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사랑방, 갤러리GO 고진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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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은 2015년부터 문화예술 기부캠페인 ‘아트레인’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인천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기부자인 아트레인의 탑승자들을 차례로 만나보고자 합니다.

아트레인 후원의 집 2호! ‘갤러리GO(지오)’의 고진오 대표님을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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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트레인 후원의 집 2호인 갤러리GO(지오)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중구 신포동에 위치한 갤러리GO(지오)의 대표이자 서양화가인 고진오입니다. 2014년 8월에 오픈을 했으니 갤러리를 운영한 지 곧 2년이 되어가네요. 갤러리지오는 전시를 쉬지 않고 연중 진행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운영하고 있어요. 전시 경험이 없는 신진 작가부터 지역 원로, 중견작가, 크고 작은 단체전까지 다양한 기획 전시와 대관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Q. 갤러리를 인천에서도 중구 신포동, 이곳에 오픈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였나요?
A. 인천에도 서울의 북촌이나 인사동처럼 문화예술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지역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인천아트플랫폼이 개관을 했고, ‘이 일대라면 충분히 갤러리를 운영할 수 있겠구나’ 판단이 들었죠. 2년 가까이 운영하다보니까 공방이나 카페, 갤러리들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나는 것도 보이네요. 차이나타운이나 아트플랫폼, 근대문학관을 방문하러 온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우리 갤러리도 찾아왔으면 하는 바램에서 시작했는데, 조금씩 그 결과가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Q. 개인 갤러리를 운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특히 연중무휴에 가까운 일정이라면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A. 우리 갤러리는 구정이나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는 문을 닫지 않아요. 누구나 언제든지 방문해서 편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쉬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거든요. 매일같이 열어야 하기에 체력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그보다 더 힘든 부분은 유료 대관을 진행하는 갤러리라는 점입니다. 인천에는 우리 갤러리처럼 대관료를 책정해서 운영하는 공간이 많지 않아요. 대부분이 공공기관의 갤러리죠. 특히 이 일대에 있는 갤러리를 보자면 대부분 대관료를 받지 않거나, 매우 저렴한 대관료만 책정되어 있어요. 물론 지자체에서 문화예술을 위해 갤러리를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일은 굉장히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개인 갤러리를 운영하는 대표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Q. 갤러리GO는 참 다양한 전시가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문턱이 낮다고 해야 할까요? 전시를 기획하고 대관하는 데 있어 중점적으로 보는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갤러리를 표방합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해서 전시 경험이 없는 신진 작가부터 원로 작가까지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갤러리 지오에서 전시를 하면 작품이 팔리니 작가들에게도 소중한 공간이 되고 있어요.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갤러리이지만 인천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파는 갤러리이기도 하거든요. 화이트큐브의 전시장처럼 단순히 작품을 보고 나가게 되는 형태가 아니라, 들어와서 작품을 보고,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실제로 우리 갤러리에는 관람객이 들어오면 앉아서 이야기하면서 작품을 오랜 시간 감상하고 가는 편이에요. 그러다보면 작품을 구입하시는 분들도 생기고, 갤러리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느끼게 되겠죠. 인천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도 재단을 방문하거나 이 일대를 오게 되면 대부분 꼭 들렸다 가거든요. 어떻게 보면 인천 문화예술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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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문화예술 기부캠페인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예술가 분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지지가 굉장히 소중한데, 캠페인 초창기에 참여를 해 주셨어요. 예술분야에 대한 기부,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갖고 계셨나요?
A. 문화와 예술도 복지만큼이나 기부가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작 활동이 직업이거든요. 그러면 결국 작품을 창작하고, 판매하고 이 틀이 매끄럽게 이어져야 생활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가 있죠. 하지만 작품을 창작할 여유조차 되지 않는다면 예술가들은 생계 자체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공적 기금을 통한 창작 지원이 전부는 아니에요. 실제로 생계가 위협을 받고 있는 예술가들은 삶에 치여 살게 되니, 기금을 지원받는 일도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창작보다 지금 당장의 생계가 시급하니, 자신의 직업인 창작활동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해결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문화예술의 사각지대에 있는 일반 시민들을 위한 지원만큼, 자신의 창작활동을 위협받는 예술가들도 문화예술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예술 기부캠페인인 아트레인이 이런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에도 사용되길 바라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갤러리 GO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5월 14일부터 27일까지 김소산 작가의 초대전시 「관계하는 생명 그리고 불이(不二)」라는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관계하는 생명의 섭리를 담은 작품으로 미술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현대 한국화’로 이해할 수 있는 전시에요. 워낙에 작품들이 입체적이고 색감이 아름다워서 갤러리가 따뜻하고 환한 분위기로 채워지는 것 같네요. 인천에서는 선보이지 않았던 작품들 중심으로 전시하니 많은 관람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후에 선보일 다양한 전시들도 기대해주시고, 홈페이지를 통해 업데이트되는 전시 소식을 알려드리고 있으니 관심 가져 주세요.

