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을’로 살아남기- 연극 ‘머리를 내어놓아라’

지난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신포동에 위치한 다락 소극장에서 극단 작은방의 <머리를 내어놓아라>(신재훈 작, 연출)가 상연되었다. <머리를 내어놓아라>는 지난 달 대학로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의 봄 페스티벌 [심시티] 연작의 하나로 인천에서 앙코르 공연을 하게 되었다. 연작 [심시티]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삶의 비용, 즉 개인의 피로나 고통, 소요되는 시간,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자괴감 등에 대해 고민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머리를 내어놓아라>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숨겨야만 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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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장갑과 넥타이
작은 소극장 무대를 연못 하나가 가득 채우고 있고, 그 안에 바위 하나가 놓여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손바닥이 빨간 목장갑을 낀 채로 연못 안에서 비질을 하고 있는 연못 관리인 이 씨가 보이고, 젊은 김 대리가 양복을 입은 채 팔짱을 끼고 앉아있다. 이 씨는 휴일에도 불러내 일을 시키는 김 대리가 못마땅하다. 이 씨는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하지만, ‘빨간 손 주제에 감 놔라, 배추 놔라 하냐’는 김 대리의 말에 이내 감정을 누르고 허허 웃으며 일을 한다.
연못 청소를 하던 이 씨는 바위를 발견하고, 그 바위가 거북이로 환생한 죽은 문지기 백 씨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백 씨는 신장병 때문에 신장 투석을 받으며 문지기 일을 하던 사람으로, 한 달 전 김 대리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하느라 신장 투석 시간을 놓쳐 목숨을 잃었다. 이 씨와 식당 아주머니는 ‘나는 화장실을 안 가도 돼서 이렇게 문지기를 하는 거예요. 허허허’ 속없이 웃던 백씨를 회상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등딱지 속에 머리를 숨기고 살아가는 거북이는 곧 살아남기 위해 웃는 얼굴 뒤에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을’들의 모습이다.
김 대리는 어서 거북이를 연못 밖으로 던져버리라고 말하고, 살아있는 걸 어떻게 던지냐는 이 씨에게 김 대리는 어차피 흙으로 묻으면 다 죽는다며 윽박지른다. 넥타이를 맨 채로 나이 많은 노동자들을 ‘빨간 손’이라 비하하며 마구 부리고, 거북이의 목숨도 하찮게 여기는 김 대리의 모습에서 ‘을’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고 그저 소모품 정도로만 여기는 관리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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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등딱지는 단단하다.
‘머리를 내어놓아라’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대가요 ‘구지가’의 제의 형식을 빌려온 이 작품은 작품 전체가 도시에서 억압당하며 죽어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제의라고 할 수 있다. 용역 깡패를 동원해 연못을 흙으로 덮고 거북이를 죽이려는 김 대리. 그런 그를 막아서던 이 씨와 식당 아주머니는 별안간 거북이로 변한다. ‘나는 목이 쑥 나온다.’ ‘내 등딱지는 단단하다.’고 중얼거리며 거북이의 주변을 맴도는 그들의 모습은 배경 음악과 어우러져 전통 제의마저 떠올리게 한다. 거북이를 향한 추모제는 곧 ‘을’이라 일컬어지는 도시 노동자에 대한 추모제다. 거북이에게 ‘머리를 내어놓아라’라고 말하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고 숨기고만 살아왔던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하며 살아가자는 다짐이기도 하다. 거북이의 주위를 맴돌며 거북이를 보호하는 이 씨와 아주머니는 김 대리에게 복종하며 일하던 이전과는 달리 꿋꿋하게 소신을 말하며 공격성도 감추지 않는다. 그들은 연대를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들을 보호한다. ‘갑’을 향한 ‘을’들의 반란으로 연대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릉에서 발견한 거북이가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더 이상 조선왕조 일에 개입하지 말아요. 우리는 그냥 우리 눈앞의 일에만 신경씁시다” 라고 말하는 이 씨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눈앞에 닥친 현실에 치여 연대에 실패하고 소시민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을’들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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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것, 그 치사하고도 달콤한 유혹.
연못에 남아 거북이를 지키게 된 이 씨와 아주머니. 포클레인의 위협에도,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도다리 쑥국이 먹고 싶다고 말하던 아주머니는 돌연 거북이를 가리켜 진짜 거북이가 아니라 바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거북이가 맞다 하더라도 백 씨 아저씨는 아닐 거라고 말하는 아주머니와 거북이도, 백 씨도 맞다고 말하는 이 씨는 갈등에 휩싸인다. 아주머니는 이내 자신은 거북이를 보았던 게 아니라 이 씨가 얄미웠던 김 대리를 향해 복수하는 모습이 속 시원해서 동조했던 것이라 자백한다. 마음이 돌아선 아주머니는 맛있는 음식들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손자 이야기를 하며 화풀이는 이만하면 됐다고 이 씨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생태찌개를 들고 나타난 김 대리의 유혹에 아주머니는 넘어가버리고, 손자를 들먹이는 협박에 이 씨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 우리는 그것을 평범한 생활이라 부른다. 그들에게 평범한 삶이란, 돈이나 명예보다도 훨씬 더 달콤한 유혹이다. 결국 그들은 달콤한 삶의 유혹에 넘어가버리고 만다. 연못과 거북이는 흙에 덮여버리고, 또 다시 등장한 거북이를 이 씨는 바위라고 말하며 외면한다. 이 씨와 아주머니, 김 대리는 거북이를 외면한 채 막걸리를 마시며 아리랑을 부르고, 그렇게 공연은 막을 내린다.

갑각류는 딱딱한 껍질 속에 몸을 숨긴 채 살아가지만, 그 안의 몸은 너무나도 연약해서 한 번 겉껍질을 다치게 되면 회복할 겨를이 없이 그냥 죽게 된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해 자꾸만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점점 단단해지는 껍질과는 다르게 점점 연약해져 밖으로 내밀 수 없는 머리. 우리는 언제쯤 껍질 밖으로 머리를 내밀며 살아갈 수 있을까.

글/시민기자 김진아, 사진제공/극단 작은방




음악과 함께하는 열정의 날개짓 – 락밴드 ‘화려한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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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토요일 오후, 연수구 동춘동에 자리한 연수문화원에서는 <연수 문화 너나들이 축제>가 열렸다. 다양한 생활문화 동호인들이 화합하는 장이었던 축제에서 밴드 동아리의 공연이 단연 백미로 꼽혔다. 공연이 끝난 뒤 ‘화려한 외출’의 멤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02밴드 ‘화려한 외출’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린다.
서순희 : 다문화가정 밴드, 주부 밴드 등 여러 개의 밴드가 연합해서 활동하고 있는데, 지금 이 팀은 ‘화려한 외출 락밴드’로 가장 활발하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팀이다. 혼성 락 밴드로 지난 해 8월 결성되었고, 매주 금요일 밤에 연습을 하고,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
서순희
: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은 오래 되었다. 일명 아줌마 밴드로, 2001년부터 2012년도까지 여성 밴드 활동을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기간 해왔다. 같이 활동했던 언니들이 나이가 많아지면서 밴드 활동이 힘들게 되었고, 어쿠스틱 밴드 활동만 하고 있던 중, 작년에 젊고 실력 좋은 친구들을 만나 다시 ‘화려한 외출’이라는 이름으로 팀을 결성하게 되었다. 지금 이 멤버들은 전부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부터 굉장히 오래 음악을 곁에 두고 살아왔던 친구들이다.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을 통해 함께 모여 화려하게 나래를 펼쳐보자는 의미에서 밴드명을 짓게 되었다.

