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람 되기, 인천사람 만들기 – 인천SK행복드림구장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3월이 되자 다시 포털의 스포츠 페이지에 프로야구의 각 팀의 올해 전망이나 선수의 각오가 담긴 인터뷰, 스프링캠프에서의 연습경기 결과와 같은 기사들로 메워지고 있습니다. 2018년의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조금 가볍게, 야구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프로야구는 급격하게 팬이 늘어났습니다. 2006년 300만 명을 간신히 넘긴 관중 수는 2011년에는 680만 명에 도달했고, 최근 2년간은 800만 명이 넘는 관중이 매년 야구장을 찾으면서, 국민 스포츠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인천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6년 야구장을 찾은 관객이 331,143명이었던 것에 반해, 2007년엔 곧바로 두 배에 가까운 656,426명이 이른바 ‘직관’을 했습니다. 2012년에는 인천의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한 해 관중이 100만 명을 넘기도(1,069,929명) 했습니다. 인천은 꾸준히 80만 명을 상회하는 관중을 동원하는, 나름 ‘빅마켓’이 된 것입니다.

프로야구는 탄생한 이후 꾸준히 사랑을 받았지만 2010년대의 인기가 유례가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천 야구도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의 자부심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 구단의 역사가 다사다난하기도 하였고 전통적으로 스몰마켓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던 것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10년간 급상승한 프로야구의 인기를 보며, 과거와 달라진 도시와 야구, 더 나아가 도시와 프로스포츠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1982년 프로야구의 탄생, 1983년 프로축구와 프로씨름의 시작이 당시 독재정권에 의한 3S 정책의 일환이며, 정치적 목적이 있었음을 다시금 부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여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확실한 것은 국가가 직접 지역과 운영 기업을 선정하고, 구단의 운영까지 개입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여가의 시간과 공간을 국가가 원하는 한 지점에 몰아넣음으로써, ‘야구를 보는 즐거움’을 ‘정권에 대한 만족감’으로 치환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 이유로 누적되어 온 지역감정이 각 지역에 하나씩 배분된 야구에 투영된 것은 어쩌면 당시 독재정권의 목적이 성공적으로 달성되었음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지역감정을 간혹 벌어지는 선거에 드러내기보다, 매일 벌어지는 역동적인 야구에 투영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짐작하다시피, 인천야구의 역사는 이러한 틀로 읽어내기 조금은 애매하지요. 인천 야구는 오랜 역사와 우수한 고교팀의 인기를 갖고도 프로 구단을 운영할 기업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어야 했고, 그래서 오랜 시간 여러 기업으로 팔려야 했으며, 한때는 구단이 도시를 두고 떠나고 그 빈자리는 어제까지 다른 도시의 구단에서 뛰던 선수들이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 인천을 대표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천의 프로야구 역사에서 대부분 시간은 영광보다는 아쉬움과 빈약함으로 기억되고는 했습니다.

게다가 인천에서 프로야구를 소비할 계층의 사람들은 인천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요. ‘외지인의 도시’ 인천에는 인천에서 태어난 사람만큼이나 충청에서, 호남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영호남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지역감정과 맞물려, 인천의 야구팀은 인천에 사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많은 인천시민들은 고향의 팀을, 부모님의 고향의 팀을 선택했습니다. 숭의야구장의 청보 핀토스나 태평양 돌핀스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3루를 채운 홈 팬만큼이나 1루를 메운 빙그레 이글스나 해태 타이거즈의 팬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옛 숭의야구장의 경기 모습.
인천시민들은 세대에 걸쳐 야구의 문화와 기억을 공유하기 어려운 역사와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출처: KBSn스포츠 “인천 야구의 기억” 중.  동영상 바로가기▶ )

그래서 현대 유니콘스가 우승을 거듭하던 90년대 후반에도 연간 관중 50만 명을 넘지 못하던 스몰마켓 인천에서의 2012년 100만 관중 동원은 단순히 한 야구단을 운영하는 그룹의 성공으로 보기엔 더 많은 함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레이더스의 선수들을 잔뜩 데려다가 갑자기 인천 야구팀이 되었던 SK 와이번스는 어느덧 인천에 있던 그 어느 야구단보다도 오래 인천에 자리 잡은 야구팀이 되었습니다. 2008년 이후 야구 관중의 계층이 다양화되고 젊은 층과 여성 관중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인천에 옮겨와 산 외지인들의 인천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나의 팀’으로 인천의 팀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인천은 프로야구가 시작되고 25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도시인들 다수의 사랑을 받는 ‘프랜차이즈 팀’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1983년과 다른 것은 지역사회에 프로야구단이 주입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프로야구의 문화 속에서 도시의 사람들이 자신의 팀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SK 와이번스는 프로야구계의 조정에 의해서 인천에 이식된 팀이었기에,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도시에 융화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것은 실은 마케팅의 결과물이지만, 인천의 대중문화의 한 켜를 두텁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들입니다. 지역 연고 선수를 영입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것, 다양한 기부를 하는 등이 있겠지만,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도 이런 융화의 노력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홈런이 나오면 울리는 뱃고동 소리나, 초대형 전광판 위에 장식된 인천의 랜드마크들이 인천의 이미지를 환기시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응원 문화가 자리 잡았음에도 꾸준히 불리는 응원가 ‘연안부두’는 기성세대와 젊은 야구팬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바로 응원 구호인데, 10개 구단 중에 8개 구단이 ‘최강 OO’를 사용하고, LG 트윈스가 ‘무적 LG’를 사용할 때 SK 와이번스는 ‘인천 SK’를 외치지요. 이렇게 함께 ‘인천’을 외치면서, 우리는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쉬움을 느낄 때, 이것을 한 스포츠의, 혹은 한 기업의 성공과 실패뿐만 아니라, 일정 부분 우리 도시의 성공과 실패로 인식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됩니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의 빅보드. 전광판 위에 인천의 랜드마크와 상징적 이미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 출처 :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

