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임진예성포럼 개최


일 시
: 2019년 11월 4일 월요일 13:30~18:00
장 소 : 인천하버파크 호텔 14층 스카이베이

행사정보

인천문화재단은 경기문화재단, 연변대학교 조선반도연구원과 함께 11월 4일(월) 오후 1시 30분부터 6시까지 <남‧북한 중세왕릉의 세계유산 교차 확장등재 가능성 검토>를 주제로 인천 하버파크 호텔에서 제2회 임진예성포럼을 개최한다.

2013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북한의 개성역사유적지구에는 고려 태조릉과 공민왕릉 등이 포함되어 있으나 남한의 강화도 고려 왕릉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에 포럼에서는 한국 중세왕릉의 특징을 살펴보고 문화유산의 가치를 제고하는 방향에서 개성역사유적지구에 강화의 고려 왕릉·고분을 포함하는 확장등재 가능성과 그 실천을 위한 제반 접근방략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먼저 이희인 학예연구관(인천시립박물관)이 <고려왕릉의 현황과 보존>을, 정해득 교수(한신대 한국사학과)가 <조선초기 왕릉과 공민왕릉 비교 연구>를, 이상해 석좌교수(국민대)가 <남북한 왕릉 교차 확장등재>를 발표하고. 조우연 교수(연변대 역사학과), 김은선 팀장(대전시 선사박물관), 이규철 부연구위원(건축도시공간연구소)이 각각 토론한다. 이어 심승구 교수(한국체육대)가 좌장을 맡아 발표자·토론자 및 김태식 부장(연합뉴스 문화부), 강성산 교수(연변대 역사학과) 등 참가자 전원이 참여하는 종합토론을 진행한다.

이번 포럼은 역사와 문화유산에 관심 있는 시민이나 연구자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음악여행 <팡파르>

일 시 : 10월 26일 (토) 11시, 14시, 10월 27일 (일) 11시, 14시
장 소 :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
관람 연령 : 전체관람가
관 람 료 : 2만원
할인 내용 : SNS 팔로우 할인 20%
 – 인스타그램/페이스북 중 택 1, 현장증빙 (인스타그램 @ littlefunny0415/ 페이스북facebook.com/hicomfunny)
 – 3인 가족이상 할인 30%, 가족관계 증명서 현장증빙
 – 재관람 할인 40%
 –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동반 1인) 50%

예 매 : 인터파크티켓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문 의 : 하이컴퍼니 070-4250-0508

행사 정보

보고, 듣고, 즐기고, 온몸으로 음악과 교감하는 어린이 음악극 <팡파르>는 노래하는 ‘누구’씨와 함께 음악여행을 떠나는 컨셉으로 트럼본 백조, 혼 사자, 튜바 코끼리, 트럼펫 뻐꾸기를 통해 다양한 금관악기를 만날 수 있는 공연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모차르트, 브람스 등 친숙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귀로 감상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창작곡을 함께 따라 부르며 리듬, 빠르기 등 음악의 다양한 요소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구성해 아이들이 음악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 <레디메이드 만석(Ready-Made Manseok)>


전시기간 : 2019년 10월 25일 ~ 11월 24일
전시오픈 : 2019년 10월 25일 17시 우리미술관 전시관
주최·주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천문화재단, 우리미술관
후 원 : 국민체육진흥공단, 인천광역시 동구청
전시장소 : 우리미술관 전시관
전시작가 : 이 탈
관람시간 : 화,수,금,토,일 10:00~18:00/ 목 14:00~18:00
휴 관 일 : 매주 월요일
문의사항 : 032-764-7663~4

전시정보

이번 전시는 인천 동구의 산업화를 주제로 기획된 것으로 공단노동자의 생활문화, 만석동의 방직회사, 산업화 시절의 공장, 적산가옥 등 역사성을 지녔으면서도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주제로 준비했다. <레디메이드 만석>에서는 산업화된 도시와 인간을 중심 이미지로 표현한 작가의 미디어 아트 작품(3점 내외) 등을 전시할 예정이다.

본전시의 제목인 ‘레디메이드’의 뜻은 미술 용어에서 기성품, 이미 만들어진 산업물 등을 지칭한다. 100년 전부터 이러한 오브제를 미술의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에서는 산업화의 시작과 함께 직업전선으로 가려는 군상들의 모습을 소설로 담아냈는데, 이때의 레디메이드는 취직을 위한 스펙을 만들어 놓은 기성화된 인간이다. 본 전시에서 레디메이드는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산업화로 생산되어 팔리기를 기다리는 산업물, 다른 하나는 구직을 위해 자신의 스펙을 이미 만들고 구애하는 레디메이드 인생이다. 현재 만석동 일원을 중심으로 이러한 2가지 레디메이드가 혼재했던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한다.