03멤버 한 분씩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최진용 : 기타를 맡고 있다. 이전에 속해있던 밴드에서 지금 함께 보컬을 하고 있는 정균 씨와 활동했었는데, 정균 씨가 여기 밴드로 옮기게 되면서 합류하게 되었다. 와보니까 좋은 누님(서순희 님)이 계셔서 함께 의욕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김정균 : 보컬을 맡고 있다. 다른 분들하고 함께 직장인 밴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활동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6개월 정도 활동하다가 팀이 와해되었다. 멤버를 구하던 중 누님을 소개받아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박제선 : 건반을 맡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누님이 운영하시는 악기사에 자주 방문해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번 놀러오라는 제안에 연습실을 방문했다가, 처음으로 건반을 맡게 되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이한균 : 밴드를 한 지가 꽤 오래 되기는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직장인 밴드라 엎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여러 밴드에 용병처럼 지원을 나가는 정도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 밴드에 합류하게 되고 이제야 정착을 하게 됐다.
서순희 : 베이스를 맡고 있다. 밴드 활동을 오래 해왔지만, 그 동안은 기타를 연주했었다. 지난 해 정균 씨의 제안으로 베이스를 처음 맡았다. 마침 갱년기를 지나며 여러 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라 열정을 다시금 불태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도전하게 되었다. 처음 도전해보는 악기이지만 굉장히 매력이 있고, 생활의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많은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

동인천에서 오랜 기간 ‘허리우드 악기사’를 운영해 오면서 밴드를 만들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 계기가 궁금하다.
서순희 : 악기사를 운영한 지가 30년이다. 내가 가진 재능을 활용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다섯 살 즈음에는 악기사 일을 마친 후에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라이브 카페에서 연주를 하는 등의 일도 했었다. 그동안 악기사에 방문하는 손님들의 연락처와 음악적 취향들을 물어보고 기록해놓고 있었는데, 열다섯 명 정도에게 연락해서 밴드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렇게 밴드 활동을 시작했고, 15년이 지난 지금 모양새는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밴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직장을 따로 가지고 있으면서, 시간을 따로 내어 연습을 하고 밴드 활동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밴드 활동을 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이한균 : 아내도 밴드 활동을 했기 때문에 큰 반대는 없었다. 대학교 때 밴드에서 만났기 때문에, 아내가 활동을 많이 응원해주고 지지해준다.
최진용 :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것을 힘들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 무대에 서서 사람들 앞에서 실력을 보여주고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중간의 과정들은, 물론 어려운 순간도 있지만, 그 목표를 떠올리면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
김정균 : 음악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집에서 게임하는 게 힘들지는 않지 않나. 우리에게는 음악이 그런 존재이다.
서순희 :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음악을 하면서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굉장히 긴장도 많이 되는 작업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멋있다고 박수도 많이 받는다. 그런 긴장감과 짜릿함을 살면서 얼마나 느껴보겠나. 연습하는 과정 자체도 굉장히 재미있다.
김정균 : 오늘도 2주 만에 쉬었는데, 휴일을 공연 일정에 맞췄다. 2003년부터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밴드 활동을 굉장히 반대했다. 어쩌다 한 번 쉬는데, 그날마저도 밴드 연습과 공연을 다니니까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밴드 활동을 반대하느라 아내가 일주일 간 집을 나간 적도 있었다. 딸아이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빠가 밴드 활동을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도 이제는 밴드 활동을 존중해주고 응원해준다. 오늘도 아내와 딸아이가 공연장을 찾아와서 응원해주었다. 아이가 다니는 피아노학원 원장님까지 대동해서 공연장을 찾아준 걸 보면 이제는 많이 좋아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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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외출’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최진용 : 같은 밴드를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바뀐다. 서로가 호흡이 맞아야지만 일치된 감정을 통해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주를 하면서 스스로 감동을 받기도 한다. 이 팀에 들어와서는 실력을 떠나서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굉장히 좋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인 밴드 치고는 실력도 굉장히 탄탄하고 음악적인 이해도 뛰어나다. 그래서 합이 잘 맞고, 연주하는 게 더 힘이 난다.
김정균 : 전에는 직장인 밴드를 자주 옮겨 다녔었다. 직장을 다니다보니 멤버들끼리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누구 한 명이 자꾸 늦게 되면 불만들이 쌓이곤 하는데, 자영업을 하다 보니 연습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 감정들이 쌓이다보면 1년, 2년 이상 팀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누나가(서순희 님) 온 이후에 응집력이 더 강해졌다. 좋은 멤버들도 영입할 수 있었고. 같이 끈끈하게 갈 수 있는 역할을 해주고 계셔서 불안하지 않게, 안정적으로 밴드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 밴드는 목소리가 나오는 한은 계속 같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
박제선 : 밴드를 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게 가장 좋다.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니까.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만나 연습을 하는데 그 시간이 정말 좋다.
이한균 :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멤버들이 스케줄을 많이 양해해준다는 것이다. 하는 일이 기술 영업 쪽이라 지방을 많이 다니고, 한번 가면 며칠씩 있다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스케줄들을 다 양해해주셔서 참 감사하다. 이전에 활동하던 밴드들이 엎어졌던 게 거의 스케줄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양해해주시는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함을 느낀다. 두 번째는 나이차가 있고, 혼성 밴드이며, 각자 하는 일에 전부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 데도 불구하고, 연습을 하는 데에 있어 대화가 굉장히 잘 통한다는 것이다. 다른 밴드에 있을 때는 자존심의 문제도 있고 해서 서로가 서로를 터치하지 않으려고 했다. 할 말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고 하다 보니 불만이 쌓이고는 했다. 하지만 이 팀에서는 대화가 굉장히 잘 이루어진다. 이 부분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도 대화가 되니까 서로에게 불만이 쌓이지 않아 좋다.
서순희 : 직장인 밴드들이 오래 못 가는 이유는 욕심들이 있어서다. 자기만 좋아하는 것을 조금 내려놓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서로 감싸주어야 하는데 부족한 부분은 지적을 하고, 자기만 잘났다고 연주하는 것들 때문에 감정이 상하고 팀이 와해되는 경우가 많다. 멤버들 모두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감싸주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음악동아리고,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모여 있기에 묻고 싶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바꾸어준 노래가 하나씩은 있지 않나.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만들어 주었다거나, 자신의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거나 하는 노래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있다면 어떤 노래인지, 이유도 궁금하다.
박제선 : 김건모의 노래 중에 이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가 와 닿아서 좋아하는 노래이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아들에게 엄마가 “너는 키가 작아서 안 된다, 공부나 해라” 말하는 노래인데, 그 노래 가사처럼 못생기고 키도 작고, 연주나 노래를 아주 잘하지는 않지만, 노래를 하는 것과 연주하는 것이 그저 즐거워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한균 : 신해철 1집 수록곡 중에 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 가사를 보면, “그 언젠가 먼 훗날에/반드시 넌 웃으며 말할 거야/지나간 일이라고”라는 구절이 있다. 99년도에 대학 밴드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연습했던 곡이 이 곡이었다. 단지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선배들이 “너 드럼 해”라고 해서 드럼을 맡게 됐다. 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었는데, 십여 년이 흐른 지금 가끔씩 힘들거나 지칠 때 이 노래를 들으면 ‘힘든 것도 다 지나갈 테니까 지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최진용 : 넥스트 1집에 <아버지와 나>라는 곡이 있다. 배경 음악 위에 신해철이 노래가 아닌 내레이션으로 읊조리듯 이야기하는 곡이다. 곡이 절반 쯤 지나면 기타가 등장해 뒷부분을 끌고 가는데, 내레이션도 감정이 폭발하듯 점점 고조된다. 기타는 사실 목소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곡에서는 폭발할 듯한 내레이션과 함께 기타에도 마치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 노래를 학창시절에 들으면서, 기타가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에 굉장한 충격과 자극을 받았다. 그 곡을 계기로 기타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고, 여전히 그 곡에서처럼 멋진 연주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순희 : 80년대 학번 세대에는 대학가요제가 굉장히 성행했고, 밴드 음악이 굉장히 많았다. 고등학교 때 ‘나 어떡해’와 같은 곡을 카세트에 넣고 산에 올라가서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불놀이야’라는 노래에서 기타 애드립이 굉장히 멋졌다. 저런 기타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기타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김정균 : ‘She’s gone’이라는 노래에 사연이 있다. 친구들보다 생일이 느려 영장이 늦게 나왔는데, IMF이다 보니 취업도 안 되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오랫동안 하고 있었다. 군대라도 빨리 다녀오고 싶은데 영장이 나오지 않아 지원하면 바로 갈 수 있는 의경에 지원하게 되었다. 동네 파출소에 발령받을 것을 생각했는데, 기동대에 발령이 났다. 당시 그 곳의 분위기가 굉장히 엄해 가자마자 선임들에게 많이 맞았었다. 흔히 말하는 ‘고문관’ 소리도 듣기도 하고 힘든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가 왔는데, 부대 앞에 있는 노래방으로 잠시 외출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 곳에서 ‘She’s gone’을 불렀는데, 부대에 돌아와 보니 온 중대에서 나를 때리던 모든 선임들이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노래를 정말 잘 하는 친구’로 알려지면서 군 생활도 수월하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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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이한균 : 고객들을 직접 마주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하다. 밴드 활동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무기다. 음악을 매체로 한 활동들을 통해 좋은 기운들을 얻고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육체적으로는 피곤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든다. 또 하나는 업무 시간 이외의 여가시간을 보통은 그냥 쉬거나, 술을 마시는 등의 시간으로 보내는데, 밴드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는 느낌이 든다.
박제선 : 음악을 한 지 벌써 15년이 되었다. 기타면 기타, 피아노면 피아노, 다양한 악기들을 혼자 씨름하며 익혔다. 음악을 계속 해오면서 음악이 꼭 큐브 같다고 느꼈다. 한 면을 다 맞추면 다른 면이 흐트러지고, 다른 면을 맞추면 또 다른 면이 흐트러지지 않나. 여섯 개의 면을 모두 맞추는 법을 배우고 싶은데, 아직까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연습하면 큐브의 모든 면을 다 맞추게 되는 것처럼 밴드 활동도 열심히 연습해 모든 면을 다 맞추고 싶다.
김정균 : 밴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삶을 더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살게 되는 것 같고 가정에도 더 충실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일주일에 한 곡을 연습하는데, 금요일에 멤버들과 모이기 전까지 일주일 내내 한 곡을 반복해서 듣고 연습한다. 출퇴근하면서도 듣고, 차 안에서도 듣고 흥얼거리며 연습을 한다. 그러다 보면 딴생각을 할 틈이 없다. 업무 시간에도, 집에서도 더욱 성실하게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최진용 : 나에게 음악이란 판타지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판타지라고 한다면, 음악을 하는 것은 판타지 속에 빠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직장인 밴드 활동도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굉장히 힘들지 않나. 음악은 그런 현실의 고단함과 지난함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판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을 하는 동안에는 판타지에 빠져 헤엄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가장 값어치 있는 삶의 일부이다.
서순희 : 음악은 열정 충전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하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연습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많이 느낀다. 스스로 열정을 만들어내고 쏟을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간 일을 하며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뒤로 하고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주말 오후. ‘화려한 외출’의 멤버들은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밝은 표정으로 연습과 공연을 하며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지친 모습으로 그들을 찾은 기자에게도 멤버들은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열정이 가지는 힘은 엄청난 전염성을 가지고 있었다. ‘화려한 외출’의 열정이 널리 퍼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인터뷰 및 정리 / 시민기자 김진아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기업인, 영림목재(주) 이경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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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은 2015년부터 문화예술 기부캠페인 ‘아트레인’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인천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기부자인 아트레인의 탑승자들을 차례로 만나보고자 합니다. 지난 5월 24일, 인천아트플랫폼에는 개항의 도시 인천을 상징하는 전통 목선 한 대가 들어섰습니다. ‘개항호’라는 이름으로 C동 공연장 앞에 위치한 이 목선은 인천의 중견기업인 영림목재(회장 이경호)에서 인천의 문화예술을 위해 기부했습니다. 영림목재는 인천에서 기업의 문화경영, 문화예술 후원에 앞장서는 기업으로 인천문화재단 아트레인도 지속적인 후원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기업, 영림목재의 이경호 대표님과 함께 인천의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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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림목재는 인천에서 설립되어 성장한 기업입니다. 배경과 역사가 궁금합니다.

