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 영웅 대망론의 대표작, 「이순신전」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전국 유일의 공공 종합문학관입니다. 근대문학을 중심으로 한 근대 한국학 자료 약 3만 점을 소장하고 있는 콘텐츠 중심형 문학관이기도 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인천문화통신 3.0을 통해 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 자료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문학관에 직접 오셔서 한국 근대문학이 가진 의미와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01 구국 영웅 대망론의 대표작, 「이순신전」

한말 유림 출신인 단재 신채호(1880~1936)가 쓴 역사전기소설/역사전기물이다. 단재는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재직하면서 신문 잡지 등 미디어를 통해 애국계몽운동을 하던 시기에 이 작품을 썼다. 단재는 이 작품을 먼저 국한문(「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으로 발표한 뒤 나중에 순한글본으로 다시 발표했다. 문체에 따라 독자층이 구분되어 있었던 당시 독자 현실을 염두에 둔 작품창작이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한문 독자인 양반/지식인과 한글 독자인 일반 대중과 부녀자층까지 이순신과 같은 구국 영웅의 출현과 이순신과 같은 애국심을 갖게하기 위해 국한문과 순한글 두 문체를 겸용한 것이다. 이 작품은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곤경에 빠진 나라를 구한 이순신의 일생을 영웅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작품 속 이순신은 선공후사, 멸사봉공의 화신으로서의 구국 영웅이다. 이순신 같은 영웅이 나와 1900년대 후반 대한제국을 위기에서 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창작했음은 물론, 독자들이 작품을 읽고 이순신과 같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거나 갖게 하고자 한 작품이다.

함태영 /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사




인천에 울려퍼진 아시아 6개국의 하모니-2016 인천아시안유스콰이어 2016.10.28~29, 신도 및 송도 트라이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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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마음, 하나의 소리- 인하대 동문 합창동아리 ‘인하모니(仁HAr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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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금요일 늦은 저녁, 인적 드문 캠퍼스 안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시끄러운 클럽 음악도, 신나는 밴드 음악이나 힙합도 아닌 서정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선율의 가곡. 인하대 동문으로 구성된 합창동아리 ‘인하모니’의 단원들은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학교에 모여 목소리를 맞춰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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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빛날 : 2013년도 3월에 처음 모였어요. 학교에 교양 수업으로 ‘합창’, ‘교양 가창’, ‘예술가곡의 이해’ 이렇게 3개의 음악 수업이 있는데, 그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합창단을 만들게 되었어요. 현재는 4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서 활동하고 있어요. 매 학기 교양 음악수업들이 끝나면 열리는 발표회 때마다 공연을 하고, 교수님 댁에 정기적으로 모여서 하우스 콘서트를 하기도 해요.

정현정 : 세 개의 음악 수업을 모두 듣고 나서도 노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일종의 갈증 같은 것이 있었죠. 함께 수업을 듣고 노래를 했던 사람들끼리 친분이 생기다 보니까 계속해서 함께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어요. 마침 수업을 하셨던 조병욱 교수님께서도 합창단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해 주셨고, 그때 시작된 인하모니 활동이 4년째 지속되고 있어요.

단원들의 대부분은 학교를 떠난 졸업생이다. ‘취준생’부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사원도 있다. 한 주 동안 이리저리 치여야 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친구와 술 한 잔 기울이며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인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포기하고, 인하모니 단원들이 금요일 저녁에 모여 연습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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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 : 타 지역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대학원에서는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하고, 친목을 다질 기회가 많지 않아서 아쉬움이 들었어요. 인하모니 연습이 아니면 학교 밖으로 나올 일이 거의 없기도 하구요. 인하모니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매주 금요일 다시 인천으로, 학교로 찾아오고 있어요.

최유라 :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입니다. 아무래도 같은 일상을 반복하게 되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되죠. 인하모니에 와서 함께 노래하는 시간 동안에는 일상의 생각이나 고민들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연습 때마다 교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들 덕분에 평소에 하던 고민들이 정리가 되고 마음이 편해질 때도 많아요. 힐링이 된다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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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빛날 : 연습할 때나 무대에 올라섰을 때, 40명의 목소리가 화음으로 딱 맞아 떨어지는 때가 있어요. 인고의 시간을 거치다가(웃음) 가끔씩 한 번 맞는 짜릿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연습한 보람도 느끼고 즐거워요.

단원 중 한 명은 대전에 있는 직장에 취업해 이사를 갔지만, 금요일마다 퇴근과 동시에 KTX를 타고 인천으로 온다. 결혼 후 육아에 전념하면서도 금요일 저녁만큼은 잠시 엄마로서의 일상을 벗어나 인하모니 연습에 참여하는 단원도 있다. 시간이 나면 참여하고, 바쁘면 안 가고 하는 식이 아니라 의욕적으로 연습과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하모니의 단원들은 이처럼 열정적으로 연습에 참여하는 이유를 지휘자인 조병욱 교수 덕분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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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현 : 처음에는 노래하는 게 좋아서 인하모니에 계속 나오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교수님이 안식년을 가시고 인하모니도 잠시 연습을 쉴 때, 다른 합창동아리를 찾아갔어요. 그 때 인하모니의 특별한 점을 알게 됐죠. 선생님이 음악을 가르쳐주시기도 하지만, 인생에 대해서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세요.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좋은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굉장히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연습이 없는 주에는 허전할 때도 있어요.

최유라 : 교수님은 소리가 아니라 마음이 일치해야 하는 것이 노래라고 항상 말씀하세요. 기교나 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생각과 마음이 일치해야만 나오는 것이 진정한 노래이고 음악이라고요. 돌이켜보면 삶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무언가를 할 때,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와 마음이 일치하는지를 아보게 되거든요. 단순히 합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고, 삶 속에서 가치가 되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셔서 도움이 많이 돼요.

