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진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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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촌(秦雨村, 생몰년 미상)은 인천 태생으로 본명은 종혁(宗赫)이고 우촌은 예명이다. 고일 선생의  『인천석금』에는 “진우촌이 극작가로 진출한 것은 물산장려회의 희곡 현상 공모에 입선된 후”라고 하나, 다른 기록에는 1925년  『조선문단』에 단막극  「구가정(舊家庭)의 끝날」로 데뷔한 것으로 나와 있다.

진우촌은 1926년 배우이며 연출가인 정암과 무대장치가인 원우전, 언론인 고일과 연극단체인 <칠면구락부(七面俱樂部)>를 설립하여 인천 연극운동을 전개했다. 한편으로 박아지, 엄흥섭 등과 동인지  『습작시대(習作時代)』를 간행하기도 했다.

“칠면구락부에서는 진우촌이 각색하여 공연한  「춘향전」,  「카르멘」,  「사랑과 죽음」 이외에 수많은 작품을 각색, 연출하였다. 무대 장치는 원우전, 연출은 정암, 각색은 진우촌과 필자가 담당했다.

여담이지만, 필자의 작품인  「눈물의 빛」을 가무기좌(歌舞伎座)에서 공연할 때, 주연 송수안 군이 대사에도 없는 말을 하고, 무대 뒤로 숨은 일이 있었다.  <중략> 진우촌이 배경 뒤에서 극본을 크게 읽어 주었건만, 송 군은 입을 열자마자 첫 마디가, “여보게, 변소가 어딘가? 나, 소변 좀 보고 옴세….” 송 군은 이 한 마디만 남기고 무대 뒤로 사라져서 영영 나오지를 않았던 것이다.

대역을 맡아 본 필자는 하는 수 없이 임기응변으로 시국 강연을 한 바탕 하였고, 노파 역으로 분장한 임창복 군을 나오라고 독촉해 전혀 다른 내용의 희극을 연출하고만 일까지 있었으니 그립기도 한 낭만적 시절이 아니던가 싶다.”

고일 선생의 재미있는 회고담이다. 진우촌은 1938년 극단 낭만좌(浪漫座)에서 전속 극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작품은 장막극  「바다의 남편」을 위시해서 광복 직후 발표한  「두뇌수술」,  「보검」,  「왕소군」,  「죄」 등의 장막극과  「신념」,  「파도」  등 단막극 10여 편이 있다. 연극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당시 인천에서 활발히 연극 활동을 한 선구자인데 정작 인천 사람들은 그를 잘 모르고 있다. 아직 그의 정확한 생몰년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딱한 우리 실정이다.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있는 것’에 대한 긍정, 인천다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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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말을 들으며 내가 살고 있는 인천이 가진 문화적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문득 생각해 본다. 인천은 전체 면적이 약 1,0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국내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하면서 약 300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또 국내 최초의 근대적 개항이 있었던 항구 도시이며, 경제자유구역과 세계 1위의 국제공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천은 외지 유입 인구가 87%에 이르고, 인천을 떠나고 싶다는 시민도 48%에 이르는 등 정주 의식이 희박한 곳이기도 하다. 또 제조업 중심의 공단 지대 조성으로 인해 각종 환경오염 문제가 제기되어 왔고 서울과 지역적으로 가까운 까닭에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미미하여 문화의 불모지, 문화의 변방 도시라는 평가를 오랫동안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주 의식이 약하다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인천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특색이자 인천의 고유한 문화적 가치가 될 수도 있다. 정주 의식이 희박하여 뜨내기들이 많다는 일종의 열등감이 오히려 인천의 인천다움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서울의 변방 도시로서 문화의 불모지로 인식된다는 것은 무엇에 근거한 것일까. 문화가 지역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삶의 총체적 모습을 의미한다면 문화의 불모지라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인천은 그 나름대로 독특하고 고유한 삶의 모습을 온전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 도시’에 대한 강박과 열등감은 인천의 ‘있는 것’에 대한 올바른 시선과 판단을 가로막는다. 송도 신도시와 인천국제공항이 동북아 허브 도시로서 인천이 갖는 지역적 상징성을 보여준다는 생각도 좀 더 비집고 들어가 보면 ‘인천다움’에 대한 근본적 성찰보다는 ‘문화 도시’로서 내세울 만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열등감이 자리한 까닭이 아닐까.

문학에 미적 범주라는 것이 있다. 어떤 작품에서 ‘있는 것’에 대해 긍정하며 그것에 만족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 우아미, ‘있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있어야 할 것’을 향해 나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 숭고미라 한다. 반면 ‘있는 것’에 대해 부정하며 ‘있어야 할 것’을 향해 노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 비장미라고 한다. 우리 인천의 발전은, 문학 작품의 감상에 빗대어 말하자면 비장미의 특성이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천의 ‘있는 것’들은 긍정의 대상이기보다는 버리고 숨기거나 고쳐 바꾸어야 할 부정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있어야 할 것’을 위해 애써 노력해 왔으나 우리가 정작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정적이었다. 서울과 비교하면서, 혹은 다른 광역시와 비교하면서도 인천은 늘 ‘다름’보다는 ‘모자람’과 ‘결핍’에 방점을 두고 이를 개선해 오려고 노력해 왔다. ‘다름’과 ‘부족함’이 함의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비장미가 결코 우아미나 숭고미가 될 수 없듯이, 인천이 갖는 문화적 가치에 대해서도 먼저 인천의 ‘있는 것’에 대한 긍정적 수용, 그리고 ‘다름’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논의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문화 도시’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이 화려하고 편리한 복지에 있다면 문화 도시로 가는 것은 어쩌면 시간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인천다움은 화려함과 편리함의 그늘에서 점차 사라질 지도 모른다. ‘문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있는 것’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얼마나 뒷받침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무엇’이 있어야 문화 도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엇’을 있게 하려는 노력에만 집중하다 보면 늘 본질적인 고민은 뒷전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왜 있어야 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천의 ‘인천다움’은 이러한 물음이 전제될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될 것이라 본다. 문화 도시를 향한 인천의 노력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결국 경제적 논리와 관련된 것이라면 이는 숭고미가 아니라 비장미가 될 것이다. 인천의 문화적 가치를 생각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우리 인천의 ‘있는 것’에 대한 긍정적 내면화이다. 요컨대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라는 당위적 필요성보다는 ‘무엇이 어떻게 있는지’에 대해 관심과 긍정적 이해가 더욱 필요하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오래도록 인천에 있어 오며 인천의 특성을 형성해 온 것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온전한 관심과 이해가 선행될 때 인천의 ‘인천다움’은 올바른 모습을 찾을 수 있으며 이것이 인천의 진정한 문화적 가치를 형성할 것이다.