「주어진 인천의 풍경들」(인천문화통신3.0 34호)에서 인천의 지방정부는 공통으로 어떤 인천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인천 사람들이 어떤 하나의 정체성을 갖기를 바라는 것일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도시가 야구만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 스포츠의 연고를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수 있습니다. 모든 지방정부는 프로 스포츠를 지원하면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의 증가를 통해 관람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동일시, 함께 관람하는 지역민들과의 유대감 형성과 같은 것을 기대할 것입니다. 이것은 함께 환호하거나, 파도타기를 할 때, 경기 후 돌아가면서 응원가를 부를 때, 버스나 지하철에서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발견할 때와 같이 소소하고 흔한 순간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여가를 즐기다가, 나도 모르게 조금 더 인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글, 사진제공/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김은식, 2003, 『삶의 여백 혹은 심장 야구』, 한겨례출판사.
심은정, 2014, 「제5공화국 시기 프로야구 정책과 국민여가」, 역사연구 26.
유관호,박두용, 2009, 「프로야구·축구 관람객의 연고지 사회인식 요인 분석」, 한국체육정책학회지 13.
임수원,이근모, 2003, 「영·호남팀 프로야구경기가 지역감정에 미치는 영향,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16(1).
한국야구위원회 홈페이지 바로가기▶




구(舊) 세대에 전쟁을 선포하라, 장편소설 『개척자』

『개척자』는 춘원 이광수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무정』의 성공이 바탕이 되어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춘원의 장편 중 유일하게 국한문으로 쓰인 작품이자, 발표 당시 폭발적인 인기와 격렬한 비판을 동시에 받은 소설이기도 하다.

일제의 강제병합 직후인 1910년대 춘원 이광수의 관심은 자유연애․결혼에 대한 주장에 있었으며, 그 핵심은 낡은 것, 즉 구세대와의 투쟁이었다. 이광수는 전작 『무정』에서 영채의 자살을 만류하는 병욱의 논리를 통해 신구세대의 갈등을 드러났다. 또한, 주인공 형식이 영채가 아닌 선형과의 결연을 선택하도록 해 당시 청년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러한 춘원의 입장은 『개척자』에서 한층 격렬해지고 대담해져, 결국 부모세대, 즉 구세대와 전쟁을 벌일 것을 노골적으로 선동한다. 이 작품은, 부모가 정해준 남자가 아닌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의 연애와 사랑,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구세대와의 갈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작가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랑을 반대하는 부모에 맞서 자살을 선택하게 하지만, 그 비극적 죽음만큼이나 자유연애․결혼에 대한 신세대의 입장과 주장은 극적 효과와 함께 정당화된다.

하지만, 당시의 양반, 유림층은 조선총독부와 작품을 연재한 신문사에 연재 중지를 위한 압력을 넣는 등 춘원과 이 작품을 크게 비판했다. 동시에 이 작품은 구도덕에 대한 반항과 자유연애․결혼에 대한 주장으로 당시 전 조선의 청년들을 열광시켰다. 이 같은 작품의 인기는 작품 연재 후 4년 만에 발행된 단행본 판매 추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초판 발행 후 일주일 만에 재판이, 재판 발행 후 보름 만에 3판을 찍기 때문이다. 『개척자』 일제강점기 발행 단행본은 현재 잔존 부수가 많지 않은 희귀 자료인데, 이번에 소개하는 문학관 소장본은 1922년 발행된 초판으로, 국내 유일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글/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사 함태영




김정모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올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활동할 2018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뽑혔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연구와 창작활동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창작지원 프로그램과 발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2018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를 소개합니다.

 

작가 김정모는 서울대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글라스고 스쿨 오브 아트(Glasgow School of Art)에서 순수미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작가는 설치 작업을 통해 여러 사람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한다. 그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어떤 결과물을 제시하는 것보단, 관객들의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작업을 선호한다. 작가가 추구하는 이러한 프로젝트는 작가와 관객, 혹은 관객들 간에 느슨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2018년에 주요 작업 공간이 될 인천아트플랫폼은 지역이 가진 역사성을 상품으로 관광객들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관광지에 위치해 있다. 가공된 역사적 사실은 허구와 실제의 경계에 위치한다. 작가는 이러한 지역의 특성을 이용하여 허구와 사실이 뒤섞인 가상의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볼 예정이다.

Q&A
Q. 창작의 관심사와 내용, 제작 과정에 대하여
A. 주로 설치 작업을 해왔고, 최근에는 관객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형태의 작업을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해오고 있다. <Good bye.> 작업을 하던 2013년 4월에 있었던 일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에 만개한 벚나무 아래에서 본인은 ‘Good bye.’라고 쓰인 LED 간판을 설치하고 있었다. 자리를 옮기며 사진을 찍고 영상을 기록하던 중, 동네 주민 한 분이 지나가다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굿바이라고 써 있네. 이게 뭐하는 거예요?”
나는 “이제 조금 있으면 벚꽃이 지잖아요. 작별인사하는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때 그분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미술이 언제부터 사람들과 멀어진 걸까. 아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무언가가 되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본인은 작업을 통해 미술이 조금은 상관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하고 있다.

