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주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올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활동할 2018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뽑혔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연구와 창작활동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창작지원 프로그램과 발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2018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를 소개합니다.

 

전혜주는 독일 오펜바흐 조형예술 대학에서 뉴미디어와 무대미술을 전공하였으며,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아트 앤 미디어학과 석사 졸업 후 마이스터슐러 자격을 취득했다.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이 서로 개입된 도시공간에 관심이 있으며, 작업을 통해 공공장소에서 예술작품이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 작품의 주된 소재는 특정 공간이 가진 역사성, 흔적, 경험으로, 도시공간의 배경에서 일어난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디지털 매체를 이용해 수집한 도시의 다양한 정보를 특정 장소에 설치하거나 공간을 관찰하여 변경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역사적 흔적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무심(無心), 한 물줄기의 이름>_전시전경_시멘트, 수집된 철근과 벽돌, 진동스피커, 앰프, 이미지 북, 가변설치_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_2017

인천에서 자라고, 현재는 강화도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는 그간 국내외 다양한 도시 속에서 경험하고 재해석한 작품들을 통해 장소가 가진 역사성에 집중해왔다. 작가는 인천 중구의 역사적 장소들을 담은 영상 위에 관광객이 남긴 인터넷 리뷰들을 중첩한 영상 작업 <Mind Map>(2016)을 위해 아트플랫폼이 위치한 이 지역을 리서치 한 바 있다. 이 작업을 통해 중구의 오래된 역사를 잠시나마 느꼈다면, 레지던시에 머무는 동안에는 조금 더 느린 시선으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이곳의 다양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Mind Map>_영상스틸_2채널 비디오_20분 47초_2016

#예정 전시 소개
전혜주 작가의 개인전 <수평선 0시0분0초>가 8월 4일(토)부터 8월 31일(금)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하루(24시간)를 기준으로 자연이 갖고 있는 시간과 도시 생활에 익숙한 개인이 느끼는 시간성에 대한 감각의 차이를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몇 년 전 강화도에 이사를 오면서, 기존 작업을 통해 탐색하고 재해석했던 도시와는 또렷이 다른 강화도의 시간성을 느꼈다. 매일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조수간만의 활동처럼 강화도는 도시의 반복적이고 빠른 시간에 비하면 마치 멈춘 듯 자연 그대로에 의지한 것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전시는 자연을 감상하며 고찰한 시간에 대한 작가적 해석의 결과물이다. 작가가 강화도에서 지내면서 느낀 것들을 기록하고, 수집한 이야기들을 재구성하여 설치한 작업을 감상할 수 있다.

 
<수평선 0시0분0초> 갯벌에 염색된 천(좌) 강화도(우)_2018

# Q&A
Q. 창작의 관심사와 내용, 제작 과정에 대하여
A. 나는 특정 장소에서 발견한 흔적이나 단서를 통해 그 장소의 보이지 않는 이면이나 놓쳐왔던 부분을 상상하고 재해석하여, 여러 가지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오브제 작업으로 제작한다. 이 작업들을 전시장 외부에 전시하기도 하는데, 때로는 보는 이들의 참여가 필요하기도 하다. 나의 작업은 주로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하거나 또는 리서치를 목적으로 찾게 된 도시의 상흔이나 건축물 자재, 개인들의 이야기들을 다룬다. 나는 글이나 물건, 소리 또는 이미지 등을 수집하여 그것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고, 이렇게 완성된 작업을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복사오류>_투명 PVC film에 프린트(실제크기 약 2-3mm)_2009

예를 들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도로에 설치된 공용 복사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만든 <복사오류>는 공공장소에 숨겨진 메시지를 개입시키는 작업이다. 투명한 비닐에 육안으로는 읽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문구들을 인쇄하여 공공장소에 놓여있는 복사기 유리면에 몰래 붙여 놓고, 오래된 복사기에 묻어진 얼룩처럼 보이도록 디자인하였다. 자료 등을 복사하기 위해 방문한 행인들은 숨어있는 메시지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자그마한 얼룩같이 생긴 메시지를 복사해 나갔다. 나는 이 작업을 시작으로 도시공간을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였다. 공용 복사기를 통해 퍼져나가는 숨겨진 메시지처럼 공공장소는 불특정 다수의 개인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 흥미로운 대상이 되었다.

 
<복사오류>_확대경(좌), 참여안내소(우)_오스트리아 빈_2009

Q. 대표적인 작업 소개
A.나의 작업 대상이 되었던 장소의 환경, 계기, 작업과정과 제작방식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대표적인 작업을 생각했을 때 하나의 작업보다는 몇 개의 전환점이 되었던 작업들을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로 앞서 이야기했던 <복사오류>는 진열품으로서의 오브제적인 미술작품이 아닌 어떤 현상에 직접 개입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었다면, 두 번째로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 <환각지>는 도시의 역사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던 작업이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동안 2차 세계대전 때로 추정되는 전쟁의 상흔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고 전쟁이라는 역사의 생생함을 물리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작업은 사라진 신체에 대한 아픔을 느끼는 환각 증상(phantom limb)처럼 총탄이 만들어 낸 빈 공간을 통해 무의식에 잠재된 아픔을 떠올려 보며, 베를린 도시 건물에 남아있는 전쟁의 흔적들을 캐스팅하여 전시공간에 빛의 형태로 관람객의 실루엣 위에 투영되도록 전시하였던 작업이다.

 
<환각지>_3D프린트, 블라인드, LED_2014

또한, 관광객들에 의해 기록되고 퍼트려지는 기념적 장소에 대한 리뷰들을 도시공간에 텍스트 형태로 재구현하는 프로젝트 <관광객의 시선>을 통해서 나는 개인들의 경험 속에 비쳐있는 도시의 실체적 이미지를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였다.

 
<관광객의 시선>_베를린 씨티호스텔과 관련해 수집된 Google Map 리뷰_2015   <관광객의 시선>_기록사진_미니 프로젝터, 스마트폰, 웹App_베를린 씨티호스텔_2015

마지막으로 <무심, 한 물줄기의 이름>은 청주라는 오래된 도시의 역사성을 수집된 철근과 우연히 마주한 한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음성으로 기록하여 전시장에 재구성한 작업이다. 공사현장에서 수집되어 전시장으로 옮겨온 철근들은 각자 제각기 구부러진 모양으로 관객과 만나며, 관객이 진열된 철근을 직접 손에 쥐고 귀에 가까이할 때 철근이 진동하며 만들어내는 음향을 들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이와 같은 작업들은 장소, 경험, 사람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과 그 경험의 주체인 특정 개인의 역사성으로 연결되어, 나에게 새로운 작업의 원동력이자 구심점이 된다.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 등
A. 나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다. 주로 도시 범주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평범하고 이색적이지만 때로는 모순적인 도시의 풍경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도심 속 정원이나 폐허와 같이 기능과 역할이 뒤바뀐 공간, 그곳에서 생산되는 특별한 에너지 등이 나에게 영감이 된다. 이렇게 여행자의 시점으로 익숙하면서도 또 생소한 공간을 거닐다 보면 새롭게 발견하는 부분이 있다. 익숙함에 묻혀 잊고 지냈던 흔적들, 그리고 어떤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보면 포착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그러한 것에 관심 가지는 이유를 스스로 묻고, 그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작업이 생겨난다.

 
<실존하는 장소를 위한 기념비>_‘DPRK 360’에 공개된 북한 관광지들의 파노라마 이미지_2015   <실존하는 장소를 위한 기념비>_평양을 다녀온 관광객들의 Google 리뷰_2015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예술이란 예술가가 관심을 갖는 특정 대상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작품을 통해 증명해나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특정 장소를 기반으로 하는 작업이나 관객의 참여가 요구되는 작품의 등장은 나에게 작업의 방식이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나는 예술이 어떤 미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것보다 다양한 형태로 표현 할 수 있고,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을 때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작품에서 독단적인 감정이나 이성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관찰자 또는 안내자가 되려고 하는 편이다. 내 작업의 의미가 관객에게도 의미 있길 바라며, 작품이 다양한 해석으로 나누어져 읽혔으면 좋겠다.

<견고한 기억>_디지털로 수집된 서대문형무소 건축물 부재들_아크릴, LED, 1CH 영상, 모니터, C-Print_2017

Q. 앞으로의 작가로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하여
A. 가까운 미래에는 다양한 목적에 의해 개발되고 있는 장치나 공간에 대해 연구하고자 한다. 또 장기적으로 자연이 있는 곳에서 리서치와 작업을 진행하고 싶기도 하다. 한층 고조되어있는 도시의 에너지보다는 순환하는 자연의 에너지에서 새로운 원동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작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도구’와 ‘미디어’에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려고 한다. 어떤 대상을 해석하는데 복잡한 도시의 사회망을 걸치지 않고 본래 가지고 있는 자연적 힘과 속성에 충실하여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를 만들고 싶다. 언제나 긴장을 요구하는 세상과는 다른 시선에서 부드럽고 예민한 감성을 유지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관광객의 시선>_미니 프로젝터, 스마트폰, 웹App_베를린장벽_2015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작가정보 자세히 보기 ▶




소개합니다.

