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21 인천문화포럼, 어떻게 구성되었나

프롤로그: 2021 인천문화포럼, 어떻게 구성되었나

인천문화재단 정책협력실

지역문화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문화에 관심 있는 시민, 전문가가 함께 소통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데에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한편, 인천문화재단과 인천광역시는 지역문화가 활성화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가 시민들 스스로 문화 향유와 창조의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이런 배경에서 인천광역시와 인천문화재단은 시민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소통을 통해 문화를 활성화해보자는 취지에서 2017년 ‘인천문화포럼’을 구성하였다. 200명 넘는 인원이 참가한 때도 있었으나 평균적으로 100명 전후의 시민과 전문가, 예술가 등이 분과를 나눠 토론하는 행사가 2019년까지 연례적으로 진행되어왔다. 포럼 위원들은 매년 새로 구성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2020년 상반기는 코로나19의 발생으로 사업이 연기되고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리는 국면이 지속되었다. 결국, 전지구적 팬데믹의 지속으로 2020년 하반기에 포럼 자체는 평상시처럼 지속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에 소규모 회의체를 구성하여 운영하기로 결론 내렸다. 그리고 이 기회에 그동안 인천문화포럼의 성과와 문제점을 점검하고 앞으로 운영 방향을 다시 설정해 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기존 포럼위원의 경험이 있던 4인, 인천문화포럼을 밖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던 전문가 1인, 인천문화재단과 인천광역시 관계자 각 1인이 회의체 구성원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2020년 9월부터 4차례의 연속 회의를 통해 문화포럼의 성과와 한계, 바람직한 민관거버넌스 사례, 2021년 인천문화포럼 운영 방향 등에 대해 토의하고 의견을 정리하였다.

회의 결과, 문화포럼에 참여하는 의의, 취지에 대해 참여자가 능동적 자세를 갖되 그 과정에서 책임도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즉 포럼 위원 각자가 포럼에 참여하는 의지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였다. 아울러 포럼은 한 번에 많은 사람을 모으는 구조보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분들을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단계적으로 확산시켜 가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데에도 의견을 함께하였다. 토론의 내용이나 의제 발굴에 대해서는 자체적인 논의를 거쳐 확정하고 의제에 따른 분과를 자율적으로 구성하기로 하였다.

인천문화포럼 오픈테이블, 2021.4.20. (사진촬영: 송석우)

이렇게 해서 2021년 인천문화포럼에 참여할 위원을 내부 추천과 당사자 동의를 거쳐 21명으로 확정하였고 2021년 4월 20일 ‘인천문화포럼 오픈테이블’을 개최하였다. 오픈테이블에서는 위원들의 자유 토론으로 의제를 도출하였고 의제에 대한 관심사에 따라 분과 참여를 확정하였다. 위원들의 제안과 난상토론으로 인천문화포럼이 앞으로 토론해야 할 14개 의제를 도출했는데 이를 놓고 추가 토론을 거쳐 의제를 통합, 조정, 삭제하여 4개로 최종 정리하였다. 인천문화포럼 오픈테이블에서 최종 확정된 4개의 의제는 ‘인천의 청년문화와 예술’, ‘인천의 특성과 시민들의 문화력(力)’, ‘예술 및 생활예술 지원정책’, ‘문화 관련 조사와 아카이빙’이다.

첫 번째 의제(의제의 순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며 편의적으로 순서를 부여하였다)인 ‘인천의 청년문화와 예술’은 최근 화제가 되는 청년 문제를 인천의 시각으로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제안되었다. 인천 청년 일반의 문화 및 청년 예술인들의 고민을 다 함께 포괄하여 문제를 도출하고 토론하는 것으로 하였다. 두 번째 의제인 ‘인천의 도시 특성과 시민들의 문화력’은 포괄적인 성격의 의제인데, 인천이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인천의 특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인천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향유는 어느 정도인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세 번째는 ‘예술 및 생활예술 지원정책’으로 인천에서 그동안 진행되어온 예술가 지원, 생활문화 지원정책의 성과와 문제점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정리하기로 하고 의제를 설정하였다. 마지막으로 ‘문화 관련 조사와 아카이빙’은 최근 들어 그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지역 문화 자원이나 자료의 조사, 기록화 작업, 보존과 정리, 정보 제공 등의 문제를 화두로 논의를 이끌어 가기로 하였다.

이렇게 제안된 4개의 의제에 따라 분과를 구성하고 포럼 위원은 각각 하나의 분과에 참여하여 세부 토론을 하는 것으로 포럼의 운영방식을 결정하였다. 분과별 자율적인 내부 토론을 하되 한 달에 한 번씩 분과별 대표들이 모여 논의 과정 전체를 공유하는 과정도 병행하였다.

2021 인천문화포럼 성과보고 정책토론회, 2021.9.27. (사진촬영: 송석우)

2021년 9월 27일 인천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 다목적실에서 ‘2021 인천문화포럼 성과보고 정책토론회’가 개최되었는데 의제별 각 분과의 그동안의 토론 내용을 정리하고 소개하는 행사였다. 토론회는 분과별 대표 발표자들이 각각 토론된 내용을 소개하고 다른 분과의 포럼 위원들도 토론에 자유롭게 참여하였다. 아울러 기존 포럼 위원 이외에 의제 별로 한두 명의 외부 지정토론자를 초청하여 토론 내용에 대한 코멘트를 받았다.

여기에 실리는 글들은 성과보고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인천문화포럼은 전문가들이 특정 문제에 대해 학술적 토론이나 조사, 연구를 통해 빼어난 성과를 제출하는 자리는 아니다. 오히려 시민의 눈으로, 예술가의 눈으로 인천의 지역문화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두루 제기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데에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다. 인천문화포럼은 이곳을 기점으로 논의를 축적해 가고자 한다.




인천의 청년문화와 예술: 청년에게 관심을 두는 일

인천의 청년문화와 예술청년에게 관심을 두는 일

전효정(2021 인천문화포럼 위원)

모두의 청년2021년 4월 20일. 인천의 문화 의제 발굴과 공유를 위해 인천문화포럼 오픈테이블이 개최되었다. 그 자리에 함께한 19명의 위원들은 자유롭게 각자의 의제를 발표했는데, 그중 다수의 의제가 청년문화에 대한 것이었다. 청년 고독사, 청년문화 관련 직업, 청년들의 사회관계, 청년 지원 활성화 등 이후 의제들을 유목화하는 과정에서 청년문화분과가 만들어졌다. 왜 사람들은 청년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청년이 미래의 문화적 의제를 가진 표상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에겐 그리움으로, 누군가에겐 치열한 고민의 시간으로, 누군가에겐 열정을 온전히 펼치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청년. 인천문화포럼 청년문화분과에는 청년의 시기를 거친 사람이거나 청년 당사자인 권근영, 윤미경, 이종범, 전승용, 전효정, 이상 5명의 위원이 모였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인천의 청년문화에 대한 의제를 찾기 위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의미를 찾아서: 청알못 시름×씨름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이다(표준국어대사전).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그 대상에게 의미를 시사한다. 인천문화포럼에서는 각 분과의 성격이 드러날 수 있는 새 이름을 짓기로 했다. 이에 청년문화분과는 청년문화에 대해 비전문가인 위원들이 함께 고민과 생각을 나누면서 의제발굴을 위해 힘을 쏟았다는 의미를 담아 ‘청알못 시름×씨름’(이하 청알못)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새로운 이름은 의제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임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청알못: 지나온 길 톺아보기인천청년문화에 대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관심을 두어야 할까. 청알못 위원들은 먼저 지난 인천문화포럼에서 청년문화가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2018년 인천문화포럼 청년문화분과에서 활동했던 당시 담당자 신효진과 위원 정예지를 초대해 지나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를 통해 2017년에 시작된 인천문화포럼, 그리고 활성화되기 시작한 2018년, 청년분과가 폐지된 2019년까지의 활동과 그 활동들이 어떤 흐름을 가지고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50여 명의 청년위원이 함께 활동했던 열정의 순간들과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였는데, 그 후 인천문화포럼을 통해 청년문화정책이 수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갑자기 맞이하게 된 분과 폐지가 가져온 아쉬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되었다. 이처럼 지나온 길을 톺아보는 시간을 통해 청알못이 고민해야 할 방향이 점차 선명해졌다.