A. 저는 황해도에서 태어났어요. 한국전쟁으로 피난을 오면서 인천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부친이 평양에 계실 적에 하시던 제재소 일로 인천에서 목재소를 시작하셨어요. 그때 당시에는 간장, 소주, 빵 등을 담아 운반할 목재 상자가 필요했었고, 그 물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회사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다 부친께서 건강이 나빠지시면서 제가 20대 후반에 경영을 맡게 되었죠. 직원 10명으로 간석오거리에서 시작했었는데, 도화동을 거쳐 지금의 남동공단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Q. 20대 후반이면 굉장히 젊은 시절에 회사 경영을 시작하신 것과 마찬가지네요. 20대 청춘 시절의 꿈과 목표가 있었을 텐데, 회사를 맡게 되었을 당시 어떠셨나요?
A. 저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사업을 물려받기 직전에는 전자회사 무역부에서 유럽 전역을 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죠. 전자 분야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던 초기라 모두들 부러워하는 회사이기도 했어요. 그러다 급작스럽게 가업을 이어받아야 하는 상황이 닥치는 바람에 조금은 혼란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청춘의 꿈이었던 전자 회사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전자 분야로 작은 회사를 차려 영림목재와 동시에 운영을 하기도 했었어요. 정말 놀랍게도 두 사업이 모두 잘 되고 있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부친의 사업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전자기기 분야는 하나가 성공하면 바로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할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요. 몸은 하나인데, 회사는 두 개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목재회사에 전념하게 되었죠. 그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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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황해도에서 태어났지만 인천에서 자라셨는데요. 어린 시절 기억 속 인천은 어떤 곳인가요?
A. 어린 시절 기억 속 인천은 ‘바다’로 생각이 납니다. 피난민들이 인천 앞바다에서 조개를 캤어요.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와 꽃게가 큰 바위 사이에 남아있으면 아이들은 바가지로 물을 퍼내고 잡기도 했었죠. 바위에 굴도 많던 시절이라 굴을 먹는 게 간식이기도 했어요. 그때만 해도 하인천 뒤편으로 어시장이 있었어요. 생선 조각을 들고 꽃게나 망둥어를 많이 잡으러 다녔어요. 망둥어를 잡을 때는 썰물이 아닌 밀물때에 맞춰야 잘 잡혀요. 물이 들어오는 속도에 맞춰서 뻘밭을 걷다보면 망둥어 아가미를 꿰어서 잡아 들고 올 만큼 많이 잡히던 시절이었죠. 인천에서 자랐는데 수영을 못 하는게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바다에서 많이 놀았습니다.

