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서구문화재단

인천서구문화재단 소식

정서진아트큐브 기획전시Ⅱ<생명체들 Lives>
전시일정 6월9일(수) ~ 7월25일(일)
전시장소 정서진아트큐브
관 람 료 무료
관람방법 사전예약(무료)
문 의 032-510-6042
소 개 끊임없이 생태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온 정서진아트큐브는 다양한 생명체를 현대미술 안에서 상상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생명체에 대한 상상의 외연을 넓혀보고자 합니다. 확장하고 있는 세계의 일원으로서의 ‘일간 종’에 대한 정체성을 재인식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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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상설공연 <우리동네 예술무대>
일시 / 장소 / 출연 · 6월 25일(금) 19:00 / 코스모40 / 최윤미
· 6월 26일(토) 14:00 / 정서진아트큐브 / 인천재즈올스타밴드
· 7월 1일(목)   17:00 / 인천서구청소년센터 / 클레프아츠
· 7월 9일(금)   14:00 / 가정생활문화센터 / 퓨전국악 경지
· 7월 17일(토) 13:00 / 코스모40 / 노이노이
· 7월 23일(금) 14:00 / 가정생활문화센터 / 상상이상
· 7월 29일(목) 14:00 / 검암경서생활문화센터 / 워너비컴퍼니
관람방법 사전예약(무료) : 서구문화재단 홈페이지 참조
문 의 032-510-6041
소 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인천을 대표하는 공연예술단체의 무대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클래식‧재즈‧오페라‧어린이를 위한 연극 등 풍성하고 다양한 공연을 일상 속 가까이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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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로 바라본 여성인권 <행진> 展
일 시 2021.6.24.(목)~7.11.(일) 10:00~18:00
장 소 인천서구문화회관 아트갤러리
관 람 전체관람 / 관람무료
예 매 엔티켓
문 의 032-579-1150
내 용 시대는 행진하며, 다양한 사건들로 우리를 경험하게 합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던 무명의 여성들의 발자취를 통해 현대의 여성인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재조명되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현대의 우리를 조명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고수의 콘서트 Ⅲ – 2회차 <평화와 희망의 북을 울려라 ‘화양연화(花樣年華)’>
일 시 2021.06.30.(수) 11:00
장 소 인천서구문화회관 서공연장
티 켓 전석 5천원
출 연 진 타고
관 람 전체연령가
예 매 엔티켓
문 의 032-579-1150
내 용 해외에서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타고만의 ‘울고’ 퍼포먼스와 함께 한국의 신명나는 타악기 연주로 심장을 두들겨 보는 시간!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해 최고 리뷰 별 5개를 받았던 ‘울고’. 이후, 해외 투어 공연을 다닌 작품으로 색다른 북소리 퍼포먼스를 인천서구문화회관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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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 시리즈 Vol.2 <아디오스 피아졸라, 라이브 탱고>
일 시 2021.07.03.(토) 17:00
장 소 인천서구문화회관 대공연장
티 켓 R석 2만원, S석 1만원
출 연 진 아르헨티나 탱고 무용수 2팀 /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탱고 밴드
관 람 만 7세 이상
예 매 인터파크티켓, 엔티켓
문 의 032-579-1150
내 용 피아졸라 탄생 100주년 기념 서구문화회관 기획 공연
아르헨티나의 열정적인 무용수와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 탱고밴드가 선보이는 100% 라이브 탱고 공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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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일 시 2021.07.09.(금) 19:30 ~ 07. 10.(토) 15:00
장 소 인천서구문화회관 대공연장
티 켓 R석 2만원, S석 1만원
출 연 진 세종공연예술센터
관 람 만 7세 이상
예 매 인터파크티켓, 엔티켓
문 의 032-579-1150
내 용 1천만 독자, 7백만 관객의 올킬 컨텐츠의 신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뮤지컬로 재탄생! 화려한 액션과 아름다운 선율 위 섬세한 감성이 돋보이는 살아서 전실이 되고 싶었던 그들의 이야기. 전국 25개지역 누적관람객 6만 명이 관람한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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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콘서트 Ⅲ – 3회차 <국악X양악의 콜라보 ‘화류동풍(花柳東風)’>
일 시 2021.07.28.(수) 11:00
장 소 인천서구문화회관 소공연장
티 켓 전석 5천원
출 연 진 퓨전국악 밴드 경지
관 람 전체연령가
예 매 엔티켓
문 의 032-579-1150
내 용 역사를 기반으로 한국의 한을 담은 판소리와 밴드 음악을 접목한 개성 있는 사운드로 주목받는 경지의 창작곡 퓨전국악으로 떠나는 음악 여행! 제7회 대학국악제 대상(문체부장관상), 제3회 KBS 대학가요제 대상, 2016년 한강음악제 대상을 수상한 재능있고 전도유망한 퓨전국악밴드 경지의 음악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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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문화재단

연수문화재단 소식

금요예술무대 #플레잉연수 <판소리동화시리즈 안데르센>
공연일시 2021. 7. 30.(금), 11:30/19:30 [1일 2회]
공연장소 연수아트홀(연수구청 지하1층)
공연단체 입과손스튜디오
입 장 료 전석무료(※사전예매 필수(연수문화포탈), 티켓 오픈 7. 15.(목) 14시)
입장연령 6세 이상
공연내용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의 이야기, 다함께 즐기는 판소리로 재탄생!
주최·주관 연수문화재단
문의 연수문화재단 070-4169-6457,9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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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문화재단-EAAFP <습지에 새며들다> 강연(온라인)
6월 강연 – 일시: 6월 넷째주 중
– 강사: 이기섭 박사(한국 물새네트워크)
– 내용: 매년 연수구에 찾아오는 저어새 등 다양한 철새와 송도갯벌과 관련된 이야기
7월 강연 – 일시: 7월 넷째주 중
– 강사: 유동현 관장(인천광역시립박물관)
– 내용: 과거 어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송도 갯벌의 과거부터 국제도시로 조성된 송도 갯벌의 변천사의 기록
운영방식 온라인
접속방법 연수문화재단 유튜브 채널 (www.youtube.com/channel/UCA7VjeRV2Ds-fPN5lN2jcHw)
문 의 연수문화재단 문화사업팀 070-4169-6459
연수문화재단 기획전시 <낯낯곳곳: 낯익지만 낯선 연수구의 곳곳>
일 시 2021. 7. 28(수)~ 8. 10(화) 10:00~18:00
장 소 연수구의회 1층 연수갤러리
입장료 무료 * 예약사이트를 통한 관람 운영
내용 연수문화재단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작품을 기반으로 추진된 기획전시의 일환으로 송도어촌계, 송도역전시장, 청학동 일대, 솔찬공원 등 지역의 특징, 역사적 사실로 제작된 작품과 결과물 이면의 아카이브 작업을 전시하여 연수구의 익숙한 곳의 낯설음을 보여주고 지역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
참여팀 청학동2030, 카툰캠퍼스, 그린웨이브, 인천창조미술협회, 연수구서예협회
주최·주관 연수문화재단
문 의 연수문화재단 070-4169-6456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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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문화·예술도시 연수를 꿈꾸다

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문화·예술도시 연수를 꿈꾸다

정구섭, 정효민(연수문화재단)

Ⅰ. 20대 청년이 떠나고 있다4,065명. ‘2020년 인천시 군·구의 연령별 군·구간 순이동인구(그림1)’에서 연수구의 20대가 순유출된 인구수다. 전 연령대에 거쳐 순유입이 이루어지는 연수구에서 유독 20대에서 큰 폭의 인구 유출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 이는 도시의 역동성과 발전 가능성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을 내포하는 중요한 지표로 볼 수 있다. 20대의 순유출이 단순히 ‘대학진학’과 ‘취업’이라는 세대의 특징을 반영한 결과라 단정 짓기에 ‘남동구 20대 순유입 11,869명’, ‘서구 20대 순유입 11,355명’과의 격차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림1> 인천연구원, 『인천시 인구이동 특성 분석과 이해』 (이왕기, 2020)

물론 동구, 미추홀구, 부평구, 계양구 모두가 20대 순유출이 있으나 해당 지역들은 거의 모든 연령에서 순유출이 일어나고 있어 시사하는 결이 다르다. 남동구, 서구처럼 모든 연령대에서 순유입이 일어나는 지역과 연수구를 비교하며 문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Ⅱ. 20대 청년문화·예술 종사자들이 연수구에서 활동한다는 것연수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 종사자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증명’(그림2) 4월 4일 기준 104명으로 집계되었다. 인천시 청년문화·예술종사자가 100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연수구에서 활동하는 청년은 12명이다. 부평구 20명, 남동구 19명, 서구 15명, 미추홀구 14명, 계양구 13명에 비해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림2>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증명 데이터 대시보드

‘문화체육관광부 2019 문화기반시설 총람’을 살펴보면 ‘20대 인구 순유출’, ‘20대 청년문화·예술종사자’가 낮게 집계되는 이유를 조금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연수구 공공문화기반시설은 공공도서관 8개, 박물관 3개, 미술관 0개, 문예회관 2개, 지방문화원 1개로 총 14개의 시설을 가지고 있다. 민간문화기반시설은 박물관 1개, 미술관 0개, 영화상영관 4개, 등록공연장 4개로 총 9개의 시설이 구축되어 있다. 공공과 민간을 합하면 23개의 문화기반시설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중구 33개, 미추홀구 30개, 서구 25개에 비해 부족하고 남동·부평구 22개에 비해 조금 더 많기는 하지만 이는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문화기반시설임을 상기해볼 때, 등록·집계되지 않은 갤러리, 공연장의 개수가 현저히 부족한 연수구는 타 구의 문화·예술종사자보다 불리한 환경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
연수구의 등록 문화기반시설은 양의 부족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청년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트센터인천, 트라이보울 등은 청년들이 대관하기에 규모나 금액 면에서 부담이 되고,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시설들은 폐쇄적으로(재학생과 졸업생을 우선으로) 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연수구의 높은 임대료는 청년예술가나 활동가들이 연수구를 지역 거점으로 활동하기 위해 사업장을 내거나 유지하는 데 매우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연수구의 문화예술시장은 청년·문화예술종사자에게 블루오션이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블루오션에 진입하기 위한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는 현실이 공존한다.
연수문화재단은 연수구의 이처럼 부족한 문화예술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인정하고 새로운 방식의 청년문화·예술종사자 지원사업 및 프로젝트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청년들이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활동의 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형태로 말이다.

