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다른 시각, <아버지 제르몽>

동인천역에서 500여 미터, 10분 정도 걸었을까? 인천기독병원 앞에 있는 ‘플레이캠퍼스’에 도착했다. 플레이캠퍼스는 이전에는 ‘돌체소극장’이었던 곳으로 1978년에 개관한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공연장이다. 약 5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오페라 공연이라니, 나는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공연장에 들어섰다.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대기실
©김지연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은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각색한 작품이다. 우리에게는 <춘희>라는 제목으로 익숙한 <라 트라비아타>는 프랑스 소설가 알렉산드뒤마 (Alexandre Dumas)가 1848년에 쓴 소설 <동백꽃 부인>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원제를 ‘춘희’로 번역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사실 뒤마 자신과 그가 흠모했던 여인 마리 뒤플레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였는데, 당시 이 소설은 굉장한 인기를 얻었고 그 여세를 몰아 1852년에는 희곡으로 각색되어 연극으로 무대에 올랐다. 연극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당시 연극을 관람한 베르디는 이 희곡을 바탕으로 4주 만에 <라 트라비아타>를 작곡했다고 한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자주인공 비올레타의 슬픈 사랑이야기로 1막은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만남과 사랑, 2막은 비올레타와 아버지 제르몽의 갈등 및 알프레도의 오해, 3막은 죽음을 맞이하는 비올레타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제르몽과 알프레도의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은 ‘라 트라비아타’의 3막중 2막의 중간쯤인 비올레타의 집에서 아버지 제르몽과 비올레타가 만나는 장면으로 1막이 시작된다.

<라 트라비아타>가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보여 준다면, <아버지 제르몽>은 기성세대이자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대표하는 제르몽과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젊은 여성 비올레타 사이에 나타난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제르몽 입장에서는 파리에서 정부로 살아왔던 비올레타가 아들 알프레도를 기둥서방 삼아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찰 리 없었고, 더군다나 딸이 좋지 않은 소문으로 인해 파혼당할 위기에 놓여있어 핑계로라도 아들 곁을 떠나기를 간절하게 바랄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비올레타는 사랑만을 믿고 모든 것을 포기한 상황에서 쉽게 알프레도를 떠날 수 없었지만, 사랑하는 이의 동생이 본인으로 인해 손해를 입을까 봐 엄청난 고뇌에 빠지는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하였다. 고민을 반복하다 결국 사랑하는 이를 위해 다시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비올레타의 모습을 보며, 그때 당시 여성에게 요구되는 희생과 사회적인 편견들이 느껴진다. 물론 비올레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렇게만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던 것은 여성에게 강압적이었던 사회 분위기에 내몰려진 결정이 아니었을까?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
길오페라 제공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음악들로 제르몽과 비올레타의 갈등을 더욱 와닿게 하는 동시에, 비극적인 결말을 예측할 수 있도록 했다. 바리톤의 제르몽이 무게감을 잘 잡아주고, 소프라노인 비올레타가 화려한 기교로 소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피아노 반주만으로도 소극장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1막 2장에서 비올레타가 편지를 쓰면서 불렀던 곡 ‘Sempre Libera(언제나 자유로워)’ 였다. 곡을 들으면서 비올레타의 성격을 잘 표현하는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사랑하는 이를 두고 돌아서면서 자유를 갈망하는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무대
© 김지연

오페라 <아버지 제르몽>은 피아노와 막의 장소를 짐작할 수 있는 가구 하나만이 무대에 배치되었다. 소극장의 무대가 이보다 크고 화려했다면 시선이 분산되었을 것이다. 극에 필요한 장치만을 설치하므로 배우의 연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거기에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실력이 더해져 공연 마지막까지 관객에게 몰입도 높은 무대를 선사하였다.

보통 사람들이 오페라 장르에 대해 어렵고 지루하게 여긴다. 하지만 한 편의 음악극인 오페라를 관람하기 전에 줄거리와 제작 배경을 파악하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연극과 뮤지컬에 대한 대중의 선호가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오페라는 여전히 낯선 장르이다. 이번 기회에 내 주변에서 가까이 하는 오페라 공연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글 · 사진/ 김지연 시민기자단




어쩌면, 우리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인문학이 있는 저녁-죽음 소멸이 아닌, 옮겨감> 강의 4주차 [자살에 대한 담론 1]

인문학 강의안내

한국근대문학관 전경

2019년, 한국근대문학관의 첫 인문학 강의가 개최되었다. 바로 3월 13일부터 시작 된 <인문학이 있는 저녁 – 죽음, 소멸이 아닌, 옮겨감>이다. 이번 인문학 강의는 5월 8일까지 매주 수요일에 개최되며 총 8회에 걸쳐 무료로 진행된다.

前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정현채 선생님의 강의로 진행되는 이번 인문학 강의는, 어쩌면 우리가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죽음’과 관련된 사후세계, 자살, 안락사와 같은 다소 무겁지만 한번 쯤은 누구나 고민해봐야 할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강의 사진

특히, 이번 4주 차와 5주 차에 대한 주제인 ‘자살에 대한 담론’은 이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더불어, 안타깝고 슬픈 탄식이 공존하는 오묘한 공기가 흘렀다. 어쩌면 자살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우리들에겐 너무 ‘낯선 존재’로만 느껴왔기 때문일까?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는 자살문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알아가는 좋은 강의였다.

강의 사진

인문학이라는 게 무엇인가? 쉽게 말해 주로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고찰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이번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강의는 어찌 보면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원초적인 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이번 4회차 강의는 ‘자살’이라는 가슴 아픈 ‘죽음’으로 인해 자살 유가족이 겪는 아픔, 유명인들의 죽음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베르테르”효과 같은 내용을 강의자가 다양한 (영화, 언론보도, TV 프로그램) 매체를 통해 직접 강의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은 물론이며, 타인의 자살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이야기도 진중하게 풀어내고 있다. 즉, 이번 강의를 통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헤아릴 줄 아는 자세, 나아가 자살징조를 보이는 우리들 주변의 이웃들에게 작은 온정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이번 인문학 강의는 5월 8일까지 매주 수요일에 한국근대문학관 3층에서 진행된다. 이번 4~5회차 강의인 ‘자살에 대한 담론’ 외에도 안락사와 같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관점과 의견이 공존하는 주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강의가 예정되어 있다.

글 · 사진/ 임중빈 시민기자




문화가 있는날 <공연산책> 2019 트라이보울 시리즈
-비바 브라스-

기 간 : 2019. 3. 27
시 간 : 20:00
@ 트라이보울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예술공간 트라이보울

영상 장유하 시민기자단




내가 만난 ‘빠빠라기(하늘을 찢고 온 사람)’

완벽한 인공도시

“이렇게 멋진 집에서 산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너무 행복해요!”
“꿈을 드디어 이루었어요”

거대한 스크린에선 행복에 흠뻑 취한 사람들이 계속 등장한다. 이들에게 세상은 완벽하고 아름답다. 꿈꾸던 행복을 금방이라도 잡을 것만 같다. 집을 구경하라며 여기저기서 웃으며 손짓하는 사람들을 지나 일단 화장실로 도망친다.
이곳은 조호바루(Johor Bahru)의 포리스트 시티(Forest City)다. 포리스트 시티?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땐 숲이 가득한 자연 친화적인 에코 도시로 생각했다. 오늘 아침 머물고 있던 마사이 지역에서 그랩(말레이시아 콜택시)을 타고 40분을 달려 포리스트 시티에 도착했다. 기대를 안고 중앙 건물로 들어선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로비에 설치된 도시 모형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아파트와 콘도가 즐비하다. 게다가 여러 건물엔 새빨간 SOLD OUT 스티커가 붙었다. 물론 거대한 아파트와 콘도가 들어선 도시 모습이 낯선 건 아니다.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는 한국 신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설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리스트 시티’의 도시계획은 규모부터 남다르다. 아니 도시 계획이라기보단 마치 새로운 국가 건설처럼 느껴진다. 촘촘하게 들어선 높디높은 건물들, 쇼핑몰, 국제학교, 그리고 도시 조경까지 완벽하게 계획된 모습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이 건설된 땅조차 거대한 바다를 메워 만들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말레이시아 조호 술탄은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으로 바다를 메꿔 아파트와 콘도, 빌라 등 새로운 고급 주거지역을 건설하고 이를 외국인에게 팔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아파트 가격은 평범한 말레이인들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비싸다. 물론 많은 말레이인이 이에 반대했었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자기 나라에 들어와 자신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호화 아파트를 짓고 이들만의 삶을 따로 건설해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에는 이들이 조호바루에 돈을 투자해 경제가 활성화되는 걸 환영하는 사람들도 많다.

