계라는 게 다 있잖아요. 근데, <토끼전>에는 그런 게 모호해요. 누가 나쁜 놈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별주부는 못나게 생기고 느릿느릿해 매번 다른 물고기들에게 무시당한다. 그래서 토끼 간을 찾아오면 보건복지부장관 자리를 주겠다는 용왕의 말에 혹하고 마는 별주부의 모습은 매우 ‘인간적으로’ 보인다. 한편, 무서운 동물들에게 쫓기곤 했던 토끼는 별주부에게 속아 용궁으로 간다. 그리고는 기지를 발휘해 용왕을 속이고 별주부를 자라탕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한다. 토끼는 약삭빠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 우화에는 그다지 나쁜 놈도 착한 놈도 없다. <토끼전>은 구태여 권선징악 같은 걸 찾지 않는다. 그냥 재밌게 놀아보자고 말한다.

달누리 극장의 무대는 물고기와 동물들이 뛰노는 최적의 상태였다. 수영장을 본뜬 세트 위에 미끄럼틀, 사다리, 튜브, 목마가 설치되었고, 동물들은 시종일관 그걸 타고 논다. 스크린에는 뭍과 용궁의 배경이 영사되고 있고, 그 뒤에서 세움의 아티스트들이 가야금, 기타 첼로, 트럼펫, 타악 등을 연주한다. 그 음악에 맞춰 별주부는 보드빌(vaudeville)처럼 노래하고 춤춘다. 독수리 삼형제는 훌륭하게 고꾸라진다. 고래는 변사처럼 극을 이끌고, 새우는 탭댄스를 추고 랩을 한다. 악어는 장난감 칼을 휘두르고, 용왕은 욕조에 누워 거대한 츄파춥스를 휘두른다. 아이들은 토끼와 대화하고 고래의 지휘에 맞춰 ‘산토끼’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유세움 대표는 “풍자와 해학”을 모두 이야기한 것 같다. 풍자는 부정밖에 알지 못한다. 풍자 속에서 별주부는 그저 못생기고 아둔한 것일 따름이다. 반면, 해학은 긍정을 안다. 해학은 별주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토끼에게 속아 토끼 간은커녕 ‘토끼 똥’ 밖에 구하지 못한 별주부를 좌절 속에 파묻어 두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가 비관하지 않도록 돕는다. 적대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토끼와 별주부가 서로를 속이고 속게 만든 건 누구였던가? 용왕이다. 그렇다고 <토끼전>이 용왕에게 죽음이란 벌을 내리는 건 아니다. 별주부가 토끼 간을 구해오지 않자, 용왕은 아픈 배를 부여잡고 300년을 산다. 그리고 마침내 별주부를 찾아내고, 그가 들고 있던 ‘토끼 똥’을 토끼 간으로 오해한 채 집어삼킨다. 마법처럼 용왕의 병이 낫는다. 권력자와 통치자는 항상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날 거라며 우리에게 겁을 준다. 그러나 그 심각한 일에 대한 처방은 ‘똥’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이 음악극의 클라이맥스는 토끼가 기지를 발휘해 용궁을 빠져나오는 순간이나, 용왕이 치유되는 순간이 아니다. 어른들은 매번 가르치려고만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잠들기 직전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건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게 재밌기 때문이다. 혹시 꿈속에서 토끼와 별주부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음악극의 클라이맥스는 물고기 친구들이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순간, 무대에서 내려와 아이들의 손을 잡는 순간, 무엇보다 커다란 풍선으로 만든 달들이 객석 이곳저곳을 날아다니게 되는 순간이다. 아이들이 까르륵 웃고,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다. 아이들은 달을 만지고 달을 가지고 논다. 

 

글/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박치영
사진/ 문화공작소 세움 제공




오에 겐자부로, 인간의 파렴치한 욕망을 속시원히 폭로하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한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당신이라면 다음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당신은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30대 남성이다. 내년에 사직할 예정이며 결혼한 상태이다. 아내는 아이를 출산했다. 하지만 아이는 무뇌아에 가까운 기형아이며 의사는 수일 내에 사망 가능성이 높다는데 아이는 죽지 않고 버틴다. 이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아이를 포기하고 자신의 생활을 지키는 방법과 두 번째 아이를 살리면서 자신의 생활을 희생하는 방법이다. 이 문제에는 생과 사의 윤리적인 문제와 자신을 삶을 지키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 뒤섞여있다. 노벨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이 상황을 자신의 삶에 직접 맞닥뜨렸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파렴치한 욕망, 자기 억압과 같은 우리가 그동안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검은 욕망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었다. 

