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형 미래유산, 건물에 담긴 기억을 보존하자

제 58회 목요문화포럼 ‘인천 근대건축물 – 개발과 보존의 경계에서’

지난 6월,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 주차장 건립을 이유로 옛 애경사 건물이 철거되었다. 중구의 기습적인 건물 철거를 두고, 많은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나서며 역사를 담은 역사문화유산이 공공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송월동의 주민들은 낡은 건물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문제의 해결과 생활환경의 개선을 위해 건물을 허물고 주차장을 설립해야한다며 팽팽하게 맞섰다.

근대 문화가 처음 유입되던 개항장 일대. 그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근대 건축물이 많지만, 사실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만 중요한 것으로 인식할 뿐, 일반 시민들에게는 그저 오래된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근대건축물을 두고 개항장 일대에서 벌어진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지난 7월 27일 인천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에서 ‘인천 근대건축물 – 개발과 보존의 경계에서’를 주제로 제 58회 목요문화포럼이 열렸다.

목요문화포럼

첫 번째 순서를 맡은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컴팩스마트시티부장은 ‘인천 근대건축물 보호, 그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한 발제를 진행했다. 배성수 부장은 발제에 앞서 근대건축물 보호 논의의 시발점이 된 옛 애경사 건물에 담긴 역사를 짚으면서,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근대건축물에 대한 연구가 미비했던 점과 문화재 보호의 의무가 있는 공공에 의해 근대건축물이 파괴된 점을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인천의 근대건축물이 소실되어 온 양상을 시대별로 되짚었다. 폭격이나 화재로 소멸되던 근대건축물들은 70년대 재건축을 이유로 철거되기 시작되었다. 시립 수영장 건립을 위해 철거한 아사히 양조장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호텔인 대불호텔 등은 모두 근대건축물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기에 철거되었다. 1980년대 이후 근대건축물의 가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며 개별 근대건축물의 소멸은 감소했지만, 대규모 공영 개발로 인해 근대건축물 밀집공간 자체가 소멸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신흥동의 정미공장군과 용현동의 부영주택 등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주차장 건립을 위해 철거된 신포동의 동방극장과 아사히양조장 별관건물 등 공공시설 건립을 위해 철거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천근대건축물 보호, 그 회고와 전망, 배성수

최근 수인선 개통으로 신포역 근처 옛 인천세관 창고 역시 철거될 위기에 있었지만 많은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인천세관 창고 복원의 경우 건물의 역사, 문화적 가치에 대해 연구하고 실측하여 복원할 기회가 있었지만, 철거된 대부분의 근대건축물은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 한 채로 소실되었다. 건물과 함께, 건물에 얽힌 오랜 역사와 문화 자체가 소실된 것이다.

배성수 부장은 이어 ‘개발이나 활용을 못하게 묶어두는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었지만 지나친 규제로 건물주가 금전적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보호보다 활용에 중점을 둔 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되었지만 2013년 이후 인천에서는 등록문화재 지정이 전무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대건축물 보호를 법에만 기대기보다, 지역의 건축사 전문가를 길러내야 하며, 개별 건물이 아닌 공간이 가지는 장소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의 민현석 연구위원은 서울의 미래유산 보전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미래유산을 ‘컵이 아니라 컵에 담긴 물을 보존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며, 유산 자체를 보존하는 것보다는 문화유산에 담긴 기억을 미래로 전송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기존의 문화재보호법이나 건축자산법 등은 전문가적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기에 시민들이 공감하기 어려웠다. 미래유산은 전문가의 입장에서 근대유산이 어떠한 가치를 가진다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꺼낸 근대유산에 대한 기억에서 보전가치를 파악하고 그 가치를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근현대 서울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서울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억의 대상을 미래유산으로 선정한다.

서울시 미래유산 보전 프레임워크, 민현석

전문가의 입장에서 문화재를 지정하고, 법에 따라 재산권이 침해되던 기존 문화재보호법의 방식과는 다르게, 시민 스스로 ‘내가 가진 건물이 왜 문화재인지, 보존해야 하는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지’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로 미래유산이다. 민현석 연구원은 ‘보존보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미래유산에 대해 보전방식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하지만, 가치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저변에 깔리게 되면 시민 스스로 보전하고 관리하려는 모습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부에 이어진 플로어 토론에서는 다양한 질문과 의견이 오갔다. 얼마 전 배다리 양조장 건물에 위치한 문화예술공간 스페이스빔이 퇴거 위기에 처했을 당시 시민자산화 운동을 함께 했던 오석근 작가는 ‘가치를 공유하고 인식을 확장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자본은 그것을 넘은 빠른 속도로 들어오고 있다. 자본이 잠식하는 속도를 행정이 맞추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들이 많다. 시민자산화를 논의할 때 단순히 시민이 건물을 가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건물이 가진 가치가 그대로 보존되는, 지속가능한 공간으로서 보존된 가치들이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하며 ‘34년 동안 공연을 지속해온 버텀라인 역시 많은 시민들이 기억을 공유하는 공간이지만, 건물주는 계속해서 월세를 올리려고 하고 수익은 그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관심을 가지고 대응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를 맡은 김락기 인천문화재단 강화역사문화센터장 역시 ‘서울의 미래유산을 그대로 따라하기보다는, 인천이 서울과 다르게 가지고 있는 지역적 맥락을 고려하여 인천형 미래유산을 만들어야한다는 필요성이 느껴진다.’고 말하며 ‘모든 기억들을 남길 수 없듯이 모든 근대건축물을 보존하기는 어렵다. 어떤 것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합리적인 고민이 필요한 만큼 논의의 장이 계속해서 마련되어야 한다. 애경사 철거로 인해 촉발된 근대건축물 보호에 대한 논의가 사그라들지 않도록 재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글 /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