시름: 불편함에서 싹 튼 질문들

인천 청년들이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인천 청년 창작자들은 어떤 정책에 기대어 있는가?

인천 청년의 의식주는 어떠한가?

인천 청년의 문화기여도와 인천에 끼치는 상관성과 그 영향은 어떠한가?

청년들이 생각하는 인천은 어떤 이미지인가?

청년들이 생각하는 기성세대는 어떤 이미지인가?

청년들이 되고 싶은 기성세대는 무엇인가?

청년들이 익혀야 할 삶의 적정기술은 무엇인가?

청년들의 다양함과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까?

장년인 나는 청년들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청년이 인천 청년인가?

청년들이 내적 성장을 할 수 있는 지역축제를 지원할 수 있을까?

청년창작자를 위한 정책에서 느껴지는 행정 언어의 간극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창작자는 무슨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가?

청년 창작자들은 창작만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청년에게 지역문화는 어떤 의미이며, 왜 필요한가?

청년의 안전은 누가 보장해 주는가?

청알못에서 쏟아진 질문들은 ‘인천청년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연고에 대한 논의’, ‘청년창작자의 안전과 생계에 대한 논의’, ‘행정언어라는 장벽에 대한 논의’로 모였다.

첫 번째 의제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 인천 청년 맞나요?’는 ‘인천 청년’을 정의하다가 인천 지역 연고자에게 신청자격을 주는 공모사업에 대한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인천의 청년창작자들이 서울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타지역 청년이 인천에서 활동하는 경우를 이야기하면서 ‘인천에서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의 참여기준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더 많은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실험의 장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두 번째 의제 ‘젊은이들은 건강할까?’는 청년창작자들의 불안정한 생계에서 비롯된 건강 악화에 대한 불안감에서 발굴된 의제이다. 젊은이라면 으레 건강하다고, 고생을 사서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풍토에서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고 관심조차 두지 않는 청년들의 생존과 안전에 대한 정책 마련에 질문을 던진 것이다.
마지막 의제 ‘품의가 품위를 지켜주나요?’는 비단 공고문의 용어만이 아니라 증빙 방식, 절차 등 문화 행정 전반에 대한 고민으로 발굴된 의제이다. 고착화된 행정 언어가 청년창작자들에게 큰 장벽이 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 부분이다.

씨름: 매개자의 필요청알못 위원들은 포럼을 마무리하면서 ‘소통의 필요’에 주목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의 여러 세대가 모인 청알못 포럼에서 청년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인한 아슬아슬한 충돌의 순간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포럼을 주로 진행했던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청알못의 청년위원들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경직된 분위기가 다소 불편해 보였고, 장년위원들은 언어에 민감한 청년세대에 대한 부담감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소통의 어려움은 청년문화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방해요소가 될 것이다. 따라서 청년문화활동가와 장년문화활동가의 소통은 반드시 선결해야 할 과제이며 이를 위해 매개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신효진은 인터뷰에서 “청년정책을 주도하는 주인공은 청년들이어야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를 잘 전달해주는 어른들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또한, 2021 인천문화포럼을 갈무리하는 자리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성지수(콜렉티브 뒹굴 연출가)는 “발화할 기회는 많지만 결정할 기회에서 배제된 청년은 과연 주체인가? 안전한 공론장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으며, 토론자 문정은(전 광주청년문화센터 센터장)은 “문화에 대한 이해의 이격으로 인한 기성세대와의 갈등 존재한다.”라면서, 양측을 연결할 매개자 역할의 민간네트워크 조직의 필요를 강조했다.

‘진통’에서 ‘진정한 소통’으로청알못 위원들은 인천 청년문화에 대해 앞으로 고민해야 할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앞서 말한 소통과 매개자와 관련해 ‘인천 청년은 어떻게 인천 장년이 되는가?’,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에게 어떤 브리지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함께 청년문화정책을 만들어 갈 방법은 무엇인가?’와 같은 또 다른 질문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렇듯 2021 인천문화포럼 ‘청알못 시름×씨름’은 청년문화와 청년창작자들이 겪고 있는 불편함에서 출발하여 기성세대와의 소통까지 고민해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모쪼록 인천문화포럼이 진통에서 진정한 소통의 자리로 이어질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되기를, 더 나아가 창의적 질문으로 확장되는 매개자가 되어 인천 문화정책의 토양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효정(全曉靜, Jeon, Hyo Jeong)

2021 인천문화포럼 위원. 연극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인생의 살 만한 가치’를 전해주는 매개자로 살아가기를 실천 중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아름다운 공존과 사람답게 사는 일에 깊이 있게 관여하는 ‘삶을 위한 작업’이 된다는 믿음으로 인천 서구에서 예술로 꿈꾸는 배움터 예술꿈학교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인천의 특성과 시민들의 문화력: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려면

인천의 특성과 시민들의 문화력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려면

한상정(2021 인천문화포럼 위원)

‘인천의 특성과 시민들의 문화력(力)’분과의 주제 영역은 ‘인천의 특성’과 ‘시민문화력’ 두 가지이다.
인천의 특성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인천의 다양한 성격 중에서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을, 연구하고 교육과 행정과 예술과 산업 같은 다양한 차원과 연계시키고 시민이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만들면서 중요하다는 공감대의 확장을 통해 점차 단단한 정체성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보았다. 기존에 제기되었던 ‘환대’, ‘디아스포라’ 같은 키워드들도 각자 인천의 중요한 특성을 보여주지만 우리는 현재 주목하고 있지 않으나 중요하게 키워나가야 할 성격으로 ‘해양성’을 꼽았다.

인천시 확장축의 중심은 분명히 바다였다. 현재의 중구와 동구 지역을 중심에 두고 내륙으로 확장된 측면도 있지만, 매립이나 경계 조절을 통해 바다 쪽으로 확장된 부분이 훨씬 더 광대하다. 바다는 가장 ‘인천다움’을 내보일 수 있는 가치자원 중의 하나이다. 시민이 바다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가를 제대로 조사한 바 없어서 잘 알 수 없으나, 교육이나 행정의 영역에서 바다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건 분명하다. 우리에게 일상적인 지도(그림 1)가 대표적이다. 육지를 중심으로 서술할 뿐 바다는 잘려있고, 백령도나 연평도는 네모 칸 안에 별도로 등장한다. 이런 지도를 반복적으로 계속 보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육지는 중요하지만 바다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필요에 따라 잘라버릴 수 있다는 의식이 생겨나지 않을까.

1. 인천시 표기 방법. 바다를 자르고 있음
(출처: 대한민국국가지도집 1권, 2019)
2. 백령도까지 포함하고 바다를 살린 지도
(출처: 인천광역시 GIS 플랫폼)

그림 2의 지도처럼, 인천의 육지와 섬을 자연적으로 모두 표기하려면 자연스럽게 북한이 드러난다. 저렇게 바다를 잘라 왔던 이유도, 북한을 표기하지 않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마치 인천이 남북 접경지대가 아닌 것처럼, 일촉즉발의 사건들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분단의 엄혹한 현실을 숨기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보자면 인천의 지도에서 바다를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뚜렷한 현존이 공포가 되지 않도록 인천의 바다가 평화의 바다가 되어야만 한다.

해양성을 고민하기 위해 가장 먼저, 육지에서 바다를 보는 육지적 시선만이 아니라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해양의 문화적 자원을 발굴하고 공유하고 공감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천이 바다를 자기의 주요한 기반으로 삼고 그것과 관련된 다양한 교육, 문화, 예술, 관광, 환경, 산업 등 다양한 영역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주제는 어떻게 시민문화력, 인천시민의 문화적 역량을 높일 수 있을까이다. 시민문화력은 시민이 예술을 창작하고 즐기는 정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각자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힘을 뜻한다. 시민문화력의 확장은 우선 행정의 차원에서 ‘문화예술과’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제를, 구체적인 차원에서 문화매개자의 전문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제를 냈다.

