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띠 스트링’ 앙상블과 함께하는 클래식 콘서트 <인사이드 아웃>

장소: 인천생활문화센터 A동 이음마당 ((구)아트플랫폼)
일정: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5월 2일, 9일, 16일, 23일, 30일 총 5회)
주최/주관: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팀

사진: 인천문화통신3.0 민경찬




청년들의 유쾌하고 풋풋한 도전기…‘갑신정변’의 재구성

인천시립극단 창작극 프로젝트 첫 번째 작품 <너의 후일은>

‘갑신정변’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구성한 창작극이 선보였다.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6일까지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인천시립극단의 첫 번째 창작극 <너의 후일은>이 공연됐다. <너의 후일은>은 실패의 역사로 기록되는 ‘갑신정변’을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하며 많은 관객의 주목을 끌었다.

이번 공연 <너의 후일은>은 인천시립극단이 오랫동안 준비한 창작극 개발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다. 이양구 작가를 포함해 4명의 극작가가 공동으로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면서 ‘갑신정변’이라는 소재에 흥미를 느껴 창작극으로 재구성했다.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급진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1884년)’은 철저한 준비 없이 성급하게 치러지며 ‘3일천하’로 막을 내린 어두운 역사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너의 후일은>에서 ‘갑신정변’은 더 이상 실패의 역사가 아니었다.
이양구 작가는 “그간 갑신정변은 패배의 역사로 인식됐는데 작품을 구상하면서 시작의 역사이며 승리의 향한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 청년들의 열정과 패기가 담긴 진보적인 운동으로써 유쾌하고 풋풋하게 그려내고 싶었다”고 작품의도를 밝혔다.
‘갑신정변’이 시작점과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 ‘<너의 후일은>이라는 이번 공연 제목의 연유가 짐작됐다.

<너의 후일은>에서 등장인물은 조선인 외에도 상당수의 외국인이 등장했다. 당시 개항기를 맞이하며 각국에서 몰려든 외국인들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갑신정변’의 면면들도 빼놓지 않은 것이다.
이번 연극의 연출을 맡은 강량원 감독은 “외국인 등장 인물에게는 마치 광대같이 화려하고 유쾌한 캐릭터를 부여했다. 반면 조선인 등장인물들에게는 진중하고 비장한 캐릭터를 입히려고 노력했다”며 “이로써 갑신정변이라는 한 사건을 유쾌하면서도 서정적인 이야기로 재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연출 소감을 말했다.
이어 다케조에 역의 최재웅 배우는 “기존 역사극에서는 보통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우리 극에서는 각 등장인물의 개성과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애를 썼다”라고 덧붙였다.

극 중 배경이 인천이라는 점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서구의 근대문화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은 어촌마을이었던 제물포에는 인천세관이 들어서고 대불호텔이 세워지는 등 근대화의 물결이 일렁였다.
<너의 후일은>에서는 위와 같은 개항기 속의 인천의 옛 풍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실제로 극 초반에는 인천의 당시 시대적·공간적 배경이 드러나는 배우들의 대사가 주를 이루며 관객들로부터 과거 인천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케 했다.

첫 번째 창작극 <너의 후일은>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인천시립극단은 앞으로 올해 12월까지 창작극 3개를 더 선보일 예정이다.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되짚어 보고 다가올 미래를 위한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공연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글.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정해랑

2018-05-08
정해랑 기자
marinboy58@naver.com




실재가 이미지를 만드는가, 이미지가 실재를 만드는가

실재와 이미지 사이 ‘이미지를 거닐다’ 

아이는 얕은 물이 놓인 곳을 좋아한다. 그 물가를 걸으면서 작은 돌멩이를 줍는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 돌멩이 던져요. 엄마 이거 물에 던져요.” 그렇게 아이와 함께 얕은 물에 작은 돌멩이를 던진다. “착!” 돌멩이가 물의 표면에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돌멩이는 바닥으로 가라앉고, 돌멩이가 떨어진 물 표면에는 작은 원들이 생겨났다가 그 원의 크기가 커지면서 사라진다. 그리고 아이는 그 물을 보면서 좋아한다. 아이는 물속에 돌멩이를 던져보는 경험을 통해서 물에 무언가를 던지면 물속에서는 작은 원들이 생겨났다가 커지면서 사라지고, 그렇게 흔들리는 물이 잔잔해지고 나면 그 속에 자신의 모습, 자신의 이미지가 비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천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열리는 ‘이미지를 거닐다’ 전에서 만난 김창겸의 작품<Water Shadow in the Dish>는 다르다. 물웅덩이에 마땅히 존재해야 할 나의 이미지가 없다. 김창겸의 작품은 마치 물웅덩이로 착각하게끔 생겼지만, 그 영상에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없다. 이런 부조화를 바라보며 관람자는 당황하면서 신기하다. 물속에 돌멩이가 던져지고 그 돌멩이가 물에 빠지면서 소리도 들리지만, 그것은 나의 행동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다. 실재의 나와 내가 바라보는 곳에 비쳐야 할 나의 이미지가 분리된 것이다.

나의 이미지가 있어야 할 곳에 그것이 없다면, 나의 모습은 세상 어느 곳에 비치는 것일까? 세상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나의 이미지가 부재하다고, 나의 실체 또한 없는 것은 아닐진대, 이미지가 없는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나의 이미지는 세상과 내가 소통하는 모습일 것인데, 이미지가 없다면 나는 대체 무엇으로 나를 표현해야 하고,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마땅히 내가 보여야 할 곳에 내가 아닌 다른 이미지가 자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세상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방황할지도 모른다. 나의 본질은 이미지가 없이 존재할 수도 있는가? 과연 나의 실재는 나의 이미지와 분리될 수 있는 것일까?

