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놀이터(Imaginary Playground)로 초대합니다. 작가, 그레이스 은아 킴

 

상상의 놀이터(Imaginary Playground)로 초대합니다.
작가, 그레이스 은아 킴

2016년 10월 27일 직원들의 출근이 막 시작된 아침 시간에, 신포동 주민센터의 한 직원이 인천아트플랫폼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네댓 명이 검은 천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며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어 지나가던 동네 주민과 행인들이 무섭다고 민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가 이런 일을 ‘벌였다’던데… 어찌된 것이며,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이냐”는 것이 문의의 골자였다. 우리는 그레이스 은아 킴 작가가 동틀 무렵부터 퍼포먼스를 할 것이라고 사전에 알려 왔기에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공손히 대답해드렸다. “곧 끝날 것입니다. 예술 작업이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아침 나절 가벼운 소동이라면 소동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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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의 놀이터(Imaginary Playground)’라는 제목의 이 해프닝은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국외 입주작가인 그레이스 은아 킴이 추진한 프로젝트로, 폭 1미터, 길이 약 45미터에 달하는 검은 천을 도심의 여러 장소들을 이동하며 일시적으로 설치했다가 치우는 작업과 5명의 공연자들이 출연한 퍼포먼스로 구성된다. ‘상상의 놀이터’라는 타이틀에서 ‘상상의’는 불필요한 수식어인지도 모르겠다. ‘놀이’가 항상 상상의 세계를 전제하고, ‘상상’이야말로 ‘놀이’의 기본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할 때 자기가 엄마, 아빠, 어른이라 상상하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수퍼 영웅이나 공주와 왕자가 되지 않던가. 여러 가지 역할극은 실제가 아닌 픽션의 세계에 내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눈이 내리다’와 ‘흰 눈이 내리다’가 결국은 같은 뜻이지만 다른 어감인 것처럼, ‘상상의’라는 수식어 덕에 놀이의 ‘상상적’ 속성이 환기되고 그 가치가 부각된다.
과연 그레이스 은아 킴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정작 행인들은 놀라고 심지어는 무서워하기까지 했던 그 모든 행위가 그저 ‘놀이’였고, ‘재미있자고 한 것’은 아닐 터였다. 작가는 오히려 어린 아이가 수퍼영웅이 되는, 즉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장소로서 놀이터의 기능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자 했던 것이리라.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단어로 ‘공공 장소에서의 개입(intervention in public space)’을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개입(intervention)’의 방식은 누군가를 귀찮게 하고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우리의 환경과 사회를 다른 각도에서 함께 들여다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자 작가 나름의 말을 거는 방식, 대화에 초청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레이스 은아 킴 작가에게 작업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1)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7기 국외입주작가로 9월부터 11월까지 인천에서 작업을 해왔다. 특히 10월 27일에는 여러 명의 공연자들과 함께 인천 중구의 해안동과 신포동 일대에서 ‘상상의 놀이터’라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간단히 소개해 달라.
‘상상의 놀이터’ 는 한밤중 설치 작업과 함께 시작된 예술 실험이었다. 설치 시간으로 한밤중을 택한 것은 도시가 깨어나는 아침에 나의 작업이 자연 현상인 듯이 나타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검은 천을 기존의 구조물들에 걸치거나 감는 방식으로,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풍경 안에 상징적인 방해요소를 그림 그리듯 생성시키고, 그렇게 새로운 통로와 장애물을 만들어내고, 때로는 사람들의 행동 방식이나 공간 안에서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게 하려는 시도였다. 이후 퍼포먼스는 도시에 생기가 돌고 행인들이 서서히 거리에 나오기 시작하는 동틀 무렵에 시작되었다. 도중에 마주치는 행인들도 퍼포먼스의 일원이라고 여겼다. 나의 ‘상상의 행인’역을 수행하는 공연자들 역시 해가 뜰 즈음에 도착하여 행위의 무대였던 길거리에서 시적인 액션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일시적으로 단절시키고 중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불과 몇 시간 뒤에 작업을 멈춰야 했는데, 민원이 많기도 했고, 경찰도 그만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항상 평화적인 실험을 원하지 대중들과 적대적이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도중에 그만두는 것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민원을 제기한 대중들 역시 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공연자였고, 그들도 우리와 함께 무대를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던 간에, 나는 내 작업의 일부로 그들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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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상의(imaginary)’라는 단어와 ‘놀이(play)’라는 단어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가 생각하는 단어들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이매지너리(imaginary)’는 상상 속 공간,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상관없이 마음 속에서만 존재하는 현상을 지시한다. ‘무언가를 상상하였다면, 그 상상은 이후에 현실이 된다’는 개념을 내포하기도 한다. 상상을 통해 경험이 생긴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상상이라는 것도 종국에는 결국 현실의 문제가 된다는 의미이다. 현실은 개인적인 상상과 공동체적인 상상 간의 끊임없는 타협의 결과물이다. 나는 놀이의 이론적 측면에도 관심이 있는데, 놀이가 이성적 구조와 존재 방식의 바깥에 존재하는 한계 공간(liminal space)이라는 점에 특히 주목한다. 놀이터는 다른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존재의 참된 모습(眞相)이 표현의 수단을 찾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상상의’와 ‘놀이터’ 모두 내가 나의 작업에서 일깨우고자 했던 공간의 심리지형적(psychogeographical) 조건을 지시하는데, 이는 공공 공간에 작동하는 매커니즘과 그 속에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구조물과 각종 경계들은 물론, 사람들이 공동체의 풍경을 어떻게 읽고, 겪으며 공유하는지 그 방식을 만들어내는 규칙들을 의심해 보게 해준다. 

3)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신청서상의 계획과 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공공 공간에 개입한다는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공공 공간(public space)’이 작가의 작업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는 어떤 것인가?
나에게 공공 공간이란 ‘상상의 놀이터’ 프로젝트에서와 같이, 유의미하고 사회적이며 예술적인 탐구가 일어날 수 있는 가공하지 않은 무대와도 같다. 말했다시피, 나는 공간과 장소의 심리지형적 측면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풍경과 메커니즘을 만들어 낸 창조자이지만, 거꾸로 이러한 풍경과 메커니즘이 우리 자신 모습을 규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과의 상호 작용은 끊임없이 돌고 돌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는 매우 힘이 든다. 이 순환 고리를 끊고 비판을 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오히려 공공이라는 것을 개인으로서의 자기 안으로 끌어 들여야만, 내면화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공의 풍경은 나의 캔버스가 되고, 개입은 탐구의 영역이며, 사람들은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내 작업의 공동 창조자이다. 나는 대중과의 직접적인 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맥락을 설정하려고 애쓴다. 공공영역에서 벌어진 각각의 프로젝트들은 내가 무엇을 경험했고 배웠는가 하는 점에서,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가라는 점에서 모두 매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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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입(intervention)’이라는 형태가 최근 들어 서서히 현대미술계에서 그 양상을 드러내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단어이자 혼란스러운 개념인 것 같다. 특히 ‘개입’이나 ‘간섭’은 타인의 범위나 권한을 침범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생각하는 ‘개입’의 가치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나 역시 ‘개입’의 부정적 측면을 이해하고 있고, 그간 예술사에게 보아 왔거나 동시대적이라고 하는 예술 행위들이 개입이라는 방식을 선동적이고 아나키스트적 동기에서 사용해 왔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나도 이러한 접근 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항상 나의 방식에 주의하려고 애쓴다. 개입을 통해 기존의 규범들을 의심해 보고자 하는 것은 같지만, 매우 기본적인 상호 존중의 범위 내에서도 비판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아가 개입은 사회적, 예술적 탐구의 방식으로, 일종의 휴머니즘적 행동주의(activism)를 겨냥한다. 나의 개입들은 실재와 픽션, 인지와 미지 사이의 모호한 공간 안에서 대중과 연계하는 것이다. 개입의 공간에서 관람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새로운 의미를 구축하도록 자극 받게 되고, 이러한 지점은 내 작업의 극히 중요한 부분이 된다. 나는 모순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 ‘실제로 참인 것(real truth)’이 발견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실존적 몽유병(existential sleepwalking)’에서 이따금씩 깨어나고, 우리의 환경과 사회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인지할 수 있으려면, 기존의 매커니즘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으려면, 개입을 통한 대화를 이끌어 내야만 한다.

