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방네 알림판(2016.08.16.~09.05)

인천에서 벌어지는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각종 행사들의 소식을 한번에 전해드립니다. 또한 좋은 소식이 있으면 함께 널리 알리고, 축하하고자 합니다. 매월 1주, 3주 화요일마다 발송되는 인천문화통신을 활용해 다양한 소식을 전하세요. 다음 문화통신은 각각 8.2(화), 8.16(화)에 발행됩니다.
알리고 싶은 행사 내용을 http://me2.do/xRtWJVeH 링크에서 입력하시면, 기간에 맞춰 실어드립니다. 많은 활용 부탁드립니다. #인천문화예술 #동네방네 #알림판 #소식
 
1
문화예술교육 자율학습 및 시범 프로젝트 지원사업 공모(~8.23까지)
인천문화재단이 지역 내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자발적인 학습이나 시범 프로젝트를 실행하고자 하는 개인 및 그룹을 대상으로 공모 접수를 진행한다. 점점 대규모화 되어가는 지원사업의 문턱을 낮추어 사회적, 예술적 관점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탐구하고, 실험하며, 실행하고자 하는 분들을 찾고 있다. 지원규모는 자율학습지원 최대 150만원, 시범 프로젝트지원 최대 300만원이다. 신청 기간은 8월 23일(화)까지이며, 자세한 사항은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http://www.ifac.or.kr/board/view.php?code=notice&sq=1698) 공지사항을 참조하면 된다.
☞ 문의 032-455-7174

 

2문화예술, 사회적경제조직의 운영사례를 통해서 본 가치와 방향성 (8.23 오후 4시, JST제물포스마트타운)
<인천아트마켓>에서 <인천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공동으로 토론회를 마련했다. 인천의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운영사례부터 문화예술후원 사례 등 문화예술이 사회적경제조직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오는 10월 20일부터 이틀간 하버파크호텔에서 열리는 <인천아트마켓>에서는 라운드테이블과 부스전시로 홍보할 공연예술, 영상예술, 시각예술분야의 단체와 예술인 참가 신청을 9월 23일까지 받고 있다. 신청서는 www.2iartmarket.com 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 문의 032-513-7802

 

656회 목요문화포럼 ‘문화예술프로그램과 도시재생’(8.25 오후 7시, 신포동 북앤커피)
인천문화재단 56회 목요문화포럼이 오는 25일(목) 오후 7시에 열린다. ‘문화예술프로그램과 도시재생’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지는 이번 포럼은 문화예술프로그램이 지역의 정체성 확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성장과 재생의 기회를 마련하는지 논의하는 자리다. 인천의 지역성을 재발견하고 있는 음악프로그램 ‘사운드바운드’에 대해 이규영 루비레코드 대표, 숭의평화시장과 용일자유시장을 중심으로 한 시장 공간의 가능성에 대해 백지훤 거리울림 대표가 각각 발제한다. 주제별로 배영수 기자와 황유경 전 남구청 전문위원이 토론자로 나선다. 신포동 북앤커피에서 열리며, 관심있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문의는 032-455-7133
☞ 참가신청 https://goo.gl/9eoeFj

 

72015 인천문화예술연감 발간
2015년 인천문화예술연감이 발간됐다. 인천문화재단이 2006년부터 꾸준히 발간해 온 인천문화예술연감은 매해 인천의 문화 예술 활동 현황 및 환경을 체계적으로 조사·분석하여, 인천문화예술의 전반적인 흐름 및 현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2015년 인천 문화예술 정책과 재정 분석, 인천문화재단 사업 현황, 그리고 인천 문화예술 관련 언론보도 등이 실려있다. 특히 인천의 문학, 공연예술, 시각예술, 전통예술, 문화예술교육, 지역문화축제, 영상문화, 생활문화까지 영역을 세분화시켜 각 분야의 문화예술 현상흐름을 파악하게 하는 한편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개별 총평을 실어 이해를 도왔다. 2015 문화예술연감은 종이책으로 따로 발간되지 않으므로, 재단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아 확인할 수 있다.
☞ 문의 032-455-7136

 

3서울․인천․경기․강원센터 협력사업-사회문화예술교육 운영단체 워크숍(8.30~31, 인천 외)
서울․인천․경기․강원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공동 주관으로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운영단체 를 위한 워크숍을 연다. 지원센터뿐만 아니라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선정 단체,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운영단체가 폭넓게 참여하는 이번 워크숍에서는 기획, 관계, 성장, 자생을 주제로 지열별 사례를 함께 나누고 지원사업의 성과와 한계, 대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8월 30일(화)~31일(수) 이틀간 진행되며 지역별 네트워크, 주제별 토의, 현장탐방으로 구성된다.  ☞ 문의 032-455-7173

 

4인천아트플랫폼 오픈스튜디오 및 연계전시 웻페인트 WET PAINT(08.26~09.25 12-18시, 아트플랫폼 B&G1 갤러리)
인천아트플랫폼에서 34개팀(50명)의 2016년도 입주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 웻페인트(Wet Paint)를 준비했다. 창작 과정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면들을 담아내는 한편 예술가로서 창작의 고통들을 엿볼 수 있다. 전시 오픈일인 8월 26일(금)에는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콜로키움[연계의 (불)가능성 _동시대 미술의 단면들]이 열리고, 오후 6시부터 김순임 개인전 연계 퍼포먼스[김동호 연출 ‘아토포스]가 진행된다. 전시 기간 중에는 다양한 프로젝트와 공연이 진행되며 특히 9월 23일(금)부터 25일(일)까지 3일 동안 작가들의 작업실을 공개하는「2016 플랫폼 오픈스튜디오(2016 Platform Open Studio)」도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8월 26일(금)부터 9월 25일(일)까지 열린다.  ☞ 문의 032-760-1003
 
 
 5
IAP특강 ‘미술품 재료와 보존복원의 이해’(08.31 수 17시, C동 공연장)
인천아트플랫폼 특강(8/31 수 5시, C동 공연장)이 8월에도 진행된다. 이번 달에는 예술작품과 유물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아프면 치료해주는 ‘예술품 의사’이자 예술작품 보존수복 전문가인 김겸 박사가 강사로 나선다.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기존 작품의 모습을 건강하게 보존하는 일도 중요하다. 작품의 미적 가치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재료는 어떻게 선택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작품이 손상되었을 때에는 어떤 과정을 통해 복원해야 하는지, 미술품 분석과 복원 기술이 미술품 진위 감정에 어떻게 활용되는지 등을 강연자의 오랜 실무 및 연구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이야기로 들어볼 수 있다. 김겸 박사는 국립현대미술관 보존과학팀에서 오랜기간 근무하였으며, 이한열의 운동화가 복원되는 과정을 그린 김숨의 장편소설 ‘L의 운동화’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신청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하며, 선착순 접수. 무료. 
☞ 신청 https://goo.gl/forms/xNyF6mGxByjDNHsL2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를 걷다

1

2년차. 대개의 일이 그렇듯 <영화, 소(疎)란(LAN)> 역시 2년차의 장단점을 겪고 있다. 참여자 대부분이 전체 과정을 어떻게 진행되는지 흐름을 알기에 여유롭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영화를 만드는 매 순간이 새롭지만은 않기에 설레는 마음이 덜하다는 것은 단점이다. 참여자와 교사들 사이에 수업의 시작부터 약간이나마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장점이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가져야 할 긍정적인 긴장이 약해지는 것은 단점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명료하지 않은 경계선은 교사 역할로서 언제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조금만 긴장을 놓으면 어느새 설렘도 기대도 없이 익숙하고 무료한 기능의 반복으로 빠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2

<영화, 소란>은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2년째 시도하고 있는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이다. 아,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경계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펼쳐놓고 현대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함께 돌아보고자 하는 영화제이다. <영화, 소란>은 인천을 삶의 공간으로 갖고 있는 다양한 디아스포라들의 이야기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스스로 드러내고 더 많은 경계인들과 만나려고 한다. 올해는 다문화사랑회 새꿈학교, 한국인천화교중학 청소년, 아이다마을 사이렌, 베트남예술단 무지개언덕 이렇게 4개 팀과 함께 하고 있다. 3회였던 작년에는 베트남 청장년, 화교청소년, 국제결혼 2세 청소년, 중도입국 중국청년들과 함께 생활 속 이야기를 찾아 영화화했다. 자화자찬일 수 있지만, 작년 <영화, 소란> 상영회 자리는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영화 속에 담긴 이야기들의 진정성과 친숙함은 함께 했던 관객들에게 깊이 다가갔고, 영화를 만든 이들은 화면 안에서도 무대 위에서도 관찰당하는 사람이 아닌 주인공으로 반짝였다.

