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사막이 흐른다

난 사하라에서 왔어 
“난 사하라(Sahara)에서 왔어.” 

새파란 젤라바를 입은 그가 민트티를 홀짝이며 말한다. 

‘사하라 마을에서 왔다고? 그곳에 사람이 살아? 사하라가 어디쯤이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하라에 갈 수 있다고, 아니 사하라에 가야겠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난 사하라에서 왔어.’ 

머릿속에서 그의 말이 내내 맴돈다.

모로코 민트티

여긴 모로코(Morocco) 마라케시(Marrakech)다. 어쩌다 보니,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너무 싼 비행기 표를 우연히 발견한 탓(?)이다. 갑작스럽게 영국에서 모로코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단돈 30유로에 유럽 대륙에서 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온 셈이다. 처음으로 이슬람 국가에 왔다는 호기심과 아프리카 대륙에 왔다는 설렘도 잠시, 마라케시에서 3일 밤을 정신없이 보냈다. 오늘 낮 메디나 시장에서 본 모로코 가죽필통 가격은 10디르함(MAD)에서 180디르함 사이를 오갔다. 아마 떠나는 날까지 가격을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신발은 3일 만에 먼지와 흙으로 뒤범벅이 됐다. 말과 당나귀, 오토바이와 자전거, 자동차와 버스 그리고 사람이 함께 뒤섞였다. 열 걸음을 채 못 가서 ‘어디에서 왔니? (Where are you from?)’라는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차이나? 자포네? 코레?”
“웰컴! 웰컴 투 모로코!”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모두가 “웰컴 웰컴” 하며 외쳤다. 그나저나 난 웰컴이고 뭐고 모로코에 사하라사막이 있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로코에 사하라사막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무턱대고 이곳에 도착한 내 모습이 사실 좀 우습다.

‘그래, 사막에 가는 거야.’

모로코 전통의상인 젤라바를 입고, 머리에는 터번을 두르고, 새하얀 낙타를 탄 채 사막을 유유히 거니는 상상을 한다.

‘그래, 사하라사막에 가는 거야.’

마라케시 거리

분홍 눈과 아틀라스 신
마라케시에서 사하라사막을 가려면 아틀라스(Atlas)산맥을 넘어야 한다. 아틀라스산맥? 뭔가 익숙한 이름인데…. 아, 하늘을 떠받들어야 하는 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의 그 아틀라스 신! 그럼 이곳의 아틀라스 신은 아프리카 대륙을 지고 있어야만 하는 벌을 받은 건가? 지도를 살펴보니 아틀라스산맥은 모로코뿐만 아니라 알제리와 튀니지에 걸쳐 우뚝 솟은 거대한 산맥이다. 아프리카를 길게 가로지른다. 세계 테마기행이나 신화 속에서 봤던 아틀라스와 사하라라는 이름이 무척 낯설다. 이유야 어떻든 곧 이곳에 간다니 가슴이 뛰었다. 며칠 후 새벽에 일찍 버스를 타고 드디어 사하라로 출발했다. 마라케시에서 사하라까지는 여덟 시간 정도 걸린다.

아틀라스산맥

“산맥을 넘을 때 멀미를 할지도 모르니 비닐봉투를 준비하세요.”

고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멀미가 심하게 난다는 이야기와 멀미가 너무 심해서 버스를 멈춰야 했다는 이야기, 기상이 악화되면 버스를 중간에 멈추고 밤을 새워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별의별 이야기를 들으며 버스를 타고 산맥을 서서히 올랐다. 얼마쯤 지났을까? 버스는 어느새 높은 고개에 올라섰다. 그러자 장관이 펼쳐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이하고 광활한 광경이었다. 난 산맥이라 해서 단순히 거대한 산을 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산맥이라기보다 거대한 대륙처럼 느껴졌다. 아틀라스산맥은 상상한 산맥이 아니었다. 아틀라스산맥을 넘는 일은 끝이 보이지 않게 거대한 대륙을 넘고, 지구의 한 부분을 넘는 것이었다.

문득 창밖으로 눈발이 휘날렸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맞는 눈이라니….
그런데 뭔가 낯설다. 주변이 온통 연한 분홍빛이다. 하얀 눈이 아닌 고운 연분홍색 눈이 온 땅을 뒤덮는다. 아틀라스 신이 짊어진 아프리카 대륙의 기운이 강하디강해 눈이 붉게 물든 것일까? 서울에서는 종종 새하얀 눈이 내린 뒤 회색으로 변해 버린 도로의 눈을 보기만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곱디고운 연분홍색으로 뒤덮인 눈을 보니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와 있는 것 같다. 난 어디로 가는 걸까? 분홍빛 눈이 쌓인 신화 속 세상을 넘어가는 상상을 하는 사이 버스는 산맥의 한가운데에 잠시 멈췄다. 아틀라스산맥에서 파는 양고기 바비큐를 사 먹었다. 짭조름한 것이 참 맛있다. 분홍빛 눈과 아틀라스, 양고기, 사하라, 모로코, 이슬람 등 낯선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분홍빛 눈이 쌓인 아틀라스산맥

8시간을 넘어가는 동안 단 한순간도 눈을 감지 않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피곤했는지 졸음이 밀려왔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져 버스는 캄캄한 길을 계속 달렸다. 덜컹거리는 버스에서도 졸음은 쏟아졌다. 분홍빛 눈이 쌓인 아틀라스산맥을 넘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에줄(안녕하세요) 사하라
버스는 밤새 내달려 무사히 사하라의 하실라비드 마을에 도착했다. 사막에도 마을이 있었다. 간밤에는 깜깜해 아무것도 보지 못했기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테라스로 나갔다. 거대한 모래 산이 눈앞에 서 있다. 저 거대한 산이 사막의 일부라고? 사막은 금이 쩍쩍 갈라진 보잘것없는 땅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모래 산은 붉은빛을 뽐내며 당당하게 서 있다. 정말 이곳이 사막인가? 빵과 치즈, 토마토, 오렌지 주스, 달걀 등 모로칸식 아침을 먹으며 거대한 모래 산을 보고 또 본다. 사막을 거니는 사람들이 개미만하다. 저 수많은 모래알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산을 이루다니 정말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나에겐 비장한 첫걸음이지만, 사실 이곳에 사는 베르베르인들에겐 동네 산책하듯 걷는 사하라 사막 산책이다.  사하라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특권이다. 사하라 산책.

