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멍때릴 날! 멍때리기 대회, 세계로 나아가다.

2014년 10월, 서울 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첫 멍때리기 대회를 개최할 당시만 해도 이 대회가 몇 회를 더 개최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재미삼아 <제 1회 멍때리기 대회>라는 타이틀을 붙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올해까지 6번의 대회가 개최가 되었으니 앞날은 모를 일이다.
멍때리기 대회를 기획할 당시 나는 소위 ‘번 아웃(Burn out)’이라고 하는 소진증후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일 나가던 작업실에서 붓을 들고 뭘 그려야 할지도 모른 채 허둥댔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정쩡하게 일상을 보내지 말고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보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나 쉬기로 결심하기 전과 후에도 여전히 초조함과 불안감이 괴롭혔다. 쉬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던 여러 날 중 문득 이런 단어가 떠올랐다. “멍때리기 대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는 집단을 등장시키는 모습을 상상하니 묘한 흥분감이 생겼다.
멍때리기 대회는 그야말로 그렇게 멍 때리던 어느 날 머릿속에 불현듯 떠올랐다. 바쁜 도심 속에 한가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집단을 등장시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적이다. 바쁘게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조금은 약올리려는 생각과 멍때리는 집단과의 시각적 대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대회를 다듬어 나갔고 현재의 멍때리기 대회가 완성이 되었다.

2014년도 첫 홍보물을 SNS에 개시하며 참가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온라인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성황리에 첫 대회를 치르게 되었다. 

그 해 겨울, 중국에 사는 텐텐이라는 분에게 메일한통을 받게 되었는데, 그녀는 이 대회를 북경에서 개최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 역시도 고도성장을 하는 도시로 여느 바쁜 도시인의 삶과 다를 바 없었고 대회가 가진 의미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첫 이메일을 주고받은 지 8개월 만에 China Newsweek와 Oh, Not Galley의 주관으로 <제 2회 북경 국제 멍때리기 대회>라는 이름으로 2015년 7월 북경시내 한복판에서 대회를 치뤘다.
북경대회의 경험을 통해 이 대회의 국제대회로의 가능성을 알게 되었고, 실제로 더 많은 나라의 여러 도시에서 매년 국제 대회를 개최하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후 2016년 봄까지 국내에서 조차 대회를 다시 개최할 수 있을지 조차 불투명했다. 몇몇의 공공기관에 제안서를 보내보았지만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러다 수원문화재단을 통해 겨우 <제 3회 국제 멍때리기 대회>를 치르게 되었고 곧바로 한강사업본부와 함께 한강 이촌 청보리밭 일대에서 <2016 한강 멍때리기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특히 <2016 한강 멍때리기 대회> 개최 이후 갖은 Vice magazine과의 인터뷰는 세계 다른 나라 네티즌들의 반응을 더 크게 끌어냈고 이후로도 여러 세계 유명 매체를 통해 보도가 되었다.( 자세히보기 ▶ )
이후 루마니아, 호주, 슬로바키아, 콜롬비아, 미국, 캐나다, 러시아, 독일, 프랑스, 카타르, 방콕, 대만 등등 여러 나라의 매체와 인터뷰를 하거나 대회 개최 의뢰를 물어오는 메일을 받았다. 그 중 가장 적극적으로 대회 개최를 원했던 곳은 루마니아의 수도 부크레슈티의 한 사업가의 제안이었는데, 제법 오랜 시간 공들여 제안서를 만들고 서로 스폰을 찾기 위해 대사관과 연락하거나 여서 기업들을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개최할 여건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마침내 올 8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유럽에서의 <제 4회 국제 멍때리기 대회>  개최를 앞두고 있다. 작년 말 비영리 공공미술 단체인 FRANK Foundation의 Erwin Nederhoff씨의 제안으로 네덜란드 개최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 단체도 역시 비영리 단체이다보니 재원을 마련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인천문화재단의 국제교류 사업을 통해 사업비 일부를 충당하게 되면서 준비에 속도가 붙게 되었다. 

멍때리기 대회는 몇 개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 퍼포먼스이면서, 시각 예술이면서 스포츠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자세히보기 ▶) 참가자들에게는 각자 자신의 직업을 대표하는 옷을 입고 오게 함으로써 그들이 모두 모였을 때 작은 도시로 보이게 계획했고, 참여자들의 멍때리는 모습은 단순히 대회 선수일 뿐 아니라, 대회 밖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는 퍼포머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예술점수와 기술점수를 합쳐 우승자를 가리기까지 한다. 즉, 어떤 관점에 주목해서 이해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시각도 차이가 생기게 된다. 특히 FRANK Foundation은 실험적인 퍼포먼스로써의 가치와 대회가 가진 의미, 이렇게 두 개의 시선을 중심으로 멍때리기 대회를 이해하고 있다. 아직 대회 준비를 위해 갈 길이 멀지만, 유럽에서 이 대회가 어떻게 읽히고 받아들이게 될지 무척 궁금하고 설렌다. 이렇게 매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이 대회가 개최된다면 머지않아 전 세계가 멍 때릴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다시 하게 된다. 물론 나는 점점 멍때릴 시간이 부족해지겠지만 말이다. 

 

글/ 웁쓰양
사진제공/ 웁쓰양컴퍼니

웁쓰양은 <도시놀이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에서 예술과 결합된 소비없이 놀이할 수 있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