Q. 대표적인 작업 소개
A. 아직은 대표작이라고 부를만한 작업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대신 최근에 진행하였던 프로젝트를 말하고 싶다. 재난미술 프로젝트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면서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작년에 한국에 들어와서 작업실을 구하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느꼈다. 그러다 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작업실 비용이라는 경제적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1년 동안 할 일이 생겼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스튜디오라는 공간이 마치 대피소처럼 느껴졌고, 개인적으로 당면한 재난에서 잠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스튜디오를 재난 대피소처럼 꾸미고 사람들을 초대하여 각자가 처한 재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을 가져보았다.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
A. 특별히 한 명의 예술가가 아닌, 지금까지 보고 들은 모든 예술이 작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설치미술 작가인 본인은 공간의 연출과 무대장치를 구성하는 역할을 하며, 관객들 스스로가 제시된 공간에서 보내며 작업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그 시간은 참가자들의 우연적인 구성에 따라 흥미로울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관객들의 몫이다. 모든 이들이 예술 작품을 통해 동일한 미적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작가인 본인도 마찬가지이다.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하여
A. 한국 미술계의 상황이 마치 재난과 같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작가로서 꾸준히 활동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다보면 기억할만한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정보 자세히 보기 ▶




소개합니다.

[소식 1]  인천문화재단  문화정책 논문 공모전 실시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인천의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우수 논문지원을 통해 문화정책 연구를 활성화하고자 “2018년 문화정책 논문 공모(2018.4.2.~5.31.)”를 진행한다.

지난해 1, 2차 공모를 통해 총 5건의 논문을 선정한 인천문화재단 문화정책 논문공모 사업은 상금 지급형식의 기존 공모전 형태에 머물지 않고 선정된 논문이 발전될 수 있도록 전문가 콜로키움을 진행하였으며, 인천 지역 유능한 문화 전문가 발굴·육성과 문화 발전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지난해 전문가 콜로키움을 통해 발전된 5편의 선정 논문 중 2편이 학술지 <IDI 도시연구>에 등재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올해 논문공모전 역시 200만원의 상금 지급, 전문가 콜로키움의 특전과 더불어 목요문화포럼 등 재단 주최 사업을 통해 논문제안 발표 및 성과보고의 기회가 제공할 예정이다. 공모분야는 주제의 제한이 없는 자유주제 부문과 지정주제로 나뉘며, 지정주제는 “인천 문화예술 거버넌스 구축”, “인천지역 문화전문인력 양성 방안”, “2019년 동아시아 문화도시 성공개최를 위한 전략 방안”이다.

정책연구팀(032-455-7136) 

 

[소식 2]  인천미술은행 <신소장품 2017展> 개최

인천미술은행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전시 <신소장품 2017>전이 3월 15일(목)부터 3월 29일(목)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에서 개최된다. 2017년 하반기 공모를 통해 새롭게 구입한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사진, 회화, 조각, 뉴미디어 등 15점으로 인천 미술의 새로운 위상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7년 제11회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공로상’을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인천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한 홍윤표의 작품 <삶>과 자연과 인간의 본질적 의미, 순환론에 천착해온 정수모의 조각 작품<대지의 소리>, 일상의 심리를 드로잉으로 기록해온 청년 작가 윤대희의 <그림자 숲> 등 인천을 거점으로 활동해온 원로작가부터 청년작가까지 다양한 연령의 작가 작품을 선보인다.

또한 시트지를 여러 겹 캔버스 위에 붙이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형상을 그린 후 다시 표면에 빗살무늬 칼집을 내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박상희의 <하버파크호텔>과 인류 보편의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이하는 이탈의 영상 작품<흰옷을 입은 천사(天使), 흰옷을 입은 전사(戰士)>와 같은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인천미술은행 <신소장품 2017>전은 다양한 기법과 소재, 주제를 드러내는 작품 전시를 통해 인천미술의 동시대 단면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전시는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에서 진행되고 관람시간은 12시~18시까지이며, 자세한 정보는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바로가기 ▶ 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공연 정보 및 신청 안내
–  전 시 명: 인천미술은행 <신소장품 2017(NEW COLLECTION 2017)>展
–  전시기간: 2018년 3월 15일(목) ~ 3월 29일(목), 12~18시(월요일 휴관)
–  오 프 닝: 2018년 3월 15일(목), 16시
–  전시장소: 인천아트플랫폼 E1동 창고갤러리
–  참여작가: 고제민, 곽이브, 김순임, 김종오, 박상희, 윤대희, 이기본, 이의재, 이채영, 이탈, 정수모, 조문희, 조은정, 하임성, 홍윤표(15명)

예술지원팀(032-773-3809)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인처너(Incheoner)들과 함께 나눔의 메카, 인천을 만들어갑니다.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정명환 회장

인천문화재단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인천지부와 함께 2017년 한 해 동안 인천에서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을 소개하였습니다. 다양한 환경, 다양한 직업의 기부자들을 찾아뵈며, 나눔과 기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담았습니다. 

오늘은 이번 해 마지막 시간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통해 행복한 인천을 만드는 대표적인 기관,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정명환 회장님을 만나봅니다. 오랜 시간 시민들과 함께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더욱 따뜻한 인천을 만들어가고 계신 회장님의 열정과 헌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Q. 안녕하세요. 정명환 회장님,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9대 회장을 맡게 된 정명환입니다. 저희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사랑의 열매로 많이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모금기관입니다. 모두를 위한 한 번의 기부(One Gift for All)를 모토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모금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분들을 통해 인천 곳곳에 계신,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인천인들을 만나보셨을 겁니다. 인천사람:인처너(Incheoner)라는 단어가 실제 사전에 등록된 단어입니다. 지난해 우리 인천이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인처너(Incheoner)들 덕분에 나눔의 메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역의 나눔문화를 이끄는 회장으로서 벅찬 마음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나눔으로 행복한 인천’을 위해 함께해주시는 모든 분들이 있어 항상 든든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업사회공헌으로 함께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지엠한마음재단 등 모든 기업사회공헌 관계자 분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Q. 인천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오래전부터 지역발전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헌신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천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인천에서 사회 첫발을 디디면서 인천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벌써 50년이 다 되어가니 인천은 저의 제2의 고향입니다. 명지대학을 나와 대한통운에 입사했고 73년도에 인천으로 발령을 받았지요. 45년 전 그때의 인천은 회색 도시였죠. 새마을 운동은 최고조에 달했고, 인천항으로 모든 양곡, 목화를 수입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회사에서 5년 생활을 한 후, 주안역 인근에서 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젊고 에너지 넘치는 청년이 열심히 사업하면서 동네 모든 모임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니 주변 분들이 다들 좋아해 주셨어요. 저희 집 가훈이 도불원인(道不遠人), 사람을 멀리하면 도가 아니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거고 만남이라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이웃을 멀리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게 나누고 베풀며 살다 보니 최초 민선 시의원에 사람들이 나가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싫다고 만류했지만,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도와주신 덕에 초대 시의원이 되었습니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열심히 살다 보니 남들이 좋게 봐주셔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지요.

