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트라이보울 재즈+페스티벌
마더바이브, 오왠, 조윤성 TRIO, 허르처 베로니카, 제만트 바린트, 이상민
모과, 쿠잉, 쿠마파크, 말로, 밴드, 박종상 쿼텟, 김바다
2018. 8. 24(금)-26(일)요일
@송도 트라이보울 실내공연장
영상. 시민기자단 김유라
마더바이브, 오왠, 조윤성 TRIO, 허르처 베로니카, 제만트 바린트, 이상민
모과, 쿠잉, 쿠마파크, 말로, 밴드, 박종상 쿼텟, 김바다
2018. 8. 24(금)-26(일)요일
@송도 트라이보울 실내공연장
영상. 시민기자단 김유라
부평은 전근대 시기 넓은 평야를 이룬 농업의 중심지였다. 이런 모습은 1899년에 인천과 서울을 잇는 우리나라 최초 철도인 경인선이 개설되면서 점차 그 모습이 변화했다. 일제는 부평지역의 토지와 쌀을 수탈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부평역을 통해 인천항으로 반출되었다. 또한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중일전쟁의 발발과 이에 따른 원활한 무기 공급을 위해 군수물자 제조·보급공장인 조병창과 더불어 다양한 군수공장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1940년에는 부평을 인천으로 편입시키고 조병창을 더욱 확장했다. 이런 변화는 부평지역의 모습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부평 곳곳에 남아 있는 군수공장의 조선인 노동자 합숙소이다.
부평 최초의 조선인 노동자 합숙소는 1937년 일본의 히로나카상공[弘中商工]이 현재 부평2동에 조성하였다. 이후 무리한 확장으로 경영난을 겪던 히로나카상공을 미쓰비시가 인수하면서 조선인 노동자 합숙소도 미쓰비시의 소유가 되었다. 미쓰비시는 한자로 삼릉(三菱)이라 쓰는데 이런 연유로 지금도 부평 2동 및 인천지하철 1호선 동수역 주변은 삼릉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쓰비시에서 ‘미쓰’는 삼, ‘비시’는 마름모, 즉 ‘세 개의 마름모’를 뜻한다. |
1948년 당시 사진 (출처: Norb-Faye)
위 사진은 1948년 당시 부평의 모습이다. 사진의 제일 위쪽에는 미쓰비시 공장이 있으며, 그 아래로 사택, 합숙소, 공동목욕탕 등이 있다. 이중 미쓰비시 공장 자리는 미군 부대가 주둔하였다가 한국군 부대를 거쳐 2002년부터 부평공원이 되었다.
1947년 항공사진, 미쓰비시 공장 및 사택 위치 (출처: 인천시 지도포털) |
2016년 항공사진 (출처: 다음지도) |
미쓰비시 군수공장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강제징용(강제노역)을 피하고자 입사했지만, 그렇다고 처우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이들은 오전 8시부터 하루 10시간 근무하며 낮은 임금을 받았다. 또 일본인들만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한 조선인 노동자들은 부실한 도시락을 가지고 여럿이 모여 식사를 해결했다. 이렇듯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일본인과 차별을 받았다.
지도에서 보다시피 미쓰비시 공장을 가려면 철길을 건너야 했다. 출퇴근길 매일 위험한 철길을 건너다보니 인명사고가 빈번히 일어났다. 이 밖에도 공장에서 각종 기계를 다루면서 손, 팔 등을 다치거나, 절단되는 사고가 잦았다. 그런데도 미쓰비시는 제대로 된 의료시설을 갖추지 않았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선인 노동자의 몫이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던 군수공장 취직도 이름만 다를 뿐 강제징용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안남로 부근에 조성된 주택지는 공장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으로 구(舊)사택이라 불린다. 주택 일부는 철거와 증축 등으로 형태가 바뀌기는 했으나 당시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 건물의 끝에는 공동화장실을 두어 사용하였는데, 그 입구가 너무나 비좁았다.
부영로 부근의 신(新)사택은 구사택보다 나중에 지었는데 내부 구조는 방1 , 부엌 1로 같다. 그러나 방에 깔리는 다다미 크기로 볼 때 신사택이 7조 1반, 구사택은 4조 반으로 신사택이 구사택보다 조금 더 넓었다. 일반적으로 다다미 한 장의 크기는 약 180X90.0cm 정도로 이곳에서 몇 명이나 함께 생활하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2016년 수치지도, 남아있는 줄사택 위치 | 구사택지 공동화장실(2016년 촬영) |
구사택지 전경(2016년 촬영) |
신사택지(2016년 촬영) |
2018년 일부 철거된 현재 모습 |
얼마 전 신사택을 다시 찾았을 때 건물 일부가 철거되고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이들 사택은 올해 초, 도시의 흉물이라는 이유로 전부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생활여건 개선과 함께 ‘줄사택’ 8채를 리모델링하여 박물관으로 재탄생시키기로 합의하였으나, 최근 주민들의 반대로 보존계획이 백지화되고, 향후 미군기지가 반환되는 자리에 박물관 건립이 논의 중이다.