이동구(광성고등학교 교사)




기획-FLY INCHEON, 이대로 괜찮을까? : 새로운 인천 브랜드 개발의 방향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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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5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부 상징 디자인 선포식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있었다. 1970년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나라문장이 약 46년 동안 대한민국의 공식 정부 상징물로 살아오다 새로운 얼굴에게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디자인의 호불호를 떠나 새로운 시대에 선진 대한민국의 국격에 걸맞고 해외로 뻗어가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새로운 정부 상징 디자인의 등장은 전공자가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관심 가는 일이며 기분 좋은 소식이다. 선포식 이후 미디어 매체에서 노출 빈도가 높아지고 다양한 응용 아이템에서 활용되고 있으므로 벌써 많은 국민들이 새로운 정부 상징 디자인을 인식하였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으며 많은 고민의 흔적들이 모여 있음을 잘 모를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직속기관으로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수립, 문제제기를 하고 2009년부터 위원회를 중심으로 디자인 전문회사, 전문위원, 자문위원 등의 구조를 갖추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자체 연구와 용역 발주, 개발 관리, 홍보, 자문단 수립 등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온 끝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는 두 개의 정권 하에서 약 8년여의 긴 시간동안 일관된 목적을 유지하고 내용을 살펴보며 책무를 수행한, 다소 느리지만 기본을 지킨 과정 덕분에 국가의 중요한 과제가 마무리되어 결실을 맺었음을 의미한다. 상징 디자인의 내용으로 보자면 매번 수장이 새로 임명되고 조직이 통합되는 변화가 생길 때마다 교체되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여 일관되고 효율적인 시각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웠던 기존 부, 처, 청의 정부상징디자인 체계를 명확성, 효율성, 경제성의 측면에서 태극이라는 하나의 핵심코드로 일원화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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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점에서 2016년 말 인구 300만을 바라보는 인천시가 국내 3대 도시를 표방하며 인천의 브랜드, 인천의 시각상징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금년 안에 새로운 상징디자인 도입을 목표로 과업을 진행 중이라 한다. 이 또한 디자인 전문가 이전에 인천의 한 시민으로서 관심 가는 일이며 기분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앞서 정부 상징 디자인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과정(Process)과 왜(Why), 무엇을(What), 어떻게(How)의 관점에서 인천 상징 디자인을 들여다본다면 다소 우려스러운 면이 보인다.

첫째, 과정(Process)에 대해서다. 시각 상징체계에 대해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 도입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집하고 내용을 공유함으로써 공감대를 수립하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해야 하는 과정의 건실함이 선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만 최종적으로 시각 아이덴티티(Visual Identity)의 완료와 함께 인식의 통일(Mind Identity)이 확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천시와 관계 부처에서는 다양한 의견 수립과 공감대 형성을 위해 전문가 참여단 이외에 시민 참여단의 구성을 추진 중이지만 소수 시민의 의견만으로 단기간에 수립한다면 자칫 놓칠 수 있는 의견과 내용이 있을 수 있다. 적어도 인천시는 각 구와 군 그리고 동의 행정조직을 활용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방대하지만 직접적인 시민소통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한편 분석과 동시에 공개해야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인천 시민들은 나의 생각, 우리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함께 하였음을 느낄 것이다.

두 번째, 왜(Why)에 대한 문제다. 단지 시장이 교체되었다고 해서, 상표 갱신 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이유만으로는 타당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적시에 적합한 상징 디자인의 연구와 결실은 필요하지만 시각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기존의 상징과 체계는 의미가 무엇이며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적인 새로운 형태, 디자인, 색, 상징의미 찾기가 되어서는 곤란하며 기존 것에서 계승, 발전시켜야하는 것은 없는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한 세기 동안 대표적인 메가브랜드(Mega Brand)로 자리 잡고 있는 코카콜라는 그들의 상징 이미지를 환경에 따라 미세하게 다루고 다듬어오면서, 브랜드 자산(Brand Equity)이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했고 그에 따라 브랜드 가치(Brand Value) 평가에서 최고의 브랜드로서 인정받고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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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는 무엇을(What)과 어떻게(How)에 대한 물음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1개 특별시, 6개 광역시, 1개 특별자치시, 8개 도, 1개 특별자치도로 나뉘어 있고 각자 C.I, B.I, 비전슬로건, 도시브랜드 등의 명칭아래 상징이미지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인천의 심벌마크(C.I), 브랜드마크(도시브랜드(B.I))에 대해 무엇이 다르고, 가치는 무엇이며, 둘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되는지 물어본다면 더욱 막연해진다. 아마도 대다수 인천시민들도 막연함을 느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인천관광공사는 관광 목적지로서 인천의 가치를 고양시킨다는 목적으로 인천관광 브랜드를 개발한다고 하니 산 넘어 산이라는 느낌이다. 단순해야 기억이 용이한 것은 브랜딩 전략의 핵심이며 다양성은 일원성의 강력함을 이기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인천시 심벌마크와 ‘Fly Incheon’이라는 도시 브랜드 그리고 인천시관광브랜드를 브랜딩이라는 큰 그릇에 함께 다루어 다시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도시의 대표상징물을 통합브랜드 측면에서 심벌마크형 또는 도시브랜드형 하나로 통합하여 제작할지 아니면 개별독립브랜드 측면에서 현행과 같이 심벌마크와 도시브랜드를 동시에 유지하되 보다 쉽고 단순한 활용규정을 확립하여 혼란을 줄이는 길을 선택할지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 또한 필요에 따라 브랜드의 구조체계를 지역별, 테마별로 하위개념으로 확립하되 기존 구, 군, 동 등 지역 상징 이미지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려하여 브랜드 층위(Brand Hierarchy)를 명확히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마케팅적인 측면만 생각하더라도 성공적인 브랜딩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로 하여금 해당 브랜드에 대해 일관성 있는 이미지를 연상하도록 하는 IMC(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전략이 필수다.