[소식 1] 우리미술관 기획전시 <냥이와 함께>

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 최진용)이 운영하는 우리미술관이 전시를 개최한다. 7월 18일부터 8월 10일까지 열리는 <냥이와 함께>이다. 고양이를 주제로 한 오현주 작가의 회화작품과 임기웅 작가의 영상작품을 전시한다. 또한 고양이 관련 도서 등을 함께 전시한다.
이번 <냥이와 함께>전시는 고양이를 주제로 한 회화 작품과 영상, 도서 등을 모아 우리미술관에서 준비했다. 이번 우리미술관 전시에서는 우리미술관이 위치한 만석동 일대의 동물(고양이)를 영상으로 담은 임기웅 작가의 영상작품 1점과 오현주 작가의 서양화 작품 1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방학을 맞이하여 우리미술관을 방문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고양이 관련 서적과 문화상품(견본용) 전시를 함께 준비하고, 고양이를 그릴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 전시 정보 및 기타 사항
– 관람시간: 화, 수, 금, 토, 일10:00~18:00 / 목14:00~18:00
   (입장은 관람시간 종료 20분 전까지 가능)
– 휴 관 일: 매주 월요일 및 법정공휴일 다음날
– 주 소: 인천광역시 동구 화도진로 192번길 3-7,9,11
– 홈페이지: 바로가기 ▶
– 주최/주관: 우리미술관 (재)인천문화재단
– 후 원: 인천광역시 동구청

우리미술관(032-764-7664)

[소식 2] 인천시민문화대학 하늬바람 8월 문화예술특강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재)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 최진용)은 8월 16일(목) 오후 7시 30분, 송도 트라이볼 공연장에서 인천시민문화대학 <하늬바람>의 일환으로 원종우 작가 특강을 개최한다.
이번 특강에서 작가 원종우(일명 파토, 現과학과 사람들 대표)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삶에 어떤 확장을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철학, 음악, 역사, 그리고 과학에 이르기까지 그간 작가 자신의 삶과 함께해 온 많은 분야들이 지금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빚어내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 <환상의 청년문화 정책쇼> 안내
– 일 시 : 8월 16일 19:30~
– 장 소 : 송도 트라이보울 공연장
– 신 청 :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바로가기 ▶), ‘하늬바람’ 페이스북 페이지(바로가기 ▶)

문화교육팀(032-760-1097)

[소식 3] <일상의 작가> (부제: 너와 나의 이야기) 참가자 모집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오는 8월부터 진행될 2018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일상의 작가> (부제: 너와 나의 이야기)의 참가자를 모집한다. <일상의 작가>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추진하는 가족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일상의 작가>는 아동 중심의 수업을 지양하고 보호자 역시 독립적인 참가자로서 참여한다. 프로그램에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상의 작가>에서는 문학과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우리 가족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운영하는 <일상의 작가>는 무료로 총 8회 진행되며 학령기 아동·청소년(초등~고등)을 포함한 가족을 대상으로 한다. 소설가 이재은이 전 과정을 직접 지도하고, 매 회 작가가 선정한 주제를 바탕으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 수업에서는 전 과정의 기록을 묶어 우리 가족만의 책을 출간한다.

○ <일상의 작가> 프로그램 안내

  • 일 시: 2018년 8월 11일(토) – 11월 25일(일)
  • 장 소: 한국근대문학관 (인천 중구 소재)
  • 대 상: 학령기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가족
  • 운 영: 전체 3기수 운영 / 기수별 8회 수업 (기수별 날짜, 시간 상이함)
  • 문 의: 032) 773-3805 (한국근대문학관) / 070-5213-1726 (일상의 작가 운영사무국)

    [붙임 1] 각 기수별 일정표

기수 기간 시간
1기 2018년 08월11일(토) ~ 10월06일(토) 매주 토요일 10:00~13:00
2기 2018년 10월06일(토) ~ 11월24일(토) 매주 토요일 10:00~13:00
3기 2018년 10월07일(일) ~ 11월25일(일) 매주 일요일 14:00~17:00


한국근대문학관
(032-773-3805)

[소식 4] 한국근대문학관 교육프로그램 <인문학이 있는 저녁 -르네상스 미술사 탐험>


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 : 최진용) 한국근대문학관 2018년 교육프로그램 <인문학이 있는 저녁-르네상스 미술사 탐험>이 8월 8일 시작된다. 매주 수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총 8회에 걸쳐 진행되는 인문학 특강은 문학관 개관 이후 처음 실시되는 미술사 강좌이다.
중세 유럽에서 르네상스 미술이 어떻게 시작되었나부터 시작되는 이번 강좌는 후기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 미술까지 총 8회로 구성되었다. 또한 왜 14세기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고 이것이 근대의 탄생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미술사가가 아닌 역사학자의 강의까지 있어 르네상스 및 근대의 탄생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제공해줄 전망이다. 이 외에 메디치 가문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등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업에 대한 흥미진진한 강의로 가득하다.

○일 정 : 2018년 8월 8일 ~ 10월 17일 매주 수요일 18:30 ~ 20:30 총 8회
장 소 : 한국근대문학관 3층 강의실
수강료 : 무료
접 수 : 2018년 7월 29일 ~ 8월 6일 17:00까지, 선착순 40명, 이메일로만 접수
접수 및 문의 gangjwa01@naver.com, (032)773-3804

한국근대문학관(032-773-3804)

[소식 5] 2018 문화예술 컨설팅 지원자 모집

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최진용)은 2018 문화예술컨설팅 지원사업 1:1 맞춤형 『똑똑! 예술컨설팅』을 추진한다. 올해로 시행 2년 차에 접어드는 1:1 맞춤형『똑똑! 예술컨설팅』은 전문컨설턴트의 맞춤형 컨설팅을 무료로 지원하여 지역 예술단체가 겪는 창작현장의 다양한 고충을 함께 풀어줌으로써 예술단체의 자생력을 높이고자 기획되었다.
2018 1:1 맞춤형『똑똑! 예술컨설팅』의 신청 자격은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단체로 총 10개의 단체를 선정하여 각 3회씩의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한다. 컨설팅 지원 분야는 재무회계, 홍보·마케팅, 콘텐츠기획, 국제교류 등 4개의 분야이며, 이메일(jyoon@ifac.or.kr)로 신청할 수 있다. 신청·접수 기간은 2018년 7월 24일(화)부터 8월 12일(일)까지 이다.

예술지원팀(032-773-3813)

 




<바로그지원> 덕분에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가 되어본 후기

2017년 <바로그지원>에 지원하기 전에 나는 굉장히 특이하고 재밌는 삶을 살고 있다는 한 여성, ‘송아영’에 대한 이야기를 4-5명의 지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예술적인 창작물로 올리고자 <바로그지원> 7월 심사에 지원해 당선되었다. 공연은 12월 9일 부평 스위트홀 소극장에서 이루어졌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즐거운 시간이었고, 나는 이것을 좀 더 잘 키워보고 싶다.

…. ‘세 줄 요약’을 사랑하시는 분들께서는 여기까지만 읽으셔도 무방하다. 안 그래도 바쁜 세상에 어떤 이상한 여자가 연극 올린 과정과 이야기를 왜 보아야 하냐는 그대들의 의견도 존중하니까. 그런데도 <바로그지원>이라는 간결하고 깔끔하고 확실한 지원 프로그램과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용기가 만들어낸 듣고 보지도 못한 연극의 창작 스토리를 듣고 싶은 분들께서는, 이 글을 재미나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다. .

1. 마녀가 된 여자
<바로 그 지원>의 지원을 받아 발표한 내 프로젝트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송아영씨의 씐나는 모험”의 주인공 ‘송아영’ 씨는 대략 이런 사람이었다.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레즈비언이고 급진적 여성 커뮤니티인 ‘메갈리아’ 사이트의 운영자이면서 남성 대상의 접대노동을 하는 룸살롱 마담인데 남성에게 채찍질하길 즐기는 엄청난 새디스트인 데다가 남자관계가 매우 문란하고 누구라도 한 번 보면 안 넘어갈 수가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진 팜므파탈임. 등 뒤에 씌어있는 음란마귀의 명령에 따라 남자를 마구 유혹해서 정기를 빨아먹는 마녀임. 유명 예술가와 교제중인데 동시에 남자친구를 다섯 명 이상 사귀고 있으며 부유하고 나이많은 남자에게 막대한 후원을 받고 있음. PD(노동운동)계열의 좌파 운동권인데 종북주의자이며 러시아어에 매우 능통해서 중국과 북한의 간첩이 각각 그녀를 포섭하기 위해 접근하려 했고 그 때문에 경찰의 주요 시찰 대상 인물임. 그 와중에 국정원의 돈을 받고 유럽여행을 다녀와서, 모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핸드폰에 여행 사진까지 저장해가며 매우 열심히 시찰중인 요주의인물임. 그런데 이런 엄청난 정체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조용하게 사는 이유는 엄청나게 뒷배가 빵빵한 권력과 부를 갖춘 암흑가 집안의 딸이라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큰일나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

