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문화다양성 사업 현황과 과제〉 좌담회

<인천의 문화다양성 사업 현황과 과제> 좌담회

7월 29일 오전 10시, ‘인천의 문화다양성 사업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온라인으로 좌담회가 열렸다. 문화다양성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8명(인천문화재단 시민문화부장 태지윤;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 김영경,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도시지원센터 거버넌스팀장 안주용; 거버넌스팀 공영지; 생활문화팀 윤미화, 연수문화재단 문화도시팀장 정시윤; 문화도시팀 신성은, 인천영상위원회 사무국장 이재승)이 좌담회에 참여하였고, 인천문화재단 정책협력실 손동혁 실장이 진행하였다. 논의는 크게 3가지로 진행되었는데, 첫째, 문화다양성 사업의 현황, 둘째, 사업 추진 관련 애로사항, 마지막으로 향후 문화다양성 사업 확대를 위한 제안에 대한 의견이다.

손동혁 : 현재 추진 중인 문화다양성 사업의 주요 현황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윤미화 : 인천서구문화재단은 2020년도에 무지개다리 신규기관으로 선정되어서 올해 2년 차를 맞이했습니다. 지역특성을 반영한 세부 프로그램을 세대, 원·이주민, 성별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서 지역의 원도심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1년 07월 28일까지 교육 3일 차를 진행 완료한 상태입니다. 하반기에 잘 진행하여 내년에는 좀 더 확장된 프로그램으로 지역의 문화다양성 가치를 발굴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통해 확산시키고자 합니다.

2021 무지개다리사업 <골목문화놀이터> (사진: 인천서구문화재단) 2021 문화다양성 기획학교 교육워크숍 (사진: 인천서구문화도시지원센터)

안주용 : 2021년 <문화다양성 기획학교>는 예비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인천서구문화재단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주민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서로 공유·공감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주민들 간의 논의를 통해 좀 더 확산·확장하는데 주요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문화다양성 기획학교>는 <무지개다리 지원사업>과 연계하여 진행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 사업은 특정한 사업들이 지역의 많은 현안들을 반영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되어 ‘문화다양성’의 가치에 기반한 다른 사업들을 늘림으로써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사업입니다.

이재승 : 문화다양성과 관련된 사업을 소개하기에 앞서서 인천영상위원회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천영상위원회는 10여 년 전에 인천문화재단 내 하나의 부서로 있었는데요, 그 당시 인천영상위원회의 대부분 사업들이 산업지향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리된 이후 지역에 기여하는 의미로 문화적인 측면에서 고민하였고 저희가 주로 다루고 있는 장르인 영화를 매개로, 인천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설명할 수 있는 사업들의 과정에서 시민들이 문화도 향유할 수 있게끔 하고자 했습니다. 인천영상위원회라는 조직으로 지역에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디아스포라영화제> 사업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 디아스포라영화제 (사진: 인천영상위원회)

영화제는 보통 영화진흥위원회라는 곳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디아스포라영화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무지개다리 지원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았고 내년에는 10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인천은 한국 최초 이민의 역사가 있는 도시의 정체성과 한국의 관문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서 살고 있고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는 일종의 공존의 도시라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저희는 그런 부분들을, 이주민과 선주민을 잘 연결해 서로의 다름에 대한 관용,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영화를 통해서 만들고자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요, 1) 영화를 상영하는 부문과 2) 여러 담론이나 교육에 관련된 아카데미 프로그램, 그리고 3)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누릴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화제라고 이름은 붙여져 있지만, 일종의 복합문화축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태지윤 :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에서 작년부터 문화다양성 사업을 수면 위로 드러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게 처음이 아니고 2015년부터 2019년도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무지개다리 지원사업>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 곳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 지원을 받기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내부에서 재단이 예산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는 의견을 반영하여 기존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에 ‘문화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마련했습니다. 올해는 해당 키워드를 이원화해서 1차 공모에서는 문화다양성 사업을 받았고 2차 공모 때는 기존에 했었던 생활문화 관련 사업을 받았습니다.
5년 동안 문화다양성 관련 사업을 재단에서 직접 기획하면서 느낀 점은 재단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기보다는 지역 단체들하고의 연계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재단은 기본적으로 지원하는 행정조직이라서 사업의 진행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들과의 공유나 사업의 확산 면에서도 지역 단체들과 연계하는 게 효과적일 것으로 봤습니다. 선정된 사업들을 살펴보면 소기의 성과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과 올해를 통틀어 보면 주제·장르·대상의 문화다양성 관련된 사업들이 있었고 인종·취향·성인지, 혹은 노동·인권·환경 등을 다루고 있는 사업들도 있습니다. 기존 장르중심의 사업에서는 지원할 영역이 부족했는데 문화다양성이라는 사업 분야를 통해 다양한 사업들이 발굴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020 인천문화재단 시민문화활동 지원: ‘산곡동 영단주택’ 도시투어 및 기록 (사진: 동인천탐험단) 2021 인천문화예술교육 기획 지원: <얘들아 같이 놀자: 똑똑, 음악 Talk> (사진: 인천 자바르떼)

김영경 : 여기 오신 분들은 ‘문화다양성’에 집중된 사업을 하고 계신데요,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산 규모가 큰 사업 중 하나가 지역의 단체들이 시민들을 찾아가서 문화예술교육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모사업입니다.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이라고도 하고 몇 년 전부터는 <인천문화예술교육 기획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인천에서 강조해야 할 영역이 문화다양성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일반적인 공모와는 별도로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한 주제공모를 3년 전부터 지원하고 있습니다. 일반공모와 별도로 주제공모를 둠으로써 일반적인 교육 운영 이외에도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지역의 논의를 모아내고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론화하는 등의 활동까지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3년 전에는 지원 단체는 있었지만 선정된 곳이 없었고 작년에는 세 단체가, 올해에는 두 단체가 선정되었습니다. 올해 두 곳 중 한 곳은 이주 고려인들과 다른 한 곳은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시윤 : 연수문화재단은 여기 모여 있는 기관 중 가장 신생 기관이기에 오랫동안 사업을 추진해온 것은 아니지만, 문화다양성 사업추진과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앞서 다른 곳에서 했던 문화다양성 사업들을 톺아보며 우리의 사업을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해 접근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문화다양성’이라는 가치 중심의 단어를 안정적인 사업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 재단 자체 재원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2020년도에는 연수구가 어떤 도시이며 어떤 부분을 문화다양성 사업 안에서 풀어낼 수 있을지 조망하는 단계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지역을 살피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고요, 올해는 거기서 조금 더 깊이 나아간 상태입니다. 문화다양성 관련 내용을 조사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으로 옮길지 고민하는 작업은 계속해서 이어가면서 내년에는 연수구에서 문화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조금 더 정리해 내고 그것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실천 전략을 사업에 녹여내고자 합니다.

2021 문화다양성 주간행사: 거리예술 프로그램 <자전거 식당: 유목민의 식탁> (사진: 연수문화재단) 2021 함박웃음 문화학교 라운드테이블 (사진: 연수문화재단)

신성은 : 저는 연수문화재단의 구체적인 사업내용과 현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연수문화재단은 올해 세 갈래로 사업을 나누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화다양성 리서치>로 작년부터 진행해 온 사업입니다. 송도유원지 일원은 유원지가 폐장한 이후 도시 계획이 잠시 부재한 사이에 지리적으로 항만과 가깝다 보니 도시 계획과 달리 자연스럽게 송도중고차수출단지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중고차를 주로 거래하는 아랍권이나 아프리카권의 이주민들이 대거 거주하게 되었고 도시의 모습과 구성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폐장이 되거나 이전될 수 있다는 임시성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 지역에 대한 아카이빙이나 리서치가 부족했는데요, 작년부터 조심스럽게 심화 인터뷰와 지역에 관련된 연구 자료들을 함께 조사하면서 지역의 현황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어떻게 문화다양성 사업을 해볼 수 있는지 조사하는 리서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리서치는 문화다양성 사업의 방향성과 내용을 고민하기 위한 자문회의도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업은 <문화다양성 주간행사>로 <무지개다리 지원사업>과 별개로 연수문화재단 자체로 진행한 사업입니다. 이 사업은 문화다양성 관련 콘텐츠로 시민들과 조금 더 편하고 쉽게 만나기 위해 기획된 사업입니다. 연수1동의 함박마을이라는 곳에는 고려인이나 중앙아시아, 러시아에서 이주한 분들이 많이 거주하다 보니 그분들의 주식인 빵을 판매하는 빵집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에게도 빵이라는 음식은 익숙하기에 그 빵을 통해서 문화다양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예술 프로그램을 자전거문화살롱과 함께 기획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디아스포라영화제>의 부대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가족 단위로 어린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그림책 제작 워크숍>, 협력 기관들과 함께 운영한 <문화다양성 특강>도 주간행사에 같이 구성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함박웃음 문화학교>는 앞서 말씀드린 함박마을이라는 곳이 워낙 다양한 곳에서 온 이주민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기에 소통의 과정에서 오해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문화 활동을 접점으로 이주민들과 원주민들이 만날 수 있는 계기들을 확장하기 위해 기획하였습니다. 또한, 마을 안에는 복지관,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등 다양한 중간 조직들과 이주민분들을 돕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민간 조직들도 많은 편이라 사전 회의를 통해 협력지점을 공유하는 자리도 같이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는 주민분들이 참여하실 수 있는 라운드테이블을 운영하면서 사업을 함께 기획하고 운영할 함박웃음 문화학교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손동혁 : 문화다양성 사업 추진과 관련한 애로사항은 무엇이 있을까요?