21세기의 시계는 빠르다. 이번 기회를 자칫 잘못 활용한다면 인천의 상징 이미지는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조직체의 이미지에 대한 통일화 또는 동일화 계획’이라는 단순한 정의를 잊지 말아야 한다.

조영민(인하대학교 교수)




기획-FLY INCHEON, 이대로 괜찮을까? : 인천, 도시 리브랜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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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가 도시 ‘리브랜딩(Rebranding)’에 나섰다. 인천시는 지난 10년 동안 사용한 도시 브랜드 ‘플라이 인천(Fly Incheon)’과 심벌마크, 상징물(나무·꽃·새) 등을 바꾸기로 하고 연구용역 등 교체작업이 한창이다. ‘플라이 인천’이란 인천 도시 브랜드(BI·Brand Identity)가 잘 쓰이지 않고 시민 인지도도 낮다는 게 교체 이유다. 인천시뿐 아니라 인천 10개 군·구도 각각 BI, 심벌마크, 상징물 등을 갖고 있지만 그 활용도는 매우 낮은 상황이다. 인천시의 새로운 도시 브랜드는 올해 9월께 발표될 예정이다.

인천시는 인천시민과 수도권 거주자, 외국인 등이 생각하는 인천의 이미지를 조사하기 위한 다섯 차례의 설문을 거쳐 2006년 현재의 BI인 ‘플라이 인천’을 개발했다. 인천시 홈페이지에 게재된 BI에 대한 설명을 보면, ‘역동적인 물결의 형태와 인천의 시조인 두루미의 날갯짓을 모티브로 영문 ‘Fly’를 하트 형상으로 표현’했다. ‘F’자(파란색)는 ‘하늘과 바다를 상징하는 색상으로 첨단 미래와 신뢰를 의미’한다고 했고, ‘L’자(초록색)는 ‘땅을 상징하는 색상으로 안정 속 도약’을, ‘Y’자(빨간색)는 ‘사람과 젊음을 상징하는 색상으로 정열과 에너지’를 각각 뜻한다고 한다. ‘FLY’는 ‘Future(미래)’, ‘Leap(도약)’, ‘Young(젊음)’ 등의 약자이기도 하다는 설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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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는 인천의 도시 이미지를 가장 명쾌하게 표현하는 기호여야 한다. 그러나 인천의 BI에 대한 설명조차 추상적인 단어가 남발되고 있는데, 이를 응축한 기호인 ‘플라이 인천’이 시민에게 와 닿을 리는 없다. 무엇보다도 인천의 지역적 특성이 보이지 않는다. 기반 시설인 인천국제공항 외에 인천이라는 도시를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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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발전연구원이 지난해 디자인 전공 교수, 도시경관 담당 공무원, 시민단체 회원 등 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플라이 인천’은 낙제점을 받았다. 각 항목당 100점 만점에 심미성 30.6점, 호감도 28.9점, 국제성 47.5점, 독창성 24.5점, 지역성 45.7점, 전달력 47.5점, 유용성 18.9점 등 평균 34.8점을 얻는 데 그쳤다. 인천의 ‘ㅇ’과 ‘川'(내 천), 파도를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인천시 심벌마크(1996년 개발)도 인발연의 같은 조사에서 평균 43.6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인천 10개 군·구의 도시 브랜드 역시 ‘무색무취’라는 평가가 많다. 중구, 남구, 서구, 강화군, 옹진군 등 5개 군·구는 별도의 BI 없이 심벌마크와 마스코트(캐릭터)로 브랜드를 구축했다. 각 군·구 심벌마크는 주로 지자체 상징물(나무·꽃·새)을 추상화해 표현한 가운데 남구와 강화군은 지역 정체성과 역사성을 심벌마크에 녹여내 눈길을 끈다. 남구는 문학산과 수봉산 이미지를 활용한 백제 왕관을, 강화군은 마니산 참성단 성화와 임진강·예성강·한강 물줄기를 형상화한 심벌마크를 각각 사용하고 있다.

BI를 보유한 군·구의 경우 ‘Better life'(연수구), ‘Power'(남동구), ‘HAPPY GREEN'(계양구) 등의 간략한 영문 슬로건을 부여했지만,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계양구만 맨 앞글자인 ‘H’자가 경인아라뱃길 다리와 계양산의 사계절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차라리 한글 슬로건을 BI에 포함한 동구(역사의 숨결, 문화도시 인천)와 부평구(참여 + 나눔 더불어 사는 따뜻한)가 이해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sub02_05 인천시와 9개 군·구가 지정한 도시 상징물(나무·꽃·새)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도 필요해 보인다. 인천시는 1982년 시목(市木)으로 목백합, 시화(市花)로 장미, 시조(市鳥)로 두루미를 지정했다. 남구를 제외한 나머지 군·구도 각각 상징물로서 나무·꽃·새를 지정했는데, 활용도면에선 사실상 방치된 거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지자체가 상징물로 나무·꽃·새를 지정한 것은 1978년부터다. 당시 내무부(현 행정자치부)가 지자체에 상징물을 지정, 보호할 것을 고시했기 때문이다. 도시 브랜딩을 위한 상징물이라기보다는 해당 지역에 서식하는 나무·꽃·새를 보호하고 가꾸려는 의미가 더 컸다고 한다. 지자체의 나무·꽃·새 상징물 지정이 일본의 제도를 모방했다는 견해를 밝힌 논문도 있다. 일본 지자체들은 우리나라보다 앞선 1960년대 중후반부터 나무·꽃·새를 상징물로 지정해왔다.