하실라비드 사하라사막에서 보이는 거대한 모래산

사하라사막 마을

사막을 걷는다. 발가락뿐만이 아니다. 손, 머리, 눈, 코, 입 … 구석구석 모래가 숨어든다. 처음 본 사막은 출렁출렁 붉은 빛이 넘실댄다. 땅의 여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붉은 사막이 숨 쉬고 춤춘다. 사막은 바다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파도처럼 바스러진다. 난생처음 바다를 걷듯 거대한 모래산에 오른다. 모래 속으로 발이 쑥쑥 빠진다. 파도를 걷고, 바다를 걷고, 구름을 걷고, 하늘을 걷는다. 걷는 법부터 다시 배우며 모래산에 꼭대기에 오르니 온몸에 지구를 머금는다. 나도 모르게 속삭였다.  ‘애줄 사하라(Azul Sahara)!’ (애줄은 모로칸 아닌 사막에 사는 베르베르족(Berber) 인사말이다)

거대한 모래 산에 오르는 나

파도 같은 물결이 새겨진 사하라사막

그 흔한 낙타도 타지 않은 채 하실라비드 사하라사막에서 여러 날을 보냈다. 그저 매일매일 숙소 앞 사막에 맨발로 올라가 뛰어놀았다. 시시각각 물결치는 모래 언덕을 바라봤다. 척박한 땅일 줄 알았던 사막은 아이러니하게 너무나 풍요로웠다. 오늘은 사막에서 수백만 년 전 물고기를 만났다. 베르베르 아이들이 내민 목걸이 속 생명이다. 수백만 년 전 사하라에 살던 물고기는 이제 화석이 된 채 목걸이 안에서 나를 만났다. 물고기가 지나온 영겁의 시간이 아이들과 나를 감싸고 흘렀다. 그들의 운명은 기나긴 시간을 지나왔다. 수백만 년 후 나는 어떤 흔적으로 남을까. 목걸이 속 물고기만한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을까?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수백만 년 시간이다. 사하라는 척박하기는커녕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사하라 마을의 낙타와 아이들

사막을 걸었다. 매일 걸었다. 여기가 정말 사막인가? 아니면 내가 사막의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무엇 때문에 여기 온 걸까.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얻으러 여기 온 걸까.

나는 사막의 이마지겐
난 사하라 사막에서 돌아온 후 사람들에게 사하라사막, 자립형 레지던스를 다녀왔다고 말하곤 한다. 그곳에 머물며 느낀 것을 한국으로 돌아와 작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레지던스를 간다고, 작업을 하러 간다고, 비장한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하라사막은 대자연과 나의 경계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매일 사막을 걸으며 모래알처럼 작아진 나를 발견했다. 사막이 우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막의 모래를 보며 기나긴 우주를 품은 시간을 상상했다. 

우주 같은 사막

사막에서

그저 우연하게 홀연히 간 사하라사막에서 난 3개월 레지던스에 못지않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를 자연스럽게 내 작업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 올해 7월, 세마창고(SeMA)에서 전시한 영상 작업 ‘내 몸에 사막이 흐른다’ 작품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베르베르인을 만났다.
‘고귀한 사람’, 이마지겐(imazighen)이란 불린 이들은
사막과 함께 태어나고 사막과 함께 죽는다.
이들은 말한다. ‘나는 사막이에요. 내 몸에 사막이 흘러요.’
베르베르인의 핏줄 속을 걷듯 이들을 따라 사막을 걷는다.

사막에서 붉은 바다를 보고 맹렬한 모래바람을 맞으며 사막의 숲을 보고 지구의 탄생과 소멸을 느낀다.
매일 사막을 걷자 이마지겐처럼 내 몸에도 사막이 흐른다.
나는 사막을 걸은 게 아니었다.
그곳은 지구 또는 우주,
나는 그 어딘가에 있다.

슈크란(고마워요), 사하라

SeMA 전시 전경

영상 작품 ‘내 몸에 사막이 흐른다’ 중 일부

·사진 이승연

 

이승연(Seung youn LEE)
고대사와 신화, 또는 상상의 극한을 보여 주는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대’라는 재료를 갖고 미래를 얘기한다. 최근에는 물리학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드로잉을 기반으로 철과 나무, 패브릭,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작업한다. 2012년에서 2017년까지 영국인 알렉산더와 ‘더 바이트 백 무브먼트’아티스트 듀오로 활동했다. 당시의 신화적·종교적·사회적 관심은 개인작업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영국 서머싯 하우스, 국립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 문화역 서울 284, 영은 미술관,
켄 파운데이션, 베를린 ZK/U, 등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처럼 영원히 남을 작업을 꿈꾼다.

페이스북:(바로가기▶)




수필문학의 이론과 창작의 접목, 김진섭 『생활인의 철학』

1920년대 잡지 해외문학을 통해 외국문학을 본격 소개한 해외문학파의 한 사람인 청천 김진섭의 두 번째 수필집이다. 독문학을 전공한 김진섭은 번역과 평론을 중심으로 문필활동을 했지만, 수필의 개념과 특징, 의의 등 한국 근대 수필문학의 이론적 토대 구축은 물론 이를 실제 창작으로도 작품화한 수필문학가로서도 독보적이다.
이 책은 일상적이고 신변잡기의 제재나 주제를 중후하고 사색적인, 호흡이 긴 문장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김진섭 수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저자에게 수필가로서 본격적인 지위를 얻게 하고 문명(文名)을 떨치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이 수필집에는 총 32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이 중 21편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신문과 잡지에 쓴 것을 재수록한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진 글은 한국전쟁 후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린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표제작이 된 「생활인의 철학」이다. 장정과 앞뒤 표지 안쪽의 그림을 한 사람이 아닌 송병돈과 김영주 두 사람이 담당했다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매우 독특한 점이다. 1949년 3월 1일 선문사에서 발행된 초판본으로 총 213쪽으로 되어 있다.

·사진 함태영(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박문희 PARK Munhee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올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활동할 2018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뽑혔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연구와 창작활동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창작지원 프로그램과 발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2018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를 소개합니다.

