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 있음’ 으로서의 연극, 덕스씨어터

 

‘지금 여기에 있음’ 으로서의 연극, 덕스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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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마카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덕스씨어터(Dirks Theatre)가 2016년 인천아트플랫폼 7기 국외입주작가로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인천에서 활동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지 일주일이 지났다. 덕스씨어터의 멤버 우메이보(여)와 입카만(남)은 팀의 공동 디렉터이자 그들 스스로 배우이기도 하다. 이들은 현재 여독이라는 말이 무엇이냐는 듯 고향에 돌아간 기쁨과 편안함을 느낄 새도 없이 다른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또 다른 레지던시를 준비하고 있단다. 인천에서의 작업과 활동은 과연 어땠고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덕스씨어터에 대해 알려 달라. 덕스씨어터가 창단된 것은 언제였으며, 어떤 계기에서였나?
덕스씨어터는 2009년 홍콩에서 설립되었다. 몇몇 배우들과 함께했고, 우리는 우리만의 작업 방식을 개발하고 예술적 비전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가끔씩 경우에 따라 만난다’는 원칙 하에 활동하였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작품을 프로듀싱하지는 않았다. 2011년에 나(메이보)와 카만이 영국에서 공연관련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둘이서 덕스씨어터를 풀타임 극단으로 발전시키고 프로젝트를 지속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후 우리는 공연자(퍼포머)들의 트레이닝 방법론을 연구했고, 정기적으로 공연을 올렸다. 카만의 근거지는 주로 마카오였기 때문에 우리의 작업들은 주로 홍콩과 마카오 두 도시를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해가기를 원했고, 그래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함께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공연을 만들기도 하였다. 우리 공연이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있고, 국제문화교류 리서치 프로젝트나 공동 프로덕션에 참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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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 레지던시 경험의 만족도는?
지난 5년간 작업 활동을 해오면서, 우리는 그간의 경험과 창작 방식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예술적 환경과 지원이 가능한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학제간, 문화간 협력에도 관심이 많았다. 한국과 협업 프로젝트를 몇 번 진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삶의 방식은 물론 매우 역동적인 아트씬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서울에서 공연 투어를 하면서 인천아트플랫폼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지리적 위치나 분위기 등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사실 인천아트플랫폼이 우리의 첫 번째 레지던시 경험이었고,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분위기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즉각적인 반응과 서포트, 다른 입주예술가들과의 일상적인 교류는 우리의 지식과 관점들을 여러모로 확장시켜 주었다. 감사한다.