5) ‘상상의 놀이터’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함께할 공연자나 보조인력을 구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알고 있다. 한국과 다른 나라의 시민들이 예술 프로젝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한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한국이 아닌 이른바 ‘서구권’에서 진행했을 때와 특별히 다르다거나 어렵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도시와 도시간의 차이, 문화와 문화 간의 차이는 너무나 복잡하고 미묘해서 왜 서로 다른 현상들이 일어나는지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곳에서나 항상 도전 과제들에 직면하게 되고 이것을 해결하는 것 또한 어렵기 그지없다. 내가 마주치게 되는 예술가들의 유형이나 태도는 항상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뜻이 맞는 협력자들을 만나는 것은 운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프로젝트에 적합한 커뮤니티를 찾는 것은 다른 문제다. 커뮤니티는 멀리 숨어있거나 감지하기 어려울 때가 있기는 하지만 항상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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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천아트플랫폼에는 ‘시각예술’ 분야 입주작가로 들어왔는데, 진행한 프로젝트는 다분히 공연적이다. 작가는 프로젝트를 연출하거나 기획하는, 영화로 치면 감독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예술장르 간의 칸막이를 두자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예술적 아이덴티티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비주얼 아티스트로 시작했고 여전히 시각적인 부분이 내 활동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하는 활동들을 하나의 어떤 것으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공연이나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것 역시 이미지를 사고의 좀더 넓은 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이며, 관람자들과의 대화에 좀더 다가가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퍼포먼스 작업은 처음에는 부분적으로만 사용하였는데, 이미지들이 살아 움직이는 내 머리 속으로 관람자들을 초청하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그러고 나자, 이 세계와 공공 공간이 이미 살아있는 이미지이자 극장이었음을 깨달았고 관심이 더 가기 시작했다. 따라서 퍼포먼스는 일종의 전복적인 이미지 극장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 위에 다른 차원의 것을 평행하게 쌓아 올리는 것, 대화를 통해 실험하는 것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나에게 퍼포머(공연자)들은 공연을 수행하고 극을 재현하는 매개자 그 이상이다. 가끔씩 그들과의 작업들을 ‘퍼포먼스’라는 용어로 정의하는 것에 주저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나의 작업이 좀 더 사회적이면서 살아 있는 이미지 실험으로 여겨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이론적 측면은 항상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의 모습은 이미지의 세계가 결정하고 이미지의 언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에서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이런 점을 잘 의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나의 퍼포머들이 항상 말이 없는(대사가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퍼포머들은 상상의 관중이자 그들 자체로 상징적이며 움직이는 이미지들이다.

7) 태어나고 자란 곳은 미국이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주요 거점은 독일이며, 박사과정 중인 학교는 스위스에 있고, 현재는 인천에 와 있다. 친척들이 있어 한국에도 비교적 자주 오는 것으로 안다. 노마드적 삶은 예술가의 숙명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삶에 대한 어려움은 없는지?
어떤 길을 선택하든 삶은 어렵게 마련이다. 장애물이 있다 할지라도, 삶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나를 매우 풍요롭게 한다. 나는 이러한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나는 세계와 세계 사이를 미끄러지듯, 표류하듯 옮겨 다닐 때에 가장 균형감을 느낀다. 이와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 장소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이나 일정한 패턴과 예측가능성으로 빠져든다는 것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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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곧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기간이 끝난다. 입주 종료 전에 전시를 개최한다고 들었다. 전시의 특징을 간단히 설명해 준다면?
‘상상의 놀이터’를 기록하기 위해 찍어둔 사진과 동영상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영상을 편집하였고, 이에 더해 사운드 설치물을 전시할 예정이다. 기록물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단순한 도큐멘트로서 작품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놀이터’라는 이벤트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 위한 시적이고도 서정적인 방식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보면 좋겠다. 퍼포먼스 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개념적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해당 전시 은 2016.11.19~30까지 인천아트플랫폼 G1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전시 제목은 ‘상상의 놀이터’가 진행되었던 날짜에서 따온 이다. 
    
9) 인천아트플랫폼 이후에 특별한 계획이 있는가?
인천에서의 긴 여행이 끝나면 베를린으로 돌아가 휴식 시간을 가지며 글쓰기 작업을 할 예정이다. 새로운 협업작업과 프로젝트들도 추진 중이다. 특히 내년에 베를린에서 퍼포먼스와 개인전을 진행할 예정이라, 그 또한 준비하려고 한다.
  
10) 예술가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나 지향점이 있다면?
현재 우리는 어둡고도 위태로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끼곤 하는데, 내가 실행에 옮기려는 모든 행동들이 어떻게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 되고, 나는 과연 어떤 리서치를 수행해야 하며, 타인들과 어떤 관계 맺음을 해야 할 것인지를 더욱 깊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술 작업들은 미래의 시간이 도래하여야, 실질적이고 사회적인 콘텍스트가 더욱 넓어져야만 그 존재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또한 세계 여러 도시의 사상가들과의 협업을 통해야만 작업의 가치가 부가된다고 믿는다. 예술은 사회 속에서 긍정적인 움직임을 발동시킬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불가능이 가능이 되는 ‘놀이터’와 같이 말이다. 

