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3: 젠트리피케이션을 마주하며.
‘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경리단길의 유명한 쉐프가 동인천에 새로운 가게들의 문을 열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재밌었던 건 인터넷 상에서 플랫폼의 종류에 따라서 반응이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었습니다. 많은 블로거들은 가게를 방문하고 동인천 구도심에 젊은이들이 찾을 새로운 공간이 생겨난 것에 기뻐하고 만족해 했습니다. 반면 SNS의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가게들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동인천이 거대한 바람에 휩쓸릴 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최근 몇 년간 도시와 부동산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인 젠트리피케이션 말이죠.
젠트리피케이션은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영국의 하층계급 주거지가 재개발을 통해 중산층 주거지로 변화되면서, 중산층이 저소득층을 특정지역에서 축출하는 현상을 정의한 단어였습니다. 이 단어는 이후 구미의 대도시, 아시아의 신흥 대도시들에서 유사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활용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폭넓게 의미의 확장이 일어났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로 주거보다는 상업시설, 특히 소규모의 근린생활시설에서 벌어지는 ‘상업 젠트리피케이션’과 ‘소매업 젠트리피케이션’, 언론 매체와 SNS를 통해 특정 지역이 떠오르는 ‘매스미디어 젠트리피케이션’,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매장이 대거 몰려들며 이루어지는 ‘프랜차이즈 젠트리피케이션’, 여행명소화 되면서 지역 상권의 성격이 변화하는 ‘투어리즘 젠트리피케이션’, 거주나 영업의 목적보다는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 목적으로 자본이 유입되며 이루어지는 ‘부동산자산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정의되는 식입니다.
이렇게 확장된 의미 속에서, 최근의 우리나라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대체로 주거지역의 급격한 상업화와, 이 과정에서 원주민과 임대상인들의 축출과정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듯 합니다.
‘원주민과 상인들의 축출’이 문제가 되어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슈가 되었다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도시 개발의 역사에서, 원주민 축출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느 아시아의 신흥 국가들처럼 한국도 급작스럽게 몰려든 사람들의 도시를 재구조화 하면서 도시를 더 부유한 사람들의 공간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달동네 재개발, 광주대단지 사건, 뉴타운 사업에 이르기까지 항상 기존 거주지의 전면적인 철거와 원주민의 축출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빈 공간은 아파트와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원주민보다 더 부유한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바로 오늘까지도, 우리나라의 도시공간은 훌륭한 상품이며 무엇보다 안정적인 자산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앞장서서 경제성장을 위해 이것을 종용해 왔습니다.
세입자와 임차인 보호의 관점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은 갑작스럽게 생겨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010년 대에 시행된 뉴타운 사업에서도 사업지의 세입자들이 사업 진행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대부분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상인들의 임대보호를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된 것은 2001년에 일이지만, 여전히 1991년 제정된 일본의 차지차가법에 비해 임차인 보호의 열악함이 지적되며 끊임없이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도시 개발은 지역의 물리적 기억을 지우고 사람들을 축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은 좌측부터 1985년 옥수동 재개발 전경, 2000년대 후반 은평 뉴타운과 진관동 구도심, 2017년 아현 뉴타운 사업지의 염리동.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시사in, jtbc 한끼줍쇼 방송 화면)
그럼에도 최근 급작스럽게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슈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동산 투자가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잉여자본이 건설산업과 부동산으로 투자되어 순환된다는 데이비드 하비의 이론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부동산은 국가의 용인과 비호 아래 가장 강력한 자산 취급을 받았습니다. 땅을 사고, 아파트를 사던 것이 이제는 골목의 근린상업시설과 다세대 주택이 대상이 된 것이지요. 평균 수명의 증가는 은퇴 이후 30년의 삶에 대한 안정을 소구하게 하고, 그 결론으로 임대 수익과 부동산 투자를 얻어낸 베이비부머 이후의 세대들에게 이러한 부동산 투자는 꼭 거대 자산가가 아니어도 선택해야 할 미래가 되었습니다. 2016년 7월 26일 한겨레 신문의 음성원 기자의 기사 “’58년 개띠’의 상가 사냥,’94년 개띠’를 몰아내다”의 데이터 분석에 참여한 신수현(서울시 통계데이터분석팀)씨의 이후 뒷이야기는 더욱 명료하게 이러한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시 분석 대상인 건물 소유주 중에 해당 지역에 여러 건물을 소유한 경우는 거의 드물었습니다. 연남동에 투자한 사람들이 꼭 거대 자산가는 아닐 겁니다.”
