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지는 인천이 아닌 느껴지는 인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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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한동안 인기였다. 88년도를 살아가던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는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는 흥미를, 그 시절을 관통해온 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드라마의 배경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이지만 이 드라마의 주 촬영지는 바로 인천이다. 아직도 옛 모습을 갖추고 있는 동네 인천은 과거를 회상하는 드라마, 영화의 주 촬영지이다.

그러나 미디어가 조명하는 것과는 달리 인천은 과거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것처럼 평상에 앉아 찬거리를 다듬는 주민들도, 매일매일 친구들이 모이는 누구네 집도 더 이상 흔한 풍경이 아니다. 저층 주거지, 구도심 지역은 점차 개발되고 점점 이웃이란 개념이 옅어지고 있다. 활기차던 골목은 점점 죽어가고 죽어간 골목에는 곧 신작로가 들어선다. 뛰어 놀던 아이들도, 짖어대던 강아지도, 동네에서 살아가던 주민들도 사라지고 머물지 않는 차들만이 길을 가득 메운다.

문화를 만든다는 CJ가 TVN을 통해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만들고 과거의 미담을 담아냈지만 사실 그것은 과거의 삶을 재조명한 것에 불구하다. 골목과 동네의 풍경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네 골목어귀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노래 소리, 번듯한 극장은 아니지만 모여서 함께 보던 TV,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축하하고 즐겼던 동네잔치 등. 대중 매체 같이 큰 영향력을 갖지는 못하더라도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피부로 느껴지는 문화다.

세월은 흐르고 강산이 변해 옛것을 무작정 붙들고 있을 수만은 없겠지만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고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는 공동체는 그 모습은 바뀔지언정 여전히 소중한 가치이다. 동네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힘겨운 일들을 함께 털어내고 즐거운 일들을 상상하는 공동체 속에서의 삶은 재미있는 TV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충족감과는 비할 수 없다.

‘응답하라 1988’에서도 평상은 동네 사람들의 수다의 장이다. 그 위에서는 함께 하는 일거리들이 존재하고 사람들이 동등하게 자리한다. 그리고 평상은 만든 사람은 있지만 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머물고 누구나 무엇이든 한다. 골목에 평상이 사라지고 나서 함께 사라진 것은 바로 동네주민들 간의 소통인 셈이다. 모여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곳,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를 쌓는 곳이 바로 평상이며 이 작은 평상의 역할은 그리스 아테네의 광장과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서로간의 소통과 관계를 맺는 공론장이다.

공론장은 주민자치위원회처럼 행정적으로 보장된 형태일 수도 있고 동네도서관이나 놀이터 같이 작은 것일 수도 있다. 크기나 형식을 떠나 그 안에서 얼마나 자유롭고 평등한 소통이 시작되는가를 살펴보고 그 시작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함께 키워나가는 것이야말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걸어가다보면 다양한 걸림돌을 만날 것이며 어쩔 때는 넘어지기도 제자리걸음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함께하는 한걸음이 소중하고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함께하는 것이 지금의 동네에, 인천에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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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거창한 담론으로 그리고 상업적 시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세세한 소통의 과정, 사람들이 살아가며 만들어 내는 일상적인 것으로 볼 때 거대 매스미디어가 아니라 동네의 소소한 문화가 보인다. 그리고 이 문화는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소비되지도 않고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동네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으로 자리를 잡는다. 보고 즐기는 즐거움이 아니라 내 피부에 느껴지는 즐거움, 만든 것을 보는 즐거움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바로 동네를 키우고 인천을 키우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미디어가 보는 인천은 산, 바다, 공항, 항만, 신도시와 구시가지 등의 다양한 모습을 갖춘 매력적인 곳이다. 인천이 매스미디어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천의 다양함이 TV와 스크린에서 배경으로만 비춰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동네가 떠들썩한 인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는 인천이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야 말로 인천의,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한다.

라정민
청소년인문학도서관 느루 청년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인천여성영화제 교육기획자




축구의 문화적 가치 창조를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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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여성들은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또 하나 여성들이 싫어하는 이야기가 축구 이야기다. 그렇다면 여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의 결정판은? 바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다. 이 정도면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아재 개그’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다. 당연히 지금은 아니다. 군대는 몰라도 축구라면, 위의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해묵은 유머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여성들 중에서 열성 축구팬을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기장에서 여성들의 응원이 더 열성적일 때도 있고, 심지어 아줌마들도 축구단을 구성해 슛을 날린다.

문화를 논하기 위한 지면에서 뜬금없는 축구 이야기는 사실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인천이 품고 있는 축구의 문화적 가치를 엿보기 위함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축구를 문화 현상으로 해석한다. 더 나아가 「축구자본주의」 같은 책에서는 경제적 관점에서 축구를 해부하고 있다. 경제까지는 아니더라도 필자는 축구와 문화 사이에는 분명 교집합의 빗금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인천을 들여다본다. 인천은 축구와 문화를 접목시킬 수 있는 최고의 여건을 갖춘 도시다. 스포츠는 스토리텔링이 접목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축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유로2016’에서 8강의 기적을 일군 아이슬란드나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레스터시티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때문에 최근의 스포츠 관련 보도 또한 단순한 스코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닌, 경기 이면에 감추어진 이야기에 주목하곤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축구 도시’로서 인천의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인천에는 축구에 얽힌 기막힌 스토리텔링 소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스토리텔링은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는 19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성공회 소속 선교사로 추정되는 ‘시드니 J 파커’라는 한 영국인이 1901년 겨울에 강화를 방문했다. 그는 강화에서 어떤 축구클럽을 접하게 된다. 바로 강화학당 축구팀이다. 한복 유니폼(?)을 차려입은 이 축구팀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그해 3월 21일 영국 성공회 발행잡지인 ‘모닝컴(Morning Calm)’의 편집자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편지는 ‘편집자에게 지면에 반영될 만한 흥미로운 사진을 보낸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DEAR Mr. EDITOR, I here with send you a few more photographs which you may find interesting enough for the pages of Morning Calm.)