줄지어 늘어선 독특한 경관에 서려 있는 수탈의 상징 줄사택을 둘러싸고 주민의 이해관계와 역사유산의 보존이라는 양쪽의 입장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줄사택은 계속 훼손될 것이고 결국에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역사를 입증할 유산은 사라져갈 것이다. 이제라도 주민들의 이해관계와 근대유산 보존을 위한 조정이 이루어져 강제노동의 현장과 노동자들의 아픔을 기억해 줄 공간으로서 줄사택이 지켜지길 바란다.
글/사진/도면 이정화(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Chilly season and Art
여름 열기에 고추를 말리는 계절이 다가왔다. 중구의 거의 모든 길가에는 넓은 그물이나 천이 펼쳐있고 그 위에는 풋고추들이 널려있는데, 이 빨간 고추들이 갈색으로 변해서 바싹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햇살 아래 놓여있게 된다. 매운 국물, 김치 그리고 그 외 절인 채소 음식에 필요한 고춧 가루와 고추장을 만들기 위해 식당과 가정집들은 고추를 말린다.
With the summer heat, comes the season for drying hot chilly peppers. Almost every sidewalk in Jung-gu was covered in a large net or a piece of cloth with fresh hot peppers on top of it, sitting in the sun for days, until they turn brown and brittle. Restaurants and houses dry them to make the chilly powder and chilly past, both are necessary ingredients for making spicy soup, kimchi and other pickled vegetables.
중구 , 인천
Jung-gu, Incheon
©Lamis Haggag
전시회 개막 준비 중에 나의 작품에 쓰일 재료를 구하느라 인천과 서울을 바쁘게 오가야만 했고, 이 시기에 나는 일민 미술관에서 열렸던 플립북(Flip Book) 전시회 그리고 국립 현대미술관(MMCA)에서 열렸던 아크람 자타리(Akram Zaataridml)전시와 <예술과 기술의 실험 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 (E.A.T)>의 고문서 전시회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
In preparation for my exhibition opening, I had to run back and forth between Incheon and Seoul to source some materials for my work, during which I had the chance to visit the ‘flip Book’ exhibition at the Ilmin museum and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MMCA) for the Akram Zaatari show and the archival exhibition of ‘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 (E.A.T) group.
아크람 자타리 전시,현대미술관, 서울
Source: Akram Zaatari Exhibition, MMCA, Seoul
©Lamis Haggag
인천 수산시장
Incheon fish market
전시회 이후, 나의 한국에서의 체류와 전시회가 끝나가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함께 ‘인천 수산시장’에 가보았다. 먼저 우리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시장의 각기 다른 구역들(활어, 건어, 해초, 젓갈 구역)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각 구역들은 점포의 특색에 따라 세분되어 있었다. 우리는 횟감으로 생선을 골라 손질을 부탁하고 점포 안에 앉아 잘게 손질된 회를 먹었다. 전에 내가 말한 대로, 난 세상에서 두 번째로 자극적인 맛을 가진 생선인 홍어를 먹어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나의 고국에서는 회색 숭어를 소금에 저린 이집트 전통 생선 요리인 Fessekh가 있는데, 이 음식이 햇볕 아래에서 발효되면 독성이 생겨 심지어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봄철이면 이집트인들은 이 냄새 고약한 음식을 오일과 레몬에 담가 먹는데, 이러한 전통은 콥트 달력에 따른 입춘(立春)을 의미하는 ‘Sham El Nesseem’을 기념하기 위한 전통 중 하나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After my exhibition I went with my friends on a trip to ‘Incheon General Fish Market,’ to celebrate my residency and exhibition coming to an end. We first strolled down the market and checked out the different sections the market had to offer: the fresh fish, the dried fish and seaweed and the shredded seafood in chilly sauce sections. Each section is divided into subsections with the shops having their own specialties. We then picked the fish we wanted cleaned and cut and sat inside one of the booths in the market to eat the raw neatly sliced fish. We had made the decision earlier that I was to try the Skate ray fish, the 2nd most pungent fish in the world, as I was told. In my home country we have the Ancient Egyptian tradition of salting grey mullet fish (Feseekh) and fermenting it in the sun, a dish that can cause food poisoning and in some cases death. But still Egyptians insist on eating the very smelly dish, soaked in oil and lemon every year around springtime. The tradition comes as part of our celebration of ‘Sham El Nesseem,’ which signifies the beginning of the spring season based to the Coptic calendar.
인천 수산 시장, 인천
Incheon General Fish Market, Incheon
©Lamis Haggag
인천 수산 시장, 인천
Incheon General Fish Market, Incheon
©Lamis Haggag
인천 중구와 작별
A farewell to Jung-gu, Incheon
인천 중구에 왔을 때부터 나는 일본과 중국 건축물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중구를 떠나기 위해 친구 호영과 함께 걷고 있는데, 그는 어떤 지역이 어느 나라의 양식에 속하는지 구분할 수 있는 매우 미묘한 차이점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차이나타운과 일본 거리 사이에 놓인 자유공원 방면으로 나있는 계단에는 각기 다른 스타일의 불빛들이 늘어져 있었다. 상반된 모습이 매우 미묘했지만, 몇 번을 바라보니 그 차이점이 매우 명확했다. 친구 호영이 알려주기 전까지 나는 이러한 작은 차이를 알지 못했지만, 그 다름이 너무나도 명확해졌다.
