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우리가 말하는 재즈

행사일시 : 2019. 8. 17.(토) 오후 1시부터
행사장소 :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신청기간 : 2019. 8. 14.(수) 까지
신청방법 : 트라이보울 홈페이지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문의 : 032-868-9162~3
 
행사정보
2019 트라이보울 재즈+ 페스티벌에서는 다양한 장소와 함께 화합의 장을 엽니다. 
재즈칼럼니스트 황덕호의 재즈입문자를 위한 강연부터,지터벅 리듬에 맞춰 배워보는 스윙댄스 워크숍까지.
가장 뜨거운 이 계절, 여름! 흐르는 음악에 귀를 씻을 단 하루의 재즈방학에 인천시민들을 초대합니다.




더 많은 존재들과 함께 살기 -‘도시의 동물’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자체나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하게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날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도시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동안에 특별히 붐비는 곳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무수한 사람들을 마주칩니다. 아침 출근 시간에 1호선만 타더라도 많은 사람을 지나치게 되니까요. 기억을 천천히 곱씹어 봅시다. 온종일 다니면서 마주친 사람들 사이로 몇 마리의 동물을 보셨나요.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천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애완동물’이란 용어는 ‘반려동물’로 대체되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키우는 동물을 사람보다 열등하고 소유물로 취급했던 관념에서 벗어나서 더불어 사는 친구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반영된 것입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이 사람과 서로 정을 나누고 가족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일명 ‘펫팸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고 자신들의 자녀와 함께 커가는 것을 긍정합니다. 또한, 반려동물 사람의 기준에 규율하기보다는 그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림 1> 반려동물을 사람과 구분하지 않고 가족처럼 지내는 ‘팻팸족’이 늘어나면서, 자녀와 반려동물이 함께 성장하는 가정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그래서 반려동물과 관련한 도덕적 기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 사람이 얻게 되는 정서적 교육이나 치료 효과, 삶의 만족감 등의 효용을 주장하는 학문적 연구와 증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반려동물을 맞이하는 대중들은 사람이 얻는 효용을 넘어서, 반려동물이 사람과 함께 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더 나은 건강, 더 많은 체험, 더 오랜 수명, 더 많은 행복감에 집중합니다. 질 좋은 먹이, 각종 용품, 야외 활동을 위한 시장이 여러 형태로 발달하고 규모 또한 커졌습니다. 온라인 검색을 조금만 해보면, 이번 여름 휴가에 반려동물과 함께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이나 펜션을 포털사이트와 SNS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사는 동안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서 최근에는 반려동물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제시되었습니다. 애견 샵과 같은 과거의 유통경로에 의문이 제기되고, 비윤리적인 ‘강아지 공장’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었습니다. 애견샵 강아지를 분양받기보다는 가정 분양이나 유기견 입양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또 동물장묘업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면서 사후 반려동물을 ‘폐기물’로 처분하던 과거와는 다른 방법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렇게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사람들과 함께 사는 동물들이 늘어났지만, 도시 공간에서 반려동물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은 여전히 흔치 않습니다.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여가를 즐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인천대공원 등 몇 군데에서는 애견 놀이터를 운영하지만, 식당, 카페, 상점, 대중 교통과 같은 도시의 일상에서 반려동물이 함께하는 것은 여전히 난망한 일입니다. 도시 공간에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 합의가 이루어지고 개선할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엘리베이터나 산책로에서 반려동물이 이웃을 공격한 사고가 꾸준히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반복되는 사고는 무척 민감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주변 반려동물과 반려인들에게 편견이 심어집니다. 공공장소에서 펫티켓도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갈등이 빚어집니다.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에티켓, 동물을 대하는 비반려인의 에티켓 모두 잘 알려지지 않으며, 지켜야 한다는 인식도 부족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시간과 홍보의 문제입니다.

독일은 동물 보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헌법에 명시하고, 프랑스는 동물을 사람의 재산이 아니라 ‘감성을 지닌 생명체’라고 법률로 규정하기까지 20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동물의 지위, 사람과 동물 간의 관계 설정에 대한 논의는 이렇게 어렵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애견 관련 TV 프로그램의 급증과 스타 훈련사 등장으로 반려동물의 삶이 대중에게 조명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키우는 개와 고양이를 제외하면 다른 반려동물에 대한 양육 관련 정보를 얻기도, 적절한 동물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반려동물이 아닌 가축, 실험동물 등의 영역은 논의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얼마 전 모 수의대에서의 동물 학대 사건은 과거 실험동물에 대한 윤리적 의식이 얼마나 모자랐는지 보여주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림 2> 지난 5월, 계양구 반려견 쉼터에서 열린 ‘반려동물 교실’. 우리는 동물과 사람 사이에 더 나은 관계를 배워야 하는 시대에 놓여 있습니다.
 (사진 출처: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반려동물과 사람 간의 관계가 달라진 만큼,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지난 5월, 계양구는 인천시에서 처음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위한 펫티켓, 반려동물 교육법, 의료지식 등을 알려주는 ‘반려동물 교실’을 열었습니다. 새롭게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더 나은 반려동물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 반려동물의 삶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기회가 더욱더 많아져야 하고, 쉽게 접근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와 수의사, 동물훈련사 등이 모여 교육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의무화가 된 반려동물 등록제도를 통해 새로운 반려동물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유도하는 체계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현재 반려동물 등록율은 약 절반 정도 수준으로 추정되고, 고양이 등록이 시범 운영되는 동구 지역을 제외하면 강아지 이외의 동물은 등록조차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그렇지만 지자체는 이런 부분들을 보완하면서 반려인들에게 자신의 반려동물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도움을 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반려동물을 만나면서 생기는 어려움에 대해 미리 대비할 수 있으며, 10만 마리가 넘게 발생하는 유기동물의 문제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반려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에티켓도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이미 반려동물은 도시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고 더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건축사)

참고문헌
강정구(2016). 펫팸족의 출현과 반려동물의 재인식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과 영화작품을 중심으로, 세계문학비교연구, 54, 5-27.
김치호(2019). Bold journal. Issue No. 12. 서울: 볼드 피리어드
오승규(2015). 프랑스법상 동물의 지위에 관한 검토. 법과 정책연구, 15(4), 1-18.
홍완식(2017). 독일의 동물보호법제에 관한 고찰. 유럽헌법연구, 25, 523- 25, 523-544.




2017 인천 왈츠 <보물지도>를 경험하면서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인천왈츠에 참여해 주셨던 분들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참가자들의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문화예술로 생업을 선택하신 분들의 이야기까지 예상하지 못한 그들의 변화된 삶을 들려주셨습니다. 문화통신3.0에서는 인천왈츠를 스쳐갔던 많은 인연 중에 2017년 시민들과 함께 <보물상자>를 연출하셨던 송용일 연출가님과 2018년 <강화 1866 삼랑성분투기>에서 탐사단 역할을 맡았던 박소영 님을 만났습니다. 인천 왈츠에서 지난했던 그들의 경험과 무대 이후에 전개되는 삶의 이야기를 문화통신3.0 독자들과 공유해 봅니다.

