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과 호흡하는 문화, 도시 서구: 박희제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을 만나다

<기획 인터뷰: 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지역민과 호흡하는 문화, 도시 서구박희제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을 만나다

류수연(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박희제 센터장 소개

1989년 사회 첫 직업으로 기자를 선택하면서 정년을 맞을 때까지 32년간 한 직종의 외길을 걸었다. 국회, 총리실 등을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에 이어 1994년부터 인천에서 인천대학교 시립화,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 투쟁, 북구청 세도사건, 인천국제공항 개항, 경제자유구역 지정, 인천 신항 개항, 도시재개발 및 도시재생사업 등 수많은 현장을 취재해 인천 성장의 기록자이자 산증인이다. 인천서구문화재단 이사(전), 인천교통공사 이사(현), 인천언론인클럽 회장(현) 등을 맡았고, 제38회 인천시문화상을 수상했다.

인천의 문화지형도가 달라지고 있다. 인천문화를 대표하는 인천문화재단은 새 수장을 맞이했고, 새로운 문화도시가 탄생했으며, 여러 자치구에 기초문화재단이 각자의 비전으로 시민을 위한 문화적 토대를 놓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인천서구문화재단의 변화는 더욱 눈여겨 볼만하다.

최근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는 새로운 비전에 닿을 올렸다. 박희제 센터장을 새로운 리더로 맞이했기 때문이다. 인천 문화계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이 낯익을 것이다. 전 동아일보 기자였던 그는, 이미 ‘인천통’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기사는 오랜 시간 동안 인천 구석구석의 문화 소식과 그 숨은 의미를 전달해주었다. 그런 그가 이제 문화도시 서구를 일구어낼 새로운 리더십의 일원으로 합류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박희제 센터장과 문화도시센터 직원들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박희제 센터장)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제2의 고향 인천, 그리고 섬

박희제 센터장이 인천과 처음 마주한 시기는 중3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들과 무작정 떠난 여행지가 바로 작약도. 그때부터 인천의 섬이 가진 매력에 빠진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뿐이었다면 인천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가 인천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원 시절이었다. 인천의 노동운동과 관련된 책들을 독파하면서 새롭게 마주한 인천은, 그에게 그대로 일종의 로망이 되었다고 한다. 1989년 기자가 된 후 인천에 자원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섬 여행을 즐긴다는 박 센터장은 인천의 귀한 보배인 섬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낙원으로 되려면 생태와 문화적 요소와 더욱 잘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사례로서 일본의 나오시마를 예로 들기도 했다. 잘 알려진 대로 나오시마는 ‘예술의 섬’이다. 오래된 섬의 가옥들을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그러한 적극적인 문화적 접근이, 인천의 섬에도 요구된다는 것이다. 가령 덕적도의 서포리 해수욕장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섬임에도 그 문화적 가치가 경제성이라는 원칙에 가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마음을 전했다.

“지역의 문화자원을 긴 안목으로 이끌어나갈 정책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지역의 특색 없이 획일화될 수 있습니다.”

예비문화도시 서구를 본격적인 문화도시로 성장시킬 아젠다로 그가 내세우는 것은, ‘지역문화의 주체성’이다. 한 지역의 문화자원을 성공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함에도 실제로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지역 특색은 사라진 채 비슷비슷한 도시들이 넘쳐난다. 인천 서구 역시 이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서구에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서구만의 독특한 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 ‘시민력’이다. 무엇보다 원도심에서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키워 온 문화력의 역사가 길다. 대표적인 것이 가정3동의 경우이다. 주민들이 직접 벽화를 그리고, 화분을 심으며 디자인거리를 만들었다. 폐공장을 문화복합공간으로 재생시킨 ‘코스모40’과 함께 민(民)의 힘이 관(官)을 움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서구는 인천의 다른 도시에 비해 지역민과 밀착된 문화 활동이 잘 활성화 되어 있는 편이다. 여기에는 문화충전소의 영향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거점공간으로 모델링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원도심 문화재생 상생마을 – 문화더하기 회복나누기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문화공간 네트워크 활동 모습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혹시 이음카드가 서구에서 시작된 것을 아시나요?”

서구만의 자랑거리를 묻자 그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1820년대 협동조합운동의 창시자인 로버트 오엔의 노동바우처에서 기원한 지역화폐는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서 사용되는 익숙한 개념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재난지원금이 지역화폐로 지급되면서 가입자와 사용처 모두 급증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 전자화폐를 인천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 바로 서구였다. 그것은 ‘서로 이음’이었는데 그것이 인천이음카드 사용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서구민들의 염원이 적극적인 실행력을 보였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례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서구의 오랜 노력에 다시금 주목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서구는 오랜 시간 동안 환경적인 문제로 골치를 썩었던 도시였다. 쓰레기매립지와 소각장, 화력발전소, 주물공장 등 오염시설이 전국 최고로 몰려 있어 ‘환경재앙도시’로 불렸다. 이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변화가 요구되었다. 이에 서구가 내세운 것은 스마트 에코시티와 문화도시를 결합시키는 청사진이었다.