I had noticed since I arrived to Jung-gu, Incheon the difference in architecture between the Japanese and Chinese areas, which clearly set them apart. However, my friend Ho-young during a walk together, as I was bidding Jung-gu one of many good-byes, showed me a very subtle difference that was to determine which territory belonged to whom during their reining times. The stairs leading up to Freedom Park and in between Chinatown and the Japanese street are lined on each side with a different style of lights. The differences are so subtle yet so clear to the trained eye. I had never noticed them until Ho-Yong pointed them out, then they became too clear.
중구, 인천
Source: Jung-gu, Incheon
©Lamis Haggag
짧았던 서울 방문
A quick visit to Seoul
최근 몇 년 중 가장 강한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할 것이 예상되던 어느 날, 서울에 일주일 동안 머물기 위해 가방을 쌌다. 나의 방문 계획은 빡빡했고 서울을 더욱 깊게 경험해 보고자 했으며, 결국 난 그리 했다. 더 많은 미술관, 박물관, 기념비, 가게, 한국 전통 식당과 카페들을 방문하였다. 나는 도시를 거니는 것을 즐겼다. 무엇보다 스님들의 대규모 집회 기간에 조계사 절 방문은 잊지 못할 경험 중 하나였다. 무수히 많은 경찰에 둘러싸여 스님들은 절 밖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집회 참가 스님들은 조직의 몇몇 노스님들의 부패를 규탄하고 이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였다. 또 다른 인상 깊은 방문은 파주 책 마을에 있는 문화단지로, 이 단지는 책 발간과 편집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으로도 유명하다. 문화단지 내의 건축물은 인상 깊었으며, 창조적인 현대 건물과 함께 미래 도시적인 느낌을 풍긴다.
On the day of what was expected to be the strongest Typhoon in the last few years in South Korea, I was to take my bags and visit Seoul for a week, and so I did… My visit was very full, and I got to experience Seoul with more depth. I had the chance to visit more galleries, museums, monuments, stores, traditional and contemporary Korean restaurants, cafes; I enjoyed some walks around the city, etc. Among my most memorable experiences was my visit to ‘Jogyesa’ temple during a large Monk Rally. The Monks were chanting outside the temple while surrounded by an exuberant number of policemen. My understanding was that they were protesting the doings and corruption of some of the elder Monks in the Organization, and asking for reform. Another impressive stop was Paju book city, a cultural complex famous for publishing and editing books and making movies. The architecture of the area was impressive; it looked like a future city with its creative contemporary buildings.
정은영 전시, Korea Artist Prize 수상자, MMCA, 서울
Source: Siren Eun Young Jung Exhibition, Korea Artist Prize nominee, MMCA, Seoul
©Lamis Haggag
한국과의 작별
A farewell to Korea
나의 한국 체류는 짧았지만 달콤했다. 오랜 기간 동안 머물렀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바쁘게 일하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 다니고 문화를 경험하다 보면 시간은 매우 빠르게 지나간다. 한국에서 나의 경험, 특히 인천 중구에서의 경험은 마법과도 같다. 나에게 있어 인천 중구는 색다른 시간에 색다른 장소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건물들은 아직까지 매우 안락한 장소로 느껴진다. 언젠가 한국에 다시 방문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 때가 되면 약 3개월 동안 나의 집이었던 중구는 방문할 곳 중 하나가 될 것이다.
My stay in Korea had been sweet and short. It may seem like a long time, but when you are busy working and trying to explore a new place and culture, time flies by so quickly. My experience in Korea in general and Jung-gu, Incheon specifically seemed so magical. To me, Jung-gu, Incheon seemed like it belonged to different places at different times, a complex yet very welcoming place. I have a feeling I am to return back to Korea, and when I do, Jung-gu, will be one of my stops for it has been my home for almost 3 months.
미메시스 뮤지엄 , 파주
Mimesis Museum, Paju
©Lamis Haggag
글/ 사진
라미스 하가그(Lamis Haggag)
작가 정보 : 바로가기
번역 김영모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올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활동할 2018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뽑혔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연구와 창작활동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창작지원 프로그램과 발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2018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를 소개합니다.
윤호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사진과 관련매체를 전공하였고, 사진과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기술 매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작업해오고 있다. 작가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기의 과정 그리고 이를 구성하는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인 수용과 확장된 사진의 영역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전 연구를 통해 이미지의 가변성과 유목성에 관심을 가져왔던 작가는 아트플랫폼에서 그동안 진행해 온 ‘이미지 연구’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이차적인 이미지를 생산하는 ‘매체’의 상태와 조건을 탐구하고, 미학적으로 실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작가가 작업에 사용하는 이미지들은 서사가 없는 재료로써, ‘실재의 재현’이 아닌 ‘이미지가 재현한 이미지’에 중점을 둔다. 작업을 통해 작가는 사진이 자연스럽게 이어받은 존재론적 지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즉 기술 매체로 재현된 오늘날에 소비되는 ‘사진적 이미지’ 또는 ‘사진 같은 이미지’를 학문적으로 리서치하며 창작해나가고자 한다.