인천 아트플랫폼 10년, 성과와 비전

2009년 9월, 굴곡진 역사의 개항지였던 바로 그 자리에 복합문화예술공간 ‘인천아트플랫폼’이 개관, 10주년을 맞게 되었다. 우리의 척박한 문화환경을 감안하면 10년의 세월은 결코 짧지가 않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개관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로선 생소했던 플랫폼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문화거버넌스, 즉 시민단체와 예술가들, 그리고 시 당국이 협치와 공조를 잘 이뤄 결실을 본 결과로 지금은 타지역에 롤모델로 부각되고 있다.

해마다 국내외 작가 약 30여 명이 입주하여 활동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은 레지던시와 전시실, 공연장, 생활문화센터 등의 용도로 구성되어 있다. 인근의 차이나타운과 인접하여 문화관광 측면에서도 일정 부분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천문화재단에 위탁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작품의 수집과 전시에 역점을 둔 전통적인 문화공간인 미술관과는 차별화된 대안적 시스템이다. 4차산업이 회자되기도 전에 이 이름을 선점한 혜안이 놀랍다.

국내외 문화예술 인적, 물적, 정보 및 프로그램 등의 교환과 교류의 아고라이자 정거장으로서, 기본적으로 개방성과 네트워크, 참여와 소통을 생명으로 여기는 문화발전소이다. 특히 옥내외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활용되어 시민들의 문화예술 축제가 끊이지 않는 역동적인 문화명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원도심 재생사업으로서 이만한 성과를 거둔 사례가 국내외적으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원도심 재생사업만이 아니라 문화관광 차원에서나 문화예술 자체로만 보아도 얻은 것이 대단히 많다. 요컨대 인천 문화예술이 열악한 가운데서도 명맥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인천아트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주된 사업이 레지던시, 전시, 공연 및 교육으로 요약된다. 대한민국 제3의 도시 인천엔 아직 시립미술관이 없다. 1종 등록미술관으로서 공공미술관 역할을 대신 수행해야 하는 미션에 따라 시민들이 애호하는 전시를 기본적으로 꾸준히 펼쳐왔다. 메인전시장, 창고갤러리, 윈도갤러리 등이 있어서 자체 기획전시, 입주작가 창작 발표, 기타 지역작가 전시 등의 다양한 전시들이 연중 30회 이상 열린다. 또한 공연장에서도 음악, 연극, 무용 등의 공연이 기획, 무료대관 등의 형태로 매주 2~3회 열리는데, 특히 다양한 장르 간의 실험적인 협업 공연은 인천아트플랫폼이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다.

무엇보다 레지던시 비중이 크다. 한 해 평균 30여 명 가량의 작가들이 입주 활동하는데, 10년 동안 무려 300인의 작가들이 거쳤고, 그들의 빛나는 커리어에는 ‘인천’이라는 기록이 선명히 남아 있다. 작가들에게 인천아트플랫폼이 유독 선호되고 있다. 그 이유는 도심 속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다양하고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 등으로 작업의 질적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물론 인천아트플랫폼 10년의 과정을 반추할 때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인천아트플랫폼이 처음 설립될 때부터 주어진 미션이 용량을 초과하는 것이었다. 창작지원, 전시 등을 통한 콘텐츠 창작, 교육, 국제교류, 문화관광…. 심지어 장터까지도 미션이 되기도 한다. 부족한 인력으로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현실은 무리한 업무수행을 피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설립 초부터 지역예술인들은 지역예술인들대로 기대치가 높았다. 보편성과 지역성을 적절히 조율한다고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아트플랫폼이 기획하여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그것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것이 본연의 사업이다 보니 지역예술가들에 대한 배려를 최대로 하고는 있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데는 역부족이다. 머지않아 시립미술관이 개관하게 되면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인천아트플랫폼은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 레지던시 사업 쪽으로 역점을 두면서, 지역사회의 문화적 자산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그동안의 환희와 고통의 10년을 뒤로 하고 이제 새로운 비전과 방향성을 설정해야 할 때이다. 보다 정교한 진단과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방향성은 그려볼 수 있다. 원대한 스케일의 계획보다는 디테일과 내실에 역점이 주어져야 한다는 점,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활동 영역을 초공간적으로 넓혀가야 한다는 점 등이다.

