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4월, 강화도 그리고 광해(光海)

강화도의 4월은 참 아름답다. 4월은 강화에서 고려산 진달래 축제가 열리는 철이다. 또한 진달래 말고도 온갖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강화의 곳곳을 장식한다. 하지만 약 400년 전 누군가에게 강화의 봄, 강화의 4월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슬픔과 회한의 계절이었다.

1623년 음력 3월, 양력으로는 4월의 어느 날, 왕이 쫓겨났다. 새로 등극한 왕은 쫓겨난 과거의 왕을 섬으로 유배 시켰다. 새로운 왕은 인조였고 쫓겨난 왕은 광해군이었다.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인조반정(仁祖反正)이라 한다. 광해가 유배된 섬은 강화도였다. 도읍 한양에서 너무 멀리 보내버리는 것은 불안했던 것일까. 인조는 일단 한양에서 비교적 가까운 강화도를 유배지로 택하였다. 광해가 강화로 가던 때가 양력으로 4월이었으니 따뜻한 봄날이었다. 아마 당시 강화에도 온갖 봄꽃이 아름다움을 뽐냈을 것이다. 하지만 광해에게는 그 봄꽃들도 슬프고 처량하게 느껴졌으리라.

광해가 쫓겨나면서 왕비, 세자, 세자빈도 함께 폐위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집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갇혀 생활해야 했던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광해와 왕비는 강화 동문 쪽에, 세자와 세자빈은 서문 쪽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광해는 강화도의 유배생활 중 큰 비극을 겪는다. 유배 온 지 석 달 뒤인 6월 폐세자 이지(李祬)가 땅굴을 파고 도주하려다 붙잡혔다. 이 일이 일어난 직후 폐세자빈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폐세자도 곧 사사(賜死)가 결정되어 목을 매고 죽음을 맞았다. 비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어 그해 10월 부인 폐비 유씨도 병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아마 화병이었을 것이다. 폐위되고 반년 조금 넘는 사이에 아들과 며느리, 부인을 모두 잃는 비극이 강화도에서 일어났다. 광해에게 강화는 아픔의 섬, 비극의 섬이었다. 이후 광해는 교동도를 거쳐 제주도로 유배지를 옮겼고 1641년 제주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광해는 명을 배신하고 폐모살제(廢母殺弟)의 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폐위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전란복구에 힘썼으며, 명에 대한 맹목적 사대를 배격하고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 실리외교를 통해 나라를 지키려 하였던 군주로서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에 광해는 폭군은 아닐지언정 혼군(昏君)으로서 무리한 토목공사 등을 강행하여 나라를 어지럽게 만든 임금이라는 평가 또한 여전히 만만치 않다. 과연 그는 어떤 임금이었을까? 강화의 봄을 맞으니 그가 다시 생각난다.

 

글·사진 / 안홍민(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4. 개항장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 하시겠습니까?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국제교류사업인 일본의 요코하마 뱅크아트1926 및 인도의 산스크리티재단과의 교류 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동경 시나가와 구(品川区) 신반바 역(新馬場駅) 인근에서 마츠리(祭り)가 열리고 있다. 마츠리는 열리는 계절마다 의미가 다른 종교적 의식이다. 가을의 마츠리는 추수하기 전에 오는 태풍을 잠재워 보내려고 사흘간 춤추며 밤을 지새우는 신앙의식이다. 사진ⓒ노기훈

자전거를 타고 다시 요코하마(橫濱)로 돌아오는 밤길은 여러 가지로 고되었다. 일본 최초의 기차역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정차장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신바시 정차장을 재건축한 철도역사전시실이었다. 근대식 은빛 연와로 마감한 건물은 조명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 한밤중인데도 시오도메(汐留)의 높은 빌딩숲 사이에서 운치 있게 빛났다. 2층에 지나지 않는 신바시 정차장은 열차 한 량 정도 길이만 남은 최초의 철로를 유리관 안에 보관하고 있었다. 최초라는 명성에서 유추할 수 있는 넓고 깊은 스케일에 비해 현시점에 볼 수 있는 역사(驛舍)는 이미 역사(歷史)가 되어버린 중후함에 비해 작고 초라했다. 그곳은 탐미적이고 과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서 단지 신바시 정차장의 외관을 본래와 같은 장소에 최대한 꾸밈없이 재현해 놓는다는데 초점을 맞춘 듯했다. 일본 최초의 역사를 재현해 놓았으니 어느 쪽이나 구 서울역보다는 장엄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넓이와 높이 모든 면에서 구 서울역에 비하면 헤비급과 라이트급 차이였다.

1872년에 문을 연 일본 최초의 역사인 신바시 정차장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철도역사전시실이다. 1층 전시실 바닥을 유리로 깔아 개업 당시의 기초석 일부를 관람 할 수 있다. 사진ⓒ노기훈

그런데 골똘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쪽 계열에서는 크기가 작고 너절한 것이 모더니스트들이 상상력을 발휘했던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정취가 있어서, 생각하기에 따라 보다 깊은 풍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이라인이 화려한 마천루와 나란히 놓인 구시대의 유물을 보면서 단지 건축물의 크기만으로 같은 링 위에 올리는 건 공정치 못한 승부 같았다. 내가 상상하던 19세기 후반 신바시 정차장의 상징은 중세에서 근대로 시공간의 축을 본격적으로 바꾸면서, 칼과 주인이 있던 봉건시대에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한 메이지 시대의 맥락으로 이동시킨 신문물이었다. 그 와중에 기차는 요코하마로 달리는 매 순간 매캐한 연독(煙毒)을 씩씩거리면서 질주하는, 그야말로 근대적인 ‘컬처쇼크’였다. 역과 역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기차로 인한 최초의 만남과 이별이라는 낭만을 선물하던 신바시 정차장은 급격하게 팽창하는 20세기 과학기술사의 진보를 지나며 최초라는 훈장만 남기고 사라져야 했다. 신바시 정차장은 곧 국제도시로 성장한 동경에 걸맞은 세련된 도회지의 풍속을 건축물에 녹아낸 JR신바시역에게 명패를 빼앗겼다. 그 쓸쓸한 영주의 퇴장을 지켜보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낡고 오래된 것들은 쉽사리 아스러져 잊혀졌다. 그나마 신바시 정차장과 같은 상징적인 건축물들은 예우가 좋은 편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 간 수많은 구시대의 잔해들을 어떻게 기억해 낼 수 있을까? 