도심의 자투리 공간을 친환경적 포켓으로 활용하는 에코정원은 작은 곳에서부터 변화를 주도하려는 서구의 시각이 담겨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 민간 거버넌스에서 출발했고, 지자체의 행정이 그것을 도왔다. 이처럼 서구의 변화가 민관 협업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서구 성장 방향에 큰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주민참여생태공감프로젝트 – 문화이음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생태적 삶 시민조사단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회색도시가 녹색도시로

문화도시로서 인천 서구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역시 여기에 있다. 현재 서구가 내세우는 도시의 키워드는 ‘회복’과 ‘탄력’이다. 사실 이것만큼 서구와 잘 어울리는 말은 없을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서구의 이미지는 회색도시였다. 그러나 현재 서구의 이미지는 달라지고 있다. 오랜 회색도시는 새로운 녹색도시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가 지역민들의 주체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서구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이라고 본다. 결국 문화도시의 비전은 시민들의 문화적 주체성을 일상(생활)에서 풀어내는 것,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시민캠페인 및 펀드레이징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서곶시민살롱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서구를 움직이는 103개의 거점에 주목하라

센터장으로 취임한 지 10일 남짓, 그는 현장을 다니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서구에는 103개의 문화충전소가 있는데 그 가운데 58개를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 현재 20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도서관과 문화기획사업이 결합된 가정동의 <사도들교회>, 복합문화공간 <비움>, 10년간 주민들과 호흡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구 민중의 집> 등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2013년 문을 연 <서구 민중의 집>을 주민자치가 진화해온 좋은 사례로 꼽았다. 목재단지 주변의 동네 특성을 살려 노동자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아 맞벌이 자녀에 대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면, 회원들이 취미로 시작한 DIY 가구 만들기 동호회가 마을기업으로 성장했다.
서구에는 이러한 지역문화의 거점이 103개나 있다. 그것이야말로 서구의 문화적 동력을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에너지가 되고 있다는 점은, 서구만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문화다양성 기획학교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시민정책 공론장 <데모스 정서진>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예비’가 아닌 진짜 문화도시로의 발돋움

신임 박희제 센터장에게 인터뷰의 마지막이자 조금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 문화도시 선정에서 서구가 고배를 마시게 된 원인을 어떻게 극복하고 문화도시로의 마지막 도전장을 내밀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었다.

박 센터장은 부임한 이후 서구의 중요 거점을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사실 그간 그는 문화에 대한 동경이 컸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친문화적 감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부했다고 했다. 그런데 센터장으로 부임한 이후 그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더 많은 예술가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서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구상하고 일할 사람들을 조직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머릿속 구상이 현장의 역량과 잘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조직을 보강 중인데, 무엇보다 타성이 젖은 듯한 모습부터 고쳐나가는 과정이 그 첫 번째 단추가 될 것이라고 여겼다. 무엇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내부의 자체적 동력을 존중하면서도 외부 조력에도 열려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었다. 박 센터장 자신이 때로는 창으로 때로는 방패로, 바로 이 공간을 준비하고 채워 나가는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피력했다.

서구청년솔루션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지역문화자원활용실험단-콘텐츠실험(모노크롬)
인천서구문화재단 제공

문화는 사람이 만든다.

어떻게 역량을 최대치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문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문화도시의 구호 역시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조직 내부에 과부화가 걸리지 않게 조절하면서 지역의 민간과 협업하는 상생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단 역량으로만 감당하고자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거버넌스로 슬기롭게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잘 인식하고 있었다.

문화는 결국 사람이다. 문화도시의 이상 역시 결국 사람을 그 중심에 둘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새로 부임한 서구 문화도시센터 박희제 센터장을 중심으로 사람과 함께 성장할 문화도시 서구의 꿈과 도약을 응원하고 싶다.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인천문화재단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할 말이 많은 도시 인천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다”: 손다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천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기획 인터뷰: 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할 말이 많은 도시 인천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다” 손다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천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경인일보 박현주(朴賢珠) 정치부 기자

손다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천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그동안 인천이라고 하면 부평역 지하상가 정도만 떠올렸죠.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인천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 도시는 참 할 말이 많은 곳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죠.

 

손다혜(30) 영화감독은 인천에서 독립영화 제작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기록을 보여주지만, 그저 있는 그대로 거울처럼 보여주기만 하는 게 아니다.
손 감독은 “많은 사람이 현상을 담은 뉴스가 객관적인 매체라고 생각하는데 뉴스도 제작자의 견해가 들어가듯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그렇다.”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의 시선을 통해 사실을 나열하고, 제작자가 하고 싶은 말을 다시 어떻게 조합해서 만들지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8년 ‘인천 고택, 30일 간의 기록 – 지워버린 마을 부평2동 미쓰비시 줄사택’으로 제4회 더줌 다큐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2019년 시청자미디어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지워버린 마을 부평2동 미쓰비시 줄사택은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지역 문화와 역사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다룬 ‘시민영상 아카이브 인천’의 두 번째 프로젝트였다. 서울에서 방송과 드라마 편집, 편성 업무를 맡았던 손 감독이 잠시 일을 쉬던 시기 우연하게 알게 된 프로젝트였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징용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현장이 있다”는 해설로 시작한다. 영화 소재가 된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본 군수공장 ‘미쓰비시제강’에 징용된 노동자 숙소다.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한반도를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로 만들기 위해 서울과 인천항을 잇는 부평에 군수품을 생산하는 인천육군조병창을 만들었다. 이어 일본의 군수공장 중 하나인 미쓰비시제강도 이곳으로 오게 됐다.
“과거 미쓰비시제강이 있었던 부평공원에는 인천육군조병창과 미쓰비시제강에 강제 노역된 노동자들을 기린 ‘징용 노동자상’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아픔이 서린 공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큐멘터리 영화로 다루고 싶었어요.”

영화는 미쓰비시 줄사택에서 살았던 주민과 전문가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한 주민은 “미쓰비시 줄사택에 살던 사람들은 이곳을 빨리 떠나는 게 목표였다”면서도 “과거가 있어야 현대가 있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 근대 문화를 자꾸만 없애면 현대는 어디에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영화 속 인물의 말은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둡고 아픈 역사의 증거’라는 가치를 가지면서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미쓰비시 줄사택. 이 고택의 쉽게 헐릴 수 없는 운명을 짚으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인천이라는 도시에 관심을 두고 정착하기로 했다는 게 손 감독 얘기다.