지난 5일 한국근대문학관에서 도쿄대 심원섭 교수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첫 시간으로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의 책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인간의 파렴치한 욕망, 자기 억압과 같은 검은 욕망들이 잘 드러나는데 다음 장면은 아이의 죽음을 소망하면서 양심과 갈등하는 주인공의 대화 장면이다.

“당신은 이 아이가 수술을 받아 회복하는 걸, 말하자면 내심 회복을 바라지 않는 거요?”
버드는 스스로 듣기에도 거북한 비열한 목소리로
“수술을 해도 정상적인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버드는 지금 자신이 비열로 내려가는 비탈길로 한 발을 내딛었다는 것을, 비열함의 눈덩이가 최초의 회전을 시작했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의 열띤 눈은 의사에게 간절하게 빌고있는 것이다.
“직접 손을 대서 애기를 죽일 수는 없소.”
의사는 버드의 눈을, 혐오의 색깔을 띤채 거만하게 말했다.
-의사와 버드의 대화 장면-

“버드, 너 어젯밤 아기 꿈 꿨지?…….” 네가 갓난아기처럼 몸을 웅크리고 주먹을 꼭 쥐고 입을 잔뜩 벌리더니 응애, 응애 하고 울었었어. 잠든 채로“
“설마 그럴 리가 없어.”
“무서웠어. 그 상태로 네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
-아내와 버드의 대화 장면-

오에 겐자부로, 『개인적인 체험』

오에 겐자부로는 아이를 죽이고 싶은 소망을 서슴없이 의사에게 내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거북함과 비열함에 몸서리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스스럼 없이 있는 그대로 폭로한다. 두 번째 장면에서 그는 아이의 생과 사를 선택하는 상황에서 양심의 고뇌에 시달리는 인간의 내면을 잠든 채 갓난아기의 행동을 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해낸다. 그리고 자신이 현재 처한 아이의 생과 사를 선택해야 하는 끔찍한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가미코와 하룻밤을 보내며 욕정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으로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도 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작품에서 이와 같이 더럽고 추악하다고 생각해 숨기려만 했던 인간의 본능, 검은 욕망들을 거칠고도 단조로운 만연체의 문체로 폭로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치유를 받기도 하고 고통받기도 하며 인간과 추악한 욕망은 떨어질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한다. 오에 겐자부로의 폭로는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감추려고만 해 곯았던 욕망들의 속 시원한 분출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책들을 보며 감정, 욕망을 숨기는 것에 익숙해 결국 메마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깊은 수면 아래에 가두워놓았던 욕망에 귀 기울이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이 있는 저녁 <인천에서 노벨문학상을 만나다> 특강은 11월 7일까지 매주 화요일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진행된다. 노벨문학상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작가들의 삶과 문학의 정수를 느끼길 바란다.

 

글, 사진/ 인천문화통신 3.0시민기자 최승주




나만의 아지트가 우리의 문화공간으로 변하는 특별한 순간

동네방네 아지트 산책단

“카페에서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한번쯤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는 이른바 카페족이다. 카페족이 이름처럼 그리 근사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오천원으로 제공받는 음료, 테이블, 화장실, 인터넷이 간절한 사람들일 뿐. 이곳 카페에는 그렇게 반나절 이상 죽치고 있는 사람들이 열 명 정도 된다.”

김금희의 단편 소설 <당신의 나라에서>는 카페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카페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카페족’에게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다. 소방서 옆 건물에 위치한 시끄러운 원룸에서 빠져나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오랜 구직 생활로 소원해진 가족들의 눈초리를 피하는 은신처, 그야말로 아지트인 셈이다. 카페에서 매일 마주치면서도 서로를 곁눈질로만 몰래 지켜보던 사람들은, 카페가 정전이 된 사건을 계기로 서로 가까워진다.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책과 노트북만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카페의 불이 꺼지자 옆 테이블의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나만의 아지트였던 카페는 우리의 아지트로 변하고,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 틈새로 대화와 여유의 시간이 생긴다. 