아카렌가(赤レンガ) 창고는 “메이지 말기부터 다이쇼 초기까지 요코하마 항의 창고로 이용되었다. 격동의 20세기를 뚫고2002년 당시의 모습을 남긴 채 문화, 상업 시설로 다시 태어났다.”라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설명하고 있다. 2017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메인 전시장으로도 활용된 아카렌가 창고는 1층을 아트숍으로 꾸미고 2,3층을 이용해 미디어 작품을 선보였다. 사진ⓒ노기훈

요코하마를 둘러보고 부러웠던 지점은 강자로 살아온 나라가 역사를 보존해 나가는 일종의 우월감이었다. 인천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2013년, 인천 개항장에 도착한 나는 인천 개항장 투어를 신청했다. 인천을 설명하던 문화해설사가 인천개항박물관을 가리키며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근대적 양식의 건축입니다.”라고 이야기 한 건축물들과 양식은 흡사하지만 크기에 있어서는 족히 5배는 뻥튀기한 건축물들이 요코하마 구도심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믿기 힘들지만 100년이 넘은 건물의 내부는 기적에 가까운 리모델링이 이루어져 지금도 주화를 관리하거나 미디어 아트를 교육하는 대학기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요코하마 구시가지 쪽에 있는 근대식 건물들을 보면서 장막에 갇혀있던 어느 건축물에 대한 이미지가 점점 불투명도를 높여 형상을 갖추면서 알싸한 감정이 일었다. 건축에 문외한인 나에게 요코하마에서 보는 건축물들은 잊었던 뭔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건 바로 1993년 시작된 문민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추진한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장면이었다.

1995년 8월에 첨탑 제거로 시작된 조선총독부 철거는 1996년 12월 대회의실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완료됐다.
사진출처: MBC 뉴스 동영상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네이버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건축물’의 정의는 ‘토지에 정착하는 공작물 중 지붕과 기둥, 또는 벽이 있는 것과 이에 부수되는 시설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시멘트 덩어리가 시간의 풍파를 켜켜이 쌓아가고 있는 과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피아식별에 따라, 피동이냐 자동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시의 곳곳에서 흘러간 것들을 추억할 수 있는 단서를 채택할 것이냐 인멸할 것이냐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사안이다. 그럼 강자들은 어떻게 당당하게 자신들의 유산-건축물을 합법적으로 상속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요코하마 개항기념관은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개항 50주년을 기념해 시민 기부금으로 1917년 준공되었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전소되어 1927년에 재건축되었다. 사진ⓒ노기훈

 내가 요코하마에서 작업실로 쓰고 있는 ‘BankART스튜디오 NYK’는 인천으로 치자면 아트플랫폼이 속한 개항장 지역과 유사점이 많은 요코하마 간나이(館内)에 지역에 있다. 요코하마는 에도(현 도쿄)시대 말기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항만도시로 발전했다. 인구가 부산광역시보다 조금 많다고 하면 도시 규모 면에서 이해가 쉬울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의 짧은 경험으로 비춰보건대 도쿄와 요코하마는 서울과 인천과의 관계와 흡사한 점이 많다. 자세한 이야기는 지구별문화통신 1호에서 했기 때문에 패스. 몇몇 유사성으로 판단에 이르는 건 독단에 가깝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감으로 일어나는 일이므로 혀가 짧고 뇌가 정리되지 않은 예술가적 영역으로 남겨주시길. (그러고보면 괜찮은 작가들은 예술가적 감각을 기초로 하고 최종 목적지를 이미지로 해서 이걸 논리적으로 구현하는 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단, 성공적으로)

1859년 미일 수호 통상조약으로 개항한 요코하마는 서양문물이 관동지방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써 세계가 요동치던 당시 개항만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문제는 100년이 넘게 지나서도 개항시기에 다져진 인프라와 자의식만으로 버텼다는 것이다. 요코하마시는 닛케이 지수가 나날이 최고점을 갱신하고 있던 70년대 말에 들어서야 낡고 쇠락한 요코하마의 도시 이미지에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낭만과 역사가 있는…’이라고 둘러대기에는 다가올 21세기의 국제도시로서 출항할 동력이 부족했다. 이러한 고민에 따라 요코하마시는 21세기 미래의 항구도시 프로젝트, 즉 ‘미나토미라이 21(MinatoMirai21)’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조선 부지와 부두에 국한되어 있던 구도심 지역을 문화 관광지로 개발하여 하드웨어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요코하마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에서 ‘미나토미라이21’이라는 이름이 결정되었다. 일본어로 미나토(港)는 항구, 미라이(未來)는 미래라는 뜻이다. 사진ⓒ노기훈

몸이 만들어졌으면 비타민을 먹어야 한다. 근육질 몸에 아무 옷이나 입을 수는 없다. 요코하마시는 ‘미나토미라이 21’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2004년, 시민의 주체적인 참가와 창조활동의 핵심인 예술가들의 결집을 촉구하여 문화예술 창조도시로서의 변모를 골조로 하는 ‘창조도시 요코하마(Creative City Yokohama)’라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한다. 이 창조 패키지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문화예술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구동된 프로그램이 바로 ‘뱅크아트(BankART) 1929’와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다.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메인 전시장인 요코하마 미술관 1층 내부의 모습이다. 2001년부터 시작한 트리엔날레는 올해로 6회째를 맞이했다. 이번 주제는 ‘섬과 별자리와 갈라파고스’로 상반된 가치관이 복잡하게 얽힌 세계의 모습을 살펴봤다. 사진ⓒ노기훈

드디어 뱅크아트까지 왔다. 뱅크아트를 소개하기 위해서 지면을 이만큼 할애했다. 여기서는 정책적인 의사결정이나 기타 문화예술도시로 변모 과정 등은 글의 성격상 관련 전문가들에게 남겨두기로 하고 나의 직분에 맡게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는 ‘뱅크아트 스튜디오 NYK’ 이야기만 해보겠다.