새로운 비전을 설정하기 위해서 소박하게나마 폭넓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트플랫폼이 시민을 표방했지만 정작 시민은 없었다는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아트플랫폼을 방문했지만, 그들이 아트플랫폼을 함께 완성해가는 주역으로서의 자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언제나 콘텐츠들에 수동적 향유자로서의 위치에만 머무르게 했던 점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네트워크에 기반한 지역 작가들과의 연대와 협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공기관의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언제나 대외적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점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앞으로 무심코 찾아온 시민 한 사람이라도 아트플랫폼의 구성원이자 후원자로서의 친근감을 갖도록 하는 최선의 전략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은 플랫폼의 역할을 보다 국제적으로 확장하려는 계획들이 추진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관문도시답게, 그리고 문화예술 교류의 허브로서의 명성과 위상을 한 단계 더 올려야 한다. 현재도 국제교류 프로그램들이 많이 가동되고 있지만, 호주 멜버른의 아시아링크를 능가하는 채널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예술플랫폼으로 명과 실을 견고히 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레지던시가 입주작가들의 창작 지원에는 적극적이지만,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입주 예술가들의 생활고 문제다. 입주만으로도 특혜일 수 있지만, 레지던시의 시스템이 향후 안정적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도 다각적인 프로모션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주로 홍보에 주력하였지만 다른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작가들이 더욱 윤택한 경제적 여건을 가질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과도하게 시장과 연결하기보다는 입주작가 커뮤니티 자체로 시스템을 갖추도록 유도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자체에서 매개역 전문가 양성이 함께 병행되어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콘텐츠들을 시장과 연결해주는 것. 만약 이 실험이 성공하면 지역의 예술계에도 확대 시행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이 과제들이야말로 문화재단과 아트플랫폼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고 정책적, 행정적 방안들을 도출, 폭넓게 시행해야 할 일이다. 현금 몇 푼을 손에 쥐여 주는 것보다는 작가들의 작품이 얼마간이라도 팔리도록 매개해주는 것, 그것이 작가들에게 가장 명예로운 지원이자 복지이기 때문이다.

 

글 /  Lee Jaeon, 李 在 彦 (인천아트플랫폼 관장)

 




오래된 기억 장소의 내일을 짓는다
<인천아트플랫폼 10주년> 황순우 건축사 인터뷰

최근 인천 원도심 재생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근대건축물이 문화유산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개항기 근대건축물 밀집 지역인 해안동 일대에 위치하면서, 동시에 일제 수탈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창고가 있는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를 리모델링하여 조성된 인천아트플랫폼은 신축건물이 아닌 재생 건축이기에 그 출발부터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인천아트플랫폼 조성 단계부터 완공까지 MA(Master Architect)로서 10년 장기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황순우 소장(바인건축사무소 소장, 전주 팔복예술공장 디렉터)을 다시 만났다.

한때 (가칭)중구미술문화공간으로 불렸고, 인천아트플랫폼으로 명칭이 확정된 후 2009년에 개관하여 올해 10주년에 이르렀다.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의 도시계획에서 ‘문화시설용지’로 지정하고 MA로 역할을 맡으며, 건축설계를 직접 하셨다. 그 첫 출발이 궁금하다.

황순우 건축사 : 1998년 중구청에서 여기 개항장 일대 개발계획을 담은 용역을 추진했는데, 그중 일부는 아파트로 짓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렇게 두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뜻있는 사람들끼리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지역 활동가, 대학교수 등 한 열 명이 모여서 퇴근 후 제 사무실에서 함께 공부했다. 그중 과장급 공무원들도 있었으며, 그분들 도움이 매우 컸다. 왜냐하면 저희 같은 전문가는 새로운 방향과 무엇을 해야 할지를 이야기하지만,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시의 행정으로 실행하기까지는 굉장히 어렵다. 그런데 그분들은 그 방법을 잘 알았고,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특히 당시 신문식 주택건축과장이 인천시에 정책제안 자리를 만들었다. 당시 남기명 행정 부시장을 초청했고, 발표를 보시고 나서 좋은 정책제안으로 받아들이고, 도시계획에 반영하여 시작할 수 있었다.
먼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근대유산을 보전할 것인지에 대한 보존작업과 두 번째 그 주변의 정비계획, 세 번째는 활성화 방법으로 앵커시설로서 문화시설 용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 일반도로를 포함해서 만든 것은 인천아트플랫폼이 유일하며, 이 도로가 포함되어 오늘날과 같은 단지형 구성이 가능했다.
도시계획 작업을 2000~2003년까지 오랫동안 수행했고, 2004년부터 아트플랫폼 조성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최기선 시장 때부터 시작했는데, 그동안 담당 국장이 일 년마다 바뀌면서 담당자와 과장도 자주 바뀌었다. 전문가가 들어와서 지속성 있게 5년이든 10년이든 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처음 MA(Master Architect) 제도를 2004년에 도입하게 되었다. 국내에서도 선진 사례였고, MA 제도를 통해 권한을 받고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안 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저는 2007년 처음 아트플랫폼(당시 중구미술문화공간) 공사 현장을 방문했었다. 현재 H동 건물이 당시 금마차 다방이었고, 벽에 온갖 낙서와 세월의 흔적, 삐걱대던 마룻바닥 등이 기억난다. 부지 규모가 상당하고 대부분 낡은 창고 건물들이었기에, 소위 말하는 가성비를 따진다면 모두 허물고 새로 건축을 설계하고픈 생각도 있었을 것 같다. 어떻게 ‘재생’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단지 규모의 문화공간 블럭을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황순우 건축사 : 대부분 공간을 활용적 가치로 생각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또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공간의 ‘장소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이미 130년 전에 개항되었고, 사람들이 이 장소에 많은 것들을 담아놓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능적이거나 경제적 가치로만 따져서 장소를 허물어 버리면, 우리가 가진 사회적, 역사적 가치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비록 하찮은 것이라도 소중하게 다뤄서 각자가 간직한 기억들을 공유하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키고 싶었다. 하나밖에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력을 느낀다. 가령 신축 아파트와 건물이 들어선 인천 송도 신도시에 매력을 느끼기보다, 편리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아트플랫폼에는 긴 세월 속에서 만들어진 시간의 흔적이 있고, 하나밖에 없는 공간이 있다. 독일 카셀에서 요셉 보이스가 했던 작업 중 7천 그루의 떡갈나무와 현무암을 떠올리면, 자라나는 떡갈나무는 그 도시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현무암인데 그것이 역사고 기록이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해서 요셉 보이스는 이야기했고, 아마 그런 존재이기를 바란 것 같다.