길범준 :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해왔고 진로도 음악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인문대학을 오게 됐어요. 대학에 와서도 혼자 노래를 만들고, 취미로 피아노를 치는 작업들을 하다가 합창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노래를 하면서 음정을 맞추고, 박자를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음정이나 박자가 조금 틀릴지언정, 틀려도 다 같이 틀리고 맞아도 다 같이 맞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교수로서 학교 수업을 하고 성악가로서 연주회를 하면서도 인하모니를 비롯한 세 개의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조병욱 교수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하모니 단원들을 모으고, 연습을 진행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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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욱 : 수업만으로는 아쉬워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음악을 통해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들이 좋았어요.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서 정서를 순화하고 정신을 도야할 수 있는 데에 기여하고 싶었어요. 내가 가진 재능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가진 소명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이에요.

서정훈 : 20년 후, 나이를 먹고도 인하모니 활동을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노래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건강하고 좋은 마음으로 앞으로도 쭉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 바쁜 요즘. 하지만 합창에서 화음을 맞추기 위해서는 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의 생각, 하나의 마음으로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인하모니의 건강한 노랫소리가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글 / 시민기자 김진아




삶의 수많은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는 작가, 김푸르나

 

삶의 수많은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는 작가, 김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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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대부분은 인간의 편리와 편의를 위해 ‘구분’법이 사용되고, ‘다름’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생명이 생길 때부터 존재한 선천적인 구분(성별, 독성, 인종 등)일 수도 있고, 후천적인 것(재산의 부와 빈, 학식 수준, 권력 지위 등)일 수도 있다. 구분지어지는 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인간 사회의 질서이다. 어쩌면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 행위는 인간을 다른 것들과 구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가 존재할 수 있었을 테다.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며 인간이 아닌 것들을 존중하지 않는 구분이 생기는 순간, 인간은 먹어서는 안 되며 인간 스스로의 안위를 보장한다. 이렇듯 이미 삶 속에 존재하는 생체, 공감각 등에 대해 구분지어지는 것들을 우리의 뇌는 인식하고 있다. 인간에 최적화된 구분을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나가고 있으며, 그러한 구분들은 인간에게 이롭게 하기도 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해치기도 한다. 그리고 구분짓기에 익숙한 우리 인간은 구분이 없어지면 불안해한다.

인천아트플랫폼의 7기로 입주 중인 작가 김푸르나는 이러한 구분짓기와 인간의 불안성에 대해 창작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작가는 그 구분을 창작 속에서 ‘경계’라고 언급하며, 그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다수 선보이고 있다. 왜 그녀는 경계를 허물고 싶어할까, 그녀에게 경계는 과연 어떠한 것들이며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이제 작가를 직접 만나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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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경계’에 대해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A. 경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래 전부터인 것 같다. 아마도 나는 2009년에 시작한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 ‘The Modern People’ 시리즈에서 이러한 경계에 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시리즈는 아버지 세대와의 갈등, 인정의 결핍과 같은 혼란의 상황을 보여준다. 아버지 세대인 ‘중년 남성의 얼굴에 젊은 여성의 몸’이라는 모순된 신체를 조합하여, 자웅동체적인 인물의 형태로 결합시켰다. 작품은 주로 현대 자본주의 소비문화 속에서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을 풍자하는 시각으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졌던 가부장제도 안에서 성 역할(Gender Role)의 ‘경계 넘기’를 보여주는 작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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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경계’는 우리의 삶을 힘들게도 하지만, 편리하게 만든다고도 생각한다. ‘경계를 허문다’는 것의 필요성을 알고 싶다. 그리고 작가가 생각하기에 남겨두어야 할 최소한의 경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A. 최소한의 경계라…. 나의 생각은 하루하루 변화하고, 바뀌고, 혼란스럽다. 때문에 경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의 경계는 항상 생성되고, 무너지고, 다시 발생되기를 반복한다. 따라서 ‘최소한’이라는 기준을 가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저 나는 지금 구분 짓고 있는 그 경계가 의미 있는 경계인지 생각해보길 바랄뿐이다.

04 Q. 선천적인 경계와 후천적인 경계는 모두 ‘후천적’으로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경계를 만드는 이유와 힘에 대해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A. 우리는 아직까지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남자/여자, 안/밖, 몸/정신, 자아/타자, 삶/죽음 이밖에 모든 것들…) 나 또한 나만의 경계짓기를 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실 계속 없애려 해도 자연스럽게 생기고, 없어지고, 다시 반복하는 것이 경계가 아닐까 싶다. 경계가 완벽하게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모호한 경계를 즐기는 방법을 작품을 통해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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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초기 작품에는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그 사람들은 전혀 다른 성별의 모습으로 변환되는 직접적인 표현이 보인다. 하지만 어느새 사람은 사라지고 인체가 등장한다. 사람이 등장하게 된 계기, 그리고 작품에서 의도하고자 한 바를 알고 싶다.
A. 앞서 말했듯이 ‘The Modern People’ 시리즈는 아버지로 표현되어지는 ‘중년 남성의 얼굴에 젊은 여성의 몸’이라는 모순된 신체를 결합한 형태의 작업이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강요되어지는 여성 이미지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작업이었다. 이 시리즈는 결국 ‘남성성, 여성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 역할의 질문으로 확대되었다. 때문에 다음 작업인 ‘The Borderless Body(경계 없는 신체)’시리즈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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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품에 인체가 자주 등장한다. 인체를 소재로 삼은 계기와 작품에서의 의미를 알고 싶다.
A. 학부에서 대학원 시절을 거치며 신체를 무리하게 사용했었다. 결국 학업을 쉬어야 할 정도로 심한 목 디스크가 왔다. 휴학기간 동안 물리 치료와 디스크 치료를 받으면서 한동안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자 ‘내 몸을 내가 알아야겠다’ 싶어 신체에 대해 연구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작정 도서관을 오가며 다양한 해부학 서적을 보던 중, 하나의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내 신체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해부학 책 속의 신체는 각각 해체되고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다.(사실 정보 전달을 필요로 하는 책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하다) 시각예술을 전공하는 나에겐 이 점이 흥미로웠고, 책 속에 있는 신체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수집하고, 이 수집한 신체들을 다시 섞는 작업에 도입했다. 이전 작업(‘The Modern People’)의 내용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우선 남성과 여성의 특징적인 신체인 생식기를 섞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이후에는 염색체, 혈액, 지방, 피부조직 등 다양한 신체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 작품 또한 안과 밖이 서로 뒤섞이는 질서 없는 신체들의 행위를 통해, 두 개로 분리되어진 사고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다.