Q. 이웃과 무언가를 나누고 함께 하는 일에 익숙한 분이셨기에 지역 사회에 큰 뜻에도 함께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타고난 성향도 있겠지만 그 시작은 쉽지 않을 텐데요.
A. 자라온 과정이 필요하죠. 남을 돕는다는 것이 태어나자마자 갖는 습관이 아니니까요. 저는 서울 태생인데 좀 힘들게 살았습니다. 고등학교 재수하면서 채소 장사도 해보고, 대학도 재수하면서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했었죠. 명지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학장님 구두를 닦아 용돈을 벌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집안이 불교 가정인데 대학생 때부터 저는 교회를 다니게 되었지요. 웨슬리 야학에서 3년간 교장을 했었습니다. 아현동, 공덕동 인근에 정말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면서 나눔과 봉사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어렸을 적부터 물질적 환경이 풍부하지 못하더라도 정신적인 자세만은 바르고 진실하게 살자. 행동으로 보여주자.라는 저만의 삶의 자세가 있었어요. 긍정적인 마인드였지요. 인천이 제 삶의 터전이 되면서 자연스레 이러한 삶의 교훈이, 그리고 습관이 이곳으로 옮겨진 셈입니다.

Q. 회장님께서 저희 재단에서 특강을 해주셨을 때, 인처너(Incheoner)를 강조하시면서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바탕으로 시민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말씀하신 것이 생각납니다. 나눔을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애정, 이웃에 대한 사랑이 선행되어야겠네요. 인천사랑운동을 앞장서서 전개하시기도 하셨지요.
A. 인천인 모임에 있어서 ‘인천인’이라고만 쓰는데 저는 ‘인천, 인천인’이라고 두 가지를 항상 함께 쓰고 싶습니다. 인천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인천에 산다고 하면 인천만의 지역 문화와 정서를 공유하고 지역주민으로서의 정주성, 일체성을 갖고 당당한 시민이 되어야겠지요. 인천은 흔히들 다른 지역 출신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어찌 되었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일전에 인천사랑을 주제로 청소년 아카데미를 세 번이나 열었었지요. 교육이라는 것이 그 효과가 당장 나오지는 않지만, 문화예술과 마찬가지로 씨앗을 심는 일이기 때문에 조금은 멀리 봐야 한다고 봅니다. 

Q.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남과 비교하며 사는 요즘 세상에서, 회장님처럼 건강한 가치관을 지니고 계신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회장님 이력 중 한국레크리에이션 협회장을 하신 것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A. 제가 인천에서 레크리에이션 협회 회장은 15년 정도 했었어요. 우리가 살면서 자는 시간이 1/3, 일하는 시간이 1/3, 여가시간이 1/3입니다. 여기서 여가는 레크리에이션, 즉 영어로 리-크리에이션이지요. 즉, 나를 잘 가꿀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걸 잘 활용하면 좋은데, 여기서 문화예술이 여가생활에 절대적이죠. 저 또한 문화예술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연극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30대 후반에 연극을 보러 아주 열정적으로 서울 방방곡곡을 다녔어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조금씩 보고 느껴가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예전에 한참 연극을 보러 다닐 때는 매주 수요일마다 꼭 명동이나 충무로를 갔어요. 지금 유명한 소리꾼, 춤꾼들과 같이 어울리며 문화예술을 가까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Q. 문화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분이시군요. 앞으로 인천문화재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함께 인처너(Incheoner)들이 더욱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천의 나눔문화를 확산시켜 나갔으면 합니다.
A. 오래 전부터 인천의 문화예술을 지켜본 시민 한 사람으로서, 지금의 우리 문화예술을 둘러보면 시민의식이 많이 성장한 걸 볼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이 발전되면 시민들의 삶이 정신적으로 좀 더 풍요로워지겠지요. 앞으로 인천의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 다양한 고민이 함께 수반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이전 회장님들께서 많은 노력을 하셔서 인천의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인천인들을 만나왔습니다. 모금하고 싶은데 선뜻 어느 곳에, 어떻게를 고민하다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위대한 기회를 주자. 생각은 있지만, 현실이 급하기에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전도사가 되자. 자신을 위하고 남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Q. 사회복지와 문화예술이 함께 만들어가는 따뜻한 인천을 상상해봅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회장님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여기는 명예직이고, 참 명예로운 자리입니다. 제가 두 달 동안은 매우 우울했어요. 남들에게 아무리 좋은 일을 권유한다지만 결국 돈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기에, 거절당하거나 하면 상처를 받았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내가 먹고살기 위해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내가 노력하는 것이기에 지금은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으로서 민간복지의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열정과 지혜를 모으고자 합니다. 역대 회장님들께서 만드느라 고생하신 아너소사이어티를 잘 끌고 가면서 한분 한분께 감사드리며 겸손한 자세로 임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이렇게 나눔 문화를 선도하신 분들의 명예의 전당이 저희 사무실에 있습니다. 향후 이 명예의 전당을 더욱 많은 시민들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내보내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좀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인천의 나눔을 선도하고 계신 분들의 모습을 나누고자 합니다.