 

 

2017년 인천왈츠 시민창작 뮤지컬 <보물지도>가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송도 트라이볼 공연장에서 개최되었다. 이 작품은 인천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행사로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극본을 만들고 시민들이 배우로 참여한 공연이었다. 본인은 이 행사에 연출로 참여하고 고동희, 최종혁, 김정열 씨가 각각 대본, 작곡, 안무에 참여하였다. 그 외에 극단 십년후가 주관으로 함께하였다. 그 결과 모두 한마음이 되어 성공리에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공연을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새삼스레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처음 연출제의를 받았을 때 이런 걸 왜 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했다. 공연 문화의 대중화? 기성극단들의 불신? 과연 누굴 위해서? 등 의문이 계속 이어졌지만, 인천왈츠는 올해 10년차가 되었다고 한다.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은 채로 인천왈츠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반응에서 긍정의 답을 찾고자 한다.

인생에서 누구나 20대 후반과 30세 전후로 원하는 길과 가야 할 길 사이에서 선택해야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원하는 길은 멀고 안개 낀 첩첩산중이라서,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 보이는 길을 택한다. 이처럼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여 누구든 가던 길을 선택하지만, 항상 가지 않는 길에 대한 동경은 남아있다. 이는 인천왈츠에 참여한 나이 든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물론 무대 경험을 하고자 해서 참여한 젊은 그룹도 있었다.) 특히 70대 허노인 역을 맡은 배우의 참여 동기는 더욱더 그러하다. 아마 참여자 대다수가 그런 막연한 동경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배우와 연주자로 모집하여 <보물지도>라는 뮤지컬 공연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엑스트라가 아닌 주연과 조연으로 무대에 서면서 관객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어낸 것이다. 의미 있는 일이다.

2017년 7월 즈음에 참가자 공개 모집을 했었다. 많은 참가자가 신청하여 일정 비율을 탈락시켜야 했지만 참여 동기를 읽어보니 누구를 선별해서 탈락시킨다는 게 죄짓는 느낌이었다. 연습 과정에서 또는 배역 결정에서 이탈자가 생길 것이라 예상되어 실력보다는 참여자들의 의지를 주요하게 반영하여 모두 합격시켰다.

무지하게 더운 날, 금쪽같은 토요일 휴일을 이용하여 우리는 연습에 돌입하였다. 서로를 알기 위한 연습부터 누가 어떤 소질과 개성을 가졌는지에 대한 탐색 작업이 초반에 시작되었다. 하나 배우로 무대에 선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모두가 의욕은 충만했지만, 마음 따로 몸 따로 움직였다. 배우가 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몸소 느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11월 공연이 가능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전문 배우는 아니더라도 보는 관객들에게 실망은 주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주 1번, 한 달에 4번의 만남으로, 라이브 뮤지컬을 해야 한다는 것이 어림없어 보였다. 정해진 극본이 없으니 모든 것이 올 스톱 상태였다. 미리 극본이 정해졌으면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 텐데 인천왈츠 취지에 맞게 극본도 시민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언제 극본을 쓰고 연습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우선 첫 번째로 무엇을 이야기할지를 참가자들과 의논하기 시작했다. 소통, 화합, 사랑, 등을 담은 우리 동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들이 주민이고 주인공이니까 자연스럽게 내용이 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참여자들의 의견을 청취한 후 고동희 작가의 1차대본이 어렵게 나왔다. <보물지도> 소재는 매우 흥미로웠다. 하지만 모두를 아우르기에는 정리가 필요했고 여러 번 각색을 거쳐야만 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초조와 불안의 연속이었다.

9월에 들어서야 겨우 극본의 틀이 잡아갔다. 작곡가 최종혁 선생님께 신속하게 극본을 전달했다. 눈치 빠른 최종혁 선생님은 몇 가지 무리한 부탁에도 이러한 모든 상황을 간파하고 신속하게 좋은 곡을 만들어주셨다. 이래서 관록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뮤지컬의 생명은 음악인데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때부터 연주팀도 할 일이 생겼고 참가자들도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제는 배역 결정이다. 다수가 참여할 수 있도록 극본을 만들었지만, 그래도 주연과 조연 선정은 필수다. 역시나 배역에 불만은 품은 이탈자가 나오고 사정이 안 좋아져 중도 탈락자도 생겼다. 예상했던 바라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대략 40여 명 정도를 정예 멤버로 두고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었다. 배역을 맡은 이상 이제부터 빠지면 전체 진행에 누가 된다고 몇 번을 역설하였지만. 휴가철 가족여행과 바쁜 회사업무 등으로 더는 연습하기 어려운 참여자가 나왔다. 오죽하면 안무 선생님은 단체 군무에서 몇몇 배우를 빼야했었다. 한 달에 4번밖에 모이지 않아 한번 빠지더라도 공연 내용의 절반이 지나간다. 불가피하게 배역을 이동하고 없던 역할도 새로 생겨나고 적극적인 참여자를 중심으로 인물도 바뀌어 갔다. 배우에 인물을 맞추다 보니 매주 대본이 바뀌는 상황으로 연출할 수밖에 없었다. 10월에 들어서 포스터가 나오고 언론에 보도가 되자 모두가 조금씩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무대에서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과 초조함이 드러났다. 자진해서 휴일뿐만 아니라 평일 밤에도 연습에 매달린다. 좀 늦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출처 :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출처 :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그랬던 찰나에 주요배역을 맡은 한 배우가 연락이 안 되더니 회사 사정상 더 이상 공연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올 것이 온 느낌이다. 마음과 현실이 충돌을 일으키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말도 못 하고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을까 하는 생각에 더욱 안타까웠다. 결국 긴급 처방으로 숙련된 배우로 교체했다. 공연 하루 전 무대장치가 들어서고 조명이 설치되었다. 마지막 리허설을 마치고 나서야 이 정도면 되었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우려는 기우로 바뀌어 공연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리에 잘 마무리되었다. 많은 관객의 박수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연장공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등 서로 부둥켜안고 지난 과정에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장 6개월에 걸친 긴 여행이 끝이 났다. 아직도 카톡 단체 방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좋은 공연을 함께 보러 가기도 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 정도면 갈증은 해소되었을까?

재작년 인천왈츠를 경험하면서 대학 시절에 연극을 처음 시작할 때가 생각난다. “연극은 내 인생에 있어서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라며 마치 돈키호테처럼 젊음 하나를 가지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현실에 부딪힐 때마다 이 짓을 해야 할지, 그만두어야 할지를 하루에 12번 생각해야 하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서른을 넘기고 나서야 연극인의 길을 결정했을 때 내 삶은 고난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연극이란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라는 어떤 배우의 말처럼 연극을 한다는 것은 인생 전부를 걸지 않지 않으면 안 되는 도박과도 같았다.

