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와 여가의 도시 인천, 방인근의 「마도(魔都)의 향(香)불 」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전국 유일의 공공 종합문학관입니다. 근대문학을 중심으로 한 근대 한국학 자료 약 3만 점을 소장하고 있는 콘텐츠 중심형 문학관이기도 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 자료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문학관에 직접 오셔서 한국 근대문학이 가진 의미와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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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와 여가의 도시 인천
방인근의 「마도(魔都)의 향(香)불」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은 한국 근대 대중소설을 대표하는 장편 작품이다. 저자인 춘해(春海) 방인근(方仁根, 1899~1975)은 주로 대중문학 방면에서 활약한 작가이지만, 1920년대 순 문예지 「조선문단」을 발간하고 최서해, 채만식, 한설야 등을 문단에 데뷔시켜 우리 근대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32년 11월 5일부터 이듬해인 1933년 6월 12일까지 연재된 장편소설이다. 작품 제목의 ‘마도(魔度)’는 살인, 간통, 허위, 속임수 등이 판을 치는 서울을 가리키며, ‘향(香)불’은 이러한 마도 속에서 순수한 마음과 사랑을 가지고 이타적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인천(월미도)은 이 작품에서 여름 피서지로 등장(‘외나무 다리’ 장)한다. 애희는 무더운 여름, 영철과 기차로 인천 월미도에 와 해수욕을 한 뒤 바닷가 한쪽 구석에서 사랑을 속삭인다. 이 작품은 1934년과 1947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1958년 영화로 만들어져 큰 화제를 모았다.

함태영 /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사




인천의 매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난해 6월 대구 지역 초중고대학생 425명을 대상으로 한국전쟁과 통일에 대한 인식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중고생의 17~25%가 6.25에 관련한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한다. 6.25의 발생과 진행 과정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는 청소년들이 드물었다는 얘기다. 리암 니슨의 출연으로 개봉 전부터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 12일만에 500만을 넘어서 천만관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필자는 궁금해졌다. 그들에게 다시 똑같은 설문을 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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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힘이 세다. 강한 스토리텔링과 볼거리로 무장하여 달려들면 관객들은 속절없이 무장해제되고 만다. 그것이 허구가 아닌 사실에 근거한 영화일수록 더욱 그 영향력은 현실에 크게 나타난다. 인천도 예외는 아니다. 106년간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었다가 2009년부터 개방하고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마케팅해 온 팔미도의 경우, ‘인천상륙작전’ 단 한편의 영화로 그동안의 마케팅이 무색하게 방문객이 53.3%나 증가하는 특수를 누리게 되었다. 관광객들이 스스로 찾아와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고 KLO부대가 탈환한 역사적 스토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자발적 교육생이 된 것이다. 또한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찾아오는 방문객도 일평균 38%가 증가하면서 인천시티투어버스 경유지에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이 새롭게 추가되기도 했다. 영화 한편이 도시 마케팅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 준 셈이다.

항간에는 이러한 특수가 인천시의 과대 마케팅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필자에겐 모처럼 인천을 배경으로 아니, 인천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난 지역단체와 지역민이 보여준 애정과 관심, 그 이상의 의미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마케팅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영화 ‘친구’와 ‘국제시장’의 흥행으로 매력적인 관광도시로 부상한 부산은 영화를 발판으로 영화제에 이어 광고제, 연극제 등 세계적인 행사를 유치하고 국내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면서 도시브랜드로서의 가치를 높였다. 인천시도 이제 그 시작점에 있다.

인천은 아시아의 대표적 개항도시, 근대화의 거점도시로 대한민국의 최초, 최고의 역사와 이야기가 가득한 도시다. 서해 바다를 품은 천혜의 자연조건과 항만과 공항을 두루 갖춘 지리적 강점도 갖고 있다. 때마침 인천시는 문화를 통해 인천의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인천만의 가치재창조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 일환으로 보물섬 같은 168개의 섬 여행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으며 인천 고유의 역사문화 유산을 특성화한 맞춤형 콘텐츠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모아진 세간의 관심을 윤활유 삼아 인천 가치재창조사업의 불씨가 더욱 활활 타오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천시민들의 인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이에 기반한 인천의 지속적인 도시마케팅은 도시를 성장하게 하는 뿌리요 영양소다. 인천시 뿐만 아니라 인천시민 모두가 역사적 사건의 중심지로서의 인천만이 아니라 매력적인 항구도시, 세계적인 미래선진도시라는 자긍심과 자부심으로 인천의 면모를 한껏 뽐내며 알려야 한다. 혹시 아는가? ‘맨하탄’(1979)으로 시작해 ‘미드나잇 인 파리’(2012), ‘로마 위드 러브’(2013) 등등 도시를 중심으로 한 명작들을 쏟아내고 있는 감독 우디 알렌이 다음 영화장소로 인천을 선택하게 될지, 그리하여 전 세계인들이 가고 싶은 로망의 장소로 인천이 부상하게 될지, ‘어쩌면’이 아닌 ‘반드시’가 될지…

