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에 핀 살구꽃

언제부터인가 4월이 되면 벚꽃을 보며 즐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인천에도 벚꽃 명소가 여러 곳 있지만, 자유공원에는 경관조명까지 있어 낮과 밤에 보는 느낌이 다르기까지 하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즐거워하는데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자유공원에서 바라다보이는 월미도에도 벚꽃이 많지만, 옛 기록을 보면 월미도는 살구꽃이 유명했나 보다. 게다가 조선왕조 시절의 일이다.

1880년대 후반에 인천에 와서 활동한 아오야마 고헤이(靑山好惠)라는 일본 사람은 1892년에 펴낸 『인천사정(仁川事情)』이란 책에 이렇게 썼다.

“섬 안에 살구꽃이 많아 봄 4월 무렵 꽃이 필 때 인천항에서 그걸 보면 일대가 붉은 노을 같다. 하얀 집 여러 채가 그사이에 점철하니 마치 그림 같다고 한다.”

살구꽃 핀 월미도를 찍은 사진은 찾을 수 없지만, 월미산 북쪽 능선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초가집에서 아오야마 고헤이가 묘사한 광경을 떠올려 본다.
월미도는 다채롭다. 사람에 따라 떠올리는 사건과 기억이 다르다. 요즘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월미도는 관광지로 이름났다. 인천명소라는 이름 아래 월미도 공원에서 노니는 사슴을 찍은 사진은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월미도에 기왕이면 벚꽃보다 살구꽃을 심으면 좋겠다. 몇 년 뒤에는 조선 시대 사람들이 본 것처럼 월미도에 활짝 핀 살구꽃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글 / 김락기(인천역사문화센터 센터장)




5. 꾿빠이, 요코하마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한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뱅크아트는 전시기획과 임대뿐만 아니라 국제 레지던시, 아트스쿨, 미술전문 서점, 카페와 펍을 운영하며 기금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자생적인 수익 모델을 추구한다. 사진ⓒ노기훈

근대라는 SET

벽면에 각인된 뜻 모를 한자들, 기둥에서 떨어져 나간 각기 생김새가 다른 시멘트 파편, 페인트층이 벗겨져 바깥으로 드러난 색 바랜 안층, 어질러진 무늬가 한 곳에 이르러 표식을 형성한 바닥의 얼개. 뱅크아트의 벽면을 매만지면서 100여 년 전 일본 우편선 창고에 누군가 남긴 암호를 해독하겠다는 추리극이 시작된다. 과거에 남긴 흔적과 교감하는 일이야말로 근대가 심어놓은 낭만이 아닐까. 숨을 깊게 들이 마셔본다. 근대에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원혼으로 떠돌다가 공기를 통해 몸 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그들은 철부지 몽상가의 이성을 마취시킨다. 결박한 곳에 숨겨놓았던 자의식이 몸에서 빠져나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철철 넘쳐난다. 주워 담기에는 이미 홀로되었다는 해방감에 감성을 담당하는 수도꼭지가 박살이 났다. 시간의 축을 마음껏 왕래하는 타임 루프 영화 속 주인공이 감당해야 하는 선행 의식처럼, 그렇게 영혼이 빠져나간 몸을 다른 이에게 내어줘도 좋다는 식으로 의식은 한결 가벼워진다. 꽉 걸어 잠갔던 이성은 새롭게 맞닥뜨린 이국에서 처참하게 벗겨진다.

일본을 돌아다니며 근대의 모습을 회상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거라는 기대에 요코하마 곳곳을 꼼꼼히 바라본다. 길거리의 한복판을 다니며 주변을 어긋남 없이 두리번거린다.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의 이국적인 생김새에서 동인도 회사의 홀란트인을 발견하고, 도시를 감싼 염분 가득한 바닷바람에서 대항해 시대의 기운을 느낀다. 요코하마는 근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영화로 재현된 세트장 같다. 현대 문화의 최전선에 선 현대미술 작가라는 자격으로 입장했지만 때아닌 자취들 때문에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별스럽지도 않은 것에 골똘히 무한한 경지 속으로 빠져든다. 때때로 시차를 극복하지 못해 새벽인지 저녁인지 모를 정도로 착란을 일으키며 몸과 정신이 따로 노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집으로 돌아오면 무언지 모를 피로감에 사로잡혀 잠자리에 들 수가 없다. 밤낮이 바뀌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낮에 있어도 밤에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말을 상실했고, 혼잣말로 한국어를 내뱉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릴 적 집 나간 할아버지가 돌아와 장시간의 침묵을 이긴 후 헛기침으로 시동을 걸며 이야기해주는 겨울날의 쓰라린 추억담을 듣는 것처럼, 그저 잡히지 않는 뭔가를 떠올리고 다시 재빨리 주변을 살피고 혼자 피식 웃으면서 나만의 근대를 만들어 간다.

일본에게 근대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기억이다. 나가사키에 있는 군함도(端島)는 1974년 폐광 당시 현장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폐허로 남은 아파트에는 소녀의 체취가 감도는 바비인형과 당시 일본 내 여타의 지역에 비교해 풍족한 경제수준을 보여주는 가전제품이 여전히 남아있다. 군함도에서 하나뿐이었던 교실에는 40년 동안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걸상이 한쪽 다리를 잃고 비스듬하게 누워있다.

만약 한국이 군함도의 주인이라면 어땠을까라는 불온한 상상을 해본다. 일단 교실까지 오르는 긴 계단을 보기 좋게 공장식 나무판넬로 덧대어 무릎이 안 좋은 관광객들도 오르기 쉽도록 개조한다. 내부는 석탄 채굴 당시 풍속에 맞게 정형화된 동작으로 멈춘 미니어처를 투명 아크릴 상자에 넣고, 그걸 어린이들이 가까이 들여다보면 열 감지 센서가 반응하여 익히 듣던 성우의 높고 명쾌한 목소리로 광부의 구구절절한 신세 한탄이 또박또박 읊어지는 설비가 갖춰있다. 상상한 김에 하나 더 하자면, 출구에는 광부의 복식을 가져와 얼굴만 뚫어 놓은 입식 POP가 놓일 것인데, 불특정 다수가 지나간 좁은 구멍은 또 얼마나 불결한 개기름을 끈적하게 쌓아갈 것인가.

시간을 인위적으로 깎고 잘라 각색된 공간에는 정치만 있고 이야기가 없다. 단 돈 5000원도 안 되는 시장통 식당에 할아버지들이 공들여서 하는 이야기는 옆 테이블 앉은 젊은 사람을 겨냥한 듯 적잖이 흥분해서 말을 이어가지만, 눈앞에 그 형태는 보이지 않으므로 막연한 판타지의 영역으로만 인정된다. 보고 싶어 손을 이끌어 달라고 해도 남아 있질 않은데 무얼 보란 말인가? 어르신은 걸걸하게 가래를 끓으며 호통을 치지만 사정이 그러하니 손가락이 저절로 굽어 제 얼굴을 가리키는 격이다. 할아버지의 환상과 경험이 섞인 구술은 언제나 사실과는 괴리된 무용담으로 각색되고 늙은이의 과거 미화쯤으로 여겨진다.