배우를 하려 한다면 생각하길 바란다. 연극 그 자체를 추구하는 마음이라면 그는 언젠가 배우가 되어 있겠지만 주목받는 스타를 꿈꾼다면 연극은 배우라는 간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허망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번 인천왈츠를 통해 참여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세월이 바뀌고 시대가 바뀐다고 연극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번 인천왈츠 경험을 통해서 현실과 이상을 구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후 인천왈츠 뮤지컬 <보물지도> 작품은 2018년 극단 십년후에서 <신포동 장미마을>이라는 연극으로 재탄생 되었다. 인천연극제에 참가하여 대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연극제에 인천 대표로 출전하여 은상을 수상했다. 또한 참가자 중 일부는 본격적인 배우를 해보겠다고 극단에 찾아와 함께 공연하였다.

인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인천왈츠는 공연을 통해 참여자들에게는 배우의 갈증을 해소하고 극단은 신작을 선사하고 동시에 인천공연예술의 다양성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출처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송 용 일 (宋鏞日. SONG YONGIL)
* 2000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졸업 (연극전공)
“무대미술의 한국적 양식화”- 창극 춘향전을 중심으로 논문발표.
* 2001년 일본 일본대학교 연극영화과 객원연구원 수료.

* 1997–2003년 대경대학. 중앙대학. 청주대 연극과 무대미술 출강(7년)
* 2003–2007년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연극과 겸임교수(4년)
* 2007–2008년 중국 연변대학 연극과 초빙교수(1년)
* 2009—2012년 인천대학교 출강.(4년)
* 현 극단“십년후” 대표및 상임연출.

* 제 3회 대한민국연극제 : 신포동 장미마을 은상수상 ( 2018년)
* 제 1회 대한민국연극제 “ 배우우배” 은상수상(2016년)
* 제 24회 전국연극제 “사슴아 사슴아” 대통령상. 연출상 수상(2004년)
* 인천 연극제 연출상 및 대상 수상 (5회)




2018 인천왈츠가 나에게 남긴 것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인천왈츠에 참여해 주셨던 분들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참가자들의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문화예술로 생업을 선택하신 분들의 이야기까지 예상하지 못한 그들의 변화된 삶을 들려주셨습니다. 문화통신3.0에서는 인천왈츠를 스쳐갔던 많은 인연 중에 2017년 시민들과 함께 <보물상자>를 연출하셨던 송용일 연출가님과 2018년 <강화 1866 삼랑성분투기>에서 탐사단 역할을 맡았던 박소영 님을 만났습니다. 인천 왈츠에서 지난했던 그들의 경험과 무대 이후에 전개되는 삶의 이야기를 문화통신3.0 독자들과 공유해 봅니다.

 

오랫 동안의 무력감에 지쳐 괴로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우연히 신청하게 된 2018 인천왈츠. 퇴근길 역 플랫폼에서 포스터를 발견하자마자 10년 전인 2008년 11월, 일본 유학 시절에 극단에 소속되었던 일본인 친구의 권유로 학교 내 소극장에서 프로젝트로 함께 연극을 했던 그때의 기억들이 순간 떠오르며 생기 넘치던 10년 전 그때의 나에게 당당한 모습으로 응답하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솟구쳤다.

첫날부터 오랜 시간 동안 몸풀기, 연기 기초 연습, 안무 기초 등을 연습하였다. 솔직히 단순해 보이고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로 인해 조금이라도 내 안의 갑갑한 마음과 생각을 지우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일단 뭐든 주어지는 대로 해보자, 참여하는 데 의의를 두다 보면 뭐든 재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임했다. 그러다가 역사탐사단의 일원으로 극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극적으로 역할을 줘서 정말 감사했다. 2018 인천왈츠에서 선보인 뮤지컬 「강화 1866 삼랑성분투기」는 장르적으로는 시대물이지만 역사탐사단 역할은 현대 인물이기 때문에 의상, 소품 모두 자신이 컨셉을 잡고 준비할 수 있어서 가장 매력적이고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나는 진중한 역할보다는 밝고 즐겁고, 재미있으면서도 임팩트 있는 역할을 맡고 싶었고 역할에 따라서 나 역시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세부 컨셉까지 완전히 확정되고서는 연습 날은 무조건 베레모, 멜빵바지 차림으로 갔다. 무대에 올라가기까지는 두 달여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무대와 의상 느낌을 내고 싶었고, 연습할 때만이라도 나 자신을 벗어나 탐사단의 발랄한 모습으로 지내고 싶었다.

탐사단의 역할은 뮤지컬의 앙상블, 코러스처럼 극을 이끌어가면서도 전체적으로 받쳐주는 중요한 역할이다.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 안무, 퍼포먼스 등 곳곳에 투입되어야 했다. 본격적으로 안무 집중 연습시간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안무 선생님이 내 차림을 보시더니 통통 튀는 친구가 앞에 있어야 한다며 제일 뒷줄 구석에 서 있던 나를 제일 앞줄 중앙 쪽으로 끌고 오셔서 당황했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살면서 어디 나가서 춤을 춰 본 적도 없다. 운동신경도 둔해 어디 가서 몸으로 하는 건 절대로 못 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았었다. 춤을 못 춘다고 그랬지만 괜찮다며 나를 다독이셨다. 본의 아니게 맨 앞줄에 서게 되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서 더욱 틀리면 안 되겠다,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서도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고 같이 따라 움직여 주셔서 감사했다. 그래서 더 자신감을 가지고 연습에 임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연습한 곡이자 극의 오프닝 곡이었던 “삼랑성분투기”는 정말 내 인생 안무 곡이다. 사실 나는 삼랑성분투기를 연습하고 춤추고 모두 함께 맞춰보는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그냥 음악에 맞춰 춤추는 그 자체가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러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연습할 때 지켜보던 많은 분들이 나에게 표정이 정말 밝다, 동작이 크고 시원시원하다, 춤을 맛깔나게 잘 춘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에너지가 넘친다, 마치 살아서 팔딱대는 생선(!)같다 등등… 셀 수 없을 만큼 칭찬의 말씀들을 굉장히 많이 해 주셨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한 번도 이야기해보지 못한 분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고 사람들과 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다. 춤을 추는 나를 보고 웃고 즐거워하며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보며 내가 정말 살아있구나, 뭔가를 해내고 있구나라는 마음에 그간의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신이 나서 없던 힘도 솟아나는 것 같았다. 마치 그동안 죽어있던 육신에 생기가 들어간 느낌이었다.