5

물론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참여자들과 서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위한 관계 형성에 필요한 시간, 영화적 완성도를 좀 더 높이기 위한 장비와 노력, 상영회에서 단순한 주인공을 넘어 주인으로 자리하기 위한 참여자들의 대화와 준비 등. 굵직굵직한 것만 떠올려도 아쉬운 점은 많다. 올해 <영화, 소란>을 준비하면서 작년에 아쉽게 여겨졌던 부분을 조금 덜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앞서 말했던 것처럼 혹시라도 빠질 수 있는 2년차의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수다를 나누고 싶었다. 흔히 영화를 만드는 교육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보통은 카메라를 만지거나, 연기를 하거나, 폼나게 “레디 액션!”을 외치는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우리 교사들이 제일 앞세우는 건 ‘수다’ 그 자체다. 경계 없이, 금기 없이, 소외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떠드는 수다, 이 수다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꿈에 그리는 영화제작 교육프로그램의 이상이다.

일상에서 영화는 오락 혹은 예술로 접근된다. 맞다, 영화는 오락이거나 예술이거나 혹은 그 둘 다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오락을 돈과 시간을 들여 소비하고 치워버리는 것쯤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예술을 평범함과는 동떨어진 난해한 그 무엇, 특별하게 예술가라 지칭되는 이들의 고독한 작업쯤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영화제작 교육프로그램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니, 적어도 <영화, 소란>에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영화는 누군가의(혹은 누구나의) 삶에서 꼭 말해져야 하는 이야기를 잘 다듬어 전하는 놀이며, 미디어며, 예술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듣고, 말하고, 서로를 책임지는 일이다.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오락이 되고 예술이 된다.

4

영화제를 한 달도 못 되게 남겨둔 현재, <영화, 소란>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5개 교실 모두 촬영을 갓 마쳤거나,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곧바로 편집과 함께 4개 국어로 대본 번역을 시작한다. 상영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전 준비를 위한 참여자 워크숍도 예정되어 있다. 그야말로 한창 바쁜 와중이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의 3개월을 돌아보는 것을 잠시 미뤄두고 있다. 목표로 삼고 있고, 중요한 원리로 삼고 있는 것들을 잘 지키고 있었는지, 작년에 아쉬워했던 일들은 얼마나 보완했는지, 올해 참여자들과 잘 만나고 잘 떠들었는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거들었는지. 영화제를 마치고 나면 곧바로 교사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고, 참여자들과 함께 확인하려고 한다.

3

나는 <영화, 소란>을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이 하나의 프로그램 참여자를 넘어서 디아스포라 영화제의 주인공이며, 주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사실 작년 영화제를 마친 이후로 올해 초까지 무엇보다 아쉬웠던 건, 참여자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고 대화하면서 함께 하는 모두가 <영화, 소란>의 주체로 설 수 있는 길을 닦지 못했던 일이었다. 앞으로 남은 한 달, 4회 디아스포라 영화제를 잘 준비해서 치르고 나면 올해는 꼭 내년을, 세 번째 <영화, 소란>을, 5회 디아스포라 영화제를 향해 빠르되 탄탄한 걸음을 걷고 싶다.

글 / 여백(사회적협동조합 인천여성영화제 교육전문위원)
사진 / 영화, 소란




풋풋하고 새로운 열정으로 가득한, 그래 ‘바로 그 곳’

1
청년예술가의 낯선 등장을 환영하는 <바로 그 지원>은 당신의 소중한 작업을 위해 사람, 공간, 자원과의 연결을 돕는 소규모 지원 프로젝트입니다. <바로 그 지원>은 공모 과정으로 진행하지만, 서류로만 평가하지 않고 인천에서 먼저 활동했던 동료 청년예술가들이 당신의 작업을 응원하고 지역과의 연결을 돕습니다. 심사위원도 있지만 그들의 역할은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걸고 가능성을 찾아내고 당신의 작업을 지지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 지원>에서는 매달 청년예술가의 새로운 작업을 만나고 함께 예술을 하는 동료를 만날 수 있습니다. 

 
2
작년 여름 처음 시작되어 올해로 2년차를 맞이한 인천문화재단의 ‘바로 그 지원’, “청년 예술가의 낯선 등장을 환영”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7월에도 많은 2~30대 예술가들이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이날 프리젠테이션 파티에서는 총 24팀의 프로젝트 계획들이 장장 3시간에 걸쳐 선보여졌습니다. 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자신의 프로젝트를 최대한 잘 전달하고자 말을 빨리하던 발표자, 퍼포먼스의 방식을 활용한 발표자, 그리고 영상과 설치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들을 활용한 발표자 등, 각자의 삶과 사회를 표현해낸 그 작업물만큼이나 이를 소개하는 방식들 또한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현장이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따로 또 같이 겪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비슷하면서도 또 그만큼 다른 다양한 시각들을 통해 “오늘 우리는”이라는 막연한 큰 그림을 그려보았던 것 같습니다.

3

프리젠테이션의 첫 문을 연 이지혜 작가는 온라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각종 위장용 몰래카메라의 제품 이미지를 띄우며 자신의 프로젝트 밥상머리교육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였습니다. 리벤지 포르노와 각종 불법음란물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매체, 애초에 방범 목적으로 제작되었지만 어쩐지 지금은 여성혐오 범죄의 상징물 중 하나가 되어버린 몰래카메라. 이 몰래카메라를 자신의 집 ‘밥상머리’에 설치하여 “물 한 잔도 자신의 손으로 떠 마시지 않는” 아버지를 ‘도촬’할 것이란 작가의 계획에 현장 곳곳에선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일상적인 공간인 식탁에서 작동하고 있는 가부장제의 남성 권력을 오늘날 어쩌면 가장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매체로 담아낸다는 아이디어가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몰래카메라라는 방식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니 만큼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필수적일 것 같다는 우려 역시 표출되었습니다.

백소연 작가의 낙태키트 역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제를 다룹니다. 낙태라는 키워드로부터 출발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공익광고와 법 제도 그리고 사회적 시선 전반이 어째서 낙태를 여성의 문제로만 치부하는지, 더 나아가 여성 당사자의 생존권은 어째서 태아의 생존권보다 우선시되지 못하고 있는지 질문합니다. 그리고 섹스-임신-낙태 이 일련의 과정이 한 여성 개인만의 일이자 책임이 아니라는 의식에서 출발해 ‘랜덤 임신’이 가능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냅니다. 피임 없는 섹스를 한 쌍방 중 한 측이 성별과 무관하게 무작위로 임신을 하게 된다면 낙태절차도 지금보다 훨씬 간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으로 영상과 설치를 아우르는 ‘낙태키트’ 프로젝트를 진행시켜 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4

