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공연장을 찾아서
검단복지회관 상주단체 루체뮤직소사이어티 안희석 대표 인터뷰
“예술단체의 자생을 고민하고 있어요”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공연콘텐츠 강화,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교류 활성화, 지역 우수 공연프로그램 향유 기회 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 루체뮤직소사이어티(이하 루체)는 검단복지회관의 상주단체로서 자생적인 클래식 예술문화와 생활문화의 구축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루체가 이야기하는 악보 출판사 사장 호프마이스터라는 인물은 의미심장하다. 그가 없었다면 모차르트의 음악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루체가 추구하는 아티스트의 직장, 시민들의 생활문화가 클래식 음악의 진일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적시한다. 루체를 지휘하고 있는 안희석 대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1. 올해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에서 상주단체로 선정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다. 루체에 대해 간단한 소개 먼저 부탁드린다.
루체는 우리가 우리의 직장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어요. 우리나라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취업할 수 있는 자리가 상당히 빈약해요. 클래식 같은 경우엔 안정적인 직장이라 할 수 있는 게 교수직을 제외하면 국공립 오케스트라 정도인데, 그마저도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죠. 이런 상황을 타계해보려는 게 저희의 첫 번째 목표에요. 다음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어요. 음악성이라는 게 객관적인 면도 분명 있지만,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면 역시 존재해요. 루체는 틀에 박혀있는 음악이 아닌 좀 더 다양한 음악,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에요.
2. 청년실업이나 취업난의 심각성이야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음악인들의 취업이라니 조금 생소하다. 클래식계의 상황이 그만큼 안 좋은 상태인가.
지금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아요. 상상 이상이에요. 공연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단체는 거의 드물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연주자들이 학생들 레슨이 아니라면 먹고 살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민낯을 드러낸 거예요. 일본과 비교해볼까요? 일본은 시립예술단이라는 게 없어요. 각각의 도시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예술단을 지원해줍니다. 그 예술단이 시립예술단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토요타 같은 경우엔 TYOC(토요타 청소년 오케스트라 캠프)를 운영하는데, 몇 년 전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사태가 벌어졌던 당시에도 토요타는 그 오케스트라 캠프의 예산을 오히려 늘렸어요. 이런 구조적 차이가 오케스트라의 질적인 차이를 만드는 거예요. 물론 한국에서도 세계 콩쿠르에서 1등 하는 연주자들이 나오긴 했지만, 구조적으로는 내실과 내공이 제대로 쌓지 못했기 때문에 연주자들이 다들 각개전투로 살아남기 위해 고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에요.
3. 같은 맥락에서 루체가 홈페이지를 통해 이용자들에게 음악 정보, 음반, 뮤직 아이템 등을 제공하는 한편, 아티스트들이 음반을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채널로 활동하는 것도 이러한 어려움 때문인 것 같다.
정규직 직원은 휴일에 출근을 안 해도 월급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연주자는 연주를 안 하면 수입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연주자가 연주를 안 할 때도 수입이 발생할 수 있는 걸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음반제작이란 걸 생각해냈죠. 이 음반제작은 저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징검다리에요. 다변화된 수입구조를 갖는 것과 연주자들의 자기 PR을 돕는 것이라는 두 가지 목적이 있죠. 그래서 뮤직 엔 로직(사이트 바로가기)이란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작곡가들의 경우엔 악보를 출판할 수 있는 컨테무스(사이트 바로가기)라는 사이트를 따로 구축했고요. 여기에 루체(사이트 바로가기)까지 해서, 음악 플랫폼들을 구축하고 운영하고 있어요.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유재하와 라흐마니노프’ 음반이에요.
4. <마님이 된 하녀>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지 소개 부탁드린다.