몇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사이에 우리는 고개를 돌려 또 다른 영상을 마주한다. 그곳에서는 실제인지 꿈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개하는 곳에 그림자만이 지나다닌다. 그림자의 움직임에 따라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닌다. 꽃을 피우게 하고 나비를 날아들게 하는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채 그의 그림자만 남은 것일까? 과연 저 그림자의 주인은 누구일까? 우리는 끝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의 그림자가 지나다니므로 세상이 환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림자 주인의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하게 된다. 이미지 속을 거니는 그림자는 그 스스로 꽃을 피우게 하고, 나비를 날게 한다. 우리는 마치 목소리와 향기로 무언가를 유추하듯이 그림자가 이끌어 내는 영상을 두고 그림자 주인의 모습을 상상한다. 우리가 어떠한 이미지를 두고 무언가를 판단하고자 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그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그 이미지가 반영하는 실재가 아닐까? 꽃을 피우게 하고 나비를 날게 하는 그림자를 앞에 두고 그 그림자 주인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재형의 <Bending Matrix>는 동물의 형상 위에 LED 인공조명을 이용하여 그 동물이 가진 무늬를 재현한다. 본디 말은 자연이고 말의 표면에 가진 무늬 또한 자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재형은 말의 형상 위에 인공적인 빛을 쏘아 무늬를 만듦으로써 인공적인 방법으로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디지털 이미지의 정교하게 구성된 Matrix를 자르고 구부린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매트릭스를 말의 형상 위에 비춤으로써 그 말이 가질 수 있는 갖가지의 무늬들을 표면에 쏘아낸다. 우리는 이재형의 <Bending Matrix>를 통해 새로운 무늬를 가진 말을 만난다. 말은 자연의 것이었지만, 이재형의 작품 속에서 인간이 새롭게 만들어낸 창조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인공조명의 구조가 달라짐에 따라 시시때때로 색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익숙한 동물인 말이 새로운 매개를 통해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마주하며 우리는 역설적이 되게도 우리에게 놓인 자연과 환경을 다시금 관찰하게 된다. “말의 무늬가 원래 어땠더라?” “이렇게 바뀔 수도 있는구나!” 하면서 말이다. 새로운 이미지가 거니는 말의 형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 주변의 익숙한 환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관찰하고 돌아본다.

전시장소: (재)인천문화재단 트라이보울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타워대로 250(송도동 24-6)
전시기간: 2018. 4/25(수)- 6/29(금), 월 휴관
관람시간: 1PM – 5PM
휴관일: 4/29, 5/1, 공휴일
문의: 032-831-5066

 

글 사진/ 김경옥 인천문화통신3.0 기자
(수필가, 옥님살롱 http://expert4you.blog.me)




[큐레이션 콕콕] 사투리의 역습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의됩니다. 사투리는 ‘표준어가 아닌 말’로 명명되고요. 조선 시대에는 서울말과 지방어 간에 등급이 없었습니다. 이덕무 같은 학자도 지역에 내려가면 현지 언어를 배우는 게 자연스러웠죠. 최근 <방언의 발견>을 펴낸 정승철 교수는 표준어 개념이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주의의 상징물이라고 지적합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울말에 표준어 자격이 주어졌다는 겁니다.

‘서울에서 쓰는 말’이 공식적으로 한국의 표준어가 된 것은 1912년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이 나온 이후부터입니다. 기본 원칙 1항에 ‘현대 경성어(京城語)를 표준으로 삼는다’고 명시했습니다. 이 철자법은 조선총독부가 만들었고요. “세계 각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표준어를 통한 언어 통일을 추구했어요. 총독부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였어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정 교수는 설명합니다. 일제와 대척점에 있던 조선어학회는 1933년 ‘표준어 사정위원회’를 발족합니다. 총독부는 효율적 통치를, 조선 지식인들은 민족의 역량을 높일 목적으로 표준어 확립을 위해 애쓴 거죠.

‘표준어와 사투리의 치열한 대결’은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지만 정 교수는 부작용이 컸다고 주장합니다. 표준어의 그늘에 가린 사투리는 푸대접을 받으며 척결의 대상이 됐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부 지식인으로부터 ‘야비하고 야만스럽다’는 지탄을 받았던 사투리는 광복 이후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이 됩니다. “서울에 유학하던 학생이 사투리를 쓴다고 교사로부터 야단을 맞거나 구타를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입학이나 면접을 앞두고 사투리 교정을 위해 일부러 학원에 다니는 사람도 생겨났지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것 같던 사투리는 TV·라디오 드라마·영화 같은 대중문화를 통해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39호 [큐레이션 콕콕]은 사투리가 상품이 되고 브랜드가 되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봅니다.

없어서 못 파는 달력이 있습니다. 광주 1913송정역시장의 ‘역서사소’에서 판매하는 사투리 달력은 ‘포도시 일월’로 시작해 ‘기언치 유월’을 지나 ‘욕봤소 십이월’로 나아갑니다. 벽걸이, 탁상형 달력을 포함해 한해 3000부 이상 판매되는 히트작이라고 하네요. 청년들이 모여 시각디자인을 활용한 팬시류 개발을 고민하던 중 “광주, 전라도 문화를 (상품에) 녹여보는 게 어떨까?” 아이디어를 낸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광주, 전라도에 대해 공부하고 관련 사례를 찾아봤어요. 경상도나 충청도는 사투리를 활용한 제품이 많은 데 비해 전라도 말은 너무 촌스럽고 고리타분한 이미지로만 소비되고 있더라고요. 사실 보면 저나 직원들도 20~30대인데 전라도 말을 쓰거든요. 우리 제품을 통해 경상도 “오빠야~”처럼 전라도 말에도 귀엽고 예쁜 말이 많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과연 팔릴까? 걱정했던 사투리 달력은 3년 연속 출시 중이고, 벽걸이 달력은 없어서 못 팔 지경입니다.

고백엽서도 있습니다. “니랑 있응께 시간이 요로코롬 폴쎄 가부럿네”, “써글놈은 인자 잊아블고 멋진놈 맹글자”, “니만 생각하믄 내맴이 겁나 거시기해” 등 맛깔스러운 전라도 사투리가 적혀 있습니다. ‘기여 아니여’, ‘여간 낫낫허요’ 등이 적힌 스티커도 재미있습니다. 지난 2017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언어나 문화를 브랜드화한 사례로 참여하기도 했다네요.