Q. 10대 학창시절부터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시던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추억들일까요?
A. 고등학교 시절에 과외활동으로 원예반과 합창반, 활동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시립농대와 함께 국화전시회도 했었어요. 꽃을 예쁘게 피우려면 주변 꽃을 잘 다듬고 불을 켜서 관리해줘야 만개하는데, 정말 열심히 했었어요. 합창반은 화음을 배우면서 다른 친구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가 있죠. 그리고 당시 남고 학생들이 공식적으로 여학생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거든요. 공부밖에 모르는 순진한 애들이 합창반을 하면서 이성 친구들도 만나면서 그 시절을 즐겼던 것 같네요.


  04
Q.
결국 지금의 이경호 회장님을 만든 게 ‘10대 시절의 경험이 아닐까’ 싶네요.

A. 청소년 시절에 참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그때 배웠던 한시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고, 독일어도 배웠죠. 그 덕분에 독일어로 된 합창곡들을 지금도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된 건가요? 삶의 모든 추억과 시작이 이 당시의 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돌이켜보니 건강하고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네요. 이 모든 게 바탕이 되었기에 지금도 제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Q. 지금까지도 인천남성합창단의 단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꽤 오랜 역사를 가진 합창단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합창단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A. 인천남성합창단은 올해로 창단 45주년을 맞은 장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인천 대표 남성합창단입니다. 1971년에 인천의 젊은 청년들이 복음 선교와 인천의 음악 발전을 위해 창단했어요. 지금까지 500회가 넘는 무대를 올렸고, 거쳐간 단원도 400여명에 이릅니다. 우리 합창단보다 오래된 곳은 서울의 한국남성합창단이 유일해요. 저는 2012년부터 단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단원들 대부분이 각자 사업체나 직장이 있어 운영이 쉽지는 않지만, 단원 모두가 단장이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6월 초에 필리핀으로 첫 해외 공연을 다녀왔어요. 현지 교민들의 많은 함성과 박수를 경험했고, 좋은 무대를 선보일 수 있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뜻 깊고 보람된 공연이었습니다. 이 공연을 계기로 인도네시아 측 관계자에게도 초청을 받았는데, 우리 합창단이 해외로도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이 된 것 같아 매우 기쁩니다. 
 
 05

Q. 영림목재는 문화예술 후원과 발전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는 기업의 문화경영 철학이 있나요?
A. 문화경영이란 쉽게 설명하자면 오너의 경영 마인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문화예술이란 조직의 갈등을 봉합하고 치유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지니고 있어요.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보이지 않는 큰 힘이 바로 문화예술인거죠. 때로는 종교 이상의 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중소기업들도 조금씩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고 경영에 접목시키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인천에서도 그런 기업들이 보다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기업 경영자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고 지역사회에 참여하다보면 인천문화재단의 활동과 방향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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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경호 회장님은 인천문화재단의 이사를 역임하셨고, 재단의 사업에도 지속적인 관심으로 지지해주고 계십니다. 문화예술 기부를 위한 아트레인에도 초반부터 함께 하고 계시는데요. 문화예술을 위한 아트레인 사업의 방향이나 기부금의 사용에 대해 소중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A. 재단이 갖고 있는 그 성격이나 목적에 맞게 뜻깊은 곳에 사용할 것이라 믿습니다. 기부를 했다는 것은 그 단체에 일임했다는 것이니 더 이상 제가 관여할 것은 없어요. 다만 기부금이라는 것은 모아진 이 돈을 사용하는데 목적일 두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활동의 바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정도 모금액이 모였다는 것이 알려지고,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아트레인’의 확산이 중요할 것 같아요. 앞으로 문화예술로 성장할 후배세대들을 위한 밑거름으로 이 기금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재단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고 활동을 할 필요성이 분명히 있을 테고, 기부금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 기업인들이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및 정리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주현수


인천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아트레인의 탑승자를 찾습니다. 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 기부 캠페인 아트레인은 인천 시민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개인 혹은 법인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기업 후원의 경우, 기업의 경영철학과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문화예술로 함께 만들어드립니다. 아트레인 참여 문의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032-455-7114, artrain@ifac.or.kr

 




사후(死後) 간행된 김소월의 명작, 소월시초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전국 유일의 공공 종합문학관입니다. 근대문학을 중심으로 한 근대 한국학 자료 약 3만 점을 소장하고 있는 콘텐츠 중심형 문학관이기도 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 자료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근대문학관의 함태영 학예사가 소개하는 우리 근대문학의 소중한 자산도 만나보시고, 문학관에 직접 오셔서 한국 근대문학이 가진 의미와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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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死後) 간행된 김소월의 명작, 소월시초

 「소월시초」는 김소월 사후에 출판된 유고시집으로 1941년 박문서관에서 나온 재판본이다. 이 시집은 김소월 평생의 스승이었던 김억이 엮은 것이다. 「소월시초」는 소월의 의도보다는 스승인 김억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시집으로 알려져 있다.
시편 중 53편은 「진달래꽃에 수록되었던 것들이며, 「팔벼개 노래조(調)」를 포함한 나머지 25편은 시인이 생전에 잡지 등에 발표한 것과 소월 사후에 김억이 정리한 유작의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말미에는 김소월의 유일한 평론인 「시혼(詩魂)」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은 32세로 생을 마감한 김소월의 작품을 최대한 모아 수록했다는 점에서, 소월의 문학 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이 책은 1939년 초판에 이어 2년 만에 재판을 찍었는데, 박문서관 발행 박문문고 시집 중에는 이례적인 경우였다.




동네방네 알림판 2016.06.08.~06.21

인천에서 벌어지는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각종 행사들의 소식을 한번에 전해드립니다. 매월 1주, 3주 화요일마다 발송되는 인천문화통신을 활용해 소식을 전하세요. 다음 문화통신은 각각 7.5(화), 7.19(화)에 발행됩니다.
알리고 싶은 행사 내용을 http://me2.do/xRtWJVeH 링크에서 입력하시면, 기간에 맞춰 실어드립니다.
#인천문화예술 #동네방네 #알림판 #소식
 
02인천아트플랫폼 생활문화센터 개관식(6.25, 16:00)
‘시민이 문화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인천아트플랫폼 생활문화센터가 6월 25일(토) 드디어 개관합니다. 아트플랫폼 A동과 H동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H동 2층은 다목적실입니다. A동 1층은 이음마당 (기존 커뮤니티홀), 미술방 2개실(신규)이, 2층에는 연습실, 다목적실, 모임방(小,中)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현재 3/4분기 정기대관이 6월20일(월)~30일(수)까지 진행 중이며, 정기 대관을 놓쳤더라도 해당 월에 한하여 수시로 대관이 가능(예:7월14일 대관->7월1일부터 예약)하니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 문의:생활문화팀 032-760-1034

 

03연극 ‘머리를 내어놓아라’(6.23~6.25, 평일 8시/토 3시,6시, 인천 다락소극장)
과연 우리는 보이는대로 보고, 들리는대로 듣고, 있는 그대로 말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먹고 살기 위해 감각을 감추는 미물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나요?
연극 [머리를 내어놓아라]는 손과 발, 머리까지 힘껏 웅크린 우리네 삶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풍자합니다. ‘극장은 세상의 작은 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극단 작은방이 펼쳐내는 이야기를 들으러 오세요. 공연은 무료 입장이며 자발적 후불제로 진행됩니다. 관람 후 자유롭게 후원해주시면 됩니다.
☞ 문의:010-3837-4939