인터뷰 진행 및 정리:기획홍보팀 주현수

[아트레인 후원의 집 1호] 복합문화공간 갤러리GO(지오)
위치 :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15번길 60(해안동 2가 8-15번지), 한국근대문학관 맞은편
운영시간 : 오전10시~오후7시(카페 영업시간 동일), 무료 입장
대관 및 관람 문의 : 032-773-8155, artkjo@naver.com
홈페이지 : http://gallerygo.co.kr


인천 문화예술의 생활 속 거점이 될 ‘아트레인 후원의 집’을 찾습니다. ‘아트레인 후원의 집’은 인천의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공식 업체를 말합니다. ‘재단’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후원의 집’을 홍보하여 이용을 권장하고 ‘아트레인 후원의 집’의 번영을 지원해 매출 신장과 인지도 제고를 지원합니다. 후원의 집은 인천문화재단과 상호 마케팅이 가능한 상점/업소/업체는 누구나 가능하며, 월 1만원 이상의 기부금 약정시 업체의 성격과 공동 마케팅 가능 여부 심사에 따라 자격을 부여합니다.
후원의 집 관련 문의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032-455-7114, artrain@ifac.or.kr

 




1930년대 예술가들의 숨결이 담긴 김억의 <망우초>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전국 유일의 공공 종합문학관입니다. 근대문학을 중심으로 한 근대 한국학 자료 약 3만 점을 소장하고 있는 콘텐츠 중심형 문학관이기도 합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근대문학(1890~1948)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상설전시 외에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한 기획전시, 문학관의 희귀 소장품을 분기별로 전시하는 작은전시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 자료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근대문학관의 함태영 학예사가 소개하는 우리 근대문학의 소중한 자산도 만나보시고, 문학관에 직접 오셔서 한국 근대문학이 가진 의미와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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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예술가들의 숨결이 담긴 김억의 <망우초>
 <망우초(忘憂草)>는 1934년 시인 안서(岸曙) 김억(金億)이 낸 한정판 번역시 선집(한성도서주식회사 초판)이다. 책 뒷면의 판권지를 보면 ‘망우초’의 ‘호화판’이라고 소개하고 한정판 25부를 발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시집 한 권 안에 그림 9점과 글씨 6점, 모두 15점이 수록되어 있으며 모두 당대를 풍미한 문인과 화가들(춘원 이광수, 상허 이태준, 석영 안석주 등)이 직접 책 낱장 위에 그리고 쓴 것이다. 당시 안서 김억 선생이 책을 갖고 여러 예술가들을 찾아다니면서 빈 지면에 하나씩 작품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1930년대 한국 문학 및 미술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국내 유일본이다.




음악이 흐르는 신포동, 풍경 셋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나누는 일상의 이야기 <선린동 사진구락부>

 

햇볕 따스한 4월의 봄날. 차이나타운 해안성당 맞은편에 자리한 카페 모노그램에서 < 선린동 사진구락부(이하 구락부) >의 회원들을 만났다. 운 좋게도 기자가 < 구락부 >를 방문한 날은 생일파티가 열리는 날로, < 구락부 >의 많은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한 ‘화교학교 사진반 수업’을 계기로 만들어진 < 구락부 >는 올해로 2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회와 아카이빙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은미 사진작가를 비롯하여, < 구락부 >의 회장 손미영 씨, 총무 왕언리(앨리스) 씨, 화교학교의 선생님이자 < 구락부 >의 회원인 손세혜, 추계홍, 사서범 선생님을 만나 < 선린동 사진구락부 >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선린동 사진구락부 >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모임을 구성하게 된 계기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활동이 궁금하다.
서은미
2014년 인천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사업인 [무지개다리] 사업을 통해 사진반을 개설했다. 학생반, 인천대 유학생 반, 성인반의 3개 반이 있었고, 성인반은 화교학교의 졸업생과 선생님, 학부모 등이 함께했다. 사진반 수업이 진행되었던 2014년 12월에 아트 플랫폼에서 수업을 정리하는 전시가 있었고, 그 후에 성인반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이어져 오고 있다.
앨리스
한 달에 한 번, 매월 두 번째 수요일에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각자 한 달 동안 사진을 찍어오고, 그 사진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일주일에 한 장 정도 사진을 찍어오고,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얼마 전 벚꽃이 한창일 때는 같이 사진을 찍으러 나가기도 했다.

지난 해 <114년의 기억, 한국인천화교중산중소학>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출간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서은미
아카이빙을 통해 모은 자료집의 일종이다. 회원 중 대부분이 화교학교 출신이거나 선생님이기 때문에, 무지개다리사업의 일환으로 지원을 받으면서 화교학교의 역사와 기록을 아카이빙하기로 하고 1년여 동안 자료를 모았다. 작년 12월에 그 결과물로 책이 나온 것이다. 1902년에 화교학교가 설립된 이후로 2015년 당시 현재까지의 기록들을 모을 수 있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전시회에는 주로 어떠한 작품을 담는가?
서은미
맨 처음 열었던 사진전은 < Re:선린동 2014 >로, 사진반 수업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진행되었다. 사진전 제목은 선린동을 다시 불러낸다는 의미를 가졌다. 그 직후 < 화교 생활사 사진전 >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진행했다. 인천대에서 진행된 전시회였는데 < 구락부 >의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서 사진을 모았다. 이후에도 세 명의 회원이 따로 사진전을 열기도 했고, < 114년의 기록 > 출판기념회 때도 사진전을 열었다. 작년 전시 때는 회원 네 명이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으로 < 네 명의 여자가 찍은 사계여행 >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열었다. 재작년에 대만으로 사진 워크숍을 다녀왔는데, 올해는 몽골로 사진 워크숍을 가는 것을 계획 중에 있다.

다양한 예술분야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사진을 소통의 수단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사진에 주로 어떤 내용을 담는가?