역서사소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세상을 바꾸는 사투리’입니다. 지역의 예쁜 말을 알림으로써 조금이나마 지역감정을 완화하고, 서로의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역서사소’ 매장을 운영하는 디자인 크리에이티브그룹 바비샤인의 김효미 대표는 사투리가 아닌 ‘전라도 말’이라고 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일본은 도쿄, 오키나와 말이 다 다르지만, 굳이 사투리라고 하지 않아요. 지역 말이라고 하지. 우리나라만 표준어, 사투리를 구분하는데 이 자체가 문제라고 느껴요.” “왜 우리 지역 말은 없냐”고 하는 분들이 있어서 경상도, 제주도 말 제품도 만들고 있다고 하네요.

전라도닷컴이 2011년에 시작한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는 전라도 말이 품은 매력과 특색을 발산하는 장입니다. 동네 이웃, 시골 할머니 등이 전라도 말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았죠. 전라도닷컴 황풍년 편집장은 “늘 쓰던 말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시간”이라며 “전라도 말과 언어에 담긴 고유한 문화와 정서를 지키고 보존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하는 자리”임을 강조합니다.

황 편집장이 꼽은 전라도 말의 매력은 정스러움과 깊이 있고 풍부한 표현입니다. “어머니들이 ‘놀짱하다’ 이런 말을 써요. 노랗다, 샛노랗다, 노리끼리하다, 노르스름하다 여러 말 중 보리나 나락이 익어갈 때의 자연의 색감을 포착해낸 말이죠. ‘귄있다’는 말은 외모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까지도 칭찬하는, 그 말을 아는 사람들끼리는 최고의 찬사고요.” 표준과 전국화가 최우선이었던 시대에서 “가장 전라도다운 것”이 지역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매년 5월 강릉에서 열리는 단오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됐을 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은데요, 행사 때면 강릉 사투리 경연대회가 함께 펼쳐집니다. 벌써 24년째 이어져 오고 있죠.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만든 사단법인 강릉사투리보존회도 있습니다. 강릉 지역 사투리의 전승과 발전을 위한 교육, 강릉 사투리 홍보 및 캠페인, 사투리 시화전, 수공예품 제작, 강릉 사투리 소식지 ‘제일강릉이래요’ 제작 및 배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투리를 활용한 이모티콘도 있습니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이모티콘 ‘강릉사투리 고양이’는 지난달 23일 출시돼 7일 만에 전체 이모티콘 가운데 인기 순위 79위를 기록했습니다. ‘반갑소야’, ‘마이 좋아한다니’, ‘여르 보민 웃아(여기를 보면서 웃어)’, ‘어머야라.뭐이나(어머나. 뭐니)’, ‘진짜래요?’ 등의 강릉 사투리가 귀여운 고양이 그림과 함께 등장합니다.

사투리는 지역 주민들이 즐겨 쓰는 생활 언어입니다. 표준어는 옳고 사투리는 그르다는 잣대가 아닌 사투리가 한국어를 풍요롭게 한다는 인식 확산이 필요합니다.

지난 2010년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심각하게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로 진단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지구상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언어를 찾아 다섯 단계로 분류하는데요, 1단계 취약한 언어, 2단계 분명히 위기에 처한 언어, 3단계 심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 4단계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 5단계 소멸한 언어가 그것입니다. 제주어는 이 중 4단계에 해당합니다. 유네스코의 평가는 제주어의 가치를 인정하고 발전적인 언어 정책 실행을 독려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를 보존하자는 취지의 제주어 살리기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진행됩니다. 도서관에 제주어책을 무료 보급하고, 제주어로 어린이와 청소년 성우를 선발하기도 합니다. 제주교육박물관은 ‘소멸위기 제주어 상설전시관’도 개관했네요. 제주어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다섯 편은 상영은 물론 초등학교 교재에도 실린다고 합니다.

<방언의 발견> 저자 정승철 교수는 “이제는 ‘방언 사용권’을 보장하고 사투리를 복권(復權)시켜야 할 때”라고 이야기합니다. “언어에 우월한 것과 미개한 것이 따로 있나요? 서울말도 여러 지방어의 하나일 뿐입니다. 근대화를 위해 국민을 통합하려는 표준어의 목표는 이미 달성됐습니다. 사투리를 쓴다고 해도 의사소통에 큰 방해가 없을 정도로 모두 서울말에 가까워졌지 않습니까?” 그는 방언의 소멸 속도를 늦추는 작업이 고향을 잃는 속도와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하는 속도를 줄여줄 거라고 덧붙이네요.

 

* 다음과 같은 기사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1. “서울말을 표준어 아닌 권장어로…사투리 쓸 자유를 허하라”
    연합뉴스, 2018.4.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경상도는 씩씩, 강원은 순박… 사투리는 감성언어”
    조선일보, 2018.4.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전라도를 팝니다]전라도로 만들고, 팔고, 즐긴다
    광주드림, 2018.4.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없어서 못 파는 ‘전라도말’ 달력, 대박 난 비결
    오마이뉴스, 2018.4.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카톡 강릉사투리 이모티콘 인기
    강원도민일보, 2018.3.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이삐고 귄있다” 전라도말의 품격을 보여드립니다
    오마이뉴스, 2018.4.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윈도우 갤러리 매일매일 프로젝트 ‘오픈 윈도우 아뜰리에’

2018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안상훈
2018.04.21-5.12 , 상시
@ 윈도우갤러리

영상 김응준




점거의 민주주의, 옛 시민회관 쉼터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안역 옛 시민회관 사거리 앞에는 ‘옛 시민회관 쉼터’가 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곳은 한때 인천시민들의 문화공간이었던 인천시민회관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아마도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나신 인천 토박이라면, 시민회관에서 종종 상영하던 심형래, 김청기 감독의 영화를 보신 기억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민회관은 1994년 개관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 그 기능을 넘겨주었고, 2001년 건축물 노후로 철거되어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되었지요. 이곳에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이름의 기념비가 몇 개 있습니다. 이것들은 공통으로 하나의 사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986년 5월 3일에 벌어졌던 ‘5.3 민주항쟁’입니다.