 

박문희는 중앙대학교에서 조소학과를 졸업했다. 송은아트큐브에서 개인전 《미지의 생명체들》(2014)을 개최했으며, 《커버언커버(CoverUncover)》(스페이스K, 2014), 《Summer Love》(송은아트스페이스, 2015)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작가는 오브제가 가지는 사회, 문화, 역사적 의미들을 ‘생명’과 연계하여 인문학적인 해석지점이 만들어지는 것에 주목한다. 시각적 유사성, 혹은 근친 관계로 묶인 사물들의 집합은 상황적인 모습으로 읽히며 다층적인 해석을 가능케 한다. 닮았지만, 생소한 관계로 이루어진 작품 속 사물과 상황들은 생명의 개념과 맞물려 본질적이고 사유적인 접근을 이끌어 낸다.

그녀의 침묵(Her Silence)_Sand on FRP, Furniture, Book, Tableware_147×275×52cm_2015

# Q&A
Q. 창작의 관심사와 내용, 제작 과정에 대하여
A. 
나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들을 사용하여 작품으로 구성한다. 이는 사물 간의 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의미의 지점들을 찾는 행위이자, 조각과 사진으로 어떠한 현상이나 상황을 포착하듯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나의 작업은 평상시에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습관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어떤 것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그것과 관련되어있는 또 다른 객체와의 관계를 생각한다. 세상에 독립된 존재는 없기에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접근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내가 인문학 전반에 관심을 두는 것,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식이 ‘생명’이라는 개념과 연계되어 다양한 해석지점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하고자 한다.

세 개의 진실(Three Truths)_Pigment Print_70×100cm(3ea)_2015

Q. 대표적인 작업 소개
A. 
최근작 <가까운 성스러움(Near Holiness)>이 현재 나의 작업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업에는 나의 작업 개념의 주요한 부분인 인문학적 접근과 가치에 대한 내용이 잘 드러나 있다. 이를 통해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까운 성스러움(Near Holiness)_FRP, Sculptured Decoration, Furniture, Book, Ceramic Ware, Natural Object_217×123×181cm_2018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 등
A. 나는 일상에서 흥미롭게 느끼는 것들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관찰한다. ‘작품’이라는 최종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의식적으로 구성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표현방식과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떠오를 때까지 이러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상생활에서 가능한 다양한 것들에 동시에 관심을 두려 하고 있다.

 
Unrevealed Dinner_FRP, Table, Chandelier, Carpet_92× 215×161 cm_2011   Thomas_Mop, Mixed Media_35×117×87cm_2011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많은 순기능 중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세상을 새롭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역할’이다. 작가관을 구축하고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하는 이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사회적인 활동이며 동시에 주어진 역할에 부합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완성도 있는 작품과 좋은 전시로 관객에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방법(The way to pursue invisible things)_OPEN STUDIO View at Incheon Art Platform_2018

땅 위에서 일어나는 일(Things Happens on the Ground)_Terrarium, Stone, Wood, Grass, Mixed Media_76.5×56.5×55cm_2016
Q. 앞으로의 작가로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하여
A. 한동안 개인전 준비에 집중하느라 외부활동을 미루어왔었다. 내년 있을 개인전을 기점으로 더욱 많은 창작 활동과 발표 기회를 가질 생각이다. 자신의 주관을 이어가면서 제한받지 않는, 다음 신작이 계속해서 기대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도전, 그리고 해냈다!

공연이 드디어 끝났다.
지난 8월 첫째 주 토요일에 신흥동 칠통마당에서 첫 만남이 있은 뒤에 석 달여를 달려온 결과를 어제와 오늘 무대에 올렸다. 연습 과정 내내 참여하며 과연 이 상태로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하며 염려했던 일이 언제였지 싶을 정도로 모두가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며 즐겁고 뿌듯하게 우리의 연습 결과물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2018 인천 시민왈츠 시민창작뮤지컬 <강화, 1866 삼람성 분투기>
©최종규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걸음
이제는 까마득하게 여겨지는 지난봄을 난 참 힘들게 꾸리고 있었다. 웃어도 웃지 않고, 즐거워도 즐겁지 않은. 보통 한 마디로 힘든 시간이었다. ‘우울’이라는 게 딱 달라붙어 새로 시작되는 아침도 반갑지 않고, 늘 반복되는 일상도 버거운 그런 나날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인천문화재단에서 후원하는 시민 창작 뮤지컬 <2018 인천왈츠> 단원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며칠 망설이다 신청했는데, 그 신청했다는 것만으로도 하늘이 달라 보였다. 그리고 토요일 1시면 서둘러 도화동의 공연예술연습공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의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지나고 나면 토요일엔 소파에서 티브이 시청하기가 내 생활이었다. 아이들은 자라 내 손길보다는 관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직장 관계로 가끔 마주하는 남편도 편히 쉬며 내 간섭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힘들다 외롭다는 생각에 퇴근길에 걸어오며 울고, 가족들에게 하소연해도 요즘 말로 1도 달라지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오로지 티브이 앞에서만 내 마음을 달래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토요일의 연습을 기다리며 5일을 보내고 서둘러 간단히 집안일을 마친 뒤 연습실로 가는 내 발길은 날 듯 가벼울 수밖에.

내 이름 석 자가 불리지 않았다.
오늘 공연이 끝나고 우리 모든 인천왈츠 단원들은 저녁을 함께하며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석 달여를 지내며 즐거운 시간도 많았지만, 위기의 순간도 있었고,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잘 헤쳐 온 것을 서로 자축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작년보다 2배 이상 많은 시민이 인천왈츠에 신청했다. 너무 많은 인원이라 스텝 관계자들은 참 난감해했단다. 드라마 팀만 108명이 지원을 해서 두 개조로 나누어 연습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여러 개인적인 이유로 참여를 못 하는 이들도 생겼고, 배역이 정해진 뒤에는 더 많은 인원이 불참했다. 몇 주 동안 기본 동작과 호흡, 발성 등을 익히며 준비하는 과정이 지나고, 간단한 대사와 노래를 통해 배역을 받았는데, 이 배역을 받고 못 받는 시간을 통해 불참하는 인원이 더욱 발생한 것이다. 사실 나도 첫 번째 배역을 발표할 때는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설마 이번에는 부르겠지~ 하며 기다렸지만, 끝내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아 참 서운하고 속상했다. 아니 창피했다. 배역을 정할 거라는 날이 오기 전에 설령 내가 배역을 받지 못하더라도 참여하는 데 의미를 두자고 생각했었다. 코러스나 안무로도 참여할 수 있다 했기에 그렇게라도 끝까지 참여하며 가야겠다고 다짐했던 터였다. 그래서 내 옆에 있던 이에게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교과서에서 접했던 피천득의 ‘소리없는 연주’라는 수필을 떠올리며 우리도 끝까지 가자고 말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참 냉혹했다. 내 이름이 불리지 않으니 그냥 기분이 나빴다.