“경상남도 밀양과 경기도 평택, 안성, 일산 등 여러 곳에 살다가 2017년부터 서울로 출퇴근하기 위해 인천에 오게 됐습니다. 그동안 어느 한 지역에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이 도시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손 감독은 이듬해 2019년에는 CJ나눔재단이 지원하는 한부모 자조모임 프로젝트 일환인 영화 ‘드림 캐쳐(감독·옥승희)’의 각본·구성을 맡기도 했다. ‘드림 캐쳐’는 나쁜 꿈은 걸러내고, 좋은 꿈만 꾸게 해준다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장신구 이름이다. 그는 청소년 시기 아이를 낳은 8명의 한부모와 유대 관계를 형성해 그동안 어디에도 쉽게 터놓지 못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는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 이후 과정에 더 많은 의의가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벅찼을 한부모들은 편견과 혐오라는 사회의 시선 속에서 항상 위축돼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한부모들이 많은 관객으로부터 응원을 받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가정의 부모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게 값진 의미가 있었다고 손 감독은 설명했다.

“영화에 출연한 한부모들은 영화 상영 이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아이 엄마들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그동안 내가 한부모라는 사실을 밝히면 좋지 못한 소리를 들은 관성이 컸을 테니까요. 그러나 많은 관객이 이들과 얼굴을 마주 보면서 한부모들을 위로하고 이해하고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부모들은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하니 이보다 더 뿌듯하고 기쁜 성과가 있을까요.”

손 감독은 낯설었던 인천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영화인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현재 지역 영화인들과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2020년부터 인천 영화인들이 모인 사단법인 인천독립영화협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3년 발족한 인천독립영화협회는 인천 지역 독립 영화인에게 필요한 인적 자원은 물론, 교육·사업 등을 연계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인천에서 활동하던 독립영화 감독들이 “다 같이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한 것이 인천독립영화를 조직한 계기였다. 올해는 인천독립영화협회가 매년 열고 있는 ‘인천독립영화제’가 10회를 맞이하면서 이전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인천독립영화제는 인천 영화인을 발굴하고, 주민에게 독립영화를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관객 수가 늘었고,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감독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손 감독은 올해 8월 열리는 인천독립영화제 주제를 ‘지나온 10년, 나아갈 10년’으로 잡고, 인천의 독립영화가 성장한 과정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방안을 기획하고 있다. 인천독립영화제가 인천 영화인과 시민들의 문화를 보여주는 ‘인천의 예술 축제’로 확장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지난 10년간 영화제에서 상영한 작품 중 인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다시 살펴보고 인천과 인천 독립영화를 통해 성장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이뿐만 아니라, 인천의 독립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거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이 인천 독립영화와 함께 성장한 만큼, 다 같이 어울릴 수 있는 행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손 감독은 지역 영화인과 함께 인천만의 ‘영상문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영화인이 영화 제작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더라도 인천에서 독립영화를 만들고, 상영하고, 배급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인천에서도 영화인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인천독립영화협회가 그 기반을 만드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상업영화에서 흥행이라는 요소 때문에 배제될 수 있는 다양한 ‘메시지’를 오롯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독립영화만이 갖는 매력 아닐까요. 지역 영화인이 제작한 독립영화를 통해 그동안 관객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인천만의 이야기를 전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진행/글 박현주(朴賢珠, Park Hyeonju)

경인일보 정치부 기자




청라의 푸른 보석, 청라블루노바홀

청라의 푸른 보석, 청라블루노바홀

전은주 (全恩珠, Jeon Eun ju)
인천서구문화재단 공연전시팀

서구에서 문화시설에 대한 확충 요구는 지속적으로 있었다. 56만 서구민의 문화수요를 감당하기엔 서구문화회관만으로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2018년 실시된 서구민 문화향유실태 조사와 지역예술가 및 전문가들과의 FGI 등에서도 문화시설 확충에 대한 필요가 단연 1순위 꼽혔다. 이러한 필요와 요구에 따라 2017년 첫 삽을 뜬 청라블루노바홀은 우여곡절을 거쳐 2021년 7월 완공되었다. 서구에서는 서구문화회관에 이어 두 번째, 청라국제도시에서는 첫 번째 공공 공연장이 문을 열었다.

청라블루노바홀 전경

청라블루노바홀’의 독특한 네이밍은 시민공모를 통해 선정된 것이다. 국제도시에 자리한 공연장 특성에 맞는 명칭과 청라(푸른 보석)라는 지명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활용한 이름을 공모했고, 그 결과 지금의 ‘청라블루노바홀’로 이름 지어졌다. 청라블루노바홀은 청라의 靑(청)의 의미를 가져온 BLUE(블루)와 새로움을 뜻하는 포르투칼어인 NOVA(노바)를 합성한 이름으로 ‘청라의 새로움’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청라블루노바홀은 총486석(장애인석 5석)의 중극장과 약 60여평의 전시장을 갖춘 복합문화시설이다. 2층에는 주민들을 위한 카페테리아가, 지하1층에는 출연자를 위한 단체분장실과 개인분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청라블루노바홀은 인천 공공극장 최초로 무대와 객석이 가변형으로 만들어진 블랙박스형 극장이다. 무대와 객석이 구분된 액자 방식의 프로시니엄 무대뿐 아니라 공연 특성에 따라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연출이 가능하며, 스탠딩 콘서트, 마당극 등 다양한 형태의 공연들을 올릴 수 있다.