5.3 민주항쟁은 1986년 3월부터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청주에 이어 개최된 당시 야당인 신한민주당의 직선제 개헌 추진을 위한 개헌 현판식을 계기로, 직선제 개헌을 포함한 사회 각계의 다양한 요구가 폭발한 시위를 말합니다. 이전까지의 다른 지역에서 열린 개헌 현판식 집회는 최대 30만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였습니다. 그러나 인천 5.3 민주항쟁이 이전 집회와 다른 것은 민주항쟁이 발생하기 직전에 일어난 4월 30일 여야 대타협에 대한 반발로, 정당 행사의 차원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의 요구가 직접 드러난 ‘중심이 없는’ 집회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시민회관에서 12시에 개최 예정이었던 신민당의 개헌 현판식은 최대 10만 명으로 추산된 시민들과 경찰들의 대치에 가로막혀서 열리지 못했고, 집회의 중심에는 학생운동을 진행한 대학생, 노동계, 종교계 등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었습니다. 오후 5시 반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기까지, 짧게나마 시민회관 사거리를 중심으로 발생한 시위현장의 가장자리에서는 경찰과 경계를 놓고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반면, 안으로는 군사정권의 질서를 무너트린 해방구였습니다.

인천 5.3 민주항쟁 정신 계승비(좌)와 86년 5.3 민주항쟁 당시 모습(우)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나 도시의 한 영토를 점령하는 것은 저항의 주된 방법이었습니다. 1832년 6월 프랑스 파리봉기 배경으로 다룬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을 보신 분들이라면 온갖 가구들로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2010년부터 아프리카와 중동을 강타한 ‘아랍의 봄(Arab Spring)’,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보름 넘도록 시민들로 메웠던 ‘2011 이집트 혁명’도 그 예입니다. 우리나라 또한 많은 노동운동가가 공장에서, 첨탑에서, 크레인 위를 점거해 왔고, 6월 항쟁에서는 시민들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곳곳을 점령했습니다. 그것을 국가가 제한할 수 없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도시의 한 공간을 점령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의사표현을 하는 거대한 장치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를 잠깐 돌려서,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élixGuattari)는 하나의 질서 속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을 ‘전쟁’이라고 묘사하였습니다. 철학자 이진경의 해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새로운 삶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시도가,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보존하며 통합하는 것을 기능으로 하는 국가와 충돌하는 사태”를 이들은 전쟁이라는 개념으로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들루즈와 가타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권력이 만든 현재의 질서를 ‘공간에 홈을 팝니다.’라고 합니다. 아무런 표시가 없는 맨 땅에 그어놓은 홈은 경계가 되고, 때로는 그곳으로 움직여야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던 땅 위의 사람과 사물에게 홈으로 표시한 질서는 주어진 제약입니다. 이를테면 인천 송도 커넬워크 옆이나 서울 세종대로를 예로 들수 있습니다. 반면, 앞에서 이야기한 ‘전쟁’을 만드는 존재들(들루즈와 가타리는 이들을 ‘전쟁기계’라고 부릅니다)은 이 홈을 따르지 않고 다시 공간을 ‘매끄럽게’ 만듭니다. 권력은 전쟁기계를 제압해서 기존의 홈을 유지하든 포섭하여 새로운 홈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권력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때, ‘점거’는 무엇보다도 효과적이고 강력한 투쟁이자 대화의 수단이 됩니다. 비록 작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질서에 저항하는 공간을 용인하게 되면, 전체의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라면 한 학생이 수업 중에 자더라도 당장 수업을 하는 데 문제는 없겠지만, 그 학생을 깨우지 않는다면 곧 모든 학생이 자버리고 말겠죠. 행군할 때 한 군인이 발을 맞추지 않는 것을 너그럽게 봐준다면 부대의 제식은 곧 무의미해지고 말 것입니다. 국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는 권력은 지속해서 작은 점령과 이탈을 찾아내어 다시 질서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질서 속으로 짓눌린 많은 사례만큼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든 사례들을 보아왔습니다. 1871년 파리시민, 노동자들의 봉기로 구성한 ‘파리 코뮌’ 정부의 설립과 해체,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전자라면 그로 인해 촉발된 1917년 ‘러시아 혁명’과 ‘6월 민주항쟁’은 후자일 것입니다. 권력의 질서가 사람들의 생각을 외면할 때, 점거는 권력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도시 공간 안에서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점거의 방법을 택해 왔고 지금도 택하고 있습니다.

OWS(Occupy Wall Street: 월스트리를 점령하라) 는 1%의 월스트리트에 대항하기 위해 99%의 모두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좌) 일자리, 교육, 의료보험 등 모든 미국 사회의 문제제기와 토론이 이루어졌다.(우)

지금까지의 많은 점거는 사회적 약자들의 마지막 선택이었기 때문에 폭발적이고 단기적이었습니다. 많은 점거는 빠르게 소멸하였거나 혹은 빠르게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점거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나의 예는 2011년 가을, 뉴욕의 경우입니다.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Occupy Wall Street, OWS)은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황소상을 둘러싸며 시작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월스트리트 부근의 주코티 공원을 점거하였습니다. OWS는 점거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습니다. 바리케이드를 쌓고, 밖을 향해서 버티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을 모두 받아들이는 열린 점거를 진행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금융자본의 욕심으로 인해 처한 자신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리버티 스퀘어(주코티 공원)’를 운영하기 위한 일종의 직접 민주주의를 실험합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은 점거가 순간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적인 것으로 변화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리버티 스퀘어 안에서 음식을 기부받아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노래를 부르며 회의와 이야기를 합니다. 밤에는 침낭과 텐트 안에서 잠을 잡니다. 도시에서 각자의 일상을 그대로 옮겨서 점거했던 것이죠.

2016년의 서울 또한 변화한 점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전히 많은 시민단체가 집회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무대를 설치하고 플래카드나 전단지를 만듭니다. 그러나 집회 선동자의 뜻에 따라 거리행진을 하고 점거의 가장자리에서 권력과 싸우는 등 과거의 점거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은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각자 자유로운 발언을 하며 공감하는 시간을 만듭니다. 노동조합, 대학 학생회가 아닌 ‘장수풍뎅이 연구소’, ‘끝나고 치맥’과 같은 유머 넘치는 깃발의 등장은 점거한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투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들이 ‘전쟁기계’일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인천의 5.3 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약 30년이 되었지만, 그 날을 한 번쯤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당시의 투쟁적이고 공격적인 점거의 모습이 2018년의 모습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약자는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에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점거는 어떤 모습으로든 계속해서 이루어지며 또 사라집니다. 오늘날의 도시 공간 속의 점거를 되돌아보고 민주화를 위해 애쓴 사람들의 노력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기 위해, 우리 도시에서 32년 전의 점거를 다시 기억해 봅니다.