사실 이 길고 이상한 ‘정체성’은 지난 3-4년간 나에 대해 떠도는 소문들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주변 지인 4-5명에게서 듣고 수집한 것이었다. 나는 2009년부터 약 9년째 퍼포먼스와 연극을 주된 매체로 쓰는 행위예술가로 활동 중이고, 2014-15년에 정치적, 사회적 1인시위 퍼포먼스로 신문과 방송을 타며 이름이 알려진 적도 있었다. 예술가로서 적지 않은 기간을 작업하고, 그 대부분을 몸을 매개체로 사용한 행위예술로 이름을 알리다 보니 자연히 나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그 소문의 일부가 내 귀에 들어오기도 했다. 소문들의 내용은 대부분 위에 있는 텍스트처럼 매우 허황되고, 때로는 아무 이유가 없이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이런 소문들이 있음을 이야기해 주는 지인들이 말한 소문의 ‘출처’는 참으로 다양한 ‘집단’들이었다. 소문의 내용은 과도하게 성적인 내용이었다. 남성중심 사회가 여성의 성취를 깎아내리는 가장 쉬운 방식이 그 여성을 성적인 언어로 모욕하는 ‘소문’들을 퍼트리는 것이라는, 심증으로만 존재했던 불안이 나에게 물증으로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소리들을 모두 모아보니 역설적으로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나에게 부족하다고 말해지던 소위 ‘여성성’과 ‘섹시함’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섹시한 성적 매력으로 남자들을 마구 유혹하고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얻어내는 데다가, 간첩이 탐낼 만큼 출중한 외국어 실력과 정치력, 게다가 여성 운동에 후원을 아끼지 않는 대인의 배포까지. 시선을 달리하니 루머가 오히려 내게 힘을 주는 ‘이야기’ 가 되었다.

몸으로 메시지를 표현하고 공연하던 그간의 나를 가장 위축되고 신경 쓰게 하던 말들은 다름 아닌 나의 성적 매력에 대한 부분이었다.

‘유명한 여성 예술가가 되려면 살을 빼고 섹시해져야 해’,
‘너에겐 여성스러운 성적 매력이 부족해. 여성 예술가는 더 예뻐야 주목받는다고.’

이 글을 읽으시는 여성분들이라면, 꼭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이것과 비슷한 외모품평과 평가절하는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것이리라 예상한다. 재밌지 않은가? 앞에서는 내 실력과 아이디어보다 내 외모와 몸매를 소위 ‘나노단위’로 나누어서 가치를 깎아내리기 바쁜 사람들이, 뒤에서는 나를 성적 매력의 화신으로 만들어서 실력과 아이디어를 깎아내리려 애썼다는 것이. 그런데 그 ‘안티’의 말들이 모이고 모이니, 마치 팜므파탈의 위험한 매력이 가득한 마성의 슈퍼우먼이 만들어진 것이다! 허탈한 웃음이 나면서 오기가 생겼다. 이걸 갖고 한 번 제대로 놀아 봐야겠다고.

그래, 당신들은 내 가치를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헛소리와 루머들을 만들어 냈지만 나는 거기서 또 다른 힘을 가진 내 분신을 만들어서 가지고 놀 것이라고.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축약한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송아영 씨의 씐나는 모험이다.

2. 바로 그 지원
나에 대한 소문과 루머들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작업해야겠다- 고 결심하고 나니, 어떻게 하면 이것을 가장 좋은 퀄리티로 제작하고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을까를 자연히 고민하게 되었다. 가장 큰 고민은 ‘돈’이었다. 아시다시피, 예술활동은 베테랑이 아니면 지극히 수익 창출이 어려운 분야의 ‘사업’이다. 일정한 경지에 올라서 지속적 수익 창출이 가능한 유명 작가가 아닌 이상 창작에 따르는 금액은 아무리 줄여도 적자를 단단히 각오해야 할 만큼 상당한 자금이 요구되곤 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글을 쓰고 행위예술을 하는, 비물질적인 예술을 주 작업 수단으로 삼는 예술가이다. 아이디어는 언제나 넘쳐 흐르지만, 그 아이디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행시킬까 하는 고민을 시작하면 언제나 수반되는 것은 제작비와 파급력에 대한 걱정이었다. 과연 내가 허리띠를 졸라매 가며 적자를 감당할 가치가 있을까. 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발표하더라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서 사장되어 버리면 어쩌지? 몇 날 며칠을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설정을 써 내려가며 머리 터지게 고민할 무렵, 나는 인천문화재단의 청년예술가지원프로그램 [바로 그 지원]의 7월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바로그지원>은 나의 이런 고민을 덜어주기에 충분히 훌륭한 지원 프로그램이었다. 2016년에 <잃어버린 순무김치의 맛을 찾는> 프로젝트로 한 번 지원을 받은 적이 있었던 나는, 새롭고 신선한 작업을 열린 마음으로 환영해주고 또 필요한 공간과 작업에 대한 조언까지 전해주는 [바로 그 지원]이 나의 새 작품의 시초를 닦을 지원사업으로 딱 맞는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서류 제출과 100만 원이라는 창작지원금, 그리고 공개 발표를 통한 공정한 심사 과정까지. 이 사업이라면 이런 다소 이상하고 급진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도 편견에 의해 걸러지지 않고 공정한 심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가장 큰 동기로 작용했다. ‘설마 이게 될까?’ 하는 마음으로 서류를 쓱 내고 발표날을 기다렸다. 어찌 보면 상당히 괴상한 제목의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라는 타이틀이 과연 발표 기회를 얻고 또 뽑힐 수 있을까? 의문과 떨림으로 가득한 며칠이 지나자, 담당 코디네이터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코디네이터님은 상냥했고 또 이 작업의 포인트를 잘 짚어 주셨다. 방향을 잘 잡아 발표를 마치고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땐 진심으로 기뻐하며 이런 제목과 내용의 프로젝트에 100만 원이라는 종잣돈을 쾌척해 주신 인천문화재단의 용맹함에 감격했다.

2-1. 제작 과정
사실 처음에 계획했던 내용은 나를 주인공으로 하여 소설이나 만화를 창작한 뒤에 내가 그 주인공인 ‘종북페미마녀 송아영’으로 분장하여 자기계발 토크 콘서트를 여는 것이었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력을 모으고 회의를 몇 번 거친 결과, 처음에 조금 거창하게 계획되었던 초안은 점점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제작 가능한 ‘연극’과 ‘사진’, 그리고 ‘파티’를 개최하는 쪽으로 구체화하였다. 내 머리에서 내 이야기를 통해 나온 기획안이었지만 실행에 있어서는 함께하는 스태프들의 도움과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다. 구체적인 제작 과정에 대한 것을 여기에 다 적기엔 부족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이 친구들에게 계약서를 쓰고 급료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는 점이다. 단순한 동료 관계를 넘어서, 적지 않은 인건비와 노동력을 교환하는 한 사업의 파트너로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나 혼자서는 무리인 장소 섭외와 세팅, 포스터 디자인과 홍보용 화보 촬영, 공연까지 스탭들의 노력과 정성이 있었다. 이 기획에서 내가 온전히 한 일이라고는 대본을 적고 연기를 한 것 정도였다. 다양한 분야의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이니, 다들 각자의 일로 바쁜 가운데 시간을 쪼갰음에도 괜찮은 공간에서 좋은 이미지와 재미있는 공연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노력과 정성에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그지원>의 지원금 덕분이었다.


<지옥페미> 공연과 촬영의 가장 중요한 소품이었던 꼬ㅊ다발. ‘팽이버섯같은 남근다발’이라는 어느 평론가님의 멘트에서 따온 제목이다. 자기들끼리의 헛소리를 퍼트리며 성차별을 굳건히 하려 하는 남성 집단에 대한 풍자적 상징으로, 방방곡곡에서 긁어 모은 가짜 꼬ㅊ들을 꽃과 함께 엮은 ‘선물의 꽃다발’로 무대의 어여쁜 중앙 장식이자 극중 소품으로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최종 결과발표는 2017년 12월 9일,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스위트홀 소극장에서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송아영씌의 씐나는 모험> 이란 제목의 연극형 스탠딩 코미디와 흥겨운 DJ 댄스타임이 합쳐진 파티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다소 생소한 장소였지만 와 주신 관객분들 덕분에 웃음과 폭소가 함께했고, 지원금으로 빌린 캠코더로 공연 영상도 충실히 녹화되어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 대체 어떤 물건이 만들어졌는지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공연 영상을 참조해 주시라. 삶이 30분 동안 유쾌해질 것이다.

[영상]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송아영씌의 씐나는 모험” 공연 현장
Youtube 바로가기 ▶

3. 결과
결과는 무난하게 괜찮았다. 관객들이 와 주었고 함께 즐겼으며 훌륭한 장비로 기록까지 잘 남겼으니 이 정도면 그간의 예술 작업 중에서 꽤 괜찮은 결과가 나온 셈이다. 더군다나 ‘자신에 대한 성적인 루머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다소 과격하고 새로운 시도를 했음에도 무사히 지원을 받고 별 사고 없이 공연을 마쳤다는 데에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적자를 탈출했냐고? 그럴 리가. 적자는 여전히 났다. 좋은 퀄리티의 공연과 이미지를 제작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자본주의의 마법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 돈 20만 원만을 가지고 만든 연극과, 120만 원을 가지고 만든 파티의 차이는 같은 20만 원의 적자라도 규모와 퀄리티, 내용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지원금이 존재함으로써 나는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더 좋은 방법으로 시도할 수 있었고 이 프로젝트를 다음에 더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 공연기록 영상과 사진 작품을 얻었다. 100만 원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온전히 완성시키는 데에 약간 부족한 돈이었을지 몰라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예술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시험하기에는 괜찮은 금액이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의 예술적 가치관과 창작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자긍심을 얻었다. 처음에 기획했을 땐 ‘에이 설마 이런 게 예술이 될 수 있겠어?’ 라 생각했던 것이 점차 사람을 모으고 형태를 갖추어 가며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은 <바로그지원>의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느끼기 힘들었을 보람과 성취감의 시간이었다.