위 두 프로젝트가 상황이나 관계를 전도시켜 보여주는 역지사지의 화법을 취한다면, 신민 작가의 Basketball Standards는 전쟁의 이면에 끊임없이 비가시화 되고 있는 여성 피해자들의 문제를 형상화하고자 합니다. 여러 전쟁지역에서 성노예/성폭력 범죄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범죄와 그 피해자인 여성들은 전쟁 담론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시작이었습니다. 작가는 조형-퍼포먼스-영상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농구골대’ 조형물을 통해 전쟁과 스포츠의 공통 요소인 공격성, 몰입, 예측불가능성, 이데올로기 등의 상징을 마치 우뚝 선 전쟁기념비처럼 형상화하고, 이를 여성의 신체에 덧씌워 마치 칼을 쓴 듯한 이미지를 연출해 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퍼포머 인건비를 위해 지원하였다는 작가는 자신이 직접 시연을 보인 퍼포먼스 영상의 ‘막 찍음’을 강조하며 퍼포머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는데, 이에 스크린으로는 마치 유령영화와도 같은 영상이, 그리고 객석에서는 작가에게 공감을 표하는 웃음이 동시에 흘러나오며 잠시 묘한 시공간이 연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젠더 권력에 초점을 맞춘 위 작업들과 더불어 김지원 작가의 티셔츠와 티셔츠는 전지구적으로 자본과 노동력 그리고 재화들이 교환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일상의 티셔츠로부터 접근을 시도합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SPA 브랜드의 의상들은 어쩌면 해외 공장의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얻어낸 결과가 아닌지, 목화 재배와 원단 직조, 디자인, 제작에 이르기까지 어딘가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과정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작가는 위와 같은 질문들을 제기하며 최대한 윤리적인 옷을 생산하고자 시도할 예정입니다. 작가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SPA 브랜드의 티셔츠를 그 디자인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까지 그대로, 하지만 정당하게 임금을 지불하며 추적해 수행해 볼 것이고 이 프로젝트는 기성품과 작가의 것, 이렇게 두 장의 티셔츠로 귀결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똑같은 결과물이지만 각 티셔츠의 최종 생산비용과 가격은 각각 얼마일지, 또 작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들을 거치게 될 지가 상당히 궁금해지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렇듯 프리젠테이션 당일 현장에는 작가들 자신이 느끼고 살아가는 이 세계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작업 속에 담아내고자 하는 프로젝트들이 상당수였습니다. 여러 사회현상에 대해 지금껏 기록한 프로젝트들처럼, 작가 본인의 문제의식과 시각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작품들이 다수이긴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 관찰자 내지는 기록하는 자의 입장에서 현상에 접근하는 작품들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박가인 작가의 <마운틴 패션 매거진>은 언젠가부터 유행하고 있는 40~50대의 산악회 모임,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나는 중년의 사랑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등산복 코디가 뛰어난 중년 산악인들의 이미지를 몇 보여주며, 취재 결과 이 코디들이 모두 나름의 철학에 기반한 것이란 작가의 말에 현장에선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등산의 편리함을 위한 기능적 목적이 아닌, 등산복의 디자인과 코디 정보를 강조한 이미지 컷들은 마치 스트릿 패션 매거진을 연상시키기도 하였고, 오늘날 중년 세대의 하위문화와 유행을 대략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게 하는 등,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중년의 삶과 사랑에 대해 나름의 상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는 더 나아가 산악회에서 벌어지는 불륜 혹은 사랑의 현장을 포착하여 낭만주의 회화로 재구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밝혔습니다. 작가가 포착한 중년의 ‘낭만적’ 사랑이 어떤 결과물로 나타날지 기다려집니다.

‘파티 없는 응원단’의 홍민기 작가는 이 날 프리젠테이션 파티에서 동명의 프로젝트 파티 없는 응원단의 단원을 공개적으로 모집하며 해당 단체의 ‘파티Party 없음’을 거듭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국경없는의사회 등의 NGO 단체들처럼 조끼 유니폼을 맞춰 입고 여러 분쟁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는 응원단은,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편집을 최대한 배제한 채 영상으로 기록을 남깁니다. 동시에 편가를 것 없이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부채질’을 하고자 부채를 배포한다고 합니다. 이는 논쟁 자체가 뜨겁게 불붙길 바라는 것이며, 속한 ‘파티’는 없지만 전체로서의 혹은 논쟁 그 자체로서의 현장 자체를 응원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프리젠테이션 당일에는 현장에 있는 동료 예술가들에게 부채를 배포하기도 했는데요, 향후 활동을 위한 단원 모집 역시 성공적으로 뜨겁게 불붙길 바랍니다.

그룹 P2A의 MRS(Media Rental Service)는 본격적인 아카이브 프로젝트로 동시대의 영상 작업물들을, 특히 미술과 영화가 중첩되는 영역의 영상 작업물들을 수집하여 목록화하고, 이를 대여라는 방식을 통해 감상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전시를 통해 접하게 되는 영상물들이 단기간의 전시 후 파일 형태로 보관되고 기억 속에서 휘발되기 보다는, 아카이브-렌탈 플랫폼을 통해 다시금 소통의 매체가 되고 작가들을 소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듯 했습니다. 불법복제 가능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긴 했지만, 발표자 이양현 씨의 말을 빌려 이 “포스트인터넷의 시대”에, 그리고 이 “포스트시네마의 시대”에, 굳이 사라진 지 오래인 아날로그 비디오 렌탈샵의 형태를 본따 예술계의 생태계를 다양하게 보존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취지가 새삼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예술 생태계, 동시에 이를 논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논해야 하는 사회의 생태계에 대한 고민은 아카이브의 방식뿐 아니라 전시에 대한 욕구 그리고 공간과 자아에 대한 욕구로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

5

‘홈 스윗 홈’의 김해성 작가, 아니 김미미짱은 ‘갈 곳 없는 사람들’로 자신의 프로젝트 팀을 정의했습니다. 성인이 되며 겪었던 20번에 달하는 이사 경험, 재개발 공사로 인해 집주변이 폐허가 되며 토끼를 묻어줄 수 없었던 경험 등, 미미짱은 소위 청년 세대로서 그리고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느껴온 모종의 소외감을 “전시하고 싶다”는 한 마디로 정리해낸듯 싶었습니다. 작가로서 전시를 하고 작업을 내놓고 싶은데 정작 내놓을 수 있는 공간이나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소외감은 아마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몸을 누일 따뜻한 집이 필요하듯 자신들의 작업물 역시 그것들이 표현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에 놓일 수 있기를, 그리고 이러한 소통의 장이 다시금 함께 먹을 것을 나누는 삶과 잔치의 공간이 되고 작업의 기반이 될 수 있기를, 미미짱은 바랬습니다. 많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섹스 전시하고싶다”라는 발표 마지막 이미지로부터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머무름/전시’를 바라는 마음이 깊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7월 ‘바로 그 지원’은 이렇게 미미짱의 프로젝트처럼, 도시의 제한적이고 선별적인 공간자원으로 인해 위태롭거나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대상들을, 그리고 이미 사라진 대상들을 이야기하는 프로젝트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사진 작업을 하는 곽은비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골목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성장만큼이나 빠른 한 도시의 ‘성장’과 재개발로 인해 살아온 지역들은 자꾸 사라지며 아파트가 되었고, 이에 기억을 회상하고 추억할 수 있는 공간들이 사라졌다는 황망함이 들어 공간들에 대한 기록과 표현의 욕구가 생겼다고 합니다. 작가의 사진 시리즈 폐허 속의 오브제는 재개발로 인해 폐허가 된 공간에 소녀를 배치해 촬영하며, 공간 속에 고여 함께 허물어진 시간, 즉 소녀였던 시절과 기억을 폐허가 된 공간 속에서 끄집어내고자 합니다.
이민경 작가 역시 자신이 살던 집이 재개발로 철거되며 맞닥뜨리게 된 낯선 풍경, 그리고 그 낯섦으로부터 비롯된 트라우마로 인해 막연한 풍경 작업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공간은 이미 사라져버렸지만 작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공간의 부분과 파편들을 모형으로 제작하고, 그 모형들을 바뀐 풍경 가운데 배치하여 공간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파편적인 기억은 결국 부분적이기에, 공간과 인간이 변화해왔음을 그리고 변화해갈 것임을 드러냅니다. 작가는 해당 작업이 지역에 기반한 것이기에 오브제 설치와 촬영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프로젝트를 지속하며, 다양한 조형물로 확장해나가는 작업으로 발전시켜보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16기가바이트 용량의 스마트폰은 저장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지속적으로 사진을 삭제하고 있다는 이서연 작가는 자신의 이서연 개인전을 통해 자신과 타인에 의해 버려지는 것에 대한 관심을 담아낼 계획입니다.어떤 선별 기준에 의하여 별 것 아닌 것, 버려질 것으로 여겨진 대상들을 페인팅으로 기록하는 작가의 작업은, 흥미롭게도 무형의 스마트폰 기기 공간으로부터 시작해 인천 곳곳의 재개발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의 공간을 아우릅니다. 끊임없이 세련화되고 있는 도시, 그리고 그 도시에서 유형에서 무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과 관계맺으며 사는 우리는, 어쩌면 이제 삶과 정체성을 이루는 공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감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던 프로젝트였습니다.