#투명 #반투명 #불투명, #반사_파운드 이미지, 디지털프린트_30x42cmx3개_2017
# 현재 전시 소개
윤호진 작가의 개인전 <Inanimate Assembly>가 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갤러리에서 9월 10일(월)부터 9월 30일(일)까지 진행된다. 기존에 작업해 온 시각 연구작업 Re:re:의 일환으로 전시명과 동일한 새 작업 ‘인애니메이트 어셈블리(Inanimate Aseembly)’를 전시한다. 이 작업은 평소 관심 있던 이차적 생산 사진 이미지(스크린 이미지와 잡지 프린트 이미지)로부터 시작하여 작가는 사진 설치를 통해 매체의 원본과 복제, 예술작품의 사후 생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전시 포스터 <인애니메이트 어셈블리(Inanimate Aseembly)>
# Q&A
Q. 창작의 관심사와 내용, 제작 과정에 대하여
A. 나는 주로 사진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한다. 전통적인 매체를 사용하여 오늘날 사진의 지위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다. 사진작업을 제작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자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한 어떤 특정한 물체(오브제)를 제작하는 것부터 작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즉, 오브제를 만들고 촬영한 뒤, 이를 다시 물질적인 형태로 옮겨 이미지를 완성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또는 프린트된 이미지 등과 같이 이차적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물질화된 이미지를 다시 주변 환경과 조율하여 설치 작업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국제기준규격(Commercial Size ISO) A0~A4_스톡 이미지, 스틸, 랩 테이프, 디지털 프린트, 액자 설치_2017 | 국제기준규격(Commercial Size ISO) A0~A4_설치전경_2017 |
나의 작업 <[Re]:>에 쓰인 많은 사진 이미지들은 사진을 구성하는 다른 조건들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다시 말해, 사진 이미지 하나하나가 작업의 재료로 활용되기 때문에, 작품이 놓이는 주변 환경에 따라 의미와 크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처럼 나의 작업들은 대부분 눈앞에 물리적인 형태는 있지만, 최종적인 형식의 것(final form)은 없는 경우가 많다. 나의 작업이 사진 매체의 모호함을 환기해주기를 바란다.
[RE]:[Re]:_청주스튜디오_설치 전경_2017
Q. 대표적인 작업 소개
A. 현재 진행하고 있는 <[Re]:>가 나의 대표 작업이다. <[Re]:>라는 제목의 이 작업은 인터넷 도메인에서 소통할 때 정보가 오고 가는 것을 뜻하는 아이콘인 “Re:”을 차용하였다. <[Re]:> 는 포스트 인터넷 시대에 인식과 이미지의 관계로 구축된 우리의 시각적 체계에 대한 사고적 수용을 제안하기 위한 사진연구이다. <[Re]:>는 작업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Re]:[re]와 같은 형식으로 계속 진행된다. 이는 재매개(Remediation)를 내포하고 있다.
Re:re:re:_디지털 프린트_2011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 등
A. 나는 밀레니엄 시대에 속한 세대이다. 커뮤니케이션, 매스미디어,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다. 청년기를 캘리포니아에서 지냈기 때문에, 색의 온도 혹은 빛 온도에도 민감한 편이다.
나는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조명의 ‘빛의 색’을 조절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나의 작업에는 미국 초창기 컬러 영화에서 쓰인 색들의 상징성과 빛 온도를 표현하는 색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 앞으로 공부를 더 해 볼 생각이다.
빛 온도(Color Temperature)_디지털 프린트_2015 | Untitled_블라인더, 디지털 프린트, 설치_ 2017 |
The Bather_디지털 프린트_27x33in_2015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는 작업이 작가의 순수한 자기 물음에서부터 시작되어, 스스로 선택한 기술적 매체를 통해 시각화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이고 사소한 질문이 때로는 공적인 질문이 될 수 있다. 사적인 관심이 대중화되어 나타날 때 자연스럽게 관객과 소통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작업을 따로 하지는 않고 있다.
Over and Under_Hand cut wooden frame, Digital Print _30x150cm_2017 | 기계적 원근법 연구(Perspective Study)_디지털 프린트_30x40in_2012 |
Q. 앞으로의 작가로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하여
A. 진행하고 있는 이미지 연구 작업인 <[Re]:>를 이어갈 생각이다. 작업을 진행하며 ‘이미지의 위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작업의 방향이 많이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나는 공부와 리서치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지’라는 방대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작업 중에는 계속 <[Re]:>를 연구하며 이를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피사계 심도(Depth of Field)_디지털 프린트_30x40in_2016 |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소식 1] 올 가을 트라이보울로 문화 나들이 오세요. <트라이보울 가을 프로그램 안내>
공간문화팀(032-455-7185)
[소식 2] 시민의 열정과 참여로 만들어가는 예술축제 <2018 인천개항장예술축제>
인천 중구 신포동 일대는 ‘개항장’으로 불리던 곳으로, 90년대 초까지는 인천의 대중문화를 이끌던 곳이었으나 이후 부침을 겪다가 2000년대 후반 들어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중년층과 독특한 취향의 카페와 맛집을 찾는 젊은이들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추억과 낭만을 느낄 수 있고 소소한 재미가 있는 동네로 인천 시민들에게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재)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최진용)은 10월 12일(금)~14일(일) 3일간 2018 인천개항장예술축제를 개최한다. 인천개항장예술축제는 앞서 말한 개항장 일대를 배경으로 과거의 낭만, 동시대의 청춘과 열정, 미래의 희망을 키워드로 하는 종합예술제이다. 인천아트플랫폼과 신포동의 문화공간을 중심으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 연극, 무용 등의 문화예술단체와 신진예술가들의 공연프로그램이 펼쳐질 예정이다.