Ⅲ. 20대 청년문화예술종사자가 만들어가는 문화예술도시 연수① 2021 연수예술지원사업 청년예술준비지원사업연수문화재단은 설립과 동시에 2020 연수문화예술지원사업을 시작했다. 그중 지역의 청년문화기획자와 예술가를 발굴하기 위해 ‘청년예술기획지원’을 운영했는데 6건의 신청서가 접수되었고 2개 그룹과 1명의 개인에게 지원금이 돌아갔다.
청년예술기획지원이 기존의 문화예술지원과 달랐던 점은 선제적으로 기획비(200만 원)가 지급되고 매월 활동 보고를 통해 활동비(월 50만 원)를 지급해 총 5백만 원을 지원받는다는 점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청년들의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무정산’으로 사업이 운영되었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명확했다.
청년 문화기획자와 예술가를 신뢰함으로써 얻어낸 성과는 값졌다. ‘총총시스터즈’는 문화지도인 <두 발로 총총 송도신도시>를 제작하면서 1년 차 연수문화재단에 꼭 필요했던 문화자원기초조사에 큰 도움을 주었고 ‘청춘예찬’은 <자전형 치유 연극>을 통해 예술과 심리치료가 어우러진 융복합예술 영역을 만들어냈다. 특히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코로나 블루’ 등으로 청년들의 극단적 선택이 이슈화된 시기에 예술을 통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
‘이준의’의 <고백의 역사>는 연수구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고백에 관한 이야기(인터뷰)를 작품화하여 찾아가는 전시로 풀어낸 프로젝트였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전시를 관람하는 형식의 한계를 비틀어 전시장이 사람들을 찾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 기획이었다.

총총시스터즈, <두 발로 총총 송도신도시> 이준의, <고백의 역사> 청춘예찬, <자전형 치유연극>
<그림3> 2020 연수문화예술지원사업 청년예술기획지원 결과물 ⓒ연수문화재단

2020 청년예술기획지원에 참여한 청년 중 2명이 현재 연수구에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준의 대표의 영상업체 ‘왓츠더웨더’는 남동구에 있던 사업장을 연수구로 옮겼고, 총총시스터즈의 이희성 대표는 디자인업체 ‘모로아일랜드’를 3월에 개업했다. “연수문화재단의 청년예술기획지원을 수행하면서 연수구에서 활동하는 것이 큰 기회가 될 것 같아 사업장을 내게 되었다.”며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 사업의 담당자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2020 연수문화예술지원사업은 2021 연수예술지원사업으로, 청년예술기획지원은 청년예술준비지원으로 그 명칭을 변경했다. 문화사업팀에서 운영하는 지원사업은 ‘예술’ 분야에 집중하고 ‘문화 기획 및 활동 분야’는 문화도시팀에서 사업을 확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2021 청년예술준비지원은 지난해보다 사업 규모(예산, 인원)가 25% 확장되었다. 2년 차 사업으로 접어들면서 입소문이 난 것에 더불어 코로나 19로 인해 예술가들의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진 상황까지 겹치면서 지원 건수는 5배가 증가했다. 현재 8명의 청년예술가가 최종 선정되어 4월 활동을 수행하고 있고 5월 초 간담회를 통해 각자의 활동과 성과를 나누려 한다. 시각예술 4건, 공연예술 2건, 문학 2건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도출될 창의적인 결과물들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② 2021 연수문화발굴단앞서 소개한 2021 청년예술준비지원이 ‘예술’에 집중되어 있다면, 2021 연수문화발굴단은 연수구 청년들의 ‘문화기획’ 및 ‘활동’에 집중되어 있다. ‘연수문화발굴단’은 2020년 진행된 ‘연수청년문화리빙랩’, ‘연수청년 만.반.잘.부(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의 후속사업이다.
‘연수문화발굴단’은 ‘지역가치 발굴 및 지역문화 자원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사실 청년에게 지역 가치와 지역문화 자원이란 표현이 조금은 생소할 수 있지만, 연수구의 문화, 예술, 사람, 자연이 다 해당한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연수구에 살던 초,중,고등학교 동창들의 그 당시 이야기를 모아보는 것도 가능하고, 공원을 산책해보는 프로그램도 가능하다. (연수구와 관련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연수문화발굴단’은 올해 10인의 청년 문화활동가를 선발할 예정이다. 선발된 인원에게는 100만 원의 프로젝트 진행비가 무정산으로 지급된다. 하지만, 한 번에 진행비를 지급하는 것은 아니다. 선정 시 50만 원 지원, 교육과정 후 최종 프로젝트 계획서 제출 후 50만 원이 지급된다.

<그림4> 2021 연수문화발굴단 모집 공고 포스터 ⓒ연수문화재단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집중하고자 하는 부분은 선정자의 교육단계이다. 5~6월 진행될 교육과정은 다양하게 구성될 예정이다. 교육계획 수립 중에 있는데, 지금의 구상은 이렇다. 청년들이 지역(연수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공유하는 첫 워크숍을 시작으로, 지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연수 한 바퀴’(가칭), 계획서 작성 및 그룹 구성을 위한 ‘발굴力(력) 강화!!’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워크숍에는 로컬을 주제로 한 활동을 하는 지역 내외의 전문가 강연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를 섭외하고 있으며, 참여자에게 재미있고 살아있는 현재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또 ‘연수 한 바퀴’를 통해 지역을 새롭게 한 번 더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연수문화원이 진행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연계하여 지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 ‘발굴力(력) 강화!!’의 경우 발굴단 스킬-업(skill-up) 워크숍은 기획서 작성, 프로젝트 계획 등에 대한 업무적 스킬을 강화하려 한다. 연수문화재단은 이 시점부터 컨설턴트를 발굴단과 매칭하여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발굴단을 물심양면 지원할 예정이다.
‘연수문화발굴단’은 기존의 청년문화인력 양성사업과 다른 방향을 만들어보고자 시작된 사업이다. 아직 많은 청년들을 만나보지 못했기에, 연수문화재단은 더 많은 청년예술가와 활동가들을 만나고 같이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을 지역에서 실험해보는 과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만약, 혹시라도 연수구가 2021년 문화도시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면, 조금씩 모이고 있는 연수구 청년문화활동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희망찬 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순간을 위해 더 만나고, 놀고, 서로를 지지하며 2021년을 지내보려 한다.

Ⅳ. 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문화예술도시 연수연수문화재단이 청년을 위한 문화·예술지원사업을 운영하는 목적은 간단하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청년문화·예술종사자가 연수구를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조금만 더 욕심을 내보자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청년문화·예술종사자들이 지역의 대학생을, 취준생을, 회사원을, 자영업자를, 연수구에 있는 다양한 청년들도 이곳에 계속 머물 수 있게 만들어 주길 바라는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다.
정리하자면, “문화와 예술로 청년들이 살기 좋고, 살고 싶어 하고, 살아갈 수 있는 문화예술도시 연수를 함께 만들자!”가 되겠다. 누군가가 들으면 뜬구름 잡는 소리라 놀릴지는 몰라도, 실제로 뜬구름을 잡게 되는 시대가 곧 올 수도 있으니, 우리는 오늘도 허공에 끊임없이 손을 내민다.

공동집필: (필자 사진설명) 연수문화재단 정정브라더스는 자주 사다리를 타고 이따금씩 망치질을 합니다. 매일 사진과 영상을 편집하고 심심치 않게 SNS에 홍보물을 업로드합니다.

정구섭(鄭求涉, Jeong Guseob)

인천광역시 연수구가 설립한 연수문화재단 문화도시팀에서 문화도시 지정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정효민(丁孝敏, Jeong Hyomin)

인천광역시 연수구가 설립한 연수문화재단 문화사업팀에서 지역축제와 예술인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예술행정가이자 기획자이다. 2019년 『마드리드 0km』라는 여행에세이를 발간하기도 했다.




