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The Way of Embracing the Horizontal World)
인천아트플랫폼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전시를 집에서 만나보세요.
전 시 명 :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The Way of Embracing the Horizontal World)》
전시기간 : 2019. 12. 20.(금) ~ 2020. 5. 6(목), 월요일 휴관
※ 코로나19 확산 예방 및 관람객 안전을 위하여 2월 24일부터 잠정 휴관중이며, 인천아트플랫폼 온라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 전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장소 :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
출 품 작 :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총 43점
참여작가 : 이종구, 오원배, 박인우, 정현, 차기율, 이탈(총 6명)
관람시간 : 12:00~18:00
관 람 료 : 무료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인천아트플랫폼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전은 한국 현대 미술계의 대표 작가 중 인천 연고를 가진 중견 작가를 주목하는 데에서 시작하였다. 전시에 참여한 박인우, 오원배, 이종구, 이탈, 정현, 차기율, 이 6명의 작가는 1950~60년대에 출생해 급변하는 한국 현대사를 경험한 세대로 인천에서 출생했거나, 인천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작가들이다. 작가들에게 ‘인천’이라는 개인적 뿌리와 공통의 경험은 예술가로서 본질을 찾아나가는 여정 어딘가에 위치해 있으며 작품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작가들은 3~40여 년의 긴 활동 기간 동안 수많은 작품을 통해 예술가로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한국 사회의 문화, 역사의 흐름 속 변화에 맞서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을 지속해 왔다.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미학적 관심과 인천이라는 개인의 경험이 교차하는 지점을 살펴보기 위해 작가 인터뷰와 아카이브 자료가 함께 전시되며, 폭넓은 작업의 변화 양상을 살피기 위해 초창기 작품과 최근 주요 작품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전시 제목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은 인간의 실존,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 문명의 이기(利器)등 과 같은 고민들을 변화하는 동시대성 안에서 수평적이고도 수직적인 양상들로 확장해 가며 새로운 의미로 해석해 나가는 작가들의 접근 방식을 의미한다. 또한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사유와 체험을 바탕으로 시대적 현실 안에서 예술 속에 삶을 끌어들이고, 삶과 예술을 통합해 나가는 공동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작가들은 급속한 근대화, 민주화 운동 등 급진적인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끈 세대로 예술가로서의 임무와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미술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역사 등 다양한 층위를 작품에 담는다. 또한 자연과 인간, 개인과 사회와 같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제시하며 생명의 본질과 태도를 성찰하고, 인류의 수직적 성장과정과 수평적 연대 과정을 추적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늘날 예술이 특정 계층의 문화적 향유의 산물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예술을 지향하며, 예술을 통해 발언하고자 했던 개인의 자유와 존엄, 평화와 공존, 연대와 같은 수직적이고도 수평적인 메시지들에 주목한다. 작가들은 견고하게 구축된 권력 구조와 부조리한 현실을 깨뜨리는 행위를 통해 시공의 한계를 초월한 유토피아적 세계를 갈망한다. 이들은 우리가 지나온 한국 미술계를 목도해 오는 동안 가장 깊고 치열한 장막을 뚫고 오늘에 이른 세대로, 현실과 실재라는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영원한 이상과 초월한 가치를 소원한다. 우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떠한 원칙과 규범, 권력이나 담론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수용과 체험을 구가하는 새로운 시대(era)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는 동선의 시작과 끝이 없다. 마치 복잡다단한 세상의 얽히고설킨 현실과 시간의 흐름과 같이. 그 거센 세월의 시간 속에서 모든 생명이 가진 심연에 자리한 파괴되지 않는 순수성과, 절망을 극복한 삶에 대한 강한 의지, 희망과 같은 그들이 전하고자 한 수평적 세계의 메시지들을 발견해 보길 바란다. 이번 전시는 그들이 살아온 삶과 시대 배경 안에서 수평적인 것, 수직적인 그 간극 사이에 존재하는 팽팽한 긴장감과 탄력으로 예기치 않은 공명을 드러내며,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미를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코로나19와 우리, 예술인
인천문화통신3.0 예술인 긴급 좌담회
코로나19와 우리, 예술인
4월 17일 오후 2시 인천문화재단 청사에서 예술인 4명(‘극단 10년후’ 대표 송용일, ‘예술숲’ 대표 김면지, ‘루체뮤직소사이어티’ 대표 안희석, 화가 박상희)과 코로나19 관련하여 좌담회가 열렸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코로나19에 관한 내용만 정리하였다. 논의는 크게 3가지로 진행되었는데, 첫째, 코로나19 피해사항, 둘째, 인천문화재단을 비롯하여 인천시에 건의사항, 마지막으로 코로나19이후 예술계에 대한 전망이다.
송용일 : 우리 극단의 피해상황으로 시작하지요. 우리 극단은 3·1절 행사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코로나19로 행사 자체가 취소되면서 우리도 행사에 참여 못하게 되었습니다. 공연이 없어지다 보니 배우들이 식당 알바, 대리운전, 새벽 택배 등 생계를 위해서 다양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다른 극단도 우리 극단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극단 배우들과 자주 연락도 못하고 있습니다. 극단이 구체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죠. 연습실 월세는 계속 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공연을 못하고 있어서,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공허한 상태입니다.
안희석 : 클래식 음악 경우 상황을 먼저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작년 연말에 확보한 예산으로 1/4분기를 보냅니다. 3월 정도 되면 상반기 공연을 위해서 계약을 맺기 시작합니다. 공연은 평균적으로 4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늘어갑니다. 우리 단체는 취소된 공연은 없지만, 상반기 공연 계약을 전혀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추측건대 추석 전까지 이런 추세, 즉 공연이 없게 되면, 지금보다 앞으로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기관에서 시혜성 행사를 제외하면 과연 공연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극단 10년후’와 비슷하게 저희도 연습실에서 다양한 교육을 진행했는데, 지금은 멈춘 상태이고, 역시 월세만 나가고 있습니다. 일부 단원과 클래식 연주자들이 예술강사로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기본적인 소득을 확보했는데, 현재 거의 모두 중단된 것으로 들었습니다. 너무 어려운 상황입니다.