Q. 최근 가장 관심이 있는(허물어 버리고 싶은) 경계는 어떤 것인가?
A. (작업의 내용과 무관할지 모르나) 관심보다는 최근에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허물어진 경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요즘 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사업으로 동인천역 주변에 위치한 ‘미림극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은 인천의 유일한 실버극장인데, 극장을 찾는 어르신들의 평균연령은 70대에서 많게는 90대까지 다양하시다. 처음 이곳에서 일하면서 ‘나는 세대 간의 경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걱정을 했었는데 6개월 동안 이곳에서 일해 본 결과,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경계가 많이 바뀌었다. 생각해보면 어르신들도 나처럼 청춘이 있었고, 꿈이 있고, 아직도 나처럼 로맨스를 꿈꾸고 있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세대 간의 경계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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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를 들어 <유선의 성장>을 이미지 자체로만 보면 ‘여성’의 아름다운 몸’으로 생각되기 쉬울 것 같다. 그러면서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결국 여성의 몸이라는 경계가 생기게 되는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명해주길 바란다.
A. 작품 <유선의 성장>은 해부학서적에서 유선의 이미지와 근육세포 확대이미지를 추출한 후, 확대, 축소, 변형의 과정을 거친 작품이다. 신체 안에 있었던 세포들이 배경으로 채워지고, 그 안에 식물처럼 보이는 유선의 성장과정 이미지를 집어넣었다. 사실 이러한 회화 작업에서 중요한 점은 유선이라는 여성의 몸을 사용한 것이 아닌 확대, 축소, 변형의 과정을 거친 신체가 서로 재조합되는 과정이다. 이는 <인체정물화>라는 작업에서도 알 수 있는데, 작품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 뒤섞인 외부와 내부의 신체를 통해 분리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파편화된 신체를 정물화의 이미지로 변형시킨 이 작업에서 자궁은 꽃병이 되고, 생식기ㆍ세포ㆍ신장ㆍ혈관 등은 꽃이나 잎으로 변형된다. 테이블로 표현된 피부조직이나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X 염색체의 패턴들은 내부와 외부를 분리시키는 기능을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신체들을 수용하며 결국에는 모든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Q.작가들을 미술사적 담론 속에서 ‘○○ 작가’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여성의 신체 해부학적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여 단편적으로만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은 페미니즘 작가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경우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사견은 어떠한지?
A. 사실 그랬던 경우(페미니즘 작가로 구분됐던 경우)가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대미술에 있어 어떠한 작가로 구분짓는다는 것은 경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나에게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초기작품이었던 ‘The Modern People’시리즈를 보고 ’변태같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다. 나는 그 변태라는 말이 거북하다기보다 흥미롭게 들렸다. 왜냐하면 동식물이 변태의 과정을 거쳐 성장하듯이 나의 생각과 사고는 항상 변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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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매체를 실험하는 시도를 자주 볼 수가 있는데 작가에게 중요한 매체가 있는가?
A. 일상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도 진행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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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공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가라면 미술 영역 안에서 작품이라는 아우라를 가질 수 있는 화이트 큐브 공간, 작품의 담론과 의미를 더 생산해볼 수 있는 전시장이 아닌 공간 등 다양한 공간을 모두 실험해보길 바랄 것이다. 김푸르나 작가에게 있어 작품 설치 장소는 중요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작가에게 공간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매력적인 공간은 어떠한 곳인가?
A. 2015년 첫 기획 개인전인 <기묘한 전시>에서 나는 4년 남짓 사용했던 작업실 공간을 전시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작업실은 지하였는데, 입구에 들어가는 통로부터 전시장 벽, 전시 내부공간을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관람객이 직접 신체 안으로 들어오는 체험적 공간을 경험하도록 기획하였다. 지하로 내려오는 통로의 공간은 외부와 내부를 연결해주는 신체의 공간으로 재해석하였고, 전시장 벽면에는 가로 5미터 세로 3미터 정도의 ‘뉴런’ 벽화작품을 작업했으며, 전시장 내부 곳곳에는 설치작품과 평면작품들을 배치하였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힘은 화이트 큐브가 주는 아우라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직접 생활해보고 느꼈던 체험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앞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공간은 이러한 체험적 공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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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특히) 아크릴 작업의 경우에 디자인적인 요소가 눈에 띈다. 관람객들 역시 고운 색채와 반복되는 패턴에 시선을 먼저 두고, 어쩌면 ‘예쁘다, 귀엽다, 갖고 싶다’ 등 이야기하며 촬영하는 경우를 보았다. 이것은 작가가 어쩌면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반응을 의도한 것인가, 그리고 의도하였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주기 바란다.
A. 관객들이 ‘예쁘다, 귀엽다, 갖고 싶다’라는 반응을 보이면 우선 내 의도가 절반은 성공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내가 주로 작품의 소재로 쓰는 신체들은 생식기, 혈액, 가슴, 세포, 지방 등 관람객들이 보기엔 약간의 불편함을 동반한 신체들이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내가 가진 고정관념일지 모르겠지만) 작품은 신체가 가지는 이런 개인적, 감정적인 측면의 완화를 돕기 위해 방법적 측면에서 객관적이고 냉소적인 표현기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신체가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한 방법이다. 
 