하지만 소설의 첫 구절에서도 보이듯, 카페에서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일은 드물고, 나만의 아지트는 내가 앉은 테이블로 한정될 뿐, 카페 전체가 우리의 아지트가 되는 일은 흔치 않다. 소설에서처럼 정전이라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소설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 나만의 아지트에 그러한 특별한 사건이 생긴다면 어떨까.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올해, 일상의 공간들에 공연이나 강연과 같은 작은 문화행사들을 만들어 나만의 아지트를 우리의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을 운영 중이다. 

올해 5월, 인천 곳곳에 위치한 카페, 서점, 갤러리, 목공소 등 20여 개의 공간이 ‘동네방네 아지트’ 지원 사업을 통해 일상과 생활 속에서 문화를 충전하는 아지트로의 변신을 시작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공간에서는 생활문화 동아리 활동을 진행하거나, 전문가를 섭외해 작은 규모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공연을 보며 술 한 잔을 마시던 재즈 바에서 사진동아리를 만들어 공연 사진을 찍기도 하고, 혼자 책을 읽던 동네 서점에서 저자를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한다. 공연을 보고, 책을 읽는 등의 소극적인 문화 활동을 혼자만 즐기던 사람들이, 직접 공연 사진을 찍고, 책의 저자와 함께 생각을 나누는 적극적인 문화 활동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문화, 예술의 향유자이자 소비자에 머물렀던 일반 시민들이 많은 돈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문화, 예술을 생산하는 창작자가 되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지난 8월에는 ‘동네방네 아지트 위크 – 시가 있는 작은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지트로 선정된 공간 20곳에 시인과 뮤지션들이 방문하여 시를 낭송하고 음악 공연을 펼쳤다. 아지트에서 벌어지는 소모임이나 동아리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는 일부의 사람들 뿐 아니라 공간을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경험할 기회를 만들어 준 셈이다. 또한 일상에서 오고가면서도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문화공간들을 소개하는 ‘동네방네 아지트 산책단’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이미 다른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려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문화 공간, 또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몰라서 찾아가지 못했던 공간들을 산책하듯 둘러보는 것이다.

지난 8월 18일에는 10여 명의 산책단이 강화에 위치한 아지트들을 방문했다. 그 중에서도 ‘버드 카페’에는 멸종위기종인 저어새를 보호하고 그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저어새와 강화 인근 갯벌의 사진을 전시하고 엽서를 판매하며, 저어새를 캐릭터로 만들어 다양한 상품과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었다. 버드카페를 운영하는 000씨는 “멸종위기에 처한 저어새는 강화가 최대 번식지이지만, 지역주민들은 농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저어새를 보호하지 않는다. 다양한 강연과 캐릭터 상품, 그리고 펠트 수공예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주민들과 만나고, 저어새의 소중함에 대해 알리고자 한다.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을 통해 진행하는 강연 등이 지역 주민들에게 공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답했다.

9월 한 달간은 인천 곳곳의 오래된 아지트와 새로 생긴 아지트들을 방문하고 전문가의 강연까지 들을 수 있는 산책 코스를 운영 중이다. 오래된 아지트 코스는 인천의 오래된 가게들을 방문하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정진오 기자가 안내자가 되어 그의 책 <오래된 가게>에 등장하는 가게들을 소개하고 함께 둘러보는 코스로 구성되었다. 지난 9월 8일에는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 중 하나인 인일철공소에 방문하고 인근에 자리한 숭의평화시장 내 카페 라온에서 인일철공소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숭의평화시장에서 가게를 운영 중이라는 무명 씨는 ‘한 시간짜리 짧은 강연이 있다고 해서 가게가 한산한 틈을 타 카페를 방문했다. 자주 오고 가면서도 어떠한 물건을 만드는 가게인지, 얼마나 오래된 가게인지 몰랐는데,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한편 책<오래된 가게>를 감명 깊게 읽고 인일철공소를 방문해보고 싶어 찾아왔다는 하복순 씨는 ‘인천 토박이로 지금도 인근에 살고 있는데 평화시장 내에 이러한 카페이자 문화공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주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은 단순히 공간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에 그치지 않고, 그 공간을 오고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공간을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공간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동네의 작은 공간이 생활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기획부터 홍보까지 모든 것을 돕는 ‘풀 옵션’ 지원 사업인 셈이다. 비록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들이고, 일상에서 경험한 작은 예술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당장 수치로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큰 성과만을 강요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을 만들어주고, 작은 여유를 내어주는 것이 문화예술이 가진 엄청난 힘이자 문화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일상의 틈에서 만난 작은 웃음과 짧은 여유가 가져다 줄 더 큰 웃음과 행복을 기대해본다.