두 번째는 자영업자의 증가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속된 불황, 정년단축과 조기퇴직, 청년실업 등의 문제는 이들을 자영업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임대상인들의 문제가 표면적으로 더 많이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비단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 산업의 문제점이 꾸준히 지적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공정함’에 대한 사회적 요구의 증가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원주민과 이주민의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의 시작은 도시공간 속에서 드러나는 ‘공정함’에 대한 사회의 요구의 한 모습일 것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는 도시 공간에 대한 무수한 분석과 대안이 존재합니다. 도시계획, 법과 제도, 인식개선 등 무수한 해법들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 제시됩니다. 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그래서 도시 공간을 상품으로만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남으로써 사람들을 축출하고 배제해왔던 오랜 방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Naked City(‘무방비 도시’로 2015년 번역, 출간)’라는 책으로 유명한 도시사회학자 샤론 주킨은 도시의 일종의 연속성으로서 ‘정통성(authenticity)’이라는 개념을 주장하면서, 이 개념에 “도시에서 살고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속적인 집을 만들어주는 문화적 권리”의 의미를 덧붙였습니다. 어떤 지역이 갖는 정통성은 그 지역이 오랜 시간 축적해온 것들입니다. 지역의 사람, 공간, 행위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독특한 정통성은 도시 속에서 그 지역만의 매력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 매력이 어떤 계기로 널리 알려졌을 때, 그 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낯선 느낌의 상점과 음식점, 공연장과 전시공간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서울에선 이런 지역들이 무수히 명멸했습니다. 홍대, 이태원, 성수동, 연남동, 상수와 망원동 등. 인천도 북성동, 신포동, 배다리와 같은 지역들이 정통성을 가진 공간으로 부각되어 왔고, 최근에는 십정동과 같은 곳에서도 공장 지역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상업공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역의 정통성에 매료되어 자리잡는 새로운 가게와 공연장들이 원주민들의 주거지와 세탁소, 철물점을 대신할 때, 그리고 그렇게 ‘뜬’ 지역의 임대료가 상승해 새로운 가게와 공연장이 떠나고 흔한 프랜차이즈와 대기업의 음식점들로 변해갈 때 우리는 이 지역의 생명력을 고민해야 합니다. 모두가 이런 변화와 더불어 낡은 건물들을 대신해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지역의 발전이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이렇게 변해버린 공간이 예전의 매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여느 상업지역처럼 흔한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하비는 이것을 자본이 도시를 ‘균일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어느 도시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이유가 자본의 힘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도시 안의 여러 지역들이 ‘정통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역의 사람, 공동체의 보호가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샤론 주킨의 말처럼 “정통성의 ‘외관’과 ‘체험’을 보존”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말 것입니다. 누군가 떠나고,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재개발이든, 젠트리피케이션이든, 도시재생이든, 지금까지 도시를 재구조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축출의 방식에서는 반드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최근 다양하게 등장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해법들이 임대료와 지가의 최대한 느린 상승과 임차 상인들의 조금 더 긴 계약기간 보호를 유도하는 것, 지역 주민과 이해관계자들의 공동체 형성 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들에 대해 그러했지만, 특히 도시 공간은 ‘부동산’으로 불리며 자산과 상품의 면모 만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더 높은 지가, 더 많은 임대료가 도시 공간 활용의 절대선처럼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꾸준히 도시 공간이 생명력을 가지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공공도 지금까지의 도시 개발에 대한 방관과 동조에서 벗어나서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연속성과 지역의 정통성을 지켜가는 방법을 마련하길 기대해 봅니다.
글/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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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주킨. 민유기 역(2015). 무방비 도시. 국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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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의 상가 사냥, ‘94년 개띠’를 몰아내다”, 한겨례신문, 2016.7.26
“뉴욕, 런던, 서울 거리 비슷해져…젠트리피케이션 영향”, 한국일보, 2016.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