 

글, 사진제공/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고병권(2012).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그린비
데이비드 하비(2014). 반란의 도시. 에이도스
이진경(2002), 노마디즘 1,2. 휴머니스트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2001), 천 개의 고원. 새물결
“그 날, 1986년 5월 3일”, OBS, 2017년 7월 1일 방송
이상철. 촛불을 바라보는 세가지 시퀀스. 뉴스앤조이, 2017.9.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빈 시간에 가득한 사건들

‘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 국제교류사업인 <중국십방아트센터>교류사업에 에 참여한 작가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어느덧 중경에 온 지 한 달 반이나 지났다니 시간이 참 잘 간다. 타지에 있으면 매일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며 사소한 발견에 의미를 두어 곱씹어서 생각한다. 덕분에 짧은 시간이지만, 돌이켜보면 많은 장소와 경험이 떠올라 시간이 금세 지나간 것 같다. 사실 이곳에서 체감하는 하루의 속도는 한국에서 보낸 하루보다 훨씬 더 느린데도 말이다. 현지 작가의 말에 의하면 예전부터 ‘젊어서는 쓰촨성에 살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느리고 게으르기 때문에 진취적이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중경도 예전에는 쓰촨성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범주 안에 들어간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춥고 더운 동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은 빠르고 급하지만, 이와 정반대의 날씨에 사는 서부 사람들은 말도 느리고 태평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게을러 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느긋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라본 중경 사람들은 바짝 열심히 일하고 잘 쉬는 것 같다. 나도 중경의 후덥지근한 날씨와 잦은 폭우 속에서 느리지만 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단기 레지던시의 아쉬운 점은 미술 재료와 도구들을 어느 정도 갖추는 게 좋을지 판단하기 모호하다는 점이다. 특히 외국에서는 더 그렇고 나처럼 여러 매체를 다루게 된다면 고민이 많아질 것이다. 장비를 비롯한 작업 환경조성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기엔 시간이 아깝다. 그렇다고 불편함을 감수해서 작업하기엔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 꼭 필요해서 만들 수밖에 없었던 촬영 카메라 받침대, 페인팅 테이블, 선반 2개, 그림 걸이 패널은 유효기간이 3개월이기 때문에 오직 시간의 효율성을 중심으로 제작했다. 스튜디오 주변에서 쓰다가 남은 목재들을 주워다가 만들었고 약간의 부실함과 마감처리는 너그럽게 눈감아 주었다.

위의 물건들을 만들기 위해서 드릴, 망치, 못, 피스는 직접 구매했지만, 그 밖의 장비들은 DAC의 목공실에서 빌려 사용했다. 나무를 자르는 작업 역시 톱밥이 많이 날리기 때문에 목공실에서 해결했다. 이번에 목공실을 사용하면서 알게 된 점은 작가레지던시 이외의 시설들이 특이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곳에는 목공실, 음악작업실, 사진 스튜디오, 서예교실, 원단염색실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 있는데 그곳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이자 책임자가 상주한다. 이러한 시설은 공용공간이 아닌 책임자의 개인 작업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레지던시 입주 작가들은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협업과 작업을 의뢰할 수도 있다. 나의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이 방식은 꽤 영리한 세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문 시설들은 아무나 함부로 사용하면 위험할뿐더러 장비가 고장 나기도 쉽다. 다양한 시설을 보유해도 관리가 안 되면 득보다 실이 많고, 일정 시간 방치되면 수습이 굉장히 어려워진다. 보여주기식 행정에서 자주 생기는 일이다. DAC는 전문 예술가이자 시설 책임자의 개인사업 활동을 후원하면서 그들의 시설이 지속해서 활성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책임자들은 장기간 무료로 작업실을 사용하며 기관을 통한 다양한 교류에 참여할 수 있다. 아울러 레지던시 작가들도 꼭 필요하다면 매일 출퇴근하는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내가 허락을 받고 목공실 기구를 사용한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모두 DAC와 마찬가지로 지역 예술과 관계가 있고 문화 연구와 개발이라는 공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Wenchuan Liang의 개인전

동료 레지던시 작가의 개인전 오프닝이 있었다. 도자를 굽는 작가인데 몇 점의 회화 작품을 포함하여 벽에 거는 조소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판매촉진을 위해 DAC 레지던시 전시공간이 아닌 디자인 가구 전문점에서 도자기 전시를 진행했다. ADC (Art and Design Center)에 위치한 꽤 큰 규모의 가구 매장이었다. 솔직히, 전시 관람을 위해 매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아쉬움이 컸다. 아무래도 크고 멋진 가구들이 많다 보니 작품이 그저 소품처럼 보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웬첸의 작업이 천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 년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90여 점의 작품을 만들었다니 참 부지런하다. 작품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 멀지 않은 곳에 진열된 또 다른 작품에 자연스럽게 다가가며 편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구성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아쉬움은 차츰 사라지고 오히려 큰 가구들이 도자 작업을 위한 조연 역할을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서부터 메인홀 벽까지 걸려있는 조소 작업은 작가의 예술성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쇼케이스 역할을 했다. 그 앞에 멈춘 사람들은 작품에 감탄하며 그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흙으로 구운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곱고 섬세하게 만들어진 작품은 전부 어린아이의 옷 모양을 하고 있었다. 레이스 한 올까지 정교하게 재연한 작품은 마치 깨끗이 빨아 놓은 보들보들한 아기 옷처럼 보이지만, 사실 물질적으로 돌에 더 가깝다. 작가가 현재 겪고 있는 가족사와 자신의 어린 딸과의 관계를 반영한 작품인 것 같다. 아름답고 애잔하면서 정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Tagman 퍼포먼스 작업