글, 번역 / 이영리(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문화성시 인천’의 의미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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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는 인천시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공간으로서 문화도시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그 일환으로 ‘인천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을 수립 중이며, 중간보고는 지난 11월 4일에 진행됐다. 또한 이에 앞서 지난 10월 18일에는 ‘문화성시 인천’이라는 인천시 문화정책의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과 ‘문화성시 인천’은 문화도시라는 궁극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인천시의 의지로 간주된다. 궁극적 가치가 바람직한 문화도시의 최종상태를 의미한다면 현재 인천시가 추진 중인 두 행보는 모두 궁극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바람직한 도구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도구적 가치인 ‘의지’나 ‘능력’은 행동의 최종상태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동기를 부여하며, 이는 곧 ‘보다 나은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궁극적 가치의 최종상태인 문화도시의 실현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인천시 문화정책이 멈춰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동안 많던 적던 문화예술과 관련된 시설들을 위한 투자가 있었고, 다양한 문화예술인을 위한 지원과 문화예술 관련 사업들이 있어왔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성시 인천’의 발표 자체는 문화도시 인천의 꿈을 실현하고 싶은 인천시의 의지의 표명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 하는 것은 현재 인천시가 제시한 도구적 가치로서의 ‘문화성시 인천’의 내용이 궁극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서 적합한지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정책의 실현의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 중에 하나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은 예산이다. 문화도시 종합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중간보고 자료에서 광역시 규모의 전체 예산 대비 문화관련 예산 비율을 살펴보면 광주 2.9%, 대전 2.8%, 부산 2.6% 울산 2.5%이고 대구와 인천은 1.6%로 최하위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문화성시 인천’에서 2020년까지 문화예산 비중을 3%로 끌어올리고, 2017에는 우선 2.2%로 상향조정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 문화도시를 실현하고자 하는 인천시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문화는 의미의 공유와 실천 그리고 이와 연계된 정신적 과정과 반응으로 구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도시는 의미를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문화시민이 필요하다. 그러나 충분한 예산과 문화시설이 주어진다고 인천 시민이 저절로 성숙한 문화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시민을 위해 시민들의 문화예술향유능력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문화예술향유기회를 확대해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인천시 담당 부서와 2개의 문화재단이 인구 300만을 대상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문화도시를 향한 문화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필요조건 중에 하나는 전문인력과 전문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예산이 인천과 마찬가지로 최저 수준인 대구는 현재 5개의 문화재단 설립을 앞두고 있다. 이에 비해 인천은 2개에 그치고 있어 예산이 충분하다고 해도 문화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시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문화성시 인천’에서 기초문화재단의 설립과 지원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2017년에는 2개의 기초단체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향후 2020년까지 7개를 추가로 설립하고 지원하겠다는 것은 문화시민의 문화주권을 위한 정책의 구체적인 실천전략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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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액된 예산과 문화정책의 실효적 거점기관으로서의 기초단체 문화재단 설립과 지원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필요한 총알과 전술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것만으로 문화도시를 위한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궁극적 가치로서의 문화도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문화성시 인천’에서 제시한 문화정책의 지속가능성과 그 정책의 발전가능성 여부는 매우 중요한 평가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2017년 사업으로 제시하고 있는 ‘시민문화헌장’ 제정과 ‘인천문화포럼’ 운영에 대한 제안은 문화도시가 되기 위한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민문화헌장’은 물론 상징적 의미로 그칠 수 있다. 그러나 ‘문화헌장’ 제정은 문화도시를 위한 비전과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제안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철학과 비전의 공유는 예산, 행정, 정책 등 다양한 도구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가장 우선시되며, 이것은 곧 실천전략으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성시 인천’에는 그밖에 많은 궁극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적 가치제안들이 들어 있다. 제시된 도구적 가치들을 모두 수긍하고 찬성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적 가치의 우선순위의 범주에 있어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수긍하기 어려운 도구적 가치제안들은 논의의 과제로 남겨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견은 궁극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요건 중에 하나다. 문화주권을 위한 ‘문화포럼’ 사업이 실천된다면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이견들이 수렴되고, 구체적인 정책실천과정에서 수정되거나 보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김상원 / 인하대학교 문화경영학과 교수




개인의 바람이 하나되어 만들어내는 무대, 빌리지앙 밴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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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쿵. 계산동 연습실로 내려가는 발소리에 맞춰 드럼 소리가 들린다. 빌리지앙 밴드협회는 현재 블리지앙 다이어리, 블랙이글스, 미(美)뺀, 데이데이, 짱가 총 5개의 밴드가 이 공간에서 함께 하고 있다. 인터뷰가 있던 월요일은 빌리지앙 밴드협회의 초기 멤버들이 모인 빌리지앙 다이어리가 연습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들의 땀과 노력이 깃든 공간에서 빌리지앙의 7년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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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협회의 시작
빌리지앙 밴드협회는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에서 출발했다. 지역 구성원의 소모임을 만들던 와중에 음악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게 됐고, 그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빌리지앙이 결성된 것이다. 물론 그 외에 음악을 배우고자 하던 이들도 초기 멤버로 합류하여 함께 하고 있다. 지금처럼 5개의 밴드가 함께 모여 공동체를 이룰 만큼 큰 규모의 구성원은 아니었지만, 음악을 하고자 하는 그 마음 하나로 모여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첫 걸음부터 함께한 멤버들
음악이 좋아서 모인 그들이었지만 마냥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악기를 다룰 줄 알았던 멤버도 있었지만, 초창기 멤버의 다수가 초보자이다 보니 함께 학원에 다니면서 악기를 배웠다고 한다. 최근 빌리지앙의 회장이 된 조현행 씨는 베이스라는 악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당시 학원 실장님의 지속적인 설득으로 지금까지 베이스기타를 담당하고 있다. 드럼 연주자인 황은주 씨는 전문 밴드가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연습을 하다 보니 긴 기간에 비해 엄청난 능숙함이나 급성장을 보이진 않지만, 첫걸음을 같이 뗀 출발선이 같았기에 지금까지 멤버 교체 없이 함께 잘해온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1개의 밴드에서 협회가 되기까지
빌리지앙 밴드협회는 처음에 ‘빌리지앙’이라는 단독 밴드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습할 공간이 없어서 타악기 퍼포먼스 팀 ‘아작’의 공간에서 연습했다고 한다. 그러다 지금의 공간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합주를 하고 그 외의 시간은 비어있는 것이 아까워 다른 많은 사람과 공간을 함께 나누자 싶어 다른 밴드가 들어오게 됐다. 다른 밴드들이 들어오면서 초기 밴드인 빌리지앙은 빌리지앙 1기로 개명했다가 1기를 다이어리라는 언어유희처럼 이름을 바꿔 지금 빌리지앙 다이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美)뺀, 데이데이, 블랙이글스, 짱가가 함께 하게 되면서 ‘빌리지앙 밴드 협회’라는 더 큰 동아리로 거듭났다.