인천아트플랫폼 10주년 기념 전시 <오버드라이브 2009-2019>에서는
황순우 건축사가 총괄건축가로 활동하면서 수집하고 기록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2008년 인천문화재단에 중구미술문화공간 개관준비 TFT가 꾸려지고 그때 처음 건축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지역에서 레지던시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았고, 지자체 행정에서도 생소한 개념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시립미술관이 없었던 인천시에 레지던시 개념을 담은 현재의 인천아트플랫폼 기능의 기초작업에서 어떤 그간의 논의와 조력이 있었는지 설명해 달라.

황순우 건축사 : 초기에 ‘예촌’이라고 불린 적도 있는데, 예술가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막연하게 명칭을 붙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이곳을 점유해서 정주하는 곳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많은 예술인을 만나고 논의할수록 점유하는 공간에 대해 큰 우려가 있었다. 공간을 만들고자 했을 때는 이곳을 어떻게 공유하고 가치를 나눌까를 고민했지, 특정 예술가와 특정 예술단체들이 장기간 이곳을 점유하는 장소로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박신의 교수(경희대학교)와 차기율 교수(인천대학교)가 큰 도움을 주었다. 한시적인 정주 환경을 갖추면서도 이 도시를 예술가들이 바꿀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결국 예술가들이 도시에 들어와야 하는데 그 방식으로 레지던시를 고민했다. 차기율 교수는 창동미술창작스튜디오와 미국 버몬트 스튜디오 레지던시 경험을 소개해주었고, 많은 도움이 됐었다. 2000년에 개관한 일본 교토아트센터를 많이 참고했는데, 옛 초등학교를 활용하여 예술성과 시민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 공간을 만든 사례이다.
당시 2004년만 해도 레지던시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았었고, 인천에 그걸 한다니까 욕도 많이 먹었다. 그때 ‘300명의 예술가가 모여서 살면 이 도시가 바뀐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이 여기 들어와서 활동하고 그 예술가들이 도시 주변에 남았으면 좋겠고, 여기에 앵커 시설을 만들어 놓으면 많은 작가가 전시도 하고 여기에 필요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면 모여들겠다는 생각을 초기에 막연하게 했었다.

2009년 9월 인천아트플랫폼의 개관은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던 사건으로 기억한다. 일례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레지던시프로그램 지원사업’을 광역문화재단을 통해 가능하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고, 지자체별 유휴공간, 도시재생을 키워드로 앞다투어 벤치마킹하기 위해 필수방문코스로 삼기도 했다. 건축가로서 아트플랫폼의 개관 의미를 설명해 주시라.

황순우 건축사 : 우리는 결과 중심적이어서 어떤 큰 건물이나 큰 축제, 혹은 가시적인 큰 행사를 한다. 하나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기까지 새로운 시스템을 고민하면서 생산, 소비, 유통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창작공간과 전시, 향유 공간을 구성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트플랫폼을 자꾸 대중성으로 받아들인다. 저는 아트플랫폼이 예술성과 시민성을 갖고 예술이 가진 가치가 시민들한테 보편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곳이기를 원했다. 그런데 혹자는 아트플랫폼이 개관했는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는지, 결과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아트플랫폼은 예술의 씨를 뿌리는 작업이었다. 또한 이곳은 예술계에 있어서 심장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도시가 된다면, 우리는 씨를 뿌려서 사람들이 피를 공급하고 순환하게 하고 뭔가 생산을 하는 곳이지, 여기가 무슨 술집과 시장판처럼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곳은 아니다. 이곳은 도시 재생적 관점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만들어졌다. 최초 기획부터 근 20년이 걸렸다. 현재 많은 도시가 도시재생을 한다면서 출발했다가 점차 망해가고 있다. 준비가 안 되었고 시간은 짧은데 돈이 갑자기 들어오니까, 한 2, 3년 만에 집값이 다섯 배로 뛰면서 많은 도시가 몸살을 앓다 열기가 식으며 또다시 악순환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물론 여기도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지만, 굉장히 긴 호흡 속에서 명확한 콘셉트를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건축가나 도시계획가가 도시를 바꾸는 게 아니다.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예술가나 청년들이 도시를 바꾼다. 이 지역도 예술가들에 의해서 조금씩 바뀌어 가는 매력을 지니며, 그런 도시 재생적 의미에서 인천아트플랫폼 개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트플랫폼 공간에 여백을 많이 담고 싶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또 일례로 공간과 공간, 단지와 단지마다 다리로 연결했는데, 이 다리가 단순히 기능성뿐만이 아니라 예전에 이곳이 매립되기 전에 수로가 있었고 그 길을 재현했다고 알고 있다.