어느 초보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 담당자의 회고

어느 초보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 담당자의 회고

박유리(인천서구문화재단)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에 대한 글을 청탁받았을 때 제일 처음 머리에 스친 생각은 일 년 남짓 사업을 담당한 짧은 경력으로 이런 글을 써도 될까 하는 우려였다. 풍부한 지식이나 연륜은 없지만 초보 사업담당자 시점에서 지난 일 년을 돌아보는 사업 이야기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서의 청년의 참여 확대 및 권익증진을 목적으로 인천시 서구가 2018년 10월 제정한 「인천광역시 서구 청년 기본 조례」를 기반으로 삼는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은 재단 출범 이듬해인 2019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3년 차 사업이다. 장르 별로 특화된 타 지원사업과 다르게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은 수립 초기부터 장르의 구분 없이 10건 내외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어떤 범위를 청년으로 볼 것인가에 관해서는 변동이 있었다. ‘신진’ 예술가를 지원하고자 하는 기관에서는 예술활동의 건수를 척도로 삼기도 하나, 서구문화재단은 일반적 기준을 준용하여 ‘나이’를 고려한다. 2020년까지는 만 34세까지를 청년으로 인정했으나, 2021년부터 중진 예술가 지원 분야를 만들면서 청년예술가 지원범위를 확대하고자 만 39세까지로 나이 기준의 폭을 넓혔다. 각 지자체에서도 아직까지 청년의 나이는 유연한 영역이다. 나이 기준 변경으로 인해 작년까지 중진이었으나 올해는 청년으로 참여하시는 몇몇 예술가들의 내심 기뻐했던 반응이 문득 떠오른다.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은 청년예술가들이 새롭게 작품을 구상하고 연말까지 발표하는 데 소요되는 순수한 작품활동 및 발표 비용을 지원한다. 2020년부터 작품활동에 대한 ‘주제’를 새롭게 두었다. 사람, 장소, 자원 등 유형적 자원 및 가치, 문화, 환경, 전통 등 무형적 자원과 같은 인천 서구에 대한 주제와 도시, 여성, 다문화, 생태와 같은 지역과 연관되는 연계 키워드를 주제로 공모를 받았다. ‘주제’ 설정은 기초문화재단에서 하는 지원사업이 광역문화재단이나 정부 기관에서 하는 지원사업과 어떤 차별점을 둘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이다. 로컬리티를 재료로 하는 예술작품이 탄생하고 주 관람객인 지역의 주민들이 공감하고 그에 따른 부가적 가치 창출까지 전망하는 지역의 문화예술생태계 조성이 사업의 궁극적 목표인 점을 고려했다. 그리고 아직은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도 꺼리지 않을 청년예술가라면 이러한 느슨한 주제 부여도 실보다는 득이 되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인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물적, 인적, 장소적 자원을 말할 때 존재감이 흐릿하다는 이미지가 강한 인천 서구이기에 과연 어떤 청년예술가들이 공모에 지원할지 궁금했으나, 놀랍게도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예술적 소재를 착안했다. 선정된 청년예술가들은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10건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서구에서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 박찬양의 단편 다큐멘터리 <대한외국인>, 불로리에 대한 설화를 재미있게 푼 이건우의 인형극 <늙지 않는 마을 불로리 이야기>, 천마산의 아기장수 설화를 각색한 지은이의 낭독극 <아기장수 백일잔치>, 서구 석남동 일대에서 사라질 오래된 보도블록에 핀 잡초에 주목한 강보라의 작업 <난초연구> 등 10건의 예술작품 모두가 인천 서구라는 로컬리티와 직간접적 연관을 통해 새롭게 창작된 작품들이다.

박가인(작가명: 동일한 오렌지), <새벽의 바람 – 합리화와 기동성> (영상, 00:07)ⓒ박가인, 인천서구문화재단

시각미술 작가 박가인은 1988년 인천 주안공단에 위치했던 세창물산이라는 도자기 인형을 만드는 회사에서 있었던 한 여공의 추락 사고와 이 사건을 소재로 쓴 방현석의 소설 「새벽 출정」을 미디어 작품으로 해석했다. 애초 서부여성회관에서 당시 여공들의 인터뷰, 직접 빚은 도자기 인형, 아카이브 등을 전시하려 했던 계획이 섭외와 대관부터 난항을 겪었다. 결국 기획의 방향을 수정하여 영상으로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박가인 작가는 이 과정에서 최초 계획은 바뀌었지만, 오히려 영상 작업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앞으로도 지속하고 싶은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극단 배우들, <어서 와요, 이곳으로…> (코스모40, 2020.11.14.~15.)ⓒ극단 배우들, 인천서구문화재단

처음 지원서가 접수되었을 때에는 <아라뱃길 살인사건>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연극이었던 극단 배우들의 <어서 와요, 이곳으로…>는 지역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 생성을 우려하는 의견을 관대히 수용하여 우회적인 작품명으로 바꾸었지만, 내용의 참신함은 잃지 않았다. 배우들이 일인다역으로 여러 주민들로 시시각각 분하고 건물 전체를 활용하여 스테이지 곳곳을 마술처럼 누비면서 관람객들이 순수한 연극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끔 했다. 일회성 공연에서 끝나기에는 아까웠기에 필자도 인천 내에서 다른 공연기회를 만들어내려 노력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안타깝게도 잘 풀리지는 못했다. 10건의 예술활동에 얽힌 이야기는 예술가로서의 성장과 작품의 유통 문제까지 다양하다.

그렇다면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예술가들은 적절한 도움을 얻었는가, 성장했는가, 예술적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했는가. 이에 대한 판단은 사업에 대한 결과로 매겨진다. 사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계산기를 끼고서 수혜자 수, 보도 건수 등 수치를 계산하여 그들의 일 년을 숫자로 가늠해보려 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이 과연 숫자로 답해지는 종류의 것들일까. 나는 무대에서의 그들의 준비된 눈빛이 먼저 떠오른다. 전시장에서 작품 디스플레이에 뜨겁게 고민하던 열기가 더 기억이 난다. 완성된 작품에 대해 내년의 계획에 대해 소신껏 이야기하던 진심 어린 목소리가 생생하다. 청년예술가들이 작업하는 현장과 무대를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직접 본 젊은 예술가들의 에너지는 숫자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제 막 시작하는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사업은 성패와 상관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2021년 재단은 다시 한번 예술가의 시점에 서서 고민하려 한다. 사업의 본질을 망각하지 않으며 공익성을 검증해야 하는 재단의 담당자로 지원사업 신청과 정산의 복잡함에 대한 고질적인 문제를 전부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불필요한 절차는 간소화하려 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와 집합금지 행정명령이 시시각각 변하던 2020년, 많은 참여 예술인들이 예술발표에 대한 준비과정과 실행 자체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기에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완하고 교육프로그램, 컨설팅 및 피드백, 통합 예술발표 축제 <서로예술페스타 SEORO ART FESTA> 등을 통해 청년예술가들을 면밀하게 지원할 계획이다. 예술가의 눈으로 서구문화재단과 함께 하는 이점이 무엇일지 다시금 들여다보려 한다.

초보도, 청년도 언제까지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청년예술가활동 지원사업은 예술가가 청년이라는 사회적 범주에 속해 있을 시절에 참여할 수 있는 어찌 보면 한시적 사업이다. 언젠가 한때 청년이었던 이는 충분히 성숙해지고 초보도 능숙한 경력자가 된다. 초보 사업담당자로서 함께 걸어가는 경로에서 만나는 모든 청년예술가들의 삶에 공감과 동지애를 표한다.

박유리(朴婑悧, Yuri Bak)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동대학원 예술학 석사를 졸업했다. 여러 미술관과 기관을 거쳐 현재는 인천서구문화재단에서 시각미술 전시를 기획하고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브람스의 말처럼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Frei aber Einsam)!”




우리 귀에 굳은살과 같은 내성이 생긴 것처럼: 부평구문화재단 청년문화 관련 사업 소개

우리 귀에 굳은살과 같은 내성이 생긴 것처럼
부평구문화재단 청년문화 관련 사업 소개

김가람(부평구문화재단)

1. 작년 5월에는 마스크가 거슬리거나, 귀가 아파서 곤혹이었다. 온종일 마스크를 쓰는 삶이라니. 전역을 멀리 둔 이등병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시간이 지나 요새는 모두 귀에 굳은살이 박인 것 같다. 동시에 숨쉬기 좋은 마스크라든지 귀가 안 아픈 마스크 같은 대안들이 속속들이 나왔다. 삶은 불편한 만큼 편해지는 것 같다. 살면서 여러 가지 변수들이 지속해서 나타날 것은 알았지만, 작년에는 유독 휘몰아치듯이 온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는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코로나19 혹은 팬데믹 이후의 삶에 관한 것이다. “깨진 유리 속이면 사람은 한 명으로도 군중을 만든다. 인간은 끝나지 않는다.”(「우리 모두의 마술」 중)는 신용목의 시처럼 기어코 현실을 이겨내고자 하는 동시대 인간에게 경외심이 든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시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만큼 문화도시 사업의 진행 역시 변화하였다. 대면으로 진행해야 했던 사업들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으며, 사업의 일정 역시 조절되었다. 그 과정 안에서 시민도 사업 당사자도 이해 관계자 모두 혼란한 한 해였다. 그렇지만 부평은 올해 1월 법정 문화도시에 선정되었다. 지난 5년간의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 예비사업 등의 결과였으며 함께한 시민, 예술가 모두의 노고 덕분이었다. 2020년 부평구문화재단은 몇 가지 청년 사업을 진행했다.