7월 15일에 검단복지회관에서 공연할 거예요. <마남이 된 하녀>는 창작 배경이 참 재밌는 공연이에요. 독일에서 지휘를 공부하던 시절 친구와 함께 프로젝트를 고민하던 중 오페라부파(18세기에 발생한 희극적 오페라)의 시초가 되는 ‘마님이 된 하녀’를 발견했어요. 이게 우리말로 하면 코믹 오페라인데, 당시 대규모 편성 오페라의 인터미션(쉬는 시간) 사이에 연주되었던 작품이에요. 이걸 저희가 아리아는 그대로 살리고 연극처럼 대사를 넣어서 공연했는데 대성공이었어요. 그때의 기억이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고 생각났던 거죠. 그렇게 공연을 만들게 되었어요. 독특한 게 이 작품은 매번 공연할 때마다 대사가 조금씩 바뀌어요. 그 시기에 맞는 웃음 코드를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거죠. 저희가 2015년도에 쓰던 홍보 문구가 “루체 공연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에요. 한 번 보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재밌는 작품이에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5. <마님이 된 하녀>도 그렇지만, <클래식으로 듣는 7080>, <뮤직스캔들>, <고고씽 콘서트> 시리즈와 같은 콘텐츠들도 매우 참신해 보인다. 루체는 현대예술의 탈장르, 장르 융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러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탈 장르와 장르융합들이 문턱을 낮추는 장치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클래식을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좀 더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저희 콘텐츠들은 그런 걸 고려해 만들어졌어요. 예컨대 <클래식으로 듣는 7080> 시리즈는 70~80년대 팝송 및 가요들을 가지고 무대에 올리는 거예요. 시작은 전설적인 가수 유재하의 노래로 했는데, 여기엔 재밌는 배경이 있어요. 대학 시절,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를 듣는데 갑자기 뒷부분에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니가 들리는 거예요. 이상하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여러 번 돌려 듣고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어요. 단순히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존경심의 표현인가로 옥신각신하다 결국 존경심의 표현이라는 쪽으로 결론을 냈죠. 유재하는 작곡가를 졸업했고, 굉장히 천재적인 역량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우연은 아니라고 봤던 거예요. 그때는 그렇게 끝내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생각이 다시 났어요. 그래서 ‘유재하와 라흐마니노프’ 공연을 준비했고 앨범 역시도 제작하게 되었죠.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야 할 게 있는데, 여러 가지 사안들 때문에 가려져서 잘 안 보이는 게 있어요. 저희는 매년 한국 초연작품들을 올리고 있어요. 예를 들면 2012년 공식적인 창단연주회에서는 호프마이스터라는 작곡가의 실내악을 초연했죠. 호프마이스터가 재밌는 게 뭐냐면, 이 사람이 없었으면 모차르트가 없었을 거란 점이에요. 호프마이스터는 유명한 작곡가이기도 했지만, 최초의 악보 출판사 사장이기도 했어요. 그는 당시 모차르트의 악보를 출판하고 그 출판료를 선지급해주면서 가난했던 모차르트가 작곡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줬어요. 호프마이스터 이외에도 저희는 벤자민 브리튼, 글룩, 제랄드 핀치, 글라주노프와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들도 초연해서 클래식에 이런 작품들도 있다는 걸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이런 공연들을 통해 우리들의 역량도 계속 발전시키면서 한국 클래식 음악사에 의미가 되는 일들을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저희는 정말 엄청난 초연들을 하고 있는데, 셀프 자랑을 잘 못 하는 것 같아요.(웃음)
6. 고급문화라는 인식 때문인지, 시민들이 클래식과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생활문화와 클래식 간의 간격 좁히기와 관련해 루체 만의 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생활예술 동아리를 언급할 때 마다 꼭 등장하는 두 사례가 있어요. 하나는 관 주도형 사례로 성남시의 ‘사랑방 동아리’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 주도형 사례로 인천시의 ‘문화바람’이예요. 그리고 전문예술에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생활예술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게 바로 문화바람에서에요. 즉 생활문화라는 개념이 시작된 게 바로 인천이라는 거죠. 대단하죠?(웃음) 제 경우에는 올해 생활문화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아요. 제가 인천 청소년 오케스트라 출신인데, 당시 거시서 활동했던 1~2기 멤버들이 지금 인천의 민간 클래식 영역을 거의 주도 하고 있어요. 저는 이러한 현상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예술을 전문 직업으로 삼기 이전에 했던 경험들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든 거죠. 그래서 저 역시도 귀국 이후 가온누리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습니다. 이 밖에도 미추홀 오케스트라와 엑스포 오케스트라도 운영을 하고 있어요. 이러한 생활예술에 대한 제 철학과 가치관은 아주 명확해요. 보통 예술인들이 시민예술가를 키우면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객이 될 거라 생각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중요한 건 이 시민예술가들이 자신들의 공연에 지인들을 초청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클래식을 관람하게 된 사람들이 시민예술가들의 연주를 보고 클래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해요. 그런 경험을 한번 해보면 다음 연주회, 더 나아가 루체의 음악회도 보러 오게 되는 거죠.