기업경영전략에서 파생한 ‘도시 브랜딩’의 첫 번째 목표는 ‘도시 마케팅’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 뉴욕의 ‘I ♥ NY'(아이 러브 뉴욕)이다. 우리 지역에서 ‘I ♥ NY’이란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은 간혹 볼 수 있어도 ‘플라이 인천’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이유는 ‘촌스럽고 창피해서’ 정도일 것이다.

인천시와 군·구 도시 브랜드 현황 분석이라는 주제와 다소 동떨어져 있는 얘기지만, 최근 온라인에서 인천을 가장 많이 수식하는 단어는 현재 도시 브랜드인 ‘플라이 인천’은 아니다. 온라인에서 인천을 가장 많이 빗대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계(魔界·악마의 세계) 인천’이다. 미디어에 비친 강력 사건 등 인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축적된 결과인데, 인천시민으로서는 모욕적인 도시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인발연 연구에 따르면, 1976년 개발된 뉴욕의 ‘I ♥ NY’은 그 문구나 디자인 자체로도 성공적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뉴욕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매김한 것은 1970년대 뉴욕의 심각한 도시문제를 해결하려는 행정적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인천을 대표하는 참신하고 명쾌한 새 도시 브랜드 개발은 물론 새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줄 행정적 노력이 뒤따르는 전략적인 도시 ‘리브랜딩’이 중요한 시점이다. 서울시민들이 서울시 새 도시 브랜드인 ‘ ‘I.SEOUL.U'(아이 서울 유)를 온라인상에서 ‘나는 너의 전셋값을 올리겠어’, ‘나는 너를 지하철 지옥에 가두겠어’ 등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경호(경인일보 기자)




동네방네알림판 2016.5.3~5.16

인천에서 벌어지는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각종 행사들의 소식을 한번에 전해드립니다. 매월 1주, 3주 화요일마다 발송되는 인천문화통신을 활용해 소식을 전하세요. 다음 문화통신은 각각 5.17(화), 6.7(화)에 발행됩니다.
알리고 싶은 행사 내용을 http://me2.do/xRtWJVeH 링크에서 입력하시면, 기간에 맞춰 실어드립니다.
#인천문화예술 #동네방네 #알림판 #소식

main_01문화도시 인천을 위한 청년들의 제안(5.27.금 14:00, 인천아트플랫폼 C동)
문화도시 인천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재단에서 마련한 2016년 상반기 문화정책토론회 ‘문화도시 인천을 위한 청년들의 제안’은 영상, 음악, 전통 분야의 활동가와 문화기획자, 행정가, 기자, 대학생 등 다양한 층위의 청년들이 내놓는 8가지 제안이 발표됩니다. 새로운 인천을 직접 만들어나가고 향유해 갈 청년들이 상상하는 문화도시 인천을 그리는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문의는 재단 정책연구팀, 032-455-7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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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_02청년, 인천을 말하다(5.23 월 14:00 인천YWCA 대강당)
인천의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청년들과 함께 이루고자 마련한 인천청년문화정책포럼의 두 번째 시간, ‘청년, 인천을 말하다’가 진행됩니다. 지자체 중심의 청년 지원 사례 분석(정윤희), 인천시 청년정책의 현주소(홍정화), 내가 자란 곳에서 살아가기(김토일) 각기 다른 주제로 3분이 발제를 맡았습니다. 문의는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교육문화분과, 032-433-2122
☞ 신청하기

 

 

main_03인천 재즈클럽 버텀라인 33주년 기념 페스티벌!(5.17~6.18)
1983년 탄생한 인천 재즈클럽 <버텀라인>이 올해 33주년을 맞이해 33일 동안 <33페스티벌>을 엽니다. 재즈칼럼리스트 황덕호와 함께 하는 재즈토크 음감회(5.21, 6.4), 매주 화요일 열리는 ‘재즈를 넘나드는 음감회’에서는 1985년 다희다방에서 DJ를 했던 허정선 대표가 직접 DJ로 나서 ‘메리지블루’와 ‘Fake Jazz 재즈를 착취한 노래’ 등의 주제로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 33주년 기념 스페셜 공연, 동인천 음악감상실 <심지>를 재현하는 ‘심지 리로리드’ 등 지역 예술가들의 특별 기획은 물론 세계 맥주를 한자리에서 맛보는 ‘동인천 맥주 대작전’, 예술가들을 위한 블라인드 데이트 ‘어둠 속의 데이트’, 버텀라인과 같은 오래된 건축물을 탐방하는 ‘건축 투어’ 등의 이벤트로 33일이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기회에 특별하고 오래된 재즈클럽 버텀라인에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요?
☞ 자세한 내용은 버텀라인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clubbottomline 에서 확인

 

main_045월 IAP 특강(5.26 목 17:00,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
매월 열리는 예술가의 자기 경영을 위한 IAP 특강, 2번째 시간입니다. 이번 강연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디자이너로 활동하고 계시는 최유진 디자인 주무관의 ‘미술관 전시디자인의 이해’입니다. 다양한 국.공.사립 뮤지엄에서의 기획은 물론, 다수의 상업영화 등에서도 활동한 바 있는 최유진 주무관의 노하우를 함께 들어보는 좋은 기회, 놓치지 마세요!
☞ 신청하러 가기

 

 

main_05VALOR 플리마켓(5.28 12:00, 카페 발로)
영화 뷰티인사이드 촬영지로 유명한 부평의 발로(VALOR)를 아시나요? 영화,CF,뮤비,패션화보,드라마 등의 촬영이 매일매일 이뤄지고 있는 카페 발로에서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판매 수익금의 10%를 소외 계층에 기부하는 아름다운 플리마켓을 처음으로 연다고 합니다. 예쁜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는 기회!
☞ 자세한 사항은 카페발로 홈페이지(cafevalor.modoo.at)와 인스타그램(@cafe_valor)을 참조해주세요.