1년에 한 번, 그들의 축제 ‘정기연주회’
빌리지앙 밴드협회는 1년에 한 번씩 정기연주회를 여는데, 이는 그동안의 노력의 결과를 보여주는 축제와 같은 것이다. 정기연주회는 빌리지앙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축제이다. 첫 번째는 개인과 밴드의 실력 발전을 위해 의미가 있다. 연습만 하다 보면 발전성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정기연주회라는 계기를 통해 의무감과 책임감을 가지면서 개인과 밴드가 모두 한 해 동안 연습한 결과를 자신과 관객들에게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두 번째는 화합과 교류의 의미를 담고 있다. 빌리지앙은 여러 밴드가 모인 만큼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잘 어우러지고 교류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해낸 것이 정기연주회이다. 각 밴드에게도 정기연주회는 좋은 기회와 자극이 되며 서로 더 돈독하게 협회를 지켜나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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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연주회로 전달하는 나눔
빌리지앙의 연습실 한 켠에는 기타가 들어있는 상자들이 쌓여있다. 기타는 빌리지앙이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위해서 기증하는 것으로 정기연주회의 수익금 중 일부로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빌리지앙은 이런 기증 외에도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며, 지금도 멤버 개인 각자가 곳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가족들의 변화와 응원
많은 아마추어 문화예술 동아리 멤버들이 그렇듯 조성철(전 회장) 씨는 초기에는 공연에 가족들을 초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먼저 친구들에게 아빠의 밴드 활동을 자랑할 정도로 가족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황은주 씨도 마찬가지. ‘처음에 조금 하다가 그만두겠지’ 시큰둥한 시선에도 꾸준히 밴드 활동을 해 왔다. 윤도현 콘서트도 흥미없어 하던 아이들은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헤 엄마의 밴드 활동도 좋아하게 됐다. 조현행 씨는 오히려 아내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은 케이스다. 음악을 하고 싶어 했지만 잘 알지 못했던 그에게 시인인 아내는 노래를 추천하기도 하고,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따끔한(?) 응원도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아쉬운 점
곳곳에서 많은 축제와 행사가 열리지만, 지역의 문화예술동아리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다. 당장 눈에 보이고 보기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행사가 아닌 진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동아리와 호흡하며 지역의 문화예술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축제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다.

빌리지앙 밴드협회의 미래
빌리지앙 밴드협회를 기반으로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바램이다. 그들 자신을 위한 결정인 동시에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발판이기도 하다. 지금은 모두 각자의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은퇴도 슬슬 생각하고 있는 그들이다. 은퇴했을 때쯤에는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음악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다. 지금도 청소년을 위해 알음알음 음악 교육을 하고 있지만, 은퇴한 후에는 더 적극적으로 본격적으로 음악과 인생을 연결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에게 빌리지앙은 하나의 동아리를 넘어서 어느새 삶의 일부분 그 자체가 되었기에 빌리지앙 안에서 큰 미래를 그리는 것은 낯설지 않은 계획이다.

☞ 빌리지앙 2016년 9월 7회자 정기연주회 영상 보러 가기

공연하며 엔딩을 막바지에 앞두고 있을 때 드럼 스틱을 날려 당황했던 순간, 공연 중 음향기기가 꺼져서 사회자용 마이크로 노래를 하며 무대를 채워야 했던 순간까지… 이 모든 시간을 함께하며 음악이라는 하나의 관심사로 모인 지 어느새 7년, 이제 그들은 1년에 한 번씩 축제를 열며 세상을 향해 더 큰 미래를 그리고 있다. 10년 그리고 20년 뒤에도 열정적으로 음악을 노래하며 인천을 뜨겁게 달굴 그들의 모습이 기대된다.

글 / 시민기자 오지현




뉴스 큐레이션(2016.11.15~2016.12.05)

2017년 최고의 키워드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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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잘 살자는 움직임이 뜨겁다. 촛불 하나는 우습지만 모이면 붉디붉다. 다수에 묻혀 나를 져버리자는 게 아니다. 나도 좋고, 당신도 좋은 게 좋은 거다. 가습기 살균제 파동, 경주 지진 피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 등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늘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함께 잘 살자고 외치면서도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걱정한다. 2017년, 대한민국의 트렌드는 ‘나’다. 부를 좇고, 내 집 마련으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집요함이 아닌 이기적인 휴가로 나만의 만족을 찾고, 간섭받지 않는 삶을 사는 걸 말한다. 회사도, 사회도, 국가도, 내 미래를 책임지지 못한다. 싫은 게 있다면 아웃을 외침. 때때로 주체적인 결별 선언이 필요하다.

관태기에 지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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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에 권태를 느낀다. 혼자가 편하다. 스트레스 받고 눈치 보는 관계를 유지하느니 차라리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선택한다.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희망, 꿈)까지 보이지 않는 힘에 눌려 ‘포기’의 숫자를 늘리고 있는 청춘, 2030을 대변하는 많은 이름들. 관태기는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다. 인간관계에 따라붙는 말말말. ‘스트레스’, ‘힘들다’, ‘어렵다’, 그리고 인맥과 스펙. 에라, 모르겠다. 영화도 혼자 보고(혼영), 밥도 혼자 먹고(혼밥), 술도 혼자 마시자(혼술).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일 뿐이라고? 얼마든지 그렇게 살아도 외롭지 않을 자신 있다고? 우리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그게 거짓 처방일지라도.

마음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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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책방이 다르듯, 약국과 약방은 다르다. 공간과 명칭의 재발견, 혹은 다시보기는 소수의 손길을 거쳐 시대와 세대에 의해 재정의된다. ‘방’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아담하고 따듯한 이미지. 친구가 내민 종이 상자에 ‘마음약방’이라고 적혀 있다. 상자를 열어보니 영화처방, 그림처방, 요리레시피, 산책지도가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작은 거울 하나. 마음을 치유하는 자판기에는 ‘용기 부전, 예민성 경쟁 과다증, 꿈 소멸증, 자존감바닥 증후군, 미래막막증, 월요병 말기, 급성 연애세포 소멸증’ 등의 병명이 적혀 있다. 달랑 500원을 넣고, 처방이 필요한 증상을 누르면 퐁당, 약이 떨어진다. 진짜 그 병을 앓고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병 따위 없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처방약은 곱게 받아든다. 플라시보 효과가 선보이는 ‘신약 월드’가 펼쳐질지도 모르니까. ‘마음약방’은 서울시민청과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 1, 2호점이 있다. 약효과를 본 사람들은 거울을 보면서 조금씩 웃고 있다.

1인 가구 가족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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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 혼밥, 혼행(혼자 여행하기)에 이은 혼찍(혼자 가족사진 찍기)의 탄생. 1인 가구의 주인이 가족사진을 찍으러 온다. 혼자 사는 1인 가구에게 가족은 무슨 가족? 반려 강아지, 고양이, 만화책, 노트북, 핸드폰이 그들과 함께 한다. 가족으로 작업복을 꼽고, 가족으로 이어폰을 가지고 온다. 허공을 데려온 사람도 있다. “여백 같은 시간에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혼자 있는 공간의 압박감이에요. 가족 같은 물건이 많이 있지만 혼자 사는 삶의 무게감을 표현하고 싶어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어요.” 지난여름, 인천발전연구원은 ‘싱글이 행복한 소비 도시 인천 만들기’라는 보고서에서 현재 약 25만명인 인천의 1인 가구수가 2020년에 28만8천만, 2035년에는 40만 가구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15년 후쯤이면 인천지역 전체가구의 30%가 1인 가구일 거라고 한다. 인천시, 인천문화재단 등이 후원하는 ‘1인 가구 가족사진’ 프로젝트는 아트팀 ‘쁘레카’가 서울 합정동에서 진행한다. 12월 22일까지 참여할 수 있다.

이재은(뉴스 큐레이터)




이름만 희미한 연극인 강성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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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단> 임성구 일행이 애관의 전신인 협률사에서 신파 연극을 공연한 것이 45~6년 전의 일이다. 그 후 김도산과 <취성좌(聚星座)>의 김소랑 등이 나타났다. <중략> 임성구의 연극에 심취한 인천 소년 강성렬은 후에 <취성좌> 무대에 나타났고, 인천권번 기생들이 총동원되어 가무기좌에서 공연할 때 무대감독을 맡았다. 그는 기생 일점홍(一点紅)과 눈이 맞아 행방을 감춘 일까지 있었다.”