나는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프로젝트를 앞으로 더욱 키워볼 생각이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언어에 의한 성폭력에 시달리는 이 땅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다가가 불의한 언어폭력에 맞서는 힘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의 소문에 대한 이야기와 평판에 대한 고민을 주변 여성 예술가, 활동가, 직업인들과 나누어 본 결과, 무언가 자기 뜻을 가지고 능력을 펼치는 여성들은 성과 금전에 관련된 헛소문에 크고 작게 시달려 본 경험이 적지 않게 있었다. 여성의 성취를 깎아내리고 가치를 내리는 언어 성폭력과 루머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였다. 나는 “지옥에서 올라온 종북페미마녀 송아영씌의 씐나는 모험” 을 작업의 떡잎 삼아, 이 문제들을 실제로 겪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좀 더 활기차게 가해자들에게 대항할 방법을 연구할 가능성을 더 크게, 더 널리 만들어 주고 싶다. 확장된 2차 프로젝트에서는 여성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집단 창작 워크숍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물론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법적, 제도적 장치를 활용하여 가해자를 응징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일이다. 하지만 싸움은 길고, 삶은 단순하지 않기에, 가장 좋은 해결책까지 가는 길에서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주입된 수치심과 2차 가해로 인해 지치곤 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피해자가 아니다. 젠더 권력을 휘두르며 사람을 비열하게 괴롭히는 가해자들이다.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이 당연한 두 줄의 문장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이렇게 당연한 문장이 자리 잡지 못한 채로 피해자가 부끄러워하고 위축되게 하는 성차별적 분위기와 ‘피해자다운 피해자’의 이미지라는 2차 가해적인 스테레오 타입이 존재한다. 나는 여성 피해자들이 더 이상 모욕적인 말을 듣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놀고 웃을 수 있게 만듦으로써 지치지 않고 싸워나갈 수 있는 하나의 다리를 놓아주고 싶다. 이것이 완벽한 저항은 아닐지라도, 싸움의 과정에서 웃고 까불면서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며 발랄하게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의 다리를.

글/ 사진
송아영 (바로그지원 2017년 7월 대상자)




“세대 간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확장하는 판을 만들고 싶어요”
문화예술단체<작당> 김인숙 대표

<작당>김인숙 대표를 만나기 위해 송림동으로 향하는 여정은 예사롭지 않았다. 오르락내리락. 달과 맞닿을 만큼 경사가 높은 인천 동구 송림동 주민들의 여름나기는 더욱 고되게 느껴졌을 것 같았다. 이러한 마음을 읽었는지 올해 5월부터 <작당>에서는 <솔빛아래 달빛 보면>이라는 야무진 축제를 선사하고 있다. 한때 소나무가 우거졌던 송림동 마을.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황홀한 달빛 속에서 울려 퍼지는 하모니가 며칠 동안 지속된 폭염 더위를 잠시 잊게 할 것 같다.

문화예술단체 <작당>을 창단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교육활동을 하면서 몇 명의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만났었어요. 하지만 1년 단위로 일을 진행하다 보니 그 친구들과 관계를 연속적으로 유지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때마침 위기 청소년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는데 어른으로서 그 친구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 답을 찾다 보니 오랫동안 그들을 자주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더라고요. 저도 청소년기에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했었거든요. 그 역할을 우리가 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송림동에서 ‘작당’을 만들게 되었죠.

서울에서 활동하시다가 유년기를 보냈던 인천 동구 송림동으로 돌아오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그 친구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익숙한 동네를 찾다 보니 바로 여기가 떠올랐어요. 저렴한 임대료도 큰 이점이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에는 많은 단체와 프로그램들이 있었어 학생들 선택의 폭이 넓은데, 반면 이곳의 몇몇 위기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마땅히 있을 곳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살았던 동네를 직접 기획하면서 동네를 바라보는 대표님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신혼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었어요. 그 때는 동네에서 빨리 도망가고 싶었고, 청년기에는 잠만 잤죠. 이 동네가 정체성을 만드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동네로 다시 돌아와서 이 일을 시작할 때 여기서 자랐다는 이유로 주변의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동네가 주는 안정감이 저희가 지탱할 수 있는 큰 버팀목이 되었죠.

작당을 창단했을 때 지역민들의 반응이 어땠나요?
처음에는 조금 후미진 2층 다방에서 시작했는데 사무실 공간만 있었어요. 그래서 구청에서 운영하는 공간만 빌려 수업을 진행했죠. 그때 영화교육을 수강하러 온 아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다니니까 어르신들께서 그 모습을 귀엽게 바라봐 주셨어요. 주민들이 저희에게 가장 많이 했던 두 질문이 생각나요. “뭐 먹고사냐?” “도대체 뭐 하는 곳이냐?”

올해 초에 작업실을 옮기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동네에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다 보니까 주민들과의 소통의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그러나 공간을 옮긴 이후로 주민들 접촉이 이전보다 늘어났고 배너 하나를 건물 앞에 세우더라도 지나치시지 않고 물어보시죠. 그래도 여전히 주민들과의 장벽은 높은 편이에요. 왜냐하면 주민센터에서 진행하는 기술교육은 익숙하지만, 문화예술은 낯설어 하시거든요. 그 분들에게 접근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어요.

동네에서 문화를 기획하면 예상치 않는 어려움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혹은 <작당>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가끔 이 동네에서 기획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요. 너무 낙후된 동네에서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그래도 초창기에 참여했던 청소년 5명이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데 그것이 저에게 큰 힘이죠. 저도 그 친구들에 대한 책임감이 굉장히 커졌고, 제가 이 동네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죠. 그리고 지역 어르신들과 어려운 기획을 잘 마무리 짓다 보면 심리적인 보상이 따라오는 것 같아요. 처음 <자서전 프로젝트>에서 만난 분들과도 추후에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도 있었죠. 비록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금세 활력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어떻게 이곳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나요?
영화 제작하는 프로그램으로 모교를 방문하면서 1기가 시작되었죠어요. 동산중학교의 친구들이 참여했는데, 다음 프로그램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들과 함께 오래 할 수 있는 장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친구들 중심으로 기획단을 꾸리게 되었죠.

<작당>이 생긴 지 대략 4년이 되어가는데,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변화했나요?
행사의 규모가 커졌지만 아이들이 많이 성장했다고 느꼈어요. 처음에 영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이었거든요. 예술 교육기획자로 성장하기까지 몇 가지 단계들이 있는데, 한 단계로 진입하기까지 굉장히 더디게 간다는 느낌을 받았죠. 근데 영상 편집을 잘하는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도움을 주더라고요.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서로가 부족함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소그룹이 형성되더라고요. 또한 회의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책임감도 형성되고요.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많으실 것 같아요
교육 프로그램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단기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다 보니 큰 성과는 없지만, 이 친구들이 성장하면서 우리와 함께 같이 무엇인가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이 친구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죠. 그리고 <우리동네 스타>는 지역 어르신들이 지원군이 되어 주는 계기가 되었죠. <도시청년 게릴라> 프로젝트도 기억에 남아요. 그 이유는 저희의 오기와 패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1년 차에 진행했던 프로젝트죠. 현재 작당의 전체적인 방향과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올해 5월부터 10월까지 <솔빛아래 달빛 보면> 축제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특정 대상에 중점을 두고 진행했던 이전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달’이라는 컨셉으로 송림동의 지역 특색을 살려 축제를 기획하신 것 같습니다. <솔빛아래 달빛 보면> 축제의 기획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번 축제는 정말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했어요. 정말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죠. 우선 이 동네의 높은 지형과 확 트인 풍경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이 곳에 어쿠스틱한 감성을 담아 젊은 가족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죠. 축제 준비 기간에 젊은 사람이 이 동네에 얼마나 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우리 동네 스타> 어머니들께서 주변에 많이 소개를 해주셨어요. 덕분에 젊은 연령층들이 많이 오셨고, 가능성도 엿볼 수 있던 것 같아요.

주민들의 참여로 인한 결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솔빛아래 달빛 보며>축제는 소규모로 진행해요. 한 번밖에 진행하지 않았는데, 회차를 거듭할 수록 참여하겠다는 주민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아티스트를 섭외할 계획이었는데, 현재 송년 1,2동 주민센터분과 솔숲 지역아동센터 분들도 참여할 예정이라 다시 기획을 구성하고 있죠. 보통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이 하모니카 공연을 동네 밖에서 진행하는데, 이번처럼 동네에서 진행하는 공연은 처음이라고 하더라구요.