 

 

main_06인천개항장문화지구 休(휴)요일 음악회
매주 일요일, 자유공원 숲 속(2시, 3시)과 인천아트플랫폼(4시, 5시)에서 살랑살랑 바람과 함께 휴식같은 음악을 즐겨보세요. 5.22(일)에는 2시 빌리지 브라더스, 3시 씨없는수박 김대중의 공연이 자유공원에서, 4시 모리쉬와 5시 악퉁의 공연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립니다. 휴일 음악회는 7월 10일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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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인연, 사람 냄새 가득한 사진집단 人

 

인천 서구 원당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진동아리 사진집단 人이 있다. 2005년부터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어느새 10년이라는 기록과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2016년 5월, 비 내리는 화요일, 사진집단 人의 아지트인 Long Black에서 4대 회장인 최우경(아톰) 씨, 총무 정은경(엘라) 씨과 사진집단 人의 회원인 이영희(가이아) 씨, 임봉(블루보리) 씨, 김지숙(미셰린) 씨, 이선혜(소니아) 씨, 이선희(가을이) 씨와 함께 그들의 10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sub09_01 Q. 사진집단 人 동아리는 어떻게 생기게 됐나요?
A. 2005년 원당중학교 개교기념으로 학부형과 민간인 대상으로 진행된 평생학습프로그램의 사진반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3개월간 무료로 진행되던 사진반이 폐강되면서 이에 대한 아쉬움으로 당시 사진반을 수강하던 30명 중 5명이 한 뜻이 되어 사진집단 人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때 1기 멤버가 현재 회장인 최우경(아톰) 씨와 이영희(가이아) 씨이다.

Q. 사진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모두 다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최우경(아톰) 씨는 사진집단 人의 같은 회원인 오숙경(처음처럼) 씨의 권유와 함께 평소에 배우기 어려운 사진을 무료로 배울 수 있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이영희(가이아) 씨는 남편의 권유로, 임봉(블루보리) 씨는 수많은 취미를 배웠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았는데 사진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합동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시작했다. 김지숙(미셰린) 씨는 처음에 아이들을 잘 찍고 싶어서 시작했고… 처음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유로 사진을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엄마가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취미로서 사진을 즐기고 있다.

Q. 각자 추구하는 사진 스타일이 다를 것 같은데, 본인이 좋아하는 사진스타일이 있나요?
A. 딱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다양한 시선에서 볼 수 있는 열린 해석을 할 수 있는 사진을 좋아한다. 처음 사진을 본 사람들이 사진집단 人의 사진을 어렵다고 얘기할 때도 있을 정도다. 길에 핀 들꽃이나 하늘처럼 일상 생활의 사소한 부분을 담아내기도 하고, 인물 사진을 즐겨 찍으면서도 사물의 디테일함을 잡아내는 작업도 좋아한다. 개인마다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지만, 사진집단 人은 전반적으로 관람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가 담긴 사진을 주로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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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진집단 人의 모토로 재능기부를 통한 사회적 환원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A. 대표적으로 3개가 있다. 첫 번째는 장수사진 프로젝트로 서구청의 평생학습동아리 우수프로젝트에 1등으로 당선되어 2009년부터 3년간 진행했다. 독거노인 혹은 생활이 어려운 노인 분들을 대상으로 장수하시라는 의미로 사진을 찍어드리는 활동이었다. 두 번째는 다문화가정프로젝트로 다문화 가정의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액자를 만들어 선물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2012년부터 시작, 4년 동안 총 130가정에게 사진을 선물했다. 세 번째 프로젝트는 원당 프로젝트로 인천의 과거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이다. 약 2~3년 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로 사진집단 人 모두가 인천 곳곳의 같은 자리에서 매달 1번씩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어 변화의 기록을 남겼다. 변화를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지만, 그 이후 개발이 더뎌지면서 자연스럽게 잠정적으로 중단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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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까지 8번의 사진전을 진행했는데, 사진전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A. 전시회는 보통 10월~11월 중에 열리고 8월쯤부터 주제를 정하기 시작한다. 1인당 총 5점의 사진을 출품하고, 전체 스토리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한 해당 약 90점 이상의 작품이 전시된다. 2015년에 진행된 전시회는 상상바라보기라는 이름으로 기획되었으며, 말 그대로 사진을 보며 대중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열린 해석을 하며 소통하고자 했다. 실제로 사진집단 人의 회원들이 순번을 정해서 전시회를 지키는 것도 소통하기 위한 일환이다. 처음에는 낯설어하거나 사진을 어려워하는 관람객이 우리의 설명을 듣고 작품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전시회를 관람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은 우리의 사진전을 기다리는 매니아층도 생겼다.

Q. 매해 전시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어떤가요?
A. 전시회를 준비할 때마다 장소 섭외가 가장 어렵고 힘들다. 순수 아마추어 동아리인 우리 입장에서 전문 갤러리는 재정적으로 너무 부담스럽다. 다행히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계양역 같은 역사 내에서 전시회를 진행해 왔지만, 대관을 꺼려하는 경우도 있어서 항상 장소 섭외는 우리에게 큰 과제이다. 대관하게 되더라도 2주라는 기간은 작품을 보여주기에 너무 짧다. 19명의 회원이 1인당 5점의 작품을 출품하니, 최소 90여 점 이상의 작품이 전시되는 셈이다. 오랜 시간 공들여서 90여 점 이상을 전시하는데 2주는 너무나도 짧고 아쉽다.