2018 인천왈츠<뮤지컬 강화 1866 삼랑성 부투기>에서 역사탐사 멤버로 있을 때의 모습, 오프닝곡 삼랑성 분투기 무대 중
(사진 출처 : 인천문화재단)

그렇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할수록 웬걸 내가 해야 할 안무, 퍼포먼스 역할은 조금씩 늘어나게 되어 급기야는 잠깐 혼자 앞에 나와서 댄스 타임을 가지게 되는 등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판이 커지고 비중도 나름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솔직히 부담도 있었지만 사실 부담보다는 기대가 훨씬 컸다. 점점 밝아져 가는 내 모습을 보며 해내고 나서의 나의 모습은 얼마나 변해 있을까, 얼마나 자라 있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공연 날, 객석을 앞에 두고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연주팀의 생음악과 모두의 합창에 맞춰 춤을 췄을 때는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마치 이 극 전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전에는 흥만 넘쳐서 집에서 혼자 또는 가족들 있을 때 장난으로 리듬 타고 가끔 코인노래방에서 혼자 노래하고 막춤을 추는 게 전부였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극심한 우울 증세를 보이고 나서는 못하게 되었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처음에 내가 이번 인천왈츠에 참여해서 뮤지컬을 한다고 했을 때 놀라면서도 정말 기뻐했다. 내 동생은 제발 언니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까불거리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었고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며 엄청나게 만족해했다. 오프닝 곡인 “삼랑성분투기” 무대에 섰을 때, 중앙 앞자리에서 웃음 가득 넘치는 얼굴을 하고 지그시 나를 바라보던 가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틀간의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면서 이제 진짜 나의 무대를 만들었구나. 이루어냈다는 벅찬 마음과 함께 꿈길을 걸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내려오는 게 너무 아쉽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그래서 커튼콜 후 갑자기 몰려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에 휩싸여 무대 뒤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이제 나는 다시 내 현실과 부딪치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이전처럼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거라고, 나를 단단히 채워주고 세워준 이 무대가 언제나 내 안에, 내 앞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을 거라고… 뜨겁게 마음을 다졌다.

2018 인천왈츠<뮤지컬 강화 1866 삼랑성분투기> 공연 모습
(사진 출처 : 인천문화재단)

뜨거웠던 이틀간의 공연이 끝난 후에도 2018 인천왈츠에 참여했던 멤버들과의 교류는 계속되었다. 몇 달 동안은 거의 매주 만나서 친목 모임을 가졌다. 모두가 가족 같았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소중한 친구 같았다. 프로젝트로 모였지만 이대로 뿔뿔이 흩어지는 게 싫었다. 그런데 다행히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나 보다.

사실 인천 왈츠 공연 당일, 최종 리허설 전에 다 같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대원군 역할을 맡으셨던 김병주 선생님이 괜찮은 대본이 하나 있는데 같이 연극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해주셨다. 대본의 주인공 역할이랑 내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린다며 작품 소개를 선뜻 제안해 주신 것이다. 당시에 프랑스병 역할이었던 김경민 동생도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나와 경민이 모두 이대로 흩어지는 건 아쉬우니 뭔가 하나라도 같이 했으면 싶어 동의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열 몇 명 남짓. 2019년 1월 첫째 주 토요일에 첫 모임을 하고 김병주 선생님의 친한 연극 선배인 극단 MIR의 이재상 대표님과도 만나 여러 조언을 받아서 “시민극단 더 인연”이라는 극단을 창단하게 되었다. 극단 명은 “인천의,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시민극단이면서 인천왈츠라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만난 것도 큰 인연이라는 의미가 있다. 1월 극단 창단 후, 인천문화재단의 지원과 극단 MIR의 협력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MIR 이재상 대표님께 연기 워크숍을 받고 MIR 소속 배우이신 양은영 연출님과 박은희 조연출님의 지도로 꿈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현자를 찾아서”라는 연극 공연을 만들어 갔다.

연극은 뮤지컬과 비슷해 보이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사실 뮤지컬로 탐사단이라는 앙상블 역할을 하며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나로서는 오롯이 대사와 표정, 행동 등의 연기만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는 연극이 어렵지만, 꼭 도전해보고 싶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그리고 막상 하려고 하니 나름의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잘 풀리지 않아 고민도 많이 했다. 이거 정말 잘하는 걸까. 내가 과연 잘 선택한 것일까… 출근하면서도 항상 대본을 손에 쥐고 다녔고 퇴근길에 시간이 맞을 때면 대학로 쪽에 들러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하며 다른 배우들은 다들 어떻게 하나 살펴보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 내가 맡은 ‘한스라는 아이가 내 안에 들어오려면, 아니, 내가 한스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면서 고민을 하고 많이 울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건 또 한스였다. 한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읊조리고 읊조릴수록 그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도록 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공연 전날까지도 고민하던 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연출, 조연출님의 진심 어린 지도와 함께 우리 극단 사람들의 따스한 격려를 받으며 한스의 순수한 마음, 밝고 강인한 의지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이 모든 게 나 혼자의 역량이 아닌 함께한 배역들과의 호흡,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7월 13일 토요일. 공연 당일에 한스에 많은 관객분이 감동했고 인생의 깊은 깨달음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그리고 나에 대한 호평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분들의 호평을 들었을 때도 내 이야기인 마냥 그저 즐겁고 행복했다. 공연 후에는 인천왈츠가 끝났을 때처럼 울지는 않았다. 오히려 끝났다는 아쉬움을 넘어 이제는 진짜 시작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소위 게임에서 말하는 굉장한 아이템을 얻은 느낌이었다. 무대, 사람들, 그리고 끈끈한 전우애(!)를 말이다.

시민극단 ‘더인연’ 창단공연, 연극 <현자를 찾아서> 포스터
(사진 출처 : 시민극단 더 인연)

시민극단 ‘더 인연’ 창단공연, 연극 <현자를 찾아서> 공연일 단체 기념사진, 연출, 스탭으로 협력하여 주신 극단 MIR분들과 2018 인천왈츠 몇몇 멤버들과 함께
(사진 출처 : 시민극단 더 인연)

그리고 인천왈츠 후 생긴 또 다른 변화는… 올해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 인천왈츠를 통해 알게 된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내가 춤을 출 때 매우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내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그러한 즐거움,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퇴근길에 댄스학원에 들러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고 함께 춤을 추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일상의 새로운 활력소를 찾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다. 댄스라는 건 그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인 줄 알았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내 마음속 허들을 무너뜨려 준 인천왈츠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얼마 전에는 강남역에서 학원 주최로 댄스 버스킹을 해보았다. 뮤지컬, 연극 무대에 서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긴장감이 있었지만 새롭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나와 같이 댄스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즐거움 중 하나인데 강남 댄스 버스킹 공연을 같이했던 팀 멤버가 앞에서 말한 연극 “현자를 찾아서”를 보러 와 주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인천왈츠 뮤지컬에 내가 출연하게 되면 그때 또 불러 달라고, 또 보러 올 거라고도 했다!^^

댄스 버스킹 공연하기 전 연습실에서
(사진 출처 : 박소영)