고일(高逸) 선생의 『인천석금』에 보이는 인천 연극인 강성렬(康成烈 ?∼?)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이 내용 말고는 다른 기록이 없다. 『인천시사』에도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이것이 인천에 남은 거의 유일무이한 기록이 아닐까 싶다.

강성렬은 크게 두드러진 연극 활동을 보이지는 못한 듯하다. 그러나 그는 1924년 <문화극단>이라는 연극 단체의 단장 직함을 가진다. 이 극단에 대해 1923년 10월 31일자 동아일보가 ‘각처에 흩어져 있던 신파연극계의 중요한 배우들로 새로 조직된 단체라고 전한다. 시대일보에도 “문화극단 단장 강성렬 씨의 주선으로” 1924년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인천의 표관(瓢館)에서 “『뉴니뻐-샬』 가주특작(加州特作) 「라주음의 비밀」전 삼십륙 권 영화를 두 번에 난후어 인천에서 공개할 터인데 본보 독자에게는 특히 반액으로 우대할 터이라는 바” 운운하는 기사가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는 1925년 인천에서 미두취인소(米豆取引所)를 배경으로 연쇄극(連鎖劇) 「연(戀의 역(力)」을 촬영한다는 기사가 있을 뿐이다. 명색이 극단 단장이었는데도 개인 기록조차 없는 것은, 그가 한국 연극계의 인텔리도 아니요, 연기의 비중이 컸던 대배우도 아니었던 까닭일 것이다.

인천권번의 유명한 기생 일점홍과 눈이 맞아 행방을 감추기까지 할 정도였던 강성렬. 아무튼 그는 임성구의 연극에 심취한 소년에서 훗날 <문화극단>의 단장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크든 작든 이 나라 무대 예술계에 나름대로 종사했고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인천 연극사에조차 이름 한 자가 올라 있지 못한 것이다.

김윤식/시인,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김윤식의 인천 인물 발굴은 이번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관심 갖고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국 합창의 발원지, 세계로 뻗어 나가다-2016 인천아시안유스콰이어 2016.10.28~29, 신도 및 송도 트라이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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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이라는 근대 역사현장의 중심이었던 인천은 그에 부합하는 ‘최초’의 기록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 종교와 스포츠, 예술의 분야에서 인천은 최초의 기록들이 꽤 많은데, 무엇보다 기독교인들의 시선에서 인천은 적어도 국내에서만큼은 그야말로 ‘성지’와도 같은 역사를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선교사 아펜젤러가 한국으로 들어와 선교를 하면서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로 불리는 내리교회가 1885년 그 역사를 시작했고, 1889년에는 제물포에 성당이 창설돼 1890년대로 넘어가면서 이 성당이 지금의 답동성당으로 자리잡았다. 또 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이자 현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51호이기도 한 내동교회 역시 이들 교회와 비슷한 시기인 1890년에 창설돼 지금까지 그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이러한 개신교와 천주교 등이 들어왔다는 사실에서 매주 주일성수(예배)를 하는 기독교인들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합창’이라는 음악예술의 형태 역시 인천에서 그 발자취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다. 흔히 ‘세계 4대 종교(불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라고 불리는 종교들 가운데서 기독교는 특히 음악에 대한 관심과 경제력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기독교의 교회들은 수많은 클래식 음악가들 및 대중음악 뮤지션들을 키워내는 바탕이 되기도 했는데, 합창 역시 이는 예외가 아니다. 특히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교회들이 예배마다 구성하고 있는 ‘성가대’는 인천뿐만 아니라 한국 합창의 중요한 모태가 되어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내리교회와 여기서 갈라져 나온 율목교회(지금은 없어짐) 등의 교회 성가대들은 어린이부와 성인부 할 것 없이, 전국 합창대회 같은 게 있을 때마다 출전하면 1~2위가 기본이었을 정도로 인천 합창의 자존심을 지켜 오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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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앞서 언급한 율목교회에서도 1960년대 4년여 간 성가대 지휘를 했던 바 있는 윤학원 음악감독은 모두 동갑(1938년)인 나영수(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그의 딸이다), 유병무 등과 함께 한국 합창계의 거목인 동시에, 지금까지도 인천의 합창 인프라를 이끌어오고 있는 인물이다. 34년 간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과 이후 대우합창단 등을 지휘하면서 이들 단체들을 세계적인 위치로 끌어올렸던 그는, 지난 1995년 ‘사실상 해체’ 상태나 다름없었던 인천시립합창단에 부임해 단기간에 이를 정상화시킨 것은 물론, 수년 후에는 인천시합을 세계 유수의 합창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연주단체로 비상시켰다.

그의 부임 후 인천시립합창단은 불과 2년여 만에 벨기에의 IFCM 창립 15주년 기념 세계 합창제와 오스트리아 유로파 칸타타 등을 시작으로 1999년 이어지는 유럽 순회공연, 2005년 미국 4개 도시 순회공연 등은 몇 년 전까지 와해 상태에 있던 합창단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극찬을 받았다. 특히 지난 2009년 ACDA(미국 합창 지휘자 협회)의 초청 공연에서 첫 곡부터 시작해 전 곡 연주에서 기립박수를 받던 순간은 인천 합창계 역사에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꼽힌다. 때문에 지난 2014년 그가 인천시합에서 퇴임을 발표했을 당시 수많은 지역사회와 문화계가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으며, 그중에는 “과연 그만한 인물이 지휘를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까지 했다. 다행히, 후임으로 김종현 지휘자가 부임해 윤 감독의 업적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인천시립합창단은 아직도 순항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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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합창단을 그만 둔 이후로도 자신의 사립 합창단인 ‘윤학원 코랄’과 전국 CTS 어린이 합창단(약 40여 단체)의 기획 등으로 오히려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는 윤 감독은, 최근 인천문화재단과 ‘아시안 유스콰이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오랜만에 인천에서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인천문화재단이 ‘섬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합창을 통해 지역 시민예술활동을 활성화시키자는 의도로 윤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고, 이를 윤 감독이 쾌히 수락하면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인천에서 세계로’의 방향이 아닌, ‘세계에서 인천으로’의 방향을 잡으면서 지역사회에서 적잖이 화제가 됐었다. 그리고 그 방향에 대한 방법은 아시아 각국에 있는 유능한 청년들을 인천으로 불러 모으면서 1차적인 완성을 봤다. 한국을 포함해 인도네시아와 싱가폴,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의 6개국에서 모인 청년들은 외모와 언어, 심지어는 사상도 각기 다른 친구들이었지만, 윤 감독이 추구하는 ‘화합의 정신’ 아래 1주일 간 강도 높은 합숙 훈련을 통해 합창이라는 매개 하에 하나가 됐다.