 

  04책 듣는 수요일(6.29, 16:00, 한국근대문학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입니다. 한국근대문학관에서는 6월부터 매달 문화가 있는 날에 <책 듣는 수요일>을 진행합니다. 6월 주제는 ‘근현대 한국문학, 눈에 보듯 읽다’로 문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시-윤정미 사진전 <앵글에 담긴 근현대 한국문학>과 함께합니다. ‘책 듣는 밤-독야청정’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북 칼럼니스트 ‘박사’가 흥미로운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드립니다. 낭독으로 듣는 작품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문화가 있는 수요일,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직접 확인해보세요. 누구나 오셔서 함께할 수 있습니다.
☞ 신청 바로가기

05젠트리피케이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6.30, 14:00~, 인천아트플랫폼 H동 2층)
인천문화재단이 제55회 목요문화포럼을 개최합니다. 이번 포럼에서는 낙후된 구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다룹니다. 서울 성동구청 고선근 지속가능정책팀장, 함께하는 인천사람들 김하운 대표, 건축재생공방 이의중 대표, 경인일보 박경호 기자가 발표합니다. 현재 인천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현황을 점검하고,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할 것인지 뜨겁게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관심 있는 모든 분들의 참석을 환영합니다. 또한 4월 목요포럼 ‘색다른 민간 문화공간의 사례로 살펴보는 도시 재생’ 자료집이 나왔다는 소식도 함께 전합니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발표자의 이야기 흐름에 따라 발표 자료와 그날 논의된 이야기를 재구성해 한결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4월 목요포럼 자료집은 http://me2.do/FREFwsu4 링크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문의:재단 정책연구팀 032-455-7136

012016 인천문화예술아카데미(6.7~7.8, 매주 화요일 10시․목요일 7시, 복합문화공간 해시)
2016 인천문화예술아카데미는 고전과 예술을 매개로 과거, 현재, 미래 사이의 중층적 대화를 시도하고자 합니다. 화요일 오전 강의는 윤진현 박사(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가 ‘공연과 인문학-더 나은 세계를 향한 꿈’이란 주제로 5개 강좌를 진행하고, 목요일 7시 강좌는 ‘공자 사상의 현재성’이란 주제로 이우재(인문서당 온고재 대표) 선생께서 5번의 강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것은 민예총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알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아카데미는 다양한 주제의 강좌와 프로그램들을 통해 인천시민들이 예술과 문화예술의 감상과 창조의 진정한 주체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문의:032-423-0442, 010-5322-1913

 

06제 12회 인천여성영화제(7.15~7.17, 영화공간주안)
12회를 맞는 인천여성영화제가 7월 15일(금)부터 17일(일)까지 영화공간 주안에서 열립니다. 인천여성영화제는 2005년 시작된 인천 유일의 여성영화제로 매년 7월 20~30편의 여성영화를 무료로 상영해 왔습니다. 올해는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해인 만큼, 12회 인천여성영화제는 ‘혐오를 넘어, 우연히 살아남은 자들의 연대’를 주제로 열립니다. 개막작 <불온한 당신>, 폐막작 <야근 대신 뜨개질>을 비롯해 ‘헌팅 그라운드’, ‘눈길’, ‘위로공단’ 등의 장편영화와 일상적인 관계와 심리, 폭력과 불안 등을 표현한 다양한 주제의 단편영화들이 상영됩니다. 인천여성영화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인천의 여성감독들이 만든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인천여성감독열전’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든 영화 상영은 무료이며, 페미니즘 도서관, 밤새도록 야외에서 영화를 보는 미드나잇 시네마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함께 진행됩니다.
☞문의:032-471-3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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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정식 개관
인천지역 전문예술인과 예술단체를 위한 전문 연습장인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이 시범 운영을 마치고 정식 개관했습니다. 지역 공연예술단체 및 공연예술인의 활발한 창작활동과 소통을 지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이 공간은 1층 대연습실(약 52평), 2층 중연습실(약 24평), 다목적실(27평), 리딩룸(7평)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습공간은 월요일~토요일(10:00 ~ 22:00)까지 이용 가능합니다.




인천을 사랑하고 인천을 기억하는, 와카이 슈지 한국닛켄(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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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은 2015년부터 문화예술 기부캠페인 ‘아트레인’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인천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기부자인 아트레인의 탑승자들을 차례로 만나보고자 합니다.

이번호는 그 중에서도 좀 더 특별한 기부자와 만나보았습니다. 아트레인 최초의 외국인 기부자이자, 인천 시민 그 누구보다도 인천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한국닛켄(주)의 와카이 슈지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인천 남동공단에 자리한 한국닛켄은 자동차 부품 제조에 필요한 금속 절삭 공구 전문업체로 30년 동안 인천에서 성장한 중견기업입니다. 대표적인 한일 기술협력 우수기업 한국닛켄은 올해 글로벌 선도기업 10곳에 선정되기도 한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과 인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와카이 슈지 대표님과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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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국닛켄(주)은 동구 만석동에서 시작해 지금의 남동공단에 이전하기까지 인천에서 성장한 기업입니다. 기업의 역사가 어느 덧 30년이 되었는데 사업을 시작한 초반의 기억을 듣고 싶습니다.

A. 제가 일본 닛켄의 해외 파견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때가 74년도였습니다. 그리고 1987년에 만석동에 터를 잡고 한국닛켄이라는 별도 법인으로 경영을 시작하게 되었죠. 막 시작했던 그 당시에는 인천역 부근에 동아제분, 동일방직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만석동에 터를 잡았던 그 때는 주변에 아파트도 없었고, 지금의 만석비치타운 건물 앞엔 작은 개천도 있었어요. 그 곳에서 20년간 사업을 운영했고, 2007년에 현재의 남동공단 부지로 이전했습니다. 87년에 만난 만석동은 다른 곳에 비해 특히나 오래된 지역이었어요. 공장도 많지 않았고요.

Q. 경영자로써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경영 철학은 무엇이었나요?
A. 저는 한국닛켄이 만석동 부지에 터를 잡으면 ‘이 회사가 동네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적어도 회사가 있음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고용 창출부터 가능하니까요. 아무래도 기계를 가동하는 공장이기에 기름을 사용하거나 공해, 소음 등을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용한 오폐수나 기름이 단 한 방울도 외부로 유출되거나, 공해나 소음으로 지역 주민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철칙으로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반드시 우리의 회사가 지역에 도움이 되고, 회사와 지역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20년을 동구와 함께 해왔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만석 파출소, 만석초등학교와 매우 가깝게 지내왔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만석동이라는 동네에서 회사를 받아주는구나’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고, 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여러 방면 지역에 도움이 되는 환원을 하고자 애썼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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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천은 제2의 고향이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인천의 여러 지역 중 특별히 사랑하거나 아끼는 지역은 어디신가요?
A. 80년대부터 강화도를 참 좋아해서 자주 다녔어요. 자연이 그대로 있고, 역사적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역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강화도 끝까지 가야 만나는 교동도를 가장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초지대교도 없이 강화대교를 통해서 들어갔고, 교동도는 배를 타고 들어갔죠. 교동도는 북녘과 가까운 지역이다보니, 남북 분단 이후 농지 정리를 매우 잘해놨어요. 지하수 시설도 잘되어 있어서 아무리 가뭄이 와도 농지가 마를 날이 없어요. 1988년도 이후부터는 사람도 많아지고 가는 길목도 매우 막혀서 예전보다는 가는 경우가 드물지만, 참 좋아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강화도만큼 아끼는 지역은 당연히 만석동이죠. 동인천, 신포동이 따라올 수 없는 오래된 느낌을 그대로 지닌 공간이에요. 아직도 가끔은 그 동네를 걸으며 옛 자취를 바라보곤 합니다. 인천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덕분에 인천의 근현대 발전사나 역사적인 자료를 많이 찾아 봐왔고,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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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단순히 비교를 해 봐도 당시와 지금의 모습은 참 많이 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표님이 체감하시는 한국 혹은 인천의 변화된 모습은 또 다른 의미일 것 같은데요.