편지는 이어 “강화학당 축구팀이 G. A. 브라이들 목사에게 수년간 훈련을 받았다(Kang Hoa School fooball team, which has been carefully trained for some years by Rev. G. A. Bridle. )”며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고, 좀더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다면 잉글랜드 리그 진출도 가능하다.(The boys play a very good game, and after a little more training would be quite capable of taking part in some of the league matches in England )”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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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 편지는 한 세기 넘는 세월 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채 봉인돼 있었다. 그러다가 2007년 한국 근대 해군 창설과 관련한 옛 자료를 조사하던 인천 강화문화원이 서울 성공회대학교에 보관중인 옛 마이크로필름을 확보, 필름의 내용물을 분석하다가 바로 이 내용을 담은 8줄 가량의 영문 문서와 사진 1장을 발견했다. 이 사실은 경인일보(2007년 7월20일자)에 ‘1901년 강화에 축구팀 있었다’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338740)라는 제목으로 최초 보도돼 체육계와 역사학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무려 115년 전에 잉글랜드 리그 진출도 가능한 축구팀이 우리나라에 존재했었다니… ‘유로2016’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바로 호날두의 소속팀인 레알마드리드(1902년 창단)보다 앞선 시기, 조선의 강화에 축구팀에 존재했다는 것 아닌가. 이 소식을 접했을 때의 흥분을 필자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소중한 역사를 담은 문헌이 아직까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헌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대한민국의 축구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 근대 축구의 보급 연도(1904년)는 물론 국내 최초 공개 축구 경기 연도(1905년) 등 대한민국 근대 축구사를 수년 앞당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체육회는 물론 인천시 등 그 어떤 공공기관도 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필자는 이 강화 축구팀의 스토리를 통해 다양한 문화적 파생상품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소설도 좋고 영화도 좋고, 요즘 유행하는 웹툰도 좋다. 야구에서는 이미 ‘YMCA 야구단’ 같은 영화로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진 바 있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심도 깊은 조사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조사와 연구를 토대로 학술대회 등을 통해 한국의 근대축구사를 재정립한다면 인천은 ‘대한민국 축구의 발상지라’는 새 타이틀을 갖게 된다. 인천시가 추진하는 ‘인천 가치재창조 사업’의 내용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던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같은 재미없고 진부한 스토리텔링은 무시해도 된다. 그러나 ‘강화의 축구 이야기’ 처럼 인천의 위상을 드높이고 시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소재라면 마땅히 새로운 조명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임성훈 / 경인일보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부장




동네방네 알림판(2016.07.06.~07.18)

인천에서 벌어지는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각종 행사들의 소식을 한번에 전해드립니다. 또한 좋은 소식이 있으면 함께 널리 알리고, 축하하고자 합니다. 매월 1주, 3주 화요일마다 발송되는 인천문화통신을 활용해 다양한 소식을 전하세요. 다음 문화통신은 각각 8.2(화), 8.16(화)에 발행됩니다.
알리고 싶은 행사 내용을 http://me2.do/xRtWJVeH 링크에서 입력하시면, 기간에 맞춰 실어드립니다. 많은 활용 부탁드립니다. #인천문화예술 #동네방네 #알림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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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호 사진전 ‘1975, 귀향’(~07.24. 신포동 선광미술관)
사진작가 최광호의 사진전 ‘1975, 귀향’이 7월 24일(일)까지 선광미술관(인천 중구 신포로 15번길 4)에서 열린다. 올해 60세가 된 작가가 자신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한 12번의 전시 중 6번째 전시다. 선인고등학교 ‘독수리 사진반’ 시절 작품들은 물론 작가가 처음 사진을 시작하며 찍은 인천의 1970년대 풍경과 그의 가족에 관한 사진들이 가득하다. 소래포구를 지나는 수인선 꼬마열차, 바닷물에서 말리는 목재, 부평공동묘지, 만석부두 등 1970년대 인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중심으로 ‘죽음’을 주제로 한 시리즈 작품이 전시된다. 평일 오전 10시~오후 6시.
☞ 문의:032-773-1177

 

2IAP특강 ‘미술전문기자에게 듣는 미술판 이야기’
(07.20 수 17시, C동 공연장)

인천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기획자들을 위해 창작 및 기획 활동에 도움이 되는 주제로 진행되는 인천아트플랫폼 특강(7/20 수 5시, C동 공연장)이 7월에도 진행된다. 이번 달에는 미술과 문화재분야를 오랫동안 취재해오며 여러 권의 저서를 펴내기도 한 한겨레신문 문화부의 노형석 기자가 ‘미술전문기자에게 듣는 미술판 이야기’라는 주제로 다양한 미술계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효과적인 전시 홍보 방법은 물론이고 미술계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청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하며, 선착순 접수. 무료.
☞ 신청 http://goo.gl/forms/ln4An28QQMsWmAD82

 

3문화예술포럼-새로운 흐름에 주목하다
(07.20 수 19시, 신포동 북앤커피)

(사)인천민예총이 진행하는 2016문화예술아카데미에서 7월부터 11월까지 ‘문화예술의 새로운 흐름에 주목하다’라는 주제로 5차례에 걸쳐 문화예술포럼을 진행한다. 이 포럼은 매달 세 번째 수요일 7시. 신포동 북앤커피에서 진행된다. 문화예술정책부터 문화예술교육, 사회적경제, 시각예술, 생활문화예술 등을 다룬다. 7월 20일(수) 오후 7시에 열리는 첫 번째 포럼은 ‘문화예술정책의 흐름과 과제 그리고 인천’이라는 주제로 인천문화재단 손동혁 정책연구팀장이 발표를 맡았다.
☞ 문의:032-423-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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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림 호러나이트 1탄(07.21 목 19시, 추억극장미림)

미림극장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 7인의 모임 ‘미리미’에서 주최하는 특별한 영화상영회 ‘공포영화의 밤’이 찾아온다. 7월과 8월에 한번씩 ‘미리미’가 엄선한 2편의 영화를 동시상영하며,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을 오후 7시부터 상영하고, 중간 휴식 시간에 이벤트가 진행된 후 밤 10시부터 정식/정범식 감독의 ‘기담’이 상영된다. 19세 이상만 입장 가능하며, 입장료 8천원에 맥주가 제공된다. 선착순 예약 마감.
☞문의:010-6601-3508
 

5인천콘서트챔버 7월 기획연주 빙고탱고(7.22 금 19시 30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천콘서트챔버에서 신포동의 아카이브카페 빙고와 함께 ‘빙고탱고’ 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음악회를 준비했다. 무대와 객석이 나뉘어진 공연장이 아닌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간에서 진행되는 작지만 매력적인 공연이다. 현악기, 타악기, 아코디언, 색소폰의 편성으로 귀에 익숙한 곡부터 탱고와 보사노바 편곡까지 만날 수 있다. 초등학생 이상 관람 가능하며, 관람료는 15,000원(현장 예매)
☞ 문의:032-772-3338, www.inconcham.com
 
