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발언, 계속되는 연극 – 심포지엄 『포럼연극에 묻는다!』
막이 오르고 무대에 조명이 들어온다. 관객은 헛기침도 삼킨 채 최대한 정숙한 자세로 관람 매너를 준수하며 극을 ‘수용’한다. 무대 위에선 말하고 무대 아래에선 듣는 것,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공연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아무리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모방된 허구가 더 현실같이 느껴지더라도,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진행되는 연극예술은 무대와 관객 간의 소통에 한계를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눈앞에서 인물 간에 갈등이 펼쳐질 때, 등장인물들로서는 알 수 없지만 관찰자로서는 차마 보기 힘든 운명의 고난이 전개되려는 순간에 무대로 뛰쳐들어가 개입하고 싶은 충동을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등장인물에 몰입했거나 그가 처한 상황이 나와 분리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즉 ‘나의 문제’ 로 와 닿는다면?
극중 상황에 대해 관객의 의견을 요청하는 연극, 관객을 수동적인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인 주체로서 연극에 참여하여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직접 말과 행동으로 실행하도록 하는 “포럼연극”에 대해 이야기하는 심포지엄 『포럼연극에 묻는다』가 부평구문화재단 주최로 지난 5월 13일 부평문화사랑방에서 열렸다. 김병주 서울교육대학교 교수가 <포럼연극의 이해 및 흐름>으로, 김현정 ‘극단 해’ 부대표와 원성원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 대표가 <지역사회에서 포럼연극의 확장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으며, 이혜경 인천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장과 손미선 인천여성의전화 사무국장, 고동희 부평구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이 토론을 맡아 진행했다.
아직 우리에게 낯선 개념과 형식으로 다가오는 포럼연극은, 관객들이 극에 직접 참여하여 연극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현실문제에 대한 자각과 실천의 토대를 마련하게 하는 목적으로 창안되었다. 포럼연극의 창시자 아우구스또 보알(Augusto Boal)은 1950년대 말 고국인 브라질 상파울루의 Arena Theatre를 이끌며 유럽 고전극 등을 주로 연출하다가 극심한 빈부차의 문제, 독재정권과 고질적 부정부패, 각종 사회문제에 신음하는 민중들의 고통을 목격하고, 이들을 결속시켜 적극적인 변혁의 주체로 계몽하는 정치적, 사회적, 교육적 도구로서의 새로운 연극이론을 고안하게 된다. 1974년에 발표된 그의 책 『억압받는 이들의 연극(Theatre of the Oppressed(1))』은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사회적이며, 따라서 모든 연극행위 역시 정치적이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되며, 포럼연극의 사상과 방법론이 집대성되어 있다. 억압받는 이들은 바로 사회적 부조리에 고통받는 우리, 관객이면서 평범한 사람들이다.
(1)한국에서는 1985년에 『민중연극론』(창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포럼연극에서는 관객과 배우가 분리된 관계가 아니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연극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극중에 직접 피력하고, 경우에 따라 자신이 배우들을 도와 내용을 수정하거나 자신이 배우의 역할을 넘겨받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배역을 통해 직접 표현한다. 대단히 적극적이고 실천중심적인 이 기법이 지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효과를 발휘했을까? 발제로 참여한 ‘극단 해’와 ‘프락시스’에서는 그동안 진행했던 포럼연극의 사례들을 풍부하게 소개했다. 학교폭력, 진로, 환경, 외국인노동자 인권, 미혼모, ‘워킹맘’이 직장과 가정에서 겪는 문제 등 이 사회 전반에 걸쳐진 보편적인 문제들을 포럼연극을 통해 관객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사례들이 대부분이었다. 공연 후 관객들의 답변 내용을 살펴보면 대체로 만족감도 크고 주변에 추천 의향도 높은 것으로 드러나 있으나, 두 극단과 부평문화사랑방 모두 모객의 어려움을 공통적으로 토로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들은 ①관객의 참여에 따라 매회 다른 구성이 될 수밖에 없는 형식, ②관람보다는 참여와 토론에 방점이 있어 이벤트적 성격을 띄게 되는 점, ③토론을 부담스러워하는 관객 성향 등을 그 원인으로 분석했다. 또한 관객 본인과 연계되는 지점이 없다고 판단해 버리면 공연에 대한 관심을 점화시키는 것조차 쉽지 않겠다는 진단에도 동의했다.
부평문화사랑방은 지난 3년간 꾸준히 포럼연극을 개최해왔다. 이미숙 부평구문화재단 사랑방운영팀장은 “보통 사랑방에서는 상업적인 레퍼토리 공연들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다른 곳과 프로그램을 차별화하면서 지역 주민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포럼연극을 주목했다고 한다. 일방적으로 공연만 하는 게 아니라, 이곳 지역 주민들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로 같이 만들어 보는 게 꿈이라는 그는, 포럼연극이 지역사회의 변화와 소통의 장으로서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포럼연극이 아직 한국에서 보편적인 공연 형식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지난 5월 26~28일 내한 공연한 독일 베를린 샤우뷔네극장의 연극 <민중의 적(An Enemy of the People)>이 한국 관객들을 무대로 이끌어 열띤 토론의 광장을 만들었던 것처럼, 포럼연극의 발생은 오래되었으나 우리를 둘러싼 정치․사회문제들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며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의 ‘발언’ 역시 결코 마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 : 노수연(재단 예술지원팀장) , 사진제공 : 부평문화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