축제문화팀(032-455-7187)
[소식 3] 인천아트플랫폼 2017 올해의 입주작가전 : 안상훈 <모두와 눈 맞추어 축하인사를 건네고>
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 최진용)에서 운영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이 ‘2017 올해의 입주작가전’을 9월 10일(월)부터 9월 28일(금)까지 B동 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전시 개막행사는 9월 13일(목)요일에 진행되며, 시상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은 매년 공모를 통해 국내외 다양한 예술가를 선발하여 작업공간과 창작 프로그램을 지원해오고 있으며, 전시와 공연,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예술을 매개로 시민과 소통해오고 있다.
《2017 올해의 입주작가전》은 작년 10월 아트플랫폼에서 개최되어 예술가들이 창작의 결실을 선보였던 <플랫폼 아티스트> 전시와 더불어 예술가의 작업실을 3일간 개방하여 창작 과정을 보여주는 <오픈 스튜디오> 행사 기간 중 시민과 전문가의 투표로 ‘다시 만나고 싶은 작가’를 선정하고, 개인전 개최를 지원하는 시상 프로그램이다.
– 전시기간 : 2018년 9월 10일(월) ~ 9월 28일(금)
※ 추석당일(9월 24일)만 휴관
– 개막행사 : 2018년 9월 13일 목요일, 오후 5시
– 관람시간 : 오후 11시 ~ 오후 6시
– 전시장소 :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
– 관 람 료 : 무료
아트플랫폼(032-760-1005)
인천시민들은 인천의 역사와 문화유산 그리고 시의 관련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에서는 인천광역시 문화유산 보존·관리·활용 중장기 종합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본 연구 수행의 일환으로 인천시민의 인천지역 문화유산(정책)에 대한 이해, 인식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알앤에이에 의뢰해 인천지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주요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먼저 인천이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갖기 위해서는 현재 보유한 역사적 배경과 문화유산에 대한 시 차원의 더욱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이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응답자의 20.3%(매우 그렇다 2.5%, 그렇다 17.8%)에 그쳤다. 부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27.1%(전혀 그렇지 않다 5.0%, 그렇지 않다 22.1%)였으며, 가장 많은 48.3%가 ‘보통이다’라고 답하였다.
도표 1. 시민들의 인천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전반적 인식
인천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역사를 아우르는 ‘지붕 없는 박물관’강화도와 근대 격동의 역사를 상징하는 중구의 근대 개항장 등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보유한 도시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 시민들이 인천을 역사문화도시로서 체감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활용과 홍보, 보존 등에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인천을 대표하는 역사유적(역사적 공간)으로는 응답자의 40.6%가 ‘강화도의 역사유적지’를 꼽아 다른 유적이나 공간을 답한 비율을 월등히 앞서 인천지역사에서 강화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에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유적·공간을 답한 비율은 ‘중구 및 옹진군의 여러 섬들’(12.3%), ‘부평도호부와 계양산성 일대’(10.6%), ‘인천도호부와 문학산성 등 원인천’(9.6%), ‘중구 근대개항장’(5.5%) 순이었다.