서은미
우선은 재단에서 사진반 수업을 연 것이 첫 번째 계기였다. 화교학교의 선생님들이 한 분 두 분 모이기 시작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됐다.
손세혜
처음에는 재밌겠다는 생각만으로 시작했다. 전에는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풍경을 찍는 정도로만 사진을 찍었었는데, 사진을 배우고 나서는 달라졌다. 오히려 사진을 배운 이후에 사진을 찍는 장소가 훨씬 줄어들었다. 무엇을 찍고 싶다고, 사진을 찍으러 어디를 가야겠다고 마음은 먹지만, 현실적으로 멀리 가기는 힘들어서 아직까지는 근처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지금껏 찍은 사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앨리스
몽골에서 찍었던 별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구락부>의 다른 회원과 함께 몽골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찍었던 별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서은미
손미영 회장님은 동네를 많이 돌아다닌다. 일상에서 골목의 요모조모를 사진에 많이 담는다. 손세혜, 추계홍, 사서범 회원은 화교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들의 모습을 많이 찍는다. 사서범 선생님은 매주 여행을 떠날 정도로 국내 곳곳을 여행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여행 다니면서 남긴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손미영 회장님은 동네 사진을 특히 많이 찍는다고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손미영
원래 인천에서 화교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하고 대만으로 갔다. 대만과 중국에서 각각 10여년씩을 살고, 인천으로 돌아온 지 5년이 되었다. 인천으로 돌아와서 일을 쉬고 있었는데, 마침 사진반 수업이 열려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진을 잘 찍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사람들과 같이 모여서 어울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 활동을 했다. 사진반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하려 고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동네 사진을 찍고 있다. 처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인물의 모습을 담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골목의 오래된 모습과 같이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것 뿐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회원들과 언니 동생하며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도 즐겁다.

추계홍 선생님과 사서범 선생님은 화교가 아니라 대만 분들이신데, 화교학교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추계홍
대만에서 대체복무를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군인 신분으로 1년간 복역을 했고, 제대한 이후에도 계속 남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서은미 선생님이 아들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것도 좋았고, 학교의 아이들도 정말 귀여워서 학교에 남게 되었다.
사서범
인터넷에서 모집공고를 보고 화교학교에 오게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적응이 되었고 편해졌다. 벌써 7년차 선생님이다.

서은미 작가님은 인천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특별히 화교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 구락부 >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서은미
지금은 다 이사를 가버리고 없지만, 모교인 축현국민학교와 남인천여중이 이 동네에 있었다. 학창시절에 놀던 동네였던 것이다. 이 동네에서 지낸 물리적인 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지냈던 추억들이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동네에 대한 애착, 애증 같은 것들이 남아있다. < 인천 이지안 >이라는 개인작업을 진행할 때 인천의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하면서 도시 ‘인천’의 특징을 잡으려고 시도했었다. 인천은 개항도시이고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화교만이 이곳에 정착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화교 분들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한 [무지개다리] 사업에 참여하여 화교학교에서 사진반 수업을 열게 되었다.

기자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차이나타운이라는 말을 들으면 관광지 정도로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에 오랜 기간 화교사회가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화교학교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이렇게 화교사회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사진전과 활동은 화교사회를 알리며 지역사회에 소개하고 또 소통하고 있는데, <구락부>활동을 시작하기 전과 후에 변화한 점이 있는지?
손세혜
학교가 개방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인 것 같다.
서은미
그렇다. 작년 가을에 열린 제 3회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화교 소학교 학생들이 찍은 영화의 시사회를 열었다.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영화제에서 많은 작품이 상영됐는데,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찍은 영화가 큰 주목을 받은 것이다. 올해도 영화수업이 진행되고, 학생들이 직접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거쳐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전시나 보도 덕에 화교학교가 많이 노출되고,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지역사회가 화교학교나 화교 사회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이전에는 학교가 개방이 안 되어 있었나?
손세혜
이전에는 화교학교와 지역사회의 교류가 아예 없었다. 원래 폐쇄적인 사회였는데, 사진 수업을 통해 외부인이 화교학교에 처음 들어오게 되었고, 수업을 하면서 화교학교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외부에 전시를 하는 등의 교류가 생긴 것이다.
서은미
화교를 피사체로, 대상으로 외부인이 작업한 사진은 있었지만, 자체적으로 사진을 찍고 전시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큰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화교 사회 내부에서도 좋은 반응이 있었다. 학생들의 사진도 전시되었는데, 학생들의 사진들은 성인반의 사진보다도 더 다양한 것들을 담고 있었다. 화교 사회 내부에서 많은 어른들이 학생들의 작업 결과를 보면서 “기특하다, 기대 이상이다”하며 좋아했고, 영화제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결과물들이 있었기에 계속해서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화교학교가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꼭 <구락부>의 활동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화교학교와 화교사회가 이 전보다는 더 많이 알려지고 소통하고 있는 데에 일조한 것 같아 뿌듯하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사진전이 있는가?
서은미
1년에 한 번은 사진전을 열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에 화교학교의 역사에 대한 아카이빙으로 사진을 모았던 것처럼 ‘화교 생활사 아카이빙’을 계획하고 있다. 14년도에 생활사 사진 공모전 때문에 모아놓은 사진들이 있어서 더 많은 자료들을 추가해 책을 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 선린동 사진구락부 >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앨리스
다른 회원들보다 늦게 참여하게 되었지만, 함께 사진을 찍고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이 아닌 다른 일상의 이야기도 나누는 것이 참 즐겁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 말고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 구락부 >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 인연을 통해 또 다른 인연들도 만나게 되었다.
추계홍
재미있다.
사서범
한국에서 친구들이 많지 않았는데, <구락부>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사진도 찍으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손세혜
제일 많이 놀 수 있는 나이에 한국에서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지내는 생활이 매우 단조로웠다. 대학친구들도 다 대만에 있고, 집과 학교만을 오갔기 때문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생활이 아니었다. <구락부>에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여가 활동을 전보다 더 많이 즐기게 되었다. 심심할 때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오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사진기를 메고 밖으로 나가거나, 사진전을 보러가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좋은 장소들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손미영
이 모임이 끝까지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정말 좋다.
서은미
처음 사진반 수업을 기획하고 진행할 때는, 폐쇄적인 이 곳의 특성상 참가자 모집도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모임이 이어져오고 있고, < 구락부 > 의 회원들이 비타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말 내내 심하게 앓았는데, < 구락부 > 모임에 오면 기운을 차리게 된다.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 말고도 수시로 모인다. 오늘처럼 회원의 생일이 있으면 챙기기도 하고, 이 곳(카페 모노그램)에서 함께 커피수업도 듣는다.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 선린동 사진구락부 >는 사진을 통해 화교사회를 지역사회에 소개하는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 구락부 >의 회원들에게서 사진에 대한 더 큰 열정과 애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히 화교사회를 소개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일상을 다시 발견하고, 그 일상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 있었다. 재단에서 시작한 작은 수업 하나가 많은 사람의 일상을 변화시켰고, 이제 그들에게 사진은 소중한 일상이자 세상과의 통로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을 통해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 선린동 사진구락부 >,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인터뷰 및 정리 인천문화통신 시민기자 김진아