박혜란/인천광역시 브랜드 담당관




사이를 걷는, 3일의 영화 축제 – 제 4회 디아스포라 영화제

∗ 갤러리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만의 ‘진짜’ 가족사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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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다른 말은 ‘식구’입니다. 식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요즘은 하루에 한 끼라도 온 가족이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가족끼리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공유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라 할 수 있는 가족과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8월 13일(토), 10팀의 가족이 인천아트플랫폼에 모였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진행된 <토요창의예술학교-여름방학 가족예술캠프 ‘가족사진’>은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는 틀에 박히고 정형화된 형식을 벗어나 가족만의 특색을 살린 가족사진을 제작함으로써 예술을 매개로 ‘가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입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10팀의 가족과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작가 10명은 1:1로 팀을 이루고, 이틀에 걸쳐 팀별로 특색 있는 가족사진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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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첫날 한 팀을 이룬 가족과 작가들은 스튜디오로 이동, 어떤 가족사진을 만들지 심도 깊은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이날 처음 만난 사이, 첫 만남은 다소 어색했지만 가족들의 고민부터 추억까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어색함은 사라졌습니다. 컨셉을 잡기 위해 가슴 속 은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서 처음 듣는 서로의 속마음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집안 대소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등 가족들끼리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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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을 잡은 팀은 곧바로 가족사진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형식과 틀에서 벗어난 가족사진 제작’이라는 프로그램 목적답게 팀들은 각자의 기발한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갔습니다. 가족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거나, 벽에 붙인 도화지에 물감을 뿌리는 등 작가의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마다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각 팀의 뚜렷한 개성이 드러나는 작업과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작업을 마친 참가자들을 기다리는 건 맛있는 저녁식사였습니다. C동 야외 데크에 설치된 파라솔 아래 옹기종기 모인 참가자들은 준비된 야외 뷔페를 즐긴 후 공연장으로 이동, 어쿠스틱 밴드 ‘착한밴드 이든’의 잔잔하고 따뜻한 공연을 즐겁게 관람했습니다. 밴드의 앵콜 공연으로 폭염 속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의 첫날은 마무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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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을 앞둔 프로그램 둘째 날, 각 팀은 점점 더 완성된 형태의 작품을 완성해나갔습니다. ‘주술적인 가족 나무 모자 만들기’를 컨셉으로 잡은 최선 작가 팀은 온 가족이 껌을 씹고 난 껌의 모양을 본떠 만든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카메라 없이 가족사진 만들기’를 시도한 이민우 작가 팀은 가족이 빛 한 점 안 들어오는 암실에 들어가 종이를 오려 붙이며 인물 없는 가족사진을 완성하였습니다. 신민 작가팀은 가족들의 얼굴이 들어갈 손가락 조형물을 만들어 각 손가락에 가족이 얼굴을 집어넣어 사진을 찍었고, 집을 형상화한 가족 우체통을 만든 김유정 작가팀은 우체통 옆에서 편지를 읽는 가족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았습니다. 고등어 작가팀은 가족들의 신체, 물건을 접촉하여 그림을 그리는 일명 ‘촉각 드로잉’으로 멋진 가족사진을 완성하였고, 가면과 망토를 두르고 화려하게 치장한 손승범 작가팀의 가족사진은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가족의 실루엣을 그린 위영일 작가팀의 작품 안에는 가족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윤대희 작가팀은 온 가족이 페이스 페인팅으로 분장하고, 호러무비 포스터 촬영을 진행해 전혀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가족의 얼굴을 배경으로 서로의 얼굴 위에서 가족의 특징을 담은 캐릭터가 뛰어노는 소인국을 만든 조원득 작가팀은 또 어떤가요? 아기자기함이 돋보이는 그림과 다양한 색을 통해 가족만이 알 수 있는 언어로 그림을 완성한 최현석 작가팀은 가족이 서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지를 단박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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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걸친 프로그램은 단체사진 촬영 없이 마무리됐습니다.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겠다는 프로그램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각자의 마음 속에 이미 사진 한 장씩이 들어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일상적인 풍경처럼 존재하던 가족사진이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이번 <토요창의예술학교>는 예술을 매개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술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보다 매우 가까이에 있습니다, 마치 우리들의 가족처럼.