만약에 <솔빛아래 달빛 보며>가 첫 기획이면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기존에 주민들과 함께했던 지나온 시간과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의 참여 의지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저희는 이 기회를 통해 동네에 또 다른 판을 열어 드릴 수 있어 그것에 만족하고 있어요. 많은 분이 참여하시면서 동네에 이러한 부분에 갈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이번 축제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축제 장소에서 음식을 판매하지 못하기 때문에, 원하시는 음식을 직접 가지고 오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돗자리는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누워서 하늘 보고 편안하게 공연을 즐기시면 좋을 것 같네요.

대표님이 그리시는 송림마을은 어떤 모습일까요?
여러 세대 간의 관계를 맺는 게 저의 가장 큰 목표에요. 앞으로도 여러 세대를 엮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고요. 주민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얼마 전에 네트워크 간담회를 열었는데 이런 판이 계속 확장되었으면 좋겠어요. 서로 공유하는 장이 마련되어서 다른 이웃과도 기획을 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마을 전체가 한 학교가 되어 아이들이 수업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고, 기관과 전문가들이 연계되어 하나의 프로젝트가 마을 곳곳에서 진행되는 거에요. 이런 소소한 커뮤니티의 형성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이진솔(정책연구)




배우들이 제작부터 연기까지 해냈다!
인천시립극단 배우열전 <재주 많은 삼형제>

<헤비메탈 걸스>와 벌이는 흥미진진한 공연 열전

‘열전(熱戰)’이란 말은 온갖 재주와 힘을 들여 맹렬히 싸우는 싸움이나 경기를 말한다. 그렇다면 ‘배우열전’이라 하면 재능과 끼로 똘똘 뭉친 배우들이 벌이는 연기 대결이라는 것일까?
그렇다. 인천시립극단 배우들이 불꽃 튀는 공연 대결을 준비했다. 제작부터 연기까지 공연의 모든 과정을 배우들 스스로 준비한 두 공연을 통해 관객몰이 열전을 벌인 것. 그 흥미진진한 열전의 한 팀인 <재주 많은 삼형제>를 만나봤다.

지난 7월 8일 송도 트라이볼에서 인천시립극단 기획공연 배우열전 <재주 많은 삼형제>가 공연됐다. <재주 많은 삼형제>는 이번 기획 배우열전에서 준비한 두 공연 중 하나로 극단의 배우들이 연기하고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배우들의 열정은 물론이고 그들의 예술세계를 엿볼 특별한 기회인 것이다.

관람료가 무료였던 이번 공연은 티켓오픈이 되자마자 조기매진을 기록하며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 공연 15분 전 재즈밴드 ‘아나퀘스트(Anaquest)’의 연주가 시작되면서 관객들의 공연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고조됐다. 아나퀘스트의 유려한 재즈 선율에 맞춰 보컬 권단비 씨가 우아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른 ‘플라이 투 더 문(Fly to the moon)’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허참봉의 세 아들이 이웃마을 이 대감의 딸과 혼인하기 위해 서로의 재주를 겨루는 내용의 <재주 많은 삼형제>는 교훈적인 메시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시대극이었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보다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늘은 감동하고 복을 준다는 지극히 고전적인 교훈이 강하게 전달됐다.

단조로운 연기는 자칫하면 관객들을 지루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염려를 <재주 많은 삼형제>는 공연 중간에 재즈밴드의 연주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것으로 덜어냈다. 또한 관객들에게 수수께끼를 내며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으로도 공연의 단조로움을 완화했다.

반면 무대 위의 소품은 단조로웠다. 3개의 나무상자와 한 그루의 나무만으로 무대 연출을 부족함 없이 채웠다. 특히 의자나 책상이 됐다가도 금세 배로도 변하는 나무상자의 활용연출은 소규모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재미였다.

배우열전의 또 다른 공연인 <헤비메탈 걸스>는 정리해고 대상인 네 명의 여자들이 회사 사장의 취미인 헤비메탈을 배우는 과정을 유쾌 발랄하게 풀어낸 내용으로 지난 7월 13일부터 3일간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재주 많은 삼형제>와 연이어 공연됐다.
답답하고 녹록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 시원하고 통쾌한 헤비메탈 음악과 함께 노래 부르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였던 <헤비메탈 걸스>는 <재주 많은 삼형제>와는 또 다른 매력과 재미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정해랑 프리랜서 기자
blog.naver.com/marinboy58
marinboy58@naver.com




노선택과 소울소스와 김율희의 조합
‘탁월한 자유’란 바로 이런 것

대한통운 창고를 개조한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 들어서서,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음악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을 때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이렇게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다니” 그들의 음악은 무어라고 설명하기 힘든 자유로움이 있었다.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
그것은 아마, 아주 편해 보여서 잠옷으로 활용하기에도 좋을 것 같은 티셔츠와 체크 무늬 반바지를 입고 베이스를 연주하며, 목에 수건을 한 장 두르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센터의 뮤지션들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봉긋한 형태의 네모나게 솟은 모자를 쓰고 수염 정돈이 덜 된 듯한 모습으로 나타나 색소폰을 연주하는 뮤지션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북을 두드리며, 키보드를 연주하며, 기타를 어깨에 메고 리듬을 타고, 페달과 씨름하며 드럼을 연주하는 뮤지션들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그 모습 그 자체가 한편의 자유였다. 그리고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더욱 자유로웠다.

리듬을 타며 한껏 취해 연주하고 노래하던 음악을 ‘레게’라고 한다. 그들을 앞에 두고 그들과 한 장소를 공유하며 덩달아 자유롭지 않을 선택권이란 우린에겐 없었다. ‘노선택과 소울소스’ 음악의 한가운데에서 이들과 함께하고 있자면, 우리는 아마 이미 환상에 젖을 것이고 그 어떤 현실적인 선택도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함께 즐기는 이로 하여금, 지금 음악을 즐기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전에 가지고 있던 현실의 시름이 당분간 정지하는 힘을 가졌다. 더군다나 이들의 음악에는 소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감성, 소울을 충만하게 하는 요소(소스)를 아주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음악.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그들의 이름에서 이미 그들의 정체성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다.

레게이든지 힙합이든지 음악의 장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 그들의 음악 속에 있자면, 그것은 그저 신나는 춤사위를 부르는 흥겨운 리듬을 가진 음악으로 당시의 시공간을 점령하는 소리다. 그들의 음악 속에 있는 동안 아주 흥겨웠고 제아무리 박스권 안에서만 흔들어 대는 몸치라고 해도 리듬에 몸을 태우지 않을 방도가 없다. 이렇게 자유롭고 흥겨워질 방법이 있었다니. 꽉 막힌 일정 속에서 지냈던 한주가 그림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왜 그리도 많은 것을 걱정하고 숱한 우려의 시간을 보냈던가? 실은 모든 시름에서 벗어나 이렇게 온몸으로 자유를 느끼고 흥겨울 수 있는 것을.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일 것이고,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뮤지션이다.

그렇게 자유를 느끼고 있던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노선택이 ‘판소리의 잔 다르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는 소리꾼 김율희가 합류했다. 중간중간 그녀의 멘트는 그녀의 평소의 성격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아, 이 사람과 있다면 그저 대화만이라도 즐겁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판소리도 이리 즐겁다는 것을 익히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는 주말 TV 프로그램 ‘전설의 명곡’에서 힙합을 하는 팝핀 현준과 판소리를 하는 박애리의 합동 공연을 보고 느꼈던 신선함에 비해서 깊은 밀도를 선사한 공연은 놀라움을 느끼게 하였다. 팝핀 현준과 박애리의 공연이 생각지 못했던 힙합과 판소리의 조합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넓은 무대를 둘만의 공간으로 꽉 채움으로써 사람들을 몰입하게 했던 공연이었다면, ‘노선택과 소울소스’와 김율희의 콜라보는 신선한 조합에서 더 나아가 레게만으로는 미처 몰랐던 흥겨움과 기쁨을 느끼게 했다. 한국의 판소리와 레게가 이토록 잘 어울리며 더욱 깊은 흥겨움을 연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이들과 함께하기 전에 내가 감히 생각할 수 있었던가? 이들의 조합은 기존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는,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했다. 