반갑습니다! IAP 7기 입주작가 소개 – 최선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들과 함께 2016년도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작가들을 만나봅니다. 첫 번째 만날 작가는 “예술의 가치가 외형적 근사함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답다고 간주되는 통념적 미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그 태도 속에 담긴 생산적 가치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최선입니다.

작가 홈페이지 ssunya.net

환영을 넘어서
전시장에 추상표현주의 혹은 엥포르멜 회화 즈음으로 보이는 정갈하고 도도한 거대한 회화작품이 걸려있다. 강렬한 색채, 익숙한 선과 획으로 포장된 드라마틱한 물결 앞에서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사실 더러운 오수의 장식적인 부분을 그림의 형식으로 옮겨 놓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지하게 된다. 작가 최선의 < 오수회화(적분의 그림), 2015 >이다. 최선은 돼지 한 마리에서 짜낸 기름으로 만들어 관람객의 체온에 녹아버리는 그림을 만들고, 공기 중에 유출된 무색무취의 맹독성 화학물 불산(HF, Hydrofluoric Acid)을 채취해 작품을 만든다. 그는 짐승과 사람 털을 태운 가루를 온 전시장 벽에 발라 가득 채우기도 하고, 심지어 물감 대신 캔버스에 침을 뱉어 말려 그림을 완성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으나 아름다움과 추함을 비롯해 모든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점을 주지하고 관례적인 표현방식과 형식의 예술 틀에서 한 걸음 비껴나 본다면, 물질성 너머 보이지 않는 가치 속에서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은 동시대 미술과 사회의 관계에 주목하며, 문화의 한 형식으로 현대미술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의미의 균열을 만들어 내는지를 탐구해 왔다. 그는 오늘도 스튜디오에서 자신과 사회 현재의 문제들을 어떻게 시각적 언어로 담아낼 수 있을지를 실험해 나간다.

Q. 작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한 메아리전이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 메아리, 2015 >는 급격히 사회가 과거로 회귀해가는 요즘, 어린시절 똥물로 넘쳐나던 변두리 개천 다리 밑에서 토치로 개의 털을 태우던 어른들의 과거 문화를 떠올리며 손바닥이 까지도록 벽에 짐승의 털가루를 발랐다. 짐승들의 털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벽은 한국의 과거를 들춰내는 벽화이며 동시에 시대적인 오브제이다. 미화되는 과거를 현대적인 화이트큐브 속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주고자 했다. 접착제 없이 벽에 달라붙어 있는 털가루들이 먼지처럼 떨어진다.

Q. 사람들과 함께 진행한 < 나비 프로젝트 > 또한 인상적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사회 속 개인의 존재를 너무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만드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한 명 한 명의 보이지 않는 숨길을 드러내는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 나비 프로젝트 >는 2014년 안산의 길거리에서 마주친 외국인 노동자들과 처음 시작했으며, 참여자들은 관념적으로만 인식하기 쉬운 자신의 숨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강렬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이질적인 개인들이 동일한 숨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작가는 누구이고 또 예술작품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미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하나의 담론을 만들고자 했다.

Q.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졸업 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 < 동냥젖, 2005 >이다. 당시 이 작품을 선보인 전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모든 언어를 총동원해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당시 관념화된 미술교육이 몸서리치게 싫었기 때문에 이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작품을 전시하며 배운 것이 크게 두 가지 있다. 내 스스로 예술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작품은 작품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가 있어야 완성되는 것이기에 사람들을 벗어난 세계에서는 예술이 있을 수 없고, 의미도 없다는 것. 다 른 한 가지는 내가 그토록 찾던 ‘새로운 것, 새로운 예술’ 이라는 것이 너무나 낯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그저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낯선 것’을 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던 반면 이를 격려해주고 공감해주는 이들도 생겨났다. < 동냥젖 >을 통해 아름다운 것만이 벽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불쾌한 것, 부식되어 형식은 없어지고 시간이 지나 짓밟히고 그 형태가 뭉그러뜨려지는 것을 통해 진정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Q. 똥, 피, 침, 폐유, 오수, 재 등 더럽다고 간주되는 재료나 소재가 대거 등장한다. 이런 소재들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 실바람 >은 요코하마의 화장터에서 유골 분진을 얻고 그걸 전시장 바닥에 뿌려 설치한 작품이다. 사람들이 움직이면 뼛가루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뜨면서 실바람처럼 움직이는데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뼛가루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먼지처럼 달라붙어서 또 다른 곳으로 가는 상상을 했다. 그동안 강제 출국당할 위기도 있었고, 전시를 못하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언짢아하기도 하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고지식하게 대응하다가 지금은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것은 낯선 것일 수 있으니까.