김면지 : ‘예술숲’의 경우 4월 말에 극장 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 그 극장과 계약서를 미리 쓰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또 공공기관에 행사 입찰에 참여했는데, 아직까지 선정 결과가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확실히 ‘루체뮤직소사이어티’처럼 우리도 작년에 축적했던 예산으로 1/4분기를 버텼는데, 이제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4월 실무 인력 인건비를 충당할 예정입니다. 저희는 주식회사여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의단체로 2~30년 활동을 했던 단체들은 대출을 받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보다 더 열악한 상황입니다. 언제 다시 공연들이 시작되어 예술계가 활발하게 돌아갈지 모르겠습니다. 그 시점을 모르니 더 불안합니다. 전통분야에서 개인 레슨을 하는 연주자들도 많이 있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력하게 실행되고 있기 때문에, 개인 레슨조차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박상희 : 공연분야는 조직이 있어서 함께 어려운 점을 타개하려고 노력한다면, 시각 예술분야는 개인으로 하는 활동이 많기 때문에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각 분야 안에서 또한 장르가 다양하기 때문에, 제가 시각예술가 모두를 대변하지는 않지만 제가 경험한 부분들 안에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술강사의 경우, 수업이 없기 때문에 시수가 많이 줄 것이라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것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참여하기로 되어 있던 3, 4월 전시가 모두 연기가 되었고, 언제 다시 시작한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계획을 짤 수 없습니다. 국내 옥션도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홍콩 옥션도 온라인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아주 유명하지 않은 개인 작가들이 참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술 시장이 위축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인 예술가의 경우 해결책이나 해결을 위해 논의하는 구조를 갖기 어렵습니다. 특히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고 함께 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공연처럼 함께 예술을 하는 장르에 있는 분들에 비해 소외감이나 공허감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김면지 : 개인 작업하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단체 예술을 하는 예술가들도 동일한 것 같습니다. 이런 막막한 상황에서 두 가지 차원에서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우리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하여 예술가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전문공연예술인의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참여는 개인으로서 가능합니다. 전문공연예술인으로 시작했지만, 분야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서 앞으로에 대해서 함께 논의하고 대안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다른 차원으로 재단에게 건의할 내용이 있습니다. 제가 지원사업에 선정되어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하반기에 공연장 잡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몇 몇 공연장을 방문해서 문의를 했지만, 공연장 담당자도 확답을 해주지고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원사업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재단에서 올해 사업에 한하여 한시적으로 공연 일정과 정산 일정을 내년 3~4월정도로 연기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희석 : 저는 작년에 재단에서 운영했던 문화포럼 예술창작분과에 참여했습니다. 그 곳에서 많은 예술인들이 제안했던 것 중 하나가 가칭 ‘인천예술인복지센터’였습니다. 예술인들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복지, 예술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부분들에 대한 의견 수렴 등 예술인 복지에 대해서 천천히 점진적으로 그러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실행할 수 있는 기관이 인천문화재단 내에 만들어지기를 제안했습니다. 상반기에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인천문화재단이나 인천시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속도를 더 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속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추진하면 좋겠습니다.
김면지 : 코로나19 사태에 인천문화재단이 대응하면서 여러 사업들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다만, 몇 가지 부분은 보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공연을 위해서 다양한 스태프들이 있습니다. 이 스태프들도 현재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을 배려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인천에서 대부분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문제로 인하여 인천에 살고 있지 않는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이들 역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단체에서 누구는 지원을 받고 누구는 지원을 받지 못하는 웃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안희석 : 증빙이 어려운 예술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의 경우 리플릿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은 지휘자 등 몇 명만 올리는 것이 요즘 추세입니다. 프리랜서 연주자가 만약 계약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사실 자신의 공연 실적을 증빙할 수 있는 방법이 애매해집니다. 이런 연주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여서 예술가들에게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교육이 지속적으로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교육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안맞으면 들으러 갈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필요한 다양한 교육을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재단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지원책도 글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재단에 지원사업을 받아 본 사람들의 경우는 문제없이 지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예술인들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도 친절하고 자세하게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려주면, 많은 예술가들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지원사업 프로세스에 대한 동영상, 계약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에 대한 동영상 등 예술가에게 필요한 많은 동영상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박상희 : 정보가 잘 소통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현재는 재단 홈페이지, 카카오 프렌즈 정도가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잘 못하는 분들에게도 정보가 잘 흘러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각 분야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현재 작품 판매가 많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시가 거의 미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공공기관, 기업 등과 협의하여 예술가들의 작품을 대여하거나 전시하는 사업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시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보여질 기회가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작품이 판매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작품이 팔리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온라인 전시와 함께 판매가 이루어지는 온라인 사이트가 운영되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미술판이 좀 더 활성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송용일 : 예술인들의 기초 생활을 보장하는 제도적 고민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의 경우는 이 제도에 대하여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안희석 : 작년 인천문화포럼 예술창작분과에서 예술인 기본 소득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오늘 나누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작년 예술창작분과에서 나왔던 이야기와 일맥상통합니다. 좌담회, 포럼 등 논의는 많이 되지만, 그 논의된 내용이 실현되면 좋겠습니다. 작년 인천문화포럼에서 나왔던 결과물을 인천문화재단과 인천시가 지금의 상황과 대조해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주면 좋겠습니다.
송용일 : 오늘 우리가 얘기해야 할 마지막 주제가 코로나19 이후 예술계를 전망하는 것인데, 전망이 잘 안됩니다.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공연계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연극은 공연장에서 사람을 모아놓고 해야 하는 공연업인데, 관객이 없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 영상이 대세가 된다면, 연극은 무엇을 할 수 있지? 연습하는 과정을 유튜브에 중개할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데, 쉽지 않습니다.
안희석 : 송대표님의 이야기에 공감이 됩니다. 공연예술계에서 현장의 감동을 따라올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라인을 토대로 한 매체를 통해서 관람하는 것이 새로운 유형의 소비 방식이 되었습니다. 지금 10세의 아이들의 경우, 학교 수업도 온라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10년 후에 20살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뭐가 더 익숙할까요? 현장에서 공연을 보는 관람하는 행위와 온라인을 통해서 집에서 관람하는 것 중에서 말입니다.