기억의 가소성에 따라 보려고 하는 것만 남으며 진실은 결국 닿을 수 없는 먼 공간에서 막연하게 맴돈다. 왜냐하면 그들이 증언한 진술에 증거가 될 물리적인 배경이 남아 있지 않아, 내 생각은 원점에서 시작하여 오로지 판타지의 영역으로밖에 꾸며낼 수 없는 하이퍼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서, 그들의 옛이야기 속에서 실마리를 간직한 공간적 배경이 동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넘어 눈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이 중첩되어 만날 때 이야기는 입체적으로 재조직된다. 여러 시공간이 하나의 장소에서 섞이면 전후 맥락을 살핀 다음 현시점에서 좌표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방향감각이 생긴다. 앞으로 가든 좌우로 흔들리든 플롯이 생긴다. 그렇지만 우리 사정은 이러하니 대한민국에서 근대가 뭔지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젊은이들은 할아버지가 이야기해주는 과거사에 무관심한 태도를 짓는다. 건축물의 죽음은 대의 민주주의를 잘못 실현한 관과 정치에 책임소재를 돌릴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에게 다가온 잔혹한 현대사에 맞설 수 없이 먹고 사느라 무감각하게 다져진 미의식에 그저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정도 자조에 끝나면 다행인데, 잘못된 미의식은 형식을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고 숨은 진실마저도 손쉽게 은폐해 버린다. 현재의 편의를 위해 에폭시를 뒤집어쓴 역사적 현장은 베수비오 화산 분출물을 뒤집어쓴 로마인을 보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그로테스크하다. 영양섭취와 유산소 운동을 피하고 성형수술만으로는 건강한 노후를 기대할 수 없다.

후지산에 닿은 태양

에노덴(江ノ電)은 가마쿠라의 핵심 교통수단이다. 쇼난 (湘南) 해안을 따라 달리는 구간은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 등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에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일본 사람들도 가마쿠라 역에 에노덴이 들어서면 “카와이”하고 사진부터 찍는다.  사진ⓒ노기훈

일본에서 한두 달이 흐르고, 낭만만이 유일한 무드였다던 근대의 표면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진기를 들고 도쿄 인근의 요코하마와 가마쿠라를 부단히도 산보했다. 동경에서 남쪽을 따라 요코하마와 가마쿠라로 이어지는 관동지방의 험난한 경로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운명을 거스르는 여정이었다.

에노시마(江の島)에 간 날이면 후지산 정상에 해를 걸쳐두고 백석(白石)과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여행했다는 인근의 이즈반도(伊豆半島)를 생각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한 여인을 사랑한 도시 엘리트의 순애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감정이입은 어려웠다. 하지만 치고가후치(稚児ヶ淵)에서 멀리 후지산을 바라보며 정상에 남아 있는 잔설이 해와 맞닿을 때는 『설국』 후미코의 붉은 볼을 연상케 하며 사진기법 중 하나인 다중노출을 보는 듯 탄식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 같은 곳을 지그시 바라보며 끌어안고 있는 일본 연인들이 실제로 그 주변에 있었다.

에노시마의 끝자락에 있는 치고가후치(稚児ヶ淵)에 가면 사가미만(相模湾) 너머로 후지산이 가까이 보인다. 관동대지진으로 융기한 지반 덕분에 바다에 인접한 곳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치고가후치는 수행승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동자승이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하고 뒤이어 수행승도 따라 죽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사진ⓒ노기훈

밤이 되면 요코하마에서 도쿄 쪽으로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치밀하고 노출에 순응한 낮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는 밤이었다. 밤을 통과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듯했다. 큰 유흥가만 제외하면 일본의 밤은 유달리 침착했다. 정돈된 거리의 풍경은 일관된 가로등의 화이트밸런스에 맞춰 낮은 음으로 소리를 냈다. 셔터 소리가 정적을 깨며 혹 누군가 잠에서 깰까 불안해 무음으로 바꿔놓았다. 밤에 미명으로 밝히는 것들은 낮의 햇빛에 압도되어 보이지 않지만 밤이 되면 혼잣말을 하듯 작고 희미하게 주변을 밝혔다. 

새벽 3시가 되면 어김없이 24시간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일에는 대체로 나긋한 푸념같은 것들이 의미를 갖추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같이 자장가처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주말에는 주정뱅이들의 끊임없는 술자리로 식어버린 라면 냄새와 홉 향 가득한 맥주가 은은하게 풍미를 더했다. 첫 차를 타고 돌아올때면 집 앞에 있는 소바 집 자판기 앞에 섰다. 눈을 감고도 자판기 버튼을 찾아 누를 수 있을 정도로 지겹게 먹은 가츠돈, 소바 세트를 뽑았다. 점원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카운터에 표를 내밀며 “아따다카이 소바”라고 몇 안 되는 일본어를 내뱉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날이 밝아와 있었다.

나카메구로(中目黒駅)는 봄이면 메구로가와를 중심으로 벚꽃이 만개한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골목마다 들어서 있다. 여유로운 일상이 매력적인 동네이다. 저녁이 되면 퇴근한 직장인들이 모여든다. 사진ⓒ노기훈

작업이 일단락된 후에 한동안 뱅크아트에 있는 작업실에 앉아서 도서관에 있는 책을 날리듯 살펴봤다. 나에게는 육성에 대한 갈증만큼이나 책을 넘기는 행위가 중요했다. 하지만 책에 적힌 한자는 매번 나로부터 단절되었다. 나에게 있어 한자는 한동안 짧게 공유되었고, 마치 꿈처럼 재빨리 소멸한 암호 같았다. 그들의 문자는 지나치게 무거운 기호였기에 나는 책 속의 이미지만을 여러번 보았다. 심심할 때면 건물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르는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그들만의 야합의 장소를 살펴보기도 했다. 혹시라도 비밀의 장소를 발견하면 내 나름대로 공간을 명명하며 귀퉁이에 작은 글씨를 새겨 넣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되었다는 착각으로 일본 생활은 어리석게 지나갔다. 타국에서 철저히 단절되고자 마음먹은 사람이 고독을 사용하는 방법은 이처럼 어리고 에고가 폭발할 지경에 이를 만큼 과민하게 만든다.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방만한 상태가 지속되면, 껍데기가 떨어져 나간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때 만나는 나는 어느 시기에도 속하지 않은 완전한 나이다. 나에게 남은 것은 한 묶음의 자전적 소설과 풍경으로 떨어져 나간 나의 허물이다. 이때 나에 대한 몰입이 가능해지고 나의 이야기가 보인다. 20대에 여유가 있었으면 자발적으로 유학을 가거나 이민을 가 자신을 대면해 볼 걸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업하는 사람에게 익숙한 환경을 떠나 세달 동안 이국에서 생활하는 것은 새로운 곳에서 작업 그 자체를 진척시키기보다는 나를 멀리서 바라보고 과거보다 더 깊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라는 의미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사진에 대해 생각했지만 어두운 밤에도 필시 사진에 무언가 찍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달과 빛