10월 28일 인천 섬 신도 소재의 세신수련원, 그리고 이튿날인 29일에는 송도국제도시의 트라이볼에서 아시안 유스콰이어는, 불과 1주일 트레이닝을 받은 친구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탄탄한 팀워크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전 인천시합도 선보인 바 있는 독특한 구성의 ‘Missa Brevis(반딧불 미사)’를 비롯해 익살스런 퍼포먼스가 추가된 ‘Go! Classic’, 그리고 윤 감독과 함께 활동하며 이름을 알린 작곡가 우효원 등이 힘을 보태 재탄생된 한국 가곡들의 향연은 10만 원이 넘는 일류 클래식 무대에 버금가는 수준의 결과를 도출해 냈다. 더군다나 전 세계에서 모인 이들 단원들이 프로 뮤지션들이 아닌, 현재 20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라는 점은 윤 감독의 세계구급 기획력과 통솔력 등을 쾌히 입증했다고 봐도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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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은 향후에도 섬 예술사업의 일환으로 이 유스콰이어 프로젝트를 지속할 뜻을 밝히고 있다. 합창을 통해 인천에 평화와 이웃의 개념을 심어주고자 하는 윤 감독의 염원은 개인의 염원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지역의 염원일 수도 있다. 합창이라는 매개로 온 동네가 사이좋게 지내고 좋은 일을 나누겠다면, 생각이 비뚤어진 사람이 아닌 바에야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이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권역에도 그 의도를 알리고 확대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작업이기도 하다.

윤 감독에 대해 한 가지 더 짚고 언급할 것이 있다. 지역사회에서 ‘최고’라 꼽는 그의 업적은 비단 인천시합의 활동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인천 각 동네에 심어 긍정적인 결과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합창의 모토를 통해 동네에 이웃의 개념을 확고히 하고 적극적인 커뮤니티를 조성토록 ‘동 단위 합창단 만들기 운동’ 등의 활동을 이어 오며 사회에 긍정적인 요소를 첨가하고 있다. 또 윤 감독 혹은 그와 함께 하거나 그의 뜻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인천의 합창 인프라는 상당히 좋은 면모를 구축하고 있다. 각 구마다 합창단이 활동을 하고 있고 공무원들이 합창단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는 것은 물론, 민간 합창단체의 활동 역시 비교적 활발한 편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 영역에서 활동 중인 인천남성합창단과 인천장로성가단 등을 비롯해 부평기독남성합창단, 여성문화회관합창단, YMCA합창단과 YWCA합창단, 인천복음선교합창단 등은 인천의 합창계를 주름잡고 있고, 윤 감독이 과거 율목교회에서 지휘를 했을 당시 반주자로 활동했던 유호희 선생을 비롯한 윤 감독의 후배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인천기독선교합창단은 내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창단연주회를 계획하고 있는 등 그야말로 활발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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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감독은 “합창은 혼자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서 다른 사람의 소리를 꼭 들어봐야 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라는 의미를 중요하게 삼게 되는 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합창이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협력적이고, 민주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인천에 ‘이웃사촌’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가는 지금, 합창을 통한 ‘이웃사촌’의 복구는 우리 인천에 꼭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작업이 인천은 물론 타 지역 그리고 타 국가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길 바라며, 그러한 지역 혹은 국가 간 교류를 통해 인천이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자랑하길 바란다. 인천문화재단의 이번 ‘아시안 유스콰이어’ 프로젝트는 바로 그 부분에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글, 사진 / 배영수 (인천in 기자, 음악칼럼니스트)




우리의 숨결로 만드는 우리학교-주안초등학교 이전 공사장 가림막 공공미술 프로젝트(11.1)

0111월의 첫날 아침, 갑자기 불어 닥친 추위에 호호 손을 불다가 겨울이 왔음을 실감했다. 하얀 입김이 눈앞에 선명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주안초등학교에서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 캔버스 위에 입김을 불었다. 얼어붙은 손을 녹이던 입김은 캔버스 위에서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재학생 720명이 참여한 공공미술 작품 ‘나비’가 완성된 것이다. 1934년에 개교하여 올해 82년이 된 주안초등학교는 도시개발 사업으로 인해 인천기계공고 옆으로 이전 중이다. 원래 주안초가 위치했던 곳에는 새로 의료복합단지가 자리하게 된다. 정들었던 학교와 작별하고 낯선 곳에 새로 적응해야 할 아이들을 우려한 시행사 (주)SMC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제안했고, 채은영 큐레이터와 최선 작가의 기획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 ‘나비’가 진행되었다.

“8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가 이전하는데 보통의 도시재개발과 같이 공사를 하고 이사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보통의 공사장 가림막은 기능적이고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에 다른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인천아트플랫폼에 함께 입주해 있는 최선 작가가 사람의 숨을 활용해서 작업했던 것이 새로 들어오는 의료복합단지와도 의미가 통한다고 생각했어요. 특별한 기교 없이 물감을 부는 단순한 작업이기에 전교생이 모두 참여할 수 있기도 했지요.” (채은영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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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작가가 ‘나비’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2011년, 일본이었다. 당시 동일본 대지진으로 고통을 겪은 사람들과 함께,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그림을 통해 아픔을 승화했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떨어뜨리고, 한 사람이 물감을 불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물감을 부는 형식이었다. 사람들의 숨결은 이어져 역사를 만들었다. 2014년 안산의 한 시장에서도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안산은 세월호 비극으로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외국인 노동자 또한 많은 도시였다. 남녀노소, 국적, 출신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함께 그림을 통해 생명을 표현했다. 지나가다 그림을 본 한 행인이 입김으로 번진 물감의 모습이 흡사 나비 같다고 말한 것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되었다.

이번 주안초등학교의 ‘나비’ 프로젝트는 새로 들어오는 의료복합단지가 사람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는 의미와, 82년 역사를 가진 학교의 새로운 터전에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함께 숨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를 함께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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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그림을 그리는 능력의 편차가 크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다가 그게 ‘숨’이라는 것을 떠올렸어요. 숨 쉬는 것을 이용하면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더군다나 숨결은 성별, 국적, 나이 등 그 어떤 것도 상관없이 모두가 똑같잖아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숨결이 한데 섞여 어우러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최선 작가)

‘나비’ 프로젝트에 주안초등학교의 전교생 720명 모두가 참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인천아트플랫폼에 최선 작가와 함께 입주해있는 작가들의 도움이 큰 몫을 했다. 김푸르나, 손승범, 윤대희, 조원득, 최현석 작가가 직접 교실을 방문하여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도왔다. 참여 학생들의 연령대가 낮아 자칫 진행이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주안초등학교 교사들의 협조 덕분에 프로젝트가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김푸르나 작가와 주안초의 이혜경 교사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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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아이들이 전부 필통을 꺼내 연필을 들고 있었어요. 손으로 그리는 그림만이 그림이라고 배워왔던 것 같아요. 손이 아닌 입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재미있어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만드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각자 자기가 만든 모양에 대해 설명을 주고받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김푸르나 작가)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그램이 있기는 했지만 직접 작가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평소에 미술 수업을 할 때에 비해 더 좋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직접 작가들을 만나는 기회가 생겨 좋았어요. 저학년은 활동 중심의 수업이 많은데, 고학년으로 갈수록 활동할 기회가 줄어들어요. 아이들이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습니다.” (주안초 이혜경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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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숨결이 만든 공공미술 작품은 주안초등학교 신축부지의 공사장 가림막으로 이용될 예정이다. 삭막한 도시의 공사장이 아이들의 숨결과 온기로 채워지는 것이다. 비록 학교는 80여 년 지켜온 자리를 떠나지만, 활기를 잃은 구도심은 도시재생 사업과 예술작품으로 인해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글 / 시민기자 김진아




