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인천 삶의 흔적 사진전 – 화교역사관

흔적, 되새김하다
‘1960년대 인천 삶의 흔적 사진전’이 지난 3월 8일부터 30일 까지 중구 북성동 화교역사관에서 열렸다, 문화기획자 유지우 씨가 소장한 인천의 ‘희귀’ 사진 20여점이 전시되어 뜨거운 관심과 더불어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이번 전시장에 내건 작품은 오래전에 미국 혹은 지인을 통해 입수한 미공개 원판 사진들이다. 고(故) 최성연 선생이 소장했다가 화도진도서관에 기증한 사진들과 비슷한 듯 다르다.

당시 촬영의 기회가 쉽지 않았을 항공사진들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1960년대 초의 항동, 신포동, 신흥동 등 중구 일대는 물론 사진 끄트머리에 걸친 송현동, 화수동, 만석동 그리고 주안 일대는 인천의 ‘그때 그 시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재의 중부경찰서 상공 부근에서 조감(鳥瞰)한 사진에는 사라진 오례당 가옥, 무덕관, 대불호텔, 답동성당 언덕 길 등이 선명하다.

이 사진전의 특징은 ‘감상’이라기보다 ‘되새김질’이었다. 생면부지 관람객들 끼리 사진 앞에서 머리를 맞대고 흔적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 나가며 정담(때론 격론)을 나누기도 했다. 사라진 자신의 집이 담긴 흑백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이 사진들은 단지 향수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었다. 과거를 진(짠)하게 오늘 앞에 불러오면서 두 시간대를 충돌 시켰다. 사라진 것과 남은 것이 저마다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했다. 기억은 과거의 일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 그리고 기억을 생생하게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했다.

항공사진 못지않게 눈길을 끈 사진은 ‘인천사람’이 담긴 사진들이다. 60년대 인천역 광장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 한 장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서울행 시외버스 노선이 하인천-부평-소사-영등포-서울역임을 한 눈에 보여준다. 기차를 탈까 버스를 탈까. 경유 노선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승객은 잠시 고민했을 것이다. 승객의 짐이나 화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지게꾼과 구루마꾼 그리고 쭈그려 앉은 노점상의 모습이 시간의 흐름을 뚜렷이 보여준다. 지금도 건재한 역 광장의 두 그루 나무만이 지난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1962년 6월 10일 ‘환’이 ‘원’으로 변경되는 화폐 개혁이 단행되었다. 당시 경동의 조흥은행 인천지점에서 구권을 신권으로 바꾸려는 시민들의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양산을 바쳐 들거나 애기를 들쳐 업은 채 길게 늘어선 줄이 배다리 까지 이어졌는지 끝이 안 보인다. 10환은 1원이 되었지만 바꿀 돈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들의 표정은 느긋한 편이다. 차량은 한 대도 잡히지 않았고 구경 나온 듯 자전거 탄 모습이 유난히 도드라진다.

1966년 6월 1일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인천항 제 2도크 축조 기공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본부석 연단에 있기 때문에 어른들은 긴장한 듯 부동자세다. 뭣 모르고 부모님을 따라 온 아이들은 행사가 지루하기 짝이 없다. 몇몇 아이들이 몸을 꼬다가 카메라와 눈이 맞았다. 행사장에 ‘더 일하는 해’ ‘증산 수출 건설’의 선전탑이 당시 국가 정책 모토를 한 눈에 보여준다.

이밖에 수인선 협궤열차 시절이던 수인곡물시장, 기와지붕을 한 북성선린동사무소 개소식, 답동성당 언덕 아래 도로에서 열린 재일동포 추방반대 총궐기 대회, 자유공원 광장에서 진행한 한국스카우트연맹 단원 선서식, 공설운동장 담장 쪽에 있던 대동사 아이스크림 가게(공장)의 모습도 눈길을 오래 잡았다.

지금, 사진 속 많은 것이 사라졌다. 비바람을 견디지 못했거나 사람 손을 타서 없어졌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시간은 장소에 흔적을 남긴다. 사진 속 남은 것들이 떠난 것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글 /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
사진제공 / 유지우 문화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