‘누구나 삶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삶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눔에 참여하는 우리 주변의 보석 같은 분들이 계시지요’. 올 한 해 동안 아너분들을 만나 뵈며, ‘참된 어른’이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따뜻하고 깊은 마음씨와 삶에 대한 열정을 한가득 품고 있는 기부자들은 주변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는 우리 사회의 보석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유난히 추운 올겨울, 더욱 행복한 인천을 위해 애써주시는 정명환 회장님을 비롯한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인천문화재단이 따뜻하고 행복한 인천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인천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아트레인의 탑승자를 찾습니다. 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 기부 캠페인 아트레인은 인천 시민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개인 혹은 법인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기업 후원의 경우, 기업의 경영철학과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문화예술로 함께 만들어드립니다. 
아트레인 참여 문의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032-455-7114, artrain@ifac.or.kr

인터뷰 정리 / 인천문화재단 유영이




인천의 공연장을 찾아서

와컴퍼니 박주형 대표 인터뷰
“우리의 이야기로 세계적인 공연을 만들다”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공연콘텐츠 강화,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교류 활성화, 지역 우수 공연프로그램 향유 기회 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 와컴퍼니는 올해 처음으로 본 사업에 참여한 단체로서, “우리의 이야기로 세계적인 공연을 만들다”라는 큰 포부를 가지고 계양문화회관의 상주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본 사업에 처음으로 함께하게 된 상주단체를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도 그랬지만, 한 해의 끝자락에도 여전히 <정글라이프>와 <달그림자> 공연 준비로 분주한 와컴퍼니의 모습이 내겐 굉장히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박주형 대표가 말하는 상주단체사업의 보완점 역시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이 문제는 이미 앞선 인터뷰에서도 여러 상주단체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바 있었다. 1년이란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 이는 물론 개선이 필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해보면 이는 상주단체들이 한 해가 짧게 느껴질 정도로 인천의 지역문화활성화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그간 인터뷰했던 공연장과 상주단체들은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겨울의 차가운 흙속에서도 씨앗은 꽃피우기위해 자라는 중이다. 박주형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2017년부터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에 상주단체로 참여하고 계신다. 와컴퍼니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저희 와컴퍼니는 “우리의 이야기로 세계적인 공연을 만들다”라는 큰 포부를 가지고 창작 뮤지컬, 연극, 콘서트를 제작 및 기획하고 있는 공연전문예술단체입니다. 기존 무대의 대본 및 음악의 표현방식에서 벗어나 신선하고 창의적인 작업을 통해 새로운 무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와컴퍼니의 ‘와(WA)’는 같이 ‘와’서 함께 놀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와 뮤지컬 그라운드’로 시작을 했지만, 뮤지컬 이외에도 연극이나 어린이 뮤지컬 콘텐츠, CCMC라고 기독교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음반 사업 등을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뮤지컬’이라는 말을 빼고 보다 포괄적으로 ‘와컴퍼니’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어요. 

Q)뮤지컬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 
사실 저는 오래전부터 연극을 먼저 했었어요. 그러다가 지금은 H스타 페스티벌로 바뀌었지만, 당시엔 GM대우 전국뮤지컬 페스티벌이라는 게 있었는데, 거기서 제가 최우수연기상을 받게 되었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1회 때 작곡상을 받은 이연석 감독과, 연출상은 받은 김규종 연출가와 함께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거죠. 물론, 뮤지컬 배우로도 굉장히 오랫동안 활동을 했고, 대학 강의 및 기획 일을 함께 시작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뮤지컬도 만들었죠. 말하자면 뮤지컬이 좋아서 뮤지컬을 하게 된 거지, 이전에도 이미 연극을 포함해 다양한 장르를 해왔던 거죠. 앞으로도 여러 장르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Q)12월 상주 공연장인 계양문화회관에서 <달그림자>와 <정글라이프>를 공연한다. 어떤 작품들인지 궁금하다. 
일단  제작자로서 말하자면 <정글라이프>는 인정받은 작품이다, 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어요(웃음). <정글라이프>는 주로 ‘뮤지컬계의 미생’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사실 창작자로서 저희들도 미생이었고, 아직까지도 미생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저희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 작품에서 부정적인 면만을 표현하기 위해서 ‘정글’을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마치 정글의 여러 동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듯, 우리도 각자 표현방법이나 살아가는 방식들이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여기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이원순 사원은 원숭이, 하예나 대리는 하이에나, 홍호란 부장은 호랑이, 사수미 과장은 사슴, 이렇게 각각의 인물들의 이름은 동물을 형상화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재밌는 건 신입사원 피동희인데, ‘핏덩이’라는 뜻이죠.  정글푸드라는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으로서 이 인물이 뭐가 될지는 모른다는 거죠.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정글라이프는 세상의 축소판이에요. 그리고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 뮤지컬에는 타악기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요. 아프리카 타악기가 거의 120개 정도가 들어가죠. 오프닝에 나오는 사운드도 라이온킹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음악에 관심을 갖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Q)<달그림자>도 마찬가지로 동물이 나오는 어른을 위한 동화인 것 같다.
온 가족들이 즐겨보는 그런 뮤지컬을 만들고 싶어서 <달그림자>를 만들게 되었어요. 달그림자에는 강아지, 고양이, 맷돼지, 그리고 말 못하는 봉구라는 소년이 같이 살아가고 소통하는 그런 내용이에요. 그래서 동물적인 움직임도 상당히 있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부분들이 많아요. 사실 <정글라이프>를 만들 때도 그랬지만, <달그림자>를 만들 당시 우리나라에는 라이센스 뮤지컬이 굉장히 판을 치고 있었을 때였어요. 당시엔 히트된 뮤지컬이 2개 정도 밖에 없었고, 대부분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이런 것들만 했었죠. 그래서 저희는 왜 우리나라 뮤지컬은 없을까, 우리 이야기로 창작뮤지컬을 만들어보자, 라고 생각했죠. <달그림자>는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이 뮤지컬은 라이브 공연으로 이뤄져요. 국악기가 라이브로 연주되죠.   