삶의 즐거움이란 바로 이렇게 기존의 것들이 융합되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느낌을 선사하고, 그것을 다시 온몸으로 받아내어 체화하는 데 있지 않을까? 그러한 순간의 깨달음은 늘 깊은 일상의 환희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또한 동방의 변방에 위치한 우리 문화가 이렇게 흥겨운 방식으로 전해질 수 있다면 민족 문화의 발전 가능성에 손뼉치며 환영할 일일 것이다. ‘노선택과 소울 소스’, 그리고 김율희의 콜라보공연은 인천아트플랫폼 콜라보스테이지의 첫 번째 무대이다. 앞으로의 콜라보 무대들에서는 어떤 신선함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글, 사진 김경옥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수필가




예술가의 언어로 이야기되는 ‘불온한 사건’

로컬 큐레이팅 포럼 <2018 사건과 공동체>


7월 7일 토요일, 인천 아트플랫폼 H동에서는 로컬 큐레이팅 포럼 <2018 사건과 공동체>가 열렸다. 내가 참여한 12시 타임의 포럼은 ‘4.16 세월호 : 불온한 사건을 마주한 예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안산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를 운영하는 송지은 씨의 프로젝트 발표 및 참여자들과의 질의응답과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사실 ‘로컬 큐레이팅 포럼’이라는 말에서 내게 익숙한 단어는 ‘로컬’ 밖에 없었다. 그만큼 내게는 긴장될 만큼 어려워 보이는 행사였지만 ‘세월호’, ‘불온한 사건’, 그리고 ‘예술’이라는 키워드가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예전에 시인에 관해서 쓴 기사에서 거론한 바 있지만, 나는 ‘시인(=예술가)’이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서 예민한 감각을 세우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에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밥도 돈도 되지 않는 굉장히 비생산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한, 이 행위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아스팔트 사이에 핀 꽃이라거나, 거울에 서리는 김,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서 새싹이 나는 그런 일들. 혹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누군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지만 자신의 불편함을 세상에 토로하는 누군가, 돌보아주지 않아 혼자서 죽어가는 누군가. 우리 주변에서는 이미 빈번히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고하여 세상에 다시금 주목받게 하는 행위. 예술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예술이 가지고 있는 굉장히 중요하고 대단한 힘은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송지은 씨가 이날 발표한 두 가지 프로젝트는 <현수막 프로젝트>와 <응옥의 패턴>이다. 한가지 프로젝트만 두고 이야기를 하자고 해도 굉장히 길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기사를 쓰기 위해 메모장에 끄적거린 난삽한 글들이 꽤나 길고 (내가 쓴 글이지만 나에게도) 어려웠기 때문에- 이 두 가지 프로젝트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왜 시작된 것인지, 그리고 이것으로 인한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만을 이야기하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기획자이자 예술가인 송지은 씨의 생각과 이 모든 것들을 듣고 내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이야기하기 전에 한 번 더 언급하자면 로컬 큐레이팅 포럼 2018의 타이틀은 ‘사건과 공동체’이다.


<현수막 프로젝트>발표의 첫 시작은 이 프로젝트의 소재가 된 ‘4.16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있는가’였다. <현수막 프로젝트>는 안산 거리를 노랗게 수놓았던 단원고등학교 피해자 학생의 유가족들이 건 현수막이 시간이 지나면서 낡고 훼손되자 예술가들의 손을 통해 새롭게 보수하여 다시 걸어놓는 프로젝트였다.

2014년은 혼돈의 해였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으며, 그 피해자 중 대부분이 고등학생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나의 이야기인 양 분노하고 슬퍼했으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응원했다. 2, 3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에도 홍대입구역 1번 출구 앞에서는 기타를 치면서 노란 리본을 건네주는 손길들이 있었다. 그러나 요 몇 달 사이 그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다. 점점 세월호 사건이 자기 일인 사람들과 자기 일이 아닌 사람들로 나누어졌고 그들의 관계는 멀어졌다. 아직도 학생들의 유가족들은 그 시간을 잊지 않겠지만, 현수막이 바람이나 손길에 의해 찢어져 나가듯 사람들 사이에서 아마도 조금씩(혹은 빠르게) 흐려졌으리라. 심지어 그저 잊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마저 생겼다. 송지은 씨는 이 멀어진 그들의 사이를 어떻게 예술로 이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예술가들과 함께 현수막을 수리하고 보수하기로 했다.


유가족들을 설득하고 소통하며 함께 하는 과정은 줄줄이 설명하지 않아도 꽤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막을 고치고 새롭게 하는 예술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사주풀이나 공방에서의 테라피 등으로 유가족들과 관계를 맺었다. 세월호 사건에 관여된 사람과 관여되지 않는 사람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 서로 엮여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과정이었다. ‘노란색’이라는 의미 있는 특정 컬러에 고집하지 않고 조금 더 일상의 예술로써 접근하도록 다른 컬러를 사용하거나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시각적이거나 미학적으로 뛰어나기기 보다는, 실천하는 행위에 집중하며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상태나 감정에 대한 것이 더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이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로와 치유가 되는 예술인 것이다. 아무리 큰 사건이라 해도 정말 이것이 피부로 느껴지는지, 아니면 모니터 너머로만 들리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지에 따라 세월호에 대한 각자의 거리감은 굉장히 크다. 이 거리감을 좁히는 것이 바로 이 작업(예술)인 것이다. <현수막 프로젝트> 발표의 끝에서 송지은 씨는 ‘예술이 도구화된다고 하면, 그것이 예술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것은 본인과 프로젝트에 함께했던 예술가, 그리고 포럼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송지은 씨 본인은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지만 예술가로서 이러한 갈등-도구화되는 예술은 예술일까-에 직면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월호 사건에 대해 한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 이후, 새롭게 만들어지는 현수막의 형태 또한 기존의 틀(가령 노란색)에서 조금씩 바뀌었다고 한다. 사건에 관련된 사람, 관련되지 않은 사람을 떠나 이 사건 자체가 공동체 안에 있는 모두에게 느껴질 수 있도록 조금은 변형된 것이 아닐까.


두 번째 프로젝트의 타이틀은 <응옥의 패턴>이다.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있는 세월호 사건의 큰 피해자들은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다. 피해자의 대부분이 학생들이었지만, 분명 이들 외에도 또 다른 피해자는 있다. 왜 이주여성의 희생은 언급되지 않을까에 대한 질문에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신원확인 조차 되지 않는 이들의 죽음을 찾아보면서 송지은 씨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느껴졌다고 했다. 죽음조차도 평등하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를 향해 위로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 한국 사회에 사는 이주민들의 유령 같은 삶을 주목하고 타국에서 죽음을 맞은 희생자를 위로하는 프로젝트. 그것이 <응옥의 패턴>이었다. <현수막 프로젝트>가 유가족들과 함께 현수막을 수리하는 그 과정 자체를 예술로 보았다고 한다면, <응옥의 패턴>은 일종의 설치 예술이었다. 어떠한 공간(야외)에 작품을 설치하고, 그곳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거나 물건을 만지고 옮기면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무용이나 영상 등의 다른 예술행위를 보여주었다.

이 공간에서는 작가들끼리의 규칙이 있었다. 프로젝트에 대해서(세월호 사건이나 희생자) 설명하지 않기. 사물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두기. 사물과 사람이 서로 생각을 얽히게 할 수 있도록 예술가는 관여하지 않기. 이러한 규칙은 사실 <현수막 프로젝트> 이후에 생겨난 것이었다. <현수막 프로젝트>가 어떤 의의를 두고 목적을 분명히 밝히며 나아갔을 때, 그 행위와 관련 없는 사람들은 그것이 뚜렷한 목적성을 가졌기 때문에 친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우린 이런 목적을 가지고 예술 활동을 하니까 이걸 보는 당신들도 이렇게 느껴’라고 말하면 극단적이겠지만, 이러한 방법이 오히려 폭력적인 강요가 되거나 생각을 가두는 프레임이 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또한 참여하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은 같은 주제를 가지고 표현했지만, 모두 똑같은 마음과 똑같은 시선으로 작품을 진행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건 가까이에 들어가서 작품을 꺼내왔다면, 누군가는 조금 멀찍이서 사건을 바라보고 작품을 꺼내왔다. 이러한 작가들끼리의 온도 차이 또한 일반 사람들과 작품 사이의 거리감을 줄일 수 있게 해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작품이 설치되고 표현되었던 두 군데의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그곳에 배치된 물건들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들었다.


<응옥의 패턴>은 두 군데의 장소에서 각각 다른 방법으로 설치되었다. 설치된 두 장소 모두(안산 단원구 원곡동 외국인 주민센터 앞 광장(2016), 안산 단원구 원곡동 만남의 광장(2017)) 특정 전시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공공 공간이었다. 먼저 8시 50분 세월호가 침몰한 당시의 의자가 있는 집이라는 작품이 7일간 설치되었는데, 매일 아침 8시 50분이면 설치된 의자에 옆에 있는 폴대의 그림자가 의자에 드리웠다. 아무 설명도 없이 자유롭게 개방된 공간이었고, 의자 주변에는 송지은 씨가 베트남으로 리서치를 갔을 당시 마주했던 여러 물건(해먹이나 향, 식물 등)을 매일 위치를 변경하며 배치해놓았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그 공간을 둘러보거나 오브제들을 사용했다.

그 후에 조금 더 다양한 매개로 진행하여 사람들이 작품 안으로 참여하는 두 번째 <응옥의 패턴>이 설치되었다. 건축가, 안무가, 시각예술 작가들과 함께한 프로젝트로, 앞에 언급했던 작가마다 온도 차가 잘 나타나는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 ‘이동하는 섬’이라는 텐트가 여러개 설치되었는데, 이것들은 바람이나 사람의 손으로 쉽게 옮겨지는 것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개념적인 설명보다는 행위로써 표현하고 싶어서 안무가와 영화감독이 함께 한 이 작업은 마치 넋을 기리는 굿의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작품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거나 공간에 놓여 있던 오브제들을 자유롭고 다양하게 사용하기도 하며 참여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에 닿았다.


