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예술가 부엌

마약 하는 여자
‘쏴아악’ 수돗물이 쏟아지고 ‘탁!탁!탁!’ 마늘이 잘린다. 그릇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고 파리는 ‘윙~윙’거리며 자꾸 몸에 달라붙는다. 싱크대 구석에는 비눗물과 식초를 담은 컵이 놓여있다. 영국 작가, 알렉스가 야심 차게 만든 ‘파리 잡는 컵’을 들여다보니 파리 몇 마리가 둥둥 떠 있다. 흠, 효과는 있지만, 부엌에서 익사한 파리를 보자니 영 찜찜하다. 냉장고를 여니 고약스러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누군가 먹다 만 파스타를 그대로 넣어두었다. 벽지에 바르는 풀이 바짝 말라붙은 것 같다. 썩은 양파, 끈적끈적한 파프리카도 있다. 도대체 누구 거야!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인상을 구기며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냉장고가 더럽건 말건 누군가는 부엌 한쪽에선 막 요리한 노란 커리를 먹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슈퍼에서 사 온 독일 소시지가 크기만 하지 짜다고 불평한다. ZK/U 베를린 레지던시 부엌은 지나치게 활기차다. 눈을 감고 여기서 나는 온갖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엉뚱하게도 내가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기분이다. 머나먼 이곳에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란 느낌 때문인가? 이래저래 애증이 엇갈리는 레지던시 부엌에서 나도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고 미숫가루를 꺼내 든다.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물과 섞어 미숫가루를 타는데, 옆에서 토마토를 자르던 아일랜드 작가, 레베카가 자꾸 힐끔거린다. 그녀에게 물었다. 한번 마셔볼래?

“정말? 고마워! 근데 이게 뭐야? 무슨 마약처럼 보이는데… 하하, 영화에서 많이 봤잖아? 지퍼 백에 담긴 밀수품 가루…”

풉! 그러고 보니 색이 좀 다르긴 해도 오해하기에 십상이다. 나는 담배도 안 피우는데 순식간에 베를린에서 마약 하는 여자가 돼버렸다. 그나저나 미숫가루를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건 미숫가루라는 건데, 콩을 갈아 만들어. 아, 콩뿐만 아니라 콩이랑 비슷한 쌀, 보리 같은…뭐라 그러지? 그러니까 ‘콩 친구들’ 있잖아? 콩이랑 비슷한 곡물들…’

멥쌀이 영어로 떠오르지 않아 대충 ‘콩 친구들’이라 설명하면서 나도 속으론 좀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이 소리를 들은 다른 작가들까지 귀를 쫑긋거리며 우리 대화에 끼어든다. 그들이 진지하게 묻는다. ‘콩 친구들’, 그들이 과연 누구인지, 미숫가루에 꿀이나 설탕 대신 다른 걸 넣으면 어떤지… 아이고,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 후 미숫가루를 한 모금 입에 넣을 때까지 한참 시간이 흘렀다. 아이, 못 살겠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방송 쿠킹쇼
ZK/U 베를린 레지던시엔 작업실이 열세 개 있다. 그런데 부엌은 달랑 하나뿐이다. 처음엔 어떻게 스무 명이 부엌 한 개를 같이 쓰나 의아했는데 뜻밖에 잘도 굴러간다. 매일 누군가와 같이 써야 하는 불편만 빼면 말이다. 부엌 찬장엔 각자의 방 번호가 붙어있다. 냉장고 역시 방 번호에 따라 칸칸이 나눠쓴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곳을 침범했다간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다. 웬일이람. 베를린에만 가면 천장 높은 유러피언 키친에서 우아한 브런치나 다이닝을 즐길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뭐 단체생활이 따로 없다. 게다가 부엌 한가운데 긴 테이블은 ‘요리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다들 나란히 서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여러 요리 프로그램을 동시에 시청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처음 여기서 지내기 시작했을 때는 부엌에 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내가 뭘 먹는지 힐끔거리며 지나가는 다른 작가들 시선이 불편했다. 게다가 내가 뭘 만드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과정이 드러나는 것도 어색했다. 다행히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을 조금씩 즐기게 되었다. 단, 피곤하거나 괴로워 조용히 밥만 먹고 싶은데 누군가 자꾸 말을 거는 날만 빼고

레지던시에서 열리는 이벤트 중 하나는 ‘Thursday Dinner’다. 부엌이 가장 활기찬 날이다. ‘목요일 저녁’이란 이름 그대로 작가들이 매주 돌아가며 음식을 준비하는 날이다. 식사 후에는 ‘아티스트 토크’가 이어진다. 어쩌면 단조롭다고 할 수 있는 레지던시 생활에서 이번 주 ‘목요일 저녁’은 누가 하는지, 무슨 음식을 하는지는 이곳의 빅 이슈다. 

지금 이곳엔 이집트, 캐나다, 호주, 한국, 영국, 스웨덴, 중국, 독일, 아일랜드, 이란, 벨기에, 칠레 등에서 온 작가들이 머문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을 가진 작가들이 요리하다 보니 종종 흥미로운 일이 종종 생긴다. 이집트 작가, 라미스(Lamis)는 호무스(hummus)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직접!

“아주 간단해, 일단 병아리 콩을 갈고 거기에 식초, 레몬, 마늘, 그리고 올리브 오일을 섞어. 그리고 ‘적당히’ 소금과 후추를 뿌려주면 되는 거야, 기호에 따라 ‘적당하게’. 간단하지?”