글 / 송이원(丙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
사진 / 오석근




뉴스 큐레이션(2016.08.16~09.05)

올림픽 말고도 브라질은 깊다
 1
‘브라질’은 붉은 염료를 함유한 나무 이름에서 유래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나라. 아마존과 축구, 삼바의 나라. 세계랭킹 상위 선수의 노 메달과 중계방송 아나운서들의 막말논란이 이슈가 되는 가운데 한겨레가 브라질의 역사와 도시화의 고민을 다룬 애니메이션을 소개했다. <리우 2096>은 2096년 물 부족으로 고통 받는 가상의 미래를 그렸다. <보이 앤 더 월드>는 일자리를 구하러 떠난 아빠를 찾아 나선 꼬마 쿠카의 길을 따라간다. 거대도시와 자연파괴 등 지금 브라질의 고민을 담았다. 단지 그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는 구실로 애니메이션을 소개한 걸까. “과거를 모르고 사는 건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다”는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한 ‘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 이슈, ‘낡은 새로움’의 반란
 2
한국 사회를 달구고 있는 페미니즘의 언어를 최근 출간된 소설 두 편에서 찾는다. 새라 워터스는 영화 ‘아가씨’의 원작 <핑거 스미스>의 작가로 <게스트> 역시 레즈비언을 소재로 했다. 두 여성에게 치근대던 남자는 그녀들의 거부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죠?”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이는 SNS에서 이어졌던 ‘메갈 인증 퍼레이드’와 맞물려 읽힌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죠?”를 현대어로 번역하면 “페미니스트죠?”고, 페미니스트들에 따르면 최근 이 말은 “메갈이죠?”로 해석할 수 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집 <체체파리의 비법>에는 “한 남자가 아내를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충분히 많은 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생활 방식이라고 부른다”는 문장이 나온다. 이는 강남역 살인사건 때 제기된 ‘여성혐오 범죄냐, 아니냐’를 떠올리게 한다. 최승자, 김혜순, 김민정 등 국내 문학에서도 페미니스트 계열로 분류되는 이들이 연달아 시집을 출간했다. 기자는 묻는다. “1970, 80년대 문학은 노동자의 입이었다. 21세기 페미니즘에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아니, 대학교 6학년입니다
 
  3

부모는 빨리 졸업하라고 성화고 학생들은 자꾸 졸업을 미룬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취업해서 밥벌이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부모의 말에 자식들은 “지금 졸업하면 밥벌이 못한다”는 대답으로 응수한다. 이러다 초등학교보다 대학을 더 오래 다니겠다는 말도 나온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016년 휴학경험자는 44.6%로 두 명 중 한 명 꼴에 이른다. 병역의무를 위한 휴학이 가장 많지만 인턴이나 봉사경험을 쌓기 위해, 자격증 준비, 학비 마련을 위한 쉼도 만만치 않다. 연합뉴스 기자들이 휴학생을 인터뷰했다. 꿈이 있어서 더 괴롭고, 공부에 지쳐 휴학해도 얼마 못가 다시 영어학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휴학 중인 학생들의 공통적인 감정은 ‘불안’. 뭔가에 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휴학은 ‘고통의 유예’일 수밖에 없다. 백수보다 휴학생이라는 단어가 그나마 위안이 되니까.

성인 10명 중 6명은 학창시절 꿈꾸던 모습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전체 33.1%만이 하는 일과 공부에 만족한다. 10명 중 6명은 노력하면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을수록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목표 성취에 대한 기대도 적다. 세계일보가 ‘그 많던 우리들의 꿈’을 여러 가지 통계로 밝혔다.

시급 1만원의 꿀알바? 수문장 교대의식, 두 번은 못하겠다
 
4
머니투데이가 폭염 속 극한 알바로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체험기를 실었다. 노력 대비 보수가 좋은 ‘꿀알바’라고 알려져 있지만 직접 해본 기자는 “두 번은 못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면접과 실기시험까지 보지만 3대 1이 넘는 경쟁률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시급에 있다. 행사준비, 공개훈련까지 6시간을 일하고 일급 6만원을 받는다. 돈도 돈이지만 더위와 ‘철릭’이라고 부르는 복식, 장검의 무게 등으로 행사 시작 전부터 지친다. “교대의식 도중에 쓰러진 사람도 있어요.” 누군가 속삭인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연극배우는 여름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전한다. 간신히 행사를 마친 기자는 수고했다는 말에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개별 노동자의 노고는 직접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급 6470원. 하지만 청년, 저학력 고령자, 비정규직, 여성 등 여전히 최저임금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5루저의 해방감
 5

해마다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네이메헌 국제걷기대회’, 올해 100회를 맞았다. 참가자가 많아 추첨을 통해 선발, 4일간 매일 인근 마을을 걷고 정해진 시간에 종착지에 돌아오면 메달을 받을 수 있다. 걷기대회에 나선 기자는 찌는 듯한 햇볕과 더위 속에서 “비행기 삯이 160여만 원이고 걷는 거리가 총 160㎞니까 1㎞마다 1만원” 따위(?)를 계산하고, “걷고 나면 뭔가 깨닫는 게 있을까? 장에서 숙변 제거하듯이 뇌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뇌까린다. 메달은 무리다, 쉬엄쉬엄 걷자 싶어 메디컬센터에서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자신과 비슷한 ‘루저’들이 다리를 절뚝이며 걷고 있다. 그때부터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풍경이, 함께 걷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왜 저렇게 뒤처졌을까, 어디가 아픈 걸까, 친구들이 버리고 간 걸까. 그곳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몇 번이나 들은 말. “두 유 노 원주?” 고향이 원주인 기자조차 한 번도 참여해보지 못한 그 ‘원주국제걷기대회’는 지난해 스물한 번째 대회를 치른, 원주에서 가장 만족도 높은 문화행사다. 숨 막히는 더위가 물러가면 올해는 원주의 가을을 느껴볼까 싶다. 앞만 보며 가는 게 아닌 뒤처진 루저로서의 해방감을 즐기면서.

 

이재은(뉴스 큐레이터)




어깨를 나란히, 발을 맞추고, 희망을 향해

2

“어! 저기 내 그림이다!” 8월 5일 토요일, 인천아트플랫폼 G동 전시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로 자신들을 닮은 그림들을 찾아낸다. 노숙인들의 자존감 회복과 재활을 돕기 위해 기획된 ‘어깨동무 인문학’의 참가자들이다. 낯선 그림 속 익숙한 얼굴, 참가자들은 모두 자신이 가장 잘 나왔다며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인문학을 통해 영화, 음악, 미술 등을 만날 수 있는 8주차 수업이 끝나고 마련된 이번 전시는 ‘어깨동무인문학’의 참가자들과 꾸물꾸물문화학교, 인천예술고등학교의 학생들이 함께 준비했다. 2인 3각 경주를 하듯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기에 ‘2인 3각 전시회’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

3
수업을 진행한 한신대학교 공주형 교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의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주거 빈곤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숙인 참가자들에게 미술이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고민했어요. 사실 미술은 먹고 사는 문제와는 큰 관련이 없잖아요. 이 수업을 통해 스스로 변화를 겪는다 하더라도 사회에 나가 타인을 만나고 관계를 가지게 되면 더 큰 좌절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고민이 있었어요. 이분들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 변화를 누군가가 인정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청소년들과의 협업을 떠올렸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주변을 돌아볼 기회가 적은 청소년들에게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참가자들은 자화상을 그렸던 화가들(반 고흐, 프리다칼로, 렘브란트 등)의 생애와 작품들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며 자화상을 그렸다. 수원에서 진행되는 수업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어려웠던 인천 학생들은 참가자들의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불편해도 괜찮아」 책을 함께 읽기도 했다.