김수현(아산프론티어유스 인턴 프로그램 참여자/인천아트플랫폼 인턴)




영화 <인천상륙작전>과 도시 인천에 거는 희망

2016년 한국영화의 흥행에는 특이한 경향이 있다. <동주>, <귀향>, <곡성>, <아가씨>,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이 리스트를 보면 무엇이 보이는가? 그렇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두드러지게 영화 속에 녹아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여기에 작년에 흥행했던 <암살>과 <연평해전>을, 곧 개봉할 <밀정>을 얹으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암살>, <동주>, <귀향>, <아가씨>, <덕혜옹주>, <밀정> 등은 일제강점기의 반일 정서를 토대로 하고,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등은 분단 시대의 국가주의를 토대로 한다. 과거의 민족주의와 현재의 국가주의가 부딪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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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강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지금 극장가를 지배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답은 2016년이라는 현 시기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하는 시기라는 것 정도이다. 그런데 이 답이 이상한 것은 TV 드라마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아마도 중국이나 일본이라는 거대 시장에 수출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즉 중국이나 일본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내용으로 제작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드라마와 달리 중국이나 일본에 거의 수출이 되지 않는 영화는 국내 관객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다 보니, 게다가 극장에서 수익의 대부분을 회수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강하게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 같다.

흥미롭게도 전자의 영화들은 좌파적 민족주의에 기대고 있고, 후자의 영화들은 우파적 국가주의에 기대고 있다. 이제 극장가에도 좌파와 우파의 대결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고 해야 할 판인데, 인천을 소재로 한 두 영화는 우파적 국가주의를 다루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아마 인천의 고민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인천이 전쟁의 상징이 되고 대립의 상징이 되고 있지만, 그것을 반공영화적 이분법으로 다루고 있다면, 마냥 지지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천 사람들이 오히려 <인천상륙작전>을 다른 지역보다 덜 관람했다는 기사가 인천 지역의 신문에 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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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해보자. 왜 인천사람들이 오히려 이 영화를 덜 본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영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에 있을 것 같다. 한국영화사를 보면,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영화는 많지 않았고 흥행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대규모 인원과 자본이 투입된 1965년작 <인천상륙작전>은 흥행에 실패했고,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아벤고 공수군단>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으며, 미국 감독인 테렌스 영이 연출한 <오! 인천>(1982) 역시 흥행에 참패했다. 영화적으로 보자면, 거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고 수준 높은 기술력으로 스펙터클을 재현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연합군이 지휘한 작전을 한국에서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인천상륙작전을 재현한 영화를 만들게 되면 필연적으로 국가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반공영화의 공식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당연히 맥아더를 영웅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인천의 사람들의 인천 이야기’가 영화 속에 녹아들 틈이 없다. 가장 큰 고민은 여기에 잇다. 가령 실제 작전을 수행할 때 월미도에 살았던 주민들은 3일 동안 지속된 네이팜탄 투하 때문에 인천이나 영종도로 피난을 갔고, 작전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려 해도 미군이 길을 막아 가지 못했다. 즉 주민들의 무고한 죽음과 피해가 있었지만, 영화에 그것을 그리기는 쉽지 않다. 넓은 시각에서 봤을 때,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한국전쟁은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었다. 그러니 인천상륙작전의 소중함을 다시 말해 무엇하겠는가마는 그렇다고 인천의 속살이 영화 속에 없어서는 안 된다.

영화 <인천상륙작전>도 마찬가지다. 작전의 성공을 위해 조직된 특수 부대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즉, 첩보전으로 서사를 전개하고 적당한 가족 멜로 코드를 지니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스펙터클로 승부하는 전술을 택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이 전술이 통했는지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영화로는 최초로 흥행에 성공했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거의 700만 명 가까운 관객이 지금까지 이 영화를 관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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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영화를 두고 다시 이념 논쟁을 벌이며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지만, 지금 인천에 필요한 것은 그런 편 가르기가 아니라 인천상륙작전을 어떻게 역사화하고 다시 현재화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인천시는 이 영화의 제작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의 영상위원회가 있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인천을 상징하는 곳이 월미도였으니 월미도를 다시 조명 받게 하는 것도 지자체에서 당연히 해야 할 몫이다. 다만 인천시에서 영화 흥행에 힘을 받아 국가주의적 시각으로만 상륙작전을 테마화하는 작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하고 싶다. 인천의 정체성이 들어가야 하고 인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간 인천상륙작전을 이야기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영화 <인천상륙작전>처럼 논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천의 고민과 고뇌가 들어간 인천상륙작전을 스토리텔링 해야 하고, 테마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천은 여전히 분단의 상징처럼 남아있다. 월미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눈앞에 월미도를 둔 맥아더 동상이 우뚝 서있는 자유공원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역사지만, 현재 분단과 대립의 상징인 서해 5도가 인천에 있다. 이 갈등과 대립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인천이 만들어가길 많은 사람들은 원하고 있다. 분단과 대립의 시대를 넘어 평화의 시대로 가는 길을 인천에서 시작하기를 나는 간절히 희망한다. 인천은 그럴 자격과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강성률(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문화의 길 총서 ‘영화’ 저자)