전자를 ‘문화부시장이 필요해.’라는 문장으로 담아냈다. 문화예술과의 역량만으로 부족하다는 이유는 주된 업무영역인 예술지원사업들은 시민들의 일상으로 보자면 아주 작은 부분만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멋진 미술관, 훌륭한 공연장에서 좋은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어도 이 순간을 제외한 모든 일상이 경제적 이윤을 위한 시간으로 채워진다면, 생명도 인권도 역사도 필요 없다는 분위기라면, 과연 이런 도시가 문화적일까. 인천시가 장기적으로 문화적인 도시로 변해가려면 도시 전체적인 층위에 문화적 시선이 입혀져야만 한다. 현재 인천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순적이다. 한쪽에선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공동체를 복원하겠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이익 창출을 위해 포구를 매립하고 고층아파트를 올린다. 이처럼 행정부서들의 정책과 사업이 대립적인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시민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문화적인 도시의 지향점이 인천시 전체에 녹아있으려면 문화부시장 정도는 되어야, 문화관광국이건 원도심재생이건 해양환경국이건 도시계획국이건 도시 전체를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게끔 할 수 있고, 시민들 역시 그 안에서 그러한 미래를 지향할 수 있지 않을까.

후자는 시민문화력의 확장에서 문화매개자들을 제대로 활동하게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관점이다. 현재까지의 지원사업은 대부분 한계가 뚜렷하다. ‘문화매개자는 이슬만 먹고산다’는 충분한 인건비나 기획비가 책정되지 못하고 짧은 사업 기간에 비현실적이고 계량적인 계획서와 성과 보고서를 내야 하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문장이다. 이러다 보니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 새로운 시범사업 유형을 인천시나 인천문화재단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인건비나 기획비도 제대로 책정해야 하고 실험성, 참신함, 실패경험에 대한 인정, 그리고 사업지원의 안정성, 최소한의 보고서, 판단에 따른 사업기간의 연장, 사업이 끝난 이후 활동영역의 확장에 대한 지원 등 다양한 고민과 연구가 필수적이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 분야의 특성에 맞는, 문화매개자가 제대로 활동하고 그를 통해 자신도 성장할 수 있는 그러한 사업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실험성과 실패가능성에 대한 정당성을 찾기 위해 일정 정도 청년층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중 일부는 인천에서 태어나서 타지역의 예술대학이나 다른 대학을 졸업하고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이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게끔 기획할 필요도 있다.

문화매개자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실행하고 그것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면 언젠가는 지원사업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매개자들의 역량도 키울 수 있고 매개자들 사이의 네트워크도 만들 수 있으며, 운이 좋다면 이를 통해 자신만의 회사를 만들어내거나 협동조합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질지 모른다. 이런 역량 있는 문화매개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인천시의 문화적 역량이 풍부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시민문화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인천 곳곳에서 수행하고, 이를 통해 성장한 시민들이 스스로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의 힘으로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들을 모아서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다면, 이런 시민이 많아진다면 인천은 점점 더 오래 살고 싶은 도시가 되지 않을까.

한상정(韓尙整, Han, Sang-Jung)

2021 인천문화포럼 위원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문화대학원/인문문화예술기획 연계전공 교수




예술 및 생활예술 지원정책: 예술지원 정책 문제와 원인

예술 및 생활예술 지원정책예술지원 정책 문제와 원인

임승관(2021 인천문화포럼 위원)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와 개성 있는 차별화는 지역 정부의 지원정책과 실행 방법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정부에 의한 정책 생산과 운영은 한계에 이르고 있다. 현대사회가 점점 이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차별화된 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늘어나면서 복잡하고 중첩된 상호작용 때문에 끊임없는 변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치가 출현하고 부상한다. 다양한 세계관이 혼재함에 따라 새로운 기득권과 사회적 배제, 갈등은 사회문제가 되었다. 더 이상 정부에 의한 정책 생산 독점 방식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낮추고 통제력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 결정 권한은 본질적으로 ‘제재 받지 않는다.’는 고정된 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시민과 문화예술인들은 결국 ‘누가 정책을 만드는 담당자가 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 결과 지역 예술은 정책과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자생성과 자립은 개인의 경제력과 경영능력 탓으로 받아들이는 풍토를 만들었다.
이제, 어떤 정치권이나 행정 정부, 즉 담당자가 들어서도 상관없어야 한다. 문화 현장에서 이룬 나름의 성과와 경험을 안정적으로 키우고 유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누가 정책을 만드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지원 대상먼저, 지원 대상에 대한 문제다. 시민들이 문화 역량을 키우고 다양한 체험을 하는 곳은 생활 속 문화 공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적인 기능을 하는 곳은 대부분 사유 공간이다. 지원 정책은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비영리’ 사업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지원 예산은 주민을 위한 사업 실행비에만 사용할 수 있다. 그 결과 이 사업을 펼치기 위한 기획자의 고민이나 노하우, 주민에 대한 마음과 노력 비용은 사유 재산 취득, 즉 영리 수익으로 구분하여 집행할 수 없다. 공공영역이 채울 수 없는 다양한 시민들의 문화 요구를 해결하며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공간 운영자는 지원대상인 ‘시민’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선정 단체 구성원들도 같다. 사업 활동에 대한 인건비 지급이 어렵다. 결국, 프리랜서 자격으로 참여해야 충분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지역 문화인들이 서로 모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전문 단체 구성을 망설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원 방법비영리 활동을 위한 지원과 문화단체 수익을 위한 지원을 구분해서 목적에 맞는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없는 지원 제도도 아니다. 벤처창업이나 창업진흥원의 공모 설계를 보면 다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나 실패도 용납하며 지원한다. 이렇게 지원단체 수익을 보장하는 지원사업은 인건비와 정당한 기획비를 지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총사업비에 70% 정도는 사업 운영에 사용하고 30%는 수행단체 수익으로 책정하는 비율 정도가 일반적이다. 지원단체 운영자들은 이렇게 내수가 생겼을 때 기존 대행 사업 수행과 달리 비로소 자신의 사업이 되어 책임감을 느끼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지원 범위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은 2010년부터 거의 10년 동안 지원 분야와 예산에 큰 변화가 없다. 지원자들이 매년 연도만 바꾸고 약간 콘텐츠를 수정한 다음 계속 그 지원금을 노리(?)는 (지원금 헌터) 경우가 생기는 이유다. 예를 들어 매년 반복하는 2000만 원짜리 축제 사업, 1500만 원짜리 콘서트 사업 등을 반복적으로 지속하는 공모가 있다. 이 경우 몇 해가 지나면 운영자에 의해 확장이나 변화 등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매년 같은 규모와 수준만 요구하는 지원정책으로는 초기 단계 수준을 반복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성장 없는 반복을 안정적인 지속성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지역 내 많은 문화행사가 충분히 그다음 단계로 성장하고 키울 수 있지만 못하고 있다.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문화행사는 새로 만들거나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에서 단계적으로 성장해야 차별적인 특성을 보일 수 있다.

지원 선정한정된 예산 분배는 제로-섬(zero_sum) 효과를 일으킨다. 경쟁 분위기에서는 자신이 터득한 비결이나 경쟁력 있는 콘텐츠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이는 문화예술 활동가 간 정보교류나 협력 동기를 약화시켰다. 인천을 포함해 몇몇 시도에서 지원자 참여 심사방식을 도입하는 이유다. 하지만 다수의 선택으로 소수의 권리가 무시되는 1인 1투표제나, 전체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절대 평가 방식에 대한 창조적인 대안 모색은 필요하다.
독일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신뢰는 앎과 모름 사이에 위치하는 어떤 상태로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도를 포함한다고 했다. 익숙한 제도를 개선할 때 우려와 망설임의 원인은 신뢰 문제가 가장 크다.
권한은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제도적으로 보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민 의식과 다양한 가치들의 부상과 융합을 긍정적인 선한 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머뭇거릴 수도 없다.

인천문화포럼이 중요한 역할을 자임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실험을 멈추지 않고 신뢰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임승관(林承寬, SoungKwan Lim)

2021 인천문화포럼 위원.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인천에서 20년 동안 생활문화 활동가로 지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생활예술과 지역 공동체 문화 강의를 하고 다른 지역을 다니며 컨설팅과 글을 쓰고 있다.