전시는 참여자들이 직접 그린 자화상과 학생들이 참여자들의 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화, 수강생들이 만들고 꾸민 종이 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화상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으로 혼자서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지요. 초상화는 내가 다른 사람과 만나는, 이웃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요. 마지막으로 집을 만들어보는 작업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는 것까지 확장해보고 싶었어요.”

참가자들의 자화상들 가운데는 긴 머리에 여자 옷을 입은 초상화도 있었다. 공주형 교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참가자로 그 작품을 꼽았다.
“어머니를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참가자가 그린 그림이에요. 어머니가 원망스러우면서도 그리운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자화상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긴 머리와 옷을 입혀 엄마의 초상화를 만든 거죠.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면서 파마 머리도 그려보고 여자 옷도 입혀보면서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봤을 테죠. 수업에 참여하면서 얼굴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분이 있고 어두워지는 분이 계신데, 가장 많이 어두워진 참가자이셨어요. 본인이 방임하고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문제들을 이제야 마주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오히려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이런저런 생각들, 고민해야만 하는 문제들을 생각하면 심각해지잖아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건너야 할 산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마지막에 손편지를 통해 고맙다고 인사를 해주셨어요. 글을 모르시는 분이라 다른 분한테 대필을 부탁한 것 같아요”

참가자들은 직접 자신의 그림을 소개하기도 했다.

4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에요. 저도 사업을 하다가 지인의 배신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죠. 살아온 과정이 순탄치가 않았어요. 상처받은 제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피눈물을 그렸어요. 그리고 몸통은 나비의 모습으로 그렸어요. 나비가 인고의 시간을 거쳐 탄생하잖아요. 저도 그러한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이제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보고 싶어서 그림을 그려봤어요.(어깨동무 인문학 강철수)”

5“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었어요. 누구에게 평가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요. 얼굴 위에 세 줄짜리 피눈물을 그렸어요.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었는데, 일반 사병과 다르게 육사생도는 계급장이 세로로 되어있어요.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시점에 퇴교를 당했어요. 진급하지 못한 아쉬움을 피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미술을 배울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습니다.(어깨동무 인문학 양광모)”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인상 깊어서 이 분의 사진을 선택했어요. 반짝반짝한 눈빛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을 그릴 때도 눈을 마지막까지 그리지 못하고 신경을 썼어요. 실제로 이 분을 만나서 작품에 대해 설명을 드렸는데, 그분도 사람을 볼 때 눈빛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고 하더라구요. 예전에는 거울을 보면 스스로 눈이 흐리멍텅하다고 느꼈는데, 요즘에는 삶의 생기를 찾으면서 초롱초롱하고 맑은 눈빛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림을 좋아해주셔서 저도 뿌듯하더라고요.(꾸물꾸물 문화학교 김나연)”

“예고 학생들은 입시미술을 공부하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미술을 해왔어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모르는 사람들과 미술을 통해 새롭게 관계를 형성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그린 분은 사진 속에서 어색하게 억지로 웃고 계신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한 번도 제대로 웃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굳은 표정으로 웃고 계셨죠. 조금 더 부드럽게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다시 그려드렸죠.(인천예고 2학년 김수민)”

6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채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하며 살아간다. 서로를 외면한 채 앞만 보고 달려간다면 부딪히고 넘어져 상처입기 마련이다. 하지만 넘어져도 잡아주고, 힘들어 지쳐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2인3각 경주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듯,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을 맞추면 희망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예술을 통해 발맞추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어깨동무 인문학’의 시도가 소중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글 /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 시민기자 민경찬




인천이 ‘가진 것’을 드러내자

1

 

열여섯의 봄, 나는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인천을 떠나 서울의 기숙사로 가게 되었다. 주위의 어른들은 나의 ‘서울 입성’을 축하해 주시며, ‘서울은 인천과 수준이 다르니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그러나 철없던 나는 부모님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서 누릴 자유만을 생각했었기에, 그런 이야기들은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았었다. 잊고 있었던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열흘 전 인천문화재단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직후였다.
“인천 가치 재창조에 관한 릴레이 기고를 받고 있습니다. 인천의 문화적 가치가 무엇인지, 인천의 문화발전에 대한 제안이나 의견 등 다양한 생각들을 써주세요.” 나는 겁 없이 ‘네’ 대답해버렸고, 이후 며칠 동안 원고에 대한 압박을 느끼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결국 인천의 지인들에게 “인천에 대해 떠오르는 키워드를 적어 보내달라” 는 문자를 돌렸다. 그 결과, 인천이라는 도시는 여전히 지리적으로는 “서울로 출퇴근을 하기 좋은 곳”이었으며, 역사적으로는 “근대적인 외교와 무역이 시작된 곳”이며, “근대문화의 발상지”, “차이나타운이 유명하다.”, “근대 건축물이 많다.” 와 같은 단편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내용들을 확인하고 나니, 오래 전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하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인천에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인천이라는 도시가 살기 좋고, 떠나기 싫고, 행복한 곳이라고 인식되려면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사람의 마음에 각인된 이미지나 인식을 변화시키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크고 작은 감동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건물, 많은 아파트와 같은 물질적인 것이 마음으로 와 닿으려면, 그 곳의 풍경이 아름답거나, 동네 사람들과의 따뜻한 교류 같은 정서적인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적인 것들을 우리는 ‘문화’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화라는 것을 전통 민속예술이나 문화재, 순수 예술장르 관련 공연이나 교육,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과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또, 문화가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하냐는 물음에는 대부분 중요하다고 긍정적인 대답을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신적인 안정’이나 ‘즐거운 여가’ 등의 통념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문화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은 문화발전을 위해서 공연장이나 박물관, 도서관 같은 시설을 새로 만들고, 공연이나 행사, 전시 등의 횟수가 많아지면 문화도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착각이라고 여겨진다. 수년에 걸쳐 인천에 다양한 시설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크고 작은 축제와 공연, 전시 등이 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서울과 인천을 비교하면 문화 환경이나 수준의 차이가 크다고들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대한 이런 열등감은 인천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또한, 현재 인천의 문화 정책은 인천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2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구도심의 차이나타운이나 일본인 거리, 아트플랫폼은 모두 독특하게 꾸며진 건물 외관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자장면 먹고, 아트플랫폼의 전시장 한 두 곳을 돌아보면 끝나는 관광코스로 이 곳을 찾은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제대로 된 역사적 배경이나 이야기는 전혀 알지 못하고 돌아간다. 또, 인천에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도 이들 장소가 높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긍정적으로 인식되거나 문화적 자부심을 주는 곳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가치와 의미에 대한 교육이나 홍보가 크게 부족하여 감동이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상업적으로 소비된다고 해서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 또한 아니다. 인천이 지닌 다양한 문화자원에 대한 시민들 스스로의 이해 수준을 높여야만 그 가치가 높아지고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적으로 인천이 ‘가진 것’을 발굴, 교육하여 적극적으로 드러내야만 한다. 인천이 ‘가진 것’ 중 잘 모르는 것들을 몇 가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근대 초등교육의 출발점이 된 ‘영화초등학교’와 순수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창영초등학교’는 존재만으로도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충분하다고 여겨지며, ‘자장면’뿐 아니라 ‘쫄면’도 인천에서 탄생했다. 인천이 가진 전통예술 중 국가지정문화재인 ‘은율탈춤’과 ‘서해안 배연신굿’은 보존 가치가 매우 높으며, ‘휘모리잡가’는 서울, 경기, 인천에만 인간문화재가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독특한 음악장르이다. 또, 인천 지역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서해안 풍어제’와 ‘인천 근해 갯가노래’, ‘강화 용두레질 소리’도 매우 매력적인 전통예술 장르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인천 시민들에게는 매우 낯설 뿐이다. 물론 이 외에도 인천이 ‘가진 것’ 중 시민들이 모르는 것은 정말 많을 것이다.

