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찾는 물고기처럼…- 에릭 스캇 넬슨(Eric Scott Nelson)
물을 찾는 물고기처럼…
실험→실패→발견의 여정은 계속된다
– 에릭 스캇 넬슨(Eric Scott Nelson)
전시장에 들어서면 중앙 큰 공간에 아파트 광고 현수막 몇 개가 천장에서부터 세로로 늘어뜨려 걸려 있다. 바닥에도 유사한 현수막들이 사각형을 그리며 쌓여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흰색 물고기 모양의 조형물이 놓여 있다.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7기 A기간(3~5월) 국외 입주작가 에릭 스캇 넬슨의 결과보고 전시의 메인 장면이다.
에릭 스캇 넬슨이 작업으로 은유하고자 했던 우리의 현실은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현대인들과 이루지 못할 욕망으로 가득 찬 그들의 삶, 이러한 삶을 만들어내는 부조리한 정치 구조이다. 수많은 아파트 광고 현수막이 불법적으로 내걸려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닿지 못할 열망이고 이루지 못할 염원이 아니던가.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을 작가는 ‘물 밖의 물고기 / 날개 없는 새’에 빗대었다. 작가는 인천아트플랫폼 입주기간 동안 이동 및 휴대가 가능한 물고기 모양의 조각품을 만들고(기브스 재료로 머리 부분을 만들고 캔버스 천으로 몸통 부분을 접어서 갤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이다), 물을 찾는 물고기마냥 인천 중구 일대를 돌아다니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조각품을 등에 매고 걷다가 적당하다 싶은 장소가 나오면 내려서 펼치고, 그 안에 들어가 누워서 쉬는 행위를 반복한 것이다. 이러한 퍼포먼스가 나오기까지의 아이디어 스케치와 실험 과정, 작품 제작의 재료, 최종 퍼포먼스 결과(총 4회)가 2016.6.3~6.11까지 <물 밖의 물고기 / 날개 없는 새> 제하의 전시를 통해 소개되었다.
인천아트플랫폼 입주기간이 끝났다. 2016년 3월~5월까지 어떤 활동을 했나?
올해 3월 초에 서울 문래동의 ‘두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15년에 작업한 것들을 전시하면서 오프닝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한 3월을 무척 바쁘게 시작한 셈이다. 이후에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리서치와 드로잉 등을 하면서 작업의 주제와 분위기를 설정했다. 내 작업의 기본 목표는 휴대 가능한 조각(portable sculpture)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등에 매고 다니다가 바닥에 펼치면 안에 들어가 눕고 잠을 잘 수 있는 형태의 조각 작품으로 이것을 이용한 야외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조각은 ‘물 밖의 물고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는 이것을 인천아트플랫폼 인근의 야외 공간과 실내 공간들에서 사용했다. 4월에는 서울을 비롯해 중국의 청두(성도, Chengdu)와 충칭(중경, Chongqing)에서도 퍼포먼스를 했다. 모든 작업들은 이전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고 미래의 작업에 다시 영향을 줄 것이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종료 시점에는 그간 진행한 퍼포먼스들의 자료(다큐멘테이션)와 새로운 작업들, 사진, 드로잉, 조각, 비디오, 설치 작업으로 구성된 전시 <물 밖의 물고기 / 날개 없는 새>(2016.6.3~6.11)를 B동 전시장에서 개최했다.
<물 밖의 물고기 / 날개 없는 새>전(展)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해준다면?
<물 밖의 물고기 / 날개 없는 새>는 여러 아이디어에 대한 스케치를 상이한 여러 매체로 확장하여, 정치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시(詩)를 짓고자 하는 탐구 작업이었다. 전시에 사용된 텍스트로는 3개월간 내가 꾼 꿈의 내용을 담은 책(출판 작업)과 다음의 글귀가 유일했다.
점령되지 않고, 소유되지 않으며, 상업화되지 않고, 임대되지 않은, 사용되지 않는 공간은 어디인가? 공공의 공간도 우리의 것이 아니며, 사적인 공간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영원히 손에 닿지 않을 무언가, 그 무언가를 더 꿈꾼다는 것.
