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라” 인천시립극단 <열하일기만보>


지난 4월 7일부터 4월 16일까지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인천시립극단이 <열하일기만보>를 상연했다.
이번 <열하일기만보>는 강량원 예술감독이 부임한 후 시립극단이 처음으로 선보인 공연으로, 시립극단으로서 가지는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강량원 예술감독은 무작정 쉽고 재미있는 작품을 택하기보다 약간은 난해한 작품을 택해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동시에 무작정 질문을 던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몇 가지 전략 또한 선보였다. 만 20세 이상의 인천시민들로 ‘공연서포터즈’를 구성해 공연 제작 과정과 상연 전반을 경험하고 시민들에게 소개하도록 하였으며, 고미숙 고전평론가를 초청해 이번 공연과 관련한 인문학 강의를 진행했다. 상연기간 두 차례의 ‘관객과의 대화’를 준비해 관객들이 작품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이처럼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욕심과 노력은 시민들과 ‘소통하는 시립극단’의 시작을 알렸다.


닫힌 사회를 향한 유쾌한 비판말(馬)로 환생한 연암 박지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열하일기만보>는 18세기 중국의 열하를 배경으로 당대 조선사회 혹은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을 비춘 우화이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 말(言)을 하는 말(馬) 연암의 등장에 놀라나, 이내 마을 밖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전해주는 연암의 매력에 푹 빠진다. 마을의 두 원로는 마을 밖의 것들을 위험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연암에게 말(言)을 하지 않고 말(馬)처럼 소리 내 울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마을 원로의 말에 순종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연암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을의 관습과 제도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에이, 할아버지 얘기는 재미없어요.”
“맞아요. 만날 수수가 어떻고, 기장이 어떻고, 울타리가 어떻고.”

마을은 당대 조선사회를, 마을의 원로들은 성리학적 이념만을 따르며 청나라를 오랑캐로 규정하던 당시 사대부들을 상징한다. 마을 사람들이 주로 기르는 작물인 수수는 마을을 먹여 살리는 소중한 존재지만, 모래바람이 불면 수수 역시 잘 자라지 못해 마을사람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로들은 수수를 자랑거리로 삼으며 마을 바깥을 모두 배척하는 ‘선조어록’을 읊어댄다. 원로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을사람들로 하여금 불행한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도록 만든다. 말로 태어난 연암과 마을 원로 간의 갈등은 청나라의 실용적인 문물을 배우고 농업 뿐 아니라 상공업 발전에도 힘써야한다고 주장했던 연암 박지원과 이념을 핑계로 그런 연암을 무조건 배척하던 당대 사대부들에 대한 풍자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분란을 조장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데 사용되는, 실체 없는 이념에 대한 풍자로도 읽힌다.

풍자적이고 우화적인 내용과 더불어 연극을 유쾌한 분위기로 이끌었던 것은 배우들의 몸동작이었다. 대사와 감정을 강조하기보다는 다양한 몸짓으로 인물을 표현함으로써 한층 더 극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극에 담긴 깊은 주제의식을 파악하기 어렵거나 연극이라는 장르가 낯선 관객이라 할지라도 연극 관람의 즐거움을 깨닫기 충분했다.

사랑, 고통을 깨우치는 힘.만만은 마을의 창녀로, 과거 마을을 점령했던 오랑캐의 후손이다. 마을 사람들은 오랑캐로부터 겪은 수모와 치욕을 상징하는 하이힐을 만만에게 신기고 그녀를 윤간한다. 만만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으면서도 그 부당함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마을 처녀들의 순결을 지켜내고 있다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연암이 나타난 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만을 윤간하던 거보는 만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깨닫게 되고, 만만 역시 자신을 향한 연암의 눈물이 사랑임을 깨닫고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부끄러움과 억울함과 고통을 느낀다.

늙은 여자 초매 역시 만만과 같이 마을 사람들의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인물이다. 눈과 귀가 멀었던 초매는 연암이 마을에 등장한 이후 이상한 소리를 듣고, 이상한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큰 소리에 고통스러워하던 초매는 불모지와 같은 밭을 가는 남편 장복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만만의 발에서 하이힐을 벗겨낸다. 벗겨진 하이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만만은 처음으로 눈물을 쏟아내며 흐느낀다.

또한 연암은 마을사람들에게 마을이 이미 불모지가 되었음을 상기시키며, 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모래바람이 불면 굶주려야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깨닫고 벗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벗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현실의 고통을 타개하기 위해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암, 그 역시도 알쏭달쏭한최규석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송곳>에도 연암과 비슷한 인물이 등장한다. 노동운동가 고신은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일깨워 노조를 만들고 노동운동을 하도록 만든다. 약자들에 대한 고신의 애정은 그들로 하여금 억압과 착취의 현실을 깨닫도록 하지만 현실의 고통과 맞서 싸우는 것은 결국 그들 스스로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오히려 고통을 깨닫지 못했던 이전보다도 훨씬 괴롭다. 노동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한 노동자의 아내는 고신을 향해 이렇게 절규한다. “제가 소장님 미워하는 거 아시죠. 소장님 정말 미워요. 내가 밤새도록 설득해서 겨우 아이들 아빠로 만들어놔도 소장님만 만나고 오면 꼭 소풍 전날 아이 같은 눈으로 이길 수 있다면서, 전부 지킬 수 있다면서……. 가만 두면 모래성처럼 조용히 쓸려갈 사람들을 왜 괜히 뭉쳐놔서 부서지게 만들어요.”

연암은 마을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의 상황을 인지하게 만들고, 현실로부터 벗어나기를 종용하나, 연암의 말 역시 아리송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이념’에 불과하다. 무작정 마을을 떠나는 것은 마을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없는 이상과도 같다. 결국 현실의 고통을 느꼈던 사람들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현실에 안주하기로 결심한다. 고통의 현실로부터 만만을 데리고 도망치려던 거보는 실천하려던 의지가 좌절되자 연암을 향해 분노를 느낀다. “고통과 치욕 속에 빠져 있는 여자애 하나도 건져내지 못하는 게 이념이라면 그따위 이념은 필요 없어! 이런 이념은 죽여 버려야 해!” 거보는 분노하고 절규하며 연암의 목을 조르기에 이른다.

거보가 현실을 타개하려던 의지가 좌절된 이유는, 그 역시 현실의 문제와 맞서 싸우지 않고 현실에서 무작정 벗어나려 했음에 있다. 만만은 하이힐을 신은 채로 거보와 함께 마을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만만의 발에서 하이힐을 벗겨낸 초매는 새로운 황제가 되어 만만을 데리고 마을을 벗어난다.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의 현실로부터 벗어나도록 만드는 것은 고통에 대해 깨우치게 하는 말도,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의지도 아니며, 오직 고통으로부터 맞서 싸우는 실천뿐이라는 작품 전체의 주제가 여기서 드러난다.


<열하일기만보>를 관통하는 주제는 예술이 가지는 고민과도 맞닿아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현학적인 말들만 쏟아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 될 것인가,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의 문제를 깨우치게 하는 작품을 만들 것인가, 예술은 현실과 직접 맞서 싸우는 실천이 될 수 있는가. 이번 공연은 시민을 위한 시립극단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인천시립극단의 질문과 고민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그 질문과 고민에 대한 해답을 앞으로의 공연에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올해 이어질 인천시립극단의 공연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글 / 김진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사진 / 인천시립극단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