 

글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민경찬




식탁 위의 작은 동아시아, 짜장면

화교문화를 읽는 눈 짜장면
유중하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 11. 발행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부동의 외식 1위는 짜장면이다. 짜장면은 인천에서 처음 먹기 시작한 인천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짜장면이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겨나 어떤 의미로 우리 음식으로 정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짜장면은 한 세기 전 인천에 온 중국인들이 처음 먹었던 데서 비롯된 음식이다. 또한 ‘중국’ 음식인 짜장면의 단짝은 ‘일본’ 음식인 ‘다꾸앙’이라는 점에서, 짜장면은 식탁 위의 작은 ‘동아시아’이다. 이 책은 짜장면의 기원은 물론 짜장면을 처음 만들어 먹은 중국인 화교(華僑)들의 삶과 짜장면의 기원이 된 여러 음식을 중국 본토 답사를 통해 생생하고 맛깔난 문장으로 전달한다.

글 /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함태영




[큐레이션 콕콕] 숫자3의 비밀

동화 속 주인공은 왜 첫째나 둘째가 아닌 셋째일까요? 왜 그림책에는 삼 형제나 세 자매가 많을까요? 꾸며낸 이야기 속에서 대개 첫째와 둘째는 부모의 기대와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로, 셋째는 바보, 몽상가, 잠꾸러기, 게으름뱅이로 등장합니다.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첫째와 둘째는 지나치게 평범해지지만 셋째는 정이 많고, 동물과의 교감 능력이 뛰어나고, 베풀기도 잘하는 매력덩어리로 변신하죠. 영웅은 자신의 영웅다움을 세 번에 걸쳐 증명하고, 주인공은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하며,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법 도구가 필요합니다.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문이 열리고, 피 세 방울이 있어야 자식을 살릴 수 있고….

신호등은 왜 빨강, 노랑, 초록 세 개일까요?
메달은 왜 금, 은, 동만 있을까요?
우리는 승부를 결정할 때 가위, 바위, 보를 합니다. 가위바위보는 왜 삼세판을 하는 걸까요?
한국인의 이름은 대부분 세 음절이고요,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 삼시세끼를 먹습니다.
크기는 대, 중, 소로, 등급은 상, 중, 하로 나누죠.
계급은 크게 세 층위인 귀족, 평민, 천민으로 분류했고, 더위를 물리치는 초복, 중복, 말복도 더하거나 빼기 없이 딱 3으로 명명됩니다.
물체의 상태를 나타내는 고체, 액체, 기체도 3의 법칙을 따르고 있죠.

우주는 하늘, 땅, 물, 세 부분으로 이해되고, 인간은 육체, 영혼, 정신으로 나뉩니다. 인생의 주요단계는 유년 시절, 성인 시절, 노년 시절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삶은 탄생, 현존, 죽음으로 정리되죠. 생성, 존재, 소멸이라고 하기도 하고요.
기독교적인 우주론은 세상을 하늘, 땅, 지옥으로 표현하고, 믿음, 소망, 사랑은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미덕으로 간주합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佛寶), 부처님의 가르침(法寶), 부처님의 제자(僧寶)를 가장 귀한 세 가지 보물이라고 말합니다.

‘숫자 3’은 생명 탄생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남자란 뜻의 1과 여자란 뜻의 2가 결혼해 3이란 아이를 낳죠. 아버지, 어머니, 아이는 가족을 구성하는 원천적인 세 요소로 인류의 지속적인 삶을 보장합니다. 3은 생명과 결실의 표현이며, 그래서 안정된 숫자고, 자신만의 고유한 역동성을 갖고 있죠. 이 밖에 369게임, 삼진아웃, 삼신할머니, 스리쿠션, 삼족오(전설 속의 새. 황금빛의 세 발 달린 신성한 까마귀)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숫자 3’을 접할 수 있습니다.

원시 부족들은 수 인식의 ‘제로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이 수의 크기를 표현하는 방법은 ‘하나, 둘, 그리고…… 많다’ 뿐이었죠. 하나와 둘 이상을 넘어서면 이내 혼란에 빠지고 ‘여럿’, ‘무더기’, ‘다수’라는 식의 단어를 썼습니다. 그들에게 수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어서 냄새나 색깔, 소음 등 어떤 사물을 지각하듯이 받아들였습니다. 오래 전부터 숫자 3은 복수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었죠.