A. 7~80년대에 비해 지금은 인천이나 한국 전체가 많이 발전했어요. 그런데 우리 한국의 현재 모습에서 아쉬운 점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회가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나 혼자가 아닌 함께 산다는 의미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 혼자만 성장하는 것 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나누고 배려해야 하는데, 고속성장의 그늘인건지 함께 사는 사회의 밸런스가 깨지는 것처럼 느껴져서 안타깝습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남과 함께 산다는 것이고, 함께 살기 위해서는 나의 이기심을 조금은 내려놓고 타인을 배려하거나 공감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 부분이 예전보다 줄어든 것 같아요.

Q. 사실 대표님은 인천문화재단 외에도 한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 기부를 하고 계십니다. 와카이 슈지 대표님께서 가지고 계신 기부철학은 무엇인가요?
A. 특별히 철학이나 신념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단지 기부란, 온전히 그 사람의 성의이고, 이 성의가 좋은 뜻에 올바르게 쓰이면 된다고 봐요. 그리고 무언가를 바라거나 기대하는 바 없이 마음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 그게 기부문화인거죠. 기부를 하고 굳이 감출 필요는 없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하면 좋은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제가 인연을 맺은 게 올해로 벌써 44년이 되었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만약 그 때, 내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갔었더라면, 한국을 그때 몰랐어도, 지금처럼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라고 혼자 질문을 해 봐요. 하지만 아무리 스스로 되물어도 그 질문에는 자신이 없네요. 한국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테니까요. 인생을 돌아보며 느낀 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대한민국아, 고맙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만큼 이 곳은 제게 소중한 곳이고, 그렇기에 마음으로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04

Q. 대표님께서는 문화와 예술 분야에 다양한 취미활동과 관심을 갖고 계시죠?
A. 기본적으로 예술이라는 장르에 많은 관심이 있어요. 클래식 공연도 좋아하고, 사진, 회화, 도예 등 다양한 분야를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한국의 도자기에 관심이 많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술이란 ‘창조’적이잖아요. 이게 전문적인 범위에서 보자면 제조업과 같아요. 장인정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제조업으로 평생 외길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제조업과 도자기만 놓고 보아도 이 둘은 모두 ‘창조’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도자기는 가마에 100개를 구워도 50% 도 안되는 작품만이 살아남습니다. 제조업도 비슷합니다. 불량률을 줄여야 하는 것, 0.01%의 불량도 없어야 하는 그 맥락에서 본다면 예술 행위나 이 작품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더 예술분야에 관심이 가고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창조라는 공통점, 예술 작품 그 자체도 좋지만 그 안에 담긴 작가의 노력이 보이는 것 같아서 관심이 많습니다.

Q. 지난해부터 아트레인에 함께 해 주고 계십니다.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아트레인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으면 하시나요?
A. 제가 행정이나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처나 활용 방법은 전문가 여러분들의 판단에 전적으로 믿고 맡기니 특별한 의견은 없습니다. 인천광역시의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 문화예술 분야에 보다 많은 기부금이 모이고, 이를 통해 더욱 많은 일들을 펼칠 수 있기를 희망해요. 작게나마 생각을 해 본다면 아트레인을 통해 모여진 기부금은 지금처럼 지역의 훌륭한 예술인을 성장시키고,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뜻 깊은 일에 계속해서 쓰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예술인들도 그 당시 그들에게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훌륭한 예술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창작활동에 힘겹게 싸우고 있는 예술인들을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인천문화재단의 아트레인이 보다 성장하고 많은 기업과 시민들이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업과 CEO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철학과 인천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40여년의 이야기를 풀어주신 와카이 슈지 대표님께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글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주현수

 


인천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아트레인의 탑승자를 찾습니다.
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 기부 캠페인 아트레인은 인천 시민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개인 혹은 법인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기업 후원의 경우, 기업의 경영철학과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문화예술로 함께 만들어드립니다.
 아트레인 참여 문의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032-455-7114, artrain@ifac.or.kr

 




시민 생활문화예술의 플랫폼, 광역생활문화센터

문화예술은 더 이상 관람 대상이 아니라 행위의 주체가 됨으로써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하는 핵심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합 기능의 공공시설에서 운영되는 생활문화 활동은 공간적 제약과 전문 문화예술인과의 연계 미흡은 물론 체계적인 정책 지원도 못 받아, 그동안 시민들의 생활문화에 대한 다양한 욕구가 충족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14년 정부는 문화융성 및 생활 속 문화 확산 국정과제에 의한 문화예술진흥법 3조의 생활문화 권장과 지역문화진흥법 8조의 생활문화시설 확충 및 지원 근거를 마련했고, 인천광역시도 생활문화지원 조례를 제정해 2018년까지 5개년 사업을 시행 중에 있다.

012014년, 인천아트플랫폼이 광역생활문화센터로 지정된 이후 인천의 행보도 활발하다. 동구 솔마루 생활문화센터와 남구 학산소극장 생활문화센터에 11억원, 2016년에는 중구 개항장 생활문화센터와 동구 송림동 생활문화센터, 연수구 청학지하보도 생활문화센터, 부평구 아트하우스 생활문화센터에 각 11억원의 예산이 지원 중이고, 2017년에는 옹진군 북도면 생활문화센터와 자월면 생활문화센터 등이 추진될 예정이다.

시민들의 생활문화 활동지원을 위한 공간 확보와 프로그램 지원은 긍정적이지만, 생활문화센터가 단순히 생활문화 공간이 부족한 지역의 공간 확보와 확보된 공간의 프로그램 운영에만 만족한다면 이는 생활문화센터 설립과 운영 취지에 일부만 충족할 뿐이다. 생활문화센터는 시민들의 다양한 생활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다양한 활동을 위한 다양한 공간과 전문 문화예술 역량과 연계시켜주는 플랫폼 기능을 우선해야 한다. 특히, 광역생활문화센터는 현재 추진 중인 특정지역 주민의 생활문화 활동 공간과 프로그램 제공 기능과 역할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다음의 내용으로 전면 전환해야 할 것이다.
  
첫째, 인천 지역의 공공과 민간 등의 다양한 공간을 생활문화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조사와 조사된 공간을 시민과 단체 등의 활동 장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방안 모색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인천의 한 예술인이 서울의 한 웨딩홀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해서 방문했다가 웨딩홀의 건축디자인과 내부 공간 활용에서 신선함을 느끼고, 웨딩 사업가인 대표는 공유 경제 예찬론을 들으면서는 놀랍기까지 했다. 공유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서울시, ‘서울시 공유 촉진 조례’를 만들어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는 서울시의회, 미래지향적 사고로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는 젊은 기업인의 모습까지… 3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서울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주말에만 이용되는 예식장을 평일에는 전시공간과 생활문화 활동 공간이 없는 시민들과 예술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고, 이를 처음부터 건축설계에 반영했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 인천에도 계양구에 심장병 전문병원을 건립하는 병원장이 병원 로비에 상설 전시공간을 만들어, 예술인들에게는 전시공간을 제공하고, 병원의 환자와 보호자 등에는 멋진 작품을 선보이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전문예술인만이 아니라 환자 또는 병원 관계자들의 생활문화 활동 공간으로도 활용되리라고 기대된다.