동네방네 알림판(2016.09.06.~09.19)

인천에서 벌어지는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각종 행사들의 소식을 한번에 전해드립니다. 또한 좋은 소식이 있으면 함께 널리 알리고, 축하하고자 합니다. 매월 1주, 3주 화요일마다 발송되는 인천문화통신을 활용해 다양한 소식을 전하세요. 다음 문화통신은 각각 9.6(화), 9.20(화)에 발행됩니다.
알리고 싶은 행사 내용을 http://me2.do/xRtWJVeH 링크에서 입력하시면, 기간에 맞춰 실어드립니다. 많은 활용 부탁드립니다. #인천문화예술 #동네방네 #알림판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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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큐>앱, 정부3.0 맞춤형서비스 최우수 선정 쾌거
인천문화재단에서 개발한 인천문화예술정보 모바일 앱 ‘아이~큐’가 행정자치부에서 주관하는 <생애주기 맞춤형서비스 우수 지자체 공모전>에서 최우수로 선정됐다. 이번 공모전은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수요자인 국민이 필요로 하는 생애주기별 맞춤서비스를 발굴하는 목적으로 실시됐다. 인천시에서 제출한 아이큐 앱은 특히 서비스의 창의성, 실현 가능성, 전국 확산 가능성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고, 부상으로 앱 개발에 사용할 특별교부세 2억도 받았다. 아이~큐 앱은 인천과 인근 도시 500여 기관의 문화정보를 지역별‧날짜별‧장르별로 제공하고 위치서비스를 통해 내 주변의 공연‧행사정보를 바로 알려주는 서비스로, 이번 수상을 통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서비스가 기대된다. 아이~큐 앱에 등록되는 정보는 아이~큐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쉽게 등록할 수 있다.
☞ 아이~큐 홈페이지 http://iq.ifac.or.kr/

 

인천문화통신 3.0에서 문화정책동향을 만나요
인천문화재단 정책연구팀에서는 문화정책동향을 격월간으로 발간하고 있다. 문화정책 동향은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 해외의 문화 정책과 문화예술 관련 이슈, 연구 흐름을 정리하는 리포트이다. 지금까지 문화정책동향은 문화예술 전문가 등 한정적인 대상에게만 발송되었으나, 앞으로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더 다양하고 많은 독자들과 함께할 계획이다. 문화정책 동향은 짝수달 초 인천문화통신 3.0 홈페이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번 9호에는 지난 7월 말 발행된 문화정책동향을 실었다. 관련 문의는 정책연구팀 032-455-7136
문화정책동향 보러가기 

인천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 수립 열린집담회(9.6 화, 9.8 목)
인천의 문화가치와 비전에 대해 논의하는 열린집담회가 2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열린 집담회>는 원로, 청년, 중진 등 인천 문화예술계를 둘러싼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를 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 수립 과정에 반영하고자 기획된 자리다. 집담회에서 나누는 다양한 이야기는 ‘정책토론회’와 ‘시민공청회’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될 예정이다. 6일(화)에는 인천문화재단 김윤식 대표이사가 기조발제를 맡고 지역 언론 관계자가 다수 참여하며, 8일(목)은 청년들이 주로 발표한다. 2차례 모두 오후 2시부터 열리며, 9월 6일(화)는 부평구문화재단, 9월 8일(목)에는 인천아트플랫폼 칠통마당 다목적실에서 진행된다.

지역 시민을 위한 정치경제학 특강(9.9, 19:00, 인천대 14호관 512호)
인천대 사회적경제연구센터가 12번째 <지역 시민을 위한 정치경제학 특강>을 마련했다. <독일 청년 사회적기업가의 자본주의 뛰어넘기>라는 주제로, 강사는 독일 베를린에서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하는 노동공동체를 결성하여 기부 책 판매와 감각적인 카페 경영으로 유럽 전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사회적기업의 Yens Steff Kapp 대표를 초청하는 자리다. Kapp 대표는 청년 사회적경제운동가로, 장애우와 비장애우 간 동일 비율로 결성되는 유럽 노동공동체 운동 최전선에 있는 인물이다. 별도 신청 없이 누구나 와서 들을 수 있는 자리다. 장소는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 14호관 512호.