문화 관련 조사와 아카이빙: 아카이브를 둘러싼 소모와 재생의 혼란

문화 관련 조사와 아카이빙아카이브를 둘러싼 소모와 재생의 혼란

김종현(2021 인천문화포럼 위원)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기록을 만들어 낸다. 최근 코로나의 영향으로 대면 활동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각종 SNS를 통해 소통한다. 그 결과, 어느 시기보다 기록이 대량 생산되고 있다. 인천의 문화현장에서도 다양한 주체에 의해 많은 기록이 생산된다. 그러나 문화를 정량적 수치로 환산하여 발전과 성공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즉 우리는 이제 넘쳐나는 기록 속에 유용한 가치를 지닌 기록을 선별‧보존해야 한다. 아카이브(Archive)는 개인 및 단체가 활동하며, 남기는 수많은 기록물 중 가치가 있는 것을 선별하여 보관하는 장소 또는 그 기록물 자체를 의미한다. 아카이브가 파손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유산으로 보존될 수 있도록 하는 문화적 안목이 필요하다.

기록의 양적 성장의 배경으로는 공동체와 지역활성화, 주민자치가 강조되는 정책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즉 거대 담론의 ‘거시사(Macrohistory)’의 시대에서 ‘미시사(Microhistory)’ 관점으로 전환되면서 지역 정체성과 지역 자원을 중심으로 하는 자생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역발전 모델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아카이빙이 시도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을 ‘시민미디어활동가’, ‘마을기록활동가’, ‘마을교육활동가’ 등 조금은 낯선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 ‘낯섦’은 아카이브를 둘러싼 새로운 흐름 속에서 다양한 고민과 우려를 발생시키는 ‘당연함’이다. 그리고 예술가가 가지는 창작의 고통만큼 지역문화활성화에 반드시 따르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인천의 아카이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장소 아카이브’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근대역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개항장과 차이나타운은 물론이고 신흥동 일대의 도시재생, 경동 일대의 개항로 프로젝트, 배다리 책방거리, 노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화수동과 만석동, 부평의 캠프마켓 등 다양한 주체에 의해 장소 아카이빙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토목과 건축으로 대표되는 사업 추진을 목적으로 하는 전문성 결여와 충분한 시간 및 재정의 부족을 감수하며 동원되는 아카이빙 문제, 동일한 장소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이를 통한 이해와 숙의의 과정이 없이 마치 깃발을 꽂듯 이슈를 점유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발전적 담론의 생성 부재, 아카이빙으로 포장한 외부 거대자본의 젠트리피케이션 조장이라 우려하는 지역 문화활동가의 시각, 아카이빙 주체인 개인과 단체가 보유한 아카이브가 그 중요성과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공유되지 못함으로 일어나는 소모적인 아카이빙에 대한 반성 등 지역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지난 9월 이루어진 인천문화포럼 성과공유회에서 ‘문화 관련 조사와 아카이빙’ 분과는 발제를 통해 이 숙제의 해법 중 하나로 인천기록원을 제안한 바 있다. 서울기록원의 존재는 서울 의존도가 높은 서울의 위성도시의 정체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기도는 에코뮤지엄사업을 일찌감치 진행하면서 아카이빙에 대한 근육을 키워 왔고 이를 경기만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인천 인구의 절반인 강원도조차 강원기록원 설립을 구체화하고 설립 지역으로 춘천의 입지타당성이 지역 이슈로 부상한 상황 역시 인천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카이브의 보존과 관리의 역할은 물론 유용한 활용 및 아카이빙을 위한 거점으로써 아키비스트의 교류와 협업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천기록원의 설립을 위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논의와 실현 가능한 정책 입안은 더 이상 지체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천의 정체성이 뭐냐고 물으면 ‘이거다.’라고 결정지을 수 없는 도시정체성, 바꿔 말하면 ‘문화다양성’이며 이것이 도시경쟁력이며 강점이라 이야기한다. 해양도시 관점에서 ‘인천의 미래는 바다에 있다.’라고 한다. 바다는 그 깊이와 넓이만큼 많은 것을 포용하고 정화시켜주듯 아카이브를 둘러싼 불편한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는 인천의 문화현장이 진일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보자.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통해 심연 속에 잠겨 있는 유용한 아카이브를 수면 위로 올려 함께 나누고 일상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지속가능하게 만들어 갈 다양한 문화시민과 만나고 싶다.

김종현(金宗炫, Kim Jonghyun)

2021 인천문화포럼 위원
사회적협동조합 삶은연극 이사장
연극연출가. 배우




사람 사는 세상의 문화, 서로 존중하는 문화로 나아가는 출발점: 인천중구문화재단 대표이사 나채훈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의 문화, 서로 존중하는 문화로 나아가는 출발점인천중구문화재단 대표이사 나채훈

나채훈(羅彩勳)

1947년 인천시 중구에서 태어나 약 40년간 거주했다. 이후 20년 이상 중구에 집필실과 사업장을 두고 중구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1974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과를 졸업했으며(문학사), 이후 『주부생활』, 『여원』, 『리빙뉴스』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더불어 그는 중국 고전서 연구에 바탕을 두고 리더십 연구에 힘써왔다. 주요 저서로 『정관정요』, 『삼국지신문』, 『카리스마 리더 조조』, 『유비의 리더십』, 『위대한 CEO 제자백가의 경영 정신』, 『중국인의 발상법』, 『1패에 기죽지 말고 2승을 노려라』, 『조조와 유비의 난세의 리더십』, 『누구도 나를 버릴 수 없다』 등 다수가 있다.

2021년 9월 24일 오후, 인천중구문화재단 나채훈 대표이사와의 인터뷰를 가졌다. 인천문화재단 손동혁 정책협력실장의 진행 아래 초대 대표이사에 대한 소개를 비롯하여 앞으로 인천중구문화재단이 구상하고 있는 역할과 사업방향, 그리고 인천의 여러 문화재단과의 협력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손동혁: 인천중구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라는 중책을 맡으셨습니다. 먼저 나채훈 대표이사님에 대한 소개로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나채훈: 고향이 인천이라 옛날부터 오래 봐왔죠. 자유공원 일대의 개항기 때 만들어졌던 건물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외부에서는 중구에 문화유산이 많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란 곳이다 보니 상당히 관심이 많죠. 대학에서 쓴 논문도 인천 중구 조계 제도에 대해서 다뤘어요. 그 이후에는 방송국에 잠깐 있다가 『주부생활』이라는 여성잡지사에 들어갔어요. 제 실력이 있어서라기보다 제 윗사람들이 일찍 관둬서 데스크 생활만 18년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간신문도 만들어보고 했고요. 연극계에 몸담기도 했습니다. 희곡도 써보고 연극연출도 해봤고요. 『정관정요』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게 워낙 잘 팔려서 이참에 인천 가서 책 50권만 쓰면 평생 먹고살겠다 싶어서 인천에 내려왔어요.
막상 내려오니 소설만 쓰는 것도 참 그렇죠. 마침 인천 지역의 후배들이 문화단체 일을 주선해줘서 잠깐 일을 하는데, 제가 어릴 때 보고 자란 곳 도처에 틀린 안내판이 붙어있고 설명도 미흡하더군요. 제가 논문을 조계지에 대해서 쓰기도 해서 중구 지역의 개항사에 대한 강의를 하기 시작했어요. 역사지리를 전공한 입장에서 볼 때, 틀린 것들이 많았습니다. 고치고 강의도 하다 보니까 중구지역에서 인문교육을 11년 정도 하고 있었더라고요. 책도 마흔아홉 권 정도 썼고요. 대부분은 중국 역사에 대한 책들이고, 인천의 역사를 다룬 책은 『인천 개항사』가 있어요. 주로 삼국지 리더십 주제로는 강의를 했고요. 작년부터 다른 구에서 문화도시를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고향인 중구에 문화재단이 설립된다는 소식에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고향에서 펼쳐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대표이사직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손동혁: 그동안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다채로운 문화 활동과 개항장 관련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중에 어떤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인천광역시 중구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나채훈: 아직 인천 중구하면 생각나는 대표 사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의 개항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중구만의 대표사업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예술인들이 중구에서 다양한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적 토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살만한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사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요.