Q)이 밖에도 <워로드>, <빛소리> 등의 레퍼토리도 있는 거로 알고 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워로드>는 2015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뮤지컬 쇼케이스에 선정되어 쇼케이스 공연을 했던 작품이에요. 아쉽게도 아직 본 공연까지는 못 갔어요. 이 공연은 한국전쟁 때 마포 형무소에 있던 죄수들을 소재로한 블랙 코미디에요. 전쟁이 나자 형무소의 교도관들이 죄수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는 내용을 담았어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본 공연으로 한 번 올릴 생각이 있는 작품이에요. <퓨전 국악 난타 뮤지컬 빛소리>는 찾아가는 퍼블릭 프로그램이에요. 작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최한 신나는 예술여행이란 프로그램으로 11개 지역정도를 다녔고, 올해는 계양문화회관에 상주단체로 오면서 계양구지역을 다녔어요. 각 지역의 초등학교나 복지시설, 장애인시설, 심지어는 계양동 캠핑장까지 말이죠. 아마 <빛소리>의 경우엔 기존의 정형화된 공연이라고 관람하면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관객들과 함께 하는 공연이기 때문에, 아이들한텐 아이들 버전이 있고, 노인들에겐 노인 버전이 있죠. 학교 같은 경우엔 선생님이 앞에 나와서 국악장단에 맞춰 춤도 춰야해요(웃음).

Q)인천에서 집중적으로 활동을 하신 게 올해가 처음이실 텐데, 다른 지역과 인천의 차이가 있다면? 활동하는데 있어서 인천만의 장점이나 혹은 단점이 있는지 알고싶다. 
저희는 서울을 연고지로 전국 투어공연을 다니는 단체였습니다. 올해부터는 인천 계양문화회관의 상주단체로 활동하게 됐는데, 사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상당부분 흥미가 있었어요. 우선, 인천 지역문화예술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지역을 대표하는 공연 창작을 통해 문화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인천의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큰 포부를 갖고 상주단체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렇게 많은 공연들을 유치하고 준비하게 되었죠. 물론 예산 운영에 적지 않은 리스크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목표로 한 공연을 모두 할 수 있게 되어 만족하고 있어요. 다만, 아직 인천 지역 공연장의 인지도가 부족하고, 지역 주민들의 공연관람문화가 자리잡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관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어린이 공연이나 찾아가는 공연은 문제될 게 없지만, 다른 공연들엔 어려움이 있어요. 이번 12월 공연을 통해 공연장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이 변화되길 바라요. 

Q)공연장으로서 계양문화회관은 어떤 곳인가? 계양문화회관 만의 특색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환경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계양문화회관은 아름다운 계양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공연장이에요. 공기 좋고 쾌적한 환경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관람하실 수 있을 거예요. 다만, 극장 시설이 조금 노후화되어 있는 것 같고,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공연 관람 문화가 아직 잘 자리 잡히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이런 부분은 공연장뿐만 아니라 저희도 상주단체로서 좀 더 노력을 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건 계양문화회관의 감독님들과 직원 분들이 좋은 분들이라는 점이에요. 저희가 상주단체로 활동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계세요.  

Q)벌써 한 해가 다 되어간다. 올해 활동하면서 느꼈던 본 사업의 장점이나, 보완할 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상주단체 사업에 처음 참여하게 되어서, 이전에 어떤 방식으로 운영됐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 작년보다는 더욱 개선된 환경 속에서 상주단체 사업이 진행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본 사업은 상주단체의 역량 강화뿐만 아니라, 공연장 활성화에 한몫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기엔 1년이라는 기간이 조금 짧은 것 같아요. 상주단체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작품을 발전시켜야하는데, 1년이란 기간은 창작 공연을 개발하고 완성도를 높이기에도, 또한 주민들에게 알려져 지역을 대표하는 공연 단체로 자리 잡기에도 부족하다고 봐요.

Q)앞으로의 활동계획과 함께, 와컴퍼니의 공연을 관람하러 올 시민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올 한해 인천에서 공연하면서 많은 관객분들을 만나 뵙고 즐겁게 공연했습니다. 12월 계양문화회관에서 공연되는 <달그림자>, <정글라이프> 공연 역시도 열심히 준비했고요. 특히 <달그림자>는 계양문화회관에서 처음으로 올린 창작공연이에요. 이뿐만 아니라 어린이 뮤지컬과 찾아가는 뮤지컬 등 상주단체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요. 그럼에도 물론 부족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2018년도에는 <달그림자> 공연을 장기공연으로 더욱 발전시켜 많은 시민분들이 보실 수 있게 노력할 거예요. 더 나아가 계양문화회관뿐만 아니라 인천의 다른 지역에서도 투어 공연을 했으면 해요. 와컴퍼니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한국 창작뮤지컬을 제작하고 좋은 무대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인터뷰 정리, 사진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박치영




인천 대표 공연콘텐츠 쇼케이스 공연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병창>
일시 : 2017년 12월 7일 목요일 20시
장소 : 송도 트라이보울
사진 :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민경찬




제 1회 인천생활문화 박람회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네방네 동아리>
일시 : 2017년 11월 25일~26일
장소 : 인천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실
사진 :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민경찬




생활문화동아리로 삶의 행복을 찾다.

