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파는 작업과 글을 통해 ‘그림’과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장파의 작업은 ‘여성적 그로테스크’와 같이 타자화된 감각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여성주의적 정체성에 근거한 회화적 언어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작가는 회화의 영역에서 소외된 여성의 감각에 주목하고, 젠더 편향적으로 형성된 시각 언어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존의 회화 어법을 재맥락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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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폭도 소녀들, 캔버스에 오일, 181.8×227.3(cm), 2015 |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의 작업은 주체의 ‘정상성’과 타자의 ‘비정상성’이라는 부조리한 폭력적 관계에 대한 사적 경험을 토대로, 이를 서사화하여 재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이는 <식물들의 밀실> (2009), <세계의 끝>(2011), <어제까지의 세계>(2013), <Lady-X>(2015), <Fluid Neon>(2016), <X-Gurlesque>(2017), <‘Brutal Skins>(2018) 시리즈 및 개인전으로 이어져 왔으며, 이 시리즈들은 ‘구조적 폭력’과 ‘타자화된 존재’ 사이의 메커니즘, 즉 타자성(otherness)이라는 주제로 수렴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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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X》 전시 전경, 갤러리 잔다리(서울) 2018 |
현재 나의 작업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Lady-X>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타자로서의 여성’, ‘여성적 그로테스크’의 시각적 재현 방식을 회화로써 탐구하고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 시리즈의 시작은 “여성의 주체적인 성적 욕망은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가?” 그리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적 응시’로부터 벗어나 여성이 응시와 재현의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페미니즘의 고전적 질문이었다. 이를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대상이 아닌 주제로 삼아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탐구하고자 했다. 섹슈얼리티는 가부장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여성은 자신의 성적, 육체적 경험에서 소외되어왔다. 따라서 남성 중심적 시선과 언어에서 배제되거나 은폐된 ‘여성-타자의 감각’을 ‘회화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여성성’의 재맥락화를 통해 젠더 편향적인 감각 체계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자 한다. 또한, 최근 미투 운동과 같이 사회적 의제가 된 문제들을 그림에서 은유적으로 언급한다거나, ‘여성 괴물’을 직접적으로 제시 하는 방식으로 각각 내가 생각하는 여성 문제를 직접적이되 감각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야기 될 수 없는’ 여성의 경험과 감각을 ‘Brutal Skins’라는 표제어로 은유한 것과 같이, 이미 살갗이 벗겨진 피부만 느낄 수 있는 공기가 주는 쓰라림과 같이, 그동안 말하기 힘들었던 그리고, 말할 수 없었던 여성의 경험과 감각을 회화로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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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tal Skins》 전시 전경, 두산 갤러리(서울) 2018 |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위의 질문에서 언급했듯 2015년 개인전 《Lady-X》에서 여성의 성적 판타지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다층적 관점을 회화로 표현하고자 했다. 타자(他者)로서의 여성을 다루며 ‘여성의 고유한 섹슈얼리티가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페미니즘의 다소 고전적인 질문을 시작으로 이를 탐구하기 위해 나무를 사랑하는 도착증, 즉 ‘덴드로필리아(dendrophillia)’라는 페티시를 지닌 ‘레이디 엑스’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였다. 나는 그녀가 갖는 섹슈얼리티와 성적 판타지를 일종의 성장기로 서사화하여 회화 및 드로잉으로 재현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드로잉과 회화 작업은 낯선 타자들, 즉 비체(애브젝트, abject)로서 공동체에서 ‘타자’로 읽히는 ‘여성’, ‘소녀’ 그리고 ‘유령’과 같은 존재들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자 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대상이 아닌 주제로 삼아 여성이 자신의 성욕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이 작업의 시발점이다. 남성 중심주의에서 왜곡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규범화된 여성성에 길들기를 거부하고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여성 주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이러한 탐험기를 설정한 것이다. 즉, <Lady-X> 시리즈는 여성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과 성욕을 탐색하는 과정을 서사화하며, 새로운 여성 주체를 형상화하기 위해 여성성의 ‘다시 쓰기’를 시도하고자 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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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탈당한 머리카락, 가변크기, 합성섬유, 캔버스에 오일, 2016 |
플루이드 네온(Fluid Neon), 33.4×24cm, 캔버스에 오일, 2016 |