공연장 (출처:인천서구문화재단)

전시실 (출처:인천서구문화재단)

위치적 특징과 극장 본연의 특성에 발맞추어 청라블루노바홀은 예술작품의 다양성과 관객층 다변화를 목표로 젊은 공연장을 표방한다. 장르의 편중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이머시브 연극, 미디어아트, 인터렉티브 아트 등 공연장만의 색깔을 나타낼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2022년 청라블루노바홀은 클래식 시리즈인 ‘아르스노바 (Ars-nova) 시리즈’로 새해를 맞이했다. ‘아르스노바’는 14세기 초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일어난 음악의 새로운 경향을 이르는 라틴어로, ‘새로운 예술’을 뜻한다. 아르스 노바의 「노바」는 「청라블루노바홀」의 「노바」와 같은 의미로 청라블루노바홀만의 젊고 신선한 클래식 무대를 소개하는 시리즈이다. 첫 번째 공연으로 <손열음 피아노 리사이틀>이 성황리에 공연되었으며, 9월 테너 존 노의 리사이틀이 예정되어 있다.

청라블루노바홀 개관작 연극 <달려라,아비>

청라블루노바홀 개관기념공연

아르스노바 시리즈와 동시에 선보이는 인디버스(Indie-Verse) 시리즈는 독립레이블을 뜻하는 ‘Indie’와 세계 또는 공간을 뜻하는 ‘Verse’의 합성어로 독립레이블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시리즈로 주류와 비주류, 언더와 오버를 아우르는 2030 관객층을 위한 콘서트 시리즈이다. 2021년 아도이, 2022 카더가든, 치즈 콘서트를 진행했으며 7월에 밴드 쏜애플의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8월 첫 선을 보이는 ‘디 아떼(D’ate) 시리즈’는 청라블루노바홀의 극 중심의 연작으로, 블랙박스 극장의 형태를 적극 활용한 이머시브 연극, 실험극, 어린이공연 등 다양한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정동극장이 제작한 뮤지컬 ‘포미니츠’가 디 아떼 시리즈의 첫 무대로 기대롤 모으고 있다.

아르스노바 시리즈 vol.1
<손열음 피아노 리사이틀>

인디버스 시리즈 vol.2
<카더가든 콘서트>

청라블루노바홀은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확산하는 문화허브의 역할을 통해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이 샘솟는 공간, 주민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하는 공연장 본연의 역할과 함께 공연장의 문턱을 낮추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GV(Guest Visit)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달려라 아비의 원작자인 김혜란 작가의 북 콘서트, 피아니스트 조재혁의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 등을 진행하였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관객 참여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년 초, 개관 준비 중인 청라블루노바홀의 무대를 처음 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준비할 것도 많고 고민할 것도 많은, 이제 막 시작하는 공연장에 대한 걱정과 설렘이 교차하던 그 순간.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 순간, 청라블루노바홀이 지역에서 갖는 역할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항상 결론은 단순하다. 양질의 문화콘텐츠를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문화충전소, 아이들의 감성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놀이터, 청라호수공원을 산책하던 주민이 잠깐 들려 커피를 마시는 휴식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 전은주(全恩珠, Jeon Eun ju)

인천서구문화재단 공연전시팀

사진제공 : 인천광역시 서구문화재단




「중구 문화예술교육 라운드테이블」, ‘쿵!’ 그 시작을 알리다.

「중구 문화예술교육 라운드테이블」, ‘쿵!’ 그 시작을 알리다.

서문솔(인천중구문화재단 생활문화팀)

인천중구문화재단은 지난 3월 16일 한중문화관에서 ‘중구 문화예술교육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인천 중구 지역 현황에 부합하는 문화예술교육 방향성을 모색하고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공론의 장으로 지역 문화예술단체, 예술가, 기획자, 교육담당자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교육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본 라운드테이블은 인천중구문화재단이 지난 1월 출범 후 중구 지역 내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주체들과의 역사적인 첫 대면자리로써 큰 의미를 지닌다. 중구를 기반으로 문화예술 관련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기획자, 명장 등이 각자의 위치에서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는 자리였다.

중구 문화예술교육 현황과 사례 살펴보기

재단이 설립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재단의 역할을 정립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중구 현황에 부합하는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성 설정과 함께 지역자원을 기반으로 한 효율적인 운영방안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전승용 인하대 문화예술교육원 주임교수는 중구 구민 대상의 문화예술교육 수요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중구 문화예술교육 현황’을 발표하였으며 중구 주민들과 오랜 시간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해온 윤종필 꾸물꾸물문화학교 대표는 ‘지역기반 문화예술교육 사례’를 발표하여 실제 추진하였던 다양한 사업을 공유하였다. 주제발표를 통해 중구 구민들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만족도 및 니즈(Needs), 참여활동 현황 등을 파악할 수 있었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던 구민들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재단뿐만 아니라 관련 문화예술교육 관계자들도 실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업을 운영할 시 많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였다.

‘중구 문화예술교육 현황’과 ‘지역기반 문화예술교육 사례’ 발표

자유로운 원탁회의 진행

본 라운드테이블은 주제별 발표공유도 중요하였지만 무엇보다도 구민, 예술가, 문화예술 유관 단체, 교육 담당자 등 중구 내 문화예술교육 관계자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들이 자유로운 논의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오랜만의 대면 만남으로 서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그리고 첫 대면하는 분들은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인사를 나누고 친목을 다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중구 문화예술교육의 지속성 및 활성화를 위해서는 문화예술인 발굴을 지속하고 지역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등 장기적인 인력관리과 활용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재단과 함께 협업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적 네트워크 구축

함께, 함께, 투게더

라운드테이블을 운영하면서 재단의 역할이 크며 지역의 문화예술교육 관계자들과 함께 협업하여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었다. 지역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는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함께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협업하면서 움직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중구 구민들의 수요를 파악하고 이에 따른 맞춤형 콘텐츠 및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중구 원도심과 영종도 등 공간과 생애주기별 전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예술교육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적극적인 온·오프라인 홍보마케팅을 통해 지역 내 문화예술교육 관계자, 중구 구민들과의 소통 채널을 구축하여 다양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나누어 이를 문화예술 콘텐츠와 프로그램에 반영하고자 한다. 함께 합심하면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만남을 시작으로 일시적인 만남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각 주체들 간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것이며 구민들에게 문화예술교육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여 중구의 문화예술교육이 점차적으로 활성화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원탁회의 진행

사진제공 : 인천중구문화재단 생활문화팀

글/사진 서문솔(西門솔, Seomun Sol)

인천중구문화재단 생활문화팀 대리로 생활문화와 문화예술교육 관련 다양한 사업을 계획 및 추진 중이다.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 박사를 수료했으며 한국축제포럼 청년분과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예술가, 기획자분들과 어울리면서 함께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에너자이저 같은 사람이다.