3은 사물의 의미를 설명하는 숫자입니다. 노자는 “도는 하나를 창조했고, 하나는 둘을, 둘은 셋을, 그리고 셋은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말했습니다. 1은 점, 2는 선이지만 3은 면을 만들어 공간을 획득합니다. 삼각형은 어느 꼭짓점을 향해도 그 정점으로 말미암아 운동성이 느껴지죠. 왈츠의 3박자, 삼각관계 등 ‘3’만큼 우리 삶 곳곳에 깔린 수학적 정서는 많지 않습니다.

“3은 최초의 홀수로 완전한 숫자이다. 숫자 3 속에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숫자 3이 부정적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 사람이 있으면 그 안에 반드시 바보 한 명이 끼어 있다’, ‘뜰에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세 번째 사람은 놀림감이 된다’는 속담이 그것입니다. 두 사람이 모이면 파트너십이 형성되지만 한 사람이 더 끼면 방해가 될 뿐이라는 의미겠죠. 이와 유사하게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면, 제3자는 할 말이 없다’는 관용구도 있네요.

숫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가격, 전화번호, 시간, 버스 번호, 거리, 속도, 무게, 집주소, 나이 등등 우리는 날마다 숫자와 부딪치며 살아갑니다. 의미망이 다양한 언어와 달리 숫자는 시간을 확인할 때나 지폐를 셀 때, 휴대전화 번호 등을 확인할 때만 필요한 평범한 도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숫자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7을 행운의 숫자라고 하는 걸까요? 왜 4층, 혹은 13번째 집에서 사는 걸 꺼려할까요? 숫자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 예술이나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미신이나 소문이 우리의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다가 비성적인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거죠. 숫자는 디테일하고 세심한 언어로 여러 층위를 품고 있는 문자(소리)언어와는 기능이 다르지만 때때로 자신만의 고유한 무게와 생명력으로 보이지 않는 마력을 품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나 어떤 날을 쓸모 있게 정리하고 싶을 때 숫자를 사용합니다. 역사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개인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죠. 숫자 ‘100’을 생각보세요. 100일 휴가, 100일째 만남, 100세 장수마을, 100대 국정과제, 100일 기자회견 등등. 이날은 어제나 그제와 다름없는 시간 속에서 등장한, 단순히 달력에서 숫자가 바뀐 결과일 뿐일까요? ‘100’은 이를 데 없이 아름다운 완성의 숫자입니다. 불완전함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완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고, 완전수인 100을 맞이하여 새로운 의의, 새로운 가치를 찾는 거죠.

숫자는 대상을 섬세하게 세분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숫자에는 마법의 작용이 숨어있는 것 같기도 하죠. 세상의 관계와 사건을 이해하는 데 숫자는 적지 않은 도움을 줍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주변을 관찰하고, 중요성을 부여하고,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숫자들과 더불어 말이죠.

9월이 지나면 2017년도 세 달밖에 남지 않겠네요.
아직 세 달이나 남았습니다.

 

* 본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기사와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1. 우리가 몰랐던 숫자3의 친숙함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숫자3을 말하다(경희대학교 소리방송국)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EBS 교양-세상의 모든 법칙 ‘숫자 3의 비밀은?’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EBS 지식프라임-‘3’의 비밀: 주인공은 왜 셋째일까?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밀물 썰물] 숫자 3(부산일보 2011.2.1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숫자의 감춰진 비밀』, 오토 베츠 지음, 푸른영토, 2009.
7. 『숫자의 탄생』, 조르주 이프라 지음, 부키, 2011.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젊은 도시 인천, 소설로 뜨다

젊은 도시 인천, 소설로 뜨다
김금희 작가와의 대화
장소 : 한국근대문학관
촬영,편집,구성 /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김유라




동네방네 아지트 이야기1. 버텀라인

일상적으로 쉽게 접하고 만나는 책방, 갤러리, 카페들과 동아리를 연계한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 아지트로 함께하고 있는 인천의 공간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네방네 아지트 이야기 1 : 인천의 터줏대감 재즈클럽 <버텀라인>

“역사와 지역색이 배어있는 버텀라인 자체가 하나의 관광지에요”
– 버텀라인 허정선 대표 –

 

‘버텀라인’은 어떤 곳?