공동체는 일시적이든 일시적이지 않든 참여자를 모아야 발현이 된다. 그 공동체성은 각각의 경험이 부딪히면서 발현되는 것인데, <응옥의 패턴에>서는 그것은 누군가가 강요하지 않아도 예술가들이 서로 협업하거나 그 공간을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나타났다. 계속해서 언급했던 예술작품들 사이에 있는 그 ‘온도 차이’가 일반인들도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면서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송지은 씨는 말했다. 참여자와 예술이 분리되지 않는, 참여로 인해 예술이 되는 것. 송지은 씨가 지향하는 예술은 다양한 개념이 전이되는 형태와 가깝다고 한다. 어떤 물건이라기보다는 움직임에 가까운.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공공영역에서 진행되었으며, 예술가들끼리의 규칙(설명하지 않고, 제제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이 생긴 것 또한 이런 의의에서였다.
이어 <응옥의 패턴>에서 ‘패턴’이라는 키워드가 사용된 이유를 질문해보았다. 응옥(가명)이 죽음을 맞이했을 당시 입고 있던 흑백 줄무늬 티셔츠가 <응옥의 패턴>의 첫 시작점이었다. 패션으로써의 의미가 아닌, 줄무늬의 부정적인 기원(‘잡종 무늬’로 이방인, 창녀, 어릿광대, 범법자, 정신병자에게 줄무늬 패턴을 강요하던)과 역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우리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섞일 수 없는 이주민의 삶의 기호가 마치 줄과 무늬가 섞일 수 없는 패턴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응옥의 패턴>이라고 지었다.

꽤 어렵고 긴 발표를 들었다. 어떻게 보면 예민하고 불편한 문제를 소재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예술’에 대한 기존의 내 생각이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예술의 언어로 사회적인 사건을 기록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이 굉장히 좋았다.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 틈에 있는 희미한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 흐릿한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서 다시 사회가 지그시 바라볼 수 있도록 내보내는 것. 예술이 공동체 안에서 할 수 있는 아주 큰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가 관심을 가진 소재도 좋지만, 몇몇 소수의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발견해내는 것. 그것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많은 사람이 보고 듣고 또 다양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그리고 예술가는 그 사이에서 이루어진 소통으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 우리는 ‘나’라는 개인으로 ‘우리’라는 사회 안에서 살고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학생과 이주여성의 죽음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그래서 그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려는 송지은 씨의 예술이 나에게는 연신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멋진 일이었다.

 

글/사진
시민기자단 이은솔




만국시장 스케치

만국시장 ‘내가 그린(Green)마켓’
2018년 07월 07일
@인천 생활문화센터, 인천아트플랫폼

주최/주관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공간달이네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상. 시민기자단 김유라




[큐레이션 콕콕]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사찰

천년의 불교문화를 계승해온 한국의 사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통도사(경남 양산), 부석사(경북 영주), 봉정사(경북 안동), 법주사(충북 보은), 마곡사(충남 공주), 선암사(전남 순천), 대흥사(전남 해남) 일곱 곳입니다. 석굴암과 불국사,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창덕궁, 수원 화성,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 경주역사유적지구,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조선 왕릉, 하회/양동마을, 남한산성, 백제 역사유적지구 등에 이은 한국의 13번째 세계유산입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은 보존 가치가 있다고 요구되는 인류의 보편적인 유산을 말합니다. 1960년 이집트의 아스완 댐 건설로 누비아 유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전 세계 60여 개국이 나서 아부심벨 대신전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서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지난달 30일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사찰이 7~9세기 창건 이후 불교의 깊은 역사성을 지키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은 험난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세계인들이 항구적으로 아끼고 가꿔나가야 할 인류의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이 기준은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호주 오페라하우스)’,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특출한 증거(태국 아유타야 유적지)’, 인류 역사의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종묘)’ 등이 있습니다.

모든 문화유산에는 진정성, 다시 말해 재질, 기법 등에서 원래의 가치를 보유해야 합니다. 박물관의 조각상이나 공예품, 회화와 같은 문화재가 세계유산에 포함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유네스코는 인위적인 힘을 받았거나 가공된 것은 세계유산 반열에 오를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웠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든 수행자가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득도해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입니다.

불가에서 금강계단은 승려가 되는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수계의식(부처의 가르침을 받드는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계율을 받음)이 행해지는 곳입니다.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죠.

현재의 금강계단은 고려, 조선 시대를 거쳐 여러 차례 수리했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금강계단 양식을 유지합니다. 14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통도사는 석가모니 부처님 정골 진신사리와 가사, 대장경 400여 함이 봉안된 계율 근본도량으로 ‘불지종가 국지대찰’로 불립니다. 금강계단과 대웅전 등 수십 점의 보물과 국보를 비롯하여 4만 점이 넘는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시장입니다.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화엄의 가르침을 펼친 곳입니다. 배흘림기둥으로도 유명한 국보 18호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가장 오래되고 우수한 목조 건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붕을 떠받치는 공포(栱包)가 기둥 위에만 배치된 주심포, 아무 문양 없이 곧게 뻗은 창살, 추녀의 곡선 등 꾸밈없는 담백함이 기품을 더합니다.

<삼국유사>에는 이 절의 창건설화가 실려 있습니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했던 여인이 용으로 변신해 따라왔습니다. 의상이 화엄을 펼칠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 500명이 그 땅에 살고 있었고, 커다란 바위로 변한 선묘 여인이 공중에 떠서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몰아내고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뒤에 부석(浮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선묘 여인이 변했던 바위라고 전해집니다.

부석사는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의 양백지간에 자리한 풍광 좋은 사찰입니다. 부석사에 도착하면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 범종루, 무량수전에 이르기까지 9단의 석축을 올라야 합니다. BBS NEWS는 아미타신앙에 바탕을 둔 의상 스님의 화엄사상과 극락정토 구품세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고 전하네요.

법주사는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불교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국내 미륵신앙의 대표 도량으로 33ⅿ 높이의 미륵대불이 우뚝 서 있습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탑 팔상전과 쌍사자 석등도 볼 수 있죠. 3점의 국보와 13점의 보물 등 40여 점의 문화재를 품고 있어 ‘보물창고’, ‘야외 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하네요.

국보 제5호 쌍사자 석등은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습니다. 넓은 8각 바닥돌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댄 채 뒷발로는 아랫돌을 디디고,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습니다. 통일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며, 8각 기둥 대신 두 마리 사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법주사 사천왕 석등(보물 제15호)과 함께 통일신라의 대표 석등이죠.

순천 선암사는 사천왕상과 어간문 등이 없는 삼무(三無) 사찰로 호남의 3대 명산으로 꼽히는 조계산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매표소에서 사찰에 이르는 1.5㎞ 숲길은 ‘전국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선암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졌다가 현종 1년(1660)에 새로 지었습니다. 그 후 영조 42년(1766)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에 지어 오늘에 이릅니다. 잦은 화재와 일곱 차례의 중건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배치를 지우지 않은 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 ‘선암사’에 등장하는 해우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입니다. 보물 제1311호인 대웅전을 비롯해 각황전, 팔상전 등 오래된 전각과 돌담, 아기자기한 정원 등 빼어난 볼거리를 자랑합니다.

대흥사는 전남 해남군 두륜산 줄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두륜산(대둔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불전들을 지형 조건에 따라 배치해 자유로움과 조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천불전은 대흥사 남원(南院)의 중심 불전입니다. 큰 대문채처럼 평범한 단층 5칸 맞배집으로 중앙 문간을 거쳐 천불전 안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천불전, 왼쪽에 봉향각, 오른쪽에 옛 용화당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대웅전보다 마당은 크지 않지만, 공간에 맞게 건물의 규모와 형식을 갖추고 있어 중심건물로서의 격식과 품위가 느껴집니다.


봉정사는 봉황이 머무른다는 곳입니다. 7세기 후반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사가 창건했습니다. 국보인 극락전과 대웅전, 보물로 지정된 후불벽화와 목조관세음보살좌상, 화엄강당, 고금당 등의 문화재를 품고 있으며 극락전은 부석사와 같이 배흘림양식이 적용된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괘불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열 때 사용하던 대형 불화입니다. 마곡사의 석가모니불괘불탱은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6대 보살, 10대 제자, 제석천과 범천, 사천왕, 천자, 아수라, 용왕 등이 좌우 대칭으로 화면 가득 그려져 있습니다. 중후한 형태와 화려한 색채 등 17세기 전반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본존불을 중앙에 크게 묘사함으로써 석가모니가 대중들을 압도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한국불교 천년’ 7개 산사, 세계문화유산에 오르다… ‘막판 뒤집기’
    이데일리, 2018.7.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유네스코 등재 7산사의 속살] 국보 품은 ‘봉황이 머무른 곳’ 안동 봉정사
    BBS NEWS, 2018.7.1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유네스코 등재 7산사의 속살] 태백산과 소백이 품은 부석사
    BBS NEWS, 2018.7.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유네스코 등재 7산사의 속살’] 원형 그대로의 모습, 천년고찰 선암사
    BBS NEWS, 2018.7.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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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미지
이재은 뉴스큐레이션