뱅크아트 레지던시 인근에 있는 오오카(大岡)강 주변으로 하나미(花見) 시즌에만 한시적으로 포장마차가 허용된다. 벚꽃이 질 때면 포장마차도 철수한다. 사진ⓒ노기훈

레지던시 생활이 두 달이 지나면서 차차 익숙해졌던 11월 즈음에, 웰컴 파티에서 처음 날 본 이후로 ‘기훈 상의 행적이 묘연하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의중을 보인 뱅크아트 디렉터 이케다 상에게 그간 작업해 온 이미지를 펼쳤다. 그 이후로 2018년 1월까지 개인전을 위해 시계는 맞춰졌다.

개인전 <달과 빛>은 2018년 1월 26일에서 2월 4일까지 뱅크아트 1층 갤러리에서 열렸다. 사진ⓒ노기훈

 개인전이 마무리되었고 다시 조선총독부와 김영삼 정부에 관해서 생각해 본다. 식민지 시대에 서울이었던 경성의 도시 구조와 토대는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고 험난했던 50년의 협곡을 지나 그동안 돌보지 못한 상처는 비로소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리기 시작한다. 조선총독부는 일제가 남긴 국권침탈의 상징적인 공간이기보다 지난 50년 동안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얼굴이었다. 조선총독부 폭파를 통해 문민정부가 원했던 것, 그건 아마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광복 후 50년의 역사에서 발견해 낼지도 모르는 미래 세대들에게 엄중히 당부하는 절연의 제스춰일까?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날 친구와 광화문 근처를 걸으며 짧은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온 감회를 이야기했다. 서울시의회 옆에 있던 근대 건축물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서로 아쉬워하며 결국 우리가 보는 풍경은 살아남은 것들의 종합병동과 같다고 합의했다.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미명 아래 지켜지는 저 건물들은 언제 끊길지 모르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버티고 있었다.

내친김에 종로까지 걸어갔다. 퇴근길에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건물을 배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 순간 서울 한복판에 거대하게 솟은 건물들을 보며, 시간이 지나면 철거될 것 같은 건물들을 짐작해 보았다. 20년 전처럼 건축물이 대역죄인이 되어 처형 당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시대가 바뀌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인이 되었고, 실용적인 것에 우리는 눈을 돌린다. 눈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느리면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 역사라는 거대 담론의 옳고 그름에 의해 건축물의 존재가 결정되는 세상은 끝이 나고, 이제는 계산기가 주관하는 숫자의 논리에 건축물의 생명이 좌우되는 세상이다.

건물을 부수는 현장에 피어오르는 먼지와 시멘트 덩어리의 환상적인 콜라보를 지켜보며 그 사라짐을 애석하게 바라보는 부재의 낭만은 인간사의 일정한 시기에만 일어난 과거의 양식, 양태, 관습으로 칭해야 하는 건가. 먼 미래에는 어떠한 이유로 건물이 세워지고 무너질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단순히 수치(羞恥)라는 유교적이고 낭만적인 이유로 조선총독부가 없어질 줄 누가 알았던가.

건물은 여러 가지 이유로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 빈라덴의 주도하에 뉴욕 중심가에 있던 무역 센터는 단 두 대의 비행기가 관통하며 무너져 내렸다. 요코하마의 도시 재건의 이면에는 2차 대전시 연합군의 폭격과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건축물 붕괴가 큰 계기가 되었다. 해가 정상에 얹히는 후지산을 볼 수 있는 에노시마의 치고가후치(稚児ヶ淵) 역시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지반이 해수면 위로 상승하면서 나타났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일몰을 본다. 일본은 2020년에 개최하는 도쿄올림픽을 위해 도시의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진행 중이다. 도시 곳곳에 평화를 상징하는 오륜기가 말끔히 포스터에 박혀 오색찬란하게 빛난다.

모던 보이와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사이에서

나는 도쿄 진보초(神保町)를 걷다가 이상(李箱)이 죽기 전에 살았던 2층 다락방을 상상해 보았다. 20세기 초에 지은 2층짜리 여인숙이 남아있는 거리에서 할 일 없이 다다미에서 뒹구는 이상을 떠올렸다. 그런데 통이 넓은 정장 바지에 포마드를 잔뜩 바른 장기리 머리를 한 20대 초반의 건축기사 이상이 조선총독부 2층 난간에서 각혈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조선총독부는 남아있지 않으므로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조선총독부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고 두 손가락으로 확대하여 검은 난간 속을 질주하는 저 무한한 육면각체의 비밀 속으로 잠입하는 것이 유일한 방편 일 뿐. 이상은 왜 앞날이 창창한 조선총독부 건축 기사직을 그만두고 끽다점이나 하면서 시원찮은 글이나 쓰려고 했을까.

건물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 나는 뱅크아트에 있(었)다. 3달동안 일본 우편선 주식회사 창고에 있으면서 유치한 지적 허영을 즐겼고 지금은 없어진 서울의 어느 건축물을 먼 이국의 감상과 연결 짓는 착각에 빠져들며 다중 노출이라는 착시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간 개념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그중에 쓸모 있는 것만 걸러서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 현실이라는 단면은 나에게 대한민국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간직한 채 살아가면서 이따금 들춰 볼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철거해야 했을까 보존해야 했을까? 김영삼 전대통령은 금융실명제로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는 쓰레기 종량제를 기필코 해야만 했던 시인이었는가? 건축물의 사라짐을 추앙하던 마조히스트였던가? 그 먼지 가득한 순간을 즐기는 미술가였던가? 우리에게 1990년대는 30년대 식민지보다 훨씬 리얼하게 현실을 가로막은 가짜들로 날갯짓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굳빠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파라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이상의 ‘날개’ 중 일부분

 

 글/사진 노기훈 작가




안상훈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올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활동할 2018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뽑혔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연구와 창작활동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창작지원 프로그램과 발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2018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를 소개합니다.