2018 인천시민왈츠 오리엔테이션
©백지영

11시가 다 되어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참 여러 생각을 했다. 내가 무엇이 부족했지? 노래는 뭐 썩 잘 부르지 못한 것은 인정한다 해도 대사는? 왜 아니지? 그동안 연습 시간에 늦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고, 안무나 몸을 풀고 걷고 구르는 모든 연습을 할 때도 가능하면 앞에 서서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했는데, 왜 나는 선택을 못 받았지? 화가 났다. 조연출에게 연락해서 왜 내가 선택을 못 받은 것인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물어볼까? 버스에서 내린 나는 공원을 걷고 있었다. 운동해서 일단 체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얼마 전부터 시작한 걷기 운동이었다. 그래, 더 열심히 해서 반드시 배역을 받고 말 테다. 나를 처음에 뽑지 않은 것을 분명 후회할 거야.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고 숨겨진 능력도 참 많은데…. 걸음이 빨라질수록 내 생각은 그렇게 굳혀지고 있었다. 그 뒷날부터 쪽대본을 외우기 시작했다. 외워 가면 또 연습하며 지도해 주신대로 익혀 가면 연출 선생님의 눈에 들 거로 생각하고 반드시 그렇게 되고 싶어서 금방 까먹는 대본을 자꾸 읽고 또 읽으며 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토요일이 되니 연습실에 가고 싶지 않았다. 가기 싫었다. 배역이 없으니 내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 내 발걸음을 그냥 집에 앉히려고 했다. 다행히 버스에 올랐고 난 또 어김없이 연습실에 있었다.
지난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8월 첫 주에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난 5월에 결정했던 제주 여행을 예약할 거라는. 아차, 잊고 있었구나! 11월 3, 4일에 제주도로 놀러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 어떡하지? 친구들과의 약속이 선약이었는데 우리 공연은 11월 17, 18일이라 3일에 여행을 가게 되며 연습에 분명 차질이 있을 터였다. 지금은 토요일만 연습하지만, 공연날짜가 가까워지면 일요일은 물론이고 평일까지도 연습하게 될 터인데…. 한 사람이라도 빠지게 되면 연습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고 그게 나라는 것은 나 자신이 받아들이기 싫었다. 망설이다 사실대로 말했다. 결정은 내가 해야 하는데도. 내 말을 들은 친구는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 그 말에 용기를 내고 제주 여행은 못 가겠다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다행히 친구들은 내 공연에 많은 응원을 해주고 축하해주었다.
그날 연습실에는 지난주보다 자리가 좀 더 비어 있었다. 그리고 강화 여인들을 연습할 때 한 자리가 비어 있었고, 출석부를 들여다보시던 연출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 황미경 님! 야호, 내게 드디어 기회가 온 거야.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연습 무대로 나갔다. 열심히, 또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강화 여인들의 대사는 짧았다. 정말 짧았다. 금방 외워도 될 채 10줄도 안 되는 대사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 한 줄 한 줄이 어렵다. 연출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머릿속에서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내 목구멍을 통해 나가는 소리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도 차분하게 열정을 보이시며 원하는 대사를 끌어내려고 이끄셨고 칭찬을 해주셨다. 다른 사람들의 감탄을 들으며 대사를 해내는 이도 있고, 좀 더 연출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이도 있었다. 연습 무대가 아닌 양옆의 자리에서 들으면 쉽게 이해되는 것들이 연습 무대에만 서면 몸이 굳고 혀가 굳었다. 다행히 나 같은 이가 드물게 있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조금씩 연기라는 것을 해내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2018 인천시민왈츠 연습과정
©백지영

되돌리고 싶었던 선택
그런데 우리 연습 과정에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맡은 배역을 충실하게 해내던 단원이 갑자기 개인적인 일로 불참을 선언했고, 그와 같은 상황이 아니어도 연습에서 빠져나가는 인원이 늘어난 것이다. 108명이 출발했는데, 어제오늘 무대에 선 드라마팀 단원은 35명이다. 내가 무대에 선 배역은 강화 여인이 아니다. 시작은 강화 여인이었으나, 포수로 무대에 올랐다. 포수가 5명이 필요했는데, 경상 포수 배역을 맡은 단원이 결석하더니 연락도 없이 대역으로 연습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서로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구멍 난 배역에 대해 걱정을 하는 분위기였다. 공연날짜는 다가오는데 연습은 사람이 없어 못 하게 되는 무척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연출팀에서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하며 애써 조바심을 달래는 터인데, 단원 중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 지원자를 찾는다고 하셨다. 우리 연습 단원 중 최고령자가 노래도 상당히 잘하시고 앞으로 결석할 일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날 마침 자리한 그분께 조심스레 강화 여인에 참여하신다면 내가 경상도 포수로 가겠다고 말을 해버렸다. 물론 그즈음 가까이 지내던 양 장군 부인 역할을 하는 이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다는 그 말과 충동에~ 아, 이것은 정말 실수였다. 함부로 그렇게 내가 경상도 포수를 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날 집에 와서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평소 나도 경상도 사투리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자신하던 터였는데, 막상 연습한 것을 들어보니 아니었다. 이것은 사투리도 뭐도 아니었다. 못하는 거였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해가며 강화 여인에서 내 자리를 굳히고 몸에 붙게 잘해나가고 있다 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일을 크게 저질러 버린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모든 사람이 함께한 자리에서 약속했으니 어떡하든 나는 지켜야 한다. 녹음해 온 경상도 사투리를 듣고 또 듣고, 내가 해야 할 대사를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런데 잘 안 외워진다.
석 달 반을 연습하며 내가 정말 잘한 것이 있다. 공식적인 연습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한 것! 직장 일로 좀 늦게 간 적은 있으나, 모든 연습에 꾸준히 참여했다. 아마 그런 열정 때문에 11월에 연기연습을 위해 연출 선생님이 부르신 석호진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실력이 참으로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깨달으며 달달 외운 사투리로 힘겹게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 내게 석호진 배우님의 지도는 햇살이었다. 오아시스였다. 그때 배운 것을 연습하면서 전날보다 나아졌다는 단원들의 칭찬과 격려를 들을 수 있었고, 공연날에도 떠올리며 연습을 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내 일처럼 격려해주고 이끌어주고 칭찬해준 단원들 덕에 오늘 이렇게 무대에 섰다고 자신한다. 고맙고, 사랑한다, 모두.