시민기획단 부평뮤즈(사진: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

첫 번째로 이야기할 사업은 <시민기획단 부평뮤즈>(이하 부평뮤즈)다. 부평뮤즈는 시민들이 지역 내 문제를 찾고 원인과 해결방안을 모색해보는 문화 리빙랩 개념의 사업으로 3기와 4기로 나누어 활동을 진행했다. 3기는 지역의 문제를 도출하고 해당 문제에 대한 원인을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쓰레기, 청년예술인 소통 등의 문제를 발굴했다. 해당 현안은 지역의 청년들이 제시하고 도출해낸 의제였다. 4기는 3기가 도출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탐사를 통해 부평 ‘평리단길’, ‘문화의 거리’ 내 버려진 일회용 컵, 플라스틱 어택(plastic attack)과 같은 환경운동 캠페인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시티컵’, ‘타겟팅 쓰레기통’과 같은 계획안이 발굴되었다. 또 다른 청년들이 제안한 의견은 예술인 소통과 관련된 문제였다. 청년예술가가 재단 등과의 소통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 의견을 토대로 문화도시 사업에서 청년 예술인들에 대한 사업 내용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평 청년예술인 네트워크를 조성에 대한 의견들이 오고 갔으며, 최종적으로 사업계획안을 제출했다. 지역 청년예술인과 시민들이 어떤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알게 된 소중한 기회였다. 이들과 함께할 문화도시 사업이 시민에게 향유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시민기획단 부평뮤즈(사진: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

두 번째는 《지하X실험가게 프로젝트》이다. <스케이트보드 스쿨>, <그래피티 라이브페인팅>, <지하X실험가게 프로젝트 팝업 전시>로 이루어진 해당 프로젝트는 부평의 비주류 문화와 청년 예술인 활성화를 위해 진행된 사업이었다. 모두에게 익숙한 명소인 부평지하상가 내 유휴공간을 청년 예술인들이 자신만의 기획 등으로 채웠다. 또한, 소규모 프로젝트로는 인천에서 DJ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In Thousand’의 디제잉 공연, 그래피티 레터링 워크숍, 비디오 게임 체험 등이 펼쳐졌다. 주식회사 마플코퍼레이션과의 협업을 통해 청년예술인들이 프로젝트 티셔츠를 제작하고 판매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통해 서브컬처를 알리게 되어 예술적 동기부여를 얻었다는 청년예술인 참가자의 의견도 있었다. 다만 좀 더 다각화된 프로젝트와 제한적인 공간이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향후 해당 프로젝트는 청년예술인의 의견을 수렴하여 좀 더 다각화하여 즐길 수 있는 사업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청년예술인들이 자신만의 문화를 펼칠 수 있는 장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지하X실험가게 프로젝트(사진: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

2. 부평구문화재단은 올해 6월 본격적인 문화도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삶의 소리로부터 내 안의 시민성이 자라는 문화도시 부평’이라는 비전과 함께 음악과 시민 거버넌스 관련 사업들을 재정비 중이다. 올해 5월 시민이 함께 문화도시를 만든다는 의미를 담아 슬로건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예비도시에서 진행되었던 <시민기획단 부평뮤즈>, <지하 실험가게> 등 사업들은 <시티랩(City Lab)>, <언더시티 커먼즈몰> 등으로 한 단계 나아갈 예정이다. 동시에 시민들의 문화 생태계 활성화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음악동네 만들기’, ‘뮤직 라이브러리’ 등을 조성할 예정이며 다양한 공모 활동을 통해 시민들에게 직접 향유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문화도시를 함께 만들어가는 시민과 예술가의 많은 기대와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점점 코로나라는 환경에도 적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려웠던 팬데믹의 과정들이 굳은살처럼 박여 내성이 생겨가는 것 같다. 작년 한 해를 겪으며 힘든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힘든 일을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겪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믿는다. 함께 했던 청년 예술인들을 포함한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더불어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도 함께 한다. 우리 귀의 굳은살이 박인 것처럼 문화도시 사업이 시민성이 자라나는 증표처럼 자리 잡길 바란다.

김가람(金가람, Kim Garam)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사업팀 팀원. 웹진 『비유』를 통해 시 「레트로」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손 내밀어 함께 가는 친구: 인천청년문화창작소 ‘시작공간 일부’ 이야기

손 내밀어 함께 가는 친구
인천청년문화창작소 ‘시작공간 일부’ 이야기

박석태(인천문화재단)

청년이 화두다. 무한경쟁이 당연시되면서 사회로 진입하려는 청년들의 설 곳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청년들은 안정적인 주거와 일자리, 결혼과 같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조차 마음 편히 누리지 못 하는 상황에 처해 있을 뿐 아니라 지난 재‧보궐선거에서는 급기야 언론에 의해 ‘이대남(20대 남자, Z세대)’과 같은 말로 표현되어 세대 구분 논리의 중심에 서기까지 했다. 이 모든 현상은 그들이 만들지 않았다. 다만 특정한 방식으로 누군가는 그들을 규정하고 편 갈랐을 뿐이다.

다소 거친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상황에서 청년은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자, 장애인과 같은 위치에 버금가는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다. 더욱이 청년 중에서도 예술가는 더더욱 그렇다. 학교라는 무균의 환경에 익숙한 청년들이 그곳에서 벗어나 예술계에 홀로 던져졌을 때의 상황을 떠올려 보자. 그들은 낯설고 두렵기만 한 예술계라는 생태계의 가장 말단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함께할 동료는 없다. 이 사회에서는 예술이 밥 먹여 주는 일이 아니기에 생활의 방편은 묘연하기만 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선은 “좋아하는 일을 하니 그 정도는 참아도 된다.”는 인식이 전제된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니 외롭다. 게다가 실제로 대다수가 생활고에 시달린다. 따라서 청년예술가를 지원하는 사업의 목표는 그들의 고립감 해소와 새로운 예술 생태계에 안착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조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2016 <바로, 그 지원> 포스터ⓒ고등어 작가,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재단이 청년예술가와 함께하는 사업은 이러한 취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2015년 시작된 신진예술인지원 <바로 그 지원>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지원사업의 형태이기는 하나 이제 막 예술계에 진입하려는 청년예술가(기획자)을 위해 선배 청년예술가가 일종의 멘토가 되어 지원자의 프로젝트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 자신의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프리젠테이션 데이는 동료 예술가들의 작업에 대한 고민과 지향점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 각자도생했던 청년예술가들이 동료, 선배, 심의위원의 지지와 응원을 확인함으로써 지역에서 예술 활동을 지속하는 데 큰 힘을 얻은 사례가 많았다. 여기에 함께 발표에 참여했던 다양한 동료 청년예술가와 멘토 사이에 일종의 연대의식이 싹터 이후의 창작 활동에 자양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 방식은 청년예술가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던 인천문화재단과 해당 사업 담당자들의 땀의 결과였다.

인천청년문화창작소 ‘시작공간 일부’(사진: 인천문화재단)

이렇듯 청년예술가가 지역 예술계의 중요한 자산임을 자각하는 것과 함께 그들끼리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연대의식을 마련하기 위한 태도는 이후 인천청년문화창작소 ‘시작공간 일부’(이후 청년문화창작소)의 운영 철학으로 이어졌다. 청년문화창작소는 2018년 「인천광역시 청년 기본 조례」 제정에 따라 이듬해인 2019년 동인천역 앞 옛 인천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쓰이던 공간에 둥지를 틀었다. 인천광역시가 설립하고 인천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는 형식이었다. 1년간의 모색기와 실험기를 거쳐 2020년 본격적으로 청년예술가와 기획자를 위한 실제적인 사업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그 시작은 청년문화창작소 공동운영단의 제언에 힘입은 바가 크다. 지역에서 활약하는 다양한 분야의 청년예술가, 활동가, 기획자 4명으로 이루어진 공동운영단은 청년예술가와 기획자를 위한 사업을 제안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청년문화창작소의 본격적인 비상을 알렸다. 청년문화창작소가 ‘시작공간 일부’라는 멋진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이들 덕분이었다. 청년 창작자의 날갯짓을 돕는 공간이면서 비상을 향한 첫 번째 단계인 1부라는 은유가 그 속에 숨 쉬고 있다.

아카이빙을 위한 공간 ‘나침판’ 청년창작자, 기획자들의 공유공간인 ‘공유판’
(사진: 인천문화재단)

청년문화창작소는 출발을 맞아 크게 세 분야의 사업 영역으로 라인업을 갖추었다. 청년의 감성을 담은 건물(공간)의 유지와 개선을 뜻하는 ‘청년문화창작소 운영’, 청년예술가의 역량 강화를 위한 사업을 제안하고 실행하는 ‘시범사업’, 청년문화창작소의 기획사업 영역인 ‘활성화 사업’이 그것이다. 이 사업들은 모두 앞서 말한 청년예술가 간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연대의식을 기르는 데 방점이 찍혔다. 이들 사업은 2021년 청년문화창작소 운영의 근간으로 이어지게 된다.

청년문화창작소의 2021년은 크게 보자면 연속성과 심화라는 두 단어로 집약할 수 있을 듯하다. 1기 공동운영단의 제안으로 실행된 시범사업을 ‘역량 강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하는 한편, 그 내용은 새로 선임된 2기 공동운영단의 검토와 협력 아래 한층 깊어져 인천의 청년예술가와 기획자들에게 더욱 피부에 와닿는 내용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청년 창작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워크숍 프로그램인 <워크쉽>, 청년 창작자의 작업 결과물을 아카이빙하는 <항해일지>, 아직은 서툴지만 함께 나누고픈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PT데이 나알람>, 늘 꿈꾸던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어쩌면 기획일지 몰라>는 2020년에 이어 보다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2020년 큰 호평을 받았던 활성화 사업도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있다. 2020년 ‘축제’를 주제로 진행했던 <인천청년별별학교>는 청년 창작자 스스로 기획부터 실행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그야말로 실질적인 기획과 마주할 수 있는 양질의 프로그램이었다. 2021년에도 청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색다르면서도 진지한 주제로 계속될 예정이다.