안주용 : 다른 사업들과 공통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만, 한정된 인원과 재원으로 문화다양성 관련 사업을 주민들에게 얼마나 많이 알리고 참여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것입니다. 지역적으로도 면밀히 파악해서 공유하고 참여와 공감으로 이어지는 확장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이뤄낼 수 있을지도 항상 애로사항인 것 같습니다. 앞서 정시윤 팀장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업’에 치중되지 않고 ‘문화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확산하고 끌어낼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업이 일부의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이벤트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지 말이죠. 연수문화재단도 그렇고 인천서구문화재단도 자체 사업을 늘려서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고 이주 노동자가 많은 원도심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범위를 넓혀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각각의 권역들에서 이루어진 문화다양성의 특징과 사업 내용들을 서로 공유하는 등의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정시윤 : 문화다양성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사업 안에도 특색 있는 문화도시 조성이 들어가 있는데요, 여기서 애로사항은 사업이 아니라 도시 전역에 어떻게 문화다양성이라는 철학과 가치를 우리가 하려는 사업과 연계하여 확산시킬 수 있을까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업’을 넘어서는 ‘사업’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첫 번째 고민의 연장선이긴 하지만 이 일을 같이하는 재단 내부 조직원들과 우리가 사용하는 행정 언어에서부터 ‘문화다양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적용하고 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굉장히 어려운 이 문화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잘게 쪼개서 딱딱하지 않고,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 사업에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성은 : 현장에서 문화다양성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면 그게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같이 사업을 추진할 협력 기관과도 문화다양성에 대한 이해나 다가가는 관점이 달라서 생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문화다양성을 조금 더 일상과 가까운 내용으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이러한 개념이 “피곤하고 도덕적인 부분을 강요받는 것 같다.”는 의견을 듣고 나서부터입니다. “내 일은 아닌 것 같다.”라고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는 주민분도 있으셨고요. 문화다양성에 대해 논의하는 테이블을 확장하기 위해 이런 부분을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다양성 사업의 효과 측정 방법도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프로그램 참여 인원 등의 정량적 방식으로 사업의 성과를 드러내고 있는데요, 문화다양성 사업 같은 경우는 그러한 정량적 방식으로는 효과가 제대로 측정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분은 어떤 방식으로 사업의 효과를 드러낼 수 있을지도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실무적 차원에서는 문화다양성 사업에 더 많은 시민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운영하는 사업의 시간이나 장소 등이 더 많은 사람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윤미화 : 저는 <무지개다리 지원사업>을 통해서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고려하고 있는데요, 제가 느꼈던 것은 문화다양성 사업이 아닌 기타 사업에서도 문화다양성에 기반을 두었을 때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도 그 가치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더 여러 사업들에 적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요. 중심 사업과 기타 사업을 연계해 다양한 층위에서 문화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적용되고 또 그것을 실천적 방식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태지윤 : 공유 및 확산 면에서 단순한 의견을 드리자면 조직 내 다른 부서들도 문화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기획이나 사업을 진행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업 관계자가 아니면 문화다양성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아서 부서들 간이나 지역단체와의 연계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시민으로까지 확대되면 더욱 그렇고 말이죠.
추가로 앞서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재단이 직접 사업을 기획하기보다 지역 단체들을 통해 기획 및 진행하는 게 낫다고 했는데요, 작년이랑 올해 선정된 사업들을 보면 문화다양성 중심으로 여러 사업들이 단체들을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재단 내 소수의 담당자들이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보다 다양한 지역 단체들을 통해 문화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고민하여 사업을 기획해서 진행하는 방식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승 : 많은 분들이 문화다양성 관련해서 주변의 이해도가 낮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요, 중요한 것은 문화다양성 사업을 담당하는 사람의 시선과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에 앞서 인천영상위원회의 이야기를 먼저 드리자면 저희는 영상위원회의 정체성에 대해 많이 고민을 했었습니다. 크게 4가지로 정리하면 1) 지원 등의 서포터의 역할, 2) 시, 구, 의회도 상대하지만 주민들도 상대하고 있기에 중재자 혹은 매개자의 역할, 3) 육성과 관련된 인큐베이터의 역할, 모두 남을 위한 역할만 있기에 우리를 위한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했고 우리도 재미있게 일해보자 해서 4) 크리에이터의 역할 등 이렇게 4가지로 영상위원회의 정체성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얘기를 듣다 보면 문화재단은 서포터의 역할에 비중이 크게 느껴졌는데요, 저는 그만큼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맡아서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문화다양성 사업의 주요 가치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면 그것을 먼저 제대로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저희가 <디아스포라영화제>를 그렇게 대하고 있거든요. 저희 스스로가 일종의 창작자, 크리에이터가 되어서 사업을 추진하는 건데 그게 마침 문화다양성 분야였던 거죠.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올해 9회까지 오면서 제일 어려웠던 일 중 하나는 해당 담당자가 영화제에 관해 그러한 시선을 갖게 하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영화제와 같은 경우 이벤트이기 때문에 일상성이라는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점입니다. 일상성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제를 개최하는 3일 내지 5일이라는 시간 동안 하는 것과 별개로 미디어 교육을 학교와 연계해서 디아스포라 관련 영화를 보여주는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영경 : 앞서 인천영상위원회 사무국장님이 영화제가 갖는 이벤트성을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한편으로는 문화다양성과 같은 가치는 그러한 계기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남들과 다른 점이 인정받지 못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한테 배척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겠죠. 나와 다른 낯선 것을 접촉하는 방식이 사람 대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영상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것은 굉장히 다를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 낯선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영화나 이벤트적인 계기가 오히려 유효한 면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 분야에서 문화다양성 주제공모를 하고 있는 저의 경험으로는, 다양성이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시화된 다양성만 주로 얘기하게 되는 거죠. 교육이라는 형식 때문에 더욱 그럴 수도 있고요. 장애인이나 이주민의 부분도 완전히 해결됐다고 할 순 없지만 우리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할 다양성의 영역에 들어와 있기는 합니다. 다양성을 다룬다면 좀 더 넓은 측면의 시도들이 가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활동의 방식도 좀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의 경우 교육이 기본이고 거기에 주제공모를 통해 추가 활동을 더하는 것인데요, 그 추가활동을 좀 더 세밀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연수문화재단처럼 조사를 진행하거나, 보다 체계적으로 다양성의 가치를 대외적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손동혁 : 향후 문화다양성 사업 확대를 위한 제안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주용 :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업진행에 있어서의 자원과 재원의 한계는 큰 애로사항입니다. 문화도시에서 거버넌스가 각광받고 있지만 거버넌스나 네트워크 같은 것은 문화도시가 아니어도 십몇 년 전부터 지역에 있는 자원들을 기반으로 고민해 오던 부분이고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다른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문화다양성 사업뿐만 아니라 각자의 모든 기관과 주민들, 지역의 단체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공통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어떻게 협력을 이끌어내 이해관계를 효과적으로 얽을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화다양성의 기본 전제 조건은 인권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다양성이라는 가치가 특별한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일상이나 사회에 만연한 것을 바라보고 공유하면서 같이 협력할 수 있는, 그러한 문화 자체가 다양성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공영지 : 올해 처음 문화다양성 사업을 하면서 크게 느낀 것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문화다양성 사업을 들여다보면 앞서 말씀들 하셨던 것처럼 드러나 있는 다양성들, 이주민이나 소수자, 장애인들을 주로 사업에서 다루고 있고 이런 가치를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데 없잖아 강요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중요한 것은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그 또한 저희가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러한 자세를 함양하는 게 문화다양성 사업의 취지가 아닐까 합니다. 불편함을 수면 위에 드러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생각하는 다름을 같이 수용하고 포용하는 것도 사업을 운영하는 담당자에게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재승 : 제안을 말씀드리자면, 인천에 있는 문화재단들이 진행하고 있는 일들과 성격을 고려해 보았을 때 기초문화재단에서 가지고 있는 인프라가 갖는 일상성과 영화제의 이벤트성을 연계해서 <디아스포라영화제>가 5월에만 있는 이벤트가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과도 닿아있는 확장된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낮은 단계의 협력을 통해 공감하고 뜻을 모아보는 것부터 자주 하다 보면 디아스포라도 문화다양성도 서로가, 그리고 서로의 협력을 통해서 주민들이 이해하기 수월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정시윤 : 연수를 살펴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인천의 문화다양성으로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문화다양성에 접근할 수 있을지 계속 같이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손동혁 : 말씀들 하셨듯이 문화다양성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원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특별하게 하려고 하면 어렵잖아요.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차별에 따른 혐오문제가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뭔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것 같아요. 문화다양성 사업을 놓고 보면 좋은 일들인데 현실과의 괴리 또한 분명한 부분이 있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존중과 공생을 위한 노력이 절실한 것 같습니다. 문화사업 속에서 공생을 위한 노력으로까지 고민하다 보면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게 많습니다만 그러한 한계에 대해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원고정리 박준혜




인천의 문화다양성 사업 소개

인천의 문화다양성 사업 소개

■ 인천문화재단

□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은 시민 주체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문화다양성과 시민문화가치를 이해하고 확산하여 시민의 생활문화가 일상에 확대되고 문화예술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1차 문화다양성, 2차 생활문화 분야로 나누어 진행된다. 사업대상은 3인 이상의 단체로, 사업의 형식, 방식이 자유롭다. 2020년 13개 단체, 2021년 20개 단체가 선정되어 지역가치, 인권, 이웃, 노동, 환경, 성 평등, 다문화, 소외계층 대상 프로젝트 등 다양한 주제로 단체들의 장점과 특점을 살려 기획하고 진행하였다. <시민문화활동 지원사업>은 문화다양성의 관점에서 지역, 사회적 이슈, 다문화, 소수자, 세대 간 갈등, 문화·사회적 문제와 갈등 등 서로의 시선 차이로 발생하는 차이의 폭을 좁히고자 했으며,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해석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사 업 명 시민문활동 지원사업
사업기간 2021. 4. ~ 12.
사업예산 금150,000,000원
사업대상 인천 시민 및 예술가
사업목적
  • 시민 주체 문화예술활동을 통한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의 계기 마련
  • 다양한 주체들 간의 문화소통 기회 제공 및 이해의 폭 확대
지원규모 및 방법
  • 지원규모: 1단체 당 최대 2,000만원, 지원금 총 14,000만원
  • 지원방법: 공모에 의한 선정 및 지원
선정결과 총10건

□ 인천문화예술교육 기획지원(주제공모)<인천문화예술교육 기획지원(주제공모)>는 시민의 삶의 변화와 공동체성 회복을 지향하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특화분야로, ‘문화다양성’ 이해 심화와 공감대 확산을 목적으로 하는 지원사업이다. 2021년에는 2개의 단체가 선정되어 문화예술교육을 개발·운영하고 문화다양성 가치 공유·활동을 병행하여 운영하고 있다. 한 단체는 고려인 이주 배경 자녀와 고려인 노인들과 음악놀이와 밭일을 하며 일상의 이야기와 마음을 나누면서 네트워킹 활동과 토론회 등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사는 방법을 확산하고 있으며, 또 다른 단체는 발달장애인 비장애 청년이 함께 나무로 만들고, 작물을 기르고, 노래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지역사회 관계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 업 명 인천문화예술교육 기획지원(주제공모)
사업기간 2021. 4. ~ 12.
지원대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기획·운영이 가능한 민간 문화예술단체
사업목적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문화다양성’ 이해 심화와 공감대 확산
지원방법 공모에 의한 선정 및 지원
선정결과 2개 단체, 지원금 총 7,000만원