Q.보는 이가 어떻게 느끼면 좋겠는가.
A. 내 작품은 구분되고 나누어졌다고 생각했던 안과 밖의 신체가 서로 뒤섞이며 유쾌하게 변화하는 과정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신체가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기를 바라며 작품 안에서 모호한 경계의 즐거움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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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페인팅 작업에서의 경계 허물기와 장소 특정형 설치 작업에서의 경계 허물기, 이 두 가지 트랙으로 나눠 작업이 진행되는 것 같다. 하지만 각 트랙은 다른 경계를 의미하는 듯하다. 각각 어떠한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바란다.
A. 그 동안의 회화 작업은 터부시되었던 신체의 일부나 섞일 수 없는 신체들을 해체하고 다시 재조합하는 모호한 경계 넘기의 과정이었다. 반면 장소 특정형 설치 작업에서는 그 공간에 있던 흔적을 이용해 현재의 공간과의 접점을 찾고, 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 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따라서 관객이 이 공간 안에 들어오게 된다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모호한 공간으로 인식되어질 것이다. 나의 페인팅 작업이 신체를 통해 어떠한 고정관념이나 사고의 경계에 질문을 하고 있다면, 장소 특정형 설치 작업은 공간을 통해 경계를 체험하는 작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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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두 가지 트랙으로 작업하게 된 이유가 있는가?
A. 두 가지 트랙으로 의도해서 작업하지는 않는다. 다만 장소 특정형 설치작업에서는 페인팅에서 보여 줄 수 없었던 갈증들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Q.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은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를 바란다.
A. 최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참여했던 ‘웻 페인트’ 전시는 현재 나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아트플랫폼 주변과 자유공원 길거리 일대에서 채집한 매미의 껍질(선퇴)을 샹들리에 조명으로 제작했다. 매미의 껍질을 채집한 것은 앞서 말할 것처럼 일상에서 매체를 찾기 위한 시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 당시(전시를 준비하는 여름기간 동안) 아트플랫폼 뒤쪽에 많은 매미들이 울부짖었으며, 그 흔적들은 주변 공원 나무들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매미의 몸이었던 선퇴는 매미의 몸이자 현재는 매미의 몸이 아닌 몸이 되었다. 모호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치한 이 매미의 몸은 작업의 소재로 쓰기에 충분했다. 200마리 남짓 되는 매미의 껍질을 채집했으며, 이는 설치와 아카이브의 형태로 전시되었다. 이 밖에도 가슴을 산의 형태로 만들고 나의 손을 직접 촬영해 꼴라주 작품으로 제작한 ‘The Borderless Body- 가슴산 365시리즈’ 작업은 목표인 365장이 다 채워지면 하나의 영상으로 제작될 계획이다. (웻 페인트 전시에서는 완성된 160장의 작품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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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의 창작 계획을 소개해주기 바란다.
A. 현재 ‘몸, 채집’이라는 컨셉으로 작업의 방향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는 매미의 껍질을 소재로 한 작품을 시작으로 이미지 채집, 다양한 몸 채집 등으로 이어나갈 예정이다. 또한 내가 표현하는 신체가 하나의 소재를 넘어 직접적인 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에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매체와 설치, 공간을 통해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작업들을 진행하고 싶다.

정리 / 이아름(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인천은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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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근대다.” 이 땅의 근대와 연관해서, 가장 중심도시가 인천이다. 그렇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여기서 또 반복하고 있다. 왜냐고? 정작 이런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천이 바보다.” ‘인천 = 근대’라는 등식을 인정한다. 하지만 과연 인천이 근대와 관련해서, 국내와 해외에 내놓을 수 있는 ‘문화’는 무엇일까? 인천이 과연 근대와 관련된 ‘콘텐츠’를 잘 보유하거나 계발하고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같은 항구도시로서의 군산과 목포와 비교해서도 그렇다. 근대문화의 복원과 향유에 관심을 두고 있는, 대구와 부산과도 비교하게 된다. 근대와 관련된 인천은 ‘서 말의 구슬’을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걸 아직 제대로 끼우지 못했다. 지금 내 눈에 비친 인천은, 구슬은 있으나, 목걸이를 아직 만들지 못한 형상이다. 그간 인천의 근대와 관련된 저간의 노력과 성과에 박수를 보낸다. 빛이 바랬거나 묻혀있는 구슬을 찾아내고 정갈하게 닦아낸 그들이 고맙다. 그렇다면, 이제 목걸이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인천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관(官)이 하기보다, 민(民)이 해야 할 일이다. 관의 뒷받침으로, 민이 해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이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와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인천사람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이 글은 결국 자신에게 쓰는 반성문이자, 함께 일궈내자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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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 바보라 함은, 내가 바보라는 자각이다. 바보라는 강력한 단어를 등장시켜서, 제발 말로만 떠들지 말자는 얘기다. 바보의 한 예로, 근대성(近代性)을 ‘과거’와 ‘건물’에만 두지 말자는 얘기다. 인천을 찾는 사람들이 개항장 거리에서 근대문화유산이라는 건물을 바라보고, 짜장면을 먹는 것이 과연 ‘근대’를 경험하는 것일까? 이게 인천의 근대를 경험하는 일일까? 이런 한나절 투어로 ‘인천 = 근대’가 끝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인천의 ‘문화적’ 가치, 곧 인천의 ‘근대적’ 가치를 콘텐츠화 시키는 게 급선무다. 인천에 ‘근대문학관’이 있어서 반갑다. 인천에 ‘근대음악관’이 생겼으면 더욱 좋겠다. 신민요와 재즈를 모두 즐기고, 일찍이 살풀이와 사교춤을 모두 수용한 게 인천이었다. 일찍이 근대음악과 서구문화를 수용했던 인천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근대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전통의 가치를 생각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야한다. 서로 다른 둘이 부딪히기도 하고 어울리기도 하면서 만들어냈던 그 ‘문화적’ 가치는, 곧 인천이 선도적 역할을 해서 이룩해낸 ‘근대적’ 가치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귀중한’ 가치다.

인천인이여! 우리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일본제1은행인천지점(현, 인천개항박물관)은 건물이 남아있어서 의미가 있고, ‘애관극장’은 예전의 건물도 아니고 위치가 바뀌었다고 가치가 덜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인천의 근대를 연구하는 지역학자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아연실색했다. 당시 조선사람 혹은 인천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이 더욱더 큰 의미가 있었을까? 번스타인이 피아노연주회가 있었고, 최승희가 신무용공연을 했고, 당시 대중들이 가장 좋아했던 ‘창극’의 공연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공간이 애관(愛觀)이었다. 인천이 진정한 ‘근대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용동권번(龍洞券番)의 기생이야기를 콘텐츠(이야기, 공연)로 만들어서 소통하는 일도 중요하다.