 

 

6한여름밭 잔디밭 영화상영(7.23 토 20시, 부평 미군부대 내 잔디광장)
부평구가 여름밤 야외에서 대형스크린으로 영화를 즐기는 자리를 마련했다. 영화는 첫눈에 반한 그녀를 위해 인생 첫 번째 노래를 만든 소년의 가슴 떨리는 설렘을 담은 ‘싱 스트리트’다. ‘싱 스트리트’는 ‘원스’와 ‘비긴 어게인’을 만든 존 카니 감독의 최근작이며, 개인 돗자리를 가져오면 편하게 볼 수 있다. 영화는 8시부터 상영되고 페이스페인팅, 에코백 만들기, 풍선&야광팔찌 체험, 부채 만들기 등의 부대행사는 6시부터 진행된다. 백운 2001아울렛 버스정류장 인근의 부평미군부대 잔디광장으로 오면 된다.
☞ 문의:032-509-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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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포트 라이브 딜리버리(7.23 토 / 7.30 토)
인천펜타포트 음악축제 ‘펜타포트 라이브 딜리버리’가 7월 30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열린다. 7월 23일에는 부평 문화의 거리 야외무대에서 마더팝콘, 파머씨, 사라플라이, 벌꽃필, 밴드민하 등이 공연한다. 같은 날 저녁 8시에 신포동 ‘흐르는 물’에서도 얼마 전에 나온 앨범 ‘흔치 않은 노래들’ 쇼케이스를 겸한 포크 공연이 열린다. 양병집, 장재흥, 김수현이 노래손님으로 나오며, 입장료는 만원. 7월 30일에는 청라 호수공원 분수무대에서 허니비, 열에아홉, 재즈볶음, 파티크래셔 등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오는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펼쳐진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http://pentaportrock.com/)에서 확인 가능하다.

 

8인천중창축제 ‘노래로 날다’ 참가자 모집
실내악단 아이신포니에타에서 인천 아마추어 중창단을 모집합니다. 학창시절 중창단 활동을 했던 분, 노래에 관심이 있는 30세 이상의 성인 남녀라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우리가 불렀던 그때 그 노래들, 함께 모여 다시 불러보는 기회입니다. 주 1회 동인천에 위치한 ‘콘서트하우스 현’에 함께 모여 레슨을 하고, 10월에 합동 연주회까지 진행합니다. 정진성, 정수진, 이선린 3명의 음악가와 함께 그 때 그 시절의 노래를 다시 부르고 배울 수 있습니다.
☞ 문의:032-834-1055, 010-9155-1055. http://i-sinfonietta.com

 


9 루체뮤직소사이어티 24번째 콘서트(7.29 금 19:30, 검단복지회관)

문학, 미술,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 음악을 결합한 신개념 콘서트를 선보이고 있는 연주단체 루제뮤직소사이어티가 24번째 콘서트 <김광석과 겨울나그네>를 마련했다. 딸바보에 메모광이었던 故 김광석의 삶과 슈베르트의 음악을 향한 여정을 담은 이 공연은 가수의 노래 없이 악기로만 연주되는 실내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 김광석의 노래와 슈베트르의 죽음과 소녀, 마왕, 아베마리아, 네 손을 위한 판타지 D.940 등을 감상할 수 있다. 7월 29일(금) 저녁, 상주단체로 활동 중인 검단복지회관에서 공연한다. 전석 1만원.
☞ 문의:032-561-4115
예매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enticket.com/pfm/sub01_view.html?p_idx=937




살고 싶은 도시는 ‘좋은 문화’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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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도시 인천’ 브랜딩 작업이 한창이다. 인천시가 ‘인천 음악’을 발굴 중이고, 부평은 ‘음악도시 부평’을 의제 설정하며 국비 사업까지 추진 중이다. 이는 인천에서, 혹은 인천사람들로부터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비롯됐기 때문이다. 실은 대중음악뿐이 아니다. 클래식 음악, 민중가요 역시 인천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확산됐다.

얼마 전 만난 김홍탁 씨는 기자에게 ‘인천이 왜 음악도시일 수밖에 없는가’란 질문에 해답을 안겨주었다. 인천에서 낳고 자란 그가 기타를 처음 접한 때는 동산중학교 2년 때였다. 신포동에 살던 그는 친구 집 2층에 세들어 사는 한 미군의 기타소리에 반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동산고 2학년 때부터는 신포동의 한 미군클럽에서 연주를 했고, 그 소문이 서울에까지 퍼져 서울에서 음악인을 꿈꾸던 가수 윤향기와 같은 동년배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그룹사운드인 ‘키보이스’ 였다. 이후 그는 신중현의 대척점에 서서 우리나라 로큰롤음악을 개척했다. 몇 년 전 만난 가수 송창식 씨도 마찬가지였다. 신흥동에 살던 그는 신포동 거리를 자주 오갔고, 미군클럽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들으며 음악적 감수성을 키웠다. 그런 인천에서의 성장은 훗날 그를 ‘세시봉’의 리더로 만들었다. 송창식은 이후 솔로로 독립하면서 팝송에 우리 전통음악을 접목한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을 하게 된 이유에 ‘인천’이라는 공간이 자양분처럼 깔려 있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은 어떨까. 인천시립교향악단 초대 지휘자인 김중석 선생은 우리나라 클래식의 효시가 ‘인천’이라고 말해줬다. 아펜젤러가 선교를 위해 인천에 들어오며 건반악기를 가져왔고, 교회음악을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인들이 성장했다는 것.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서울로 가서 활동하며 클래식음악을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그 역시 어린 시절 교회음악을 접하며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꿈을 키웠다.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백건우 씨도 청소년 시절에 인천에서 음악을 연주했을 정도로 인천은 클래식음악의 시발지였다. 민중가요 역시 70년대 후반 부평공단 등 인천의 공단을 중심으로 태동한 음악장르라 할 수 있다. 김민기 씨의 ‘상록수’, 박영근 시인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비롯해 많은 민중가요가 인천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민주화의 씨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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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 ‘세계 기록문화의 보고’라는 사실은 새로울 것도 없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200여 년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상정예문>이 인천에서 나왔고,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인 ‘팔만대장경’이 인천에서 판각됐다. 활자의 발명은 인류의 문명을 앞당기고 지식을 크게 확산시킨 ‘제 1의 정보혁명’이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인천에 들어서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음악’과 ‘기록문화유산’을 비롯해 유·무형의 역사·문화적 가치는 너무 많아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인천이 이처럼 문화적 가치로 출렁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천이 우리나라의 ‘인후’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과거 고려왕조가 수도로 천도했던 것이나, 조선의 개항지였을 만큼 인천은 요지였다. 해불양수. 인천은 한편 포용의 땅,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유독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인천을 삶의 터전으로 찾아온 것은 바다가 육지를 끌어안듯 안아주고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들은 그 어느 도시보다 개방적인 인천의 문화에 동화되며, 혹은 새로운 문화를 퍼뜨리며 ‘다양성의 문화’를 빚어냈고 그 과정에서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인천의 문화적 가치를 방치한 채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인천시가 현재 ‘정체성 찾기’ , ‘가치 재창조’ 사업을 추진 중이나 열정과 노력보다는 구호가 앞서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인천만의 가치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인천시민들이 맘껏 향유해 ‘좋은 도시에 살아서 행복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해선 ‘문화’를 우선해야 한다. ‘문화’의 가치를 중시할 때 그 문화의 향기로 인해 모든 분야에서 시민 삶의 질은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김진국 / 인천일보 문화체육부 부국장