인천 청년문화예술사업 중장기 로드맵에 대하여

인천 청년문화예술사업 중장기 로드맵에 대하여

협동조합 청풍 이사장 유명상

미래가 뻔히 보이는 사회

한국 사회는 짧은 시간에 빠르게 변화해왔다. 그래서 세대별로 청년기의 경제, 문화, 사회적 경험이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20~30년 전 청년들은 환경이 힘들더라도 사회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주변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 희망은 점점 옅어지다가 앞이 안 보이는 시기를 지나 지금의 청년들은 이제 내 미래가 뻔히 보이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 부모님의 직업과 자산, 학력 등 주변 환경을 통해서 내 삶의 경로를 높은 확률로 예측 가능한 사회가 되었다. 이로써 청년문화는 저항과 변화에 대한 열망보다 포기와 현재에 대한 수긍과 만족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는 청년들에게 젊은데 왜 패기와 노력이 없냐고 되묻고만 있다.

청년은 노력으로 인천에서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자산을 물려받지 않고는 인천에서 내 집 한 칸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외부의 도움과 지원 없이 노력만으로 개인이 현실을 극복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인천에서도 청년에게 기회를 부여한다고 하지만 지금 시대에 맞는 이슈와 현안에 맞춰 삶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기보다 청년을 대상화하고 수혜자로 바라보는 형태로 단발성 지원을 하는 형태가 계속되었다. 청년들의 자립보다는 눈에 띄는 사업, 예를 들어 사람이 찾지 않는 전통시장의 허름한 공간을 청년들에게 내주면서 해석하기 쉬운 그림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기업이었으면 무상임대라도 그런 허름한 공간에 쉽게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청년들에게 기회라고 주었지만 정작 그것은 자산이라기보다 부채에 가깝다. 유동인구가 많은 구월동, 부평의 한복판에 청년들이 활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 전시장, 공연장, 상점이 생긴다면 더 많은 기회가 생겨날 것이며, 청년들도 성공의 경험을 쌓아 더 다양한 도전과 삶의 경로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책과 제도는 청년들에게 가능성의 자산을 쌓게 만들어 주기보다는 계속 노력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나가는 방식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노력하지만, 존재만 외치고 삶은 변화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된다.

인천 청년문화 중장기 로드맵의 필요성

청년 스스로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엔 한계가 있는 시대이다. 단편적인 지원의 형태로 청년을 도구화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을 정책과 사업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당사자 중심으로 제도와 정책을 같이 만들어 나갈 때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청년들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변화의 시작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청년문화의 이정표가 될 청년문화 중장기 로드맵이라고 느꼈고, 자연스럽게 인천의 청년예술가, 청년활동가들과 함께 인천 청년문화예술사업 중장기 로드맵 제안 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인천 청년문화예술사업 중장기 로드맵 제안

1. 사업 수혜자가 아닌 당사자로의 문화예술 정책 방향 수립

2. 청년문화 예술 거점 공간의 안정성 확보

3. 청년사업 활성화를 위한 네트워크 발굴

4. 청년예술가의 창작-발표-유통에 이르는 문화예술 선순환 구조 제도 마련

5. 청년 생애주기에 따른 다양한 사업 방식 모색

인천 청년들이 모인 라운드 테이블과 몇 번의 회의를 거쳐서 이렇게 크게 5가지의 방향으로 제안이 나오게 되었고 로드맵이 만들어졌다.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인천에서 10여 년간 활동해 오던 청년예술가와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자신의 힘든 경험을 토로하기보다 다음 세대가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활동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청년문화 생태계 마련

청년문화예술사업 중장기 로드맵은 청년들이 수혜자가 되어 자산을 나누어 주고 소유하게 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 세대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에게 쓰임새 있고 활용 가능한 유무형의 자산들이 필요하고, 그런 자산을 발판 삼아 청년들이 인천에서 실험과 도전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인천은 내가 살아가는 곳이 되고, 인천만의 청년문화가 만들어지며, 청년들의 삶도 보다 변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유명상(劉明相, Yoo Myeong-Sang)

– 협동조합 청풍 이사장

– 카카오임팩트 펠로우




시각예술가 윤미류

이름: 윤미류(尹美柳/Miryu Yoon)

출생: 1991년

분야:시각예술(회화)

인천과의 관계: 레지던시(아트플러그 연수) 입주작가

작가정보:  홈페이지(miryuyoon.com), 인스타그램@miryuyoon023

이메일: miryuyoon@hotmail.com

학력
2018 서울대학교 서양학과 석사 졸업
2016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21 Not Walking at a Consistent Pace, Plan C, 전주
2018b> PIPE; HOLE; BASEMENT, 상업화랑, 서울
주요단체전
2022 전북청년 2022, 전북도립미술관, 완주
2022 I Always Wish You Good Luck, 아트플러그 연수, 인천
2021 그리고 라이브, 문래예술공장, 서울

1.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품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대학원 졸업 후에는 화방에서 잠깐 일을 했다. 평범한 화방 같지만, 사진관과 디자인 사무소와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겸하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을 자주 회상하는데, 가장 흥미롭다고 느낀 것은 온갖 사람들이 가져오는 다양한 이미지를 다루면서 타인의 아주 사적인 부분을 들여다볼 기회였다. 각자의 이유로 생성되고, 편집되고, 보존되고, 복제되고, 아껴지고, 폐기되는 이미지를 보며, 이미지에 얽힌 개인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이미지의 위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또한, 이미지를 단서로 그것과 연관된 사람들을 미세하게 추적하곤 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시간, 관계, 사건, 감정은 어떠한 모양일지 생각했다.