2020 인천 청년 한 달 레시던시(사진: 인천문화재단)

같은 인천에 살면서도 도심과 섬 지역의 젊은 창작자와 활동가가 얼마나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까? 그 둘 사이에 연대의식의 발화가 가능할까?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데서 연대의식이 생긴다면 그것은 과연 지속 가능할까? 이런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탄생한 사업이 <인천 청년 한 달 레시던시>였다. 강화도에도 청년의 삶을 고민하며 실천하는 젊은 창작자·기획자가 있었고, 그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스스로 삶의 터전을 일구어 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그들이 운영하는 민박 공간까지 있었기에 이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격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청년 창작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일주일 동안 강화도에서의 삶을 체험하고 작업의 영감을 얻는 ‘체험형 레지던시’라는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강화도에서 의욕적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는 또래의 청년을 만나 지역과 예술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서로에게 미쳤다. 이어 진행된 ‘정주형 레시던시’는 일주일이 아닌 한 달간 강화도에서 생활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우리의 우려와 달리 정말이지 알찬 시간으로 채워졌다. 예술가가 지역의 삶과 만나 어떤 에너지가 생기는지를 몸소 보여주었고, 그들 중 몇몇은 아예 강화도로 거처를 옮겨 지속 가능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계획 중이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청년문화창작소가 꿈꾸었던 끈끈한 청년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연대의식의 지속이라는 가치가 조금씩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인천청년문화살롱>이라는 사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청년 창작자끼리의 네트워크 확대와 접점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또 2021년 신설된 ‘융합예술 지원사업’은 청년문화창작소를 창작의 거점으로 삼아 새로운 예술에 도전하는 청년 창작자들의 아지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련하였다.

청년이 스스로의 삶을 두려움 없이 응시하고 굳건하게 이 땅에 발 딛고 설 수 있도록 매개하는 임무를 지닌 곳이 청년문화창작소이며, 그 공간의 존재 이유다. 청년과의 사업은 매 순간 뚜렷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이 땅의 청년들의 삶처럼 늘 성공할 수도 없다. 그래서 청년문화창작소의 여러 시도는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고, 변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2021년의 청년문화창작소는 청년 창작자들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어 함께 뚜벅뚜벅 걸어가는 속 깊은 친구의 모습으로 보이기를 바란다.

박석태(朴奭泰, Park, Seoktae)

인천문화재단 창작지원부 과장. 서울에서 태어나 10살 때 인천으로 이주, 이후 잠깐의 군복무와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을 제외하고 인천에서 살고 있다. 인천의 근·현대미술사 집필과 미술비평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백령을 화폭에 담다: 해반문화사랑회 최정숙 이사장과의 만남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 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백령을 화폭에 담다해반문화사랑회 최정숙 이사장과의 만남

류수연(인하대학교 교수)

최정숙(崔正淑)
1954년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동대학원 서양화과 수료. 현재 사단법인 해반문화사랑회 이사장. 1993년 해반갤러리를 기반으로 한 해반문화사랑회를 창립하였다. 해반문화사랑회는 1997년 인천 문화예술단체 최초로 사단법인이 되었다. 2000년 <열려있는 땅, 인천> 전을 통해 개항 도시 인천의 정체성을 탐구한 작품을 창작하였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에 전념하여 15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개최하였다.

* 본 인터뷰는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이루어졌음을 밝혀 둔다.

류: 안녕하세요? 처음 뵙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문학평론과 문화평론을 쓰는 류수연이라고 합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인터뷰를 위해 간단하게 이사장님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최: 소개라고 할 것이 있나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고, 또 지역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이렇게 문화 영역에서 함께 하는 여성 동지와 만나니, 처음 뵙는 데도 굉장히 친숙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래도 우리 여성들끼리는 좀 더 통하는 것이 많잖아요.

류: 네, 그렇지요. 저도 처음 뵙는 데도 원래 알던 분처럼 친숙한 느낌이 드네요. 아무래도 전화 통화 하면서 일차적으로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하하.

최: 여성으로서 자기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공감대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제 삶이 그러했어요. 현실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괴리. 그런 것들이 참 많았지요. 그걸 여성들 사이에서는 투쟁의 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결혼하고 홍대 대학원 다니다 두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간 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류: 그러셨군요. 그러면 지역문화운동을 시작하시게 된 시점도 그 즈음인 건가요?

최: 처음 지역문화운동을 시작한 건 부부가 함께였어요. 처음부터 이렇게 큰 모임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처음엔 시민 갤러리 개념으로 시작했죠. 1991년 현재 해반문화의 근간이 된 해반갤러리를 시작한 거예요. 처음에는 시민애호가 모임으로 시작한 개념이었어요. 그것이 현재의 해반문화사랑회가 된 거죠. 우리 해반문화사랑회는 인천에서 자생한 첫 사단법인화 한 단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죠.

류: 인천을 기반으로 시민사회에서 문화단체를 뿌리내리게 했다는 자부심도 크셨을 것 같아요.

최: 아무래도 그렇죠.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개인 작업은 뒤늦어진 면이 있어요. 2003년에 시민단체 성격의 갤러리 활동을 정리하고 2004년부터 개인 작업을 시작했거든요. 처음에는 두려웠죠.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대학에 다니면서 한국 컨템포러리의 대부님들께 많이 배웠거든요. 그때 각인되었던 것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었어요. 그 고민이 사실 7년 이상 지속되었죠. 그래서 처음부터 바로 그림을 착수한 것이 아니에요. 처음엔 사진 작업으로 시작했어요. 그때 앱손 프린터가 처음 나왔거든요. 어디 배울 곳은 없으니까 혼자서 붙들고 고생하면서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도출했었죠. 처음 시작은 흑백톤으로 사진을 뽑아서 그것을 가지고 시작했죠.

류: 어떤 계기로 다시 개인 작업을 시작하기로 생각하게 되신 건지도 궁금해지는데요.

최: 갈증 같은 것이었죠. 제가 91년도에 건강이 좀 안 좋았어요. 자궁을 적출했거든요. 거기서 오는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또 보다 의욕적으로 살고 싶어서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죠. 처음 해반갤러리 시작할 때에는 인천이 상당히 문화적으로는 불모지에 가까웠어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컸죠. 그래서 처음에는 전시를 기획하는 일에 착수했죠. 인천을 중심으로 서울과도 연계하면서 작품 전시를 열고, 그런 일들을 주로 했어요.

류: 기획과 함께 큐레이팅도 직접 다 하신 거네요?

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죠. 이런 일들을 하다 보니까 내 안에 갈증과 함께 남모르는 대가들도 생기더라고요. 자기 이상을 추구하는 욕망의 대가가 생각보다 컸어요. 특히 경제적인 출혈이 굉장히 컸어요. 전시라는 게 한 번 열 때마다 많은 돈이 들어요. 사람들이 보기엔 우리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이런 일을 추진한다고 여겼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거든요. 물론 이런 것들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경제적 가치보다 이상이 더 컸고, 그것을 위해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일들을 13년 정도 하다 보니까 거기에서 오는 피로가 크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다시 작품 활동에 매진하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류: 아까 부부가 함께 시민문화운동을 시작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럼 일을 나누게 되신 건가요?

최: 그렇죠. 해반문화사랑회가 1997년 사단법인화되면서 저는 주로 해반갤러리 기획전시를 하고, 남편은 주변의 추대로 초대이사장을 맡게 되었죠. 저는 제 활동으로 들어가면서 생각했어요. 문화를 하고 싶은 사람들의 장을 만들었다는 그 뿌듯함이 그것이었죠. 인천의 오피니언 그룹과 함께 여러 활동들을 진행하고 갤러리를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과정들이 굉장히 매력적인 거였죠.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한계에 직면하기도 했어요.

류: 어떤 것이었을까요?

최: 93년 무렵에 당시 인천의 부촌이었던 부평에 갤러리를 열었거든요. 아무래도 그쪽이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으니 갤러리 활동에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결과는 엄청난 적자였어요. 하하. 그래서 다시 동구 쪽으로 이동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다시 시작한 것이 해반문화포럼이었어요. 인천의 문화를 개척하는 의미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뜻을 같이하는 20여 분 정도와 함께 시작했어요. 이렇게 인천에서의 소문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문화에 대한 대안들이 계속 포럼을 통해 나오니까 지역사회의 관심도 높아졌죠. 사실 이 포럼이 인천의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데 상당한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해반문화가 2020년 인천의 비전을 만들어내는 데까지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고요.

류: 굉장히 의미 있는 활동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에 어떤 것이 있으신지요?