중경 거리의 사람들을 그리는 것은 내가 DAC 레지던시에서 펼치는 작업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 때문에 나는 외출 할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점점 사라지는 거리의 노동자 방방, 밖에 나와서 카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가게 안에서 마작을 하는 사람들, 뛰어노는 아이들, 거리의 고양이와 개들, 오토바이와 자동차, 해가 질 무렵 광장에 나와서 춤을 추는 아주머니들까지 이 도시를 느끼게 해주는 모든 것을 작은 그림으로 그린다. 어차피 외부인의 시점에서는 도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릴려고 노력했고, 그 그림을 다시 거리에 나온 시민들과 나누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300개의 그림을 인쇄해서 약 2000개의 태그를 만들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정보화되는 현시대를 표현함과 동시에 예술의 소비 가능성을 실험하는 작업이다. 한국에서 1년 가까이 계획했던 작업인데 어쩌다 보니 중경에서 첫 시작을 했다. 중국은 한국과 다른 형식의 SNS와 정보 공유 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특정 부분 수정이 필요했지만, 퍼포먼스 작업을 다른 환경에 맞추어 현지화하는 것 또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레지던시 매니저 Jing 도 기대에 찬 목소리로 주말에 사람이 붐비는 거리에 나가서 시민들과 소통하는 퍼포먼스를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었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도 잠시, DAC의 홍보를 담당하는 Shao Lihua와 Hu Ke가 미팅을 제안했다. 그들은 나의 퍼포먼스 작업에 위험 요소가 많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퍼포먼스 장소로 염두에 두던 쥐팡베(Jiefangbei) 거리는 사람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이목을 끄는 행위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는 쥐팡베 거리뿐만 아니라, 어느 명소에서나 해당된다. 쥐팡베는 거대한 고층빌딩에 둘러싸인 중경 도심 중심부에 있는 쇼핑거리이자 유명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광장이다. 재작년에 그곳에서 어느 여 작가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돌아다니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사람들이 공연을 볼려고 모여드니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공안들이 그녀를 잡아갔다고 한다. 섬뜩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사복 공안이 있는데 그들은 정치적 선전이나 선동을 감시하고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예술 활동을 금지하거나 처벌하지 않지만,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하거나 군중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즉각 수습에 나설 것이라는 것이다. 아뿔싸, 나는 공안에게 잡혀가고 싶지 않다. 내 작업은 정치적 성격도 없지만, 그들에게 내 작업을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게 뻔하다. 너무나 의심스러워 보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긴장감이 넘치지만, 허탈한 웃음과 함께 머릿속에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진다. DAC와 나의 안전을 위해 퍼포먼스 위치와 시간을 조정했고 조만간 진행할 작업이 더욱 기대된다.

 

글/ 사진
박경종 작가

 

박경종 작가는 페인팅, 애니메이션,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현실을 빗댄 상상의 공간을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예술활동지원 역량강화 분야에 선정되어 중국 중경에 위치한 십방아트센터에서 3개월 레지던시 활동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 바로가기 ▶) (인스타그램바로가기 ▶)




이혁종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올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활동할 2018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뽑혔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연구와 창작활동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창작지원 프로그램과 발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2018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를 소개합니다.

 

이혁종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에서 예술 경영학에서 수학하였다. 작가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의 예술을 사회적으로 분석하고 탐구한다. 그는 예술로 특정 지역에서 커뮤니티와의 소통의 가능성을 실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본주의가 생산한 예술제도 공간 중 하나인 레지던시에 들어가 시스템과 예술가 창작 영위 가능성 등을 연구해보기도 한다. 그 속에서 작가는 창의적인 공동체의 원리를 살펴보고, 예술가의 역할에 관해 탐구한다. 이렇게 작가는 삶으로서의 예술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다방면으로 탐구하며, 예술이 사회와 어떻게 매개하고 어떤 접점 속에서 확장되는지를 연구해오고 있다.

 

#현재 전시 소개
이혁종 작가의 개인전 <자아제국의 박람회-자기배양을 위한 스스로 회고전>이 5월 27일(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에서 진행된다. 작가는 그간의 지역, 커뮤니티아트 작업을 갈무리하는 작업의 총체적 집합체를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며, 이를 통해 ‘삶으로서의 예술’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아마도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에 아래의 글을 읽어본다면, 그의 작품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자주 언급하는 ‘삶으로써의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Q&A
Q. 창작의 관심사와 내용, 제작 과정에 대하여
A.
나 자신의 삶에 대처하는 수단과 방법으로써 예술을 탐색하고 기록한다. 주로 버려진 것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데, 나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기능하는 미술을 추구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대안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과정이며, 예술 작업이 된다. 최근에는 문화기획을 수학하면서 상상력이 나의 환경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떤 조건들이 있을까 하는 질문에 깊이 생각하고 있다. 이렇듯 나는 사회적으로 행하는 나의 예술실천과 미술 제도 속에서의 예술을 교차시키며 활동하고, ‘삶으로서의 예술’에 대해 탐구해오고 있다. 덧붙이자면, 나의 작업 방식은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는 특징이 있다.