함께하는 업사이클링으로 세상을 바꾸다 – 모두랑 업사이클링 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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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사이클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업사이클링(Up-cyling)은 upgrade + recycling의 합성어로 기존의 리사이클링보다 한층 더 발전된 보다 더 적극적인 환경보호 활동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폐소방호스로 가방을 만드는 것처럼 기존의 물건을 새롭게 재탄생시켜 다시 한 번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효용가치가 떨어진 물건에 제 2의 삶을 다시 주는 것이죠. 인천, 특히 부평을 중심으로 가죽, 한지 등을 활용하여 업사이클링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모두랑 업사이클링 공작소〉를 이끄는 가죽공예가 홍정기 씨입니다. 업사이클링뿐만 아니라 지역 활성화를 위해 24시간 쉼없이 뛰고 있는 그를 삼산1동 주민센터에서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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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홍정기 씨가 생각하는 업사이클링은 무엇인가요?
A. 간단하게 말하면, 업사이클링은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버려지는 제품을 자원으로써 다시 한 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실용성과 디자인을 더해서 그 자원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이끌어내는 작업입니다.

Q. 업사이클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가죽을 활용할 때는 정형화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가죽을 쓰는데, 제품의 본을 뜨고 남은 가죽은 대부분 처분해야 합니다. 상처도 있고 주름도 있고 농장에서 찍은 마크도 있어서 어떻게 보면 더는 상품으로 쓸 수 없는 가죽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처리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상품을 많이 만드는 가죽 소파 공장은 1년 동안 6백만 원에서 최대 1천만 원까지 비용이 드는데, 비용 부담이 상당합니다. 가죽공장 입장에선 막대한 처리비용의 부담을 덜고, 우리는 가죽을 선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가죽은 한 번 더 사용하자 하는 취지였습니다. 회의감이 들어서 인조가죽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그나마 만들어지는 가죽을 최대한 활용해보자해서 업사이클링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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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공작소에서는 어떤 종류의 업사이클링을 하나요?
A. 가죽은 물론이고 다른 강사들과 함께 한지공예도 하고 비누, 초 같은 것도 만듭니다. 한지를 활용해서 가구를 만드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분들도 남은 한지가 아까워서 가지고 계시지만 실제로 활용하지 않고 결국 다 버리게 됩니다. 이런 한지들을 활용해서 손거울이나 명함 케이스 같은 소품을 만들기도 하고, 손거울을 만들 때 보통은 두꺼운 종이를 본으로 쓰는데 이것 또한 버려진 폐목을 재활용하는 겁니다. 비누는 호텔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비누들을 다시 녹여서 재활용하고, 초도 비누처럼 사용하던 초를 다시 녹여서 재활용하는 데 음료수 캔이나 다 쓴 병에 넣어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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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런 강습이 자주 있나요?
A. 본업으로 가죽공예 강의를 한 건 10년 정도 되고 복지관이나 돌봄 교실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건 5년 정도 됩니다. 주민센터나 구청, 학교, 노인정 등에 가서 재능기부 차원에서 강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군대 내에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다양한 곳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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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업사이클링 강습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처음엔 혼자 직접 만든 업사이클링 작품을 작품 1개당 천원도 안 하는 가격으로 저렴하게 판매했고,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은 기부했습니다. 업사이클링을 알리는 활동을 하면서 기부도 하자는 목적이었죠. 하지만 혼자서 업사이클링을 알리는 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체감해서 강습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작품 전시회도 할 텐데 기억에 남는 경험을 하신 적이 있나요?
A. 가죽공예가로서 개인 전시회는 꾸준히 열지만, 강습 전시회는 정기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있어요. 전시회를 진행하려면, 수강생들이 전시회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해서 모든 수강생의 의견을 취합해야 하기 때문이죠. 정기적인 전시회는 열지 않고 결과 발표회처럼 진행하는 편입니다. 서울에 놀러왔다가 우연히 내 전시회를 찾은 제주도 청년이 있었는데, 가죽공예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실제로 그 청년은 제주도와 인천을 오가며 가죽공예를 배웠고, 제주도에서 가죽공예 일을 하게 됐어요. 전시를 보러 왔다가 학교에서 수업을 해달라고 부탁했던 선생님도 있었어요. 강남에 있는 학교라 거리도 멀고 청소년 수업은 진행해본 적이 없어서 망설였지만, 선생님의 부탁에 강습을 하게 됐죠. 그걸 계기로 청소년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고, 중학교 이상의 청소년들과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전시가 맺어준 신기한 인연들이죠. 
 
6Q. 업사이클링 강습을 진행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시겠어요.
A. 처음에는 업사이클링을 알리기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데서 큰 보람을 느꼈는데 지금은 소소한 곳에서 뿌듯함을 느끼고 있어요. 예를 들면, 어렸을 때 업사이클링을 배웠던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 같은 거죠. 친구들에게 업사이클링을 소개하고 자신감있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 보람을 느껴요. 가족 간의 소통 부재를 업사이클링으로 극복하고 변화한 가족도 만났어요. 아이와 엄마가 각각 수업을 들었는데 서로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게 된 후에 대화의 소재가 생겼다고 해요. 맞벌이 가정이라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데 이 기회를 계기로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도 많아지고 더 친밀해졌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작지만 소소하게 일어나는 변화들이 주는 힘 덕에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Q. 고민스러운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A. 재정적인 부담이 있죠. 인천문화재단에 지원을 신청하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구요. 인근학교와 주민센터 등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재능기부로 하고 있어요. 재료비를 받을 때도 있지만, 공작소에서 가져오는 재료로 수업을 하다보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행히 올해에는 재단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업사이클링 이외에도 지역 활동으로 청년문화상점의 고문 이사부터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업사이클링, 지역 활동, 가죽공예까지 하루가 바쁩니다.
  