사는 것(living)이 곧 사는 것(buying)이라지만 – ㅎ 프리미엄 아울렛과 ㅌ 쇼핑몰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흔히들 우스갯소리 삼아 “사는 것(living)은 곧 사는 것(buying)”이라고들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도시의 삶에서 숨을 쉬듯이 우리는 무언가를 계속 삽니다. 끼니때 밥을 사 먹고, 요리하려고 식자재를 삽니다. 계절이 바뀌면 새 옷을 사고, 길 가다 눈에 띈 장신구도 또 하나 삽니다. 게다가 더워진 날씨에 아이스 커피를 자주 사 마시기도 합니다. 다 써버린 두루마리 휴지와 세제를 사서 채워 두어야 하고, 낡은 칫솔과 닳아버린 샤워타올도 새로 삽니다. 줄줄이 상품을 나열하지만, 우리가 사는 것은 상품뿐만 아닙니다. 출퇴근할 때마다 버스나 지하철 요금도 내고, 머리를 자르면 서비스 비용을 내고, 영화나 공연을 보기 위해 티켓을 사며,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도 입장권을 삽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거의 매 순간 무언가를 구매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는 도중에도 무언가 구매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구매하는 것들만큼이나 구매의 공간 또한 무척 다양합니다. 거리의 양옆은 온갖 가게들로 메워져 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에 갈 겁니다. 새로운 계절이 올때마다 한 번쯤은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서 세일하는 상품이 없나 뒤적여 보겠지요. 그리고 가끔은 주말에 시간을 내어 작년에 가격이 비싸서 구매하지 못했던 옷을 사기 위해 아울렛에 가볼 것입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도시 한가운데까지 진출한 아울렛과 거대 규모의 쇼핑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아울렛은 본래 재고상품이나 B급 상품을 생산자가 저렴하게 판매하는 팩토리 아울렛(Factory Outlet)에서 출발했습니다. 인천에서도 가구공장이나 구두 공장에서 운영하는 아울렛 매장을 만날 수 있지요. 그러나 최근 10년간 사람들에게 익숙한 아울렛은 이른바 ‘프리미엄 아울렛’이 아닐까요. 미국의 아울렛 기업이 한국의 유통자본과 합작하여 시작한 프리미엄 아울렛은 10년 사이에 대도시 근교의 필수적인 유통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도시 근교에 고속도로로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넓게 자리 잡은 아웃렛이 주말마다 방문자로 가득 차는 것은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프리미엄 아울렛은 넓은 땅이 필요하기도 하고, 이에 따른 개발 비용을 절감해야 하기에 대체로 도시 내 보다는 교외에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고속도로와 인접해서 쉽게 오고 갈 수 있게 했지요. 이런 방식 으로 입지가 정해진 초기 프리미엄 아울렛이 여주, 이천, 파주 등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2016년 송도에 ㅎ 프리미엄 아울렛이 문을 열었을 때, 약간의 신기함과 어색함이 있었습니다. 고속도로로 한 시간 남짓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도시 한 가운데에 생긴 것입니다.

도시 한가운데의 아울렛은 간혹 찾아가던 쇼핑의 공간인 아울렛을 일상의 구매공간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교외에 위치한 아웃렛에 들릴 때는 주말 하루를 온전히 빼내야 했습니다. 오전부터 쇼핑하면 점심을 먹고 오후에 돌아오는 공간이었죠. 그러나 도시의 아울렛은 퇴근할 때 들를 수 있고, 어제 가면, 오늘 또 가는 데 어려움이 없는 접근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형마트를 찾는 정도의 수고로 아웃렛을 방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웃렛은 매장 구성에서 교외 아웃렛과 약간의 차이를 둡니다. 매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 지하 1층에는 다른 아울렛에 비해서 규모가 큰 식당과 식품관을 두는 것입니다. 이곳에 인기 있는 식당과 식품 매장을 둠으로써, 쇼핑 목적으로 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저 음료나 빵을 사기 위해 이곳에 오도록 유인하는 것입니다. 기존 아울렛의 키 테넌트(Key Tenant: 모객을 위한 핵심 점포)는 수입명품 매장으로 1층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ㅎ 프리미엄 아울렛은 쇼핑 편의시설 정도의 위상이었던 식당을 키 테넌트 수준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아울렛이 이벤트적 공간에서 일상적 공간으로 변형된 것입니다.

이러한 공간의 변형은 2017년 ‘ㅌ 스트리트’라고 하는 쇼핑몰이 ㅎ 아웃렛 옆에 나란히 문을 열면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도시의 대형 쇼핑몰은 하나의 수직적인 대형건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만, 최근의 경향은 이것을 옆으로 길게 늘여 일종의 길과 같은 형태로 만듭니다. 이미 송도에 만들어진 커낼워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형태의 쇼핑몰은 쇼핑몰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더 많은 개방감을 느끼도록 만듭니다. 쇼핑몰 안을 걷는 사람들은 이 공간에 대해 특정 시설을 이용한다기보다, 도시 일부분처럼 받아들입니다.

또한 이 쇼핑몰은 최근의 복합쇼핑몰의 흐름에 맞게 쇼핑 이외의 활동에 대한 공간 배분이 무척 많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식당의 비중이 높고 모객시설로써 영화관을 두었으며 옥상의 스포츠센터에서 풋살을 할 수도 있습니다. 복합쇼핑몰은 이러한 구성을 통해서 판매시설을 넘어서 접근성 좋은 레저 공간으로 위상을 확대합니다. 쇼핑몰에서 쇼핑과 여가를 동시에 향유하는,  이른바 ‘몰링’을 즐기는 소비자를 뜻하는 ‘몰고어(mall-goer)’라는 개념이 등장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레저와 쇼핑을 결합한 ‘레저핑’, 쇼핑몰과 바캉스를 결합한 ‘몰캉스’라는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ㅌ 쇼핑몰은 스스로 ‘걷고 싶은 거리’로 규정하고, 하남과 고양에 문을 연 ㅅ 쇼핑몰은 자신의 정체성을 ‘테마파크’라고 말합니다. 최근 쇼핑몰은 도시 사람들의 하루 여가의 모든 부분을 거의 충족시켜 줄 수 있도록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쇼핑몰의 운영 전략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도시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거대 아울렛과 쇼핑몰에서 단순히 편리함의 장점만을 만끽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아울렛과 쇼핑몰이 만드는 경험의 규격화의 측면입니다. 우리나라의 거대 유통 자본 세 곳에서 개발하는 무수한 아울렛은 지역적 맥락을 일부 고려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동일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매장의 종류도 거의 같고 식당의 구성도 유사합니다. 과거부터 이러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특히 프랜차이즈 일색의 구성이 규격화를 초래한다고 비판받았지요. 그래서 최근에는 다양한 팝업스토어를 기획하고,  각 지역의 유명 음식점과 제휴하여 입점하도록 합니다. 이런 방식이 보편화하면서 프랜차이즈의 규격화는 완화되었지만, 지역적 맥락은 더욱 빠르게 사라지며 쇼핑몰의 특성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ㅁ 빙수’는 압구정의 명물이었지만 이제는 ㅎ 백화점의 판매시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ㅇ빵’은 군산의 명물이었지만 역시 ㄹ백화점의 여러 식품관 메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공간적 제약을 넘어서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을 나누어 준다는 평등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의 규격화, 특히 유통자본에 의한 규격화는 도시민들의 삶의 경험을 통제합니다. SNS 마케팅의 범람으로 여러 지역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들이 매일같이 등장하는 오늘날, 대형 유통자본과의 제휴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인증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젊은 힙스터들의 유행이 유통자본의 검증을 거쳐 대중들에게 취향으로 쥐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험의 규격화는 우리 도시 구석구석의 새로운 창조성을 무너트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웃의 관심을 통해서 검증되며 자라나야 하는 지역의 작은 시도들은 대개 이 인증서를 받지 못하고 소멸하게 됩니다.

또 하나의 우려는 이러한 스트리트 형태의 쇼핑몰이 도시의 가로를 대체하는 일종의 ‘유사가로’를 형성하는 데 있습니다. ㅌ 쇼핑몰의 중앙 통로에는 스스로 ‘송도 가로수길’이라는 키치적 명칭이 붙어있습니다. 사람들은 장벽과 같은 밋밋한 건물의 뒷면과 지하주차장 출입구를 마주치는 도시의 가로보다는 지속해서 변화하는 풍경을 따라 이 길을 걸을 것입니다. 걷는 동안 얻는 시각과 청각의 경험, 공통의 기억과 체험은 쇼핑몰 내부, 블록의 안쪽으로 수렴합니다. 이것은 쇼핑몰 운영의 관점에서는 대단히 성공적일 수 있으나, 도시 전체의 측면에서는 구분 짓기와 경계선 만들기에 가깝습니다. 건물이 길과 접하고 도시와 만나는 면을 스스로 차단하고 뒤로 돌아앉음으로써 가로 전체를 걸을 이유가 없는, 그저 기능적으로 자동차만 지나가는 길로 격하시킨 것입니다.

일본의 롯폰기 힐스 등 초거대 쇼핑몰은 도쿄에서 손꼽는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고, 재난 대비 방재 교육 뿐 아니라 지역축제, 마치즈쿠리(마을만들기) 참여와 같은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쇼핑몰이 도시 공간과 도시 사람들에서 분절된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 판매시설의 본질이지만, 도시공간의 한 부분으로서 공공성을 함께 만들어 가기를 기대해봅니다.

 

글,사진 제공/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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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빈(2013). 전후 미국의 쇼핑몰의 발전과 교외적 삶의 방식. 미국사연구 37
백인열,강우성(2016). 대규모 복합쇼핑몰의 활성화 방안에 관한 한국과 일본사례의 비교연구. 유 통연구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