‘포리스트 시티’ 도시 모형

포리스트 시티 아파트들

‘포리스트 시티’의 가장 큰 고객은 중국인이다. 중국계 말레이인이 아닌 중국본토에서 온 중국인들이다. 한국인들도 10% 정도 된다고 한다. 이곳에는 국제학교도 많다. 방금 구경한 모델하우스는 더욱 이상하다. 부엌에는 플라스틱 음식 모형에 인조 꽃,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머물며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수입 토마토 깡통 수프, 이태리 요리책이 펼쳐져 있다. 테이블 장식 또한 굉장히 가식적이다. 테이블엔 묵직한 접시 중 냅킨, 양초와 꽃병이 놓여져있고 물론 포크와 나이트가 함께 세팅되어있다. 더욱더 놀라운 건 ‘포리스트 시티’에선 집을 살 때 모델하우스에 전시된 소파, 티비, 세탁기, 장식장 등 모든 가구를 함께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는 사람들은 각자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 오면 된다. 번거롭게 가구를 사고 집을 가꾸는 데 노력을 하는 대신 돈만 내면 편하게 모델 하우스 같은 집에 들어가 살게 되는 것이다.

 
조호바루에 건설되는 신도시 모델 하우스 장식 중

누군가에 의해 완벽하게 설계된, 완벽하게 장식된 곳에서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산다고 상상하니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이건 초호화 감옥이 아닌가. 누군가 만들어준 공간에 편하게 몸만 들어가 서 살면 되는 곳,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수많은 아시아인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 씁쓸했다.
‘포리스트 시티’는 말레이시아지만 싱가포르에서 얼마나 가까운지 끊임없이 광고한다. 말레이시아보다 싱가포르가 훨씬 커다랗게 그려진 지도에선 이곳이 싱가포르인지 말레이시아인지 헷갈린다. 또한 ‘포레스트 시티는 싱가포르보다 얼마나 저렴하게 집을 살 수 있는지 끊임없이 광고한다. 도대체 이곳 사람들은 왜 이렇게 싱가포르에 집착할까? 조호바루를 단지 싱가포르에 붙어있는 도시로밖에 말할 수 없는 걸까? 그뿐만 아니라, 이곳엔 국제학교가 있어 아이들 교육에도 적합하다며 아이를 둔 가족들을 유혹한다. 나로선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수많은 광고를 보며 도대체 이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호바루의 정체성이 무엇일지 의문이 들었다. 한편으론 아시아인들의 서구를 향한 왜곡된 열망을 적나라하게 보는 듯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도대체 서구 문명이란 무엇이길래 말레이시아인들에겐 어색한 나이프와 포크, 이태리 요리책과 토마토 캔으로 우스꽝스럽게 집을 장식해야 하는지, 왜 국제학교에 이토록 목을 매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일하고 놀아야 하는지, 무엇이 과연 올바른 가치인지, 수많은 감정이 오고 갔다.

싱가포르가 훨씬 커다랗게 그려진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지도

한편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 한가운데서도 이렇게 예쁜 집을 내 취향대로 가꾸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는 내 모습도 있었다. 이곳이라면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좋은 집을 저렴하게 살 뿐만 아니라 풍요롭고 여유롭게 지낼 수 있으니 마음이 흔들린다. 무엇보다 집 가격이 한국보다 너무나 저렴했고 광고처럼 싱가포르까지 40km, 30분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가 무척 매력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끊임없이 소리치는 것처럼 싱가폴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널찍하고 조용한 조호바로에 집을 짓고 사는 상상을 하니 또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수많은 감정이 휘몰아치는 반나절을 보내고 나니 배가 너무 고팠다. 결국 우리나라의 수제비 같은 미 훈 꾸웨(mee hun kueh)를 허겁지겁 먹고 배탈이 나버렸다.
기이하고 완벽한 인공도시, 내가 느낀 포리스트 시티의 모습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타박만 하기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안락한 삶의 욕망을 무의미하게 넘겨버릴 수 없다. 포리스트 시티에서 서구 문명을 향한 아시아인의 욕망을 마주하니 작년 겨울 모로코(Morocco) 북부 물레이 이드레스(Moulay Idris) 에서 만난 한 영국 여인이 떠오른다.

모로코에서 만난 붉은 머리 영국여인

모로코 물레이 이드레스에서 만난 중년의 붉은 머리 영국 여인, 그녀는 모로코를 사랑했다. 그녀는 물레 이드레스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곳이라 끝없이 찬양했다. 물론 물레 이드레스로 가는 길은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할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나 순수하다니…? 이들의 거칠지만 천진할 정도로 뻔뻔한 모습, 다른 면의 순수함(?)을 이야기 하는 건가?
숙소에서 처음 만난 그녀와 점심을 함께 하기로 하고 카페로 갔다. 그녀는 모로코 남자들만 앉아 있던 카페에서 혼자 나를 기다렸다. 그곳에 있던 유일한 백인 여자이다. 물론 이슬람인이 아닌 그녀가 카페에 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슬람 남자들만 있는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며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이곳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레이 이드레스로 향하는 길목

물레이 이드레스 골목 길

그녀는 모로코 사람들이 너무나 순수하며 도시가 자유로운 영혼으로 가득 차 있다고 거듭 말했다. 자신이 조금만 젊었다면 이곳의 남자와 데이트를 했을 거라 아쉬워했다. 하긴 영국에서 짧지 않은 유학 생활을 보내고 여러 유럽인과 작업을 하며 만나 온 그들을 생각하니 그녀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난 종종 영국인들의 친절을 퍼포먼스형 친절이라 놀리곤 했다. 사람들 앞에선 맛이 없어도 맛있는 척, 반갑지 않아도 반가운 척, 원하지 않아도 원하는 척,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엔 이 모든 걸 거추장스러워하는, 다 내려놓고 편하게 지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회적 압박감이 있다고 느꼈다. 물론 모든 사회에서 공공예절이란 게 있지만, 특히나 영국에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예의 바르고 유머러스하고 어색하지 않게 끊임없이 대화를 유도하는 사람이어야 된다는 부담이 크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이런 그들이 모로코에선 완전히 다른 상황에 마주한다. 사람들은 대놓고 보이는 거짓말을 하며 대가를 바란다. 열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귀찮을 정도로 정도로 말을 시킨다. 동시에 친절하게 짐을 들어주고 택시 잡는 걸 도와준다. 이국적인 음식이 넘치고 쓰레기는 사방에 널려있다. 당나귀와 사람, 오토바이가 함께 섞여 다닌다. 거리는 거칠고 시끄럽고 온갖 냄새로 진동한다. 그러나 동시에 눈이 부시게 찬란한 자연을 보며 이곳이 순수하고 자유롭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처음엔 거친 모로코 거리가 매우 설렜다.

아름다운 물레이 이드레스 풍경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난 답답하고 불편해졌다. 그녀는 모로코가 더 발전되지 않고(그녀의 말에 따르면 망가지지 않고) 이 순수한 풍경을 계속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왜? 왜 많은 모로코인이 오래된 집을 좀 더 현대적으로 고치면 안되는거지? 왜 더는 항구가 생기면 안 되는 거지? 어린 아이들이 종일 길에 앉아 물건을 팔지 않아도 되고, 더 관광객들에게 처절하리만큼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나라로 변모해야 하는 거 아닌가? 좀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좀 더 국제적인 매너를 갖춘 현대화된 모로코는 왜 안 되는 거지? 모로코도 가난을 벗어나고 발전해 나가야 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그녀는 영국인이지만 프랑스어를 잘 구사하고 유럽의 여러 문화를 즐겨왔다. 깨끗한 집에 살며, 좋은 음식을 먹는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멋있게 산다. 물론 몇 달씩 일을 안 하고 모로코에서 지내도 될 만큼 여유롭기도 하다. 그녀는 유럽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모로코에선 또 유럽과는 다른 순수하고 거친 자유를 맛 보고 싶어 한다. 그녀에게 모로코는 유럽처럼 국제적으로 발전되어서도 안 되고 , 항구에 무역항이 생겨 바다를 망가트려서도 안 되고, 있는 그대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아니 지금보다 더 순수했던 십여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모로코 남자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평소보다 비싼 가격을 주고 음식을 먹었다. 그녀는 친절한 그들에게 계속 고마워했다. 외로워 보였고 내 마음은 쓸쓸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처음으로 버스를 탔다. 한 시간 여 만에 도착한 버스엔 사람들이 아귀다툼으로 몰려들었다. 난 그들 사이에 껴서 거의 압사당할 뻔했다. 심지어 버스에는 모두가 다 앉아서 갈 수 있을만큼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왜 이렇게 아수라장이 되어야 하는지, 왜 이렇게 밀쳐야만하고 왜 모든게 어수선해야만 하는지..매일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상상하니 가슴이 답답해 터질것 같았다.