손동혁: 지난 8월 27일에 ‘(재)인천중구문화재단 발기인대회 및 창립총회’가 개최됐습니다. 이제 문화재단 출범을 위한 행정적인 준비를 거쳐 사업의 방향을 구체화하고 직원을 충원하는 등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 할 때로 보입니다. 초대 대표이사로서 인천중구문화재단 사업의 초기 방향에 관한 구상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채훈: 2021년 기준으로 전국에 117개의 기초자치단체 문화재단이 운영되고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보통 5년이나 10년이 넘으면 조직이 처음 의도한 것과 다르게 경직화되는 현상도 있고,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답게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몰되어 가는 경우가 많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초기에는 조직의 안정화에 힘쓰려고 합니다. 인천중구문화재단은 4개 팀으로 출발을 하는데요, 원래는 8개 팀 정도가 필요한 조직인데 예산 문제로 상당히 슬림화한 거죠. 적은 인원에 업무가 가중될 수 있지만, 오히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많이 듣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직원들이 조직이라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려고 하지 말고 부족한 부분을 외부와의 소통으로 채워 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문성 하나를 꾸준히 키워나가는 것, 이것이 조직의 안정화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중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개항문화의 재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1883년에 개항 이후 오늘날까지 얼마나 많은 성장과 발전이 있었습니까? 산업화도 이루었고 민주화도 이루었으니 문화화될 필요가 있어요. 개항을 통해 전달된 근대문화, 또 오늘날 인천의 출발점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문화라고 하는 것을 생산성이나 소비성보다 사람 사는 세상의 문화, 서로 존중하는 문화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의 참여와 소통을 통해 뜻을 크게 갖고 우리 문화재단의 출발에 의미를 두고 함께 노력해야지요.

손동혁: 인천광역시 중구는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갖고 있고, 한편으로는 인천항과 인천공항 등 세계로 열린 두 개의 문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천의 해양성과 국제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향후 이러한 상징성을 구체화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대표이사님의 혜안을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채훈: 문화적인 부분에서만 말씀드리자면 저는 국제성은 가장 중구다운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인드를 형성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종적·종교적 편견에서 벗어나야 하죠. 개항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들은 부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승화시켜야죠. 평생교육의 장을 만들어서 인문학 강좌, 생활문화동아리 활동 지원으로 이어져야 하고, 그뿐만 아니라 시야를 넓히기 위한 추가적인 활동도 만들어야 할 거 같습니다. 또한, 해양자원은 선조들이 남겨준 유산인데 오락적인 요소의 이벤트로만 사용할 게 아니라 각종 교육과 경험을 하게 해줘야 할 것, 자연유산이 소중하고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해안가에서 많이들 발생했죠. 생산적인 면도 포함해서 괜찮은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제2의 종합문화예술회관 같은 것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 내항 재개발의 문제가 있는데요, 그 공간을 좀 더 인문학적 시각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개항문화축제를 내항에서 제대로 했으면 해요. ‘제대로’의 핵심은 우리 주민들이 최소한 과반 이상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참여행사지요. 중구문화재단이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손동혁: 지난 2월 2020년 「해양교육 및 해양문화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는데요, 지금 말씀하시는 해양과 교육, 문화 이런 부분들이 잘 포함된 법률이어서 살펴보다 보니 제도혁신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지금 중구를 보면 영종 지역에 더 많은 분들이 살고 계신 데 상대적으로 그곳이 연령층도 더 낮고요. 하지만 역사문화자원이나 시민들의 문화 환경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여기에 대해 어떤 구상을 하고 계시나요?

나채훈: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영종 지역의 특성은 새로 유입된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죠. 급속도로 한 도시의 인구가 팽창하게 되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폐기물 대책 하나만 해도 따라가기가 어렵죠. 이러한 일은 행정이 예측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요. 영종 지역에서 증가하는 젊은 가정에 대해 두 가지 정도를 얘기하고 싶어요. 중구문화재단은 문화기금을 조성하면서 후원금을 받았을 때 문화예술 인재육성기금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또한, 평생교육에 문화예술교육을 접목한 강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강좌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소수의 인원도 의미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모여서 다양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문화 사랑방을 형성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중구민에게 다양한 인문교육도 필요하겠지만, 좀 더 ‘관계인구’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주지는 다르더라도 일자리가 중구에 있는 사람들, 그 관계인구를 우리가 ‘관계주민’으로 인식해야 해요. 오히려 온종일 다른 지역에서 일하다가 오는 사람보다 훨씬 중요한 주민일 수 있거든요. 이런 분들하고도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방 체험과 같이, 역사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자세한 부분은 앞으로 중구문화재단 임직원들과 토의를 거쳐 구상을 다듬어보려고 해요.

손동혁: 인천에는 인천문화재단, 부평구문화재단, 인천서구문화재단, 연수문화재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 초 출범을 목표로 남동구문화재단도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화재단 간의 역할 분담과 협력방안에 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채훈: 아무래도 인천문화재단을 중심으로 각각의 기초재단들이 협심해야 할 텐데 대표이사의 임기가 잘 맞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가 있겠지요. 지방자치의 문제이기도 한데 임기제의 장점이나 정년제의 장점을 제대로 못 살리고 자꾸 단점만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되면 좋은 계획을 세워도 진행되기가 쉽지 않죠. 하나의 뼈대를 세우고 거기에 계속해서 살을 더해 가면 좋은데 이어지지 못하면 용두사미가 될 위험이 커요. 그래서 저는 일차적으로 인천 지역문화재단의 직원들이 모인 하나의 단체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임기제인 대표들은 뒤로 빠져서 앞으로 오랜 시간 일할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구상을 갖고 인천의 문화를 만들어가게 하는 거죠. 문화재단들이 연계 협력할 수 있도록 재단의 대표들은 지원을 하고요.

손동혁: 여러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나채훈: 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데에 아직도 우리 사회는 문화의 양적 팽창과 질적 향상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아요. 복지문제도 그렇고요. 어떻게 보면 문화복지가 누군가에게는 생명수이기도 한데 별것 아닌 돈 낭비라는 인식이 있죠. 공항이나 단지 조성 등에 들어가는 돈은 상대적으로 어마어마하지만 그러한 돈을 투자하고도 제대로 성공한 일이 없었어요. 인천에서도 그렇게 터무니없이 사용된 재정 지출도 많고요. 그런데 문화예술에 쓰는 돈은 꼭 낭비하는 것처럼 말하며, 예술이나 문화가 만들어낸 콘텐츠를 생산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일까지 가볍게 여기는 건 문제가 많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부터 제대로 해주고 그랬으면 합니다. 앞으로 중구문화재단이 앞장서서 뭔가를 좀 할 수 있을 때 많이 격려해 주셨으면 하고요, 도와주시면 고맙겠어요.

인터뷰: 손동혁(인천문화재단 정책협력실장)
정 리: 박준혜




프로젝트그룹 노니〔noni〕, 경계를 넘어 소통의 장을 펼치다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프로젝트그룹 노니〔noni〕, 경계를 넘어 소통의 장을 펼치다

홍봄(기호일보 사회부 기자)

노니〔noni〕, ‘노닐다’, ‘놀다’, ‘play’의 의미로 소소하게 노는 것에서 시작하여 일상을 다채롭게 채웁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이 모여 말랑하고 유연한 상상을 펼치고 새로운 예술적 실험을 추구하는 문화 예술 크리에이터입니다. 사회적으로 정해진 틀에 한정 짓지 않고 끊임없이 경계를 벗어나며 A와 Z를 연결해 주는 ‘중간자’로서 소통의 장을 만듭니다.