직원들이 다니기 좋은 회사, 지역과 함께하는 회사를 만듭니다 – 평산기공볼트사 서임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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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은 아트레인 기부금사업을 통해 지역 내·외 기관/기업과 협력하는 다양한 사업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 중 오는 12월 그 결과를 선보이게 될 ‘PPP-플랫폼 퍼블릭 아트 프로덕션(Platform Public art Production)’은 인천의 여러 중견기업이 동참함으로써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PPP프로젝트는 인천아트플랫폼의 야외 공간 곳곳에 미술의 공공성과 대중성, 지역의 특징을 담은 예술작품 창작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오늘은 이 뜻 깊은 사업에 큰 힘이 되어 주신 평산기공볼트사의 서임순 대표님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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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산볼트기공사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우리 회사는 볼트, 너트, 기계 부품을 전문으로 가공하는 업체로 1978년에 인천 화평동에서 시작한 작은 회사입니다. 회사를 처음 설립했을 당시에는 남편이 대표로 운영을 시작했고, 저는 생산품인 볼트와 너트를 포장하고 경리를 보는 등 회사의 내부 업무를 맡아서 운영했어요. 그러다 1998년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제가 경영을 맡게 되었고, 1999년 1월에 사업자를 새로 내게 되면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Q.
대표님께서 직접 회사를 운영하신 것만도 벌써 17년이 되었네요.

A. 처음엔 굉장히 막막했어요. 회사를 계속 할지 아니면 정리해야 할지 상의할 사람도 없었고, 경영 전반의 모든 것들이 낯설어서 힘들었죠. 오죽하면 공장 건물과 연결된 가정집에서 살았는데, 셔터문을 내리고 나면 회사 밖으로 나올 줄도 몰랐으니까요. 그만큼 남편이 경영하던 회사의 일들은 제가 모르는 영역이었고, 이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도 가족같이 일하던 직원들의 격려를 바탕으로 함께 고민하면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남편이 떠난 후 2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있었고, 가족을 잃은 슬픔과 상실감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죠. 그래도 그 고비를 이겨낼 수 있게 함께 지켜준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04  
Q.아무래도 업종의 성격이나 특성을 보면, 여성 경영인으로 어려움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실제로 경영 전반에 있어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A. 우리 회사가 속한 철강, 제조 생산 기반의 산업군은 전반적으로 남성이 중심이긴 해요. 어느 산업군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벽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렇지만 그만큼 다른 부분을 통해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제일은 절대적으로 지키자는 원칙이라던가, 거래처간의 약속을 반드시 이행한다 등 저만의 경영 마인드는 고수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한번 만들어진 사업의 인연은 지키려고 노력했고 그 방침은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Q. 작지만 알찬 기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회사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특별히 생각하고 계시는 경영 철학이 있으신가요?
A. 돌아가신 남편이 추구하던 경영 철학이 ‘직원들이 다니기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제가 운영을 이어가면서도 변함없이 지키고 싶은 목표에요. 그래서 30여명 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의 사업장이지만 기본적으로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이 많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함께하고 있는 분들도 있고, 채용 시에도 특별히 나이를 제한하지도 않아요. 본인이 일을 할 수 있고, 하고자 한다면 이를 지지하고 도우려고 하죠. 비록 크지 않은 회사지만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회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05   
Q.
1978년 당시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때의 화평동은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A. 그 당시 회사는 지금의 위치는 아니었고, 바로 인근이었어요. 그때는 1층은 사업장으로 쓰고, 2층을 살림집으로 사용하며 살았어요. 화평동과 동인천역 일대도 지금과 매우 달랐죠. 일단 이 앞에 화도진로 자체가 이렇게 크게 정리되기 전이었으니까요. 지금이야 도로정비가 돼서 4차선 길이 있지만 그때는 이런 길이 없었거든요. 지금 사옥이 위치한 자리도 예전에는 한옥들이 있던 곳이에요.

Q. 인천에서 사업을 이끌어오신지 어느덧 40년이 되어가는데, 특별히 애착이 가는 곳이 있으신가요?
A. 추억이라고 말하기는 그렇고, 슬픔과 아픔 모두가 있는 곳이 여기 화평동 사무실이에요. 대표였던 남편이 갑작스럽게 몸이 나빠지면서 떠났지만, 그 전까지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았던 곳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이 사무실을 더 떠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Q.
아트레인에 관한 질문을 드려보고 싶은데요. 평산기공의 생산자재를 포함해 대표님의 아트레인 동참이 지역 문화예술을 위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인천문화재단 아트레인에 동참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사실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던 때는 생활이 바빴고, 문화예술을 편히 즐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지인이 동양화를 배운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남편과 함께 방문해서 그 모습을 본 적이 있었죠. 그때 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곁을 떠난 후, 우울감, 상실감이 커지면서 집중할 시간이 필요해졌고, 인근에 있던 문화센터에서 동양화 공부를 접하게 됐어요.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것과 동시에 그림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붓 끝에만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문화예술이라는 것을 접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예술을 통한 심리적 치유, 안정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셈이죠. 그 시절에 알게 된 분이 지금의 인천아트플랫폼 최병국 관장님인데, 그 인연으로 아트레인에도 함께 동참하게 되었죠.

03 
Q.기업이 문화예술을 후원하고 기부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특히 평산기공의 경우, 생산하는 자재를 통해 현물 기부도 함께 해 주셨는데요. 문화예술을 위한 기업의 후원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하는 지점이 있으신가요?
A. 우리 회사는 철을 만지고 부품을 만들어내는 곳이에요. 이 쇳덩이같은 재료들이 어떻게 문화예술로 활용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사실 이런 생산품들은 원하는 곳이 있다면 그 의도와 방향에 맞게 언제든지 제공할 수 있어요. 우리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 인천의 문화예술을 위해 쓰일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재료로 활용된 것처럼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함께 동참하고 싶어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고요. 
 
Q.기본적으로 사회공헌이나 기부를 지속해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부에 대한 철학이나 신념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A. 원래 어디에 알리면서 후원을 하는 성격은 아닌데, 돌아보니 몇 군데 함께 뜻을 보태고 있는 곳은 있습니다. 2009년에 제가 건강이 나빠지면서 쓰러진 적이 있었어요. 수술을 하고 꽤 긴 시간 치료를 하면서 건강을 되찾았는데 그때 입원했던 병원에 5천만원을 기부했었죠. 제 건강을 되찾은 곳이었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건강해질 수 있도록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이후에도 국제난민을 돕는 구호단체에 기부를 하기도 했었는데, 계속해서 기부를 하다보니까 나만의 기부철학 또는 기부의 방향이 생기더라고요. 내 주변의 사람들, 내가 사는 곳의 변화를 위한 곳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 싶어요. 그래서 사무실이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몇몇 단체들을 후원하고 있고,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조용히 도우려고 해요. 인천문화재단을 통한 지역의 문화예술 후원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Q.마지막으로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인천의 문화예술이 어떻게 성장했으면 하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1970년대부터 인천에 있었지만, 인천에는 문화예술 공간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도시는 커져가고 옛날과 다르게 점점 빠르게 변해 가는데, 성장하는 속도만큼 문화적 기반이 함께 따라가 주지 못 하는 게 늘 아쉽다고 느껴졌습니다. 하물며 인천에는 아직 시립미술관도 없잖아요. 인천에 오면 꼭 가봐야 하고, 누군가를 데리고 가고 싶은 예술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부분이 부족한 것 같아요. 굉장히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일이고 문화재단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작은 기부들이 함께 모여서 인천의 문화예술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06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평산기공볼트사 서임순 대표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과 지지에 힘입어 인천문화재단 아트레인도 보다 열심히 나아가겠습니다.