<2018 인천시민 왈츠> ‘강화 1866, 삼람성 분투기에서 포수 역할을 맡은 황미경 씨
©노형민 제공

시민과 같이 만드는 인천왈츠
인천왈츠는 대사나 노랫말 등을 단원이 같이 참여할 수 있다. ‘강화 1866, 삼랑성 분투기’라는 제목도 단원들이 지은 것이다. 노랫말도 공모했는데, 극 중 양헌수 아내가 부른 노래는 내가 응모한 노랫말을 바탕으로 거의 80% 이상을 참조하여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 노래는 물론이고, 이 ‘강화 1866, 삼랑성 분투기’에 더욱 애착이 크다. 그리고 처음으로 음악을 듣던 날도 잊을 수가 없다. 큰 기대 없이 들은 노래는 연습을 마치고 나가시는 음악감독님을 붙잡고 이렇게 인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제가 아주 큰 대접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석 달여의 연습을 이어가며 과연 이것을 무대에 올릴 수 있을지 염려했던 우리의 우려보다 더 애태우셨을 여러분들- 극단 집현의 최경희 대표님, 이상희 연출님, 신영길 음악감독님. 그리고 두 시간여를 지하철로 오셨다는 안무 선생님. 그리고 특히 우리 포수들에게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수염을 붙여 멋진 포수로 탈바꿈해주신 분장 선생님 등 손으로 꼽을 수 없는 그 외 여러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참 사진을 찍어주시던 기사님도. 또한 뒤에서 조용히 인천왈츠의 살림을 꾸려나가신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팀의 백지영 님, 마지막으로 석 달여를 함께 달려온 우리 35명의 단원 하나하나를 지독하게 사랑하며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나저나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막을 내렸는데, 앞으로는 어떡하지?^^

2018 인천시민왈츠 연습과정
©백지영

글 황미경(黃美京, Hwang Mikyeong)
현재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재직중
사진 노형민, 최종규, 백지영




너와 나의 이야기, 우리의 노래 <2018 인천시민합창제>

일시 : 2018. 11. 10 (토)요일, 오후 6시
11. 11 (일)요일, 오후 4시
장소 :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
주최 : 인천광역시
주관 : 인천문화재단, 스칼라오페라

사진 시민기자단 민경찬 




걸으면서 기록했던 인천여행…김진선의 <기행> 전시

작가 김진선이 기록한 인천 도보여행기
12월 9일까지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전시 진행

출처: 취재기자 정해랑

누군가 걸으면서 여행하고(紀行) 기록하면서 여행했던(記行) 인천을 한 곳에 담아낸 전시가 개최됐다. 지난 13일 송도 트라이보울 전시실에서 김진선의 전시 ‘기행’이 열린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김진선 작가는 그동안 학교와 회사, 약속장소로만 오갔던 목적지로서의 인천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마주한 소소한 풍경과 재료들을 대상으로 전시를 꾸렸다고 한다. 김 작가는 인천 곳곳을 걷고 머물면서 기록을 했단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쉴 새 없이 교차하던 여행에서 그때의 풍경과 사물을 꼼꼼하게 기록한 것이다. 마침내 한 곳의 분량으로 응축된 기록의 결과물들은 ‘기행’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통해 선보여지며 읽히는 것이 아닌 ‘보여지는’ 기록으로서 표현됐다.

출처: 트라이보울 홈페이지

신진작가 김진선에 대한 정보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시 팸플릿을 통해 김 작가의 약력 정도만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회화를 전공한 김 작가는 최근 몇 년 사이 몇 차례의 수상과 전시를 경험한 바 있다.
팸플릿을 통해 좀 더 김진선 작가에 대한 정보를 수수께끼 풀듯이 하나씩 유추해봤다. 카메라를 메고 힘차게 걷는 여자의 모습은 아마도 김진선 작가이지 않을까 싶다. 내 추측이 맞는다면 김진선 작가는 여자이고 여행기록의 수단은 카메라일 듯싶다. 팸플릿의 전시 소개 글을 통해서 이번 전시를 위한 여행기간은 올해 9월부터 10월까지일 것으로 생각한다.

출처: 취재기자 정해랑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빨간 여행 가방은 바퀴도 닳아 있었고 여기저기 긁힌 흠집도 더러 보였다. 어쩌면 실제로 김진선 작가가 여행할 때 사용한 가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면서 그녀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치고 스쳤을 것이다. 그녀는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긴 것 같다. 걷고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속에 김진선 그녀도 함께 걷고 있지 않았을까?

출처: 취재기자 정해랑

김진선 작가로 추정되는 모습이 그려진 상자들 속에는 무엇을 담으려고 한 것일까?
그녀는 여행하면서 잊고 있었던 것들이 많이 떠올랐다고 한다. 오랫동안 보고 사용해 익숙하지만, 지금은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도구와 표현방식에 눈길이 갔단다. 느리게 오래 걸으며 생각과 느낌을 꾹꾹 눌러 담은 아날로그적인 여행에서 그녀의 기록은 추억을 소환시키는 옛것들로 채워진 듯하다.
수북이 쌓인 상자 위에 그러한 추억의 산물들이 올려 있는 거로 보아 상자 속에는 그녀가 여행하면서 기록물로써 수집한 정겨운 옛 물건들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출처: 취재기자 정해랑

‘인천 뮤직플랫폼’이라 제목의 노래리스트에는 총 12곡이 실려 있었다. 비틀즈가 부른 3번 트랙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를 제외하고는 생소한 가수와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12곡을 모두 찾아 들어봤다. 어쩐지 연식이 느껴지는 노래들은 걸으면서 기분 좋은 사색을 하기에 제격인 느낌들로 가득하다. 하나 같이 잔잔하며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이는 듯한 노래들이다. 이 노래들은 단순한 작가의 취향에서 나온 곡들일까? 인천에 어울릴 만한 곡들을 골라본 그녀의 선별능력에서 나온 곡들일까? 수많은 곡 중에 선별된 12곡의 공통된 사연이 궁금해진다.