〔noni〕는 동갑내기 디자이너인 정한결(26)씨와 이승나(26)씨가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한결 씨는 시각 예술 디자이너이자 사용자 경험(UX)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고, 승나 씨는 공간 예술 디자이너이자 공간 설계 디자이너다. 동시에 프로젝트 기획자이기도 한 두 사람은 20대 초 인연을 맺은 이후 줄곧 자연스럽게 공동 작업 이야기를 해 왔다. 함께 작업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올해 연수문화재단의 청년예술지원을 계기로 실현됐다.

프로젝트 그룹을 결정하기로 한 두 작가는 활동의 중심점이 될 브랜딩에 가장 공을 쏟았다.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자 중심점이 〔noni〕이다. ‘Non of I’ 약자로 ‘내가 없다’, ‘내가 아니다’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우리말로 ‘노니’라는 발음을 가진다. 이는 하나의 정체성에 묶이지 않고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질 수 있음을 말한다. 또한, 수많은 n명의 사람들 또는 우리 크루의 시작인 n과 n의 콜라보를 뜻한다. 한결 씨는 “요즘 ‘본캐’, ‘부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예술활동과 일을 병행하지만 두 가지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원동력이 됐으면 했어요. 그럴 때 더 창의적인 사고가 나올 수 있고 일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죠.”라고 〔noni〕를 설명했다.

《P.P.L Project》 개요

〔noni〕의 첫 프로젝트인 《P.P.L Project》 역시 개인들의 경험에서 시작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이다. 승나 씨는 “프로젝트를 고민하면서 불안정한 시기에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면서 다가가기로 했어요. 우리는 늘 불완전하고 애매모호하며 잡다한 고민, 걱정, 불안과 함께 위태로운 경계에 있잖아요. 불완전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경계를 벗어날 수 있고,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P.P.L Project》는 소소하게 노는 것에서 시작하여 지루한 일상을 다채롭게 채우고(PLAY), 일치하는 생각과 답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 나와 다른 관계의 엇갈림과 접속에서 소통하며 생각의 환기를 유도한다(PEOPLE). 마지막으로 사람을 레이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다양한 층이 얽혀 있는 유기적인 공간을 만든다. 위계가 없는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지향한다(LAYERS).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 전시로 구성된다. 첫 번째 전시인 <잡동산이_아! 그것을 버리지 마시오>는 10명의 참가자에게 일주일 치 미션지를 택배로 보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공간에서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게끔 했다. 취업준비생이나 이직을 고민하는 등 불완전한 경계에 있는 청년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미션을 수행하며 잡동사니에 대해 자유롭게 기록했다. 한결 씨는 “잡동사니는 잡다한 것이 한데 뒤섞인 것, 또는 그런 물건을 말해요. 이번 프로젝트는 각자의 잡동사니 사물에서 출발하여 세간에 알려진 이야기가 아닌, 개인의 ‘비공식적인 이야기’를 담아 가치를 찾아가는 작업이라 할 수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전시인 <Blur-Blah>는 익명의 대상들에게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나의 사랑은 어떤 모양일까요?’, ‘나의 사랑은 어떤 색깔일까요?’라는 질문에 80~90여 명이 답한 결과는 놀라울 만큼 서로 달랐다. 승나 씨는 “사랑은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입니다. 사랑의 정의할 수 없는 특성은 불완전한 우리와 닮아 있어요. 비가시적이고 추상적인 사랑의 정의, 모양, 색깔에 대하여 질문하고 완전한 답을 찾으려 애쓰지만, 역설적이게도 결국 정해진 정의도, 모양도, 색깔도 없음을 알게 되죠.”라고 설명했다.

이 전시를 어떻게 온라인상에서 구현시켜낼지가 현재 〔noni〕의 주된 고민이다. 참여자들이 단순히 전시를 보는 것이 아닌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쌓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전시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N월 27일에 온라인 전시를 오픈할 계획이다. 두 사람은 이번 전시가 비대면 시대에 쉽고 재밌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또 주제를 기획해 단기성, 중장기성, 장기성 프로젝트를 진행할 생각이다. 요리사나 음악가 등 타장르 작가들과 협업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수많은 n명의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그룹명처럼 더 재미있는 주제를 찾아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 이렇게 타 장르 작가와 교류를 구상할 수 있었던 것은 연수문화재단의 도움도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지역 작가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이 열려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결 씨는 “작가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재단에서 워크숍을 열어 지역 문화 활성화에 대한 작가들의 의견을 꾸준히 듣고 있어요. 경험이 많지 않은 청년 작가에게 재단은 믿을 수 있는 안식처이자 앞으로 예술 활동 기반을 마련하는 ‘시작점’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두 작가에게 예술의 의미를 물어보자 한결 씨는 ‘일상이자 삶의 일부’라고 정의했다. 그는 “예술이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됐을 때 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을지 진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전업 작가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 삶과 별개라고 할 수 없고 개인 작업도 계속하고 있죠. 그렇게 보면 보고 느끼는 모든 일상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표현했다. 이어 승나 씨는 ‘누구나 할 수 있고 항상 새로움을 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승나 씨는 “예술이 어렵고 고지식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하면 그게 예술이 될 수 있죠.”라고 강조했다.

두 작가는 인천지역에서 문화예술이 보다 꽃피기 위한 제언도 덧붙였다. MZ세대인 두 사람은 젊은 세대가 ‘감각적이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문화생활이 활발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지역 대학생들을 유입시키기 위한 영상 플랫폼이나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한다. 인천의 문화에 대해 풀어내는 과정에서 새롭고 파격적인 방식을 도입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두 작가는 “부모님과 친구같이 지내는 MZ세대는 자신이 감각적이다 생각하면 가족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홍보방식을 고민하고 전문 인력을 활용해 유입시키려는 노력을 하면 파급력이 클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비어 있는 임대공간을 이동하며 팝업 전시를 여는 등 어느 도시에서도 하지 않는 기획들을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진행/글 홍봄(기호일보 사회부 기자)




무목적성 기념비에서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의 여정: 2021 트라이보울 초이스 선정전시 《축적 새김 확장》

무목적성 기념비에서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의 여정2021 트라이보울 초이스 선정전시 《축적 새김 확장》

정수경(전시기획자)

바다를 비우고 땅을 다지며 형성된 도시에 (눈에 띄는 동시에 주변과 조화되지 않는) 트라이보울만큼 이 땅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건축물이 또 있을까.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스스로를 ‘Flâneuse’(방랑자)로 여기며 이곳, 저곳에 켜켜이 새겨진 도시/건축 미감을 탐구해 온 필자는 몇 해 전에 발견한 이 난해하고도 아름다운 오브제를 처음 만난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2014년 인천 프랑스문화원 알리앙스프랑세즈의 기획으로 진행된 재즈 공연에 어시스턴트로 참여하면서 트라이보울에 방문했다.)

트라이보울 전경 ⓒ트라이보울

1. 볼록한 배의 배꼽 안으로 진입하기움푹진 콘크리트의 부피감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출입구를 통해 건축물 내부로 향하는 과정은 마치 ‘부른 배의 배꼽으로 진입’하는 느낌을 자아낸다. 어릴 적 읽은 걸리버 여행기의 주인공처럼. 배꼽으로 진입한 공간 여행자는 낯선 터널과 같은 깊고 굴곡진 계단을 만난다. 계단을 올라 그 끝에 펼쳐진 세상은 온통 회색이던 콘크리트 덩어리 사이에 펼쳐진 세상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내부에서 느끼는 당황스러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건축의 ‘켜’라는 개념을 살펴봐야 한다.1) 트라이보울 내부 공간은 이 ‘켜’가 얇다. 즉, 부른 배에 트여있는 작은 틈으로 진입하면 1층의 좁고 긴 터널(과 같은 계단)을 지나게 된다. 이 공간의 사용자가 계단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 순간 곧바로 3층을 마주한다. 역으로, 3층 대공간에서 내려다보면 2층과 1층의 구분이 어렵다. 층간 구분이 어려운 트라이보울을 공간의 켜가 얇다고 말한다. 거인의 배꼽으로 진입한 사용자는 익숙한 물리적 감각을 전복하는 새로운 건축적 체험을 제공받는다. 트라이보울을 체험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잊지 못하는 점은 바로 이 난해하고도 아름다운 공간을 직접 걸었기 때문이다.