Q. 작가 최선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
나는 모호한 예술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호한 의문을 더 선명한 물음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실천을 해왔다. 내 시간과 겹치는 한국현대미술의 부조리한 과거를 뒤에 두고, 과연 무엇이 예술적이며, 무엇으로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알기는 쉽지 않았다. 이곳을 둘러싼 서구중심적 예술의 통념들이 낳은 모호함 앞에서 당신과 내가 또렷이 목격할 수 있는 현실의 참혹함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예술적이다. 미술품을 만드는 나의 ‘미술’에는 이중적인 것이 있다. 가시적인 것과 가시적이지 않은 것, 물질적인 것과 물질적이지 않은 것, 선명한 것과 선명하지 않은 것, 그리고 미술적인 것과 미술적이지 않은 것, 마지막으로 예술적인 것과 예 술적이지 않은 것이다. 나는 ‘예술’이 사라져 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술품을 만들고 있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예술적’이지 않은가?

Q. 앞으로의 작업 계획은?
회화에서 시작된 내 작업은 ‘환영과 형식적인 조건’, ‘비재현적인 방식과 재료’ 에 대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제도권 속에서 미술로 수용된 회화라는 양식의 범주를 벗어난 비회화적인 재료와 비재현적인 방법을 통해서 새로운 조형과 가치 인식이 가능한지를 실험해 왔으며 그런 맥락 속의 대안적인 미술과 미술품을 제안하고 제작해왔다. 소비되는 미술의 한계를 벗어나고 기술과 자본의 영향 밖에서 새롭게 가능한 미술이 무엇이 될지 사회와 역사, 그리고 문화라는 컨텍스트(Context) 위에서 계속해서 실험해 보고자 한다.

 




어린이를 독자로 한 최초의 월간지 <아이들보이>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전국 유일의 공공 종합문학관입니다. 근대문학을 중심으로 한 근대 한국학 자료 약 3만 점을 소장하고 있는 콘텐츠 중심형 문학관이기도 합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근대문학(1890~1948)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상설전시 외에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한 기획전시, 문학관의 희귀 소장품을 분기별로 전시하는 작은전시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 자료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근대문학관의 함태영 학예사가 소개하는 우리 근대문학의 소중한 자산도 만나보시고, 문학관에 직접 오셔서 한국 근대문학이 가진 의미와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를 독자로 한 최초의 월간지 <아이들보이>
육당 최남선이 1913년 9월 창간한 월간 잡지이다. 어린이를 독자로 한 최초의 월간지이며, “아동잡지”란 말도 이 잡지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1914년 10월까지 총 13호가 발행되었으며, 매호 50쪽 분량이다. 이 잡지는 근대 잡지 중 가장 화려하고 강렬한 표지 디자인을 특징으로 하는데, 조선왕실 최후의 화원(畵員)인 심전 안중식(1861~1919)의 작품이다. 옛날이야기와 우화, 교훈적이고 역사적인 이야기, 화보사진, 서양 동화 번역, 과학상식, 만화, 퀴즈, 독자투고 등이 주 내용이다. 1910년대 출판문화나 한국 근대 아동문학 및 근대 동화의 초창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동네방네알림판 2016.4.19~5.2

인천에서 벌어지는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각종 행사들의 소식을 한번에 전해드립니다. 매월 1주, 3주 화요일마다 발송되는 인천문화통신을 활용해 소식을 전하세요. 다음 문화통신은 각각 5.17(화), 6.7(화)에 발행됩니다.
알리고 싶은 행사 내용을 http://me2.do/xRtWJVeH 링크에서 입력하시면, 기간에 맞춰 실어드립니다.
#인천문화예술 #동네방네 #알림판 #소식

한국근대문학관, 앵글에 담긴 근현대 한국문학 전시(2016.5.3.~7.3)
한국근대문학관이 특별전시 ‘윤정미 사진전-앵글에 담긴 근현대 한국문학’을 준비했습니다.
사진과 한국 근대 소설의 특별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메밀꽃 필 무렵, B사감과 러브레터, 오발탄 등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 소설을 재치있는 해석과 현대적인 시선으로 담은 윤정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lit.ifac.or.kr/

 

트라이볼 시리즈, 피아니스트 박종화 공연(5.6, 20:00~)
세계 3대 콩쿠르의 하나로 알려진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최우수 연주자 상을 수상한 피아니스트 박종화의 특별한 무대가 펼쳐집니다. 이날 공연은 아이들에게 친숙한 동요로 구성된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라고 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관람하기에 너무 좋은 공연이겠죠? 트라이볼 홈페이지에서 공연 예약 가능합니다.
문의는 재단 공간사업팀 032-455-7184, http://www.tribowl.kr

 

 

당신의 토요일을 책임지는 5월의 만국시장(5.7, 인천아트플랫폼)
< 초록 > 테마로 꾸며지는 아기자기 플리마켓, 길에서 만나는 특별한 라이브 공연, 취향 저격 맞춤 영화까지! 당신의 토요일을 풍요롭게 해줄 만국시장이 드디어 첫 장을 엽니다. 5월 7일(토) 12시부터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오세요! 별난마켓, 별별극장, 만국음악살롱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만국시장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10000market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센터 이름을 지어주세요.
올 상반기 중 개관하는 인천문화재단의 생활문화센터! 시민들의 다양하고 자발적인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생활문화센터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인천 시민이라면 누구나 제안할 수 있고, 5월 10일(화)까지 온라인으로 접수 받습니다. 생활문화센터에 바라는 점이나 하고 싶은 말도 자유롭게 받습니다. 재미있고 친근한 생활문화센터의 이름은 무엇이 될까요? 많은 참여 바랍니다.http://me2.do/FA7iVDvS