■ 인천서구문화재단

□ 무지개다리 지원사업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국고보조금 지원사업 <무지개다리 지원사업>은 문화 간 상호교류 및 소통 활성화를 위한 사업이다. 2020년 신규기관 선정 및 3년 연속지원 사업으로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표창을 받아 지역 내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1년 문화다양성 주간 운영 및 세부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다양한 문화주체들의 활동 및 문화다양성 교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사 업 명 2021 무지개다리사업 <서구 문화 예찬: 표현, 나눔, 채움의 문화다양성>
사업기간 2021. 1. ~ 12.
사업예산 금75,000,000원
사업대상 인천광역시 서구 구민
사업목적
  • 문화다양성의 보호 및 증진의 필요성 공유 및 공감 계기 마련을 통한 문화다양성 인식 제고
  • 지역 내 다양한 문화주체들의 교류를 통한 문화다양성 가치 발굴 및 확산
  • 능동적인 참여를 통한 지속가능한 공동체 조성 및 정주의식 강화
주요내용 서구 원도심인 남부지역(가좌동, 가정동, 석남동, 신현원창동 등) 일대를 중심으로 문화다양성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문화다양성 인식 확산 및 다양한 문화주체들 간 문화교류
세부 프로그램
  • 문화다양성 주간: 문화다양성의 날 5월 21일을 포함한 주간 운영
  • 문화다양성 교육: 문화다양성에 대한 인지 및 인식 개선 효과 제고를 위해 문화다양성 개념 및 가치 교육 등
  • 문화다양성 라운드 테이블: 문화다양성 가치 관련 의견 발굴 및 관련 정책 방향 논의 등
  • 문화다양성 북토크 콘서트: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한 작가와의 북토크 콘서트
  • 골목문화놀이터: 놀이를 매개로 한 문화 간 상호교류 프로그램
  • 나를 바라봄: 발달장애청년을 대상으로 한 연극수업 및 연극공연
  • 오래 보아야 예쁘다: 다도를 매개로 한 상호교류 프로그램
  • 문화다양성 네트워킹: 다양한 문화주체와의 문화다양성 네트워킹
  • 문화다양성 이벤트: 재단 임직원 및 서구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다양성 이벤트

□ 문화다양성 기획학교2021 예비문화도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문화다양성 기획학교>는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이해하고 확산할 문화다양성 활동가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사업이다. <문화다양성 기획학교>의 참여자는 기존의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을활동가이다. 마을활동가들은 <문화다양성 기획학교>에서 지역의 문화다양성을 조사․연구하고 문화다양성 활동의 사례를 탐구한다. <문화다양성 기획학교>의 활동가들은 우리 동네의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탐구하며, 문화다양성 활동의 미션을 정립하고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문화다양성 프로젝트를 기획․실행한다. 사업에 참여한 마을활동가들은 <문화다양성 기획학교>를 통해 지역에서 활동하며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인지하고 지역주민들에게 가치를 확산할 활동주체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사 업 명 문화다양성 기획학교
사업기간 2021. 5. ~ 10.
사업예산 금31,000,000원
사업대상 인천 서구 마을활동가
사업목적
  • 문화다양성 활동가 발굴 및 양성
  •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지역의 관심도 제고 및 확대 공모에 의한 선정 및 지원
지원규모 및 방법
  • 지원규모: 400만원(1개팀 100만원내외)
  • 지원방법: 사업참여자를 대상으로 교육워크숍을 통해 기획된 프로젝트 실행비 지원
참여인원 10명

■ 연수문화재단

□ 문화다양성 리서치지역문화 연구의 범주 안에서 문화다양성 사업의 방향성, 내용, 방식 등 기초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추진한 문화다양성 리서치는 2020년부터 옥련동 송도중고차수출단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중고차수출단지는 송도유원지 폐장 후 도시계획이 잠시 멈추어진 사이 항만 접근성을 이점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 이후 시장 규모가 계속 커지면서 옥련동 일대의 도시 환경이 매우 빠르게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임시성 때문에 구체적인 기록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들과의 접촉 시도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문화다양성 리서치의 강한 동기가 되었다. 그동안 연수구 내에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았던 관련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주민, 이주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그룹을 발견하고 그들의 존재를 드러냄과 동시에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자 한다.

사 업 명 문화다양성 리서치
사업기간 2021. 4. ~ 10.
사업예산 금13,800,000원
사업방식 연구용역 추진
사업목적
  • 송도중고차수출단지를 중심으로 문화다양성 심화 리서치 진행
  • 리서치 작업과 더불어 문화다양성 사업의 방향성을 다방면으로 모색
사업내용
  • 송도중고차수출단지 일원 심화 리서치
  • 리서치 결과보고서 제작
  • 전문가 자문회의 운영

□ 문화다양성 주간행사연수문화재단은 출범 초기부터 자체적인 문화다양성 사업을 추진해왔다. 문화다양성 주간행사는 문화다양성에 관한 관심 및 인식 향상과 문화다양성 사업기반 마련 등을 위해 세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인 ‘빵’으로 연수구의 문화다양성 관련 인식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거리예술 프로그램 <자전거 식당: 유목민의 식탁> △가족과 함께 문화다양성에 관해 이야기하며 우리 가족만의 그림책을 제작해보는 워크숍 <함께 가는 토요일> △작은도서관 실무자, 청소년, 행정인력 등을 대상으로 <문화다양성 특강> 등을 추진했다. 거리예술 프로그램은 인천영상위원회의 <디아스포라영화제>와 연계하여 진행했다.

사 업 명 문화다양성 주간행사
사업기간 2021. 3. ~ 6.
사업예산 금15,500,000원
사업방식 직접사업, 일부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용역 추진
사업목적
  • 문화다양성에 관한 관심 및 인식 향상으로 동행 문화 기반 마련
  • 문화다양성 사업을 지속해서 함께 추진해나갈 동행 주체 발굴
사업내용
  • 거리예술 프로그램 <자전거 식당: 유목민의 식탁>
  • 그림책 제작 워크숍 <함께 가는 토요일>
  • 연수문화재단 <문화다양성 특강>
협력기관 인천영상위원회(디아스포라영화제 사무국), 연수구청, 연수청소년문화의집, 연수구 작은도서관

□ 함박웃음 문화학교연수1동 함박마을에는 고려인을 포함하여 다양한 국가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밀집해서 거주하고 있다. 마을의 구성원들이 계속해서 달라지면서 주민들은 서로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고, 또 언어의 장벽으로 오해가 쌓이는 경우도 생겼다고 한다. 한편으로 이주민들이 지역에서 문화 활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기존의 주민들과 교류하고자 하는 욕구도 확인이 되었다. 그래서 문화활동으로 서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계기들을 통해 조금 더 거리감을 좁히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해보고자 <함박웃음 문화학교>를 기획했으며 2020년에는 준비회의를 운영하며 사업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작업을 하였고, 2021년에는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공기관과 민간기관 담당자들이 서로 만나서 각자의 사업을 공유하는 사전회의와 주민들이 편하게 만나 프로그램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는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사업을 실제로 운영할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운영위원회는 지역의 예술단체와 함께 마을에서 작은 파일럿 프로그램을 실행해볼 예정이다. 통역과 번역을 통한 언어지원을 기본으로 하여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운영까지 다양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사업구조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이다.

사 업 명 함박웃음 문화학교
사업기간 2021. 4. ~ 11.
사업예산 금20,000,000원
사업방식 직접사업, 프로그램 운영 용역 추진
사업목적
  •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운영까지 이주민들을 포함한 다양한 주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사업참여구조 실험
  •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 함박마을 주민대상 사업추진 기관과의 연계방안 모색
사업내용
  • 사전회의 및 라운드테이블 운영
  • 운영위원회(주민기획단) 구성
  • 파일럿 프로그램 운영

■ 인천영상위원회

□ 디아스포라영화제인천은 문호개방 이래 이주와 이민의 중심지였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한국 최초의 이민이 시작된 도시이자 이주의 역사가 녹아든 인천에서 환대와 공존의 의미를 나눌 수 있는 영화들을 매개로 선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어울리는 복합예술축제를 지향한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디아스포라 개념을 입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시대적 현안에 초점을 맞춘 상영 프로그램과 강연 및 대담 등 아카데미 프로그램, 미디어 캠프 및 기획전시 등 각종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디아스포라영화제의 노력은 문화 다양성 가치 확산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30여 개 지역 문화재단의 사업들을 대표하여 2018년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무지개다리 지원사업> 실적평가에서도 5년 연속 최상위 평가를 받은 바 있다. 2022년 제10회 개최를 준비하고 있는 <디아스포라영화제>는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아시아 유일의 영화제인 동시에 인천을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하며 계속 성장, 확대되고 있다.

사 업 명 디아스포라영화제
사업기간 2021. 5. 21. ~ 5. 23.
사업장소 인천 연수구 스퀘어원, CGV 인천연수점
사업예산 금510,000,000원
사업대상 인천 시민 및 전국 영화 애호가 등
사업내용
  • 상영 프로그램: 디아스포라 주제의 영화 온/오프라인 상영
  • 아카데미 프로그램: 전 세계적인 디아스포라 이슈를 담아낸 포럼, 강연, 토크 등
  • 체험 프로그램: 각종 전시 및 공연, 마켓, 워크숍 등
사업결과 총 30개국 58편 80회 상영/ 3일간 1만여 관객 참여

■ 참고자료




환대의 도시, 인천에서 만나는 디아스포라영화제

환대의 도시, 인천에서 만나는 디아스포라영화제

이재승(인천영상위원회 사무국장)

디아스포라의 도시, 인천인천은 문호개방 이래 이주와 이민의 중심지였다. 1883년 개항 이후 형성된 차이나타운의 이국적인 거리는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고, 1902년 한국 최초의 하와이행 이민선 ‘갤릭호’가 제물포항을 통해 떠난 후, 100여 년이 지난 현재도 한국의 관문인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들어오고 있다. 만남과 헤어짐, 설렘과 슬픔 등 많은 사람들의 100년간의 기억을 인천이라는 도시는 품고 있다. 그리고 과거 바다였던 곳은 국제도시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의 유입으로 새로운 문화와 일상, 기억이 계속해서 쓰이고 있다. 이렇듯 인천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면서 다양한 정체성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이다.