도표 2.시민들의 인천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전반적 인식
인천시의 문화유산 정책(사업) 분야 중 향후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분야는 가장 많은 27%가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재산권, 지역개발과의 조화 문제 포함)’를 꼽았다. 이는 문화유산을 올바르게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과 함께 개인의 재산권과의 충돌을 해소하는 것에 대한 관심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문화유산의 활용과 수익 창출’을 답한 비율도 25.8%에 달해 문화유산이 지역사회에 경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데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표 3.인천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들의 전반적 인식
문화유산과 관련한 시민의 참여나 향유 기회가 충분한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4.3%(매우 그렇지 않다 14.3%, 그렇지 않다 60.0%)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하여 많은 시민들이 문화유산과 직간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나 향유 기회가 충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절반이 넘는 50.5%가 ‘여간시간의 부족’으로 답하여 일과 여가의 균형·조화를 이룰 수 있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도표 4.시민들의 문화유산 관련 참여와 향유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시민들의 인천의 문화유산 및 관련 정책에 대한 생각을 상당 부분 엿볼 수 있었다. 인천시와 인천역사문화센터는 이번 시민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적극 반영한 문화유산 중장기 종합발전계획 연구 결과를 올해 12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는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가 리서치알앤에이에 의뢰하여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13일까지 인천광역시 거주 만 19세 이상 일반 시민 1,007명을 대상으로 대인면접조사 방식으로 실시하였으며, 표본오차는 ±3.2%(신뢰수준 95%)이다. 자세한 조사결과는 인천문화재단 인터넷 홈페이지(www.ifac.or.kr) 자료실 메뉴의 인천역사문화센터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 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안홍민
창작집단 <도르리>는 ‘기찻길옆작은학교’ 공부방에서 만난 20,30대의 젊은 작가 네 명이 2011년 에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김중미 선생님과 함께 어린이 잡지를 제작하면서 구성하였다. 동네 곳곳을 누비며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는 그들이, 올해 11월에는 만석동에 대하여 기록한 <동기>전을 인천 화수동 작업실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는 ‘기찻길옆 작은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목수전>이라는 전시로 주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제주도 방언 ‘도르리’라는 말처럼 그들이 자그마한 공간에서 나누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도르리 팀원 김성수, 오정희와 ‘기찻길 옆 작은학교’에서 일하는 유동훈 씨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기찻길옆작은학교 아이들과 함께 <꼬마목수>를 전시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유) 아이들과 제작한 목공예 작품을 활용해 전시를 기획했어요. 지역과 자기 동네를 표현한 모습을 동네 주민들에게도 보여주고 세상에 알리는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의 작품을 통해 연대하는 지역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했어요. 저희는 만석동이라는 가난한 지역에 살고 있지만 다른 곳의 소외되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과도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만든 작품을 판매해서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이 담긴 작품으로 주변 사람들과 연대해서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의미에 기획하게 되었죠.
<목수전> 전시입구와 전시 소개 |
아이들과 목공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면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엄지손가락은 발달하는데 수작업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직접 물성을 느끼면서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보았죠. 그리고 여자 아이들의 경우는 공구를 사용하면서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목수전> 전시를 통해서 주민들과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요.
김) 일단 아이들이 <목수전>을 통해 주체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표현할 수 있던 시간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다른 곳과 연대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기도 하였고, 아울러 지역 어르신들에게도 큰 힘과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8월 7일부터 8월 17일까지 창작집단 <도르리>에서는 아이들이 장기간에 걸쳐 작업했던 목공예 작품을 전시한다.
<나무에 옮긴 내 사진>은 실크스크린을 활용해서 자투리 나무에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각자 바라는 것, 혹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 내 마음속에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을 담았다.
아이들이 직접 제작한 독서책장인 서함이다. 서함 디자인의 핵심부는 다리모양으로, 아이들도 자기가 원하는 다리 모양을 만들었다.
각자 만든 서함 전면에는 깔때기 모양의 주차금지 표지판이 공통으로 그려져 있다.
주차금지 표지판은 공부방 아이들이 자기의 놀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상에서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친숙한 대상이다.
11월에는 <동기>전시를 계획 중이십니다. 전시를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나요?
오) 현재 만석동에 남아있는 집이나, 그전에 살았던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어요. 아직은 주민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지 않았지만, 차츰 만나서 얘기를 나누려 하고 있어요.
김) 제 시선으로만 그림을 그리다가 보니 작업이 점점 힘이 드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한번씩 대화를 시도 하려고 해요.
창작집단 <도르리> 구성원인 오정희(좌), 김성수(우)
만석동에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 저는 강화에서 주로 살다가 20살이 되었을 때 만석동으로 넘어왔고, 현재는 화수동에 살고 있어요. 처음에 만석동에 왔을 때 집이 이쁘다는 인상을 받았고 내가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주민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애착이 생겼었죠. 그런데 제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점차 여러 집들이 제 눈앞에 사라져 가는 것을 목격하였어요. 이러다가 동네가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네의 모습을 그림과 공예품으로 하나씩 기록하게 되었어요.
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만석동에서 살다가 결혼생활을 시작으로 강화로 옮겨가게 되었어요. 그 때 당시의 만석동이 지금의 화수동 모습과 비슷했었죠. 한 공간에서 같이 먹고자는 일을 생활 하는 만큼 정겨운 동네의 모습이었는데, 어느 날 재개발 소식이 들리면서 여러 집들이 없어지고 무너지는 일들이 빈번해졌죠. 동네 친구들이 살던 집이 하나 둘, 씩 사라지고, 만석동에서만 볼 수 있던 집 구조가 없어지게 된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만석동만이 가진 독특한 집의 형태는 무엇인가요?
오) 만석동은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와서 땅을 파고 기둥을 세워 임시로 거처하던 동네였어요. 임시로 활용하던 곳에 집을 덧대서 올렸기 때문에 집이 엄청 작아요. 제가 살던 집도 7평밖에 안되었는데, 그곳에 약 열 명의 식구가 옹기종기 살았었죠. 사다리를 타고 부엌과 다락방을 오고 간 흔적과 벽에 이것저것 덧대다 보니 각기 다른 벽 모양을 갖추고 있어요. 어쨌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가난했지만, 형편이 닿는 만큼 꾸며서 살았던 것 같아요.