인천의 근대를 기반으로 한 문화적 가치는, 앞으로 이런 장소와 연관된 ‘근거있는 상상력’을 통해서 콘텐츠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다. 상상력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콘텐츠가 된다. 그런 콘텐츠는 공연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소통하게 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영화와 뮤지컬에서 만들어지는, 근대와 관련된 콘텐츠는 앞으로 ‘인천만의 가치창조’와 연관해서 좋은 예가 된다. 우리가 누군가? 우리가 더 이상 바보일 순 없다. 그러기 위해선, 인천의 ‘근대적’ 가치를 ‘콘텐츠’로 만드는 작업을 실천해야 한다. 근대를 상상하라! 거기에 바로 인천의 ‘미래가 될 과거’가 있다.

윤중강(평론가, 연출가. ‘만요컴퍼니’ 예술감독)




동네방네 알림판(2016.11.01.~11.14)

인천에서 벌어지는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각종 행사들의 소식을 한번에 전해드립니다. 또한 좋은 소식이 있으면 함께 널리 알리고, 축하하고자 합니다. 매월 1주, 3주 화요일마다 발송되는 인천문화통신을 활용해 다양한 소식을 전하세요.
알리고 싶은 행사 내용을 http://me2.do/xRtWJVeH 링크에서 입력하시면, 기간에 맞춰 실어드립니다. 많은 활용 부탁드립니다. #인천문화예술 #동네방네 #알림판 #소식

01인천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 자료실 오픈(11.2~)
인천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이 (구)인천아트플랫폼 H동 건물 1층에 카페 컨셉의 열람 전용 자료실을 오픈한다. 11월 2일(수)에 문을 여는 자료실은 열람실, 미디어실, 보관실 총 3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람실에는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도서가, 보관실에는 인천 관련 자료나 유관기관 발행 자료가 주로 비치된다. 매주 월~토 10시부터 18시(공휴일, 매월 첫째주 수요일 휴무)에 운영하며, 12월까지 5,000여개의 다양한 자료(책, DVD)가 구비될 예정이다. 와이파이가 제공되며, 음료 반입도 가능한 공간으로 시민 누구나 독서, 코워킹, 개인과제 등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 문의 032-760-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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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바로알기종주단 전시(11.3~11.9, 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 갤러리)
‘함께 간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라는 타이틀로 16년 동안 꾸준히 진행된 인천바로알기종주단의 인천 종주를 주제로 한 전시 <바람과 함께한 우리들>이 열린다. 인천 청소년들을 비롯한 130여명의 참가자들이 인천 구석구석을 두 발로 걸었던 6박 7일을 전시로 만날 수 있다. 뜨거웠던 6박 7일의 여름을 사진과 개인별 캐리커쳐, 영상 등으로 담았다. 사진작가 윤성원, 만화가 김신,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비상팀이 전시에 참여했으며, 인천문화재단과 한국메세나협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한다. 개막식은 11월 5일(토) 오후 2시, 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구 인천아트플랫폼 A동)에서 열린다.
☞ 문의 032-455-7114

03인천건축도시컨퍼런스(11.07, 15:00~, 주안 틈문화창작지대)
11월 7일(월)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주안 틈문화창작지대에서 ‘인천건축도시콘퍼런스’가 열린다. 11월 11일(금)부터 16일(수)까지 중구 인천아트플랫폼 일대에서 펼쳐지는 ‘인천건축문화제’의 마지막 사전 행사로 주제는 ‘제4차 산업혁명과 건축의 미래’다. 김성아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와 조택연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교수 발제를 맡는다. 토론자로는 공철 건축가(KcAL 대표), 김두환 미래변화예측연구소 소장(인천대 물리학과 객원교수), 박정현 도서출판 마티 편집장(건축평론가) 등이 참가한다. 전진삼 격월간 와이드AR 발행인, 최재형 에스에이건축 대표 등도 함께한다. ☞
☞ 문의 032-437-3381

 

04인천, 어느날 영화가 되다(~11.20, 인천시립박물관)
인천시립박물관이 11월 20일(일)까지 하반기 기획특별전 ‘인천, 어느 날 영화가 되다’전을 연다. 이번 전시에서는 근대산업도시 인천이 경험한 영화적 체험과 이를 통해 인천이란 공간이 어떻게 기억되고 재현돼 왔는지를 조명한다. 전시에는 1958년 인천의 자본으로 인천의 세트장에서 촬영된 영화 ‘사랑’의 스틸컷을 비롯해 인천에서 촬영된 영화관련 자료와 100년 전통의 애관극장 등 인천의 극장 관련 자료 400여점이 출품된다.
전시는 1부 ‘사랑’, 2부 ‘오! 인천’, 3부 ‘애관(愛觀)’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영화가 산업으로서 움트기 시작했던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 인천에서 제작된 영화를 소개한다. 2부에서는 인천에서 제작되거나 인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장면들을 영상과 스틸컷, 포스터 등으로 보여주며, 3부에서는 인천에 소재했던 극장과 주변 풍경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전시한다.
☞ 문의 032-440-6733
 