그녀가 알려준 대로 ‘적당히, 적당하게’ 넣고 뿌리는 게 간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중동 음식 중 하나가 호무스다. 한국에서 종종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였는데 베를린 레지던시에서 이집트 작가에게 호무스 만드는 법을 배울 줄이야! 그녀가 알려준 대로 호무스를 만들어보지만 ‘적당히’ 넣으라는 말이 참 모호한 탓인지 나는 왠지 사 먹는 게 더 나을 것도 같다. 여기 와서 알았다. 미역의 미끌미끌한 촉감을 싫어하는 유럽인들이 많고, 김밥을 만들어주어도 간장을 주르륵 부어 먹을 만큼 짠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미역을 불리건, 된장을 풀건 음식을 할 때마다 밀려오는 질문에 하나둘 대답하다 보면 만들고 먹고 치우는 데 두세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무슨 음식인지, 어느 나라 음식인지, 재료는 어디서 샀느지, 어떻게 만드는지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에서부터 한식의 종류는 어떤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식혜나 수정과 같은 디저트 얘기까지 하다 보면 도무지 끝이 없다. 어쩌면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다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낱낱이 공개되고, 매번 원치 않는 비평을 받는 것만 빼면 말이다. 레지던시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그 시간만큼은 누구나 국가별 대표선수가 되어 생방송 쿠킹쇼의 주인공이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제발 청소 좀 합시다
“PLEASE look back at what you are leaving behind after cooking.”
한참 웃었다. 이게 뭐람, “밥 먹고, 제발 청소 좀 하자!”는 단체 이메일이라니… 지금 내가 고등학교 기숙사에 있나? 전 세계 훌륭한 작가들이 모여 있는 베를린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선 종종 이런 이메일을 받는다. 사실 내가 베를린으로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부터 받았던 잔소리 메일이다. 지난번에 지냈던 독일 다른 레지던시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이런 메일을 받아도 할 말은 없다. 내 눈으로 직접 ‘아티스트 키친’의 실상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부엌의 청결도가 이 모양이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있는 ‘부엌 대청소 날’ 빠지기라도 하면 엄청난 눈총을 받는다. 이해하자고 들면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여러 사람이 부엌 하나를 쓰자니 깨끗한 부엌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국적별, 성격별로 설거지하는 방법, 물건 놓는 장소, 냉장고 사용 방법이 전부 다르다. 부엌을 관찰보다 보니 나라별로 음식에 관한 믿음, 체질에 관한 의견 또한 전부 다르다는 것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아침에 커피를 꼭 마셔야 하는 사람, 글루틴이 들어가지 않은 빵만 먹는 사람, 카페인이 들어간 차는 마시지 않는 사람, 우유 말고 두유만 마시는 사람, 이슬람 금식 기간인 ‘라마단(Ramadan)’을 지키는 사람, 라마단 시간을 피해 새벽에 먹는 사람, 고기를 좋아하지만 양고기는 먹지 않는 사람 등 정말 식성도 문화도 다양하다. 다양한 작업만큼이나 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일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밥을 해 먹는 사람이 줄었다고 하는데 이곳만큼은 정반대다. 많은 작가들이 매일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고 배우는 일에 열정적이다. 때로는 작업실에서 작품 만드는 것보다 부엌에서 밥을 할 때 한결 열정적이다. 어쩌면 음식을 만드는 게 작품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기 때문일까? 작품으론 만족하기 어려운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음식으로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레지던시 부엌에서는 음식만 만드는 건 아니다. 여러 회의, 아티스트 토크 또한 여기서 이루어진다. 긴 식탁은 회의 탁자가 되고, 선반 위 하얀 벽은 프로젝터를 쏘는 스크린으로 변한다. 가끔 다른 작가의 사생활 같은 각가지 가십, 혹은 작업에 관한 고민, 불평도 흘러 나간다.
매달 열리는 레지던시 ‘오픈 하우스’ 때 부엌 전시장으로도 바뀐다. 부엌 한쪽에 영상을 쏘고 식탁 가운데 작품을 전시한다. 미팅, 발표, 요리, 식사, 전시, 파티,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 레지던시 부엌이다. 부엌이자 사교장, 전시장, 사무실, 커뮤니티 공간이다. 각기 다른 국적의 작가들이 각 나라의 고유한 음식을 보여주는 문화 공간이다.

‘음식’ 하면 자연스럽게 잘 차려진 음식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역시 전시를 하면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좋아해 주길 바란다. 누군가와 음식을 나눠 먹는 건 그와 생활을 공유하는 일이고, 작품을 만들고 선보이는 것 또한 내 이야기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도 난 북적북적한 레지던시 부엌에서 밥을 한다. 온갖 논평이 끊이지 않는 생방송 쿠킹쇼에 한국을 대표해 참가한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피곤하고 동시에 즐거운 ‘데일리 이벤트’다. 여기 머무는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만큼 다양한 인생과 작업을 부엌에서 발견한다. 음식을 같이 만들고, 밥을 같이 먹으며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매일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곳, 그곳이 베를린의 예술가 부엌이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은 더러움에 종종 화들짝 놀라지만 한국의 깨끗한 내 집에 돌아가면, 어쩌면 간절히 그리울 2017년 여름이다.

 

글ㆍ사진/ 이승연

나는 사라져도 내 이야기가 이야기로 남는다면? 나는 이런 상상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미래의 이야기를 담은 상상의 작업으로 현재를 신화로서 기록하는 것, 이것이 기이한 듯 보이지만 명랑한 내 작업이다. 서울 및 런던, 독일에서 활동 중이며 현재 영국 작가 알렉산더 어거스투스와 함께 ‘더 바이트백 무브먼트’ 라는 이름의 아티스트 듀오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베를린 ZK/U 레지던시에 입주 중이다. 이승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