 

02거리울림 시장부활프로젝트-용자씨네, 달시장(9.10 14:00~)
1990년대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붐볐던 용일자유시장을 기억하시나요? 지역주민, 청년활동가, 예술가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플리마켓, 야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먹거리, 가족 단위 참여 체험 프로그램… 시장의 공간적 의미를 되살리고, 지역의 중요한 문화예술공간으로서 시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달시장은 9월부터 11월까지 3번 열립니다. 9월 10일토요일, 용일자유시장 2층(인천광역시 남구 174번길 19, 용일자유시장)으로 놀러오세요!
☞ 박하늘 010-9204-6767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Factorial174

 

03학창시절의 추억 – 인천의 고교 교지(校誌) 특별전(9.13~10.23)
한국근대문학관 하반기 특별전시 <학창시절의 추억 – 인천의 고교 교지(校誌) 특별전>이 9월 13일부터 10월 23일까지 문학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지역을 주제로 한 전시로, 개교 30년이 넘은 인천 지역 고등학교의 교지를 수집하여 시민들에게 공개한다. 1950년대 교지부터 2013년 발행된 최근 교지까지 총 36권의 교지가 출품되는데, 교지와 더불어 옛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다양한 체험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 문의 032-455-7166




젊은 연극인들이 만들어 낸 15분의 기적 – 제 3회 15분 연극제 X 인천

젊은 연극인들이 만들어 낸 15분의 기적
– 제 3회 15분 연극제 X 인천(2016.08.26.~08.28 인천아트플랫폼)

지난 8월 26일부터 8월 28일, 인천아트플랫폼을 지나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 곳에 멈추어 섰다. 시작을 알리는 신호도 없이, 무대의 구분도 없이 그냥 거리 위에서, 브릿지 연극 <백투더 15미닛>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백투더 15미닛>의 배우들은 관객들을 이끌고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으로 향했다. 세 명의 배우가 우산을 든 채 서 있었고, 좁은 골목은 순식간에 무대로 바뀌었다. 그렇게 <15분연극제X인천>의 첫 번째 본 공연 <Bright New Morning>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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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회를 맞은 <15분연극제X인천>은 미국의 극작가 Patrick Gabridge의 단막극 여덟 작품 <Bright New Morning>, <꽥꽥>, <Eden in Chains>, <뉴턴의 부름>, <원더랜드로 도망가다>, <산타없음>, <베아트릭스 포터는 죽어야해!>, <Will/Did/Is>와 각 작품들과 공연장소를 연결하는 브릿지 연극 <백투더 15미닛> 으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작품은 골목, 문화센터, 잔디밭, 극장 로비, 극장 안 등 서로 다른 장소에서 공연되었다. 거리에서 시작한 연극은 점점 극장과 가까워졌고, 길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축제를 마주한 관객들은 홀린 듯이 이끌려 극장 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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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연극제X인천>의 권근영 예술감독은 공연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울에서 연극을 하다가 고향인 인천에서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인천으로 옮겨왔는데, 인천의 많은 사람들은 연극과 극장을 굉장히 낯설어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극장이라는 공간을 사람들과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극장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연극을 가지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가보자고 결심했죠.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지나는 거리와 골목, 자주 들르는 카페 같은 곳을 무대로 만들었어요. 익숙한 장소에서 연극의 매력을 맛본 사람들이 극장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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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연극제X인천>은 극장이 낯선 관객들을 위한 연극제이기도 하지만, 젊은 연극인들에게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고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15분연극제X인천>을 기획한 앤드시어터 전윤환 대표는 처음 이 연극제를 기획하게 된 3년 전을 회상했다. “선배들과 희곡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 작가가 언제 태어났고 어느 시대를 살았던 사람인지가 궁금했어요. 구글에 검색해보았는데, 작가가 아직 살아있는 거예요. 심지어 페이스북 아이디도 있었죠. 작가의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친구 신청을 하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당신의 작품을 우리가 공연으로 만들고 싶은데, 한국에 와서 우리 공연을 볼 생각이 있느냐고요. 그게 15분 연극제의 시작이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15분연극제X인천>은 매년 미국의 저명한 극작가를 초대하여 젊은 연극인들만의 톡톡 튀는 방식으로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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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청년단의 <Eden in Chains>는 독특한 무대 구성과 연출로 관객들과 소통하며 큰 호응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이다. 집 앞마당에서 채소를 가꿀 수 없다는 조례가 통과되고, 10년 동안 앞마당의 텃밭을 가꿔왔던 테리는 텃밭의 작물을 모두 뽑아버리려는 스틸맨 경관과 대립한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 앉아 테리가 소중히 가꾸는 텃밭의 작물들로 등장했다. 연극의 소품으로 등장하게 된 관객들은 새롭고도 즐거운 경험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배우들의 열연이 이어지며 관객들은 이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텃밭을 잃은 테리의 슬픔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다. <Eden in Chains>의 민새롬 연출은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본 맨 마지막에 ‘무대의 소품으로 진짜 살아있는 식물들을 사용하지 마시오.’라는 작가 노트가 있었어요. 텃밭의 작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소품을 활용할지 고민하다가 관객들을 무대에 앉히기로 했죠.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이어가면서도 관객들이 테리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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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영화나 TV드라마에 비해 대중과의 접근성이 떨어지며 대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뮤지컬만큼 화려하지도 않다. 게다가 코미디와 로맨스 위주의 상업극만을 찾는 대중들 앞에 젊은 연극인들이 설 자리는 많지 않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단막극 페스티벌을 통해 젊은 연극인들이 새로운 시도를 펼치고 대중과 마주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15분연극제X인천>의 작가로 선정된 미국의 극작가 Patrick Gabridge는 연극제 이튿날 마련된 포럼에서 단막극 페스티벌이 가지는 의의를 설명했다. “단막극 페스티벌에는 여러 개의 작품들이 올라가기 때문에 다양한 극단의 많은 배우, 연출가, 작가들이 공연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것은 그들의 가족, 친구, 지인들이 공연을 보러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보다 높은 참여율과 티켓 판매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죠. 또한 다양한 주제의 다양한 작품들이 상연되기 때문에 관객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연극을 만날 기회도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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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의 짧은 공연을 위해 배우와 연출가, 스태프들은 오랜 기간 동안 밤을 새워가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습한다. 그러나 길을 걷던 사람들이 멈추어 서 있기에 15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15분간 한 자리에 세워두고, 그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게 만들고, 극장 가까이 데려가 이내 극장 안의 관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15분연극제X인천>의 젊은 연극인들은 그 어려운 일을 눈앞의 현실로 만들어냈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재기발랄함이 만들어낸 작은 기적인 것이다. 이렇듯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무장한 젊은 연극인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작품을 만나는 대중에게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젊은 연극인들이 그들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새로운 시도를 펼칠 기회가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글 /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 15분연극제X인천 제공