인천시는 인천이 ‘가진 것’들을 적극적으로 발굴, 홍보하고, 문화예술가와 기획자, 창작자들이 좋은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창작물에 대한 교육과 체험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연계하는 것을 도와야 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인천의 매력을 체험하고, 그 속에서 감동과 공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들이 인천에 살고 있음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글 / 강희진(거문고앙상블 ‘다비’ 대표, 음악학박사)




영화를 만들며 인천에 정주하다

1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다. 2002년에 인천으로 이사왔다. 이사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비싼 집세 때문에 서울에서 쫓겨 온 것이었다. 그리고 10여 년 동안 인천에서 살았지만 내가 사는 곳이 ‘인천’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인천은 공기는 나빠도 집세가 싸고 무엇보다 서울 가는 교통이 편리한 곳이었다. 인천은 나에게 ‘서울과 가까운 곳’이었다. 동암역을 인천의 첫 집으로 선택한 것은 직통열차 때문이었다. 하지만 3편의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인천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

인천에서 만든 첫 번째 단편영화는 [파마]다. 인천에서 만난 한 베트남 여성 이야기다. 남구학산문화원에서 운영했던 이주여성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난 여성이었고, 촬영 장소는 집 앞 미용실이었다.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 시나리오를 쓰다가 잘 안 풀리면 미용실에 가서 앞머리도 자르고 하면서 관찰하곤 했다. 자연스럽게 그곳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배우들 중에는 실버극단 <학산>(남구학산문화원에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던 노인극단) 단원이 있었다. ‘예술 교육이 창작에 연결되니 좋구나’ 정도의 생각을 했을 뿐이다.

3

인천에서 만든 두 번째 단편영화는 [결혼전야]다. 이 영화는 서울에서 살았던 내 이야기다. 하지만 굳이 서울에서 찍을 이유가 없었다. 인천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을 받았다. 배우도 실버극단 <학산>의 단원이었다. 촬영 장소도 그 분의 집, 인천시 남구 도화동이었다. 첫 영화 [파마] 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스탭 상당수가 인천 사람들로 채워졌다는 것. 인천독립영화협회가 만들어지면서 인천에서 함께 작업할 동료들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온 스탭들의 숙소는 인천의 종교단체에서 지원해주었다. 인천여성영화제와 인천독립영화협회의 도움도 받았다. ‘나는 인천에서 영화를 찍고 있구나’ 생각했다.

4

인천에서 만든 세 번째 단편영화는 [천막]이다.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421-1. 지금은 가스충전소가 있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기타 공장이 있었다. 그 건너편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복직농성 중이다. 이분들을 처음 만난 곳은 2012년 인천노동문화제가 열렸던 부평공원이었다. 이후로 꾸준히 관심을 가지다가 함께 단편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인천영상위원회에서 제작지원을 했고, 스탭들 중 상당수가 인천독립영화협회 회원들이었다. 해고 노동자들이 배우로 자기 자신을 연기했다. 스탭들의 숙소는 이분들과 연대하는 종교단체에서 지원했다. 인천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에서 보조 출연을 해줬고, 노동운동단체에서는 소품을 지원했다. 인천여성영화제에서는 밥을 해왔고, 인천독립영화협회 회원들이 음료를 들고 촬영장을 찾아왔다. 

나는 서울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비싼 집세를 피해 인천에서 당분간 살다가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겐 인천이 잠시 비를 피해 있다가 떠날 ‘천막’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단편영화 [천막]을 만들면서 비로소 내가 ‘인천에 정주(定住)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일, 인천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인천에 사니까 인천에 관심을 가져야 해.’ 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인천에 살다보니 함께 사는 이웃들을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고, 그 이야기를 이웃들과 함께 영화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영화를 이웃들과 함께 볼 수도 있었다. 내가 찾는 ‘인천의 이야기’는 인천만의 것이 아니다. TV 교양프로그램에 나오는 지역 특산품 같은 것들을 소개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웃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어느 곳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찾으려고 한다. 인천이라는 구체적인 도시에서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를 찾고 싶다.

어쩌면 나는 운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인천에 사는 창작자들이 이웃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제도들이 좀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인천의 창작자들이 스스로 고립되지 않도록 인천에서 동료들을 만나기를 바란다.

글, 사진/ 이란희(영화감독, 배우, 예술교육자)




소외된 세상에 일부러 잠입한 듯한, 세상에서 일부러 혼자인 듯한, 작가 ‘신민’

 

소외된 세상에 일부러 잠입한 듯한, 세상에서 일부러 혼자인 듯한, 작가 ‘신민’

여린 종이로 제작된 작가 신민의 작품은 거칠게 다루기에는 겁이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거친 질감, 뭉뚱그린 외형과 달리 종이 한 장 한 장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그녀의 작품은(금방 찢어지는 종이의 속성이 무시된 채) 외형의 모습처럼 강한 강도를 갖는다. 신민은 동시대의 나와 나의 주변인들, 그리고 제 3자를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다. 어쩌면 자본주의라는 미명하에 삶의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소외와 차별을 받는 사람들을 작품 속에서 발견해볼 수도 있다. 야무지지 못하고 무기력해보이고, 어쩌면 아파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작품들은 금방 찢어져 소멸될 수 있는 종이 한 장이 아니라, 단단해져버린 덩어리가 되어 어지간한 힘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작가 신민은 비판과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맥도날드 작품으로 많이 알려진 신민 작가와의 만남에서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은 한 기업의 CEO가 근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 속으로 위장 잠입했던 TV 프로그램 ‘언더커버 보스’처럼 작가도 작품 제작을 위해 일부러 맥도날드에 위장 잠입한 것인가, 그리고 일부러 그들만의 세상인 듯(혼자인 듯)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했나였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Q :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주술적인 느낌을 준다.

A. 사람들이 전시를 본 후 화내고 슬퍼하고, 내게 고민을 던지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굉장히 기쁘다. 내가 생각하는 창작은 사람들로부터 그러한 반응을 얻는 행위인 것 같다. 어릴 때 나름대로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쟁취하지 못하는 경험을 수도 없이 반복해오면서 초월적인 존재, 힘에 대한 갈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귀신을 불러내는 주술인 ‘분신사바’, 소원을 이루어주는 부적이나 기도 등을 몰래, 굉장히 열심히 했다. 작품을 처음 시작할 때에도 주술 행위를 하듯 의도적으로 하기보다는 무의식적인 흐름에 따라 완성했다. 사회적인 메시지가 들어있는 작업은 아니었다. 이렇게 만든 작품에 기운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 신이 나서 계속 주술의 방식으로 작업을 양산했는데 얼마 안 가서 결국 비슷비슷한 소원과 응답에 싫증을 느꼈다. 그리고 방에 쌓여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내가 여성들, 그것도 상처 입은 모습의 여성들만 만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사실 (원래는) 여성에 관련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맥도날드에서 런치세트 할인시간 때마다 정말 엄청난 양의 감자튀김, 햄버거, 콜라, 아이스크림, 커피를 담고 만들고 포장하면서 몸이 상하고, 관절이 아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아팠던 것 같다. 런치 시간이 끝나면 감자포대가 어마어마하게 버려지는데, 이 포대를 보고 느낌이 왔다. 그날부터 매일매일 퇴근할 때마다 쓰레기를 챙겨 와서 아르바이트생의 군상 조형물을 만들었다. 이 작업은 미술 잡지보다 오히려 시사지에서 보도해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고 공감해주는 계기가 됐다.

2

Q : 작품에서 과감하고 (날 것 같은) 거친 느낌이 든다. 대화를 할 때도 작품처럼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오묘하게도 작가를 대할 때, 그리고 작품을 바라볼 때에 동일한 단어가 떠오른다. ‘일부러’, ‘잠입’, ‘홀로 조용히’…. 그러한 느낌은 조각상들이 (홀로가 아닌) 함께 모여 있는 <모의 생일잔치>(2007)를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찌 보면 작품 속 인물들은 한 공간 속에 함께 모여 있지만, 히키코모리를 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즉 무서운 세상 바깥에 놓여도 겁 하나 낼 것 같지 않은 작품 속의 그들은, 오히려 소외되어 보이고 그들만의 세상 깊숙이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판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나는 담력이 없다. 계획된 잠입 같은 것은 해 본 적 없다.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쉽게 피곤해져서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생일도 가족과 친구들 양쪽에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혼자 보내왔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 혼자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보람차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깨달았다. 그래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인간관계에 금이 가도 괜찮았다. 이런 삶의 방식이 작품에도 드러나는 것 같다.