물레이 이드레스에서 탄 버스안

“이곳은 ‘문명화’ 되지 않아 순수하네.”
중국을 여행한 프랑스 친구가 농담처럼 했던 말이다.
“우와 여기는 꽤 문명화됐는걸?”

역시 태국을 여행한 영국 친구가 한 말이다. 난 그들이 이런 식으로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이야기할 때마다 버럭 화를 냈었다. 그러나 모로코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난 이들의 뻔뻔한 거짓말에 지쳤고 아수라장이 된 거리 모습을 보며 ‘문명화’란 단어에 어느 정도 공감하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잘못된 걸까? 단지 문화 차이인 걸까? 문명, 문명화(Civilization)란 과연 뭘까? 과연 적절한 단어일까? 문명화란 단어를 생각하다 보니 시간은 이제 지난겨울에 다녀온 말레이시아 말라카로 넘어간다.

아름다웠던 물레 이드레스 풍경을 걸으며

말라카의 식민주의 그림자

말라카에선 길을 걷는 게 즐겁다. 오래된 유럽식 건물에 쓰인 한자가 꽤 이국적이다. 붉은 등 아래를 장만옥이 유유히 걸어오는 상상에 빠진다. 유럽의 뒷골목을 걷는 듯, 차이나타운을 걷는 듯, 그저 길을 걷는 게 즐겁다.

말라카 거리를 걸으며

붉은 등이 걸린 말라카 거리

말라카를 칭하는 수많은 수식어 중 ‘아시아 최초의 유럽 식민지’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16세기부터 시작된 포르투갈 침입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다시 일본까지 400여 년에 이르는 식민역사를 보고 있자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이 때문에 말라카가 유명한 관광도시가 된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전 세계에서 이 침략의 흔적(?)을 찾아 말라카를 방문한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통치 시절 유적들은 인기 있는 관광상품이다. 포르투갈인들이 지은 성곽 ‘에이 파모사(A’ Famosa)’와, 세인트 폴 성당, 그리고 네덜란드 광장엔 항상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포르투갈인들이 처음 말라카에 들어오고 나서 그 후에 네덜란드인과 전투를 하고 또 영국인들이 들어와 어떤 일이 일어났고,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이 들어오고 또 어떤 일이 생겼고…수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많은 사람이 말라카를 침략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일본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들이 어떤 건축물을 남겼고, 어떤 일을 했고, 말라카가 왜 전략적 요충지일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한다. 궁금했다. 기나긴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말레이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몇 세대를 거쳐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이들의 삶, 이들의 독립운동 이야기는 찾기 힘들 걸까?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실감이 안 가는 건가? 종교적 관용으로, 혹은 용서의 마음으로 모든걸 잊은 걸까?

포르트갈인들이 지은 성곽 에이 파모사

1511년에 지어진 에이 파모사 성 앞에서

영국 식민지배 시절 시작된 바바뇨냐(BaBa NyoNya) 문화가 관광상품의 하나로 주목받는 점도 흥미롭다. 뇨냐는 중국인과 결혼한 말레이 여성을 칭하는 말로 중국 남성과 말레이 여성의 결합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중국과 말레이 전통이 오묘하게 결합한 의상, 중국과 말레이 음식이 변형된 뇨냐음식은 매우 인기다. 독립운동가의 박물관은 찾기 힘들지만 바바뇨냐 박물관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처음엔 중국인 남성과 말레이 여성이 결혼해 만든 문화가 뭐가 그리 특별한 건가?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의아했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만들어진 건 영국이 통치하던 시기였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당시에 이슬람이 국교가 아니었기에 말레이 여성이 중국인과 결혼해도 이슬람 전통을 따를 필요가 없었다. 현재 독립된 말레이시아에선 중국 남성이 말레이 여성과 결혼하면 이슬람으로 개종을 해야 한다. 말레이 여성이 이슬람을 포기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종교가 두 인종 간의 결합을 막는 셈이다. 지금 현존하는 바바뇨냐들은 아마 몇십년 후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뇨냐 여성은 말레이 여성이지만 이슬람인이 아니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뇨냐 음식을 만들고 타이트한 뇨냐 전통 의상을 입는다. 이들의 문화가 앞으로 몇십년 후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하니 아쉬웠다. 아이러니하게 말레이시아는 식민시절에 더 자유롭고 풍요로웠다고 하면 큰 오해일까?

노냐 음식을 팔던 레스토랑

인형사이즈로 만든 뇨냐 의상

빠빠라기는 누구일까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로와 모로코의 물레 이드리스, 그리고 다시 말레이시아 말라카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빠빠라기(하늘을 찢고 온 사람)’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빠빠라기’는 남태평양 사모아 제도의 투이아비 추장이 유럽을 방문하고 돌아와 원주민들에게 백인 문명에 관해 이야기한 책이다. ‘빠빠라기’는 추장이 만난 백인을 칭한다. 오래전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던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부터 흰 돛배를 타고 도착한 백인들이 투이아비 추장에겐 마치 ‘하늘을 찢고 온 사람’처럼 보인 것이다. 그는 서양문명에 대해 경이감을 느꼈다기보다는 오히려 환멸과 분노를 느꼈다.

21세기를 사는 나는 과연 문명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사모아 제도의 투이아비 추장처럼 내가 사는 문명에 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번 겨울 조호바로의 포리스트 시티를 둘러보며 아시아인들의 서구사회를 향한 왜곡된 열망이 가득 찬 모습을 마주했다. 거대한 자본으로 포레스트 시티를 사들이고 세계 곳곳에 투자하는 중국인의 모습, 그러나 마냥 비판만 하기엔 내 마음 깊은 곳엔 나 역시 안락한 삶을 원하는 욕망을 숨길 수 없었다. 포리스트 시티의 거대한 자본에서 난 빠빠라기의 모습을 보았다. 모로코 물레이드레스에서 만난 붉은 머리 영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순수 문명이란 무엇인지, 과연 순수한 문명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오래전 하늘을 찢고 사모아 섬에 도착한 빠빠라기처럼 모로코가 티 없이 순수하다고 예찬하는 그녀는 어쩌면 모로코인들에게 빠빠라기 일지 모른다. 물론 말레이시아 말라카를 침략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인들은 그 시절 말레이인들에겐 빠빠라기였다. 그러나 여전히 식민시대의 흔적이 관광 상품화되어 전 세계 관광객을 맞이하는 말라카엔 그 시절 빠빠라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사모아 섬의 추장 투이아비가 본다면 그의 눈에는 우리가 또 하나의 빠빠라기로 비치지 않을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이미 빠빠라기가 되고 말았다.

나는 지난 2년간 틈틈이 지구 반바퀴를 둘러보았다. 사하라와 애틀란스 산맥 같은 대자연을 넘나들며 느낀 대자연과 인간의 경계, 이슬람 국가 모로코에서 난생처음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고민한 문명의 경계, 인도네시아 발리와 다민족 국가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며 느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통해 아시아인으로 느낀 21세기 문명과 문명화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변화하는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21세기의 보통 사람의 모습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는 곧 21세기 모던 아이덴티티, 그리고 역사적으로 예술가에게 주어진 가장 오래된 질문, 나는 누구인가, 곧 당신은 누구인가에 관한 나의 작업이기도 하다.

‘다른 원주민들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어린아이처럼 그저 감각과 순간 속에서 살고 있을 때 사모아의 추장 투이아비는 맑은 이성의 눈으로 자연과 인간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었다. 선교사를 통해 빠빠라기(백인, 문명인)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았고, 성년이 되어 빠빠라기들의 나라를 직접 보고 돌아온 추이아비 추장은 원주민 동포를 향해 그 이상한 나라 이야기를 시작했다’

-<빠빠라기>(투이아비 저) 중에서-

이승연, ‘모로코에서 만난 영국여인의 초상’, 150x150cm, 2018
모로코에 다녀와서 만든 타피스트리1

그녀의 눈에 가난하고 어지러운 모로코는 순수, 그 자체로 보인다. 그녀는 모로코가 변화 발전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모로코에 와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기로 변신했다.

이승연,’놈모의 여왕’,150x150cm, 2018
모로코에 다녀와 만든 타피스트리 작품2

아프리카의 신 놈모과 유럽여왕이 만났다. 모로코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위성 안테나는 유럽을 향한다. 아프리카는 뒤처졌고 유럽은 앞섰을까? 놈모는 아프리카의 도곤족에 등장하는 우주에서 온 신이다.