<인천문화재단-인천영상위원회 공동기획>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마켓, 인천다큐멘터리포트, 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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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국 프로젝트만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 피칭 포럼’으로 시작된 ‘인천다큐멘터리 포트는 2014년 아시아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마켓으로 새롭게 시작한 이후 지난 3년간 총 25개국 80편의 프로젝트를 선정하여 약 14억원 규모의 다양한 상금, 펀드, 현물을 지원하고 이를 국내외 다큐멘터리/방송/영화 관계자들에게 소개해 왔다. 오는 11월 4일(금) 올해로 3회를 맞이하는 인천다큐멘터리포트가 2박 3일의 일정으로 그 문을 다시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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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프로젝트 마켓? 생소할 수도 있겠다. 11월 4일부터 6일까지 파라다이스호텔 인천에서 열리는 이 행사의 주 목적은 현재 제작 중이거나 아직 개봉 또는 방영이 되지 않는 한국과 아시아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중 우수한 프로젝트를 선정해서 피칭이라는 형태로 국내외 영화,방송,다큐멘터리 관계자 앞에서 공개하여 프로젝트가 완성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고 프로젝트가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어 관객과 만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다큐포트는 단순히 좋은 다큐멘터리 기획을 뽑아 지원금을 주는 행사가 아니다. 이런 지원 프로그램은 많다. 인천 다큐멘터리 포트는 좀 더 산업화된 행사를 지향한다. 아직 산업이라고 부를 수 없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영화계와 방송계의 산업적 관심을, 아시아와 한국 다큐멘터리에 대한 해외의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행사다. 종종 농담처럼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결혼정보회사”라는 말을 하곤 한다. 좋은 신랑 신부감을 뽑아서 좋은 배우자와 연결시켜 주는 결혼정보회사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행사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본 행사는 단순히 멋진 피칭을 하고 좋은 프로젝트에 지원금을 주기보다 다양한 산업의 주체들이 참여하여 창작자/기획자들과 서로 만나고 협의하면서 지원 또는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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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올해 행사에는 총 24편의 프로젝트가 참여한다. 국내 극장 개봉 및 TV 방영을 목표로 기획/제작 중인 한국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 다큐멘터리 피칭(K-Pitch)’ 부문에는 총 47편의 프로젝트가 접수되었고, 이 중 다양한 주제와 각자의 스타일로 무장한 총 9편의 프로젝트가 최종 선정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18년간 지상파 방송에서 40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고, KBS 인간극장을 시작으로 다수의 휴먼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박혜령 감독의 프로젝트 <108 접시>와 2015년에 개봉한 화제의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소리>를 연출한 이길보라 감독의 신작 <기억의 전쟁>, 그리고 올해 국내 여러 다큐멘터리 피칭을 통해 화제를 모은 바 있는 권우정 감독의 <까치발>과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를 비롯하여, 2015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용감한 기러기상을 수상했던 <서른넷, 길 위에서>를 공동 연출한 이선희 감독의 신작 <얼굴, 그 맞은편(가제)>와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다큐멘터리에 수여되는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한 <붕괴>를 공동 연출한 이원우 감독의 신작 <옵티그래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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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시장을 목표로 하는 아시아 프로젝트를 위한 ‘아시아 다큐멘터리 피칭(A-Pitch)’ 부문에는 20개국 58편의 프로젝트가 접수되어 치열한 경합을 펼쳤다. 그 결과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 심사위원이었던 수프리요 센 감독의 신작 <어둠을 뚫고 헤엄치다>와 같은 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대상인 흰기러기상을 수상한 쩐 푸엉 타오 감독의 신작 <더 링 로드>, 그리고 로우 예와 왕 빙 등 중국의 중요 감독들과 오랫동안 작업해온 프로듀서 이자벨르 글라샹과 국내에 <북경자전거>로 잘 알려진 중국 6세대 대표 감독 왕 샤오슈아이의 신작 프로젝트 <마이 차이나>를 비롯하여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 미얀마, 캄보디아, 일본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우수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10편이 선정되었다.

또한 완성 단계에 들어선 미방영, 미개봉 다큐멘터리를 대상으로 하는 ‘러프컷 세일(Rough Cut Sales)’ 부문에는 총 26편의 접수 프로젝트 중 5편이 최종 선정되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2014년 인천다큐포트 화제작인 김일란, 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과 2015년 인천다큐포트 베스트 신인 프로젝트상 수상작이자, 북미의 대표 피칭포럼인 핫독스(Hot Docs) 포럼에서 한국 최초로 센트럴피칭 부문에 선정된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 제64회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 ‘넷팩상’ 수상작 <논픽션 다이어리>를 연출한 정윤석 감독의 신작 <밤섬해적단 습격의 시작>, NHK월드, MBC 등 국내외 방송사에서 러브콜을 받은 문창용 감독의 <앙뚜>와 2015년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영화제(IDFA) 포럼에서 베스트 피칭상을 수상한 지혜원 감독의 <앵그리버드와 노래를>이 그 주인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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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다큐멘터리’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비평가였던 존 그리어슨은 “예술은 거울이 아니라 망치이다.”라고 말했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다양한 면면을 단순히 기록하여 보여주는 거울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으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고 기존의 인식을 부수는 망치다.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카메라라는 무기를 손에 들고 우리의 현실을 담아내고, 현실 사이사이 켜켜이 자리잡은 진실을 놓치지 않으면서 무엇이 좋고,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아름다운지를 기록한다. 우리는 이런 다큐멘터리들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새로운 진실과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와 아프고 불편하고 어둡고 의심스러운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인천 다큐멘터리 포트는 바로 이런 다큐멘터리가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행사에 대한 세부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www.idocs-port.org)를 통해 확인하면 된다. 일반 관객을 위한 행사는 아니지만 인천에서 열리는, 대한민국의 단 하나밖에 없는 다큐멘터리 전문 행사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글 / 조지훈(인천다큐멘터리포트 프로듀서)
사진 / 인천영상위원회