트라이보울 입구 ⓒ정수경

2. 무목적성 기념비자본주의의 바이블인 합리성에 따라 지어지는 모든 건축물은 ‘네모의 꿈’ 속에 있다. 네모난 방, 네모난 건물, 네모난 계단, 네모단 복도 속에. 버려지는 공간(Dead space)이 생길 수밖에 없는 원형의 건축은 평당 이용면적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공간 논리에는 적합하지 않다. 합리성에서 비켜 나간 트라이보울은 <2009 인천 세계도시축전>의 일환으로 설계됐다. 당시 인천시에서 제시한 설계 기준은 단 하나, ‘입체적인 공간 체험이 가능할 것’이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불룩한 배로 들어가는 느낌을 자아내는 트라이보울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건축 설계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3천 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오페라 하우스를 짓고 싶다면 음향시설과 관람객 군집의 동선을 유기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설계의 주안점인데, 트라이보울은 ‘목적이 없는’ 건물이었기에 설계과정에서 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유걸(b.1940-)은 제안된 프로그램이 없기에 기존의 건축의 규칙들에 완벽하게 ‘반’하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보통의 건축은 고정된 넓은 밑면을 갖추고, 윗면으로 올라가면서 뾰족하게 혹은 비틀어서 모양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 대성당과 같이. 유걸은 이 아주 오래된 건축의 명제를 뒤집어, 좁은 밑면에서 넓은 윗면으로, 고깔 모양이 뒤집어진 역 쉘(易-shell)구조를 완성했다. 유걸은 세계 최초 역셸구조 콘크리트 건축을 설계했고, 포스코 건설과 비정형 디지털 건축연구소 WITHWORKS와 함께 시공에 성공했지만, 어떻게 사용될지 정해지지 않은 트라이보울은 결국 무목적의 기념비, 송도의 도시 미감을 돋보일 랜드마크로서의 역할만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었다. 그러나 무목적성 기념비는 곧 자본의 논리에서 한 켠 떨어져 있는 ‘예술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보통 미술관 건축은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예술을 담는 목적을 띄므로 데드스페이스와 보이드(void, 커다란 빈 공간) 사이를 넘나드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물랑 대성당 프로젝트 정면부 입면도 ⓒCentre historique des Archives nationales – Atelier de photographie Tri-bowl ⓒiArc architects

3. 비정형 공간에서 일 벌이기새로운 공간론을 탐구하는 전시 《축적 새김 확장》2)의 기획안은 오랫동안 머릿속 한 폴더에 저장되어 있던 트라이보울의 건축적 체험에 기반을 둔다. 이 낯선 경험이 무엇인가 오랫동안 고민해본 끝에 이 공간을 고대 그리스 공간이론인 ‘카오스(Chaos) 이론’3)을 빌려 새롭게 정의해 볼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는 세상의 근원이 카오스에서 창조됐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는 흔히 혼돈으로 번역되는 이 카오스는 시원적(始原的)인 심현 혹은 갈라진 ‘틈새’로서, 하늘과 땅과 같이 이미 존재하는 두 개의 사물 사이의 열린 ‘빈터’이다. 그 작은 틈에서 필요한 어떤 것들이 – 예를 들면, 해와 달, 산과 물, 낮과 밤처럼 – 나름의 우선순위를 두고 탄생한다. 즉 카오스는 비어있는 무한의 공간이 아닌, 자신을 채울 것을 예지하는 공간이며, 그 자체가 무(無)인 것이 아닌 그 속에서 사물들을 생성하는 독창적인 활동들이 나타나는 갈라진 틈새이다. 필자는 카오스의 ‘빈틈’을 위에서 언급한 ‘거인의 배꼽’으로 상정한다. 배꼽 안으로 들어온 용감한 창작자, 관람자 그리고 기획자들의 행위에 따라 트라이보울의 둥근 공간이 공연장으로 때론 마켓으로 때론 전시장으로 자유롭게 변모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수봉마을’로도 변모했다.4) 무목적성 기념비의 조형 속에 건축가가 열어 놓은 켜가 얇은 대공간은 문화예술공간의 목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 아닐까. 건축사 연구자 겸 전시기획자인 필자는 이곳을 ‘카오스’에 비유했지만. 이 비정형 공간은 더 많은 일을 벌일 곳으로, 더 다양한 개념으로 정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2021 트라이보울 초이스 선정 전시 《축적 새김 확장(Accumulation Sgraffito Expansion)》
(트라이보울 3층 전시장, 2021.8.19.~9.17.) /좌 ⓒ트라이보울, 우 ⓒ정수경

건축가 유걸은 트라이보울을 짓고 난 후 평생의 건축관이 변화했다고 한다. 목적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고. 건축의 목적은 건축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용기 있는 공간 점유자가 정해나가는 것이라고. 한 건축가의 공간 실험과 문화예술공간으로서 10년간 트라이보울이 쌓아 온 실험 결과는 지금, 위드 코로나 시대에 재평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집이라는 공간이 상황에 따라 오피스로, 헬스장으로, 학교로, 카페로 전환되고 있는 지금 이 비정형의 공간을 비가시적인 설계도를 이용해 쪼개거나 덧붙여 다양하게 사용했던 예술가들의 실험은 그 어떤 레퍼런스보다 중요하니까 말이다.

<각주>

  • 1) 사전적 정의로는 포개어진 물건의 하나하나의 층이라는 뜻을 지니는데, 건축에서는 한 층과 층의 레이어를 말한다.
  • 2) 필자는 전시를 통해 여든의 유걸의 건축 실험을 재조명하고 건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강준영, 김재준, 배대용의 축적하고 확장하고 새기는 예술적 행위를 트라이보울 내부로 가져왔다. 합리성에 기반한 기존의 물리적 건축문화를 선회하며 비물리적 층위의 공간론을 탐구했다.
  • 3)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주로 카오스를 부정적인 개념으로 인지하지만,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카오스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떤 공간 개념이었다.
  • 4) 공연 <수봉산방>(2021.9.4.)은 트라이보울의 역셸 구조를 수봉 공원의 언덕처럼 응용해 관람객들의 움직임과 참여를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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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는 트라이보울 초이스 2021 선정전시 《축적 새김 확장》을 기획하면서 리서치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새로운 공간론을 실험하는 본 전시는 끝이 났지만 다음의 두 영상을 통해 기획자와 작가들이 축적하고 새기고 확장한 낯선 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다.

렉쳐 콘서트 <트라이보울과 유걸: 비정형 콘크리트 속 부유하는 공간>
(출처: 트라이보울 유튜브 계정)
《축적 새김 확장》 전시 영상
(출처: 트라이보울 유튜브 계정)

정수경 (郑樹耕, Jung SooKyeong)

공간에 담긴 시간성과 미감을 읽어내는 것을 좋아하며, 건축적 체험을 글과 전시로 만들어 내는 일을 한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파리 1대학 Panthéon Sorbonne 미술사학과 학사, 미술사·건축사 석사를 졸업하고, 건축사학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있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건축큐레이팅 학예연구원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리서치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한국에서는 독립기획자 및 연구자로 장소성에 대한 연구물을 집필중이다. Instagram계정 (@mee.mee.jung)에서 기획의 단상들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변화의 바람을 타고,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

변화의 바람을 타고,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

장은영(인천서구문화재단)

일몰이 아름다운 공간으로 널리 알려진 ‘정서진’은 광화문의 정서쪽에 위치한 나루터라는 의미로 인천광역시 서구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올해로 네 번째 무대를 갖는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은 정서진의 일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클래식 음악 축제이다. 해지는 가을 저녁, 넓은 잔디밭에 앉아 수준 높은 음악을 즐기는 야외형 무대로 시작된 축제는 전염병의 시대를 정면으로 관통하며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급격히 맞이했다.

제2회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 2019

늦여름을 배경으로 펼쳐지던 일주일간의 대규모 축제에서, 여름에서 가을까지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축제로 변화했다.1)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던 대규모의 ‘야외 축제’에서, 깊고 풍성한 클래식 음악을 선보이는 ‘음악제’로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메인 프로그램에서 그 변화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개릭 올슨(Garrick Ohlsson)의 피아노 리사이틀 무대인 <전야제>로 축제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킨 후, 이어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솔리스트들이 모인 실내악으로 <개막 공연>을 선보였는데 두 무대 모두 좋은 평가를 얻었다.