디아스포라의 시대, 오늘의 이야기사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과거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온 유대인의 삶을 지칭하는 말로, 현재는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또는 그 거주지를 가리키는 용어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러한 개념은 식민지 조선을 떠난 재일조선인과 고려인, 한국전쟁으로 인한 실향민과 이산가족,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볼 수 있는 산업화 시기 파독 간호사와 광부 등 우리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마주칠 수 있는 결혼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의 난민, 추방, 실향, 이민 등 오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대상화하고 혐오와 차별이라는 사회적인 문제까지도 발생하고 있다. 이제 디아스포라는 이국의 정취만을 의미하지 않고 다양성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공존의 가능성을 성찰하는 의미로 확장하고 있다.

제7회 디아스포라영화제 (2019. 5. 24. ~ 5. 28.)

환대의 도시, 새로운 문화 교류의 장인천은 한국 최초의 이민이 시작된 도시이자, 원주민과 함께 하늘길과 바닷길을 통해 들어온 다양한 정체성인 이주민이 정착해서 살아가는 도시이다.<디아스포라영화제>는 이러한 도시 정체성을 반영하여 영화를 매개로 이민자와 난민을 비롯해 이 땅에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 다양성과 다름에 대한 관용의 가치를 나누고자 기획되었다. 2013년도 제1회 영화제 개최를 시작으로 어느덧 9회째가 된 <디아스포라영화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문화다양성 주간인 5월에 매년 개최하고 있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영화제를 바탕으로 전 세계적인 디아스포라 이슈를 담아낸 포럼 및 강연 등 아카데미 프로그램과 미디어아트 및 사진전 등 각종 기획전시 프로그램,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여 인천개항장문화지구 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진행하며,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가득한 복합예술축제를 표방한다.

팬데믹, 혐오와 차별을 넘어서우리는 작년부터 역사상 유례없는 팬데믹을 경험하고 있다. 팬데믹은 전 세계를 멈추게 하였고,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게 하였으며, 아시아인들을 향한 혐오 또한 경험하게 하였다. 모든 축제들이 그렇듯 팬데믹은 <디아스포라영화제>에도 치명타였다. 팬데믹은 분명 영화제를 개최하는 데 있어서 장애이자 위험요소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혐오와 차별이 범람하고 있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다. 이에 영화제의 취지와 목적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개최장소 변경, 프로그램 축소, 행사기간 조정, 방역시스템 구축 등의 조치를 통해 계속 개최하였다.

제8회 디아스포라영화제 (2020. 9. 18. ~ 9. 22.) 제9회 디아스포라영화제 (2021. 5. 21. ~ 5. 23.)

작년 제8회 영화제는 감염병 확산에 따른 시민 정서를 고려하여 기존의 거리축제 개념은 포기하고 장소를 옮겨 영화상영에만 집중해야 했지만, 올해 제9회 영화제는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의 문화활동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방역 시스템을 강화해 야외에서의 체험 프로그램과 온라인 상영관, 텐트 상영관을 도입하여 안전하고 건강하게 개최하였다. 영화제에 참여한 많은 분들이 다양한 교육과 체험을 통해 디아스포라의 낯선 용어와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를, 다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소중한 기회가 되었기를 바라본다. 내년이면 벌써 디아스포라영화제가 10회를 맞이하게 된다. 스탭들은 벌써부터 설렘을 안고 내년 영화제 기획방향에 대하여 고민하고 토론하느라 분주하다. 영화제를 처음 개최하던 10년 전과 현재의 사회와 인식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우리의 작은 노력과 실천이 민들레 홀씨 되어 여러분 곁에서 새로운 꽃을 피우기를, 부디 내년 제10회 디아스포라영화제에는 마스크 뒤로 감춰진 서로의 밝은 미소를 보며 대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제공: 인천영상위원회

이재승(李宰承, Jaeseung Lee)

– 현 인천영상위원회 사무국장
– 현 인천광역시 상징물관리위원
– 현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발전위원/ (재)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 운영위원




제1차 문화다양성 기본계획,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에 기여할 수 있을까?

제1차 문화다양성 기본계획,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완(아시아인권문화연대 공동대표)

「제1차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기본계획」(이하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이 지난 5월 발표되었다. 이번 계획은 정부가 2021년에서 2024년까지 4년간, 어떻게 문화다양성을 보호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철학과 중장기계획을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의 의미와 내용을 짚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많이 늦은 기본계획

2001년 유네스코는 문화다양성 선언을 발표했고, 바로이어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은 국제협약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은 2010년 문화다양성 협약에 비준했으며, 2014년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2015년에는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을 위한 기초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법률에 따라 뒤이어 발표되었어야 할 기본계획은 계속해서 미루어졌다. 문화부의 문화다양성 가치확산 사업인 <무지개다리 지원사업>이 2012년에 처음 시행되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기본계획의 발표는 매우 늦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다양성’은 이미 여러 번 국가 중장기계획에 등장하고 있다. 「제3차 인권정책기본계획(2018년~2022년)」, 「제3차 다문화정책기본계획(2018년 ~2022년)」, 그리고 「제3차 외국인정책기본계획(2018년~2022년)」, 모두에 문화다양성은 주요과제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기존의 중장기계획에서의 문화다양성은, 각각의 정책목표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만 ‘문화다양성’을 다루고 있다. 또한, 이주민과 다문화정책의 관점에서 문화다양성을 바라보는 협소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문화다양성’ 가치확산 자체를 목표로 하여, 계획된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은 그 핵심가치와 목표를 ‘차별시정과 인식제고’, ‘문화참여와 접근성’,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그리고 ‘상호문화교류’로 설정하였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문화다양성과 관련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정리된, 한국 사회에 필요한 문화다양성이 적어도 핵심가치와 목표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 과제의 상당수가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을 모아놓은 것에 그치고 말았다. 많은 협력부처가 나열되어 있지만, 교육부와 여가부에서 이미 시행되는 사업을 적어놓은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에 관해 몇 가지 의견을 적어 보았다.

문화다양성 가치확산이 필요한 이유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은, 문화다양성 가치확산의 필요성을 윤리와 정의적 차원, 경쟁력의 차원 그리고 국제사회와의 약속 이행의 차원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양성이 가지는 여러 가지 모습을 대부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순서와 각각의 이유에 대한 강조점의 균형은 매우 아쉽다.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은 필요성에 대한 설명 도입부터, 한국 사회 인구구조 변화 즉, 저출생과 노인 인구증가 그리고 인구감소를 맨 처음으로 언급하며 다양한 외국인의 유입을 적어놓았다. 이주민이 국가사회의 생존과 현재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화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암시를 주는 것이다.

사람을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 자체가 아닌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문화다양성이 증가하면 당연히 개인과 국가사회의 생존과 경쟁력도 향상된다는 점을 알리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가 문화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인하는 첫 번째 설명으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경쟁력의 강조는 결국 경쟁력이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줄을 세우고,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용될 것이다. 이는 모두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부메랑이 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문화다양성 1차 기본계획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문화다양성의 필요성을 한국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알리는 공식적인 문서였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이 ‘획일적인 사회 이데올로기와 효율 만능주의로 인해 남과 다른 소수성이 억압받아 왔다는 점’이 언급되었어야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한 ‘혐오와 차별이 넘쳐나는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문화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점이 명시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문화다양성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를, 문화다양성을 통해 ‘다양성을 억압하는 혐오와 차별을 몰아내고’ 이를 통해 ‘기본적인 문화권과 인권을 보장’하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 그리고 ‘더욱 자유로운 문화적 표현이 실현’되는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기본계획의 실행과정에서 이런 점이 보완되고 더욱 강조되었으면 한다.

문화다양성 인식개선과 교육 의무화

문화다양성 인식변화에 교육은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교육만으로는 인식개선을 이룰 수 없다. 구조와 환경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의 ‘기관운영의 문화다양성 운영 반영 확대’, ‘문화다양성 인증제 추진’, 그리고 ‘지역 문화다양성 조례제정이나 문화다양성 위원회 설치 추진’ 등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장기과제로 설정되어 있거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적혀있지 않아, 실제 얼마나 추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모두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문화 분야 공공기관 종사자 문화다양성 교육 의무화’나, ‘문화다양성 관련 보조사업 수행 시 보조사업자 교육 의무화’는 긍정적인 추진 과제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문화다양성 인식개선은 상대방의 인식변화가 아니라, 정책을 기획, 주도하는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정작 문화다양성 정책 수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문화부 공무원을 포함한 정부 중앙부처의 공무원단, 그리고 정부 부처 안에서 어떻게 문화다양성 인식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미비하다. 나 말고 당신이 변화라고 요구하는 것은 적어도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에 적합한 방식은 아니다.

문화복지와 문화다양성

사회적 소수자가 혐오와 억압으로 인해,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은 문화다양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지역어와 수어 등 언어적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관행적으로 시행됐던 ‘국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문예 공모 규칙 개선’ 등의 시행과제들은 여러 가지 긍정적인 기대를 하게 한다.

반면 ‘취약계층 문화권 보장’이라는 내용으로 ‘통합문화이용권 및 스포츠강좌이용권 지원 확대’나, ‘소외계층 문화권’으로 ‘문화시설 접근권’ 등을 문화다양성의 주요 세부 과제로 설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은 소외계층 문화나눔사업이나 문화복지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시행과제를 통해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의 일부 내용에서는 단순히 문화예술 향유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문화다양성의 주요 활동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있다. 물론, 문화예술과 스포츠 이용권 제공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에서는 다양한 정체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구조와 환경 그리고 기회를 만드는 것이 문화다양성 가치확산 과정이라는 점이 세부 과제에서도 명확하게 정리되었어야 한다. 이 또한 시행과정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혐오와 차별에 더욱 적극적인 대응

혐오와 차별에 대한 대응은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에서도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주요 정책목표와 핵심가치로 ‘차별시정과 인식제고’를 선정하였고, 기본계획 곳곳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정체성을 문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인 권리다.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면서 문화다양성을 가치확산을 하자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따라서, 문화다양성 가치확산을 통해 이를 이루자는 목표에 찬성한다.

혐오와 차별 예방과 대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에서도 이를 정책목표와 과제로 강조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이에 걸맞은 수준의 시행과제는 보이지 않는다. 시행과정에서는 혐오와 차별을 어떻게 예방하고, 혐오·차별이 발생했을 때 어떠한 제도적 장치를 발동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준비되기를 바란다.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에 관해서는 실망과 기대를 동시에 가지게 된다.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이 한 번에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정체성에 대한 표현조차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겪는 오늘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마음이 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다양성 가치확산은 정부의 계획만으로 이룰 수 없는, 나와 내 주변의 일이다. 계획보다 실행을 더욱 담보하면 좋겠다는 애정을 담아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면 좋겠다.