글/ 이승연
사진/ 저기요 스튜디오

이승연(Seung youn LEE)
고대사와 신화, 또는 상상의 극한을 보여 주는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고대’라는 재료를 갖고 미래를 얘기한다. 최근에는 물리학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드로잉을 기반으로 철과 나무, 패브릭,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작업한다. 2012년에서 2017년까지 영국인 알렉산더와 ‘더 바이트 백 무브먼트’ 아티스트 듀오로 활동했다. 당시의 신화적·종교적·사회적 관심은 개인작업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영국 서머싯 하우스, 국립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 문화역서울 284, 영은 미술관, 켄 파운데이션, 베를린 ZK/U, 등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처럼 영원히 남을 작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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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콕콕] 몰래카메라

지난 2월에 개봉한 영화 ‘CCTV:은밀한 시선’은 몰래카메라를 소재로 합니다. 숙박 앱으로 예약한 저택에 놀러 간 커플을 누군가 CCTV로 지켜봅니다. 예고편 카피가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에서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로 바뀌면서 몰카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아찔한 충격을 줍니다.

1990년대 후반, 경기도 인근 모텔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브라운관TV의 화면조절 스위치를 뜯어 소형 카메라를 설치한 뒤 손님들의 사적인 행위를 녹화했습니다. 손님 대부분은 입막음용으로 거액을 내놓았지만, 협박을 받은 노부부가 경찰에 신고했고, 범죄가 들통났죠. 범인들은 ‘촬영’ 때문이 아닌 ‘돈을 뜯어낸 죄’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비밀촬영이 죄가 되지 않았거든요.

1997년, 신촌의 한 백화점은 여자 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여성 고객을 잠재적 절도자로 상정하고 비밀리에 촬영해 범인을 잡으려고 한 겁니다. 이 일은 언론에 알려졌고 불매운동이 벌어져 백화점은 문을 닫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몰카 처벌죄가 도입됐죠.

 
콘센트와 전자기기에 부착된 초소형카메라
출처:그린포스트코리아

모텔 객실 등에 카메라를 설치, 투숙객 천6백여 명의 사생활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 일당이 최근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들은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영남, 충청의 10개 도시 30개 숙박업소를 돌며 셋톱박스, 콘센트, 헤어드라이어 거치대 등에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촬영 영상을 유료사이트에 실시간 중계하는 방법으로 약 700만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는데요, 경찰은 숙박업소의 TV셋톱박스, 콘센트, 스피커 등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거나 불필요하게 전원 플러그가 꽂혀 있지는 않은지 살피라고 조언합니다.

클럽 버닝썬 사건이 화제입니다. 몰래카메라, 그중에서도 ‘리벤지 포르노’가 이슈인데, 리벤지 포르노는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하기 위해 유포하는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 콘텐츠’를 뜻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고 그로 말미암아 피해를 보는 여성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몰카가 문제인데도 처벌과 대응 수준은 미미합니다. 유포된 사진과 영상을 삭제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디지털 장의사’, ‘인터넷 장의사’ 등 생소한 직업까지 생겼습니다.

인터넷에서 판매 중인 위장형 카메라들
출처:대학내일

흔히 데이터를 삭제하면 촬영 증거를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디지털 포렌식을 거치면 압수된 저장장치의 데이터를 대부분 복구할 수 있습니다. 입증이 쉬워진 카메라등이용촬영죄에 대한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을 들어보시죠.

Q. 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어떤 경우에 해당하나요?
A. 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카메라나 그 밖의 유사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신체를 촬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는 ‘카메라나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Q. 몰래 촬영을 한 뒤 저장하지 않고 바로 종료해도 카메라등이용촬영죄가 성립하나요?
A. 카메라 등 기계장치로 동영상 촬영을 하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영상정보가 기계장치 내 주기억장치 등에 입력됩니다. 파일 저장 전이라도 카메라의 촬영 버튼을 누르면 임시저장장치에 영상정보가 입력되므로 범죄가 성립한다는 판례가 있습니다.

Q. 휴대전화에 저장된 것을 지우거나 휴대전화를 부순다면 카메라등이용촬영죄를 입증하기 어렵지 않나요?
A. 검찰은 2008년 10월부터 ‘디지털포렌식센터’에서 증거물 감정과 감식을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포렌식을 거치면 데이터가 대부분 복구됩니다.

Q. 남이 찍은 촬영물을 유포하기만 해도 처벌을 받나요?
A. 불법촬영 범죄는 촬영에 의한 피해뿐 아니라 이를 유포한 데서 생기는 고통도 큽니다. 촬영물을 유포하기만 해도 죄책이나 비난 가능성은 촬영 행위 못지않게 크다고 할 수 있죠. 대법원도 단순 유포자와 촬영자가 동일하게 처벌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Q. ‘동의’하에 촬영했으나, 마음대로 ‘유포’한 경우는요?
A. 연인 사이의 경우 합의하에 성관계 영상을 촬영했지만 헤어진 뒤 유포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때 유포자는 ‘동의하에 찍은 영상을 유포한 것이므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촬영 당시 합의가 있었더라도 사후에 마음대로 촬영물을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출처:대학내일

‘몰카포비아’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더욱 심각한 공포로 다가오는데요, 여전히 불법 촬영된 사진과 동영상이 온라인 공간에 유포돼 남성들의 눈요깃감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몰카로 말미암아 사생활이 노출되고 위협받는 것은 인격을 침해당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잠깐. 몰래카메라와 불법촬영은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예능프로그램 등에서의 몰래카메라(몰카)를 선의의 특수한 목적으로 시행하는 비범죄 행위로 표현합니다. 사전에는 ‘촬영을 당하는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르는 상태로 촬영하는 카메라’로 정의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범죄 행위 여부를 구별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사건’으로 표현되는 요즘의 촬영은 엄연한 범죄 행위입니다. ‘몰카’보다 ‘불법촬영’에 가까운 것이죠.

노인일자리와 연계한 ‘몰카단속반’
출처: 한국시민기자협회

공공화장실 몰카에 대한 여성들의 걱정을 줄이기 위해 어르신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인천 부평구를 비롯해 부산 중구, 광주 서구 등에서 ‘몰카단속반’을 운영하는데요, 노인 일자리와 연계해 1석2조의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인천 부평구는 지난 3월 노인 50명을 선발해 ‘몰카제로사업단’을 꾸렸고, 이들은 지하철 역사와 공공기관 건물 등을 돌며 몰래카메라 유무를 점검합니다.

맨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환기구, 화장실 문, 비데, 화재경보기, 스위치 주변 등에 전파탐지형·램프탐지형 첨단장비를 활용하고 징후가 발견되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합니다. 전파탐지형 장비로 신호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해도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렌즈 탐지형 장비로 이곳저곳을 점검합니다.

인천 남동구는 지난달 구월동 길병원 내 공중화장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몰카 단속’을 펼쳤습니다. 구는 길병원 방문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본관과 응급센터, 여성센터 건물에 있는 공중화장실 50여 곳을 확인했습니다. 구는 지난해부터 지역 내 공중화장실 몰카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며 차후에는 범위를 민간화장실로 확대해 안전한 환경 조성을 위해 힘쓸 계획입니다.

인천 부평구 몰카제로사업단이 여성 화장실에 설치된 불법 카메라를 단속하는 모습
출처 : 백세시대

글·이미지/ 이재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설왕설래] 몰래카메라
세계일보, 2019.3.24 (자세한 내용 보기▶)
2. 끊임없는 ‘몰래카메라’ 논란, 이대로 괜찮은가
시빅뉴스, 2019.3.27. (자세한 내용 보기▶)
3. 불법촬영과 몰래카메라의 차이… 김제동 “몰카 아냐, 엄연한 불법”
국민일보, 2019.3.14. (자세한 내용 보기▶)
4. 실시간 중계까지… ‘모텔 몰래카메라’의 섬뜩한 진화
그린포스트코리아, 2019.3.20. (자세한 내용 보기▶)
5. [형사전문변호사의 이야기] 몰래카메라, 디지털포렌식으로 범죄 혐의 입증될까
농업경제신문, 2019.3.12. (자세한 내용 보기▶)
6. [이동성 법률칼럼] 내가 허락하지 않은 또 다른 시선, 몰래카메라에 대한 오해와 진실
경남연합일보, 2019.3.14. (자세한 내용 보기▶)
7. 인천 부평구, 부산 중구 등 노인 단속반 “화장실 몰래카메라 꼼짝마!”… 어르신들, 단속 나섰다
백세시대, 2019.2.21. (자세한 내용 보기▶)
8. ‘몰카공화국’이 되었는가?
경북매일, 2019.3.25. (자세한 내용 보기▶)




자유공원에서의 단상(斷想)

다시 봄이 왔습니다. 자유공원을 걷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저의 일터인 인천문화재단은 응봉산 자락 자유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동장군이 물러가고 봄이 찾아온 요즈음, 저는 점심 식사 후 운동 겸해서 종종 자유공원에 오를 때가 있습니다. 아직은 다소 쌀쌀한 바람도 불고, 미세먼지의 심술궂은 방해도 있지만 그래도 봄날 자유공원의 풍경은 한가롭고 편안합니다.