Q. 대표적인 작업 소개
A. <방만한 예술책>은 2016 미디어시티서울에 출품한 아트북 형식의 작품이다. 그 속에 담긴 작업은 삶의 다양한 영역이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작년에 진행한 프로젝트이자 책자인 <다른생활>은 서울 도봉구 방학동이라는 한 지역에서 생활하며 진행한 활동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여기서 나는 커뮤니티와 관련한 이 작업을 공공미술의 측면에서 조명하였고, 실험과정과 에피소드 등을 아트북 형식으로 제작하였다. 그것은 자기 생활 연구에 해당하는 책이자, 미술작품이다.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 등
A. 삶은 비루하지만, 내 삶의 의미를 확대해석하는 것은 살아가는 데에 긍정의 힘을 준다. 2009~2011년 개인전 무렵에 가라타니 고진(からたにこうじん, 일본의 문예평론가이자 사상가)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분석하고 그 너머에서의 대안을 모색해보는 연구를 접한 바 있다. 그것은 내가 개인전을 설계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 후로 공동체를 연구하는 것, 어떤 지역 내에서 작업할 때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탐구하는 것은 나의 창작 기저에 깔린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문화기획에 눈을 뜨고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할 때, 원장으로 재직했던 김용호 씨의 『창조와 창발 : 한반도 르네상스를 위한 마음 혁명』 속에서 읽히는 문화 패러다임 전환의 사상을 접하였다. 그것은 현대사회의 복잡성을 전제로 한 개인과 커뮤니티의 문화적 행위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해준다고 생각했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사회 조각,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새로운 패러다임,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미래주의의 작업도 새로운 맥락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후기 자본주의 분석이론과 포스트 휴먼담론, 복잡성 이론, 창발 이론과 사변적 실재론의 입장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러한 작은 실천과 실험을 통해서 작가의 예술세계를 정교화시키는 것은 작업할 때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상적 기반 이외에 골목, 도시의 길거리, 쓰레기장, 폐허, 공공도서관이나 대형서점 서가에서 사람들의 활기찬 일상, 그리고 갈등의 현장 속에서… 나는 고민과 영감을 시시각각 얻기도 한다. 

최근 작업 중 한 예술 공간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사건)가 있다. 나는 버려진 줄 알았던 유리창을 수집해 유리 온실 형식의 작업을 제작하였는데, 그 유리창이 그 공간을 리모델링할 때 활용될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따라서 추가 제작을 중지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러한 해프닝으로 발생한 사건들 속에서 예술이 사회 시스템과의 신뢰 있는 관계를 맺을 때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는 예술을 ‘삶의 전방위적인 개척’이라고 재정의한다. 예술개념을 행위로 실천하고, 그것을 기록하며 정리한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작업은 작업에 연관된 참여자, 관객, 평가자에게 공유하는데, 이 과정은 삶을 나누는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작업을 진행할 때, 스스로가 예술에 함몰되지 않도록 거리를 두며 접근한다. 예술은 자체의 구심력이 강한 장치이자 장(場)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예술은 괴물과 같아서, 예술가를 소진하고 소외시키는 힘이 있다. 그 괴물과 싸우는 것이 수많은 예술가들(예술가라는 자각에 빠진)의 삶이자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반드시 전달하고 싶은 부분은 ‘삶의 구체적 의지, 생동감, 잘 갈아내는 방법’ 등이다.

Q. 앞으로의 작가로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하여
A. 현재 문화기획과 미술을 접목한 작업을 탐구 중이다. 인천아트플랫폼 입주는 작가의 정체성을 더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 환경이 변하고, 나 또한 격변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작업의 의지가 꺾이지 않길 바라며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으면 한다. 나는 이론과 현장 연구를 겸비한 연구자이자 작가로 더 진화하고 싶다.

나는 (현재의 기대로는) 부르주아 예술론의 한계에 맞서 새로운 예술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포스트 휴먼과 지속가능한 환경 담론 사이에서 실용적인 절충점을 탐구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126세 생물 계획’은 2101년 22세기의 성광이 일 때 ‘3세기의 예술’을 집필하고 떠나는 것으로, 이는 나의 장수작업 계획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모 시라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올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활동할 2018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뽑혔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연구와 창작활동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창작지원 프로그램과 발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2018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를 소개합니다.

 

모 시라(Mo SIRRA)는 이라크에서 태어난 네덜란드 국적의 작가로, 올해 3월부터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하여 작업해오고 있다. 작가는 오슬로 국립 미술 아카데미(Oslo National Academy of the Arts) 순수미술학과에서 석사, 바틀렛 런던 대학(The Bartlett 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건축 석사, 마스트리흐트 얀반 아이크 아카데미(Jan Van Eyck Academy)의 순수미술 연구 및 프로덕션 프로그램에서 석사, 바그다드 대학(University of Baghdad)의 순수미술학과에서 학사를 취득하였다. 그는 작업을 진행하는 곳과 주변의 건축물, 작업을 구성하는 사회․문화․정치적 맥락 등의 특정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때로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역사적이기도 한 작가의 작품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일상 속에 놓여, 관객들이 그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의 반응을 연구한다. 작가는 이와 연관하여, 3개월 동안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 전시 <리-퍼블릭 더 폴리틱스(Re-public the Politics)>를 5월 8일부터 13일까지 창고갤러리에서 선보였다.

# 전시 리뷰
모 시라 작가는 3개월간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보고 전시 <리-퍼블릭 더 폴리틱스(Re-public the Politics)>를 5월 13일(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창고갤러리에서 진행하였다. 작가는 지난 작업과 마찬가지로 사회, 정치적 상황에서 예술이 어떠해야 하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설치, 조각,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작가는 매일매일 관람객의 반응과 주변 환경 등에 영감을 받아 발전시켜 나갔다. 개막일이었던 8일 화요일에는 의례적인 오프닝 행사 대신에 전시를 보러온 관람객들을 자신이 만든 (전시장 앞에 위치한) 구조물에 줄을 세워, 마치 세관을 통과하듯 한 명씩 입장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전시가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것은 작가만이 알 수 있었다. 

# Q&A
Q. 창작의 관심사와 내용, 제작 과정에 대하여
A. 초창기 활동 때부터 결론을 단정 짓고 결과를 완성하기 위해 진행하는 창작을 거부해왔다. 대신 탐구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창작해오고 있다. 창작에 있어서 나만의 특별한 개념이 있는데, 그건 ‘리허설’이다. 나의 작업은 작업하는 장소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작업이 위치한 건축물, 작업을 구성하는 사회와 문화, 정치적 맥락 등이 있겠다. 그리고 나는 미술을 매개로 관람객의 반응을 살펴보며, 언어의 기술(메커니즘), 인식의 모호성 등을 연구한다. 뭐랄까 작업은 하나의 산만한 논쟁이 되고, 개입, 설치미술, 드로잉, 조각, 퍼포먼스, 영상 등 복합적으로 발현된다. 그러한 실험과 연구는 창작의 완성보단 ‘리허설에 리허설 하기’라는 말이 적합할 것 같다.