Q. 직접 만드신 업사이클링 작품은 얼마나 되나요? 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A.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만드는 것도 의미있지만, 한 가지를 진화시키는 형태를 좋아하다보니 작품 수는 20여개 정도로 많지는 않습니다. 본업이자 주된 활동이 가죽공예여서 그런지 소파 제작용 가죽을 활용해 만드는 작품에 가장 애착이 갑니다. 작품을 만들 때,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는 작품을 단순하게 만드는 겁니다. 멋도 시각적인 차원에서 중요하지만, 멋보다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수적천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단단한 돌을 뚫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죽공예가 홍정기 씨의 작은 고민에서 시작한 업사이클링은 본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줬습니다. 어떤 이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었고 어떤 이는 가족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까요. 홍정기 씨 또한 가죽공예가이며 업사이클링 선생님인 동시에 인천과 부평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지역 활동가이자 기획가라는 다양한 모습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입니다. 혼자 작품을 만들어 판매하며 작게 시작한 업사이클링이라는 작은 물방울은 한 방울에서 멈추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을 바꾸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물방울은 무엇일까?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시민기자 오지현




혐오의 화살을 마주하기. – 제 12회 인천여성영화제 개막작 ‘불온한 당신’

‘2016년 5월 17일 새벽 1시, 나는 친구와 함께 집 앞 놀이터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고, 우연히 살아남았다.’

지난 5월, 강남역 근처의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다음날 SNS는 온통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고 말하는 해시태그로 가득했으며, 강남역 10번 출구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포스트잇을 붙이며 피해자를 추모하는 물결이 일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살해당한 희생자, 그가 살해당하기 전까지의 일상은 여느 평범한 20대 여성의 일상과 다를 바 없었다. 많은 여성들은 일상 깊숙한 곳까지 다가와 생명을 위협하는 혐오에 대해 분노했고, 함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표현을 통해 꼬집었다. 지금껏 혐오 범죄를 마주하면서도 그저 조심하자며 입을 굳게 다물었던 여성들이 점점 더 뾰족한 날을 세우는 여성혐오에 공감하며 연대를 통해 맞서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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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5일(금)부터 17일(일)까지 개최된 제 12회 인천여성영화제는 이제 막 혐오에 맞서 입을 열고 떠들기 시작한 여성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탠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문구를 캐치프레이즈로 선정했다. 사흘간 진행된 인천여성영화제에서는 12회차에 걸쳐 장, 단편 총 21개의 작품이 상영되었으며, 12회차 중 8회의 GV(감독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관객들이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나눌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올해 인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불온한 당신>은 빠르게 매진되며 큰 관심을 모았다. <불온한 당신>은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하여 쏟아지는 혐오의 시선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 이영 감독이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듣는 당사자의 시선에서 혐오에 맞서는 과정을 조명한 영화이다. 감독은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사회의 갈등을 유발하는 종북 세력으로 불리는 모습을 지적하며 ‘과연 불온한 사람은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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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70대의 선배 레즈비언인 바지씨 이묵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바지씨란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이 흔하지 않았던 과거, 레즈비언 사이에서 남성적인 사람을 일컫던 말로 요즘의 부치(butch)와 같은 단어이다. 이묵은 ‘여자깡패’라고 불리며 한 자리에 모일 수조차 없던 여성 동성애자들의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는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하는 혐오세력들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혐오의 양상이 집단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번져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카메라는 일본으로 넘어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의 모습을 비춘다. 논과 텐은 대지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를 잃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가족이 아닌 친구는 실종신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를 잃고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껴 커밍아웃을 결심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커밍아웃이 타인의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관계를 알리고 목숨을 지키기 위한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부당한 대우도 감내하겠다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생존권까지도 위협당하는 사회적 약자의 극단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과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조항을 사수하려는 학생들의 모습,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그리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서울시민인권헌장의 선포가 거부당한 데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접점이 없을 것만 같던 이들은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불온한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한 데 묶인다. 영화는 계속해서 사람답게 살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과 그들을 불온한 세력이라고 부르며 혐오하는 이들의 모습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혐오세력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가장해 사회 혼란을 부추기지 말라고 주장하다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이유로 들어 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기도 한다. ’애미 애비도 없느냐‘, ’나라를 말아먹을 놈들이다‘ 등 논리는 없고 혐오와 폭력으로 점철된 말과 삿대질을 퍼붓기도 한다. 이처럼 모순적이고도 비이성적인 혐오세력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실소와 비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웃음을 터뜨리던 관객들은 이내 혐오의 화살을 직접적으로 맞는 소수자들의 입장에 이입하며, 함께 분노하거나 울분을 터뜨리기도 한다. 신문 기사, 뉴스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소수자들의 현실을 접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매체는 그들의 이야기를 한 발짝 떨어진 입장에서 조명하기 때문에 그들을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대상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 <불온한 당신>은 관객들로 하여금 혐오의 대상인 당사자의 위치에 서서 날아오는 혐오의 화살들을 마주보며 그 폭력의 크기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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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혐오세력의 북소리와 함께 끝이 난다. 크게 울리는 북소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공기와 더 이상 그를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경종이기도 하다. 노동자, 학생, 성소수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만을 향했던 혐오의 화살은 이제 어느 곳을 향할지 예측할 수 없다. 감독은 혐오에 대해 침묵으로 동조할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혐오를 향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것을 제안한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 그러니까 한마디로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 우리 사회는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불온한 사람’이라 명한다. 그러나 점점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며 날을 세우는 혐오의 화살 앞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공지영은 그녀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혼자서 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사실은 함께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혐오의 화살에 맞서기 시작한 이들이여. 겁내지 말자. 작은 목소리는 모여서 큰 울림을 일으킬 것이며 연대를 통해 단단해진 방패는 혐오의 화살을 막아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글 / 인천문화통신 시민기자 김진아




뉴스 큐레이션(2016.07.06~07.18)

‘노희경’이 만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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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대 노인들의 ‘잔인한’ 인생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종영했다.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 진정성 있는 대사, 대본을 100% 표현할줄 아는 노배우들의 연기력. 드라마는 그 이상의 합작품이었다. “늙은이들 얘기, 지겹다고 하지 않을까?” 우려와 달리 20대부터 60대까지 시청자 층은 폭넓었다. 여러 매체에서 긍정적인 메시지가 쏟아진 가운데 시사IN이 ‘노인’ 아닌 ‘여성’에 주목한 TV 평론가 김선영의 글을 실었다. 그는 상처 입은 이들의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해온 작가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치유해야 할 상처로 여성 이야기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디마프’의 미덕은 여성 연대, 자매애, 여성의 의리 등 ‘여성들의 관계’를 강조한 데 있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판타지라 해도 우리에겐 더 많은 여성 치유의 드라마가 필요하다.”