■ 참고자료

이완(李完, LEE, WAN)

아시아인권문화연대 공동대표
경기문화재단 인권경영위원
문화도시사업 컨설턴트
문화다양성 가치확산 무지개다리 사업 컨설턴트(전)




문화예술과 지역인재 육성의 토대를 마련하다: 인천대학교 김용민 교수와의 만남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문화예술과 지역인재 육성의 토대를 마련하다인천대학교 김용민 교수와의 만남

류수연(인하대학교 교수)

김용민 교수는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 인천대학교에 부임하면서 인천과 연고를 맺은 뒤 지금까지 인천시민으로 살고 있다. 학내에서 인문대학 학장, 문화대학원 원장, 교수회 회장, 평의원회 의장, 법인 이사 등을 역임했다.

코로나19의 발생 이후 일 년 반이 넘게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고 있는 모든 대학은 캠퍼스의 공동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코로나19라는 현실은 오히려 우리에게 대학의 역할을 되짚어 보게 만들기도 한다. 문화예술 영역의 인재를 육성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설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김용민 교수를 통해 그 관계성을 되짚어보았다.

“지역문화 인재 양성과 문화 자립의 필요성”

불문학자인 김용민 교수가 인천의 문화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략 16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2008년 무렵 인천대 인문대학은 교육부 특성화 사업에 선정되었는데 이 사업의 한 꼭지가 바로 <문화매개자 양성사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인천대에는 문화예술가를 교육할 전문적인 커리큘럼이나 학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이에 김용민 교수는 지역문화계에 손을 내밀게 되었다.
김용민 교수는 대학의 특성화 사업이라는 현실적인 과제를 통해 지역문화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지역문화계를 잇는 교량이자 인재육성과 지원을 목표로 설립된 인천문화재단이 막 초기 목표를 수행하던 때였다는 것도 큰 행운이었다. 말 그대로 대학과 지역의 니즈가 적실하게 만나게 된 것이다. 인천은 서울, 부산과 함께 대한민국의 3대 도시이지만 그 문화적 토양은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지역인재를 기를 육성시스템이나 그들이 자생할 수 있는 토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김용민 교수는 문화전공자는 아니었지만, 지역의 문화적 거점을 마련하는 것이 가지는 중요성을 이때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학이 있어야 함은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당시 인천대는 지역문화계와의 연계성이 적었어요. 이건 아마 인하대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이 연계성을 높이고 인재가 선순환되는 구조를 만들지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문화대학원의 필요성이 도출된 거죠.”

문화대학원의 필요성을 인식했지만, 그것이 현실화되기까지는 그리 쉽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문화인력 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지역의 공감대가 충분하지 않았고, 특히 당사자인 대학 내의 인식이 매우 부족한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원 설립에 핵심인 정원 확보는 대단히 민감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대학 구성원의 동의와 집행부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여러 난항을 겪으며 구성원을 설득했고 제반 조건을 준비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2012년 11월 인천대학교의 문화대학원이 설립인가를 받는 결실을 얻게 된다. 비록 정원 7명에 불과한 소박한 출발이었지만, 지역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인재들이 모일 거점이 마련되었다는 의미는 결코 소소하지 않았다.

“인천에 뿌리를 두고 더 멀리 뻗어 나가야”

김용민 교수는 문화대학원 설립에 있어서 자신의 역할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문화전공자도 아닌 더구나 서양문학 전공자인 그가 지역예술을 고민하고 그 청사진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겸양은 오히려 인천대 문화대학원 설립을 추진했던 그의 의지와 지역문화에 대한 애정이라는 진정성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김용민 교수뿐만 아니라 지역의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든든한 지지가 인천대 문화대학원의 10년 역사를 일구어낸 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약속처럼 인천대 문화대학원(2013년)은 인하대 문화경영대학원(2006년)과 함께 인천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인재를 양성하는 양대 거점으로 성장해왔다. 고질적인 인재난에 시달렸던 지역문화계에 수혈하는 기능적 역할에도 충실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제 인천이라는 도시의 규모에 걸맞은 문화적 인프라를 위해 도약할 때”

김용민 교수는 인천문화재단의 제5기 이사이기도 했기에 재단의 비전에 대한 의견 역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잘 알려진 대로 인천은 근대의 관문이었다. 개항도시라는 의미는 열려 있는 도시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인천의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전히 공항과 항만을 가진 인천은 밖으로 열려 있는 도시이다. 따라서 김용민 교수는 인천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열린 공간을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가령 신포동을 보면, 그곳이야말로 다양한 문화가 역사라는 시간과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한 도시와 그 도시의 장소가 문화적 거점이 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와야 한다. 서울을 모방하거나 복제하는  것으로는 이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그러한 동력이 모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인천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상상력이다.

“인천문화재단은 굵직한 정책과 비전으로 명실상부한 지역의 문화적 허브가 되어야”

김용민 교수가 던진 화두는 어쩌면 분명하다. 그가 인천문화재단의 활동을 애정을 갖고 성원한 지가 벌써 10여 년이 넘었다. 그런 그는 이제 재단이 그 본연의 가치에 보다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바로 광역문화재단으로서 비전과 인천이라는 도시 전체를 이끌 아젠다를 도출하는 일이다. 김용민 교수의 요청과 바람이 인천문화재단의 행보 속에서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인천문화재단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청년기획자 윤재훈, 주민과 예술에 물들다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청년기획자 윤재훈, 주민과 예술에 물들다

홍봄(기호일보 사회부 기자)

“예술의 힘은 봄비 같아요. 새롭게 물들게 해주고 또 올라오게 해주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지역주민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봄비가 내리는 것 같아 가슴이 울립니다.”

인천시 서구에서 만난 윤재훈(31) 씨는 자신을 ‘기획자’라고 소개했다. 왜 ‘문화기획자’가 아닌 ‘기획자’인가 하는 물음에 그는 “장르를 떠나 뭐든 기획하기를 좋아해서”라고 답했다. 직접 댄스공연을 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다원예술 분야의 공연을 주로 기획하고 있다. 같이 춤추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찾은 길이다.

그는 인천에서 오래 거주한 인천 청년이다. 하지만 초기 활동은 서울과 세종시, 경기도 쪽에서 시작했다. 활동을 시작할 당시 인천지역에 기회가 많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힘이 강하고 그들만을 위한 지원 사업이 많기 때문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랬기에 인천서구문화재단이 생겼다는 소식이 그 누구보다 반가워하며 지역으로 돌아왔다.

윤 씨는 “지역에 여러 가지를 건의했지만 잘 반영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외부에서 오히려 활동을 많이 했다.”며 “서구에 재단이 생기면 문화라는 장르로 활동할 기회가 많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돌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지역에서 처음 한 일은 주민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었다. 2019년 인천서구문화재단의 청년기획자 사업으로 지역주민들과 댄스 장르를 향유했다. 주민들과 예술활동을 하면서 그는 ‘예술이 예술인만의 전유물이 아니구나.’하고 느꼈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2년 차 프로젝트까지 이어졌다. 1년 차 때 함께 했던 서구 주민들과 서구 문화자원을 알릴 수 있는 홍보영상을 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청라호수공원을 알리는 콘텐츠다. 청라호수공원 곳곳을 비추는 영상에 지역 주민들의 댄스 동호회인 ‘섹시코맨도’가 어우러졌다.

직접 기획한 공연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중이다. 지금은 국악과 랩, 비보잉, 미디어아트 등을 결합한 다원예술 <미스테리우스> 공연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무대에 오르는 공연팀 ‘구니스컴퍼니’는 연예사병 해군 비보이 1기 출신 멤버들이다. 군을 전역한 뒤 한국의 미와 멋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전통장르에 자신들의 장점인 비보잉을 접목한 창작 작품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공연은 2019년 인천에서 거리공연으로 시연된 이후 독창성과 연출력을 인정받아 <2020 안산국제거리극축제>와 <고양호수예술축제>, <부산금정거리예술축제> 등 다양한 거리예술 사업에 선정됐다. 올해는 문화공감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오는 12월 서구문화회관에서도 공연을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전만큼 관객들을 자주 볼 수 없는 것은 그에게도 서운한 일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예술가들도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느꼈다. 지난해부터 어떻게든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던 예술가들은 해가 바뀌어도 앞으로 나아간다. 반면 변화 없이 지원만 기다리는 예술인들은 그 자리에 멈춰 있는 모습을 본다.

윤 씨는 “저도 2020년에는 공연을 못하니 큰일 났다는 생각부터 했어요. 관객이 없이 공연할 맛이 안 나는 건 당연하지만 계속 그것만 따지고 있을 수는 없겠더라고요. 다르게 생각하면 오히려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비대면으로 공연을 하니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기도 하고요. 시국에 맞춰서 예술가들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온라인 문화콘텐츠들이 많이 생산되는 요즘 그는 ‘홍보’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온라인 스트리밍을 하는 자체에 그치지 말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알리고 불러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또 카메라 송출을 담당하는 팀의 전문성도 강조했다. 송출하는 업체가 행사를 잘 이해하고 아는 이야기를 해야만 적절한 앵글을 비춰주고 자막도 넣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가들을 불러오고 공연을 기획했는데 보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며 “기관에서 하는 행사들도 송출만 해놓고 ‘우리 했어’하는 식으로 진행해서는 안 되고 마케팅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씨는 기획자로 활동해 오며 우리나라에 문화예술인 지원 사업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몇 년 전부터는 지역 내에서 청년예술인들에 대한 지원도 다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기획에 대한 예술계의 인식이 여전히 박하다는 점이다. 청년기획자 프로젝트를 이어온 서구의 경우도 1년 차 때 지원되던 기획자 인건비가 2년 차였던 지난해에는 사라졌다가 올해 다시 생겼다. 윤 씨는 기획자는 예술인이 아니라는 편견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5개월 프로젝트비가 150만 원밖에 안 되는데 공연을 올려야 하는 기획자로서는 결국 자신의 인건비까지 써버려야 하는 상황이 된다.”며 “1년, 2년 차 때 했던 청년 기획자들도 사업이 너무 힘드니까 안 들어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기획자라는 프로젝트는 지역의 청년기획자를 많이 발굴해서 발전시키려고 하는 건데 이런 방식이 과연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윤 씨는 예술가들이 지속가능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술가들이 프로젝트가 아닌 다른 일에 집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또 적은 비용으로 많은 단체를 지원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신진단체는 이 돈으로 사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기존 활동이 많은 단체들은 또 다른 재원을 마련할 여건이 되니까 사업을 할 수 있지만, 그렇다 보니 새로운 공연을 만들지 못하고 했던 공연을 또 하게 된다. 결국엔 지역의 문화발전이 안되고 예술단체는 성장 없이 돈 벌어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기획자로 살아온 지난 4년 동안 하나씩 배우며 공부해 왔다는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지역 주민, 예술인들이 설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함께 만든 프로젝트, 같이 땀 흘린 무대가 박수를 받을 때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기 때문이다. 윤 씨는 “주민과 예술가들이 즐거워하고 관객들이 박수를 쳐주실 때면 모든 고생들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라며 “기획자로서 더 많은 주민들이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참여 여건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글 홍봄(洪봄, HongBom)