 뱅크아트는 예상대로 Bank(은행)과 ART(아트)의 합성어다. 그리고 1929도 서기 1929년이다. ‘뱅크아트 1929’는 조선총독부가 광화문 안에 들어서고 3년 뒤인 1929년에 요코하마 개항장 주변에 건설된 구 후지은행과 구 제일은행 등 근대 석조 건물을 문화예술 활동 기지로 활용하는 프로젝트이다. 그래서 ‘은행’과 ‘1929’를 전면에 내세운다. 

일본은 한국정부가 조선총독부를 철거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자신들이 그걸 그대로 옮겨가겠다고 제안했다. 이제 막 올림픽을 치러낸 GDP 만달러도 안되는 한국인의 입장으로 봤을 때 ‘경제 대국인 일본도 당장에 급하고 보니까 일단 아무 말이라도 하고 보네’라고 허언에 가까운 실언이라고 혀를 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연히도 조선총독부 첨탑이 내려앉은 1995년 바로 그 해에 요코하마에 있는 어느 한 오래된 건물이 정말 여기서 저기로 장기알 옮기듯 이동하게 된다. 

때는 1929년, 뉴욕주식거래소의 전례 없는 대폭락으로 시작된 전세계적인 경제대공황이 몰아 닥치고 역사의 장난인지 돈 없어 망하겠다는 그 해에 혈세를 모아 MOMA(뉴욕현대미술관)가 건립된다. 동시에 요코하마에는 고대 로마의 신전 양식으로 건축된 제일은행 요코하마 지점이 들어선다. 그리고 60여 년이 흐른 1995년, 구 제일은행 요코하마 지점이 마치 한 량의 기차가 되어 바사미치(馬車道)에서 미나토미라이(港未來)까지 놓인 철길에 미끄러져 120m를 이동하게 된다. 

구 제일은행이 미나토미라이 방면으로 옮겨가고 있다. 전체 제일은행 건물의 10분의 1정도에 해당하는 발코니만 이동한 모습이다. 사진출처: 광주광역시 공식블로그

 요코하마시는 아이랜드 타워의 일부로 재현된 구 제일은행을 ‘YCC(Yokohama Creative Center) 요코하마 창조도시센터’로 전환해 예술가들의 활동공간으로 지원했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외관을 뽐내는 역사적 건축물의 주인을 당당히 예술가들의 몫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강자로 살아온 국가가 건설한 역사적 건축물이나 항만시설, 창고 등은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여 도심부 재생의 거점이 되었다.

반면, 일제강점기 건물인 조선총독부는 우리 땅 위에 새긴 주홍글씨와도 같았다. 얼마나 싫었던지 조선총독부 철거 당시 나라의 수장이던 김영삼 대통령 조차 공식 인터뷰에서 “일본 놈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라고 외교적 참사에 가까운 폭탄 발언으로 블랙코미디를 연출했다.

내가 있는 곳은 바로 그 ‘창조도시 요코하마’라는 구호 아래에 예술가의 거점으로 리모델링한 두 곳 중 하나다. 레지던시와 큰 관련이 없는 곳이 구 후지은행과 구 제일은행을 개조한 ‘뱅크아트1929 요코하마’이고, 레지던시 활동의 본거지가 일본 우편선(郵船) 창고를 개조한 ‘뱅크아트 스튜디오 NYK’이다.

요코하마시는 운영주체를 공모하여 무상임대로  NPO 민간법인에 위탁하여 문화예술 활동을 운영한다. 이와 관련한 ‘뱅크아트 스튜디오 NYK’의 주요 활동은 전시기획과 전시공간임대를 기반으로 사진, 미술, 건축, 퍼포먼스, 음악, 무용 등 모든 예술장르를 대상으로 국제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수요일마다 2층에 있는 도서관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아트스쿨을 연다. 또한 1층에 미술 서적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서점을 운영하고 때로 출판업무도 담당하며 그 옆으로 카페와 펍을 겸하는 공간이 있어 회합의 장소로 사용한다.

‘뱅크아트 스튜디오 NYK’와 더불어 2005년 도쿄예술대학이 구 후지은행 건물로 이전해왔으며, 구 제일은행은 2009년 5월부터 ‘YCC 요코하마 창조도시센터’로 전환되었다. 현재 ‘뱅크아트 스튜디오 NYK’ 가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
1. 네이버 지식백과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출처: 아카렌가(赤レンガ) 창고 공식홈페이지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사진출처
1. MBC 뉴스 동영상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광주광역시 공식블로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글,사진/ 노기훈 작가

 

노기훈은 2017년 인천아트플랫폼-뱅크아트 스튜디오의 국제교환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8월부터 11월까지 일본에 체류한다. 사진카메라와 영상카메라로 주로 찍어 내는 활동에 관심이 많으며 사진과 기행문을 동시에 써서 글로 찍기도 한다. 인천역에서 출발하여 노량진역까지 최초의 철도 경인선을 따라서 사진 찍었으며, 지금은 일본 1호선인 사쿠라키초역에서 신바시역까지 걷고 있다. 