국립오페라단과 함께한 <오페라의 밤>에서는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하이라이트로 관객들의 신선한 반응을 얻었다. 클래식의 문턱을 낮춘 <피날레 콘서트>에서는, 홍진호(첼로), 존노(테너), 박현수(바리톤), 고상지(반도네온), 김순영(소프라노) 등 클래식 스타와 디토 챔버 오케스트라가 만나 대중적 클래식 곡들을 연주했다. 이 무대는 예매 오픈 1분 만에 매진되고, 온라인 실시간 관람 5천 명을 달성하는 등 국내 클래식 팬들의 많은 호응을 얻으며 인천광역시 서구와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의 존재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제4회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 2021 <피날레 콘서트>

지역에 더욱 깊게 뿌리를 내리기 위한 부대 프로그램들도 풍성하게 준비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클래식 및 크로스오버 연주단체들의 찾아가는 무대 <서로 人 클래식>과 인천의 미래 피아니스트를 발굴하는 <서곶 학생 피아노 콩쿠르>2), 성장 가능성이 높은 어린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대가의 1:1 집중 레슨을 제공하는 <마스터 클래스>, 축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가능성을 함께 토론하는 ‘포럼’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현재 진행 중이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10월에는 축제의 여운을 즐기는 <앙코르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이 개최된다. 인천 서구의 아파트로 찾아가는 <발코니 콘서트>와 일상 곳곳을 찾아가는 <문화충전소 콘서트>3) 그것인데, 프랑스 샹송, 왈츠에서 재즈까지 보다 넓은 클래식 스펙트럼을 선보일 예정이다.

외연을 확장하기 어려운 시기일수록 내면에 집중하게 된다. 올해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은 그런 의미에서 내실을 든든히 다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근거로 축제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이미지 작업을 들 수 있겠다. 정서진의 낙조에서 모티프를 얻은 ‘해’와 ‘일몰’, ‘바다’의 흐릿한 경계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순환하고 연결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는 단절로 대변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올해 축제의 주제로 선정한 ‘연결된 우리’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압축하여 축제의 로고가 제작되었는데, 디자인의 일체감을 주고 축제의 상징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차년도 혹은 그 이후의 축제에서 다양한 변주로 이어지며 축제 메시지를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제4회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 2021 이미지 및 로고

코로나19로 ‘당겨진 미래’를 실감하는 요즘, 무대가 보다 넓은 세계로 확장되었음을 느낀다. ‘극장’ 또는 ‘야외’ 공간이라는 가시적 세계뿐만 아니라, 온라인 세상에서 더 넓게 연결되고 소통하는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다. 온라인-비대면 관객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더 큰 목소리로 축제에 참여하며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적극적으로 제시한다.

지역으로도 한층 더 깊어졌음을 알게 된다. 팬데믹 상황으로 국가 간 물리적으로 단절이 강화되어 해외 연주자 초청이 어려워지면서, 국내의 실력 있는 연주자, 나아가 지역의 연주자들을 발굴해내고자 하는 노력이 확대되었다. 금년에는 단순히 지역을 근간으로 활동하는 연주자들을 찾는 데 그쳤다면, 차년도부터는 이들과 함께 다채로운 무대를 제작하여 인천 서구만의 클래식 축제의 개성을 더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팬데믹으로 손에 잡히는 물리적 관계와 경험이 귀해지면서, 정제되고 수준 높은 경험을 원하는 관객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좋은 음악과 남다른 경험을 원하는 관객들이 점차 증가할 것이다. 지역의 특수성은 귀한 경험이다. 지역에서 끌어올린 메시지가 음악과 축제를 이룰 때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참조>

  • 1) 올해는 8월 27일에서 10월 31일까지 인천서구문화회관과 인천 서구의 문화공간들, 그리고 인천서구문화재단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보다 넓고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 2) <서곶 학생 피아노 콩쿠르>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의해 취소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상당한 인원이 참가 신청을 하여, 콩쿠르에 대한 지역의 높은 수요를 확인할 수 있었다.
  • 3) <문화충전소>는 인천광역시 서구가 추진하는 문화정책사업으로, 지역의 유휴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여 일상 속에서 구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생활문화 활동 기반을 제공하는 목적을 지니며, 2021년 기준 100곳의 문화충전소가 지정 및 운영되고 있다.

사진제공: 인천서구문화재단

장은영(張恩永, Jang Eunyeong)

인천서구문화재단 공연예술축제 담당.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 박사과정.
경험하기·글쓰기·걷기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축제를 사랑하지만 다양한 시도에 열려 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최지은(미추홀학산문화원)

몇 년 전 친구는 궁금해하면서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는 거라고?”

내가 뭐라고 답했을까. 집에 가는 내내 그 질문을 곱씹었던 것만 생각난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인데도 스스로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공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일이라면 뭐든 좋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막연히 ‘공연’의 길만 걸어온 나에게 미추홀학산문화원은 ‘문화’라는 넓은 길을 안내해준 길잡이였다. 공연만이 아닌 문화의 길에 발을 내딛는 업무가 주어진 것이다.

인천광역시 2021년 유휴시설 생활문화공간 지원사업 <학산시민문화마당>은 나의 첫 디딤돌이다. ‘나와 이웃, 그리고 우리 동네’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학산문화원의 공간에서 판화, 인형, 필름카메라, 그림 등 시각특화예술 수업을 진행한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 이웃과 관계 맺으며 사라져가는 우리 동네를 기록하는 이 시간은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만 머물러있지 않는다는 게 참 좋았다.

2021년 유휴시설 생활문화공간 지원사업 <학산시민문화마당>

일상에서 쉽게 생활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를 통해 나와 이웃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마을과 가까워지는 시간이 된다. 평소 같으면 쉽게 지나쳤을 대문이 예쁜 집, 잎이 큰 나무, 가파른 언덕, 좁지만 매력 있는 골목길 등 우리 동네를 관심의 눈으로 보니 빠르게 걷던 발걸음을 멈춰 바라보게 된다.

그다음 디딤돌은 2021 미추홀구온마을학교 사업인 <으라차차! 수봉산탐험대>이다. 미추홀구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미추홀구의 중심인 수봉산의 역사, 문화, 자연을 체험시켜주며 이 경험을 통해 우리 동네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만들어 주게끔 도와준다.

2021 미추홀구온마을학교 <으라차차! 수봉산탐험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수업을 준비하는 6명의 시민강사, 운영하는 문화원, 지원해주는 미추홀구까지 참여하는 아이들을 위해 알게 모르게 많은 곳에서 힘쓰고 있다.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바라보자면 마음속에서 따뜻함이 올라온다. 이 수업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기를,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았을 때 기억의 조각 중, 이 수업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이 디딤돌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디디고 오르내릴 수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 걸음들이 헛되지 않다고 장담한다. 나 홀로 오르내리는 것이 아닌 내 앞에 걸어가고 있는 선배와 옆에서 함께 동행하는 동료와 그 뒤를 따라올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음이 모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에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이다.

어느 순간 ‘공연’에 빠져들어 이 길을 선택했고 깊은 생각 없이 걸어가니 ‘문화’에 도착했다. 나는 그렇게 우연한 기회로 공연문화팀에서 지역문화팀으로 옮기게 됐다. 지역문화에 더 힘쓰라는 신의 뜻이라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미추홀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토박이로서 미추홀구를 향한 애정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일을 사랑하지 말고 사랑이 일하게 하라’는 말처럼 내 안에 피어나는 애정으로 미추홀구를 위해 일하려 한다. 물론 나의 노력이 큰 영향을 불러오긴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내다 보면 조금 늦더라도 어딘가에서는 새싹이 돋아날 것이라 믿는다.

이제는 몇 년 전 친구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사진제공: 미추홀학산문화원

최지은(崔智恩, Choi Ji Eun)

미추홀학산문화원 지역문화팀 사원
전) 한국연극협회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