Q.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입주기간 중에 행한 리서치나 창작 활동들은 덕스씨어터의 작업 전반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나?
우리는 둘 다 홍콩에서 전문 배우로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추후에도 덕스씨어터 이름으로 창작과 감독(directing)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레지던시에 지원하기 전부터 공연자들을 위한 트레이닝 교수법을 연구해 왔고, 이를 워크숍 프로그램으로 풀어나갔다. 새로운 공연을 창작할 때마다 ‘열린 창작 과정(open creative process)’을 도입하는데, 공연 프로덕션의 다양한 측면을 발견하고 형식을 고안해 내는 방식을 탐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연의 내용, 테마, 심미적 부분, 연출 방식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극의 구상을 시작한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중에도 이러한 방식과 그간의 경험을 강화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실현해 보려고 하였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작업과 리서치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으며 아주 순수하게 예술적인 공간이었다. 특히 인천아트플랫폼은 여러 문화유산이 만나고, 지역적 특성과 국제적 면모가, 전통과 현대가, 개인과 공공이 상존하는 접점에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의미가 크다. 아트플랫폼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시공’은 우리 연구와 창작 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열쇠 요소라는 점에서 적절한 장소에서 중요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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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천을 떠나기 전에 <실비아 플라스 되기 Becoming Sylvia Plath>라는 쇼케이스 공연을 보여주었다. 줄거리와 시놉시스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면?
<실비아 플라스되기>는 미국의 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남긴 시와 전기들을 참고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두었던 것은 한 유명한 시인의 일생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 삶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으로, 그녀가 겪었던 사회적 상황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었다. 시인은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하기에 이르는데, 이후 그녀가 자살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테드 휴즈조차 ‘지난 밤에 무슨일이 있었나?’하고 어떤 시에서 물었을 정도다.
우리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지는 못한다. 그 사람이 우리와 가깝거나 심지어 우리 자신일지언정 완벽한 동일시는 가능하지 않다. 극에는 두 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 둘의 대화를 역동적인 몸짓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극의 기본 플롯이었다. 두 명의 캐릭터는 남과 여, 음과 양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현대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한 역할들이 각자의 자존감이나 가족과 연인간의 친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살펴보려고 한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관객들에게는 그저 숨 막히는 관계를 타개해 보려 애쓰는 남녀 커플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일방적으로 스토리를 전달하기 보다는 신체의 움직임과 시각적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관객들이 우리가 전하려는 테마와 주제를 자유롭게 상상하고 각자의 상황들과 연결시켜보기를 바란다. 공연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역할이라는 오랜 전통과 개인에게 부과되는 기대치들이 행복, 절망, 사랑이라는 관념과 감정에 얼마큼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Q. 말한대로 <실비아 플라스되기>는 남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무대에 소품으로 사용된 각종 옷가지들은 현대 사회가 남성과 여성에게 부과하는 역할에 대한 은유, 메타포인 것 같은데… 어떤가?
그렇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다. 우리의 의도를 제대로 관찰하고 파악한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역할에 관한 통념을 매우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복들을 사용하고 싶었다. 이러한 옷들로 개인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아이덴티티가 겉에서 바라보는 이미지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원래는 사회 역할의 스테레오타입을 드러내는 옷들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시간상으로 쉽지 않았다. 군복, 간호사 복장, 교복, 회사원 양복, 공사장 인부들의 작업복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모두 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옷은 좀 부족했지만 관객과의 교감에서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디자이너들과 상의해서 공연을 좀 더 다듬을 것이다. 그러면 관객들에게 좀 더 완결된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 같다.

Q. 무대 위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장치로 ‘거울’이 있었다. 특별한 의미나 거울을 통해 노리고자 했던 효과가 있는지?
작업 초기 구상단계부터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거울’의 의미에 대해서는 관객들이 각자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의도는 공연자든 관객이든 거울의 반영적 특성을 인지하면서, ‘현실’이라는 개념에 대해 반추해보자는 것이었다. ‘거울 속 반대편 세상’을 탐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거울을 통해 현실에서 멀어지는 기분도 가질 수 있고, 주체로서의 개인을 거울을 통해 들여다봄으로써 그의 심리적 지평을 비추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연극 공간에서는 ‘현실’과 ‘상상’이 마주치고 공존한다. 우리는 항상 이 사실에 매우 매료된다. 가끔씩 매우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의 무대 세트를 만들고 연극을 할 때조차도, 우리는 이 ‘현실’과 ‘상상’이 동시에 일어나는 공간에서 관객들의 감정을 연결시키고 극의 일부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이는 작업의 구상 초기부터 우리가 매우 신경 쓰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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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실비아 플라스 되기>에서는 대사보다는 몸의 움직임이나 제스처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몸의 움직임이 안무라고 할 정도로 무용에 가까웠다. 
신체의 움직임과 제스처는 우리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온전히 텍스트에 기반하는 정통 연극보다는 ‘신체적 연구’의 영역에 좀 더 접근하고자 한다. 실제로 그런 작업들을 프로듀싱해왔다. 아마도 우리가 받아왔던 교육이나 훈련들이 우리를 이런 작업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준 것 같다. 흔히 연극이라고 하면 생각하게 마련인 텍스트 기반의 드라마들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창작 과정은 신체 언어로 다가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리허설은 항상 몸 작업으로 시작한다. 우선 몸의 맥박들을 깨운다. 공연이라는 경험은 일차적으로는 공연자가 생생하게 겪고 느끼는 신체 경험이다. 이런 점에서 몸의 움직임이 우리의 매우 중요한 작업 ‘도구(tool)’인 것이 맞다. 우리의 작업 방법론의 핵심을 말하라면 ‘배우의 존재로 공간을 활성화 하는 것(the activation of the space through an actor’s presence)’이라 답하고 싶다. 이와 더불어, 조명, 소리와 음악, 무대 세트 등 외적인 요소들의 조합을 세밀하게 고려하고, 이 모든 요소들이 함께 숨 쉬고 서로 상호작용하여 공간이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되게 하려고 애쓴다. 공연장은 관객들의 시각적, 감각적 여정이 일어나는 곳이다. 공연장에서의 시각적이면서 신체적인 경험, 에너지의 상호 이동이 우리 미학의 주요 요소라 할 수 있다.