김) 저는 만석동의 집을 처음 봤을 때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옛 만석동 주민들의 삶이 집에 반영된 것 같았거든요. 생계를 위해서 굴 껍데기를 까는 일을 많았는데, 그 껍데기를 버리지 않고 빻은 후에 시멘트에 섞어서 집 지을 때 사용했었죠. 벽의 오돌오돌한 질감 자체가 일반 시멘트보다 친숙하게 다가오더라고요. 현재는 이 집(기찻길옆작은학교)이 현재 한 채만 남아 있지만, 옛날에는 벽하나를 두고 여러 개의 집들이 일렬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집 앞에 화분도 색깔별로 놓여 있다 보니까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았죠.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자기 공간을 꾸미고 사는 모습 속에서 사람 냄새가 많이 배어 있는 것 같았어요.
만석동에서 작업할 때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아요.
오) 처음에는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동네를 답사했을 때 빈집과 노인들이 많아져서 동네가 점차 쇠락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김) 곳곳에 드러난 김치공장이나 큰 건물이 마을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정작 주민들에게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어요. 다른 마을 사람들이 그 자리를 활용하고 있으니까 재개발 사업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죠.
<도르리>에서는 만석동만의 독특한 집의 형태를 공예품으로 제작하였다. 사진에서 보여진 집 모형은 초기의 기찻길옆작은학교의 공부방의 모습으로 <동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동네를 바라보는 내부자와 외부자의 시선이 많이 다르게 느껴지네요. 작업을 함께 진행하면서 의견이 부딪힐 때도 있지 않나요?
김) ‘기찻길옆작은학교’에서 제가 학생이였을 때 오정희 선생님은 이모였어요. 저한테는 선생님과 마찬가지죠. 그렇기 때문에 작업할 때 가치관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다만 그림 스타일이 워낙 달라서 힘들었죠(웃음).
오)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인형극을 제작했거든요. 오랜 시간 의견을 조율해서 인형을 만드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도르리에서도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동기>전시를 하기 전에 이전에 <집>이라는 소재로 공예품을 제작하셨어요. 동네를 담아내고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작업 변화의 계기가 있는가요?
김) 개인적으로 혼자 애니메이션을 그렸을 때는 쉽게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근데, 마을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동네에 변화를 줘야겠다 혹은 (재개발을) 막아야겠다는 선동적인 생각으로 작업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제 느끼는 거지만, 큰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는 마을의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작업해요.
오) 결혼하면서 강화로 이사를 갔거든요. 그 전에는 만석동에 살면서 동네 아이들을 마치 제 동생처럼 생각했죠. 강화로 가서 아이를 키우고 다시 만석동으로 오니, 그때 왜 내가 동네를 더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크더라고요. 이제라도 스스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 모형을 만들고 어떤 ‘장면’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도르리>작업실을 어떻게 운영하실 계획이신가요?
문화예술 창작공간답게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려고 해요.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고, 주민들에게도 언제든지 열려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이곳에서 동네가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요.
문화예술 창작공간 <도르리> 입구 |
글/사진 이진솔(정책연구팀)
일시 : 2018.08.9.(목)요일 오후 2시
장소 : 한국근대문학관 3층
주최/주관 : 인천문화재단
사진 시민기자단 민경찬
일시 : 2018.8.11.(토)요일 오후 2시, 오후 5시
장소 :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
주최/주관 :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
사진 시민기자단 민경찬
올여름, 지구 곳곳이 폭염에 시달렸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의 기온은 최고 47도까지 치솟았고, 스웨덴처럼 평균기온이 낮은 북유럽도 연일 30도 이상의 고온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7월 북미 로스앤젤레스시의 최고기온은 48.9도, 텍사스주는 45.5도까지 올랐습니다. 옆 나라 일본도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에서는 사상 최고온도인 41도를 기록하여 살인적인 더위를 실감했죠.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은 온실효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같은 용어가 대중의 뇌리에 자리 잡은 해이기도 합니다. 그해 6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한 과학자는 이산화탄소와 기타 온실가스에 의해 지구온난화가 강화될 거라고 증언합니다.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1면에 ‘지구온난화는 시작됐다’는 기사를 실었고, 기후변화가 처음으로 이슈화됐습니다. NASA 소속 과학자 제임스 핸슨 박사는 소위 ‘기후변화의 선지자’라고 할 수 있죠.
핸슨 박사는 온실효과의 결과로 폭염 같은 극단적인 사태가 올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당시 그는 2017년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이 약 1.03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는데 지난해 실제 기온 상승폭은 0.82도로 그의 예상과 비슷했습니다. 그의 예측이 ‘침울한 이정표’였던 셈이죠. 그는 최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30년 전에 대중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기후변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점”을 후회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출처:연합뉴스
지구온난화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증가하면서 지표면에 도달한 태양열이 우주로 빠져나가지 못해 발생합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보고서에 따르면 1901년부터 2010년까지 지구 평균 해수면은 약 19센티미터 상승했습니다. 연평균 1.7밀리미터씩 올라간 셈인데, 이 추세는 갈수록 빨라져 지난 20년간 연평균 3.2밀리미터씩 높아졌습니다.