기호일보 사회부 기자




낯익지만 낯선 도시의 기록: 연수문화재단 기획전시 《낯낯곳곳: 낯익지만 낯선 연수구의 곳곳》

낯익지만 낯선 도시의 기록연수문화재단 기획전시 《낯낯곳곳: 낯익지만 낯선 연수구의 곳곳》

임종은(독립 큐레이터)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고자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뉴딜정책’이 전국적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그 일환으로 인천 연수구에서는 “장소가 아닌 마음에 남는 공공미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 성과로 전시 《낯낯곳곳: 낯익지만 낯선 연수구의 곳곳》(2021. 7.28.~8.10.)이 개최되었다. 이 전시를 준비할 때는 연수갤러리(연수구의회 1층)에서 관람객들을 직접 만나는 오프라인 행사로 기획되었지만, 방역과 안전을 위해 온라인 전시로 전환되었고, 연수문화재단 네이버TV, 유튜브 등의 채널에 게시된다. 인천 연수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온 작가들과 단체인 카툰캠퍼스, 인천창조미술협회, 청학동2030, 그린웨이브, 연수구서예협회 등은 공모를 통해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그들이 만들어낸 성과와 과정을 온/오프 전시장에 모았다.

2021 연수문화재단 기획전시 《낯낯곳곳: 낯익지만 낯선 연수구의 곳곳》 (연수갤러리, 2021. 7.28.~8.10.) 인천창조미술협회, <인천의 작은 역사 송도어촌계를 아시나요> 프로젝트 전경

코로나 대유행의 여파로 우리 사회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예술가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창작과 생존이 위협을 받는 상황 속에서 탄생했던 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사실 출발부터 여러 가지 문제와 우려가 제기되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한 상황에 공공장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현장 활동은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과정과 결과에 아쉬움과 미숙함이 있었지만, 작가들의 예술적 대응은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형식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등의 성과도 있었다. 이제 일상에서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이번 프로젝트를 관행적으로 수행하고 마무리할 것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유의미한 경험과 시도를 발굴하고, 기록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 *

전시 《낯낯곳곳: 낯익지만 낯선 연수구의 곳곳》으로 다시 돌아와 살펴본다면, 연수구의 참여 작가들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장소를 연구하고 개입하면서 사람들과 소통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을 현장에 전시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고, 책을 제작하는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코로나 방역상황을 의식한 결과물을 도출했다. 더 나아가 물리적인 공간이나 사회적 거리두기에 구애받지 않는 방법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들도 선보였다. 이것은 참여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 영역인 서예, 수채화, 유화, 한국화, 조각, 설치, 디자인, 미디어아트, 디지털콘텐츠, 일러스트, 문화교육, 기획 등 다양한 장르와 분야에서 출발하여 서예 전시, 그림책과 만화 제작,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수행, 설치미술과 공간 및 시설 디자인으로 환경개선 등 시민들에게 친숙한 형태로 장소에 스며들고, 다가가려고 했던 시도이기도 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 형태와 예술적 방법론을 확장하고 공공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하였을 것이다.

카툰캠퍼스, <멀고도 가까운 먼우금 사람들> 프로젝트 전경 그린웨이브, <빛, 파도 그리고 바람> 프로젝트 전경

참여 작가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기회로 자신들의 장소인 연수구를 되돌아보고 연구하면서, 시간과 급속한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지워져 가는 것들을 찾아보고 기록했다. 지역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작품은 지역의 역사, 장소에 얽힌 서사, 주변의 이웃들이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온 이야기로 우리에게 익숙했던 장소를 새롭게 환기시키고 채워간다. 도시 개발과 간척 사업으로 점차 희미해져 가는 어촌계를 소재로 작업한 ‘카툰캠퍼스’와 ‘인천창조미술협회’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으로 숨겨졌던 것들을 기록하고 ‘청학동2030’은 사라져가는 협궤열차와 60년을 함께 한 송도 역전시장의 환경개선 사업으로 지역에 활기를 주었다. ‘연수구서예협회’는 개인의 수양과 창작을 넘어 청학동 이야기를 마을 주민과 함께 만든 작품을 공공 공간에 설치하였다. ‘그린웨이브’는 디지털 기반의 콘텐츠를 개발하여 송도동 솔찬공원의 지역·생태적 특징으로 장소를 소개하고 그 가치를 알리려고 했다.

그리고 《낯낯곳곳_낯익지만 낯선 연수구의 곳곳》을 통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인 익숙한 장소를 재해석하고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을 모아서 전시 형식으로 펼쳐 보였다. 전시 제목에 언급된 ‘낯익지만 낯선’은 다시 말해, 급속히 변해가는 자신의 터전이자 일상 장소에서 개발과 자본에 가려진 의미와 가치를 찾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전시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결과물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제공하여 사업의 성과를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현장에서는 드러날 수 없는 과정과 프로젝트의 콘셉트를 시각화한 자료들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참여자들의 숨은 노고와 재발견된 지역의 문화적 유산이 함께 드러나는 순간이다.

연수구서예협회, <꿈이 나는 동네, 청학> 프로젝트 전경 청학동2030, <송도역 전시장> 프로젝트 전경

전시의 구성은 공공미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속에서 프로젝트의 완성도의 결정하는 요소들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생성된 리서치와 아카이브는 공공미술의 핵심 재료 중 하나이지만, 우리는 대개 현장에서 이것들로 만든 결과만을 보게 된다. 전시는 이러한 아쉬움을 담아 기록하고 홍보하려고 했고, 전시장에서 프로젝트의 여정과 수집된 아카이브 를 전시와 작품으로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업별로 공간을 차별성 있게 구획하거나, 외부에서 전시하기 힘든 서예작품을 전시장에 알맞게 설치하면서도 현장감을 확보하려고 했다. 환경개선 디자인 작업을 위해 진행한 인터뷰와 시장에서 수집한 오브제를 이용하여 설치작품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작가들이 그린 책의 원화를 전시함으로써, 전시장에서 소통할 수 있도록 공간적인 차별점과 장점을 살리려고 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단순히 전시를 위한 전시가 아니라 축적과 공유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지속적인 지역 연구를 위해 이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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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널리 공유되어야 하는 프로젝트의 과정과 성과가 온라인으로 소통의 장을 옮겼기 때문에 시민들의 접근성에 대한 확보는 향후 과제가 될 것 같다. 전시장에서 강조한 것처럼, 공공미술은 만드는 과정도 중요하고, 현장에서 시민들이 향유하며 생기게 되는 반응과 의견 등의 수렴 역시 작품의 일부이며, 결과이다. 장소와 작품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하는 아카이브와 온/오프라인 전시를 계기로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더 풍부한 완성도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길 기대해 본다.

임종은(林鍾恩, Lim, Jongeun)

세계화 속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을 재정의 하는 데 관심이 많은 독립 큐레이터다. 2019년 제1회 《상하이 국제 종이비엔날레》에서 한국관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대안공간 루프와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등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대학에서 미술사와 이론을 가르치며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네트워크와 작가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2021년 《Korean Pavilion for Biennale Jogja_Art Exhibit 2021 of KONNECT ASEAN》에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하고 있다.




만화학(漫畫學)의 독립선언: 한상정, 『만화학의 재구성』(이숲, 2021)

만화학(漫畫學)의 독립선언한상정, 『만화학의 재구성』(이숲, 2021)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

한상정, 『만화학의 재구성』(이숲, 2021)

김현, 오규원, 김창남, 이재현….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이들의 이름을 들어서 대강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을 묻는다면 다소 갸우뚱할지 모르겠다. 김현은 『문학과 지성』을 이끌며 한 시대를 풍미한 문학평론가, 오규원은 수많은 후학을 길러낸 교육자이자 시인, 김창남은 문화연구 1세대 연구자이자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했고, 이재현은 노동문학과 민중문학 논쟁을 이끌었던 전위적인 문학평론가였다. 이들을 하나로 엮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한 시대를 풍미한 지성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정답은 ‘만화’다. 이들은 만화를 읽었고, 진지한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다. 다시 말해 이들의 공통점은 비록 그들의 본업은 아닐지라도 만화비평을 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 들어 문학평론가 김현과 시인 오규원이 ‘대중문화’로서의 만화를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김현은 「만화도 예술인가」에서 만화도 예술이기에 평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만화 또한 문학 작품과 마찬가지의 구조를 가진 상징체계로서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글’과 합쳐진 ‘그림’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기호론적인 의미를 지니며, 이는 문학작품에서 비유나 상징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주장은 예술로서의 만화를 긍정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 사회에서 만화라는 예술이 처한 허약한 지위와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27년에 발표된 권구현의 「신문삽화 만평」을 만화비평의 효시로 꼽지만, 실제로 만화가 본격적인 비평의 대상이 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이 시기 들어 만화는 대중이 즐기는 예술이자 문화, 무엇보다 대중문화산업으로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만화의 역사, 문화, 산업 등을 다룬 책들이 출간되기 시작했고, 비평의 양적 팽창과 질적 상승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만화평론가협회와 한국만화학회가 결성되는 등 전문만화비평 집단이 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는 여전히 예술로서 그 입지가 약한 편이다. 그 이유는 만화의 특성과 고유성에 입각한 독자적인 만화비평이론이 정립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1대학에서 만화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인천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만화연구자이자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상정은 『만화학의 재구성』을 통해 이른바 ‘만화학’의 새로운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은 제1장 「만화연구의 시작점」을 비롯해 제12장 「만화읽기의 특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에 해당하는 1장에서 제5장 「만화의 탄생」에서 만화라는 표현형식의 역사적 개념과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후반부인 제6장 「만화의 특성」부터 제12장까지는 만화의 고유한 특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만화를 어떻게 학문적으로 읽어낼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그는 우선 ‘만화(漫畫)’라는 개념과 용어가 지닌 혼란스러움에 대해 지적한다. “만화는 일본어 ‘망가(漫画, まんが)’의 한국식 표현”으로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무렵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망가라는 용어가 ‘카툰, 코믹스, 애니메이션’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던 만큼 망가를 근원으로 삼은 한국과 중국의 만화도 이를 구분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움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만화에 조응하는 영어 단어 ‘카툰’의 사용법도 마찬가지다.