Q. 인천아트플랫폼의 동료 입주작가인 서영주 작가가 이번 공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다. 이처럼 다른 작가들과의 협업은 덕스씨어터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장르와 분야, 문화가 다른 예술가들과 작업하는 것을 즐기고,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협업은 기술적인 부분에서든 개인적인 부분에서든 독특하고 새로운 관점과 지평을 열어준다. 이번 공연에서는 서영주 작가가 실비아 플라스의 시를 한국어로 낭독해 주었고 이를 녹음하여 공연에 음향으로 사용했다. 서영주 작가의 음성이 공연에 독특한 질감을 부여해 주었고, 관객으로 하여금 공연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생각한다. 서영주 작가와는 젊은 여인, 할머니 음성 등 여러 가지 버전의 녹음을 시도해 보았고, 우리도 중국어로 시를 낭독해 보았다. 그것 자체로도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Q. <실비아 플라스되기>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작품이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계획인가? 공연 스케줄이 잡힌 것이 있는지? 
물론 이 작품을 좀 더 다듬고 발전시키는 등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는 점은 여지없이 확실하다. 하지만 일단은 조만간 타이페이의 뱀부 스튜디오(Bamboo Studio)에서 두 번째 레지던시가 계획되어 있어 그 준비에 집중하려고 한다. 홍콩, 마카오, 한국의 공연 관계자들과 ‘망명과 정착’이라는 주제로 협업을 할 계획이다. 이것이 끝나야 인천에서 했던 작업들을 되돌아볼 시간이 될 것 같다.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더불어 작품의 미적 측면을 좀 더 섬세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다른 예술가들을 초빙할 계획도 있다. 드라마터그를 초청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극을 바라보고, 움직임이나 도구 사용의 맥락을 넓히거나, 공연의 주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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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덕스씨어터가 추구하는 바가 있다면?
우리가 연극이라는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보았다. 연극을 통해 우리는 호기심을 잃지 않을 수 있고, 현존한다는 느낌, 내 자신이 소중하다는 느낌을 간직할 수 있다. 연극은 ‘지금 여기에 있다’라는 사실 그 자체를 너무나 잘 드러내는 매체이다. ‘지금 여기에 있음’을 신체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타인들과 조우하면서 공유하는 것이다. 연극은 또한 우리에게 빈 공간이나 다름없다. 비어있기 때문에 일상의 경험과 걱정들을 가져가서 자세히 살펴보거나 질문해 볼 수 있고, 비록 답이 없을지 몰라도 무언가 또 다른 관점을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연극을 통해 각자의 경험과 시각들을 진정하고 소중한 것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개개의 표현들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존재(Presence), 공간(Space), 앙상블(Ensemble, ‘함께한다’라는 뜻에서), 협업(Collaboration)이 우리의 예술적 방향을 가리키는 열쇳말들이다.
우리는 신진 예술가로서 겸손하고 정직하며 헝그리하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만 호기심을 유지하고, 서로간의 관계를 연결하고, 개인을 성장하게 해주는 매체로서의 연극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덕스씨어터의 예술적 인지도나 작업적 성취에 대한 욕심은 있다. 하지만 항상 왜 처음 연극에 발을 들였는가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연극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 자제로도 이미 너무나 멋진 일이라는 사실을.
   
Q. 벌써 연말이다. 인천 시민들에게 인사 한마디 전한다면?
인천에 머무를 수 있게 되어 정말 기뻤고 감사한다. 인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름다운 도시이다. 공기, 풍경, 여러 양식의 건축물들, 음식, 그리고 가는 곳마다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지난 3개월 간 잘 지낼 수 있었고, 벌써 인천이 그립다. 조금 이르지만 인천아트플랫폼과 인천 시민들에게 축복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17년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사랑을 보냅니다!


글, 번역 / 이영리(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