박사가 사랑한 문장 – 한국근대문학관 ‘책 듣는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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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소리는 더욱 깊어진다. 빗줄기가 소란을 잠재우기 때문일까. 아침부터 내린 비는 ‘책 듣는 수요일’을 향해 가는 동안에도 그치지 않았다. 우산 속 발걸음이 번거로워 외출을 자제한 이도 있었으리라. 조촐한, 열 명 남짓의 청자들은 ‘박사’(‘책 듣는 수요일’ 진행자)를 감싸는 모양새로 반원을 만들었다.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은 금세 따뜻한 반달이 되었다.

다섯 번에 걸쳐 문학작품을 듣는 시간. 시작과 끝의 한가운데, 8월의 주제는 ‘근대를 깨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박사 씨는 김명순 소설 ‘나는 사랑한다’와 강신재의 ‘안개’, 나혜석의 시 ‘아껴 무엇하리 이 청춘을’를 들려줬다. 나는 박사의 목소리를 타고 근대 여행을 떠났다.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다. 성우가 아니다. 속도와 음의 고저를 계산하지 않은 데서 온 낭독에는 담백함이 묻어있었다. 라디오 문학관 등에서 들었던 성우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녹음파일이 아닌 같은 시공간에서의 라이브 청취는 지금, 여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했다. 슬쩍 돌아보니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박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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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도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대개 라디오에서 나왔다. 라디오 한 대를 온 동네가 공유하며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에 빠져들었다. 동시성을 되살린 ‘책 듣는 수요일’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건드린다. 듣지 않아도 되고(읽으면 되고), 함께가 아니어도 되는데(혼자 들으면 되고), 그럼에도 굳이 집을 나선 것은 장작으로 때는 군불 같은 그리움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푹푹’에서 ‘쌀쌀’로 예고도 없이 ‘페이스 오프’한 계절 탓에 더운 아랫목 공기와 선한 입김을 만나고 싶었다.