7.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통해 성장해, 그것을 다시 조직하고 발전시키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이밖에도 미추홀 오케스트라나 엑스포 오케스트라 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우선, 청소년 오케스트라 사업은 정부의 사업을 통해 시작되었어요. 정부 주도의 정책은 인큐베이팅을 해준다는 점에서는 좋은 정책이었지만,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였어요. 예컨대 초등학교에서 실시되는 오케스트라 사업은 그 친구들이 중학교로 진학하고 나면 소용이 없어지죠. 그래서 이런 좋은 정책을 이어받아서 지속성을 유지시키자는 의미로 저희는 가온누리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활동하고 있어요. 다음으로, 미추홀시민오케스트라의 경우 처음에는 저희 루체가 공연 기획부터 제작, 홍보까지 거의 모든 걸 다해줬어요. 그런데 그러면서 저희의 업무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시민예술가들에게 교육하고 넘겼어요. 음악적인 것 이외에는 지휘자의 영향력을 계속 줄여야 한다는 게 제 철학이거든요. 지휘자가 갑자기 없어져도 고아가되지 않도록 자립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거죠.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는 게 생활문화의 지속성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최근에 시작한 엑스포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이건 마을형 오케스트라에요. 송도에 있는 엑스포 아파트 주민들이 마을 공동체 사업으로 하고 있는 거죠. 저는 이 엑스포 오케스트라가 마을 공동체 사업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자부해요. 이렇게 세 단체를 연합해서 이번에 시민예술제에 나가 본선에 진출했고, 올 9월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으로 공연하러 가게 되었어요.
8. 루체가 상주하고 있는 공연장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검단복지회관과 함께 하게 되셨는데,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검단복지회관만의 특색이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애증의 관계랄까요?(웃음) 아주 재밌는 공연장이에요. 검단복지회관의 공연장 공간은 비교적 작은 편이에요. 그래서 관객은 연주자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에 반응하는 관객의 숨결을 느낄 수 있죠. 물론 가끔은 부평아트센터나 서구문화회관처럼 큰 공연장에서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검단복지회관을 찾아주시는 시민 분들의 정이 그걸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 것 같아요. 한번은 공연이 끝난 후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손을 잡아주신 적이 있어요. 고맙다고, 자주 공연해달라고 말이죠. 그 분위기나 정감 때문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다른 곳에서 러브콜이 오기도 했지만, 조금 더 넓은 공연장에 있고 싶다고, 조금 더 좋은 시설을 이용하고 싶다고 갑자기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건 우리의 철학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 공연장에서 저희가 해야 할 몫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 올해도 남았어요. 저희는 의리가 있는 상주단체에요.(웃음) 어쨌든 로비 음악회와 같은 경우에는 대한 주민들의 호응이 대단해요. 저희가 한번은 6시간 정도를 공연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20명가량의 분들이 4시간 이상 공연을 보고 가셨어요. 로비 음악회는 10월, 11월, 12월에 다시 열릴 예정이에요.
9. 앞으로의 활동계획과 함께, 루체의 공연을 관람하러 올 시민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저희 공연을 안 보신 분은 있어도 한 번만 보신 분은 없어요. 많은 관객 분들께서 저희 공연을 보러, 심지어는 영종도에서까지 오세요. 그만큼 재밌다는 거죠. 많은 관람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저희의 활동에 대해 추가로 말씀을 드릴게 있어요. 최근 저희는 민간 공연장과의 협력을 통해 상주사업에서 만들었던 콘텐츠를 그곳에서 공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또, 보다 독특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영화음악과 드라마음악을 가지고 공연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렇게 예술단체가 자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저희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용기 있게 실천해나가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려요.
인터뷰, 글/ 박치영 문화통신3.0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