Q. 재단의 지원을 받으면 도움이 되나요?
A. 매해 전시회를 준비할 때 개인 부담금이 적지 않게 소요되고, 전시회뿐만 아니라 대관비와 출사 혹은 장비 등 지출할 부분이 꽤 많다. 적은 비용이지만, 도록 발간 지원금은 사진집단 人의 전시회 준비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우리와 같은 아마추어 문화예술동아리에게 지원해주는 인천문화재단은 항상 고마운 존재다. 앞으로도 우리와 같은 많은 아마추어 문화예술동아리에 적극적이고 다양한 지원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Q. 10년 동안 사진집단 人가 잘 유지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가장 큰 원동력은 끈끈한 결속력과 유대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진집단 人을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사진집단 人에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이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하는데, 그래도 우리를 더욱 하나로 뭉치게 해준다. 평일에 활동할 수 있는 정규반과 직장인을 위한 직장반도 같이 운영하고 있다. 사진집단 人의 일원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다. 또한, 모든 회원은 전시회에 꼭 참여하도록 하는 데 이를 통해 소속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서로서로 이끌어가는 것이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Q. 여러분들에게 사진과 사진집단 人은 어떠한 의미인가요?
A. 사진은 우리에게 있어 인생의 활력소이자, 나를 위한 유일한 시간이면서, 잊고 있던 나의 감성과 정서를 찾을 수 있는 소중한 도구다. 주부가 아닌 온전히 나만을 위한 나를 찾을 수 있도록 위로가 되어준다. 혼자 사진을 취미로 영유할 때는 자칫 게을러지거나 나태해질 수 있는데, 사진집단 人이라는 동아리 일원으로서 소속감과 의무감을 가지게 해 나를 잊지 않게 해준다. 그렇기에 사진집단 人은 아름다운 구속이며, 사람 냄새나는 모임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사진집단 人이 지금까지 보내온 10년의 세월처럼 변함없이 지속하며 이 관계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첫 번째 전시회에서 최근 여덟 번째 전시회까지의 사진을 살펴보면 우리의 발전을 볼 수 있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혼자일 때 불가능했던 것들이 사진집단 人인 이라는 우리가 되어 가능했다.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그리고 사진에 관심 있으시다면 주저하지 않고 우리 사진집단 人에 손을 내밀어 주셨으면 좋겠다. 젊은 분들도 환영이다.

각자의 카메라를 소중하게 들고 모인 사진집단 人에게 사진은 단순한 취미 그 이상이다. 처음에 그저 가족들을 잘 찍어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의 그녀들에게 사진은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 되었다. 몇 시간 동안 길게 이어지는 인터뷰에도 지치지 않고 사진과 사진집단 人을 이야기하는 그녀들의 눈빛은 젊은 날 소녀의 눈빛처럼 생기 있고 밝게 빛났다. 앞으로도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사진집단 人의 앞날을 응원한다.

 

취재 및 정리 : 시민기자 오지현




반갑습니다! IAP 7기 입주작가 소개 – 김유정

 

숨과 숲 사이에서, 김유정
김유정은 서양 중세부터 벽화 기법으로 사용되던 전통적인 프레스코화 기법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그녀는 캔버스에 흑석을 도포한 후 석회(회벽)가 마르기 전 스크래치(긁기)하는 기법을 반복하며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이러한 일련의 전통적 작업과정들을 통해 전통과 동시대 미술을 연계한 길항 관계를 모색해 나간다. 그리고 회벽을 긁어 화면에 생채기를 내는 기법은 ‘우리 삶의 상처 치유를 갈망하는 현대인과 그들의 삶을 표현하는 기법적 은유’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작품제작 방식에 있어 미세한 요철들의 스크래치 기법은 치유를 갈망하는 상처받은 현대인들의 삶을 표현하는 기법적 은유이자 현대인들의 삶 그 자체이다. 또한 작품 프레임 안에 재단된 ‘인공화된 자연’ 혹은 ‘도시화된 자연’의 풍경은 인간중심주의, 인간의 욕망, 문명의 이기심, 도시주의에 속해버린 자연관, 화분과 같이 인간의 소모품이 되어버린 생명 등을 상징한다. 이는 획일화된 일상이 강요되는 현대인들의 씁쓸함을 그들이 가두어 놓은 관상식물을 통해 반증하려는 것이며, 공산품처럼 규격화된 우리들의 삶과 고민을 자연적인 물질로 승화시키고자 함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상실된 내면을 시각적으로 정화시키는 치유의 정원을 선사하고 있다.

sub10_02Q. ‘프레스코화’ 기법을 고수하며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는데 의도가 있는가?
회벽에 행해지는 대상의 재현, 그 이면에 은폐된 미세한 요철의 생성들은 ‘긁기의 스크래치적(외상적)’ 행위과정을 통해 심리적인 치유를 대변하는 기법적 은유이자 삶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원래의 대상이 가진 의미가 사회적 목적으로 바뀌어 버린 현실을 나의 시선에 의한 관념적 정원 속에서 관람자의 감각이 동화된 반려의 장을 프레스코회화, 사진 등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Q. 새로운 제작 방법을 사용하는 예술가들이 많다.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며 어려움은 없는가?
동시대 작가로서 전통적인 방식을 수용하는 입장에서 시대와 사회, 문화의 상관관계 속에서 예술이 발전해 왔고 그 모태에 대한 인식과 수용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동시대 회화에 대한 진정성있는 고민과 작업의 키워드에 부합하는 매체로써 중요하게 부각되고 보여지기를 바란다.

Q. 전시제목이 ‘조각난 숲’인데 제목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전시 제목 <조각난 숲(Carved Grove)>은 지금까지 익숙하게만 생각했던 식물들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식물, 정원이나 식물원과 같이 자연이라고 생각되는 인공적인 환경과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의미와 함께, 내가 오랫동안 지속해온 ‘긁기(조각하기)’라는 행위들에 대해 다시금 고찰해본다는 의미를 담았다.

sub10_01 Q.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면?
이번 전시에서 매체와 방식을 확장하였다. 그간 집중해 온 2차원 캔버스 작업인 프레스코회화의 근작과 신작이 다수 포함되는 반면, 설치 작품 ‘숨(Breath)’과 ‘숲(Grove)’, 식물 미로를 담은 사진 작품, 철사 와이어로 식물의 형상을 만들고 이를 촬영한 사진 작품 등을 전시했다.