당신은 ‘생활문화예술‘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생활문화예술‘은 우리 앞집 아주머니가 하시는 오카리나 동호회, 매일 기타치는 옆집 오빠의 기타 동아리처럼 프로예술인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시민이 모두 누리고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을 뜻한다. 지난 9일 인천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 일대에서 열렸던 제 1회 <인천생활문화박람회 동네방네 동아리>는 이러한 생활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동아리가 모인 행사이다. 이번 행사는 인천생활문화센터 친구들 ‘레인보우’와 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이 공동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인천 곳곳에서 동아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활동을 응원하고 네트워크 활동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획되었다.

<동네방네 동아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인천의 동네방네 곳곳에서 활동하는 특색있고 다양한 분야의 동아리들의 참여가 돋보였다. 새를 사랑하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강화 지역의 동호인 모임 ‘버드카페 강화탐조클럽’부터 버려지는 자원을 생활소품으로 만드는 녹색공동체 ‘리폼맘스’, 사회적경제 마을기업인 부평공예마을 ‘손오공’, 서담 독서동아리 ‘서담재’. 인천 최초의 재즈클럽 버텀라인에서 사진 수업과 현장 실습으로 공연을 촬영하는 ‘라이브사진관’ 등 많은 동아리들이 행사에 참여해 한 해간의 결과물을 선보였다.

 인천아트플랫폼의 H동과 A동에서 오후12시부터 오후2시 사이에는 원데이클래스, 타로고민상담소, 동네방네 아지트&별별아카데미의 전시가 열렸다. 원데이클래스에는 최일갑 강사의 ‘아에이오우 기본발성법’ , 장석원 강사의 ‘타악기배우기’ , 김진미 강사의 ‘립밥 &핸드크림 만들기’, 김은덕 백종민 강사의 ‘여행을 기록하는 나만의 방법 만들기’ 강좌 등 누구나 취미생활로 해보고 싶었던 강좌들이나 실생활에 유익한 강의들이 진행되었다.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H동 1층과 2층에서는 사진과 작품 전시가 열렸다. ‘라이브 사진관’의 버텀라인에서 촬영된 사진들과 ‘버드카페 강화탐조클럽’의 <2017 강화의 새> 주제로 인천지역에서 서식하는 다양하고 생명력 넘치는 새들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이번 ‘버드카페 강화탐조클럽’의 <2017 강화의 새>는 인천의 주로 서식하는 새부터 자연의 파괴로 희귀해 잘 눈에 띄지않는 천연기념물 노랑부리백로까지 다양한 새들을 구성원들이 직접 밀착 촬영한 결과물들이다. 이 밖에도 버려지는 재활용을 감각있는 생활소품으로 만든 ‘리폼맘스’의 리폼디자인아트 작품, ‘부평공예마을 손오공 페인팅세상’의 공예품들의 눈길을 끌었다.

다음 프로그램으로 참여한 동아리들 간의 동아리 활동의 좋은 점, 어려운 점 등을 서로 이야기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네트워크 활동 ‘와글와글 수다방‘이 이어졌다. 각 동아리들은 동아리 운영기간이 겹치는 동아리들끼리 모둠을 만들어 모여 동아리의 좋은 점과 동아리활동의 어려운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구성원들 중 책보동아리의 김지영씨는 동아리의 좋은 점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좋다는 말했다. 이외에도 가장 많은 답변이었던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 만나 시너지가 생기는 것,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의 즐거움, 자기성장의 기회 등의 답변이 많았다. 

반면 동아리 운영의 어려운 점으로 공통적으로 나왔던 이야기들은 악기나 공연동아리의 경우 개인별 능력차이가 있어 이를 따라가야 한다는 어려움과 그로인해 소속감에서 멀어져 불안감을 느낀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외에도 각자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라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 꼭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 동아리의 재정적인 문제를 꼽았다. 서로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고 이후 해결책으로 다른 동아리원들의 조언을 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인 동아리 중 제일 높은 연차의 합창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경숙씨는 동아리의 어려운 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약속, 실력, 이상한 사람, 동아리의 재정의 키워드로 조언했다.

첫 번째 약속의 경우 성인 동아리는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정기적으로 모이기 힘든 구조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주 1회모임을 권장하지만 쉽지 않은 경우 모임 5,6시간 전에 각 파트장끼리 오늘 나오는 사람을 점검하고 10명이하가 나오면 모임을 없애기로 했다고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충분한 대화 끝에 규칙을 정해야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실력의 문제로 보통 동아리는 연차가 오래되면 간부를 맡는데 사실 그 간부들도 다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라 그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연차가 낮은 분, 간부가 아닌 분이 그분들의 일을 많이 나누어주며 격려하고 도와준다면 동아리는 화목하게 잘 유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세 번째 이상한사람, 누구나 동아리에 ‘저 사람 모임에 안나왔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불성실 하다던가 동아리원들끼리의 잦은 다툼 등으로 인해서 말이다. 이런 이상한사람의 대처법으로 그녀는 말로 하는 잔소리보다 나머지 구성원들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선택하라 조언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행동으로 보여줄 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면담을 신청하는 것이다. 이때 당사자와 대화를 할 때 주의할 점은 자신의 느낌을 말해주어야한다. 당사자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동아리의 어려움에서 재정적인 문제는 항상 따라오는 부분인데 생활문화예술은 단순한 시민들의 문화예술의 향유를 넘어서 개개인이 사회에서 받았던 소외감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동아리활동을 하며 소속감을 느끼고 그 속에서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자존감의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에서 생활문화동아리들에게 관심을 쏟고 많은 지원을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동아리활동에서 서로의 고민들과 생활문화동아리들의 현재 실정에 대한 해결책 등 평소에 꺼내지 못했던 속 얘기들을 나누며 더욱 돈독했던 ‘와글와글 수다방 프로그램’이 끝나고 공연이 이어졌다.