황순우 건축사 : 이 브릿지는 나눠진 두 블록을 연결하는 기능이 있다. 사실은 이 다리와 도로를 기점으로 이곳은(현재 H동) 육지였고, 저기 삼우인쇄소(현재 A동)가 있던 단지는 바다였다. 그러니까 이 브릿지는 어떻게 보면 바다와 땅을 연결하는 큰 틀의 개념이었다. 그럼 다리를 어디로 연결할까 고민을 하다가 자유공원에서부터 쭉 내려오는 하수구, 옛날로 말하면 물이 지나가는 수로를 발견했다. 아트플랫폼은 개별 창고 건물이 13개가 되다 보니 중간에 회랑을 만들어 전부 다 연결했다. 각 건물이 독립적인 기능을 하지만 다 따로 존재한다. 하나의 독립성을 갖지만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할지 생각하면서 브릿지를 만들고 엘리베이터 두 대를 만든 것이다.

아트플랫폼을 통해 인연이 된 예술가, 기획자들과 직접 전시 프로젝트도 만들었고, 이후 문화관광체육부 등 정부 주도 도시재생 프로젝트, 문화도시 등등 굵직한 문화사업에 자문, 심의 등등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다. 아트플랫폼 건축가로서의 커리어를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황순우 건축사 : 저는 물론 건축가다. 아트플랫폼을 계기로 건축가가 이 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학생 때 건축가가 멋있는 건물을 짓는 사람으로 주로 학습을 받았다면, 최근에는 이 사회 속에서 건축의 가치들을 통해서 무엇을 사회와 소통하고 나눌 것인가에 대한 건축가의 역할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건축이 원래의 장소를 읽어가는 작업부터 그 콘텐츠에 대한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구동할지를 고민하면서 진행하다 보니 저 또한 저절로 기획자가 될 수밖에 없다.
2010년 처음으로 설치작업이란 걸 하게 되었다. 한국근대문학관 건립 전, 비어있는 건물에서 “이사사이” 전시에 초청받아 작업하면서 정말 멋도 모르고 예술가 흉내를 냈었다. 이후 2012년부터 개인전을 다섯 번 한 것 같다. 그러면서 나름 예술가가 갖는 고민, 예술의 행위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고민하고. 예술계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작동시스템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후 제가 팔복예술공장에서 기획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유휴공간을 새롭게 바꾸는 작업은 2015년부터 문화관광체육부에서 단장을 2년 동안 맡으면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문화도시 심사를 지난 2년간 해왔고, 지금은 문화도시 정책자문을 하고 있다.


10년차에 접어든 인천아트플랫폼이 전국 예술 씬에서의 포지션과 그 성과 및 한계, 인천 지역에서 갖는 기대와 앞으로의 과제 등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린다.

황순우 건축사 : 이 공간을 구성할 때 예술성과 시민성에 대한 부분을 많이 고민했고, 그것이 함께 구현되기를 기대했다. 결국에는 예술의 가치를 시민들과 어떻게 관계맺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특히 예술가가 자기 창작 작업만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어떻게 시민과 지역에서 접점을 만들고 예술의 가치를 실현할지에 대해 아트플랫폼 운영 조직이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지역의 불만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크게 보면 인천아트플랫폼은 우리나라에서 상징적인 예술공간이다.

저는 팔복예술공장을 ‘예술을 하는 곳’으로 정체성을 두었고 모두가 동의했다. 아카데미도 안 한다. 생활예술도 안 한다. 그냥 여기는 예술을 한다. 아이도 하고 어른도 하고 예술가도 하고 모두가 다 예술을 하는 곳. 그런데 진짜 그렇게 닮아 간다.
아트플랫폼만의 정체성을 빨리 견고히 했으면 좋겠다. 예술은 우리의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해주고 이런 감성적인 것들을 만들어 준다. 이 세상에 보편적 가치로서의 예술이 중요하고, 그래서 예술교육을 한다. 이러한 예술성이 이곳에서부터 종자가 되어 뿌려지기를 바란다. 이것이 인천아트플랫폼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아트플랫폼은 이 지역에서 예술의 씨앗이고,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근대사가 기록된 삶의 터전이었고,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 속에서 문화적인 갈등이 심했던 곳인데 이를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까. 저는 그것이 예술이며, 이 도시의 정체성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진행·정리
변순영(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

사진 / 박지나




작업실, 훔쳐보다.