저는 2012년부터 온라인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준비를 했습니다. 준비하고 실제로 콘텐츠를 만들면서 이것은 콘텐츠의 우수성에서 유래한 싸움이 아니라, 자본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랜드가 높은 공연자들이 높은 비용을 들여 좋은 퀄리티의 음질과 영상으로 이루어진 콘텐츠를 만들고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서 그 콘텐츠를 유통시킵니다. 그 자본력을 우리와 같은 작은 단체들은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박상희 : 자본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합니다. 또한 시장이 축소되면 축소될수록,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한 분들의 작품만 관심 받게 됩니다. 예술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나오기 위해서 토대가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한 작가들만이 생존했을 때, 훗날 더 비극적인 결말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인천문화재단이 넓은 안목에서 순수 예술의 토대를 지켜나갈 수 있는 지원정책을 잘 수립하여 실행해주길 기대합니다.
김면지 : 공연예술은 현장성이 중요함으로 온라인 공연이 공연예술의 대체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로 옮겨가면 편집으로 인한 현장성이 줄어들고 라이브인 경우에도 현장성을 살리기 위한 영상장비 등의 비용 부담감이 가중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는 방송국, 국공립단체 등에 비해 자생력이 떨어지는 민간단체가 콘텐츠가 아닌 그들의 자본과 경쟁해야 되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예술적 측면으로도 다양한 장르적 융합이 강제되어 부담감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송용일 :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또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받았습니다. 인천문화재단이 이런 예술가들의 고충을 알아주고 함께 고민해야할 것입니다.
안희석 : 공공기관에서 “위기를 기회로 삼아주십시오” 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연습하고 노력하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겠지만, 공공기관에서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재는 그런 말을 듣고 웃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없습니다.
김인영 KIM Inyoung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2020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창작활동을 펼쳐나갈 11기 입주 예술가를 소개합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지난해 진행된 공모를 통해 국내외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과 기획자를 선발하고, 일정기간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위한 공간을 지원합니다. 또한 비평 및 연구, 창ㆍ제작 발표 지원 등 창작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합니다.
올해, 한 달에 한 번 발행되는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입주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와 창작 과정 등에 관한 인터뷰를 공개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 부탁드립니다.
김인영은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학사와 석사과정을 졸업하였고 회화, 디지털 이미지, 설치 영역의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작가는 그간 물질과 이미지가 관계 맺는 틀과 맥락에 주목하고 그에 따라 달리 생성되는 의미들을 탐구해 왔다. 특히 시지각 과정에서 일어나는 관성적 사고의 고리를 끊고 다시금 낯설게 하는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만들어 왔는데, 이를 통해 습관적으로 보고 인식하는 행위에 대한 각성을 일으킨다. 최근에는 디지털 환경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의 물성을 탐구하고, 그것이 현실의 물질로 변환될 때의 여러 양상에 주목하고 있다. 디지털이 매개하는 이미지들을 육안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고자 하는 지향성을 거꾸로 되돌려 다시금 위화감을 드러내고 제거된 물질성을 되살리는 ‘리-앨리어싱(Re-aliasing)’이라는 개념의 작업들을 진행 중이다.
변환지점, 98x90cm, 나무에 UV프린팅, 2019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서 이미지를 소비하고 축적하고 생산해내는 환경과 사용하는 매체에 있어서의 변화를 체감해왔다. 회화를 주된 매체로 삼던 나는 작품을 디지털화 시키는 과정에서 실제 작품의 물성이 왜곡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 것을 계기로 그 차이를 드러내고자 현실의 물질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넘나들며 물질적 변환을 일으키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다. 최근 디지털 환경에서의 이미지와 그것을 현실의 물질로 다루는 사이를 변환하며 진행한 ‘리-앨리어싱(Re-aliasing)’ 작업에서는 그것이 어느 한쪽의 그럴듯한 복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각각의 것임을 드러내고자, 이질감이나 위화감을 발생시키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이는 어떤 실체와 환경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영향을 상호 교환하며 시시각각 또 다른 실재로 변화하고 있음을 각성하고자 한 것이다.
3개의 방 8개의 경계(-1F), 롤 블라인드(PET)에 UV 프린트, 가변설치, 2019
이때 고안한 작업 방식이 ‘스캐노그라피(scanography)’라는 기법으로 스캔하는 과정에서 단속촬영법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움직임을 가해 변형과 왜곡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 매체의 정밀한 기계적 공정체계에 예측 불가능한 속성을 개입시킴으로써 디지털 매체로 생성되는 자연스러움에 결절을 만들고자 한 것인데, 이 결절들은 대상에 대한 몰입을 깨고 매체에 대해 의식하도록 작동한다. 제작한 한 장의 물감 필름 원본에서 생성되는 다수의 스캐노그라피 파일들은 순서대로 넘버링 되어 저장된다. 이 축적의 과정은 색상, 뒤엉킨 색선의 형태 등 조형재료의 선택지를 다양화하는 것인 동시에 물감을 디지털화 시켜 새롭게 질료를 재가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번의 디지털 가공을 거친 질료로서 파일들은 일종의 팔레트로 기능하고, 나는 이것을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 파일들이 저장된 폴더는 지속해서 소스파일들을 축적하고 있는 중이다. 이 축적의 과정은 색상, 뒤엉킨 색선들의 형태 등 조형재료의 선택지를 다양화하는 것과 동시에 물감을 디지털화 시켜 새롭게 질료를 재가공하는 것으로, 나의 작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복제/붙여넣기(세부), 인화사진, 자석, 철판, 색지, 나무무늬 시트지, 가변설치, 2019 |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앞서 언급한 ‘리-앨리어싱’ 2019년 개인전의 제목이자 디지털 환경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의 물성에 대한 고찰을 다양한 시각적 표현으로 다루는 나의 최근 작업들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어떤 대상을 디지털화 한다는 것은 현실세계의 존재가 가지는 다양한 차이를 이진수의 기술방식, 즉 계산 가능한 상태로 변환하는 것이다. 이 변환을 거쳐 우리는 평면의 액정 화면을 통해 디지털화 된 이미지를 보게 되는데, 이 때 현실세계의 질감, 무게감, 크기 등은 사라지고 얇은 막과 같은 표피적 상(像)만 남게 된다. 회화를 주된 매체로 삼던 나의 작품들을 디지털화 시키는 과정에서 실제 작품의 물성이 왜곡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Re-aliasing(리 엘리어싱) 현수막 제작, 가변설치, 2019