정해랑 프리랜서 기자
blog.naver.com/marinboy58
marinboy58@naver.com




새로운 인간상의 발견, <문학이 있는 저녁 세계문학특강 ‘가즈오 이시구로’>

한국근대문학관에서는 매우 많은 특강이 열린다. 요번에 다녀온 <문학이 있는 저녁, 세계문학특강>은 문화평론가이자 출판사 민음사의 편지장 박혜진 씨가 ‘가즈오 이시구로’를 주제로 2차강의를 열었다.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 중 몇몇은 박혜진 씨를 낭만 서점 팟캐스트로 알고 오기도 했다.

나는 중고서점에서 1년간 일을 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점에서 일하면 많이 팔리는 책과 인기 있는 책을 굉장히 빠르게 알 수 있다. 서점에서 일했던 2016년도에는 사람들이 사고파는 책 가운데에서 이름을 보지 못한 작가였다. (당시에는 맨부커상을 받았던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굉장히 유명했다) 책을 읽어보지 않아도 인기 많은 작품에는 그 작가의 특징이나 책의 내용에 대해 쉽게 접할 수 있고, 인기가 많은 만큼 많은 관심이 쏠리게 된다. 나에게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작가였다. 근대문학관에서 나눠주는 작은 간식과 함께 그런 낯선 작가에 대한 특강이 시작되었다.

강사님은 먼저 인천이라는 지역이 본인에게 거리상으로는 멀지만, 문학적으로는 가까이 느껴지는 지역이라며 강의를 시작했다. 소설 ‘아편전쟁’의 배경이기도 하지만, 소설 ‘해가지는 곳으로’ 저자인 최진영 작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인천의 해가 지는 장소를 찾아보기도 했었다고 한다. 강사님은 가즈오 이시구로를 굉창히 좋아하지만, 오늘의 강의는 작가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의 작품을 읽은 이에게는 조금 더 풍성한 이해를 돕고 이제 읽어보려는 이에게는 어떤 작품을 먼저 읽을지 가이드라인을 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먼저 노벨 문학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2017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의 공통점은 새로운 인간상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나 안톤 체호프 같은 경우에도 작은 인간상(이상할 정도로 극도로 소심하거나 한)이 드러나 있다. 언어나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면을 발견하는 것. 가즈오 이시구로는 기억하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을 발견했다. 그 기억은 즐겁거나 아름다운 기억이 아니라 본인이 피하고 싶은 기억이다. 자신에게 불편한 기억을 대면했을 때 외면할 것인가,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내적 갈들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는 표면적인 사건이 크게 일어나지는 않지만, 나 스스로와 계속해서 갈등하는 모습이 그려진다고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최초의 문학창작과 출신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정석 코스를 착착 밟고 온 엘리트 느낌인데, 이는 2016년도 수상자 밥 딜러와는 상반된 느낌을 품고있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감정의 거대한 힘이 있는데, 직설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어떤 감정이 느껴지도록 한다.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내재된 불안을 독특한 판타지 요소로 드러내는 카프카, 일상적인 소재를 이용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정교하고 디테일한 심리 묘사로 풀어내는 제인 오스틴, 기억이나 의식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루스트.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런 유럽문학의 총체적인 합 같다고 덧붙였다. 그의 문학세계는 크게 초기, 중기, 후기순으로 구분되어 강사님은 이 순서대로 강의가 이어졌다. 강의 소제목인 ‘기억하는 인간, 기만하는 인생’이 처음부터 눈에 띄었는데, 그의 작품이 딱 이 한마디의 로그라인으로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주로 한 인간(주인공)이 자신의 기억 중 외면하고 싶은 기억을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면서 어떤 선택과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잊히고 불편하고 왜곡된 기억들을 마주하면서 그 기억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타협하는지를 알려준다. 꼭 모든 인간이 그런 기억들과 용감하게 싸워서 이길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불편한 기억들을 계속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한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접할 예정이라면 ‘남아 있는 나날’이라는 작품을 첫 번째로 추천하셨다. ‘녹턴’이라는 유일한 단편집은 여행 갈 때 들고 가서 잠깐씩 이동하거나 기다리는 시간에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예전에 대학교 문학 수업에서 한 교수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문학의 소재는 고대에서 근, 현대로 올수록 점점 작은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로 바뀐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신에 관한 이야기, 그다음은 신에 버금가는 영웅이나 귀족, 다음은 영웅이나 귀족은 아니지만 능력을 갖춘 사람, 다음은 평범한 사람. 그다음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덜 가지고 있거나, 더 불편하거나 한 사람들의 이야기. 나와 내 곁의 사람들과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쓰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알고 보고 싶지 않은 부분에 대한 글들이 상을 받고 있다. 사회 안의 문제들과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귀 기울이는 글들이 훌륭하다 평을 받는다는 말이 아닐까.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힘든 시련 앞에서 정의롭고 올바른 길을 척척 골라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렵다. 우리는 불편한 문제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고민한다. 어쩌면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외면하거나 주저앉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문제들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것.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이 우리가 사람으로 살면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글·사진 시민기자단 이은솔




[큐레이션 콕콕] 지금, 전자책

책(冊)은 ‘종이를 겹쳐서 한데 꿰맨 물건’입니다. 전자책의 등장으로 책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전자책과 구분하는 ‘종이책’이라는 말이 새롭게 탄생했죠. 디지털 시대에 종이가 디스플레이로 대체되면서 특히 출판과 인쇄 분야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공간 확보와 비용 절감에서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죠. 전자책(e-북)도 그즈음 등장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 기기의 보급과 태블릿의 유행으로 종이가 사라질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전자책 시장이 실패한 것도 아닙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출판시장은 약 3조 163억 원으로 이 중 전자출판은 약 2,310억 원입니다. 전체 시장의 약 7~8% 규모죠. 전자출판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출판 시장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일본은 2016년 1,909억 엔(원화 환산 약 1조 9,314억 원 상당)에서 지난해는 상반기에만 1,029억 엔(원화 환산 약 1조 411억 원 상당)을 벌어들였습니다. 대형 출판사보다 중소 규모나 인디(개인) 출판의 다양하고 독특한 콘텐츠가 주목받았고 전자 만화와 웹툰 등도 시장을 키우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출처: IT동아

우리나라도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웹툰 및 웹소설에 대한 수요 증가와 더불어 저렴한 비용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월정액 무제한 구독 서비스가 하나둘 도입되는 추세입니다.