공원 여기저기 모여서 담소와 장기로 시간을 보내시는 어르신들, 점심시간 잠시 짬을 내어 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유를 갖는 주변 직장인들, 손 꼭 잡고 데이트를 즐기는 다정한 연인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외국인 관광객들까지….자유공원을 찾으면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그런 일상의 모습에서 저는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요새 찾은 자유공원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자유공원이 가진 역사적 배경과 관계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올해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3.1운동으로 우리 민족이 독립을 당장 성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3.1운동이라는 전민족적 항거를 통해 독립의 의지를 더욱 결집할 수 있었고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독립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국내외 곳곳에서 임시정부가 설립되었습니다.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대한국민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한 임시정부 중 한성정부가 있습니다. 한성정부가 중요한 것은 당시 한반도 내에 수립된 유일한 임시정부였다는 것입니다. 1919년 4월 23일 수립된 한성정부는 그해 9월 수립되는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구심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성정부는 인천 특히, 자유공원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성정부 수립을 위한 13도 대표자 대회가 개최된 곳이 만국공원, 바로 지금의 자유공원이기 때문입니다. 13도 대표자들은 1919년 4월 2일 만국공원에 모여 임시정부의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이후 4월 23일 서울 국민대회에서 한성정부의 수립이 선포되었죠.

우리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모체가 되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한성정부 계승을 통해 통합 임시정부가 되었고, 한성정부가 태동한 곳이 바로 만국공원 즉, 오늘날의 자유공원인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현장인 자유공원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올해에는 평소보다 더 의미 깊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자유공원은 100년 전 민족적 에너지의 결집이 이루어진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우국지사들은 민족의 앞날을 고민했고, 임시정부의 수립을 통해 3.1운동의 기운을 이어가려고 했습니다. 자유공원은 독립을 위한 민족의 통합을 상징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인천시민들에게도 자유공원의 역사적 의미를 알릴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유공원이 과연 통합의 공간일까요?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유공원은 통합의 공간보다는 갈등과 분열의 공간으로 더 기억되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로 갈린 우리 사회 갈등의 표본이었습니다.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에 얽힌 문제 때문입니다.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하자는 쪽과 동상을 지키자는 쪽의 대립은 자유공원에서 실제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동상에 불을 지르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각자 나름의 이유는 있겠죠. 우리 근현대사의 갈등과 아픔, 특히 6.25라는 커다란 비극이 얽힌 복잡한 문제입니다. 간단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100년 전 통합의 공간이었던 곳이 오늘날에는 분열의 공간이 되었다는 것은 저의 마음 한편을 아프게 합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은 올해, 자유공원이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평화의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저는 점심시간 자유공원을 걷습니다. 여기저기 일상의 모습들은 여전합니다. 멀리 보이는 월미도의 풍경도 아름답습니다. 맥아더 장군 동상 앞을 지납니다. 동상은 말없이 서 있습니다. 제목은 ‘단상(斷想)’이라고 했는데 생각이 길고 복잡해졌네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글 · 사진/ 안홍민(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권도연 GWON Doyeon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올해 한 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창작활동을 펼쳐나갈 2019년도 10기 입주 예술가를 소개합니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는 공모로 선정된 국내외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창작 역량 강화를 위해 비평 및 연구 프로그램, 창·제작 발표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시각과 공연분야에서 활동하는 10기 입주 예술가의 창작과정과 작업세계를 공개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권도연은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사진을 이용해 지식과 기억, 시각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를 탐색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섬광기억》(갤러리룩스, 서울, 2018), 《고고학》(KT&G 상상마당, 서울, 2015), 《애송이의 여행》(류가헌, 서울, 2011)이 있으며, 미국 포토페스트비엔날레, 스페인 포토에스파냐 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고은사진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1년의 사진비평상을 비롯하여 대구사진비엔날레(2014), 제7회 KT&G SKOPF 올해의 최종 작가(2015년), 영국 브리티시 저널 오브 포토그라피의 ‘Ones to watch’(2016), 미국 포토페스트 비엔날레(2018) 등에서 수상 및 선정되었다. 

The Megaphone Project_creating a wireless and embodied network of sound games_2007~present

Q. 창작의 관심사와 내용, 제작 과정에 대하여
A.
  사진을 이용해 지식과 기억, 시각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를 탐색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작업한 작업들로 나의 창작과정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첫 작업 <애송이의 여행>은 종이가 접힐 때마다 새로운 면을 만들어 다른 사물로 탄생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종이가 지니게 된 접힌 자국들을 통해 사물의 존재 방식에 대해 탐색하려 했다. 더불어 나의 또 다른 작업 <개념어 사전>에서는 파주의 폐도서 처리장에 수거한 사전을 수집하여, 책 안의 글자와 삽화를 드러내어 촬영한 후, 개념어와 연관된 나만의 시각적인 사전을 만들기도 했다. 이 작업을 통해 한정된 대상에 대한 시각적 사유가 확장되는 즐거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또한 <고고학> 연작은 작은 삽을 들고 동네의 개들과 땅을 파고, 발견한 사물들을 촬영한 작업이다. 사물의 효용성에는 무심하지만, 그 효용성을 제외한 다른 가능성을 살펴보는 데에 집중했다. 버려짐으로써 더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 사물들을 새롭게 호명하는 일이 나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능이 퇴화한 대상을 붙잡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다. 대상이 도구의 용도로 파악될 때, 그 사물은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도구의 존재감을 눈앞에서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은 그 도구가 망가졌을 때뿐이다. 나는 도구의 방식으로 눈앞에서 사라진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사진은 눈앞에 없는 것을 위한 ‘존재의 증명’ 이기 때문이다.

 
고고학 #4_Pigment Print_105x135cm_2015    고고학 #9_Pigment Print_105x135cm_2015 

열 살 무렵 서울을 떠나 경기도 변두리의 신도시로 이주했다. 새로 이사한 도시에는 또래 아이들이 없어서 주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동네의 헌책방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청소년기에 문학과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1860~1904)의 단편소설들을 좋아했다. 이 시절의 독서 경험들이 지금까지 작업하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다.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이 이유는 무엇인가?
A. 두 가지 작업을 이야기하고 싶다. 먼저 <고고학 (2015)> 작업은 작은 삽을 구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삽을 들고 동네의 개들과 함께 작업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고고학자가 된 것처럼 진지하게 땅을 파고, 발견한 사물들을 테이블에 놓고 관찰하며 사진으로 촬영하였다. 주택가 땅 밑에는 스티로폼과 컴퓨터 부품, 캔 등 고만고만한 생활의 흔적들이 묻혀 있었다. 때로는 땅 위에서 말라비틀어진 무나 지우개 따위를 덤으로 얻기도 했다. 나는 문학을 전공한 자신이 사진을 찍고 있듯이 지우개의 운명은 꼭 지우기 위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질문이 생겼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단단하게 고정된 의미의 통념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일은 나 스스로 그리고 사진가의 임무라는 생각을 한다.

 
개념어 사전 – 11월_Pigment print_105x105cm_2014   개념어 사전 – 연보_Pigment print_105x105cm_2014 

두 번째 작업 <여진>은 어떤 풍경이나 장면 혹은 책을 볼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인상적인 여진들이 남는다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이 여진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으로 남기도 하고, 분명한 인상을 받았지만 바쁜 일상에 묻혀 사라져 버릴 때도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마음속 깊이 머물러 있다가 불현듯 어떤 계기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가는 선을 따라 그려지고 다시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마음속의 인상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어떤 이의 모습이나 거리의 풍경, 책 속의 구절들, 이것은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다가오고 인상을 남기며, 또 지워지는 것일까? 분주한 일상 속에 어떻게 스며들고, 스스로 존재하며 머무는 것일까? 나는 이런 문제들을 항상 생각하고 있다.

고고학 #생각의 여름_5분 5초_비디오 도큐멘테이션_2015 (참고 : https://vimeo.com/187106904)

Q. 인천아트플랫폼에 머물며 진행할 작업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인천시 서구에 위치한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생태계교란종의 이미지를 채집하고 구성할 예정이다. 본 작업은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1908~2009)가 말한 ‘원격접사(遠隔接寫)’, 즉 거리를 둘 때 오히려 가까워진다는 언명에서 촉발하여 아라뱃길의 공간과 생물을 지정학적이고 생태학적 관계를 사진으로 재구성하려 한다. 이 작업의 배경은 3년 전 결혼을 해서 기존에 쓰던 작업실을 정리하고 일산에 신혼집을 얻는 것에서 시작했다.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진 나는 집 근처의 북한산에서 일주일에 4~5일 정도는 산으로 들어가 풀과 나무의 동태를 살피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생태계 교란 동식물을 발견하고 흥미를 느껴 조사하게 되었다. 
 