디지털 매체(media)를 통해 매개(mediation)되는 상(像)은 픽셀로 재현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대각선, 곡선, 둥글고 세모난 것들은 제한된 해상도 환경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며 계단 모양의 울퉁불퉁한 외곽선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앨리어싱(aliasing)’이라 부른다. 이 앨리어싱 현상을 육안 상으로 완화하고자 울퉁불퉁한 경계선 주변의 색을 혼합하여 중간 영역을 만듦으로써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기법을 ‘안티-앨리어싱(anti-aliasing)’이라 한다. 원재료의 물질성을 제거하고 안티-앨리어싱 된 매끄러운 막을 덧입은 디지털 이미지들은 그것 자체로 기능하는 새로운 물성을 갖게 되었다. 이에 나는 안티-앨리어싱이 되어 우리에게 도달하는 이미지를 중간에 가로채어 그 특징만을 추출한 ‘재물질화’를 실행한다. 이것은 디지털 매체 상에서 보이는 이미지들을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한 것을 거꾸로 되돌려 다시금 위화감을 드러내고 제거된 물질성을 되살리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나는 이 과정을 리-앨리어싱이라 칭하고 울퉁불퉁한 위화감에 대한 복원이라 설명한다. 다만 여기서의 ‘Re-‘의 의미는 안티-앨리어싱 되기 이전의 상태로 복원하는 것이라기보다 앨리어싱과 같은 디지털 이미지가 가지는 특성을 다른 방식으로 현실세계에 꺼내어 새로운 물질로 구현하려는 것이다. 이 전시에서는 나는 스캐노그라피와 이를 포함한 다양한 리-앨리어싱의 방안들을 고안하고 실험하였고, 그 결과를 다시 시작점으로 삼아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매끄러운 막, 아크릴에 수전사, 가변설치, 2019 |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관성에 의해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원점으로 되돌려 다시 생각해보거나 다른 관점으로 비틀어보거나 혹은 반대로 뒤집어보려는 노력을 지속한다. 사고과정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고정적이고, 한번 알게 된 인식의 지름길을 두고 다른 시도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관성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만들어낸, 어떻게 보면 예술가로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습성 같은 것이다. 익숙한 것에 대해 재탐색하는 일을 멈추게 되면, 똑같아 보이는 것 사이에 미묘하게 다른 차이를 보지 못하고 놓치게 된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동질성을 찾고, 같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이질적인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며 차이, 틈을 찾아 드러내는 일을 한다. ‘내가 보고 있는 저 원이 정말 둥근 것인가?’와 같은 황당할 수도 있는 질문들로부터 작업의 실마리를 찾는다.
3개의 방 8개의 경계(세부), 롤 블라인드(PET)에 UV 프린트, 가변설치, 2019 |
A.작업을 하면 할수록 작가 개인의 고민과 관점은 더욱 심화되기도 한다. 나의 수많은 생각과 시도들을 작업의 결과물 하나로 전달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각기 개인 생각들, 혹은 나의 개별 작업물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어느 구석 좁은 면면을 반영하고 있고, 그 좁은 면이 맞닿는 순간 반가운 소통이 흔치 않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을 위해 분명 모두가 공유하고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문제를 드러내고, 예술과 삶이 연결되는 지점을 세심하게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최근 내가 일관되게 시도하는 ‘리-앨리어싱’은 자연적 세계에 존재하는 차이를 디지털화 과정에서 소거하는 것과는 반대로 다시금 그 차이를 생산해 내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디지털 매체를 매개로 한 균질화 된 세계에서 차이를 찾고자 하는 욕망이며, 디지털과 현실 세계의 경계가 모호하게 섞여 그 구분이 흐려지는 매체 환경에 우리가 너무 쉽게 몰입하게 되는 데에 대한 불안감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실체를 결여할 수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가시적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 역시 없다. 새로운 매체 환경에 반응하는 즉물적 작업들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의 한계 너머에 있을지도 모를 촉지적 감각을 일깨우고 나아가 ‘보이는 것 이상’의 비가시적 영역에 대한 사유로 이어질 수 있도록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리사이징(Resizing), 81x81cm(좌), 50x50cm(우), 나무합판, 알루미늄, 2019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작가정보 : www.kiminyoung.com
김하나 KIM Hana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2020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창작활동을 펼쳐나갈 11기 입주 예술가를 소개합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지난해 진행된 공모를 통해 국내외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과 기획자를 선발하고, 일정기간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위한 공간을 지원합니다. 또한 비평 및 연구, 창ㆍ제작 발표 지원 등 창작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합니다.
올해, 한 달에 한 번 발행되는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입주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와 창작 과정 등에 관한 인터뷰를 공개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 부탁드립니다.
김하나는 회화 표면의 질감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빙하, 침대보, 합판 등 사물의 표면 질감을 직접적으로 레퍼런스 삼아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종종 바닥에 깐 캔버스 천 위에 물감을 흘린 뒤 천의 굴곡에 따라 자연스레 물감이 고이거나 굳게 두기도 한다. 또한 구체적인 레퍼런스가 있지 않더라도 물감의 안료 구성과 레이어 쌓기, 그리고 빛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캔버스 표면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감각할 수 있게끔 전시를 연출한다. 작업의 레퍼런스의 공통점은 대체로 자연의 재료이며 시각 우위의 것이라는 점이다. 빙하, 직물, 모래, 물, 빛, 돌, 포도, 합판, 광물 같은 것은 형상보다 제일 먼저 질감으로 인식된다.
아름다운 직업 4, 90.9×72.7x5cm, 캔버스에 유화, 2019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끊임없이 무너지고 동시에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는 인간의 위태롭고 막막한 속성을 회화로 나타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를 존재시켜 나간다는 것은, 붕괴와 변화의 연속성 속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마치 회화가 실제적 단단함 대신 무한한 변형 속에서 사라지거나 유지하는 것과 같이 변화와 흐름이라는 요소는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시작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회화와 인간을 한 수평선에 대치시킨다. 회화는 붕괴하고 변화하는 존재방식 자체로 인간의 메타포가 된다. 따라서 내가 작업하는 회화에서 표면은 미적탐구의 대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방식에 대한 존재론적인 방식을 드러낸다. 특히, 내가 주로 작업하는 추상적 회화 작품은 완성된 후 작품이 스스로 말하고 표출하고 있는 것이 주체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Untitled (Glacier Landscape Series), 180x160cm, 캔버스에 유화, 2016 |
Untitled (Glacier Landscape Series), 130.3×162.2cm, 캔버스에 유화, 2016 |
회화 작업이 표현의 지점을 넘어서 하나의 주체로 거듭나는 부분은 장면이 하나의 분위기 그리고 뉘앙스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완성된다. 나의 첫 번째 개인전 《빙하풍경》(신한갤러리, 2016)을 포함하여 2014년부터 2017년 사이의 작업을 돌아봤을 때, 무의식적으로 ‘주변과 대상’이 분간되지 않았던 작업과, 그 ‘주변과 대상’이 분명하게 나뉘는 경우를 찾아 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작업에서 그러한 장면성을 방해하는 하나의 요소를 ‘표면의 주변과 대상’의 분리라고 판단하였다. 그 이후 나는 새로운 지향성을 가지고 2017년부터 추상적 회화의 ‘표면의 주변과 대상’의 관계와 구성 그리고 그 둘의 합일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였다.