2009년 전자책 시장에 뛰어든 리디북스는 지난 7월 ‘리디셀렉트’를 출시했습니다. 월 구독료 6,500원을 내면 2,600여 권(출시 초기 1천여 권)의 전자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죠.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면 월 9,900원으로 2만5000여 권의 도서를 무제한 구독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서점 예스24는 구독형 서비스 ‘북클럽’을 9월부터 시범운영 중입니다. 11월 중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는데 도서 큐레이션을 강점으로 내세웠습니다. 교보문고의 전자책 서비스 ‘샘(Sam)’도 월정액 무제한 요금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년 초에 출시된다고 하네요.

 
출처:IT동아   출처:더스쿠프

우리나라 전자책 시장은 규모가 작은 것이 사실이지만 서서히 성장판이 열리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맞춘 콘텐츠(웹툰, 웹소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음성이 추가된 멀티미디어 분야도 덩치를 키워나가는 중입니다.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습니다. 월정액 구독은 일종의 스트리밍 개념으로, 다운로드 받아서 읽는 전자책과 달리 수익 구조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독자가 도서를 어느 정도 읽었을 때 출판사에 수익을 배분할 것인지 등이 업체마다 다릅니다. 유통업체들이 도서정가제를 피해가기 위한 꼼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동안 전자책 유통업체는 10~50년 동안의 장기대여 서비스를 제공해왔습니다. 전자책 판매의 경우 할인율이 15%로 제한되지만, 대여는 유통업체가 가격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전자책 구매 시 8,000원인 도서가 50년 장기 대여 시 3,000원인 경우도 생기는 거죠.

2018년 11월 한시적으로 홍대입구역에 설치된 ‘책 읽는 지하철 전자책 체험관’
출처: 동아일보

전자책은 두 가지 흐름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종이책 출판을 재현하는 전자출판물과 종이책과 관계없이 직접 디지털 콘텐츠로 출판되는 전자출판물이 그것이죠. 최근에는 다음 스토리펀딩이나 브런치(brunch) 등의 웹 콘텐츠가 종이책으로 출간되거나 영화나 드라마로 개발되는 현상도 관찰됩니다.

공병훈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전자출판이 ‘생산과정으로서의 전자출판’과 전자책이라는 좁은 범주에서 벗어나 전자책, 웹툰, 웹소설, 웹진, 웹콘텐츠, 앱북, 멀티미디어 콘텐츠, 오디오북 같은 웹과 모바일 기반의 디지털 콘텐츠 출판을 모두 포함하는 디지털 퍼블리싱(digital publishing)으로 정의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창작자와 저자, 출판사, 서점, 플랫폼 기업, 독자는 스마트 디바이스와 관련 기술을 기반으로 출판 가치 네트워크를 작동해야 합니다. 아울러 정부의 출판 정책은 전자출판의 확장된 범주에 기반해 모두의 활동과 역할을 강화하고 지원한다면 개발 행위자는 관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선순환으로 생태계 전체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구조를 만드는 거죠.

공 교수는 “종이책의 복제와 재현에서 벗어나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를 위한 전반적인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출판생태계를 콘텐츠 산업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지난 십여 년간 실행한 도서정가제의 과실에 대해 분석하고 가치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새로운 정책으로 보완하고 변화시켜야 한다.”고 하네요.

출처: 뉴스페이퍼

지난 9월 미국에서는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75)가 펴낸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가 출간됐습니다. 당시 엄청난 화제를 뿌리며 발간 첫날 75만 부, 1주일 만에 110만 부 판매를 기록했죠. <공포> 한국어판은 12월 중에 리디북스에서 전자책으로 나옵니다. 종이책 출간은 미정이고요. 종이책이 출간되기 전에 전자책이 나오는 것은 드문 경우인데 물리적 제약이 덜한 전자책으로 독자들은 한발 앞서 화제의 신간을 접하게 됩니다.

인천시는 지난해 통합전자도서관 연계 구축작업을 완료했습니다. 군·구립 47개 공공도서관 및 작은 도서관의 통합도서 서비스 회원은 미추홀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언제 어디서든 전자도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18년 1월부터 3만 2천여 점(e-북 31,855/오디오북 224)의 자료를 제공해왔으며 적극적으로 전자 자료를 확대 구입하고 있습니다.

 글 이미지 이재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우리말 톺아보기_‘종이책’과 ‘식빵’
한국일보, 2018.11.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성장 잠재력 품은 국내 전자책 시장, ‘콘텐츠’가 답이다
IT동아, 2018.9.1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공포’’ 한글판, 전자책 먼저
조선일보, 2018.11.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한국 전자책, ‘아마존식 혁명’ 가능할까
더스쿠프, 2018.11.1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오피니언] 디지털 콘텐츠로서의 전자책 생태계를 위한 제언
뉴스페이퍼, 2018.10.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인천시, 통합전자도서관 운영…언제 어디서나 전자책 읽을 수 있다
퀸, 2018.1.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018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강화 1866, 삼랑성 분투기 >

일시 : 2018. 11. 17(토)~18(일)요일 오후 4시
@ 송도 트라이보울
– 총구성 및 연출 : 이상희
– 음악감독 : 신영길
– 드라마두르기 : 김지영
– 협력단체 : 극단 집현
– 출연,연주,제작 : 2018 인천왈츠 시민참가자
주최•주관 인천문화재단

영상 시민기자단 김유라




빛나는 도시의 그림자, 부평 삼릉 줄사택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도시 공간에는 집단의 기억이 머물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상암월드컵경기장을 떠올려 봅시다. 20년 정도 축구경기와 공연과 행사가 무수히 열렸고, 영화관과 마트와 예식장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이 응원하는 팀의 홈구장이고 주말마다 가는 마트이며 사랑하는 부부의 시작점이고 처음 가 본 콘서트장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겪은 집단의 기억은 2002년 독일과의 4강전 무대일 것입니다. 심지어 그때 태어나지 않은 학생에게도 집단의 기억이 전달되어 먼 훗날 상암경기장이 사라져도 일정 기간 이 기억은 유지될 것입니다. 2002년의 서울 광장이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서울광장에 새겨진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가 거리 응원인 것처럼 말이지요.

