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독립출판과 서점의 시대

“SNS에 끼적이는 인스턴트 이미지와 텍스트가 아닌 진짜 스토리가 담긴 진짜 1인 미디어를 꿈꾸며 냄비받침출판사 전격 오픈!”

독립출판은 상업적인 출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이야기와 작품을 책으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2-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죠. KBS2가 그 물결을 예능으로 가져왔네요. ‘냄비받침’입니다. 이경규, 안재욱, 김희철, 트와이스, 이용대가 등장해 낙선 정치인을 인터뷰하겠다, ‘건배사’ 모음집을 만들겠다, 희귀하고 재미있는 (신상)물품 후기 등을 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던 예능의 시대가 가고 ‘예능도 지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별난 재치나 특별한 감동 포인트를 전달하지 못하면 좀처럼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힘듭니다. ‘진짜 스토리’를 들려주겠다는 야심찬 기획에도 불구하고 ‘냄비받침’은 참신함보다 고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치인을 인터뷰 하다가 걸그룹의 시끌벅적한 모습을 비추고, 술자리를 빌려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는가 싶더니 매니저에게 아이돌의 생활을 알려달라고 말하는 것이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백화점식’ 구성이라는 비판도 있네요.


제목과 아이디어가 독립출판 잡지 『냄비받침』과 같거나 유사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내적자신감 회복을 위한 독립출판 프로젝트 <냄비받침>’은 2010년부터 2014년 여름까지 총 5호가 발간됐습니다. 매 호마다 주제를 정해 문학, 시각, 사진 등의 창작자들 작품을 실었고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이모 씨는 페이스북에 “같은 이름, 비슷한 아이디어를 프로그램에 활용한다는 이 탐탁지 않은 유사함에 대하여 제작진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석연치 않은 답변만 전해 들었다”고 항변했습니다.

독립출판 잡지 『냄비받침』을 알지 못하며, 우연히 아이디어가 겹친 것이다.”

독립잡지 프로젝트 진행자들이 홍보로 내세운 슬로건은 “등단하지 않아도 좋다. 많이 읽지 않아도 좋다. 가난한 자취생의 라면을 받치는 냄비받침으로 쓰면 되니까.”였습니다. TV 프로그램의 슬로건은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아도 좋다. 냄비받침으로 쓰면 되니까.”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3년이나 야심차게 독립출판 관련 예능을 준비했다고 매체에 소개하던데, 그런 프로그램이 우리 잡지를 모르다니(독립출판물은 수명이 짧은 편이다. 우리는 4년에 걸쳐 잡지를 출간했다. 매체에도 자주 소개되었다) 설령 모른다 하더라도 대화 도중 사전 리서치로 언급한 두 곳의 독립출판 서점 중 한 곳은 현재 『냄비받침』이 유일하게 입고되어 있는 서점이다.”

이모 씨는 유명하지도, 인지도가 높지 않은 인디 문화는 그냥 소재를 가져다 써도 된다는 안일한 인식이 방송계에 퍼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합니다. 아이디어를 얻었다면 그 사실을 명시하고 합당한 존중을 해주는 것이 시대의 상식 아니냐고요.

독립출판이 방송계에 소환된 것과 조금은 결이 다를 수 있지만 독립서점(동네서점, 지역서점, 대안서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른 바 ‘서점의 시대’입니다.

지난달 코엑스에서 열린 제23회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입니다. 사물(책)이 아닌 인물(작가들)을 전면 배치했네요. 오른쪽 위에 적힌 ‘변신’이라는 단어가 본래 사이즈보다 크게 보입니다.

행사장 안은 내실 있게 짜인 축제의 장이었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코너는 서점의 시대였다. 특색 있는 독립 서점들이 각자의 안목으로 고른 책을 전시하고 있었다. 시집, 고양이 관련 서적, 추리소설, 디자인, 여행, 카메라, 독립출판물 등등, 독립 서점은 그 공간을 꾸민 사람의 개성과 특색을 찾아볼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대형 서점은 베스트셀러 위주로 진열하지만 독립 서점은 특색 있는 책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살립니다. 2010년 이후 전국에 그림책 서점, 추리소설 서점, 음악 서점, 고양이 관련 서점, 시집 전문 서점, 술 먹는 서점, 여행 서점 등 다양한 서점이 탄생했습니다. 이들 작은 책방은 책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책에 흥미를 갖고 독서를 즐기도록 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기존 도서전은 헐값에 팔고 헐값에 쓸어 담는 행사라는 냉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그나마도 불가능해졌죠.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달라졌다”는 평이 쏟아졌고 관객 수도 지난해의 2배로 늘었습니다. 기획자들은 ‘몇 부를 팔까’가 아닌 ‘어떻게 재미를 선보일까’를 고민한 결과라고 자평합니다.

출판사 부스에서 책을 집어 들었는데 “제가 그 책 쓴 사람입니다”라며 소설가 이기호, 김탁환 등이 나타납니다. 미술관처럼 그림이 액자에 걸려 전시돼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작가 줌파 라히리의 ‘책 표지 원본’입니다. 음악 서점 ‘라이너 노트’는 LP 턴테이블을 들고 와서 음악을 틀기도 했고요. 유료입장권(5000원)은 책을 살 수 있는 쿠폰으로 활용됐습니다.

주최 측은 특색 있는 서점 20곳을 선정하기 위해 1차로 서점별 개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2차 기준은 각 지역에서 주민과 얼마나 연대를 구축하며 역할을 하고 있는지였다. 3차 기준은 얼마나 새로운가였다.”

종이책의 판매는 점점 줄고 있지만 우리는 디지털 기기로 늘 무언가를 읽습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많은 양의 텍스트를 읽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독립출판의 시대, 재미의 시대, 개성의 시대. 사람들은 취향에 맞는 책을 놀이와 의미의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책이 활자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문화 아이콘으로 변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본문 내용 일부와 발췌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가져왔습니다.
– 유승민과 트와이스… <냄비받침>, 너무 생뚱맞잖아요
  오마이스타 2017.6.22.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TV공감] ‘냄비받침’, 좋은 예능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고민
  티브이데일리. 2017. 6.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내적자신감 회복을 위한 독립출판 프로젝트 <냄비받침>’ 블로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삶과 문화] 서점의 시대, 개성의 시대.
  한국일보 2017.6.2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0만 관객 ‘깜짝 흥행’… 비결은 “할인보다 재미”
  조선일보 2017.6.2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서점의 시대’… 전국의 개성있는 서점이 모인다
  세계일보 2017.6.1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