《Little Souvenir》 전시 전경, 갤러리 기체(서울), 2018
‘주변과 대상’은 정사각형 그림 안 형상에서 시작하여, 2018년 두 번째 개인전 《Little Souvenir(리틀 수비니어)》(갤러리 기체) 작업 과정에서 그림과 그림이 지지 받고 있는 벽 더 나아가 바닥과 천장을 처음 개입시켰다. 이어서 개인전《White, Wall, Ceiling Rose(화이트, 월, 실링 로즈)》((공간 시은, 2018)과 단체전《그림과 조각》(시청각, 2018), 《Allover(올오버)》(하이트컬렉션, 2018) 에서 전시 전체를 장면으로 설정하여 회화의 확장된 감각을 심도 있게 실험하였다. 네 번의 전시 모두 서로 다른 공간의 특성에 따라 새로운 작업을 선보였고, 같은 작업이더라도 다르게 변주하여 새로운 감각을 시각화 하였다.
《그림과 조각》전시 전경, 시청각(서울), 2018 |
나는 캔버스를 변형하거나 캔버스 밑 칠 안료와 벽면의 관계 또는 빛을 활용하고도 하고, 곡선 유리 액자와 여백의 벽 또는 맞은편 그림과의 관계, 시선의 층위 차이 등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이 때 작품의 ‘주변’이 그림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2차원 평면 안에서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놓일 공간과 어떻게 합일하여 확장되는지 탐구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전시 전체와 더불어 공간을 고려하지 않은 작업 또한 기존에 구상하지 못했던 색채와 광택의 사용, 붓질과 형상의 당위성 등을 획득하여 두드러진 개별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새롭게 발견한 추상 회화에서 ‘주변과 대상’이 새로이 인지함으로 표면이 표현의 지점을 넘어선 주체가 되는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더 구체화시키는 연구 목적을 가지게 되었다.
Beau Travail 11(아름다운 직업 11), 160x160cm, 캔버스에 유채, 2019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내 작업은 전시 되는 장소의 빛의 조건에 영향을 받아 표면을 계획 또는 우연적으로 제작하거나, 창문을 이용하여 회화의 표면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White, Wall, Ceiling Rose (Little Souvenir Series), 112.1x291cm (3점), 캔버스에 유화, 2018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내가 실제로 방문했던 곳에서 구입한 알프스 키츠부르헬(Kitzbühel) 스키장 엽서(기념품)는 9년이 지난 지금, 현재의 나에게 어떤 구체적인 추억들이 아닌 ‘내가 정말 이곳에 갔다 왔었을까?’ 같은 비현실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일반적인 기억의 형태와 동떨어져 ‘현재와의 간극‘ 또는 ’신기루‘와 같은 감정을 수반한다. 빙하는 상반된 두 바람을 투영하고 있는 기념품이다. 나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종종 빙하를 그려왔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본 후, 장엄하고 신비로운 풍경에 매료되어 실견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빙하를 그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빙하를 실제로 보지 못했고, 이전의 상황과 달리 극지방으로 여행 갈 수 있지만 당분간 가지 않기로 하였다. 나에게 현재 빙하는 실견하지 않아 발생한 환상 또는 허상으로, 더 특별한 감각을 주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간직되길 바란다.
Untitled (Glacier Landscape Series), 201x108cm(2pcs), 캔버스에 유화, 2016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나의 작업은 기념품과 같다. 새로운 여행지나 뜻밖의 무언가에서 느낀 낯선 것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것과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다르지 않다. 낯섦이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짜릿한 관능, 두려움, 설렘, 원초적 아름다움이나 신비로움과 같은 다양한 감정 속에는 공통적으로 일상의 스토리 라인을 침묵시키는 활력적인 생기가 들어있다. 그것은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유인하며, 그 곳으로부터 떼어낸다. 기념품이라는 물건은 신비로운 구석을 가지고 있다. 냉장고의 자석, 가방의 열쇠고리 혹은 선반에 위의 기념품은 전혀 상관없는 곳에 주위 사물과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은 채 이기적이며 당당하게 놓여있다. 대체적으로 작은 형태이지만, 크기에 구애 받지 않으며 공간과 감각을 크게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이와 동시에 현실 풍경을 초현실적으로 환기시키며, 일상 속 마주치는 예술 작품과도 대단히 유사하다.
Untitled (Little Souvenir Series), 22.7×15.8cm(2pcs), 캔버스에 유화 및 오일파스텔, 2018 |
Untitled (Little Souvenir Series), 15.5×10.5cm(2pcs), 종이에 흑연과 오일, 2018 |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현대 회화 작가로서 ‘왜 아직도 그림을 그리는가’를 계속해서 질문하며, 매체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행위, 그 자체가 어떠한 불확실한 것에 대한 짐작임과 동시에 단단한 현실과 대비를 이루어내는 유기적인 추상적 회화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회화 표면의 무한한 변형은 단단한 외피로부터 발가벗겨진 인간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디지털 화면에 담긴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넘치는 시대에서 직접 몸이 개입하여 실제로 감각 할 수 있는 질감과 물성을 탐색하는 일은 지난 긴 회화의 시간 속 표면 탐구와는 다른 감각과 의미를 가진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이와 보는 이 모두가 질감과 물성을 새로이 감각할 수 있는 회화 시각 언어와 작업 방식을 찾고자 한다.
Beau Travail 10(아름다운 직업 10), 181.8×227.3cm, 캔버스에 유채 2019
Beau Travail 9(아름다운 직업 9), 130.3×486.6cm, 캔버스에 유채 2019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이종구, 그의 작품 세계와 인터뷰 <붉은 뺨을 가진 화가의 이콘>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ver 3. 이종구
붉은 뺨을 가진 화가의 이콘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의 시작을 여는 기획전시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이 12월 20일부터 2020년 5월 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 중 인천 연고를 가진 중견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참여 작가 각자의 작품 세계관을 살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매월 2명씩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글을 만나본다.