 

 

인천문화재단, 인천관광공사 및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와 MOU 체결
인천문화재단이 다양한 분야에서 네트워크를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1일(목)과 28일(목)에 각각 인천관광공사,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와 상호협력 및 교류 확대를 위한 협약을 맺었습니다. 인천관광공사와는 문화·관광 융합형 콘텐츠 개발 및 추진에 적극 협력하고 공동협력사업을 발굴해나가는 한편,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와는 문화와 과학예술의 융합교육을 바탕으로 한 과학 예술영재를 양성하는 데에 힘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엄마의 책장 in 배다리 한미서점
엄마는 어떤 책을 좋아했어요? 할아버지는요? 헌책방에서 그 책을 읽으며 함께 이야기해요.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과 책을 바꿔 읽습니다. 선착순 모집! 2기는 5월 22일부터 시작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한미서점 블로그 http://booknstory.blog.me




뉴스 큐레이션 2016.4.19~5.2

곳곳에서 뉴스가 쏟아진다. 모바일 기기, TV, 노트북 속에도 뉴스가 흐른다. 지진 발생 8분 만에 기사를 만들어내는 ‘로봇 저널리즘’, ‘로봇 기자’의 시대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정보 전달과 가십이 넘쳐나는 가운데 누군가 인심이 묻어 있는 기사, 짚어볼 거리가 있는 기사, 그래서 의미 있는 기사를 따로 모아준다면? ‘뉴스 큐레이션’은 인천의 문화예술 소식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기와 거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뉴스, 경계가 허물어진 곳에서 꿈틀대는 새로운 뉴스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재은(뉴스 큐레이터)

카페와 서점의 만남, ‘세든서점 프로젝트’

일반인도 책을 쓰는 세상. 더 이상 책쓰기는 ‘작가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콘셉트만 있다면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다. 독립출판은 형식도, 내용도, 책의 판형도, 부수도 자유롭다. 자기만의 감각과 디자인으로 독특한 책을 만들 수 있다. 지난해 8월 발표된 전국 40여 개 독립출판서점 리스트에 인천은 없었다. 가까이 부천에는 카페 5km가 있고, 멀리 광주에는 오월의 방, 제주에는 소심한 서점 등이 있었지만, 그리고 서울에는 책방만일과 더북소사이어티, 스토리지북필름 등이 문화예술공간으로 인지도를 넓히고 있었지만 인천은…. 지금은 요일가게의 ‘금요야매책방’도 있고, 배다리 안내소도 독립출판서점 기능을 하고 있지만 ‘전문 서점’을 찾을 수 없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기존의 대형 출판사는 물론 독립출판사들과도 다른 방식의 서점을 고민하다가 시작했다는 세든 서점. 이름 그대로 세를 든다는 뜻의 ‘세든서점’은 차이나타운의 모노그램 커피, 신포동 애관극장 건너편 ‘극장 앞’ 갤러리 카페, 그리고 인조이 스토어 공간 한 쪽에 세 들어 있다. 바퀴 달린 이동식 책장 위에서 커피향을 따라 여행하는 책, 책, 책. 한 권 한 권의 책이 꽂혀야 하는 이유를 발견해주는 이들이 많이 찾는 서점으로 만드는 것이 세든서점의 목표다. 장소 점유가 아닌 독서문화의 향유를 염두에 둔 가치가 반갑다.

‘세계 책의 수도’ 인천 1년 대장정 완료…무엇을 남겼나

세계 책의 수도는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4월23일)을 기념하고 독서와 저작권 진흥을 위해 매년 유네스코가 지정한다. 15번째 책의 수도로 선정된 인천시는 지난 1년간 세계 책의 수도 사업을 진행했 다. 대부분의 기사가 ‘성공적 마무리’, ‘세계 책의 수도 선정 후 독서붐’, ‘책과 함께 내달린 1년 인문도시 기반 다졌다’ 같은 타이틀을 내걸었지만 인프라 개선 및 독서, 출판 진흥 사업이 미흡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행사 축소와 인천만의 특색 있는 사업 미비, 시민들이 모르는 국제행사였다는 지적이 오로지 사업비 부족 탓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라진 이화동 명물 벽화… 주민 갈등 터질 게 터졌다.

물고기 계단, 꽃 계단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 오전에도 마을 입구에는 관광버스가 수시로 정차한다. ‘정숙 관광 캠페인’도 벌여보지만 하얀 날개 앞에 서면 저절로 천사가 되는 재미 앞에서 관광객들은 깔깔깔 웃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 페인트로 ‘예쁜’ 벽화를 지웠다. 벽화마을 곳곳에는 ‘편히 쉴 권리’, ‘재산권’ 등의 글씨가 빨갛게 새겨졌다. 관광객들의 소음도 문제지만, 벽화 주변 상권 형성 과정에서 경제적 이득을 본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다. 이화동 벽화마을 사례로 인천 중구의 동화마을을 생각해본다. 사업 시행 초기부터 민관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동화마을은 이화동의 선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홍대여 잘 있거라~ 우리는 창동으로 간다

61개의 컨테이너로 만든 복합문화공간 ‘플랫폼 창동 61’이 지난달 29일 개관했다. 음악, 미술과는 거리가 있던 도봉구 창동을 대중 음악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시도다. 홍대를 중심으로 했던 인디신은 불특정 다수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했지만 창동은 다르다. 서울시가 문화 기반 마련을 위해 계획적으로 추진했다. 홍대 인근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공연예술인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은 터라, 그 대안으로 플랫폼 창동의 역할에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 한편으로 염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플랫폼 창동이 자발적 문화예술역량과 결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그것이다. 정책이 목청 높이며 앞장서는 게 아닌, 지역의 기획자, 예술가들이 앞서서 그곳에 거주하고 활동하며 입소문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찾지 않는 공간은 낡아서가 아니라 외로움으로도 폐허가 될 수 있다.