우리는 ‘에어플레인 피플’입니다.-<또 다른 이민, 해외입양>전,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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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피플’(boat people)이라는 표현이 있다. 말 그대로, 보트를 탄 사람들. 1974년 발발한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배를 타고 피란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베트남 난민들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 난민 하면 떠올리게 되는 가장 고전적인 표상이지만 불행히도 보트 피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를테면 북아프리카 보트 피플에게 꿈의 섬으로 여겨지지만 결국엔 죽음의 섬이 될 운명인 이탈리아 최남단에 위치한 섬 ‘람페두사’ 그리고 시리아 내전을 피해 탈출하던 중 터키 해변에서 비극적으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 남자아이 ‘아일란 쿠르디’ 등은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에어플레인 피플’(airplane people)이라는 표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비행기를 탄 사람들. 이는 물론 정식 시민권을 얻지 못한 단어이긴 하지만 ‘해외 입양아’를 염두에 두고 느슨한 상상력을 발휘해 적용해본 비유다. 과연, 그들은 하나같이 비행기를 타고 타국의 가정에 양자 혹은 양녀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가. 배를 타고 입양 가정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는 과문해서인지 들어본 기억이 없다. 해외입양인 그리고 에어플레인 피플. 오는 11월 27일까지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또 다른 이민, 해외입양’ 특별전을 둘러보던 중 문득 머리를 스쳐간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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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 알게 된 놀라운 통계가 하나 있다. 1948년에서 2004년에 이르기까지 총 50만여 명의 전 세계 입양인들 중 무려 1/3에 해당하는 수치가 바로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토록 많은 수의 해외입양인을 배출한 한국의 시대사적 맥락이 존재할 것이다. 그 기원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부터 비롯된다. 전쟁으로 인해 한국에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양산되었고, 종전 이후 오갈 데 없는 고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외입양이 시작된다. 그리고 1960년대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이르는 시기, 국가 주도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빈곤 가정과 미혼모들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이 새로운 해외입양 ‘수출’ 자원으로 대두되기에 이른다. 여기에 제동이 걸린 결정적 계기가 1988년 한국의 서울올림픽 개최 즈음이다. 다수의 서구 언론들이 한국의 해외입양아 문제를 두고 ‘아기 판매’(Babies for Sale)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써가며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의 ‘아기 수출 산업’은 정점을 찍고, 2007년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처음으로 국내입양아 수(1,388명)가 해외입양아 수(1,264명)를 상회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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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그리고 유럽 대륙의 여러 가정에서 한국인 입양아를 받아들이게 된 배경, 그 맨 앞줄에는 저개발 빈곤 국가의 불우한 아이들을 보듬겠다는 종교적・사회적 이타주의 심성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시의 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낯선 땅 낯선 가족과 입양인’ 섹션에서는 이처럼 어린 나이에 낯선 해외 가정에 새 둥지를 튼 한국인 입양아들 그리고 그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 해외입양아 현실을 둘러싼 차가운 진실 역시 존재한다. 1983년생 한국에서 태어난 김 스티븐(Kim Steven)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는 흑인 혼혈이었다. 또한 그는 어릴 때 뇌성마비를 앓아 양쪽 눈의 시력을 잃었을 뿐 아니라 급기야 하반신마저도 쓰지 못하게 되는데, 소위 ‘장애인’ 신분으로는 미국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입양 절차를 밟는 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밖에 마음이 쓰이는 지점은 하나 더 있다. 해당 전시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한국인과 같은 동양 출신 아이들을 자신의 가정에 입양아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서구인의 심리 저 은밀한 귀퉁이에 혹시 동양을 신비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는 없었을지 여부도 가만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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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마지막 ‘입양인의 귀환’ 섹션은 가장 흥미로운데, 관람객으로 하여금 ‘귀환’(歸還)이라는 단어의 간단치 않은 의미에 대해 일깨워준다. ‘귀환’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다른 곳으로 떠나 있던 사람이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거나 돌아감.”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다. 1968년 한국의 부산에서 태어나 그 이듬해 벨기에로 입양된 아이. 성인이 된 그는 이제 제 2의 고향이라 할 벨기에 또한 벗어나 세계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예술가 및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이름은 “미희 나탈리 르무안느”(Mihee Nathalie Lemoine). 두 살 때 벨기에로 입양된 그에게 양부모가 입양서류에 적혀 있던 ‘조미희’라는 이름에서 ‘미희’를 가져와 ‘나탈리’라는 서양식 여자아이의 이름을 덧붙인 뒤, 자신의 성 ‘르무안느’를 더해 마무리한 이름이다. 그런데 후일 친모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본명이 ‘김별’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최종적으로 그의 이름은 세 개가 된다. 조미희, 미희 나탈리 르무안느 그리고 김별.

조미희=미희 나탈리 르무안느=김별의 입장에서 ‘귀환’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목적지는 조미희인가, 미희 나탈리 르무안느인가, 아니면 김별인가. 그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그에게는 ‘집’(home)이라는 관념 역시 좀 독특한 것이다. 어느 나라이건 “집을 빌릴 수 있는, 사방의 벽으로 둘러싸여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면 자신에게는 ‘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아무래도 그에게 전통적인 용법의 ‘귀환’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조미희=미희 나탈리 르무안느=김별에게 ‘귀환’이란 조미희, 미희 나탈리 르무안느, 김별 어느 하나도 아닌, 그러나 그 전부를 더한 것이 될 것이다. 그는 ‘에어플레인 피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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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 가지 언급해두고 싶은 지점이 있다. 이번 전시는 한인 해외입양아들 중 ‘이중의 소수자’라 할 흑인 혼혈아의 존재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 가령 미국인 김 원선시오 신부가 운영한 ‘성 원선시오의 집’의 존재가 그렇다. 그는 인천 부평에 위치한 미군기지 ‘애스컴 시티’ 외에도 의정부, 동두천, 군산, 송탄 등의 기지촌들을 돌면서 (모두가 생모는 아니었을) 혼혈아 어머니들을 만나 한국 내 혼혈아 문제 해결에 헌신한 인물이다. 김 원선시오 신부의 존재는 우리가 한인 해외입양아에게 품고 있는 일반적인 표상이 얼마나 좁은 것이었는지 찬찬히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글 / 이종찬(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사진 / 한국이민사박물관 제공




사진작가 이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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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성은 일제시대 약간의 조사 자료를 남긴 외에 별다른 보호 조치가 없었으며, 광복 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땔감으로 산림이 황폐화되는 등 더욱 퇴락하였다. 다행히 1949년 인천시립박물관의 조사가 있었고, 1958년에는 동문지(東門址)를 복원하고, 인방석에 「문학산성동문」임을 각자(刻字)하는 한편 도천현에서 산성으로 오르는 길목에 ‘십제고도문학산성(十濟古都文鶴山城)’이라 새긴 표석을 세웠다. 그러나 1960년 미군부대 공사가 진행되면서 문학산 정상부를 삭토하고 산성의 서문지(西門址)와 성벽을 헐어버렸다. 1962년에 부대가 들어서면서 봉수대와 건물지 그리고 동·서문 자리 등까지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1965년 간행된 이종화(李宗和)의 도록 『문학산』만이 그 이전 산성과 주변 지형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인천시사』에 기록된 비류(沸流) 유적, 문학산성에 대한 발췌 내용이다. 글의 말미에 나오는 사진작가 이종화(?∼1974) 선생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인천의 주산인 문학산의 원래 모습을 후대 사람들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그는 이설(異說)이 있는 비류왕릉의 위치에 대해 문학산 북록 돌출부에 있는 고총(古塚) 사진을 제시해 ‘문학산 비류왕릉설’을 뒷받침하기도 하였다.