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문제는 국가의 존립, 국민의 생존과 연결됩니다. 평균 해발이 2.2미터인 투발루는 매년 해수면이 5밀리미터씩 올라 2060년쯤에는 섬 9개가 모두 물에 잠길 것으로 예상합니다. 투발루 주민 중 일부는 호주, 뉴질랜드 등 주변국에 ‘기후 난민’을 요구하며 이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투발루와 인접한 키리바시/나우루, 몰디브 역시 수몰 위험에 직면해 있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프레온가스 등이 있지만 주범은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입니다. 2010년 기준 전체 온실가스 중 이산화탄소의 비율은 76퍼센트이며 이중 화석연료 연소 및 산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율이 65퍼센트입니다. 2014년 IPCC는 “기후변화의 주원인이 인간이라는 사실은 95퍼센트 확실하다”고 발표하기도 했네요.
출처:뉴스프리존
맨 밑 주황색 부분부터 위쪽으로 화석연료 및 산업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산림 및 기타 토지 이용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프레온가스를 나타낸다. 이산화탄소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온난화 현상으로 말미암은 기후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겨울철 최저기온 상승과 더불어 집중호우도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1920년대에 비해 겨울이 30일 짧아졌고, 봄과 여름은 20일 정도 길어졌습니다. 열대성 외래식물과 병충해는 북한 지역까지 퍼지고 있습니다. 대구, 명태 등 한류 어류가 감소하고 참치, 고등어 등 난류 어류가 증가했으며 사과재배지도 북상해 이제는 백두대간 등의 고산지대에서 고품질의 사과가 나온다고 하네요. 태풍, 가뭄 등 자연재해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고요.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5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 열사병, 탈진, 실신, 경련 등의 온열질환자는 3천4백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세 배 가까이 많아졌습니다. 사망자는 39명으로 지난해의 5배가 넘었죠. 50대는 20퍼센트, 65세 이상이 33퍼센트로 연령대가 높을수록 발병률이 높게 나타납니다.
출처:환경데일리 |
일본에서는 일사병과 열사병으로 125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5만7천여 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산불로 88명이 숨졌습니다.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강풍 때문에 주민들은 불길을 잡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 캘리포니아에서는 자동차에서 시작된 불꽃이 마른 수풀로 옮겨붙어 산불로 번지는 바람에 최소 8명이 숨졌습니다. 40도가 넘는 이상기온이 건조한 바람과 만나 ‘파이어 토네이도’(화염의 회오리 폭풍)라는 기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물과 운하의 나라’ 네덜란드는 물 부족으로 신음합니다. 네덜란드의 7월 강수량은 전국 평균 11밀리미터로, 기상 관측 112년 만에 가장 적은 비가 내렸습니다. 가뭄 탓에 강물이 말라 선박을 이용한 대규모 물류운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폭염 재난이 이제는 유별난 현상이 아닌 ‘흔한 일’이 됐다고 강조합니다. 지난해 4년 만에 처음으로 석탄 수요가 증대됐고 풍력,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에 주는 보조금은 줄어들고 있으며, 투자는 정체됐다는 겁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동시대인이 탄소와 결별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에너지 수요급증을 꼽습니다.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2006년 이후 10년간 에너지 소비량이 40퍼센트 확대됐습니다. 석탄, 천연가스, 석유도 사용량이 늘었고요. 기사는 소비량이 증가할수록 재생에너지보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질 거라고 분석합니다.
재앙 수준으로 확산된 캘리포니아 산불
출처:뉴스프리존
기후변화에 낙관론은 없을까요?
미국 클린턴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Al Gore)는 정계 은퇴 후 환경운동에 전념했습니다. 2006년에 제작한 ‘An Inconvenient Truth’는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여러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필름 상을 수상했습니다. 2017년에 제작한 ‘Inconvenient Sequel: Truth to Power’에서 고어는 홍수와 가뭄 등 지구촌의 기상이변을 알리면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합니다.
기후변화의 문제점을 피력하기 바쁜 여느 시선들과 달리 앨 고어는 긍정적인 움직임을 찾아냅니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화석에너지를 대체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는 인식전환과 전 지구인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지구온난화의 싸움에서 인류가 완전히 패배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TED 동영상 보기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012년 6월 브라질에서 열린 유엔 지속가능발전정상회의는 ‘지구 종말을 피하기 위한 10가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①삼림파괴를 중지하라. ②인구폭발을 억제하라. ③멸종위기의 동식물을 구하라. ④기후변화에 대처하라. ⑤기아를 해결하라. ⑥물 부족 사태를 막아라. ⑦빈곤을 해결하라. ⑧대체에너지를 개발하라. ⑨무한한 자원 보고인 대양을 살리라. ⑩대기오염을 방지하라.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기후변화]폭염·혹한···현실이 된 기후변화 재앙, 지금은 ‘기후붕괴 시대’
뉴스프리존, 2018.8.9(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기후변화에 대한 낙관적 사례
논객닷컴, 2018.8.8(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인류, 기후변화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8.3(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편집국에서]어느 ‘기후변화 선지자’의 회한
경향신문, 2018.8.9(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북극곰 문제가 아니다…‘사람 잡는 기후변화’ 지구촌 전방위 습격
SBS 뉴스, 2018.8.5(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대기자칼럼_기후변화 이상기온
대한뉴스, 2018.8.6(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이미지
이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