<Lady-X> 작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서사적 표현보다는 여성의 내적 감각에 더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것에 관한 관심은 ‘여성적 감수성’의 표현으로 시도하는 한편, 그 감각을 시각화하는 것에 집중했다. 동시에 여성과 남성의 성차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 정체성의 차이 및 여성들 내부의 차이, 그리고 여성 개인들의 내면에도 분열적인 복수(複數)의 정체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고려하면서, 배제의 논리를 극복하는 ‘새로운 여성 주체’를 형상화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작업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여성이라는 성별에 기초한 감각적, 심리적 경험으로부터 여성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타자’인 여성이 직접 겪은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감각들, 이를테면 ‘여성적 그로테스크’를 회화적 감각으로 풀어나가고자 한 것이다. 나는 ‘여성적 그로테스크(female grotesque)’를 새로운 여성 주체의 형성 과정에서 주체의 경계를 되묻고 넘나들 때 발생하는 심미적 감각으로 보고, 가부장제의 여성적 규범을 뒤흔들며 ‘보편적 감각’을 재설정할 가능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남성 중심적 상징체계를 위협하는 미적 범주이며, 동시에 기존의 사회적 감각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공할만한 힘을 지닌 감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타자라는 반대 개념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성적 그로테스크’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 누군가를 타자로 만들지 않는 동시에 자신을 타자화 혹은 대상화하는 것을 극복하는 것에서 유발되는 감각이자 심미적 범주이다. 따라서, 나는 이 감각을 통해 여성적 특성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젠더 편향적 시각 체계를 벗어난, 새로운 여성 주체를 구현할 수 있는 시각 언어를 정교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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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pidity Series, 27.3x22cm, 캔버스에 오일, 2016 |
Stupidity Series, 27.3x22cm, 캔버스에 오일, 2016 |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나는 회화사 및 회화 비평 자체에 관심이 많다. 내 작업에서 보이는 회화적 표현은 추상표현주의의 남성적 표현성을 연상시키곤 한다. 왜냐하면, 1950년대 미술비평에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나 윌리엄 드 쿠닝(Willem de Kooning)과 같은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어들은 남성의 성적 욕구와 예술 창작 간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폴록의 ‘드리핑(dripping)’은 남성의 성적 분출을 연상시킨다거나, 드 쿠닝의 대표적 연작 <여인(Woman)>에서 보이는 폭력적인 붓질로 여성의 형상을 지우고 덧그리는 과정 및 여성을 악마적,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듯한 형상은 작가의 여성에 대한 이율배반적 감정과 연관 지어 설명된다. 나는 이러한 평가의 타당성을 문제로 삼기보다 미술 비평에서 상정해온 이성애적이며 초월적인 남성 주체의 시각에서 쓰인 비평 언어가 회화적 표현이나 그 창작 과정을 다루는 데 있어 남성의 욕망과 행위를 중점으로 설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감한 붓질 혹은 거친 표현은 남성성의 영역으로 한정되어 평가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 회화의 추상적 표현에서 나타나는 젠더적 특성을 탐구하며, 여성적 감각이 어떻게 붓질, 색채 등으로 표현되는지, 오히려 화가의 관점에서 회화적 표현 자체를 기술해보며, 그것을 다루는 비평 언어를 풍부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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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말》 전시 전경, 플레이스 막(서울), 2019 |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는 그림의 매력에 대한 논의를 풍부하게 만들고 싶다. 또한 그림을 그리는 순간 물감과 붓질에 대한 의식, 직관과 감각, 그리고 실존적 붓질의 영역에서부터 추상과 구상,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형식 언어 사이에 대해 ‘보는 이’와 같이 생각해보고 싶다. 회화의 관습(convention)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편성에 관해 묻고 답하며 회화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이미 우리는 모더니즘부터 현재까지 전개된 회화에 관한 담론에서 충분히 회화라는 형식의 연약함을 인지하는 동시에 회화라는 형식의 강력함도 알고 있다. 그림이라는 것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과 감각적 인식을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비언어적 형식이자 표현 매체라 생각한다. 또한, ‘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매체이기도 하다. ‘몸’이라는 인간-물질성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형식이 나에겐 가장 매력적인 요소이다. 그린다는 것은 그리는 이의 몸과 정신, 관념과 실재가 그리는 과정에서 합일된 감각을 통해 드러나기를 지향하는 미적 활동이다. 그리고 ‘예술적 직관’이라는 것은 경험과 훈련의 소산이기 때문에, 그리는 이에게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본질적인 감각을 되찾고 발전시키는 수련의 과정이다. 동시에 그림을 보는 이들을 감각적 인식을 통해 이미지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낯설거나 배제된 감각을 회화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나의 작품을 보는 이들이 이를 보며 고전적인 미적 판단 기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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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GURLESQUE》 전시 전경, 두산갤러리 뉴욕(미국), 2017 |
강탈당한 머리카락 가변크기, 합성섬유, 캔버스에 오일, 2016 |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여성, 그리기’를 주제로 ‘여성 추상’에 대한 여러 가지 작업을 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회화에 관한 글과 세미나도 준비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젠더 편향적으로 여겨지고 기술되는 그리기의 특성들에 대해 재탐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정상적으로 여겨지는 것들, 배제된 것, 타자화되는 것들, 편향적인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감각 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론을 회화에서 찾으려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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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of the World series, 120×35cm, 먹,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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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of the World series, 00:00:55, 단채널 비디오, 2011 |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