주변에 대한 목적 없는 관찰과 상상이 일상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어떻게든 접점이 있는 것, 특히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외국에서 적당한 공간과 재료를 갖춰 유화라는 매체를 쓰는 게 어려워서이기도 했지만,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취미를 들인 스냅사진이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대표작이라기보다는, 포트폴리오에 먼저 들어가는 것이 그곳에서 만난 목수 부부와 그들의 작업장을 그린 <The Studio> 시리즈이다. 사흘간 함께 지내며 본 것을 그리기 위해 일 년을 보냈다. 눈앞의 익숙하지만, 또 낯선 형태들에는 무언가 아름답고 흥미로운 면이 있다고 느꼈고 그것을 평면에서 다시 찾고자 했다.

Not Walking at a Consistent Pace, 2021 Not Walking at a Consistent Pace, 2021 Woodwork, 2020

2.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어떤 일이 벌어지는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내가 그 중요한 순간에 있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래 간직할 장면이나 말의 무게를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하다가 종종 한발 늦게 깨닫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기록을 자주 하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쌓여서 나중에 영감이라고 부를만한 무언가가 되는 듯하다. 작은 끄트머리라도 잡고 있던 것들, 놓치지 않고 모으고 쌓은 것들이 이러저러한 조합으로 화면에 드러나는 편이다.

3.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 또한 관객의 입장에서 다른 그림들에 감탄한다. 어떤 그림이 매력적인 이유를 다양하게 찾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여러 이유의 총합으로도 결국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페인팅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인 듯하다. 그렇게 ‘좋은’ 그림을 보면 작가 개인의 모습에 대해서도 상상한다. 이 부분에서는 어떻게 붓을 잡았을지, 화면에 무슨 레이어를 먼저 그렸을지, 여러 붓질 사이에 머뭇거리는 구간은 어디일지에 대한 상상이, 평소 어떤 것을 읽고 듣는지, 그림 다음으로 몰두하는 게 무엇인지, 자주 하는 기록의 형태가 글인지 그림인지, 무뚝뚝한 성격인지 또는 가끔 누구를 웃기기도 하는지 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생각으로 한동안 누군가와 그의 그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다른 사람도 내 그림을 보고 비슷한 상상을 할지 궁금해진다. 내 그림을 통해 직관적인 ‘좋음’의 감각을 전하면서도 모종의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경험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Little Drops, 2021

4. 앞으로의 작품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확고한 작업 방향이랄 것은 없다. 내가 관심을 갖는 큰 틀과 관련하여 생겨나는 예상치 못한 방향을 어쩌면 기다리고 반긴다. 최근에는 대상을 중심으로 떠올리게 되는 사적이고 추상적인 감각의 비중이 커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은유적으로 보여줄 방식을 고민했다. 대상을 두고 생각한 세부적이면서도 또 모호한 키워드를 구체적인 상황으로 이어본 것이 동생을 모델로 두고 그린 그림이다. 내게 고유한 한 장면이지만 동시에 어딘가에 있을법한 이야기의 한 토막으로 보이는 이미지들을 생각해보고 있다.

Green Ray Ⅰ, 2021 Green Ray Ⅱ, 2021

5. 예술적 영감을 주는 인천의 장소 또는 공간은?

인천 하면 바다가 떠오르겠지만, 바다에 대해 확실히 긍정적인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수학여행 가는 배에서 내려다본 새까만 바닷물이 주는 압도감이라든지, 심해체험이라며 끝없이 스크롤을 내리면서 상상하게 되는 미지의 공간이 주는 아득함이라든지. 하지만 인천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인천대교를 건넜던 게 꽤 인상적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면적의 공간 한가운데를 속력을 갖고 가로지르는 쾌감이라는 것. 그러면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 바깥의 풍경이 내가 느끼는 감각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 사실 자연으로부터 어떤 감흥을 느낀다는 것을 잘 모르기도 하고, 일부러 특정 장소를 찾고, 공간에 특별한 애착을 갖는 게 나와는 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걸 이해할만한 변화가 짧은 몇 년 사이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림에서의 변화도 있었다. 2021년도의 그림은 계곡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는데, 그림의 장치로 물을 쓰게 되면서 물과 관련된 여러 기억과 감각을 떠올렸다.

It Forms, Flows, and Falls, 2021

The Play of Light on the Surface, 2021




사건의 현장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한국 근대추리소설 특별전 – 한국의 탐정들>

사건의 현장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한국 근대추리소설 특별전 – 한국의 탐정들>

박보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탐정의 혈관에는 강철이 돌아야 합니다.”

