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기록한 열두 명의 작가들
《꿈, 판》 일곱 번째 전시 <어디에도 없는, 아무 것도 아닌>
뜨거운 해가 내리쬐는 7월의 오후, 《꿈, 판》의 일곱 번째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인천 남구 신기시장 안에 위치한 대안공간 듬을 찾았다. 꿈을 주제로 모인 작가들이 각자의 꿈을 기록하여 전시하는 프로젝트 《꿈, 판》은 2017년 한 해 동안 진행되며, 열두 명의 작가들이 매월 돌아가며 각자의 작업을 소개하고 있다. 일곱 번째 《꿈, 판》의 배턴을 넘겨받은 작가는 윤대희 작가로, 이번 달 8일부터 30일까지 전시를 진행 중이다. ‘어디에도 없는, 아무 것도 아닌’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진행 중인 윤대희 작가를 만나 그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Q. 《꿈, 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꿈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대안공간 듬’을 운영하는 최바람 대표의 제안이 시작이었다. 최바람 대표가 ‘대안공간 듬’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카페의 이름도 ‘꿈에 들어와’일 정도로 원체 꿈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2015년 11월에 이 공간을 자주 왕래하는 작가들을 모아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꿈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꿈이 무엇인지 한 달에 한 명씩 돌아가며 전시를 해보자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작가들과 계속해서 공간에 모여 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래는 꿈을 잘 꾸지 않는 편이라 기록하지는 않았었는데, 이 공간에 자주 오고 다른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꿈이라는 소재에 호기심이 생겨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이후 매일 꾸는 꿈을 기록하고, 그것을 작업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Q. 매달 서로 다른 전시의 제목들이 꿈에 대한 작가들의 서로 다른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번 전시의 제목 ‘어디에도 없는, 아무 것도 아닌’은 어떤 의미인가?
2015년 처음 전시 계획을 듣고 매일 핸드폰에 그날 밤에 꾼 꿈을 기록했다. 1년 정도 기록을 했는데, 핸드폰이 고장 나 기록이 모두 지워졌다. 컴퓨터에 옮겨놓은 몇 개의 기록만이 남아있었다. 기록했던 글들이 사라지니 꿈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남아있는 기록들을 읽어보아도 별다른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꿈은 단순히 하룻밤 흘러가고 지나가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작업한 것들이 주로 불안이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김홍기 비평가가 작업에 대해서 안개 속에서 뚜렷하지 않은, ‘어디에도 없는, 아무 것도 아닌’ 형체를 찾는 것 같다고 평한 적이 있다. 그때의 작업과 이번 작업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제목을 정하게 되었다.
Q. 비닐에 작업한 것이 재미있다. 각각의 그림을 보고 싶었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비닐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들을 촘촘하게 겹쳐놓은 특별한 의도가 있는가? 각각의 작업에 대한 설명이 듣고 싶다.
투명한 비닐에 꿈에서 보았던 각각의 이미지를 그리고, 비닐에 그린 그림을 겹쳐둠으로써 맨 뒤에 있는 그림부터 맨 앞에 있는 그림까지 각각의 레이어가 엉켜 이미지가 불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의도했다. 각각의 이미지들이 결국 아무 형태도,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각각의 꿈을 기록하는데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어서,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과연 어떤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꿈을 기호화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았다. 남성이면 원, 여성이면 세모 등으로 다른 사람의 꿈들도 함께 기호화하는 작업을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호화를 하려다 보니, 매일의 꿈이 너무 달라 기호화 작업이 어려웠다. 단순화하려던 의도였는데 오히려 더 난해해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다. 그래서 정리해놓은 기록 중에서 그릴 수 있는 것들, 꼭 그려야 하는 것들을 선별했다. 먼저 종이에 스케치 작업을 하고, 그것들을 비닐에 옮겼다.
드로잉 말고, 빛으로 작업한 것도 있다. 불투명한 유리에 조명을 설치해놓았다. 공간 안에 조명으로 인형을 만들었는데, 유리창을 통해 바깥에서 보면 빛이 번져 아무 형상도 없이 그저 불빛만 보인다. 안개 속에서 보이는 듯한 뚜렷하지 않은 형상을 표현하고 싶었다. 집에 들어가는데 창문 유리에 가로등 불빛이 비친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원래 형상이 어떤 것이든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이전에 했던 작업들과 달리 이번 전시가 특별했던 점이 있었나?
재료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표현하는 이미지들이 처음 시도해보는 것들이 많았다. 기존에는 평소에 경험하는 감정, 특히 불안을 주제로 드로잉을 했다. 가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상에 의존해서 그림을 그려왔다. 어떻게 보면 공감하기 어려운 이미지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제 존재하는 사물을 화면 안에 처음 넣어봤다. 앞으로의 작업에 있어 변화가 많이 생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다시 꿈에 대해 작업을 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방법적으로는 많은 것을 얻었던 전시였다. 개인 작업을 할 때는 그림을 먼저 그리고, 그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특히나 친숙하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 표현하는 매체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캔버스에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재료를 많이 찾으려 하고 고민도 많이 했다. 앞으로의 작업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Q. 앞으로 계속해서 진행될 《꿈, 판》 프로젝트에 대해 더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전시 이외에 진행하는 연계프로그램이 있다. 전시를 여는 작가는 열두 명이지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분이 한 분이 더 있다. 철학자 장의준 선생님이 꿈에 관련된 영화 열두 편을 준비해서 매달 한 번씩 소개한다. 프로그램의 이름이 <꼴라주>이다. 프로젝트의 참여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꼴라주 한다는 의미이다. 영화를 보러 오신 분들이 열두 편의 영화 중 하나의 제목을 종이비행기 안에 적고, 종이비행기를 날려 통 안에 들어가면 그 안에 적힌 제목의 영화를 그날 함께 감상한다. 그 달의 전시와 영화를 억지로 연결하려 하지 않는 방식이 전체 프로젝트 형식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신다.
《꿈, 판》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모두 꿈이라는 같은 주제로 모였고, 꿈을 기록한다는 같은 방법을 택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각각이 꿈에 대해 가지는 생각과 기록한 꿈의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 모두 천차만별이다. 꿈은 누구나 꾸지만, 모두가 각자 경험하기에 전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매달 서로 다른 작가의 작업을 소개하는 《꿈, 판》의 방식은 ‘꿈’이라는 주제를 풀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 아닐까. 앞으로 만날 다른 작가들의 꿈은 또 어떠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해본다.
글(인터뷰), 사진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