욕망의 본질.
정치. 땅의 배분, 분할, 양도. 정치가들.
물은 땅이 된다. 심지어 물조차 소유된다.
억압받는 문화. 문화를 소비하기.
도시는 공격적이고, 우리의 감각이 잠시 물러나 휴식을 취할 곳은 없다.
점령당하고 통제되는 곳.
이러한 환경은 변화를 겪고 우리의 지식이나 동의와는 무관하게 조정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서 영원히 불편하다.
휴식을 위한 장소는 어디인가?
몸, 피부, 옷, 외부의 층, 쉼터, 확장된 피부.
우리에게 물을 달라. 우리에게 땅을 달라. 우리에게 공기를 달라.
우리에게 공간을 달라.
전시 기간 중에 총 4번의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설명을 해준다면?
전시 기간 중 4일간 아파트 광고 현수막과 물고기 조각 설치작품을 이용하여 라이브 퍼포먼스를 소개했다. 기본적인 행동은 물고기 조각 안으로 들어가 눕고, 그대로 몸을 움직여서 물고기에게 생명(움직임)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주변의 현수막을 이용하여 그 순간의 공간에 반응하고자 했다. 퍼포먼스 4회 모두 물고기 안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움직이고, 숨소리를 내는 방식은 같았지만 매번 그 진행 내용은 달랐다. 퍼포먼스 때 사용한 상징적인 제스처, 관객들과 상호 작용 방식, 물고기 밖으로 나오며 퍼포먼스를 마무리하는 지점과 시점을 달리했다. 1회의 퍼포먼스를 본 관객은 총 4부로 구성된 퍼포먼스 중 한 회를 본 것으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동일한 매체(재료)를 사용한 4개의 분리된 퍼포먼스였다.
공연분야 입주작가로서 전시 형태로 작업을 보여주었다. 퍼포먼스의 시간적 제약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나?
나는 나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있어 ‘공연예술(performing arts)’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공연예술가(퍼포머)’라고 부른다. 사실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와 퍼포밍 아트(Performing Arts)를 잘 구분하지 않는 것 같다. 용어에 대한 정의가 시간과 상황에 따라 항상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의 작업은 행동(액션)에 포커스를 두고 있으며 신체의 모든 감각을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시각 예술(비주얼 아트)’이라고 불리는 분야가 나의 작업을 설명하는데 더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전통적인 무대나 극장과 같은 장소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나의 행동들을 조정하고, 공공장소나 대안공간, 갤러리, 뮤지엄 등에서 퍼포먼스하는 것을 선호한다. 주제, 공간, 시간 등이 서로서로 연결된 관련 작업들로 전시를 구축함으로써 관람객들이 다른 설명 문구 없이 본인들의 경험을 통해 내 작업의 기반과 내용을 이해하길 바랐다. 전시라는 형태는 부가적인 맥락과 사운드를 창출해 내어 여러 개의 작품들이 공간 안에서 서로 화답하고 반향을 불러일으키도록 해준다. 나는 인천아트플랫폼의 B동 전시장이 매우 좋았고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 결국, 전시장이라는 공간은 내가 작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협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블랙박스 극장이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작품 이미지나 퍼포먼스 영상을 온라인 혹은 언론에 잘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앞으로 작가 홍보용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운영할 계획은 없는가?