여기 프록코트와 실크해트 차림에 모노클을 낀 한 남자가 있다.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채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풀어낸 명탐정이다. 이 사람의 이름은 셜록 홈즈도, 에르큘 포와로도 아니다. 그의 이름은 유불란(劉不亂), 죽일 유(劉)자를 성씨로 가진 사람답게 심상찮은 살인사건들을 해결해내는 한국 근대의 명탐정이다. 셜록 홈즈와 괴도 뤼팽이 탄생하고 인기를 끌던 시절, 놀랍게도 한국에서도 명탐정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한국근대문학관에서 한국의 근대추리소설을 주제로 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한국근대추리소설 특별전 – 한국의 탐정들>(2021.11.5.~2022년 상반기)이다. 이 전시는 현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탐정들을 중심으로 한국 추리소설의 역사를 조망한다.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각 작품의 살인사건에 몰입해 범인의 정체를 골몰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탐정들 포스터 (인천문화재단 제공)

전시는 총 6개의 섹션과 하나의 특별 코너로 나뉘어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며 마주하게 되는 첫 번째 섹션 ‘정탐의 출현’에서는 한국 탐정소설의 시작을 보여준다. 한국 최초의 탐정소설은 이해조의 『쌍옥적』(1908)이다. 이 시기 한국에 처음 등장한 추리소설과 탐정은 ‘정탐소설’과 ‘정탐’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다. 20세기 초,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썼을 법한 시체 초검 보고서와 법의학서, 범인의 행로를 기록한 지도를 보고 있자면 CSI 못지않은 한국 근대 시기 탐정들의 활약상이 눈앞에 그려진다.

두 번째 섹션은 ‘소년탐정’이다.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 덕분인지 소년탐정이라는 단어는 우리들에게도 익숙하다. 1920년대 중반에 소년탐정이 한국 근대추리소설의 역사에 등장한다. 이 시기는 방정환을 중심으로 ‘어린이’라는 말이 만들어지면서 근대적 어린이관이 형성되던 시점이다. 전시장에는 방정환이 어린이들을 위해 창작한 『동생을 찾으러』(1925)가 도트 게임으로 구현되어있다. 게임 속에서 직접 소년탐정이 되어 납치당한 동생을 구하러 떠나보자.

『마인』 신문 연재 삽화 모음

국보와 괴적』 컨셉 아트

기획전시실의 2층으로 올라가면 세 번째 섹션 ‘탐정의 탄생, 프로탐정의 출현’을 만날 수 있다. 1920년대가 되면 한국의 독자들이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과 같은 외국 추리소설을 접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국의 창작 추리소설 속에서도 민간 탐정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전시장에서는 민간 탐정이 최초로 등장하는 소설 『혈가사』(1920)를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할 수 있다.

마침내 네 번째 섹션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명탐정-유불란(劉不亂)’이 등장한다. 이 섹션에서는 모리스 르블랑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가진 유불란이 다양한 살인사건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추리소설에서 탐정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팜 파탈로 등장하는 여성들이다. 한국형 추리소설에서 이 팜 파탈들은 탐정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마인』(1939)에서 유불란은 팜 파탈로 인해 진범을 놓치게 된다. 이에 그는 “탐정의 혈관에는 강철이 돌아야”한다는 말과 함께 탐정을 폐업한다. 유불란이 놓친 진범이 누구였는지는 전시장에서 직접 추리해볼 수 있다.

다섯 번째 섹션인 ‘변질된 탐정들’에서는 『태풍』(1942)이라는 작품으로 돌아온 유불란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유불란이 아니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 이어지던 상황 속에서 유불란을 비롯한 탐정들은 일본의 전쟁 승리를 위해 스파이를 색출하는 방첩활동을 벌인다. 이처럼 변질된 탐정의 모습은 해방 이후 새로운 탐정의 등장을 통해 해소된다. 여섯 번째 섹션 ‘해방기 탐정, 애국 탐정 – 장비호’에서는 유불란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탐정 장비호를 만나볼 수 있다. 그는 예술과 격투기에 능한 잘생긴 로맨티스트이며 경찰들도 풀지 못한 사건들을 척척 해결해내는 명탐정이다. 도난당한 신라 금관을 찾기 위해 일본과 중국을 종횡무진 하는(『국보와 괴적』(1948)) 장비호의 행보를 전시를 통해 따라가 보는 건 어떨까.

주요 인물들의 컨셉 아트를 모아둔 조형물

<한국의 탐정들>은 최초의 한국근대추리소설 전시로서 희귀한 자료들을 공개하고 있어 학술적으로 의미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 관람객의 입장에서도 흥미진진한 전시다. 관람객은 작품 속 장면을 구현해놓은 포토존, 피 묻은 증거품들, 직접 해독해볼 수 있는 암호를 통해 소설을 오감으로 체험해볼 수 있다. 전시를 따라가다가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진다면 특별 코너로 향하면 된다. 20세기 초 번역, 번안 추리소설들을 소개하고 있는 특별 코너에는 다양한 추리소설들이 함께 비치되어 있어 원하는 작품을 직접 읽어볼 수도 있다.

셜록 홈즈는 알지만 유불란은 모른다면, 혹은 그냥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한국의 탐정들>을 관람하러 가보자. 전시는 무료이고 방문이 어려우면 홈페이지에서 VR로도 관람이 가능하다. 하지만 넉넉히 시간을 잡고 직접 찾아가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온라인으로는 체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장치를 통해 미스터리한 사건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작품도 읽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만다. 그럼 범인들의 실마리를 찾으러 지금 떠나보자.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 온라인전시

글/사진 박보연(朴保姸, Park, Bo Yeon)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오래된 시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나라 최초 호텔에 울려 퍼지는 특별한 피아노 선율: 대불호텔 피아노의 방

우리나라 최초 호텔에 울려 퍼지는 특별한 피아노 선율 대불호텔 피아노의 방

손민환(부평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최근, 중구 대불호텔 전시관 3층에 <대불호텔 피아노의 방>이 꾸며졌다. 이번 전시는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고(故) 이문영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명예교수가 아내 김석중 여사에게 선물한 피아노를 메인으로, 인천에 유입된 서양 악기와 근대 음악사를 함께 보여준다. 지난해 중구에 이 피아노가 기증된 것을 계기로, 기증자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개최한 전시다.