시민들의 생활문화 활동 욕구는 높아지고 다양해지고 있는데, 마땅히 연습할 장소나 활동 결과물을 함께 나누고 뽐내기 위한 공간은 얼마나 준비돼 있고, 얼마나 개방돼 있나 궁금해진다. 과연, 지역의 관공서, 학교, 체육시설, 공원 등 공공시설은 시민들의 생활 문화 공간으로 자신들의 공간을 제공하고 오픈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있다면 언제 어느 정도의 면적을 어떤 용도로 제공이 가능한지 등에 대해 어디서 정보를 구하고, 어디를 통해서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 이런 정보를 한눈에 찾아볼 수 있도록 광역 생활문화센터가 조사하고 정보를 구축하여 시민들이 활용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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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시민의 생활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분야별 전문 문화예술인들과 연계할 수 있도록, 인천지역의 다양한 전문 문화예술인과 단체들의 정보를 취합하고, 문화예술 및 문화예술 단체별로 프로그램 멘토 또는 협력 파트너로 시민의 생활문화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조사하고, 관련 정보를 구축하여 시민들과 동호회들이 필요시 연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천의 문화예술인들의 기본 현황과 멘토 또는 시민 생활문화 활동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계와 협력을 희망하는 문화예술인들을 파악하여, 시민 생활문화 활성화를 위해 인적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어느 예술인이 언제 어느 분야의 전문성을 생활문화 지원을 위해 재능기부가 가능한지, 어느 예술인이 언제 어느 분야의 전문성을 어느 정도 교육비용으로 생활문화 활동 지원이 가능하지에 대한 조사와 정보화 구축, 그리고 운영이 필요하다.

끝으로, 생활문화센터는 시민의 생활문화 활동 프로그램 개발과 보급을 비롯해, 점점 전문 예술인과 생활 예술인의 경계가 엷어지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네트워크 구축의 장으로도 역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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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생활문화센터와 지역별 생활문화센터는 본 설립 취지인 생활문화 활성화를 위한 공간 정보 공유에서부터, 생활문화 활동 지원과 협력을 위한 전문 문화예술인에 대한 정보 공유와 프로그램 보급 지원, 끝으로 생활문화 활동 시민과 관련 동호회들의 정보 공유와 소통의 장으로 기능과 역할을 높여야 할 것이다. 시민과 동호회들의 생활문화 활동이 일반 시민에게 선보이고, 시민의 생활문화 활동 참여를 더욱 확대하는 계기를 만들어 생활 속에서 문화가 꽃피고 시민들의 삶이 더욱 행복해지는 인천을 위해, 또 하나의 문화센터가 아닌 생활문화 활동을 풍부하게 하는 시민 생활문화 활동의 거점이자 플랫폼으로 업그레이드된 생활문화센터를 기대해 본다.

 

이한구 / 인천광역시의원




인천형 생활문화센터,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며

들어가며…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이후, 본격화된 생활문화 진흥의 주요 정책 사업을 생활문화센터 조성/운영활성화 지원사업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2014년 34개, 이듬해 36개, 2016년 5월 현재, 총 180여개가 지정, 조성, 운영 중이다. 규모의 확대가 흡사 ‘토요문화학교’ 급이다. 운영 조직도 강화되었는데, 기존 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에서 2016년 5월 전담운영기관인 생활문화진흥원이 설립되었다. 속칭 ‘드라이브’가 걸린 현 정부의 생활문화 주력사업인 셈이다. 인천에는 총 10개의 생활문화센터가 지정되었고, 얼마 전 남구의 ‘학산생활문화센터 마당’이 개관해 운영 중이다. 인천문화재단(이하 재단) 생활문화센터 개관 과정과 의미를 몇 가지 키워드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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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에서 개관까지

재단이 위탁운영 중인 인천아트플랫폼 두 개동(A동, H동)은 지난 2015년 8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부터 거점형 생활문화센터로 지정되었다. 문체부의 안내서에 따르면 거점형은‘생활권형 기능을 기본으로 하며, 생활문화 활성화를 위한 네트워크 허브기능 및 정보제공, 컨설팅 지원 등 멀티 플랫폼 역할 수행’으로 확인할 수 있다. 통상 생활권형은 동, 면을 범위로 한다. 지정 이후 공간 리모델링 공사와 함께 시민워크숍, 비전선포식 등 사전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지난 3월 생활문화센터 개관준비계획에 따라, 시민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총 13인의 시민들이 정책, 공간/조직, 프로그램, 네트워크 등 4개 분과로 위원회에 참여했다. 올 4월부터 인천생활문화센터는 시범운영을 통해 여러 운영 사항들을 점검하였고 곧 개관을 앞두고 있다. A동은 공연, 미술 등 장르 특성이 반영된 공간, H동은 인문학, 자료실, 북카페 등의 방향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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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그리고 IFAC
지역문화진흥법(1)은 생활문화를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형ㆍ무형의 문화적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재단 출범 초기 생활예술(문화)는 문화예술지원사업의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5년을 기준으로 광의의 생활문화인 시민문화활동, 문화예술교육, 소외층 대상 문화복지 등은 재단 전체 사업예산의 70%(2)를 차지, 그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이미 생활문화는 문화정책의 화두이자 문화기본권의 상징과 같이 되었다. 재단은 사업구조 상 전문예술인(단체) 지원기관이라기 보다 오히려 시민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생활문화 진흥기관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운영비가 담보되지 않은 리모델링 사업’이라는 비아냥은 차치하고 지역, 특히 재단의 관점에서 생활문화센터 개관은 생활문화 활동의 물리적 교두보로써, 생활문화(시민 문화활동)의 진흥, 지원체계 정비의 분기로써 그 의미가 크다. 재단은 이미 조직을 신설(생활문화팀)하였고, 시민문활동지원, 문화공동체, 인천왈츠, 무지개다리사업 등을 포괄하여 생활문화센터와 적극적으로 연계하는 생활문화 진흥 구조, 체계를 준비 중에 있다. 나아가 문화예술교육, 문화복지(선택적) 영역의 연계 역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생활문화의 큰 틀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경북 성주의 경우 문화예술교육, 통합문화이용권, 생활문화(센터) 등이 결합된 운영 사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지역문화진흥법 2조 2항 / (2)2015 인천문화재단 연차보고서 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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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위탁 그 너머