 Q.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띈다. 설치 작품 ‘숨(Breath)’과 ‘숲(Grove)’ 작품에 대해 설명해 달라.
[숨(Breath)]은 인공적인 자연에서 빛을 투과하여 보여지는 농담의 깊이를 감상케 한 작품으로 생존을 위해 숨가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역설적으로는 인위적인 자연의 공간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상황의 재현으로 거짓이 만들어낸 시스템 안에서 때때로 쉼조차도 강요당할 수 있음을 뜻하는 이중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은 도시에 사는 인간에게 익숙한 인테리어 식물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물음을 제시하는 설치 작품이다. 회벽을 바른 조형물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조명으로 강조된 공간을 가득 메운 ‘스투키’ 를 대면하게 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공기정화 식물이라는 긍적적 느낌과는 달리 뾰족한, 폭력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자신을 집안에 가둔 이기적인 인간을 향한 식물의 복수심과 폭력성으로 그로데스크한 장면을 연출하듯 말이다.

Q.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 계획은?
인천아트플랫폼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주체들의 연결고리를 찾아 나의 방식, 혹은 그의 방식이 어울리는 개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 또한 내 작업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인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레스코 워크샵을 해보고 싶다. 감상과 체험하는 미술로서 문화적인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예술문화의 협력을 지원하는 자로, 혹은 제반 주체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자로 상호보완적인 긍정적 성과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Q. 앞으로의 작업 계획은?
회화에서 시작된 내 작업은 ‘환영과 형식적인 조건’, ‘비재현적인 방식과 재료’ 에 대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제도권 속에서 미술로 수용된 회화라는 양식의 범주를 벗어난 비회화적인 재료와 비재현적인 방법을 통해서 새로운 조형과 가치 인식이 가능한지를 실험해 왔으며 그런 맥락 속의 대안적인 미술과 미술품을 제안하고 제작해왔다. 소비되는 미술의 한계를 벗어나고 기술과 자본의 영향 밖에서 새롭게 가능한 미술이 무엇이 될지 사회와 역사, 그리고 문화라는 컨텍스트(Context) 위에서 계속해서 실험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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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큐레이션 2016.5.3~5.16

툭하면 대립하던 이웃 섬 주민들 함께 특산품 팔며 형•동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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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덕적도. 이곳을 거쳐야만 갈 수 있는 문갑도와 굴업도, 울도 등을 방문하는 여행객이 늘면서 ‘나그네 섬’이라고 불렸다. 덕적도 진리 선착장에서 열리는 섬 특산물 주말장터를 기호일보가 취재했다. 선착장 한쪽의 주차장 부지를 장터로 꾸며 여행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섬을 둘러싼 개발과 보존 논리에 반목했던 덕적도와 소야도 주민들이 함께 장을 운영해 더욱 의미가 있다. 수입이 생겨서 좋고, 형님아우 소리로 피어나는 웃음꽃은 더 좋다.

페이스북의 수상한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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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밥을 샀다면 내게 바라는 게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공짜로 문자와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친절하게 1년 전에 올렸던 사진을 보여주는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포털은 무료 서비스를 이용할 때 우리가 누르는 ‘동의’ 버튼 속에 숨겨져 있는 정보를 빅데이터로 수집한다. 분류, 가공해서 기업이나 정부에 팔아먹는다. 이메일, 전화를 도청해 대중 통제의 기초의 삼는다. ‘공짜 점심’은 없다. 공짜가 수상한 이유다.

모바일폰, 페이스북, 카카오톡의 일상이 거의 중독 수준이다.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순간에 집중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현대인은 잠깐 사이에도 뭔가 빠뜨리지 않았는지 불안해하고, 어디선가 자신이 모르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 참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동아일보 행복원정대가 초등 고학년들의 행복찾기에 나섰다. 초등생들은 페친이 많으면 잘나가는 애라고 생각한다. ‘좋아요’와 친구 숫자를 비교하며 우쭐해하거나 왕따가 아닌지 걱정한다. 학교에서 ‘짱’ 노릇을 하려면 페북이나 카스 추종자 숫자가 어느 정도 나와 줘야 한다. 좋아요와 팔로어 숫자가 자존감을 측정하는 기준이 됐다. 모든 게 너무 빠른 사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독자들의 삶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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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커피숍이 만나고 서점과 잡화점이 하나된다. 스타벅스는 이제 맥주와 와인을 판다. 종이책의 종말이 논의되는 세상에서 세계적인 온라인 서점 아마존은 시애틀에 오프라인 서점을 열었다. 고객평점 4점 이상(5점 만점)인 책들만 노출되는데 데이터를 토대로 ‘사람’이 최종적으로 진열할 책을 고른다. 통섭의 시대, 창조적 사유의 시대. 이제 우리는 반복해서 자신을 재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으리라는 기대가 틀릴 수 있고, 지금까지 배운 교육이 쓸모없을 수 있다. 새로운 기술과 습관을 바탕으로 자칫하면 훅 가는 현실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판사•보호소년 함께 걸은 ‘티격태격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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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지난 2일부터 ‘걷기 마일리지’를 시행하고 있다. 시민들의 걷기 실천율을 늘려 비만을 예방하고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다. 모바일 앱에 카운트된 걸음수로 지하철 이용권이나 항공권을 받을 수 있고, 기부하면 소외계층이나 취약계층을 지원할 수도 있다. 건강보다 정신을 더 염두에 둔 걸음도 있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4년 동안 실크로드를 걸었다. 30년간 기자로 활동한 그는 은퇴 이후 사회적 소수자가 된 자신의 삶을 걷기를 통해 재활했다. 그는 “걷는 동안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존재 이유가 있음을 알았다”고 했다. 그가 설립한 쇠이유(Seuil, 문턱)는 비행청소년에게 도보여행을 통해 재활의 기회를 주는 단체. 비슷한 프로그램이 한국에도 있다. 부산가정법원 정영태 판사와 경범죄를 저질러 보호처분을 받은 16세 강 군이 8박 9일 동안 함께 걸었다. 올레길과 해변을 걸으면서 강 군은 좋아하는 축구와 여자친구 이야기를 했다.