 

작가 안상훈은 중앙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독일 쿤스트아카데미 뮌스터(Kunstakademie Muenster)에서 순수예술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뵐커(Voelker) 교수로부터 마이스터슐러(Meisterschueler)를 사사받았다. 10년의 시간 동안 머물렀던 독일을 떠나, 작년에 귀국하여 한국의 미술 현장을 경험하였다. 그 첫 여정은 인천아트플랫폼이었다. 작가는 작년 여름에 캔버스 대신 전시장 벽과 비닐 위에 회화를 시도하며 예술의 관습(좋고 나쁨)에 질문을 던져보았다.

 

작년 봄부터 겨울까진 인천의 작업실과 독일 베를린을 왕래하는 우편드로잉을 통해 서서히 완성되는 회화의 시간과 장소의 확장에 대해 실험하였고, 가을에는 작가 개인의 작업실을 한명의 관객을 위한 전시장(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를 실험하였다. 그리고 이번 5월 12일까진 누구나 지나가면서 볼 수 있는 야외 윈도우 갤러리를 작업실로 삼아, 매일 그림을 채워나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에게 회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꾸준히 질문을 던지며 다각적으로 실험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정해진 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가벼움과 진중함 사이에서 긴장감을 유지하고자 하며, 항시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머물지 않고 흐르기 위해 작업한다.

 

롤링 드로잉_설치전경, 과정_2017

# 현재 전시 소개
안상훈 작가는 상시 개방된 윈도우 갤러리를 작업실화 하여 22일간 벽면에 자연스럽게 그림을 채우는 매일매일 프로젝트 <오픈 윈도우 아뜰리에: from the moment you walk through the door until the moment you leave>를 진행하고 있다. 공간 폭이 채 1미터도 안 되는 윈도우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본 프로젝트는, 이상적인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처럼 작가의 활동과 작품을 외부에 공개한다. 이때 오가는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공개된(노출된) 작업실을 만나고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그것은 예술(인)의 과정(시간)을 통해 완성된 결과물 위주의 전시공간과는 다른, 매일 변화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시 제목처럼 윈도우 아뜰리에는 작가가 문을 열고 들어가 오롯이 현장에서 작업하는 시간이며, 또한 창을 통해 그 공간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시간이 머무르다가 지나가는 곳으로 아마도 누군가 사라질 때까지 존재하는 상대적이고 유연한 과시(過時) 공간이 되겠다.
프로젝트는 오는 5월 12일까지 윈도우 갤러리에서 매일매일 진행된다.

# Q&A
Q. 창작의 관심사와 내용, 제작 과정에 대하여
A. 나는 그림을 그리고, 바라보고, 인식하고, 다시 그리는 행위의 ‘과정(process)’, 무형의 이미지에 대한 시지각적 기억과 경험이 개입된 작가의 ’결정(choice)‘에 주목하려 한다. 지금까지 회화의 본질에 대해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회화성에 대해 개인적인 탐구를 해오고 있는 것 같다.
작업의 영감은 딱히 없다. ‘어떤’ 혹은 ‘무엇’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닌, 우선 그림을 저지르고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집중하며 진행한다. 그러다 화면에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것들이 발생하고/발견되고, 여러 회화적인 요소들이 헤매고 충돌하다가 나를 놀라게 하는 나름의 조화를 찾는다.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이 과정은 아마도 ‘기존과 다름’, ‘이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장면에 대한 욕구’를 시각적 보편성과 새로움의 관계 속에서 경험해보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Q. 대표적인 작업 소개
A. 기억력이 점점 안 좋아지는데 그런데도 머릿속에 남는 작업이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업이 바뀌기도 한다. 완성이라 생각했던 작업을 다시 지우고 덧그리기도 하고, 때론 중간 과정이 더 흥미로웠던 작업도 있다. 따라서 대표 작업이 따로 있기보단, 지난 작업의 흐름을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대표작이다. 아니면 대표작이 하나도 없거나.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 등
A. 작업의 영감은 딱히 없다. 우선 그림을 저지르고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집중하며 진행한다. 언젠가 한 그림의 진행 과정 중 오랫동안 정체 상태로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가장 맘에 들었던 부분을 지워버리니 답이 보였다. 이런 작가의 결정이 내게는 다른 단계를 위한 또 다른 시작점이 되는 것 같다. 이 과정이 즐겁기도 하고….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만 만족하는 회화를 해본 적도 있고, 관객과 외부의 시선을 염두에 두고 객관적으로 작업에 임해본 적도 있다. 결국, 이 둘의 조화가 중요한 것 같다. 다양한 예술의 역할 속에 설명적이고 구체적이진 않지만, 그런데도 어떤 무엇인가를 일으키는 나만의 회화의 역할을 인식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Q. 앞으로의 작가로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하여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작가정보 자세히 보기 ▶

 




소개합니다

[소식 1] <우리가 주인인 이야기: 나를 찾아줘> 상반기 수강생 모집

인천문화재단(대표: 최진용)이 운영하는 인천문화센터 칠통마당에서 “우리가 주인인 이야기: 나를 찾아줘”라는 주제를 가지고 상반기 강좌 수강생을 모집한다. “우리가 주인인 이야기: 나를 찾아줘”는 나의 감정을 느끼고 타인과 공유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감정을 받아들여 표현해보는 과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보는 강좌이다. 크게 상반기 강좌(5월~7월)와 하반기 강좌(8월~10월)로 구성된다. 모든 강좌는 인천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에서 진행한다.

나의 감정을 느끼며 상대의 감정을 공유하는 상반기 강좌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매주 커플, 부부, 솔로 등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본 강좌에서는 은형기 셰프와 이야기를 하면서 와인을 음미하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아띠(atti)’ 앙상블과 함께하는 <In Side Out Concert> 클래식 강좌는 매주 다른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며 감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시간이다. <앞치마를 벗어던진 꼼지락 시리즈Ⅰ>는 프랑스 자수, 포크아트, 냅킨아트 등 장식미술을 배우는 강좌이다. <엄마와 함께하는 촉감놀이 생각 톡톡! 표현 팡팡>은 극단 ‘공감’의 최미선 대표와 함께 월별로 진행한다. <엄마와 함께하는 동화나라Ⅰ>는 엄마와 자녀가 같이 동화를 통해 배움을 얻는 시간이다. <신나는 라인댄스Ⅰ>는 춤을 추면서 나를 표현해보고 남과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다.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강좌로 <One Fine Day Class>를 준비했다. 5월 매주 <부모님과 함께하는 도자기 만들기>, <드론! 아빠와 놀자>, <엄마와 함께하는 봄을 담는 시간- 플라워 박스 만들기>, <내 손으로 만드는 부케>,<내 나이가 어때서? 시니어 메이크업>을 다룰 예정이다.