모든 전시가 마찬가지겠지만, 기획 의도와 유물에 담긴 스토리를 알면 더욱 재미있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하나의 메인 유물을 가지고 전시를 풀어낸 이번 전시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또한 이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대불호텔전시관에 대한 공간 이해가 선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 본다.

전시실 전경 

이번 전시가 진행된 대불호텔 전시관은 개항도시 인천에서 특별한 공간이다. 1884년 경, 일본인 무역상 출신 호리 히사타로(堀久太郞)가 일본식으로 목조 2층 건물을 짓고, 자신의 별명인 대불(大佛)에서 이름을 따서 ‘Hotel DAIBUTSU’라 부른 것이 대불호텔의 기원이다. 1885년 우리나라에 입국한 선교사 아펜젤러, 언더우드의 비망록에도 이 호텔에 머물렀던 기록이 확인된다. 호리 히사타로는 원래 호텔의 옆 부지에 서양식 벽돌조 3층 건물을 세워 1888년부터 본격적인 호텔 영업을 시작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호리 히사타로의 아들인 호리 리키타로(堀力太郞)가 이어 받아 운영하였다. 1918년 경 호텔을 매입한 중국인에 의하여 ‘중화루’라는 중화 요릿집이 되었다가 1970년 초 문을 닫고, 1978년 철거되어 주차장으로 사용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불호텔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2018년 대불호텔을 재현하고 전시관으로 사용하면서부터다. 수년간 지속해 온 ‘개발’과 ‘보존’, 그리고 ‘복원’과 ‘재현’ 논란 끝에 재현된 대불호텔을 전시관으로 이용하면서, 다시금 대불호텔이 주목 받게 되었다. 명확한 역사적 근거를 토대로 재현이 아니라 복원해야 했다는 쓴 소리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 시민과 인천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문화 거점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이번에 김석중 여사의 피아노가 전시되면서 대불호텔 전시관에 의미가 한층 더해졌다. 이 피아노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령 피아노’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2011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배재학당 피아노(1911년 제작)보다 20여 년 앞서 제작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가치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은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기에 충분했다.

이 피아노는 뉴욕의 소머 앤 컴퍼니(Sohmer & Co.)에서 제작한 것으로, 제작 시기는 1888년경으로 추정(필자 추정)된다. 관람객들은 볼 수 없으나 피아노 상판을 열면 ‘PAT.’와 일련번호가 기입되어 있다. PAT.는 기술 특허를 의미하는 Patent의 약자로, 이 피아노에는 6개의 특허 승인 일자가 각인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지막 특허 승인 날짜는 1887년 3월 8일로, 특허 내용은 음색을 풍부하게 만드는 기술(Aliquot String)이다. 언론에서는 이 일자를 근거로 1887년에 제작된 것으로 일제히 보도하였다.

일련번호 또한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 피아노의 일련번호는 ‘15262#5’로, 소머 사는 1885년 12200, 1890년 17200, 1895년 22500, 1900년 27800 등의 일련번호를 순차적으로 부여하였다. 산술적으로 1년에 약 1000번 정도의 일련번호가 부여된 것으로, 15000번 대는 1888년경에 부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PAT.와 일련번호를 토대로 볼 때, 이 피아노는 1887년 최신 특허 기술을 도입하여 1888년경에 생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허 승인 일자

일련 번호

사람들이 이 피아노에 관심을 주목했던 부분은 최고령 피아노라는 것도 한몫했지만, 피아노에 관한 로맨틱한 이야기였다. 사실, 최고령 피아노라는 보도 자료가 무색하게 이보다 더 오래된 피아노가 국내에 존재하고 있다. 비록 최고령은 아니지만 이 피아노가 간직한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가족사진(ⓒ차녀 이선아 박사)

1959년, 미국 유학을 마친 고(故) 이문영 교수는 중고 피아노를 구입하여 인천항을 통해 입국했다. 한국에 남아서 자신의 유학을 뒷바라지했던 아내 김석중을 위한 선물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며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군사 정권 하에 3・1민주구국선언, YH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에 목소리를 낸 이 교수가 해임과 옥고를 거듭하는 동안, 아내 김석중은 자녀들과 피아노를 치며 그 시간을 인내했다고 전한다.

이문영 교수 부부가 작고한 이후, 이 피아노는 이 교수와 인연이 있었던 이영근 한국사법교육원 이사장에게 전해져 한국사법교육원 내 휘란 작은 도서관에서 전시되었다. 그러다가 생전에 “백범 김구를 존경한다.”는 이문영 교수의 발언에 따라 이영근 이사장이 이문영 교수의 자녀들과 상의하여 지난해 인천 중구에 피아노를 기증하였고, 인천중구문화재단에서 기증자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이번 전시를 기획한 것이다.

아내에게 바친 선물로 민주화 운동의 대부의 집에서 자리 잡았던 이 피아노는, 이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이었던 대불호텔 전시관에 자리 잡게 되었다. 전시와 더불어 토크콘서트와 작은 음악회를 수시로 개최할 계획이라고 하니, 눈으로만 보는 유물이 아니라 귀로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사진 손민환(孫珉煥, Son Min Hwan)

인천 지역사 연구와 전시 기획을 주로 하고 있다. 인하대학교박물관,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인천개항장연구소를 거쳐 부평역사박물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역주 강도지,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인천의 문화사적과 역사터, 도쿄제강 사택에 담긴 부평의 시간 등의 집필에 참여했고, <열우물연가: 부평 마지막 달동네>, <해방공장: 1945년 군수기지 부평의 기억> 등의 전시를 기획하였다.




문화정책동향 2022-02호 〔2022년 2월 16일~2022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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