때때로 드로잉, 설치, 조각 작품의 사진 이미지들을 온라인에 공개하기는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퍼포먼스 장면을 담은 비디오나 사진들은 오프라인으로만 보여주려고 하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우선 퍼포먼스 작업이 사람들에게 라이브로 경험되고 전해지길 바란다. 사람들이 비디오나 사진 기록물(다큐멘테이션)을 통해 퍼포먼스를 접할 경우, 대개 작업을 오해하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다큐멘테이션은 잘못된 재현이 된다. 사진이나 비디오는 특정 순간을 포착하여 프레임 안에 가둠으로써 한 개인이나 순간의 관점만을 드러내고, ‘거기에 있음(being there)’이라는 본래의 현장 경험으로부터 분리되어 또 다른 고정된 작업이 되기 때문이다. 퍼포먼스 사진이나 비디오를 보여줄 때에는 그 자체로 새로운 작품 자체이기 때문에 소개한다. 매체의 확장과 이로 인한 의미의 이동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퍼포먼스 사진과 비디오를 보여줄 것인지 세심하게 결정한다. 새로운 설치 방법을 고민하고 매체를 재조정하여 새로운 물리적 공간을 창출하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다. 예전에는 의도적으로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보여주지 않았다. 스토리텔링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통적인 구전 방식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일차적인 레퍼런스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토크 등 내 작업을 소개해야 할 경우에도 기록물을 보여주기 보다는 내가 ‘라이브 다큐멘테이션(live documentation)’이라 명명한 방식을 이용하는데, 스토리텔링과 행위의 결합을 이전 작업과 유사한 방식, 유사한 행동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벌어졌던 일들, 본래의 퍼포먼스 작업을 감지하는데 있어 촉각적, 청각적, 시각적, 후각적이며 때로는 미각적인 참조 지점들을 새롭게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나는 이러한 방식이 원작을 온전하게 유지하는데 있어 비디오나 사진보다 더욱 강력한 다큐멘테이션의 방법이자 도구라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더욱 많지만 향후 출판 작업을 위해 아껴두겠다.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 계획은 있지만, 만들게 된다면 내 작업을 홍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의 책들을 독립적으로 판매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퍼포먼스를 하면서 목탄을 씹어 먹는 등 다소 과격하거나 몸을 혹사하는 행동들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이유인가?
어떤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발견되는 무엇인가가 있다. 오랫동안 빠르게 움직임을 반복하다보면 지치거나 몸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목표점은 아니다. 모든 행동이 가능하고 모든 행동이 퍼포먼스이다. 충격요법을 주려고 의도적으로 극단적인 행동 등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을 할 뿐이다. 어떤 행동은 지나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판단조차 두려움이라든지 사전에 학습된 내용에 따라 그런 것이다. 두려움을 떨쳐서 해소하고, 몸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식을 새롭게 배우면 가능성의 영역은 더욱 커지고 인식의 전환도 나타난다. 내 작업들 중 상당수는 매우 부드럽고, 웃기고, 달콤하다.
향후 작업의 지향점과 계획이 있다면?
내게는 항상 너무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다. 이러한 생각들을 모아두었다가 특정한 장소와 그 시간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작업으로 발전시킨다. 작업은 그 작업이 진행되는 환경에 따라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몇 년은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 머물며 작업할 예정이고, 그 와중에 한국과 중국을 오갈 생각이다. 물리적 환경이 이동하고 변화함으로써 나의 작업도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나는 항상 내 능력에 도전하고, 내가 어렵다거나 불편한 것들로 나를 밀어붙여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실험한다는 것은 실패를 많이 한다는 것이고,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새로운 실험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실패, 발견, 반복의 과정이다. 앞으로 ‘행동(액션)의 반복’은 나의 작업에서 주요하고 강력한 지점으로 유지될 것이다. 습관을 깨고, 새로 배우고, 배운 것을 답습하지 않고자 하는 나만의 작업 방식이다. 하지만 언어나 작업에 사용되는 매체는 유동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나는 지속적으로 나의 지각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고군분투한다. 나의 일상적 행동과 소위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 구분은 없다. 내가 굳이 구분을 지을 때가 있다면, 사람들이 내가 하는 행동에 좀 더 관심을 두었으면 할 때, 이 행동들을 좀 더 부각시키기 원할 때에는 이를 ‘예술’이라 부르고, 나의 행동을 별 뜻 없이 봐 주었으면 할 때에는 일상적 행동이라고 한다.
정리 : 이영리(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