6인천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아트레인의 탑승자를 찾습니다. 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 기부 캠페인 아트레인은 인천 시민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개인 혹은 법인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기업 후원의 경우, 기업의 경영철학과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문화예술로 함께 만들어드립니다.
아트레인 참여 문의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032-455-7114, artrain@ifac.or.kr

인터뷰 정리 / 주현수(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인천 탈출 실패기(失敗記)

00

 

01

9월, 인천문화통신 3.0 취재를 위해 방문한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관람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스무 살 다섯 친구가 정처 없이 떠돌다 인천을 떠나 흩어지는 이야기다. 개봉한 지 15년이나 지났다는 영화 속 친구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나 다른 점이라면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에 겪은 일들을 우리는 대학을 졸업한 스물네 살에 겪고 있다는 것. 우리는 이십대 초반 반짝이는 네 해와 수천만 원의 학자금을 날렸다는 것. 15년 전의 그들과 현재의 우리는 모두 ‘인턴 탈출’과 ‘인천 탈출’을 꿈꾸고 있다.
 03

열여섯, 반기문 키즈라 불렸고, 유엔사무총장과 외교관이 되겠다며 국제고에 입학했다. ‘인천에서 배워서 세계에 펼치자‘는 슬로건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인천에서 배웠지만 인천을 배우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인천은 그저 떠나야할 곳, 머물러서는 안 될 곳이었다. 모의고사 배치표에 줄을 그어 나온 대학 이름에 ‘ㅇ’자만 보여도 기함을 했다.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로, 해외로 떠났다. 하지만 열아홉의 나는 수능을 망쳤고, 인천 탈출에 실패했다.

스무 살, 인천이 창피했다. 서울 사는 친척언니는 매주 보러 간다던 음악캠프를 수년에 한 번 공개방송 때나 볼 수 있었고, 지방 순회를 다니는 유명 가수의 콘서트나 연극과 뮤지컬 공연, 대형 전시도 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로 인천에는 오지 않았다. 서울과 가깝다는 말은 그 사람들 생각이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두 시간씩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대학로를 찾아야 하는 것도 싫었다. 인천에는 예술이, 문화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천 사람들은 모두 그저 인천 탈출에 실패했을 뿐, 서울로 가려다 삐끗해서 잠시 인천에 머물 뿐, 인천을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물하나, 적성에도 맞지 않는 사범대학을 다니다 한눈을 판 곳은 인천의 문화예술판이었다. 이 바닥에서 처음 만난 프로그램은 ‘인천왈츠’. 인천에 살고, 인천에서 공부하고, 인천을 오가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쏟아냈다. 내가 타고 다니던 버스, 우리 집 앞 소래포구, 놀러 다니던 차이나타운, 우리의 이야기가 한 편의 뮤지컬이 되었다. 바삐 살며 흘려보냈던 생각들, 일상을 함께 모여 나누니 이야기가 되고 작품이 되었다. 그곳에 인천 사람들이 있었다. 인천의 이야기가 있었고, 인천의 문화가 있었다. 나는 비로소 인천에 마음을 열었고, 인천을 살기 시작했다.
 02

스물넷, 신포동의 임시공간에 인턴으로 출근한 지 세 달. 늦잠을 잤고, 택시를 탔다. 개항장 대표거리로, 경리단길, 가로수길처럼 만들어진다던 ‘신포로 27번길’을 기사 아저씨는 알아듣지 못했다. “홍예문에서 내려오는 길이요.”하니, 아저씨는 그제야 “아, 거기. 내가 잘 알지. 송학동이 내 고향이거든.”하며 핸들을 꼭 붙든다. 그리고 옛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지금은 근대건축전시관이 된 일본 제18은행에 근무하던 아버지, 아버지를 따라 개항장 일대를 누비던 아저씨의 유년기. 올해 인천왈츠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개항장 일대의 역사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는 송학동 말고 선학동이 고향이에요.”하자 또 다른 이야기가 졸졸졸 흘러나온다. 선학동이 버스 종점이었다는 이야기, 송도 신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동막, 동춘, 연수동까지도 모두 바다였다는 이야기. 출근길 우연히 잡아 탄 택시에서, 우리 세대에 넘어오지 못하고 묻혀버릴 뻔 했던 인천의 이야기들을 주웠다.

인천의 문화와 미래는 인천을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인천에 정주하는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 그들이 사는 모습이 바로 인천의 문화이고 역사이다. 흘러가고 사라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주워 담고 이어가는 것은 앞으로 인천을 살아갈 이들, 바로 청년들의 몫이다. 청년들에게 인천 탈출을 종용할 것이 아니라, 인천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인천에 살며 인천을 느끼고 인천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 나라 청년들에게 미래가 없다지만 문화예술계의 청년들은 더욱 그렇다. 인천 문화예술계의 청년은 더더욱 그렇다. 인천을 떠나는 문화예술계의 수많은 청년들은 어쩌면 인턴 탈출을 위해 인천을 떠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학 마지막 학기, 인천에서 먹고 살고 활동하면서 졸업은 해보겠다고 취업계를 내기 위해 방문한 교수님 사무실에서, 4대 보험 가입을 안 했으면 취업자로 인정이 안 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들으며 하고 싶던 말을 반쯤 삼켰다. 이 바닥에 정규직이 얼마나 있다구요. 4대 보험비 까고 나면 우리는 뭐 먹고 살아요? 거기 쓰여 있는 임금 250만원, 한 달이 아니라 네 달치예요.

인천의 문화예술판에 기웃거린 지 3년, 임용고시 공부를 포기하고 이 바닥에 주저앉겠다며 집을 뛰쳐나온 지도 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바닥의 선배들은 내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인천을 떠날 것을 종용한다. 이해한다. 그들이 겪어온 과거도 순탄치 않았으며, 지금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그보다도 더 암담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가 탈출해야 하는 건 인천이 아니라 인턴이다. 스물넷. 나는 여전히 인턴 탈출을 꿈꿀지는 몰라도 더 이상 인천 탈출을 꿈꾸지는 않는다. 다만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인천을 오가는, 인천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이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인천의 사람들을 만나고 인천의 이야기를 듣고 남기고 싶다. 함께 인천을 이야기 할 청년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인천의 청년들이 모여 떠들 시간과 공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인천 탈출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인천을 살고 있다고.

김진아 / 대학생,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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