인천의 구도심에서 색다른 민간 문화공간들이 살아가는 방법

올해 첫 번째 목요문화포럼은 시작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부평과 신포동 등지에서 개성 넘치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꾸려가고 있는 네 명의 개척자를 한 자리에 모셨기 때문이다. 빙고, 요일가게, 잇다스페이스, 발로까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또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낯선 공간이 아닌가? 지금껏 서로 교류한 적 없다던 네 명의 개척자는 마치 이런 자리를 기다려왔다는 듯 각자의 이야기와 고민을 술술 털어놓았고,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뜨거웠던 그 날의 현장을 인천문화통신에서 만나보자.

이의중(아카이브카페 빙고)
잠실에서 살던 어린 시절 재개발을 목격한 뒤에 오는 상실감을 경험하고, 누군가의 일상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억을 아카이빙하려는 마음으로 마을 재생을 실현하고 싶다는 이의중 대표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인천 근대건축자산의 가능성을 보고 인천을 선택했다. ‘잠실 사람’이 ‘인천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인 셈.

“개인 입장에서 봤을 때 인천이 자원은 참 많은데 활용이 잘 안 되고 있으니 내가 들어가면 인천에서 할 일이 많겠구나 싶었어요. 누군가에게는 황무지로 보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이게 다 제가 해야 할 일로 보인 거죠. 그래서 인천을 선택하게 됐고, 회사 이름을 < 건축재생공방 >이라고 지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한 프로젝트가 지금의 < 빙고 > 공간입니다.”

< 인천 아카이브 빙고 재생사업 > 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건물은 예전에 굉장히 번화가였던 중앙동에 있다. 그렇지만 골목길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공간에 있었던 작은 얼음 창고였다. 대지는 17평, 건물평수는 14평에 실내 내측 사이즈는 12평 반이다. 좀 특이한 점은 윗부분이 목조트러스트로 되어있다는 것. 일본에서 공부한 이의중 대표에게 익숙한 창고 건물 양식이었다. 그런데 얼음창고이다 보니 밑에 2m 정도가 화강석으로 쌓여있고, 출입구가 굉장히 작고, 개구부(창문)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년 8월 성공적으로 골목길에 나타난 < 빙고 >는 실력을 계속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 소변금지 >가 써붙여 있을 정도로 지저분했던 골목에서 < 골목길 탁구대회 >를 열고, 인디밴드와 함께하는 동네음악축제 < 사운드바운드 in 신포동 > 행사도 4월에 진행해 밤늦게까지 동네 사람들과 신나게 놀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생각만 하시고 그냥 멈춰계신 경우가 많은데요, 한 사람이라도 더 용기를 내시고 세상으로 적극적으로 나오셔서 가능성도, 가치도 있는 신포동 같은 동네에서 활동을 활발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런 분들을 지원하기 위해 건축재생공방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고, < 빙고 >와 같은 공간도 마련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청산별곡(요일가게-다 괜찮아)
환경단체 활동가에서 생활 예술가로, 그리고 마을 활동가로 인천 배다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산별곡은 ‘배다리 생활 8년’을 ‘8년의 레지던시’라고 표현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요일가게-다괜찮아>이다. 어렸을 때부터 남의 집에 살아서 집을 가지고 싶지만 돈이 없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그녀가 취한 방법은 ‘돈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 만들기’였다.

“모든 곳이 다 제 집이에요. 저는 어딜 가든 그곳을 다 제 집으로 만들어버려요”

그러나 그렇게 꾸며놓은 집은 속은 그녀의 것이되 겉은 여전히 남의 것이었다. 죽어가던 공간을 살려놓으면, 욕심을 부리는 주인들 탓에 매번 쫓겨나고 옮겨다녀야 했던 그녀가 찾은 마지막 공간이 바로 인천, 그리고 배다리였다.

“어떤 상업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자체를 여는 것, 셔터 올려놓는 게 제 목표에요. 다른 책방에서 책을 사서 제 가게 에서 쉬면서 읽어도 상관없어요. 다만 저는 수익이 안 나니까 여기서 마냥 손님만 기다릴 수 없어요. 그래서 무인가게로 운영을 하 는 거죠. 저는 다른 곳에서 놀다 오고 손님이 주인이 되어서 직접 운영하고… 저는 이 방식이 참 좋고, 제가 또 잘했다고 생각해요. 잃어버리고 하는 것도 많은데(웃음) 그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죠. 이런 방식이 맞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거고, 또 < 요일가게 >와 < 생활문화공간-달이네 >가 운영되는 거죠. 결코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주변에서 다들 도와주셔서 하는 거죠.”

독특한 사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 요일가게 >는 이제 제주 등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다. 닫혀진 셔터를 열고 싶어서 시작했던 청산별곡의 시도는 ‘알아서 돌아가는 수익 구조’라는 신선한 결과를 가져왔다.