이종구, <세월-편지>, Acrylic on paper, 97×130cm, 2018
붉은 뺨을 가진 화가의 이콘
바다는 추웠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온 도시를 깡그리 얼려버렸다. 한참이나 남쪽에서 북쪽으로 다시 서쪽으로 길잡이를 하며 이종구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는 길의 바람은 시려웠다. 손과 발이, 코끝이. 5년 전 그 해 우리를 짐승의 시간과 대면케 한 단원고 2학년 324명 아이들의 얼굴을 만나러 가는 길의 심경이란 그저 바다 속은 따뜻하기를 염불처럼 외는 것뿐이었다.
얼굴은 이종구 작가 화업의 본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1984년 시작한 <오지리 사람들> 연작의 첫 작품은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서 평생을 땅에 파묻혀 사는 아버지와 숙부, 동생과 장씨, 안씨 등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근대 이후 복고와 향수의 대상으로만 취급해 온 농민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에서 이종구 작가가 일으킨 미술사적 성취였다.
특히 캔버스가 아닌 부대종이에 그려진 농민의 얼굴은 그들의 일생을 증언하는 강력한 오브제로 기능하였다. 화가의 미학이 아닌 농촌의 현실을 환기시키기 위해 선택한 부대종이처럼 그는 1990년《오지리 사람들》전시를 현실과 유리된 화이트큐브가 아닌 가을 운동회가 열리는 축제날 오지초등학교에서 개최한다.
이후에도 그는 2003년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전시《주인을 찾습니다》전, 구제역 파동으로 희생된 돼지들을 위한 진혼 퍼포먼스(2005), 2006년 평택 대추리 현장미술의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 마을벽화 작업 등에 참여를 하며 한국사회가 그어 놓은 미술의 속물적 한계를 지워나간다. 또, 그가 주요 발기인으로 활동한 1982년 서울 ‘임술년:구만팔천구백구십이’ 와 1985년 인천 ‘지평’의 창립은 모두 리얼리즘 정신을 기반으로 세계가 처한 모순을 미술의 힘으로 돌파하려한 시도들이었다. 그가 2005년 수상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은 비단 민중미술운동만이 아닌 한국현대미술 씬에서 유폐된 리얼리즘과 실천하는 화가로서 작가에 대한 당연한 위치 지움이었다.
이종구, <봄이 왔다 1>, Acrylic on a canvas, 194×130cm, 2018
이종구, <농부>, Oil on rice bag, 95×58cm, 1985
이종구, <오지리 장씨>, Oil on rice bag paper, 110×70cm, 1990
이종구, <대추리의 기억-캠프험프리스>, Acrylic on paper, 97×130cm, 2018
그런 이종구 작가에게 세월호 아이들의 얼굴은 부활이었다. 이제껏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내던 그에게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이들의 얼굴을 그리라는 임무는 그가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이자 신탁이었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바다 속의 아이들이 우리를 추운 광장으로 나오게 했고, 끝내 봄이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사진이나 다른 매체가 아닌 그림으로 부활시키고 싶었어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니까요.”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베로니카의 베일이나 아브가르 왕이 걸린 불치의 병을 치료해 준 예수가 땀을 닦은 아마포는 이콘(Icon)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두 가지 기원설 모두 이콘, 그리고 이미지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까지 가장 낮은 곳에서 세계를 구원하려한 이의 희생과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종구, <학교 가자, 4반-세월><학교 가자, 7반-세월>(1반~10중), Acrylic on a paper, 65×91cm, 2017
이종구 작가의 <세월호>연작은 우리시대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희생자이자 우리를 짐승의 시간에서 구원해준 어린 성자(聖者)들의 이콘이다. 그는 어린 성자들이 가라앉은 진도의 물길이 보이는 해남에서 고행하듯 그림을 그렸다. 이제는 좀 여유로워진 작업실과 집을 등지고 수백 명의 아이들의 얼굴이 종이에 드러나기만을 기원하며 면벽 수련하듯 밤낮으로 3개월 동안 그렸다. 그리고 그가 보지 못한 아이들의 얼굴은 마치 그가 바로 옆에서 보고 그린 것처럼 세계의 고통을 껴안은 그 천진한 모습을 자신들의 꿈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또, 작가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324명 아이들의 꿈이 ‘16,894,280’개의 촛불이 되어 광장으로 내려와 우리가 겨울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봄을 열어젖힌 드라마를 거대한 빛의 서사시로 엮어내고 있다. 물론 <봄이 왔다> 연작에 등장하는 남북 정상의 맞잡은 손은 자신의 상상력이었지만 그것이 실재 현실로 와버린 순간 지나친 민족적 감상주의였다는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이종구, <광장-가족>Acrylic on a canvas, 130×244cm, 2017
붉은 뺨을 가진 짐승은 인간이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라는 니체의 언설이다. 중학시절 화가의 꿈을 키워 준 도시 인천에서 농촌출신 아이가 느꼈을 부끄러움, 매끈한 캔버스에 붓질을 놀리는 화가의 길에서 자꾸 눈에 밟히는 오지리 고향사람들의 척박한 현실, 그리고 아직도 인양되지 못한 세월호 아이들의 진실 앞에서 화가의 무력한 손재주라는 부끄러움은 이종구를 우리시대 성자들을 기록하는 이콘을 그리게 만들었다.
글/ 한재섭 (미술사)
이종구 작가 인터뷰 작가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이종구(b.1954-, 충남서산 출생)는 1980년대부터 급변하는 한국 농촌의 현실을 주제로 민중의 삶을 탐구해온 리얼리즘 작가이다. 그는 현실 참여적 활동들을 통해 농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눔으로써 그들에게 내제된 분노와 저항, 그리고 희망을 표현해 왔다. 이후 우리의 국토 현실과 현장, 이라크 전쟁과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문제 등을 다루었으며, 최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초상화 연작, 이로 인해 시작된 광화문 촛불집회, 분단을 넘어 평화의 시대로 가는 민족 현실을 주제로 한다. 그는 미술의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두고 잘못된 권력과 정권에 대한 발언과 치열한 시대적 현실을 기록을 기록해 오고 있다.