왜 1920~50년대 작품이었을까. 왜 ‘나는 사랑한다’와 ‘안개’였을까. 소설 쓰는 사람이라는 소개가 무색하게(나는 소설가다) 두 작품 다 생소했다. “연애소설인데 큰 불로 끝나다니 뭔가 교훈적이죠?”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는 많이 아실 것 같아서 ‘안개’를 골랐어요.” 각각 30여분씩 쉬지 않고 정주행한 두 개의 단편소설에 대한 감상을 나는 좀처럼 말할 수 없다. 20세기의 문장은 현대의 문장과는 달라서 나는 스토리보다 소리적 재미에 더 끌렸다. 딴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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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점을 말해야겠다. 책을 들려주기 전에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거나 줄거리를 알려주었더라면 ‘음성’이 아닌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그 작품을 큐레이션했는지, 어떤 부분에 특히 끌렸는지 사적인 정보를 나눴더라면 앉은 자리에서 낭독자를 달처럼 우러러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제 심정 같아서 골라봤는데 여러분도 나해석의 청춘에 공감하셨나요?” 듣는 사람의 속도가 아니라 들려주는 사람의 속도로 한 번 들은 시를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멈춤이 불가능한 자리에서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사색을 위한 일시정지’를 외쳤다. 귀 막힌 바보, 바보였다.

낭독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은 잠자기 전에 듣는 ‘수면제’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다. ‘서재에 있는 책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 읽기’가 콘셉트라고 하지만 들어보면 청자의 수준을 낮게 잡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쉬운 문장으로 적힌 텍스트를 짚어낸다는 뜻이다. 작가는 글의 앞뒤 맥락을 설명하고 전체가 아닌 부분을 읽는다. 인물, 사건, 배경이 담긴 한 편의 글보다 일부를 발췌하는 편이 청자를 염두에 둔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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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성격 문제다. 나라면 사람들을 앉혀 놓고 장시간 책 읽어주는 일은 못할 것 같다. 저기 있는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거기 있는 사람의 표정도 보지 못하고, 내 코를 책에 빠트린 채 낭독만 한다고? 나는 확인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세요?” “문장이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이 유려한 시어를 좀 보세요.” “달콤한 행간의 여백을 음미하셨나요?” 관객과의 대화를 유도한답시고 촐랑거릴 게 틀림없다. 오늘 참석한 사람들은 박수도 크게 치지 않았다. 진지한 청자로서 낭독자의 호흡과 리듬을 가만가만 배려했다.

‘박사’가 사랑한 다음 문장은 ‘앞서나간, 너무나 앞서나간’ 사람들(이상과 박태원)의 것이다. 그들을 잘 안다고 단정짓지 말라. ‘책 듣는 수요일’에 가면 낯설어질 것이고, 소리의 신선함에 젖어들 것이다. 그 경험만큼은, 한 번쯤 해볼 만하다.

이재은(소설가)




한국 최고의 액션배우 장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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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출신이면서 인천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듯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은데 배우 장동휘(張東暉, 1919~2005)도 그런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왜 인천에서 출생했거나 활동했던 이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는지…

하기야 『인천시사』에도 그의 이름 한 줄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무슨 말을 하랴. 앞서 소개한 여러 배우들도 모조리 누락되어 있다. 이들에 대해 인천사에 기록하고 알리는 것이 인천인으로서 긍지를 가지게 하는 일이 아닐까. 거듭 강조하거니와 인천 인물 하나를 더 찾아내 기록하고 시민들이 함께 마음에 새기는 것이야말로 인천의 뿌리와 정체성을 확인하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야기가 옆으로 나갔다. 장동휘가 영화에 데뷔한 것은 나이 38세인 1957년으로 김소동(金蘇東)이 감독한 영화 「아리랑」에 첫 출연하면서였다. 그 후 그는 성격배우, 액션배우로서 1960년대 초반부터 10여 년간 박노식(朴魯植), 허장강(許長江), 황해(黃海), 독고성(獨孤星) 등과 함께 한국 액션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영화배우로서 그의 행로는 분명하지 않다. ‘1938년 인천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에 있던 악극단 <칠성좌>에서 연기 활동을 시작했고 광복 후에는 악극단 <낙천지>의 멤버로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1936년 고교를 졸업한 이후 1939년 악극단 <콜롬비아>에 몸담으면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 ‘6ㆍ25때는 예술단으로 종군, 국군 위문 활동을 벌이며 장병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렸다’는 기록도 보인다.

‘인천의 유명한 장사’였다는 소문처럼 그는 건장한 체격과 독특한 마스크, 특유의 너털웃음, 상대를 압도하는 눈초리, 그리고 당당한 목소리로써 그만의 카리스마를 창출했다. 주로 전쟁 영화와 범죄 영화에서 통쾌한 액션을 연기함으로써 남성미 물씬 풍기는 한국 최고의 액션 스타 1세대로 이름을 날렸다.

평생 단 한 번도 TV 출연을 하지 않은 것이나 나이트클럽 출연 자제 등 외고집 영화 인생을 산 장동휘. 그는 진정 선 굵은 영화인으로 세인의 가슴 속에 추억된다.