돌이켜 생각해보면 2018 인천왈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그간 현실에 갇힌 나를 지우고 내 안의 잠재된 “내가 진짜로 되고 싶었던 나”를 앞으로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무대 위에서는 가능해지는 것,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닌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더욱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렇게 나의 무대를 만들고 꾸려나가면서 ‘현재’라는 것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는 미래를 위해 현재가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후회하며 과거에 집중하게 되는 일상 속에서 나에게 진정 현재를 위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서 있는 무대에서 풀어나가는 뮤지컬, 연극, 댄스 등의 활동은 나에게 현재를 즐기는 법과 현재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일상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또 다른 에너지를 제공하였다. 일상생활과 취미활동을 병행한다는 것이 체력적으로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지만 에너지를 소모하는 만큼 즐거운 에너지를 부여받는 느낌이 들어 일상이 더욱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나 혼자서 스스로 깨달아진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있고 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시고 이끌어주신 연출가님, 조연출님, 안무선생님, 모든 스태프와 관계자분들이, 함께 해주시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2018 인천왈츠는 정말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면서 함께 만들어간 너무나도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자 하나의 기회였고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그간 함께한 모든 순간순간이 나에게 보석보다 값진 시간이었고 함께한 모두가 나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요, 귀중한 선물이다. 2018 인천왈츠, 뮤지컬 「강화 1866 삼랑성분투기」는 내 인생의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박소영 (朴昭怜, Park So-young)
고려대학교 대학원 중일어문학과 석사졸업

일본 와세다대학 문학부 교환유학, 도쿄대학 대학원 비교문학비교문화 연구생 과정 수료
현재 국내외 대기업, 관공서, 학교, 각종 문화센터 등지에서 일본어 출강 강사로 활발히 활동 중
오랫동안 공부를 하던 시절부터 학문적인 분야보다 서브컬처에 관심이 많았음.
인천왈츠를 시작으로 각종 공연에 참가하며 서브컬처의 소중함과 워라벨의 소중함을 다시금 알아가고 있는 중.




인천왈츠 10주년 Homecoming

흔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는 인천왈츠, 지난 10년 간의 발자취는 어땠을까?
인천왈츠의 큰 틀은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하는 공연예술 프로그램’이다. 2010년과 2011년에는 콘서트 형식으로, 2012년부터는 창작뮤지컬 형식을 통해 다양한 공연을 선보여 왔다. 특히, 인천왈츠 뮤지컬 버전을 통해 <어떤 여행 시리즈>, <소원책방>, <꿈스터디 꿈스케치>, <1936, 그날>, <보물지도>, <강화 1866, 삼랑성 분투기> 등 지역을 소재로 한 소중한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인천왈츠가 10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 창작에 힘써주신 협력예술단체, 그리고 열성적으로 활동해주신 시민참가자 분들의 역할이 컸다. 이분들이 있었기에 인천왈츠가 지속될 수 있었다.
올해에는 극단 작은방(신재훈 연출)과 협력하여 재미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2019 인천왈츠 참가자 모집이 오는 8월 4일(일)까지 진행되므로, 10주년을 맞이한 인천왈츠에 함께하고 싶은(과거 인천왈츠 참여자 및 신규 지원자, 뮤지컬 무경험자)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바란다.

역대 인천왈츠 소개

2010 인천왈츠, 함께 만드는 콘서트

일시 | 2010년 12월 8일 오후 7시 30분

장소 |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

출연 | 태싯그룹, 인천재즈앙상블(지휘 정성조), 혜광오케스트라(지휘 이경구), 인천시민합창단(지휘 윤학원)

2011 인천왈츠, 함께 만드는 콘서트

일시 | 2011년 12월 8일 오후 8시

장소 |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

출연 | 희망오케스트라, I-신포니에타, 기타마루,예그리나, 토마토, 동물원, 크라잉넛, 인천직장인밴드연합 ‘밴하사’

2012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어떤 여행>

일시 | 2012년 12월 9일 오후 7시

장소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연출 | 추민주

극작 | 류미현

작곡 | 김예림

2013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어떤 여행> 시즌2

일시 | 2013년 7월 21일 오후 3시, 7시

장소 |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

연출 | 추민주

극작 | 류미현

작곡 | 김예림

2014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소원책방>

일시 | 2014년 12월 7일 오후 3시, 6시

장소 | 트라이볼

연출 | 추민주

극작 | 류미현

작곡 | 김예림

2015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꿈스꿈스>

일시 | 2015년 10월 1일 오후 5시 / 2일 3시

장소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연출 | 이재상

극작 | 이재상

작곡 | 최경숙

2016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1936, 그날>

일시 | 2016년 10월 1일 오후 5시 / 2일 3시

장소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연출 | 이재상

극작 | 이재상

작곡 | 최경숙

2017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보물지도>

일시 | 2017년 11월 11일 오후 4시 30분 / 12일 저녁 7시 30분

장소 | 송도 트라이보울

연출 | 송용일(극단 십년후)

극작 | 고동희

작곡 | 최종혁

2018 인천왈츠, 시민창작뮤지컬 <강화1866, 삼랑성분투기>

일시 | 2018년 11월 17일 ~ 18일 오후 4시

장소 | 송도 트라이보울

연출 | 이상희(극단 집현)

극작 | 김지영

작곡 | 신영길


2019 인천왈츠 담당자




‘풀등’을 지키기 위한 한 목소리
김유호 풀등 선장 인터뷰

동네 노래대회를 나가면 1등 상을 받을 만큼 마을에서는 노래를 꽤 잘하는 아이로 인정받았다. 하나 녹록지 않은 생활에 음악인의 길을 함부로 선택할 수 없었다. 배고픈 생활이 너무나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음악을 접어둔 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대이작도를 떠나 인천으로 왔지만, 인천에서도 험난한 여정을 치러야만 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에 성공은 했지만, 결국엔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다.

사업실패로 슬픔도 잠시 그의 보금자리였던 대이작도에서 새롭게 출발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36년 동안 이곳에서 열심히 일했고 이제는 제법 여러 척의 배를 운영하는 선장이 되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마음속 허기짐이 시원하게 가시지 않았다. 학창 시절 송골매 김상복 씨의 베이스 소리가 좋아서 첫 기타를 만졌던 촉감이 여전히 손끝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마음에 맞는 주민들과 함께 용기를 내어 밴드<풀등>을 만들었다. 3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밴드활동으로 막연했던 그의 꿈이 이제는 선명해질 수 있었다. 섬마을밴드 축제를 일주일 앞두고 요즘 대이작도에서 가장 바쁘다는 풀등 선장 김유호 씨를 만났다.

섬마을밴드 이후에 변화된 나 그리고 이웃
젊게는 39세에서 많게는 환갑 이상의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밴드 <풀등>. 밴드를 만들기 전까지는 음악에 대한 배움을 해소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단지 조촐하게 밴드의 구색만을 갖췄을 뿐이다. 그래도 음악을 배우겠다는 간절함과 의지로 밴드 ‘풀등’이라는 완성된 결정체를 만들어갔다.