이종구는 중앙대학교 회화과와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있다. 민중미술 동인인 ‘임술년’, 인천 미술인 그룹 ‘지평’의 발기인으로써 대표적인 민중미술 작가로 활동하였다. 인천공보관에서 진행된 <이종구 습작전>(1976)을 시작으로 20여 차례 개인전과 <민중미술 15년전>(국립현대미술관, 1994), <민중의 고동-한국미술의 리얼리즘 1945-2005>(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외, 일본, 2007), <코리안 랩소디>(리움미술관, 2011) 등 수많은 기획전에 초대되었다.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2010년 인천문화재단 우현예술상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 『땅의 정신 땅의 얼굴』(한길아트, 2004) 이 있다.
*한재섭은 인류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했고 전남대 문화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R 펠로우 방문연구자로 참여했고, 20세기 억압된 정치공간속에서 발현한 소문과 이미지의 정치학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사회정치적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다, 작가 이탈의 작품 세계와 인터뷰 <부재(不在)의 존재(存在) 증명>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 ver 3. 이탈
나는 그가 그만의 권력을 갖기를 원한다.
부재(不在)의 존재(存在)를 증명할 수 있도록.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의 시작을 여는 기획전시로 《수평적 세계를 껴안는 방법》이 12월 20일부터 2020년 5월 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 중 인천 연고를 가진 중견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참여 작가 각자의 작품 세계관을 살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매월 2명씩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글을 만나본다.
이탈, <국가>, Object on frame, 180×120×50cm, 2003
이탈, <국가>, Object on frame, 240×120×50cm(2pcs), 1999
나는 그가 그만의 권력을 갖기를 원한다.
부재(不在)의 존재(存在)를 증명할 수 있도록.
옴의 법칙 V=IR
저항이 커지면 전류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오고 전류는 저항에 반비례 한다.
옴의 법칙(Ohm’s Law)은 도체의 두 지점사이에 나타나는 전위차(전압)에 의해 흐르는 전류가 일정한 법칙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두 지점 사이의 도체에 일정한 전위차가 존재할 때, 도체의 저항(resistance)의 크기와 전류의 크기는 반비례한다.
이 보편화된 과학적 법칙(언젠가 깨질지도 모르는)이 꼭 인생의 법칙과 닮아있다는, 이 전기저항에 관련한 과학 법칙을 삶의 법칙으로 확인하고, 사건을 접하고 작품을 구상하고 전시를 계획하고, 그 전시의 작품을 설치하고 만들어갈 때마다 누구에게나 수평적으로 공평하게 흐르는 전류이기에 무엇에 홀린 듯 전기를 연결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하는 작가가 있다. 설치, 미디어. 퍼포먼스, 비디오아트, 키네틱아트 등 다중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사건을 작품으로 선보이는 이탈 작가이다.
이탈은 교사였던 아버지의 발령에 따라 7살 무렵부터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모두 보냈다. 대학졸업 후 다시 인천에 작업실을 얻어 활동하던 중 96년에 인천에서 개최한 전국 규모의 미술제인 대한민국청년미술제에서 평론가상을 받아 이듬해 동아갤러리에서 초대개인전을 개최하게 된다. 1990년대 초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혼란스러움으로 스스로 회피성 도피를 하기도 하였다. 그에게는 다양한 미술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바탕에 깔려있는, 시대가 흐르고 변해가는 과정에서 ‘예술가인 척 해온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고민이 수반된 고된 과정이기도 하였다. 작가적 특성이나 재료적인 기법을 표현하는 것보다 특정한 이슈나 경향, 사건을 시각매체를 통해 어떻게 발언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였다. 이 예술이란 형이상학적인 관념의 세계를 현실과 같이 접목시킬까에 대한 질문을 거듭하며 캔버스가 아닌 사건과 마주한다.
예술이 삶을 반영한다는 전제하에 세련된 치장으로 정연화된 조형성을 강조했던 작금의 작업들을 벗어던지게 되었던 1995년 그 날의 기억들은 그에게 작품을 해야 할 당위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재확인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목도하였던 묘한 사건의 시작. 그 날 고속도로에 선혈이 낭자한 시체와 핏덩이들을 발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 하였을 때의 잔혹함, 잔인함, 역겨움 등의 언어들로 인식되었던 그 살덩이들은 같은 살덩이임에도 불구하고 정육점에 잘 진열되어있는 고깃덩어리를 보면서 식욕을 느끼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교육에 의해 세뇌된 신념정도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자신의 시각언어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로써 나타나는 그의 사건에 의한 사실 속 실재들은 언어와 학습에 의해 체계는 무너지며 존재의 의미조차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후 발표한 그의 1997년 첫 개인전 “교실 이데아전”을 통해 사회적 인간 존재론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강요되어지는 무형의 폭력을 고발하게 된다.
이탈, <새마을 운동>,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LCD monitor), 1min 53sec, 2003
이탈, <처절한 정원(요단강 가는 길)>,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LCD monitor), 2min 43sec, 2005
벌거벗고 혼자서 줄넘기를 반복해서 하는 자신의 뒷모습을 볼록렌즈 이펙트를 사용하여 희화화시킨 영상 작업 <비디오 점핑>(2002)은 타자와의 관계가 아닌 작가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잠입해 성찰의 사유를 통해 인간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작품이다. 무언가 비대해져 움직일 수 없는 존재의 허탈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이 작품은 <새마을 운동>이라는 명제로 재전시된다. 1970년대의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주요한 사건이었던 새마을운동은 절대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국가라는 집단적 상상력을 좌우하며, 맹목적으로 세뇌된 신념을 통해 규정되어지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는 결국 성찰을 통한 인간적 선택의 여지는 전혀 없이 집단적인 이슈를 통해 강요되고 세뇌당한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며 또 다른 이면에서는 현재를 그리고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탈, <인간의 분류는 신을 처형한 이후에 가능하다>, Recycle robot, plc, relay, sensor, support frame, etc, 230×160×45cm, 2010
이탈, <K군 찾기>, Kinetic device, monitor, aduino, raspberry Pi, interactive video, etc, 190×140×50cm, 2019
그간 발표되었던 이탈의 작품들은 사회의 구조적이며 패권주의적인 모순, 그로 인한 상실감, 패배감, 부조리한 사회관계 등의 너무나 날것이라 때론 폭력적이라거나 충격적이라거나 한 초극화된 감정들을 일으킨다. 그러나 <인간의 분류는 신을 처형한 이후에 가능하다>(2010)를 통해 지배자와 피지배자, 다수자와 소수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인간의 분류’가 자행되는 현실에서 ‘처형할 수 없는 신’ 그 절대자에게 돌아가자는 원론적이며 종교적인 설득을 한다. 또한 <요단강 가는 길>로 발표되었던 ”처절한 정원“안의 장면에서 처절한 현실 안에서 호소하는 처연한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폭력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껍질 안 그는 심연의 그 무엇을 마주하고 감각의 언어를 일깨우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한 인간, 한 예술가일테니.