생활문화센터의 운영방식은 크게 직영(지자체), 민간위탁(문화재단, 문화원, 문화단체, 기타 등), 주민자율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으나 도시형 센터들은 주로 직영 내지 민간위탁이, 도시 외 유형에서는 주민자율(일부 직영-주민자율 병행)이 비중있게 관찰되고 있다. 주민자율형은 대부분 생활권형(면, 동 등)에서 두드러진다. 이 역시 여러 유형과 사례가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자발적 참여와 시민 중심 운영을 표방하는 생활문화센터 운영취지가 충실히 반영된 사례일 터다. 하지만 이는 생활문화센터의 한계이기도 하다. 지역범위나 공동체가 일정 규모를 넘어설 경우, 앞선 취지를 구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진다. 이에,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운영방식의 세부 조정 및 모델설정을 다시 검토해야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인천의 경우, 이미 문화예술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주민(시민) 자율형 생활문화 거점 운영사례가 보여지고 있다. 민간자율 운영방식이 행정과 적절히 결합, 보완적 협력을 이룬다면, 민간위탁 그 너머의 새로운 운영 모델로써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04거점형 생활문화센터 그리고 생활문화지원센터
인천에는 현재 3개의 거점센터가 존재한다. 거점형 생활문화센터는 문체부의 지침 상, 기초단위(군구)로 운영범위를 한정하고 있는데, 이는 생활밀착형 시설이 일정 범위(읍면동) 내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과 맞닿아있다. 현 사업구조상 광역시도 단위의 거점 생활문화센터는 명확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지역 문화진흥의 관점에서 생활문화의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각 센터의 활동을 지원하고 매개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광역단위 지원센터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인천은 생활문화지원조례가 제정되어 있고‘생활문화지원센터’의 역할(3)을 설정해놓고 있다. 단, 군구별 센터와의 관계 고려, 민간 활동 주체들과의 협력 등을 전제로 해야 한다. 재단의 문화예술 진흥 정책과 민간의 자율성, 노하우 등이 결합된다면 새로운 생활문화의 민관협력 모델로써 의미가 크다. 특히 향후 센터지정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생활문화센터의 운영(조직, 프로그램, 기타 등)을 지원할 민간 기구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 하겠다
(3) 인천광역시 생활문화지원조례 2~3장

나가며
문체부가 추진하는 생활문화센터 조성운영 사업의 보완 또한 시급하다. 그간 시설 조성 중심의 실패사례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조성 후 운영 안정화(예산, 조직 등)는 커다란 숙제다. 정부 주도의 정책사업이 이러한 몇 가지 한계들로 지역 연착륙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이는 결국 중앙정부의 마중물 사업을 지역이 어떻게 소화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인천은 생활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자원과 역량들이 확인되는 곳이다. 문화자치의 관점에서 인천의 생활문화를 인천에 알맞게 안착시키기 위한 민-관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인천의 생활문화센터 지정과 운영을 계기로 이러한 논의와 협력이 활성화 되기를 기대해본다.

 

기획글 우상훈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팀장




우리말 시어의 탁월함 – 정지용, <지용시선>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전국 유일의 공공 종합문학관입니다. 근대문학을 중심으로 한 근대 한국학 자료 약 3만 점을 소장하고 있는 콘텐츠 중심형 문학관이기도 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 자료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근대문학관의 함태영 학예사가 소개하는 우리 근대문학의 소중한 자산도 만나보시고, 문학관에 직접 오셔서 한국 근대문학이 가진 의미와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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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시어의 탁월함 – 정지용, <지용시선>

<지용시선>은 해방 후 정지용이 <정지용 시집>(1935, 시문학사)과 <백록담>(1941, 문장사) 등 두 시집에서 25편의 시를 직접 선별해 펴낸 시집이다. 이 시집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4부까지는 <지용시집>에서 고른 14편을 싣고, 5부와 6부에는 <백록담>에서 고른 11편을 실었다. 초기의 실험적인 작품은 대부분 제외했고, 대신 4부에 종교(카톨릭) 체험을 소재로 한 신앙시 5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만큼 정지용에게 신앙이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왔는데, 을유문화사 대표를 지낸 정진석은 생각만큼 책이 팔리지 않아 아쉬웠다고 회고한 바 있다.




뉴스 큐레이션 2016.06.08~06.21

01 문학은 늘 인천을 다녀갔다.
서구 문물이 유입된 개항장, 일제강점기 대표 신흥도시, 해방 후 좌우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곳, 북적대는 공업화의 상징 도시는? 바로 인천이다. 인천에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인일보가 국립 한국문학관 인천 건립을 희망하며 ‘문학도시 인천’에 관한 글을 연재했다. 흑인시, 통일문학, 해양문학, 노동문학 등의 용어와 “문학의 힘이 곧 이야기의 힘이라면, 인천보다 더 문학적 힘이 강한 도시는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한국근대문학관이 보관 중인 희귀도서와 2만9천여 점의 소장자료, 인천공항의 접근성까지 갖춰 ‘준비된 인천’이라는 수식이 낯설지 않다. 시설도 좋고 ‘세계 책의 수도’, ‘국제문학포럼’이라는 이력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인)문학적 사유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인천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반성과 ‘과연 인천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공명한 질문이 계속돼야 한다.

 

  ‘냉면거리’ ‘달동네박물관’ ‘동화마을’…달라진 인천 버스정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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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부터 인천의 버스정류장이 간판을 바꿔 달았다. 생활 주변에 있는 문화예술 시설을 알리고 문화 인프라에 대한 시민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 정류장 명칭을 변경했다. 부평향교, 학산소극장, 계산궁도장 등 문화, 관광, 체육시설 이름이 장소에 생기를 더한다. 현대아이파크와 해돋이도서관, 부개성일아파트와 부개도서관이 동시에 자리를 내준다. 지리적 위치(location)가 마을로 번지고, 사람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장소(place)로 확장되길 바란다.

영상으로 보는 20**년 소설가 보보씨의 하루
이세돌과 대결한 알파고 덕분인지 인공지능이 낯설지 않다. ‘인간’ 소설가 보보씨는 로봇 요리사, 로봇 변호사, 로봇 피아니스트가 익숙한 세상에 살지만 로봇 소설가의 성공과 인기 앞에서 무릎 꿇고 만다. JTBC 뉴스 팀은 ‘인간은 필요 없다’의 저자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교수의 말을 캡션으로 달았다. “경제적 불평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래엔 AI를 만들고 소유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익을 가져가면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될 거다. 반면 서민들은 로봇을 갖기는커녕 일자리만 잃게 될 수 있다.” 명색이(?) 소설가인데 ‘이제 내 한개다’(한계다), ‘보고십다’(보고싶다)라고 자막을 단 건 JTBC의 실수다. 보보씨는 AI에 진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진 건지도 모른다.

05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강남역 10번 출구와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붙었던 수천 개의 포스트잇은 죽은 이들에게 전하는 ‘짧은 인사’에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기록이고 기억이며 이 땅의 역사다.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들이 강남역 포스트잇 1004개의 촬영과 채록을 책으로 펴냈다. 수백 수천 명의 저자가 함께한 시민 공동 저작이다. 여성혐오에 대한 이슈부터 ‘남성혐오’ 반론, 남성혐오는 여성혐오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반박까지, 최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개념과 쟁점이 화두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쓴 우에노 치즈코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는 남성 위주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꿰뚫고, 한번도 약자인 적 없던 남성도 늙으면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는 반대로 초고령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예외 없이 약자가 되기 때문에요.” 저자의 시선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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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비싼 돈 주고 왔는데.. 내 관람 방해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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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중에 휴대폰을 꺼두는 것은 상식 아닌 상식이다. 하지만 반드시 좌석에 등을 붙이고 앉으라는 멘트는 친숙하지 않다. ‘관크’, ‘수굴’, ‘커퀴밭’이라는 단어를 아시는지. ‘관크’는 ‘관객 크리티컬’의 준말. 다른 관객으로 인한 관람 방해를 말한다. ‘수구리’는 좌석에서 등을 떼고 수그린 채 앉아 뒷사람의 시야를 가리는 행동이다. ‘커퀴밭’은 ‘커플 바퀴벌레 밭’으로, 애정 행위로 관람을 방해하는 커플이 많은 상황을 뜻한다. 비성숙한 관람 태도와 지나친 공연 민감증 사이의 장벽. 관객이 없으면 작품도 없다. 저 혼자서는 관객도 될 수 없다.

이재은(뉴스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