최: 근대개항이라는 키워드를 끌어낸 것이 그래요. 2000년에 우리가 인천의 정체성과 정주성, 이런 문제들을 포럼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면서 떠오른 것은 바로 근대개항이라는 문제였어요. 인천에 무엇이 있는가를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인천이라는 도시가 가진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가 다름 아닌 개항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개항으로부터 진짜 인천의 역사가 시작된 거죠. 이런 생각들이 결국 인천을 상징하는 하나의 포문을 연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인천에 산재했던 문화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마련된 거죠. 또 시민들에 의해서 인천문화가 이끌어질 수 있다는 어떤 토대로 마련되었고요. 저는 그래서 2000년에 열었던 <열려 있는 땅, 인천> 전시가 굉장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인천은 무엇이냐는 하나의 상을 만들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류: 2000년이면 제가 막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인데, 저도 그 무렵부터 개항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인천을 사유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 이사장님의 역할이 크셨던 거군요.

최: 2004년부터 개인 작품 활동하면서 해반 일과 소원했다가 제가 해반이사장을 맡으면서 돌아온 것은 2011년이었어요. 2005년에 문화관광부에서 문화재청이 만들어지면서 유홍준 교수님의 답사기 열풍으로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클 때였어요. 문화재청 문화유산방문교육 공모사업에 해반문화가 지원했거든요. 이전부터 개항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시한 단체여서 주목을 받았기도 하였고 언론도 많이 탔고요. 그때 우리가 주목한 것이 어떻게 하면 사라져 가는 개항의 유산을 지킬 수 있을까, 이런 시민 문화운동을 전개하게 되었죠.

류: 그 과정에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신 결과는 무엇일까요?

최: 바로 인천아트플랫폼이죠. 개발 논리에 사라질 뻔했던 인천아트플랫폼을 문화적 콘텐츠 그대로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인천아트플랫폼에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만드는 운동을 전개했거든요. 미술관 운동도 했고요. 인천문화재단이 등장하기 전에 실질적으로 그 물꼬를 텄다는 데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또 당시 시작되었던 문화유산운동에 있어서도 원년 멤버로 이끌었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사실 인천이 당시 수도권에서는 처음으로 이러한 운동을 시작했거든요. 실제로 이런 사회적 봉사의 공로를 인정받아서 2012년 문화재청상, 2013년 대한민국문화유산상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고요. 그 계기가 된 문화유산교육은 지금까지도 잘 진행하고 있어요. 문화지킴이 교육도 지속되고 있고요.

류: 네, 저도 기사로 수상 내용을 접했습니다. 오랜 시간의 활동에 대한 인정과 함께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도 큰 응원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각도를 돌려서 화가로서 이사장님의 개인 작품 활동에 대해서도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는데요. 이사장님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백령도인데요. 백령도를 본격적으로 작품의 주제로 담게 되신 계기는 무엇일까요?

최: 사실 백령도는 우리 아버지의 고향이에요. 가끔 제가 백령도가 고향인 줄 아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어린 시절을 백령도에서 보내기도 했지만, 사실 거기서 태어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린 시절에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으니, 저에게는 추억이 많은 곳이죠. 주로 할머니 댁에서 방학을 보냈거든요. 하지만 제가 백령도를 본격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한 데는 다른 계기도 있었어요.

류: 어떤 일이었나요?

최: 2011년이 한 기점이었죠. 그 무렵에 우리 아들이 공중보건의로 군대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당시 연평도 아니면 백령도로 발령을 받을 예정이었는데, 백령도로 발령이 났어요. 그때 뭔가 운명적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고향이고, 내 어린 시절이 있는 곳에 이제 다시 아들이 갔으니까요. 같은 해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사건을 피해간 것도 그런 운명적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들었던 것 같고요. 그때부터 백령도를 주제로 작품을 시작했고, 《분쟁의 바다 화해의 바다》라는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사실 여기에 그린 작품들이 제가 본격적으로 유화를 다시 시작한 것이었어요. 그중에서도 <아버지의 바다>라는 작품이 있는데 제가 사진에서 유화 작업으로 전환되는 기점이 된 작품이죠. 사실 이 작품은 같은 주제와 제목으로 사진과 유화 작품이 둘 다 있어요. 특히 유화로 그린 <아버지의 바다>는 대학원 졸업 후에 다시 그림을 시작하면서 처음 그린 유화였다는 점에서 저에게 의미가 커요.

최정숙, <아버지의 바다>(유화, 130×97, 2011) ⓒ최정숙

류: 정말 뭔가 운명적인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 같네요. 이사장님, 백령도에서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궁금해집니다.

최: 내 첫 기억은 5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밤에 할머니 댁 마당에 누워 있는데 정말이지 밤하늘에 별이 한가득 쏟아질 것처럼 차 있었거든요. 그런 기억들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한 거죠. 사실 백령도는 분쟁의 아이콘이고 분단의 아픔이 드리워진 곳이고, 나에게 있어서 한 집안의 역사이기도 해요. 아버지는 백령도 분이고 우리 어머니는 황해도 분이시거든요. 아버지 집안이 백령도의 부농 집안이셨고요. 광복 후에 최초로 면장을 하셨어요. 섬을 둘러싼 여러 이미지들이 있죠. 섬은 허락해야 들어간다는 말 들어보셨죠. 백령도가 그래요. 봄이면 해무가 엄청나서 진짜 섬이 허락한 날에나 가볼 수 있는 곳이죠. 내게 백령도는 참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것은 아버지의 고난한 삶과 화해, 그리고 내 인생에 있어서는 하나의 징검다리 같은 의미였어요. 육지와 섬을 이어가는 것이 내 삶의 원초적 기억이니까요. 결국 백령도를 주제로 담아내면서 본격적으로 드로잉을 시작했어요. 그곳에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을 스케치하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백령도 드로잉 전시를 하기 시작했죠.

류: 이사장님의 드로잉이 그대로 살아 있는,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사라지고 있는 백령도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는 거군요.

최: 사실 우리 부모님은 인천 인물사에서도 다루어지고는 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면장을 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셨던 것이 간척사업이었어요. 섬이니까 농지가 절실했던 거죠. 그래서 1971년에는 백령도에 아버지 공적비가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정말 열정적인 분이셨죠. 너무 많이 고생하셔서 그렇게 일찍 가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어머니 집안은 천주교를 빨리 받아들인 집안이었고, 어머니도 독실한 신자였어요. 부모님 결혼하실 때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머니가 처음에는 소개받는 남자가 백령도 사람이라고 해서 사실 관심이 없었대요. 섬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거니까 무슨 관심이 있겠어요. 그런데 만나 보니 아버지가 섬사람 같지 않았던 거죠. 아버지가 잘생기셨어요. 첫눈에 반하신 거죠. 하지만 어머니 역시 양보할 수 없었던 게 천주교였나 봐요. 아버지한테 혼배를 해야 결혼을 하겠다고 말씀하셨대요. 당시로서는 굉장한 선택이죠. 그런데 아버지가 그걸 하신 거예요. 하하. 그렇게 결혼을 하셨고, 어머니는 백령도의 첫 천주교 신자가 되신 거죠. 하지만 어머니의 삶이 참으로 아픈 삶이에요. 분단 이후에는 어머니 고향은 보이지만 갈 수 없는 땅이 되었으니까요. 더구나 우리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으니, 더욱 고난한 삶을 보내셨죠.

류: 이사장님 어머님의 삶이 참으로 안타깝네요. 바다 건너 고향을 바라보면서 가지 못하는 그 마음이 어떠셨을지 저는 감히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도록과 작품을 보면서 이사장님 이야기를 들으니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긴 시간 동안 진솔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인천문화재단이나 인천의 문화예술인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최: 저는 화가니까 일단 열심히 작품을 그려야죠. 그만큼 열심히 전시도 하고 싶고요.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지만,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는 시간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까지처럼 해반을 잘 이끌고. 사실 제가 이끄는 것도 아니에요. 워낙 뛰어나신 분들이 계셔서 진짜 알아서 척척 해주세요. 저는 그 안에서 해반이 그 중심을 잃지 않도록 균형만 잡으면 되는 사람이죠. 그렇게 해오던 대로 계속 열심히 해나가는 것이 저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류: 마지막까지 이사장님의 한결같고 든든한 문화에 대한 애정이 잘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최: 저도 오늘 아주 즐거웠어요. 감사해요.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인천문화재단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멈춘 일상을 회복하게 만드는 문화의 힘: 윤미 서구문화도시상생협의체 위원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 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멈춘 일상을 회복하게 만드는 문화의 힘윤미 서구문화도시상생협의체 위원

박현주(경인일보 기자)

윤미 서구문화도시상생협의체 위원(사진: 박현주)

“봄꽃이 피고, 단풍이 질 때마다 공원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리면 좋겠어요. 산책 나온 이들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다 오랜만에 만난 이웃들과 안부를 주고받고요.”
수십 년 전만 해도 이웃들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안에서 끈끈한 정을 나눴지만, 지금은 옆집에 사는 이가 누군지도 모른다.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관계 속에서도, 이웃 간 뭉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27년째 인천 서구 석남동에 살고 있는 윤미(60) 씨는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주민이다.