인천의 유명한 문화예술 창작공간, 이곳 인천아트플랫폼은 근대 개항기 건축물을 2009년에 리모델링하여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실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곳입니다. 지난 주말인 9월 27일부터 3일 동안은 작가들에게 창작공간을 내어주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 지 1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2019 오픈스튜디오’를 개최했습니다.

10기 입주 예술가 중 현재 활동 중인 21팀의 예술가가 참여한 ‘2019 오픈스튜디오’. 아트플랫폼 E동에 있는 입주 작가들의 스튜디오는 평소에 오픈하지 않기 때문에 궁금해도 볼 수 없는 곳이었는데요. 그러므로 1년에 단 3일, 작가의 공간을 훔쳐볼 수 있는 매력적인 행사이기도 합니다.

1층부터 3층까지 총 21개의 스튜디오마다 작가의 신작이나 미공개작과 함께 작업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가 모두 공개되어 있어 기존 전시회의 느낌보다 한층 깊숙이 작가의 세계로 들어온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작가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Artist-run-space 행사인 만큼 공간마다 작가가 대기하여 자신의 작업을 직접 소개하니 예술을 모르거나 관심 없던 분들도 쉽게 예술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습니다.

전시 형태도 다양해서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형, 관객참여형 등 보는 예술을 넘어 느끼는 예술로의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완성된 하나의 작품을 보기보다는 작가가 현재 작업하고 있던 미완성작, 도전적으로 처음 시도한 작업 등 작가의 고뇌를 거칠게 보여주는 공간이 작품의 화려함 뒤에 존재하는 괴로움을 여실히 드러낸 것 같아 감정적으로 더 와닿기도 합니다.

1층에는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고, 전시장을 지나가는 2층 골목에는 간단한 케이터링이 준비되어 있어 오랜 시간 공들여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느껴집니다. 스튜디오를 관람하며 찍은 작품, 셀피 등을 SNS 인증하거나 각 스튜디오 방문스티커를 모으면 기념품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도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너무 진지하거나 무거운 분위기를 탈피한 예술행사라는 점에서 재미를 더합니다.

넓은 공간에 퍼져있는 온 스튜디오를 도느라 숨이 차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공간을 훔쳐보듯 고양이 발걸음으로 몰래 들어가 전시를 관람해서인지 이유 모를 두근거림과 흥분이 가시지 않았던 전시. 내년에도 단 3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김없이 방문하고 싶어지는 특별한 행사였습니다.

글 · 사진 / 임중빈 시민기자단




인천아트플랫폼 10주년 기념-<2019 인천 멍때리기 대회>

일시 : 2019년 9월 29일,(일)
내용 : 70팀의 참가자들 중 누가 가장 멍을 잘 때리는지 겨루는 대회 형식의 퍼포먼스
@인천아트플랫폼 중앙광장

시민기자단 김유라




‘극한 인천X짠!내 기획’ 최종 프로젝트-<숲속 그림놀이터>

진행 : 청개구리 2019
일정 : 2019.09.26~28.
@ 반디어린이도서관

시민기자단 장유하




[큐레이션 콕콕] K문학

2019년은 한국과 스웨덴이 수교 60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이를 기념해 한국은 지난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초청받았습니다. 한강 · 김언수 · 진은영 · 김금희 · 김숨 · 김행숙 · 신용목 등의 시인과 소설가를 비롯해 김지은 · 이수지 · 이명애 등의 그림책 작가 등 17명의 저자가 도서전에 참석했습니다. 1985년에 시작한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도서전입니다. 1만1000㎡(3,300평) 규모의 전시장에 38개국, 800여 개 기관과 회사가 참가했고, 나흘 동안 8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습니다.

약 52평 규모로 마련된 한국관에는 한국 도서 77종과 그림책 54종이 전시됐습니다. 한국관 설계를 맡은 함성호 건축가는 다른 전시공간과 달리 바닥을 1도 기울여 ‘우리는 모두 운명의 경사에 놓인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는 존재들’이라는 주제를 공간에 표현하였습니다. 도서전에서는 4일간 300개가 넘는 세미나가 열렸고 한국 문인들의 대담에 시민과 출판 관계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은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나라로 꼽힙니다. 국민 연평균 독서율이 90%에 육박해 세계 1위이며, 공공 도서관 이용률 역시 세계 1위입니다.