소개합니다.

[소식 1] 일상이 예술이 되는 아트마켓, 트라이보울 ‘문화예술마당’

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 최진용)이 운영하는 송도 트라이보울 복합문화공간은 일상이 예술이 되는 ‘문화예술마당’을 4월 7일부터 매월 토요일마다 4회에 걸쳐 트라이보울 야외광장에서 진행한다. 

지난해 ‘문화예술마당’은 송도 트라이보울의 야외광장에서 목판화 체험, 천연비누·유기농 쿠키 만들기, 7세 어린이 작가가 그려주는 초상화 등 다양하고 즐거운 체험활동으로 시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올해는 플리마켓(벼룩시장)도 함께 진행하여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만남의 장이 되고자 한다. 플리마켓은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옷, 가방, 책, 문구류 등 안 쓰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 사고팔거나 교환도 할 수 있다. 판매는 트라이보울 홈페이지 (바로가기 ▶)를 통한 사전 신청자에 한해 가능하다.

지역 예술 창작자들의 핸드메이드 공예, 드로잉, 인테리어 소품 등 창의적이고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아트마켓과 신진예술가들의 야외공연도 트라이보울 야외광장에서 펼쳐진다. 특히, <작은 갤러리> 부스에서는 갤러리, 미술관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미술가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고, 착한 가격(30만 원 이하)으로 구매도 할 수 있다. 

2018 ‘문화예술마당’은 4월 7일을 시작으로 5월 5일, 6월 9일, 8월 25일, 토요일 오후 12시에서 저녁 6시까지 트라이보울 야외광장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아름다운 트라이보울과 송도의 전경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와 예술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공간문화팀 (032-455-7186)

 

[소식 2] 한국근대문학관 작가와 만나는 토요일 <인천, 시인과 만나다> 

봄을 맞은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에 인천의 시인들이 찾아온다. 한국근대문학관이 2017년부터 진행 중인 <작가와 만나는 토요일>은 올해 상반기의 테마를 <인천, 시인과 만나다>로 정하고 오는 31일(토) 오후 5시에 한국근대문학관 로비에서 첫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인천, 시인과 만나다>는 6월까지 4번 토요일에 열린다. 이 프로그램은 전문가의 안내로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작가의 책 한 권을 함께 읽으며 문학의 가치와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천 출신의 시인 김영승, 장석남, 이설야, 김민정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시인의 시 세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인 장석주, 송종원, 김응교, 강동호 역시 함께 자리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은 초청 시인의 시로 만든 ‘문장 책갈피’를 받을 수 있다. <인천, 시인과 만나다> 프로그램은 모두 무료며, 신청은 전화(032-773-3801)나 재단, 문학관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 <인천, 시인과 만나다> 프로그램 안내
– 프로그램: 작가와 만나는 토요일
– 주 제: 인천, 시인과 만나다
– 일 시: 2018년 3월 31일, 4월 28일, 6월 2일, 6월 30일 17:00~18:30
– 장 소: 한국근대문학관 2층 로비
– 신 청: 재단 및 문학관 홈페이지 (바로가기 ▶), 전화

한국근대문학관 (032-773-3801)

 

[소식 3] 극단 작은방 ‘비온새 라이브’
아트플랫폼 공연분야 입주예술단체 극단 작은방의 무대가 찾아온다.

○ 공연안내
몇 해마다 수해가 찾아오는 마을에 <비온새 라이브>가 있다. 비가 오면 물에 잠긴 아랫마을과 아랫마을 사람들이 대피하는 윗마을 사이에, 강 건너 읍내가 마주 보이는 곳에 <비온새 라이브>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고 이제는 별장촌으로 변해가는 마을 갈림길에 <비온새 라이브>가 있다. 고등학생 하나가 전기 끊어진 <비온새 라이브>에서 혼자 음악을 듣고 있다. 엄마는 비 올 때 강 건너에 있더니, 비가 그쳐 강을 건너와서는 산소가 쓸려내려 간 자리에서 남은 유해를 찾고 있다. 수해복구를 도와주러, 끊어진 전기를 이으려 사람들이 바깥에서 하나둘 마을로 모여든다. 마을사람들이 준비하고 있는 아카펠라 멜로디처럼. 
   
– 일 시: 2018년 4월 11일(수)-12일(목), 오후 4시, 7시
– 장 소: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
– 제 작: 극단 작은방
– 입 장 료: 자발적 후불제
– 후 원: 인천광역시, (재)인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지원팀 (032-773-3813)




인천음악플랫폼 제막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시 : 2018년 1월 23일
장소 : 인천음악플랫폼 _인천 중구 제물량로 195
사진 :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민경찬




제36회 인천연극제 개막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시 : 2018년 3월 2일
장소 : 인천 수봉문화회관 소극장
주최,주관 : 사단법인한국연극협회 인천광역시지회
사진 :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민경찬




새로운 도시의 등장

5th 부평작가열전 <흐르는 도시>

시각 예술은 우리에게 시각적인 감각을 활용해 사람과 사물 또는 인생에 대한 본질을 통찰하게 하는 예술이다. 작가가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본 것뿐만 아니라, 들은 것, 만지는 것, 맛보는 것, 향기로운 냄새를 맡는 것 등 오감을 활용하여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한다. 훌륭한 예술가란 자신의 오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로 다른 것들을 발견해 낼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는 색다른 시선을 담고 있는 작품을 접함으로써, 그 작품을 만나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다섯 번째 부평작가열전 <흐르는 도시>에서는 부평의 젊은 작가 5명이 청각 등을 이용하여 느낀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거나, 시각을 이용하여 본 것을 다른 감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갤러리 꽃누리 입구