“음악을 들으면서 함께 젓가락으로 두들기고 빗자루로 베이스 치는 흉내만 냈었어요. 그러면서 밴드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서 인천시에게 도움을 요청했죠. 그게 발동의 시작이었어요. 처음에는 악기도 지급받지 못했어요. 앰프 정도만 겨우 받고, 키보드도 기부받았었죠. 그런데 실력은 좋지 못해도 주변 사람들한테 반응이 좋았어요. 그래서 공연할 때마다 악기를 한둘씩 채워나갈 수 있었죠”

베이스를 다시 잡았을 때 갖은 고생으로 뻣뻣하게 변해버린 손은 마음과는 달리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섬마을 밴드 프로그램에서 오신 강사님의 지도 아래 실력은 차츰 나아졌고 그의 일상도 함께 변화였다. 눈뜨자마자 일터로 나가야 했던 단조로웠던 생활에서 벗어난 그의 일과는 베이스를 켜는 것으로 시작해서 끄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가끔 비가 억수로 내릴 때는 배를 출항할 수가 없어 그날은 베이스 연습에만 온전히 집중한다. 다른 선장과 달리 그에게 비 오는 날은 가장 행복한 날이 되었다.

“항상 저녁에 일 끝나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연습해요. 스위치만 켜면 바로 작동될 수 있도록 베이스도 앰프를 꽂아놓은 채로 두어요. 왜냐하면 케이스 열고 꺼내면 결국 연주를 안 하게 되거든요. 눈뜨면 바로 연주할 수 있도록 세팅이 되어 있는 거죠.”

간혹 멤버들의 음악적 취향 때문에 트러블이 발생하지만, 각자 음악에 대한 열정 덕분에 싸우다가도 금방 화가 풀린다. 그렇게 생계로 바쁜 와중에도 밴드 멤버들과 3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늘 하고 싶었으니까. 더 늙기 전에 해보고 싶었어요. 나이 들면 손도 못 움직여서 더는 하기 어렵잖아요. 갈망했던 것을 더 늙기 전에 해보고 싶었으니까.”

이제는 대이작도에서 대표밴드라고 할 만큼 마을에서 그들의 명성은 자자해졌고, 섬마을밴드축제 뿐만 아니라 가끔 다른 곳에서 주최하는 노래대회에 나갈 정도로 패기가 생겼다.

“작년에는 옹진군 대표로 시경연대회를 나갔었죠. 11개 팀이 나갔는데 4등을 했어요. 거기서 1등을 해야지 전국대회를 나가는데 (아쉬워요). 몸도 부들부들 떨면서 가사도 틀렸거든요. 왜냐하면 옹진군민들이 다 보는 자리였어요. 인천 시민 같으면 신경을 안 써요. 우리는 옹진군의 타이틀이니까요. 옹진군 주민한테 인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서울에서 인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에요. 지금 실력이면 1등 할 수 있었을 거예요”

동아리 경진대회에서 나간 풀등밴드, 맨 오른쪽 흰모자를 쓰신 분이 김유호 선장님이다.

밴드 <풀등>은 항상 지역과 연계해서 생각한다. 밴드 이름도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풀등’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모든 섬에는 바다와 산이 있고 모래와 갯벌이 있지만, 대이작도는 풀등 하나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오거든요. 근데, 매번 풀등에 모래를 판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풀등을 알리고 지키자는 의미에서 멤버들과 ‘풀등’이라고 이름을 정한 것이죠. 그러다 보니 그 이후에는 통기타 동아리도 ‘풀등 통기타’라고 이름을 지었더라고요.”

대이작도에 불어난 ‘흥바람’
<풀등> 활동으로 풀등 선장의 삶만 달라진 것은 아니다. <풀등>의 활약과 ‘섬마을밴드 프로그램’ 이후에 대이작도 주민들의 저녁 풍경도 변화하였다. 음악 동아리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주민들이 한둘 늘어나면서 지금은 약 주민 절반이 개인 악기를 직접 사들이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대이작도는 예로부터 흥이 있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전부터 사물도 하고 꽹과리를 치는 마을이었어요. 그런데 제 개인적인 생각은 흘러간 노래를 잘 부르시고, 작곡을 많이 하셨던 한 선생님의 영향이 컸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대이작도에서 낚시를 좋아했거든요. 선생님이 굉장히 오랫동안 대이작도에서 왔다 갔다 하시면서 저희 형님들께 음악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요. 끼가 타고났다고 해도 특정 몇 명이지 마을 전체가 끼가 타고 날 수는 없으니까요. 그분의 영향이 좀 더 부추기지 않았는가 싶어요.”

바쁜 생업으로 잠재되었던 주민들의 흥바람을 섬마을 밴드 프로그램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이전에 주민들은 일과가 끝나면 함께 술 한잔 하거나 가벼운 게임을 하며 하루의 시름을 달래는 게 전부였다. 요즘에는 해양생태관에 다양한 동아리들로 북적거려 연습공간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대이작도에 동아리만 총 33개가 있어요. 처음에 우리가 밴드를 하다 보니, 그들을 지도하라고 인천문화재단에서 강사님을 보내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마을 주민들도 너도나도 기타나 드럼 배운다면서 밴드교실에 들어오게 되었죠. 그래서 지금은 명예회원과 정회원을 정해두고 활동하고 있어요. 명예회원분들께 가끔 행사에 관해서 여쭤보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해요. 작년말부터는 색소폰을 하고 싶다는 분들이 생겨서 최근에는 색소폰 동아리가 만들어졌어요.”

바투 다가온 섬마을밴드축제에 주민들은 맹연습 중이다. 본업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주민들은 잠까지 쫓으면서 악기를 연주한다. 연습에 소홀히 하는 주민들에게 ‘잠은 왜 자’라고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며 다시 연습에 몰입한다. 이런 주민들의 노력으로 올해 섬마을밴드 축제는 실력이 더욱 향상된 다양한 동아리들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게다가 풀등의 엄격해진 역할 배치로 풀등선장님의 노래 솜씨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아우에게 베이스를 해보라고 했죠. 악기 실력은 나아지고 있는데 노래는 열심히 연습해도 잘 안되거든요. 그리고 아우가 기타 치는 실력이 더 월등하니까 이번에는 제가 노래하는 거로 정했죠.”

대이작도 풀등밴드

올해 섬마을밴드를 마치고 나면 또 다른 활동 계획들을 그의 머릿속에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시점에 밴드 풀등은 또 다른 길을 모색하려고 한다. 풀등 선장의 마음 한쪽에 둔 꿈과 함께 말이다.