갯가 여인네들 ‘애환의 몸짓’, 나나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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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의 부녀자들 사이에서 이름 없이 구전되던 노래. 고기잡이배의 무사귀환, 고부갈등을 직설적으로 노래했던 나나니 타령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몸짓과 얽혀 ‘나나니춤’으로 신생했다. 1958년 영종도에서 처음 춤을 발견한 이선주 전 인천예총 지회장은 책과 경연대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춤을 알렸다. 타 지역의 향토춤보다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인천의 나나니춤. 한때는 천박하다 질타 받았지만 지금은 신명나게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한다.

개•돼지들에게 정치풍자가 가당키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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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민중은 개•돼지’ 발언을 소신 있게(?) 퍼트린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을 파면했다. 소설가 조정래는 한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민중이 개•돼지면 공무원은 기생충’이라고 맞받아쳤다. 미디어오늘이 시사개그가 사라지고 풍자가 악이 되는 세태를 꼬집었다.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라디오 역시 ‘식물방송’에서 벗어나 ‘멸종 수순’을 밟고 있다고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전한다. 또 한류를 지향한다면서 노골적으로 비판적 웃음을 말살하는 정부 탓에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건 ‘헐벗은 걸그룹’밖에 없을 거라고 한탄한다. ‘우민화를 넘어 동물이 되는 먹방 푸드 포르노나 봐야 하는 상황’, 2016년 한국판 동물농장이 따로 없다.

울고 있는 빙하, 눈물 닦는 ‘북극 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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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자의 위대한 항해’를 꼭 한 번은 소개하고 싶었다. 항해사 김연식 씨는 지난 호에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가 환경보호 캠페인으로 참여한 북극 연주 사진과 영상을 소개했다. 선율이 물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가 싶더니 멀리서 빙하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합성이 아니다. 실제다. 자연이다. ‘음악과 울음의 만남’. 이번 호에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바다와 생태계를 파괴하는 트롤어선 이야기를 실었다. 트롤어선은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어망을 쇠줄에 매달아 해저에 늘어뜨린다. 어망이 바다를 긁으며 해저 생태계를 파괴한다. 연평도 인근에 매일 출몰하는 중국 어선도 규격을 어긴 그물과 바닥 끌그물로 바다는 물론 어민의 목숨줄을 위협한다. 지난 10일 방영된 JTBC ‘이규원의 스포트라이트’는 서해바다에서 날뛰는 해적떼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재은(뉴스 큐레이터)




40년 한결같은 맛을 지켜온 우정일식 홍혜정 사장님

1인천문화재단은 2015년부터 문화예술 기부캠페인 ‘아트레인’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인천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기부자인 아트레인의 탑승자들을 차례로 만나보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중구 신포동 일대에서 40년 동안 영업을 이어온 일식당 ‘우정일식’의 홍혜정 사장님과 만났습니다. 2대에 걸쳐 인천의 맛을 간직해오고 있는 우정일식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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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정일식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희 가게는 1976년 가을, 선친께서 중구 신포동에 자리를 마련해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1970년생이라 직접 기억하는 부분이 분명하지 않고, 일전에 가게 화재로 예전 자료들이 많이 소멸되어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아 아쉽네요. 개업 당시 함께 하셨던 저의 어머니와 이모님 말씀으로는 신포동 당시 자선소아과 골목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십니다. 연안부두 어시장에서 직접 들여오는 생물로 매운탕, 회 등 일식 요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Q.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던 당시의 기억은 어떠한가요?
A. 70년대 신포동은 인천 최고, 유일의 번화가였어요. 당시에는 일식식당을 보통 화식집이라고 했는데, 인천에 화식집이 손에 꼽을 정도로 몇 안 되던 시절이었죠. 선친께서는 가게를 시작하기 전 일본인 주방장에게 기술을 직접 배우신 후 독립하셨어요. 아버지께서는 국내 조리사이시면서 1회 자격증 취득자이신데, 무와 사과로 돌려깎기 연습을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선합니다.

5Q. 가게를 운영한 지난 40여년의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A. 특별했던 기억인데요. 1987년에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우리 식당을 방문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오셨었죠. 그날은 신포동 전체가 노란색으로 꽉 차 있었어요. 후보의 수행원들이 노란색 점퍼를 입고 이 일대를 돌아다녔거든요. 아침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가게로 전화가 빗발쳤어요. 국정원(당시 안기부)에서 계속 전화를 해서 예약 인원이 몇 명인지, 메뉴는 무엇인지, 가게 위치와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물어봤었죠. 그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대구지리를 맛있게 드시고 가셨어요. 당선되면 꼭 다시 먹으러 오겠다고 말씀하셨었는데, 그 해 대선에서는 낙선하셨더랬죠.

Q. 인천 전역을 보면 참 많이 변했다고들 하죠. 사장님이 기억하시는 인천, 특히 인천역과 신포동 일대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다른가요?
A. 신포동은 사실 인천의 다른 곳보다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전의 모습이 많아 남아있죠. 지금의 중구청 자리에 있던 인천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하고, 연수동이 생기면서 ‘인천 제일’이라는 말조차 유명무실해졌으니까요. 시청 이전 당시 저희 가게도 구월동으로 이전을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선친께서 신포동을 떠나기 싫어하셨던 터라 신포동에서 지금의 위치인 항동으로 자리를 살짝 옮겼습니다.