전시 포스터

김서량은 부평에서 채집한 익숙한 생활소음들을 부평의 현장 사진과 함께 전시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의 도시를 바라보고 난 후 그곳에서의 소리를 따로 들어보는 경험은 아주 특별하다. 한번도 분리되어 느껴본 적 없는 두 개의 감각을 별개로 구분하여 접함으로써, 시각과 청각이 따로따로 작동하였을 때 과연 우리의 마음속에 어떠한 형상이 떠오르는지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함께 지내던 연인이 서로 각자의 여행을 떠나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마치 연인이 잠깐의 헤어짐을 통해 간절함을 회복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보는 것과 듣는 것의 분리로 인해 각 감각이 선사하는 색다른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김서량_Sounds of the City in Bupyeong_2채널 사운드_사운드 다큐멘터리_사진_가변설치_2018

김소영은 실을 통해 세상을 보는 작품을 전시한다. 그의 실에 대한 감각의 기억은 부모님께서 운영하셨던 계산동의 실 공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실을 활용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은 세상을 표현하는 작가의 시선을 느끼게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실과 함께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작가가 어릴 때 느꼈던 실에 대한 감각과 느낌을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지금의 부평에서 공감할 수 있다.

김소영_Ⅱ. 감각놀이_디지털프린트_60x60cm_2016

박재영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이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한 음파의 한 형태인 것 같기도 하다. 박재영은 부평 곳곳에서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반복되는 이미지들을 나열하고, 왜곡하여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익숙한 시공간을 마치 다른 곳처럼 느끼게 하는 마법을 선사한다. 흡사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음악 같기도 하고, 우주의 모습 같기도 한 그의 작품 속에서 익숙한 거리의 간판을 찾아내고, 우리네 삶의 모습들을 발견하는 일은 꽤 신선하다. 일상이 이런 식으로 변주될 수 있다니, 사는 일이 어쩌면 몹시 재미있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하는 작품이다. 

박재영_Repeat 부평 Stage No1_디지털 프린트_168x74.5cm_2018

안성용의 도시는 모노톤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 속에서 실제의 도시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그가 그리는 것은 모노톤의 회색빛 도시이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왠지 흐릿해 보이는 도시 속 무언가 우리네 일상의 애잔함을 느끼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가족 친구 연인을 문득문득 떠올리게 된다. 저 무채색 세상 속에서 나도, 그대도 숨 쉬고 있구나. 그의 그림 속에서 간혹 비치는 도시의 불빛은, 힘든 세상 속의 한 가닥 희망과도 같이 느껴져, 고독한 삶의 유일한 피난처였던 우리의 가까운 이에 대한 그리움을 더 짙게 만든다.

안성용_도시 IV_캔버스에 오일_45.5×45.5cm_2016

이희원은 소나무를 그렸다. 작가에 따르면 그가 보는 소나무는 구부려져도 자존심이 강하며, 거칠지만 우아한 면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데 모여 있어도, 닮은꼴이 없는 개성이 강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희원의 작품 속에서 강한 터치로 표현된 솔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소나무에 대한 설명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여, 잠시 동안 그림을 바라보며 멈칫하는 순간을 갖게 된다. 그의 말처럼 그의 소나무들은 하나도 닮지 않았다. 각기 다른 색을 뽐내며, 각기 다른 모습을 산다. 다만 그의 솔들에서 비슷한 점을 찾는다면, 하나같이 강한 터치를 머금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그가 말했던 구부려져도 자존심이 강하며, 거칠지만 우아한 소나무가 형상화된 모습이 아닐까? 

이희원_솔1_캔버스에 오일_32×82cm_2016

부평의 현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는 다섯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는 동안, 보는 이의 가슴속에도 매일 보는 도시의 모습이 이제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순간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이 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선에 갖게 된 것에 대하여, 한 뼘은 더 성장한 듯한 뿌듯함이 솟아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전시 모습

 

5th 부평작가열전 <흐르는 도시> 김서량 김소영 박재영 안성용 이희원
일시: 2018. 2. 22(목) – 3. 25(일)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은 휴관)
장소: 부평아트센터 갤러리 꽃누리

글·사진 /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김경옥
작품사진제공 / 부평구문화재단




차기율 개인전 <순환의 여행: 방주와 강목사이>

2월 27일부터 3월 27일까지 한 달에 걸쳐 차기율 작가의 <순환의 여행: 방주와 강목사이>가 인천 동구에 소재하고 있는 우리미술관 전시관에서 열린다. ‘우리미술관’도 ‘차기율’작가도 <순환의 여행: 방주와 강목사이>라는 타이틀도, 나에게는 세상 생소한 단어들인지라 어쩐지 멍한 정신상태로 처음 이 미술관과 마주하게 되었다.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어떤 틀을 깨버리는 작고 소박하며 우리미술관 아기자기한 문패가 이상하게 자꾸 눈이 간다. 작은 입구, 그 옆에는 작은 팸플릿과 도록이 줄 서 있는 작은 테이블, 작은 소파, 작은 방명록, 그리고 더 들어가면 작은 전시관이 있었다.

우리미술관?
전시관은 몇 걸음 걸을 필요 없이 한눈에 작품들이 들어올 정도로 자그마했다. 어쩐지 특이하게 기울어있는 벽면이 눈에 띄었다. 온통 하얀 공간에는 공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작가의 작가노트가 하얀 벽에 가지런하게 프린트되어 있었다.우리미술관은 인천문화재단과 인천광역시 동구청이 상호 협력해 운영 중 인 만석동에 있는 작은 미술관이다.

‘모두에게 열린 문화 예술 사랑방’이라는 소개를 달고 있는 우리미술관은 누구나 개방된 시간에는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관과, 여러 가지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교육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우리’미술관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 공간에서는 말 그대로 ‘우리’들에게 문화예술에 관한 열린 문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는 이미 차고 넘치는 멋진 공간들이 많다. 많은 만큼 잘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곳 인천 동구는 어떨까. 매일매일 사람으로 차고 넘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거리 안에 따듯한 미술관 하나가 작게 빛을 밝혀주고 있었다.