서구문화도시상생협의체 위원으로 활동하는 윤미 씨는 오는 6월부터 2차례에 걸쳐 주민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서구는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제3차 법정 문화도시 예비 문화도시로 지정되면서 지역 고유의 문화를 알리고자 주민이 주축이 된 서구문화도시상생협의체를 구성했다. 윤미 씨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다른 위원들도 그 취지에 공감하면서 주민과 함께하는 행사로 진행하게 됐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일상이 멈췄잖아요. 이웃 간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한번 공동체의 가치를 되새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바라는 문화도시는 거창한 게 아녜요. ‘내’가 집에 머무는 것보다 동네 밖으로 나왔을 때 더 즐겁다고 느끼면 그게 바로 문화도시 아닐까요.”
주민들의 적극적인 활동 소식을 접한 지역 소재 기업인 SK석유화학에서도 지원하는 데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인천서구문화재단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에 따른 행정적 절차를 모색하는 등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민·관·산이 함께 지역 사회를 위해 힘을 모은 사례로 인정받아 지난 4월엔 행정안전부가 지원하는 사업에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서구문화도시상생협의체는 다음 달 석남녹지도시숲에서 진행하는 ‘어울림 마당’과 오는 9월 석남동 전통 시장인 강남시장에서 여는 ‘시장 데이’ 등 총 2개의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어울림 마당’은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체험·공연·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우리가 사는 환경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자는 게 행사의 주된 취지다.
“문화란 크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전반을 의미합니다. 재활용품으로 화분을 만들거나, 헌 칫솔을 가지고 오면 대나무로 만든 친환경 머그컵을 증정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어요. 우리가 가진 자원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자는 의미죠.”
주민들이 각자 자신이 가진 재주와 능력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작은 기타처럼 생긴 악기 ‘우쿨렐레’를 잘 다루는 주민은 이날 소공연을 열기로 했다. 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인 캘리그래피에 소질 있는 또 다른 주민은 현장에서 이를 시현하기로 했다. ‘시장 데이’엔 주민들이 전통 시장을 방문하고 시장을 관광자원과 연계하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추석이 있는 달이니 시장에서 한가위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는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전통 시장은 역사가 깊으니 지역 특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전통 시장이 낯설 수 있는 어린이와 청년들도 재밌게 참여할 수 있도록 세대마다 관심 가질 수 있는 요소들을 파악하고 있어요.”
윤미 씨는 오랜 기간 지역 사회 일원으로서 주변 사람들을 돕는 등 나눔 활동을 해왔다. 주변에선 “그렇게 일하면 돈이 나오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윤미 씨는 “아니. 그냥 우리 동네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해서”라고 대답한다. 주로 가까운 이웃들과 소모임을 꾸려왔던 그는 2015년 ‘내 지역 일을 조금 더 넓게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에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동네 곳곳에 관심을 가지니 이곳저곳 윤미 씨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2018년엔 다문화 가구 아이들이 좀 더 우리 사회에 ‘마음 붙이고’ 지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너나들이’라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었다. 서로 ‘너’, ‘나’ 하고 부르며 속마음을 털어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됐으면 해서 붙인 이름이다.
“주민자치위원으로 있을 때 동 행정자치센터 바둑교실을 다니던 다문화 아이가 눈에 띄더라고요. 애가 수업 시작하기 2시간 전부터 와선 주변을 돌아다녔어요. 하루는 아이를 붙잡고 물어보니 부모님이 일을 해서 학교 마치고 갈 데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너나들이’에선 다문화 가구 아이와 그의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놓인 다문화 가구 부모들은 대부분 맞벌이로 생계를 이어간다. 이 시간이라도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유대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는 게 윤미 씨의 설명이다.
‘너나들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활동은 우리나라 명절에 하는 ‘전통음식 만들기’다. 다 함께 모여 산적을 만들고, 동그랑땡을 빚고, 육전을 부쳤다. 아이들 입맛에 ‘딱’ 맞을 법한 음식들이니 다들 연신 ‘맛있다’고 엄지를 추켜세웠다고 한다. 고국을 떠나온 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컸을 날, ‘너나들이’는 즐거운 추억을 선사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이전처럼 한 달에 2번씩 모임을 갖진 못해도, 항상 연락하며 서로에 대한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지난 설엔 떡국 재료를 준비해서 갖다 줬는데 아이들이 못 본 사이 한 뼘씩 더 컸더라고요. 집에서 가족들끼리 재밌게 보내라고 윷놀이 판도 전해줬어요. 우리 문화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으면 해서요.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따뜻한 기억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윤미 씨가 수년간 ‘너나들이’를 통한 문화 전도사 역할을 지속하면서 그동안 먼저 다가가길 머뭇거렸던 이들 역시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얼마 전엔 서구문화도시상생협의체에서 하는 ‘어울림 마당’ 행사에 오라고 여러 다문화 가족에게 전화했더니 ‘언니가 오라면 당연히 가야죠. 친구들도 데려갈게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앞으로도 이들에게 든든한 동네 언니로서 제 역할을 다하려고요. 나는 이미 이웃들에게 받은 게 많아요. 이제 그때 받은 걸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부산댁이었던 윤미 씨가 남편을 따라 인천에 왔을 때, 낯선 곳의 이웃들은 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든든한 존재였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으면 다들 한 집에 모여 담소를 나눴다. 온 동네 주민이 모여 국수를 삶아 먹었다. 누군가 급한 일이 있을 땐 너 나 할 것 없이 돕겠다고 나섰다. 다들 이웃들이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도록 집집마다 대문을 열어 놨다.
“지금도 과거 이웃 간 정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함께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요. 우리 지역만이 갖고 있는 색깔을 찾아 주민들을 이어줄 수 있는 ‘만남의 장’이 필요합니다. 저는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세포’이고, 이 세포가 모여서 사회를 지탱하는 ‘몸’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웃이 함께 할 수 있는 그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건 문화가 아닐까요.”

인터뷰 진행/글 박현주(경인일보 기자)




늙은 광대의 인사: 최규호의 클라운 마임 공연

늙은 광대의 인사최규호의 클라운 마임 공연

이재상(극단 MIR레퍼토리 대표)

한때 ‘우리들의 광대’라 불리던 최규호가 《최규호의 클라운 마임》(작은극장돌체, 2021.4.20.~4.24.)으로 3년 만에 공연을 한다 해서 공연장을 찾았다. 필자는 그의 후배로 82년 겨울 처음 그를 만났으니 근 40년을 알아온 셈이다.

그는 국내에 저글링이라는 말도 생소하던 80년대 후반부터 ‘클라운 마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판토마임과 저글링 그리고 광대의 익살스러움을 뒤섞은 독특한 마임세계를 선보여 왔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초 인천에서 세계 최초로 ‘클라운 마임 축제’를 개최했고, 지금도 가을이면 온 세계에서 클라운 마임을 하는 마임이스트들이 인천을 찾는다. 한마디로 그의 클라운 마임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꽤나 유명하다.

《최규호의 클라운 마임》, 작은극장돌체, 2021.4.20.~4.24.(사진: 작은극장돌체, 극단마임)

그렇다고 그의 마임이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천국과 지옥’같은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무겁게, 혹은 익살스럽게 다루기도 했으며, 일상의 여러 모습을 익살스러우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하고는 했다. 그래서 늘 그의 작품은 웃음 속에 숨은 페이소스(파토스)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임은 대부분 전 연령대가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는 광대의 모습이 대부분이었고, 그러다 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광대’가 되었다.

그가 10여 년 전 우리 앞에서 돌연 사라진 것은 사고에 의해서였다. 여느 때처럼 공연 막바지, 7개의 의자를 쌓아 올리고 그 위에서 공연을 마친 후 내려오던 중, 갑자기 한 아이가 뛰어든 것이다. 그는 그 아이를 피해 무리하게 착지했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의 공연을 볼 수 없게 됐다. 3년 전 공연은 외국에 있던 탓에 보지 못하였으니 이번 공연은 필자에게는 그야말로 10여 년 만의 공연이자, 그의 공연 중단 후 처음 보는 공연인 셈이다.

첫 번째 작품 <먹고 삽시다>(사진: 작은극장돌체, 극단마임)

공연은 50분가량,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있다.

첫 번째 작품은 <먹고 삽시다>이다. 이 작품은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가 처음 마임 단독공연을 했을 때 선보인 작품이자 타이틀 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원전은 길에서 저글링 등 다양한 공연을 하며 버스킹을 하던 광대가 경찰에 쫓기기도 하는 다양한 스토리로 기억하는데, 시대가 바뀌어서인지 경찰 장면은 삭제되고 광대의 다양한 버스킹 공연만 진행된다.

흔한 저글링 공연이지만 그만의 익살은 여전하다. 코로나19로 인해 객석이 만석일지라도 몇 석 안 되건만 객석에서는 경탄과 웃음이 터진다. 벗어놓은 모자에 몇 장의 지폐도 들어온다. 오랜 휴식과 어느덧 들어버린 나이로 인해 가끔 실수도 벌어지지만, 광대의 익살은 그마저도 계획된 공연이자 유쾌함이다.

두 번째 작품 <Jazzy, 당신을 기다립니다>(사진: 작은극장돌체, 극단마임)

두 번째 작품은 <Jazzy, 당신을 기다립니다>이다. 필자의 기억 속 이 작품 역시 90년대 초반쯤 초연되어 그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작품이다. 타이틀 앞에 ‘Jazzy’가 추가되었다.

제목처럼 배경음악은 모두 Jazz로 채워진다. 한 사내가 오지 않는 그의 연인(?)을 기다린다. 그의 기다림은 청년-중년-노년시절 즉, 온 생에 걸쳐 계속된다. 모든 시절 그가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과 행동은 동일하다. 꽃다발을 들고 공원에 나타난 그는 설렘 속 기다리다, 지루함에 운동을 하고, 마침내 볼일(?)을 보고 그 자리를 떠난다. 청년 시절 그는 공원벤치마저 들어 올리는 괴력을 자랑하지만, 노년의 그는 몸을 가누기도 힘겨워 보인다. 떠난 후 공원 벤치에 남겨진 앙상한 꽃다발만 애잔하다.

