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인천의 문을 연 선구자 이야기
2017년 상반기 작은 전시인 <광제호-머나먼 여정>이 지난 5월 22일부터 인천광역시시립박물관 2층 작은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해양 인천의 문을 연 선구자 신순정 함장과 근대식 기선 광제호에 얽힌 이야기들을 시민에게 소개하며 그동안 잊혀져 있던 지역의 선구적인 인물과 역사에 대한 선양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이 전시를 기획하였다.
1부 근대식 함선 도입의 배경
전시구성은 총 4부로 나뉘어져있다. 1부에서는 근대식 함선 도입의 배경을 다룬다. 양무호와 광제호에 대한 소개로 전시의 포문을 연다. 양무호는 대한제국이 일본 미쓰이물산으로부터 함선을 구입했을 때 고종이 1903년 4월 15일 제물포항에 도착한 이 함선을 “나라의 힘을 키운다”라는 뜻으로 ‘양무호’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양무호는 하루 43톤에 달하는 석탄 소비량 등 운항 비용을 감당 할 수 없어 제물포항에 정박해 있는 날이 더 많았다. 또한 1909년 일본 해운회사에 매각되기까지 양무호는 단 한차례의 출동도 하지 못한 채 러일전쟁에 동원되는 비운을 겪었다. 양무호의 실패를 경험한 대한제국은 해관 총세무사 브라운의 발의에 따라 일본 가와사키조선으로부터 광제호를 구입하였다. 해안경비, 등대 순시 및 세관 감시에 이용하기 위한 광제호는 당시 최신의 조선 기술로 제작되었는데 무선 전신 시설이 설치되어 월미도 무선전신소와 첫 교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부 해양 인천의 문을 연 신순정 함장
2부에서는 해양 인천의 문을 연 신순정 함장에 대한 소개와 함께 조선우선주신회사, 광제호 항해사 시절의 신순정 함장, 그의 졸업증서, 사진엽서 등의 전시가 이어졌다. 신순정함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군함의 함장이다. 그는 한성일어학교에 재학 중 박영효의 추천을 받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에서 근대식항해 교육을 받았다. 그는 양무호의 함장으로 임명되어 제물포항에 닻을 내린 인물이다.
3부 광제호의 여정
3부에서는 광제호의 여정을 다룬다. 1904년 12월 20일 대학제국에 인도된 광제호는 해안경비, 등대 순시 및 세관 감시 등에 이용되었다.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통감부의 관용선으로 운영되어 연안 시찰 및 연회 장소로 이용되었고,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동부 소속이 되었다. 1910년에는 무선전신시설이 설치되어 월미도 무선통신소 간의 전파통신을 실시하였다. 이후 조선우선주식회사에서 상선으로, 인천해원양성소의 실습선으로 각각 사용되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해군 보급선으로 사용되던 광제호는 광복 후 일본인의 귀환에 이용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4부 태극기 휘날리며
마지막 4부에서는 광제호에 게양되었던 태극기에 대한 이야기로 전시가 끝마쳐진다. 이 전시관에 전시된 태극기는 경술국치 전야인 1910년 8월 28일 밤 신순정 함장이 세상의 눈을 피해 고이 간직한 것이다. 광복을 기다리던 이 태극기는 신 함장이 별세한 직후인 1945년 빛을 보았다. 2017년 상반기 작은 전시 <광제호-머나먼 여정>에서는 근대식 기선 광제호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해양 인천의 문을 연 선구자 신순정 함장에 대한 소개가 다뤄진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신순정 함장의 항해사로서의 일상을 들어다 보는 계기이다. 항해사로서 행복한 미소를 띠며 사진으로 남아있는 그를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광제호-머나먼 여정>전시는 9월 3일까지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다.
글, 사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최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