인간과 자연 – 순환의 여행
그 따듯한 공간 안에는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의 거대한 오브제가 있었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작품의 맞은편에는 작가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 모자이크처럼 배치해 놓은 또 하나의 작품이 걸려있고, 그 오른편 벽에는 그 둘과는 또 다른 흑연으로 스케치 된 드로잉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언뜻 보면 같은 작가의 작품인가? 의아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전시의 제목과 작품들이 모두 하나로 융합된다. 전시의 제목 안에 있는 단어 중 ‘방주’는 서양문명을, ‘강목’은 동양의 자연을 나타낸다고 한다. 인간과 자연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이미 함께 존재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 어느 한쪽에 치우칠 수가 없다. 인간은 자연에 속하면서 또 자연과 다른 개념이다. 태어나기를 자연에서 태어나고 자라기를 자연에서 자라며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인간의 삶 속에 오로지 자연만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어떤 때에는 자연을 일방적으로 갈취하기도 한다. 이런, 마치 오래된 부부처럼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이 관계를 작가는 ‘순환’이라는 개념으로 풀어간다. 순환. 이렇게 완벽하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할 수 있을까. 

방주와 강목사이 – 불의 만다라
한쪽 벽면과 바닥을 꽉 채운 거대한 이 작품은 ‘고고학적 풍경 – 불의 만다라’라는 제목을 걸고 있다. 갯벌에 사는 게들이 만든 집을 노천소성(이것도 아주 생소한 단어, 쉽게 말하면 야외의 뜨거운 가마에서 도자를 구워내는 것)의 과정으로 구워내 켜켜이 배치한 설치 작품이다. 제목에 있는 ‘방주’와 어쩐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이 작품은, 갯벌의 흙으로 만들어져 있다. 여러 미술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재료들 중에서 먹이나 흙과 같은 인공보다는 자연과 더 가까운 재료들의 공통점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예민하여 다루기 어렵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마치 숨을 쉬는 듯 생생하다. 작은 빛이나 습도 등에도 변형될 위험을 무릅쓰고 탄생한 작가의 작품은 건드리면 무너질 듯 약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단단해 보이는 외유내강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만다라는 본질에 대한 깨달음의 표현이다. 인간과 자연의 본질에 대하여 수없이 많은 고민과 성찰을 한 작가의 어떤 가치관이 아닐까. 작가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느껴지는 다른 한 가지 작품은 검게 탄 대지를 표현한 드로잉 작품이다. 성인 남성의 상체만 한 크기의 캔버스에는 김(?)을 연상시키는 검은 그림이 담겨있다. 자세히 조명에 비친 그림을 보니, 까맣게 채운 것이 아니라 자잘한 검은 선들이 모여있었다. 불에 탄 대지를 표현했다는 이 작품 또한, 연필심의 재료가 되는 흑연으로 그려졌다. 불에 탄 대지에 남은 것으로 불에 탄 대지를 표현한다. 미술작품이라는 것은 캔버스 안에 있는 어떤 형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 형체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작가의 고민,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재료, 이것들이 모여서 여러분이 보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쯤 되니, 중구난방처럼 보이던 작은 공간 안의 작품들이 한데 모여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아닌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방주와 강목 사이를 순환하는 여행
우리는 ‘나’에 대해 생각한다. 가끔, 생각하지 않는다. ‘너’에 대한 생각을 한다. 가끔,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는 생각한다. ‘나’와 ‘너’와 ‘우리’와 ‘그것’을 생각한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그렇게 파고드는 와중에 떠오르는 것들을 표현한다. 공간과 작품이 어우러지기에는 대단히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작가의 인생이 담긴 작품과, 그것을 공간에 잘 붙인 전시를 만나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기분 좋은 일은 너무 멀리 나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다. 이것이 우리미술관을 뒤로하며 돌아가던 길에 든 생각이다.

 

글·사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이은솔
작품사진/ 권순학




낡고 허름한 공간에 담긴 예술적 가치

인천여관x루비살롱의 세 번째 전시 <춒먕횺백화점>

인천여관x루비살롱을 찾아가는 길은 마치 ‘보물찾기’ 같았다. 가는 길 내내 스마트폰의 길 찾기 앱을 보며 찾아갔지만, 근처에서도 그곳을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답답한 마음에 인근 상가 주인에게 길을 물으려던 찰나 혹시나 걸어 들어갔던 비좁은 샛길에 인천여관x루비살롱이 있었다. 건물 사이의 샛길에 숨어있는 인천여관x루비살롱의 첫인상은 낡고 허름했다. 카메라 프레임 안에 담기 힘들 정도로 후미진 샛길에 자리한 이곳이지만 웬일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인천여관X루비살롱은 버려진 낡은 여관을 카페로 새롭게 재구성 한 공간이다. 1960년대 지어진 여관건물이 10년 넘게 방치되자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원래 공간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며있는 사연과 역사를 최대한 살려 뒀다. 본래의 구조 속에 금이 간 벽, 그 위에 벗겨진 페인트, 나무 창문틀에 묻어있는 시간의 흔적을 오롯이 보듬고 있다. 그 안을 채우는 것들 역시 공간에 스며있는 시간과 맥을 같이 한다. 이곳 공간 자체가 역사적 가치를 지닌 하나의 산물인 셈이다.

그러나 이곳의 더욱 특별한 가치는 단순한 카페를 넘어선 문화공간이라는 점이다. 카페라는 공간에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적 가치를 담고 있다. 때로는 전시장으로, 때로는 음악공연장으로, 때로는 예술가들의 커뮤니티 장소로 활용되면서 직접적인 예술적 활동으로 채워지고 있다.

