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과 귀명창의 신명나는 만남-대명창과 이수자가 어우러지는 판소리 다섯마당 ‘청어람’ 2016.11.1. 19:30, 부평아트센터 달누리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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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감상하는 능력을 제대로 갖춘 사람을 ‘귀명창(名唱)’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즐겨 듣는 애호가 수준을 넘어 판소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물론 지식을 바탕으로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 1일 인천 부평아트센터 ‘달누리극장’에서 열린 판소리 다섯 마당 ‘청어람(靑於藍)’ 공연에 인천 곳곳에 숨은 귀명창들이 모두 모였다. 이들은 ‘얼씨구, 좋다, 잘한다, 어이’ 등의 추임새를 소리꾼이 판소리를 잠시 쉬어가는 ‘숨구멍’ 사이사이 맛깔스럽게 꽂아 넣으며 흥을 돋웠다.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새내기 청중조차 이에 용기를 얻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추임새를 날릴 수 있었다. 한국 판소리를 대표하는 7명의 명창은 소리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아는 인천의 청중들 앞에서 마음껏 자신의 소리 보따리를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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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이라는 공연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날 공연은 판소리 명창과 이들의 대를 이어가는 후배 차세대 명창들이 꾸민 무대로, 좀처럼 인천에서 만나기 힘든 화려한 진용으로 짜여졌다. 서편제 춘향가, 서편제 심청가, 동편제 춘향가, 동편제 적벽가, 동초제 심청가, 동편제 수궁가, 동편제 흥부가 등 한국 판소리의 계보자들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TV 코미디 프로그램 ‘쓰리랑 부부’로 너무나 유명한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춘향가) 보유자인 신영희 선생과 한국판소리보존회 고문인 인천의 박계향 명창이 선배 명창으로 나섰고, 올해 열린 ’24회 임방울국악제’ 대통령상을 거머쥔 김경아 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장, 제20회 임방울국악제 최우수상의 이정원, 제15회 명창 박록주기념 전국국악대전 종합 최우수상을 받은 지선화, 제20회 동아국악콩쿠르 금상 경력의 국악방송 진행자 김봉영, 제19회 임방울국악제 대통령상 수상자인 채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이 선배들의 뒤를 받쳤다.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귀향’의 영화감독 조정래 씨가 사회를 맡았다. 조정래 감독은 김경아 명창의 차례에서는 고수로 나와 호흡을 맞춰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들 소리꾼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300석 규모에 불과한 작은 소극장에 마련된 무대였다. 이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을 청중들은 최고의 집중력과 호응을 보여주는 것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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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각 명창들이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10분 남짓한 길이의 ‘하이라이트’만을 뽑아 차례로 선보이는 식으로 진행됐다. 인천 판소리계의 어른인 박계향 선생이 심청가 중 ‘타루비 대목’을 이어 김경아 명창이 춘향가 중 방자가 춘향의 편지를 들고 상경하는 부분을 선보였다. 이정원 명창은 엄청난 성량을 뽐내며 적벽가 중 조자룡이 활을 쏘는 대목을 들려줬고, 지선화 명창은 심청가 중 심 봉사가 황성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김봉영 명창은 특유의 유머러스한 재담을 곁들여 토끼가 세상에 나오는 수궁가의 한 대목을 내놨다. 채수정 명창은 흥부가 중 박타는 대목을 들려줬고, 마지막 신영희 명창이 춘향가 중 ‘왔구나! 내 사위 왔네!’ 대목으로 마무리했다.

공연이 계속될수록 관객들은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명창들의 무대에 집중했고, 내공 깊은 청중 앞에 서는 것이 긴장된다며 엄살을 부리던 명창들도 이런 긴장이 오히려 즐거운 듯 최고의 소리를 선보이며 청중과 호흡을 같이 했다.
이번 공연은 최근의 국정농단 사태에 할 말을 잃은 시민들의 꽉 막힌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내는 무대이기도 했다. 최근 열린 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스타가 된 김경아 명창이 “‘최순실 상’을 받았다”며 인사를 올려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신영희 선생은 “정부가 전통 음악에 대한 지원을 잘 안 하는 것 같은데 그 많은 돈이 어디로 다 흘러갔을지 모르겠다”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는 속담이 있는데, 요즘 돈이 어디로 다 흘러가는지 열불이 난다”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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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연은 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예산으로 준비됐는데도, 티켓 가격은 2만원에 불과했다. 두 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휴식 시간도 없이 객석의 청중과 무대 위 명창들이 한호흡으로 즐긴 질 높은 공연의 가격이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이어서 더 놀라웠다. 앞으로 다양한 계보의 판소리 공연들을 좀 더 자주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 국악 초보인 기자마저 ‘얼씨구, 좋다~’를 연발하게 했던 인천의 수준 높은 ‘귀명창’들을 위해서라도.

김성호 / 경인일보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기자