감정을 표현하고 나를 찾는 강좌는 하반기(8월~10월)에 진행한다. 심하나 선생님과 함께 하는 <앞치마를 벗어던진 꼼지락 시리즈Ⅱ>에서 프랑스 자수, 포크아트, 냅킨아트를 배운다.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Ⅱ>와 <신나는 라인댄스Ⅱ>는 각각 김금혜 선생님과 최혜정 선생님이 진행한다. 우지경 작가의 <나도 한번 써볼까? 여행책>에서는 여행 특강이 준비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자신의 여행 책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뭉쳐야 하는 하모니, 즐거운 중창>은 김인진 지휘자와 함께 노래도 배우고 호흡을 맞춰본다. 이처럼 하반기 강좌를 통해 배운 기량은 연말에 진행하는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 축제에서 맘껏 뽐낼 볼 수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이고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온라인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수강인원은 10인~50인으로 강좌마다 다르며, 신청은 선착순으로 받는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바로가기 ▶) 또는 인천생활문화센터 홈페이지(바로가기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는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팀(032-760-1032, 1037)으로 하면 된다.

– 일 정: (상반기) 2018년 5월 ~ 7월 / (하반기) 2018년 8월 ~ 10월
– 구 성: 총22개 강좌, 98강
– 장 소: 인천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구 인천아트플랫폼)
– 접 수: www.ifac.or.kr/7tong
            4월 23일부터 상반기 접수시작. 선착순 마감
– 문 의: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팀(032-760-1032, 1037)

 

생활문화팀(032-760-1037)

 

[소식 2] <괭이부리말과 포구이야기> 고제민 개인전(2018.4.20.~5.31.)

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 최진용)이 운영하는 우리미술관이 전시를 개최한다. 4월 20일부터 5월 31일까지 열리는 서양화 작가 고제민의 전시 <괭이부리말과 포구이야기>다. 
고제민 작가는 인천 동구의 고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지역의 풍경을 소재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우리미술관 전시에서는 특히 괭이부리마을과 인근 포구의 풍경을 담은 작품을 위주로 하여, 회화작품 2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가는 다음의 글을 통해 전시에 대한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다.

“섬마을이나 포구에 가면 사람을 만납니다. 바다 물길이 아름다워 찾았다가 거기 사는 사람들한테서 우리 동네만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북성포구 끄트머리 괭이부리마을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만석동 괭이부리마을은 일제강점기, 동란 때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긴 마을입니다. 공장에 나가거나 부두에서 일하면서 고단한 삶을 꾸려냈습니다. 좁은 골목길,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데, 어둠 속으로 남모르게 흐르는 따뜻한 온기가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괭이부리마을에 발길이 와 닿은 게 무슨 운명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허름한 집 앞, 따스한 햇볕 아래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고양이, 수취인을 못 찾은 우편물과 주인 없는 빈 의자, 허물어져 가는 담벼락 위로 돋아 오르는 새싹들, 좁은 골목길을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 발걸음, 고달픈 우리 삶의 뒷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마냥 어둡기만 할 것 같은 동네 골목길을 돌면서, 희미한 전봇대 불빛은 골목길에 몰려나와 놀고 있는 아이들 눈망울처럼 동네에 온기를 내려 주리라 믿고 싶습니다.
살고 있는 분들의 삶의 애환이 너무나 진해 이를 화폭에 담아내기가 힘들었지만, 곧 사그라지고 말 삶의 빛깔을 기록하는 일만이라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였습니다. 오래된 앨범 속의 풍경으로 남아 언제나 펼쳐내 볼 수 있는 기억이 되길 바랍니다. ”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는 “본 전시에서 지역 주민에게 친근한 풍경을 담은 유화 작품을 선보임으로 시각예술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고 향유의 기회를 확대하고자 한다.”라고 전시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2018년 5월 31일까지 진행하는 본 전시는 4월 20일 17:30부터 시작한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 전시 정보 및 기타 사항
– 전시 정보
  관람시간: 화, 수, 금, 토, 일10:00~18:00 / 목14:00~18:00   (입장은 관람시간 종료 20분 전까지 가능)
  휴 관 일: 매주 월요일 및 법정공휴일 다음날
  문 의: 우리미술관(032.764.7664) 
  주 소: 인천광역시 동구 화도진로 192번길 3-7,9,11 
  홈페이지: (바로가기 ▶)
  주최/주관: 우리미술관 (재)인천문화재단
  후 원: 인천광역시 동구청

우리미술관(032-764-7664)

 

[소식 3] 인천역사문화센터, 2018 상반기 <인천역사시민대학> 개최

(재)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 최진용) 인천역사문화센터는 인천대 사범대학·강화도서관과 함께 시민을 대상으로 강화·고려 역사를 포함한 인천시의 역사와 문화유산 이해를 돕고자 2018년도 상반기 <인천역사시민대학> 강좌를 운영한다. 5월 3일부터 6월 26일까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9시에 강화와 인천에서 각각 7강씩 진행한다.

<인천역사시민대학>은 강화 및 고려사와 관련한 주제로 2014년과 2016년부터 각각 진행한 <강화역사아카데미>와 <청소년 강화역사 바로알기>를 통합하고 인천시의 역사와 문화를 포함하도록 확대 개편한 것이다. 2018년 상반기 <인천역사시민대학> 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이하여 ‘고려의 역사와 문화 재조명’ 특별 강좌로 진행한다.

인천역사문화센터는 “2018년 새롭게 개편한 <인천역사시민대학>은 다양성과 개방성, 역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고려가 이룩한 빛나는 성취와 역사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기획하였다.”라고 밝혔다.

강좌는 두 부문으로 나누어 고려시대 대표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시대를 빛낸 고려 명품 7선>과 고려의 정치와 사회·문화를 소개하는 <고려 건국 1100주년, 고려는 어떤 나라였나>를 주제로 각 7강씩 인천과 강화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하반기에는 주제를 서로 바꾸어 진행)

수강 신청은 4월 16일(월)부터 이메일 또는 전화로 가능하며, 수강 인원은 총 70명으로 선착순 모집한다. 수강료는 없으며 자세한 내용은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바로가기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천역사문화센터(032-455-7168)




인천아트플랫폼의 미래를 그리다.

신임 인천아트플랫폼 이재언 관장 인터뷰

4월 초, 인천 아트플랫폼에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다. 바로 신임 관장으로 임명된 이재언 관장이다. 평창비엔날레 예술감독, 동아시티미술관 학예실장, 선갤러리 디렉터, 도시 미학연구소 등 활발한 활동을 해온 그가 인천 아트플랫폼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된다.
인천문화통신 3.0은 인천아트플랫폼 2016년 입주 작가로 참여했던 채은영 큐레이터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각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인사이트를 만들어 온 두 사람이 개관 10주년을 앞둔 인천아트플랫폼의 지난 활동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지역 예술계와 시민들이 관장님에 대해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이하 IAP) 관장에 지원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1984년 교직 생활로 인천과 인연을 맺었는데, 교직을 떠난 후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다른 지역에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인천에서 계속 교직을 맡았고, 강화도에서 거주하면서 계속 인천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인천에 오랜 시간 살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일을 할 기회가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 신임 관장 공모를 보고, 제 경험을 살려 IAP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여 년 전 플랫폼을 기관 명칭으로 사용한 것에서 인천 시각 예술의 의미 있는 거점 공간으로써 미래가 밝다고 느낀 것이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지요.