《섬광기억》 전시전경_갤러리룩스_2018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 등
A. 단편소설들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문학은 내 삶에서 실제로 겪는 경험과 동떨어진 느낌이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에서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1903~1975)의 사진집을 보게 되었다. 나는 묘한 기분에 빠졌다. 문학이 아직껏 체험한 일이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익숙함, 즉 기시감을 심어 주었다면 에반스의 사진은 분명 익숙한 피사체인데도 처음 보는 사물인 것 같은 미시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의 사진을 보며 처음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이미지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진이 나의 현실과 나의 내면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광기억 5_Pigment Print_105x140cm_2018   섬광기억 #3_Pigment Print_120x190cm_2018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에게 시각적인 것은 다른 것보다 친숙하고 쉽게 다가온다. 사진은 언제나 한결같이 내 삶의 기쁨과 고통 속에서도 함께 해왔다. 사진은 내 속의 열정과 사랑을 이차원의 형태로 소유하는 방법이다. 내가 가진 생의 감정을 이차원의 무언가로 전환하여 공유한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다. 만약 내가 사진을 하지 않았다면 살면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나는 내 작업이 보편적으로 보이는 것을 원한다. 만약 내 작업이 전부 개인적인 기억에 관한 것이라면 누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물론 작업 중에는 주관적인 기억들을 담은 사진들도 있지만, 그것들이 객관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로 읽히길 원하고, 보는 이의 마음속에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길 바란다.

섬광기억 #1_Pigment Print_120x190cm_2017

Q. 앞으로의 작가로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하여
A. 사진을 하며 어려웠던 일 중 하나는 학교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정의하는 글을 쓰도록 강요당하는 일이었다. 나는 작업에 대해 어떤 답이나 결론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열린 태도로 질문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디에 있든 그곳에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과 질문들이 보이기 시작한 사진은 그 순간에 서 내가 바라보고 생각하던 것, 그 전체를 포함하는 풍경을 담고 있다.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문화예술정책동향

<인천>
인천시/재단 주요정책 · 사업

인천시, ‘강화·옹진’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 확정…사업비 2조 5천억 반영[02.07.]
인천시는 접경지역인 강화·옹진의 지속가능한 발전 청사진(「정주여건 개선 사업」에 폐교 활용 문화재생(강화) 등)이 포함된 “접경지역 발전 종합계획”이 접경지역 정책심의위원회에서 확정됐다고 7일 밝혔다.

인천문화재단, 2019 인천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구축 지원사업 공모 [02.08.]
인천문화재단·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2019년 ‘인천 지역문화예술교육 기획 지원’과 ‘인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업 운영단체(기관)를 공모한다.

“인천 예술인을 위한 복지정책 추진해야” [02.14.]
인천연구원은 2018년 기획연구과제로 수행한 “인천 예술인 복지플랜: 예술인 실태조사 및 복지정책”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인천 문화·관광, 소통과 융합 정책 시행해야”[02.20.]
인천시의 주요 현안 업무토론 시리즈의 두 번째인 문화・관광 분야 토론이 20일 틈 문화창작지대에서 진행됐다.

인천시, 「천개의 문화 오아시스」조성 지원사업 공모 추진[02.21.]
인천시가 ‘천개의 문화 오아시스’ 2년차 사업을 개시한다.

인천시, 동북아 평화번영의 중심이 되다…협력기금 2022년까지 100억원 확충[02.26.]
2차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 한반도 평화 번영의 시대를 준비하며, 인천시(시장 박남춘)는 인천의 남북교류 사업을 추진한다고 26일 밝혔다.

인천문화재단 대표에 최병국씨…재단 혁신위 가동[02.26.]
인천문화재단 신임 대표이사에 최병국(62) 인천아트플랫폼 관장이 임명됐다.

인천문화재단 혁신위 첫 회의 … 위원장에 조인권 문화체육국장[02.27.]
인천문화재단의 새틀을 짜기 위한 재단 혁신위원회가 26일 첫 걸음을 뗐다.
인천문화재단 혁신위, 이사장을 선출직으로 변경 검토[03.12.]

 

영상·콘텐츠

“인천을 영상문화도시로”…박남춘 시장·영화인 한자리에[02.13.]
박남춘 인천시장이 인천의 문화콘텐츠 산업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국내 영화계 주요 인사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화시설·공간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인천 송도에 7월 착공…2021년 개관[02.12.]
전 세계 문자자료를 수집·전시하고 연구할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올해 7월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착공한다.

인천 계양 산성박물관, 올 상반기 개관 앞둬… “전시 유물 구입한다” [02.20.]
올해 상반기 개관을 앞둔 ‘계양 산성박물관’이 전시 유물을 사들일 예정이라고 20일 밝혔다.

수개월 지연 ‘국립 인천해양박물관 건립’ 좌초 위기[02.25.]
수개월째 지연됐던 국립 인천해양박물관 건립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3월 초 판가름날지 관심이다.

인천 연수구, 송도3공구 대표도서관 건립부지 토지매매계약 체결[02.25.]
인천 연수구(구청장 고남석)가 송도3공구(115-2번지) 연수구 대표도서관 건립을 위해 25일 토지소유자인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NSIC)와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인천 송도에 ‘오페라하우스·뮤지엄’ 건립 시동[02.27.]
인천 경제자유구역청이 오늘(2/27)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와 송도국제도시에 `오페라하우스`와 `뮤지엄`을 건립하는 `아트센터 2단계 사업`에 대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역사·문화

인하대 정외과, 인천개성 역사 문화 교류 추진[02.11.]
사단법인 대한사랑(大韓史郞)이 오는 19일 개최되는 전국 역사광복 전진대회에서 인하대 정외과의 남북 역사학술교류를 적극 후원하겠다고 발표할 예정이다.

중구, 독립운동 역사문화콘텐츠 개발 첫발[02.14.]
인천 중구는 지난 13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독립운동 역사문화콘텐츠 개발 연구용역”의 착수보고회 개최했다.

 

지역·문화

인천 중구시, 김구 선생의 발자취 기억하는 김구 역사 거리조성[02.09.]
인천시 중구가 백범 김구 선생이 인천에 남긴 발자취를 기억한다는 취지에서 인천 감리서 터를 중심으로 ‘김구 역사 거리’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인천 서구, 문화충전소 곳곳에 설치 생활문화도시 조성 본격화[02.11.]
인천 서구는 올해 공모를 통해 문화충전소를 거점별로 5곳을 설치하는 등 오는 2022년까지 문화충전소 100곳을 설치해 서구를 생활문화도시로 조성할 예정이라고 11일 밝혔다.

인천 남동구, 2019년도 문화예술활동 지원 신청 안내 실시[02.18.]
인천 남동구(구청장 이강호)는 문화예술단체 및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지역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2019년 문화예술활동 지원신청을 받고 있다고 18일 전했다.

부평 중소기업 근로자들도 문화있는 삶[02.19.]
부평구문화재단은 부평구 관내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증빙자료 제출 시 30%할인을 받을 수 있는 ‘중소기업할인’을 올해부터 실시한다.

인천 부평구문화재단, 음악융합도시 조성사업 협력 MOU 체결[02.19.]
18일 구에 따르면 최근 부평구문화재단이 부평지하상가발전협의회와 ‘대중음악 생태계 형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인천 연수구, 문화재단 설립 타당성 용역 중간보고 및 주민공청회 열어[02.21.]
인천 연수구(구청장 고남석)가 지난 20일 오후 2시 청학문화센터 청학아트홀에서 ‘연수구 문화재단 설립 타당성 검토 용역’ 중간보고회 및 주민 공청회를 열었다고 21일 밝혔다.

중국 전통문화공연단 인천 미추홀구 방문[02.26.]
인천 미추홀구는 대규모 중국 문화예술 공연단이 3월4일 구를 방문하여 다양한 공연을 선보인다고 26일 밝혔다.

동구 100년 역사·문화 다큐로 만난다[02.27.]
인천시 동구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인천 3·1 만세 운동의 발상지인 인천창영초등학교와 동구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인천 동구, 백년을 잇다’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한다고 26일 밝혔다.

인천 서구, 예술단 신임 지휘자 예술감독 위촉[02.27.]
인천서구문화재단(이사장 이재현)이 서구 대표예술단으로 자리매김한 서구립예술단의 역량을 높이고 활성화를 도모해 서구민과 함께하는 예술단으로 거듭 나고자 지휘자와 예술 감독을 새로이 위촉했다고 27일 밝혔다.