1983년에 오픈한 이후 34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재즈클럽이다. 대한민국 3대 재즈클럽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인천 개항기의 역사가 담겨 있는 동네와 100년이 넘은 근대 건축물 안에서 오랜 세월 사람들과 함께 해온 문화공간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플레이하는 디지털 음악이 보편화된 요즘이지만, 아날로그한 진한 감성은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국내외 재즈 뮤지션들의 라이브 연주가 펼쳐지고 귀를 적시는 LP 음악이 흐르는 곳, 버텀라인이 바로 그런 곳이다.

버텀라인이 위치한 건물은 1900년대 초에 세워진 일본식 상가이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이 건물은 인천의 근대 역사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이 자리에는 모자, 넥타이, 와이셔츠 등 서구물품을 판매했던 ‘후루다 양품점’이 있었다. 후루다 양품점은 1910년대 인천의 대표적인 상점이었고, 그 맞은 편에는 ‘오카다 시계점’이 있어 축음기와 음반을 사려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개항기 이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온 이 곳에서, 1983년에 문을 연 버텀라인이 지금까지 공간의 가치를 이어오고 있다.

버텀라인의 내부는 인천 최초의 재즈클럽답게 고풍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근대의 목조건축과 황토벽, 따뜻한 색감의 조명이 어우러져 오랜 세월을 지나온 공간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별한 인테리어 없이도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천 장의 LP 판과 30년 넘은 테이블이 예스러운 멋을 자랑한다.

버텀라인에서는 재즈가수 웅산,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 등 유명 뮤지션을 비롯한 수많은 재즈 연주자들이 공연을 해왔다. 오래된 근대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정감과 운치가 있는데다가, 높은 천장과 황토벽 덕분에 소리의 울림도 남달라 버텀라인은 국내외 재즈 연주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옛 감성을 추억하려는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버텀라인의 음악과 분위기에 반한 젊은 층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복잡했던 하루를 마치고 아늑한 옛날 집에서 여유를 즐기는 듯한 풍부하고 넉넉한 느낌은 세대를 막론한 편안함을 준다. 버텀라인의 단골손님들은 3년, 5년, 혹은 10년 만에 찾아오기도 한단다. 허정선 버텀라인 대표는 “20대에 버텀라인을 찾았던 손님이 50~60대가 되어 자식이나 조카 등 꼬마손님을 데려올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버텀라인은 일반적인 재즈클럽을 넘어 서로 다른 세대를 음악으로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최근 버텀라인은 인천문화재단의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을 통해 공연 사진 촬영을 배우고 함께하는 동아리 ‘라이브 사진관’을 운영 중이다. 악기 종류에 따라 사람의 얼굴을 포착하는 방향, 배경의 네온사인과 사람의 얼굴을 함께 살리는 팁 등 공연사진 촬영에 대해 두 명의 사진작가가 12회에 걸쳐 수업을 진행한다. 사진 수업이 끝난 후에는 공연을 관람하며 직접 촬영 실습을 하고 있는데, 참석자들은 버텀라인이야말로 딱 맞는 공간이라고 이야기한다.

라이브 사진관의 수업 분위기는 버텀라인이 주는 느낌과 꼭 닮아 있다.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 자유로운 대화가 오가고, 한 명 한 명의 사진을 스크린으로 보며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받는다. 수업에 처음 온 사람도 마치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도란도란 함께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버텀라인 안에서는 공간과 음악, 사람까지 모든 것이 서로 익숙하고 편안하게 녹아드는 듯하다.

8월에도 다양한 재즈 뮤지션들이 버텀라인에서 공연을 진행하는 가운데, 이번 주 금요일(8.18) 9시에는 싱가폴의 색소포니스트 다니엘 치아(Daniel Chia)가 버텀라인을 찾는다. 다니엘 치아는 그래미상을 2번 수상한 프로듀서 폴 브라운과 함께 데뷔 앨범을 제작했고, 그의 첫 싱글 앨범인 ‘Cali Style’은 발매된 지 일주일 만에 빌보드 차트 2위, 글로벌 뮤직 라디오인 Smoothjazz.com 6위를 차지했다. 실력 있는 뮤지션들의 재즈 연주를 듣고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고즈넉한 저녁의 버텀라인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23번길 23 2층
· 전화번호 : 032-766-8211
· 페이스북 (바로가기▶)

 