예술이란 것을 통해 발언을 할 수는 있지만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사회의 거대한 흐름 속에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예민한 촉각으로 감지하고 감각을 통해 제시할 수는 있다. 이탈은 그의 주체적 경험과 내면 깊숙이 잠입해 성찰한 결과들을 토대로 직관적으로 작업에 임한다.
그는 부재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회는 어떤 문화적 코드나 인식의 도식 등이 존재하는 현재를 잘 유지하기 위해 질서를 만들고 이 질서들은 특정 시대를 통합하기 위해 관념화된 틀 짓기를 시도하는데 이로부터 소외된 존재가 ‘식별 불가능한 존재‘이다. 식별이 가능한 존재와 식별이 불가능한 두 존재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음’을 인식하게 하여 거대 담론이 놓쳐버린 ‘식별 불가능한 존재’의 의미를 통해 사회적, 관습적으로 학습된 일반성에 변형을 가해 다시 돌아보게 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K군 찾기>(2019)는 군사평론가 지만원이 주장하는 “광수 찾기”라는 사건을,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파행되는 혐오와 냉소 등을 희화화한 작품이다. 이미 가치가 상실된 영상물에서 이미지들을 무작위로 채집하여 원본을 파편화시키고 재가공하여 원본이 지닌 가치와 권위를 배반하고 친숙한 내러티브를 낯설게 하여 관념화된 질서를 위반한다. 이는 프레이밍(틀 짓기)으로부터 주체를 탈주시켜 오래된 관습과 관념을 파괴하기 위해 ‘식별 불가능한 감각’을 동원하여 ‘식별 불가능한 존재’의 대안적 서사를 증언하기 위함이다. 그에 따르면 결국 ‘식별할 수 없다는 것’은 죽은 존재가 아닌 없는 존재이며, 부재(不在)의 존재(存在)인 것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 맹목적인 자아도취와 광기가 많았다. 또한 타자에 관한 이해와 사랑도 부족했다. 나는 아직 해야 할 작업들이 많다. 그리고 구체적인 플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생각이 현실이 되기까지엔 많은 제약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권력에 관한 것이다. 권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내가 궁극적으로 예술행위를 통해 세계와 세상의 원리를 터득해가려는 하나의 검열도구이며 욕망에 관한 반성의 시작 지점이다.”
예술가는 매일매일 고문당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탈. 치열하게 고민하고 날 것 그대로의 처절한 작업을 통해 부재(不在)의 존재(存在)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탈. 나는 그가 권력을 갖기를 원한다. 그가 가지게 될 권력으로 무한히 확장될 그의 세계관과 모두에게 평등한 인간애가 그만의 언어로 우리에게 도달되기를 원한다.
글/ 우사라 (부평구문화재단 큐레이터
이탈 작가 인터뷰 작가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이탈(b.1967-, 서울 출생)은 사회정치적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 오며 설치미술을 비롯한 퍼포먼스, 비디오아트, 키네틱아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실험적인 작품 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는 평등한 원초적 인간의 원형을 탐구하기 위해 거칠고도 도전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육질, 육체를 드러내거나 산업사회를 대변하는 테크놀로지적 ‘기계=인간’을 구현해 자본주의 모순과 부조리함, 그로 인한 현대사회의 상실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작가는 사회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을 드러내는 초극화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인간성으로의 회복, 나아가 인간애와 자유, 평등의 가치를 소원해 나간다.
이탈은 인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경기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현재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인천 동아갤러리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청년 미술제 수상전(1997)을 시작으로 <세뇌된 신념>(대안공간 풀, 2003), <처절한 정원>(스페이스 빔, 2005), <레디메이드 만석>(우리미술관, 2019) 등 한국, 중국, 터키 등에서 개인전을 진행했으며, <Try Again Try>(제주현대미술관, 2018), <다카르비엔날레>(보리바나미술관, 세네갈, 2018),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대구미술관, 2018) 등 수많은 기획전에 초대되었다. 그는 ‘아름다운 교문 만들기’ (인천문화재단, 2010), ‘커뮤니티 페어_아트폐허’ (제물포 시장, 인천, 2012), 인천예술정거장 프로젝트 <언더그라운드, 온 더 그라운드>(인천시청역, 인천, 2018), 등을 기획하였고, 비영리 전시공간 국제 교류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2012~2015년까지 인천에서 대안공간 UNESCO A.poRT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한국미디어아트협회 감사를 역임하고 있으며 인천 강화도에서 작업하고 있다.
*우사라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서 한국화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2005년 세계도자비엔날레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서울옥션 강남, 갤러리백송 큐레이터를 거쳐 ㈜중아트그룹에서 전시 총괄을 담당했다. 현재 부평구문화재단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나탈리 레테 특별전 – 마법의 숲
한승욱 개인전 – 파도꽃
밤이고 낮이고 하루 종일 피는 꽃이 되고 싶었다.
나무 아래 살아 작은 그릇과 비행을 준비하며 그늘 넓은 나무가 되면 좋겠다, 생각했다.
표현하면서 자신을 지우는 일을 생각하며 밤바다에서 이런 글을 썼다.
[밤에도 파도는
자신을 지우는 일을 계속해서
달빛이 비치네]
절룩거리며 여행한 남도에서는 이런 글을 썼다.
[바다가 섬 두 개를 품었다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네]
내 일은 허둥지둥 처리할 것이 아니고 구름 가듯 흐름은 내 뜻이 아닌 것을, 순응하는 법을 몰라 너무 고생시켰다. 바람에 실려서 겸허한 표현으로 가고 싶다. 잎이 넓은 나무처럼 한 줌 바람도 쉬다 갈 수 있는 표현이고 싶다.
우현 고유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