3

Q :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어떠한 특정한 사건, 정확한 타겟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의 대표 작품인 <견상(犬 狀)자세 중인 알바생>(2014)과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을 중심으로 작품의 타겟과 내용을 짧게 설명해주면 좋겠다.
A :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화나 나서 만들게 된 맥도날드 작업들은 청년들의 보편적 상황과 나의 상황의 동일한 지점, 자본주의 시대에 맥도날드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삶의 현장에서 수집한 질 좋은 미국산 감자포대가 작품 제작 의도와 잘 맞아떨어졌고, 생각한 대로 작품이 잘 나오게 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맥도날드 작업 이후로는 전쟁 성범죄에 노출된 여성의 상황을 스포츠의 속성을 차용하여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Q :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 제작하는가?
A : 우선 종이로 캐스팅을 하고, 그 위에 연필 등으로 드로잉을 한다.

45
 Q :
<경숙>, <은숙>, <은주언니>, <딸기코의 딸들> 등 작가의 대다수의 작품에는 여성들이 중심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작가가 작업 중인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여성들에게 주목하는 이유가 있는가?

A : 일상에서 혼이 나갈 대로 나간, 소리를 지르지 못하는 여성의 상황을 흔하게 발견하게 된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고, 잊을 수가 없어서 그림으로 그리고 만든다..


Q :
아까 최근의 고민을 언급했는데 바로 ‘태도’에 관한 얘기였다. 작가의 실제 경험을 체화시킨 후 작품에 녹여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리서치에 기반한 창작) 사이에서의 고민이으로, 태도의 진정성에 관한 문제인 것 같은데?

A : 맥도날드 작업으로 예기치 않은 관심을 받았고, 운 좋게 인천아트플랫폼에도 입주하였다. 이곳에서는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고, 경력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선발되는 곳이기에 작업이 실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 작업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있는지, 실적에 좋은 이야기를 실적을 쌓기 좋은 모양으로 하는지 계속 스스로 묻고 있다. 부끄럽지만, 이게 고민이다.
Q :
마지막으로 <인천문화통신 3.0>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영상 작업에 출연해 주실 여성 출연자 분들을 찾고 있다. 신체 노출은 없고, 얼굴도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참여하고 싶거나 관심있는 독자분들의 연락을 기다리겠다. 의향이 있다면 8월 17일(수)까지 핸드폰(010-2649-1879)으로 이름과 연락처를 보내주셨으면 한다.

○ 자 격 : 작가가 제작한 의상을 착용하고, 기괴하고 격렬한 움직임에 참여할 수 있는 여성분
○ 모집인원 : 10명
○ 일 시 : 8월 19일(금), 오후 1~7시
○ 장 소 : 인천아트플랫폼 공연장(인천역 도보 7분)
○ 사 례 : 참가비 5만원(지원금 사용 절차상 입금이 조금 늦어질 수 있음.), 식사 제공

글 / 이아름(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문화예술 아지트 ‘미추홀구락부’로 초대합니다. 조각가 김길남

1인천문화재단은 2015년부터 문화예술 기부캠페인 ‘아트레인’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인천문화통신 3.0에서는 인천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기부자인 아트레인의 탑승자들을 차례로 만나보고자 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인천문화재단의 6기 이사진 중 한분이자 인천에서 창작 활동 중인 김길남 조작가과 함께 합니다. 재단 운영에 참여하는 이사진이면서 아트레인의 후원자인 김길남 작가는 자유공원 인근에 거주하며 ‘미추홀 구락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천 문화예술의 또 다른 거점인 ‘미추홀 구락부’에서의 대화를 시작합니다.

2
Q.
간단한 소개와 근황을 부탁드립니다.

A. 인천에서 나고 자랐어요. 한국전쟁 당시 평양에서 피난 온 부모님께서 인천에 정착하며 신흥동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까지 이 근방에서 다니고 인천에서 미술교사 생활과 대학에서 전임 활동을 했었고, 대구에서 잠시 있었네요. 그리고 줄곧 인천에서만 있었고, 인천에서 작업하고 생활한 사람입니다. 우리 인천에 참 훌륭한 선후배 예술인들이 있었어요. 이미 작고하신 분들도 많고, 활동의 반경을 서울로 옮겨간 분들도 많아서 함께 했었다면 힘이 되었을 텐데 좀 아쉬운 면이 없잖아 있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족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맡아야 하는 일들을 하면서 제 개인 작업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혼자 하는 작업에 익숙한 예술인인데, 어쩌다보니 예술의 공공적 성격에 따른 옷들도 입고 있어요. 단체나 협회의 운영에도 관여하고 있고, 재단의 이사로도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함께 하는 게 아직도 어색하긴 합니다. 그런 차이의 한계에서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있는 생활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5
 Q.
인천에서 줄곧 살아오셨는데요.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인천과 지금의 모습에는 어떤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A. 이 동네만 보자면 동인천 역사를 제외하고는 크게 변한 지점은 없는 것 같아요. 덕분에 이 지역, 이 일대 공간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힘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공간이 주는 힘은 세트를 아무리 만든다고 해도 완벽히 흉내를 낼 수가 없거든요. 이쪽에서 학교를 나왔는데, 동네 골목골목마다 제 흔적들이 다 남아있어요. 공부보다도 몸으로 움직이고, 운동하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네요. 특히나 이 일대 중에서도 인천제일교회는 저의 아지트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큰 기계가 많지 않던 시기였다보니 리어카에 흙을 담아서 옮겼는데, 교회 증축하고 공사하는 흙의 1/3은 제가 다 퍼날렀어요.(웃음) 
 
Q. 인천의 문화와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데요. 지역에서 꾸준히 창작활동을 해 오신 입장에서 인천 문화예술의 현재는 어떻게 보고계신지 궁금합니다.
A. 지속적으로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서울이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인천의 발전이 더디다는 이야기입니다. 긴 세월의 흐름을 보면 인천은 근대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이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출발점이었어요. 그런데 서울을 중심으로 한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인천의 가치가 저평가되고 경제, 문화, 사회 등 모든 측면의 투자가 미약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역은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어야하는데, 우리는 계속해서 서울과 비교를 하다보니 그 부분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게 사실이에요.

지금 인천을 언급되는 이미지들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대다수입니다. 좋은 이미지로 가시화할 수 있는 이미지보다 아프고 상처받은 역사와 문화들이 주를 이루죠.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이미지가 계속해서 인천을 대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인천의 인구 분포나 도시의 성장 속도를 보면 뽑아낼 수 있는 키워드가 굉장히 많습니다. 인천이라는 도시는 이미 복합적이고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도시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도시의 규모나 경제 성장 사이즈에 비해 문화예술은 턱없이 부족해요. 예술대학도 없고, 미술관도 없습니다. 그나마 인천문화재단이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문화예술의 토대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3
Q.
최근 들어 시민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요. 운영 중인 이 공간 ‘미추홀구락부’도 그런 맥락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은데, 공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송도에 살다가 2년 전에 이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자유공원을 가다가 들어오거나, 차이나타운과 조계지 부근에서 산책을 하다가 오는 사람도 있어요. 주변 풍경과는 조금 색다른 분위기를 궁금해하며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미추홀구락부’라는 이름은 자유공원 아래쪽에 있는 제물포구락부에 빗대어 지은 이름인데, 제물포구락부가 예전 사람들의 사교의 장이었다면 지금 이 곳은 현대인들이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사실 이 공간은 인천에서 사진 작업을 하셨던 부친의 자료들을 보관하며 사진박물관을 준비하려던 공간입니다. 행정적으로 해결이 좀 어려워서 사용하지 않는 공간으로 놔두다가 2015년 4월부터 카페로 운영하며 생활하고 있어요. 이 공간 일대는 역사적 가치가 굉장히 농축된 지역이에요. 문화예술콘텐츠가 보다 풍성해지면서 지역의 예술인들이 모이는 곳, 시민들이 편안히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4