▶ 내년이면 IAP가 설립 10주년을 맞이하는데요 그동안 IAP 활동에서 의미 있는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크게본다면, 인큐베이팅 역할은 성공적이었다고 봐요. 레지던시 기간 동안 이곳을 통해 성장하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IAP가 생김으로써 개항장 문화지구에 여러 문화 기관, 단체, 공간 등이 생겨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얼마전 근처에서 우연히 어느 작가를 만났는데, 최근 인천에 작업실을 마련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여러 작가나 관계자들이 IAP 거주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이런저런 관계를 만들고 주변에 모여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 그런데도, 아쉬운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제까지 IAP의 활동은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작가들이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점점 경제적인 뒷받침에 대한 중요도가 생기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프로모션이 가장 아쉬운 부분 같아요. 단순히 시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로와 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가능하다면, 국내외 아트페어에 IAP 작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거나, 입주 연구자를 큐레이터와 비평가 이외에 프로모션 할 수 있는 전문가들도 입주할 수 있도록 구성하면 어떨까 싶어요. 이러한 활동들이 향후 인천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 프로모션이라는 말이 아트페어와 관련된 홍보와 마케팅쪽으로만 생각할수 있을거 같은데요. 작가들의 작업과 활동이 다양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공공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IAP에도 지역 연고가 있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가 있는데, 한쪽에만 비중을 두긴 어렵겠지요. 공공 기관이 주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많은 준비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지역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날 부분에 대한 정책 제안도 필요할 것이고요. 무엇보다 인천에도 시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외부 행사와 움직임에 대한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단순히 ‘시장’으로만 볼 게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접근도 필요하고, 아트페어를 미술계 행사로만 보는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역 정책, 행정, 교육계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미 지식이 경제적 가치를 갖는 시대가 되었잖아요. 작가들의 지적 재산권과 같은 분야도 프로모션이 많이 필요하겠지요. 작가들의 작품이 판매되는 기반이 되면 좋겠지만, 그 외에 원작을 다양한 제품이나 프로젝트에 활용할 수 있겠지요. 그런 경로나 활동이 활발해지면, 작가들이 지역에서의 활동에 좀 더 의미가 생길 것이고요. 그런 방법에 지역 안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다각적 프로모션에서 IAP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어요.

▶ 아무래도 지역 시각예술 인프라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IAP에 대한 지역 미술계의 기대와 우려가 있는데, 지역 미술계에서 IAP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IAP가 처음 생겼을 때와 달리 요즘엔 작업 공간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안 나올 정도로 지자체에서 레지던시가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제는 지역 중심의 운영으로 조금씩 변화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 지역 작가와 교류를 하며 창작과 기획의 구심점이 되면서 원래 설립 취지를 지역과 관계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폐쇄적으로 지역 작가만 모여 있는 것은 아니라, 지역 내외의 교류는 여전히 필요하죠. 다만, 좀 더 지역 작가가 주축이 되는 쪽으로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하고 프로모션 방향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 프로모션의 대상에 시민도 포함될 수 있겠지요. 시민 향유에서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계신가요?
미술의 유통에 시민 향유는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오랜 학습과 경험으로 교양과 문화로 가야겠지만 참 쉽지 않지요. 저는 작가들의 작업 세계와 활동도 매우 중요하고 존중하지만, 시민들의 눈높이를 무시하면서 시민들의 수준이 올라오길 바라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그래서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예술 콘텐츠가 공급되면,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연스럽게 높은 단계까지 예술을 찾게 될 것으로 생각해요. 이러한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굉장히 고민해서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고, 시민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데 역점을 두고 싶어요.

예를 들어, 막연한 미술 시장이나 구매 관련한 이야기보단 실제 시민들이 여유가 된다면 정말 그림을 갖고 싶은지 기본 데이터 같은 것도 만들어 시민들의 수요나 요구 사항을 도출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지역 미술계에 관한 여러 지표나 통계가 부족한데, IAP가 수행하는 사업에서 그러한 부분에 관심을 두고 기초를 만들면 작가나 기획자들 그리고 지역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 올해 사업은 전임 관장님께서 작년에 결정된 부분이 많을 텐데, 올해와 내년 계획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가요?
지금은 이미 작년에 계획한 사업을 수행하는 단계라 많이 바꾸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올해 추진 중인 행사를 하면서, 시민에게 좀 더 다가가는 역할을 고민하고 있어요.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큰 틀에서 사업을 바꾸기보단, 이미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 효과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하고 있고 내년에 본격적인 프로모션 사업을 위한 준비 정도는 추진해보려 합니다. 내년은 10주년이니까 ‘홈커밍데이’를 준비해 그동안 IAP에 입주했던 많은 작가와 관계자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어 볼까 해요. 단순히 모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간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같이 전시도 하고, 흩어졌던 네트워크를 재규합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진행 채은영 (독립 큐레이터)
사진 김혜나
편집 이진솔




최용백 사진전 <송도, 갯벌의 기억>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시: 2018.04.14(토)-04.26(목)
장소: 한중문화관 갤러리(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238)
후원: 인천광역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재)인천문화재단

사진: 인천문화통신3.0 민경찬




인천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OT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시: 2018. 04.13(금), 오후6시~9시
장소: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센터 H동 2층
주최/주관: 인천문화재단 정책연구팀

사진: 인천문화통신3.0 민경찬




‘기차길옆작은학교’ 정기공연 <집>

가난했지만 함께여서 외로울 틈이 없었던 ‘기차길옆작은학교’
‘기차길옆작은학교’의 28번째 정기공연 ‘집’

지난 4월 7일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는 빈자리 하나 없을 정도로 객석이 가득 찼다. 매년 4월마다 열리는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정기공연을 보기 위해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꽉 채운 것이다.
올해로써 28번째 열리는 이번 공연의 주제는 ‘집’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만석동 쪽방촌의 공부방 기차길옆작은학교. 처음 집이 지어지고 주인이 바뀌면서 공부방으로 재탄생하고 동네 아이들로부터 사랑받기까지의 사연을 서사적으로 풀어냈다.
공연의 전체적인 맥락은 인형극이 이끌었다. 인형극 호흡의 사이사이는 타악패와 춤패, 노래패가 채웠다. 한자리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은 관객들에게 조금의 지루할 틈도 주지 않았고 뜨거운 환호와 호평을 이끌어냈다.