“내년 중반에 우리 팀이 대관공연을 해요. 콘서트라고 하죠. 우리팀 발표는 한 번도 안 해보았거든요. 그래서 옹진 군청을 대관해서 주민들 앞에서 공연하려고 하죠. 지금 공연 스태프부터 영상 촬영까지 다 생각하고 있어요. 강사 선생님들께 이미 게스트 출연도 부탁드렸고요. 그리고 어중간하게 자작곡을 만든 것도 있는데, 이제 마저 완성해서 공연 때 선보여야죠.”

“대관공연을 기점으로 이제는 실버밴드로 빠지려고 해요. 젊은팀 구성을 해서 나이 많은 우리들은 이제 물러나야죠. 가수 부활도 대관공연 하고나서 원년 멤버가 밀려나가고 새로운 기수가 나오잖아요. 이게 다 선생님께 배운 지식이에요. 양보할 줄도 알고, 후배들도 키울줄 알아야 하죠. 그게 밴드 공연을 유지하는 것 같아요. 이러면서 풀등도 이름도 안 바뀌고 유지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사실 음향감독을 하고 싶어요. 음향기계를 잘 다루면 디지털도 음악 가능하니까요. 지금 풀등밴드에서는 기계를 잘 만질 수 있는 친구가 없거든요. 막상 배우려니까 쉽지 않은데 풀등밴드 곁에서 음향감독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요.”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이진솔(정책연구팀)




지붕없는 박물관 “강화도”
강화경기장 작은 사진전 “역사를 품은 강화유적 여행”

흔히, 강화도를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부르기도 한다. 강화는 우리나라의 고대시대인 삼국시대부터 근대 이후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역사의 숱한 순간들과 함께했으며,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긴 곳이다.

특히, 강화도 전역에 넓게 분포된 “해양관방유적”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선조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해양관방유적이 시민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인천광역시 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는 강화경기장에서 개최한 “강화경기장 작은사진전”이 바로 그것이다. 인천광역시 시설관리공단과 인천역사문화센터의 공동주최로 마련된 이번 사진전은 “돈대, 산성, 외성, 포대” 등 강화의 대표 해양관방유적을 유명 사진작가들의 감수성 깊은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월곶돈대, 분오리돈대, 강화산성 등 지금까지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관방유적은 물론이고, 일반인이 찾아가기 어렵거나 사진으로 볼 수 없었던 유적까지 모두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사진작가들이 찾아가는 유명 돈대들의 일출, 설경 등의 독특한 풍경과 스냅사진까지 만날 수 있어 사진을 취미로 하는 관광객들에게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사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진전의 주제는 “역사를 품은 강화유적 여행”이라는 컨셉으로 강화경기장 1층에서 7월 28일(일)까지 계속되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글 · 사진 /
임중빈 시민기자단




부평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관객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다

부평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최 주관한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희로애락 클래식>이 7월 14일 부평 아트홀 달누리 극장에서 열렸다. 이 공연은 인천시, 인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역협력형사업으로 선정된 프로그램이다.

부평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014년에 창단하여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단체로, 이번에도 시민들에게 특별한 음악회를 선사하였다. 이번 연주회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영상을 함께 감상하며 곡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를 백승화 사회자의 해설로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전체관람가라서 평소에 연령 제한으로 클래식 공연 입장이 어려웠던 어린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였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관객들이 숨죽이는 가운데, 부평구의회 구의원이자 부평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고문인 마경남 의원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마경남 의원은 부평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청소년과 대중을 위한 단체인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전하였다. 이어서 오늘 공연이 사람의 희로애락 감정을 공감하는 좋은 연주가 되길 바라며, 음악으로 행복을 느끼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모든 연주자가 무대에 입장하고 나서 백승화 사회자가 곡 해설을 시작하였다. 어떤 환경에서 작곡했고 무엇을 표현한 곡인지에 대한 설명은 곡의 모든 부분에 귀를 기울여 감상하게 만든다. 관객들도 음악 구조에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사회자는 곡을 어렵게 해석하지 않고 우리의 일상과 연결 지어 설명하였다. 커피를 마시며 들을 수 있는 음악, 삶이 무료할 때 듣는 음악으로 소개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공연은 인터미션을 가지고 1부, 2부로 진행하였다. 1,2부 프로그램 모두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은 곡들로 구성됐다. 무엇보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 스크린에 몰입하였다. 연주자들이 ‘모차르트-클라리넷 5중주 A장조 1악장’을 연주할 때, 스크린에서는 모차르트의 생애를 담은 영화 ‘아마데우스’가 상영되었다. 장조 음악이 주는 분위기와 모차르트의 밝은 성격을 보여주는 영화 장면이 조화를 이루어 감상을 효과적으로 도운 것이다.

희로애락 중 ‘애’의 감정을 담은 ‘도니체티-오페라 [사랑의 묘약] 中 남몰래 흐르는 눈물’ 순서에는 오케스트라와 성악가가 함께 등장했다. 성악가의 목소리로 슬픈 가사를 전달하니 열렬하고 가슴 아픈 사랑의 감정이 깊게 와 닿았다.

​공연 중에 가장 참신하게 느껴진 순서는 춤과 오케스트라가 결합한 무대이다. ‘피아졸라-리베르탱고’ 연주 중, 남녀 무용수 두 명이 힘차게 등장하여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탱고 춤으로 부드럽고 매력적인 리듬감을 선사했다. 정열을 상징하는 탱고와 현악기들의 화려한 주법이 어우러져 열정적인 곡 분위기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관객들은 무대를 향해 힘찬 박수를 보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첼로 김지연 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연에 대한 관심에 감사를 표했다.
부평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이번 공연은 예술성과 대중성 모두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일상에서 흔히 느끼는 감정을 담긴 곡이 등장하고 공감하여 음악 속으로 빠져든다. 이렇듯 인간의 희로애락을 주제로 한 이번 공연은 관객의 마음에 큰 울림이 되었다. 또한 듣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져 색다른 기분을 경험하게 하였다. 앞으로도 클래식 음악 지원 사업이 활성화되어 정통 클래식 장르가 생활에서 편하게 누릴 수 있는 음악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본다.

 

글 · 사진 /
시민기자단 김다혜




바다 넘어 인천 <지역문화 전문인력 역량강화 CoP지원>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인천의 문화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올해 2019년도에는 작년 인천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과정 2기 교육의 심화 과정으로 <극한 인천X짠! 내기획>이라는 역량강화교육을 진행하다. 교육과정 중 하나로 CoP(Community of Practice)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생들이 자발적으로 학습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 문화기획자로 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사진 1 (출처: 인천지역문화전문인력양성과정 블로그)

이번에 인천과 유사점을 가진 지역을 직접 답사하고 탐구하여 그것을 인천의 현장과 비교하여 새로운 문화기획을 발견하고자 하는 ‘데칼코마니’ 팀의 활동을 이번 글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데칼코마니’팀은 인천이 가지는 지역성과 가치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비교 대상을 선정하여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바다를 건너 인천과 유사점을 가진 일본 요코하마에 주목하였다.