지난 2월 인천여관x루비살롱의 2층에서는 6인 작가의 그룹전으로 꾸려진 인천여관x루비살롱의 세 번째 전시 <춒먕횺백화점>이 열렸다. 인천여관x루비살롱의 2층은 예전 객실로 쓰던 구조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매번 전시가 열릴 때마다 202호와 203호, 204호 세 방은 마치 새 손님을 맞이하듯이 색다른 예술적 가치들로 다시 꾸며진다. 이번 전시에는 뜨개, 패브릭, 자수, 양초, 일러스트 등의 다양한 형태와 질감의 핸드메이드 작품들로 채워졌다.

 

형형색색의 색감과 팝아트적인 연출이 돋보였던 202호의 전시는 소녀 감성의 아기자기하고 익살스러운 인형들이 유독 많다. 전시의 연출은 작가의 의도가 가미돼 있으면서도 결코 작위적이지 않다. 기존의 공간 구조물에 자연스럽게 작품들을 스며들게 했다. 옆방 203호는 좀 더 정제되고 차분한 느낌이다. 깜깜하고 조용한 밤 은은한 촛불에 의지하며 바느질을 하는 젊은 여인네가 살고 있을 듯한 연출이다. 관람하다 보니 작품마다 딸린 가격표가 눈에 띄었다. 실제 이날 전시 작품들은 현장에서 주문을 통해 구매할 수 있었다. 이쯤 되니 <춒먕횺백화점>라는 전시 제목의 연유가 짐작됐다. 춒먕횺백화점의 ‘춒먕횺’은 단지 글자 모양새가 예뻐서 만들었다는 인천여관x루비살롱으로부터의 후문이다. 

마지막 204호의 전시는 인천여관x루비살롱 자체의 공간적 특성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연출이 아닐까 싶다. 낡고 허름한 여관방과 연식이 있는 오래된 가구들이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룬다. 열려있는 서랍장과 수납장들로부터 방주인의 세간들을 훔쳐보는 관음적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낡고 오래된 것이 오히려 새롭고 특별했다.” 인천여관x루비살롱을 찾은 사람들의 공통된 평이다. 시간의 흔적에 시대적인 공간연출을 덧입힌 이곳이 낯설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킨 것이다. 앞서 말한 공통된 평의 해석은 ‘루비살롱’이라는 이름에서 이미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살롱(Salon)은 17~18세기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유행했던 귀족과 문학인들의 정기모임 또는 화가나 조각가들의 연례 전람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곧 ‘인천여관x루비살롱’을 찾은 사람들은 단순히 옛것의 추억을 찾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러 오는 손님이 아닌 예술적 흥미를 탐닉하러 온 관람객임을 말해준다.

 

글·사진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정해랑




[큐레이션 콕콕] 한국이 시작한 문화올림픽, 일본과 중국이 이어받는다

지난 2월 25일 평창 동계올림픽이 폐막했습니다. 평창은 날마다 문화가 있고 축제가 있는 문화올림픽(Everyday Culture & Festival)을 목표로 공연, 전시, 설치미술, 축제, 퍼레이드, 포럼 등 40여 개의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선보였습니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라는 평가에 대중의 감성도 사로잡아 질적·양적 측면에서 높은 성취를 인정받았습니다. 강원도의 전통과 자연환경을 이용한 공연과 전시에 관객은 물론 국내외 언론의 호평이 쏟아졌죠.

파이어 아트페스타(출처: 파이낸셜뉴스)

테마공연 ‘천년향’은 공연장의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어느 좌석에 앉아서 보느냐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다가와 각기 다른 위치에서 여러 번 관람하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파이어 아트페스타 ‘2018 헌화가(獻火歌)’는 실험적 시도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경포 해변에 대형 설치미술 작품을 전시한 뒤 모든 작품을 불태우는 파이어 퍼포먼스로 기획했습니다. 작품이 불타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완성한다는 의도였죠. 오랜 가뭄과 강풍으로 산불 위험이 높아 퍼포먼스는 1회에 그쳤지만, 그 의도는 관객에게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아트 온 스테이지’는 문화올림픽 프로그램 중 가장 큰 규모로 400여 개에 달하는 공연을 릴레이로 선보였습니다. 국공립 예술단체가 클래식, 연극, 무용 공연 등으로 저마다의 가치를 뽐냈죠. 문화올림픽 강원도 통합추진단 김태욱 총연출감독은 “올림픽과 연계한 전략적 행사 배치, 원활한 관람을 위한 다양한 편의 제공” 외에 “콘텐츠의 저력”을 문화올림픽의 성공 요인으로 뽑았습니다. 올림픽 기간에 주목받은 행사가 일회성으로 사라지지 않고 대한민국의 대표 유산으로 남아야겠죠.

명품거리도 탄생했네요. 평창읍 평창강 둔치 일원에 약 5km에 걸쳐 조성된 ‘빛의 거리’, ‘올림픽 랜드마크 거리’, ‘올림픽기념 벽화’, ‘성화봉송 거리·마스코트 하우스’, ‘개최국 파크’, ‘올림픽 스타광장’, ‘문화예술 거리·전통체험 거리’ 등은 평창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올림픽 상징조형물은 아파트 15층에 해당하는 41m, 지름 14m의 압도적인 크기로 눈길을 끌었죠. 민족의 정취가 깃든 청화백자와 전 세계인이 올림픽으로 하나 돼 미래로 비상하는 평창의 역동성을 표현했습니다.