이재은(뉴스 큐레이터)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운동, 인천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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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05_02지난 4월 29일(금) 경동 <싸리재>에서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있었다. 서울시에서 서울역 고가도로 녹지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벤치마킹 사례로 삼았던 것이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사례이기도 하고, 근래 이 신포동 일대에 슬그머니 대두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연결하여 강연을 진행한다고 하니 호기심이 절로 동했다. 심지어 강연 장소도 한옥을 리모델링해 다양한 문화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싸리재’였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 현장에 인천문화통신 3.0 생생 지상중계가 출동했다. 강연은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공부하고 현재 경희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박진빈 교수가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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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1840년대 화물 운송용 철로를 이용하여 녹지로 만든 공원이다. 이 철로는 뉴욕 남서 구역의 공장들과 선착장을 연결하는 노선이었다. 당시는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로, 하이라인으로 통해 다니는 기차와의 잦은 사고로 인해 죽음의 길(Death Avenues)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시대가 변하고 1950년 이후 고속도로 건설과 대형 화물트럭의 등장으로 철도 이용이 감소하여 결국은 하이라인 노선은 폐쇄되었다. 그 폐쇄되어 버려진 철로 위에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식물과 조류 등이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러면서 하이라인은 철거와 보존을 둘러싸고 논쟁의 중심에 놓이게 되다 지역 주민과 문화예술 활동가, 환경운동가, 시민운동가 등 다양한 후원자들에 힘입어 공원 개발 방향으로 급물살을 타게 된다. 공원은 2005년 공사를 시작해서 2009년부터 단계별로 개방되었고, 지금은 한해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뉴욕의 명소가 되었다.

하이라인 파크가 생기고 동네는 변했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늙어버린 건물들과 그 사이사이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도축장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재생되었다. 하이라인 파크가 만들어낸 녹지와 그 길을 따라 들어선 유명 건축가들의 건물들은 사람들을 불러들였고 동네는 활기를 찾았다. 공원 주변에서는 연중 300일 동안 공연 등 행사가 이루어지고 인근은 건축 붐이 일었다. 그러면서 2002년 맨하탄 전체 평균보다 8% 낮았던 부동산 가격이 2011년까지 103% 상승하였고, 현재는 뉴욕시에서 최고 수준이다. 이 상황은 건물주들에게는 반길 만한 상황이었지만 세입자들은 달랐다. 둥지를 튼 지 50년 또는 100년 된 소규모 자동차 수리점들과 음식점들은 오히려 매상이 줄어들었고, 설상가상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야 했다.

sub05_04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젠트리화 되다’, ‘귀족화 되다’라는 의미로 영국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한다. 공장지대로 슬럼화 되었던 곳이 노동자 계급이 밀려나고 중산층 그리고 그 이상사람들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하이라인을 보존하고 공원으로 만들자고 한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이런 젠트리피케이션을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비단 하이라인 파크 개발 사업만이 아니라도 개발과 발전 그리고 보존과 활용이 동네가 변화하고 활성화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의도치 않은 약자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물론 뉴욕의 임대차보호법은 우리보다 잘 제도화 되어 있는 편이라지만 그들이 얼마나 그들의 집에서 버티고 투쟁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강연을 기획하고 준비한 인천대학교 박진한 교수는 이 하이라인 파크 사례를 통해 인천의 현재 상황을 재고해 보고자 했다고 그 기획 의도를 밝혔다. 얼마 전부터 회자되고 있는 경인고속도로 녹지화 사업과 지금 비어 있는 부평 미군기지 부지 활용, 신포동 일대와 부두를 포함하고 있는 개항창조도시재생사업 등 인천은 한참 변화 중이고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의도치 않았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 경관과 주민들의 생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행정 차원의 법적, 제도적 지원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강연은 인천대가 인문도시지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중 [근대유산을 찾아 떠나는 도보여행-근대유산의 활용과 지역 활성화[ 꼭지로 구성된 강연 중 하나였다. 개발, 발전, 보존, 활용, 여러 가지 말로 표현되는 지역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을 거라 짐작해본다.

정리 : 정책연구팀 강혜림




무대미술가 원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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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전(元雨田(1903~1970)은 인천 연극계의 할아버지라 불러도 크게 어긋남이 없다. 비단 인천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연극사(演劇史)에도 큰 획을 긋는 인물이다. 지난날 몇 년간 인천 땅에서 활동했던 탓에 그냥 인천에서는 몇 줄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 그를 이르는 사람이 없다. 무대미술가였으니까 감독이나 배우처럼 전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배경화(背景畵) 정도에 머물러 있던 당시 연극 무대 장치의 수준을 사실적, 입체적으로 끌어올렸다”는 이 선구적 예술가에 대해 모두가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다.

원우전은 원 인천 사람은 아니다. 1923년 창설된 서울의 극단 토월회(土月會)에서 무대미술가로 활동하던 사람이다. 그러던 원우전이 인천에서 활동하게 된 것은 토월회의 해산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토월회는 멤버의 정비, 분열, 해체, 재발족 등등의 곡절 끝에 1926년 2월 24일 제56회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산하는데, 그때 인천 태생으로 같은 토월회 멤버였던 유명 배우 정암(鄭岩)이 인천으로 돌아오면서 함께 인천행을 택한 듯이 보인다.

정암과 원우전은 인천에 오자마자 극작가 진우촌 등과 더불어 인천 최초의 연극단체 칠면구락부(七面俱樂部)를 창설한다. 칠면구락부의 창설 연도가 1926년으로 인천시사(仁川市史)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그 같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원우전은 인천에서 연극 활동을 하며 특히 어린이들을 좋아해서 소년소녀들의 아동극 지도나 무용 교습 외에도 제자를 두어 연기지도도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중구 경동 ‘싸리재 일대 간판이 근대식으로 진화했다’는 고일(高逸) 선생의 증언인데, 그가 무대미술 솜씨를 상점 간판 제작에도 십분 발휘했던 모양이다.

정황으로 보아 그는 3~4년 가까이 인천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서울로 간 듯하다. 1930년대 초부터 서울에서의 그의 동태가 신문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연극 무대미술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선구자이면서 초창기 인천 연극의 개척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