사진 2 미나토미라이 지구 전경

인천의 지리적, 역사적으로 유사한 환경을 가진 요코하마가 근대문화유산과 항구도시라는 지역 고유의 가치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현장을 답사하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활용하는 방안을 경험하고자 도시디자인의 중요공간과 문화시설 등을 방문하였다.

사진 3 답사 지역

아카렌가 창고, 오산바시 항구, 야마시타 공원, 야마테 지역, 모토마치 거리, 차이나타운, 가나가와현 역사박물관, 랜드마크 타워 등 3일 동안 많은 곳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는 공간과 환경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활용하는지 중점적으로 비교하였다.

사진 4 아카렌가 창고

먼저 아카렌가 창고는 요코하마가 개항지로 결정되면서 1910년대 근대 개항시기 무역창고로써 교역과 번영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아카렌가 창고가 지닌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지진을 겪으면서 1989년 본래 역할을 종료하게 되었고 1992년에 요코하마시에서 보존활용계획을 세워 지금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외관, 지리적, 역사적인 부분에서 인천의 아트플랫폼과 유사점을 가진 공간이지만, 전시와 행사가 개최되는 문화적 공간뿐만 아니라 쇼핑과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는 복합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사진 5 아카렌가 창고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하러 온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문화행사나 전시를 같이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간의 활용방안을 통해 상업과 문화를 분리해서 생각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진 6 야마테 지역

다음은 야마테 지역과 차이나타운을 방문하였다. 인천의 조계지처럼 야마테 지역과 차이나타운은 외국인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언덕을 사이에 두고 위, 아래로 조금 떨어져 있는 두 지역은 그곳이 지닌 고유한 모습을 잘 보존하여 주요 관광지로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사진 7 차이나타운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요코하마시가 속한 카나가와 현립 역사박물관을 방문하고 오산바지 항구를 직접 답사하였다.
요코하마가 개항지로 선정된 배경을 비롯하여 이곳 사람들의 생활 모습, 세관, 항구, 창고, 은행 등 근대 시설들에 대한 설명과 전체 모형도 등을 통해 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여갔다.

사진 8 역사박물관

그리고 바다가 있는 항구도시의 이점을 무엇보다도 잘 살린 투어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수륙양용버스인 ‘스카이 덕’을 타고 주요 근대유산과 도시 전체에 대해 설명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진 9 스카이 덕

지상에서 시작한 버스는 도시의 주요 지점들을 돌면서 건물들에 대해 소개해 주고 오산바시 항구 근처를 통해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에서 바라본 도시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고 항구도시로서의 가질 수 있는 특징을 설명해준다.

사진 10 스카이 덕 내부 해설

버스를 타고 지상과 해상을 모두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곳은 항구 도시만이 가능하다. 인천에도 인천시티투어가 있지만, 항구도시의 이점을 활용해서 도시와 바다를 모두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지역의 지리적, 환경적 요인을 잘 활용하고 기획해서 인천에서도 문화해설사와 함께 인천의 역사와 주요 공간들을 알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11 요코하마 근대유산들

CoP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신청한 사전 리서치와 현장답사가 인천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운 기획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역문화 전문인력 역량강화과정에 참여하는 교육생들이 인천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밑거름이 되길 기대하며 인천이 가진 고유 가치와 문화가 결합하는 멋진 기획이 많이 나오길 소망한다.

글 · 사진 /
이정민 시민기자단




지역에서 문화예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7월 22일 월요일 저녁, 미추홀구에 위치한 사담공간 소담에서는 제43회 마을집담회 모떠꿈이 진행됐다. 모떠꿈은 ‘모’이고 ‘떠’들고 ‘꿈’꾸다 라는 뜻으로 마을의 주민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는 모임이며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센터에서 꾸준히 주최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마을과 문화예술인의 상생’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마을집담회: 마을과 문화예술인의 상생>

참석한 사람들의 소개로 마을집담회가 시작됐다. 공간 인근에서 활동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계양구나 서구, 강화군 등 아주 멀리서 오신 분들도 계셨고,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문화예술인이 30여 명 가까이 참석하셨다. 소개가 끝난 뒤, 미추홀 문화회관 관장을 맡은 이관형님께서 ‘하하골 마을만들기’에 대한 사례를 공유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사실 이번 집담회에서는 ‘마을이 문화예술인들에게 내어 줄 수 있는 자리가 있을까?’ 혹은 ‘문화예술인들은 마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의견을 나누고자 했지만, 참석한 사람들이 주로 예술인이거나 기획자분들이 많다 보니, 마을 내에서 살아가는 문화예술인의 어려움에 대해 더욱 초점을 두고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문화예술인은 2018년 기준 월수입이 평균 106만 원으로 최저시급조차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자리에 왔던 많은 문화예술인의 고민은 생계에 대한 걱정이 컸다. 지원사업에 도전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축제나 행사에서 공연이 있어도 공개모집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설 수 있는 무대를 구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마을에서 행사를 준비하는 기획자 입장에서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역에 사는 예술인을 무대에 세우고 싶어도, 어떤 예술인이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없기에 알고 있는 예술인들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말에 대해서 나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 또한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이왕이면 지역의 사람들을 섭외하고 싶으나, 누가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어서 결국 지인에게 소개받거나 온라인 검색을 통해 알아보고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나왔던 이야기는 예술인이 기회를 얻어 지역 내 행사를 하게 되었을 때, 오히려 비용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공연 위주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은 주로 행사를 통해 수입을 버는데, 막상 지역 내 행사를 하면 이미 책정된 비용에 맞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관의 제안을 거절하면, 이후에 기회를 얻기 힘들까 봐 울며 겨자 먹기로 맡게 되는 것이다. 기획자 또한 어려움이 있다. 기획이라는 일에 대해 인정받기가 어렵고, 예산책정이 어렵다 보니, 기관을 통해서는 좋은 처우를 받지 못한다. 그런 문제들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늘 지원이 필요한 집단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 씁쓸했다.

<나왔던 이야기를 정리한 보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을에서 주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이 잘살아가려면, 그들이 관계를 쌓거나 소통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축제나 행사를 준비하는 기관 담당자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관에서는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과 주민과의 협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단편적인 해결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관에서는 문화예술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해서 가치에 맞는 적절한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데, 주민들에게는 그 가치를 이해하고 소통해서 상생하라?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에게 지원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정상적인 판을 깔아주는 것. 그것이 관에서 해줘야 하는 역할일 것이다.
이번 집담회에서는 ‘마을’내 문화예술인의 상생보다 지역과 문화예술인의 상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논의하였다. 앞으로 이런 자리가 많아져서 문화예술인들의 어려움과 함께 살아가는 방향성에 대해 세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 이번에는 주로 40대 이상의 예술인이 참여하였지만, 다양한 연령대 예술인의 참여를 통한 세대 간의 소통도 이뤄진다면 인천의 문화예술계가 보다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사진 /
김지연 시민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