스웨덴의 유명 문예지 ‘10TAL’은 최근 한국문학 특집호를 발간했습니다.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을 포함해 김행숙 · 신용목 · 안상학 · 박준 · 김이듬 시인의 시와 한강 · 김영하 · 배수아 · 김금희 · 조남주의 소설을 수록했습니다. 스톡홀름에서 열린 ‘10TAL’ 주최 북토크에 참석했던 김행숙 시인은 “강연 시간보다 질문 시간이 더 긴 만큼 스웨덴 독자들의 열기가 뜨거웠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현지에서 한강 작가의 인기는 뜨거웠습니다. 세미나 신청자 수가 넘쳐 많은 이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고, 세미나 후에는 사인을 받으려는 이들이 길게 줄을 이었습니다. 201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스웨덴어 번역본은 K-문학의 싹을 틔운 작품으로 오디오북, 전자책을 포함해 약 2만5천부가 팔렸습니다.『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외에 9월 중순에는 『흰』도 출간됐습니다.『흰』은 소설과 시, 에세이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지닌 작품으로 작가는 “지금까지의 작품 중 가장 자전적인 아픔을 이야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언급한 한강의 세미나는 ‘사회역사적 트라우마’라는 주제로 펼쳐졌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 큰 이야기 같지만 내겐 그게 개인적인 책이다. 또한 『채식주의자』는 한 개인의 내면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이야기다.” 2014년에 펴낸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다 죽은 중학생과 주변 인물의 참혹한 운명을 다뤘습니다.『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제에 짓눌려 개인을 잃어가는 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으로 2016년 맨부커상을 받았습니다.

 

375석을 가득 채운 소설가 한강 세미나(좌), 스웨덴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소설가 한강(우)
출처 : 중앙일보

김언수 작가의 범죄스릴러 『설계자들』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설계자들』의 스웨덴어판 편집자 한스올로브 외베리는 “하드보일드한 북유럽 문학과 다르게 한국 스릴러는 서정성과 짜임새를 고루 갖춘 ‘이상한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스릴러 강국’이라 불릴 정도로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은 탓에 도서전 주최 측에서는 김 작가를 꼭 소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김언수는 한국문학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국력이 세진 결과”로 해석했습니다. “프랑스에 갔을 때 젊은이들이 BTS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내 책을 사 갔다. 책이란 한 나라의 문화를 파는 것인데, 문화 국력이 커지면서 세계인들이 한국문학도 찾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예비사절단으로 스웨덴에 방문한 적 있는데 그때의 북토크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작은 서점에서 진행한 행사였는데 작년에 했던 모든 문학 행사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숨 쉬는 소리도 안 들릴 정도의 집중도였다. 예테보리도서전을 운영해서 남은 돈으로 어마무시한 호텔을 지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20만 원짜리 티켓을 사서 북토크를 듣는, 책에 대한 관심이 어마무시한 나라다.”

소설가 김언수
출처 : 서울신문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의 소냐 호이슬러 한국어학과 교수는 “한국문학은 이미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 기관에서도 자발적으로 한국 작가를 초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문학이 세계문학 속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전에는 일본어가 가장 인기가 많고 그다음이 중국어였는데 요즘은 한국어가 중국어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며 “K팝과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호이슬러 교수는 독일 출신으로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했습니다. “구소련 레닌그라드대학에서 신라 향가와 한시 등 한국 고전문학을, 북한에서 한국어와 역사, 문화를 배웠다”는 그는 한국문학이 “내면을 다루면서도 사회적 문제를 아우른다”며 “한국 시는 한국문학의 주요한 자산으로 유럽에 비해 시인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말괄량이 삐삐』로도 유명한 스웨덴은 독서 진흥을 문화정책 1순위로 둡니다. 아만드 린드 스웨덴 문화부 장관은 도서전 개막식에서 “책을 읽지 않으면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부는 책 읽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도서관은 문학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모두에게 열린 안식처”라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한국문학번역원 통계를 보면 한국문학의 수출은 2015년 94건(번역원 통해 수출된 서적 기준)에서 2017년 130건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입니다. 지금까지 스웨덴에 번역된 한국 문학은 33종으로, 1977년 김지하 시인의 ‘오적’에서 시작해 김소월 · 이문열 · 황석영 · 문정희 · 김영하 · 한강 등의 작품이 소개되었습니다. 40여 년 동안 한 해에 책 한 권도 번역되지 못한 것인데 윤부한 한국문학번역원 해외사업본부장은 그 이유를 “번역가가 없는 것”으로 꼽습니다. 스웨덴에서 한국문학의 입지가 좁고, 문학작품을 번역할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2014년에 한 학년에 25명이었던 스톡홀름대 한국어과 인원이 지금은 60명 정도 늘었다며 그는 “좋은 번역가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과거 역사적 특수성에 갇혀 있던 한국 작품이 점차 세계 수준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역동성과 깊은 철학을 갖춘 한국 문학이 북유럽에도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며 “한반도의 특수성에 갇히지 않고 삶과 세계를 감각해 내는 섬세함이 세계적 수준의 보편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방탄소년단에 대한 열렬한 관심, 한국어 학습에 대한 열기 등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글 / 이재은(뉴스큐레이션)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주빈국 초청된 한국문학… K-문학, 북유럽을 물들이다
동아일보, 2019.09.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한강 작품 다 읽었어요”… 스웨덴서 확인된 K문학 위상
국민일보, 2019.09.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예테보리도서전 폐막…북유럽서 ‘K북’ 가능성 확인
연합뉴스, 2019.09.2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 소설가 한강에 큰 관심
중앙일보, 2019.09.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소냐 호이슬러 “스웨덴 사람들, 한국의 아동문학 스스로 찾아 읽어요”
경향신문, 2019.09.3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6. ‘스릴러 강국’에 뜬 K스릴러… 김언수 “이야기 기근의 시대, ‘현찰적 관점’으로 장편 써야”
서울신문, 2019.09.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따라 걷다 – 인천둘레길