Q. 재단 이사로써, 재단이 진행하는 문화예술기부캠페인 아트레인에 탑승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천의 문화예술을 위해 아트레인 사업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했으면 하는지 궁금합니다.
A. 인천문화재단의 모금사업은 당연히 해야 하고, 꼭 필요한 사업입니다. 아직 초기 단계다보니 관계자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일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문화재단에서 나오는 각종 홍보물이나 책자에 아트레인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 더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현금과 현물 기부뿐만이 아니라, 예술인들에게는 작품이나 재능의 기부, 시민들에게는 자원봉사 등의 기부도 적극 활용해야 할 것 같아요. 반드시 금전적 기부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민들이 재단 사업에 자부심을 갖고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형태, 참여하는 사람들이 즐겁고 기분 좋게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요? 얼마 전에 인천아트플랫폼에 생활문화예술센터가 오픈했는데, 그런 공간에서야말로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무더운 여름날 장시간 동안 인천 문화예술에 대한 고민과 우려, 재단의 사업 방향과 앞으로의 기대를 들려주신 김길남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의 창작 활동을 응원하며, 문화예술의 또 다른 거점이 될 미추홀 구락부를 기대합니다.

미추홀구락부
연락처 : 032-817-4521
영업시간 : 오전8시~오후10시
위치안내 : 중구 내동 2-29, 성공회내동교회에서 송학로 19번길을 따라 홍예문 위쪽에 위치


6인천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아트레인의 탑승자를 찾습니다. 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 기부 캠페인 아트레인은 인천 시민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개인 혹은 법인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기업 후원의 경우, 기업의 경영철학과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문화예술로 함께 만들어드립니다.
아트레인 참여 문의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032-455-7114, artrain@ifac.or.kr

정리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주현수




영화를 좋아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하품학교

1
   
7월의 마지막 수요일, 아침부터 학산생활문화센터 ‘마당’의 4층 소극장을 찾는 이들이 있다. 더운 날씨에도 이들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고, 직원들은 익숙하게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날은 한 달에 한 번, ‘하품학교 영화감상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날이다. 이 달의 영화는 ‘매드맥스’. 중장년층 이상의 어르신들도 있고, 아이와 함께 온 젊은 어머니까지 관객층이 다양하다. 사실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여기 말고도 많은데, 특별히 이 이른 시간에 이곳을 찾게 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하품학교의 민후남 교장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
2004년부터 2016년까지
하품학교는 학산문화원이 생기고 첫 번째로 만들어진 동아리다. 하품을 하면서 우리의 뇌와 신체가 새로운 활력을 갖게 되듯, 지루한 일상에 영화로 활력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품학교’라는 이름이 탄생했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하품 나오는 지루한 영화만 보는 게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을텐데, 참 재미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품학교를 시작으로 학산문화원에 뚜벅뚜벅 남구, 미술관 체험프로그램, 문학기행 등의 다양한 동아리가 만들어졌는데, 그때부터 13년 동안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아리가 바로 하품학교라고 한다. 처음에 하품학교는 매우 적은 인원으로 시작했는데, 민후남 교장이 4번째 회원이었다고 한다. 회원이 된 동기는 간단했다. ‘하품학교’를 알리는 현수막을 보고, ‘하품’이라는 단어가 궁금했다는 것. ‘왜 하품학교인가요?’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른 회원들도 비슷한 호기심을 안고, 혹은 무료로 영화를 보는 것이 좋아서 하품학교를 찾아오곤 한다. 지금은 200~300여 명이 넘는 많은 사람이 하품학교와 함께 하고 있으니 14년 동안의 성장이 눈부시다.

3

오전 10시, 새로운 시도
기자가 찾은 날, 오전 10시 영화감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의 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6년 여름, 현재 하품학교는 더 많은 주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이다. 학산문화생활센터 ‘마당’으로 이전하면서 저녁 7시에서 오전 10시로 시간을 바꿨기 때문이다. 노년층이나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 등 저녁 시간 참여가 어려운 분들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오전으로 영화감상 프로그램 시간대를 바꿔서 운영한 지 3개월째, 노년층 관객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이날 만난 관람객은 “영화를 보는 것이 즐거워서 장소를 옮겼음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건넸다.

 

 


4
하품학교가 영화를 즐기는 방법
하품학교는 언제나 누구나 쉽게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시도한 프로그램이 바로 ‘하품학교 영화감상 프로그램’이다. 오전에만 시간이 나는 주민들을 위해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가 끝나면 평론가가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그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가지는 것이다. 하품학교에서 오래 활동한 회원들은 보다 깊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데, 그런 공간이 또 있다. 바로 평화시장에 위치한 하품학교 분교이다. 1년 정도 된 이곳에서 하품학교 회원들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영화를 즐긴다고 한다. 이렇게 두 개의 센터를 운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천 곳곳에서 더 많은 주민이 가볍게 혹은 깊이 있게 원하는 대로 영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20대부터 80대까지 영화로 소통하다
하품학교의 회원 연령층은 매우 다양한데,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영화’다. 영화에 관심이 있는 20대 대학생부터 영화가 유일한 취미였던 80대 노년층까지 영화를 보고 각자의 시각에 따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관람했을 때, 나이에 따라 반응이 특히 도드라졌다고 한다. 같은 영화를 관람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는 이 과정에서 젊은 회원들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고, 중장년층 이상의 회원들은 젊은이들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한 토론으로 시작했지만 개인의 삶을 토로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품학교의 한 해 마무리, 하품영화제
하품영화제는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하품학교의 축제로 2004년부터 시작, 올해 13회를 앞두고 있다. 초기에는 주제와 키워드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기존 영화를 상영함으로써 더 많은 주민과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영화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욕심과 열의가 커졌고, 회원들이 뜻을 모아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회원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만든 작품은 개막식에서 상영되며, 하품영화제의 시작을 열고 있다.

5
관객에서 감독으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만드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비전문가인 하품학교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들은 매년 작품을 만들고, 영화제에 올리고 있다. 봄부터 주제와 키워드를 선정하고 시나리오 작업과 촬영을 한다. 진행 스탭, 연기하는 배우, 편집 작업까지 모두 회원들이 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3분 이내의 짧은 다큐멘터리 혹은 영화가 되어 하품영화제의 개막식을 빛내고 있다. 회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는 경우도 있다. 민후남 교장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두 편이 있다. 첫 번째는 몸이 아픈 아버지, 철부지 동생과 함께 마지막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자기 자신이 큰딸로 연기하면서 마음은 아팠지만, 더욱 실감나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두 번째는 딸이 시집 가기 전 둘이 떠난 여행을 영상으로 남겼던 다큐멘터리다. 나래이션 녹음을 하면서 눈물을 쏟던 그녀를 바라보던 회원들까지 감정에 이입해 함께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고… 이처럼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한편, 자신들의 작은 영화제를 알차게 만들어가고 있다.

편안하고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곳, 하품학교
민후남 교장은 하품학교에 바라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저 자신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언제나 편안하게 오래오래 영화를 볼 수 있는 또 주민들에게 더 많은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게 다라고 한다. 그녀에게 하품학교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듯,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공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작은 바램이다.

하품학교는 처음에는 그냥 순수하게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이 모인 작은 동아리였다. 지금은 300여 명이 넘는 회원들과 함께 영화를 즐기고 제작까지 하는 모임으로 성장했다. 많은 사람이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하품학교 영화감상 프로그램, 좀 더 진지하게 영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평화시장 분교, 1년의 결실을 공유하는 하품영화제까지 하품학교는 인천의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중심에 놓고 고민과 도전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즐겁게 영화를 보는 여유를 갖게 됐고, 어떤 이는 새롭게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영화감독이 됐다. 2004년 작은 시도로 시작된 하품학교가 바꾸는 인천을 기대해본다.

글 / 시민기자 오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