만화학의 정립과 연구에서 개념 정의의 필요성과 의미는 무엇일까?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거나, 희곡을 연극으로 제작하거나,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등 형질전환(transformation)이 이루어질 때 그 명칭도 함께 변화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정지된 무동(無動)의 형식인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을 때조차 이를 그냥 망가, 만화로 호명하는 방식의 혼란스러움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우리에게도 『만화의 이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스콧 맥클라우드(Scott MacCloud)의 정의, 만화는 “수용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미학적 반응을 일으키기 위하여, 의도된 순서로 병렬된 그림 및 기타 형상들”이란 정의를 그대로 따른다면, “재현의 일반화에 있어서 만화의 특수성을 분리해낼 수 없다. 한 근대적 매체를 몇 천 년 전통의 시각적 표현과 혼동”시킨다는 티에리 그로에스틴(Thierry Groensteen)의 비판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정의는 만화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포괄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경계의 불명확함”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점들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근대’ 만화를 정의한다.

필자는 앞에서 만화라는 표현형식이 탄생하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고, 이것을 모두 갖춰야 만화에 대한 역사적 정의가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연쇄적 칸의 상호의존성을 지닐 것, 문자를 활용하는 이미지 서사일 것, 대중적 전파와 확산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간지 규모의 인쇄물에 실릴 것, 말풍선을 가질 것,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근대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표현형식으로서의 만화다. 이는, 만화라는 표현형식이 태어날 때까지의 오랜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방식이 정착될 때까지라는 역사적 관점으로 바라본 것이다. (107쪽)

영화가 벤야민을 비롯한 동시대 지식인들의 주목을 받고, 적극적인 해석의 대상이 되었던 것과 달리 어째서 같은 시기에 탄생한 근대 만화는 동시대 지식인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을까? 한상정은 영화가 “카메라와 영사기라는 완전히 새로운 도구들, 움직임의 재현이라는 문화적 충격”을 준 것과 달리 만화는 “칸, 글, 그림, 말풍선, 종이 인쇄의 산물인 만화는 하등 새로운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달리 해석해보면 만화가 지식인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만화라는 표현형식이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우리의 일상 영역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으며, 어떤 기술 변화에도 조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진 표현형식이기 때문이다.

한상정은 “문학작품은 의미만이 아니라 문체도 중요하게 다루고, 영화작품도 이야기와 이야기가 전달하는 의미만이 아니라 감독의 연출이나 배우의 연기를 다루는데, 만화작품도 만화 고유의 특성들을 감안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만화학의 정립과 새로운 출발을 위해 과거와 단호한 결별을 시도한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학의 재구성』은 만화연구·만화비평의 독립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간 만화비평, 만화연구에서 일종의 ‘클리셰’처럼 반복되던 서술 — 예를 들어 프랑스의 영화평론가이자 만화평론가이기도 한 프랑시스 라카생이 만화를 ‘제9의 예술’이라 불렀다는 것과 같은 동어반복, 만화의 기원을 라스코 동굴벽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던지 하는 등 — 을 찾아볼 수 없다. 도리어 그런 인식과 적극적 대결을 벌인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만화읽기(비평이나 분석)’가 “만화를 그림과 동일시하거나 만화분석을 스토리 분석과 동일시”하는 오해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이 책 『만화학의 재구성』이 달성한 성취와 가치는 바로 거기에 있다.

다만, 만화학의 독립선언이 앞으로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개의 고비를 넘겨야 할 것 같다. 첫 번째, 이른바 ‘비평의 죽음’이다. 비평이 살기 위해선 우선 읽어낼 만한 작품이 생산되어야 하고, 그 비평을 진지하게 읽어줄 독자가 필요하다. 만화비평이 어려운 까닭은 단순히 독자적인 만화비평이론이 부족하거나 부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화는 일찌감치 대중예술이자 문화산업의 일부가 되었지만, 비평은 외면되었다. 물론, 오늘날 비평의 죽음은 문학, 건축, 연극 등 전통적인 예술 분야에서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근대에 탄생하여 애초부터 뿌리가 약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 사진, 만화 등에게는 더욱 가혹한 현실이다.

두 번째는 ‘근대(modern)’와 만화를 접목시켜 정의하려는 시도가 만화라는 표현형식이 지닌 장점들, 장르적 포괄성과 유연성을 도리어 학문적으로 협소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우려다. “사진이나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표현형식은 어느 날 ‘뚝’하고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주 많은 다양한 시도 속에서 탄생은 우연의 산물”이라는 저자의 말대로, 만화 역시 “탄생 이후 한편으로는 기존 예술의 재현형식을 빌려 쓰고, 다른 한편으로 서서히 자신만의 고유성을 확보”해 나갔다. 만화에 대한 저자의 정의를 고스란히 인정하더라도 ‘이미지를 통한 내러티브, 스토리텔링’의 역사라는 장대한 인류 서사의 한 축에서 라스코 동굴 벽화, 이집트 벽화, 중세 교회의 십자가의 길(14처) 성화, 불교의 사찰벽화 십우도(十牛圖), 역사를 담은 태피스트리 등 “몇 천 년의 전통을 지닌 그림과 문자의 공존을 통한 표현형식”은 만화의 역사에서 제외할 수 없는 근원적 뿌리이기도 하다. 만화가 지닌 고유한 특성 중 하나는 글쓰기와 더불어 창작과 소통의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분야라는 점에 있다. 저자는 「들어가며」에서 만화라는 “존재조차 희미했던 이 표현형식”이 “탄생 125주년을 맞은 2021년에도 여전히 건재”하며, “지구적 환란이라는 코로나 시대에도 그 조용하고 끈질긴 존재감”을 드러내며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는데, 앞으로도 만화가 존재하고 발전할 수 있다면 그 이유 또한 같을 것이다.

전성원(全盛源, Jeon Sung Won)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겸임교수. 주요저서로 『길 위의 독서』,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등이 있다.




‘자리’를 찾는 여행: 김소희, 『자리』(만만한책방, 2020)

만화 함께 읽기
만화에는 재미와 감동이 있습니다. 만화에는 이 시대가 생각해야 할 가치, 우리 사회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만화 함께 읽기’에서는 ‘문화예술을 소재로 한 만화’나 ‘문화 현장의 쟁점을 다룬 만화’를 소개합니다. 바쁜 일상이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만화를 읽으며 삶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리’를 찾는 여행김소희, 『자리』(만만한책방, 2020)

최기현(인천문화재단)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된 지 8개월이 지났다. 예술인 고용보험은 잦은 실업과 고용불안정으로 지속적인 창작활동이 어려운 예술인을 위해 2020년 12월 10일부터 실시되었다. 적용대상은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을 체결한 예술인이다. 일이 없는 기간에는 최대 270일 동안 실업급여를, 출산했을 때는 90일간 출산전후급여를 받을 수 있다. 예술인이 하나의 예술 활동을 마치고 다음 활동을 하기 전까지 예술인 고용보험은 최소한의 생활을 지원한다.

예술인들은 대체로 예술인 고용보험의 시행을 환영한다. 반면 계약한 예술인의 소득과 보험료를 일일이 계산해서 신고하는 것에 번거로움을 토로하는 단체 대표자도 있다. 일부 예술인은 기존에 떼던 사업소득, 기타소득 외에 추가로 납부하는 고용보험료를 불필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을 위한 제도임에도 이해당사자 모두가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김소희, 『자리』 (만만한책방, 2020)

김소희 작가의 만화 『자리』는 미대를 졸업한 두 명의 작가 지망생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 여정이다. 송이와 순이는 자신들의 예술 활동을 위해 함께 지낼 집을 구하러 다닌다. 처음 이사한 집은 예전에 목욕탕으로 사용한 지하 공간이다. 햇빛은 전혀 들어오지 않고 겨울에는 한기를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춥다. 계속 살다가는 심각한 병에 걸릴 것 같아 이사를 결심한다.

두 번째로 이사한 집은 일반 주택의 다락방이다. 지붕 아래에 불필요한 공간이 있긴 하지만 목욕탕 집과는 달리 햇빛도 잘 들어온다. 두 사람은 가성비 좋은 집을 구했다고 만족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렴한 이유가 있다. 바닥이 뚫려있어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 공간이다. 다시 새로운 집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7년간 10번의 이사를 하며 그들의 ‘자리’를 찾아 헤맨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류머티즘에서 면역질환까지 크고 작은 병을 얻는다.

자리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먼저 물리적 자리와 사회적 자리를 뜻한다. 물리적 자리는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 햇빛이 들어와야 한다. 여름과 겨울에 너무 덥거나 춥지 않아야 한다. 개인 프라이버시도 보호되어야 한다. 방음이 잘되고 교통도 편리한 곳이면 더 좋다. 한마디로 생활의 안정성이 필수적인 요소다.

