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정은 안녕하신가요?
하나만프로젝트 연극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


지난 4월 16일, 학산 소극장에서 하나만프로젝트가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박서혜 작, 연출)>를 상연했다. 대산 대학 문학상을 수상하고 두산 아트랩 쇼케이스 공연으로 선정되어 낭독극으로 상연된 바 있는 작품은 이번에는 ‘보고서’의 형식을 취했다. 가정의 형태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여러 가정의 형태를 차례대로 소개하는 방식의 극중극으로 진행되었다. 가정을 주제로 ‘가부장제’, ‘N포 세대’, ‘1인 가구’, ‘반려견’ 등 최근 우리 사회의 쟁점으로 떠오른 주제들을 폭넓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대안, 해결안이 아니라 ‘대신’ 해 보는 안
작품은 총 4개의 에피소드가 나열된 옴니버스 형식의 공연으로 각 에피소드는 ‘6, 3, 2, 1’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각 장의 제목은 등장하는 인물 수를 가리키며, 이는 각 장에 등장하는 가정의 구성원 수이기도 하다. 첫 번째 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여섯 명이며, 가정은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딸, 그리고 기러기 아빠로 얹혀 지내는 고모부로 이루어진다. 이는 3대가 한 집에 함께 사는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인데, ‘대안 가정’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품은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가 이상적이지 않음을 되풀이해서 말한다.

‘6’장은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아침 식사 풍경을 보여준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 밥을 먹지만 한 사람만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계속해서 일을 한다.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인 A이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번번이 말을 꺼내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A의 말을 끊고 자신의 말만 한다. 각자의 말은 A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거나 명령하는 말로, A는 아침 내내 식구들의 시중을 든다. ‘6’장의 말미에서 A는 드디어 하려던 말을 꺼낸다. 이혼하겠다는 폭탄선언과 함께 그동안 쌓아두었던 말들을 쏟아낸다. A의 반격은 가부장적인 가정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에 공감하던 관객들로 하여금 통쾌함을 느끼며 뒤이어 등장할 ‘대안 가정’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등장한 ‘대안 가정’은 세 가지 형태로 등장한다. ‘3’장은 아빠와 딸, 새엄마로 구성되는 재혼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2’장은 생계 보조 지원금을 받기 위해 가짜로 혼인신고를 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1’장은 홀로 살지만 반려견과 함께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3’장과 ‘2’장은 모두 ‘대안 가정’이 구성되는 첫날의 모습을 보여준다. 혈연이나 사랑으로 묶이지는 않았지만 ‘잘 살아보자’고 말하며 함께 사진을 찍는 인물들의 모습은 불완전한 가정의 형태여도 ‘6’장의 완전한 형태의 가정보다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보게 한다. 하지만 이어서 등장한 ‘1’장은 반려견의 죽음으로 또 다시 혼자가 되어 절망하고 결국 자살을 택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담는다.

결국 ‘대안 가정’의 모습은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를 대신해서 한번 살아보는 새로운 형태의 가정일 뿐 모든 문제가 해소된 행복한 가정은 아니다. 작품을 집필하고 연출한 박서혜 연출은 ‘사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안 가정은 어떤 해결점이나 해소점,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카타르시스를 추구한다기 보다 우리 주변의 현상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고, 또는 축소하여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너진 가부장, 살아있는 가부장제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모두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가부장과는 거리가 멀다. ‘6’장에서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출판사에 다니는 아버지는 똑똑한 딸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시어머니로부터 아내를 감싸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물이다. 세전 700의 수입을 자랑하는 고모부 역시 말로만 떵떵거릴 뿐, 아내와 딸을 해외에 보낸 기러기 아빠로 처가에 얹혀 사는 인물이다. 남성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가장의 권위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가정 안에는 가부장제는 유지된다. 할머니가 권위적인 가부장의 역할을 맡아 대신 며느리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느리가 떠나고 난 뒤 할머니는 가부장의 수발을 드는 여성의 위치로 또 다시 전락한다. 며느리가 하던 집안일을 모두 떠맡게 된 것이다.

‘3’장에 등장하는 아빠 역시 눈치 없고 철없기만 한 모습으로 권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엄마가 떠난 빈 자리를 채워 음식을 차리고 집안일을 하는 것은 아빠가 아닌 딸이며, 딸의 학업을 챙겨주고 돌봐주는 것 역시 아빠가 아닌 새엄마가 맡는다. 가정의 형태가 바뀌더라도 가부장제의 틀은 그대로 유지된다. ‘대안 가정’은 전통적인 가정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였던 가부장제를 전복하지 못하며, 가부장제 안에서 버티지 못하고 탈출한 피해자를 대신할 또 다른 피해자를 찾는 모습으로 가부장제를 답습한다.

‘1’장에 등장하는 아빠는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외롭고 불행한 생활을 감내한다. 그에게 걸려오는 전화라고는 용돈이 필요한 딸의 전화뿐이다. 유일한 가족인 반려견만이 그에게 위로가 된다. 반려견마저 죽고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뒤 자살을 결심한 아빠는 연탄불을 피우지만 또 다시 걸려오는 딸의 전화로 인해 죽음을 선택할 자유마저 빼앗긴다. 가부장 역시 가부장제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품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가부장제의 단면을 보여주며, 제목이 ‘대안’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 것 역시 가부장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로 구성된 ‘대안 가정’이 가지는 한계를 보여준다. ‘2’장의 가정만이 유일하게 가부장제와 거리가 먼 구성원들로 채워져 있지만, 이들 역시 취업난과 경제난으로 인해 전통적인 가정의 구성을 포기한 것일 뿐 가부장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은 아니라는 한계를 보인다.


네 가지 에피소드의 나열은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실 속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처한 각기 다른 문제점을 보여주고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너무나도 일상적이기에,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각자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는 것들을 사회적 문제로 연결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함께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기성세대가 구성한 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고민한 젊은 극단 하나만 프로젝트가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가지고 등장할지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글/ 김진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사진 / 하나만프로젝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