김윤식/시인,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뉴스 큐레이션(2016.09.06~09.19)

‘친구와 술 한 잔’ 하기 위해 시인은 두 달 동안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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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혹은 초가을의 기운도 없이 거인의 발로 성큼 ‘가을’이 왔다. 시를 읽기에도, 술 마시기에도 좋은 계절. 오랜만에 청탁 전화를 받고 시인은 그날부터 시를 생각한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잠을 자면서도 시재(詩材) 생각뿐이다. 친구의 호출도 마감 이후로 미룬다. 수십, 수백 시간 만에 완성한 시를 보내고 원고료를 받는다. ‘가을이니까’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신다. 두 달간 쓴 시를 보내고 받은 돈을 쓰는 데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두 편에 5만원. 20만원을 받으면 좀 나을까? 문인들은 시를 ‘계산’하는 일이 까다롭다고 말한다. 순간적 감응으로 완성할 수도, 몇 년에 걸쳐 다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돈이야 계절이야, 뭐가 됐든 시인들은 계속 시를 쓰고, 술을 마신다. 시가 그리운 독자들은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 간다.

인천에서 자란, 이런 ‘돌아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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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봤어? 물어보기 전에 주위를 돌아보자. 최초의 인간을 다룬 <시발, 놈:인류의 시작>은 제목부터 만만한 영화가 아니다. 뻔뻔해서 웃기고, 황당해서 박수가 나온다. 마냥 가벼울 거라고 예상하면 오산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장 자크 아노의 ‘불을 찾아서’, 무성영화의 클래식한 아우라 등이 백승기 감독다운 방식으로 표현된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처녀작 <숫호구> 이후 내적 진화를 했다는 평가와 ‘힘찬 패기’라는 감상 뒤에는 ‘깊이 없는 해프닝’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꿈으로 꼭 뭔가를 이뤄야 하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즐기면 안 되나? 도전은 쉬운 줄 아나?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창작, 만들자마자 예술이다.

물은 거꾸로 흐르면 안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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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는 꼰대였지만 성소수자 아들, 파업 공표 엄마 등 시대를 앞서가는 설정이 있었다. ‘흥행보증수표’ 김수현 작가의 최근작은 방송사 처지에서 볼 때 방영을 하면 할수록 손해인 민폐작으로 마감했다. ‘그래, 그런거야’는 변함없는 꼰대적 구조에 성차별적 장면만 남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혼전순결’ 운운도 촌스럽고 ‘개념녀’의 이분법도 구식이다. ‘여자니까 참아야 한다’는 안이함은 굳이 여성주의를 언급하지 않아도 낡은 사고방식임이 분명하다. 자기 복제와 매너리즘은 잘 이용하면 스타일이 되지만 안주하면 몹쓸 굳은살이 된다.

 

음식 포르노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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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모양과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사람은 음식보다 사람에 포커스를 맞춘 프로그램을 견디지 못한다. 크게 벌어지는 입술과 목젖의 움직임, 점점 커지는 눈동자에 집중하는 화면은 어쩐지 포르노와 비슷하다. 중림동 새우젓(글쓴이)은 온갖 장르에서 소비된 음식에의 탐닉을 고백한다. 정확히는 음식에 관한 문장과 상상 속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다. ‘봄봄’의 봄감자, ‘운수 좋은 날’의 설렁탕, ‘날개’의 아달린 알약, ‘올리버 트위스트’의 꿀꿀이죽과 ‘소공녀’의 오이 샌드위치가 존재하는 시공간은 가히 황홀경의 세계다. 어느 쯤에 다다르면 종교의 경지. 재료 써는 소리, 가스레인지 켜는 소리, 찌개 끓는 소리를 듣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는 선(禪)의 순간에 도달한다. 웹툰과 영화, 요리 영상 소개까지 음식에 대한 애정으로 알알이 차 있는 글이다.

5로이터 사진전, 이 한 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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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어 ‘photography’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고 한자어 ‘寫眞’은 진실을 베낀다는 뜻이다. 기술보다 본질. 건축가 승효상은 ‘사진’이라는 단어에서 더 큰 울림을 느끼고, 사진의 가치는 기억의 재생에 있다고 말한다. 이 한 장의 사진. 난민들이 임시 거주지 앞에 나와 물통과 식기에 빗물을 받는다. 난민선에서 두 달 넘게 표류하다 미얀마 남쪽 해상에서 구조된 로힝야족 난민과 방글라데시 이주자들이다. 오늘은 불안하고 내일은 캄캄한데 그때, 단비가 내렸다. 헐벗은 그들의 얼굴에 한 줄기 행복이 지나간다.

 

이재은(뉴스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