늘 그랬듯이 올해 기차길옆작은학교의 공연도 만석동 쪽방촌의 가난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공연을 보기 앞서 관객들은 기차길옆작은학교가 놓인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기 전 영상을 통해 ‘만석동 쪽방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중미 작가의 장편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공간배경이었던 만석동은 이미 우리들에게 ‘가난한 동네’로 익숙하다. 만석동은 6·25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모여들면서 판자촌을 이뤘다. 1970년대에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이들은 가난했지만 가난을 외면하지 않았다. 가난을 받아들였고 자립공동체를 통해 그들만의 삶의 방식으로 가난을 마주했다. 그 방식 중의 하나로 1987년 공부방 기차길옆작은학교가 세워졌다.

공연에서는 이곳을 중심으로 만석동 사람들의 삶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주었다. 미취학 아동부터 고등학생까지 30여 명의 공부방 아이들이 공연에 참여했다. 이모 또는 삼촌이라 불리는 공부방 선생님들이 힘을 보태며 짜임새와 재미를 두루 갖춘 완성도 높은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본 공연의 시작은 인형극으로 시작됐다. 대사에 맞춰 여러 아이들의 손에 의해 인형들이 정교하게 움직였다. 인형극에서는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집에 처음 사람의 발길이 닿게 된 이야기가 상연됐다. 본래 1층이었던 집은 2층으로 새롭게 올려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연은 자연스레 타악패로 넘겨졌다. 2층으로 올리는 공사과정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목재판과 양동이로부터 나오는 경쾌하고 리듬감 넘치는 소리로 표현됐다. 이어 70년대의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현장에서의 처절한 외침도 타악패의 북과 장구소리로 대신해 채워졌다. 연이어 펼쳐지는 타악패의 흥겨운 무대에 공연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다시 이야기를 넘겨받은 인형극에서는 젊은 부부가 새로운 집주인이 되면서 ‘기차길옆작은학교’라는 이름으로 공부방이 차려진 사연이 들려졌다. 공부방에서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며 공부하고 노는 모습은 춤패의 개구지고 장난끼 넘치는 춤으로 꾸며졌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들의 빈자리를 대신해주는 공부방이 생기면서 함께 지내게 된 아이들은 가난했지만 외로울 틈이 없어 보였다.
공연의 끝은 노래패의 순수하고 따뜻한 울림으로 마무리됐다. 노래패가 불렀던 ‘집’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노랫말에서 재개발 바람에 밀려 날이 갈수록 움츠려드는 공부방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관객들에게 전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은 우리 삶에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러나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아이들은 공연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을 마주하고 이겨내는 생각과 자세는 변했음을 알려준다. 이곳의 아이들은 가난 앞에 당당했다. 공부방에서 가난에서 오는 외로움과 무기력, 두려움, 슬픔에서 자유로워졌고 꿈을 키워갔다. 가난을 매개체로 함께 나누고 어울리며 더 나은 가치와 꿈을 실현해 나간 것이다.

 

글·사진/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정해랑
marinboy58@naver.com




<문학이 있는 저녁> 한국근대문학관의 수요일은 특별하다

인천역에서 차이나타운을 지나 한가롭게 주변을 구경하고, 안쪽으로 들어오다 보면 인천 예술의 랜드마크 아트플랫폼이 나온다. 일자 통로를 두고 양옆에 줄지어 서 있는 크고 작은 건물들을 지나면 한국근대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무엇을 하는 곳일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홈페이지도 개설해있고, 입간판도 세워 있지만 왠지 모르게 낯선 공간. 하지만 낯설다는 느낌과는 살짝 무색하게 많은 사람이 오가며,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별한 수요일?

‘문학이 있는 저녁 – 한국 현대문학 명작 특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30분에 다양한 주제와 문학작품으로 여러 대학교의 강사들이 총 8번의 특강을 진행하게 된다. 수강료는 무료. 나는 예술대학을 다녔다. 그렇기 때문에 타 학과 학생들보다는 선택할 수 있는 교양과목 폭이 굉장히 좁은 편이었다. 게다가 신화나 문학, 역사수업을 수강하고 싶어도 자리가 금방 차거나 관련된 과목이 없을 때가 많았다. ‘현대문학 명작 특강’을 개강한다는 희소식에 바쁜 와중에도 발걸음을 한국근대문학관으로 향하였다. 3층 교육연구실로 도착하니 다과와 프린트물이 준비되어 있고, 제시간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자리가 꽉 차 있었다. 현대문학특강뿐만 아니라, 미술사, 근대문학, 세계문학 등 여러 특강이 기획되고 준비된다는 이야기에 괜히 마음이 설렌다.  

청춘의 전설을 만들다 – 김내성의 ‘청춘극장’

살짝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청춘극장’이라는 소설이 생소했다. 그러나 나보다 조금 연배가 높은 분들에게는 친숙한 작품인듯하다. 한양대 김현주 강사의 경쾌하고 밝은 인사로 특강이 시작됐다.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두 시간에 걸친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김내성 작가와 ‘청춘극장’에 대한 애정이 담긴 강사의 표정과 말투는 강의 몰입도를 한층 높여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책도 마치 맛있게 다 읽은 것처럼

강의는 <김내성, 그는 누구인가>,<’청춘극장’ 스토리 속으로>, <영화 ‘청춘극장’ 엿보다>, <청춘의 전설을 만들다.>로 크게 4개의 구성으로 진행된다. 미리 준비된 유인물은 수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강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먼저 김내성이라는 작가 소개가 시작된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피와 눈물을 흘렸던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문인들은 자취를 감추거나 친일작품을 남겼다. 김내성 작가도 살아남기 위해 친일문학 작품을 썼지만, 수치심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난리 통 속에서도 5권의 장편소설을 집필하고, 불티나게 팔렸다는 사실이 대단하다.

추리소설의 특징을 가진 연애소설 ‘청춘극장’은 그 시절 우리 청춘들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더불어 작가 본인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반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 내에서는 많은 청춘들이 서로 얽혀서 누군가는 양심을 지키고, 누군가는 양심을 팔고, 누군가는 사랑을 얻고, 누군가는 사랑에 실패한다.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독립운동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내용이다. 청춘들의 사랑과 독립운동이라는 사회적 배경이 공존하는 내용을 보며, 고단했던 시절 사람들에게 ‘연애’라는 조미료가 얼마나 달콤했을지 상상했다. 청춘들의 로맨스가 이야기 대부분을 전개하고 있지만, 사랑이야기가 역사적 흐름을 부드럽게 이끌고 가는 윤활류 역할을 한다.