우리는 일생 동안 수많은 길을 걷는다. 걷는다고 표현했지만 길이란 단순히 걸어서만 이동하는 곳은 아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도로도 있고 기찻길도 있다. 또한 바다와 하늘에도 보이지 않을 뿐이지 배와 비행기가 다니는 수많은 길이 있다. 우리의 삶은 길을 벗어나서는 생각하기 힘들다.

우리는 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접한다. 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확인하고 그들의 행동과 생각을 알아 간다. 또한 다른 이들과 접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소통과 교류를 하기도 하지만 다투고 분열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에는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고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역사도 있고, 문화도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길은 문명의 소통을 상징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에는 고대 로마가 문명의 중심지였음을 나타내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동서 문명 간의 교류사에서 실크로드라는 길이 차지한 역할은 굳이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 제3의 도시 인천에도 많은 길이 있다. 그 길들은 도시 한복판에도, 바닷가에도, 산속에도, 먼 외딴 섬에도 있다. 또한 인천은 한국이 세계와 통하는 항구와 공항이 있어 바닷길과 하늘길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러한 인천의 다양한 길 중 역사와 문화, 자연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인천둘레길’이다.

인천둘레길은 평소에 걷기나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물론 많은 일반 시민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둘레길이라는 명칭을 모르더라도 평소에 걸어봤던 길일 수 있다.

인천둘레길은 S자 녹지축으로 일컬어지는 인천의 녹지 공간을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지키고 많은 시민들이 그곳을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0년부터 조성되었다. 인천의제21실천협의회(현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산이나 하천 주변의 아름답고 걷기 좋은 길을 이어나갔다.

인천둘레길 코스
출처: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안내책자

인천둘레길은 계양산(제1코스)부터 시작하여 천마산, 원적산, 만월산, 인천대공원, 장수천, 소래습지, 문학산, 청량산 등을 거쳐, 송도국제도시, 남서쪽 해안길, 중구와 동구의 구도심까지 이어지는 14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강화도 마니산과 옹진군 장봉도에도 각기 15, 16코스가 지정되어 있다. 인천둘레길은 기본적으로 인천의 소중한 환경과 생태를 경험해 보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공부해보면 그곳에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의 이야깃거리들이 쌓여 있다. 그러한 이야깃거리들은 인천의 둘레길을 걷는 즐거움을 더 크게 만들어 준다.

1코스부터 9코스는 주로 산을 지나거나 하천 주변을 따라가는 길이다. 계양산성의 유구한 역사와 이규보의 삶이 스며있는 계양산(1코스), 과거 민중들의 한과 아기장수 설화가 깃든 천마산(2코스), 인천의 역사가 시작된 미추홀의 중심지 문학산(8코스) 등을 경험할 수 있다.

8코스와 9코스가 이어지는 삼호현

계양산의 이규보 시비(詩碑)

둘레길에서는 산을 걷는 즐거움과 함께 도시의 발달과 변천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인천의 구도심을 걷는 11~14코스가 바로 그곳이다. 산지 코스를 지나 인천의 구도심인 중구와 동구 지역의 11~14코스에 들어서면 더욱더 많은 인천의 추억들이 전한다. 구도심의 복잡한 골목길과 달동네를 지나며 도시 서민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11코스, 중구 근대 개항장과 자유공원, 차이나타운을 지나는 12코스, 전쟁의 아픈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문화와 여가의 공간이 된 월미도를 돌아보는 13코스, 북성포구·만석부두·화수부두 등 인천의 옛 부두를 지나는 14코스까지…이 네 개의 코스에는 근현대 인천 도시의 발전 모습과 그에 얽힌 수많은 추억들이 담겨 있다.인천둘레길에는 자연과 생태, 역사와 인간, 문화가 함께 녹아있다. 인천둘레길에 얽힌 다양한 역사와 문화의 이야기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공부해보자. 그렇게 공부하고 난 뒤에는 둘레길을 걷는 즐거움이 더욱 커질 것이다.

월미산(13코스)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북성포구(14코스)의 모습

글 · 사진 /  안홍민(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