『자리』의 한 장면 (만만한책방, 2020)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이상하게도 지하나 반지하처럼 햇빛을 보기 어렵고,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집으로만 이사한다. 이들이 가려고 한 집 중에는 화장실이 방 한가운데 버젓이 있는 집도 있었다. 두 사람은 왜 햇빛이 잘 들면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집을 구하지 않았을까? 자리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돈이다. 돈의 유무가 물리적인 자리를 결정한다. 돈이 충분하지 않은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지하나 반지하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 추운 집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들은 작가 지망생이다. 사회적 자리에 도달하지 못했고 수입은 안정적이지 않다. 작가로 데뷔해서 웹툰을 연재하거나 그림을 팔아야 일정한 수입이 생기지만 아직은 아니다. 사회적 자리에 도달하지 못해 발생하는 돈의 결핍은 물리적 자리에 영향을 미친다. 물리적 자리가 불편하면 그만큼 사회적인 자리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생계를 위해 일러스트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면 작가가 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김소희 작가는 전작 『반달』에서 어두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동심의 눈으로 담담하게 풀어낸 바 있다. 안정적이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듯 이번 작품 『자리』에서도 전체적으로 채도가 낮고 어두운 편이다. 어둡지만 완전히 절망적이지는 않다. 노란색이나 주황색, 하늘색 등 작은 포인트가 만화 곳곳에 담겨있다. 작가는 현실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마치 두 사람의 주인공이 자리를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사람의 욕심은 무한하고 재화는 한정적이다. 경제학에 나오는 희소성의 원칙이다. 안정적인 자리는 한정되어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자리는 존재할까? 아쉽지만 답은 ‘아니오’다. 누군가는 원치 않는 결핍에 처할 수도 있다. 모두가 만족하는 안정적인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정성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예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예술인의 생활 안정을 위해 ‘예술인 긴급 생계지원’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일시적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코로나19 이후 다른 형태의 재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예술인 고용보험은 하나의 예술 활동이 성공하지 않아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는 최소한의 시간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지속적인 예술 활동을 위한 버팀목으로 예술인 고용보험이 예술 현장에 안착하길 기대한다.

최기현(崔基鉉, Daniel Choi)

인천문화재단 전략기획팀 과장. 만화평론가. 문화예술과 만화에 담긴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웹툰이나 공연, 전시를 추천해주신다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DANIEL7@ifac.or.kr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예술가: 이은새, 이희준, 정금형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예술가 소개
인천아트플랫폼은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공모로 선발하여, 창작 공간을 지원하고 입주 예술가의 연구와 창작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한 비평 및 연구 프로그램, 창·제작 프로젝트 발표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2021년 인천아트플랫폼 12기 입주 예술가를 소개합니다.

■ 이은새 LEE Eunsae

이은새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불만과 그것에 반응하는 저항의 시도 또는 상상들을 수집하고, 이를 이미지로 기록한다. 최근에는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면서, 쉽게 대상화되는 다양한 인물에 관심을 두고, 규정되거나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이미지의 피사체를 그려나가고 있다. 작가는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기간 동안 단순한 표현과 반복되는 형식 그리고 변주된 장면들을 통해 만들어낸 리듬의 형식을 이번에는 인물화에 대입해보고자 한다. 반복되는 형태의 인물과 미세하게 변주된 인물들이 함께 뒤섞인 장면을 연출하면서, 더욱 심화된 내용적 접근과 기술적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회화와 드로잉 작품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환경과 층위에서 마주하는 경직되고 고정된 상태를 잠깐이나마 흔들어 볼 수 있는 단서들을 수집하고, 이를 회화로 기록한다. 최근에는 규정되거나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대상들을 화면에 기록하고 있으며, 인물이 중심이 되는 연작을 시도하고 있다.
나는 캔버스 작업 전 단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먼저 생각을 드로잉으로 기록하고, 그 드로잉이 생각을 잘 정리하여 담아낼 수 있을 때까지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서 그린다. 그 이후에 반복되는 형태들 사이에서 의도를 잘 담아낸 표현을 선택하여 캔버스 위에 옮긴다.

<As usual at bar>, 캔버스에 오일과 아크릴릭, 90.9×72.7cm, 2020 <As usual on the bed>, 캔버스에 오일과 아크릴릭, 90.9×72.7cm, 2020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작 또는 전시와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내가 생각하는 대표 작업은 2018년에 발표한 <밤의 괴물들> 연작이다. 술에 취한 여성을 주제로 삼았던 작업이었다. 술 취한 여성을 생각할 때 쉽게 떠오르는 타자화되고 대상화되던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로 내가 마주친 인물들을 기억에서 끌어와 캔버스 위에 재현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밤의 해변을 기분 좋게 산책하는 여자부터, 억지로 마신 술을 토하고 그 토사물을 상대방에게 권하는 사람, 지구대에 앉아있는 친구들, 산발을 한 채 거칠게 이를 드러내고 있는 사람까지 다양한 상황 속의 인물들을 그렸다. 이들은 만취했어도 자유로운, 새벽 어귀에서 구토하고 쓰러지더라도 약자가 되어 범죄의 대상으로 존재하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인물들이다. 위협을 가하기 쉬운 밤이라는 시공간에서 인물들은 무방비한 상태가 아니라 공격적으로 쏘아보고 행동하는 밤의 괴물로서, 오히려 상대를 향해 끔찍한 반격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로 표현했다. 이 작업을 하면서 고민이 많았지만, 당시의 생각을 타인에게 설득하거나 공감을 얻어내고 이미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내게 작업은 내가 이해하는 혹은 기대하는 세계를 시각적으로 풀어보는 과정이다.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고민을 기억하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지만, 작업의 결과를 타인과 공유하는 과정 역시 새로운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회화 위주의 평면 작업을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다른 매체를 다루는 상상도 해보곤 한다. 내가 다루고 있는 회화의 특징들이 물리적 공간 안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작가정보: www.leeeunsae.com

■ 이희준 LEE Heejoon

이희준은 서울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도시를 여행하며 수집한 장면을 바탕으로 회화작업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도시가 생산해내는 다양한 문화, 경계, 자본 등의 요소를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어떤 영향을 받는지 탐구 중이다. 올해 레지던시에 머물며 진행할 《Image Architect》 전시에서는 2016년부터 이어온 도시와 건축에 대한 관심을 포토콜라주 기법과 추상회화로 표현한 시리즈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가는 도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건축적 환경에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고 개입할 수 있을지 실험하며 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각각의 구성단위 그리고 도시의 환경이 우리의 미적 선택과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는가’에 관한 고민을 바탕으로, 도시에서 포착한 풍경을 추상화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작업은 도시를 걷는 것으로 시작된다. 거리를 직접 걸으며 마주하는 도시의 풍경을 수집하고 그 안에서 어떤 조형적 형태를 찾는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한 <A Shape of Taste> 회화 연작은 변화하는 건축의 표면과 감각에 집중해 동시대의 기호 혹은 한 지역의 취향 및 감각을 읽어내는 작업이다. 거리에서 만나는 취향과 감각이라는 비물질적인 대상을 사진으로 채집한 후, 드로잉과 추상화 과정을 통해 하나의 회화적 기호로 담아냈다. 거리에서 발현되는 도시의 여러 감각들을 네모난 캔버스 프레임에 담아냄으로써, 대중적이면서도 개별적인 ‘누군가’의 취향과 감각에 접근하려는 시도였다.

《The Tourist》 전시 전경, 레스빠스71, 서울, 2020
<Barcelona Pavilion no.1>, 캔버스에 아크릴릭, 사진 콜라주, 160x160cm, 2020 <Barcelona Pavilion no.2>, 캔버스에 아크릴릭, 사진 콜라주, 160x160cm, 2020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작 또는 전시와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가장 최근에 있었던 개인전 《The Tourist》(레스빠스71, 서울, 2020)를 꼽을 수 있겠다. 본 전시에서는 여행을 어떤 방식으로 저장하고 추억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행의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찍게 되는 핸드폰 사진은 눈으로 대상을 즐기는 여행의 즐거움을 데이터 메모리 칩 속에 작은 파일로 대체하게 만든다. <The Tourist>(2020) 연작을 통해 핸드폰 속 작은 데이터로 존재하는 여러 여행의 기억을 회화적 세계로 불러오면서 경험, 기억, 감정, 촉감과 같은 것들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기억하는지 생각해봤다.
나는 ‘몇 년 뒤에는 이런 것을 해야지,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며 더 나아가기 위해 꾸준히 매일매일 노력할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작업을 만들고 싶다. 작업을 매개로 사람들과 대화하며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정보: www.heejoonlee.com

■ 정금형 JEONG Geumhyung

정금형은 무용가, 퍼포머, 안무가, 작가로서의 독특하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올해 작가는 신작 <장난감 프로토타입(가제)>을 제작할 계획이다. 8월 중 처음 공개될 이 작업은 2019년 쿤스트 할레 바젤 개인전에서 선보인 첫 번째 로보틱 조각 작품 <홈메이드 알씨 토이>에서 비롯된 로봇 우화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매 단계 진화하는 작가의 ‘장난감’, 즉 그의 로봇은 비전문가인 작가가 스스로 공부하며 습득한 지식을 기반으로 직접 제작하는 DIY 로봇이다. 작가의 ‘장난감’ 설계 계획은 끊임없는 문제에 봉착하지만, 또 의외로 그럴듯하게 해결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완성된 로봇들은 서투른 동작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며, 의도하지 않은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주로 사물과 몸의 관계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인형극에서 배우가 인형과 관계 맺는 방식, 배우가 자신의 몸을 움직이면서 인형을 조종하고 사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행위에 흥미를 느끼면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면서 몸의 움직임과 무용에 관심이 생겼고, 졸업 후 무용과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사물과 함께 움직이는 안무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제작과정은 적절한 사물들을 수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수집한 사물들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여 인형 캐릭터가 갖춰지면, 그 캐릭터와 함께 움직여보는 과정을 거친다. 작업은 주로 솔로 퍼포먼스 형식을 취해왔으며, 최근에는 퍼포먼스 외에 영상과 설치의 형태로도 선보이고 있다.

《7가지 방법》 설치 전경, 테이트 모던, 런던, 영국, 2009 《홈메이드 알씨 토이》 설치 전경, 쿤스트할레 바젤, 바젤, 스위스 2019
《개인소장품》 전시 전경, 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2016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작 또는 전시와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을 통틀어 보았을 때, 몇 갈래로 나누어진다. 그 갈래들의 문을 열어준 시작점으로써의 작업들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7가지 방법>(LIG 아트홀, 서울, 2009), <개인소장품>(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2016), <홈메이드 알씨 토이>(쿤스트 할레 바젤, 바젤, 스위스, 2019) 이렇게 세 개의 작업을 꼽을 수 있겠다. <7가지 방법>에서는 사물을 다루는 몸의 테크닉과 퍼포먼스의 형식을 갖추었고, <개인소장품>에서는 사물을 늘어놓는 나름의 방식을 취하게 되면서 퍼포먼스 외에 설치와 전시의 형태로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홈메이드 알씨 토이>에서는 기계 장치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수행할 일거리가 생겼다.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기간에는 앞서 언급한 <홈메이드 알씨 토이>의 시리즈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기계 부품들을 수집하여 이리저리 붙여보면서 움직이는 장치를 만들어보려고 끙끙거리고 있다. 이 시리즈 작업은 앞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하며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가게 될 것 같다.

* 작가에게 제공 받은 사진과 인터뷰 글을 바탕으로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