이종화 선생은 본업이 의사였지만 사진작가, 향토사가로서 10년 가까이 자비(自費)를 들여 사계절 문학산의 변화 모습을 당시에는 몹시 귀한 컬러사진으로 기록했는가 하면, 인근의 사적과 전설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조사함으로써 귀중한 향토사 자료를 남긴 분이다. 선생은 1962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인천지부 결성 당시 초대 지부장을 지냈고, 동시에 인천사진협회를 태동시키면서 역시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38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하고 해방 후 인천에서 개업을 하고 인천의 사진작가로서 활동한 이종화 선생에 대해 고 신태범(愼兌範) 박사가 ‘인천 태생도 아닌 그가 인천의 주산인 문학산에 쏟은 애정은 참으로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한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나 우리 시사(市史) 인물란에는 그가 올라 있지도 않다.

김윤식/시인,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인천에서 열리는 아트마켓의 오늘과 내일,제2회 인천아트마켓 “문화예술, 기업과 만나다” 2016.10.20.~10.21. 인천하버파크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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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누구는 팔기 위하여, 누구는 사기 위하여, 혹 딱히 살 것도, 팔 것도 없다면 그저 구경삼아 서성여도 좋겠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한데 모여서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은 이렇듯 재화와 정보를 교환하고, 사교와 유흥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지난 10월 20일에서 21일, 이틀에 걸쳐 제2회 인천아트마켓이 열렸다. 인천지역 공연예술프로그램의 유통 활성화를 위한 마켓이 시도된 것이다.

인천아트마켓은 인천 지역 소재 문화예술단체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구보댄스컴퍼니의 장구보 대표를 중심으로 2015년 조직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첫 해에는 공연단체를 교육기관의 수요에 맞추어 소개했다면, 2016년 2회차에는 참여 범위를 대폭 확대하였다. 무용, 연극, 음악, 영상 등 지역 문화예술프로그램의 생산자와 인천지역의 기업, 공공 문화시설, 교육기관, 인천시 행정 등의 수요자가 서로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등 보다 풍성해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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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문화예술단체의 홍보부스와 공연 쇼케이스는 개막 당일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다. 총 20여개 단체의 홍보부스는 오픈형 테이블로 행사장에 자리를 잡았다. 참여단체의 공연 홍보와 예술프로그램에 대한 상담, 각 단체의 정보교류가 이루어지는 장터이다. 쇼케이스는 장르별 2개 작품이 선정되었다. 2011년 창단하여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이데아댄스컴퍼니의 “일상”과 인천에서 클래식 음악 보급을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미추홀 오페라단의 “휘가로의 결혼”이 하이라이트 쇼케이스로 올려졌다.

심포지엄에서는 “문화예술시장 활성화를 통한 지역 내발적(endogenous) 발전”을 주제로 양준호 인천대 교수의 ‘문화예술 시장의 사회적 조정을 통한 지역 내발적(endogenous) 발전’ 발제가 있었다.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 지역의 소비에 의해 자기완결적으로 수요되는 지역경제발전 모델’을 설명하며, 가격경쟁에 의한 시장적 조정이 아니라 사회적 조정을 통해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상호협의를 통한 지역문화예술시장의 가능성을 토로하였다. 김상원 인하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으며, 토론에는 신동근 국회의원과 황흥구 인천시 문화복지위원장, 김인수 인천시 문화정책팀장, 이승희 시사인천 사장이 자리하여 정치, 행정, 언론 등 각자의 역할에서 충실한 제안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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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에는 참여단체의 프리젠테이션을 필두로 하는 라운드테이블이 마련되었다. 라운드테이블은 지역 문화예술프로그램의 수요자 층에 속하는 지역 기업 및 병원, 공연장, 학교, 관공서 등과 지역문화예술단체와의 비즈니스 미팅 자리다. 총 23여개의 기관과 20여개 단체의 네트워킹이 마련된 이 날 프로그램이야말로 아트마켓이 지향하는 지역 공연예술 유통구조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문화예술의 서울 중심, 지역에서 지역예술의 배제라는 이중고를 극복하기 위해 아트마켓을 구상하게 됐다”는 장구보 집행위원(구보댄스컴퍼니 대표)은 이번 행사가 일회성 이벤트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한다. 인천에 뿌리를 두고 예술을 하는 지역 문화예술단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로 인천아트마켓을 이어나갈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사실 마켓이란 수요와 공급이 적절히 만나고 거래되어야 생산과 소비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술상품은 여타의 용도가 있는 물품과 다르다는 점에서 자유경쟁의 논리로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사회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도구만능주의적 관점은 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정책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문화경제학자 브루노 프레이(Bruno S. Frey)는 국가가 예술을 보조하고 육성해야 하는 이유로 예술로 인해 지역경제가 증대되고 산업이 활성화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으며, 예술이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자유 시장 형성이 어려운 분야라 설명한다. 예술은 그 예술을 직접적으로 향유하는 감상자들 외의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미치며, 그 혜택을 제한할 수도 없고, 한 사람이 향유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지 않는다는 공공의 선적 효과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트마켓이 여타의 재화와 물건을 교환하는 시장과 달리 걸어가야 할 지점이다. 예술을 상품으로, 거래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교환하는 장이기에 앞서, 예술창작자와 기획자, 관객이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공공재의 나눔의 장, 확산의 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인천아트마켓은 ‘지역에서 예술하기’를 실천하는 창작자들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쟁의 룰이 아닌 사회적 합의와 대화를 통한 신뢰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아트마켓’의 새로운 룰이 인천의 시민과 예술가를 흥하게 하는 장터를 상상해 본다.

글/ 변순영(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