나는 장소 외에도 미술이라는 개념을 사회정치적인 문화의 맥락 안에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내가 생각하는 현대미술은 하나의 특정 문화, 하나의 역사와 장소에 속해있는 양상이 아니라, 문화의 이행이라고 본다. 나는 여러 곳에 정주하면서 작업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퍼포먼스 전략으로 창작 중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가변적이고 다변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생산의 자리를 만들어오고 있다. 따라서 나는 작가로서의 나의 역할이 어떠한 (확고한) 인식에 대한 변화를 끌어내는 조건과 장을 제공하는 발기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Q. 대표적인 작업 소개
A. 그간 시각미술, 건축, 인테리어, 패션, 섬유, 그래픽 디자인, 큐레이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와 행동실천을 통해 관점을 만들어왔다. 다양한 범주의 미술작품과 디자인 작품을 제작했고, 다수의 전시, 레지던시 프로그램, 워크숍을 기획하고 참여해왔다. 이 과정들은 나의 연구 담론을 확장하고 단단히 만든다고 본다. 대표적인 작업을 언급하기보단, 나의 모든 활동은 연구를 심화시키기 위해 구축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연구를 현실 속에서 ‘리허설(실험)’하고, 과정에서 만들어진 과제들을 발견하고, 논쟁적 요소들을 조정하며, 나의 (위치, 사회문화적 환경, 자아가 위치한) 현재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 등
A. 나는 내러티브를 의심하고 불가능성에 도전한다. 이 기회에 한 소년이 마주한 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3살에 나무를 거꾸로 그린 한 소년이,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이 세상이 자신의 상상력을 거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한 마디로 ‘No room even in Rome’이라고 말하고 싶다. 프랑스 망통의 장 콕토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고, 그때 나는 ‘기준’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장 콕토(Jean Cocteau)는 문학과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고, 파리 아방가르드를 이끈 주역들과의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은 동시대 작가들(마티스, 피카소, 브라크 등)의 작품을 베낀 질 낮은 콜라주로 판단될 수 있었음에도 좋게 평가되었다. 장 콕토를 둘러 쌓은 환경은 그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상실하게 한 것 같다. 또한. 형편없이 디자인된 미술관은 더는 지식 기관이 아니라, (미술과 문화의 핵심을 앗아가는)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념품 상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는 광고를 생산하고, 전체주의 국가는 동화와 종교적 권위를 생산한다. 장소의 지정학적 조건과 상관없이, 작가가 마주하며 도전해야 할 주요 쟁점은 후원자의 취향에 맞추거나 정권의 프로파간다를 전파하는 것, 기업의 정책을 광고하는 것, 미술기관에 관한 규정하에 일하는 것 등이 있다. 이것들을 수행하는 것은 주류에 편입되거나 극단주의자가 됨을 뜻한다.
‘나는 이라크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이며,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이며, 나의 시적 접근이나 시 그 자체는 나의 현재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다. 나는 다른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_시인 사르고 불러서(Sargon Boulus)의 “여덟 번째 그림(Eighth picture)”

이 터널의 끝에는 빛이 없지만, 바닥과 천장이 가느다란 검은 선으로 만났다. 그는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일련의 사물을 흔적으로 남겼다. 그 사물들은 그의 몸으로부터 그의 옷가지와 함께 떨어졌다. 나는 그렇게 기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긴다. 

Q. 앞으로의 작가로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하여
A. 나는 20년 넘게 글을 쓰고 강연을 해왔다. 다수의 강연은 음악의 작곡기법을 비유한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말하고자 하는 것을 예시하는 방법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며, 이를 통해 청자가 단순히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떠한 특정 활동에서 관습의 한계를 깨트려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나의 포트폴리오를 본 사람이라면, 내가 1인칭과 3인칭을 혼재하여 사용함을 알 수 있을 것이며, 꽤 혼란스러울 것이다. 포트폴리오를 보는 이는 1인칭인 나로 볼 수도 있고, 3인칭인 어떤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는 여러분이 수년간 뱉은 말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이는 내가 수년간 뱉은 유일한 말이다.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소설을 간직하다, 신문소설 스크랩 단종애사

한국 최초의 창작 장편소설 무정을 쓴 춘원 이광수는 1920~1930년대 역사소설가로도 이름이 높다. 이광수는 마의태자, 단종애사, 이순신, 원효대사, 세조대왕 등 많은 역사소설을 썼는데, 이 작품들은 모두 재판 이상을 찍는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다. 단종애사는 작가가 <동아일보>에 재직하면서 쓴 장편 역사소설로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1일까지 총 217회 연재되었다. 이 작품은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권을 찬탈당하는 어린 조카 단종의 이야기이다. ‘고명편’, ‘실국편’, ‘충의편’, ‘혈루편’의 총 4장이 기-승-전-결의 구성을 취하고 있고, ‘단종의 슬픈 역사’라는 제목 그대로 단종의 억울한 퇴위와 죽음, 세조의 잔혹한 성격이 크게 강조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연재된 1928년에는 <조선일보>에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이 연재를 시작하였는데, 벽초와 춘원은 육당과 함께 조선의 3대 천재였던 만큼 두 작품의 연재는 동아·조선이라는 신문사 관계와 얽혀 묘한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단행본은 <동아일보> 연재 직후인 1930년 회동서관에서 상하 두 권의 책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5년 후인 1935년에는 박문서관에서도 간행되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자료는 1928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것을 오려 모은 스크랩본이다. 하루하루 연재된 것을 정성스럽게 오려 자기만의 단행본을 만든 것이다. 낱장으로 된 자연과학 교재 1장에 앞뒤 각각 2회씩 붙인 후 이것을 모아 하드커버로 앞뒤 표지를 붙여 만든 수제본이다. 총 55장(110쪽)이다. 작품의 신문 연재 횟수는 총 217회인데, 이 자료에는 126·149·151·194·197·198회 등 6회가 누락되어 있어 211회분이 묶여 있다. 현재로선 누가 이 자료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90년이 지난 지금도 보존상태가 양호한데, 연재분을 오린 모양이나 위치 및 형태, 제본과 표지 등 매우 정성스럽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이 자료는 일제강점기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애호와 기호 등 도서문화까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하겠다.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함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