문화동행포럼 2018, 정선(출처: 일간경기)

평창 문화올림픽 연계 행사로 한국, 일본, 중국의 올림픽 컬처로드 ‘문화동행포럼 2018’이 정선에서 열렸습니다. 각국에서 바라보는 문화올림픽에 대한 관점을 비교·분석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중요성을 조명하는 자리였죠. ‘한일중 문화협력의 길을 걷다’라는 포럼에는 인천문화재단을 포함, 한국광역문화재단 대표이사와 일본, 중국의 협력사무국 전문가들이 참여했습니다. ‘3국 지역 간 문화교류의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문화교류 세션에서는 4건의 사례 중 인천문화재단이 2개 사례를 발표했네요. ‘차이나는 국제교류 인천:충칭’ 사례에서는 인천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시설(인천아트플랫폼, 한국근대문학관, 송도 트라이보울 등)을 기반으로 한 가능성을 소개하고, ‘일본 요코하마 뱅크아트 1929 기관교류’ 사례에서는 그동안의 창작지원 진행과 성과를 홍보했습니다.

한일중 3국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20 도쿄올림픽,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등 5년 동안 하계 및 동계올림픽을 개최합니다. ‘문화동행포럼 2018, 정선’은 올림픽과 더불어 각국이 처해있는 국제정치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3국이 함께하는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공동의 문화유산을 위한 협력과 서로 간의 교류를 심화하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봅니다.

인천은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2019년 문화도시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인천문화재단은 ‘2019 동아시아 문화도시 전담팀(TF)’ 구성의 일원으로 2019 동아시아문화도시 인천 성공 개최를 위한 7대 핵심 사업에 적극 참여합니다. 개항도시 인천의 위상에 걸맞은 문화 개항도시로 도약할 기회가 되겠네요. 중국과 일본의 문화도시도 조만간 확정된다고 합니다.

두 번의 올림픽, 두 개의 올림픽(출처: 서울문화재단 블로그)

문화역서울 284에서는 <‘두 번의 올림픽, 두 개의 올림픽’>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18년 평창올림픽이 표현하는 시대상과 디자인을 비교해보는 자리인데요. 올림픽에 참여했던 디자이너의 공식 창작물과 제작 과정을 재구성한 ‘88서울올림픽대회, 예술과 마주하다’, 1988년 당시 일상의 모습을 기록한 신문기사, 사진, 책, 노래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수집가의 방’에는 호돌이 인형, 성화 봉송, 깃발, 화보집, 올림픽 주화 등 600여 점의 물품이 공개됐네요.

평창올림픽 문화마크를 한 번 보세요.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유산인 한글의 독창성과 차별성이 돋보입니다. 한글 자음 ‘ㅁ’과 대회 엠블럼의 스틱 마크를 한데 모아 다양한 문화가 꽃피우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문화마크(출처: 평창문화올림픽 공식홈페이지)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죠. 기념품 매진 사례에, 원하는 물건을 사지 못한 사람들이 소위 ‘웃돈’을 주고 상품을 구입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인기를 증명하듯 ‘수호랑 반다비 움짤’, ‘수호랑 댄스’, ‘수호랑 포상휴가’ 등의 인터넷 검색어도 눈에 띄네요. 수호랑의 이름은 올림픽 참가 선수, 참가자, 관중들에 대한 보호를 의미하는 수호(Sooho)와 호랑이와 강원도 정선아리랑을 상징하는 랑(rang)을 연결했습니다. 백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호 동물이기도 하죠. 패럴림픽의 마스코트인 반다비는 반달을 의미하는 반다(Banda)와 대회를 기념하는 의미의 비(Bi)를 담고 있습니다. 반달가슴곰은 의지와 용기의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계올림픽·패럴림픽 공식 사진가 조세현 작가는 수호랑과 반다비의 인기 요인을 “수호랑은 코가 너무 잘생겼고, 반다비는 살짝 옆으로 곁눈질하는 눈이 굉장히 귀엽고 재미있다”는 데서 찾았네요.

2020년 도쿄올림픽 마스코트는 ‘초능력 캐릭터’가 될 거라고 합니다. 2,042명의 마스코트 공모전 참여작 중 조직위원회가 세 작품을 추렸고, 초등학생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고 하네요. 이름은 8월쯤 발표됩니다.

수호랑과 반다비(출처: 연합뉴스)

문화올림픽의 열기는 오는 18일까지 열리는 패럴림픽 기간에도 따듯하게 전해집니다. 평창의 밤을 밝히는 불꽃쇼, 몽골, 라오스, 일본, 미국, 한국의 예술가들과 장애인, 청소년 무용수들이 펼치는 ‘투 비 투 원(TWO BE TO ONE)-두리새로 서로하나’와 함께 올림픽 기간에 선보였던 문화행사와 공연도 계속됩니다.

‘70엠케이(mK)-하나 된 한국(just simply KOREA)’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여한 방문객들의 인터뷰 영상을 전시・상영하는 대규모 영상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70엠케이(70 million Koreans)’는 남과 북, 7천만의 한국인을 의미하며, 하나 된 마음으로 만들어가는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평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시작한 문화올림픽은 2020년에 일본, 2022년에는 중국이 아름다운 상징을 이어갈 겁니다.

 

* 아래와 같은 기사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1. 2018 평창, 문화올림픽 이유있는 성공! 문화 레거시 창출도 기대
경인투데이뉴스, 2018.2.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올림픽 성공 포인트⑦]문화올림픽
뉴스1, 2018.3.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평창서 인천 문화 국제교류 발표
일간경기, 2018.2.2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30년 전 ‘88서울올림픽’으로 향하는 시간여행
서울문화재단 블로그, 2018.2.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평창 올림픽 공식 사진가가 말하는 ‘수호랑·반다비’ 인기 요인
YTN, 2018.3.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패럴림픽 기간에도 ‘문화올림픽’ 열기 이어진다
파이낸셜뉴스, 2018.3.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우리미술관

<순환의여행 / 방주와 강목사이>展
· 일시: 2018.2.27.~3.27.
· 장소: 인천동구우리미술관

촬영, 편집 /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김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