“< 요일가게 >를 꼭 지속시켜야겠다는 굳은 다짐 같은 건 없어요. 지금껏 했던 것처럼 계속 공간을 바꿔보고, 안 맞으면 다른 시도도 해보고… 그래서 < 요일가게 >로 쓸 수 있는 건물을 사는 게 제 꿈이지만, 현실적으로 건물을 사긴 어렵고, 유럽풍의 책방을 해보고 싶어요. 요일가게가 천장도 높잖아요. 책을 쫙 둘러서 꽂아놓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책을 보는 그런 책방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정희석(잇다스페이스)
목조형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희석 대표는 ‘만들고’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기도 하다. 작품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 개인 아뜰 리에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 잇다스페이스 >는 ‘문화주주 짓다’ 등 크라우드 펀딩과 주변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모르는 사람의 돈이 들어온다는 부담감과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그는 더 열심히 지금의 < 잇다스페이스 > 를 만들었다고 한다. 인천의 골목길을 샅샅이 뒤지며 공간을 찾아다니던 일, 공간을 내주지 않겠다는 주인을 설득한 에피소드와 뒷이야기도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좁은 골목으로 장비를 들여가며 리모델링을 하느라 고생은 많았지만, 고생한 만큼 현재 < 잇다스 페이스 >는 누가 와도 감탄하며, 공간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곳으로 재탄생했다. 공간을 케어했지만 나중엔 그 공간이 본인을 케어한 것 같다는 정 대표는 버려진 것 같아도 안에서 계속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던 < 잇다 >의 공간에 감사한다.

“제가 ‘잇다’라고 생각을 한 것은 ‘잇다’, ‘짓다’하고 마지막으로 ‘하고’가 있습니다. 이게 제가 15년 전에 만들어놓은 것인데 이번에 다 써먹어봤습니다. 아직 옥상을 개방하지 않았는데 그곳은 ‘하고’가 될 것 같습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아직 뭔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 잇다스페이스 >는 사람과 문화, 사람과 사람, 공간과 자연,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연표(스튜디오 발로)
도시재생이라는 화두가 전 세계적으로 핫한 이슈인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실패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 발로 >의 김연표 대표. 그는 외국의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면서 국내에서 진행되는 관 주도의 도시재생을 비판하고 대안으로 낡은 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 < 발로 >식 도시재생을 추천했다. SG산업이라는 모체를 가진 < 발로 >는 영화, CF, 대중음악의 뮤직비디오 등 대규모 촬영이 가능한 로케이션 스튜디오이자 인더스트리얼 가구 판매점, 카페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각각으로 따지자면 가구, 카페, 스튜디오 모두 레드오션입니다. 국내에 발로와 유사한 컨셉으로 가구를 파는 카페 등은 많습니다. 그러나 가구 파는 카페에서 각종 로케이션이 가능한 곳은 < 발로 >가 유일합니다. 일부러 공간 사진 촬영을 하는 데에 비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비용을 받는 만큼 새로운 아이템들을 선별해서 갖춰놓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구요. 그 덕에 영화감독들이 사랑하는 공간이 된 것 같습니다. 공간재생, 도시재생, 문화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면 먼저 공간이 아닌 사람에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말고, 인재를 키우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발로는 하나의 인큐베이팅이고 계속해서 또다른 발로를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철강 공장에서 철강을 만드는 아버지 세대처럼 자녀 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의미가 있는 일. 그래서 우리는 지역 주민과 사람에게 집중해야합니다. 이것이 공간보다 앞서는 전략이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발로는 5.28(토)에 판매 수익금의 10%를 지역 소외계층에 기부하는 플리마켓을 준비하면서, 셀러들을 모집하고 있다. 플리마켓 당일에는 방송 촬영 스케줄을 비우고, 참여하는 셀러들이 무료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날 포럼은 질의응답이 이어지면서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딱딱하고 지루한 포럼이 아니라 지역의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민간 문화 공간들이 자연스러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앞으로 함께 할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자리였다. 더 자세한 목요문화포럼의 내용은 5월 중순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에 게시될 자료집을 통해 확인 가능하며, 6월에 열리는 두 번째 목요문화포럼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로 준비 중이라고 하니 미리 체크하시길!
정리:정책연구팀 강상진




권투인 김병옥

1980년대, 중구 신포동 시장 안에 있던 옛 선술집 ‘백항아리’에서 뵌 분 중에는 권투인 김병옥(金丙玉) 선생이 계시다.
체구는 그리 크지 않았고 언변 또한 조용한 분이셨다. 조용히 약주 잔을 드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신태범(愼兌範) 박사께서 생전에 김병옥 선생에 대해서 쓰신 구절이다. 인천은 개항과 더불어 모든 서구 문물이 들어오던
곳이어서 일찍이 여러 분야에서 개화사상을 가진 분이 많았는데, 선생도 체육 쪽에 그런 선구적 생각을 가지신 분이었던
것 같다. 또 한편 개항 이후 인천 사람들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대변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김병옥 선생이 활약하시던 시절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던 시기여서 불행하게도 선수로서 올림픽 같은 큰 국제 시합에
나가 이름을 빛내거나 하시지는 못했다. 국내 대회나 아마추어 권투 한일 대항전 같은 시합에 대표로 나가는 정도였다.
그러나 광복 후 지도자의 길을 걸어 우리나라 아마추어 권투 발전을 위해 공헌하신 사실은 체육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당시 한일 양국을 통틀어 무적의 밴텀급 챔피언이셨던 김병옥 선생 생전에 약주 한 잔을 변변히 못 올린 것이 못내 부끄럽다.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