Q. 1980~90년대 동인천과 신포동이 번화하던 당시의 기억들을 듣다보면, 이 일대에 많은 문화공간들이 있다고 하던데요. 이 당시 10대와 20대의 시절을 보냈던 사장님의 추억 속 공간들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인천에서 만남의 장소는 단연코 ‘대한서림’ 앞이었어요. 대동학생백화점 2층에는 DJ가 음악을 틀어주던 분식집이 있었구요. 감미당에서 쫄면을 먹고, WAVE에서 청바지를 산 후, 4층 카페에 앉아 파르페를 먹으며 최신 뮤직비디오를 보곤 했죠. 심지음악감상실에서 노래도 신청해보고 지하상가 레코드샵에서는 원하는 음악만으로 구성된 나만의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어주기도 했었어요. 신포동 칼국수집 골목에서 칼국수를 먹으며 최신 외국영화를 보고, 애관극장이나 미림, 오성극장에서 홍콩 영화를 찾아보곤 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없어진 공간이고 추억 속에 남아있는 문화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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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개인 사업을 하다보면 여가 시간도 많지 않을 텐데요. 문화예술은 주로 어떻게 즐기고 접하시나요?
A. 예전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 외에 다른 문화생활을 즐기려면 서울로 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요즘에는 인천에서도 뮤지컬이나 전시회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가게를 운영해야하니 열심히 찾아서 보러다니기는 어렵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인천문화재단을 통한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Q. 인천문화재단의 문화예술 기부캠페인 아트레인에 초기부터 함께하고 계신데요. 인천 시민 한 사람으로써 아트레인에 바라는 점이나 문화예술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는지 개인적인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A.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 일대가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공간과 거주지로 조성되면 어떨까 싶어요. 예전의 서울 홍대 앞처럼 일상과 예술이 함께하는 지역이 된다면 좋지 않을까요? 개항장이라는 옛 모습과 흔적들이 문화예술과 어우러지면 한층 예술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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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으로, 우정일식에서 추천하는 여름메뉴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릴께요.
A. 저희 가게의 주력 메뉴는 매운탕인데요. 더운 여름철에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서 시원한 소바 정식을 추천합니다. 일반적으로 메밀육수 원액에 물을 타서 내놓는 곳이 많은데, 저희 가게에서는 직접 육수를 뽑아 만들기에 깊은 맛을 느끼실 수가 있답니다.

[아트레인 후원의 집 4호]
상호명 : 우정일식
위치 :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03-1(항동5가 1-1)
운영시간 : 11:00 ~ 22:30, 첫째주와 셋째주 일요일 휴무
예약문의 : 032-761-3232
추천메뉴 : 생선회(숙성 선어회), 매운탕, 메밀소바


6인천 문화예술의 생활 속 거점이 될 ‘아트레인 후원의 집’을 찾습니다.
‘아트레인 후원의 집’이란 인천의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공식 업체를 말합니다. ‘재단’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후원의 집’을 홍보하여 이용을 권장하고 ‘아트레인 후원의 집’의 번영을 지원해 매출 신장과 인지도 제고를 지원합니다. 이를 통해 재단과 후원의 집이 상호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자 합니다. 후원의 집은 인천문화재단과 상호 마케팅이 가능한 상점/업소/업체는 누구나 가능하며, 월 1만원 이상의 기부금 약정 시 업체의 성격과 공동 마케팅 가능 여부 심사에 따라 자격을 부여합니다.
후원의 집 관련 문의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032-455-7114, artrain@ifac.or.kr

정리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주현수




서시(序詩)의 시인 윤동주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전국 유일의 공공 종합문학관입니다. 근대문학을 중심으로 한 근대 한국학 자료 약 3만 점을 소장하고 있는 콘텐츠 중심형 문학관이기도 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 자료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문학관에 직접 오셔서 한국 근대문학이 가진 의미와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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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시(序詩)」의 시인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의 유고시집으로 1955년 간행된 재판본이다. 연희전문 재학 시절 은사인 이양하가 일제 검열의 통과 여부를 걱정하여 출간을 만류해 시인의 생전에는 시집이 출판되지 못했다. 광복 후 동생 윤일주가 형 윤동주의 시 31편을 골라 초간본(1948)을 간행하였으며, 1955년 출판된 증보판에는 윤동주의 친구였던 정병욱의 자문을 바탕으로 총 93편의 시를 실었다. 5부로 구성된 증보판에는 「서시」가 시집의 첫머리에 실려 있다.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웠던 해방기~1950년대에 재판을 찍었다는 사실은 윤동주가 일찍부터 큰 인기를 끌었음을 알게 해준다. 이 책은 현재 복각본으로 다시 출판되어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윤동주에 큰 관심을 갖게 한 커다란 계기를 제공한 책이다.

함태영 /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사




Would you be my model? 나의 모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작가 서해영

 

Would you be my model? 나의 모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작가 서해영

1작가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거리로 나간다. 가방 안에는 흙과 석고, 조각을 위한 재료들이 담겨있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두상을 만든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던 거리의 예술가들과 조금 다른 점은 돈을 받지도, 만들어진 두상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두상을 만드는 시간조차 일정하게 정해두지 않으며, 5분이든 1시간이든 모델로 참여하는 사람이 원하는 시간 안에 조각을 만든다. 완성된 조각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어 모델과 한 장씩 나눠 갖은 후 부숴버리고 이들이 나눈 시간과 과정은 사진이나 영상과 같은 기록으로만 남는다. 서해영 작가가 지난 3개월 동안 호주 시드니에 머물며 진행한 “Would you be my model?”(2015) 프로젝트다. 이 작업은 다양한 문화, 다른 언어를 갖은 사람들과 시간이나 기억을 공유하는 프로젝트로 불특정 다수에 가까운 개인과 느슨하게 ‘관계 맺기’의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본인이 마주한 특정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과 작업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며 우연처럼 불거지는 화학작용을 만들어 낸다.
작가 서해영은 <산에서 조각하기> ,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등 관념적이고 결과중심적인 조각을 거부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전통적인 매체의 한계와 가능성을 실험해오고 있다. “Would you be my model?” 프로젝트는 2016년 8월 말부터 9월 말까지 진행되는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참여전시에서 매주 3일간 진행될 예정이고 누구나 작가의 모델이 될 수 있다.