행사의 마지막으로 돌멩이국 도서관 <책보>의 낭독공연과 삼산해오름공부방 <누리보듬>의 오카리나 공연, <기타랑>의 통기타공연 등 한 해간 준비한 동아리들의 공연으로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이번 <동네방네동아리> 에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동아리의 좋은점에 대한 한분의 대답이었다. 동아리의 좋은 점에 대해 묻자 “사실 매일이 우울했는데 동아리를 나가고 동아리생활을 하면서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갱년기를 이길 수 있는 힘이 된 것 같아요” 라고 대답했다. 그 분에게 동아리는 단순히 취미활동을 넘어서 삶의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버팀목이자 활력소가 된 것이다. 이렇게 생활문화동아리는 단순히 집단의 취미활동을 넘어 사회 속에서 작은 개인의 가치를 인정받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활동이다. 이런 좋은 점이 많은 생활문화동아리이지만 아직까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동아리 구성원들이 맘놓고 동아리생활을 할 수 있는 장소 또한 마땅치않다. 매번 장소를 예약하거나 대여해 빌려야하는 상황이다. 또한 많은 예산을 들여 거점공간으로 조성한 곳도 사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곳은 공유의 공간이 아니라 특정장르의 소유공간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관리하는 지자체의 고민은 중복된 문화시설 건립에 따른 운영재정과 콘텐츠의 부족을 들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문화시설의 변화, 연계, 통합된 운영시스템과 동시대가 요구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플랫폼을 정거장처럼 잠시 머무는 소유의 공간이 아니라 소통하는 공유의 공간으로 주변지역으로 확산되고 외부로 소통할 수 있는 거점공간으로 만들어야한다. 또한 동아리의 재정적인 문제도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국가에서 동아리가 활동할 수 있게끔 재정적인 지원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준다면 현재의 동아리들의 존속과 많은 신규동아리의 양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생활문화동아리에 대한 고민과 지속하고자하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생활문화예술은 더 많은 시민들에게 향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사진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최승주




공업도시 인천에 생기를 불어넣기

극단 작은방 <인천의 보색은 녹색>

동료들과 인천의 색깔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한 동료는 인천의 색깔이 회색이라고 했다. 각각의 색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드는 곳, 모여들어 그 색을 잃고 먹빛으로 변하는 곳이라고 했다. 한 동료는 인천의 색깔이 빨간 색이라고 했다. 인천의 어르신들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수업에서 한 어르신이 고향을 떠나 인천에 처음 다다랐던 때를 회상하셨는데, 물이 온통 빨간 수돗물이라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동동거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단다. 그 얘기를 들으며 인천을 빨갛게 녹이 슨 공업도시의 모습으로 생각했단다.

지난주 인천아트플랫폼에는 인천의 색깔에 대해 얘기하는 연극이 있었다. 극단 작은방의 <인천의 보색은 녹색>은 전국에서 타향 사람들이 가장 많은 도시, 전국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한 도시, 인천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군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색상환에서 정반대 편에 위치한 ‘보색’은 단순히 대비가 되는 관계임을 넘어 서로를 보완하고 더 잘 보이도록 하는 관계이다. 신재훈 연출은 ‘공업화, 산업화의 도시 인천에 생명의 녹색이 보색이 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작품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텅 빈 정사각형의 무대 양 옆으로 네 명의 배우가 앉아있다. 배우들은 차례로 무대에 올라 각 인물이 살아온 일대기를 짧은 대사를 통해 들려준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대화나 장면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각 순간에서의 짧은 대사들을 나열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60여년의 세월을 빠른 속도로 머릿속에 그릴 수 있도록 한다. 네 명의 가족들은 모두 옆구리에 망치를 차고 태어난다. 태어나고, 자라고, 학교에 가고, 노동을 시작한다. 노동의 순간에 배우들은 바닥을 향해 망치질을 한다. 인물들이 망치를 들고 태어나 끊임없이 망치질을 하는 모습은 공업도시이자 산업도시 인천의 소시민들에게 노동이 숙명임을 의미한다.

배경은 인천에서 태국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타국에서 일을 하러 관광지에 온 조련사는 코끼리를 조련한다. 관광지에서 관광객들이 코끼리 등 위에 올라타는 것을 돕는다. 조련사는 계속해서 코끼리에게 최면을 건다. ‘온순하다, 난폭해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등에 태우고 하는 트레킹이 좋다.’는 최면을 건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거닐던 코끼리는 조련사의 말에 따라 사람들을 등에 태우지만 이내 난폭해져 조련사의 목숨을 앗아간다.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세 명의 가족들이 등장한다. 새 차를 사고 드라이브를 나선 가족들은 교통 단속에 걸리고, 아버지가 과거 가로수를 들이받아 내야 했던 범칙금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가로수를 들이받은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넘기지만, 경찰서로 연행되고, 당장 돈이 없어 범칙금을 낼 수 없고, 밤새 경찰서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 경찰서로 향하던 아버지는 큰 사고를 내게 된다.

연극은 산업화와 공업화로 지친 인천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도시화로 인해 본래의 모습을 잃은 녹색 자연과 병치하여 보여준다. 녹색의 자연을 훼손하고, 바다를 막아 건물을 세우는 인천의 모습처럼, 그 안을 살아가는 노동자들도 생기를 잃고 지쳐간다. 녹색 자연을 되돌리는 것은 지친 노동자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글, 사진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