신동욱 부평문화원 이사, 8대 원장으로 추대 선출[02.28.]
인천부평문화원은 2월 25일 열린 ‘부평문화원 2019년 정기총회’에서 신동욱 이사가 제8대 부평문화원장으로 추대 선출됐다고 28일 밝혔다.

 

기타

학생교육문화회관과 국립인천대학교 예술체육대학 MOU 체결[02.01.]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은 1일 오전 11시 국립인천대학교 예술체육대학과 문화예술 교육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식을 체결했다.

인천문예회관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 업무협약[02.07.]
인천문화예술회관(관장·안인호)은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점장·김선민)과 최근 회관 귀빈실에서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6일 밝혔다.  

부평풍물대축제, 문화부 지역대표 공연예술‘ 6년 연속 선정[02.15.]
인천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은 부평풍물대축제가 문화체육관광부의 2019년 지역대표 공연예술제에 선정됐다. 6년 연속 선정이다.

조복순 연수문화원장, 8대 인천시문화원연합회장 당선[02.25.]
조복순 연수문화원장이 지난 22일 인천시문화원연합회(회의실)에서 열린 제20차 정기총회에서 인천광역시문화원연합회 제8대 연합회장에 당선됐다.

대중음악자료원, 인천으로[02.25.]
한국대중음악자료원을 인천에 설립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전국>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 결과 발표[02.11.]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이하 문체부)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문화향수 수요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2018년 문화향수실태조사’ 결과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원장 직무대행 김향자)과 함께 발표했다.

미술품 소비 활성화를 위한 세제개선 시행[02.12.]
정부는 미술품 소비 활성화를 위해 2월 12일(화)부터 기업이 미술품을 구입하는 경우의 손금산입* 한도를 인상하고, 문화접대비** 범위에 미술품 구입비용을 추가하는 세제 개선안을 시행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 지역과 일상에서 누리는 문화예술교육[02.18.]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이하 문체부)는 ‘2019년 창의예술교육 연구소(랩)’ 지원 사업을 공모한 결과, ▲ 강원도, ▲ 대전광역시, ▲ 대구광역시, ▲ 부산광역시, ▲ 제주특별자치도 등, 총 5곳을 지원 대상 지자체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2018년 아트페어 평가 결과 발표[02.18.]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이하 문체부)는 ‘2019년 창의예술교육 연구소(랩)’ 지원 사업을 공모한 결과, ▲ 강원도, ▲ 대전광역시, ▲ 대구광역시, ▲ 부산광역시, ▲ 제주특별자치도 등, 총 5곳을 지원 대상 지자체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511, 국가기념일로 제정[02.19.]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이하 문체부)는 2월 19일(화) 국무회의에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심의·의결됨에 따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5월 11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다고 밝혔다. 

지역의 삶을 담는 문화적 도시재생 확대 추진[02.20.]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이하 문체부)는 2월 20일(수)부터 3월 19일(화)까지 ‘2019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 공모’를 진행한다.

무지개다리로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잇는다[02.20.]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이하 문체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 이하 예술위)와 함께 이주민·탈북민·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화 주체들과 지역문화기관들이 참여하는 ‘무지개다리 사업’을 추진한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지난 100년의 발자취, 새로운 100년의 시작을 함께 축하[02.21.]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이하 문체부)는 한국방송공사(사장 양승동)와 함께 2월 28일(목) 오후 6시 30분부터 천안 독립기념관(겨레의 큰마당)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야제를 개최한다. 

문체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1명 위촉[02.21.]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는 2월 21일(목) 이희경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강사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음악 분야)으로 위촉했다. 이번에 선임된 위원은 비상임이며, 임기는 2년(’19. 2. 21.~’21. 2. 20.)이다.

정동극장 이사장에 김병석 씨 임명[02.22.]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이하 문체부)는 2월 22일(금) 자로 정동극장 이사장에 김병석 씨를 임명했다. 신임 이사장의 임기는 2019년 2월 22일부터 2022년 2월 21일까지 3년이다.

세대와 차이를 넘어 인생을 나눌 친구를 찾습니다[02.26.]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 이하 문체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 이하 위원회)와 함께 3월 26일(화)까지(지역별 일정 상이) 2019년도 인생나눔교실에 함께할 ‘멘토봉사단’을 공개 모집한다.

 

<추천자료>

2017 문화예술정책백서 [문화체육관광부]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 [문화체육관광부]

2018 공연예술실태조사(2017년 기준) 보고서 [예술경영지원센터]

2018 미술시장실태조사(2017년 기준) 보고서 [예술경영지원센터]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 고시 [예술경영지원센터]

2019 공연예술 트렌드 조사 보고서 [예술경영지원센터]

문화 분야 법제 정비를 위한 기초 연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인천형 예술인 복지플랜 [인천연구원]

한국대중음악자료원 설립에 관한 기초연구[인천연구원]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정책포럼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화정책> 자료집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우리 모두의 꿈틀거림을 위해

작가 오연호의 <새로운 100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출처]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봄기운이 서서히 찾아드는 3월 14일 저녁, 인천시민문화대학 하늬바람 봄 특강으로 작가이자 오마이뉴스 대표 그리고 꿈틀리 인생학교의 교사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오연호의 <새로운 100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가 진행되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새로운 100년이 보다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바라며 본 강연을 기획하였다는 작가. ‘나를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할 때 행복사회가 온다.’는 삶의 철학이 담긴 강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김지인

‘왜 하필 덴마크인가?’
오연호 작가는 덴마크 사회에 푹 빠져, 수 없이 덴마크를 방문하고 그들 사회에서 우리가 배울 점을 찾고 돌아왔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뽑힌 나라가 바로 덴마크라고 한다. 덴마크를 비롯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행복지수 세계 1위를 앞다투어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유럽 국가들은 왜 행복한가? 그 비결은 바로 ‘내가 행복하려면 내 주변도 행복해야 한다.’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삶의 철학이다.
행복국가 덴마크에는 2가지 징표가 있다고 한다. 학생들은 어릴 때의 밝은 표정이 고삼 때까지도 이어지고, 어른들은 일하는 주중에도 쉬는 주말에도 항상 행복한 것이 바로 그것.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오연호 작가는 덴마크의 행복 키워드를 ‘자유/안정/평등/신뢰/이웃/환경​’이라고 요약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이 평범하고 당연한 키워드들이 사회에 진정으로 정착되어 행복한 국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 김지인

‘스스로 선택하니 즐겁다!’
덴마크의 숲 유치원에는 유치원에서 생활하는 시간 동안 어떤 프로그램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영수 위주의 선행은 금지되며, 아이들 스스로 놀이를 만들고 함께 부딪히면서 그 속에서 자유롭게 성장해 나간다. 만들어지고 주어진 것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자율적으로 성장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이미 우리나라 옛 시골 공동체에서 익히 보던 모습이다(심지어 그때는 선생님조차도 없었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가치 있던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 아닐까?
스스로 선택하니 즐겁다는 말, 참으로 당연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당연한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해야 하는 의무들이 넘쳐나고, 스스로 즐겁게 선택하는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들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잠시도 돌아볼 여유 없이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다. 작가가 전한 ‘오늘도 내 삶이 아닌 엄마의 삶을 산다.’는 어느 초등학생의 말, ‘덴마크의 학생들은 야생마 같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오로지 앞만 보며 달리는 경주마 같다.’는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한 어른으로서 마음이 많이 아프고, 우리 사회의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1등급이 아니면 항상 주눅 들어야 하는 학생들, 심지어는 다행스럽게 1등급에 들어 소위 최고라 하는 명문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조차 상당수가 여전히 자신의 삶에 자신이 없고 우울함을 호소한다고 하니 확실히 오늘날 우리 사회는 크게 병들어 있으며 결코 행복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행복할 권리를 평등하게 가질 수 있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우리가 소위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소수가 아닌, 다양한 모습으로 저마다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행복할 권리를 가진 것이다. 소수 10%만이 행복하고 그들만이 이끌어가는 사회는 결국 공멸할 수밖에 없다며 작가는 경고한다. 이 시점에서 작가는 행복사회 3대 복지를 강조한다.

1. 쉬었다 가도 괜찮아
2.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3. 지금 이미 잘 하지 않아도 괜찮아​

덴마크의 250곳 이상에서 시행 중인 놀라운 제도 중 한 가지인 ‘애프터스콜레(Efterskole)’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 1~2년 동안 자신의 적성 및 흥미를 찾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작가가 함께하는 꿈틀리 인생학교에서는 이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중). 더 멀리 제대로 가기 위해 잠시 쉬어도 괜찮고, 남들과 조금 다른 새로운 길로 가도 괜찮다. 잘 하지 않고 부족하더라도 모두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사회. 각기 다른 누구나 당당하고 즐거울 수 있는 사회. 참 멋지고 아름다운 사회일 것이다.