생활문화팀 김효주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3: 젠트리피케이션을 마주하며.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경리단길의 유명한 쉐프가 동인천에 새로운 가게들의 문을 열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재밌었던 건 인터넷 상에서 플랫폼의 종류에 따라서 반응이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었습니다. 많은 블로거들은 가게를 방문하고 동인천 구도심에 젊은이들이 찾을 새로운 공간이 생겨난 것에 기뻐하고 만족해 했습니다. 반면 SNS의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가게들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동인천이 거대한 바람에 휩쓸릴 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최근 몇 년간 도시와 부동산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인 젠트리피케이션 말이죠.
젠트리피케이션은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영국의 하층계급 주거지가 재개발을 통해 중산층 주거지로 변화되면서, 중산층이 저소득층을 특정지역에서 축출하는 현상을 정의한 단어였습니다. 이 단어는 이후 구미의 대도시, 아시아의 신흥 대도시들에서 유사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활용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폭넓게 의미의 확장이 일어났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로 주거보다는 상업시설, 특히 소규모의 근린생활시설에서 벌어지는 ‘상업 젠트리피케이션’과 ‘소매업 젠트리피케이션’, 언론 매체와 SNS를 통해 특정 지역이 떠오르는 ‘매스미디어 젠트리피케이션’,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매장이 대거 몰려들며 이루어지는 ‘프랜차이즈 젠트리피케이션’, 여행명소화 되면서 지역 상권의 성격이 변화하는 ‘투어리즘 젠트리피케이션’, 거주나 영업의 목적보다는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 목적으로 자본이 유입되며 이루어지는 ‘부동산자산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정의되는 식입니다.
이렇게 확장된 의미 속에서, 최근의 우리나라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대체로 주거지역의 급격한 상업화와, 이 과정에서 원주민과 임대상인들의 축출과정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듯 합니다.

‘원주민과 상인들의 축출’이 문제가 되어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슈가 되었다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도시 개발의 역사에서, 원주민 축출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느 아시아의 신흥 국가들처럼 한국도 급작스럽게 몰려든 사람들의 도시를 재구조화 하면서 도시를 더 부유한 사람들의 공간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달동네 재개발, 광주대단지 사건, 뉴타운 사업에 이르기까지 항상 기존 거주지의 전면적인 철거와 원주민의 축출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빈 공간은 아파트와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원주민보다 더 부유한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바로 오늘까지도, 우리나라의 도시공간은 훌륭한 상품이며 무엇보다 안정적인 자산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앞장서서 경제성장을 위해 이것을 종용해 왔습니다.
세입자와 임차인 보호의 관점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은 갑작스럽게 생겨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010년 대에 시행된 뉴타운 사업에서도 사업지의 세입자들이 사업 진행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대부분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상인들의 임대보호를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된 것은 2001년에 일이지만, 여전히 1991년 제정된 일본의 차지차가법에 비해 임차인 보호의 열악함이 지적되며 끊임없이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도시 개발은 지역의 물리적 기억을 지우고 사람들을 축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은 좌측부터 1985년 옥수동 재개발 전경, 2000년대 후반 은평 뉴타운과 진관동 구도심, 2017년 아현 뉴타운 사업지의 염리동.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시사in, jtbc 한끼줍쇼 방송 화면)