어떤 오래된 공간은 가끔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중구의 차이나타운과 개항장 문화지구가 꼭 그렇습니다. 작년 여름에 제가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 1편에서 말씀드렸던 상하이처럼 오랜 시간 식민통치의 유산으로 취급돼 주목받지 못하던 조계지의 옛 석조건물들을 문화공간으로 재발견하고 집단의 기억에서 지워진 옛 일본식 주택들에서 개항과 근대화의 기억을 꺼낸 것이죠. 이제 이곳에는 다시금 깨어난 과거의 기억과 그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오늘의 삶이 뒤섞여 더 재미있고 역동적인 공간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대표적인 집단의 기억으로 다른 시간이나 현재마저 잊히기도 합니다. 최근 박물관 건립과 관련하여 의견이 다양하게 오고 가는 부평의 삼릉 줄사택을 보면 어떤 도시 공간에서는 현재가 잊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현재 부평공원 자리에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었고 이 공장은 미쓰비시의 소유였습니다. 그들은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이 거주할 사택을 철길 건너편에 지었고, 이중에 일부가 현재까지 남아 삼릉(三菱, 미쓰비시) 줄사택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식 주택인 ‘나가야(長屋) 형태’로 지어졌는데 옆집 벽을 맞대어 줄줄이 늘어서 짓는 연립주택 형태입니다. 그래서 ‘줄’사택이지요. 현재 가장 크게 남은 곳은 ‘미쓰비시 줄사택 유적지’로 70여 채가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 유적지 외에도 일부 인근에 나가야 형태로 잘게 나뉜 필지들이 몇 군데 더 있고, 오랜 시간 건물의 외면은 변했지만, 당시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부평동 삼릉 줄사택
(출처: 중부일보 바로가기)

현재 줄사택 일부를 보존하며 마을박물관을 짓거나 부족한 주민이용시설을 확충할 공공 마을도서관이나 장난감 대여점 등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너무 낡은 건물이기에 철거하고 새로운 시설을 짓는다는 의견은 기본적으로 일치합니다. 오래되며 낮고 좁은 도시를 높고 넓은 도시로 바꾸는 것.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줄사택은 80년 가까이 된 건축물이므로 보수해 생활하기에 한계가 있고 이미 상당수 집이 비어 있어 철거하는 데 크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도시 공간을 개선해 역사문화공간을 만들거나 재건축, 재개발 과정에서 현재 그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두 잊어지기 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은 세계적인 도시들을 연구하며 독특한 특징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첨단산업이 모여 있고 부유한 사람들이 많은 도시에 역설적으로 가난한 이민자들과 비정규적이고 낮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적인 도시의 대규모 사무실이 밀집한 곳에는 높은 임금을 받는 전문직 종사자들도 많지만 그들이 사무실을 운영하기 위해 경비와 유지보수 및 청소 등 낮은 임금의 임시직 종사자들도 함께 필요로 하게 됩니다. 또 사센은 가정에 있던 많은 여성들이 전문직종에 진출하면서 이전에는 적었던 가사노동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또 다른 도시사회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이런 직종의 종사자들을 ‘불안정한(Precarious)’과 ’노동자(Proletatiat)’를 합쳐 ‘프리케리아트(Precariat)’라 불렀습니다. 마르크스가 단결하자고 했던 노동자 계급보다 프리케리아트는 더 불안정하고 더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근로하고 더 적은 임금을 받습니다. 그래서 주거지역을 선택하는 데 제약을 훨씬 많이 받습니다. 직장과 집이 더욱 가까워야 합니다. 많은 경우 임시직으로 고용되기 때문에 지금 일자리에서 해고돼도 언제든 다른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 대도시에 거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도시 중심일수록 더 비싼 임대료를 내야 합니다. 이런 악조건 때문에 많은 저소득 노동자들은 더 넓고 저렴한 주거를 찾아 교외로 나가지 못하고 도시에서 낡고 오래되고 좁은 주거공간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자가소유는 꿈도 꾸지 못하고 그런 공간을 임차하게 되는 것입니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앞둔 오래된 주택과 상가건물의 옥탑, 반지하, 그리고 쪽방과 고시원 같은 곳 말입니다.

최근 화재사고가 발생한 종로구 국일 고시원
(출처 조선일보 바로가기)

하지만 우리 도시는 계속 이런 공간을 없애고 싶어 합니다. 인천뿐만 아니라 어디나 그렇습니다. 재건축과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낡은 공간을 없애 버리기도 하고 도시재생이나 역사문화공간 만들기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켜 겉모습을 유지한 채 공간 안의 사람들을 바꿔 버리기도 합니다. 한때 광풍과 같았던 뉴타운이 전자라면 연남동·후암동·익선동은 후자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더욱 쾌적한 삶의 공간과 더 좋은 일자리와 더 많은 문화적 경험을 위해 도시 공간에서 계속 낡고 좁은 공간을 지워 버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무조건 잘못된 방법은 아닙니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도시도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워져야 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당연하고 도도한 흐름일 뿐입니다.

다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도시가 부분부분 새로워질 때마다 별다른 방법 없이 밀려나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뉴스에서 재개발에 항의하는 세입자들이나 젠트리피케이션에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고시원과 쪽방과 낡은 재개발 지역 주택의 세입자들이 도시에서 여기저기로 밀려다니는 것을 우리는 대체로 잘 알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얼마 전 또다시 날씨가 추워지자마자 종로 고시원 화재 같은 사고가 벌어지고 나서야 열악한 주거공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정치가나 행정가들은 대책을 마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욱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 공간을 꿈꾸는 동안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도시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빛이 닿지 않은 도시의 그늘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글 김윤환(도시공간 연구자)

[참고문헌]

데이비드 하비(2014). 반란의 도시. 에이도스
사스키아 사센(2016). 세계경제와 도시. 푸른 길
“인천 부평구 미쓰비시 줄사택 박물관 조성 사업 표류”. 중부일보. 2018. 11. 11.
“’강제동원 흔적’ 미쓰비시 줄사택, 구청장 공약사업의 전쟁터 됐나”. 인천일보. 2018.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