물론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에도 극심한 인종차별 등 사회의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다소 문제점은 있을지라도 작가가 오늘 우리에게 소개한 북유럽 국가들의 인생철학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결핍된 것들로, 우리가 꼭 다시 기억하고 우리 사회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모두 이미 알고 있는 것들. 그러나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며, 어떻게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냐며 우리가 어느 순간 단념해버린 것들. 작가는 오늘 강연을 통해 우리에게 그것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자 하였을 것이다.
한때 실패가 영원한 실패로 남지 않도록, 잘하지 못해도 서로 끌어주고 도와줄 수 있는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사회를 위해 우리 스스로가 먼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 혼자만 행복한 사회가 아닌 내 주변도 함께 행복한 사회, 모두가 건강하고 함께 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오늘 이 순간 나부터 작은 꿈틀댐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글 · 사진 시민기자단 김지인




인천 성냥의 과거와 현재를 반추하는 배다리마을의 성냥박물관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의 탄생

2016년 4월 18일 배다리 마을 사람들의 오랜 사랑방이던 동인천우체국이 문을 닫았다. 오랫동안 지역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우체국의 간판이 내려지자 마을은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1926년 11월 1일 개국한 아흔 살 동인천우체국의 폐국은 인구 감소와 이용률의 저조로 인한 시대의 흐름이었지만 원도심의 쇠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슬픈 사건이었다. 그 후 지자체에서는 이곳을 활용하여 마을의 주민공동시설이나 쉼터와 같이 주민들의 공간으로 되돌리려는 많은 사업을 검토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 진행하지는 못했다.

한편 인천 동구의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에서는 2017년부터 도시생활사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5년 동안 송림동을 시작으로 송현동, 금곡・창영동 등 인천 동구 전 지역을 조사하는 마을 기획조사에서 인천의 근현대 산업사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성냥공장이 빠질 수는 없었다. 조사팀은 이 과정에서 현재의 동인천우체국이 포함된 부지가 옛 조선인촌공장의 일부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촌주식회사(이하 조선인촌)의 규모와 사세가 조사팀이 흔히 생각하던 것보다 놀랍도록 컸다.

2018년 가을, 인천광역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은 ‘2019 인천 민속의 해’를 맞이하여 마을박물관을 만드는 사업을 공모하였다. 우체국과 성냥공장의 상관성을 확인한 인천 동구청은 국립민속박물관 및 인천광역시, 건물 소유자인 우정청의 협력을 얻어 1년여 간 마을박물관을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특히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를 맡아 ‘신 도깨비불! 인천성냥공장’이라는 주제로 인천의 성냥과 성냥공장의 모습, 서민생활사 중에 나타난 성냥의 다양성을 이 공간에 풀어놓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공사가 마무리되고 드디어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은 2019년 3월 개관하였다.

 
(자료1)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 전경   (자료2) 개관 준비에 한창인 전시실 내부


배다리의 성냥공장과 사람들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후 초창기의 성냥은 서민들의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고급 수입품이었다. 성냥은 초창기에는 용어가 통일되지 못하고 인촌燐寸이나 석냥으로도 불렸다. 이 시기 세창양행에서는 성냥을 수입하였고 1886년 인천 제물포를 시작으로 서울과 대구에서 성냥 제조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는 기계화 설비를 갖춘 정식 공장이라기보다는 가내수공업 형태로, 성냥을 원하는 수요자들에게 원활한 공급을 이룰 수 없었다. 높은 가격과 원활하지 못한 공급에도 불구하고 기존과는 다르게 한 번의 마찰로 쉽게 불을 얻을 수 있는 성냥의 매력은 감소하지 않았다. 성냥은 짧은 시간 동안 급속도로 사랑받으며 조선인들의 일상생활에 파고들었다.

조선인촌은 금곡리 32번지에 근대적인 생산시설을 갖추고 1917년 설립되었다. 조선인촌이 위치한 인천은 성냥개비의 원료를 쉽게 공급받을 수 있는 교통이 편리하였으며 이는 인천을 비롯한 서울 등의 인근 도시에 제품을 판매하기 용이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좀 더 지역을 좁혀보면 공장이 위치한 배다리 마을은 풍부한 노동력을 이끌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인천 동구의 금곡동과 창영동 일대를 이르는 배다리 마을은, 1883년 제물포 개항 이후 외국인 조계지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다. 조선인들을 위한 학교와 교회가 생겨났으며 삼거리에 열리는 생필품 시장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잦게 하여 거주지를 확장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성냥공장과 같이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한 간장공장, 고무공장 등과 같은 산업시설도 속속들이 생겨났다.

 
(자료3) 일제강점기 조선인촌(주) 정문에서 바라본 공장 전경   (자료4) 조선인촌(주)에서 생산한 조선표, 쌍원표 성냥

조선인촌은 축전기, 축발기, 축열기, 상포접착기, 적린도포기 등 분야별 성냥 제조공정을 위한 전문기계를 도입하였다. 과거의 성냥제조는 크게 성냥개비와 성냥갑 제조공정으로 나눌 수 있다. 당시 성냥개비와 성냥갑을 모두 목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무를 해당하는 크기로 절단하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성냥개비 형태의 원목은 머리 부분에 두약을 찍기 위해 축열기에 꽂고 축발기로 털어내는 과정을 거친다. 이를 나무로 재단한 후 종이상표를 붙인 성냥갑에 가지런히 담으면 완성된 제품이 나왔다. 성냥개비를 만드는 일은 기계 공정으로 이루어졌지만, 성냥개비를 담는 작업은 기계가 아닌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담을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여자직공이나 어린아이들이 노동에 동원되었다. 1938년 신문기사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촌의 직공은 800명, 가정 부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2,800명에 달하였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장의 생산 물량과 그에 따른 성냥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만만치 않았다. 연구 논문에 따르면 당시 전국성냥공장에서 생산한 전체 생산량 10,903톤 중 5,217톤, 즉 47%를 조선인촌에서 생산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배다리 성냥공장은 우리나라 성냥 보급에 앞장섰다. 성냥공장 주변의 마을 주민들도 이에 일조하며 살아왔다.

사라진 성냥공장의 추억

광복 이후 적산기업이었던 조선인촌은 미군정으로 강제 귀속되었다. 이에 따라 일자리를 잃은 조선인촌의 노동자들은 생산설비를 밀반출하거나 불하받아 성냥공장을 세웠다. 1950년대에는 조선인촌이 있던 인천 지역에 우후죽순으로 성냥공장이 들어선다. 조선인촌 이후 화수동에 위치하여 가장 사세가 컸던 대한성냥을 비롯하여 인천인촌, 인천성냥, 평안성냥, 고려성냥, 송현성냥, 한국성냥 등 10여개가 넘는 성냥공장이 등장한다. 아쉽게도 이 시기 생산하던 성냥이 모두 남아있지는 않지만 공장 주변의 주민들은 각각의 성냥 공장의 위치와 상표, 공장이 돌아가던 모습뿐만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던 모습 등을 기억하며 증언한다. 인천의 성냥산업은 한일협정으로 염소산칼륨이 부산항으로 직수입되던 1968년대 이후 점차 쇠퇴하였다. 성냥산업의 공급과잉이 나타난 시점이기도 하였다. 이 와중에 일회용 라이터의 등장은 성냥공장을 폐쇄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었다. 좀 더 불을 얻기 편한 라이터가 등장함에 따라 전국의 성냥공장은 점차 사라져갔다.

 
(자료5) 인천 대한성냥공장의 생산품   (자료6)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에 전시된 전국 성냥

현재 인천의 성냥공장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백여 년 전 존재했던 성냥공장과 더불어 그 삶을 영위했던 주민들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성냥공장을 보기 힘든 오늘날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자산이 되어 남았다. 그 자산을 발판으로 배다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시공간이자 주민들의 문화시설인 성냥마을박물관이 개관하였다. 앞으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인천 성냥에 관한 더 많은 추억과 자료들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바라건대 이러한 자료를 자양분삼아 튼튼히 성장하며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이보라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학예연구사)
사진 저작권 및 출처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이보라 Bora Lee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학예연구사(2008년~현재)
<성냥을 통해 본 우리의 옛날>(2008년), <6.25, 그 날 이후>(2011년), <인천의 영화광>(2014년), <추억 속의 우리 집에 가다>(2016년) 등 매년 지역사를 주제로 한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2017년부터 인천동구 도시생활사조사를 기획하여 현재 『인천의 오래된 동네 송림동』, 『인천의 마음고향 송현동』 등 두 권을 발간한 공동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