그럼에도 최근 급작스럽게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슈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동산 투자가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잉여자본이 건설산업과 부동산으로 투자되어 순환된다는 데이비드 하비의 이론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부동산은 국가의 용인과 비호 아래 가장 강력한 자산 취급을 받았습니다. 땅을 사고, 아파트를 사던 것이 이제는 골목의 근린상업시설과 다세대 주택이 대상이 된 것이지요. 평균 수명의 증가는 은퇴 이후 30년의 삶에 대한 안정을 소구하게 하고, 그 결론으로 임대 수익과 부동산 투자를 얻어낸 베이비부머 이후의 세대들에게 이러한 부동산 투자는 꼭 거대 자산가가 아니어도 선택해야 할 미래가 되었습니다. 2016년 7월 26일 한겨레 신문의 음성원 기자의 기사 “’58년 개띠’의 상가 사냥,’94년 개띠’를 몰아내다”의 데이터 분석에 참여한 신수현(서울시 통계데이터분석팀)씨의 이후 뒷이야기는 더욱 명료하게 이러한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시 분석 대상인 건물 소유주 중에 해당 지역에 여러 건물을 소유한 경우는 거의 드물었습니다. 연남동에 투자한 사람들이 꼭 거대 자산가는 아닐 겁니다.”
두 번째는 자영업자의 증가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속된 불황, 정년단축과 조기퇴직, 청년실업 등의 문제는 이들을 자영업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임대상인들의 문제가 표면적으로 더 많이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비단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 산업의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공정함’에 대한 사회적 요구의 증가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원주민과 이주민의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의 시작은 도시공간 속에서 드러나는 ‘공정함’에 대한 사회의 요구의 한 모습일 것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는 도시 공간에 대한 무수한 분석과 대안이 존재합니다. 도시계획, 법과 제도, 인식개선 등 무수한 해법들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 제시됩니다. 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그래서 도시 공간을 상품으로만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남으로써 사람들을 축출하고 배제해왔던 오랜 방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Naked City(‘무방비 도시’로 2015년 번역, 출간)’라는 책으로 유명한 도시사회학자 샤론 주킨은 도시의 일종의 연속성으로서 ‘정통성(authenticity)’이라는 개념을 주장하면서, 이 개념에 “도시에서 살고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속적인 집을 만들어주는 문화적 권리”의 의미를 덧붙였습니다. 어떤 지역이 갖는 정통성은 그 지역이 오랜 시간 축적해온 것들입니다. 지역의 사람, 공간, 행위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독특한 정통성은 도시 속에서 그 지역만의 매력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 매력이 어떤 계기로 널리 알려졌을 때, 그 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낯선 느낌의 상점과 음식점, 공연장과 전시공간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서울에선 이런 지역들이 무수히 명멸했습니다. 홍대, 이태원, 성수동, 연남동, 상수와 망원동 등. 인천도 북성동, 신포동, 배다리와 같은 지역들이 정통성을 가진 공간으로 부각되어 왔고, 최근에는 십정동과 같은 곳에서도 공장 지역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상업공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역의 정통성에 매료되어 자리잡는 새로운 가게와 공연장들이 원주민들의 주거지와 세탁소, 철물점을 대신할 때, 그리고 그렇게 ‘뜬’ 지역의 임대료가 상승해 새로운 가게와 공연장이 떠나고 흔한 프랜차이즈와 대기업의 음식점들로 변해갈 때 우리는 이 지역의 생명력을 고민해야 합니다. 모두가 이런 변화와 더불어 낡은 건물들을 대신해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지역의 발전이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이렇게 변해버린 공간이 예전의 매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여느 상업지역처럼 흔한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하비는 이것을 자본이 도시를 ‘균일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어느 도시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이유가 자본의 힘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도시 안의 여러 지역들이 ‘정통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역의 사람, 공동체의 보호가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샤론 주킨의 말처럼 “정통성의 ‘외관’과 ‘체험’을 보존”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말 것입니다. 누군가 떠나고,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재개발이든, 젠트리피케이션이든, 도시재생이든, 지금까지 도시를 재구조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축출의 방식에서는 반드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최근 다양하게 등장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해법들이 임대료와 지가의 최대한 느린 상승과 임차 상인들의 조금 더 긴 계약기간 보호를 유도하는 것, 지역 주민과 이해관계자들의 공동체 형성 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들에 대해 그러했지만, 특히 도시 공간은 ‘부동산’으로 불리며 자산과 상품의 면모 만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더 높은 지가, 더 많은 임대료가 도시 공간 활용의 절대선처럼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꾸준히 도시 공간이 생명력을 가지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공공도 지금까지의 도시 개발에 대한 방관과 동조에서 벗어나서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연속성과 지역의 정통성을 지켜가는 방법을 마련하길 기대해 봅니다.

 

글/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김상일, 허자연(2017), 서울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실태와 정책적 쟁점, 서울연구원
김현아, 서정렬(2016), 젠트리피케이션, 커뮤니케이션북스
샤론 주킨. 민유기 역(2015). 무방비 도시. 국토연구원
신정엽, 김감영(2014), 도시 공간 구조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의 비판적 재고찰과 향후 연구 방향 모색, 한국지리학회지, 3(1).
이선영(2016), 닐 스미스와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한국, 공간과사회, 26(2)
정원오(2016), 도시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 후마니타스
“‘58년 개띠’의 상가 사냥, ‘94년 개띠’를 몰아내다”, 한겨례신문, 2016.7.26
“뉴욕, 런던, 서울 거리 비슷해져…젠트리피케이션 영향”, 한국일보, 2016.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