모든 베스트셀러류의 문학처럼 ‘청춘극장’ 역시 영화로 만들어졌다. 대중들에게 한껏 사랑을 받고 완결된 후, 몇 년이 지나서야 영화로 개봉할 수 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가 많아, 이를 영화에 모두 반영하려면 비용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흥행과 상관없이 3편의 영화로 제작된 ‘청춘극장’은 멋진 청춘스타들을 배출해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결말 부분이다. 해피엔딩이 아닌데도, 굉장히 밝고 경쾌한 ‘축배의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면서 막을 내린다. (소설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죽지만, 영화에서는 주요인물인 운옥이 죽는다) 영화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아무도 비극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힘든 것은 지나가고, 결국 새로운 것이 다시 시작된다. 영화 시나리오가 소설 줄거리와 조금은 다르나, 원작에서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주요 메시지 만큼은 시각적, 청각적으로 잘 연출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청춘은 막을 내린다.

남녀 주인공이 생을 마감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삼각관계의 여인 운옥만이 살아남아, ‘독립운동가’로서, 해방 뒤엔 ‘청춘’으로서 남은 발걸음을 새기며 걸어간다. 강사님은 작가가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백영민과 그의 연인 오유경이 죽음을 맞는 결론을 이끌면서 과거에 행했던 부끄러운 자신의 행위(친일작품을 썼던 사실)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는 마음을 투영했다고 한다. 죄인은 있으나 악인은 없다처럼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 ‘그때의 상황이라면 너도 악한 마음을 먹을 수 있었겠지, 잘못된 선택을 했을 수도 있지.’라는 측은한 마음이 든다. 이는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자, 본인에게도 건네고 싶은 말일 것이다. 또한, 초반에 ‘도라지’꽃 전설을 이야기하며 영민과 운옥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할 거라는 암시를 주지만, 예상과 다르게 두 주인공인 죽음으로써 반전의 묘미가 있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청춘은 운옥이 아닐까. 아프고 괴로웠던 시기를 견디며 내일로 향하는 청춘. 청춘극장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현재 우리 시대의 청춘과 그 시절의 청춘에게 요구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지금의 청춘들에게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지만, 한참 20대인 나에게 그때의 청춘들을 바라보는것은 그 시대의 삶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청춘 극장’ 강의는 막을 내렸지만, 매주 수요일 한국근대문학관에선 7번의 명강의가 남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귀가 즐거웠으면 하는 분들도, 심도 있는 인문 배경지식을 알고 싶다면 다음주 수요일에 6시 30분까지 근대문학관에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글·사진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이은솔




비온새라이브 <비극 속에 울려 퍼지는 영혼의 노래>

누구나의 인생에도 비극의 장이 열리는 때가 있다. 그리고 만약 주변의 누군가가 그들의 인생에서 비극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면,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이 망연자실하여 힘들어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의외로 어떤 이들은 그들에게 닥친 인생의 비극을 최대한 담담하게, 또는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바로 상습수해지역에 위치한 비온새라이브 사람들이 그렇다.

비온새라이브는 상습수해지역의 라이브 카페 이름이다. 상습적으로 수해가 발생하는 아랫마을과 윗마을 사이에 비온새라이브가 있다. 비온새라이브에서는 물에 잠긴 아랫마을이 훤히 보인다. 연극 비온새라이브는 바로 이 라이브 카페 비온새라이브를 무대로 펼쳐진다.

수해로 인해 학교로 가는 다리가 잠겨서 비온새라이브 안에 갇혀 있는 고등학교 3학년 진아는, 왜 사람들이 수해지역을 떠나지 않는가를 질문한다. 하지만 비온새라이브의 여주인 경애가 방송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사실 마을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수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둑을 세우고 제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하지만 선거 때만 반짝할 뿐 여전히 공약은 이행되지 않는다. 결국, 많은 사람이 마을을 떠나고, 이제 마을은 잠깐 왔다가 돌아가는 외지 사람들만 드나드는 별장촌이 되어간다.  

 마을 사람들은 수해로 인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에 대해서 방송 인터뷰를 하고, 새로 바뀐 도지사는 혹시 다를까를 기대하면서 도지사에게 전달되는 보고서 속에 그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상습수해가 일어나는 이 지역에는 지난번 수해 이후 4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다. 그저 수해에 익숙해진 주민들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몇 년마다 반복되는 수해에 익숙해진 탓인지, 수해로 많은 것을 잃은 상태에서도 의기소침하지 않다. 그저 담담하게 마을을 집어삼킨 수마를 바라보는 것뿐이다. 그리고 물이 빠지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리고 오기로 약속한 사람을 기다린다. 전기도 끊긴 비온새라이브 안에서 촛불을 켜놓고 앉아있는 고3 진아는 수해복구작업을 하러 간 엄마, 온새를 기다리고, 주민들은 이번에는 예전과 다른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도지사가 수해복구작업을 하러 온다는 소식에 그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들은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오겠다는 말만 들릴 뿐 오지 않는다. 온새도, 도지사도 저 아랫마을 물에 잠긴 지역에서 수해복구 작업을 한다는 말만 들리고, 온새가 작업했다는 수습된 유해만 돌아올 뿐 오지 않는다.

비온새라이브는 물속에 잠긴 수해지역을 바라보는 곳으로 묘사되지만, 어쩌면 그곳은 전기까지 끊겨서 잘 보이지도 않는, 어딘가에 갇힌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세월호가 바닷속에서 기울어져 반은 물속에 잠기고, 반은 물밖에 솟아 있는 것처럼, 물에 잠긴 곳과 그렇지 않은 곳 사이에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 비온새라이브가 있는 것이다. 만약 세월호의 물에 잠긴 부분과 물 밖에 떠있는 사이 틈새에, 산소가 있어서 그나마 버틸 수 있던 그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있었다면 어쩌면 그들은 비온새라이브의 사람들처럼 지내지 않았을까? 비온새라이브의 진아가 아랫마을에 수습하러 간 엄마 온새를 계속 기다리고, 어떤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도지사를 기다리는 것처럼, 오기로 한 사람, 그러나 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비온새라이브의 사람들은 수해복구작업을 하러 왔다는 도지사가 오기를 기다리지만 비온새라이브에는 들르지 않고 돌아가버렸다는 얘기에 서운해서 계획했던 공연을 취소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도지사가 오지 않는다고 하여도 준비했던 아카펠라 공연을 하기로 결정한다. 마지막 장면, 모든 전기가 끊기고 암전 속에서 울려 퍼지는 아카펠라는 마치 영화 타이타닉에서 물에 가라앉는 배 안에서 연주를 하던 악사들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 놓였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오지 않지만,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악기 삼아, 영혼을 나눈다.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는 공간은 결국 캄캄한 어둠 속에 묻혔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그들의 몸과 영혼은 노래가 된다.

비온새라이브
작 이양구
제작 극단 작은방

장소 인천아트플랫폼 공연장 C
일시 2017.4.11(목) ~ 12(금) 오후 4시, 7시

 

글. 사진/

김경옥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수필가, 옥님살롱(블로그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