2Q. 거리에서 사람들의 두상조각을 만들면 참여한 사람이 돈을 주고 갖고 싶어 하거나, 작가로서도 없애지 않고 남기고 싶을 것 같은데?
시드니에서 거리 조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에 하나가 “How much?(얼마에요?)”였다. 나는 그때마다 “It’s free~!(공짜)”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대신 조각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지나갔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기뻐하며 한참을 기다리면서도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사실, 대부분의 거리예술가들은 자신의 재능과 예술행위를 돈으로 보상받고, 사람들은 돈으로 그 예술의 가치를 인정(표현)하기 때문에 나의 거리예술은 좀 이상한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돈’을 교환의 가치로 두지 않았던 것은 내가 모델을 만나고 조각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 동등한 관계에서의 ‘소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시드니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흥미로웠고 그 얼굴 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내가 할 수 있는 ‘조각’을 통해서 담아내고 싶었다. 만약 내가 돈을 받고 조각을 만들었다면 그들을 더 닮게 만드는 일에만 열중해야 했을 것이고 자유로운 대화는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대신 즉석사진으로 기억을 공유하고자 했다. 물론, 몇 개의 초상조각은 석고캐스팅을 했다. 작업의 내용과는 모순되지만 내가 만든 것을 부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고 하루에 1개의 두상은 뜨기 시작했다. 시드니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조각 총 10개가 겉틀 상태로 남겨져 있고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초상조각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인천은 한국이지만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서울과는 매우 다른 곳이라고 느껴진다. 이주민의 역사가 깊고 그만큼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간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위치한 중구와 그 주변을 여행하면서 내가 잠시 머무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각으로 담아내고 싶다. 이번에는 인천의 여러 장소에서 사람들의 초상조각을 만들고, 전시장에서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작업을 할 계획이다.

Q. 기존의 관념적이고 결과중심적인 조각을 거부하는 반모더니즘적 성격이 눈에 띈다. 이런 작업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오랫동안 전통적인 조각교육을 받아오면서 관념적이고 결과중심의 획일적인 작업방식에 한계를 느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조각은 무엇일까” , “현대 조각의 ‘조각’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가지고, 나 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조건과 경험을 반영하는 과정 중심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조각의 방법론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Q. 작업 과정에 중심을 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특히 <산에서 조각하기>는 그 의도를 잘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작업에 대해 설명해 달라.
배낭을 꾸려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최대 무게의 작업재료, 도구, 옷과 음식 등을 꾸려 산에 올라가서 산의 풍경, 돌멩이들을 조각으로 만든다. 스스로 운반이 가능한 재료들을 가지고 산에 올라 조각을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은 나의 신체적인 조건에 의해 재료의 양과 내용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관습적인 조각의 방법론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산에서 조각하기> 등의 작업들을 통해 ‘등산’이라는 일상적인 노동과 ‘조각하기’라는 미술의 노동을 결합한다. 즉, 내 삶에서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던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상호연결할 수 있게 만들고, 순수한 예술의 영역을 지지하는 전통적 조각의 입장을 위반하는 것이다.
하나의 산 조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 번의 산행이 필요하다. 첫 번째 산행에서 주로 작업 장소를 찾아 재료를 옮겨놓는다. 두 번째 산행에서 추가로 흙과 석고, 물을 운반한 후에 흙으로 조각을 만든다. 조각 과정은 카메라 앵글을 이용해 조각이 실제의 산 풍경을 가리는 형식으로 촬영된다. 카메라 앵글 안에 들어오는 실제 산의 풍경을 흙으로 가리는 방식으로 만든다. 흙 작업은 석고로 겉틀을 뜬 다음, 석고 틀만 가지고 산을 내려온다. 흙 작업에 썼던 흙은 수풀 속에 버리고, 작업실에 가지고 내려온 틀은 다른 물질로 캐스팅한다. 산에서는 재료, 공간, 날씨, 운반, 관찰의 한계에 의해 제한된 조각의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존의 ‘멋진’ 조각이 아니라, 개인의 구체적인 조건과 한계가 반영된 ‘현실적인’ 조각을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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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구름을 잡기 위한 도구>와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는 작가가 사용하거나 만지는 도구들을 적극적인 형태로 변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작업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구름을 잡기 위한 도구>는 인공암벽을 즐겨 하는 내 일상적인 취미활동에서 시작됐다. 인공암벽에 붙어있는 홀드(오르기 위해 만들어진 돌기, 덩어리)를 유기적인 형태로 만들어 비어있는 공간에 설치한다. 이 홀드들은 제작 과정에서 내 손에만 맞게 만들어졌다. 내가 만든 이 홀드들은 도구의 기능과 조각의 형식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완성된 나만의 도구(홀드)들은 흘러가는 구름영상과 중첩하여 암벽타기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벽에 설치했다.
도구와 조각을 결합하는 방식은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라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여성 조각가인 나 자신에게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것으로, 대나무 자나 기타 물건을 이용하여 헤라(조소도구)등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건 본래의 기능은 조각을 위한 도구라는 새로운 기능으로 전환되고,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했던 재료와 도구가 조각의 최종적인 결과물로 등장하면서 전형적인 조각의 상황을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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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시리즈는 다양한 형태의 협업과 커뮤니티 과정으로 발전시켜 나갔는데 커뮤니티 작업이 궁금하다.
기존의 획일화된 작업 환경에 문제를 느끼고 여성의 조건과 상황에 맞는 대안적인 작업환경을 만들어보고자 실제 협업을 시도하고 이를 위한 협업의 도구를 제작했다. 다양한 조건과 상황에 놓여있는 여성들과 협업을 한다면, 조금 더 여성의 다양한 조건과 생각들을 반영한 실질적인 도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온․오프라인으로 7명의 여성들을 모집해 한 달 동안 하나의 타피스트리(Tapestry)를 만들어 나갔다. 여성들의 협업을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게 만드는 도구가 필요함을 느꼈고, ‘소통’을 위한 도구로 ‘타피 원형 틀’을 만들었다. 이 틀은 원형테이블의 형태를 가지고 있어 참여자들 간의 물리적인 만남을 갖게 하고, 그 안에서 많은 대화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작업적인 부분에서도 서로 영역에 영향을 끼치는 원형구조와 릴레이 타피스트리 작업방식으로 서로간의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 타피스트리(Tapestry): 손으로 직물을 짜서 이미지를 만드는 섬유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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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지?
엄마의 고향이 인천 섬이다. 그곳은 ‘백아도’라는 외딴섬으로 인천에서 덕적도로, 덕적도에서 통통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백아도는 누구나 알만한 관광지도 아니고 활발한 어촌마을도 아니며 이제는 군사지역도 아닌 섬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그곳은 매우 쓸쓸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인적이 많지 않은 엄마의 고향, 백아도를 과거와는 다른 관점, 다른 입장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고, 엄마가 기억하는 그곳의 모습과 지금 내가 바라본 그곳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었다. 이러한 나의 관심이 문화적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그곳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은 시도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천아트플랫폼에 머무는 기간 동안 인천의 다양한 지역의 모습을 작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보여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

정리 : 오혜미 /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