판토마임에 있어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이라 불리던 그의 몸짓은 애석하게도 이번 무대에서는 볼 수가 없다. 그의 다리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하기에 내심 기대했던 필자로서는 아쉬웠지만, 그는 테크닉보다는 작품의 분위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테크닉에 집중하는 마임이스트도 많다. 하지만 담담하게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최규호 식의 세월 받아들이기를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는 클라운 마임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작품에서 왜 단순한 스토리에 Jazz를 강조했을까? Jazz는 영혼과 자유의 음악이다. 몸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영혼만은 자유로웠던 이들에게서 시작된 음악이다. 그는 사고의 후유증과 세월의 무게를 함께 얹고 가야 하는 자신의 육체에,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열정(기다림)과 영혼의 자유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위로와 더불어…….

그의 이번 공연이 복귀의 인사인지, 아니면 마지막 인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는 공연 정보 어디에도 복귀나 은퇴를 암시하는 구절 하나 기술하지 않았다. 그저 ‘최규호의 클라운 마임’이라는 제목뿐이다. 이게 그의 방식이다. 그는 때가 오면 또 공연할 것이고 때가 오지 않으면 기다릴 것이다. 대부분 우리가 그렇게 세월을 기다리는 것처럼…….

이재상(李哉尙, Rhee Jaesang)

1964년생, 극작가, 연출가. 현 극단 MIR레퍼토리 대표, 극단 ATMAN(일) 예술감독, ITI-IPF한국 본부장, APF(아시아희곡축제) 예술감독.




일상의 사각지대에서 찾은 공기들: 2021 정서진아트큐브 기획전시 Ⅰ 《공기의 모양》

일상의 사각지대에서 찾은 공기들2021 정서진아트큐브 기획전시 Ⅰ 《공기의 모양》

곽세원(월간미술 기자)

대규모 물류단지와 공장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정서진로를 지나 경인아라뱃길과 서해가 합쳐지는 지점까지 오면 아라인천여객터미널을 비롯해 선상체험공원, 아라타워, 산책로 등으로 조성된 명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오렌지색의 컨테이너 박스 모양의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곳은 바로 2019년 5월에 오픈해 개관한지 3년도 채 안 된 ‘정서진아트큐브’다. 총 두 개의 층으로 이뤄진 이곳의 규모는 90㎡. 그마저도 전시공간은 1층에 불과하다. 그러나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정서진의 드넓은 경관이 한눈에 들어와 내부가 답답하단 생각은 쉽게 들지 않는다.

2021 정서진아트큐브 기획전시 Ⅰ《공기의 모양》 전경(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정서진아트큐브에서 진행 중인 《공기의 모양》(2021.4.7.~5.23.)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소개하여 ‘공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사유의 확장을 이끌어내기 위해 기획된 전시로, 김윤수, 신현정, 전희경이 참여하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작품은 신현정의 <날씨 회화>(2013~2019)지만 시선을 좀 더 왼편으로 돌려 김윤수의 공간으로 향했다.

김윤수, <바람은 쉼이 없이 세상의 모든 경계를 어루만져준다>종이에 흑연가루, 가변설치, 각 36.4×25cm, 2015 (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김윤수는 비닐이나 골판지와 같이 유연한 재료를 사용해 감거나 쌓는 등의 행위를 무수히 반복하여 물질과 시간이 공간에 개입하고 점유해가는 방식으로 작업해왔다. 그의 조각은 지문 또는 발자국처럼 구체적인 형태에서 시작되지만 긴 시간을 거쳐 추상적인 형상으로 마무리된다. 그것은 마치 아주 오랫동안 시간을 두고 바라봐야 물성으로 드러나는, 심연의 풍경과도 같은데, 이는 김윤수의 조각이 미니멀한 외양을 지녔음에도 서정적이고 시적(詩的)으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바람은 쉼이 없이 세상의 모든 경계를 어루만져준다>(2015) 제하의 드로잉 설치작업과 36점의 드로잉을 책으로 엮은 <바람의 표면>(2015)을 선보였다. 자신을 “조각가”로 소개하는 그에게 드로잉은 3차원의 조각 중에서도 ‘가장 얇고 투명한 조각’이다. 질감과 무게 등을 고심해서 선택한 종이에 남겨진 흑연가루의 흔적에서 언젠가 그를 찾아왔을 바람이 떠올랐다. 불현듯 내가 만난 오늘의 바람도 누군가의 과거가 묻어 있는 바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렇듯 그에게 바람은 한없이 이어지는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무언가’로 의미지어진다.
그러한 결론에 이르자 김윤수의 시간과 나의 시간, 그의 바람기억과 나의 바람기억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람은 쉼이 없이 세상의 모든 경계를 어루만져준다>로 걸음을 옮기니 벽면을 부유하고 있는 듯한 종이들이 그에 따른 반응을 보내왔다. 지금 이곳을 점유하고 있는 공기의 존재를 재차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전희경, <바람에 대한 연구>, 캔버스에 아크릴릭, 122x145cm, 2021(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김윤수의 작업이 절제된 밀도와 색감으로 공기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낸다면, 전희경의 회화는 밀도 높은 색감과 자유분방한 필치로 비가시적인 공기를 가시적인 대상으로 현현하게 한다. 전희경은 현실과 꿈, 이상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내면적인 풍경을 추상적으로 풀어내 왔다. 이전 작업들에서 조금은 막연하다고까지 느꼈던 작가의 이상을 향한 열망이 일명 ‘연구’ 시리즈 작업에서는 매일을 함께하는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였다. 신작 1점을 포함해 이번 전시에 선보인 <바람에 대한 연구> 시리즈는 총 5점, 유독 과감한 필치의 붓질로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들이 소개되어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침없이 내지른 듯한 붓질은 현실을 초월한 또는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를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아주 일상적인 빛, 공기, 바람, 대지와 같은 자연적 요소에서 영감을 얻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화면에 담는다.
색의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그러데이션, 날카로운 도구로 물감을 긁어낸 흔적, 화면을 평면적으로 만드는 가장자리의 검은색 면은 능동적 행위의 결과이자 작가 내면의 복잡다단한 심리들이 표출된 결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의 ‘내면적인 풍경’은 유기적인 자연에서 기인한다. 이는 곧, 내면적인 풍경이 ‘그’에게만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누구나 찾을 수 있고 닿을 수 있는 ‘나’들의 이상향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와 세상, 나와 너를 이어주는 일종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것, 전희경에게 바람과 공기는 그러한 존재다.

신현정, <날씨 회화-오늘의 신간>, 캔버스에 스프레이, 앵글, 가변설치, 각 135×155×60cm×2ea, 2013~2019(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마지막으로 신현정의 <날씨 회화>(2013~2019)로 가보자. 앵글 구조물 위에 비스듬히 서서 통창으로 들어오는 채광을 오롯이 마주하고 있는 <날씨 회화>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환경의 계절적 변화가 자신에게 일으키는 감각적인 반응과 그로 인해 포착되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왔다. 전시에 소개된 <날씨 회화>는 말 그대로 날씨에 대한 회화적 기록이다. 무더운 여름날 시작되었다는 이 연작은 작가가 날씨를 감각하는 순간 직관적으로 떠올린 색을 스프레이로 분사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캔버스의 측면 부분을 분사하기 때문에 화면에 남겨진 스프레이의 입자는 자연스럽게 캔버스의 가장자리에서 안쪽을 향하게 된다. 그의 회화는 외부세계와 연동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대기’라는 비가시적인 환경적 조건을 수용하는 ‘장(場)’인 것이다. 또한 작가는 붓과 물감 대신 공장에서 생산된 스프레이를 사용하고, 작품을 벽에 거는 대신 책장용 철제 구조물 위에 세워두며, 사각형 대신 원, 삼각형, 육각형 모양의 프레임을 캔버스로 사용하는 방식을 통해 회화의 전통적인 문법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한다. 다소 집요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그의 이러한 태도는 ‘부정’이나 ‘파괴’라기보다 ‘확장’의 의도를 갖는다. 이는 그가 실제 작품만큼이나 ‘(빈)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회화/캔버스를 사물처럼 다룬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한편 작업에서 주재료로 사용되는 ‘스프레이’는 분사되는 순간 작가 자신도 개입하기 어려운 우연성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는 고압상태로 있던 용기 안의 내용물이 공기와 만나 캔버스 표면에 안착하기까지의 수동적인 기다림을 즐거운 기대감으로 소화한 것 같다. 최근 접한 작업에도 천을 탈색하는 과정에서 생긴 우연적 효과가 나타난 걸 보면 말이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보는 만큼 안다.’가 되는데, 《공기의 모양》전시에서 본 세 작가의 작품들이 그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사각지대를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하여 물리적으로 표현하고 나아가 주변 환경과 관객에 유기적인 관계 맺기를 시도했다. 전시장을 나서는데 희미한 흑연가루로, 에너지 넘치는 필치로, 분사된 스프레이 입자로 현현된 공기의 모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문득 “공기를 갖고 다닐 수 있게 하고 싶었다.”는 기획자의 말이 떠올랐다.

곽세원(郭世媛, Gwak Seweon)

이화여대에서 회화판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술전문지 『월간미술』 기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